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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교육감 교육경력 요건 3년 유지’를 골자로 지난달 28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통과한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이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보류로 통과가 무산됐다. 이에 따라 법안 처리를 위해 이날 2시 예정이던 국회 본회의도 열리지 못했다. 법사위의 심사보류 이유는 지난 2010년 법 개정으로 올 6월 교육감 선거부터 후보자 경력요건이 폐지되는 것을 전제로 선거를 준비해온 후보자들의 신뢰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위헌소지’ 때문이다. 이에 교총은 즉각 성명을 내고 “국회 정개특위는 헌법 제31조 제4항에서 명시한 교육의 전문성 보장을 위해 여야 합의로 교육경력 요건을 부활시켰다”며 “법사위가 이를 무시하고 심사를 보류한 것은 스스로 입법권을 포기한 행위인 만큼 조속히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이어 “4일 교육감 예비후보 등록을 앞두고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법적 문제 소지가 있음을 정치권 스스로 잘 알면서도 늑장처리로 발생한 책임은 전적으로 정치권에 있다”고 비판했다. 교총은 “정개특위 합의사항은 국민과의 약속으로서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범교육계 단식농성 등 가능한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강력히 투쟁할 것”이라며 “더 이상의 혼란과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속히 법사위와 본회의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법사위는 개정안 심사를 5일로 연기하고 여야 원내대표단에 재논의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6⋅4지방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마치 선언을 빨리 하면 찜이라도 된다는 듯 출사표가 잇따르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무슨 놈’의 인재가 그리도 넘쳐나는지 즐거운 비명이라도 질러야 할 판이다. 선거출마는, 계속 퇴보의 길을 걷고 있긴 하지만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이니 각자의 자유일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광역단체장 출마선언 등 아무 거림낌없이 지방선거 이야기도 회자되고 있다. 출마선언을 이미 했거나 출마 예정인 국회의원들 보도가 그것이다. 심지어 각 당의 차출설까지 나와 이맛살을 더 찌뿌리게 한다. 지난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국회의원 중도하차하여 서울시장이나 도지사 출마하라고 당선시켜준 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문득 “임기를 마치겠다는 18만 교총 회원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새누리당의 공천 제의를 거절했던 한국교총 안양옥 회장이 떠오른다. 사실은 언론에 보도될 만큼 기사가치조차 없는 당연한 임기 수행이지만, 지난 19대 총선에서 안 회장의 불출마가 돋보인 것은 그렇지 않은 이들이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 도의회 의원 등을 막론하고 도처에 있어와서다. 가령 어느 교원단체 회장은 임기중 홀연 국회의원으로 진출했다.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동작을을 당시 정동영 후보와 맞장뜰 정몽준 의원에게 내주는 ‘수모’까지 겪으며 건진 국회의원직이었다. 그런 당에 대한 충성 덕분인지 그는 19대 총선에서도 경남의 어느 지역구 공천을 받았고, 당선되었다. 안 회장은 “교육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응당 옳은 말이지만, 약속 지키는 일은 교육자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염치를 알고 도리가 무엇인지 실천해나가는 일은 짐승 아닌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소중한 일이다. 바로 ‘인간의 도리’이다. 하물며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는 선출직 공직자임에야 더 말해 무엇하랴. 지난 19대 총선에서도 그런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팽개친 후보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지자체장과 도의회 의원들을 들 수 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뽑힌 그들은 임기가 2년 이상 남았는데도 온갖 아전인수적 명분을 내세워 중도하차하는 행태를 보였다. 더욱 가관은 유권자와의 약속을 어긴 이들이 주요 정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점이다. 신의없는 후보들의 국회의원 당선이라는 ‘개판’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신의 없는 사람을 뽑아달라고 내세운 정당이나 그들에게 표를 주는 유권자들의 ‘개념없기’가 막상막하라 해야 할까! 다가올 지방선거에서는 반대로 그 국회의원들이 임기가 창창한데도 ‘주제넘은 짓’을 벌이려고 한다. 주제파악을 못했든 어쨌든 총선에서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들을 배신하려 하는 것이다. 당내 경선이든 본선에서 낙선하면 그들은 다음 선거에서 또 무슨 ‘대의’를 내세우며 유권자 앞에 나타날지, 벌써부터 궁금할 지경이다. 그렇게 정치를 해선 안된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인간의 도리를 중도하차하는 선출직 국회의원들만 모른다면 너무 슬픈 일이지 않은가? 결국 사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중도하차후 출마를 거리낌없이 ‘자행’하는 그들이 만에 하나 당선이라도 되면 서울시정이나 도정(道政)은 또 어떻게 되는 것인가? 멀쩡한 국회의원들이 떠난 지역구 보궐선거에 드는 막대한 비용도 그렇지만, 그들의 무지몽매가 정치불신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손실이다. 끝내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져 국민이 ‘니들끼리 다해먹어라’하며 정치를 아예 내팽개친다면? 생각만 해도 오싹 소름끼칠 일 아닌가?
오늘은 봄을 알리는 입춘이다. 봄이 서는 날이다. 하지만 봄 냄새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한겨울 못지않게 춥다. 울산만 해도 오늘 아침 영하 6도의 날씨다. 이럴 때 건강관리 잘 해야 하겠다. 전영택의 ‘화수분’에서 배울 점이 있다. 화수분의 사람됨이다. 화수분은 주인을 보면 어느 때든지 그 방에서 고달픈 몸으로 밥을 먹다가도 얼른 일어나서 허리를 굽혀 절하는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우리가 창의인성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이 먼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이 실력이고 학력 향상이고 기술을 익힘이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다. 화수분과 같이 예의 바른 사람이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얼마 전 분당에서 지하철을 탄 적이 있다. 노인석에 한 노인께서 앉아 계시다가 더 나이가 많은 분이 올라오니 자리를 양보하였다. 아직도 어른들은 우리의 아름다운 예의범절을 지니고 계셨다. 우리 학생들에게도 이런 교육은 반드시 시켜야 할 것 같다. ‘화수분’에서 배울 점은 형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형이 시골에서 일하다가 발을 다쳐서 일을 못하고 누워 있기 때문에, 굶어죽을 형편이니 내려오라고 하니 두말도 하지 않고 시골에 내려갔다. 추수나 해주고 오겠다고 했는데 일주일이고 보름이고 한 달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 자기 집도 먹을 것이 없어서 어려운 형편이다. 큰 딸은 남의 집에 보낼 정도다. 그런데도 형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해 자신을 희생하고 가정을 희생하였다. 형제를 사랑하고 형제우애를 지키는 교육이 필요하다 싶다. 또 하나 배울 점은 가난한 가운데서도 사랑하는 마음이다. 남편의 소식도 없고 어린애가 있어서 다른 일도 할 수 없고 다리병이 있어 다리를 잘 못쓰고, 더구나 손가락을 다쳐 일을 하지 못하는 그런 형편이다. 그런데도 남편이 가 있는 시골에 가서 살 각오를 하고 시골을 가기로 하였다. 보통 마음으로는 갈 수 없다. 아내의 걸음걸이로 일찍 집을 떠나도 이틀이나 걸어야 하는 거리다. 그래도 어린애를 업고 고향을 향해 떠나는 아내의 마음이 아름답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이는 아내밖에 없다. 오늘처럼 날씨가 매우 추워 아내와 어린애가 어떻게 지내나 싶어 아내가 있는 곳으로 오고 있다. 남편의 걸음으로도 꼭 하루가 걸린다. 서로를 걱정해서 남편을, 아내를 만나기 위해서 떠나는 그들의 사랑의 마음을 배울 만하다. 형편이 좋으면 사랑하고 형편이 어려우면 사랑하지 않으면 진정 사랑이라 할 수 없다. 이들에게서 배우는 사랑 속에는 희생이 묻어있다. 희생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 같다. 어떤 형편에 처해도 늘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는 교육이 학생들에게 필요하다 싶다. 또 하나 배울 점은 주인의 작은 사랑이다. 그들에게는 지금 입고 있는 단벌 홑옷과 족만 남비 하나밖에 아무것도 없다. 세간도 없고, 물론 입을 옷도 없고, 덮을 이부자리도 없고, 밥 담아 먹을 그릇도 없고 밥 먹을 숟가락 한 개가 없다. 이럴 때 밥은 주인집에서 내어간 사발과 숟가락으로 먹는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작은 배려이지만 그들에게는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작은 정성과 배려가 어려운 사람을 살리는 힘이 된다. 교육은 사랑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학생들을 잘 길러낼 수 있다. 건강한 학생으로 성장하게 할 수 있다. 힘들 때 사랑을 베풀면 그 사랑은 오래간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 큰 힘을 발휘한다. 또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동료 선생님이나 직원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어려울 때 조그만 힘을 보태면 그게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 작년에 한 직원 중 화재로 인해 어려움을 당했을 때 교직원들과 학생들의 작은 정성과 배려가 큰 힘이 된 것을 보았다.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시키지 않아도 학교 안팎을 관리하게 되고 시설물에 대한 관심도 가지게 된다. 학교가 산 중턱에 있어 가끔 물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관계되는 직원들은 밤을 새운다. 이런 게 학교사랑이다.
子曰學而時習之不亦說乎(배우고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에 자왈(子曰)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자(子)자는 스승을 나타내는글자이다. 논어의 자왈(子曰)은 공자의 가르침을 뜻한다. 하지만 공자 이외의 사람의 가르침은 맹자왈(孟子曰), 노자왈(老子曰)처럼 가르침을 준 사람의 이름을 붙였다. 논어는 공자의 언행을 제자들이 기록한 책이기 때문에 굳이 스승님의 이름을 기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스승님의 존함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제자로서 예의를 다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서 기원전 479년까지 73세를 살았다. 공자는 주나라의 여러 제후국 가운데 약소국인 노나라 추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지금의 산동성 곡부에 해당 한다. 본래 노나라는 주나라 초기의 공신인 주공의 후손의 땅이었다. 공자가 그리던 인물은 주나라의 문물제도를 완비하고 통치 기반을 다진 주공이다. 따라서 곡부는 비록 작은 땅이기는 해도 상당한 문화수준을 가졌다. 공자사상은 이러한 문화적 토양과 무관하지 않다. 공자의 집안은 몰락한 귀족으로 아버지 숙량흘은 하급 무사였다. 공자의 출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공자의 아버지는 몸이 성한 자식을 갖고 싶어서 뒤늦게 안징재라는 여자를 만났다고 한다. 그때 얻은 아이가공자라고 한다.당시 숙량흘은 70세가 넘었고, 안징재는 어린 소녀였다고 한다. 이러한 나이 차이 때문에 사마천은 ‘野合而生’(야합해서 낳았다)이라고 공자의 출생을 기록했다. 야합(野合)이란 들에서 합쳐 태어났다는 뜻이다. 이는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었음을 뜻한다. 그래서 사생아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런데 중국학자들은 공자를 폄하하는 기록이기 때문 온갖 근거를 동원하여 미화하였다. 어떤 주장은 어머니가 이산(尼山)에 기도를 드려 공자를 낳았다고도 했다. 공자의 얼굴은 머리 가운데가 들어가고 바깥이 불룩해서 마치 언덕 모양을 연상했다. 그래서 이름을 구(丘:언덕)라고 지었다는 말이 있다. 공자에게는 10명의 많은 누나들과 형이 하나 있었는데 형은 몸이 성치 못했다. 아버지 숙량흘이 안징재를 만난 것도 똑똑한 아들은 얻기 위함이었는지 모른다. 공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 붙여진 또 다른 이름은 중니(仲尼)인데, 중(仲)은 둘째 아들이라는 뜻이며 니(尼)는 앞에서 말한 이산(尼山)에서 따왔다고 한다. 공자의 부친은 공자가 세 살 때 돌아가고, 모친은 그가 24세 때 세상을 떠나 가난하고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불우한 환경 때문에 공자는 15세가 되서야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나 학문에 있어서 누구 못지않은 열정이 있었다. 공자는 19세 때(B.C. 533년) 견관씨의 딸과 혼인하고 다음해 아들 리를 낳았다. 공자는 결혼하던 해에 벼슬길에 나갔다. 사회에 나가 젊은 공자는 정원을 관리하고 가축을 돌보기도 하고 창고에서 물건을 내주고 받는 맡아했다. 공자의 이런 경험은 백성들의 어려움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공자가 살던 당시를 춘추시대(春秋時代)라고 한다. 춘추시대(春秋時代)라는 이름은 노나라 역사서인춘추(春秋)에서 유래되었다. 하지만당시는 주나라가 멸하고 작은 나라들끼리싸움을 그치지 않아 봄철에 씨앗을 뿌릴 수도 없고 가을에 추수할 겨를도 없었다.이 때문 추운 겨울을 나기도 어려워 굶어 죽는 사람까지 생겼다. 또한 신분제도가 크게 흔들려 좋은 관리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관리를 조달하기 위해 명망 있는 학자들이 가르친 사람을 찾았다. 이 시기훌륭한 사상가들을 많이 배출된 것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 때문이다. 이는 또한 비슷한 시기 그리스의 소피스트(Sophist)와 비슷하다. 공자는 무엇이 바른 인간관계이며 무엇이 바른 정치인가,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 끝임 없이 학문을 닦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자의 가르침은 통치의 기본이 되었으며 인간관계에서 지배적인 자리를 차지했다. 공자의 탄생이 사생아라 해서 공자의 위대성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역경을 극복하고 일어선 점에서 위대성은 돋보인다.
“남산 위의 저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우리 민족은 소나무와 함께 운명을 같이 했다.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숯 덩어리로 금줄을 치고,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소나무 땔감을 구해 겨울을 이겨냈다. 죽을 때에도 소나무로 만든 집안에서 앓다가 소나무로 만든 관에 누워 거름이 되는 삶을 선택했다. 그래서 소나무는 민족의 나무로 불렸다. 소나무는 벼슬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세조로부터 하사받았다는 정이품송이 그것이다. 소나무에게 벼슬을 내린 것은 중국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소나무를 나타내는 ‘松’의 유래는 진시황이 소나무 아래서 비를 피한 뒤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짐이 이 나무에게 ‘公’을 주겠노라,’했다고 한다. 그래서 ‘木公’으로 불리다가 훗날 두 글자가 합쳐져 ‘松’이라는 한자가 생겨났다는 말도 있다. 公은 당시 벼슬 품계 중에 가장 높은 자리이다. 소나무는 궁궐을 지을 때 사용한 나무이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지을 때 사용했던 소나무는 강원도 소나무(金剛松)였다. 지금도 우리나라 도처에 궁궐을 지을 만한 나무에 벼슬을 내린 나무가 몇 그루 있으며영동지망에도 있다. 몇 해 전 우연히 남쪽 지방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다도해를 배경으로 우거진 산봉우리 활엽수가 남쪽지방임을 말해주었다. 언젠가 이곳에서 본 잎사귀 두툼한 나무가 정겨워서 다가가 보니 동백나무, 대나무 등 남쪽지방에서 흔히 보이는 활엽수 사이 소나무도 있었다. 그런데 이곳 소나무는 눈에 익은 영동지방 소나무와 달랐다. 잠자다 일어나 머리카락도 다듬지 않은 채 눈비비고 하품하는 여인과 같은 모습, 나는 그곳에서 본 소나무를 통해 잊고 있던 강릉의 소나무가 다시 생각났다. 푸른 청년의 기개, 눈 덮인 겨울이면 그 빛을 더욱 발하는 강릉의 소나무 말이다. 나는 소나무에 대한 생각을 다시 찾으려고 고향 길에 올랐다. 그러니까 이번 겨울 나는 소나무를 보고 싶어 고향인 강릉을 찾아갔다. 나는 혼자 버스에 올라 차창너머 산봉우리를 감상했다. 신갈 인터체인지에서 영동고속도를 접하여 한참을 가니 부드러운 곡선의 산봉우리가 사라지고 울창한 산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원도로 접어든 것이다. 자동차가 한참을 더 달리더니 대관령이 나타났다. 백두대간이다. 나는 소나무와 함께 백두대간도 사랑한다. 소나무가 우리나라 나무라면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강원도의 산은 우리나라 등줄기임에 틀림없다. 또한 서쪽의 산봉우리가 여인의 곡선을 나타내는 편안함을 주는 산이라면 백두대간은 수직적인 남성적 산줄기이다. 험준한 바위와 산세, 우거진 나무가 그렇다. 그러나 강원도의 산을 남성적으로 만드는 데는 소나무 때문일 것이다. 눈 덮인 대관령 정상에서부터 만나는 소나무는 젊은이의 기개를 일깨워준다. 푸르고 꿋꿋한 자세는 어떠한 일에도 흔들림 없는 선비의 모습이다. 대관령 고갯마루를 지날 때 이어지는 산자락을 보면 군데군데 낯설지 않은 침엽수림이 강릉을 배경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침엽수림 가운데는 소나무가 으뜸이다. 나뭇가지 여지 저기 피어난 눈 꽃, 휘어진 나뭇가지, 차가운 밤바람을 몸으로 막아내고 아침을 맞이하는 자태에서 지조와 인고, 그리고 겸손을 배우지 않을 수 없다. 겨울이 있기에 강릉 소나무로 된 것은 아닐까? 무겁게 누르는 겨울의 눈에서 겸허함을 배우고 추위를 통해 인고를 배운다. 이러한 겨울이 있기에 강릉의 소나무로 된 것은 아닐까? 그러기에 나는 강릉 소나무를 사랑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소나무와 친근하다. 소나무는 친근한 만큼이나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생육하는 장소에 따라 육송(陸松) 또는 해송(海松)으로 불리고, 껍질 색깔에 따라 적송(赤松), 곰솔(黑松) 등으로 나뉜다. 이 밖에도 키가 작고 가지가 옆으로 퍼진 소나무를 반송(盤松), 줄기가 곧으면서 마디가 길고 껍질이 유별나게 붉은 것은 금강송(金剛松)이라고 한다. 영동지방의 소나무는 금강송(金剛松)과 검은 색을 띄는 곰솔(黑松)로 이루어져 있다. 금강송은 흔히 춘양목이라고 하는데 금강산에서 시작하여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까지 분포하며 목질이 단단하여 궁궐이나 절집을 지을 때 사용하였다. 금강송은 얼마전 숭례문 복원에도 사용하였다. 마을과 어우러져 자태를 자랑하는 영동지역 금강소나무는 풍치를 더해준다. 강릉의 고가는 의례히 소나무를 배경으로 한다.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시인인 허난설헌의 생가도 소나무로 둘러싸여있고 이율곡이 탄생한 오죽헌도 군데군데 금강소나무로 둘러싸여있다. 경포 호, 배다리 선교장도 금강소나무를 뺄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송림, 구정면 솔밭, 보광리 명주군왕길 등과 같이 사람들이 모여 사는 대부분 강릉지역의 마을은 금강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기에 금강소나무 없는 강릉은 생각하기도 어렵다. 금강소나무가 있기에 기품이 넘치고 넉넉함이 우러나와 여유와 멋스러움을 더하는 것이다. 하늘을 맞서지 않고 살짝 구부리는 모습은 가히 군자의 모습이다. 숲을 이룬 나뭇가지는 조화롭게 소통하며 춤을 추는 듯하다. 반쯤 아래로 뻗은 가지, 구부러진 가지는 선비의 겸손과 여유를 나타내며 조화를 이룬다. 소나무 숲을 거닐며 풍겨 나오는 냄새를 맡다보면 군자와 함께 삶의 향기를 맡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강릉에는 소나무((松)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송정, 송림, 팔송정 등은 소나무를 뜻하는 지명이다. 임진왜란 때는 강릉이 소나무로 인하여 왜군한테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도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 침공을 앞두고 그의 누이가 점을 쳐보니 조선에 가서는 「松」자를 조심하라는 점괘가 나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동생의 말을 듣고 조선에 가서 「松」자를 조심하라고 참모들에게 엄명을 내렸다고 한다. 조선을 침공한 왜군들이 대관령에서 강릉 송정마을을 내려다보니 붉은 군복을 입은 군사들의 모습이 있었다. 부하들의 보고에 왜장도 놀라서 ‘저것은 대체 무어냐?’라고 묻자 참모가 솔숲에 있는 군사들이 틀림없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왜장은 송(松)자를 조심하라는 생각이 나서 겁에 질려 다른 곳으로 갔다고 한다. 당시 강릉 송정마을에는 가을철 수수를 베어 말리기 위해 소나무에 매단 것이 붉은 옷을 입은 군사처럼 보였다고 한다. 강릉의 소나무는 강릉 사람들에게 강릉을 지키는 정신적인 지주였다. 이렇듯 강릉의 소나무가 남쪽 지방과 다른 것은 겨울철 칼바람과 두껍게 덮여있는 눈을 이겨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인내, 그리고 겸손과 여유를 배우며 마을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강릉 여행 길 금강소나무 숲을 만나면 치유의 힘과 평온을 찾을 수 있다.
지난달 23일부터 이틀간 아내와 전라남도 신안군의 증도를 오가며 주변을 돌아보는 여행을 다녀왔다. 증도는 우리나라에서 국제슬로시티인증을 받은 11곳 중 하나로 주변이 오염되지 않은 청정해역이고, 단일염전으로는 국내 최대인 태평염전이 있으며, 침몰한 선체를 비롯해 도자기와 동전 등 14세기 중국 원나라 시대의 고대 유물이 많이 발견된 곳이다. 전남의 남서쪽 해안은 청주에서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장거리 여행은 피로를 이겨낼 만큼의 체력도 필요하다. 1년 전 구입한 애마 QM5가 경부, 호남, 서해안, 무안광주고속도로를 갈아타며 3시간 30여분 부지런히 달린다. 차창 밖으로 서해안의 질퍽한 갯벌이 보이고 처음 도착한 곳이 전남 무안군 망운면 송현리에 있는 조금나루해변이다. 조금나루해수욕장은 마을 끝에 툭 불거져 나온 백사장이 4㎞나 되고 곰솔 숲이 울창한 천혜의 해수욕장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황홀한 낙조와 기절낙지가 별미다. 아내와 둘째 아이가 같이 했던 전남 백경 여행 중 이곳에서 맛있게 먹은 세발낙지가 생각나 들렸으나 비수기라 횟집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 세발낙지에서 세발의 '세'는 숫자 3이 아니라 '가늘다'는 뜻의 한자어로 소주와 함께 가늘고 긴 세발낙지를 나무젓가락에 감아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차를 몰아 조금나루에서 바라보이는 무안군 현경면 오류리의 홀통해변으로 갔다. 울창한 해송과 긴 백사장이 장관인 홀통해수욕장은 수심이 낮고 파도가 잔잔하여 해수욕, 야영, 바다낚시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여름 피서지로 윈드서핑 대회 개최 등 해양스포츠의 최적지다. 겨울철의 해수욕장은 사람이 없어 왠지 쓸쓸하다. 남북이 휴전선으로 나뉘듯 찬바람이 불어오는 송림과 햇볕이 따뜻한 백사장이 눈길을 경계로 대립하고 있는 풍경도 이색적이다. 홀통해변을 나와 24번, 77번 국도를 달리며 일출과 일몰을 같은 장소에서 볼 수 있는 도리포로 향한다. 어느 지역이든 길가의 풍경에 특색이 있다. 이곳에서는 밭에 가득 심어져있는 양배추와 멋진 모습을 자랑하는 팽나무가 자주 보인다. 도리포로 가는 길에 수암교차로에서 가까운 무안생태갯벌센터(http://getbol.muan.go.kr)에 들린다. 동쪽 바닷가에 위치한 생태갯벌센터는 습지환경과 갯벌의 중요성을 배우는 국내 최대의 자연생태학습장으로 지하 1층과 지상 2층 규모의 내부 전시관과 외부에 갯벌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전시관 내부는 갯벌과 갯벌 생물의 다양한 특징을 학습할 수 있도록 3D입체 영상으로 갯벌생물들을 만나는 다목적 영상관을 비롯하여 갯벌생태관과 갯벌탐사관을 갖췄다. 전시관 밖으로는 넓은 갯벌생태공원이 펼쳐져있다. 갯벌생태공원은 생태공원, 생태체험장, 야외학습장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최고의 자연생태학습장이다. 나무데크를 따라 걸으면 갯벌이 넓게 펼쳐진 바닷가 풍경과 바다헌장비 조형물 등을 만난다. 무안생태갯벌센터에서 바닷가 길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고개를 내밀고 함평만을 바라보고 있는 전남 무안군 해제면 송석리의 도리포에 도착한다. 북동쪽으로 길게 나온 지형이라 동쪽 바다의 일출과 포구 반대편 칠산바다 방향의 일몰을 함께 즐길 수 있어 매년 1월 1일이면 대규모 일출 행사가 개최되는 곳이다. 시멘트로 만든 2층 정자가 맞이하는데 길의 끝에 있는 갯바위가 희망봉(환선바위)이고 희망봉 위에 앉아 두 손을 모은 채 먼 바다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여인상 옆에 행운을 비는 나무(무안군 보호수)가 있다. 희망봉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면 건너편의 함평항이 가깝게 보인다. 함평항과 도리포가 연결될 날도 멀지 않다. 영광군 염산면 옥슬리 향화도와 무안군 해제면 송석리 도리포를 연결할 영광대교 공사가 진행 중이다. 희망봉 앞 방파제 끝에 낙지조형물도 있다. 자그마한 포구에 횟집이 늘어선 도리포는 영광군과 함평군을 경계로 하는 칠산바다와 인접해 바다낚시를 즐기고 숭어회가 맛있는 곳으로 소문이 났다. 도리포는 중국과 가까웠던 포구로 인근바다에서 고려시대의 상감청자 639점이 인양되어 국가사적지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도리포에서 증도까지는 해제면과 지도읍, 솔섬과 지도대교, 사옥도와 증도대교를 지난다. ‘천사섬 신안’을 알리는 표지판, 다리 밑의 한가로운 바다풍경,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관광 100선 2위 증도’ 표지판, 붉은색의 증도대교가 인상적이다. 증도의 낙조를 보기 위해 증도면사무소를 지나 서쪽 끝으로 간다. 이곳에 신안해저유물발굴기념비, 낙조전망대, 보물섬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앞 바다에 소단도, 대단도, 내갈도, 외갈도 등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나무데크로 연결된 소단도에 신안해저유물발굴기념관이 있다. 주변의 풍경을 돌아보고 한참동안 증도 바다의 멋진 낙조를 구경했다. 인생의 끄트머리가 저렇게 아름다웠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해가 넘어가자 사방이 어둠으로 물든다. 여행지에서는 먹거리와 잠자리 잘 찾아다니는 것도 중요하다. 보물섬로 바닷가에 있는 갯풍황토펜션(061-271-0248)으로 갔다. 펜션에서 민어·장어 정식과 짱뚱어탕을 전문으로 하는 갯풍식당(010-3602-3544)을 운영하고 있어 먹거리와 잠자리를 한 곳에서 해결하는 것도 장점이다. 세상은 참 좁다. 얘기를 나눠보니 여주인의 여동생이 청주시 복대동에 살고 있다. 정직한 맛과 정성으로 모시는 주인 내외의 인심이 후하고 식당 바로 앞에 바다 쪽을 제방으로 막은 타원형 저수지 '증서지'가 있어 경치도 좋다. 싱싱한 숭어회와 곁두리 반찬이 맛깔스럽고 방안의 편백나무와 황토가 잠자리를 편안하게 해준다.
6‧4 지방선거가 120일 앞으로 다가온 4일 시‧도지사 및 교육감 예비후보 등록이 전국 17개 시‧도선관위 별로 일제히 시작됐다. 중앙선관위는 교육감 예비후보자 요건에 “기탁금 1000만원, 공무원 등 입후보제한직에 있는 사람은 선거일 전 90일인 3월 6일까지 그 직을 사직하여야 하고, 3월 6일 전이라도 예비후보자로 등록을 하고자 할 경우 예비후보자 등록 전까지 사직하여야 한다”며 “예비후보자는 선거사무소 설치와 명함 배부를 통한 선거운동, 어깨띠 또는 표지물을 착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예비후보자 등록은 후보등록 전날인 5월 14일까지 진행된다.
기존 교원의 열정 약화 교직사회에 미칠 파장 커 교원임용체계 근간 훼손 전일제 전환 절대 반대 대통령 공약 이행 위한 정규교원 충원이 우선 국가 고용률 개선을 위해 ‘시간제 공무원’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정부가 교육계에 도입할 ‘시간선택제 정규직 교사’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교총이 토론회를 통해 “시간선택제 교사 도입을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교총은 27일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서울중앙우체국 회의실에서 개최된 ‘정규직 시간선택제 교사 제도에 대한 공개 토론회’에서 “전국 평교사의 95.8%(교총 설문조사),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예비교사 및 학부모, 여·야당 핵심인사들까지 줄기차게 반대하는 정책을 국정과제라는 이유로 밀어붙이는 것은 비합리적, 비교육적 접근”이라며 전면적인 정책 전환을 요구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동석 교총 정책본부장은 “시간선택제 교사는 교원 등의 반발 고려할 때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방안”이라며 “학급당 학생 수 OECD 상위 수준으로 개선, 2017년까지 교사 1인당 학생 수 OECD 상위 수준 도달, 표준수업시수제 도입으로 교사 수업시수 감축 등 대통령 공약사항 이행을 위해서는 정규 교원 충원이 최우선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간선택제 교사 도입은 타 공공부문 업무와 달리 수업, 생활지도, 상담 등 학생과의 오랜 신뢰 관계 속에 이뤄지는 교육 본연 업무 특성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또 “민간과 달리 여성의 경력단절이 극히 드문 교직사회 특성상 정책적 효과 보다 근무 여건이 다른 교원 간 위화감이 커지고, 전환이 가능한 재정적 여유가 있는 고경력 교사 등 일부교사의 편익으로 전체 교원의 열정을 꺾을 가능성이 높아 교직사회에 미칠 파장이 너무 크다”고 우려했다. 김 본부장은 3~5년 후 전일제교사 전환이 가능하도록 한 것도 국가공무원간의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반직 공무원은 시간제 공무원의 전일제 공무원 전환을 허용하지 않는 반면 시간선택제 교사는 이를 허용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교원양성․선발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 없이 기존의 틀을 뒤흔드는 임기응변식 방안으로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총은 대안으로 △4만 4970명에 달하는 기간제 교사의 시간선택제 교사 전환 △교직분야가 아닌 교육행정 분야 등에 시간제 공무원 채용 △경력단절을 최소화하기 위한 육아휴직 수당 현실화 등 정책적 보완을 제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선우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의 주제발표로 정부의 시간선택제 교사 도입 방안의 윤곽이 드러났다. 이 교수는 시간선택제 교사의 개념을 ‘전일제 교사와 동등한 자격과 지위를 가지는 정규직 교육공무원으로 주 2일 또는 3일 하루 8시간 근무하면서 학생 교육활동과 상담, 생활지도 등을 담당하는 교사’로 규정했다. 주제발표에 따르면 시간선택제 교사는 기간제와 달리 ‘정규직’이기 때문에 근무경력에 비례해 승진이 가능하며 공무원 연금과 정년도 동일하게 보장된다. 담당 수업시수 등을 고려해 보수 수준이 산정되며 맞춤형 복지비 등 수당도 지급된다. 시간선택제 교사는 신규채용과 기존 교원의 전환의 두 가지 방법으로 선발한다. 전환은 휴직과 마찬가지로 육아․가족 간병․학업 등 사유가 분명한 경우에 한해 학교장 추천을 거쳐 시․도교육감이 선발․임용한다. 기간은 3년이며, 임용기간 단축과 추가 재승인도 가능하다. 신규채용은 교사자격증 소지자를 대상으로 초등은 교과전담교사를, 중등은 수업시수가 적은 소수과목․전공불일치․순회교사 채용 과목을 우선 고려해 동일하게 임용시험을 거쳐 선발하며 3~5년 후 전일제 교사로 전환이 보장된다. 임용시험을 통해 시간선택제로 신규 채용된 교사는 학교장이 허가하면 근무시간 외 타 학교 시간강사나 방과후 강사로 겸직이 허용되며, 현직교원 중 육아, 간병, 학업 등을 목적으로 시간제선택제 교사로 전환한 경우는 ‘전환허용 사유’에 위배되는 것으로 봐 겸직이 금지된다. 이날 토론회에는 김 본부장 외에도 김선희 좋은학교바른교육학부모회 대표,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 남기곤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 양승실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임종화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 김선희 좋은학교바른교육학부모회 대표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2017학년도 수능부터 필수가 된 한국사를 쉬운 절대평가(9등급) 방식으로 치러진다. 사교육 수요를 차단하려는 취지다. 교육부는 3일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한국사 사교육 수요 경감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사는 다른 과목과 다르게 등급만 제공하는 절대평가 방식을 도입하고, 학교 수업을 성실히 들은 학생이면 1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현행 교원 임용시험의 자격기준인 한국사능력검정시험 3급보다 쉽게 출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음 달까지 출제경향을 반영한 예시문항을 개발해 한국사 학습방법 안내 자료를 제작·배포하고, 하반기에 전국연합학력평가 등을 통해 문항을 검증할 계획이다. 또 사교육 수요를 수용하기 위해 고교생 대상 EBS 한국사 강의도 지난해 476편에서 올해 829편으로 대폭 확대한다. 특히 기본개념을 다질 수 있는 고 1, 2학년 대상 프로그램을 종전 80편보다 약 5배인 407편으로 늘린다. 중·장기적으로는 문․이과 통합교육과정 개정에 맞춰 초·중·고에 걸쳐 체계적으로 한국사를 학습하도록 핵심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이해하기 쉽게 기술한 새로운 교과서도 보급한다. 이에 대해 한국교총(회장 안양옥)은 “일부 학원들의 사교육 조장 행태에 대해 정부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교육부의 종합적인 대안도 중요하지만 학교의 중간·기말고사 및 수능시험을 문제은행식으로 출제해 예측가능한 평가가 이뤄지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공자는 19세 때 (B.C. 533년) 결혼하고 벼슬길에 나갔다. 당시 공자는 정원을 관리하고 가축을 돌보며 창고에서 물건을 주고받는 일을 맡아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가축들이 살지게 자랐고, 노나라 계씨의 창고 출납을 맡았을 때 셈이 정확했다고 했다. 하지만 공자는 독학으로 공부를 하고, 20세부터 제자들을 두었다.그는 관료로서의 직분보다는 제자를 만나고 학문을 닦는 일에 몰두하였다. 그래서 천하를 주유하여 학문을 가르쳤는데 그중 가장 이채를 띤 제자는 자로였다. 자로는 성은 중(仲), 이름은 유(由), 자로는 그의 字다. 그는 성격이 곧고 급해서 나무처럼 부러지기는 해도 구리처럼 휘지 않는 위인이었다. 동시에 공자에게도 지기를 싫어해 곧잘 아는 체하다가 꾸중을 듣기도 했다. 이런 자로의 성품을 잘 아는 공자가 말했다. “너에게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곧 아는 것이다.”(위정편) 제자가 되기 전 자로는 협객이었다. 협객이란 무예를 숭상하며 요즘말로 조폭과 비슷하다. 자로가 처음으로 공자를 만난 것은 공자의 명성에 질투심을 느끼고 자신의 일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자로는 닭과 돼지를 몰고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는 곳으로 찾아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자 공자는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자네는 무엇을 좋아하나?” 자로가 의기양양하여 말했다. “나는 무예를 좋아한다.” “그럼 학문도 좋아하느냐?” 자로는 기세를 올리며 대답했다. “학문이 밥 먹여 주는가?” 공자가 대답했다. “어진 임금에게 간신이 없다면 옳음을 잃고, 선비로서 가르치는 사람이 없으면 듣지 못하는 것과 같다. 나무는 줄을 타고 곧아지고, 말에는 채찍이 필요하며, 활에는 화살이 필요하듯이 사람에게도 방자한 성격을 바로잡는 교학이 필요하다.” 교학 정신의 근본인 공자의 말에 우쭐하던 자로는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잠시 뜸을 들인 후 자로가 다시 물었다. “남산의 대나무는 바로잡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라고, 이것을 사용하면 코뿔소 가죽도 뚫듯이 천부적인 무예를 갖고 있는 사람이 굳이 학문을 닦을 필요가 있을까요?” 공자가 다시 대답했다. “그대가 말하는 남산의 대나무에 쐐기나 화살촉을 박아 학문을 연마한다면 가죽만을 뚫겠는가?” 공자의 멋진 대답에 자로는 얼굴을 붉히면서 무릎을 꿇고 공자의 제자가 되기를 간청했다. 자로는 공자와의 논쟁만으로 항복한 것은 아니다. 사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기세계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모습에 매력도 느꼈을 것이다. 이때 공자의 나이는 40세 전이고 자로의 나이는 31세였다고 한다. 제자가 된 자로는 누구보다도 공자를 끔찍이 모셨다. 공자에게 험담을 하면 누구든지 이유를 불문하고 입을 뭉개버려서 공자에게 여러 번 주의를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공자는 ‘자로가 문하생이 되고 난 후 나의 험담이 없어졌어.’ 하며 웃었다고 한다. 이러한 자로는 공자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엉뚱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만약 스승님이 총사령관이 되신다면 누구를 참모로 쓰시겠습니까?” “글쎄? 맨주먹으로 호랑이를 두들겨 잡고, 배도 없이 강을 건너려 하고, 죽음도 불사하고, 덤벙대는 사람과는 함께 갈 수 없겠지.”(술이편) 공자는 자로의 사랑 확인을 무참히 꺾어버렸다. 하지만 다른 말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기 몸에 누더기를 걸치고서도 사치스런 옷을 입은 사람과 나란히 서서 태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자로뿐일 거야.” 자로는 공자를 신처럼 존경하여 공자가 받는 푸대접에 하늘을 원망하며 슬피 울었다. “악은 일시적으로 번성하고 최후에는 벌을 받는다고 배웠다. 그런데 왜 공자님 같은 분이 악에 고통을 받아야만 하나? 성인군자가 왜 가정적으로 불우해야만 하고 늙어서까지 험한 가시밭길을 걸어야만 하는가?” 세월이 지나 공자는 자로를 위나라 대부 공리의 가신으로 보냈다. 하루는 위나라에 정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식을 듣은 공자는안절부절 못했다. 자로의 급한 성격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공자의 걱정대로 자로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 자로는 창을 찔려 목숨이 반쯤 끊어지면서도 말했다. “군자는 죽을 때 죽더라도 갓을 벗을 수는 없는 법이다” 자로는 죽음 앞에서도 갓끈을 똑바로 매었다. 자로의 나이 62세, 그의 시체는 무참하게 토막이 나 소금에 절여졌다고 한다. 자로의 곧고 급한 성격만큼이나 적도 많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로가 죽은 지 얼마 후 위나라의 사자가 소금으로 절인 자로의 시체를 공자 앞에 내놓자 공자는 대성통곡하면서 소금으로 만든 음식물을 모두 쏟아버렸다고 한다. 공자에게는 3000명의 제자가 있었다한다. 그들은 전국 각지에서 새로운 지식을 갈구하여 공자를 찾아왔다. 어떤 사람은 공자를 비난하기 위해 찾아왔다가 감복하여 제자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만난 공자의 제자 중 안회, 민자건, 염백우, 중궁, 재여, 자공, 염구, 자하, 자로 등 10명의 제자는 후세 공자의 학문을 전파하는 주축이 되었다. 이들은 공자가 죽은 뒤 대부분 공자 무덤 옆에서 3년 상을 지냈다. 그 뒤 일부가 남아서 또다시 3년 상을 지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각기 고향으로 돌아가 제자들을 길렀다. 바로 그 제자들에 의해 논어가 만들어지고 공자의 사상은 중국 각지로 퍼져 공자를 오늘에도 살아남게 했다. 공자의 제자들에 의해 완성된 공자의 가르침은 중국 사상의 주류로 만든 힘이 되었다.
며칠 전 한국 초중고 학생자치회 임원인 학생들을 인솔하여 일본 큐슈지역 학교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학생들과 함께 학교 방문은 교실에서 어떤 학습이 이뤄지고 있는가도 볼 겸 뭔가 새로운 것은 없을까 하는 기대로 방문한 것이었다. 지금 일본 학교교육에서 관심을 갖고 추진한 학교 시스템은 초,중이거나, 중,고 일관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그만큼 교육에 있어서 학교급간의 칸막이로 인한 손실을 없애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우리 인간의 삶도 단절이 아니고 지속성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교육의 중심체인 학교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고 교과라는 과목으로 칸막이가 되어 있다. 또한, 우리 나라의 경우는 초등학교의 왕따 문제가 중학교로 연결되는 것을 염려하여 학교급간의 연계는 생각도 못하고 이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삶과 교육을 일치한 사회를 만들어 가려면 교육시스템도 달라져야 햘 것이다. 지금 전남의 경우 농촌 지역은 인구가 줄어 학교의 통폐합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지만 광양 지역에서는 인구증가로 인하여 2,3년 내에 초,중학교를 신축할 계획인데 미래를 내다보는 건축, 학생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시스템과 학교 건축을 고려해 볼 시점이다. 그리고 가까운 이웃 남해에는 독일마을과 미국마을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남해를 여행할 때마다 우리 지역에도 이제는 ‘교육마을’ 하나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한 적이 있다. 오늘의 학교가 불행해진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그중 하나가 산업화, 도시화 과정에서 농촌 지역 학교가 하나둘 사라지고 도회지 학교가 지나치게 커져가면서 인간적인 만남을 상실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앞으로 ‘행복교육’을 실현하려면 농촌 학교를 되살리고 도시 학교를 작게 만드는 정책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실천해 나갈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이 시대만의 과제가 아니라 지속되어야 할 과제이다. 꽤 오래전부터 나는 이런 꿈을 꾸어왔다. 다들 버리고 떠나는 농촌으로 돌아가 ‘돌아오는 농촌, 다시 사는 마을학교’라는 새로운 깃발을 세워 열정을 온전히 다 쏟고 싶은 꿈 말이다. 지금 농촌은 이농으로 인하여 지속적으로 학생수가 줄어 학교가 마을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농촌이 많은 전남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힘을 모아 이런 학교 하나를 되살리고 싶다. 나아가 그 학교를 중심으로 새로운 교육문화 사업을 펼쳐 지속가능한 ‘교육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단순히 ‘폐교 하나 되살리자’는 식의 낭만적인 접근이 아니다. 우선 마을부터 살려야 한다. 그래야 학교도 오래 살 수 있다. 산업화·도시화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마을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일은 이제 우리 시대의 절박한 과제이다. 인도의 간디 선생도 인간사회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마을자치’라고 보았다. 그런 이상사회의 모습을 담아 그가 펴낸 책이 바로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이다. 간디는 이 책에서 근대 산업사회의 물질적 풍요가 가져다 준 인류의 행복이란 결국 허망한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고 갈파한다. 간디는 인도의 참다운 미래는 근대적인 도시가 아니라 자립적인 농촌마을에 있다고 외쳤다. 그는 대도시와 산업문명은 인간의 영적 빈곤과 이기심을 조장한다고 비판하면서 인도의 70만개 농촌마을을 되살려야만 참다운 인도 민중의 독립과 해방이 온다고 역설했다. 또 그렇게 해야만 새로운 인류문명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정부와 지방자치 단체가 앞장서서 전국적으로 교육마을 만들기 운동을 펼쳐나갔으면 좋겠다. 다시 새마을 운동이 아니라 ‘교육마을 운동’을 전개할 시점이다. 이렇게 하면 오늘날 한국 교육의 고질병인 학교폭력 문제, 학교중단 문제, 학교부적응 문제 등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교육마을이 미래다. ‘담쟁이’처럼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이런 꿈과 희망을 만들어 갈 벗이 그리워지는 것은 나만의 소망은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글로벌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가운데 한국교육은 점점 더 국제사회, 특히 글로벌 빈곤 퇴치에 전념하는 국제기구들의 비상한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은 지난 해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 규모 1조불을 달성했다. 그리고 개인소득 2만 불에 인구 5천만이 넘는 20-50 클럽의 7번째 국가가 됐다. 이렇다할 자원도 없는 나라에서 교육이 없었다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국제경쟁력이 있는 양질의 공교육을 했기 때문이다. 온갖 어려움에도 우리 교육의 질을 지킨 이가 바로 우리 교사들이다. 한국교육을 찬양하는 오바마 대통령도 그래서 한국 교사를 “국가 건설자(Nation builders)”로 칭송했다. 최근 “어느 나라든 한국처럼 성공할 수 있고 성장이 불가능한 국가는 없다”는 신념으로 글로벌 빈곤퇴치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 세계 지도자가 있다. 12대 세계은행 김용 총재는 “다른 나라들이 한국을 본보기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 내가 뼛속 깊이 새긴 경험”이라고 했다. 유엔 수장으로 연임에 성공한 반 기문 총장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두 인물은 무엇을 경험했나? 극심한 가난을 극복한 경험이다. 세계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경험이다. 그 일이 가능했던 것은 정부 수립 후 공교육의 양과 질이 매우 짧은 시기에 눈부시게 발전한 덕이다. 한국 교사들도 그 경험을 뼛속 깊이 새기고 있다. 우리 교육이 그토록 국제 경쟁력이 있는 것은 교사가 묵묵히 현장을 지켰기 때문이다. 교실 칠판을 지킨 백묵과 그 가루에서 가난을 딛고 일어나는 에너지가 솟아났다. 우리 공교육이 보여준 경쟁력은 국제비교 연구에서도 입증된다. 세계은행의 연구진은 1960년대 한국과 아프리카 가나의 경제수준은 비슷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더 벌어졌다고 보고했다. 가나뿐만이 아니다. 소위 BRICS로 불리는 신흥 개발 국가인 브라질의 경우도 60년대에는 한국보다 잘 살았다. 한국이 단시일 내 초등의무교육을 완성하고 곧이어 40여 년 만에 중등에 이어 고등교육까지 보편화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등과 고등교육의 “동시 보편화”라 함직한 이 현상은 세계 교육사상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한국 학생들은 12세나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학력 국제비교에서 1980년대 이래 늘 세계 최상위를 유지하고 있다. 세계 교육사상 유례없는 발달 현상을 통칭해 “한국교육의 발달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반 기문 총장이나 김 용 총재가 승부수를 던진 글로벌 빈곤 퇴치를 위해 이런 한국교육 발달 경험을 세계화할 시기이다. 그리고 이 경험을 평생 동안 체화한 전문가가 바로 50,60,대의 현장 교사다. 지금도 교직에서 은퇴한 후 오지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분들이 상당수 있다. 앞으로는 은퇴 이전에 국제수준의 교육의 질을 온 몸에 답지한 교사가 5대륙으로 나가 세계 교육의 질을 지킬 때가 왔다. 한국 교사들이 한국교육이란 제한된 틀을 벗어나 무지, 질병, 빈궁 탓에 인간 이하의 삶으로 고통당하는 세계인들을 위한 세계교육을 염려하고 그 발전과 질 관리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 일에 정부가 눈을 떠야 한다. 지금까지 세계를 누비는데 선두에 선 사람들은 선교사들이었다. 그들도 역시 사명자로서 오지를 찾았지만 이제 교사들도 이들 못지 않게 고통을 나누는데 동참한다면 한국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 믿는다.
올해는 꼭 열매를 보고 싶었는데…. 밋밋한 타원형으로 짙은 갈색 반점의 윤기 자르르한 아주까리 씨앗을 이년 전 가을날 산 밭에서 몇 알 주워왔다. 반질반질하게 빛나는 모습이 참 예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손바닥 모양 같은 잎과 단단한 줄기가 매력을 발산하여 집에서도 한번 심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듬해 봄 석분가루로 가득 찬 마당 한 귀퉁이에 서너 알 심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아무런 소식이 없어 썩어버렸거나 새가 물어갔겠지 하며 지나쳤다. 그런데 추석 무렵 가는 줄기를 들어낸 채 아기 손바닥 모양 같은 아주까리가 바람에 흔들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제 싹을 틔워 어떻게 하려고 이럴까? 얼마 있지 않으면 겨울이고 얼어 죽을 텐데. 아주까리는 피마자라고도 하며 열대 아프리카가 원산으로 전 세계의 온대지방에서 널리 자란다. 키는 약 2미터이며 여러해살이풀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후상 한해살이풀로 분류된다. 봄에 파종하여 그해 가을에 열매를 수확하고 어린잎은 쌈이나 나물로도 먹고 가시로 덮인 집 속의 열매는 공업용 윤활유나 설사약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렇게 늦게 싹을 틔워 열매를 본다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며 그냥 두고 보기로 하였는데 이 녀석은 하루가 다르게 가는 뿌리 부분의 밑동과는 달리 튼튼한 줄기로 높이 자람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흙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탓으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 넘어지기 일쑤여서 고추밭에 사용하는 지지대로 줄기를 잡아주었더니만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는 듯 11월 중순경에는 1미터가 넘게 자라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마 차가워지는 기온을 보며 생존의 위협을 느껴서 그랬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입동을 지나 대설을 넘기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자 약간 걱정이 되었다. 따뜻한 것을 좋아하는 저 녀석이 서리를 맞으면 금방 말라져 죽을 텐데 우산이라도 받쳐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였지만 어차피 운명 아닌가? 그렇게 12월이 지나고 새벽 기온이 영하를 오르내리는 소한 무렵 잘 있나 싶어 보았더니 어제까지 대나무 굵기 같은 줄기와 통통한 손바닥 같은 잎들이 간에 절은 배추포기 마냥 축 늘어져 있다. 아! 이 일을 어쩐담. 결국은 서리보다 영하라는 한기에 잎의 수분이 얼어서 세포막이 파괴되어 죽은 것이다. 축 처진 잎들과 그 사이에 채 여물지 못한 열매들! 흡사 여름 한낮 불볕더위에 지친 호박잎보다 더 숨이 죽어버렸다. 조금 빨리 싹을 틔웠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무래도 흙 속이 아닌 물기가 없는 돌가루 속에서 그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오는 데 시간이 필요하였으리라. 이럴 줄 알았다면 도토리나 밤처럼 껍질을 약간 벗기고 심었다면 제때 싹을 틔웠을 것인데 배수가 잘되는 곳에서 단단한 껍질이 물기를 머금어 부패하려면 장마 기간을 거쳐야 했던 것이었다. 이런 아쉬운 마음을 뒤로 이번에는 다락 정리를 한다고 올망졸망한 작은 상자를 열자 몇 알 남은 양파들이 홀쭉한 몸으로 한 줄기 빛을 찾아 연노랑 싹을 내밀며 몸부림하고 있다. 본디 양파는 내한성 작물로 마늘처럼 가을에 모종을 심어서 겨울을 지나 초여름에 수확하는 작물인데 어떻게 이 깊은 어둠 속에서 시간의 변화를 알아차렸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다락에는 양파 외에도 싹이 말라져 쪼글쪼글해진 감자들도 있었다. 식용으로 쓴다고 보관했다가 몇 개 남지 않았다고 그냥 지나쳤는데 살려달라고 심어달라는 묵언의 외침과 원망을 얼마나 하였을까? 싹을 틔운 양파와 감자! 더는 먹거리로 가치가 없어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린다. 살아가면서 지구 위의 모든 동식물에는 생체시계가 있다. 장끼도 길고양이도 번식 철이 되면 그 울음으로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소리를 내지 못하는 식물은 그 싹을 내어 파종과 번식의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를 제때 감지하고 흙과 만나게 해야 썩음을 통하여 새로움을 만들고 다음 대를 이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파종 시기를 잘 맞추지 못하여 싹을 틔운 식물은 반풍수 집안 말아먹듯 그 결과를 잇지 못한다. 이 모든 것 또한 준비에서 시작된다. 겨울도 이제 끝자락이고 입춘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직도 마당 한쪽에는 축축 늘어진 아주까리가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그리고 빈 화분에 버려진 양파는 그래도 살 것이라고 싹을 피워 올리고 있다. 머지않아 봄이 시작될 것이다. 이번에는 그 빈자리에 아주까리 씨앗을 물에 불려 딱딱한 껍질을 약간 벗겨서 심어볼 작정이다. 그러면 올가을에 그 고운 빛깔의 열매를 다시 만져 볼 수 있지 않을까? 말라버린 아주까리와 철 지난 감자와 양파의 싹이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준비의 시간이 필요함을 부릅뜬 눈으로 쏘아보고 있는 듯하다.
설날 연휴를 끝내고 학교에 왔다. 달력을 넘기면서 세월의 빠름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2월 1일도 아니고 3일이다. 학생들이 짧은 방학을 마치고 학교에 왔다. 다시 기숙사 생활을 한다. 아침식사시간에 학생들을 보니 다시 생기가 돈다. 학교에는 언제나 주인공이 있어야 살맛이 난다.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2월은 2013학년도의 마무리 달이다. 아름다운 마무리가 되면 좋겠다. 아름다운 마무리란, 자기의 업무를 잘 마무리하고 학생들이 사건, 사고 없이 학년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르치고 있는 학과를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또 아름다운 마무리란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것이다. 준비가 잘 돼야 출발이 순조롭게 된다. 준비 없는 새 출발은 무의미하다. 그렇기 때문에 2월도 3월 못지않게 바쁘게 돌아가는 달이다. 하루도 쉴 사이가 없다. 방학 동안 충전했던 에너지를 잘 발휘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주는 교훈이 있다. 주인공 허생원의 열정을 본받는 것이다. 허생원은 장돌뱅이다. 장날마다 시장이 서는 곳을 찾아가 장사하는 사람이다. 이분에게는 열정이 있다. 열정이 없으면 장사를 할 수가 없다. 차를 타고 가는 것도 아니고 걸어서 70리를 밤새도록 걸어가야 다음날 장사를 할 수 있다.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장사하는 사람은 이(利)를 목적으로 한다. 5리를 얻기 위해 10리를 가는 사람들이다. 그만큼 열정이 대단하다. ‘리’는 0.5%를 말한다. 조그만 이윤을 남기기 위해 10리를 예사로이 간다. 허생원도 마찬가지다. 70리를 밤에 걸어가야 다음 장에서 장사를 할 수 있고 이(利)를 얻어서 먹고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선생님들에게도 열정이 필요하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열정이 있어야 학생들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학생들의 실력 향상과 내적 성숙을 가져오려면 선생님의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밤새도록 걸어가는 허생원처럼 밤낮 수고를 아끼지 아니함으로 학생들에게 많은 유익을 안겨주는 좋은 선생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느 어머님이 딸이 시집을 가는데 사과나무를 하나 주었다. 이 나무를 심어 잘 길러 여기에 나는 수익으로 선한 일에 힘쓰라고 당부했다. 이 딸이 시집을 가서 어머님의 말씀처럼 사과나무를 정성껏 잘 길러 매년 사과 수익으로 선한 일을 하였다고 한다. 정성껏 사과나무를 기른 것은 선한 일을 하기 위함이다. 학생들에게 정성을 다해 잘 가르치는 것은 학생들의 학력 향상과 좋은 성품을 지닌 세계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함이다. 이런 뜻이 있기에 선생님의 수고는 힘이 들어도 보람이 있고 선생님의 열정과 정성이 결코 헛되지 않는 것이다. 선생님들의 가는 길이 힘이 들지 않으려면 자연을 즐겨야 할 것 같다. 달밤에 소금을 뿌려놓은 듯하게 흐드러진 메밀꽃밭의 아름다운 풍광이 허생원을 지치지 않게 한 것이다. 우리 선생님들이 지치지 않으려면 때때로 자연을 즐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학교 주변에는 산이 있다. 나무가 있다. 숲이 있다. 석양이 있다. 향기가 있다. 새소리가 있다. 꽃이 있다. 바람이 있다. 이런 것에서 새 힘을 얻고 어려움을 잘 견뎌내었으면 한다. 또 선생님들이 지치지 않으려면 함께 하는 이가 있어야 한다. 허생원은 다음 장으로 옮기기 위해서 혼자서 걸어간 것이 아니다. 동이가 있었다. 말 친구가 있었다. 추억거리를 나눌 수 있는 대화 상대자가 있었다. 선생님들은 학교생활 속에서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함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싶다. 위, 아래 갈등이 있으면 서로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고, 가르치는 일에 문제가 있으면 동과 선생님과 대화를 통해 해법을 찾고, 지도하는 일에 어려움이 있으면 선후배 선생님의 경험담을 통해 해답을 찾아가면 학교생활이 훨씬 수월해진다. 또 선생님들이 힘들지 않으려면 시간 나는 대로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힘이 되어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허생원은 동이와 함께 밤새도록 걸으면서 가정사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허생원은 개울물을 만났을 때 함께 걸어간 동이가 있었기에 잘 건널 수 있었다. 동이의 등에 업혀서 쉽게, 따뜻하게 잘 건널 수 있었다. 우리 선생님들이 힘들어하는 선생님에게 동이와 같은 역할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서울시교육청이 2013 하반기 서울학생 행복지수를 발표했다. 먼저 행복지수가 무엇인가에 대하여살펴보면 다음과 같다.행복지수는 학생이 학교생활 및 가정생활 등 생활 전반에 대해 느끼는 만족도 이며, 교육정책 및 학교 환경의 개선을 위한 자료로 활용하기 위함에 목적이 있다. 문항 구성을 보면초등학생 및 중등학생용 4개 영역 30문항인데 학교생활만족도(23문항), 가정생활만족도(3문항), 자신에 대한 만족도(3문항), 전반적 행복도(1문항)이다. 측정방법은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희망하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게 하며그 대상은 초등학교(5, 6학년),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이며,시기는 상반기 1회, 하반기 1회 등 매년 2회(2012년부터 총 4회 측정)이다. 이번 행복지수 측정은 2013.11.19 ~ 12.16 사이 4주 동안 대상 학생 803,514명 중 278,329명(약 34%)이 참여하였으며, 각 지표별 5점 만점으로 측정한 결과 초등학교는 4.25점, 중학교는 3.85점, 고등학교는 3.60점으로 나타났으며, 전체 행복지수의 평균은 3.95점(‘난 행복해’)으로 측정되었다. 2013년 하반기 행복지수 측정(총괄)은조사 기간은 2013.11.19 ~ 12.16(4주)이며, 참여 학생(참여비율)은 275,329명/803,514명 中(약 34% 참여)이다. 전체적으로 영역별 분포도는 영역별 만족도 순위는 가정생활 학교생활 자신 순(順)으로 나타났다. 자신에 대한 만족도가 타 영역에 비해 낮은 것은 학업 성적과 자기 효능감이 부족한데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학교급별 행복지수는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순으로 나타났다. 학교급별 만족도 상위 3문항을 보면 초등학교는 친구들과 대화가 잘 통한다가 4.48점,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창의적 체험활동(문화․예술․체육․수련 활동 등)이 즐겁다가 4.46점, 친구들이 있어 학교에 가는 것이 즐겁다가 4.46점이다. 중학교는 친구들과 대화가 잘 통한다가 4.20점, 친구들과 사이가 원만해서 좋다가 4.19점, 친구들이 있어 학교에 가는 것이 즐겁다가 4.15점이다. 고등학교는 친구들과 대화가 잘 통한다가 4.05점, 친구들과 사이가 원만해서 좋다가 4.04점, 친구들이 있어 학교에 가는 것이 즐겁다가 3.93이다. 공통적으는 교우 관계에 대한 만족도가 높게 나타났으며, 초등학생의 경우 다양한 교과외 창의적 문화 체험 활동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학교급별 만족도 하위 3문항을 보면 초등학교는 자치활동(학급회, 전교어린이회 등)이 활발해서 우리들의 의견이 잘 반영된다가 3.86점, 시험을 보는 방법(수행평가, 쪽지시험, 서술형․논술형 등)이 마음에 든다가 3.90점, 나의 학업성적에 만족한다가 3.99점이다. 중학생의 경우 나의 학업성적에 만족한다가 3.33점, 자치활동(학급회, 학생회 등)이 활성화되어 우리의 의견이 잘 반영된다가 3.49점,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이 나에게 도움이 되어 만족한다가 3.60점이다. 고등학교는 나의 학업성적에 만족한다가 2.84점, 자치활동(학급회, 학생회 등)이 활성화되어 우리의 의견이 잘 반영된다가 3.13점, 급식이 청결하고 질과 양에 만족한다거 3.28점이다. 공통적으로학업성적과 자치 활동에 대해 만족도가 낮게 나타낫으며, 초등학생의 경우 평가 방법, 중학생의 경우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고등학생의 경우 급식에 대한 만족도가 낮게 나타났다. 이러한 과제에 비추어 다음과 같은 면에서 개선이 이뤄져야 하겠다. 첫째, 초등학생의 경우에는 다양한 교과의 창의적 문화 체험 활동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다양한 교과의 창의적 문화체험활동을 강조하여야 한다. 둘째,자치활동에 대해 만족도가 초·중·고 공통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나, 이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셋째, 자신에 대한 만족도가 타 영역에 비해 낮은 것은 자기 효능감이 부족한데 기인한 것으로 판단되므로 학생들의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겠다.
고등학교에서 실시한다는 신입생에 대한 반편성고사가 선행학습을 유발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여파로 일선학교(중학교포함)에 반편성고사 실시현황을 보고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서울시교육청의 입장에서는 언론보도 내용에 대해 현실을 파악하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언론에서 담당자 조차 반편성고사 실시에 대한 정황을 잘 모르고 있다고 했다. 당연히 담당자가 잘 모를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이미 수년전부터 반편성고사를 지양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권고사항이긴 했어도강제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담당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거의 대부분 학교가 실시하지 않고 있을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반편성고사가 일반화 된 것처럼 보도가 나갔으니, 현황파악이 안될 수 밖에 없다. 일선학교에서 슬그머니 반편성 고사를 실시했다면 그 학교 문제이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반편성고사를 실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필자는 최소한 최근 10년 동안 반 편성고사를 경험하지 못했다. 더구나 선행학습을 유발할 수 있는 반편성고사를 실시한다고 보도가 나갔으니 시교육청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인성검사를 사전에 실시하여 학급을 배정하면 좋다는 전단지를 우편으로 받은 적은 있다. 물론 예산이 문제지만 한번 실시해 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렇더라도 반편성고사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학교의 의견이었다. 결론적으로 우리학교는 올해도 반편성고사를 실시하지 않는다. 출신초등학교와 남, 여 비율을 감안하여 반편성을 실시할 예정이다. 그런데 아주 최근에 한 언론의 인터넷 기사가 올라왔다. 반편성고사 대비방법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사교육기관의 전문가 조언도 곁들였다. 기사 내용을 보면 마치 모든 중학교에서 반편성 고사를 실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학부모가 이 기사를 접하면 배정받은 중학교에 문의가 쇄도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시험을 실시하는 학교에 배정 받았다면 당장에 시험 준비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실시하는 경우 시험범위는 초등학교 6학년 과정이라고 했다. 예전에 반편성고사를 실시할 때 그렇게 했다. 모든 학교들이 같은 시험지로 시험을 본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은 반편성고사를 실시하는 학교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공립학교의 경우 5년마다 교사들이 학교를 옮기는데, 새로 전입해온 교사들이 반편성고사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론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반편성고사는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반편성고사가 전체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것처럼 기사가 나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학부모들의 판단을 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편성고사를 실시하면 성적에 따라 반편성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학교의 입장에서는 아주 편하고 좋다. 그러나 특별한 기준없이 반편성을 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간혹 성적차이가 발생하는 경우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학생들의 중학교 학업성적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도리어 학년을 올라가면서 동기유발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결국 반편성고사는 학교에서 편하고자 실시하는 것일뿐 그 이상은 아니라고 본다.반편성고사가 일반적으로 실시되지 않는 이유이다. 올해부터 서울시내 140여개 중학교가 자유학기와 연계한 진로집중학년제운영에 들어간다. 이 대상이 바로 중학교 1학년이다. 따라서 반편성고사를 실시한다는 것은 서울시교육청의 기본적인 교육방향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는 1학기 기말고사만 실시하고, 2학기는 진로집중학기로 운영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규고사도 축소하는 마당에 입학전부터 시험을 치르는 것은 해당 학교의 향후 교육활동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필자의 경험과 추측에 의한 이야기이긴 해도 보편적인 측면에서 볼때 반편성 고사는 일부 학교, 일부지역에서 실시되고 있다고 본다. 우리학교 인근의 학교들도 대부분 반편성 고사를 실시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반편성 고사를 이슈화 시켜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부담감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다만 꼭 필요한 경우는 학교장의 판단에 따라 실시하되, 실시과목수를 최소화 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생각한다.
교육부가 오는 2023년까지 대학 입학정원을 16만여명이나 줄이는 내용의 대학 구조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주기적인 대학 평가를 통한 하위 그룹 대학은 과감한 퇴출도 불사한다는 장기 계획을 공표한 것이다. 교육부는 급감이 예상되는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해 대학 입학정원을 2023학년도까지 16만여명 감축키로 했다. 또 절대평가 방식의 새 평가체제를 마련해 모든 대학을 5등급으로 나눠 평가하고, 2회 연속 최하등급을 받은 대학은 퇴출할 계획이다. 올해 63만여명인 고교 졸업생이 10년 뒤인 2023년에는 39여만명까지 줄어들지만 전문대 등을 포함해 현재의 대학 정원은 56만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공급과 수요가 역전되어 모집 정원을 채우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큰 폭의 대학 정원 조정은 불가피하다. 정부가 구조개혁에 앞장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교육부는 대학 평가와 대학의 구조 개혁이 퇴출과 정원 감축을 위한 소극적 개혁에 그치지 말고 경제·사회 구조의 고도화 등 시대 변화에 부응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적극적이고 순기능적 개혁을 유도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사실 지난 여러 해 동안 대학들의 자율 혁신과 자율 조정을 유도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약자인 지방대와 전문대 등이 갈수록 더 취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등록금을 주요 재원으로 하는 대학들에게 정원 감축은 존폐 내지 사활이 달린 중차대한 일이다. 그동안 십수 년 전부터 대학의 정원 감축이 추진되어 왔으나 ‘눈 가리고 아웅식’에 그친 것은 결국 학생수와 등록금 등 대학 재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대학들끼리의 이해 조정과 자율 혁신이 쉽지 않은 만큼 객관적인 조정자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어렵기는 하지만 교육부가 그 조정자의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이번 교육부의 대학 구조 개혁 계획은 절대평가 방식의 대학평가체제를 새로 도입해 그 결과에 따라 차등적으로 정원을 줄이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대학 평가와 대학 구조 개혁의 중요한 척도는 공익성과 형평성이다. 신뢰성과 타당성 있는 평가와 개혁이 전제돼야 한다.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 일반대와 전문대 등은 각각 고유한 역할이 있다. 구조 개혁의 잣대가 획일적, 일률적이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다. 대학의 구조 개혁에서 상대적으로 어느 한 쪽을 희생시키는 식이어서는 공익성이라는 면에서 문제가 된다. 특히 지방대학의 위기는 해당 지역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점에서 종합적인 판단이 요구된다. 그렇다고 역량 미달인 대학을 무조건 배려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앞으로 대학구조개혁위원회에서 평가지표 등을 개발해 시행할 때 이런 점이 세심하게 고려돼야 한다. 정원 감축이 단계적으로 매끄럽게 이뤄지도록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대학 평가와 구조 개혁의 척도를 들이대야 할 것이다. 정선되지 않은 평가 척도에 근거해 밀어붙이면 반발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일부 대학 측에서는 이번 교육부의 발표에 대해 벌써부터 ‘현실을 외면한 계획’, ‘졸속 대책’이라는 비판과 거부감이 나오고 있다. 이제 대학도 과거의 기득권 지키기의 고루한 ‘제 밥그릇 지키기’ 관행을 과감히 벗어버려야 할 것이다. 대학 스스로 현실을 직시하고 대학 평가와 구조개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스스로의 혁신에 개혁의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대학 스스로 무리하게 정원 유지에 집착할 게 아니라 교육·연구의 질을 높여 학생과 지역사회의 공감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대하 스스로 단과대, 학부, 학과 등의 창의적인 특성화 강화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이제 대학 스스로 진정한 상아탑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외부로 부터의 마지못한 개혁이 아니라 환골탈태하는 ‘솔개의 부리’처럼 스스로의 필요에 의한 자율 혁신이 전제돼야 한다. 지성의 전당인 대학이 외부로 부터의 개혁에 마지못해 따라가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대학별 특성화가 하나의 방향이 될 수 있겠지만 그 속에서도 다양한 창의적인 내용이 담겨야 한다. 국민들도 입시 점수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는 대학이 아니라 특색 있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대학을 늘려가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학은 지성의 전당으로서 막중한 역할을 기대 받고 있다.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대학은 학문과 연구, 사회 봉사 등 시대와 국가, 사회가 요구하는 막중한 짐을 짊어지고 가는 ‘인고의 지게’를 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대학이 스스로의 혁신으로 변화하는 사회와 시대의 흐름을 이끌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학 교육과 대학의 사명은 그 사회의 지적인 수준과 미래를 향한 잠재력을 바탕으로 국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데 있다. 대학 평가와 대학 구조개혁이 교육의 질 제고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교육부는 기본 원칙이 지켜지는 대학의 구조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다만 교육부도 대학 평가와 대학의 구조 개혁을 대학과 교육의 질 개선의기제로 삼아야지 퇴출과 제재를 위한 척도로 삼기 위한 정량적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교육부는 대학 평가에 정성적 평가, 절대평가제 도입을 고려하고 있으나 얼마나 지켜질지는 지켜볼 일이다. 특히 대학 평가와 구조 개혁에서는 수도권대와 지방대, 일반대와 특성화대 및 목적대, 4년제대와 전문대 등의 특성을 비교하고 이를 고려한 평가가 돼야 한다. 일률적인 계량화를 통한 평가와 개혁은 절대 금물로 오히려 대학 측과 재단의 극심한 반발이 우려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학의 자율 혁신이 어렵듯이 대학의 구조 개혁은 더욱 어려운 난제 중의 나제인 것이다. 대학의 구조 개혁은 단기적으로는 정원 감축, 장기적으로는 퇴출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고졸자와 대입자 수가 역전되는 미래 사회에 살아남아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대학은 스스로 얼마나 자기 개혁을 충실히 하느냐에 달려있다. 아무리 대입 정원이 감축된다 해도 자기 혁신을 충실히 하는 대학, 교육의 특성화를 실행하는 대학, 학문과 연구에 앞장서는 대학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결국 대학 평가와 대학의 구조 개혁은 안으로 움츠려드는 대학과 밖으로 기개를 활짝 펴는 대학으로의 갈림길이 될 것이다. 이제 대학은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 그대로 도태되느냐 발전하느냐에 기로에 있는 것이다. 그 갈림길의 이정표에 ‘자율 혁신과 스스로의 개혁’이라는 이정표가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학의 공헌은 무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자율 혁신에 눈과 귀를 닫은 채 그동안 무소불위의 성역으로 군림해온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의 대학은 그동안의 공과(功過)를 뒤로 하고 이제 뼈를 깎는 성찰과 숙고, 그리고 자율 혁신의 길로 과감하게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안으로부터의 혁신이 밖으로부터의 개혁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과거의 향수에 젖어 현실에 안주하거나 혁신을 머뭇거리는 대학은 구조 개혁의 수렁으로 점점 빠져들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제자들로부터 몹시 존경받고 싶은 교수가 있었다. 교수는 존경받는 일은 잘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가르치고 연구했다. 어떤 날은 집에도 가지 않고 밤늦게 남아 수업 준비를 하고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잘 가르치는 일이 제일 중요해. 제자들이 나의 모습을 본받거든. 나를 닮도록 할 거야.’ 늘 이렇게 소신을 가지고 가르쳤다. 공부의 중요성도 역설하며 장차 큰일을 하라고 꿈을 심어주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학기를 수료하거나 졸업을 하는 날, 스승의 날이면 늘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교내에서 만난 제자에게도 간단한 목례만 받을 뿐 ‘교수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는 제자는 하나도 없었다. 교수는 가르치는 방법이 부족해서 그런가 하고 더욱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몇 해가 지나도 제자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교수는 몹시 속상했다. 그래서 그 대학의명망 높은 김 교수를 찾아가 물어보았다. “김 교수님도 그런가요? 글쎄, 나는 찾아오는 제자들이 한명도 없어요.” 김 교수가 대답했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사실 나도 그래요. 요즘 아이들 선생님 존경심이 너무 없기 때문일 거예요. 우리 교육이 잘못된 거지요. 얼마 전 통계도 그걸 말해 주잖아요. 우리나라 젊은이 선생님 존경지수 OECD 국가에서 최하위라던데요.” “그렇군요. 나만 못 가르쳐서 그런가했더니 선생님 말씀 듣고 보니 위안이 되는군요.” “사회가 그렇게 만든 거라오. 가정교육도 그렇고, 취업도 되지 않는 아이들이 고마워할 겨를 있나요? 공부보다는 취업 준비에만 정신이 없어서 그래요.” “듣고 보니 그렇군요.” 교수는 김 교수의 이야기에 안심이 들었다. 이 일이 있은 후 학생들에게 열심히 가르치는 일은 예전처럼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제자들을 불러 커피나 타주고 일상 이야기나 나누다 헤어지고는 했다. 겨울방학도 지나고 해도 지나 어느덧 학기말 수료까지 마쳤다. 교수는 예전처럼 아무도 오지 않는 텅 빈 연구실에서 물끄러미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문을 열자 지난 학기 공부를 가르친 제자였다.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아 학점도 잘 주지 않은 제자가 찾아온 것이다. 교수의 기뻐하던 얼굴은지난번 인색하게 준 학점 생각으로 변했다. “무슨 일로 찾아왔지?” 교수가 더듬거리는 소리로 물었다. “교수님이 보고 싶어서요.” “날 보고 싶어 왔다고? 학점이 아니란 말이야? 넌 C학점 받았잖아.” “교수님, 보고 싶어 왔어요. 정말이라니까요.” “…….” 교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다시 물어보았다. “네 학점은 잘 주지 못했지만 내 강의는 좋았지. 난 정말 열심히 가르쳤어.” “교수님, 저가 찾아온 건 강의가 아니라 지난 학기 저를 불러 타준 커피 맛 때문이어요. 교수님이 타준 커피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해요.” “그게 정말이니? 내가 타준 커피 맛 때문에 찾아왔다고?” 교수는 한동안 자리에 서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제 설날이 지나 학생들이 많은 세뱃돈을 받아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을 하여야 할때가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삼성출판사가 만든 초등 전과목 학습업체인 와이즈캠프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새배 드리는 어른 한 분마다 받기에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새뱃돈 금액은 얼마인지?’와 ‘설날에 받은 세뱃돈을 어디에 사용하고 싶은지?’에 대해 1월 21일부터 27일까지 7일간 설문을 진행했다. 설문에 응답한 2,513명의 학생 중 절반 이상이 5만원 이상의 새뱃돈을 받기를 원했고 받은 새뱃돈은 저축하기를 희망했다. 학년별로 응답을 분석해 보면 새뱃돈 받는 설문에서는 ‘5만원 이상’의 답변이 최저 60%에서 최고 66%까지 저학년과 고학년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많은 금액을 선호했다. 반면 새뱃돈 사용에 있어서는 학년별 큰 차이를 보였다. 저학년일수록 ‘기부한다’는 응답비율이 높고, 고학년일수록 저축한다는 응답비율이 높았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한다’는 답변은 학년별로 1학년 22%, 2학년 15%, 3학년 9%, 4학년 5%, 5학년 3%, 6학년 1%로 학년이 올라가면서 현격히 줄어든 반면, 저축한다는 비율은 1학년 39%, 2학년 50%, 3학년 51%, 4학년 57%, 5학년 55%, 6학년 54%로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많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어른 한 명당 받는 적정 새뱃돈을 ‘5만원 이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많은 것은 어린 학생들의 기대심리를 반영한 희망사항일 수도 있고, 여러 어른들에게서 받았던 새뱃돈 중 가장 큰 금액이 5만원 이상이었던 경험 때문일 수도 있다. 설문에 달린 댓글에서도 20만원부터 100만원까지 그동안 받았었던 세뱃돈 중 많았던 사례를 자랑하는 경우가 다수 발견되었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설이 끝난후 세뱃돈에 관하여 지도하여야 하겠다. 첫째, 갑작스럽세 큰 돈이 생긴 초등학생에게 돈 관리는 매우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으므로 이를 잘 활용하도록 지도가 되어야 하겠다. 오락을 한다든지 하여 용돈을 낭비하지 않도록 유도하여야 하겠다. 둘째,부모님이 세뱃돈을 무조건 맡아 가면 아이들은 돈을 뺏겼다는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는데 이것을 자녀의 미래를 위하여 준비하여 준다는 인식을 강조하여야 하겠다. 셋째,초등학생 이름의 통장을 만들어 저축한 뒤 필요한 책상이나 책장 등을 구입할 때 함께 비용을 준비하게 하면 초등학생ㄷ들의 새뱃돈이 좋은 경제교육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