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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가고 싶고 재미 있고 울림이 있는’ 가재울고(교장 선영규) 개교식이 25일 서울 서대문구 본교 강당에서 문용린 서울시교육감과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을 비롯한 지역 관계자와 학부모, 학생 등 400여 명이참석한 가운데 진행 됐다. 문용린 교육감은 축사를 통해 “과감한 도전과 용기가 꿈으로 이루어지는 학교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선진형 교과교실제와 특성화된 수업 환경을 통해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학교가 늘어나도록 힘쓸 것이라고 밝히고, 다음 달에는 가재울중(교장 장경선), 세곡중(교장 심갑섭), 천왕중(교장 김영길)도 개교식을 갖는다고 전했다. 가재울고는 2012년 설립 인가를 받아 올해 3월 제1회 입학식을 통해 289명의 학생이 등록된 서대문구 유일의 일반계공립고다.
유해성 우려는 두려움 때문 수업 경험 공유부터 시작하면 돼 “스마트교육은 대한민국이 세계교육을 향해 던진 화두입니다. 현재로서는 미지의 세계지만 분명히 가야 할 길이며, 먼저 가야 할 길입니다.” 20일 스마트교육학회 초대회장에 선출된 천세영(57·사진) 충남대 교육대학원장은 스마트교육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드러냈다. 그는 “교사와 학생이 디지털기기를 활용해 글자만이 아닌 다양한 방식을 통해 소통할 때 새로운 교육생태계가, 세계 최초의 스마트교육 비전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밝혔다. 스마트교육으로 인한 중독이나 전자파의 유해성을 걱정하는 목소리에 대해 “새로운 기술이 도입될 때마다 유해성 문제는 제기됐다”며 우려는 우려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또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정책도 함께 한다면 개인마다 기기를 갖게 될 날이 멀지 않아 계층 간 격차로 인한 불평등 문제도 없을 것”이라며 “우려만 하느라 준비하지 않고 혼란을 맞게 되면 준비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보다 큰 비용이 소모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정부에서 시작된 스마트교육정책이 현 정부에서도 이어질 것”이라며 “교육정책 중 참고서가 필요 없는 교과서 완결형 학습체제는 정확하게 스마트교육이 지향하고 있는 디지털 교수학습생태계와 비전을 같이 하고 있다”고 전망했다. 꿈과 끼가 살아있는 행복한 학교도 스마트교육생태계가 온·오프라인을 구분하지 않고 구축될 때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스마트교육에 대한 천 회장의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학생과 교사가 모두 프로슈머가 돼 교육콘텐츠를 만들어 협업‧공유하고 재창조해나간다면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콘텐츠산업국가가 될 것”이라며 “스마트교육이 곧 창조경제의 핵심역할을 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스마트교육의 원동력이 교사에게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학계를 중심으로 한 연구 활동이 미진한데 비해 SNS에서는 이미 교사들이 활발한 실험과 논의로 정보를 공유해 온 것이 스마트교육학회 태동의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선생님들의 열기를 담아 학계와 기업 사회를 망라하는 종합적인 토론과 협업 공간을 만들기 위해 학회를 발족했다”며 “스마트교육학회는 무거운 학술이론을 논하는 곳이 아니라 매일매일 수업의 경험을 공유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스마트교육이 어려운 것은 기술적인 이유보다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천 회장은 교사들에게 우선 학생들과 스마트기기를 통한 소통을 시작해보라고 권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오늘 당장 교실에서 매일 대하는 학생들과 카톡, 블로그, 메신저, 페이스북으로 소통해보세요. 그리고 수업시간의 작은 경험 하나라도 글 한 줄, 사진 한 컷, 소리 한 매듭, 동영상 1분짜리라도 학회 홈페이지나 페이스북에 올려 공유해보세요. 스마트교육은 저기 누가 꼭꼭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께서 오늘 수업시간에 고민한 그 안에 있습니다.”
사회‧ 과학‧ 예체능 100% 반영하기도 일부 주“반영비율 결정권도 교사에” “도대체 기준이 뭐야?” 한국에 살다 처음 독일에 와서 아이 성적표를 받아든 학부모라면 한번쯤 들었을 법한 의문이다. 성적표에 기재된 점수의 평가 기준을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독일어나 영어, 수학 등 몇몇 주요과목은 정기적으로 시험이라도 보니 추측해 볼 수 있겠지만 나머지 예체능과 사회, 과학 과목은 성적표를 받아들기 전까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필기시험을 보는 주요과목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시험성적대로 성적표에 기입되지 않으니 문제다. 수업태도 점수가 필기시험만큼이나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독일교사들은 학생과 부모가 아무리 성적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아도 자신의 평가기준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수업태도 점수인 문틀리히(Mndliche Note) 평가권이 교사에게 있기 때문이다. 교사의 평가권이 막강하다보니 학기말이 되면 성적에 불만을 갖고 선생님을 찾아가는 학부모도 더러 있다. 그러나 대부분 담당교사로부터 ‘당신 아이의 수업태도가 문제 있다’는 충고만 듣고 돌아오게 된다. 노드라인베스트팔랜 주에 사는 한 11학년생이 인터넷 질의응답 사이트에 성적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자신의 한 학기 독일어 점수를 공개했다. 1점(최고점)부터 6점(최저점)까지의 독일 점수 체계에서 이 학생은 한 학기 동안 3점과 4점, 두 번의 문틀리히 점수를 받았고 필기시험은 한 반에 한 명도 받기 어려운 1⁺라는 최고점을 받았다. 당장에 아비투어(독일 수능시험) 성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점수가 걱정돼 확인차원에서 질문을 한 것 같았다. 이런 경우 성적표에 이 학생의 점수는 몇 점으로 기록될까. 3점과 4점을 합산해서 평균을 내면 이 학생의 문틀리히 점수는 3.5다. 3.5와 1⁺ 점수를 다시 합산해서 평균을 내보면 2점에서 3점사이의 점수가 나올 것으로 추정된다. 성적표에 기입되는 점수는 1⁺가 아닌 3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학생은 분명 지식적으로는 과목을 완벽하게 이해했는지 모르지만 수업참여를 게을리 했을 수도 있고 다른 학생들과의 협동학습에 비협조적이었다든지 우수한 필기성적에 비해 사회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학생이었을 수도 있다. 노드라인베스트팔렌 주는 학교조례에 “성적은 필기시험과 그 밖의 수업참여 점수를 합산해 평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그 밖의 수업참여 점수’가 바로 학습 참여율, 숙제, 수업시간의 개별과제 해결능력, 사회성, 협동심 등이 모두 포함된 문틀리히 평가다. 독일어와 영어 수학 등 중요과목은 50%의 문틀리히 점수를 최종 점수에 반영하도록 돼 있지만, 사회와 과학, 예체능의 경우 교사마다 문틀리히 반영률이 다르다. 이 과목들은 필기시험이 한 학기에 한 번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점을 감안하면 문틀리히 점수가 100% 성적에 반영된다고 볼 수 있다. 슐리스비히홀슈타인 주도 필기시험과 문틀리히 점수를 4:6에서 2:8까지의 비율로 최종 성적을 계산한다. 필기시험보다 수업태도 점수 반영률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 주는 문틀리히 반영률을 구체적으로 학교조례나 학교법으로 규정하지 않고 교사의 자율에 맡긴다는 사실이다. 교사가 자체적으로 담당 과목의 평가 기준을 정하고 정해진 범위 내에서 필기시험과 문틀리히 점수 비율을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독일에서는 선행학습을 하는 학생도 거의 없지만, 설사 했다고 하더라도 수업을 등한시 할 수 없다. 이처럼 수업태도 점수가 필기시험보다 더 큰 비중으로 성적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물론 교사는 학생과 학부모가 문틀리히 점수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을 때 명확한 근거를 보여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 교사들은 개별적인 평가서를 준비하고 있다. 평가서에는 학과지식, 언어능력, 협동심, 판단력, 창의성, 인내력, 사회성 등의 항목들에 대한 점수가 기재된다.
글자 교육·사칙연산도 안 시켜 3세까지 발음 등 모국어 습득만 인간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동물과 분명하게 구별된다. 동물은 인간처럼 언어로 감정을 표현할 수 없고, 추상적인 어휘를 사용하지 않는다. 인간의 의사소통 체계는 동물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언어 외에도 인간에게는 동물과 구별되는 육체적, 물리적 특성이 있다. 인간은 손을 사용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물론 원숭이나 침팬지 같은 영장류는 다른 동물과 달리 앞발을 인간의 손처럼 사용한다. 그렇지만 원숭이와 침팬지는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손을 사용할 수 없다. 인간은 손으로 글씨를 쓰고, 도구를 사용하고, 바느질을 한다. 인간이 언어와 손을 사용한다는 것은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다. 핀란드 교육에서는 취학 이전의 아이들이 이 두 가지 특징을 유아기부터 철저하게 발달시키도록 한다. 3세가 될 때까지 완벽한 핀란드어 습득을 돕는다. 아이들이 핀란드어의 발음에 어려움이 있을 때는 즉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조치를 한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은 모래를 가지고 놀고, 레고 놀이를 하고, 그림을 그린다. 또 각종 도구를 활용해 물건을 만들어보고 각종 운동을 한다. 만 6세가 돼서 학교맛보기교육(Esikoulu, Preschool)에 참여할 때까지는 손과 감각으로 배울 수 있는 교육만 시킨다. 발도르프 학교의 창시자인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chteiner)는 유아들을 감각기관으로 간주하는 교육 이외의 지적인 교육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핀란드에도 그의 교육 이념을 기초로 세운 발도르프 학교가 있다. 핀란드에서는 학교맛보기교육 이전에 지적 활동을 통한 학습을 시키지 않는다. 유치원에서는 글자교육이 금지돼 있고, 유아들은 한글에 해당하는 알파벳을 배우지 않는다. 그래서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책을 읽지 못한다. 수학의 사칙연산이나 영어교육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저녁이 되면 핀란드의 마을과 아파트 공터는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들로 가득하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뛰놀면서 놀이를 한다. 주말에는 부모와 함께 수영장, 눈썰매장, 스케이트장으로 향한다. 이런 감각적 활동은 성인이 된 후에는 배우기가 쉽지 않다. 어린 시절에 수영을 배우지 못하면 어른이 되어도 수영을 하지 못한다. 핀란드에서는 우리가 경험과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 즉 ‘인간은 7세 이전에 지적 활동을 통해서 학습한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는 사실을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7세 이전의 아이들은 외국 여행을 해도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핀란드의 아이들은 취학 이전에 글자도 배우지 않았고, 유치원에서 영어교육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 핀란드의 15세 학생들은 PISA에서는 항상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영어로의 의사소통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입학시험에서 영어로 에세이를 쓴다. 그런데 3-4세에 한글을 배우고, 유치원 시절부터 수학과 영어를 배우는 한국의 학생들은 어떠한가? 왜 그들은 대학논술시험을 앞두고 학원으로 달려가야 할까? 한국의 고등학생 중에서 60%의 학생이 수학을 포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고3 학생 중에서 200 단어 이상의 영어 에세이를 쓸 수 있는 학생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정말로 그 이유를 모르고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알고 있지만 안 하거나 못 하고 있다. 대한민국 교육! 언제 바뀔까?
24일 대한교직원공제회에서는 서령고를 비롯해 서산시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영화관람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번 서산지역 '씨네Joy' 이벤트는 수도권 위주의 행사에서 벗어나 지역 교직원도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획된 행사이다. 이번 행사에는 서산시에 거주하는 교직원 200명이 초청됐으며 간단한 간식과 기념품도 제공됐다. 교직원공제회는 이번 '씨네Joy' 행사 외에도 올 한 해 교직원들의 복리증진을 위한 다양한 고품격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이미 지난 4월 '역사 속 세상 여행', 5월에는 스승의 날을 즈음해 프로야구 관람 초청행사를, 8월에는 캠핑대회와 골프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가을에는 걷기대회, 명사 초청 강연 콘서트 등도 열린다. 뮤지컬 관람 프로그램과 자산관리세미나는 연중 전국 주요 도시에서 개최되고 있다. 교직원공제회는 앞으로도 교직원 복지를 경영의 최우선으로 삼아 이번 '씨네Joy' 영화관람 등과 같은 다양한 생활·문화복지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발굴·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한국교직원공제회는 모든 교직원들이 재직 중에는 물론 퇴직 후에도 교직의 보람과 생활의 풍요함을 누릴 수 있도록 특별법(법률 제2296호)으로 설립된 정부보장의 교직원 복지기관이다.
중3 2학기 국가주도 적성검사 실시 공통교과 숫자 적고 난이도도 낮아 학생들은 14~15세에 미래에 어떤 일을 하고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진로를 결정한다. 인문계중·고교(VWO)와 상위보통중·고교(Havo) 학생들은 Klass 3 후반, 즉 한국의 중학교 3학년 2학기에 교육부가 전문기관에 의뢰해 만든 적성검사를 받는다. 이 적성검사 결과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이 어떤 분야에 흥미를 갖고 있는지, 어떤 직업 분야가 적성에 맞는지 세세히 알게 되며 앞으로 어떤 학과의 공부를 중점적으로 해야 하는지도 확인한다. 각 학교 진학 담당교사와 담임교사는 이 적성검사 결과를 염두에 두고 학생 개개인의 성적을 점검한다. 3년 동안의 학업성취도를 바탕으로 과연 이 학생이 적성에 맞는 공부를 잘해낼 수 있을지 따져보는 것이다. 가령 의예과에 관심이 높은 것으로 나온 학생이라 할지라도 지난 3년 동안 생물, 수학, 자연 과목의 성적이 형편없이 나왔다면 의예과로 진학하고 진로를 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적성과 학업성취도를 고려한 공부할 방향을 조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면담결과를 갖고 최종적으로 교사와 학부모, 학생의 의견을 종합해 학습과정을 선택하게 된다. 인문계와 상위보통중·고교 학생들은 다음 4가지 프로필 중 하나를 선택해 고교 3년 동안 공부하게 된다. 문과의 경우 문화와 사회(CultuurMaatschappij, CM), 경제와 사회(EconomieMaatschappij, EM)이고, 이과는 자연과 건강(NatuurGezondheid, NG), 자연과 기술(NatuurTechnik, NT)이다. 문과의 CM은 언어, 예술, 철학, 신학 등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선택하는 분야로 영어를 비롯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 그리스어 등 다양한 언어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그리고 EM은 경제, 회계, 경영, 법학 등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선택하는 분야로 언어 과목을 비롯한 경제, 경영, 역사 과목을 심층적으로 다룬다. 이 두 문과 분야를 택한 학생들은 수학은 기초적인 것만 배우고 생물과 과학 등 이공계 과목은 선택 사항으로 굳이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이과의 NG는 자연과 건강 관련 학문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선택하는 분야로 장래에 의료계나 생물, 자연과학 관련직에 종사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선택한다. NG를 선택한 학생들은 수학, 생물, 물리 등의 과목을 심도 깊게 배운다. NG를 선택했던 필자의 큰 아이도 생물학 시간에 직접 동물을 해부하며 의학의 기초인 해부학을 배웠다. 마지막으로 이과의 NT는 기술, 건축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선택하는 분야로 수학, 과학, 기술 과목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이과를 선택한 학생들은 언어, 역사 등 인문학 관련 과목은 본인의 선택에 따라 배울 수 있다. 이처럼 중·고생들은 같은 학교를 다녀도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 따라 공부하는 과목이 다르고, 분야가 같아도 선택 과목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수업 시간이 제각기 다르다. 학생들은 중·고교 Klass 4(고1)부터 졸업 때까지 2~3년간 각자 미래의 진로와 관련된 교과를 꾸준히 공부한다. 이들은 자신에게 굳이 필요하지 않거나 관심 없는 분야를 붙잡고 6년 동안 공부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공통 과목 수가 많지 않은데다 학생 스스로 흥미로워하는 과목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효율적인 교육을 하는 것이다. 한국의 인문계고 학생들도 문과, 이과로 나뉘어 공부를 한다. 언뜻 보면 네덜란드의 교육 제도와 유사한 것 같지만 문과, 이과의 과목이 크게 다르지 않으며 공통과목의 난이도가 불필요하게 높다는 차이가 있다. 너무도 많은 과목을 힘들게 공부해야 하는 중압감을 안고 사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실업계고와 유사한 네덜란드의 중·하위직업중·고교(Mavo)는 1년 빠른 Klass 2(중2)에서 학생에게 진로를 결정토록 한다. 중·하위직업중·고교는 4년제로 2년간 기초교육을 한 후, 나머지 2년간 각 분야의 전문 교육을 실시한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Klass 1(중1) 때 ‘인간과 직업’이라는 과목을 수강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직업 정보를 접한다. 그리고 수많은 직업 중 어떤 일이 자신에게 맞을지, 자신이 어떤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공부하는 분야를 정한다. 이 분야는 크게 기술, 경영, 요양·복지, 농·축산업으로 나뉘며 세부적으로 다시 분류된다. 십대 중반인 어린 학생들이 공부와 성적에 연연해하지 않고 앞날을 준비하는 모습이 대견하고 부럽기도 하다. 한국의 또래 아이들은 입시 준비로 학원을 오가며 시험에 치이느라 미래를 고민하고 계획할 여유가 없다. 한국도 네덜란드처럼 학생 개개인의 적성과 능력에 따른 맞춤형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대부분의 학생에게 수많은 과목을 똑같이 가르치는 것이나, 적성에 대한 고민이나 장래에 대한 뚜렷한 비전 없이 점수에 맞춰 대학에 가도록 진학하는 이제까지의 진로·진학지도는 너무도 비효율적이다. 새 정부에서는 자유학기제 등을 중심으로 진로교육을 활성화한다고 하니 개선되길 바라는 바다.
충주상고의 정보통신일반 교과를 가르치는 박선영 교사는 올해부터 일주일에 1시간 이상 수업시간에 정보통신과 관련된 개인 블로그 제작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경제 신문을 읽고 신문의 내용 중에서 자신이 정한 아이템을 주제로 다시 재편집을 통해 창의적 능력 향상과 더불어 경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 교육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팀을 이루어 주제를 설정하고 신문의 재편집 과정을 통해 팀별로 블로그를 제작해 발표를 한다. 이를 통해 팀별 협업과 분업에 대해 체험하고, 재편집 과정을 통해 경제용어에 대한 학습과 다양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산하고 있다. 2학년 조성현 학생은 "신문을 활용한 NIE 수업을 통해 정보통신에 대해 더 많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어 좋았고, 최신 정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 경제 신문을 활용한 수업에 대해 큰 만족감을 보이고 있다. 박선영 교사도 "주 단위로 정보통신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제시해 경제신문을 활용, 학생들에게 최신 정보 습득과 더불어 신문읽기를 생활화해 정보화 시대에 앞서가는 인재를 양성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한 아기공룡 둘리. 오랜 세월 사랑받아 친근감이 느껴지는 컨텐츠이다. 열두 구비길 말티재에서 가까운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갈목리 도로변에 둘리공원이 있다. ‘둘리의 숲속여행’은 규모가 크지 않은 공간에 둘리에 관한 테마를 바탕으로 꾸며 입구부터 재미있는 표정의 등장인물들을 만난다. 둘리의 캐릭터가 숲길을 따라 전시돼 둘리를 비롯한 각각의 등장인물들과 다양한 포즈로 사진 찍기에도 좋다. 애니메이션의 명장면들을 표현한 각각의 테마들은 비행기를 타고 표류하는 둘리, 악어에 쫓겨 나무 위로 올라간 둘리, 나무의자에 앉아 큰 소리로 웃는 것을 경고하는 둘리 등 여러 가지다. 규모가 작은 미로 찾기 악마의 미로와 아이들이 곤충처럼 생긴 놀이기구 속을 지나는 우주 괴물창자, 한번 빠지면 천년 동안 못 나온다는 천년의 모래 늪도 있다. 정이품송과 속리산국립공원 가는 길목이고, 솔향공원의 소나무홍보전시관과 도깨비공원이 이웃하고 있어 아이들과 함께 하는 나들이 장소로 좋다. 소나무는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느낌이 부드럽다. 또한 한국을 대표하는 나무로 우리의 민족성을 사철 푸른 소나무에 비유한다. 솔향공원은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천연기념물인 정이품송과 정부인송, 세계적 희귀목인 황금소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보은군에서 소나무를 주제로 조성한 공원이다. 홍보전시관의 전시실에서 의식주, 생활, 문화와 역사에 등장하는 소나무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바로 옆에 있는 도깨비공원은 도깨비를 주제로 한 테마공원이다. 열려라 뚝딱, 도깨비 집, 뛰어보자 팔짝, 도깨비밴드, 효자도깨비 등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비상한 힘과 재주를 가지고 있는 다양한 모습의 도깨비들을 만날 수 있다.
“수업할 만하네.” 화요일 아침. 1교시 1학년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온 김 선생의 말이다. 평준화 시행 이전에는 결코 들어볼 수 없는 말이다. 김 선생은 평준화 이후, 아이들의 지도가 훨씬 더 수월해 졌다며 만족해했다. 그리고 수업시간 아이들과 있었던 이야기를 재미있게 털어놓았다. 2013학년도 강원도 고교평준화가 시행된 지 2개월이 돼 간다. 시행 후, 표출된 큰 문제는 없으나 평준화 지역(춘천, 원주, 강릉) 일부 고등학교에서는 시행 전 우려했던 ‘학부모와 학교’, ‘학생과 선생님’, ‘학교와 학교’ 간 불협화음이 들리기도 한다. 평준화 시행 전, 학부모와 학생들로부터 인지도가 낮았던 일부 고등학교는 평준화 이후 학교의 질이 많이 나아졌다며 평준화 제도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반면, 중학교 내신이 좋은 학생들이 선호했던 고등학교의 경우, 아이들의 심한 학력격차로 지도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문제는 평준화 세대(1학년)와 비평준화 세대(2·3학년)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의 핵심은 쌍방 모두 피해를 본다고 주장해 해결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양극화 현상은 전 학년이 평준화 세대에 접어드는 2015년에 가서야 비로소 없어지리라 본다. 평준화 이전, 인지도가 거의 없었던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2 ․ 3학년 학생들은 학교의 모든 학사가 1학년 신입생을 위주로 운영되는 것 같다며 학교의 역차별에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그리고 수업시간 은연중 1학년과 비교하는 선생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반면 1학년인 경우, 2 ․ 3학년과 차별하여 대접받기를 원해 학년 간 위화감 조성이 우려되고 있다. 기존에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지원하여 학부모와 학생들로부터 지명도가 높았던 관내 A 고교와 B 여고의 경우, 평준화 세대인 1학년 때문에 학교 명예가 많이 실추됐다며 교명을 바꿔야 하고 동문회 또한 별도로 운영돼야 한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특히 1학년 후배들의 막무가내식 행동으로 위압감을 받을 때가 있다고 하였다. 교사들 또한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 자는 아이들로 수업 분위기가 흐트러질 때가 많다며 나름대로 고충을 토로하였다. 평준화 이후, 학부모의 요구사항도 많아졌다. 이것은 평준화로 학교를 불신하는 학부모의 지나친 관심으로 여겨진다. 학교 측은 학부모의 요구사항이 불만사항으로 되기 전에 학부모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할 필요가 있다. 학부모 또한 사실을 아닌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사소한 일을 과대 포장해 평준화 그 자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4월 초 고교평준화제도 시행에 따른 강원도 교육감의 평준화 지역 현장 실사가 있었으나 이것이 한시적으로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평준화가 하루 속히 정착되기 위해서는 도교육청과 학교 간 지속적인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학부모 또한 자녀가 이미 배정된 학교에 무작정 불평을 털어놓기보다 좋은 안건을 제시해 학교 현장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각 급 학교는 아이들의 수준을 탓하고 원망하기에 앞서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생활지도와 맞춤식 학습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학교 방침을 세울 때에도 학년 간 지나친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교사 또한 수업시간 평준화 전(前), 후(後) 세대를 비교해 위화감을 조성하는 언행을 삼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모두 명심해야 하는 것은 평준화 시행에 따른 부작용으로 피해를 보는 쪽은 다름 아닌 우리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행복한 삶이 무엇인가. 세월 지나는 것, 손에 쥔 것 다 잊으면 마음이 편하다. 여럿이 어울리며 여행하다보면 행복에 겨운 삶이 눈앞에 보인다. 14일, 815투어 회원들과 함께 했던 안면도의 노을길 산책도 그런 여행이었다. 여유를 찾으러 떠나는 여행길도 시간에 쫓기면 마음이 급하다. 부랴부랴 몽벨서청주점에서 7시에 출발하는 관광버스에 올랐다. 빗방울 때문에 차창 밖 풍경들이 실루엣으로 다가온다. 세상 풍경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장거리 여행은 오랜 시간 홀로 여유를 누릴 수 있어 좋다. 목적지로 가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흘러간 노래를 감상했다. 예산휴게소에서 유부우동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요즘 일기예보 잘 맞는다. 안면도가 가까워지자 둥근 해가 반기고 도로에 물기도 없다. 빗속에 여행 떠나는 걸 걱정했던 아내에게 전화하니 청주는 비가 내린단다. 그러고 보면 작은 것 같아도 참 넓은 세상이다. 10시경 안면도의 삼봉해수욕장에 도착했다. 2007년, 검은 기름이 뒤덮여 시커멓게 변한 돌과 모래를 국민들의 구슬땀으로 닦아낸 아픔의 장소가 태안의 바닷가다. 이곳 최북단 학암포에서 최남단 영목항까지 120㎞ 거리를 연결해 태안해변길을 만들었다. 태안해변길 5코스인 노을길은 백사장항에서 꽃지해수욕장까지의 12㎞ 거리에서 해안사구와 송림, 아름다운 해변과 바닷가 마을들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명품 코스다. 오른쪽에 바다를 두고 걸으면 초입의 백사장항에서 아래편으로 백사장 삼봉‧기지포‧안면‧두여‧밧개‧두에기‧방포‧꽃지해변이 이어지고, 두여전망대와 방포항도 구경할 수 있다. 바닷가에 예쁜 펜션들도 많다. 서해안의 바닷가는 리아스식 해안선이 길게 이어진다. 삼봉해수욕장으로 내려서면 삼봉, 기지포, 안면, 두여해변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파도가 일렁이는 서해바다와 바닷바람을 품에 안고 걷는 회원들의 얼굴에 낭만이 넘친다. 날씨 좋은 건 갈매기도 안다. 나풀나풀 춤추는 갈매기의 날개 짓이 보기 좋다. 키가 큰 곰솔이 터널을 이뤄 사색의 길로 불리는 숲길을 걸으며 솔향에 취한다. 푹신푹신한 모래숲길과 나무데크로 조성된 1004m 길이의 천사길도 걷는다. 두여해변에서 멋진 나무도 만난다. 모래해변을 야트막한 산이 가로막는다. 전망대 아래에 지하 깊은 곳의 압력으로 성질과 형태가 변한 습곡 및 단층의 지각이 풍화, 침식되면서 서서히 융기한 해안습곡이 있다. 나무데크를 따라 올라가면 전망이 좋은 두여전망대가 나온다. 방금 지나온 삼봉해변과 밧개해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전망대 왼쪽의 밧개해변은 암반갯벌로 이루어져 독살이 잘 보존된 곳으로 유명하다. 독살은 해안의 굴곡 부분에 돌담을 쌓아 밀물 때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갇혀 나가지 못하는 원리를 이용한 원시적인 고기잡이 방식이다. 해변에 평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래 언덕과 흙을 밟으며 걷는 비탈길도 있다. 해안사구와 울창한 송림을 지나다 만나는 언덕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걸어도 될 만큼 완만하다. 힘들면 마음편히 쉬면서 바다풍경 실컷 구경할 수 있는 전망대도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앉아 해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의자도 있다. 촛대바위가 서있는 두에기해변과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나무의자가 명물인 방포해변을 지난다. 방포전망대에 서면 방포해변과 꽃지해변의 멋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까운 바다에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 모여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전망대 아래편의 방파제에서 방금 지나온 방포해변, 바위섬의 등대, 할아비바위와 할미바위 뒤편의 꽃지해변, 아치형 꽃다리와 방포항을 바라본다. 방포와 꽃지해변을 잇는 꽃다리가 해질녘 꽃지해변의 낙조를 감상하는 장소다. 꽃지해변은 서해안 낙조의 명소로 손꼽힌다. 할미바위에 뿌리를 내린 노송과 두 개의 바위섬 사이로 지는 낙조가 일품이다.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로 불리는 바위섬은 해상왕 장보고의 부하 승언 장군이 전쟁터에 나간 후 돌아오지 않자 아내 미도가 일편단심 기다리다 죽어 망부석이 됐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안면대교와 가까운 초입에 백사장항이 있다. 백사장항은 남면의 드르니항과 마주한 작지만 정겨운 포구로 우리나라 최대 자연산 대하집산지라 각종 해산물이 풍부하다.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양쪽을 잇는 다리공사가 한창이다. 노을길이 시작되는 백사장해변은 흰모래밭을 뜻하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옥석같이 고운 모래가 지천이고 솔밭이 넓다. 백사장해변을 둘러본 후 횟집에서 함께한 회원들과 정을 나눴다. 청주로 향하는데 차창 밖으로 바닷가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안면도의 낮은 산봉우리와 바다위의 고깃배들이 정겨운 풍경을 만든다. 차안에서 물위에 떠있는 간월암과 멋진 자태를 뽐내는 궁리소나무도 구경했다. 파란하늘이 반갑게 맞이한 예산휴게소, 정부종합청사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된 세종시를 지나 청주에 도착했다.
문림의향 장흥에서 태어난 대표적인 작가로는 이청준과 한승원을 들고 있다. 물론 두 분이 모두 소설가이어서 시인은 없나 싶지만 수많은 문필가가 있어서 이미 100명이 넘는 작가와 시인들이 있으니 문림(文林)이라는 말을 써도 충분한 고장이다. 옛부터 장흥은 큰 인물이 나기보다는 큰 작가가 태어나는 학자의 고장이었다. 이청준이 태어난 집은 얼마 전까지 이청준의 친척이 되는 분이 거주를 하였던 집이었지만 그 동안 생가라고 해서 수많은 관광객이 드나들면서 일상생활을 하기가 어려워져서 집을 비워두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한 다음 본격적으로 생가로서 보여주게 됐다고 한다. 이청준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시대별로 나열해보면 ** 1960년대 1965년에 《사상계》 신인상에 《퇴원》당선 등단. 《병신과 머저리》(1966), 《굴레》(1966), 《석화촌》(1968), 《매잡이》(1968) ** 1970년대 《소문의 벽》(1971), 《조율사》(1972), 《들어보면 아시겠지만》(1972), 《떠도는 말들》(1973), 《이어도》(1974), 《낮은 목소리로》(1974), 《자서전들 쓰십시다》 (1976), 《서편제》(1976), 《불을 머금은 항아리》(1977), 《잔인한 도시》(1978), 《살아있는 늪》(1979) 등 **1980년대 《시간의 문》(1982), 《비화밀교》(1985), 《자유의 문》(1988) **이청준의 소설집 《별을 보여 드립니다》(1971), 《가면의 꿈》(1975), 《당신들의 천국》(1976), 《예언자》(1977), 《남도 사람》(1978), 《춤추는 사제》(1979), 《흐르지 않는 강》(1979), 《낮은 데로 임하소서》(1981), 《따뜻한 강》(1986), 《아리아리 강강》(1988), 《자유의 문》(1989) ** 수필집 《작가의 작은 손》, 희곡 《제3의 신》(1982) 사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됨 [출처] 이청준 | 두산백과 이청준이 이곳에서 태어나 어려운 시절 광주의 사촌 누나 집에서 하숙생 노릇을 하고 있다가 어느 여름날 주말에 고향에 와서 고마운 누나에게 즐 것은 없고 어머니와 함께 땡볕에 그을어 가면서 게를 잡아가지고 광주까지 힘들어서 가져갔지만 벌써 썩어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을 사촌누나가 집어 던지면서 “이런 것을 왜 가지고 왔느냐?”고 욕설을 하자 크게 마음에 상처를 받아서 몇 시간을 울었다고 한다. 이 경험을 살려 소살을 쓴 것이 '눈길'이라는 작품으로 이상문학상을 받는 등 출세작으로 떠오르게 됐다고 한다. 가난한 이청준은 자기가 살던 집이 팔리고 어려운 살림살이를 하는 어머니를 위해서 서울대 법대를 진학해 판검사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어찌하여 독문학을 잔공하게 됐다고 한다. 공부 잘하고 장래가 촉망 되던 형은 사회주의자가 되어서 적응을 하지 못하고 술에 빠져 지내다가 망가져 버렸고, 집안을 일으켜야할 형편이 됐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못하고 어렵게 공부해 이렇게 역사에 남는 소설가가 되었으니 그만하면 충분한 보상을 받은 셈이고 특히 장흥에서 이만큼 그를 위해 많은 배려를 해주는 등 대접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청준의 생가는 장흥군 회진읍 진목리의 마을 회관 곁에 있었다. 마을의 광장에는 유선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신선이 노니는 정자이니 정자 이름 한번 거하게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유선각이었으면 궁궐의 이름이 돼서 '각하(閣下)'가 생겨날 뻔 했다고 생각하면서 마을을 떠났다.
LG화학 서령동문회(회장 이종욱 27기)가 모교에 장학금으로 270만원을 기탁했다. 이 회장과 정복영 총무(34기)는 24일 모교를 찾아 김동민 교장선생님께매년 270만원의 장학금을 기탁하기로 약속했다. 이 회장은 후배들이 모교와 국가를 빛낼 큰 인재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십시일반 장학금을 모아 모교에 전달하게 됐다고 취지를 밝혔다.
지난 2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년을 60세로 의무화하는 ‘정년연장법’을 통과시켜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이번 의결로 교직사회의 관심은 교원정년 환원이라는 포기할 수 없는 정책에 쏠릴 수밖에 없다. 1998년에 단행됐던 교원정년 62세 감축 시행 15년이 지나고 있다. IMF 시절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예산절감, 교원임용적체 해소, 교직사회 활성화라는 목표를 내걸고 교원들을 옥죄었던 것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령교사 1명이 나가면 2.5명의 신규교원을 충원할 수 있다는 경제적 논리는 거짓으로 드러날 정치 논리에 불과했고, 공무원 연기금의 고갈로 인해 지방교육청은 천문학적인 지방채 발행으로 아직까지 빚더미에 허덕이고 있고, 중등교사자격증 소지자를 초등교사로 둔갑시키며 퇴직교원의 1/3이상이 기간제교사로 재임용되는 등 이중삼중의 재정낭비만 초래했다. 이는 교단황폐화, 공교육붕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근원이었고 그 부작용은 아직까지도 교육현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고 있는 사회구조 변화에 맞춰 이제 냉철하게 교원정년 원상회복 문제를 고민해봐야 할 때다. 단순히 교원 사기진작이나 잃어버린 자존심 회복 등 교육계 내부의 욕심 채우기 차원을 넘어 학교교육력을 극대화하는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작금의 학교는 학교폭력으로 몸살을 앓고, 생활지도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고, 기간제 교사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전문성을 가진 우수교원을 안정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예비교원의 수가 상당히 많아 청년실업 문제와 저출산에 따른 교원 수요 감소 경향도 고려해야 하며, 교원의 노령화에 대한 학부모의 입장, 60세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 일반직공무원과의 형평성 등도 종합적으로 함께 검토돼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이미 국회에서는 논의가 시작됐다. 지난 해 10월 민주통합당 유성엽 의원이 대표발의한 ‘교육공무원 정년 65세 환원 법안’이 그것이다. 새누리당도 관련법 개정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교원권익 추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일정기간의 충분한 연구와 여론수렴과정을 거치고, 정치적 의사형성과정을 합리적으로 거치면서 사회적 공감대 만들어 나가는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때다.
소위 진보교육감들이 추진하는 혁신학교가 도입된 지 5년째를 맞고 있다. 몇몇 언론뿐 아니라 최근에는 부동산 업자까지 혁신학교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정작 주변 학교 관계자들은 무덤덤하기 일쑤다. 외부의 호들갑에 학부모들도 혼란스럽다가 막상 접해 보면 ‘혁신학교 교육도 특별한 것이 없다’란 의견이 나오는 경우도 상당수다. 학교마다 다른 주제로 검증된 이론도, 선행 사례도 없이 이런저런 실험을 하고 있으니 몇 년 지나면 특별한 것이 없다는 것이 혁신학교 출신 교사들의 증언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미래를 담보로 검증도 안 된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교육감들은 그 성과에 대해 자화자찬만 늘어놓고 있지만 유리한 통계 일부만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진보교육감 지역의 낮은 학업성취도 향상도와 혁신학교의 학교폭력 실태에 대한 자료들은 혁신학교가 나은 점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자화자찬의 성과보다는 제3자가 하는 객관적 평가에서도 당당히 성과가 드러나야 진정한 혁신일 텐데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혁신학교가 무엇이 다르기에 일부 학부모들이 몰려가 부동산 가격까지 오르게 된다는 건가. 혁신학교만 집중적이고 차별적인 예산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혁신학교로 지정되면 매년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2억 원 가까운 재정지원을 지속적으로 받는다. 단적인 예로 일반학교 교사들은 학급당 연간 운영경비를 5만원도 받기 어려운데, 혁신학교는 60만 원 정도를 받기도 한다. 같은 지역의 똑같은 공립인데도 ‘부자 학교’인 혁신학교와 ‘가난한 학교’인 일반학교로 나눠지는 것이다. 진보교육감들이 자신들의 정책추진을 위해 헌법에 따라 의무교육을 보장받고 있는 초·중학생들의 교육환경에 차별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의무교육대상자를 위한 ‘보편적 교육’을 위한 기회균등도 무너뜨리면서 무상급식을 들고 ‘보편적 복지’를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돈 뿐만이 아니다. 학급당 인원도 마찬가지다. 한 시·도에 백 개 넘는 혁신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를 25명 규모로 대폭 줄여서 운영하면 다른 학교의 학생 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교육차별을 낳고 있는 것이다. 특혜로 불리는 지원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내지 못하는 혁신학교에 대해 교육감들은 스스로 냉정한 평가를 할 때다.
박근혜정부의 핵심 국정운영 기조는 창조경제다.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가 창의성을 우리 경제 핵심가치로 두고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 융합을 통해 산업과 산업, 산업과 문화가 융합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했다. 창조경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융·복합을 가로막고 있는 규제의 완화와 창의인력 양성 그리고 연구개발 투자 확대 등 장기적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설명이다. 교권 확립과 공교육 정상화 필요 이처럼 창조경제가 대두된 배경은 남의 아이디어를 모방하는 ‘추격형 경제’로는 더 이상 경제를 성장시킬 수 없다는 절박함이다. 창조경제가 화두인 만큼 각계각층에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해법들이 제시되고 있다. 정부부처 간 업무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미시적인 해법에서부터 협력적인 소프트웨어 산업 생태계 조성과 같은 거시적인 제안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창조경제의 심장을 뛰게 할 수 있는 필수 조건은 창의교육뿐이다. 라르스 다니엘손 주한 스웨덴 대사는 한 언론사 기고문에서 “스웨덴 창조경제의 바탕은 현대적 초등교육”이라고 했다. 스웨덴에서는 아이들이 과제를 개인이 아닌 그룹으로 해결하며 서로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창조하고 해결책을 만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창의인재가 양성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창조경제를 이끌어 갈 창의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첫째, 학생들의 사고와 인식에서 패러다임의 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패러다임은 라틴어 ‘파라디그마’에서 유래한 단어로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이론적 틀이나 개념의 집합체를 의미한다. 이 용어를 처음 제시한 미국의 토마스 쿤(Thomas Khun)은 “하나의 패러다임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고, 항상 생성·발전·쇠퇴·대체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상과학을 통해 일정한 성과가 누적되다 보면 기존의 패러다임은 차츰 부정되고, 한 시대를 지배하던 패러다임은 완전히 사라지고, 경쟁관계에 있던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과학 혁명’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멱살을 잡히고, 학교가 대학 진학만을 위한 학원으로 전락하고, 학교 폭력이 기승을 부리며, 편향된 교사들에 의해 비뚤어진 이념 교육이 버젓이 자행되는 교육 현장에서는 학생들의 창의성이 꽃을 피울 수 없다. 반대로 교권이 확립되고 학교 폭력과 주입식 교육이 사라지면서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창의교육이 대세를 이루는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어야만 학생 누구나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교육환경이 만들어 질 수 있다. 궁극적으로 창조성의 필수요소인 자기표현과 자기주도 학습 능력이 함양된다. 둘째,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의 도전정신이 살아 숨 쉬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포드대 졸업식 연설문에서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그는 “순전히 호기심과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훗날 값진 도움이 될 수 있는 만큼 사랑하는 일에 전념하라”고 조언했다. 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하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지 않으면 ‘창조적 파괴’가 일어날 수 없다. 세 번의 실패를 극복할 시스템 구축 셋째, 정부는 세 번 실패하더라도 세 번 일어설 수 있는 구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사람은 초년기, 중년기, 장년기를 거치면서 누구나 실패를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재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결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만 창의경제를 성공적으로 추진해 나갈 인재들이 창조적 상상력으로 무장하고 우후죽순 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질 것이다.
고교 교육의 대종을 이루는 일반계 고교가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왜 일반고가 오늘 같은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일까. 우선 교육 수요자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하고, 수월성 교육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명분을 갖고 출발한 ‘고교 다양화 정책’이 결과적으로는 학생선발 면에서 일반고를 여러 가지 불리한 여건에 놓이게 했다. 전기에 뽑는 특목고나 자율고는 성적이 우수해야 가는 학교로 인식된다. 특성화고도 내신이 좋아야 갈 수 있고 학비지원도 많다. 그러다 보니 후기로 가게 되는 일반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학생들이 가는 학교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대입에서도 나은 점이 별로 없다. 특성화고 졸업생처럼 동일계 특별전형의 혜택도 없다. 그렇다고 뚜렷한 직업교육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생활지도의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다. 거의 매시간 책상에 누워 있는 학생들을 보면 울화가 치밀어 수업을 할 수 없다고 일선 교사들은 호소하고 있다. 아무튼 70%가 넘는 고교생이 재학하고 있는 공교육의 근간인 일반고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그랬다간 우리 고교 교육이 파멸을 맞게 될 것이다. 일반고의 교육이 충실히 이뤄져야 다른 계열의 교육도 정상화될 수 있다. 그러면 일반고의 경쟁력을 회복하고 교육의 내실을 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먼저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특성화고만 전기에 뽑고 특목고, 자율고, 일반고는 후기에 동시에 선발하는 방법을 모색해 봤으면 한다. 다음으로는 학생들의 다양한 취미와 소질을 살릴 수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함으로써 학교가 즐거운 곳이라는 인식을 마련해 주는 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일반고의 교원수급이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진학지도에 얽매이지 않고, 학생 각자 관심 있는 분야를 열심히 공부하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 정부의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한 교육’의 방향이라고도 생각한다. 또, 중학교 자유학기제’ 운영과도 연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여건이 갖춰지면 일반고는 대입의 부담과 생활지도의 어려움이 해소돼 내실 있는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의회에서 지난 회기에 처리가 무산됐던 서울혁신학교조례가 제246회 임시회 교육위원회에서 다시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교총과 서울교총(회장 이준순)을 비롯한 22개 교육․시민사회단체가 25일 서울시의회 별관 앞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조례 폐기를 촉구했다. 교총 등은 기자회견에서 “서울시의회가 주장하는 혁신학교조례는 특정학교 유형, 운영에 관한 사항을 조례로 제정해 혜택을 부여하겠다는 의미”라며 “이는 대다수 일반보통학교 학생․학부모의 교육평등권과 대치돼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백복순 한국교총 사무총장은 “혁신학교조례는 초중등교육법 등 상위법에 위배되며, 교육정책결정권자인 교육감의 고유권한을 침해하는 등 법적․행정적 혼란을 초래해 폐기돼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이준순 서울교총 회장도 “혁신학교는 내부 교육구성원 간의 빈번한 마찰과 갈등, 예산의 비효율적 사용과 방만한 운영, 전보로 인한 일부 교원단체 소속 교사들의 집합소, 비정규직 노조와 갈등 등 많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며 조례 제정을 반대했다. 한편 이날 교육위원회는 조례를 두고 두 시간 넘게 회의를 벌였지만 시의회와 교육청 간의 큰 입장차만 확인한 채 합일점을 찾지 못했다.
“어머니, 염려 마세요. 열심히 할게요. 나도 이제 어린 아이는 아니지 않아요. 이모네에서 못난이 노릇을 해서 어머니 입장 곤란하게 만들지 않을게요”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불안하고 자신감이 서지는 않았습니다. “그래, 우리 현식이는 믿어도 될 거야. 어디 가서라도 무엇인들 못하겠어?” 하고 말씀하시며 현식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 꼭 쥐어 주었습니다. 현식이도 어머니의 손을 꼭 쥐어서 ‘염려 마세요’하고 응답을 해드렸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현식을 돌아보며 빙긋이 웃음을 보내셨습니다. 40여분을 달려서 교대역에서 내려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역삼역에서 내렸습니다. 역을 나가 잠시 걸어서 이모네가 사시는 아파트에 도착했습니다. 이모네에서는 병준이와 함께 방을 쓰도록 준비를 해주었습니다. 침대를 2층 침대로 만들고, 책상을 나란히 놓아서 둘이서 함께 공부하도록 만들어 두었습니다. 현식이는 책가방을 들어다 자기들의 방이 될 공부방으로 옮겨 두고 어머니는 집에서 가져온 몇 가지 농산물을 내어놓았습니다.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앞으로 이곳에서 생활 할 때 지켜야 할 일들을 이야기햇습니다. “여기서는 놀러 나오는 아이들이 거의 없어서 밖에 나가서 놀 수가 없단다. 그리고 놀이터에는 노는 아이들은 없어. 모두들 학원으로 가고 과외 공부하느라고 5학년만 되면 저녁 11시가 돼서야 집에 돌아오거든 그러니 언제 놀러 나갈 틈이 전혀 없는 거야. 그러니까 이곳에 오면 그리 알고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할거야.” 이모의 말씀은 들은 현식이는 ‘이제 정말 죽었구나. 숨이 막혀서 어찌 살라고.....’하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밤 11시까지 학원으로 과외 공부방으로 다니다가 밤늦게 돌아와서 잠이나 잘 시간이 있겠어?’ 혼자 생각을 해보지만 가슴이 답답해지기만 합니다. 그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어머니는 오후 4시가 돼서 집으로 가시겠다고 나섰습니다. 이제 오늘부터 현식이의 서울 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현식이의 손을 잡고서 “현식아, 병준이랑도 잘 지내고, 열심히 해야 돼. 알겠지?” 하고 다짐을 합니다. 이 모습을 본 이모는 웃으시며 “어디 이국 땅에서 이별하는가 보다. 뭘 그렇게 못 잊어서 그 야단이야. 어련히 알아서 하려고 말야. 언니 걱정말고 가요. 내가 있는데 무엇이 그리 걱정이에요”하였지만, 어머니는 현식이가 떠나면서 보인 모습이 너무 마음에 걸려 걱정이 가시지 않습니다. 아파트 입 구까지 따라온 현식에게 손을 흔들며 뒤를 돌아다보고 또 돌아다보시면서 어머니는 지하철 입구를 향해 떠나시고 현식이도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이모가 해준 저녁상은 반찬이 너무 맛있고, 늘 집에서 먹던 것과는 많아 달라서 이것저것 많이 먹었습니다. “이모 반찬이 입에 맞을는지 모르겠구나” 이모가 묻자 현식이는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불룩해진 것을 생각하면서 “너무 맛이 있어서 배가 터질 것 같은데요”했더니, 이모가 깔깔거리면서 “얘, 그렇다고 배가 터지면 큰일이게? 그렇게 맛이 있었어?” 하면서 밥을 더 먹으라고 디밀었지만, 현식이는 손사례를 하면서 밥상에서 물러앉았습니다. 병준이는 밥그릇의 반도 못 비운 채 아직도 수저로 밥을 먹는 것인지 끄적거리고 있는 것인지 밥 먹는 모습이 영 시원찮습니다. 이걸 보고 속이 상하시는지 이모가 “병준아, 형 좀 봐. 벌써 한 그릇 뚝딱 해치웠지 않아. 너도 형처럼 잘 먹어야지. 뭐야 그게. 왜 그렇게 밥 먹는 게 시원찮니?” 하자, 병준은 형을 힐끔 돌아다보면서 “형은 5학년이잖아. 난 아직 형만큼 먹고 싶을 때가 아닌데 뭘?” 하고 투정을 한 뒤에도 한 동안을 드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수저를 놓았습니다. 방으로 돌아온 병준은 학원 가방을 열고 학원 숙제를 하느라고 9시가 넘도록 붙들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옆에 형이 있으니 물어 보지도 않고 마냥 자기 혼자서 낑낑거리면서 숙제를 마치고서는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맨 먼저 e-mail을 확인 해보고 나서 인터넷게임으로 들어가서 한참 동안 신나게 스타크레프트게임을 했습니다. 한 번 시작한 게임은 벌써 2 시간이 지나서 11시가 넘었습니다. 현식은 자기 책상에 앉아서 책을 펴놓았으나, 이런저런 생각으로 책을 읽지는 못한 채 책만 펴놓으면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11시가 조금 넘어서 이모부가 퇴근을 하셔서 돌아 오셨습니다. 약간 술기운이 있는 듯 비틀거리듯이 들어오시는 소리를 듣고 병준이는 얼른 게임을 끄고 숙제를 하는 사이트로 옮겨 놓았습니다. 이모부는 먼저 아이들의 방으로 와서 문을 열자 현식이 얼른 일어서서 “이모부 이제 오셔요” 하고 인사를 하고 병준이도 따라 인사를 했습니다. 이모부는 두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으응, 현식이가 왔다구? 그래 우리 병준이에게는 든든한 형이 생겨서 좋겠구나. 현식이 병준이 좀 가르쳐 주면서 함께 공부해라. 가끔 너무 게임만 하려고 하면 못하게 말리기도 하고. 알았지?” 하고 당부를 하였습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우리 현식이 믿음직 한데....” 하시고 방을 나서셨습니다. 아이들은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와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11시 30분이 되자 이모가 물그릇을 가지고 들어오셔서“너무 오래 하지말고 12시가 되기 전에 자야 한다”하고, 자리를 한 번 보살펴 주시고선 나가셨습니다. 현식이 먼저 자리에 들어서 푹신한 침대에 눕자 저절로 잠이 왔습니다. 집에서는 11시가 되기 전에 자리에 드는 경우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벌써 잠이 와서 하품을 몇 번이나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자리에 눕기 바쁘게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방학이 끝나기 전에 왔기 때문에 이틀이나 기다리는 동안에 현식이는 벌써 지쳐버렸습니다. 차라리 학교라도 가는 날이면 학교에서 시간을 보낼 것인데, 학교에 가지도 않고 병준이는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다니느라고 현식이와 학교에도 함께 가보지 못했습니다. 혼자서 학교에 가보았지만, 교실에 들어갈 수도 없고, 그냥 운동장을 빙빙 돌다가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점심을 먹고 이모가 함께 학교에 가서 전학 수속을 밟아 놓자고 하셨습니다. 현식이 이모를 따라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전학을 하려고 한다고 했더니, 내일 개학하는 날 오라고 하시면서, 그냥 돌려보내 버렸습니다. 헛걸음을 하고 돌아온 현식은 병준이 컴퓨터에 앉아서 인터넷으로 이 학교를 찾아보았습니다. 어마어마한 학교 규모도 규모지만 무엇이 그리 많은지 한 동안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그만 입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한 학년이 13개 반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학교가 하고 있는 활동들이며, 자랑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현식은 자기가 다니던 장흥의 학교를 찾아보았습니다. 아담한 학교 모습과 정다운 선생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지만, 이곳 학교와는 너무도 다른 것이었습니다. 지루하여 혼자 보낸 시간이 여간 고역스럽지 않았지만, 이모에게 걱정이 될까 봐서 아무소리 하지 않고 방안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하루해가 저물었습니다. 8월 27일 개학하는 날, 현식은 아침에 이모와 함께 다시 교무실에 가서 전학 절차를 밟아서 5학년 12반에 배치가 됐습니다. 한 교실에 5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빼곡이 들어찬 교실에서 아는 아이는 하나도 없이 새로운 생활이 시작 된 것입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새로 온 아이에게 별로 관심도 보이지 않고, 그저 또 하나가 더 늘었구나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현식은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하는 지 살피면서 하루를 조심스럽게 보냈습니다. 누구 하나 말을 붙이는 사람도 없고 옆에 앉은 짝도 별로 말이 없이 그냥 하루가 지났습니다. 물론 공부도 하지 않는 개학식 날이니까 아이들은 과제물을 내고 방학 동안의 이야기를 했지만 현식은 아직 이곳의 생활에 아는 것이 없어서 눈치만 살피고 앉아 있었습니다. 목요일에 개학을 했기 때문에 금새 토요일이 돌아 왔습니다. 그 동안 현식은 아직 친구도 없고 친구를 사귈만한 생각도 없이 보냈습니다. 토요일 오후 점심을 먹은 현식은 이모와 병준이와 함께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제 현식이네 집에서 토요일을 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지하철을 타려는데 누가 등뒤에서 툭 치면서 “야 ! 강현식! 너 어디 가는 거니?” 하고 물었습니다. 현식이 깜짝 놀라 돌아다보니 같은 반의 친구인데 그 얘도 별로 말이 없이 앉아만 있던 아이였습니다. “으응, 넌 어디 가니?” 하자, 그 아이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사실은 우리 집이 일산이거든. 그래서 토요일이면 집에 가는 거야. 너는 집이 어디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식은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난, 일영이야. 지금 이모와 함께 집에 가는 거야”하고 말을 하자, 그 아이는 반갑다는 듯이 “그래? 그럴 것 같았어. 나도 지난 7월 달에 전학을 왔거든. 나 민준식이야. 너는 날 잘 모르겠지만, 새로 전학 온 너를 보고 반가웠어. 나도 며칠 안 다니고 방학을 했으니까 너하고 마찬가지야. 아직 아이들을 몰라. 우리 잘 지내자.” 하고 반가워하였습니다. “응, 그래. 나도 아직 서먹하였거든 잘 됐다”하는 동안에 지하철이 다가왔습니다. 서둘러 차에 오른 두 아이는 금새 정다운 친구처럼 반가운 사이가 됐습니다. 3호선으로 갈아타고 구파발에 이르기까지 이모네 식구보다는 민준식이라는 친구와 이야기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제 전학을 와서 친구가 없던 현식이에게 같은 반의 비슷한 처지의 친구가 생겼으니 이 보다 더 반가운 일이 없었습니다. 학교 이야기며 아직 사귀지 못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준식이가 들여 주고 현식이는 물어 보는 식으로 이야기는 계속 됐습니다. 이모는 준식이와 현식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 아이의 이야기 속에서 학교에 대한 현식이의 생각이나 준식이가 처한 위치 등을 알아보려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두 아이는 아직 학교와 학급 아이들에 대해서 비교적 모르는 상태이고 시골에서 전학을 와서 우선 그들에 대한 정보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정도 밖에 특별한 것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구파발에서 준식과 헤어진 현식이 이모와 나란히 차를 내려서 버스를 타는 곳으로 가면서야 비로소 말을 걸었습니다. “새 친구를 사귀지 못해서 아직은 서먹했는데, 일단 한 사람은 알게 돼서 기분이 좋아요. 저 아이도 나처럼 친구가 없다니까 잘 지낼 수가 있을 것 같아요.” “그래. 그거 잘 되었구나. 우선 한 사람이라도 친구가 생겨야 외롭지 않을 거니깐.” 이모는 병준이의 손을 잡고 버스 타는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주말 오후라서 버스 타는 곳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현식이가 얼른 달려가서 줄을 섰습니다. 이모는 길가의 슈퍼에 들러서 과일을 사느라고 조금 시간이 걸렸고, 벌써 줄은 2-30명이나 길게 늘어서게 됐습니다 따가운 햇볕에 한 동안 줄을 서 있어서야 버스는 도착을 했고, 자리는커녕 이미 설자리도 없을 만큼 만원이 돼 있었습니다. 뒤에서 밀어붙이는 바람에 억지로 버스에 오른 현식이네는 땀 냄새로 가득 찬 버스 안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간신히 좌석의 손잡이 하나를 붙잡고 서서 더 이상 밀리지 않으려고 진땀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여기에서 타고나면 앞으로는 더 이상 타는 사람보다는 내리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니까 어떻게든지 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버스에서 내릴 때는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에어컨이 돌아가긴 하지만 너무 사람이 많으니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지 정다운 학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운동장에는 현식이네 반의 친구들이 축구를 하느라고 땀을 흘리고 땅바닥에 뒹굴어서 흙먼지가 범벅이돼 가지고 열심히 볼을 쫓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이라면 이런 모습을 보고 그냥 집으로 들어갈 현식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이모가 오시고 계시더라도 아이들을 불러 손을 흔들어 주거나 아니면 당장 달려가서 한데 어울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현식이는 이 학교의 학생이 아니고, 더구나 이 학교의 아이들을 버리고 떠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본 채 만 채 하면서 도리어 아이들과 눈이 마주칠까 봐 외면을 하게 됐습니다. 아무리 이곳을 떠났어도 그렇게 까지 하지는 않아도 될 것이지만 그 아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무어라고 할까 어쩐지 낯부끄러울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현식이가 학교 운동장을 외면하듯 지나치는 모습을 본 이모는 마음 속으로 ‘현식이가 얼마나 이곳을 떠나기 싫어했는지 알만 하구나’하고, 가슴이 아파 오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아직 어린 내가 이곳을 떠나 있는 것이 몹시 싫은 모양인데 정말 그렇게 싫으면 앞으로 어떻게 생활을 할지 걱정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앞으로 현식이에게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것인지 염려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서 학교 담장을 끼고 돌아서 일영역을 지나자 현식이네 집이 바라 보였습니다. 한 기슭을 타고 앉아 들판을 바라보는 현식이네는 집은 비록 현대식 멋진 집이 아닐지라도, 그 위치며 주위의 경치나 주변에 나무들이 너무나도 잘 어울려 어느 별장집에 비교할 수가 없을 만큼 시골 정취가 넘쳐흐르는 집입니다. 집 가까이 이르자 현식이가 뛰어가서 “어머니 ! 저 왔어요 ”하고 큰 소리로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뒤란에서 소를 돌보시던 할아버지께서 “우리 현식이가 왔구나!"하시면서 나오시고, 방에서는 할머니께서 문을 활짝 열면서 “아이고, 우리 새끼 왔구나” 하시면서 반가워 하셨습니다. 이모가 사립을 들어서실 때쯤에야 부엌에서 어머니가 나오시면서 “어서 오너라. 너도 왔구나. 아이고, 우리 병준이도 왔네?” 반가이 맞아 주셨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땀에 흠뻑 젖은 몸을 씻었습니다. 수돗물보다야 엄청 시원한 지하수를 끼얹어서 씻고 나니 더위는 저절로 달아나 버린 것 같았습니다. 저녁 시간은 아직 멀었고, 우선 집에서 기른 수박과 참외로 간식을 하고 어른들은 이야기를 나누시는 동안에 현식이는 병준이를 데리고 집 둘레에서 여러 가지 풀, 나무 과일들에 대해서 이름을 가르쳐 주고 함께 만지기도 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서울에선 병준이가 가르쳐 주고 시골에 오면 현식이가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산기슭을 뛰어 다니면서 이것저것 이야기 하다보니 벌써 해가 기울어 가고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온 가족이 현식에게 서울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묻고 또 물으면서, 저녁식사 시간이 한 시간으로 길어 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이틀 동안을 지낸 서울에 대해서 물으니 현식이로서는 할 말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현식이게게 묻는 말을 이모와 병준이가 더 많이 대답을 했습니다. 이튿날은 이모와 병준이를 데리고 장흥 유원지에 가서 풀장에서 물놀이도 하고 구경도 하면서 냈습니다. 마친 이 풀장은 현식이와 같은 반 친구인 정준이네 집에서 운영하고 있어서 정준이와 몇 몇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점심때쯤이 돼서 풀장에서 나와서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께서 집에서 기르던 닭을 잡아서 푸짐하게 백숙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맛있게 백숙을 먹고 나서 서둘러 준비를 하고서 출발을 하였습니다. 이제 정말 서울 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월요일 아침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준식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서며 “현식아, 잘 다녀왔니? 재미있게 놀았어?” 하고 물었습니다. 현식이는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으응, 어제는 장흥 유원지에 가서 풀장에서 신나게 헤엄을 쳤지. 사실 난 아직 수영을 제대로 할 줄 모르거든 그러니깐 난 헤엄을 친 거지 뭐” 하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준식이는 그런 현식이가 부럽다는 듯이 “재미있었겠다. 난 친구들도 못 만나고 집에서 그냥 혼자 놀다가 돌아 왔어. 사실은 전학을 오고 나니까 친구들이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그러니까 동네에 나가고 싶지도 않은 거야. 나도 서먹서먹하고 말야.” “응 사실 나는 며칠이 되지도 않았잖아. 그런데 친구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데 왠지 그기에 낄 수가 없더라? 그래서 그냥 못 본 채 하고 지나 버렸어.” 현식이의 말을 듣고 준식이는 그럴 거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렇지? 나도 그래서 친구들을 만날 수가 없다니까” 이렇게 두 사람은 똑 같은 감정으로 어제 일요일을 보내고 돌아온 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금새 가장 친한 친구가돼 버렸습니다. 비슷한 처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아이들이 친해지는 것은 시간이나 어떤 조건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은 어느새 단짝이 되어서 화장실까지도 함께 따라 다니는 바늘과 실처럼돼 버렸습니다. 현식이는 오늘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를 모를 만큼 정신 없이 하루를 보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준식과 함께 나뭇그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수업시간에도 가끔씩 서로 눈을 맞추면서 보낸 하루이었기 때문에 조금도 지루하지도 않았고, 그냥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만큼 빨리 지나가 버렸습니다. 공부가 끝나고 준식과 현식이는 나란히 학교를 나섰습니다. 서울 시내의 학교들은 대부분이 한 동네를 기준으로 하는 게 아니라 아파트 단지 중의 한 단지를 기준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올림픽타운아파트 단지 내에 학교가 하나, 은마 아파트에 학교가 하나 이런 식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단지의 아이들이 끼어들 수도 없고 멀리 다른 곳을 알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몇 단지의 몇 동 몇 호 인지만 알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만난 두 사람은 이제 단 둘이서만 만나서 놀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이곳의 아이들은 날마다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찾아다니느라고 도저히 얼굴을 볼 시간이 없습니다. 밥 11시가 돼서야 집에 돌아오는 아이들과 놀고 싶다고 해서 졸 수 있는 방법이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몹시 난처하고 갈 곳이 없던 준식이가 현식이를 만났으니 여간 기분이 좋은 게 아닙니다. 그래서 현식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온갖 정성을 다하여 현식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새로운 볼거리를 찾아 준 것이었습니다. 무어라고 해도 시골에서 온 현식에게 이곳의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주고, 오락실이니, PC 방이니 하는 곳에 가보면 쉽게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준식이가 현식이를 데리고 다니는 곳은 바로 이런 새로운 것들을 볼 수 있는 곳들이었습니다. 오락실에서 나오니까 벌써 밖은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현식이는 속으로 “아차 ! 이모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하고 생각을 하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난번에 지하철을 탈 때 만난 친구라면 이모도 알고 있으니까 큰 걱정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을 놓았습니다. 그러나, 집에 들어서자마자 이모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현식아 ! 너 지금까지 어딨다가 이제 오니? 도대체 넌 이모 애를 태워 죽일 작정이니 첫날부터 이게 무슨 짓이냐? 아직 길도 잘 모르는 네가 제 시간에 안 와서 얼마나 속을 태웠는지 아니?” 이모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시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현식이는 부끄럽고 무서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병준이가 벌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현식이가 병준이를 바라보자 이모는 벌써 ‘병준이가 학원에 안 가고 웬일이에요?’ 하고 묻고 있는 현식이의 마음을 읽고 대답을 하십니다. “네가 안 와서 학원에 전화를 해서 여태 너를 찾게 한 거야.” 이 말을 들은 현식이는 미안하고 부끄러워 점점 더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날 만났던 친구 준식이 하고 같이 있었어요. 아직 친구도 없는데 둘이 만나서 이야기하고 다니다가 그만 너무 늦었어요.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할게요.” 하고 사죄를 하자 이모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아니 그럼 전화라도 해주었어야 하지 않니? 너 때문에 얼마나 야단이 난 줄 아니?” 하면서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버리셨습니다. 현식이가 이모를 붙잡아 일으켜 드리면서 “이렇게 걱정하실 줄은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친구랑 놀다가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하고 말씀드리고 나서 방으로 들어가 책가방을 내던지듯 하고선 시원하게 샤워를 했습니다. 하루 종일 흘린 땀을 씻어내니 기분도 좋아지고 새로운 각오도 생기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서 방으로 돌아오자 병준이도 금새 따라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현식이는 병준이를 붙들고 “병준아, 미안하다. 그렇게 걱정하실 줄은 모르고 친구하고 놀다가 그만......, 너까지 공부를 못하게 만들었구나. 미안하다.” “괜찮아. 날마다 하는 공부 그 핑계에 하루 쉬어서 좋지 뭐?” 하고 의외로 순순하게 쉰 것이 다행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현식이는 병준이를 붙들고 물었습니다. “너도 학원에 다니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다니고 있구나? 그렇지?” 병준이는 말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면서 현식이를 바라봅니다. “그래, 넌 어머니,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 주어야 하니까 싫더라도 참고 이겨내야지. 그리고 저녁 늦게까지 오락을 하는 것은 안 돼. 이제 그것 그만해야 돼?” “형, 난 하루 종일 공부, 공부에만 매달려 산단 말이야. 숨이 막혀 그래서 저녁 늦게라도 오락을 하면서 지친 마음을 달래는 거야. 그것도 못하게 하면 숨이 막혀......” 병준이는 울상이 되어서 현식이를 바라봅니다. 지금까지는 아버지, 어머니가 다른 방에서 주무시니까 늦게 오락을 하더라도 괜찮았지만, 이제 같은 방에서 자는 형이 말린 다면 꼼짝없이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병준의 마음을 모를 현식이가 아닙니다. 병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병준아 ! 염려 말아라. 그러나 밤 12시가 넘도록 오락을 하면 잠이 모자라서 안 되는 거야. 적어도 7시간은 자야 하는데 넌 잠을 잘 시간이 없지 않아? 그래서 걱정을 하는 거야.” “응, 알아. 그렇지만 오락을 하다 보면 시간이 가는 것을 몰라. 그래서 마음이 가라앉을 수 있나 봐.” “그게 아니야. 사실은 그렇게 마음이 답답할 때는 운동장 같은 곳에 가서 힘껏 뛰고 달리고 해서 운동을 해버리면 가장 좋은데 그럴 시간이 없으니까 걱정이구나” 현식이 말하자 병준은 눈을 반짝이면서 “형, 그런 우리 아침에 운동장에 나가서 뛰어 볼까? 형하고 같이 나간다면 어머니도 좋아 할 거야”하고 제안을 했습니다. 현식이도 그거 좋을 듯 한 생각이라고 생각됐습니다. “그거 좋겠다. 우리 말씀 드려 가지고 내일부터 아침 일찍 학교 운동장에 나가서 뛰기로 할까?” “좋아. 나 혼자는 안 내보내 주셨거든. 이제는 괜찮을 거야.” 두 아이는 기쁜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에 매달립니다. 이튿날 아침 운동을 마치고 학교에 가서 공부시간에도 아침에 뛰던 생각에 운동장이 늘 내다보이고 달리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준식이가 가까이 와서 이야기를 붙이자 현식이는 “어제 미안했어. 너무 늦게까지 놀아서 혼나지 않았니?” 하고 물었더니 준식이는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늦었다고 우리 작은 엄마에게 혼났어. 그래서 네 이야기를 했지. 이제 와서 이곳에 친구도 없고 해서 같이 놀다가 늦었노라고 했더니, 이젠 너하고 놀지 말레더라. 그게 말이 되니?단 한 번 처음으로 만나 놀다가 그런 일인데?” 하고 말했지만, 현식이도 사실 별로 좋은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부턴 같이 어울리더라도 시간이 늦지 않게 헤어지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모와의 약속도 있으니 오늘 또 늦게 들어 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학교가 끝나지 바로 집으로 돌아가서 장안에 들어 박혀서 책을 읽다가 컴퓨터에서 오락도 좀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나도 가지 않아서 한 나절이 지나기를 기다리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뒹굴다 책을 읽다 그러다가 다시 컴퓨터에 앉았다를 되풀이 하다가 간신히 저녁 시간이 됐습니다. 병준이는 잠시 들러서 저녁을 먹고서는 다시 학원으로 달려가고 다시 혼자가 됐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많은 돈을 들여서 학원에를 다니는 데 학교만 끝나면 집안에 들어 박혀서 지내기가 보통 힘드는 게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이곳에 자기가 살던 고장도 아니고 전학을 와서 이곳이 낯설고 힘드는데 갈 곳도 없으니 이만저만 힘드는 게 아니었습니다. 다음 날은 현식이도 준식이도 너무 지루하고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다는 생각이 같았기 때문에 다시 만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식이가 준식이를 따라 준식이네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준식이네 집에 들어서려다가 준식이 작은 엄마를 만났습니다. “넌 누구냐? 너 혹시 현식이가 아니냐? 그렇지? 너 때문에 전 번에 그렇게 늦게까지 놀았다는 그 아이지? 너희들 어쩌려고 또 만나서 이렇게 돌아다니는 거니? 너는 어머니도 안 계시니? 이 동네에서 학생들이 남의 집에 놀러 다니는 아이가 어디 있는가 한 번 돌아다 봐라. 아마도 너희들밖엔 없을 거다.” “부슨 말인지 모르겠니? 너 어서 가란 말이야. 우리 준식이도 공부해야 하고, 넌 공부 안 하니? 학원도 다니는 곳이 없고?” 잇달아 내뱉는 작은 엄마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현식이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현식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그 때 현식이가 무어라고 소릴 지르면서 문을 꽝 소리가 나게 닫으면서 따라 나오고 있었습니다. “현식아, 미안해! 우리 작은 엄마가 너무 했어. 내가 잘 못했으면 나를 나무라야지 왜 너에게 그런 소릴 하는 거야. 난 기분이 나빠서 견딜 수가 없어”하고 현식이를 따라 나올 생각을 한 것 같았습니다. 현식이는 “준식아 ! 넌 나랑 같이 나가면 안 돼! 그러면 너는 영영 나하고 같이 만날 수 없게 되는 거야. 이제 나는 이 집에 다시는 올 수가 없게 되는 거야. 얼른 들어가. 가서 죄송하다고 빌어. 내가 잘 못한 거니까. 얼른....” 현식은 준식을 밀어 버리고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어느새 문은 닫히고 있었습니다. 준식이 재빨리 스위치를 눌렀으나, 문은 이미 다 닫힌 상태가 됐습니다. 현식은 그대로 나서서 집으로 돌아와서 오후 내내 준식이를 생각하면서 자기는 어떨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 이모님이라도 아마 그렇게 했을 거야. 다행히 그 집으로 갔으니까 그렇지. 만약 내가 데리고 왔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 졌을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 아닌가? 아마 우리 이모는 더 했을는지도 몰라.......’ 이런 생각을 하니 준식이에게 미안한 생각뿐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당하고 난 현식이는 이제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하는 생각을 접어 두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후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학교 공부가 끝나면 모두들 학원으로 달려가고 없는데 현식이는 갈 곳이 없는 것입니다. 아직 어느 학원에도 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에 가서 시간을 보낼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 오후 시간을 보내기 위해 현식이는 갖은 궁리를 다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어머니와 이모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모르지만 아직 어디 학원엘 보내려고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학원엘 가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도 없고 특별히 배우고 싶은 것도 없는 처지입니다. 학교 공부가 끝나고 집에 돌아 와서 공부를 하다가 너무 심심해서 밖엘 나가 봐도 어느 한 곳에도 자기와 어울려 놀만한 친구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어느 놀이터에도 아이들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어느 유치원이나 놀이방의 아이들이 잠시 나와서 놀다가 가는 정도일 뿐 아이들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는 어린이 놀이터가 이곳입니다. 그래서 현식이는 혼자서 그네에 앉아서 한 동안 그네에 맡긴 채 흔들리다가 더 이상 혼자 놀기가 싫어져서 다시 골목길을 나섰습니다. 어디든지 아이들이 노는 곳이 있겠지 싶어서 찾아보았지만 어느 곳이라고 아이들이 노는 곳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 다니던 현식이 찾은 곳은 지난번에 준식이와 함께 갔었던 오락실이었습니다. 호주머니에 든 몇 천원을 가지고 신나게 오락기의 레버를 움직이고 키보드를 두들기다 보니 어느새 돈이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시간은 벌써 어둠이 내린 시각이었습니다. 현식이는 ‘아차, 또 늦었구나. 이거 큰일이 났는데......’ 하고 생각을 하며 집으로 내달렸습니다. 땅거미가 내릴 시각이었지만 서울의 거리는 벌써 가로들불이 환히 비추고 있어서 대낮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집에 들어서기 무섭게 이모는 기다리고 있다가 호령이 떨어졌습니다. “강현식 ! 너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야? 엊그제 다신 그런 짓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하시면서 현식이의 어깨를 붙들고 흔들어 대었습니다. 현식이는 마치 뼈가 없는 연체동물처럼 두 팔이 달랑거리며 흔들리도록 이모에게 몸을 맡긴 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현식아, 도대체 무엇이 그리 불만이니? 너 이모에게 뭐 할 말이 있을 거 아니냐? 왜 이렇게 집안에 붙어 있지 못하고 밖에만 나가서 돌아다니는지. 그 이유가 있을 거 아니냔 말이야.” 하고 물으셨습니다. “..........................” 현식은 고개만 숙이고 아무 대답도 라지 않은 채 그대로 있다가 이모가 어깨를 놓아주면서 “아니 이제 며칠이나 되었다고 이렇게 속을 썩히니? 이러다간 이모가 못 견디겠다. 중학교에 입학하도록까지 어떻게 견디겠어 이렇게 해 가지고 말야.” 속이 상해서 못 견디겠다고 속이 상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셨습니다. 현식이는 “이모, 난 지금 여기 와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무엇을 모르겠다는 거니? 무얼 알고 싶은데?” “다른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모두 어디론가 가버리고 나는 어디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지 않아요? 아이들처럼 학원에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 놀 수 있는 곳도 없고. 또 무얼 어떻게 하라고 일러 주시는 것도 아니고, 날 더러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요. 나 혼자서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지금 헤매고 있는 거예요. 왜 무얼 어떻게 할 수 있게 해주지도 않는지 나야말로 알 수가 없어요.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요?” 현식이가 말을 하자, 이모는 가만히 현식이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 넌 아직 학원도 등록을 안 했고, 친구도 없고, 여긴 친구가 있다고 친구네 집에 가서 놀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네가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구나. 미안하다. 그래 어머니하고 의논을 해서 결정을 해보자”하고 말씀을 하시면서 현식에게 더 이상 꾸지람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현식은 씻지도 않은 채 자기 방으로 돌아와서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혼자 생각에 잠겨 봅니다. ‘이제 학원에를 다녀야 할텐데, 과연 무슨 학원에를 보내 달라고 할까? 컴퓨터 학원? 태권도 학원? 음악학원은 취미가 없어서 안 될 것 같은데 무어 할만한 것이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심각한 수준의 청년실업, 중소기업의 인력난, 허리가 휘는 사교육비지출, 저소득층의 교육복지 등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직업교육 활성화에서 찾고자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문대를 고등단계 직업교육의 중심기관으로 육성하는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중 교육부가 추진하는 정책 하나가 전문대에만 제한된 수업연한을 다양화해 직업교육의 수준을 시대의 요구에 합당하게 끌어 올리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일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전문대 수업연한 다양화가 왜 절대적으로 필요한지에 대해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는 산업구조에 따른 직업의 변화다. 1979년 직업교육을 목적으로 전문대 제도가 도입될 당시와 지금 지식사회의 직업세계는 너무도 다르다. 과거의 직업은 비교적 단순하며 기능 위주였지만,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직업의 세계가 매우 다양해지고 있으며 요구하는 지식과 기술의 수준이 더욱 높아가고 있다. 교육법에서 전문대의 교육목적은 ‘전문직업인’ 양성으로 명시돼 있다. 따라서 산업수요에 맞는 인재양성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이 제한된 수업연한 제도가 반드시 개선돼야만 한다. 둘째는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환경 변화다. 전문대가 시작됐던 1979년의 교육환경은 지금과 매우 다르다. 당시에 4년제 대학은 극소수였으며 전문대가 초급대학의 역할을 담당했다. 4년제 대학은 모두 학술중심의 대학이었고 전문대는 간호 및 공학교육을 중심으로 한 직업중심대학으로 역할분담이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은 고졸자의 70% 이상이 대학을 진학하는 고등교육보편화 시대를 맞고 있어 초급대학의 필요성도 없어진지 오래다. 또한 대학진학의 목적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취업을 위한 실용교육을 받는 것으로 변모했다. 이러다 보니 4년제 대학들도 전문대학의 실용학과들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안경광학, 피부미용, 애완동물 등은 과거에는 전문대에서만 볼 수 있었던 학과들이다. 이렇게 일반대와 전문대의 교육영역 구분이 없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전문대만 수업연한을 규제하는 것은 형평성의 논리에서도 맞지 않다. 셋째는 우리나라 고등직업교육의 세계화다. 해외의 대부분 국가들에서는 이미 전문대(Non-University)로 분류되는 대학들이 대학원까지 직업교육을 다양한 수준으로 하고 있다. 그 결과 자국의 우수한 산업인재양성 뿐만 아니라 많은 유학생 유치에도 성공적으로 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 학생들이 놀라운 경제발전을 보며 직업교육을 위한 유학을 많이 희망하고 있지만, 수업연한의 규제로 인해 우리 전문대학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요즘 한식을 비롯한 한류 문화의 세계화가 급속히 이뤄지고 있다. 이런 한류문화에 대한 교육과 연구는 그동안 전문대에서 지속적으로 해왔다. 많은 세계 최고 수준의 요리사, 패션 디자이너, 연예인 등을 전문대에서 배출했다. 지속적으로 한류문화를 세계에 확산할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학업의 시간이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전문대 수업연한 다양화를 전문대가 무작정 4년제 대학이 되려는 것이라는 오해와 대학구조조정에 역행한다는 점 그리고 과연 전문대에서 4년제 학사학위를 위한 교육을 충실히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 반대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우려일 뿐이다. 전문대는 철저히 4년제 일반대와 차별화된 직업교육을 행할 것이다. 이미 색깔 없는 4년의 교육은 실업자 양산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학구조조정은 전문대 수업연한 다양화와 별개의 문제이며, 지금의 전문대학 입학정원을 수업연한에 맞게 줄이면 대학정원이 늘어나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아울러 전문대의 교육역량을 의심할 필요는 더욱 없다. 이미 전문대 교원의 자격이 일반대 교원과 법적으로 단일화 돼 있다. 그리고 전문대도 전공심화과정을 통해 많은 수의 학사를 배출한 경험이 있으며, 간호 분야에서는 정규 4년제 학과를 정상적으로 잘 운영하고 있다. 전문대의 수업연한 다양화는 때 늦은 감이 있지만 하루속히 법제화가 이뤄져 전문대에서 수학하는 학생들에게 불이익이 없도록 해야 하며, 아울러 전문대가 일반 4년제 대학과 차별화된 고등단계 직업교육의 중심기관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요즘 기간제 교사의 채용이 늘어나면서 일선 학교에서 각종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왜 이러나 할 정도로 가득이나 위축된 교사들에게 찬물을 끼얹은 일이다. 기간제 교사는 정규교사의 일시적인 결원으로 인해 학교장이 자율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육아휴직, 질병, 연수 등 다양한 휴직교사가 늘면서 기간제 교사들의 크고 작은 교단의 사건·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더욱이 기간제 교사들의 문제가 전체 교원의 자질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기간제 교사 채용과 관리제도를 정비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기간제 교사도 엄연한 교사임에도 우리 학교사회는 정규교사와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는 인식부터가 문제이다. 특히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들까지도 기간제 교사를 꺼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매년 학년초나 학기초가 되면 관리자들의 최대 고민이 ‘기간제 교사 배치를 어느 학년, 어느 학급에 배치할 것인가.’이다.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라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지만, 학부모들은 여러 채널을 통해 이들을 찾아내어 이런저런 말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싫어하는 것이다. 왜 우리 아이의 교사가 ‘기간제’여야 하는 볼멘소리다. 교육부에 따르면 정규 교원 수는 2010년 39만3009명에서 2012년 39만3072명으로 큰 변화가 없지만 같은 기간 기간제 교원 수는 2만5806명에서 3만9974명으로 54.9%나 늘었다. 이는 육아 휴직 교사가 많이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정규 교사 중 육아 휴직자는 2010년 2만5806명에서 2012년엔 3만9974명으로 증가했다. 또 지난해부터 중학교를 중심으로 복수담임제를 시행하면서 늘어난 담임 수요를 기간제 교사가 채우고 있다. 작년 기준 전체 기간제 교사의 45.9%가 담임을 맡았다. 전체 담임교사 가운데 기간제 교사의 비율은 7.6%다. 여기에 2009년 이후 학교가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편성할 수 있도록 바뀌면서 각 학교에서 전문교과를 가르칠 교사가 필요해 기간제 교사 채용이 늘어나게 됐다. 문제는 늘어나는 기간제 교사에 대한 채용과 관리 체계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중등의 경우와는 달리 초등의 경우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학기초에는 다소 많은 교사자원 중에서 채용이 가능하지만 2학기부터는 교육수요자가 원하는 젊고 유능한 교사는 눈을 씻고도 찾은 수 없다. 그래서 농산어촌은 정년을 넘기 65세까지 채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기간제 교사 개개인에 대한 과거 교육이력의 검증 자료가 없다는 점이다. 근무경력만으로 교사의 인성이나 특성은 전혀 평가의 잣대를 델 수 없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 또한 한시적으로 특정 학년이나 교과를 맡아줄 교사들 찾다보니 꼼꼼한 검증 절차를 거치기 어렵다. 현행 기간제 교사 채용 절차는 지역교육청에 구직사이트에 일정기간 공고를 하고, 학교에서 심의위원을 조직해 1차로 서류검토 후 복수의 수업시연을 거쳐 면접을 통해 최종 후보를 선정하게 되어있다. 나름대로 학교의 채용절차도 그리 녹록치는 않아 업무 담당자인 교감선생의불만도 없지 않지만 채용의 공정성은 어느 정도 확보한 셈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채용 이후의 관리다. 기간제란 이유로 학교나 학년업무 등의 거부는 물론 책임감까지 부족하다는 것이다. 신규교사들은 그런대로 열심히 배우려고 하지만 경력교사들은 다르다. 걸핏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등등의 이유로 정규교사들과의 마찰도 없지 않다. 이번에 각종 문제나 사건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신규교사보다는 경력교사들이다. 세상이 바뀌고 변했는데도 불구하고 과거의 관행적인 학생지도로 일어나 일들이다. 따라서 기간제 교사의 구조적인 이력관리가 필요하다. 단지 자격증만 가지고 있다고 서류심사에 통과하는 것보다 기본적으로 새로운 교육과정, 교수방법, 연수실적 등을 서류심사 항목에 추가해 항시 기간제교사로 자질을 평가할 수 있고 관리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조건이 약간 불리하다고 금방 그만두면 된다는 의식이 사라지지 않은 한 기간제교사의 문제는 요원하기만 할 것이다. 즉 기간교사도 정규교사와 못지않은 이력관리의 평가요목을 체계화해야 부적격 교사들이 다시는 교단에 설수 없게 해야 한다. 그리고 우수한 스펙을 가진 교사를 우선 채용하는 제도의 보완도 필요하다. 지금처럼 기간제 교사가 정규교사에 준하는 각종수당과 성과상여금까지 지급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사명감이나 책임의식도 정규교사와 같은 수준으로 함께 높여야 한다. 이젠 기간제 교사가 단지 땜질식 학교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라는 인식에서벗어나, 이들의 채용제도와 이력관리의 획기적인 개선으로 우리 교육의 든든한 새로운 동반자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리고 공무원 신분에 준하는 만큼 이들 스스로도 교사로서 지녀야할 사명감과 탄탄한 책임의식도 함께 가져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