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48,546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학생들이 야간 자율학습을 할 때 가끔 마트에서 초코파이와 음료수를 사서 나눠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론 ‘붕어빵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날 인터넷에서 작은 붕어빵 기계가 달린 포장마차를 통째로 판다는 글을 보게 됐다. 나는 1톤 트럭을 빌려 왕복 8시간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서 인천으로 향했다. 포장마차를 학교 기숙사 뒤편에 두고 처음에는 기숙사생들에게 만들어줬다. 소문은 곧 교내에 쫙 퍼졌다. 야자가 시작하기 전부터 아이들은 자꾸 묻는다. “선생님, 붕어빵 어떻게 사요? 얼마에요?” ‘붕어빵 한 개에 사랑 한 움큼’이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한 움큼이 뭐냐고 묻는다. 어떤 학생은 천원이다, 어떤 학생은 쓰레기 줍기 등 봉사활동이다 등등 의견이 분분했다. “돈으로는 살 수 없어. 기다려봐. 야자할 때 보면 알아.” 드디어 ‘붕어빵 가게’ 문을 연 날, 구름 같이 몰려드는 학생들에게 붕어빵을 팔았다. 순식간에 동이 나고 기다리는 학생들이 많아서 1인당 2개씩만 팔았다. 완전 ‘대박’이었다. 붕어빵의 대가로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서 감당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매주 월요일 저녁은 붕어빵 먹는 날이다. 줄을 지어 기다리는 학생들을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붕어빵을 굽느라 3시간을 꼬박 서있었지만 뿌듯함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재료비를 걷고 돌아가면서 자원봉사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소문을 듣고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물으며 도와주려는 학부모도 있었다. 주변에서 내게 “붕어빵 장사가 잘 어울린다”며 “전업하라”는 우스개소리도 한다. 아이들은 “왜 사서 고생하세요? 왜 공짜로 주세요?” 하고 묻는다. 아이들에게 사랑은 값없이 주고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언젠가는 아이들도 공짜 붕어빵의 이유를 알게 되는 때가 올 것이다.
청소년개발원(원장 배규한)은 11일 서울 중구청소년수련관에서 서울시와 공동으로 청소년정책 전문가 포럼을 개최했다. ‘주5일 수업제 대비 청소년수련관의 기능 재정립’ 주제발표를 맡은 권일남 명지대 교수는 “주5일제는 선진국 진입시 필요불가결한 조건”이라면서 “교사와 학교교육만으로는 한계가 너무 크기 때문에 주5일 수업 도입은 필연적으로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의 ‘삼각연계’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지금까지 수련시설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원이 적정하며, 어느 정도의 사회경제적 산출효과로 이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은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며 “학교의 요구는 얼마나 만족시켜 주고 있는지 등을 분석해둬야 시설특화나 운영 합리화 등의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핵심수련관은 인력과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기능을 맡고 기타 수련관은 학교연계사업, 방과후활동 등 중대규모 활동을 하는 형태를 강구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정대 강북청소년수련관 관장은 “청소년수련관이 주민편의시설로 변모된 것은 당연히 지적받아야 하겠지만 이를 통해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며 “학교처럼 공공 교육기관인 청소년수련관에 상업적 논리를 적용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김 관장은 “주5일 수업 확대에 따라 청소년수련관은 주말 체험학교 프로그램을 상설화하고 빈곤층 청소년과 맞벌이 부부 가정 자녀, 학력저하 청소년을 위한 체험 및 학습지원 프로그램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권하 충남고 교사는 최근 대전·충청 지역사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일비호 문화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류각현 강원 원주고 교사는 최근 두 번째 시조집 ‘묵정밭에 피어난 꽃’을 펴냈다.
김형식 경기 성포초 교사는 최근 동시집 ‘몽당연필로 쓴 보랏빛 쪽지편지’를 출간했다.
교원평가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흘러나오자 일선 학교들은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교사들의 입장에서야 ‘교원평가’라는 말 자체부터 반갑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입장에 평가를 쉽사리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분명 아니다. 그 사안이 사안이니 만큼 간혹 가끔 흘러가는 말로 푸념들을 늘어놓곤 한다. 하지만 교원평가가 시대적인 대세니 뭐니 하면서 자꾸만 교사들을 이 시대에 뒤떨어진 무능한 이들도 자꾸 몰아대는 부분에 대해서는 때로는 분노 섞인 말들을 쏟아내는 분들도 계신다. 우연히 몇몇 젊은 선생님들이 우연하게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참, 이제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교직에도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요.” “몇 해 교사가 되기 위해 정말로 목숨 걸고 열심히 했는데, 이거 보람이 없이 벌써 이런 말이 나오다니….” “뭐 꼭 나쁘게 볼 필요는 없잖아요. 이 시대가 요구하는 교사상이 그렇다면 우리가 맞추는 수밖에요.” “그래도 너무 교육현장을 모르고 하는 소리들이 많아 속상하기도 해요.” “이제까지 우리 학교가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보여준 것이 미약하고 부족했기 때문에 일이 이 지경까지 온 것이니 누굴 원망하겠어요.” “그래도 이번 교원평가는 좀 그래요. 교사를 양성하고 뽑는 체계부터 정비를 하고 거기에 맞추어 평가를 하든지 말든지 해야지. 이렇게 밀어붙이기식 평가는 자칫 학교 전체를 황폐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 것인지.” “맞아요, 다들 열린 교육과 수행평가 때문에 더 불어난 사교육비로 결국 고생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님 아니에요.” “하지만 그간 우리 학교가 세상의 변화에 너무 안이하게 대응해 온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과 학부형은 변하는데 학교나 교사가 변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남겠어요. 변하는 세상 속에 과감히 부딪혀 보는 실험도 필요하지 않겠어요.” 젊은 선생님들은 그래도 교원평가라는 것 자체를 무조건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교사상에 우리가 맞추어 가야 된다는 것에 동조는 하면서도 쉽사리 현 우리 교육체제에서 밀어붙이기식 평가는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젊은 선생님들은 교원평가가 자신과 나아가 학교와 교사의 변화에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평가라는 말 자체가 주는 억압과 구속의 의미가 크게 작용했던지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그 말 자체를 꺼려하기 일쑤였다. 그러면서도 최근에 교육부가 실시해 온 정책들이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는 우려 때문인지, 자칫 교원평가가 교직 사회 전체를 낭떠러지로 몰아가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지 자못 걱정과 우려의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내심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은 교원평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싶어 묻게 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한 학기가 끝나면 아이들에게 수업과 여러 가지 면에 대해서 질문서를 주고 아이들로부터 평가 아닌 평가를 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교원평가에 대해 공식적으로 아이들에 묻게 되니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론 조심스러운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선생님은 너희들이 제일 무섭다. 왠지 아니?” 무슨 뚱딴지 소리인지 싶어 아이들은 제각각 나를 의문스럽게 쳐다보는 것이었다. “우리는 선생님이 무섭지 않는데요. 그냥 아저씨 같기도 하도, 형 같기도 하고, 하하하….” 제각각 아이들은 나의 질문에는 별 관심이 없는지 저희들끼리 키득대는 것이었다. “이놈들아, 혹시 너희들 교원평가라고 들어 보았니?” “교원평가요! 혹시 그거 선생님들을 평가하는 건가요. 어제 보니까 TV에 많이 나오는 것 같던데. 선생님 건데 왜 그러시죠?” “이제 네가 너희들한테 평가를 받아야 한단다." "선생님 농담 하시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시험이라도 내야 한다는 거예요.” 아이들은 한편으로는 의구심이 생기는지 나의 말을 경청하기도 했고, 또 다른 편의 아이들은 그냥 재미로 자꾸만 말놀이를 하려 들었다. “그게 아니고, 혹시 1학기말에 선생님이 내 주었던 질문지 생각나니?” “아! 선생님 수업은 어떻고,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 부족한 점은 무엇이고, 등등…. 생각납니다.” “그게 바로 교원평가라는 것이다. 이제 공식적으로 그런 평가를 너희들이 선생님을 두고 해야 하는 것이란다.”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들이 점수 많이 드릴게요.” “선생님 맛있는 것 많이 사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하하하.” “그럼 우리가 선생님을 점수를 매기는 거네요. 그것 참 재미겠네요. 그럼 빵점 받으면 선생님이 잘리는 건가요?” 한 아이의 짓궂은 질문에 갑자기 교실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마치 그 아이가 나의 치부를 완전하게 들추어내기라도 한 듯 일시에 아이들을 긴장과 놀라움의 상태가 되었다. “○○아 너 무슨 소리 하노. 그럼 니는 우리 선생님 빵점 줄래. 정말 인정도 없는 놈이다.” 왠지 아이들이 나를 두고 하는 이야기들이 마치 내 운명의 잣대를 자기네들끼리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느낌이 들어 더 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자, 그만. 오늘 배울 부분 펴라. 공부하자!” 씁쓸했다. 그 동안 정말로 사심 없이 아이들과 많이 부딪히고 정과 신뢰를 쌓아 왔다. 하지만 이제 그네들의 눈치를 보며 인기 영합하는 교사로 어쩌면 살아내야 하는 현실을 떠 올리게 되니, 더 이상 이전의 순수함과 열정으로 아이들을 대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머릿속을 자꾸만 혼란스럽게 했다.
기간제 교사의 대부분이 교사임용후보자선정경쟁시험을 얼마 앞두고 있다. 특히 몇 번 낙방의 고배를 마신 사람은 와신상담하며 머리를 싸매고, 밤을 새워가며 시험대비에 매진하며 결전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만은 꼭 합격하리라'하며 스스로 굳은 다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기간제 교사가 학원에 나가서 공부할 수 있도록 조금만 편의를 보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소속 부장교사의 사전 귀띔이 있었다. 물론 흔쾌히 허락하였다. 인생의 중차대한 일인데 그 정도(?) 못 보아 준다면 어찌되겠는가? 며칠 후 그 교사가 정말 교감실로 찾아 왔다. "부장 선생님께서 전해 주신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죠. 당연히 편의를 보아 드려야죠.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죠?" "이번 시험에 꼭 합격해야 합니다. 알았죠?" "네! 교감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상의 주머니 속에서 뭔가를 꺼낸다. "아니, 그게 무어죠. 이런 것 받으면 안 됩니다. 그냥 가져 가십시오." 나는 꺼내지 못하도록 하면서 손사래를 내저었다. "교감 선생님, 이건데요." "아니, 그게 무언가요?" "쵸코렛이요."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고맙게 받겠습니다." 우리 속담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라는 말이 있다. 얼마전 기간제 교사로부터 상품권을 받은 교장이 모단체 사주에 의해 진정이 되었고 그것이 언론에 보도되어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감사의 뜻으로 받았더라도 충분히 왜곡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현재 그 교장은 감봉 2개월 징계처분에 중간 발령을 받아 3학급 교장으로 가 있다. S시 대규모 학교 교장에서 하루 아침에 좌천 발령을 받은 것이다. 참으로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징계 처분이 너무(?) 과하고 중간 발령이라는 멍에도 받은 것이다. 리포터는 취재차 그 교장과 통화도 하고 억울함(?)의 대처 방안으로 교원소청심사위원회도 의논하였다. 그 분은 반성하면서 차분히 근신 중이었다. 또, 그 일이 있었던 학교의 교감과도 통화하여 사건의 대충도 전하여 들었다. 그런 리포터라 과민 반응을 보인 것일까? 여하튼 교감과 교장, 함부로 처신해서는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지만 엉뚱하게 일이 커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교사도 그렇고 교감과 교장도 그렇고· · ·. 여하튼 교육자로서의 처신이 어려운 시대다. 오늘도 교감과 교장은 아무 일 없음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후우· · ·."
수능을 열흘 남짓 앞두고 3학년 담임 선생님들이 졸업앨범에 들어가는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그간 함께 모여서 사진을 촬영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지냈으나 오늘만큼은 시간을 내보기로 했습니다. 일단 아홉 명의 담임 선생님들이 촬영을 한 후, 인문계 담임 선생님 다섯 분만 별도로 촬영을 했습니다. 선생님들의 사진 촬영은 사진관에서 나온 기사분이 아니라 학생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요즘은 학생들의 사진도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하여 자유롭게 촬영할 후, 마음에 드는 사진을 선택하여 졸업사진을 구성하는데 사용한답니다. 졸업앨범에 들어갈 사진을 촬영하고나니 벌써 일년이 다 간 것 같아 서운하고 허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모쪼록 모든 제자들이 자신이 목표로 하는 대학에 진학하기를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기원했습니다.
현재 우리 나라의 교육환경에서는 교사의 능력이나 실적을 적정하게 평가한다는 것은 어렵다. 교원평가제도의 도입에는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누구나 생각한다. 교원평가제도의 많은 문제점 중에서, 개략적인 문제점을 지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은 학생의 성장, 발달을 보장하는 문화적 정신적 경영이라고 볼 수 있다. 무릇 교육은 학생들의 인격 완성을 추구하고, 성장 발달을 보장하는 경영이다. 그리고 그것은 실로 문화적, 정신적 경영이고, 교육의 중요성 및 특수성을 형성하고 있다. 학교에 있어서 교직원은 수업이나, 생활 지도, 진로지도, 특별 활동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학생들과 서로 마주보고 그 목적의 실현을 위해서 전력하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도 때로는 정체, 후퇴하면서도 다양한 경험을 축적해 가는 중에 각각 성장하고 있다. 그것은 특정 교원과의 관계나 특정 경험에 의해 산출될 뿐만 아니라, 경험의 통합에 있는 것이고, 또 항상 성장이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으로서의 필요성이 있다. 결국 교육에 있어서 성과는 단기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측정하고 수치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교원평가제도를 시행, 평가하려고 한다면 수치화할 수 있는 것에 비중을 두어지게 되고, 대학 합격자수나 결석생수, 퇴학자수나 고사의 평균점 등이 중시되고, 교육활동의 왜곡이 발생하기 쉽다. 또 개개인의 교원도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고 하고, 졸업 후도 포함한 장기적인 시점을 갖기 어렵게 되는 것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인성교육이 전혀 안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둘째, 교육은 집단으로 행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다양한 교사와의 다양한 관계 속에서 성장 발달하고 있다. 그 성과는 총체적으로 산출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 성과는 특정 교원의 성과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교원을 평가하려고 하면 집단으로 교육에 있어서 교직원 집단의 협력관계에 커다란 왜곡을 낳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교육상의 다양한 과제의 해결에는 교직원 집단이 솔직히 서로 말하고, 고뇌를 공유하고, 상호 원조하는 것이 극히 중요한다. 개인이 해결하는 것은 극히 곤란하고, 오히려 문제를 크게 할 수 있다.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유롭게 서로 부둥켜안고 문제를 서로 내고, 개개인의 실천 교류를 교류하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개개인의 교원평가를 행하는 것은 자기의 평가를 낮추는 것에 불안을 느끼기도 하고 자기의 평가를 의식한 나머지, 주위의 교원 문제에 관심이 옅어지는 등, 교직원 집단 총체의 역량 저하에 이어질 위험성이 있다. 또 자기 평가를 염두에 둔 나머지 문제를 숨기기도 하고 문제를 안은 채 고립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그 속에 무력감이 느껴지고 자기 상실에 빠지기도 하고 고뇌하는 상황이 확대되는 것도 문제이다. 셋째, 교사의 평가 기준의 설정은 교육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끈다. 평가 기준을 다양하게 넓힌다는 것은 무언가 공정한 담보로는 되지 않는다. 지도력 향상을 요구하는 교원에 대해서도 의욕 ․ 적격성의 판정 항목에는 지역 주민과의 관계 등 교원의 일상 생활에 관련된 문제도 그 기준으로 들 수 있다. 의욕 ․ 적격성이 등급을 받는다면 다른 항목 즉 교과지도력, 아동의 이해, 학급경영에 무슨 문제가 없어도 관찰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교원에 있어서 수업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직무이고, 지역 주민과의 관계는 교원으로서의 평가대상으로 마땅히 해야 할 항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원래 교육은 다양한 개성을 지닌 교원이 집단으로서 행하는 상호 보합관계로 성립한다. 교원의 역량 함양을 목적으로 한다면, 각 평가 기준에 있어서 개별의 문제의 지적은 있을 수 있더라도 합산한 평가는 그 시점에서 이미 합리성이 결여되었다고 볼 수 있다. 교육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문제행동이 있었을 경우, 그 건수가 몇 건인지가 아니고 관련된 학생이 어떻게 성장했는가의 여부이다. 교육평가의 적정성은 수치화할 수 없고, 단기적인 평가도 불가능하다. 넷째, 행정관리에 의한 목표 관리가 행해지고 관리 통제가 진행된다. 교원평가제도가 시작되면 개개인의 교원은 아동들의 성장 발달의 시점이 아니고, 관리직의 평가나 평가자인 학교장이 설정한 학교 목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교육활동을 행하는 이상 개개의 교원이 목표를 갖고 항상 그 도달 상황을 스스로 점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단, 어디까지나 그 목표는 헌법, 교육기본법에 근거하되 자주적으로 작성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교육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아동의 성장 ․ 발달을 위한 자유롭고 창조적인 교육실천과 그 실현을 향한 상호 비판을 포함한 민주적인 직장이다. 관리직에 의한 자기목표의 지도는 그러한 교육현장의 관리와 통제를 강하게 할 위험성이 있다. 다섯째, 경쟁 격화에 의한 과로, 건강 파괴가 진행된다. 교원평가제도가 도입된다면 개개인의 교원은 불응 없이, 경쟁에 이끌리어 성과를 이루려고 근무시간을 넘어 일하는 것이 현상에서 더욱 초월하여 나아갈 위험성이 있다. 또 평가를 염두에 둔 나머지, 연차 유급 휴가 취득을 빼기도하고 근무조건의 개선 요구를 빼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한다. 교육기본법에는 교원의 신분의 적정을 기하는 것이 정해져 있다. 교원의 노동조건은 학생에게 있어서는 교육조건이기도 한다. 적정한 대우가 보장되는 것이야말로 교원은 자주적, 자발적으로 그리고도 창조적, 도전적으로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전체의 봉사자로서 헌법과 교육기본법에 근거를 두고, 권리 주체인 아동, 학부형의 평가를 받는 것에서 도망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것은 집단으로서 교육에 해당하는 교직원의 역량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고, 대우에 반영되어야만 할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교원평가제도는 교직원 집단의 공동협력을 파괴하고, 교원의 관리 통제를 진행하려는 것이기에 교사들은 이것을 인정할 수 없다. 오호애재라! 교육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교육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가?
정부와 교육부는 4일 교육력제고특별협의회를 깨고 8일부터 교원평가 시범학교 선정에 들어가는 등 강행 실시에 들어갔다. 당초 교․학․정 협의기구를 통해 합의시행을 약속했던 교육부는 지난달 30일을 합의시한으로 정해 괴멸을 유도했다. 교총은 교원평가 시행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면서도 교원의 신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요정책이라는 점에서 “객관적이고 타당한 준거를 마련하고 합리적 시행방안을 마련해 합의 하에 실시하자”는 의견을 거듭 제안했지만 교육부는 조속 시행을 주문하는 학부모 단체를 등에 없고 협의 며칠 만에 강행을 선언했다. 또한번 교원단체와 학부모를 갈등과 대립국면으로 몰아넣은 교육부는 15일 시범학교를 발표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에 한국교총은 9일 반대 입장을 내고 “교총은 교육부가 졸속으로 내 논 교원평가 복수안 중 어느 것도 수용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며 “교육현장의 의견수렴과 동의절차 없는 강행과 시범실시를 철회하고 시범학교 선정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교총은 “교육부는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의 탈퇴를 구실로 2개월간 특별협을 공전시키다가 연대가 다시 복귀하니까 지난달 24일 느닷없이 회의를 소집하고 30일까지 합의가 안되면 11월 1일 일방 강행하겠다면서 일주일 만에 합의를 강요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교원평가만 하면 학교 교육력이 높아질 것처럼 국민을 호도하고 이를 이용해 평가를 졸속으로 몰고 가려는 교육부가 특별협을 분해시킨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는 OECD 최하위 수준인 교원 1인당 학생수, 수업시수, 교원 업무부담 등을 개선하기 위한 재정 확보부터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교총은 이번 특별협 협의과정에서 일관되게 제안한 교원평가제 도입방안을 제시했다. 그것은 근평제 중 수업평가영역을 분리해 운영하는 방안이다. (표 참조) 교총은 “교원평가제는 승진평정과 별도로 교원의 수업전문성을 향상시키는 데 국한해 운영하고 근평제는 승진대상자를 선별하기 위한 제도적 도구로 활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현행 승진규정 중 수업평가영역을 근평제 자체에서 분리해 △평가항목, 내용 보완 △동료교원 평가 △자유기술식 절대평가 △평가결과 본인 통보 등을 반영하는 것이 교총안의 골자다. 또 학생은 수업만족도, 학부모는 자녀의 학교생활만족도 조사로 하되, 자유기술형으로 하고 누적 관리를 하지 않을 것을 제안했다. 교총은 “현행 근평을 개선하는 데는 동감이지만 교원평가를 위해 근평제 자체를 폐지하자는 의견에는 분명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특별협 실무지원단에서 활동한 김경윤 정책교섭국장은 “전교조는 근평제 폐지와 교장선출보직제 도입이 목표지만 차선책으로 근평결과 공개, 교장․교감․교사 상호평가, 절대평가 등을 골자로 한 근평제 개선안을 교원평가의 전제조건으로 주장하고 있다”며 “그러나 교총은 근평제 개선과 수업전문성 향상을 위한 교원평가제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므로 반대한다”고 밝혔다. 교총은 “교육부는 지난 10월 교원승진인사제도 개선안을 마련해 2기 교육혁신위에 제시한 상황”이라며 “현장교원에 대한 광범위한 의견수렴과 동의절차를 통해 개선 또는 새 제도 도입이 모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청년지도자 연합회 강릉지회 주관의 강릉시민 초청 토론회가 11월 9일 본교 소강당에서 있었다. ‘학교 폭력 실태와 예방’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토론회에는 학부모 및 학생, 교사 등 200여명이 참석하여 큰 관심을 보였다. 스쿨폴리스 제도의 도입 이후, 학교 폭력이 다소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아직까지 일선학교에서는 암암리에 학교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학교 폭력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책을 세워야 할 초기에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에 본교의 학생 부장이자 강릉시특별범죄위원회 부회장인 최학규 선생님은 ‘학교폭력의 예방과 대책’이라는 주제로 학교 폭력의 심각성과 폭력 피해 징후 및 유형, 거기에 따른 대처요령을 강의함으로써 참석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기도 하였다. 다음으로 강릉시 청소년 보호센터 소장인 조규남 목사는 ‘청소년 비행의 사례’라는 주제로 청소년 비행의 원인과 사례(폭력, 절도, 성관련 범죄 등)를 유형별로 구체적으로 제시를 하여 10대 청소년들의 폭력의 심각성을 인지시켜 주었다. 이제 학교 폭력은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따라서 학교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학교와 지역사회 모두가 앞장서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이와 같은 토론회가 한시적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열려 건전한 사회 풍토를 조성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연말연시. 이제 고입과 대입을 끝낸 학생들이 거리를 배회하게 될 것이다. 입시에 중압감에서 벗어난 그들이 갑자기 생긴 해방감에 무슨 일을 자처할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이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자칫 잘못하여 학교 폭력이 사회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모교장제 도입 등을 위한 교육공무원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 설명자료’를 올렸는데, 한마디로 그 설명자료는 개인적인 의견일 뿐, 객관성 측면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보여진다. '공모교장은 학부모들의 참여와 지지를 바탕으로 함으로써 교장의 책임과 권한이 강화되는 시스템'이라고 밝혔는데, 현재의 교장에게 책임과 권한을 더 강화해서 학교교육의 책무성을 강조하는 것은 왜 안되는가. 꼭 공모교장제를 도입해야만 책임과 권한이 강화되는 것처럼 설명한 것은 보편성이 떨어진다. 개인의 의견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더 큰 문제는 “더욱이 공모교장이라고 해서 곧 교사자격증이 없는 인사는 아니며 실제로 학운위는 대부분 교사자격증을 가진 분을 교장으로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는데, 그럴 것이라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초기에는 그럴 수도 있다. 교사출신 중에서 교장으로 택할 가능성이 높지만, 궁극적으로 그렇게 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 역시 신빙성이 없는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그밖에, 다른 나라의 예를 들고 있지만 다른 나라는 다른 나라일 뿐이다. 우리나라와 여건도 다르고 인적 자원도 다른데, 다른 나라와 비교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왜 교장임용방식만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가. 교육의 모든 부분을 다같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것 아닌가. 이주호 의원이 진정으로 교육을 걱정하고 고민하고 있다면 이런 식의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 보편 타당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현행 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한 다음, 그래도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면 다른 방향으로 연구를 해야 한다고 본다. 결국 이 설명 자료를 면밀히 살펴보면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내용보다는 개인의 사견이 많이 포함되었다는 생각이다. 교육계에 큰 파장을 가져올 법안이 개인의 의견으로 개정될 수도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려 하지 말고 법안제출 자체를 취소하고 좀더 많은 연구와 검토를 거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교육부총리가 ‘교원평가 시범사업을 학교 교육력 제고 시범 사업으로 명칭을 바꾸어 교원평가와 함께 교원연수, 연구 활성화 방안, 교수 지도력 제고 방안 등과 교원의 수업시수 경감, 업무 경감, 인사 승진제도 개선, 양성 연수 제도 개선 방안 등을 함께 마련하기로 했다.’는 서신을 교사들에게 이메일로 보냈나보다. 내용이 궁금해 메일이 올 때를 기다려보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사람 봐가며 골라서 보냈거나 미운 털이 박힌 것도 아닐 텐데 교사인 아내도 메일을 받지 못했단다. 대신 청와대 국정홍보처로부터 ‘청와대브리핑 진심을 전하려는 작은 노력’이라는 이메일을 어제 받았다. 내용인즉 대통령은 연설문이 준비된 행사에서 연설문을 낭독하지 않고 ‘현장연설’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단다.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세계 줄기세포 허브 개소식에서는 “이럴 땐 박수 한 번 쳐주십시오.”라는 말로 좌중에 박수가 터지게 했고, 경찰의 날에는 기념식장인 경찰청 마당에 비가 내리자 “제가 7분짜리 치사를 준비했습니다만, 지금 얇은 간이 우의를 가지고 7분 견디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지 않습니다. 줄여서 말씀드리겠습니다.”라며 3분만에 끝냈고,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에서는 “선수 여러분들이 다 서 있으니까 오래하면 다리 아프겠다.”며 미리 배포한 연설문을 읽지 않고 2분여의 짧은 연설로 대신했다는 것이다. 특히 ‘현장의 말’로 진심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축사에 관한 얘기다. 위에 있는 대로 대통령은 축사에서마저 국민들을 생각하는데 국민들이 이해해주지 않아 답답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진심을 알리기 위해 ‘진심을 전하려는 작은 노력’이라는 이메일을 보낸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지금 교육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지? 언론매체까지 나서 교원 때리기를 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SBS가 메인 뉴스시간을 이용해 교원들을 왜곡하고 있는데도 항의 한 번 안하는 교육부총리를 교원들이 믿고 따라야 하는지? 짜여진 각본대로 교원평가를 하기 위해 국민들의 요구사항인양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데도 교원들이 가만히 있어야 하는지? 법무부장관의 불구속 수사 지휘 파문과 관련해 사표를 제출한 검찰총장을 욕하는 국민들이 몇이나 되는가? 제 식구 감싸기를 해달라는 게 아니다. 최소한 교육계 수장으로서의 역할은 해달라는 것이다. 취임 이후 지금까지 진짜 표시나게 교원 길들이기를 하고 있어 답답하다는 것이다. 교육부의 계획대로라면 시ㆍ도 교육청별 초ㆍ중ㆍ고 1개교씩 모두 48개교를 시범학교로 지정하고, 선정된 시범학교에는 2천만원 가량의 운영비가 지원되며, 참여 교원에 대해서는 교육공무원승진규정에 의거 월 0.021점의 승진가산점을 부여한다고 한다. 교원평가 제도도 문제지만 지금 일선에서 거부하는 것은 교육부총리의 태도다. 가장이 돈만 많이 벌어다줬다고 제 역할을 다한 것인가? 사회로부터 가족을 보호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족들을 다독거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잘못도 없이 죽도록 얻어맞고 있는 가족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거나, 권위를 내세워 이것저것 요구만 하면서 기를 죽이는 가장을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국민들이 진심을 알아주지 않아 답답해하는 대통령만이라도 제발 알아주기 바란다. 지금 교원들이 하는 일련의 일들은 제 몫을 챙기기 위한 발버둥이나, 밥그릇을 지키려는 자구책이 아니다. 그렇다고 학부모 단체나 시민연대에서 비난하는 집단이기주의도 아니다.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해온 교원들이 교육 분란을 막기 위해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오로지 교원들의 진심을 전하려는 작은 노력일 뿐이다.
요즘 지면 신문이건 인테넷 매체건 간에 신문 보는 게 두렵다. 날만 새면 '교원평가'로 시끌시끌하다. 세간에서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라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을 보는 눈들이 곱지 않다. 심지어 철밥통 운운하는 지경까지 왔으니 더 말해서 뭣하랴. 나는 그 비극의 시작을 홀대받는 교육부 인사 정책에서 찾고 싶다. 교단에 서 본 적이 없는 정치가들이 교육부 수장이 되는 현실에서 출발하여 경제 논리로 풀어가는 모양새를 지닌 현재와 같은 체제에서는 교육문제는 늘 '봉'이다. 많은 사람들은 선생들이 자기 밥그릇을 지키려고 '무조건' 교원평가를 반대한다고 오해를 하고 있다. 교원평가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할 준비와 절차, 과정상의 문제, 즉 선결 문제를 해결하고 교원평가를 하자는 교직단체의 목소리는 이미 함몰되어 버리고 오로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고 두들기는 형국이다. 교육부 수장이 바뀔 때마다 검증되지 않은 정책을 언론에 흘려서 여론을 호도한 다음, 제 식구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해온 과거의 관행을 되풀이하는 모습 앞에서 길거리로 내몰린 채, 마치 주홍글씨를 새긴 선생님 대접을 받게 하는 이 나라의 행태 앞에서 서글픔을 금할 수 없다. 교원평가를 하지 말자가 아니라, 타당한 절차를 생략하지 말고 제대로 하자는 목소리를 들어줄 귀가 없다. 하다못해 학교에서 실시하는 학력평가에도 학기 초부터 평가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인 평가 계획과 평가 방법을 명시하여 갑작스럽게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예고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 만 교사들을 평가하는 정책을 충분히 검토하고 그 진정성을 알리고 동의를 받음도 없이 법안 처리하듯이 밀어붙이기로 나가는 현재와 같은 오류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에도 선생들은 매년 타의에 의해 평가를 받아 왔고 그 평가 자체에 익숙하다. 다만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는 관리자의 눈이 평가 기준에 부합한 안경을 끼었기를 바라면서 소신껏 살아가는 대부분의 선생님들. 모르는 사람들은 당당하면 왜 평가받기를 싫어하냐고 말한다. 열심히 일하는 교사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열심히 일한다는 기준은 무엇이며 그것이 인기평가가 아니라고 어찌 말할 수 있을까? 가치 판단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어린 아이들과 감정의 기복이 심한 청소년이 그들 앞에 서 있는 담임을 평가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연출될 아찔함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 훈계하고 진솔할 수 있는 스승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학부모들이 하는 평가도 마찬가지다. 담임에 대한 한두 가지 정보로, 한 두 번의 수업으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잣대의 자격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굳이 평가를 한다면 동료에 의한 다면평가가 더 낫다고 본다. 다면평가 역시 일반 회사에서 많은 문제점을 도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상대방의 평가를 낮게 해야 상대적으로 내가 올라가는 다면평가 때문에 직원 간에 반목이 생기고 불신이 깊어진다고 한다. 어떤 제도라도 장점과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교사들은 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 때 양심의 가책을 받거나 자정 노력을 기울이는 정도가 다르다는 뜻이다. 제자들에게 날마다 바르게살기를 가르치는 직업의 특성상 세상의 어느 집단보다 흉악하거나 몰지각한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문제를 지닌 교사나 지탄받는 교사가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물건도 대량생산 체제가 되면 확률적으로 불량품이 나오듯 교사 집단에도 원하지 않거나 본의 아니게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발생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부적격 교사 퇴출방안' 시행을 앞두고 있다. 자정 노력에 합의한 만큼 부적격 교원 퇴출 방안도 엄밀히 말하면 평가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교단에 평가하지 않으면 제대로 할 일을 못하는 교사가 많은 것처럼 비춰지게 하는 것 같아 속이 상한다. 교사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완벽하진 못하지만 부단히 노력하며 애쓰는 직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교사들에겐 자존감이 중요하다. 열심히 가르치고 제자를 사랑하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대다수의 선생님들은 지금 앞뒤에서 날아오는 돌을 막을 겨를도 없이 뭇매를 맞고 있다. 교단에 설 자격을 인정해 준 국가로부터 받는 서러움이 무엇보다 크다. 온통 신문마다 선생님들 질타하는 목소리가 난무한다. 우리 문화는 칭찬에 인색한 문화임에 비추어 기회는 이때라며 후려치고 때리는 목소리들이 너무 커서 고막이 터질 지경이다. 어버이를 성토하는 자식을 둔 부모의 참담한 심정처럼 자기 선생님을 평가하는 학생 앞에 서는 허물어지는 교사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세울 수 있을까? 세상은 지금 자기를 위해 염려하고 아껴주는 스승을 저울질하라고 가르치는 형국이 되었다. 교원평가의 목적이 이 나라의 밝은 미래를 위해 우리들의 자녀들을 책임지는 우수한 선생님들을 많이 확보하고자 하는 선의의 목적 앞에 아무도 평가 자체를 반대하는 선생님은 없다고 단언한다. 학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경우가 많이 존재하는 특별한 곳이다. 평가의 잣대를 무엇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는 의도한 바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교원평가에 대한 확실한 준거를 대야 한다. 말없이 열심히 일하는 선생님들을 뒤흔들어 놓은 저의를 분명히 해야 한다. 구조조정을 위한 물밑 작업은 아닌지, 특정 정치지도자의 정치용 몸짓은 아닌지 생각해 보고 먼저 교직사회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양한 토론회나 선진 여러 나라의 것을 답습하는 차원이 아닌, 우리만의 철학과 논리를 지닌 탄탄한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한 그루 나무라고 생각한다. 나무마다 수종이 다르듯 똑같은 교대와 사대를 나왔어도 그의 성장 과정과 가정환경 학문의 깊이, 자기 성찰을 위한 노력, 꾸준한 연수 의지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교직의 특성상 하루 이틀에 나타나지 않는 교육 효과도 그렇고 가르치는 방식이나 학부모를 대하는 방법도 천양지차이다. 눈에 보이는 학력 점수에 신경을 쓰는 선생님이 있는 가하면 보이지 않는 인성면에 더 치중하는 선생님, 멀리 내다보고 인간적인 충고를 아끼지 않는 선생님 등 그 모습도 매우 다양하다. 때로는 교실 수업보다는 관리자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느라 아이들보다 일을 우선시하여 다른 선생님들보다 훨씬 인정받는 분들이 있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평생을 교실에서 분필을 만지며 제자들과 동고동락한 노스승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제자들이 그 스승의 숨겨진 진정성을 알기 위해서는 시간을 많이 보낸 후라야 가능한 경우가 허다하다. '사랑의 매'도 허락되지 않는 현실에서 아차하면 선생님을 고발하는 교실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이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내몰릴 수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위축될 교단의 모습. 한 그루 나무처럼 심어진 그 자리에서 오늘도 말없이 마음고생 몸고생으로 지쳐 있는 선생님들을 한 순간에 철밥통으로, 평가조차 거부하는 고지식한 지식인 집단으로 언론의 뭇매를 맞게 하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이제 아버지의 권위가 사라진 시대에서 선생님의 자존심을 접고 직업인으로 살아야 함을 생각한다. 거두절미하고 내막은 잘 모르는 주변 사람들이 교원평가를 반대하는 모습만 생각하며 모든 선생님들을 향해 삿대질하게 만든 정부와 언론이 원망스럽다. 이 땅의 선생님들은 평가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평가를 받지 않은 교사는 단 한 사람도 없다. 말없이 그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것으로 진실은 언제가 밝혀지리라는 순박한 믿음으로 오늘도 아이들 앞에서 무거운 마음으로 수업을 하였을 선생님들의 처진 어깨를 다독일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는가? '교사를 평가하려면 교사보다 더 나은, 승복할 수 있는 단체나, 사람, 정책으로 교사들의 동의를 구한 다음 칼을 들이대라!'고 의사 면허증이 없는 의사에게 대 수술을 맡길 수 없듯이 의대 공부를 하지 않은, 교육자의 길을 걷지 않은 정치가에게 재단 당하고 싶지 않음을! 우리 선생님들이 중병에 걸렸다면 수술받기를 두려워하지 않겠지만 검증받은 의사에게 수술 받게 해달라고! 선생님들은 검증받은 시스템을 원하고 있을 뿐이다. 제자들을 위한다는 명분 앞에 아무도 반기를 들 사람이 없음을! 정부는 이 땅의 선생님들을 합리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대책을 제시하고 상처받은 마음들을 다독일 수 있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준비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힘든 과정을 마치고 몇 년씩 임용 시험을 준비하여 교단에 선 우수한 선생님들에게 자괴감을 안긴 이번 사태의 책임을 여론몰이의 방법으로 교단에 떠넘기지 말 것이며, 국가에서 인정해 준 교원자격증의 의미를 되짚어보며 국가발전의 한 축을 이루어 온 이 땅의 선생님들의 숨은 노력마저 뭉개지 않았으면 한다. 어버이 없는 자식이 어디 있으며, 가르침을 받지 않고 어른이 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워서 침을 뱉으면 자기 얼굴로 떨어지는 것처럼, 선생님을 경시하는 풍조는 제자에게도 국가에게도 이익이 없음을 깊이 숙고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어느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애달픈 사연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까마는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요즘은 수난의 시대요, 참으로 교직을 가진 것을 후회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어 가고 있다. 요즘 날마다 교육에 대해서 비꼬고 욕하며 떠들어대는 모든 언론들에게 빈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은 나날이다. SBS에서는 연일 교사들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켜서 과연 무엇을 얻어내자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그 연일 계속 되는 프로에 기분이 상해서 아예 SBS 채널을 돌리고 싶지 조차 않다. 물론 여러 언론기관에서 다들 한 마디씩 거들어 가면서 교직자들을 범죄자 취급을 하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온다. 사실 교직이라는 것이 외부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한가하고, 놀고먹는 직장이 아니라는 말을 좀 하려고 한다. 특히 초등학교교사들의 경우 정말 교과연구도 하지 않고 책이 필요 없이 그냥 놀고먹을 수 있는지 한번 얘기를 해보자. 초등학교 교과서가 7-10여 가지나 된다는 사실을 알고 떠드는 것인지? 그리고 거의 매년 다른 학년으로 담임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은 아는 것인지? 그렇다면 적어도 교과서도 없이 수업을 할 수 있다는 말은 해당이 되지도 않는 말이다. 거기다가 넉 달이 방학이란다. 물론 1년에 수업일수가 220일이니까 숫자적으로는 그러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요즘 토요휴업을 하는 직장인 경우를 따지면 다른 직장의 근무일수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적어도 토, 일요일만도 105일 안팎에다가 휴일, 년 월차 휴가가 있으며, 여름 휴가 기간이 있으면 합계 120일 이상은 휴일, 휴가가 있다. 그렇지만 교사들은 220일 이외에도 방학중에 근무일이 10일 앞팎이 되고 거기다가 매번 방학이면 적어도 10일 정도의 연수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220 +10 +20만 따져도 250일 정도로 실제로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과 차가 나지 않는다. 학교도 토요 휴무가 있지 않느냐고 하자, 그게 현재 8일 정도이니 결국 그 날을 빼어도 240일은 근무를 한다. 결코 다른 직장 보다 훨씬 더 많이 쉰다는 말은 잘 못 된 계산이다. 별 차이가 없다. 다만 방학이라는 것이 자녀들이 학교를 안가니까 교사들은 모두 놀고먹는 기간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일 뿐이다. 더구나 관리직이라는 교장, 교감은 방학 동안에 아무리 쉬고 싶어도 적어도 절반은 학교에 나와야 하는 것이니까, 오히려 1년 근무일수가 280일을 넘는 것이 정상이다. 그 다음으로 학교교사의 잡무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교사가 학습시간만이 근무시간인 것은 결코 아니다. 요즘 교사들에게 한 번 확인해 보라 개개인에게 돌아오는 공문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오늘 현재 4,000건이 넘는 공문이 왔다. 그 외에도 또 다른 협조니 공지 등의 서류들이 있고, 보고 공문도 있으니 적어도 5,000건은 처리를 하는 셈이었다. 이것이 교직원 20명도 안 되는 학교의 현실이니 1인당 250건이 넘는 것이다. 물론 좀 더 업무량이 많은 분야를 담당한 사람은 1년에 500건도 훨씬 넘어서 1,000건에 가까운 사람도 몇 명이 된다. 하루에 두건이상이라는 말이다. 그것뿐인가 생활지도를 해야 하니까 쉴 시간도 가만히 앉아서 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떠드는 아이, 장난하는 아이, 다친 아이, 아픈 아이 모두 내 자식처럼 살피고 다독여 주어야 한다. 사실 이런 저린 일에 쫓기다보면 정말이지 교과연구에 써야할 시간을 빼앗기기 일수이다. 이런 속에서 걸핏하면 요즘처럼 '죽일 놈'으로 몰아가는 언론의 횡포를 보고 있노라면 좌절하고, 정말 기가 막혀서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고달픈 인생들이다. 물론 전국에 35만이 넘어서 약40만 명에 가까운 교사가 있다. 또한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를 하기도 하고, 잘 못을 저지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요즘 언론이나 국민들은 교사에게 완전한 인간을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어디 인간이 완전할 수 있는가? 완전한 인간은 있을 수도 없고 완전한 인간은 오직 신뿐이다. 그런데 일부 혹은 어느 한 사람의 실수나 잘못을 모든 교사가 그런 것처럼 확대해서 덮어씌우고 매도하려고만 덤비는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그런 언론사는 과연 완전하고 이런 조그만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경우가 전혀 없다는 것인가? 난 요즘도 가끔 신문사라는 전화를 받는다. **기자회 니, 기자**를 파는 사람들이 무슨 연감이고 사달라고 사정을 하고, 무슨 보고서, 특별한 활동을 교육용으로 엮은 책 등을 팔아달라고 조른다. 솔직히 지금 그런 식으로 사정을 한다고는 하지만, 학교에서는 그것이 일종의 압력으로 들리고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요즘 학교에서 그런 연감 같은 것을 사서 실제로 활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어쩔 수 없어서 사 두고 그냥 썩히는 책을 매년 몇 권씩 사는 경우도 있다. 신문사에서 전화한 분은 기분이 나쁘겠지만 학교에서는 요즘 예산을 함부로 쓸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도서구입도 교장이 그냥 마음대로 하기보다는 도서구입 전에 선정위원회에서 어느 정도 선정을 해주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어린이용이나 학습자료로 활용가치가 별로 없는 것들은 살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전화를 해서 사달라고 하면 어쩌라는 말인가? 물론 모든 신문사에서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차마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듯이 요즘 교사들이 교사평가라는 문제 때문에 너무 심각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몰아 부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차라리 밀고 나가려면 그냥 밀고 나가야지 이처럼 교사들을 몹쓸 사람을 만들어 놓고서 그러니까 평가를 해야 한다? 이렇게 몰고 가니까 일반 교사들은 이것이 어떤 음모성 정책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되고 더욱 강력한 반발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교육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여기서 하나 더 '교육은 교사의 사기에 따라 좌우된다'라고 주장하고 싶다. 아무리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교사가 하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의욕적으로 나서면 반드시 어느 정도의 성과를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당장 현재의 우리 학교의 경우를 보자. 전교생 260명이 안 되는 조그만 학교이다. 그 속에서 선수를 뽑아서 육상부를 키고 있다. 육상부가 조직 된지 만 1년하고 6개월 밖에 안 되었지만, 전국 소년체전에 이미 2명의 선수가 참가하였었다. 경기도내 약 1,000개 학교 중에서 한 학교에 2명 이상의 육상 선수가 소년체전에 내보낸 경우는 5개교를 넘지 않을 것이다. 아깝게 4등과 6등을 하였지만, 시내에서는 69개 학교에서 전체 3등을 할 정도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시내에서 학생수로 10배가 넘는 학교들을 이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은 오직 체육을 맡고 있는 이정환 선생님의 희생적인 노력의 결과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꾸준히 방학도 쉬지 않고 어린이들과 한데 어울려서 노력한 결과이다. 전국 육상연맹의 기록표에 보면 전국의 베스트10의 기록을 가진 어린이들 속에 이 조그만 학교의 어린이가 4명씩이나 포함이 되어 있다. 부천에서 11월 2-4일 열린 내년소년체전 1차 선발전에서는 금메달 3개 은메달3개 동메달 1개라는 성적으로 경기도 전체에서 1,2위에 오를 정도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렇게 교사가 열성을 가지고 노력을 해야만 좋은 결과를 얻어 낼 수 있다. 만약 이렇게 열성을 가진 사람에게 육상을 하지 못하게 선수선발에 부정이 있느니, 선수를 구타했느니 하고 문제를 제기하여 교사의 기를 죽여 놓는다면 과연 이런 성적을 거둘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 학교에서는 육상부에 대해서 특별히 지원을 하거나 도와줄 능력이 없다. 학교 예산도 그렇지만, 학구 사정이 더욱 그렇다. 택지개발지역으로 지정이 되어서 년말까지 약 절반 가까운 세대가 이주를 해야하는 곳이다. 주민들도 이주를 앞두고 힘겨운 상태이고 학교도 계속 줄어드는 학생수로 선수 선발을 할 어린이가 없어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나 육상 담당 선생님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다. 오직 교사의 사기와 열성만으로 이루어낸 좋은 성적들은 1년 내내 학교 교문에 축하 현수막을 걸어 놓게 만들고 있다. 육상부 우승, 소년체전 참가, 과학발명부 부총리상 수상, 이런 멋진 성과를 얻은 것은 학교에서 지원을 해주거나 학부모가 뒷받침을 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오직 담당교사의 열성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신문 방송, 심지어는 정부에서까지 [교사들의 사기 죽이기 작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교사들을 죽일 놈들로 만들고, 교사들이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게 만들어야만 대한민국의 교육이 잘 된다고 생각하는가? 교사 평가를 하더라도 정당하게 해야할 이유를 설득하고 그것이 옳은 일이라면 과감하게 밀어붙이면 된다. 마녀 사냥식의 언론플레이로 싹을 밟아 버리고서 교육이라는 큰 나무를 가꾸겠다는 어리석은 짓은 말아야 한다. 요즘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자녀에게 '기죽이지 말라'고 해서 교사들에게도 체벌을 못하게 하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그러면서 교사들에게는 기를 죽이고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서 교사평가라는 코뚜레를 억지로 꿰어 놓겠다고 덤비는 것인가? 과연 그것이 진정 교육을 바로 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기사는 중앙일보 불로그에도 올라있습니다.
경기도교육청(교육감 김진춘)과 경기도는 2005년 510억원 보다 254억원이 증가한 764억원 규모의 2006년 교육협력 사업계획을 9일 발표했다. 이번 협력사업은 외국어 교육에 대한 지원 강화, 도농간의 교육격차 완화, 우수 과학인재 육성, 교육복지 강화 등에 중점을 둔 7개 분야 16개 사업에 중점 투자된다. 농어촌 교육여건 개선을 위한 ‘농어촌지역 소규모 학교 살리기 사업’은 추가로 200억원을 투자해 지원 학교를 50개교에서 100개교로 대폭 늘렸다. 그동안 추가 확대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농어촌 중소도시 좋은 학교 만들기’ 사업에 는 115억원을 투자해 지난해 23개교에서 22개교로 지원 학교를 확대한다. 외국어 교육 활성화를 위해서는 총 8억원을 들여 중등영어교사 350여명의 연수과정을 신설하고, 300개 초등학교와, 90개 중등학교에 원어민 보조교사를 배치하기로 했다. 또 우수 과학 영재의 육성 및 유출을 막기 위해 경기과학고 기숙사 및 실습동 현대화 등에 45억을 투자하고, 과학 교육 선도 학교 2개교에 6억원을 지원한다. 올해에는 지난해에 비해 실업계·특성화고 육성 부문 지원이 강화 됐다. 특성화된 전문기술인 육성을 위해 특성화고로 개편하는 2개 실업계고에 총 20억원을 지원하며, 특성화고 산학협동에 2억5천만원, 우수 공고생 400명에게 총 6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한다. 또 교육복지 강화를 위해 저소득층자녀 11000명에게 무상급식비를 총 43억원 지원한다. 학교도서관 활성화를 위해서는 300개교에 3억 7천만원의 사서 인건비를 지원하며, 400개교의 도서구입비로 2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경기도와의 교육협력 사업은 지난 2003년 시작됐으며 2005년까지 총 2640억원의 사업비가 투자됐다. 이 중 경기도가 1300억원, 31개 시·군이 550억원, 도교육청이 762억원을 투자했다.
전교생이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이색 연극축제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경남도교육청에서 연극체험 시범학교로 지정된 거창 가조초등학교(교장 이권국)는 9일 오전 9시30분부터 3시간30분간 교내 교실 등에 마련된 무대에서 학예발표회를 겸한 연극축제를 펼쳤다. 이날 공연된 8편의 연극작품은 1~6학년 학급당 1편씩 준비한 것으로 200여명의 전교 학생 대부분이 출연해 지난 1년간 갈고 닦은 연기를 선 보였다. 햇병아리인 1학년1반의 '강아지 똥'이 눈길을 끌었고 '합창(2-2)', '신별주부전(3-1)', '춘향전(4-1)', '단비야 꽃비야(5-1)', 목숨보다 귀한 우정(6-2)' 에 이어 학부모들이 참여한 '어느 산골소년의 슬픈 사랑얘기' 등도 공연됐다. 무대에 선 아이들은 아직은 어설픈 연기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 친구들과 학부모들로 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다양한 교육연극 프로그램 적용을 통한 창의적인 자기표현력 신장'이란 주제로 열린 연극축제는 친구간 경쟁보다는 잔치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으며 기성 연극인 뺨치는 연기도 나와 지역 연극계 관계자의 주목을 받았다. 목숨보다 귀한 우정에서 좋은 연기를 선 보인 강중표(13)군은 "연극을 하면서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겼다"며 "연극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연극인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연극수업 지도를 맡고 있는 유미래 교사는 "연극을 통해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스승이 돼 배우고 가르치는 것 같다"며 "얼마되지 않은 기간이지만 전교생이 연극을 하면서 문화와 예술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능력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권국 교장은 "학생들이 계발활동 등 교육과정을 통해 익혀 온 다양한 소질과 끼를 표현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려 연극축제를 열었다"며 "더 질 높은 프로그램으로 이 같은 축제를 계속 열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거창교육청은 도내 초등학교로서는 처음 열린 가조초교의 연극축제를 널리 알리기 위해 '초등연극놀이'라는 책자를 발간했으며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원회는 무대장치와 조명을 지원했다.
11월 5일 17시 30분. 전라남도 곡성군 금성면 곡성댐 인근의 송학민속체험마을 마당에는 땅거미가 지는 어둠 속에 피어오르는 모닥불 연기가 퍼지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환담이 왁자지껄하였다. 보성남초등학교 30회 졸업생들의 졸업 30주년 기념 동창회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넓다란 마당 가운데에 자리 잡은 다섯 개의 의자에는 흰머리가 희끗거리는 다섯 명의 선생님들이 자리 잡았다. "이제부터 보성남 30회 졸업생의 졸업 30주년 기념 동창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자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오늘 바쁘신데도 이 자리에 참석하여 주신 다섯 분의 은사님들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일동 차렷. 경례!" 회장의 구령이 떨어지자 줄을 서 있던 50여명의 제자들은 그대로 넙죽 엎드려서 큰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은사 자격으로 참석한 나는 그만 너무 미안하고 감격스러워서 의자에 앉은 채 잔뜩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받았다. 나는 이 제자들의 은사 자격으로 앞자리에 앉아서 인사를 받으면서 생각을 해보았다. 무던히도 속을 썩히던 제자들 ! 그래서 엄청나게 매도 맞았을 것이고, 꾸지람도 많이들 들었을 텐데 그래도 잊지 않고 찾아주는 고마운 제자들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내가 이 아이들을 만난 것은 1972년 12월5일이었다. 전임지 득량서초등학교에서 6학년 담임을 하여서 졸업사진도 찍고 중학교 입시원서도 다 마감을 해놓은 상태에서 난데없이 전보발령이 난 것이었다. 보성남초등학교가 종합시범학교인데 공석이 있어서 필요한 요원으로 발탁되어 데려가는 것이란다. 그렇게 만난 이 아이들은 4학년 1반이었다. 53명의 어린이가 있는데 부임 첫날 교실에 들어서니 아이들의 모습은 산골 나무꾼이나 진배없을 만큼 너저분하고 소란스럽기 그지없는 학급이었다. 그 동안 담임이 아파서 학급을 두 달 가까이 비워둔 채였기에 엉망이라고밖에 말이 안나오는 것이었다. 53명 중에서 50명의 손등이 갈라져 피가 베어 나올 지경이고 교실은 응달이어서 종일 햇빛이라고는 단 10분도 들지 않는 지하실 같은 곳이었다. 이런 아이들을 맡아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우선 학급아이들의 용의를 단정하게 만들고 발표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만들어 가면서 차츰 정상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5학년에 진급이 되어야 하는데, 교장선생님은 그 아이들을 그대로 데리고 올라가라는 명령이었다. 너무 소잡한 아이들이니 1년 동안 잘 좀 보살펴 주어야 하니 맡아라는 것인데 거절을 할 수도 없었다. 1년 동안 아이들과의 생활은 그런 대로 잘 적응하여 주었고 아이들도 제법 정착이 되었다. 그러니까 6학년도 그대로 데리고 가라는 것이다. 할 수 없이 6학년 담임까지 하게 되었다. 그, 때, 담임하는 조건으로 내게 학금 임원을 조절하게 해 달라고 해서 승낙을 받았다. 그것은 바로 말썽을 피우고 있던 종수를 구제해 보려는 욕심이었다. 결국은 그 덕분에 말썽을 피우라면 더 이상 레퍼토리가 없을 만큼 다양한 말썽꾼 이 반장으로 거듭나고 공부를 열심히 하여 우수학생으로 발돋음을 하게 만들어 놓았었지. 지금도 생각이 날 것이다. 제자들 중에서 학급에 있는 만화를 가져다가 만화방에 주고 바꾸어 보았다가 반장에게 걸려서 모두 다 회수 당하고 혼이 났던 기억들을 가진 아이들이 꽤나 많다. 그 말썽쟁이가 해 놓은 업적이었다. 이렇게 해서 2년 3개월 동안이나 담임을 했었던 제자들이 벌써 졸업을 한 지 30주년을 맞았고, 이제 45세 안팎의 중년이 되어서 제법 중후한 중년 냄새를 풍기는 멋진 아저씨, 아줌마가 되어서 나타난 것이다. 지난 여름 방학의 끝 무렵에 퇴직 예정자 교육을 받으면서 이제 내 평생을 헌신해 온 직장에서 마지막 얼마 남은 기간 동안 과연 무엇을 해야 하며 퇴직 후엔 무엇을 하는 것이 보람 있는 삶이 될 것인가 고민하는 기간이 되어야겠다고 결심을 하였다. 나이 20세에 발 디딘 교육자로서의 길을 오직 한 달음으로 달려온 42년. 그 동안 내가 직접 담임을 했던 제자들만도 약 1,000여명이나 된다. 그 많은 제자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를 원망하는 제자는 몇 명이나 될까? 한 명? 열 명? 백 명? 물론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결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했던 순간적인 일도 그 아이에게는 말할 수 없는 큰 상처로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정성을 들인다고 했는데 그 아이가 어떤 오해를 가질 수도 있다. 더구나 나는 완전한 인간일 수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어찌 실수가 없었겠는가? 그리고, 그 많은 세월을 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감정을 앞세웠던 적은 얼마나 많았겠는가? 나는 지금도 가슴이 끔찍하도록 아픈 기억이 지금은 내 처남이 되어 있는 아이를 6학년 담임을 하면서 순전히 나의 확인 착오로 죄 없이 구타했던 일을 늘 머리에서 떠날 수 없는 실수로 이야기하곤 한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얼마나 많은 실수로 가슴에 멍이 들게 했겠는가 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수없이 많은 시간을 수업하면서 잘못 가르친 것은 얼마나 많으며 교사라는 신분으로는 어쩔 수 없는 정치 상황 속에서 그릇된 지식을 전달하던 기억은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 나는 이 제자들과 같이 수많은 작업을 하여야 했었고, 정부 방침에 따라 가시가 찌르는 아카시아 씨앗을 따러 다녀야 했고, 무더위가 가시지 않은 풀밭에서 손에 잡히지도 않는 잔디씨를 봉투 하나 가득 따 모으느라 진땀을 흘리기도 하였었다. 어느 날에는 잔디씨는 못 따고 연못 속에 들어가서 연밥을 몇 되는 되도록 따 가지고 온 적도 있었다. 이런 제자들이 이제 중년이 되었다. 이쯤이면 선생님이 왜 그런 일을 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이해는 해줄 수 있으리라 싶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제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고달프게 일(사역)을 시켜야 했던 담임을 이해해 주고 오히려 추억거리로 생각해 주는 제자들이 대견스럽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밤늦도록 어울려서 지난날을 되새김질하는 제자들과 어울려서 지난날을 얘기하는 것도 또한 나의 인간 수업이라는 생각으로 무려 네 시간을 그대로 함께 하였다. 멋진 추억을 간직한 채 흩어지는 제자들에게 이제는 더욱 열심히 그리고 자신감을 가지고 이 사회에서 마음껏 날개를 펴라는 부탁을 주고 싶었다.
교원평가제가 싸늘한 겨울 날씨를 더욱 차갑게 하고 있다. 학교의 개혁을 외치고 나선 김대중 정부시절부터 학교를 온통 벌집 쑤시듯 하더니, 이제는 교사를 평가해야 하겠다고 아우성이다. 물론 교원평가제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해야 한다. 하지만 교원평가제가 이미 대학에서 시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 결과가 성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지 따져볼 일이다. 대학 교수가 교원평가제로 인해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평가제의 실효성이 유야무야 형식으로 흘러가고 있는 현실에서 굳이 교원평가제를 강행하겠다는 저의는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교원평가제를 시행하는 단계도 소리 없이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 새롭게 채용되는 교원부터 계약제를 시행하는 방안이 우선 고려된다면, 그것이 바로 신임 교사에게는 학생에게 온갖 열정을 다하는 첩경이 됨은 현장에 있는 교원은 느낄 것이다. 교사가 어느 한 순간에 경제적인 이익을 창출하는 자도 아니다. 교육은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게 하고 그에 따라 미래의 삶을 준비하는 단계를 거쳐 점입가경의 길을 걷게 하는 데 있다. 교사를 평가한다고 하루아침에 교사의 태도가 달라져 학교에서 새로운 인재가 돌출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교사가 평가를 잘못 받았다고 좌천시키는 방안도 애매하다. 섬으로 보내면 섬 점수를 획득하는 경우가 생겨 오히려 새옹지마가 된다. 교사가 평가를 잘못 받으면 승진에 있어 불이익을 준다고 하더라도 평가의 방법이 객관성을 띠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학에서 강사가 학생들에게 F학점을 주지 않고 후한 점수를 주어 평가에 오히려 역행하는 사실이 있다는 것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대학에서 정교수의 강의가 폐강이 되었을 때, 교수에게 어떤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고등학교에서 교장이 평가를 잘못 받았다고 해서 교장이 교감이 되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교원평가! 그렇게 말도 많고 아우성치는 일을 시행하면서 왜 교사를 선발할 때 계약제로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어느 한 교원단체가 반대한다고 해서 안 되고, 어느 교원단체가 찬성한다고 해서 밀어 붙이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계약제를 시행한 서구의 제도도 한번쯤은 학교 교원들에게 계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교원평가를 시행하는 주 목적이 과연 교사들의 자질을 함양하기 위한 것인가? 만약 교사들의 자질을 함양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면 왜 선발할 때 선발고사를 강도 높게 하지 않고 교사로서 자격을 인정하는 시험에 합격시켜 놓고 지금에 와서 교사로서 자질이 부족하다 실력이 없다고 하면 어찌하겠다는 것인가? 교사를 교사답게 만드는 길은 교사를 교사답게 대우하는 환경부터 바꾸어 놓아야 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다가 과로로 쓰러져 죽어가는 학교 현장을 목격하면서도 학생지도에 부실하다 실력이 없다고 하는 상투적인 용어를 남발하는 언론부터 바로잡아 가는 교육인적자원부의 선구자적 자세가 엿보여야 한다. 어느 e-리포터의 말대로 “신문보기가 두렵다”고 한 이유를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은 많은 교육신문의 현장 리포터들이 매일매일 제시하는 학교 현장의 목소리에 한 번쯤은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본관과 과학관 사이에 위치한 잔디밭은 우리 학교 구성원 모두의 사랑을 받는 공간입니다. 봄이면 파란 싹으로 생명의 정취를 불어넣고 여름이면 푸른 비단으로 장식하여 뜨거운 태양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며 가을이면 병아리처럼 노란 옷으로 갈아입어 보는 이의 마음을 여유롭게 하고 겨울이면 푸근한 양탄자가 되어 추위를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답니다. 그래서 1000명 가까운 학생들이 생활하고 있지만 잔디밭에는 휴지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을 정도로 언제나 청결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점심식사를 마치고 잔디밭을 보면서 본관으로 오는데, 눈에 거슬리는 물건이 보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누군가가 먹고 머린 음료수 캔이었습니다. 물론 본의는 아니었겠으나 막 노란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잔디가 싫어할 것은 분명합니다. 버려진 양심을 주워들고 나오는 마음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답니다. 아이들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잘못된 판단이나 행동을 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기본적 질서를 지킬 수 있도록 가르치는 역할은 교사의 몫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