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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무덤들 “여보시오. 김 교수, 이거 아주 조그만 성의니 받아 두구려!” 한 사장의 은근하고 사람을 못 견디게 하는 유혹의 손길은 이렇게 뻗쳐 왔습니다. 김 교수는 눈을 지그시 감고서 자존심을 내세워서 자신의 인격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이 재벌과 적당히 손을 잡고서 세상이 돌아가는 데로 흘러가고 말 것인가를 마음 속에서 결정하려 했습니다. 여우 같은 한 사장은 벌써 이런 눈치를 알아차리고서 또다시 손길을 뻗쳐옵니다. “김 교수, 이거 별 뜻이 담긴 것은 아니오. 그 흙단지가 얼마나 값진 것이라고 내가 그걸 욕심내서가 아니고, 다만 나의 이름으로 남기고 싶은 저 익운(새털구름이라는 뜻을 지닌 한 사장의 호이자 자신이 수집한 각종 문화재를 진열하여둔 개인 박물관)에 골고루 갖추어 두고 싶은데, 마침 이곳에서 이런 것이 나왔다니 반가워서 그러는 거라오. 조그만 것이오 받아두구려.” “한 사장님, 저의 사정을 좀 보아주십시오. 사실 저도 전국적인 발표와 이 조그만 항아리의 문화재적 가치만 아니라면, 아예 그냥 드리고 싶습니다. 제 발 40여 년을 쌓아온 학문의 길을 지킬 수 있도록 저를 좀 도와 주십시오.” 김 교수가 사정을 하며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애걸하듯이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장의 끈적끈적한 시선은 김 교수의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을 깡그리 다 읽고 있다는 듯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차근차근히 말을 합니다. “김 교수, 내 김 교수의 사정을 다 알고 있습니다. 요즘 딸아이의 혼수를 장만할 돈이 필요하다는 거 들어서 알고 있는데, 이거 조금 모자라면 내가 나머지를 책임지리다. 내가 뭐 안 되는 일을 하자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 발굴된 저 토기들을 내게 주는 게 아니라, 나의 박물관에 진열하게 해달라는 거 아니오. 자, 자 다시 한번 생각해 보구려. 그리고 내 이거 그냥이라도 드리고 싶었던 것이니 일단 받아두구, 정 마음이 편치 않을 때는 돌려주어도 좋겠오. 자 그럼 난 바빠서 이만.” 한 사장은 총총히 다방을 빠져나가고 말았습니다. ‘아! 어떻게 한단 말이냐? 이렇게 검은 돈 인줄을 알면서도 내 앞에 닥쳐 있는 일들이 나의 명예와 인격까지도 팔라고 하는구나.’ 김 교수는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가길게 소리를 내어서 내뿜었습니다. 김윤근 교수하면 우리나라의 역사학도들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국민들도 다 아는 고고학의 권위자이십니다. 그는 구석기시대 유물의 발굴로 우리나라의 역사가 적어도 3만 년은 더 오래된 것으로 증명이 되었고, 그러므로 해서 우리 역사를 깎아 내려서 자기들보다 훨씬 역사가 짧은 나라, 그러니까 자기들의 문화와 역사를 따르고, 자기들의 지배를 받음이 마땅하다는 주장을 해오던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어서 온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훌륭한 역사학자입니다. 그러나 자기 앞에 닥쳐 있는 일이 많은 돈을 요구하는 일이고, 더구나 딸자식의 결혼식에 필요한 돈이니 안 쓰고 견딜 수 있는 것도 아니란 것쯤은 잘 알고 있는 김 교수입니다. 그러니 더욱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김 교수라면 아마도 한 사장이 내민 돈 봉투를 집어서 한사장의 얼굴에 던져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한참을 가만히 생각에 잠기어 있던 김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탁자 위에 놓인 돈 봉투를 집어서 속주머니 깊이 쑤셔 넣으면서, 혹시 누가 보고 있지나 않는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살폈습니다. 아무도 자기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서는 안도의 한숨을 들이쉬며 다방 문을 나섰습니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울리고, 검은색 고급 세단의 뒷자리에 깊숙하게 파묻혀 있던 한 사장은 전화기의 스위치를 올리며, “네에, 한솔그룹 한이요”하자, 저쪽에서 반가운 듯한 밝은 목소리가 울려 왔습니다. “사장님, 저 박입니다. 지금 김 교수가 나가는데 봉투를 소중히 넣으면서 누가 보지 않나 살피기까지 했습니다. 성공하신 것 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으음, 알았네. 어서 자네는 돌아가게. 이 일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네, 사장님. 제가 어디 함부로 입 벌리는 사람입니까?” 한 사장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번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럼 그렇지, 자기가 아무리 훌륭한 학자라고 하더라도 지금 자식의 결혼을 앞두고 한푼이 없어서 쩔쩔매는 처지에 어쩌지도 못하겠지.’ 섬진강 물이 발원하여 약 16㎞를 달려오다가 구비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산골에 조그만 들판을 이루어 놓은 율어면이 있습니다. 이 면의 남동쪽 끝에 조그만 산골이 분지를 이루어서, 굽이굽이마다 산기슭을 따라 조그만 마을을 이루고 있는 이동 들판이 있습니다. 이 들판의 동쪽 산기슭에 한 골이 있고, 마을에서 산줄기를 따라 몇 백 m를 내려와서 산기슭에 널따란 벌판을 이루는 곳에 이형국 씨의 개간지가 있습니다. 한창 새마을 운동이 벌어지던 60년대에 이곳에 터를 잡고 국유지이지만 개간 허가를 받아서 일구어 사과와 배를 심어 조그만 과수원의 꿈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형국 씨가 사과밭에 거름을 주려고 나무 주위를 약 두자 깊이로 파고 있을 때 괭이에 딸그락거리며 무슨 그릇이 걸렸습니다. 형국 씨는 일을 하다가 잠시 허리를 쉬면서 무엇이 걸렸을까 하고 괭이로 살살 땅을 긁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괭이에 무슨 그릇 같은 것이 걸려 한 조각이 깨어져 나왔습니다. “이게 뭐야 ?” 형국씨는 다시 조심스럽게 그곳을 파보았습니다. 거기에서 생전 처음 보는 조그만 흙 항아리가 나왔습니다. 밑받침이 약 5㎝ 정도나 되게 높음직 하고, 네 군데에 네모난 창 모양의 구멍이 뚫린 것이 아무리 보아도 요즘의 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릇의 모양도 요즘의 것보다 약간 허리 부분이 굵고, 주둥이 쪽도 제법 높게 만들어진데다가 위쪽은 넓게 퍼진 모습입니다. 그러나, 형국씨는 기분이 별로 좋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내가 남의 무덤을 파헤친 것이 아닐까 ?”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항아리를 사과나무 밑에 놓아둔 채로 나머지의 나무들에게 거름줄 구덩이를 다 팠습니다. 아직 이른 봄볕이 따사롭게 내리 쬐었지만, 하루의 일이 끝날 무렵에는 구름에 가린 하늘에서 비라도 뿌릴 듯 찌푸렸습니다. 형국씨는 그릇을 집으로 가지고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아무래도 남의 무덤에서 나온 것을 집안에 들여다 놓기는 싫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며칠이 지나도록 형국씨는 이 일을 잊은 채로 과수원을 가꾸는데 정신이 팔려서 그냥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딸 은화가 우연히 과수원에 나와서 아버지의 일을 돕는다고 하다가 이 항아리를 보았습니다. “아버지, 이거 어디서 나왔어요 ?” “으응, 그거 거기 그 나무 밑에서 나왔는데, 아마도 거기가 누구 무덤이었나 보구나.” “아버지, 그럼 여기 좀더 파 봐요. 이런 것은 우리가 배우는 역사 시간에 많은 참고가 된데요. 우리 선생님은 옛날 사람들이 쓰던 화살촉이랑 그릇 같은 것들을 잘 모아서 가지고 다니시면서 공부시간에 우리에게 보여 주었어요.” 형국 씨는 딸아이의 부탁을 거절 할 수가 없어서 그러자고 나서서 땅을 파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버지, 조심하셔요. 무슨 소리가 났어요.” 은화가 소리를 치면서 가까이 덤벼들었습니다. “조심해라. 어디 내가 팔 테니까 넌 조금 기다려라.” 형국씨가 조심스레 땅을 파자 또 그릇이 나왔습니다. 조금씩 모양이 다른 그릇이 세 개 더 나왔습니다. 한 개는 길쭉하게 생겼는데 모양은 거의가 비슷하지만 길이가 다르고, 약간 더 넓고 좁은 차이만 있었습니다. 은화는 그것들을 모두 집으로 가져다가 물로 깨끗이 씻고 잘 닦아서 한쪽에 잘 간수를 하였습니다. 형국 씨는 그런 그릇을 방안에 들여놓으면 재수없다고 밖에다 내어놓으라고 하였고, 언니들은 귀신이 붙은 무덤에서 나온 물건이라고 무섭다고 하면서 “얘는? 너 그걸 뭐 하려고 그렇게 잘 모셔두는 것이냐? 어서 가져다 던져버려! 네가 안 가져다 버리면 우리가 가져다 버릴 거야”하고, 싫은 소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은화는 이것이 비록 무덤에서 나왔을망정 우리가 공부하는데 직접 보고 배울 것이라고 한사코 버리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아무리 공부 시간에 쓸 것이라고 하여도 온 식구가 싫다고 하니 어쩔 수없이 밖에 내어다가 헛간 구석에 놓아두었습니다. 이튿날 은화는 그릇들을 잘 챙겨서 보자기에 싸 가지고 학교에 가지고 갔습니다. 식구들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가면서 가지고 가는 은화는 선생님이 귀중한 것이라고 칭찬이나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선생님도 이런 걸 어디서 주워 왔니? 하고 꾸중이나 하면 나는 이걸 어떡 하지?’하는 걱정도 되었습니다. 은화는 조심스럽게 선생님께 싸 가지고 온 그릇들을 보여드렸습니다. “선생님, 이런 것들도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까요?” “얘! 은화야, 이런 것이 어디서 나왔니? 이건 아주 오랜 옛날의 물건들 같은데? 아마도 이건 신라 초기나 그보다 더 오랜 가야시대쯤의 그릇인 것 같구나.” “잠시만 기다려 보아라, 이거 한번 찾아봐야겠구나.” 그릇들을 소중히 잘 간수하고서 학교 뒤에 있는 사택으로 가셨습니다. 잠시 후, 선생님은 대백과 사전을 가지고 오셔서 여러 가지 그릇의 모양이 있는 곳을 찾으시더니 “으음, 바로 이거군. 은화야, 이리 와봐”하고 은화를 불러서 책의 사진을 보여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그릇의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중에서 두 개의 그릇을 짚으시면서 “자, 보아라, 이 그릇들은 바로 이런 모양이 아니냐? 이 그릇들은 가야시대의 것들이고, 여기 이것들은 삼국시대, 그러니까 통일신라 이전의, 그릇들이라고 되어 있지 않니? 그래서 이것들은 아마 그 시대의 그릇인 것 같구나”하시면서 무척 반가워 하셨습니다. 은화는 선생님께 그 그릇들을 학교에 가져오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아이구, 고마워라. 우리 은화가 아니었더라면 이 귀중한 문화재가 그만 박살이 나서 쓰레기가 될 뻔 하였구나?”하시며, 은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은화야, 이건 우리가 그냥 갖고 있을 물건이 아니란다. 이걸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서울에 있는 유명한 학자에게 알려 주어야 그 분들이 이걸 보면서 새로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게 되는 것이란다”하고 학급의 아이들에게 그릇을 보여주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리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라면 우리 고장은 모두 옛날 백제의 땅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본 이 그릇들은 어쩌면 이곳이 백제의 땅이 되기 훨씬 전에 벌써 가야의 땅에 속해 있었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 이 그릇들을 서울의 대학교수님들께 알려서 좀더 자세한 것을 알아보아야겠지만.” “여러분, 이 그릇들은 아주 오랜 옛날의 무덤에서 나온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은화가 아니었다면 이것들이 그냥 버려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주위의 모든 것들을 함부로 보고 아무렇게나 생각하기 쉽습니다. 은화처럼 선생님이 이야기한 것들을 잘 기억하고 지키면 이런 귀중한 자료를 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은화는 매우 기분이 좋았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모두 전하자 아버지도 매우 기뻐하시면서, “우리 은화가 아주 훌륭한 일을 했구나. 그런데 그것도 이 아빠 덕분이라는 것은 잊지 말아라”하고 뽐내는 시늉을 하시더니 “참 그보다 선생님이 더 훌륭하시구나. 너에게 그처럼 칭찬을 해주시고 또 그렇게 아는 것이 많아서 너희들에게 좋은 것을 가르쳐 주셨구나”하고, 말씀을 하시자 은화는 자기가 칭찬을 받은 것보다 선생님을 칭찬해 주시는 것이 더 자랑스러웠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몇 달이 흘러가고 여름방학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동안에 그릇에 관해서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는데, 여름방학이 시작된 지 며칠이 지나서 갑작스럽게 선생님께서 은화네 집에를 오셨습니다. 선생님은 늙수룩한 손님을 한 분 모시고 오셨습니다. 선생님은 손에 조그만 상자를 하나 들고 오셨습니다. “은화야, 아버지 집에 계시냐?” “예, 아버지 저기 과수원에서 일하시고 계시는데요.” “음 그래, 그럼 우리가 그리로 가지.” 늙은 신사 분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아이가 바로 편지에 썼던 그 고마운 아이 입니다.은화라고 하는데, 가정은 어려워도 구김살이 없고 도회지 아이들과 달리 집안일도 잘 도와드리고, 예절도 바른 아이입니다. 자! 교수님께서 사오신 선물이다.” 선생님께서는 선물을 맡기면서 은화의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아주 똑똑하고 야무지게 생겼군. 너의 덕분에 이곳까지 오게 되었구나. 고맙다. 우리 어린 학생이 우리 역사를 다시 찾는데 크게 공을 세웠어.” 은화는 어깨가 으쓱하도록 기분이 좋아서 앞장을 서면서 “제가 아버지 계신 곳으로 안내해 드릴께요”하고, 집 뒤를 돌아서 안내를 하였습니다. 저만큼 산비탈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은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버지, 선생님이 손님을 모시고 오셨어요.” “은화아버지 일하시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에서 교수님이 오셨어요.” “서두르지 마세요. 저희가 그리로 올라 갈 테니까요.” “거기들 계십시오. 제가 내려갈께요. 그릇이 나왔던 곳도 거기 집 가까운 곳이어요.” 은화아버지가 서둘러 내려오시자, 교수님과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서 계셨습니다. “알려드렸던 은화 아버지이십니다.” “은화 아버지 서울에서 오신 김윤근 교수님이십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하신 교수님이시고,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십니다. 전 번에 그 그릇을 직접 보시고 또 그릇이 나온 곳을 확인하시고 싶으시다고 이렇게 오셨습니다.” “이 산골까지 오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김윤근입니다. 귀중한 물건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차분하게 좀 여쭤 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우선 땀을 좀 식히시고 말씀을 드렸으면 하는데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여기 그늘이 좀 나을 것입니다. 은화야, 여기 앉으시게 멍석이라도 좀 깔고 시원한 냉수라도 좀 떠오너라”하며, 우물가에 가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러 올려서 시원하게 씻는 모습을 보고 김교수도 나서시며, “그 물이 참 시원해 보입니다. 나도 물 맛 좀 봅시다”하고, 우물가로 다가 가셨습니다. 두 분이 정답게 물을 퍼주고 부어 주면서 손을 씻고 얼굴에 물기를 하시고서 멍석을 깔아 놓은 그늘에 마주 앉았습니다. 선생님은 교수님이 사오신 양주병을 가져오면서, “은화에게 저기 오이 밭에 가서 오이를 두어 개 따다가 씻어 오너라”하고, 술상을 간단히 차리게 하였습니다. 이제 국민학교 6학년이지만 은화는 집안 살림을 거의 하다시피 하는 아이라서 하나도 망설임이 없이 척척 심부름을 하였습니다.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한동안 서울의 이야기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시던 교수님과 은화아버지는 월남에 간 우리 국군의 이야기로 옮아갔습니다. 은화아버지는 돈을 많이 번다는 꼬임에 은화 오빠가 월남에 가겠다고 한다고 한숨을 쉬시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김 교수님은 자기 친척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걱정을 하시더니 은화 오빠가 2대 독자이니 증명을 떼어서 붙이면 안 가게 될 것이라고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두어 시간을 이렇게 정담을 나누시며, 즐겁게 이야기를 하시다가 드디어 여기 오신 목적을 이야기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은화 아버지께서 저 그릇들을 발견하셨다는 곳이 어디인지 좀 알고 싶군요. 지금 저 그릇들은 우리나라의 역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것인데, 더구나 이 지방에서는 나오기 힘든 것이란 말입니다. 그게 왜 그러느냐 하면 이 모양의 토기는 가야의 옛터인 경상남도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서 발견이 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 고장에서 이런 것이 나왔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 되는 것이예요. 어쩌면 이 고장의 역사가 바뀌고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이 고장의 옛날 소속이 바꾸어지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우리로서는 매우 뜻깊은 발견이 되는 것이랍니다.” “우리 같은 농부가 무엇을 알겠어요. 그냥 땅을 파다가 그릇이 나와서 무덤에서 나온 것이라고 버리려고 했는데, 저 꼬마가 글쎄 선생님의 얘기를 기억하고서 꼭 가지고 가겠다고 하여서 보내드렸을 뿐입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렇게 귀중한 자료를 그냥 버리지 않고 신고하여 주셔서 우리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제 이곳을 좀 살펴보도록 하였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자 그럼 가시죠. 제가 안내를 하여 드리겠습니다.” 은화아버지는 교수님과 선생님의 앞장을 서서 과수원으로 안내를 하셨습니다. 세 분은 과수원의 가운데쯤에 있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 곁으로 다가가서 멈추어 섰습니다. “여기입니다. 이 나무밑을 이렇게 파는데 요 부분에서 처음 그릇이 나왔어요. 그 다음에 저 녀석이 파 달라고 해서 여기서 여기까지 팠더니, 요쯤에서 길쭉한 항아리가 나왔고, 저기에서 납작한 그릇이 나왔어요.” 손짓을 하여 가면서 설명을 하자 교수님은 수첩을 꺼내어서 대략의 그림을 그리면서 그릇이 나온 자리들을 표시하고, 간단히 그릇의 모양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줄자를 꺼내어서 그릇이 나왔다는 자리에 표시를 하고서 그릇들 사이의 거리를 재어서 적어 넣었습니다. “여기에서 뭐 조그만 것이라도 다른 것은 안 나왔습니까?” “예, 다른 것들은 별로 나온 것이 없었구요. 약간의 부스러기가 나왔지만 우리가 뭘 알아야죠. 그냥 쓸어 묻어버렸지요.” “그럼 여기에 그냥 묻혀 있을 것이 아닙니까?” “그러겠지요.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냥 묻어버리고서 그 뒤로는 아무도 손대지 않았으니까요.” “그럼 어디 거기를 한번 파 보도록 합시다. 제가 파겠습니다. 삽과 호미를 좀 빌려 주시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가지고 오겠습니다.” 은화아버지는 곧장 집으로 내려가서 삽과 괭이, 호미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저를 주십시오. 제가 파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팔 터이니 가르쳐만 주십시오.” “아닙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참고가 되는 것이 있을는지 모르니까 제가 차근차근 파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제게 맡겨 주십시오. 제가 묻었으니 제가 파야 잘 알고 팔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제가 부탁을 드리는 만큼만 파 주십시오. 그것들이 묻힌 만큼만 파시고서 제게 주십시오. 우린 이런 일이 직업이니 파는 것쯤은 문제가 없습니다.” 은화아버지가 윗 부분의 흙을 파내고 속의 흙을 파기 시작하자, 교수님은 바짝 붙어 앉아서 나오는 흙의 모습을 세심히 살피고 계셨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여기서부터는 제가 파도록 하겠습니다”하고, 손을 내어 저으면서 호미를 들고서 구덩이로 들어서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님은 그때부터 꼬박 사흘 동안이나 구덩이에서 호미로 흙을 긁어내면서 조심조심 파내려 갔습니다. 그 동안에 조그만 그릇 조각과 다 부스러진 쇳조각이 몇 개가 나왔을 뿐이었습니다. 사흘 동안의 작업의 결과는 아무 보잘것없는 것들이 약간 나왔을 뿐이었지만 교수님은 “이 다음에 겨울방학을 하면 학생들과 함께 와서 며칠 간 발굴작업을 해보겠습니다”하는 이야기를 남기고 떠나가셨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며칠이 지난 다음에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에 이 고장 은화네 집에서 발견된 토기의 사진과 함께 자세한 이야기가 커다랗게 실렸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자취를 감추다시피 한 가야의 유물이 뜻밖의 고장에서 출토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전라남도 보성군 율어면 이동리에 있는 이형국(48세 농업) 씨의 과수원에서 가야시대의 것이 분명한 토기 3점이 지난 3월 하순에 과수에 거름을 주기 위한 구덩이를 파다가 발견되었는데, 고고학의 권위자인 김윤근(서울 가락대 교수) 박사에게 감정을 의뢰해와서 조사를 하여본 결과 밝혀진 것이다. 김 교수에 의하면 이 그릇들은 서남방을 향하는 전형적인 가야시대의 무덤 형태를 지닌 고총에서 발굴되었는데, 이 그릇들이 발굴되므로 해서 역사적으로 백제의 영토라고 생각해왔던 이 고장이 가야의 땅이었으리라는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이 그릇을 발견하고 그냥 버리려고 했던 것을 어린 국민학생인 딸 은화(12세:국교 6년생) 양이 한사코 보관을 주장하고, 학교에 가져와 학습자료로 제출한 것을 담임 선을수(38) 교사가 김 교수에게 감정을 의뢰하였고, 김 교수는 지난 23일부터 3일간에 걸친 현지 답사와 발굴을 해본 결과를 밝힘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신문의 기사를 들고 은화네 집으로 달려온 담임선생님은 은화를 불러 기사를 읽어주며 “우리 은화가 착한 일을 해서 신문에까지 났구나, 축하한다. 은화야”하며 은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한편으로 이 기사가 신문에 나가자 여러 곳에서 김 교수에게 문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었습니다. 특히 고고학을 연구하는 교수들은 자세한 기록을 알고자 하는 사람, 직접 그 그릇들을 볼 수 없느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에 유독 관심을 가진 사람이 바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기업 한솔그룹의 회장이고, 익운박물관의 설립자인 한창달 씨였습니다. 그는 곧장 비서실장을 불러서 “이 실장, 이 기사 읽어보았오. 지금 이 기사를 읽어보니 그곳에 가야의 유물이 더 있을 것도 같은데, 한 번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김 교수를 만나서 그 유물을 우리 박물관에 둘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해보시오. 돈은 얼마든지 낸다고 하시오“하고, 명령을 했습니다. “네, 염려 마십시오. 우리 박물관의 고문이신 강교수님과 함께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실장은 곧장 강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서 김교수와 만날 수 있게 주선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이 실장과 함께 자리를 갖자는 것입니다. “이 실장, 나 강 교수요. 지금 김 교수와 전화 연락을 했는데, 오늘 저녁을 함께 하자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저녁 7시 고려호텔 커피숍으로 나오십시오”하고 금방 연락이 왔습니다. “이 실장 오늘 저녁엔 잘 좀 이야기를 해서 꼭 일을 만들어 보시오”하는 회장의 말씀을 듣고 이 실장은 무거운 책임을 느꼈습니다. “김 교수님 우리 고문님을 통해서 들으셨겠지만, 저는 한솔그룹의 한 회장 밑에서 일하는 비서실장 이충수입니다. 우리 회장님께서 김 박사님의 기사를 읽으시고 많은 관심을 기울이시면서 한 번 뵙고 인사를 드리라고 하여서 이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네에, 강 교수를 통해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한 회장님께서 우리 역사학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또 익운박물관으로 해서 잊혀져 가는 귀중한 문화재를 잘 보관하고 수집을 해주신다는 점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실장은 이렇게 우리를 잘 이해해 주는 것을 보니까 오늘 일은 쉽게 잘 되겠구나 하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부드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김 교수님 사실은 바로 그렇게 우리 한 회장을 잘 이해하여 주시기 때문에 이렇게 뵙자고 한것입니다. 한 회장님께서 그 기사에 나온 그릇들을 직접 보고 싶어 하시면서, 김교수님께서 힘을 써 주신다면 그걸 익운관에 진열할 수 있도록 하여 달라는 부탁이십니다"하고, 쉽게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습니다. “익운 박물관에 보관하는 것도 좋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이미 중앙박물관에 신고가 되어 있는 물건이 되어서 도저히 그렇게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딱 잘라서 한 마디로 거절을 하였습니다. “물론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따로 부탁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까?” “이 실장님,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건 쉬운 일이 아닐 뿐아니라, 이미 국가에 등록이 되어 있는 물건이 아니라도 이런 골동품은 그냥 거래를 할 수가 없는 물건이 아닙니까?” “저희가 이렇게 많은 물건을 수집하는 동안에 그런 기본도 모르고 어떻게 수집을 하였겠습니까?” 이 실장과 김교수는 끈질기게 줄다리기를 하였습니다. 곁에서 강 교수가 “김 선배님, 우리가 어디 이런 유물을 한두 번 다루어 보았습니까? 그거 발표가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선배님이 잘 처리를 할 수 있는 게 아닙니까?”하고, 거들고 나섰습니다. 김 교수는 벌컥 화를 내며 “강 교수, 정말 못 쓰겠구만. 내가 이 분야를 40여 년이나 연구해 왔지만 자네 같은 친구는 오늘 처음일쎄. 그래 내가 나의 양심을 팔아야 옳다는 말인가?” “김 선배님, 너무 하십니다. 제가 어디 양심을 팔라고 하였습니까? 제가 고문으로 있고, 또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유물을 수집하여 보관하는 곳이니 이왕이면 이곳에 보관을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입니까?” “그만두게 나는 이런 자리에서 식사를 하면 소화가 안 되어서 반드시 탈이 나고 만다네. 그만 가보겠네.” 한 마디를 남기고 벌떡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이 실장과 강 교수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어서 멍하니 창 밖만 쳐다봅니다. 이튿날 이 보고를 받은 한 회장은 몹시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이 실장, 어떻게든지 이 일을 만들어 보시오” 한마디로 끝을 맺었습니다. 이 실장은 한 회장이 이렇게 화를 내시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이 실장은 마지막 수단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김 교수와 가까운 사람을 찾아서 김 교수에게 어떤 사람을 시키면 움직일 수 있는지, 아니면 김 교수에게 어떤 결정적인 어려움이나 잘못 같은 것이라도 찾을 수는 없는지를 샅샅이 조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드디어 이 실장에게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김 교수가 앞으로 20여일 후에 딸을 시집 보내게 되었는데 결혼 자금이 없어서 집안에서 여간 걱정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실장은 곧장 이런 사실을 이용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결혼비용이 될 만큼의 돈을 집어주고 일을 마무리지을 속셈 이었습나다. 한 회장의 돈을 받은 김 교수는 그걸 어떻게 처리하여야 할지를 몹시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과연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탑을 이렇게 허물어뜨려야 할 것인가? 그러나 안에 들어서면 돈 걱정 때문에 한숨 소리만 들리니 과연 나의 자존심만을 끝까지 지키는 게 옳을까?’ 이런 생각에 김 교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하룻밤을 꼬박 세운 김 교수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는 곧장 강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서 “강 교수, 지난번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아주 우습더구만 아예 나를 무시하고 돈으로 나를 사려고 덤비더구만. 나는 불쾌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 몇 푼을 맡아 있는데 당신이 소개한 사람들이니 좀 전해 주시오”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돈을 돌려주고 난 김 교수는 허탈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 준 것 같아서 속이 후련하였습니다. 돈을 되돌려 받은 한 회장은 자신이 하는 일이 이렇게 까다롭고, 거절을 당하였다는데 몹시 마음이 편치 못하였습니다. 한 회장은 며칠을 끙긍대며, 속을 끓이다가 드디어 한 가지 새로운 방법을 쓸 것을 계획하였습니다. 한 회장은 곧장 이 실장을 토기가 발견된 곳으로 내려보내서, 그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조사하게 하고, 그 땅을 사도록 하였습니다. 이 실장이 현지에 내려가서 조사를 하여 본 결과 그 땅은 개인의 땅이 아니고, 국유지여서 개인이 개간을 하였다 하더라도 그 땅을 불하받으면 그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실장, 며칠이 걸리더라도 그 땅을 불하 받을수 있도록 조치를 해두고 올라오라고,알겠나?” 한 회장의 명령은 군대에서 상관의 그것보다도 훨씬 무서운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이 실장은 자신의 목을 걸고 이 일을 이루어야만 하였습니다. 군청에서는 “그깐 땅을 대그룹의 회장님이 무엇을 하려고 사려고 하느냐?”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실장은 담당 계원과 과장을 불러 저녁을 함께 나누며 “우리 회장님이 이 고장에 관심을 가지고 이곳에 투자를 하실 의향을 가지신 것 같은데, 잘 좀 도와주십시오”하고 은근히 한 회장의 막대한 재산을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야 뭐, 그깐 쓸데없는 땅을 누가 가지고 있던지, 그것보다는 이 고장에 큰 공장이나 하나 지어서 고장 사람들에게 일터라도 주었으면 감사 하겠습니다”하고 도리어 어서 사도록 하라는 듯이 말을 하였습니다. 이 실장은 식사가 끝난 다음에 그들에게 한달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을 용돈이나 하라고 내밀었습니다. 이 돈의 효력은 금방 나타나서 이튿날 국유지 불하 신청서는 아무런 말썽이 없이 쉽게 접수가 되었고, 빠른 시간 안에 연락을 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내었습니다. 불하 신청서를 접수 시킨 뒤 약 2주일 뒤에 이 실장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이 실장이십니까 ? 여기 군청인데요, 실장님이 신청하신 불하 신청이 받아들여져 허가가 날 것 같습니다.” 이 과장은 곧장 한 회장에게 이 사실을 알려 드렸습니다. 한 회장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이 실장 수고 많았어.” 한 달쯤이 지나서 이 땅의 불하가 결정되었다는 통지서가 한 회장에게 전달이 되었고, 이 땅에서 과수원을 가꾼 이형국 씨에게도 전달되었습니다. "이형국 씨 귀하. 귀하가 점유하여 개간을 한 땅은 국유지로서 그 동안 귀하가 개간 관리하고 있었으나, 이번에 정식으로 불하 신청을 한 한창달 씨에게 정식절차를 밟아 불하를 결정하였으니,1985년 12월 31일까지 현재의 땅을 인도 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마른하늘에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서류가 전달이 되었습니다. 이형국씨는 서류를 들고 면사무소로 군청으로 다니면서 호소를 하였으나, 누구 한 사람도 어떻게 도와 주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형국 씨는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자 도청으로 찾아가서 사정을 호소하였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조처입니다.곧 조사를 하여 알려드릴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약 일주일이면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약속을 받고서 집으로 돌아와서 일주일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약속했던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다시 도청을 찾아간 이형국 씨는 그만 기가 막혀서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군청에 연락을 해봤더니, 그 땅은 허가도 없이 당신이 마음대로 개간을 하여서 몇 년 씩이나 그냥 농사를 지었다고 하더군요. 그럼 당신에게 아무런 권한이 없어요. 반드시 신고를 하고서 세금을 내었어야 인정을 받을 수 있는데”하며 자기로서는 어떻게 도와 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온 집안이 쑥밭이 되어버린 것을 보고 있던 은화가 마지막으로 해보겠노라고, 서울에 있는 김 교수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김 교수님. 우리집을 좀 도와주십시오. 이제 겨우 이 땅에 과일 나무를 심어서 열매를 따게 되었는데, 이렇게 억울하게 땅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혹시 한창달 씨라는 분을 아시면 우리 식구가 이곳에서 살수 있도록 좀 부탁 해주세요." 김 교수는 편지를 받자 무서운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창달, 이런 못된 사람이 결국은 그곳을 사서 나의 연구를 방해하려고 하는구나. 어디 두고 보자.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너희에게 기어이 본때를 보여 주겠다.” 김 교수는 이를 부드득 갈며, 다짐을 하였습니다. 김 교수는 신문사에 전화로 이런 사실을 알리고, 그 곳이 역사적 유물이 있는 곳이므로 유적지로 지정을 하여 개발을 할 수 없도록 해달라고 신청을 하였습니다. 김 교수의 이런 신청은 국가에서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을 만큼 권위가 있는 학자의 주장이었으므로, 곧바로 허가가 났습니다. 김 교수는 곧장 한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한 회장님, 대단히 죄송합니다. 토기가 발굴된 땅을 불하받아서 발굴하시려고 하셨다는데, 그만 그곳이 유적지로 지정을 받아서 함부로 손 댈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동안 그 땅을 불하받기 위해서 군청이며, 도청에까지 수많은 돈을 뿌리신 모양인데 만약 더 이상 그 땅에 대해서 어떤 짓이라도 한다면 지금까지 당신이 한 일들을 모두 세상에 알리고 말겠소. 이제 더 이상 그 사람들을 괴롭히지 마시오”하고 자신의 말만을 마친 채 전화를 뚝 끊어 버렸습니다. 김 교수가 그 동안에 한솔그룹의 한 회장이 골동품을 수집하기 위해서 벌인 각종의 부정한 짓들과 이번에 은화네 땅을 사기 위해서 군청, 도청에다가 뿌린 부정한 돈과 도지사에게까지 골동품을 선사하는 야비한 짓을 했다는 사실을 일일이 조사를 하여 다 알고 있다는 것은 강 교수를 통해서 훤히 알고 있는 한 회장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이상 김 교수의 비위를 건드리는 것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쯤을 모를 한 회장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가 있어서 그가 유적지로 지적을 하면 국가에서 하는 건설공사도 중단을 시켰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어떻게 더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 후에 은화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은화 양에게. 이제 안심을 해도 괜찮을 것이다. 내가 그곳을 유적이 있는 곳이니까 함부로 땅을 파거나 사고 팔아서는 안 되는 곳으로 지정을 하였으니, 땅을 산 사람들이 이제 그 땅이 필요가 없어졌단다. 부모님께도 안부 전하여라." 은화는 편지를 읽으며 환한 미소를 띄웁니다. 온 가족은 은화의 얼굴을 보며 궁금해 하지만 은화는 그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눈물만 글썽이며, “아버지, 우리 이제 괜찮대요. 김교수님이 이 땅을 지켜 주셨어요”하고는 방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공립정신지체특수학교인 미추홀학교(교장 박인호)는20일 제31회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전교생 227명을 대상으로 제2회 미추홀 건강걷기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건강걷기대회는 학교에서 인천대공원까지 걷기, 인천대공원 내에서 걷기 등 학생들의 연령과 체력에 따라 목표거리를 다양화하는 등 학생들이 완주할 수 있도록 고려했다.건강걷기대회는 걷는 활동이 부족한 장애학생들에게 건강한 운동습관을 갖게 하고 학생들 자신이 목표로 한 지점까지 도달하게 하여 성취감을 갖도록 하자는 목적으로 실시되어 학부모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 박 교장은 "장애학생들이 경험하지 못한 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인내심을 키우고,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과 자신감을 갖게 하며, 완주한 모든 학생들에게는 완주기념메달을 수여하고, 이번 건강걷기대회를 계기로 다른 교육활동에도 성취동기를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추진하게 되었다"라고 건강걷기대회의 취지를 밝혔다. 미추홀학교는 학생들이 건강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체력을 단련하고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자 '건강한 삶을 위한 체력증진 프로그램'을 학교특색사업으로 선정, 실천하고 있다.
인천남부교육지원청(교육장 이재훈)에서 지원하는 2011학년도 어린이 환경교실 초록수비대 2기 발대식이21일 인천송림초 강당에서 열렸다. 관내 송림초를 포함하여 4개교 278명의 학생과 동부교육지원청 관내 도림초를 포함한 3개교 153명의 학생 등 총 431명의 학생이 참석했다. 발대식에서는장신호 서울교대 교수의 개식선언과 박순근 현대제철상무의 환영사와 함께 기업기부 프로그램의 의미를 알렸고, 남부교육지원청 정영수 창의인성교육지원과장은 축사를 통해 올바른 환경적 소양과 녹색생활 실천에 앞장서는 환경지킴이가 될 수 있는 학생들이 되도록 당부했다. 초록수비대는 인천, 당진, 포항 등에 위치한 현대제철에서 기업이 위치한 지역의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기업기부사업이며, 서울교대 창의융합교육연구센터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번 발대식에는 참가하는 지역의 학생들을 위해 학교별로 차량을 지원하였고, 참여하는 학생들에게는 티셔츠와 함께 연간 운영되는 모든 프로그램과 재료비, 강사비 등 전액을 현대제철에서 지원하게 된다. 학생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저탄소 녹색성장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실생활에서 에너지 절약을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태도를 함양하는데 크데 도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천남부교육지원청(교육장 이재훈) Wee센터는 연평초 학생 81명을 대상으로21일과 22일 양일에 걸쳐 개개인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자신의 꿈을 되짚어볼 수 있는 집단상담프로그램 '희망무지개 프로젝트' 행사를 실시한다.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임시대피소인 인스파월드와 임시 학교인 운남초등학교에서 개인상담 및 집단상담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던 인천남부 Wee센터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연평초등학교 학생들의 정서적 건강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을 갖고 나아가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확인하고 미래에 대한 비젼을 세워 적극적인 학교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인천남부 Wee 센터장 김수남 교수학습지원과장은 "이번 상담프로그램이 연평초등학교 학생들의 정서적 안정과 행복한 학교생활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며 더불어 집단활동을 통해 긍정적 자아인식을 갖고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을 갖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인천 남부Wee센터는 앞으로도 도서벽지 등 소외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상담지원서비스를 실시할 예정이다.
진행형이지만 그 동안 전국 여행지를 참 많이 떠돌았다. 그러면서 느낀 게 사람들을 불러 모으려면 여행지도 품격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3일 청주삼백리 회원들과 다녀온 충북 괴산군 칠성면의 산막이 옛길(http://sanmaki.goesan.go.kr)이 그런 곳이다. 흥덕구청 광장에서 일행들을 만난 후 1시간 30여분 거리의 산막이 옛길로 향했다. 바람은 차지만 날씨가 따뜻해 차창너머로 보이는 농촌의 일손이 바쁘다. 이른 시간이지만 할아버지 한 분이 밭에서 소로 쟁기질하는 모습도 보인다. 도착하니 입구의 비닐하우스에서 미선나무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의 특산식물 미선나무는 군락을 이룬 자생지 5곳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는데 그중 3곳이 괴산군에 위치한다. 미선나무는 열매의 모습이 둥그스름한 부채를 닮고, 개나리를 닮은 흰색의 꽃이 은은하고 매혹적이어서 관상용이나 울타리용으로 인기가 높다. 꽃구경을 하고나니 발걸음이 가볍다. 옛길이 괴산호를 끼고 외사리 사오랑 마을에서 산골마을인 산막이 마을(산속의 마지막 마을)까지 이어지는데 숲속의 자연환경이 한국의 자연미를 그대로 보여주고, 전망대와 여러 가지 볼거리가 옛 정취와 향수를 느끼게 해줘 날씨 따뜻한 날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과 먹을거리 챙겨 하루 산책하기에 좋은 코스다. 산막이 옛길 안내도를 살펴보고 아래로 내려가면 선착장과의 갈림길에 새로 지은 화장실이 있다. '여기좀 봐유! 산막이 선착장까지 화장실이 없대유~ 이곳에서 버리고 가유~' 충청도 말은 '유~'가 길어 느리지만 상대방을 존중하는 겸손이 함께한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재미있는 문구 때문인지 사람들이 화장실 앞에 길게 줄을 섰다. 처음 만나는 곳이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하나의 나무처럼 자라는 연리지와 큰 바위덩어리들이 놓여있는 고인돌 쉼터다. 연리지는 남녀 사이 혹은 부부애가 진한 것을 비유하는 사랑나무다. 연리지를 한 바퀴 돌아보며 사랑과 소망을 기원하는 사람도 있고, 하트 모양의 나무판에 사랑을 속삭인 글들도 걸려있다. 이곳의 연리지를 보며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고사목이 된 청천면 송면리의 소나무 연리지를 생각하니 은근이 부아가 치밀었다. 소나무동산에 오르면 시원스레 펼쳐진 괴산호의 풍광이 눈앞에 나타나 가슴이 확 트인다. 이곳에 그네와 그네벤치, 예쁜 우체통이 있어 맑은 공기를 마시며 낭만을 누리기에 좋다.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은 구름사다리를 닮은 소나무 출렁다리에 올라 스릴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번에 산막이 옛길을 찾은 주목적이 가을이면 전국 등반대회가 열리는 등잔봉에서 천장봉으로 이어진 등산로를 산책하고 한반도 전망대에서 괴산호를 내려다보는 것이라 노루샘과 연화담 못미처에서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등산로 초입이 하늘과 어우러진 모습이 백두산 천지를 오르는 풍경과 닮았다.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 칠성소재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등잔봉(해발 450m)은 높지 않은 산이지만 처음부터 오르막이 이어져 힘이 든다. 숨을 헐떡거리다 산허리에서 만난 이정표 '힘들고 위험한 길, 편안하고 완만한 길'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인생살이가 그렇듯 각자의 길에서 행복을 찾아내면 된다. 힘들고 위험한 길을 걸으며 또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은 내가 택한 인생살이다. 등잔봉 정상의 조망을 나뭇가지들이 가린다. 잡목 몇 개만 제거해도 호수의 멋진 풍광이 제대로 보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산을 오르며 가지 제거 작업을 한 잡목을 이용해 산책로를 개척 중인 사람들을 만났는데 등잔봉도 잡목을 이용해 전망대를 만들고 있다. 세계적으로 청정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뉴질랜드에서 놀이기구, 운동기구, 벤치 등이 모두 목재로 만들어진 것을 보며 감동했던 터라 자연을 이용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등잔봉부터 1.1㎞ 거리의 한반도 전망대까지는 나뭇가지 사이로 괴산호가 보이고 평탄한 산길이라 두런두런 이야기가 이어진다. 전망대에 도착해 한반도를 닮은 지형이 호수와 어우러진 모습과 괴산댐, 반대편 산 밑의 오지마을 갈은(갈론)구곡 가는 길을 바라봤다. 전망대에서 천장봉(437m)까지는 300여m 거리로 가깝다. 천장봉 못미처에는 진달래 동산으로, 지나서는 산막이 마을로 가는 갈림길이 있어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이곳에서 산막이 옛길로 향하지만 우리는 천장봉을 지나쳐 삼성봉(550m)까지 갔다. 평평하고 제법 넓어 쉼터로 알맞은 정상부분에 사랑나무 연리지가 있어 반갑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바람소리뿐 적막강산이지만 가끔은 이런 곳이 좋다. 삼성봉에서 내려오는 하산 길은 가파른데다 쌓여있는 낙엽이 미끄럼을 타게 해 엉덩방아 찧기 쉽다. 산 아래로 내려오면 임도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농원을 만난다. 물길을 내려다보며 걸으면 물에 막히기 전부터 오지의 유배지로 산막이 옛길의 끝인 산막이 마을이다. 이제 3가구만 남은 마을에 들어서면 노수신적소와 하얀 집이 눈에 띄는데 노수신적소(충북기념물 제74호)는 우의정·좌의정·영의정을 지낸 조선시대의 문신 노수신이 유배생활을 할 때 거처하던 곳으로 괴산댐을 만들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고, 하얀 집은 최근에 지어졌다. 이곳에서 맑은 공기도 마시고 포장마차에서 두부 안주로 막걸리도 한 잔 마시는 게 인생살이의 묘미다. 산막이 마을에서 옛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경치가 좋은 선착장이 있다. 5000원이면 이곳에서 배를 타고 초입의 선착장까지 갈 수 있다. 젊은이들이 그네를 타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선착장을 지나 흙길을 걸으면 가까운 거리부터 나무계단이 이어지고 아름다운 호수 옆으로 산딸기길, 가재연못, 진달래동산, 다래 숲 동굴, 마흔고개, 고공전망대, 괴음정, 호수전망대, 얼음 바람골, 앉은뱅이 약수, 망세루와 연화담, 노루샘을 차례로 만난다. 산막이 옛길은 때 묻지 않은 청정지역이고 여러 가지 볼거리들이 쪽빛 호수와 어우러져 산책길이 지루하지 않다. 산책로 주변에 군데군데 놓인 지게 위에서 이 고장 문인들의 작품을 만나는 것도 인상적이다. 가끔은 우연이 필연으로 이어지기도 해 인생살이가 재미있다. 시 '이슬'을 직접 쓴 김경안 시인을 그의 작품 앞에서 만나 이곳이 임각수 괴산군수가 나뭇짐을 지고 다니던 길이라는 얘기까지 들었다. 괴산읍에서 감초식약동원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 시인은 괴산문협 회원들과 옛길로 나들이 나왔다가 마침 이곳을 지나는 중이었다.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회라지만 변주섭 괴산문협 지부장은 가까운 일가라 더 반가웠다. 산막이 옛길에서 두 곳의 나무줄기가 물을 내뿜는 앉은뱅이 약수에 사람들이 많다. 모터로 지하수를 퍼 올린 약수인지 물맛이 좋고 시원하다. 몇 번 다녀간 곳이지만 두 곳의 약수에 남녀가 있고 성을 구별해 먹어야 효험이 있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 가끔은 누군가가 만들어내 '믿거나 말거나'인 얘기가 머릿속에 진실로 각인된다. 싱거운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앉은뱅이 약수가 물을 내뿜는 모양을 유심히 관찰하니 세상 이치에 둔한 나도 남녀를 구별한다. 새로운 역사가 이렇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여행의 말미에서 새삼 실감했다. 역사가 늘 새로운 것을 우리 문화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듯 몸이 떠나는 게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며 느끼는 게 진정한 여행이다. 그런 면에서 산막이 옛길만큼 찾을 때마다 새롭고 마음 편한 곳도 드물다. 산새의 노랫소리와 봄꽃의 화려함이 밖으로 유혹하는 이 좋은 날 몸을 자연에 맡길 수 있는 산막이 옛길로 떠나보자. 그곳에 숨어있는 당신의 행복이 기다린다.
서림초(학교장 이병로)는 20~22일 경주 및 포항일원으로 6학년 5개반 163명의 학생들이학교장이 총 인솔 책임자가 되어 수학여행 중이다. 학생들에게 현장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여 우리나라의 발전상을 확인하게 하고 조상들의 얼과 슬기를 접하게 함으로써, 나라 사랑의 정신 및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와 사랑하는 마음을 함양하고 전통문화 계승 발전에 대한 신념을 고취시키고자 마련되어진 이번 수학여행은 지난 3월 중 학교운영위원회 위원들의 심의 과정 등을 거쳐 결정되어졌다. 2011학년도에 시행되고 있는 서림초 수학여행은 충청남도교육청 자치법규391호(2001.2.15)인 '충청남도각급학교현장교육학생안전관리규칙'에 의거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하며,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불쾌감을 주는 행동이나 말은 삼가고, 스스로 즐거운 여행이 되도록 노력한다" 등 나름의 현장학습 체험규칙을 제정19일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6학년 관계 선생님 및 학부모 대표들 앞에서 준수 서약식을 갖기도 하였다. 이 교장은 “신라라는 테마를 가지고 사전 학습, 본 학습, 사후 학습을 미리 마련되어진 교육프로그램에 의해 진행함으로써 교육적인 성취를 얻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림초(학교장 이병로)는 3월 신학년도의 시작과 함께 독서교육 활성화를 통한 글로벌 미래 인재 육성이라는 학교교육목표 구현을 위해 아침 8시 30분부터 9시까지 전교직원 및 전교생이 참여하는 아침 독서 30분 운동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림초는 지속적인 아침 독서 30분 운동으로 동기유발 강화를 통한 독서습관 형성 및 내용 이해 중심의 독서능력 향상 방안 모색하고 광범위하고 심도 있는 독서와 사고 태도 함양을 위해 학교장 특색 교육사업으로 선정 운영하고 있는데 이의 정착을 위하여 학교에서 자체 구안 제작한 120페이지 상당의 독서록을 전체 학생 813명에게 배포하여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독서 활동의 이력관리에 철저를 기하여 초등학교 시절의 독서 이력부터 상급학교 진학 등에 중요 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통합적이고 창의적인 사고 능력 신장으로 충남교육의 인재 상인 스마트 인재로 커 나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서림아침 독서 30분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이 교장은 “고등사고 능력 신장 및 미래사회 인재의 핵심역량인 상황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의 배양 등은 많은 독서를 통해 길러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며 학생들의 독서활동 지도에 진력하는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은 창의적 체험활동이 신설된 것이 특징이다. 이는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중심으로 배려와 나눔의 실천 활동을 하는 교육과정이다. 흔히 비교과영역이라고 하는데, 교과부가 지난해 도입한 창의적 체험활동 종합지원시스템(에듀팟 www.edupot.go.kr)에 따로 관리한다. 이곳은 학생 스스로가 기록하는 온라인 공간인데, 이 기록물들은 대학에 진학할 때 전형자료로써 자동으로 제출된다. 이러자 학부모와 학생은 비상이 걸렸다. 공부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비교과활동까지 입시에 반영한다고 하니 안절부절 못한다. 성급한 학부모와 학생은 벌써부터 에듀팟 준비를 위한 학원을 기웃거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사고다. 학원에 기대는 것은 에듀팟의 근본 취지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러면 에듀팟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창의적체험활동에 대한 성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교육과정에서 제시하고 있는 성격은 다음과 같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교과 이외의 활동으로서 교과와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으며, 앎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나눔과 배려를 할 줄 아는 창의성과 인성을 겸비한 미래지향적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기본적으로 자율성에 바탕을 둔 집단 활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집단에 소속된 개인의 개성과 창의성도 아울러 고양하려는 교육적 노력을 포함한다(교육과학기술부 고시 제 2009-41호). 이 설명에서 보듯이 창의적 체험활동은 공동으로 진행하면서 동시에 학생의 자율성에 바탕을 둔다. 학생들은 학교 집단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개인의 개성과 창의성을 고양하는 생활 자세를 길러야 한다. 실제로 학교 내·외 모든 활동은 집단 활동의 성격이다. 학급, 학년, 학교 및 지역사회의 특성에 맞게 학교에서 선택하여 융통성 있게 운영하고 있다. 활동 내용은 개인에게 권고적인 성격을 띠고 있지만, 개인은 선택과 집중하여 참여할 수 있다. 문제는 과거에는 이와 비슷한 내용을 교사가 기술했지만, 이제는 학생 스스로 에듀팟에 입력·관리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제 전국 중·고교 학생들은 내신을 제외한 모든 비교과 활동을 자신이 에듀팟에 담아야 한다. 기록 내용은 기본적으로 학교 내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을 각 항목의 메뉴에 따라 적는다. 이때도 학생들이 입력하는 모든 내용이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담임교사나 분야별 담당교사(방과후활동, 진학상담 등)는 학생이 작성한 내용이 타당한지, 보완할 내용은 없는지 검토해 승인하거나 혹은 승인을 거부할 수도 있다. 또 수정·보완이 필요한 경우 보류해 둘수도 있다. 교사가 거부하거나 수정, 보완의 과정을 거친 것은 별도 기록으로 남고 에듀팟에는 교사의 승인을 거친 최종 결과물만 남게 된다. 보고서는 형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학교에서 주는 보고서 양식도 최소한의 지침일 뿐이다. 자신의 소질에 따라 편지나 감상문, 인터뷰 기사 등으로 할 수도 있고, 그림, 만화, 사진 등 다양한 방법으로 보고서를 만들 수도 있다. 보고서 내용은 자신의 수행 과정이 체계적으로 담겨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느낌과 생각이 들어 있어야 한다. 체험을 통해 새로 알게 된 사실, 느낌 등이 주 내용이어야 한다. 특히 느낌을 쓸 때는 막연하게 ‘참 좋았다’라고 쓰는 것은 곤란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어떻게 좋았는지, 어떤 작품이 왜 인상적이었는지 언급해야 한다. 그리고 체험학습 때 박물관을 찾는 경우 전시물을 다 담는 것은 무리다. 미리 주제를 정해 한 분야 전시물을 집중적으로 보는 것이 좋다. 아니면 단순한 방문기보다는 유물과 역사적 관련성에 대해서 연구해보는 것도 나만의 보고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답사 이해도 빠르고 교과 학습을 심화시킬 수 있다. 보고서 작성은 활동 때마다 해야 한다. 간혹 시간이 날 때 몰아서 한꺼번에 쓰려고 하는데, 오히려 활동 내용의 구체성이 떨어진다. 한꺼번에 쓰려고 하지 말고 평소 차근차근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대입에서도 비교과 스펙이 중요해지면서 내신관리 관리와 함께 비교과 활동은 또 하나의 부담이면서 과제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창의적 활동을 차곡차곡 담으면 기회가 될 수 있다. 에듀팟은 시행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일부 대학은 전형자료로 쓰는 것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앞으로 시스템이 좀 더 안정적으로 보완된다면 대부분 대학이 이를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잘 준비해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서호중(교장 이영관)은 19일 3학년 4반 학생들에게 외부강사 초청 강연으로 성폭력, 성희롱, 성매매 예방교육을 실시하였다. 강의는 전 광주·하남교육장을 역임하고 신성초교에서 정년퇴임한 전근배 교육장이 맡았는데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언론에 보도된 성폭력 실제 사례를 가지고 수업을 전개, 학생들에게매우 의미가 깊은 시간이 되었다. 약간은 지루할 수 있는 딱딱한 내용과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일반적인 내용이 아닌,최근 보도된사례를 적용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양상과 판례를 가지고 접근하였다.성폭력 가해자는 법으로 어떤 처벌을 받는지, 성폭력이 어떠한 상황에서 일어나는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설명하였다.학생들에게는 머리 속에 쏙쏙 들어오는 시간이었다. 특히 요근래 학생들에게 일어난 성폭력 사례의 특징을 잘 설명해 주었으며, 혹시 모를 성폭력에 대한 대처방법을 생각해 보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 학교 장희영 보건교사는 "교육효과가 좋아 선택받은학생 뿐만 아니라 전교생이 수업을 들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며 "여건이 허락하면 전교생에게 수업을 듣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수업을 직접 듣지못한 학생들에게는성폭력은 위험한 범죄 행위임을강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서호중은 학생 성폭력 예방지원단의 협조를 받아21일 3학년 1·2반 학생들을 대상으로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16세 미만 청소년들의 심야시간대 인터넷 게임을 제한하는 일명 ‘셧다운제’가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이번 주에 예정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6개월 후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청소년 게임 중독자는 93만명. 게임중독으로 인한 자살, 폭력 사건 등이 계속돼 왔다. 이에 교육계에서는 그동안 학생의 건강권과 올바른 인성을 위해 ‘셧다운제’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지난달 29~31일 한국교총이 전국 초중등교원 30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중 94.3%가 ‘인터넷 게임문화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답한 바 있다. 그러나 게임 산업에 부작용을 끼치고 실효성도 의문이라는 점에서 법안 통과가 지지부진해왔다. 법안 통과 소식이 알려지자 교총은 21일 보도자료를 내고 “청소년의 수면권과 건강권을 확보하고 게임중독으로 인한 교육적 폐해를 막는 첫 걸음을 내딛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셧다운제 대상으로 pc온라인 게임으로 제한하고 모바일 게임은 제도 시행 후 2년간 유예기간을 둔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또 적용 연령도 19세 미만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적용연령을 16세 미만으로 한 것은 청소년의 범주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적용했다는 것이다. 김동석 교총 대변인은 “학교현장에서의 인터넷 게임 폐해가 심각했다는 점에서 이번 법안 통과는 환영한다”며 “국회 본회의에서도 꼭 통과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차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나이스)’ 시범운영에 대한 학교현장에 대한 불만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교총이 최근 차세대나이스 운영과 관련해 학교 전산담당자 및 자문위원들로부터 의견을 수합한 결과 시스템 오류 사항뿐만 아니라 결재 과정의 비효율성, 학교회계정보시스템(에듀파인)과의 연계 부족, 업무량 증가 등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문제 중 일부는 나이스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된 것으로 문제해결에 앞서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일선 교원들의 피로도가 가중되고 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가장 많이 지적된 문제는 시스템 과부하로 인한 속도저하. 아직 시범운영 초기 단계라고는 하나 학기 초 학생 정보나 성적 입력에 있어 교사들이 비슷한 시기에 접속해야 하는 특성 상 하루빨리 수정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 A초 교사는 “수업이 비는 시간을 이용해 콜센터에 전화를 하면 계속 통화중이다. 답변을 받기 힘들기 때문에 일 처리가 어렵다”고 밝혔다. 나이스 지원센터에 글을 올려도 일부만 답변이 올라올 뿐 그 외에는 며칠이 지나도 시원한 답변을 받을 수 없다고도 덧붙였다. 이 교사는 “서버 확충은 예산문제로 어렵고, 오류는 시행초기에 나타나는 당연한 것이라는 답변만 들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입력 오류에 대한 것도 계속 지적됐다. 한 전산담당자는 창의적 재량활동 시 학생이 출석을 안 했을 경우 부서 편성이 안 된다거나 반을 변경하면 전입생처럼 이전 날짜에 대한 출석이 잡히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응답했다. 또 교사가 인증 한 번을 통해 나이스, 에듀파인, 업무관리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어 교육과정 지원에 학교특성을 반영할 수 있다는 교과부의 설명과 달리 결재과정의 비효율성에 대한 불만도 계속됐다. 일부 학교에서는 ‘부장-교감-교장’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수기 결재를 그대로 거치고, 추후 전자문서시스템으로 다시 결재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과목세부 특기사항 기록 시 기록자가 나타나지 않아 수정할 때 일일이 기록자를 찾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불만도 나왔다. 인천 B중 교사는 “학급별 출석부, 봉사활동 확인서, 결석계 등 아직도 종이를 활용해야 하는 문서가 존재하는 등 종이문서와 전자문서의 정확한 한계가 모호하다”며 “이중적인 잡무의 증가로 업무 경감이 아니라 과중인 상태”라고 의견을 밝혔다. 잦은 시스템 변경에 대한 어려움도 이어졌다. 서울 C고 교사는 “시스템이 자주 바뀌면서 그것을 이해하고 숙지하는 것만으로도 업무가 가중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원도 D초 교사도 “정보담당자들이 1학기에 1~2번 정도 연수를 받지만, 막상 학교에서는 연수를 하기 어렵고 하더라도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담당교사가 출장이라도 가면, 나이스 관련 작업을 할 수 없는 학교도 많다”고 지적했다. 응답자들은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대안도 함께 보내왔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조하다 보니 내용 수정을 어렵게 해 많은 교사들이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며 “제도 운영에 대한 효율성과 타당성을 검토하고, 교사들이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연수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남 E초 교장은 “시스템을 개발하는 사람들이 학교에서 발생할 문제점을 미리 예측하지 못한 것 같다”며 “하루빨리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현장 교원들의 의견을 조속히 반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교총은 이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최근 교과부에 차세대나이스 문제점 개선을 위한 방안을 전달했다. 건의문에서 교총은 “전자결재·에듀파인에 대한 이중결재, 결재자 부재 중 처리속도 저하 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결재를 간소화 할 것”과 “각 시·도교육청별 차세대나이스지원센터를 설치·운영, 문제 발생 시 바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교총 관계자는 “나이스가 교원에게 잡무로 느껴진다는 것은 그만큼 충분한 사전 준비가 부족했다는 것”이라며 “현장 교원들의 불만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해결방안 마련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국립극장(극장장 임연철)이 5월을 맞아 청소년들을 위한 다채로운 공연을 마련했다. 올해로 5회를 맞이하는 ‘2011 국립극장 청소년공연예술제’는 27일부터 다음달 29일까지 국립극장 내 4개 공연장과 문화광장 전역에서 12개의 공연과 특별행사가 펼쳐진다. 국립극장 전속 작품과 국내외 초청작으로 구성된 공연 중 주목을 끄는 것은 뮤지컬 ‘까르페디엠’.(극단 현·사진)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우리 상황에 맞춰 각색한 뮤지컬은 2007년 초연 당시 현직 교원들의 참여와 현실적인 내용으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번 공연에서도 홍승표 전 서울동작교육장을 비롯해 이재근 북서울중 교장, 김수향 서울이태원초 교사 등이 교사役으로 참가한다. 5월 8~17일 청소년하늘극장에서 공연된다. 해외초청작은 일본의 대표 놀이연극 ‘놀이는 즐겁다-니꼬리보까리좌’(5월10~11일·달오름극장)와 한국과 호주 극단이 합작한 유목연극 ‘쏭노인 퐁당뎐’(5월27~29일·KB청소년하늘극장)이 선보인다. 특히 ‘니꼬리보까리좌’는 역대 서울아동청소년공연예술축제 초청작 중 최고 관객수를 기록했다. 국립극장은 또 댄스뮤지컬 ‘프린세스 콩쥐’, 국립창극단의 ‘청’, 국악극 ‘엄마와 함께하는 국악보따리’, 예술단 미르의 ‘별주부전’, ‘신홍길동전’ 등 5개 전속단체 작품도 준비했다. 교총회원은 국립극장 전속단체 작품에 대해 50% 할인된 가격으로 관람할 수 있다. 이밖에 어린이날에는 ‘찰리아저씨의 매직콘서트’가 공연되며 다음달 4일부터 29일까지 문화광장에서는 ‘한·아세안센터 어린이 그림 공모전’ 수상작 60여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자세한 사항은 국립극장 홈페이지(www.ntok.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외부인이 학교에 침입하는 사건 등을 예방하기 위해 교육당국이 앞으로 '담장없는 학교'에 투명펜스를 설치하기로 했다. 치안이 열악한 지역의 초중고 600곳이 '학생안전강화학교'로 추가지정돼 집중 관리되고, 자원봉사형태로 운영돼온 배움터지킴이가 계약근무형태로 전환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최근 전국 16개 시·도교육청 시설담당자회의를 열고 현재 담장없는 학교 형태로 운영되는 전국 초중고교에 대해 최고 높이 1.8m의 투명펜스(울타리)를 설치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21일 밝혔다. 교과부 관계자는 "자기방어능력이 미약한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내외 성범죄가 발생하고 있어 안전시설 구축이 시급하다"며 "투명펜스가 설치돼도 지역주민은 출입구를 통해 운동장 등 학교시설 이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담장없는 학교는 총 1909개로 이중 초교가 1145개(전체 초교의 19%)다. 아울러 인적이 드물고 치안이 열악한 지역에 있는 전국 600개 초중고를 '학생안전강화학교'로 추가지정하기로 했다. 교과부는 작년 6월 '김수철 사건' 발생 후 전국 초등학교 1000곳을 학생안전강화학교로 지정해 경비실과 출입문 자동개폐시설 설치와 CCTV 설치비용 등을 지원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작년에는 학생안전강화학교에 청원경찰을 1명씩 배치한다는 계획도 세웠지만, 교육청 예산 부족으로 아직 한 곳도 배치된 곳이 없다"며 "국민과의 약속인 만큼 최소한 480곳에 대해서는 청원경찰을 배치하도록 독려하겠다"고 말했다. 또 자원봉사 차원에서 운영돼온 배움터지킴이의 근무형태를 계약근무제로 전환한다는 방안도 마련했다. 배움터지킴이를 계약제로 운영하면 인건비가 110만~120만원으로 배 가량 더 들어가지만, 등교 전이나 방과후 수업 때까지도 경비가 가능해진다. 교과부는 최근 학교보안관이 배치된 학교에서도 외부인의 여학생 성추행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일과 시간에는 학교 정문과 후문을 동시에 경비하고 취약시간대에는 근무 교대가 가능하도록 2명 이상의 배움터지킴이를 운영할 것도 시도교육청에 요청했다. 이밖에 구식 CCTV는 외부인 침입이나 화재 등을 감지해 담당자에게 경보음을 울리거나 문자를 전송하는 지능형 CCTV로 교체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교과부는 "각 시도교육청이 이번 정책방안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도록 내달부터 학교폭력 중앙컨설팅단을 구성, 각 시도별 추진 실태를 점검한다"며 "초등학교 생활안전실태에 대한 전수조사도 올해 하반기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교육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학교 현장에서 특강을 하며 훈수를 두는가 하면, 각종 언론에 등장해서 현장 교사들의 나태함을 질타하는 일조차도 생겨난다. 필자의 학교는 지역적으로 사교육이 성행한다는 강남의 대치동과 도곡동에 위치해 있어, 여러 형태의 사교육과 사교육 강사들의 행태를 목격한 바 있다. 필자가 20대 후반의 초임 시절, 당시도 사교육의 문제는 하나의 화두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사교육 업체들이 교육의 전면에 나서서 설쳐대진 않았다. 일테면 ‘교육에 대한 예의’는 살아 있던 시절이었다. 오늘날의 실용성을 강조하는 현 정권의 교육 정책은 동일 잣대를 들어 공교육 교사가 사교육 강사와 경쟁하기를 요구한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는 교육 정책이 정치 논리에 휘둘린다는 점이다. 정권이 바뀌면 교육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린다. 전임 정권이 추진하던 교육 정책은 용도 폐기된다. 정권에 따라 평준화와 수월성의 교육 지침이 달라지고, 입시 제도는 크게 요동친다. 여기에 시도교육감의 이념에 따라 ‘국가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와 같은 행정은 강화냐, 폐지냐 하는 극단적인 줄타기를 하기도 한다. 물론 정권이 교체되면 동일하게 들고 나오는 일도 있다. EBS를 통한 공교육 강화와 수능 반영 - 이는 완벽한 데자뷰이다. 일단 중요한 전제를 먼저 하자. 교사들은 인격을 교육하고, 학원 강사들은 지식을 상행위한다. 인격은 지식과 사색을 요구하며 인간과 세계에 대한 성찰을 통해 완성된다. 그러기에 공교육과 사교육의 연합 혹은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 교육 행위의 전제가 다르며 과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공교육의 기능상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사교육이 보완하는 일은 있을 수 있다. 그건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사교육은 이미 타란툴라(tarantulla·독성을 가진 거미)의 맹독이 되었다. 그리하여 학부모와 학생들의 의식조차도 마비시켜 ‘해독의 춤’ 타란텔라(tarantella·타란튜라에 물리면 이 춤을 추게 된다는 설이 있다)를 출 기력조차도 없게 만들었다. 사교육 기관은 학교 교육을 앞질러 선행 학습을 하고, 학습의 목표와 방향을 정하는 진도 학습을 하고 있다. 사교육의 기반은 속도이다. 학생 각자의 부족 부분에 대한 보완을 뛰어넘는 광속으로 우리 사회를 질주하고 있다. 사교육 존재의 비밀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불안 마케팅이다. 극대화된 상업성은 ‘당신과 당신의 자녀만 뒤처집니다’는 언급을 반복 주입하고 있다. 아울러 ‘반복의 쇠고리’를 흔들어 상대를 ‘파블로프의 개’로 훈련시킨다. 사교육의 선행 학습을 좇다 공교육의 진도 학습을 놓친다 해서 다시 사교육 보충 학습을 받고, 이어 선행 학습을 쫒는다. 이러한 반복의 비밀은 학생으로 하여금 결국 주체적으로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할 기회를 잃게 만드는 일이다. 이들 학생과 학부모들은 사교육의 영원한 ‘밥’이다. 각 정권이 사교육 문제에 있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EBS 활용도 독소적 요소가 많다. 이미 EBS는 거대한 권력 기관이다. 공권력을 등에 업고 사교육 기관보다 더한 영업 행태를 보인다. 영업 노하우는 ‘땅 짚고 헤엄치기’이다. 50만이 넘는 전국의 입시생들은 수능 반영이라는 덫에 걸려 ‘울며 겨자 먹기’로 EBS 교재로 공부하게 된다. 옵션은 없다. 이 지면에 감히 사교육 대책을 운위할 계제는 아니다. 다만 그 단초는 분명히 안다. 일단 현장 교사들이 지닌 지나친 수업 시놉시스와 행정 업무로부터의 부담이 반드시 경감되어야 한다. 수업력에 대한 평가에 앞서 이러한 시스템적인 측면의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정권은 사교육 문제를 EBS에게 전가하질 말아야 한다. 당장 EBS를 입시 주도적인 역할에서 손을 떼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평생 교육이나 교양 제작과 같은 방송 설립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문제는 기본을 확립하려는 시대적 태도이다. 모두가 대학으로 달려가는 비능률과 학벌을 쫒는 시대 기류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다행인 것은 21C의 시대적 격변을 거치며 우리 사회의 변화 흐름도 감지되고 있다. 학벌이나 간판을 우선시하는 풍조에서 개인의 개성과 능력에 대한 존중 그리고 창조적 잠재성으로의 전환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교육의 미래는 아직 가망이 있다. 그때까지 교육과 연관한 우리 모두는 ‘근본이 확립이 되면 가야 할 길이 생겨난다’는 이 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이 학생들의 인권 침해 실태 조사와 상담을 맡는 전문 조직을 가동한다. 시교육청은 책임교육과 산하에 '인권교육센터'를 만들어 이르면 다음달부터 운영할 예정이라고 21일 밝혔다. 이 센터는 폭행과 차별, 교권남용 등 인권침해 사례를 조사하며 피해자를 상담하고, 각종 연구 보고서와 교육자료를 제작해 학교 현장에 공급한다. 서울의 초·중·고교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조직이 생기는 셈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예전에도 인권침해 신고를 받기는 했지만 전문가가 없어 실제 대처에 어려움이 컸다. 학생인권 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전(前) 단계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시교육청은 인권과 청소년 상담 분야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인사 7명을 이번달 말까지 상근직으로 채용키로 했다. 시교육청은 지난해 진보적 성향의 곽 교육감이 취임한 이후 일선 학교에 체벌을 전면적으로 금지했고, 각계의 의견 수렴을 거쳐 올해 내로 학생인권 조례를 제정할 계획이다.
근대 산업사회에서의 삶을 지배하는 기본원리는 ‘남보다 먼저’였다. 만원 버스를 타기 위해 ‘남보다 먼저’ 뛰어야 했고, 동료보다 앞선 승진을 위해서 ‘남보다 먼저’ 출근해야 했고, ‘남보다 먼저’ 부동산 투자를 해야 돈을 벌 수 있었다. 교장 앞에서 교사들은 무기력했고, 사장의 명령에 사원들은 말없이 복종했으며, 여성은 남성의 지배를 받았고, 부하는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했다. 심지어는 학교시험조차도 하나의 정답만을 요구하는 일방성의 횡포가 만연했다. 이처럼 근대 산업사회는 권위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이어서 가정, 학교, 사회 등의 모든 조직에서 요구하는 보편적·총체적·일방향적·위계적인 질서에 순응해야 했다. 즉,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요구하는 표준화된 질서체제와 생산체제에 길들여짐으로써 사람의 인성까지도 표준화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근대 산업사회에서는 몰개성, 획일적 사고와 행동, 위계적인 권위구조에 대한 일방적인 복종, 자기통제 및 욕망의 억압 등이 미덕이었다. 그러나 정보사회에서는 일방적인 것들을 거부한다. 산업사회에서의 삶을 지배하는 대서사로 통용되었던 일방성을 거부한다. 그래서 정보화 시대, 즉 디지털 시대의 교육은 ‘남과 함께하는 협동성’과 ‘나만의 독창성’을 결합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한다. 교장과 교사 간, 사장과 사원 간, 남성과 여성 간의 쌍방향적인 의사소통 네트워크가 형성되지 않은 일방향적인 구도에서는 창의력을 기대할 수 없다. 이미 결정되어 있는, 단 하나의 해답만을 요구하는 사회나 학교에서는 창의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시대가 협동성을 요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주어진 하나의 해답만을 ‘남보다 먼저’ 찾을 것이 아니라, 쌍방향 혹은 다방향의 다양한 선택과 소통의 가능성 속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나만의 독창적인 해결방안을 강구해 내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가 정보화 시대인 것이다. 이처럼 ‘남과 함께’라는 공동체 윤리와 ‘남과는 달리’라는 창조성이 함께 공유되어야 하는 사회가 정보사회이다. 근대 산업사회에서처럼 모든 것을 ‘남보다 먼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남과 함께’ 더불어 정보를 공유하면서 동시에 ‘남과는 다른’ 자신만의 색깔, 창의성을 가져야 하는 사회가 정보화 사회인 것이다. 그래서 협동성과 독창성은 정보화 사회의 인간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질로 강조되어야 한다. 따라서 후기 정보화 사회에서는 산업화 시대를 이끌어 왔던 경쟁지성이 종말을 고한다. 산업화 시대는 지식을 독점하고 그 지식을 판매하면서 부가가치를 유지했던 경쟁적 지성사회인 반면에 후기정보화 사회는 정보화로 인한 인류의 지식과 많은 정보들이 온 인류의 자산으로 공개되고 오픈된다. 이것이 바로 집단지성, 공동지성, 협력지성의 사회라고 한다. 일례로 MIT 대학은 2002년도에 강좌를 오픈하기 시작, 2007년에는 1800개의 강좌를 무료로 오픈했다. 예전 같았으면 일 년에 몇 만 불씩을 내야만 들을 수 있었던 강좌들을 무료로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전 세계 7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MIT 무료 강좌를 듣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MIT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후기정보화 사회에서 정보와 지식은 특정 사람들의 전유물과 독점물이 아닌 온 인류의 공동 자산이다. 바로 이러한 현상이 집단지성, 또는 공동지성, 협력지성의 사회를 이끌어 간다고 한다. 따라서 방대하게 오픈된 정보와 지식을 활용함으로써 온 인류가 함께 교육시민으로 성숙하고 세계시민으로 되어가면서 가치를 공동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후기 정보화 사회의 교육적 과제이다. 21세기 후기 정보화 사회는 모든 업종들이 융합과 화합으로 발전하게 된다. 왜냐하면 후기정보화 시대는 한 사람의 힘이 아닌 모든 사람이 협력해서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집단 지성의 시대, 화합과 융화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의료기술만 하더라도 예전에는 아주 훌륭한 명의사가 병을 진단하고 고쳤지만 지금은 광학과 정밀, 컴퓨터 필름사업이 융합된 첨단 의료기술에 의해 발전하고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특정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지능을 가진 사람들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장점을 융합하고 시너지를 내면서 서로의 가치를 창출해 내는 사회가 후기 정보화 사회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경쟁적 패러다임, 남을 누르고 자기 혼자 앞서 가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화합과 융합의 문화, 포용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교육적 과제이다. 요컨대 21세기의 학생들에게 키워줘야 할 인성교육의 키워드는 ‘협동성’과 ‘독창성’ 그리고 ‘집단지성’임을 명심하자.
대학생 10명 중 5명은 교수와 소통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낀 적이 있고 교수 10명 중 4명도 학생과의 소통에서 같은 경험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생 10명 중 4명은 한 달에 한 번도 교수와 대화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이런 결과는 교수신문과 서울지역 5개 대학신문이 최근 경희대와 고려대, 연세대, 중앙대, 한양대 3~4학년 학생 1080명과 전국 4년제 대학 전임강사 이상 교원 36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1 교수·학생 상호 인식도' 조사에서 드러났다. 20일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학생 52.9%와 응답교수 43.8%는 각각 교수와의 소통과정, 학생과의 소통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낀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한 달간의 대화 횟수에 대해 학생 43.4%는 '0회', 30.7%는 '1회'라고 응답했다. 교수 24.9%는 '1회', 17.2%는 '2회'라고 대답했고 '0회'라는 응답률은 2.8%였다. 상담 시간은 학생 중 '5분 이내'라는 응답률이 40.4%로 가장 높았지만 교수들은 '30분 이내'(29.9%), '15분 이내'(25.5%)를 가장 많이 꼽았다. 학생(51.5%)과 교수(39.9%) 모두 대화 소재로 '학업 상담 및 질문'을 거론했다. '대학 생활과 대인관계' 이야기를 나눈다는 응답률은 학생 7.3%, 교수 17.2%였다. 다수 학생은 지도교수 제도에 대해 '보통'(36.3%) 혹은 '도움 안 된다'(27.4%)고 봤다. 대학수업에 만족한다는 학생 비율은 40.8%, 학생 수업태도에 만족한다는 교수 비율은 41.3%였다. 전공과목(3시간 기준)을 강의하기 위해 '3~4시간 준비한다'는 교수 비율은 38.2%, '1~2시간 준비한다'는 비율은 18.8%였으며 전공수업(3시간 기준)을 듣기 위해 '30분 이내로 준비한다'는 학생 비율은 33.7%, '거의 준비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22.4%였다. 소통이 안 되는 이유로 교수들은 '사고방식·가치관 차이', '학생이 교수를 어려워함', '과도한 학업 부담과 업무 부담', '학생들이 학점·취업·진로에만 관심 있음' '학생의 인성·예의 부족' 등을 꼽았고 학생들은 '교수가 연구·행정업무 등으로 바빠 시간이 없음', '권위주의적 태도' 등을 많이 거론했다.
일선 학교에 간접 체벌을 허용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최근 발효되면서 전국 시도교육청이 체벌기준 마련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이 시행령의 31조 8항은 도구와 손 등을 통한 직접 체벌을 금했지만,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른 훈육·훈계'라는 구절을 통해 간접 체벌 권한을 각 학교에 보장했다. 그러나 경기 등 4개 교육청은 직·간접 체벌을 전면 금지하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광주와 전남은 인접 지역임에도 체벌 허용 수위가 달라 일선 학교에서 혼란이 예상되고 있다. ◆경기·강원·전북·광주 '전면 금지' = 지난달부터 학생인권조례를 본격 시행하는 경기도교육청은 현재 직접 체벌은 물론 간접 체벌도 모두 금지하고 있다. 도교육청이 제시한 체벌 대체 프로그램은 수업진행이 안 되고 전체가 떠들 경우 '10초 동안 일어섰다 앉기'나 '3~5분간 눈 감고 있기', 수업 중 장난을 심하게 하거나 떠들 경우 '재밌는 몸짓으로 서 있기'나 '교실 뒤에 나가 서 있기'. '생각하는 의자에 앉기' 등을 포함하고 있다. 감정 자제가 필요한 학생에겐 '종이 도안 색칠하기'나 '심호흡 5회 반복하기'를 활용토록 했고, 사제동행 산행하기, 운동장 손잡고 돌기, 업어주기 등도 제안했다. 전북도교육청과 광주시교육청 역시 최근 모든 직·간접 체벌 금지를 주내용으로 하는 학생인권조례초안을 만들어 공개했다. 전북은 '학교교육과정에서 체벌은 금지된다'고 규정한 뒤 '학생 신체에 대해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체벌로 정의해 간접 체벌도 금지한다는 점을 명문화했다. 강원도교육청도 직·간접 체벌 대신 훈육과 훈계를 통해서만 생활지도를 하도록 했고, 체벌이 발생한 학교에 대해선 행·재정적인 불이익을 줄 계획이다. ◆직접체벌 'NO', 간접체벌 'OK' = 몇몇 교육청은 시행령에 따라 직접 체벌을 금지하는 대신 간접 체벌을 허용하는 쪽으로 절충안을 마련했다. 제주도교육청은 최근 직접 체벌을 금지하는 대신 팔굽혀 펴기 등 간접 체벌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미래를 여는 아름다운 학교문화 개선을 위한 추진 계획'을 확정했다. 신체나 나무 등 도구를 이용한 직접 체벌은 금지되지만, 교사가 즉각 시행할 수 있는 '교실 뒤 서 있기'나 '운동장 걷기', '팔굽혀 펴기' 등 교육벌 및 출석정지는 허용된다. 간접 체벌의 절차와 방법, 범위와 수준은 학교별로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고 나서 학칙으로 결정하도록 했다. 울산시교육청 역시 직접 체벌을 못하게 하는 대신 교육벌과 출석정지는 허용하는 내용의 '희망과 감동의 학교문화 선진화 추진계획'을 마련했다. 충북도교육청도 직접 체벌은 전면 금지했지만, 간접 체벌 방법은 일괄적으로 정하지 않고 학교별로 의견을 수렴해 '학교생활규정'에 명문화하도록 했다. 대부분 학교는 의견수렴 진행하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간접 체벌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신체적 고통은 어디까지?' 혼란 우려 = 부산시교육청은 체벌기준 마련과 관련한 태스크포스를 구성, 초·중·고교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의견이 분분해 아직 구체적인 가닥을 잡지 못한 상태다. 교육청은 이에 따라 20일부터 일주일간 각급 학교 학생부장과 생활지도 담당교사가 참석하는 선도협의회를 열어 난상토론을 벌인 뒤 4월 말까지 '생활지도 매뉴얼'을 제작, 학교에 배포할 계획이다. 매뉴얼에는 수업중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에게 사자성어를 쓰게 하는 등 학습적 제재와 운동장 돌기 등 육체적 제재 가운데 선택할 수 있도록 해 훈육하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담긴다. 부산교육청 관계자는 "교과부는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지침을 마련했지만, 어느 정도가 신체적 고통인지 불분명해 기준을 마련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면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합리적인 방안을 찾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권리와 의무 등을 포괄적으로 규정한 교육공동체 조례를 제정 중인 전남의 경우 훈육과 교육차원의 간접체벌은 허용하는 쪽으로 조례를 제정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는 전교조 출신 교육감이 주도하는 광주시교육청의 사례와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인접 시도 교육청인 학교 간에도 적지 않은 혼란이 우려되고 있다. ◆체벌 대안 프로그램 '눈에 띄네' = 경남은 도내 50개 초·중·고교에서 오는 2학기부터 전국 교육청 가운데 유일하게 학생자치법정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는 학생들이 재판부를 구성, 지각 등 경미한 교칙 위반이 잦은 학생에게 체벌 대신 반성문 제출이나 봉사활동 등 교육적으로 유익한 벌칙을 부과하는 법교육 프로그램이다. 자치법정에선 학생들이 판사와 검사, 배심원 등으로 나서 지각·두발불량 등 가벼운 교칙을 어겨 벌점이 일정 수준에 달한 학생들에게 반성문 제출 등 교육적으로 유익한 벌칙을 선고하게 된다. 경기도 부천 원종초등학교는 웃음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도록 심리적으로 유도하는 '웃음벌'을 도입한 상태며, 군포 옥천초등학교는 칭찬을 받거나 꾸중을 들었을 때 가점이나 감점을 주는 '칭찬통장'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남양주시 한 초등학교는 지난달 초 체벌을 대신한 생활지도 프로그램이라며 6학년 학생들에게 목걸이 형태의 '상·벌점 카드'를 교내서 항시 착용하도록 해 비교육적·비인격적이란 지적을 받는 등 체벌 대안 프로그램으로 인한 말썽도 없지 않은 상태다.
국내 초등학생들이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컴퓨터와 인터넷을 창의적으로 쓸 수 있는 능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고려대 이원규 교수(컴퓨터교육학) 연구팀은 전국의 초교생 재학생 4만여 명을 대상으로 'ICTC(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nology Competency 정보기술 활용 역량) 테스트'를 한 결과 학년이 올라갈수록 최하 성적을 받은 학생비율이 대폭 증가하고, 평균점수도 낮아진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20일 밝혔다. ICTC는 정보화 기술을 활용해 독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을 뜻하는 국제 교육 용어로, 우리 정부는 2001년부터 이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교과과정을 학교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연구진은 2007년 9월 학생들을 1~2학년 / 3~4학년 / 5~6학년의 세 그룹으로 나눠 온라인 시험을 치게 한 이후, 이들을 점수에 따라 '우수', '평균', '평균 이하'로 분류했다. 평균 이하 등급을 받은 학생의 비율은 1~2학년 그룹에서는 18.5% 였으나, 3~4학년 그룹은 35.6%, 5~6학년 그룹은 44%에 달했다. 절반에 가까운 초등학교 고학년의 IT 활용실력이 평균 이하라는 뜻이다. 같은 맥락에서 우수 등급 비율은 1~2학년 그룹이 22.5%였지만 3~4학년 집단은 12.4%, 5~6학년 집단은 3.5%으로 떨어졌다. 시험 세부 영역별로는 '알고리즘 모델링'의 성적 하락이 두드러졌다. 순서도와 분류법 등을 통해 정보가 가공·처리되는 원리와 논리를 이해하는지를 검증하는 분야다. 이 영역의 평균점수(100점 만점)는 1~2학년이 57.6점이었으나 3~4학년은 48.1점, 5~6학년은 36.7점까지 떨어졌다. 반면 기기나 IT서비스의 작동 지식을 평가하는 '컴퓨터와 네트워크'와 PC·인터넷 예절과 규범을 묻는 '정보화 사회와 윤리' 영역은 성적 하락의 폭이 비교적 적었다고 연구진은 전했다. 연구진은 아이들이 고학년이 될수록 인터넷 서핑과 게임 등 단순한 사고만 필요한 IT활동에 많이 노출되는데다, 창의적인 IT 문제 해결 능력을 배울 수 있는 교육 여건이 부족해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일선 학교 현장에서 IT교육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족한 만큼, 논문 당시(2007년)의 조사 결과와 비교해 지금의 현실이 더 나아졌을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한국처럼 전산 인프라가 뛰어난 곳에서 IT교육이 여전히 기술적인 영역으로만 오해돼 안타깝다. 학생들이 경영학과 인문학, 자연과학 등 여러 영역에서 IT를 활용할 수 있도록 기초 역량을 길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조사는 현재까지 국내 초등학생의 ICTC를 전국 단위로 측정한 유일한 사례로, 연구진은 이 내용을 다음달 국외 학술지인 '컴퓨터 앤드 에듀케이션(Computer Education)'에 논문으로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