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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고등학교 1학년인 우리 아이가 친구를 때렸는데 운이 없었던지 코뼈가 부러졌어요. 피해자 부모님이 오백만원의 보상비를 요구하며 합의하자고 합니다. 학교에서는 아이 장래를 위해서도 빨리 합의하는게 좋지 않겠냐는 입장이고, 피해자 엄마가 교무실에서 우리 아이를 구타한 사실 때문에 아이가 오히려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평소 남을 때리고 피해주는 아이가 아닌데 한번 때린 것으로 이렇게까지 상처를 받아야하는지요?” 학교폭력법 시행과 자진신고기간의 여파로 학교폭력 가해자 부모들의 상담이 증가하고 있다. 피해자 측의 강력하고, 때론 과한 요청 때문에 가해자부모가 상담을 해오는 경우이다. 피해자부모는 다치고 멍든 아이를 볼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테고, 정신적인 충격까지 보상받으려면 얼마를 요구해도 부족할 듯한 심정이다. 게다가 가해학생을 발견하면 그냥 두고 싶지 않다. 맞은 아이 대신 때려서라도 분함을 달래고 싶은 마음이다. 반면, 가해자의 부모는 우선 아이들 크면서 싸울 수도 있다는 인식이 전반적이다. ‘우리 아이도 피해를 당할 때가 있었고 이번엔 피해를 좀 주게 되었다’는 정도이다. 물론 다친 아이 부모의 아픈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요즘 학교폭력 단속을 강력하게 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우리 아이에게 법적인 조치가 내려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다. 학교폭력 발생시 해결과정의 초점은 아이들에게 가야한다. 아이들이 사고를 극복하고 서로 화해하고 다시 극정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그래서 다른 문제로 확대되지 않고 (예컨대 따돌림 피해 등) 학교에 잘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부모의 감정부터 자제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학교로 찾아가 아이들이 보는 가운데서 가해학생을 폭행하는 일 등은 학교폭력 피해상황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고 오히려 자녀에게 누가 된다. 이 과정에서 교사의 역할은 어느 편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두 학부모가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현실적인 상황을 이해하도록 설득, 두 학부모가 합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일일 것이다. 학부모가 합의하도록 다리 역할을 해 주는 것과 학부모가 알아서 하도록 맡기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이다. 임재연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상담실장
사교육비 경감과 공교육의 내실화를 위한 2005년도 방과 후 교육 연찬회가 22일 강원도 춘천시 강원도교육청에서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강원도내 초,중,고 학교장을 비롯하여 연구사, 교감, 교사, 학부모 등 400여명이 참가하여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이 날 연찬회에는 교육인적자원부 김민균 교육연구관이 ‘방과후 교육활동 활성화를 위한 방과후 학교 도입,운영’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난 뒤, 평소 가지고 있던 방과후 활동에 대한 의문점과 문제점을 참석자와 질의 응답을 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적게나마 유익한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방과후 교육 연구학교 운영 사례 발표는 참석자들의 많은 호응을 받기도 하였다. 사례 발표의 공통된 사항중의 하나가 방과후 교육 활동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교육공동체 및 지역사회가 학부모의 관심이라고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특성을 고려한 다양한 프로그램의 개발과 탄력성 있는 운영, 우수한 강사확보, 학교 및 지역사회 교육인프라 구축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 날의 연찬회가 탁상공론이 아닌 실질적으로 학교 현장에 파급되어 과다한 사교육비를 줄이고 현재 흔들리고 있는 공교육이 학부모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줌으로써 좀더 내실화를 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최근에 한국 사회를 큰 소용돌이로 휘몰아치게 한 사건으로 일본의 역사왜곡 사건을 들 수 있다. 일본문부과학성이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제출한 문제의 역사 교과서를 검정에서 통과시킴으로써 동아시아인들의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에 대한 다시 한 번 분노를 표하게 했다. 게다가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는 그들의 과거를 반성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정당화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인이 지녀야 할 바람직한 역사의식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후소샤판 일본 역사 교과서에서는 한국 역사의 근원인 고조선의 기원을 부인하고, 삼국의 시작을 300년이나 뒤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한국사를 정면으로 부정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에 그 기세가 꺾일세라 시에마현에서는 독도 우표를 제작하였고, 독도 조례까지 제정하는 등 그들의 행위가 노골적으로 과거 침략국가로서의 본성을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는 중국과의 사이에서도 센타이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일면적인 측면에서만 볼 것도 아니다. 정치적으로는 고이즈미 총리가 일본 경제의 수렁을 우회적으로 돌려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보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것의 맞춤은 신사참배를 하면 아시아 국가들의 뜨거운 여론이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사참배를 강행한 것은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한 새로운 활력소를 국민들에게 인식시켜 역사적으로 일본인의 자부심을 드높이는 동시에 경제 회복의 어려움을 희석시키려는 일거양득의 결과를 도출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독도에서 제일 가까운 일본 영토인 시에마현에서 독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도 경제 불황이라는 시점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어떤 것들을 도출했는가?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으로 한국인의 역사 교과서인 국사를 더욱 심도 있게 가르치도록 하였고, 국사를 근현대사로 분리하여 새롭게 한국의 역사를 재인식하게 한 것은 자랑할 만하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간 후라,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꼴이 되었다. 독립운동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의 투사들만 줄기차게 교과서에서 강조하였지 북한의 대일 감정을 너무 도외시해 왔다. 이에 대한 새로운 방안도 이 시점에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친일 잔재 청산이라는 또 하나의 과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후손에게 물려줄 친일파의 직간접적인 혜택은 우리 교육의 왜곡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교육자로서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역사인식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 시점에서부터 있어야 함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초중등학교에서는 우리 교육의 이념에서부터 역사 교육까지 실체를 정확히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1947년 이승만 대통령 시절 반민족특위법을 만들어 친일인사들의 반대에 부딪혀 유야무야 되고 만 한 사례를 거울삼아 이 땅에 친일 문화에 대한 이식문화가 다시는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투철한 교육관으로 응집된 교사가 있어야 하겠고 이에 교육으로 점철되는 학생들의 의식이 선행되어야 한국의 역사무장은 한결 드높아만 갈 것이다. 한일합방이나 창씨개명이 한국인이 스스로 받아들여진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일본인의 의도대로 해석되지 않도록 하는 길은 우리 스스로 한국인으로서 주인정신을 바로 갖는 데 있다. 이것이 또 이데올로기 논쟁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21일 서울 서원초(교장 송묘용) 실과실에서는 이색 수업이 펼쳐졌다. 3학년 학생 40명이 서울교대 수학교육과 박만구 교수에게 ‘곱셈’ 단원을 배운 것. 수업이 한창 인 교실 뒤에서는 서원초에 실습 온 69명의 교육 실습생들이 ‘수업참관 기록’을 꼼꼼히 작성했다. ‘두 자리수 곱하기 한자리 수’에 대해 배운 이날 수업에서 박 교수가 강조한 것은 다양한 사고를 통해 계산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 학생들은 수업 내용을 글, 그림, 수식으로 각각 표현해보고, 수모형을 가지고 실험하는 등 수업 내용을 익혔다. 이날 수업은 서울교대 수학과 교수들이 서울교대 2∼4학년 학생들이 교육실습을 하고 있는 학교를 직접 방문, 교사와 교생들을 입회시킨 가운데 시연을 한 것. 박만구 교수를 비롯한 신항균, 배종수 교수는 17일부터 23일까지 서원초 외에도 송화초, 경수초를 비롯한 13개 초등학교에서 각 학교, 지도학생의 진도에 맞춰 곱셈, 비율 그래프, 분수, 길이와 시간 등을 수업했다. 수업 후 박 교수와 교생들은 이날 수업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를 가졌다. 교생들은 이날 수업내용과 함께 ‘수학과는 다른 교과보다 학생들의 수준차가 많이 나타나는 데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나’ ‘수업에서 하나, 둘, 셋으로 세는 것과 1, 2, 3으로 세는 방법 중 어떤 것이 더 옳은가’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담임이 된다면 수업을 따라 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파악할 수 있으므로 적절히 모둠수업을 이용하거나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 옆에서 돕게 하고, 그래도 부족하다면 보충학습지를 통해서 학습하게 하면 효과적일 것 같다”, “‘복명수는 아이들이 편한 쪽으로 선택해 자연스럽게 사용하며 익히는 것이 좋다”고 대답했다. 박 교수의 수업을 참관한 서울교대 사회과 김수현(22)양은 “학생들의 특성이나, 수준, 이름도 모르는 상태에서 수업을 진행했는데도 아이들의 집중도이나 참여도가 높았던 것이 인상적이었다”면서 “7차교육과정에서 수학은 ‘구체적인 조작활동을 통한 학습’이 주요 목표인데 이에 충실한 수업이었고, 많이 느끼고 배웠다”고 말했다. 서원초 이영자 교사는 “실제로 지도안을 짜서 수업을 하다보면 예상외의 결과가 나타날 때가 많은데 예비교사를 직접 지도하는 교수들도 이론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수업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 한다”면서 “교수들의 이런 시도가 참신하다”고 평가했다. 수업을 마친 박만구 교수는 “교대는 학생들을 졸업시킬 뿐 현장교사들과는 단절돼 있다”면서 “최근 교수들 사이에서 현장과의 교류를 통해 서로 배우고 이를 적용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와 수업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수업은 교사가 담당해야 하는 부분이고, 교수가 이론을 많이 안다고 수업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이론을 실제로 적용해 보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또 “이런 시도들이 나아가서는 교사-연구사-교수가 서로 협의해 지도안을 만들고, 교사들이 이를 수업에 적용한 후 평가하는 수업협의체로 발전된다면 학생들의 수업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KRX)는 8월 1일부터 5일까지 부산 중구 중앙동 거래소 본사에서 부산지역 사회, 경제 담당 중등교사 30여명을 대상으로 증권 관련 연수를 실시한다. 이번 연수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에게 효율적인 경제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마련됐으며 증권, 선물과 관련한 기초.실무교육 및 상장회사 현장체험 등으로 구성된다. 이번 연수는 부산시 교육청의 특수분야 연수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프로그램을 수료한 교사에 대해서는 직무연수 2학점을 부여한다. 참여를 희망하는 교사는 학교장 추천서와 연수신청서를 작성해 22일부터 28일까지 증권선물거래소(팩스 051-662-2439)에 제출하면 된다.
얼마 전, 학도호국단 편제 계획에 관한 국가기밀문건(?)이 일선 고등학교에 시달되어 있고, 이 문건은 교육부와 학교장만 알고 공개되지 않은 채 대외비로 보관되어 있다는 언론의 폭로에 전교조와 일부 시민단체가 발끈했던 일이 있었다. 그 공문에 의하면, 전시에는 학도호국단을 부활하여 고등학생들을 병력으로 편제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후 아무런 후속 보도나 논쟁이 없어 그 진상이 의아하기만 하다. 그런 비상계획문건의 필요성에 대하여는 국가관을 운운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어서 섣불리 논평하고 싶지는 않지만 필자는 학창시절, 학도호국단에 조직되어 이른바 교련을 받던 세대로써 그 악령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당시 교정은 온통 목총이나 M1 소총을 휘두르는 총검술 구호와 제식훈련 등 군사문화 열풍에 시달려야 했고, 학생을 군대처럼 편제하여 연대장(학생장), 중대장(반장), 연대참모 등의 계급으로 불렀던 시절이었다. 교련 시간은 주당 3시간이었으나 학업 성적이 아무리 우수한 학교도 해마다 가을에 치러지는 교련 검열에서 낙오되면 계속 재검을 받아 기필코 통과해야 했으므로 매년 9,10월경 검열 일정이 잡히면 근 한 달 이상은 입시를 앞둔 고3을 제외하고는 수업을 전폐하고 행군과 분열 훈련에 돌입하는 등 학생들에게는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다행히 한 번에 합격하면 다행이지만 불행히도 재검 판정이라도 받는 날이면 그때부터 학생들은 재검 준비에 초죽음이 되기 일쑤였다. 검열에는 남녀 학생이 따로 없었다. 치마를 입은 여학생들이 완장과 휘장을 차고 군대식으로 제식훈련을 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1차세계대전 당시의 독일이나 내전 상태인 아프리카 등 동토의 왕국을 연상시켰다. 모든 학교는 하늘같은 검열단에게서 ‘우수’평가를 받아야 했으므로 학교의 온 행정력도 그 검열에 집중해야 했고 학교장과 학생부장을 겸했던 교련교사는 초긴장해야하는 골칫거리였던 것이다. 대학 때도 교련 과목을 이수해야 45일간의 군복무 기간을 단축 받을 수 있어 상아탑 아래에도 군사문화 열풍에 휩싸이긴 마찬가지였으나 나는 3학년 때 ROTC를 지원하여 학군단 훈련을 받으면서 교련은 자연히 면제되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해방 후 사회 혼란이 극에 달했던 군정 3년을 지나 1948년 8월 15일 정부가 수립된 이후 초대 문교부 장관에 취임한 안호상은 민주주의 민족교육을 강력히 주창하기에 이르렀고, 일제 통치에서 갓 벗어난 때에 군국주의적 인상을 주고 민주주의 교육에 역행하는 조직이 아니냐는 국민의 우려와 반발에도 불구하고 반공정신을 확립한다는 명분하에 중학교 이상의 각급 학교에 군사 훈련을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고, 학도호국단을 조직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4.19 의거 후 급격한 정치 및 사회적 변화에 따라 1960년 5월 10일 이를 해체하여 학생 자치기구인 학생회가 조직되었다가 월남과 크메르의 공산화에 따른 충격으로, 비상시를 대비하여 1975년 6월 학도호국단이 부활되었다. 당시 고등학교 학생들의 기풍을 쇄신하고 정신력 함양 및 학원의 단결을 가져오는데 많은 업적을 내기도 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던 학도호국단은 1985년 폐지되었다. 그리하여 다시 오늘날의 학생회 조직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나는 미성년자의 전쟁행위가 유엔협약에 위반된다거나 비상시를 빙자한 좌경 교사와 학생의 격리 음모라는 일부의 주장을 논평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어느 공공기관이나 기업마다 비상계획이 수립되어 있음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학도호국단이라는 학창시절의 아픈 기억을 안고 사는 우리 세대의 후세들만은 꿈많은 청소년기를 그런 군사문화에 일찍부터 오염시키고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 다시는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하는 전쟁에 젊은 청소년들이 동원되는 불행한 사태가 오지 않길 바란다.
아침 뉴스에 대학들이 수시 1학기 모집 요강을 발표했는데 작년보다 모두가 더 뽑는 것으로 발표가 되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 중간에 왜 이렇게 더 뽑는 가와 어떻게 해야 합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조언을 하기 위해 유명학원의 진학담당 강사가 나와서 친절하게 자기의 견해와 요령을 일러주었고 뉴스 진행자는 다시 한 번 간추려 보도하는 친절을 베풀고 있었다. 그 뉴스를 무심코 보다가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아이를 일년동안 열심히 가르쳐 대학을 가게 된다면 그 아이를 가르친 고등학교 선생님이나 고등학교의 진학담당 선생님이 출연해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전해야 할 터인데 선생님은 어디 가고 학원의 강사가 진학에 대한 견해를 발표하게 되었으며 왜 그것을 하나도 이상하지 않게 보고 있었을까? 명색이 교사인 나도 이런데 일반 학부모들이야 오죽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니 이것이 바로 공교육의 현주소라는 생각이 들어 새삼 서글픔을 금할 수 없었다. 해마다 수능을 치르고 나면 진학지도에 시중 학원이 문전성시가 되고 정작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는 말도 있고, 그것이 학원의 진학지도는 친절하고 정확한데 고등학교는 수박 겉 핥기 식의 건성이기 때문이라고 항변하는 학부모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기는 하다. 그 말이 전연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닐지 모르지만 고등학교 선생이 적극적으로 진학지도에만 매달릴 수 없는 학교현장의 교육제도를 만들어 놓고 정작 그렇게 하지 않으면 흡사 선생의 자리를 일탈한 것처럼 욕하게 만든 정부 당국자들의 책임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설사 현실이 그렇더라도 학교와 교사들을 질타하며 교육개혁을 말하고 공교육을 살려야된다고 많은 지면이나 시간을 할애하는 신문이나 방송들이 자신들이 가진 공익적인 성격과 권위를 생각할 때 스스로 그런 식의 보도방식은 의도적으로 탈피해야 한다. 방송의 그런 보도는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학원이 필수라는 생각을 고착시키는데 일조 할뿐더러 사교육비를 부추기는 첩경이 된다. 교육당국이나 교원단체, 또 모든 공교육기관의 교사들은 이런 보도가 이루어지기 전에 보도기관의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보도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로 정중하게 항의하여 시정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최만규 울산시교육감은 22일 교육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발생한 모 초등학교 교사의 학부모 성추행 사건에 대해 학부모와 시민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최 교육감은 "울산 교육을 책임진 교육감으로 이런 불미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며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공무원 복무기강을 바로 세우겠다"고 말했다. 교육감은 "이 일과 관련해 해당 교사를 직위해제하고 해당 학교 교장과 지역 교육청에게 각각 경고조치를 내렸다"며 "철저한 진상파악과 징계위원회를 통해 해당 교사를 중징계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근 울산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노래방에서 학부모를 성추행하고 학부모에게 받은 촌지가 적다며 다시 돌려보내는 등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다는 내용의 진정서가 접수돼 울산시교육청이 감사를 벌이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김이경 박사는 지난해 11월 전국 초중등 교원의 0.8%인 295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문헌조사등을 토대로 ‘교사평가 시스템 연구’를 수행했고, 여기서 부적격 교사에 관해 연구했다. 김 박사는 국내외 선행 연구를 종합한 후, 부적격 교사를 ‘학생지도, 업무수행, 동료교사, 학생 그리고 학부모와의 기본적 대인관계 등의 측면에서 교사로서 기본적 자질이나 능력이 부족한 교사’로 개념정의 했다. 그는 이 개념에 터해 부적격 교사의 경중과 개선 여지 가능성, 효과적 예방, 적절한 조치 차원을 고려해 다시 문제교사와 무능력교사로 구분했다. 문제교사는 ▲채무, 치정 등의 법률 위반, 금품수수, 비리 등에 관련된 법규적 문제 유형 ▲폭력행사, 빈번한 무단결근, 성희롱, 상습 도박, 마약·알콜 중독 등의 행동적 문제 유형 ▲정신적 장애, 인간 관계, 관리자의 운영지침 상시 위배, 과도한 업무 회피, 타인과의 대인관계가 심각하게 어려운 폐쇄적 성향 등의 인성적 문제 유형으로 나누었다. 무능력 교사는 ▲학습지도 능력 부족 유형 ▲생활지도 능력 부족 유형 ▲대인관계 능력관계 부족 유형 ▲업무능력 부족 유형으로 구분했다.
부적격 교사 문제가 교원평가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부적격 교사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교원평가와는 별도로 추진하며, 2학기 중에 대책을 마련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는 지난달 3일 무산된 ‘교원평가 공청회’ 교육부 자료와 김진경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의 교총 방문, 교육부 관계자들의 발언으로 정리되는 것으로, 교육부는 학교교육력제고를위한특별협의회(정부·교원·학부모단체로 추진되는 교원평가협의체)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의한 바 있다. 아울러 바른교육권실천행동(공동대표 남승희)과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이 각각 21일과 24일 부적격 교사 평가에 대한 토론회를 추진하고 있어 논의가 가열될 조짐이다. 2학기 중에 부적격 교사 대책을 마련한다는 교육부의 계획은 그러나 교원평가만큼이나 분란만 일으킬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선행연구와 실태 조사 부족을 그 이유로 손꼽고 있다. 전제상 경주대 교수는 “아직까지 부적격 교사에 대한 개념조차 정리되지 못하고 있고 나아가 전수조사 한번 행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교육개발원 김이경 박사 팀의 지난해 11월 설문조사가 거의 전부인 수준이다. 강정길 교원정책과장은 “교원평가가 긍정적인 입장에서 전 교원을 대상으로 한다면, 부적격 교사 대책은 문제되는 일부 교사에 대한 부정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며 “교원평가안과는 달리, 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를 얻는 방식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교육부 관계자는 “현재의 근평제도가 온정주의와 교장에게 평가책임이 전가되는 구조상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는 점을 감안할 때, 민원이 많이 제기되는 교원을 대상으로 교육청 단위의 심사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을 구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회에는 일본처럼 의사와 법률가, 교육전문직, 교원, 학부모 등 다양한 인사로 구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백복순 교총 정책본부장은 “현행법에서도 매년 실시되는 근평을 통해 근무성적이 불량하거나 직무수행능력이 부족한 경우 직위해제를 거쳐 직권면직 가능하다. 현행 징계제도 및 근평상에 미미한 부분이 있다면 이를 개선 보완하면 된다”면서 “교원지위법정주의에 의해 신분이 보장되는 교원을 평가를 통해 퇴출시키고자 하는 주장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책임연수제 도입을 통한 교원들의 자발적 연수 강화로 교육력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광주 동부교육청이 역점 시책으로 실시하고 있는 '밥상머리 교육'이 학생들의 식생활 습관과 생활태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 동부교육청은 22일 유치원과 초.중학교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실시하고 있는 '밥상머리 교육'에 대한 실천 보고회를 문흥중학교에서 가졌다. 동부교육청은 올 초부터 담임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질서지키기와 잔반 줄이기 등 올바른 식사예절을 지도하고 도덕과 사회 교과에서도 웃어른과의 식사예절 실천을 과제로 내주는 등 '밥상머리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날 보고회에서 문흥중 박종선 교장은 "학생들이 잔반 줄이기를 적극 실천한 결과 급식비가 하루 평균 11만7천원 절감됐다"며 "이를 재투입해 양질의 급식을 제공함으로써 교육부로부터 가장 질높은 학교급식으로 평가받았다"고 밝혔다. 문우초등학교 이충현 교장도 "밥상머리 교육 실천으로 초등생들의 식사예절 및 생활태도가 바람직하게 변화되고 있다"며 "가정에서도 밥상에서 웃어른께 예절 지키기 등 태도가 좋아졌다는 학부모들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정덕유치원 오화심 원장은 "밥상머리 교육을 실시한 뒤 원아들이 유치원에서는 물론이고 가정에서도 투정을 덜 부리고 편식하는 습관이 개선됐다"고 소개했다. 안순일 교육장은 "밥상머리 교육은 식사예절과 함께 학생들이 장차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할 소양을 길러주기 위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이같은 밥상머리 교육을 강화해 학생들이 바람직한 인성을 갖추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이 사는 곳마다 조직이 있고, 그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질서가 있게 마련이다. 질서가 무너지면 사회적으로 혼란이 오고 치러야 할 비용이 커진다. 좋은 실례로, 지난 19일 새벽 경기도 연천군 최전방 GP(전방감시초소)에서 장병 8명을 살해한 김동민(22) 일병은 평소 선임병들에게서 잦은 질책과 욕설 등 ‘언어폭력’을 당한 데 앙심을 품고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군대의 지위체계의 위기는 군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한 단면으로 생각할 수 있고, 사회 곳곳에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권위란 바로 조직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도덕적 정당성을 지닌 다스림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권위는 개인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라나 특정 조직을 운영하는 입장에선 일정한 권위가 보장돼야 효율적으로 다스릴 수 있다. 국정 운영에서 대통령의 권위가 서지 않으면 나라 전체의 비용이 늘어난다. 가정에서 부모의 권위가 없으면 자식의 가르침에 말보다는 회초리를 들어야 하고, 학교에서 교사의 권위가 서지 않으면 가르침 자체가 무의미함은 물론, 교사의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찰의 권위가 없으면 교통 위반 딱지를 뗄 때마다 말싸움하느라 시간이 낭비된다. 그러나, 권위가 특정한 사람에게 집중돼 비판이 허용되지 않으면 권위주의가 된다. 권위주의적 사고는 자신의 위치를 지키거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오직 힘으로 누르려 들고, 비이성적인 게 특징이다. 그들에겐 군림과 복종만 있을 뿐이며, 비판하면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려는 것으로 여겨 완강히 거부한다. 하지만 정당한 권위마저 받아들이지 않으면 문제다. 행정관청을 포함해 사회 이익집단들이 매사에 권위를 부정한다면 사회 존립이 어렵게 된다. 따라서, 한번 무너진 권위는 다시 세우기 어렵다. 교사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우수한 인재를 교직에 유치하고 교사들이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교사들을 권익을 옹호하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또 교사들에게 지속적인 전문성 신장 기회를 제공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교사의 권위는 교사의 전문성과 가르치는 일에 대한 헌신성을 바탕으로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사들이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도록 하려면 교단에서 존경을 받고 교단을 꿋꿋이 지키려고 하는 건강한 교직풍토를 조성하는 일이 필요하다.
대구시교육청은 신청 학생수가 적어 개설되지 못한, 제2외국어 중 중국어 및 스페인어와 과학교과 중 물리Ⅱ, 지구과학Ⅱ 과목 등을 대상으로, 여름방학 기간인 7월 21일부터 8월 12일까지 17일간 계절제 학교를 개설한다. 대구가톨릭대학교부설 평생교육원(달서구 감삼동소재)에 위탁 운영되는, 중국어와 스페인어는 내․외국인 교수가 직접 수업을 맡아 하며, 수강신청 학생은 중국어 13명, 스페인어 11명 등이다. 또 물리Ⅱ와 지구과학Ⅱ는 고등학교 최우수 교사를 강사로 선정 경덕여고에 위탁 운영되며, 수강신청 학생은 물리Ⅱ 19명, 지구과학Ⅱ 7명 등으로 모든 수업을 무료로 제공한다. 시교육청은 앞으로 계절제 학교를 러시아어 및 아랍어까지도 확대 운영할 계획이다.
우리 학교에는 매년 학기당 1회씩 총 2회에 걸쳐 대한적십자사 소속 헌혈 차량이 옵니다. 헌혈과 관련하여 특별한 교육이나 홍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참여도는 매우 높은 편입니다. 자신의 피 한방울이 꺼져가는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봉사의 참뜻을 되새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 할 수 있습니다.
경기도교육청은 교사들의 승진과 관련된 각종 가산점제를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22일 밝혔다. 도(道) 교육청은 이를 위해 최근 도 교육청, 교장, 평교사, 시민단체 관계자 45명 등으로 이뤄진 가산점개선위원회를 구성했다. 도 교육청이 재검토하는 가산점은 고교근무경력 가산점, 담임근무 가산점, 접경지역근무 가산점, 공단지역근무 가산점 등 도 교육청이 자체적으로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 가산점들이다. 도 교육청은 올해말까지 개선위원회의 검토작업과 공청회 등을 거쳐 각 가선점의 부여 기준 등을 분석한 뒤 비합리적인 부분은 보완하고 필요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는 가산점은 유예기간을 거쳐 폐지할 계획이다. 그동안 도내 일부 교사들은 일정 기간 고교에 근무하거나 담임을 맡을 경우 부여하는 고교근무경력 가산점 및 담임근무 가산점 등 각종 가산점이 교사들의 중학교 근무 기피를 유도하는 것은 물론 사정상 담임을 맡을 수 없는 특별과목 교사들에게 상대적인 불익을 준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도 교육청 관계자는 "모든 교사들이 공감하고 열심히 근무하는 교사들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번에 각종 가산점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 작업을 벌이게 됐다"고 말했다.
바른교육권실천행동(공동대표 남승희) 주최로 21일 서울 종로구 평동 4.19혁명 기념도서관에서 '부적격교사, 어떻게 볼 것인가?'란 주제로 제4차 정책 토론회를 가졌다.
“치매 걸린 우리 할머니가 미웠었는데, 엉뚱한 말을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불쌍한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니까 제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부터는 잘 해드려야겠어요.” 학년 초에 윤리부장이 “우리 학교에서도 복지시설과 결연을 맺어 무너져가는 효의 사상을 일깨우고, 불쌍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서 현대의 물질 만능주의 부당성을 깨닫고, 핵가족으로 인한 부족한 공동체의식을 함양시켜 바른 정서를 순화시키고 아름다운 인성을 길러 봅시다.”라며 ‘노인 복지 시설 평강의 집’과의 결연을 발표하였다. 드디어 6월 11일 토요일, 5학년인 우리 반 학생들은 '평강의 집‘을 찾았다. 학교에서 차량으로 7분 정도의 가까운 곳 이었다. 보통의 살림집 보다 조금 더 큰 집이었다. 25명의 노인들이 살기에는 무척 좁아 보였다. 마당이라야 10평 정도였다. 재래식 마루가 있고 이동식 평상이 있어 바깥 바람을 쐴 수 있겠지만 너무 비좁아 보였다. 10평 남짓한 방에는 예배를 볼 수 있는 단상이 있고 긴 의자가 몇 개 있었지만 너무 좁았다. 우리 학생들이 들어가자 마자 “고맙다. 오늘을 많이 기다렸단다.” 한 할머니께서 무척이나 반갑게 학생들 손을 잡는다. “1년에 연례적으로 한두 번 오는 사람들은 있지만 이렇게 매달 와 주니까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원장님께서 너무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드디어, 학생들 스스로 준비한 위문 공연을 시작했다. 반을 대표해서 학급회장이 사회를 보았다. 무대도 비좁고 마이크 장치도 없어 귀가 어둔 할머니들에게 잘 들리지 않아 무척 아쉬움이 많았다. 그러나 시작할 때 끝날 때 치는 박수 소리는 너무도 우렁차게 들렸다. 기뻐하시는 모습들이 천진한 어린 꼬마 같았다. 한복을 입고 ‘어머나’를 신나게 부르는 학생과 함께 따라 부르기도 하시고 마술쇼에서는 큰 박수로 답례도 해주셨다. 마지막 순서에는 우리 반 모두가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라는 곡으로 합창을 할 때 몇 명의 할머니께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학생들도 같이 눈시울이 적시고 있었다. 처음 만남이지만 친할머니처럼, 친손자처럼 서로에게 마음에 감동이 일어남을 느낄 수 있었다. ‘안마해드리며 이야기 나누기’시간이 되었다. 어린 꼬마 손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어깨를 주물러 드렸다. “아이구 시원하다. 나도 너 같은 손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 “할머니, 식구들은 없어요?” 둘 사이엔 정다운 이야기가 오고 갔다. “얘들아, 6월에는 우리 반이 ‘평강의 집’위문 봉사활동을 가게 된다. 어떻게 할지 학급회의에서 토론하고 결정했으면 좋겠다.”“선생님 저희들끼리 할테니까 나가 계세요.”5학년, 아직은 어리지만 맡겨 두기로 했다.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12가지의 프로그램을 준비하였다. 생각보다 많았다. 참으로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면, 초코파이, 과자, 화장지, 감자, 비누, 치약, 칫솔, 수박, 토마토, 사탕 등 많은 위문품도 준비하였다. 아마도 매달 위문 봉사활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미 다녀온 학생들에게 듣고 준비를 더욱 잘 한 것 같았다. 금년 3월, 이 학교에 부임하여 한동안 ‘아이들이 시골에 사는데도 왜 이렇게 시골 어린이답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만큼 자기중심적인 면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애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합창을 할 때 너무 슬펐어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울고 계셔서 눈물이 났어요. 좀더 함께 있고 싶었는데.” “정말 안쓰러웠어요. 우리 보다 못살고 가난하고 자식도 없고 ……. 정말 불쌍했어요.” “ 애들이 내 손자라면 좋겠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미 깊어 질대로 깊어진 주름, 마른 장작 같은 거친 손으로 내 손을 잡을 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한국청소년발명영재단 인천광역시지부(단장 이명수 인천소래초등학교장)는 18-19일 2일간 소래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회원 150여과 학부모 등 3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회인천지역 발명영재단 상반기 창조활동을 개최했다. 과학적 사고력을 증진시키고, 발명에 대한 흥미를 고취시켜 발명의식 확산과 발명의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실시된 이번 발명영재단 창조활동에서는 별자리 관찰과 소래 해양 생태 공원 갯벌체험. 야영을 통한 협동심 및 공동체 의식증진을 위한 장기자랑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특히 과제 해결 위주의 가시적인 산출물이 나올 수 있도록 하여 성취감 및 발명의욕을 고취 시키도록 했다. 또 인천지역 10개의 영재 학교가 전국 최초로 연합하여 실시함으로서 학교 간 유대감 형성 및 건전한 경쟁의식을 유발하여 교육적 효과가 배가 되었으며, 교사들은 각 프로그램을 분담하여 지도함으로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1962년 국경전쟁으로 인도군 1400여명 사망 지난 4월분쟁접고 ‘전략적동반자’관계 합의인도“서북부 인도 영토 중국이 강점” 주장중국맥마흔선 남쪽, 근거 없이 인도 지배해 중국의 고등학생들이 사용하는 인민교육출판사의 ‘세계근대현대사’에는 1962년 중국과 인도의 국경분쟁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서술이 없다. 다만 1947년 인도의 독립, 1955년의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 1961년의 비동맹운동 등에 대해서는 기본 내용을 비중 있게 서술하고 있다. 중국교과서에서 중국과 인도의 영토 문제를 비교적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는 교재는 ‘전국 중-소학 교사 계속교육 교재’인 ‘세계정치 다극화와 지연정치’(인민교육출판사 2001)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00년 중국과 인도는 국교수립 50주년을 맞이했다. 쌍방관계는 최근에 호전되었지만, 양국 사이에는 변계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1960년 저우언라이의 인도 방문 시기에 인도는 변계문제에 대한 담판을 거절했다. 1962년 인도는 변계충돌을 도발하였고, 중국은 자위를 위해 반격해야 했다. 1987년 인도는 맥마흔선 이남의 인도통제지역에 아루나찰 프라데시를 세워 중국의 주권을 엄중히 침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9년 중국은 중-인의 협조 강화를 호소하여 동년 11월 쌍방은 변계문제 회담을 진행하였다. 2000년 5월 인도 대통령 나라야난이 중국을 방문하였고, 양국 관계는 일정한 정도로 복원되었다. 중국과 인도는 모두 경제발전으로 종합국력을 확대하기를 바라며, 모두 다극화된 세계를 수립하기를 바란다. 또한 양국은 모두 타이완문제와 카슈미르 문제 등에서 외국이 내부 사무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한다. 화목하면 둘 다 이롭고, 싸우면 둘 다 상한다. 저우언라이가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당시에 저우언라이와 네루는 국제외교무대에서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었다. 출처 2003 세계근대현대사(하) 북경: 인민교육출판사, 속지 사진 26번 앞의 설명은 중국과 인도 사이에 국경분쟁이 매우 중요한 사안임을 말해준다. 중국은 10여개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1960년대에 몇몇 나라와 국경조약을 맺었다. 그 시작은 1954년부터 논의된 중국-미얀마의 국경문제였다. 1960년 10월 1일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와 우누 미얀마 총리는 베이징에서 국경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은 상호 교환의 형식으로 성사되었는데, 중국측은 영국이 설정한 ‘1941년 선’을 사실상 인정하였다. 중국-미얀마 국경선은 전체길이가 2184km였고, 그중 티베트 구간은 187km였다. ‘중국-미얀마 변계조약’을 모델로 하여 중국은 잇달아 1961년 10월 5일에 네팔과, 1962년 12월에 몽골과, 1963년 3월에 파키스탄과, 1963년 11월 22일에 아프가니스탄과 변계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1962년에 인도와는 국경문제로 인해 전쟁까지 벌였다. 이것은 1950년대 인도와 중국이 우호적으로 서로를 대하던 것과는 크게 상반되는 상황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왜 똑같이 오랜 문명을 자랑하고, 또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압박에서 독립하여 새로 국가를 창설한 두 나라가 전쟁까지 벌이게 되었는가. 그 계기는 1959년 3월 10일의 티베트 봉기였다. 이 봉기의 와중에서 14대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하였다. 그러나 전쟁의 더 본질적인 이유는 중국과 인도 사이에 ‘전통적인 습관 변경선’만 있었지, 국경이 정식으로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중국과 인도 사이에는 약 2000km의 국경선이 있는데 양국의 국경선은 일반적으로 동단, 중단, 서단으로 구분한다. 중국 측은 전통관습선에 따라서 국경선을 획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중국정부가 제기한 중국-인도 쌍방의 무장부대의 실제 통제선에 따라 모든 전선에서 각자 20km씩 후퇴하자는 제안의 표시도 중-인 변계 전체 지도 ① 서단과 중단 지도 ② 동단 지도(+인도군이 점거한 지동 지구 표시도)로 구성되어 있다. (범례: --- 전통습관선, 1959년 ─실제통제선, ……맥마흔선, ---중국 측이 제안한 쌍방 후퇴 20km선, ● 인도군이 점거한 거점, ⓧ 인도군의 계절적 주둔지) 출처 인민일보 1962.11.18 중단의 경우엔 국경분쟁이 그리 크지 않다. 정식으로 획정되지 않은 중단의 국경선은 400 마일(643.6km)로, 그중에 몇몇 지점에서 분쟁이 있다. 분쟁지역은 크지 않고 200평방마일(518㎢)에 불과하다. 서단의 악사이친 지역은 신장, 티베트와 인도의 라닥과 연결된 변계다. 라닥은 1848년 영국에 의해 점거되어 카슈미르에 병합되었다. 서단의 변계는 정식으로 획정되지 않았고 단지 전통관습선이 있을 뿐이었다. 1865년 아쿱벡 세력이 신장에 진입한 이후 영국 측의 지도가 달라졌다. ‘신중국’ 수립 후 인민해방군은 1950년 말에서 1951년 가을에 서단의 신장, 티베트의 ‘전통관습선’에 따라서 아리 지구에 진입했다. 중국 측은 1954년에서 1955년 사이에 도로를 개설하기 위해서 악사이친 지역에 대해서 광범위한 측량을 진행했으며, 1957년에 신장과 티베트 사이에 도로를 개설했다. 이는 인도 측의 항의를 야기했다. 인도정부는 이 3만여 ㎢의 악사이친 지역을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중국 측은 1962년에 점령한 이후 중국의 고유 영토임을 주장하고 있다. 동단의 맥마흔 선 이남의 인도통제지역은 전통적으로 티베트의 관할권 아래 있던 지역이었다. 이 지역이 영국령 인도의 관할 아래 편입되기 시작한 것은 1913년의 심라회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도-중국 국경의 동단의 분쟁 지역은 인도동북부 평원을 향하는 쐐기형태를 이루고 있다. 영국과 독립 후의 인도는 이러한 ‘쐐기 지대’를 주목했다. 영국인은 티베트 정부를 유혹하여 이 지역을 차지한 것은 ‘위험한 쐐기지대’를 제거하고자 하였다. 1913년 10월 13일 인도의 심라에서 영국대표인 인도외교부장 맥마흔이 주재하는 가운데, 티베트와 중국 측 등 삼자 대표가 모였다. 이듬해 세 나라 사이에는 심라조약이 체결되었는데, 중국 측은 비준하지 않았다. 1914년 2월 17일 맥마흔은 티베트를 ‘내티베트’와 ‘외티베트’로 구분하고 ‘내티베트’를 중국과 티베트의 완충지대로 하자고 제안했다. 맥마흔은 또 인도-티베트로 변계로 9만 ㎢의 토지 위에 붉은 선을 그려 넣었다. 이것은 티베트의 독립을 돕는다는 조건으로 ‘토지와 독립을 맞바꾼 것’이었다. 티베트는 독립하지 못했지만, 영토는 영국령 인도에 속하게 되었다. 영국은 1944년 맥마흔선 이남의 땅을 취득하였다. 이에 대해 티베트 정부와 중화민국 정부는 승인하지 않았다. 1947년 8월 15일에 인도가 독립하였을 때, 인도는 영국령 인도의 유산, 특히 영토문제를 계승하고 있었다. 인도는 1949년 시킴을 보호국으로 만들었다. 1950년 4월에 인도와 중국이 수교하였을 때, 인도는 티베트에서 여러 가지 특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인도는 티베트의 여러 곳에 대표와 상업대표와 무역소를 두고 있었고, 티베트의 우정, 전보, 전화를 경영하고 있었으며, 티베트에 12개의 역참을 두었다. 1954년 4월 29일 중국과 인도는 티베트와 인도 간의 통상과 교통 협정을 체결하는 가운데 평화공존 5개 원칙에 합의하였다. 인도는 1953년까지 맥마흔선 이남의 지역을 통제하였다. ‘맥마흔 선’은 서쪽으로 중국과 부탄과 인도 삼국의 교차점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중국, 미얀마, 인도 삼국의 교차점인 디푹라에 이른다. 미얀마의 전례에 따라 중국 측은 국경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사실 ‘1941년 선’과 ‘맥마흔 선’의 성격은 같은 것이고, 중국의 관점에서는 영국 식민주의자가 중국의 영토를 강탈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 측은 국경문제의 안정이 긴요했기 때문에 ‘맥마흔선’을 승인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조건은 중국 측이 중-인 변계 동단의 ‘맥마흔선’ 안쪽 지역을 승인하는 대신 인도측은 서단의 악사이친 지역의 영토 요구를 철회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교환방식은 중국-버마 국경조약의 방식과 같은 것이었다. 왕스루 같은 중국학자는 당시 중국의 ‘동단과 서단을 교환 한다’는 일괄 타결 방안이 중국 측에 매우 불리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법률상, 중국은 일관되게 히말라야 산 남록인 전통관습선을 중국-인도 동단의 국경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950년대에 악사이친에 진입한 것도 전통관습선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경제적인 이익의 관점에서 본다면, 동단의 9만 ㎢에 비해 서단의 3.35㎢는 훨씬 작다. 동단에 비해 대륙성 고원기후로 고산과 협곡이고 통행하기 어렵지만, 우량이 충분하고 자연자원이 많다. 반면에 서단의 악사이친 지역은 면적도 동단에 비해 좁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지 않는 지대다. 전략상으로 보면, 인도-중국 국경선의 동단과 서단은 모두 중요하다. 서단의 악사이친은 신장 서부에서 티베트로 가는데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다. 1957년 10월 악사이친 도로가 개통되었다. 악사이친은 카라쿤룬산과 쿤룬산맥 사이에 있는데, 카라쿤룬산맥이 더 험하다. 그것은 중국 측에게 천연방벽이 될 수 있다. 악사이친 지역은 중국 신장 지역과 기본적으로 동일한 지리단위에 속한다. 악사이친 지구는 신장과 티베트 腹地로 진입할 수 있는 곳이고, 아프가니스탄이나 독립국가연합의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연계하기 쉬운 곳이다. 이곳의 방기는 중국의 우방인 파키스탄의 배후에 적을 두는 것이다. 이곳을 방기하고 인도는 중앙아시아 대국이 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전략적 고려에서 출발하여 인도는 중국의 ‘동단과 서단을 교환하자’는 일괄 해결 주장을 완강하게 반대한 것이다. 국경교섭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1962년 10월에 전쟁으로까지 확대되었다. 1959년 8월 25일 맥마흔 선상에서 가까운 랑주의 초소에서 쌍방 간에는 사격을 주고받는 일이 벌어졌다. 1961년 말부터는 인도군의 활동이 활발해졌고, 도처에서 충돌이 벌어졌다. 1962년 10월 20일 중국군은 국경의 서단과 동단에서 동시에 전면적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승승장구하던 중국군은 11월 21일 0시에 공격을 멈추었다. 이것은 중국 측이 당시에 전투의 승리보다는 국경문제의 해결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 전쟁에서는 인도군이 더 큰 피해를 보았다. 1965년 인도 국방부는 인도군 사망 1383명, 실종 1696명, 포로 3968명이라고 발표했다. 대부분의 피해는 동단 전선에서 발생했다. 1962년 전쟁 이후 인도군과 중국군은 조용한 대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는 서북부의 인도 영토를 중국이 강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중국은 인도가 맥마흔선 남쪽 지역을 근거 없이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영토분쟁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 11일 인도 뉴델리에서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만모한 싱 인도 총리는 오랜 분쟁을 접고 다방면에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갖기로 합의했다. 이러한 합의가 FTA로까지 연결된다면, 인구 23억의 거대한 시장이 등장하고 세계의 역학구도에서 변화가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인도와 중국은 대국주의적 국가이기주의를 극복하고 국경분쟁이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필자소개한신대 학술원 연구교수 박장배 ※ 다음 회는 윤영인 고구려연구재단 부연구위원의 ‘몽골문제와 교과서 서술’입니다
19일 새벽 경기도 중부전선 최전방 GP 내무반에서 김모(22) 일병이 수류탄 1발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해 소대장과 사병 7명 등 모두 8명이 사망하고 2명 이 부상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는 비보를 듣고 참사가 벌어진 곳에 인접한 인근 군부대에서 군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의 부모로써 지금도 그때 놀란 가슴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이번의 참사는 궁극적으로 인성 교육은커녕 방종에 가까운 환경 속에서 개인주의에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있지만 의지력은 막대기처럼 야윈 아이를 양산하는 우리의 가정과 인성교육은 뒤로한 채 평가를 위한 줄 세우기에 고심하는 우리 학교교육의 문제이자 책임이라고 볼 때 교사로서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그동안 군 당국으로부터 사건의 진상에 대하여 평소 선임 병들로부터 욕설 등 언어폭력에 시달렸으며 경계 근무를 마치고 다음 번 근무자를 깨우던 중 언어폭력을 했다는 선임 병의 얼굴을 본 순간 충동적으로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했다고 발표했다가 다시 번복하여 모든 사고가 사전에 계획된 참사였다고 발표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 시대가 변했다하더라도 엄격했던 우리들의 과거 군 생활에 비추어 볼 때 상식적으로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어쨋든 황당함을 금할 길 없다. 모두들 군대에 관한 문제들이라며 호들갑떠는 언론도 문제거니와 인터넷을 보노라면 자랑스런(?) 대한민국 네티즌들은 피해자나 가해자, 군대할 것 없이 신랄하게 파멸시키며 군 기밀 정보를 유출시키는 쾌거를 올리고 있다. 게다가 군에 대해 부정적이던 일부 몰지각한 네티즌은 가해자를 옹호해 피해 유가족을 두번 울리는가하면, 이에 질세라 언론은 국가기밀과는 관계없이 군과 관련된 모든 것을 들춰내 만천하에 공개하기 시작하고, 군의 모든 것이 문제라고 단정해버린다. 학생이 자살을 한 사건이라도 벌어지면 너나 할 것 없이 교육정책을 난도질하고 대부분의 선량한 아이들까지 집단 따돌림의 주범으로, 학교는 파렴치한 아이들의 온상쯤으로, 그리고 대한민국 교사는 모두 교육을 포기한 직무유기자로 단죄하는 등 싸잡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세웠던 그들 특유의 마녀사냥이 여지없이 시작된 것이다. 필자는 GP는 아니지만 전방에서 장교로 군 생활을 했다. 군대라는 조직은 이질적인 개인과 개인이 속한 사회라는 점에서 그 특성상 가장 엄격하고 기강이 확고히 잡힌 조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군에 다녀온 사람이며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반면에 요즘 아이들은 끈기가 없고 돌발적이며 컴퓨터와 친구가 되어 혼자 놀기에 익숙하여 공동생활에는 잘 적응 되어 있지 못하다. 따라서 요즘 신세대와 군대 조직 간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사건이 생길 때마다 군대만의 문제로 몰아세울 것인가. 좀더 근본적으로 되짚어보면 결국 우리나라의 구조적인 가정교육, 그에 따른 학교교육의 실태에서 그 원인과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남을 짓밟거나 비정상적인 수단을 써서라도 최고가 되어야 하고, 내 아이가 남에게 기를 죽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을 가진 이른바 왕자병과 공주병으로 양산하고, '친구들과 놀라!'는 말 대신 '방에 앉아서 공부해라!'고 말해야 하는 우리 가정교육의 현실이 문제이다. 나는 가족들 특히 어린 아이들이 많이 모이는 식당에는 잘 가지 않는다. 식당은 아예 아이들의 돌아다니면서 떠들고 어지럽히는 놀이터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많은 방해가 되는데도 아무도 꾸짖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나무라기라도 하면 왜 크는 아이의 기를 죽이느냐고 난리를 피워 망신당하기 일쑤다. 다른 아이들에게 기죽지 않고 조금이라도 남의 위에 올라서는 것이 우리나라 가정교육 제일의 목표다. 학교에서 심한 꾸지람이나 벌을 받기라도 하면 ‘부모한테도 욕 안 먹는데 당신이 뭔데 내 아이의 기를 죽이느냐!’며 교사를 몰아세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말라는 것이 제일의 가정교육 목표인 일본 아이들은 우리 식이라면 벌써 기가 죽어 바보 집단이 되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잘못된 사고방식으로 자란 아이들이 공교육 기관인 학교에 맡겨지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외부와 단절된 특수집단 군대에 보내진다. 집을 떠나는 순간 그곳이 감옥이고 유배지이니 당연히 그 속에서 왕자들은 그 환경에 적응이 될 리 없다. 그러나 이번 참사의 주범인 김일병은 나름대로 자기 삶을 사는 자존감 강한 조용한 청년이었겠지만 있어서는 안 될 최악의 선택을 해버리고 말았다. 방법은 많이 이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괴롭힌다면 상대방과 대화하거나 따져볼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상관이나 지휘관과의 상담이나 군대내의 가혹행위에 대한 고발제도를 이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막말로 정 못 참겠으면 극단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선임병과 사나이로서 맞짱이라도 떴어야 했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될 것 같으면 괴롭히는 당사자만 죽였어야지……. 마치 그가 평소 즐기던 컴퓨터 배틀게임처럼 죄 없는 다른 동료들을 향하여 덤덤하게 수류탄을 던지고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 후 침착하게 확인 사살하는 등 이유 없는 복수극을 끝내버리고는 유유히 자기 근무지로 돌아가는 태연함을 보였다. 어리석다 못해 섬뜩함에 몸서리가 쳐진다. 컴퓨터 게임의 폭력과 현실의 경계를 분간하지 못해서 생긴 억울한 죽음과 가족의 슬픔을 누가 보상하란 말인가. 그는 다른 부적응 자들과 달리 내적 해결(자살)대신 외적 해결(타살)로 끝을 보려한 그는 유일한 위안이 될 수도 있는 동정마저도 못 받을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만 것이다. 그의 인간적인 인내력과 자제력이 아쉬운 대목이다. 군에 가있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우리나라 군대 생활은 많이 달라지고 좋아졌다고는 짐작하나 인간의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욕구들을 채워주기에는 역시 부족한 면이 더 많을 것이다. 특히 지극히 이질적인 집단에서 성격적으로 낙천적이지 못하고, 인간관계가 부족하거나 자기표현이 어려운 사람일수록 심적 고통은 엄청날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관계가 복잡하고 어렵지만 더더욱 심한 집단이 군대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각기 다른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목적과 이해로 만나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며 사는 것이 쉽지 않는 사실을 말로만 듣다가 군 생활을 하면서 힘든 과정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꿋꿋이 견뎌내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대한민국 젊은이들은 한 단계 성장한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 무사히 가정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홀가분하게 사회로 나오면서 다시는 군 쪽으로는 소변도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함께 남자로 태어나면 군 생활은 꼭 해야 한다는 모순된 가치가 마음에 공존하는 것이다. 부디 이번 일로 인하여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의 공로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끝으로 부상당한 병사들의 쾌유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이번 사건의 원인 규명과 아울러 대책을 깊이 짚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