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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공자는 19세 때 (B.C. 533년) 결혼하고 벼슬길에 나갔다. 당시 공자는 정원을 관리하고 가축을 돌보며 창고에서 물건을 주고받는 일을 맡아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가축들이 살지게 자랐고, 노나라 계씨의 창고 출납을 맡았을 때 셈이 정확했다고 했다. 하지만 공자는 독학으로 공부를 하고, 20세부터 제자들을 두었다.그는 관료로서의 직분보다는 제자를 만나고 학문을 닦는 일에 몰두하였다. 그래서 천하를 주유하여 학문을 가르쳤는데 그중 가장 이채를 띤 제자는 자로였다. 자로는 성은 중(仲), 이름은 유(由), 자로는 그의 字다. 그는 성격이 곧고 급해서 나무처럼 부러지기는 해도 구리처럼 휘지 않는 위인이었다. 동시에 공자에게도 지기를 싫어해 곧잘 아는 체하다가 꾸중을 듣기도 했다. 이런 자로의 성품을 잘 아는 공자가 말했다. “너에게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곧 아는 것이다.”(위정편) 제자가 되기 전 자로는 협객이었다. 협객이란 무예를 숭상하며 요즘말로 조폭과 비슷하다. 자로가 처음으로 공자를 만난 것은 공자의 명성에 질투심을 느끼고 자신의 일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자로는 닭과 돼지를 몰고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는 곳으로 찾아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자 공자는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자네는 무엇을 좋아하나?” 자로가 의기양양하여 말했다. “나는 무예를 좋아한다.” “그럼 학문도 좋아하느냐?” 자로는 기세를 올리며 대답했다. “학문이 밥 먹여 주는가?” 공자가 대답했다. “어진 임금에게 간신이 없다면 옳음을 잃고, 선비로서 가르치는 사람이 없으면 듣지 못하는 것과 같다. 나무는 줄을 타고 곧아지고, 말에는 채찍이 필요하며, 활에는 화살이 필요하듯이 사람에게도 방자한 성격을 바로잡는 교학이 필요하다.” 교학 정신의 근본인 공자의 말에 우쭐하던 자로는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잠시 뜸을 들인 후 자로가 다시 물었다. “남산의 대나무는 바로잡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라고, 이것을 사용하면 코뿔소 가죽도 뚫듯이 천부적인 무예를 갖고 있는 사람이 굳이 학문을 닦을 필요가 있을까요?” 공자가 다시 대답했다. “그대가 말하는 남산의 대나무에 쐐기나 화살촉을 박아 학문을 연마한다면 가죽만을 뚫겠는가?” 공자의 멋진 대답에 자로는 얼굴을 붉히면서 무릎을 꿇고 공자의 제자가 되기를 간청했다. 자로는 공자와의 논쟁만으로 항복한 것은 아니다. 사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기세계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모습에 매력도 느꼈을 것이다. 이때 공자의 나이는 40세 전이고 자로의 나이는 31세였다고 한다. 제자가 된 자로는 누구보다도 공자를 끔찍이 모셨다. 공자에게 험담을 하면 누구든지 이유를 불문하고 입을 뭉개버려서 공자에게 여러 번 주의를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공자는 ‘자로가 문하생이 되고 난 후 나의 험담이 없어졌어.’ 하며 웃었다고 한다. 이러한 자로는 공자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엉뚱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만약 스승님이 총사령관이 되신다면 누구를 참모로 쓰시겠습니까?” “글쎄? 맨주먹으로 호랑이를 두들겨 잡고, 배도 없이 강을 건너려 하고, 죽음도 불사하고, 덤벙대는 사람과는 함께 갈 수 없겠지.”(술이편) 공자는 자로의 사랑 확인을 무참히 꺾어버렸다. 하지만 다른 말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기 몸에 누더기를 걸치고서도 사치스런 옷을 입은 사람과 나란히 서서 태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자로뿐일 거야.” 자로는 공자를 신처럼 존경하여 공자가 받는 푸대접에 하늘을 원망하며 슬피 울었다. “악은 일시적으로 번성하고 최후에는 벌을 받는다고 배웠다. 그런데 왜 공자님 같은 분이 악에 고통을 받아야만 하나? 성인군자가 왜 가정적으로 불우해야만 하고 늙어서까지 험한 가시밭길을 걸어야만 하는가?” 세월이 지나 공자는 자로를 위나라 대부 공리의 가신으로 보냈다. 하루는 위나라에 정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식을 듣은 공자는안절부절 못했다. 자로의 급한 성격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공자의 걱정대로 자로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 자로는 창을 찔려 목숨이 반쯤 끊어지면서도 말했다. “군자는 죽을 때 죽더라도 갓을 벗을 수는 없는 법이다” 자로는 죽음 앞에서도 갓끈을 똑바로 매었다. 자로의 나이 62세, 그의 시체는 무참하게 토막이 나 소금에 절여졌다고 한다. 자로의 곧고 급한 성격만큼이나 적도 많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로가 죽은 지 얼마 후 위나라의 사자가 소금으로 절인 자로의 시체를 공자 앞에 내놓자 공자는 대성통곡하면서 소금으로 만든 음식물을 모두 쏟아버렸다고 한다. 공자에게는 3000명의 제자가 있었다한다. 그들은 전국 각지에서 새로운 지식을 갈구하여 공자를 찾아왔다. 어떤 사람은 공자를 비난하기 위해 찾아왔다가 감복하여 제자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만난 공자의 제자 중 안회, 민자건, 염백우, 중궁, 재여, 자공, 염구, 자하, 자로 등 10명의 제자는 후세 공자의 학문을 전파하는 주축이 되었다. 이들은 공자가 죽은 뒤 대부분 공자 무덤 옆에서 3년 상을 지냈다. 그 뒤 일부가 남아서 또다시 3년 상을 지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각기 고향으로 돌아가 제자들을 길렀다. 바로 그 제자들에 의해 논어가 만들어지고 공자의 사상은 중국 각지로 퍼져 공자를 오늘에도 살아남게 했다. 공자의 제자들에 의해 완성된 공자의 가르침은 중국 사상의 주류로 만든 힘이 되었다.
며칠 전 한국 초중고 학생자치회 임원인 학생들을 인솔하여 일본 큐슈지역 학교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학생들과 함께 학교 방문은 교실에서 어떤 학습이 이뤄지고 있는가도 볼 겸 뭔가 새로운 것은 없을까 하는 기대로 방문한 것이었다. 지금 일본 학교교육에서 관심을 갖고 추진한 학교 시스템은 초,중이거나, 중,고 일관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그만큼 교육에 있어서 학교급간의 칸막이로 인한 손실을 없애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우리 인간의 삶도 단절이 아니고 지속성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교육의 중심체인 학교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고 교과라는 과목으로 칸막이가 되어 있다. 또한, 우리 나라의 경우는 초등학교의 왕따 문제가 중학교로 연결되는 것을 염려하여 학교급간의 연계는 생각도 못하고 이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삶과 교육을 일치한 사회를 만들어 가려면 교육시스템도 달라져야 햘 것이다. 지금 전남의 경우 농촌 지역은 인구가 줄어 학교의 통폐합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지만 광양 지역에서는 인구증가로 인하여 2,3년 내에 초,중학교를 신축할 계획인데 미래를 내다보는 건축, 학생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시스템과 학교 건축을 고려해 볼 시점이다. 그리고 가까운 이웃 남해에는 독일마을과 미국마을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남해를 여행할 때마다 우리 지역에도 이제는 ‘교육마을’ 하나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한 적이 있다. 오늘의 학교가 불행해진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그중 하나가 산업화, 도시화 과정에서 농촌 지역 학교가 하나둘 사라지고 도회지 학교가 지나치게 커져가면서 인간적인 만남을 상실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앞으로 ‘행복교육’을 실현하려면 농촌 학교를 되살리고 도시 학교를 작게 만드는 정책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실천해 나갈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이 시대만의 과제가 아니라 지속되어야 할 과제이다. 꽤 오래전부터 나는 이런 꿈을 꾸어왔다. 다들 버리고 떠나는 농촌으로 돌아가 ‘돌아오는 농촌, 다시 사는 마을학교’라는 새로운 깃발을 세워 열정을 온전히 다 쏟고 싶은 꿈 말이다. 지금 농촌은 이농으로 인하여 지속적으로 학생수가 줄어 학교가 마을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농촌이 많은 전남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힘을 모아 이런 학교 하나를 되살리고 싶다. 나아가 그 학교를 중심으로 새로운 교육문화 사업을 펼쳐 지속가능한 ‘교육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단순히 ‘폐교 하나 되살리자’는 식의 낭만적인 접근이 아니다. 우선 마을부터 살려야 한다. 그래야 학교도 오래 살 수 있다. 산업화·도시화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마을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일은 이제 우리 시대의 절박한 과제이다. 인도의 간디 선생도 인간사회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마을자치’라고 보았다. 그런 이상사회의 모습을 담아 그가 펴낸 책이 바로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이다. 간디는 이 책에서 근대 산업사회의 물질적 풍요가 가져다 준 인류의 행복이란 결국 허망한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고 갈파한다. 간디는 인도의 참다운 미래는 근대적인 도시가 아니라 자립적인 농촌마을에 있다고 외쳤다. 그는 대도시와 산업문명은 인간의 영적 빈곤과 이기심을 조장한다고 비판하면서 인도의 70만개 농촌마을을 되살려야만 참다운 인도 민중의 독립과 해방이 온다고 역설했다. 또 그렇게 해야만 새로운 인류문명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정부와 지방자치 단체가 앞장서서 전국적으로 교육마을 만들기 운동을 펼쳐나갔으면 좋겠다. 다시 새마을 운동이 아니라 ‘교육마을 운동’을 전개할 시점이다. 이렇게 하면 오늘날 한국 교육의 고질병인 학교폭력 문제, 학교중단 문제, 학교부적응 문제 등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교육마을이 미래다. ‘담쟁이’처럼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이런 꿈과 희망을 만들어 갈 벗이 그리워지는 것은 나만의 소망은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글로벌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가운데 한국교육은 점점 더 국제사회, 특히 글로벌 빈곤 퇴치에 전념하는 국제기구들의 비상한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은 지난 해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 규모 1조불을 달성했다. 그리고 개인소득 2만 불에 인구 5천만이 넘는 20-50 클럽의 7번째 국가가 됐다. 이렇다할 자원도 없는 나라에서 교육이 없었다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국제경쟁력이 있는 양질의 공교육을 했기 때문이다. 온갖 어려움에도 우리 교육의 질을 지킨 이가 바로 우리 교사들이다. 한국교육을 찬양하는 오바마 대통령도 그래서 한국 교사를 “국가 건설자(Nation builders)”로 칭송했다. 최근 “어느 나라든 한국처럼 성공할 수 있고 성장이 불가능한 국가는 없다”는 신념으로 글로벌 빈곤퇴치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 세계 지도자가 있다. 12대 세계은행 김용 총재는 “다른 나라들이 한국을 본보기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 내가 뼛속 깊이 새긴 경험”이라고 했다. 유엔 수장으로 연임에 성공한 반 기문 총장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두 인물은 무엇을 경험했나? 극심한 가난을 극복한 경험이다. 세계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경험이다. 그 일이 가능했던 것은 정부 수립 후 공교육의 양과 질이 매우 짧은 시기에 눈부시게 발전한 덕이다. 한국 교사들도 그 경험을 뼛속 깊이 새기고 있다. 우리 교육이 그토록 국제 경쟁력이 있는 것은 교사가 묵묵히 현장을 지켰기 때문이다. 교실 칠판을 지킨 백묵과 그 가루에서 가난을 딛고 일어나는 에너지가 솟아났다. 우리 공교육이 보여준 경쟁력은 국제비교 연구에서도 입증된다. 세계은행의 연구진은 1960년대 한국과 아프리카 가나의 경제수준은 비슷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더 벌어졌다고 보고했다. 가나뿐만이 아니다. 소위 BRICS로 불리는 신흥 개발 국가인 브라질의 경우도 60년대에는 한국보다 잘 살았다. 한국이 단시일 내 초등의무교육을 완성하고 곧이어 40여 년 만에 중등에 이어 고등교육까지 보편화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등과 고등교육의 “동시 보편화”라 함직한 이 현상은 세계 교육사상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한국 학생들은 12세나 15세 학생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학력 국제비교에서 1980년대 이래 늘 세계 최상위를 유지하고 있다. 세계 교육사상 유례없는 발달 현상을 통칭해 “한국교육의 발달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반 기문 총장이나 김 용 총재가 승부수를 던진 글로벌 빈곤 퇴치를 위해 이런 한국교육 발달 경험을 세계화할 시기이다. 그리고 이 경험을 평생 동안 체화한 전문가가 바로 50,60,대의 현장 교사다. 지금도 교직에서 은퇴한 후 오지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분들이 상당수 있다. 앞으로는 은퇴 이전에 국제수준의 교육의 질을 온 몸에 답지한 교사가 5대륙으로 나가 세계 교육의 질을 지킬 때가 왔다. 한국 교사들이 한국교육이란 제한된 틀을 벗어나 무지, 질병, 빈궁 탓에 인간 이하의 삶으로 고통당하는 세계인들을 위한 세계교육을 염려하고 그 발전과 질 관리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 일에 정부가 눈을 떠야 한다. 지금까지 세계를 누비는데 선두에 선 사람들은 선교사들이었다. 그들도 역시 사명자로서 오지를 찾았지만 이제 교사들도 이들 못지 않게 고통을 나누는데 동참한다면 한국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 믿는다.
올해는 꼭 열매를 보고 싶었는데…. 밋밋한 타원형으로 짙은 갈색 반점의 윤기 자르르한 아주까리 씨앗을 이년 전 가을날 산 밭에서 몇 알 주워왔다. 반질반질하게 빛나는 모습이 참 예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손바닥 모양 같은 잎과 단단한 줄기가 매력을 발산하여 집에서도 한번 심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듬해 봄 석분가루로 가득 찬 마당 한 귀퉁이에 서너 알 심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아무런 소식이 없어 썩어버렸거나 새가 물어갔겠지 하며 지나쳤다. 그런데 추석 무렵 가는 줄기를 들어낸 채 아기 손바닥 모양 같은 아주까리가 바람에 흔들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제 싹을 틔워 어떻게 하려고 이럴까? 얼마 있지 않으면 겨울이고 얼어 죽을 텐데. 아주까리는 피마자라고도 하며 열대 아프리카가 원산으로 전 세계의 온대지방에서 널리 자란다. 키는 약 2미터이며 여러해살이풀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후상 한해살이풀로 분류된다. 봄에 파종하여 그해 가을에 열매를 수확하고 어린잎은 쌈이나 나물로도 먹고 가시로 덮인 집 속의 열매는 공업용 윤활유나 설사약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렇게 늦게 싹을 틔워 열매를 본다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하며 그냥 두고 보기로 하였는데 이 녀석은 하루가 다르게 가는 뿌리 부분의 밑동과는 달리 튼튼한 줄기로 높이 자람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흙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탓으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 넘어지기 일쑤여서 고추밭에 사용하는 지지대로 줄기를 잡아주었더니만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는 듯 11월 중순경에는 1미터가 넘게 자라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마 차가워지는 기온을 보며 생존의 위협을 느껴서 그랬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입동을 지나 대설을 넘기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자 약간 걱정이 되었다. 따뜻한 것을 좋아하는 저 녀석이 서리를 맞으면 금방 말라져 죽을 텐데 우산이라도 받쳐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였지만 어차피 운명 아닌가? 그렇게 12월이 지나고 새벽 기온이 영하를 오르내리는 소한 무렵 잘 있나 싶어 보았더니 어제까지 대나무 굵기 같은 줄기와 통통한 손바닥 같은 잎들이 간에 절은 배추포기 마냥 축 늘어져 있다. 아! 이 일을 어쩐담. 결국은 서리보다 영하라는 한기에 잎의 수분이 얼어서 세포막이 파괴되어 죽은 것이다. 축 처진 잎들과 그 사이에 채 여물지 못한 열매들! 흡사 여름 한낮 불볕더위에 지친 호박잎보다 더 숨이 죽어버렸다. 조금 빨리 싹을 틔웠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무래도 흙 속이 아닌 물기가 없는 돌가루 속에서 그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오는 데 시간이 필요하였으리라. 이럴 줄 알았다면 도토리나 밤처럼 껍질을 약간 벗기고 심었다면 제때 싹을 틔웠을 것인데 배수가 잘되는 곳에서 단단한 껍질이 물기를 머금어 부패하려면 장마 기간을 거쳐야 했던 것이었다. 이런 아쉬운 마음을 뒤로 이번에는 다락 정리를 한다고 올망졸망한 작은 상자를 열자 몇 알 남은 양파들이 홀쭉한 몸으로 한 줄기 빛을 찾아 연노랑 싹을 내밀며 몸부림하고 있다. 본디 양파는 내한성 작물로 마늘처럼 가을에 모종을 심어서 겨울을 지나 초여름에 수확하는 작물인데 어떻게 이 깊은 어둠 속에서 시간의 변화를 알아차렸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다락에는 양파 외에도 싹이 말라져 쪼글쪼글해진 감자들도 있었다. 식용으로 쓴다고 보관했다가 몇 개 남지 않았다고 그냥 지나쳤는데 살려달라고 심어달라는 묵언의 외침과 원망을 얼마나 하였을까? 싹을 틔운 양파와 감자! 더는 먹거리로 가치가 없어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린다. 살아가면서 지구 위의 모든 동식물에는 생체시계가 있다. 장끼도 길고양이도 번식 철이 되면 그 울음으로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소리를 내지 못하는 식물은 그 싹을 내어 파종과 번식의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를 제때 감지하고 흙과 만나게 해야 썩음을 통하여 새로움을 만들고 다음 대를 이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파종 시기를 잘 맞추지 못하여 싹을 틔운 식물은 반풍수 집안 말아먹듯 그 결과를 잇지 못한다. 이 모든 것 또한 준비에서 시작된다. 겨울도 이제 끝자락이고 입춘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직도 마당 한쪽에는 축축 늘어진 아주까리가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그리고 빈 화분에 버려진 양파는 그래도 살 것이라고 싹을 피워 올리고 있다. 머지않아 봄이 시작될 것이다. 이번에는 그 빈자리에 아주까리 씨앗을 물에 불려 딱딱한 껍질을 약간 벗겨서 심어볼 작정이다. 그러면 올가을에 그 고운 빛깔의 열매를 다시 만져 볼 수 있지 않을까? 말라버린 아주까리와 철 지난 감자와 양파의 싹이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준비의 시간이 필요함을 부릅뜬 눈으로 쏘아보고 있는 듯하다.
설날 연휴를 끝내고 학교에 왔다. 달력을 넘기면서 세월의 빠름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2월 1일도 아니고 3일이다. 학생들이 짧은 방학을 마치고 학교에 왔다. 다시 기숙사 생활을 한다. 아침식사시간에 학생들을 보니 다시 생기가 돈다. 학교에는 언제나 주인공이 있어야 살맛이 난다.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2월은 2013학년도의 마무리 달이다. 아름다운 마무리가 되면 좋겠다. 아름다운 마무리란, 자기의 업무를 잘 마무리하고 학생들이 사건, 사고 없이 학년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르치고 있는 학과를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또 아름다운 마무리란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것이다. 준비가 잘 돼야 출발이 순조롭게 된다. 준비 없는 새 출발은 무의미하다. 그렇기 때문에 2월도 3월 못지않게 바쁘게 돌아가는 달이다. 하루도 쉴 사이가 없다. 방학 동안 충전했던 에너지를 잘 발휘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주는 교훈이 있다. 주인공 허생원의 열정을 본받는 것이다. 허생원은 장돌뱅이다. 장날마다 시장이 서는 곳을 찾아가 장사하는 사람이다. 이분에게는 열정이 있다. 열정이 없으면 장사를 할 수가 없다. 차를 타고 가는 것도 아니고 걸어서 70리를 밤새도록 걸어가야 다음날 장사를 할 수 있다.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장사하는 사람은 이(利)를 목적으로 한다. 5리를 얻기 위해 10리를 가는 사람들이다. 그만큼 열정이 대단하다. ‘리’는 0.5%를 말한다. 조그만 이윤을 남기기 위해 10리를 예사로이 간다. 허생원도 마찬가지다. 70리를 밤에 걸어가야 다음 장에서 장사를 할 수 있고 이(利)를 얻어서 먹고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선생님들에게도 열정이 필요하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열정이 있어야 학생들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학생들의 실력 향상과 내적 성숙을 가져오려면 선생님의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밤새도록 걸어가는 허생원처럼 밤낮 수고를 아끼지 아니함으로 학생들에게 많은 유익을 안겨주는 좋은 선생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느 어머님이 딸이 시집을 가는데 사과나무를 하나 주었다. 이 나무를 심어 잘 길러 여기에 나는 수익으로 선한 일에 힘쓰라고 당부했다. 이 딸이 시집을 가서 어머님의 말씀처럼 사과나무를 정성껏 잘 길러 매년 사과 수익으로 선한 일을 하였다고 한다. 정성껏 사과나무를 기른 것은 선한 일을 하기 위함이다. 학생들에게 정성을 다해 잘 가르치는 것은 학생들의 학력 향상과 좋은 성품을 지닌 세계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함이다. 이런 뜻이 있기에 선생님의 수고는 힘이 들어도 보람이 있고 선생님의 열정과 정성이 결코 헛되지 않는 것이다. 선생님들의 가는 길이 힘이 들지 않으려면 자연을 즐겨야 할 것 같다. 달밤에 소금을 뿌려놓은 듯하게 흐드러진 메밀꽃밭의 아름다운 풍광이 허생원을 지치지 않게 한 것이다. 우리 선생님들이 지치지 않으려면 때때로 자연을 즐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학교 주변에는 산이 있다. 나무가 있다. 숲이 있다. 석양이 있다. 향기가 있다. 새소리가 있다. 꽃이 있다. 바람이 있다. 이런 것에서 새 힘을 얻고 어려움을 잘 견뎌내었으면 한다. 또 선생님들이 지치지 않으려면 함께 하는 이가 있어야 한다. 허생원은 다음 장으로 옮기기 위해서 혼자서 걸어간 것이 아니다. 동이가 있었다. 말 친구가 있었다. 추억거리를 나눌 수 있는 대화 상대자가 있었다. 선생님들은 학교생활 속에서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함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싶다. 위, 아래 갈등이 있으면 서로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고, 가르치는 일에 문제가 있으면 동과 선생님과 대화를 통해 해법을 찾고, 지도하는 일에 어려움이 있으면 선후배 선생님의 경험담을 통해 해답을 찾아가면 학교생활이 훨씬 수월해진다. 또 선생님들이 힘들지 않으려면 시간 나는 대로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힘이 되어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허생원은 동이와 함께 밤새도록 걸으면서 가정사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허생원은 개울물을 만났을 때 함께 걸어간 동이가 있었기에 잘 건널 수 있었다. 동이의 등에 업혀서 쉽게, 따뜻하게 잘 건널 수 있었다. 우리 선생님들이 힘들어하는 선생님에게 동이와 같은 역할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서울시교육청이 2013 하반기 서울학생 행복지수를 발표했다. 먼저 행복지수가 무엇인가에 대하여살펴보면 다음과 같다.행복지수는 학생이 학교생활 및 가정생활 등 생활 전반에 대해 느끼는 만족도 이며, 교육정책 및 학교 환경의 개선을 위한 자료로 활용하기 위함에 목적이 있다. 문항 구성을 보면초등학생 및 중등학생용 4개 영역 30문항인데 학교생활만족도(23문항), 가정생활만족도(3문항), 자신에 대한 만족도(3문항), 전반적 행복도(1문항)이다. 측정방법은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희망하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게 하며그 대상은 초등학교(5, 6학년),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이며,시기는 상반기 1회, 하반기 1회 등 매년 2회(2012년부터 총 4회 측정)이다. 이번 행복지수 측정은 2013.11.19 ~ 12.16 사이 4주 동안 대상 학생 803,514명 중 278,329명(약 34%)이 참여하였으며, 각 지표별 5점 만점으로 측정한 결과 초등학교는 4.25점, 중학교는 3.85점, 고등학교는 3.60점으로 나타났으며, 전체 행복지수의 평균은 3.95점(‘난 행복해’)으로 측정되었다. 2013년 하반기 행복지수 측정(총괄)은조사 기간은 2013.11.19 ~ 12.16(4주)이며, 참여 학생(참여비율)은 275,329명/803,514명 中(약 34% 참여)이다. 전체적으로 영역별 분포도는 영역별 만족도 순위는 가정생활 학교생활 자신 순(順)으로 나타났다. 자신에 대한 만족도가 타 영역에 비해 낮은 것은 학업 성적과 자기 효능감이 부족한데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학교급별 행복지수는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순으로 나타났다. 학교급별 만족도 상위 3문항을 보면 초등학교는 친구들과 대화가 잘 통한다가 4.48점,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창의적 체험활동(문화․예술․체육․수련 활동 등)이 즐겁다가 4.46점, 친구들이 있어 학교에 가는 것이 즐겁다가 4.46점이다. 중학교는 친구들과 대화가 잘 통한다가 4.20점, 친구들과 사이가 원만해서 좋다가 4.19점, 친구들이 있어 학교에 가는 것이 즐겁다가 4.15점이다. 고등학교는 친구들과 대화가 잘 통한다가 4.05점, 친구들과 사이가 원만해서 좋다가 4.04점, 친구들이 있어 학교에 가는 것이 즐겁다가 3.93이다. 공통적으는 교우 관계에 대한 만족도가 높게 나타났으며, 초등학생의 경우 다양한 교과외 창의적 문화 체험 활동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학교급별 만족도 하위 3문항을 보면 초등학교는 자치활동(학급회, 전교어린이회 등)이 활발해서 우리들의 의견이 잘 반영된다가 3.86점, 시험을 보는 방법(수행평가, 쪽지시험, 서술형․논술형 등)이 마음에 든다가 3.90점, 나의 학업성적에 만족한다가 3.99점이다. 중학생의 경우 나의 학업성적에 만족한다가 3.33점, 자치활동(학급회, 학생회 등)이 활성화되어 우리의 의견이 잘 반영된다가 3.49점,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이 나에게 도움이 되어 만족한다가 3.60점이다. 고등학교는 나의 학업성적에 만족한다가 2.84점, 자치활동(학급회, 학생회 등)이 활성화되어 우리의 의견이 잘 반영된다가 3.13점, 급식이 청결하고 질과 양에 만족한다거 3.28점이다. 공통적으로학업성적과 자치 활동에 대해 만족도가 낮게 나타낫으며, 초등학생의 경우 평가 방법, 중학생의 경우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고등학생의 경우 급식에 대한 만족도가 낮게 나타났다. 이러한 과제에 비추어 다음과 같은 면에서 개선이 이뤄져야 하겠다. 첫째, 초등학생의 경우에는 다양한 교과의 창의적 문화 체험 활동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다양한 교과의 창의적 문화체험활동을 강조하여야 한다. 둘째,자치활동에 대해 만족도가 초·중·고 공통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나, 이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셋째, 자신에 대한 만족도가 타 영역에 비해 낮은 것은 자기 효능감이 부족한데 기인한 것으로 판단되므로 학생들의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하겠다.
고등학교에서 실시한다는 신입생에 대한 반편성고사가 선행학습을 유발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여파로 일선학교(중학교포함)에 반편성고사 실시현황을 보고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서울시교육청의 입장에서는 언론보도 내용에 대해 현실을 파악하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언론에서 담당자 조차 반편성고사 실시에 대한 정황을 잘 모르고 있다고 했다. 당연히 담당자가 잘 모를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이미 수년전부터 반편성고사를 지양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권고사항이긴 했어도강제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담당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거의 대부분 학교가 실시하지 않고 있을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반편성고사가 일반화 된 것처럼 보도가 나갔으니, 현황파악이 안될 수 밖에 없다. 일선학교에서 슬그머니 반편성 고사를 실시했다면 그 학교 문제이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반편성고사를 실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필자는 최소한 최근 10년 동안 반 편성고사를 경험하지 못했다. 더구나 선행학습을 유발할 수 있는 반편성고사를 실시한다고 보도가 나갔으니 시교육청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인성검사를 사전에 실시하여 학급을 배정하면 좋다는 전단지를 우편으로 받은 적은 있다. 물론 예산이 문제지만 한번 실시해 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렇더라도 반편성고사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학교의 의견이었다. 결론적으로 우리학교는 올해도 반편성고사를 실시하지 않는다. 출신초등학교와 남, 여 비율을 감안하여 반편성을 실시할 예정이다. 그런데 아주 최근에 한 언론의 인터넷 기사가 올라왔다. 반편성고사 대비방법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사교육기관의 전문가 조언도 곁들였다. 기사 내용을 보면 마치 모든 중학교에서 반편성 고사를 실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학부모가 이 기사를 접하면 배정받은 중학교에 문의가 쇄도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시험을 실시하는 학교에 배정 받았다면 당장에 시험 준비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실시하는 경우 시험범위는 초등학교 6학년 과정이라고 했다. 예전에 반편성고사를 실시할 때 그렇게 했다. 모든 학교들이 같은 시험지로 시험을 본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은 반편성고사를 실시하는 학교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공립학교의 경우 5년마다 교사들이 학교를 옮기는데, 새로 전입해온 교사들이 반편성고사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론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반편성고사는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반편성고사가 전체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것처럼 기사가 나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학부모들의 판단을 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편성고사를 실시하면 성적에 따라 반편성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학교의 입장에서는 아주 편하고 좋다. 그러나 특별한 기준없이 반편성을 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간혹 성적차이가 발생하는 경우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학생들의 중학교 학업성적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도리어 학년을 올라가면서 동기유발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결국 반편성고사는 학교에서 편하고자 실시하는 것일뿐 그 이상은 아니라고 본다.반편성고사가 일반적으로 실시되지 않는 이유이다. 올해부터 서울시내 140여개 중학교가 자유학기와 연계한 진로집중학년제운영에 들어간다. 이 대상이 바로 중학교 1학년이다. 따라서 반편성고사를 실시한다는 것은 서울시교육청의 기본적인 교육방향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는 1학기 기말고사만 실시하고, 2학기는 진로집중학기로 운영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규고사도 축소하는 마당에 입학전부터 시험을 치르는 것은 해당 학교의 향후 교육활동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필자의 경험과 추측에 의한 이야기이긴 해도 보편적인 측면에서 볼때 반편성 고사는 일부 학교, 일부지역에서 실시되고 있다고 본다. 우리학교 인근의 학교들도 대부분 반편성 고사를 실시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반편성 고사를 이슈화 시켜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부담감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다만 꼭 필요한 경우는 학교장의 판단에 따라 실시하되, 실시과목수를 최소화 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생각한다.
교육부가 오는 2023년까지 대학 입학정원을 16만여명이나 줄이는 내용의 대학 구조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주기적인 대학 평가를 통한 하위 그룹 대학은 과감한 퇴출도 불사한다는 장기 계획을 공표한 것이다. 교육부는 급감이 예상되는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해 대학 입학정원을 2023학년도까지 16만여명 감축키로 했다. 또 절대평가 방식의 새 평가체제를 마련해 모든 대학을 5등급으로 나눠 평가하고, 2회 연속 최하등급을 받은 대학은 퇴출할 계획이다. 올해 63만여명인 고교 졸업생이 10년 뒤인 2023년에는 39여만명까지 줄어들지만 전문대 등을 포함해 현재의 대학 정원은 56만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공급과 수요가 역전되어 모집 정원을 채우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큰 폭의 대학 정원 조정은 불가피하다. 정부가 구조개혁에 앞장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교육부는 대학 평가와 대학의 구조 개혁이 퇴출과 정원 감축을 위한 소극적 개혁에 그치지 말고 경제·사회 구조의 고도화 등 시대 변화에 부응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적극적이고 순기능적 개혁을 유도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사실 지난 여러 해 동안 대학들의 자율 혁신과 자율 조정을 유도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약자인 지방대와 전문대 등이 갈수록 더 취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등록금을 주요 재원으로 하는 대학들에게 정원 감축은 존폐 내지 사활이 달린 중차대한 일이다. 그동안 십수 년 전부터 대학의 정원 감축이 추진되어 왔으나 ‘눈 가리고 아웅식’에 그친 것은 결국 학생수와 등록금 등 대학 재정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대학들끼리의 이해 조정과 자율 혁신이 쉽지 않은 만큼 객관적인 조정자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어렵기는 하지만 교육부가 그 조정자의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이번 교육부의 대학 구조 개혁 계획은 절대평가 방식의 대학평가체제를 새로 도입해 그 결과에 따라 차등적으로 정원을 줄이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대학 평가와 대학 구조 개혁의 중요한 척도는 공익성과 형평성이다. 신뢰성과 타당성 있는 평가와 개혁이 전제돼야 한다.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 일반대와 전문대 등은 각각 고유한 역할이 있다. 구조 개혁의 잣대가 획일적, 일률적이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다. 대학의 구조 개혁에서 상대적으로 어느 한 쪽을 희생시키는 식이어서는 공익성이라는 면에서 문제가 된다. 특히 지방대학의 위기는 해당 지역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점에서 종합적인 판단이 요구된다. 그렇다고 역량 미달인 대학을 무조건 배려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 앞으로 대학구조개혁위원회에서 평가지표 등을 개발해 시행할 때 이런 점이 세심하게 고려돼야 한다. 정원 감축이 단계적으로 매끄럽게 이뤄지도록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대학 평가와 구조 개혁의 척도를 들이대야 할 것이다. 정선되지 않은 평가 척도에 근거해 밀어붙이면 반발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일부 대학 측에서는 이번 교육부의 발표에 대해 벌써부터 ‘현실을 외면한 계획’, ‘졸속 대책’이라는 비판과 거부감이 나오고 있다. 이제 대학도 과거의 기득권 지키기의 고루한 ‘제 밥그릇 지키기’ 관행을 과감히 벗어버려야 할 것이다. 대학 스스로 현실을 직시하고 대학 평가와 구조개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스스로의 혁신에 개혁의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대학 스스로 무리하게 정원 유지에 집착할 게 아니라 교육·연구의 질을 높여 학생과 지역사회의 공감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대하 스스로 단과대, 학부, 학과 등의 창의적인 특성화 강화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이제 대학 스스로 진정한 상아탑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외부로 부터의 마지못한 개혁이 아니라 환골탈태하는 ‘솔개의 부리’처럼 스스로의 필요에 의한 자율 혁신이 전제돼야 한다. 지성의 전당인 대학이 외부로 부터의 개혁에 마지못해 따라가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대학별 특성화가 하나의 방향이 될 수 있겠지만 그 속에서도 다양한 창의적인 내용이 담겨야 한다. 국민들도 입시 점수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는 대학이 아니라 특색 있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대학을 늘려가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학은 지성의 전당으로서 막중한 역할을 기대 받고 있다.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대학은 학문과 연구, 사회 봉사 등 시대와 국가, 사회가 요구하는 막중한 짐을 짊어지고 가는 ‘인고의 지게’를 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대학이 스스로의 혁신으로 변화하는 사회와 시대의 흐름을 이끌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학 교육과 대학의 사명은 그 사회의 지적인 수준과 미래를 향한 잠재력을 바탕으로 국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데 있다. 대학 평가와 대학 구조개혁이 교육의 질 제고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교육부는 기본 원칙이 지켜지는 대학의 구조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다만 교육부도 대학 평가와 대학의 구조 개혁을 대학과 교육의 질 개선의기제로 삼아야지 퇴출과 제재를 위한 척도로 삼기 위한 정량적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교육부는 대학 평가에 정성적 평가, 절대평가제 도입을 고려하고 있으나 얼마나 지켜질지는 지켜볼 일이다. 특히 대학 평가와 구조 개혁에서는 수도권대와 지방대, 일반대와 특성화대 및 목적대, 4년제대와 전문대 등의 특성을 비교하고 이를 고려한 평가가 돼야 한다. 일률적인 계량화를 통한 평가와 개혁은 절대 금물로 오히려 대학 측과 재단의 극심한 반발이 우려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학의 자율 혁신이 어렵듯이 대학의 구조 개혁은 더욱 어려운 난제 중의 나제인 것이다. 대학의 구조 개혁은 단기적으로는 정원 감축, 장기적으로는 퇴출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고졸자와 대입자 수가 역전되는 미래 사회에 살아남아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대학은 스스로 얼마나 자기 개혁을 충실히 하느냐에 달려있다. 아무리 대입 정원이 감축된다 해도 자기 혁신을 충실히 하는 대학, 교육의 특성화를 실행하는 대학, 학문과 연구에 앞장서는 대학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결국 대학 평가와 대학의 구조 개혁은 안으로 움츠려드는 대학과 밖으로 기개를 활짝 펴는 대학으로의 갈림길이 될 것이다. 이제 대학은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 그대로 도태되느냐 발전하느냐에 기로에 있는 것이다. 그 갈림길의 이정표에 ‘자율 혁신과 스스로의 개혁’이라는 이정표가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학의 공헌은 무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자율 혁신에 눈과 귀를 닫은 채 그동안 무소불위의 성역으로 군림해온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의 대학은 그동안의 공과(功過)를 뒤로 하고 이제 뼈를 깎는 성찰과 숙고, 그리고 자율 혁신의 길로 과감하게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안으로부터의 혁신이 밖으로부터의 개혁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과거의 향수에 젖어 현실에 안주하거나 혁신을 머뭇거리는 대학은 구조 개혁의 수렁으로 점점 빠져들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제자들로부터 몹시 존경받고 싶은 교수가 있었다. 교수는 존경받는 일은 잘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가르치고 연구했다. 어떤 날은 집에도 가지 않고 밤늦게 남아 수업 준비를 하고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잘 가르치는 일이 제일 중요해. 제자들이 나의 모습을 본받거든. 나를 닮도록 할 거야.’ 늘 이렇게 소신을 가지고 가르쳤다. 공부의 중요성도 역설하며 장차 큰일을 하라고 꿈을 심어주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학기를 수료하거나 졸업을 하는 날, 스승의 날이면 늘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교내에서 만난 제자에게도 간단한 목례만 받을 뿐 ‘교수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는 제자는 하나도 없었다. 교수는 가르치는 방법이 부족해서 그런가 하고 더욱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몇 해가 지나도 제자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교수는 몹시 속상했다. 그래서 그 대학의명망 높은 김 교수를 찾아가 물어보았다. “김 교수님도 그런가요? 글쎄, 나는 찾아오는 제자들이 한명도 없어요.” 김 교수가 대답했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사실 나도 그래요. 요즘 아이들 선생님 존경심이 너무 없기 때문일 거예요. 우리 교육이 잘못된 거지요. 얼마 전 통계도 그걸 말해 주잖아요. 우리나라 젊은이 선생님 존경지수 OECD 국가에서 최하위라던데요.” “그렇군요. 나만 못 가르쳐서 그런가했더니 선생님 말씀 듣고 보니 위안이 되는군요.” “사회가 그렇게 만든 거라오. 가정교육도 그렇고, 취업도 되지 않는 아이들이 고마워할 겨를 있나요? 공부보다는 취업 준비에만 정신이 없어서 그래요.” “듣고 보니 그렇군요.” 교수는 김 교수의 이야기에 안심이 들었다. 이 일이 있은 후 학생들에게 열심히 가르치는 일은 예전처럼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제자들을 불러 커피나 타주고 일상 이야기나 나누다 헤어지고는 했다. 겨울방학도 지나고 해도 지나 어느덧 학기말 수료까지 마쳤다. 교수는 예전처럼 아무도 오지 않는 텅 빈 연구실에서 물끄러미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문을 열자 지난 학기 공부를 가르친 제자였다.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아 학점도 잘 주지 않은 제자가 찾아온 것이다. 교수의 기뻐하던 얼굴은지난번 인색하게 준 학점 생각으로 변했다. “무슨 일로 찾아왔지?” 교수가 더듬거리는 소리로 물었다. “교수님이 보고 싶어서요.” “날 보고 싶어 왔다고? 학점이 아니란 말이야? 넌 C학점 받았잖아.” “교수님, 보고 싶어 왔어요. 정말이라니까요.” “…….” 교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다시 물어보았다. “네 학점은 잘 주지 못했지만 내 강의는 좋았지. 난 정말 열심히 가르쳤어.” “교수님, 저가 찾아온 건 강의가 아니라 지난 학기 저를 불러 타준 커피 맛 때문이어요. 교수님이 타준 커피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해요.” “그게 정말이니? 내가 타준 커피 맛 때문에 찾아왔다고?” 교수는 한동안 자리에 서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제 설날이 지나 학생들이 많은 세뱃돈을 받아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을 하여야 할때가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삼성출판사가 만든 초등 전과목 학습업체인 와이즈캠프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새배 드리는 어른 한 분마다 받기에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새뱃돈 금액은 얼마인지?’와 ‘설날에 받은 세뱃돈을 어디에 사용하고 싶은지?’에 대해 1월 21일부터 27일까지 7일간 설문을 진행했다. 설문에 응답한 2,513명의 학생 중 절반 이상이 5만원 이상의 새뱃돈을 받기를 원했고 받은 새뱃돈은 저축하기를 희망했다. 학년별로 응답을 분석해 보면 새뱃돈 받는 설문에서는 ‘5만원 이상’의 답변이 최저 60%에서 최고 66%까지 저학년과 고학년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많은 금액을 선호했다. 반면 새뱃돈 사용에 있어서는 학년별 큰 차이를 보였다. 저학년일수록 ‘기부한다’는 응답비율이 높고, 고학년일수록 저축한다는 응답비율이 높았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한다’는 답변은 학년별로 1학년 22%, 2학년 15%, 3학년 9%, 4학년 5%, 5학년 3%, 6학년 1%로 학년이 올라가면서 현격히 줄어든 반면, 저축한다는 비율은 1학년 39%, 2학년 50%, 3학년 51%, 4학년 57%, 5학년 55%, 6학년 54%로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많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어른 한 명당 받는 적정 새뱃돈을 ‘5만원 이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많은 것은 어린 학생들의 기대심리를 반영한 희망사항일 수도 있고, 여러 어른들에게서 받았던 새뱃돈 중 가장 큰 금액이 5만원 이상이었던 경험 때문일 수도 있다. 설문에 달린 댓글에서도 20만원부터 100만원까지 그동안 받았었던 세뱃돈 중 많았던 사례를 자랑하는 경우가 다수 발견되었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설이 끝난후 세뱃돈에 관하여 지도하여야 하겠다. 첫째, 갑작스럽세 큰 돈이 생긴 초등학생에게 돈 관리는 매우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으므로 이를 잘 활용하도록 지도가 되어야 하겠다. 오락을 한다든지 하여 용돈을 낭비하지 않도록 유도하여야 하겠다. 둘째,부모님이 세뱃돈을 무조건 맡아 가면 아이들은 돈을 뺏겼다는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는데 이것을 자녀의 미래를 위하여 준비하여 준다는 인식을 강조하여야 하겠다. 셋째,초등학생 이름의 통장을 만들어 저축한 뒤 필요한 책상이나 책장 등을 구입할 때 함께 비용을 준비하게 하면 초등학생ㄷ들의 새뱃돈이 좋은 경제교육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하겠다.
우리학교의 경우를 들어 보면, 보조인력 직종에 교무행정지원사 1명, 교육보조사 1명, 과학실험 보조 1명, 사서 보조1명, 급식실 조리원 7명(조리사포함, 영양사제외), 방과후 코디 1명, 배움터지킴이 1명, 야간당직 담당 1명, 특수학급보조 2명등 대략 16명이 보조인력 직종의 비정규직(계약직)이다. 전문인력 직종에 영양사와 영어회화전문강사가 각 각 1명씩 있으므로 실제로는 18명이다.사실상 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는 학교회계직(예전의 학부모회직원)2명은 제외한 숫자이다. 상시 근무하는 전체 교직원이 80명이다. 이중에서 비정규직이 18명이므로 22.5%가 비정규직이다. 전체 교직원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인 교사와 교장, 교감을 모두 포함하여 계산한 수치이다. 이 수치는 다른 학교도 사정이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이 2년이상 상시근무를 하게 되면 무기계약을 하고 있지만 이에 따른 처우 개선은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약간의 개선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개선은 미흡한 상황이다. 이들 비정규직은 연간 235일, 275일, 365일 등으로 근무 일수가 다르다. 일수에 따라 급여가 당연히 달라지고 있다. 이들은근무기간에 일일보수액을 곱해서 급여를 받게 된다. 올해 교육보조사의 대략적인 평균 연봉은1천6백만원 정도이다.연간 275일의 경우인데 교육청에서 지원을 받고 있어 그나마 연봉이 높은 편이다. 직종에 따라 차이가 있고 근속연수에 따라서도 다르다. 235일 계약이라면 연봉은 더 적다.이 액수에서 4대 보험료와세금등을 공제하면 실제 수령액은 이보다 더작다.올해부터 연봉제로 전환되어개선된 것이다. 나머지보조인력의 연봉은 이보다 더 적다. 학교자체 예산편성이나 행정구청(기초단체)의 지원으로 보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생계를 위한 보수에 못 미치고 있다. 365일을 계약하게되면 그나마 사정은 좀 낳아진다. 그러나 매년기본지침에 따라 계약을 하게 되므로 365일 계약은 쉽지 않다. 많은 보조인력들의 계약일은대체로 275일다. 방학을 제외하였기 때문이다. 방학때는 교사들이 업무를 처리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방학에도 학교의 업무는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통때와 다름없이 진행된다. 교무행정지원사의 계약일이 275일 정도 이므로 방학때 근무를 하기 어렵다. 교사들이 출근하여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겠지만 평소에 행정지원사가 하던 업무를 방학때만 교사들이 하기 때문에 업무의 연속성이 떨어지게 된다. 교사들이 연수에 참여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방학을 이용하여 전문성 신장을 위한 연수를 받으면서 야간에 학교에 나와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비정규직의 보수가 시간이 지나면 차츰 좋아질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학교에 비정규직의 비율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비율이 높다보니 당연히 형평성의 문제를 거론하게 되고, 이로 인해 교직원간의 불평등에 대해 호소하는 경우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또한 계속고용에 대한 불안감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무기계약을 하게 되어도 불평등이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비정규직들이 현재 다양한 요구를 하고 있다. 정부와 교육부 차원에서 시간을 두고 점차 요구를 수용하고 다른 문제들도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들의 요구를 해결하는 것이 일시적인 해결책이 될 가능성이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데 있다. 결국 학교교육을 위해 양산된 비정규직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지속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학교별로 전체 교직원에서 차지하는 비정규직의 비율이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정규직으로의 전환과 함께 일하는 만큼의 처우개선도 필요하다고 본다. 비정규직은 곧바로 채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근무여건이나 급여 등에서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높은 만큼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비정규직을 줄이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될 것이다. 일시에 정규직 전환이 어렵다면 연차적으로라도 정규직 전환을 해야 한다고 본다. 사소한 갈등이나 대립, 비정규직들이 거리로 나선다면 학교교육력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 갈수록 교육력 상승이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외적인 문제로 교육력을 소비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들이 일하는 만큼의 근무여건과 대우를 현실화하여 더이상 학교비정규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해야 한다.최소한 과거에 채용된 학부모회직원의 대우 만큼은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 일시에 예산이 들어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단없이 이들을 계속해서 방치한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큰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이들의 움직임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생계유지와 보람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이야기이다. 이 모든 것들이 학교교육력을 높이는데 꼭 필요한 요건 들이기 때문이다.
50대 후반인 사위가 80이 넘은 장인, 장모로부터 세뱃돈을 받았다. 1만원씩 주셨으니2만원이다. 금액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참으로 의미 있는 세뱃돈이다. 왜? 이 어르신들, 평소 수입이 없다. 지갑이 텅 비어 있다. 그렇다면 이 돈, 어디서 났을까? 사위인 필자. 몇 년전까지만 해도 용돈을 드렸다. 설이나 추석, 생신, 가끔 뵐 때마다 10만원 정도의 작은 돈을 드린다. 필요한 때 쓰시라는 것이다. 명절 때에 드리는 돈은 대개 손주들 세뱃돈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요즘은 드리지 않는다. 치매 증상이 나타난 이후의 변화다. 그러면 설날인 오늘 이 분들이 자식들과 며느리, 사위, 손주들에게 나누워 준 세배돈의 출처는? 공무원인 둘째 처형이 챙긴 것이다. 부모님의 권위와존재감을 지키려고 돈을 넣은 편지봉투를 미리 준비하였다. 손주들이 세배를 올릴 때 늘상하던 세뱃돈을 베풀도록 배려한자식의 따뜻한 마음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우리집. 설날 친척 모임은 지난 일요일 우리집에서 가졌다. 아내의 주선으로, 모든 음식준비를 아내가 했기에칭찬이 자자하다. 특히 갈비와 생선외에 더덕무침, 무우 생채, 무우 숙채, 취나물, 시래기나물, 시금치나물, 숙주나물 등을 차리니 상이 풍부하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왔다. "오대산 산채비빔밥잘 먹었어요" 설날 모임은 아이들 외가 모임이다. 모임 장소가 마땅치 않아 아내가 자원한 것이다. 장소를 제공한다는 것은음식 준비까지 맡겠다는 것. 그 힘들고 짜증(?)나는 일을 자원한 아내가 고맙다. 언제 음식을 분담했는지 셋째 처남댁이 전을, 막내 처남댁은 잡채를 가져왔다. 우리집과 처가의 차이점. 사는 방식과 문화가 다르다. 우리집은 모이는 시각과 인원수가 정확하다. 사전에 문자로 참석여부와 인원 수를 통보 받는다. 거기에 맞추어 음식을 준비한다. 그런데 처가는? 낮 12시에 모이기로 했는데 2시가 넘어 다 모였다. 인원 파악은모이는 도중에 집계된다. 요즘 다문화라는 말, 우리 민족끼리도 다문화다. 아내는 딸 넷, 아들 넷에서 셋째다.필자와 아내가 교사인 것에 영향을 받았는지 막내처남과 막내처제도 교사가 되고 부부교사가 되었다. 장인과 장모는 자식과 며느리, 사위가 교직에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래도 사회에서 존경받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르신들의 건강이 좋지가 않다. 연세도 연세지만 젊었을 때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걷는 것 자체를 힘들어 하신다. 자식들의 이름도 기억 못할 적이 많다. 그래서 자식들은 그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쓴다. "아버지, 제가 누구예요?" 이 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자식들의 부모에 대한 존경과 사랑 아닐까? 문화는 집집마다 다르다. 어느 집의 문화가 우월한 것이 아니다. 집집마다 장단점이 있다. 장점을 살려나가면 되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7년 전인 초임교사 시절에 가정방문을 간 적이 있었다. 집집마다 사는 방식이 다 달랐다. 어느 집은 깨끗이 정리정돈 되어 있었는데 왠지 정(情)이 가지 않았다. 정리정돈의 다른 이미지를 보았던 것이다. 오늘 받은 세뱃돈 2만원. 필자가 아들과 조카들에게 준 세뱃돈과 의미가 다르다. 내가 나누워 준 세뱃돈은나의 월급 중 일부분이다. 내가 일해서 번 돈이다.소득이 있는 손위사람이 덕담을 하며 준 것이다. 건강이좋지 않은 장인과 장모. 그 분들의 존재만으로도 구심점이 되고 가정행복의 원천이 된다. 세뱃돈2만원을 다시 한번 들여다 본다.
몇 해 전 내가 소속된 도교육청에서 돌봄 교실 회의가 열렸다. 주제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엄마 품 행복 종일 돌봄 교실 활성화 방안’ 아마 이런 정도였을 것이다. 시군 교육청 소속 유치원 교사들과 교장선생님이 참석하고 언론사 등에서도 찾아왔다. 나는 내가 소속된 학교 유치원 교사와 함께 참석하였다. 회의는 패널토론자의 발표와 돌봄을 맡은 유치원 교사, 일반인의 자유토론으로 이어졌다. 회의 진행 장학관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돌봄 교실을 우리 도에 마련하자는 취지의 발언과 함께 회의를 시작했다. 패널 토론자들은 돌봄 교실 확대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 효율적인 운영 방안 등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져갔다. 어머니로부터 위탁받은 아이들에게 엄마 품처럼 잘 돌보도록 하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자유토론 시간이 되면서 돌봄 교실을 맡은 유치원 교사들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돌봄 교실을 맡으면 아침 8시부터 밤 9시 넘어서도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등원 시간과 하원 시간이 서로 달라서 아이를 맡으러 아침 일찍 가는 어려움도 나왔다. 어떤 때는 밤 10시가 넘어 아이를 데려다 주고 혼자 텅 빈 운동장으로 퇴근할 할 때 조마조마한 심정 등도 오갔다. 유치원 돌봄 교사들의 애환을 들으니 대한민국의 교사들은 정말 훌륭하구나, 그렇게 희생하면서 잘 하겠다는 이야기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대가라고 해야 보잘 것 없는 승진 가산점, 그래도 불평 없이 노력하는 유치원 교사들에게 숙연하기까지 했다. 자유발언의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나에게도 발언기회가 찾아왔다. “아침부터 아이를 가다리다가 밤늦게 텅 빈 운동장을 혼자 걸어 나가시는 유치원선생님들의 이야기에 숙연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정성껏 돌본다고 선생님 품이 엄마 품과 같습니까? 눈 뜨자 돌봄 교실에 아이를 위탁하고 밤 10시가 되어서 아이를 데리고 가는 사람이 엄마 노릇 한다고 보십니까?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엄마 입니다.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랄 때 건강한 국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치원 선생님도 엄마가 아닙니까? 자기 아이도 밤 10시까지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아이 엄마란 말입니다. 이런 선생님들이 돌봄교실을 마치고 다음날에도 출근하여 아이를 반겨줘야 합니다. 이게 엄마 품 종일 돌봄 교실이하고 있는 일입니다. 세계에서 자아존중감이 가장 낮은 아이, 부모 존경, 선생님 존경심 낮은 아이, 행복지수 가장 낮은 우리교육, 교육청과 정부가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여성 일자리보다 중요한 것은 엄마로 만드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아이를 맡긴 엄마, 한 달에 얼마나 버는지 모르지만 자녀교육 한계선상에 있는 가정에게 차라리 그 돈을 지원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입니다.” 나의 이야기는 다소 길어졌다. 사회를 진행하는 사람은 언짢은 표정으로 몇 번 나의 발언을 제지하였다. 하지만 유치원 교사들의 박수는 우레 같았다. 누구도 하지 못했던 참았던 이야기를 대신 해주었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갔던 유치원 교사는 지금도 온종일 돌봄 교실을 맡아 한다. 나는미안한 마음으로 가끔 물어본다. “이 00선생님, 너무 고생 많아요. 돌봄 교실 힘들지요?” “교장선생님, 정말 할 게 못돼요. 어떤 아이 엄마는 멀쩡히 놀고 있으면서도 맡겨요. 수업 준비도 정말 힘들어요. 저의 집도 그래요.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자아이가 있거든요. 사는 게 말이 아니어요. 돌봄 교실 없앴으면 해요.”
서울대는 지난해 2015학년도 입시안을 전격 발표했다. 수험생들의 혼란을 방지하고, 학생들이 안정적으로 진로를 설정해 진학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중에 의대에서 문과학생을 선발하겠다는 파격적인 방침이 있었다. 그러나 의대 교차지원 허용은 외고와 국제고 등 특목고를 위한 개악이라는 비난 여론에 밀려, 한 달여 만인 12월 27일 이를 철회했다. 이번 입시안에는 사회적 배려 대상 학생의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폐지해,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학생, 농·어촌지역 학생, 특수교육대상자, 새터민 등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학생들의 입학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는 고무적인 전망도 있다. 그리고 정시모집 전형에서 논술을 폐지하고, 수능으로만 단순화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서울대 입시안은 아직도 점검해야 할 내용이 있다. 첫째 우려 되는 것이 정시 선발 인원 증원이다. 서울대 발표에 의하면, 2015학년도 대학입학전형에서는 수시모집에서 2,364명(75.4%) 정시모집에서 771명(24.6%)을 선발한다. 정시모집 선발 인원이 2014년 대비 7.2% 증가한 것이다. 이 중에 지역균형선발 전형은 2014년 24.6%에서 2015년에는 22.1%(692명)으로 줄었다. 수시 전형에서 정시 전형으로 방향을 튼 것은 일반고에 불리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많은 특목고나 자립형사립고 학생에게는 유리하다. 지역균형선발 전형 축소도 마찬가지다. 지역균형선발 전형은 말 그대로 전국의 학생들에게 고른 기회를 주려는 국가 정책의 일환이다. 아울러 수시 지역균형선발전형의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4개 영역 중 2개 영역 2등급 이내에서 3개 영역 2등급 이내로 강화한 것도 걱정이다. 서울대 입장에서는 강화이지만, 지역적으로 소외된 곳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문턱이 높아진 것이다. 각 지역의 인재를 뽑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수능 우수 학생을 뽑기 위한 제도 변경처럼 보인다. 2017학년도 수학 시험에서 과탐Ⅱ+Ⅱ 조합에 대해 가산점을 부여하는 것도 재고해야 한다. 서울대 측은 올해부터 일반고도 교육과정 자율권이 확대돼 과학II 추가 수업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일반계 고등학교는 과학Ⅱ 과목 2개를 배우기 힘들다. 과정을 개설하더라고 일반 학생들은 선택을 하지 않는다. 설사 강제로 개설을 하고 수업을 한다면 일부 우수 학생 학생만 의지가 있을 뿐 대부분 학생들은 흥미도 없이 앉아 있어야 한다. 교육과정이 파행적으로 운영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따라서 과학Ⅱ 두 과목 가산점은 특목고나 전국단위 선발 자율형 사립고, 과학중점고 등에만 유리한 정책이다. 전체 수험생 중에 서울대에 진학하는 학생은 아주 적다. 정확히 2015년 입학 기준 3,135명이다. 그런데도 서울대 입시안에 전국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대 입시 정책이 우리니라 대학 입시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당장 서울대가 모집 군을 ‘나’군에서 ‘가’군으로 전환하자 고려대와 연세대가 직접 경쟁을 피하기 위해 모집 군을 옮겼다. 여기에 고려대와 연세대 때문에 다른 대학들이 또 연쇄적으로 모집 시기를 변경할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대의 학생부 전형, 논술 반영, 지역 균형 선발 등은 다른 대학에 참고 자료가 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서울대의 입시 정책은 우리나라 대학 입시의 변화를 가져오는 밑바탕이 된다. 서울대의 입시안에는 학생들의 입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시모집을 수능으로만 선발하는 등 전형 요소를 간소화하여 학생의 부담을 최소화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구체적인 전형 요소는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어 복잡하다. 서울대학교는 입학 안내 보도 자료 첫머리에 학교 교육과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교육활동을 중심으로 자기를 계발하여 잠재적 발전 가능성을 갖춘 창의적인 인재를 선발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 중에 학교 교육과정 내를 언급했는데 이는 공교육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부 종합 전형 등에 비중을 두는 입시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입시안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해야 한다. 하지만 준비 기간을 주지 않고, 코앞에서 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수험생들이 중학교 때부터 계획을 세워 입시 준비를 하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현재 ‘3년 예고제’라는 룰을 둬 입시안을 발표하고 있다. 심한 경우는 아예 이를 무시하고 바꾸기도 한다. 이번 기회에 서울대만이라도 ‘6년 예고제’로 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생들이 대학입시 로드맵을 장기적으로 세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오랜 연구 끝에 입시안을 만들어낸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특히 학교 교육정상화라는 것에 맥락을 함께 한다면 답이 쉽게 나올 수 있다. 서울대는 국가 지원금을 가장 많이 받는 대학이다. 아울러 서울대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으로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로도 크다. 공교육을 살리기 위한 정부 방침을 적극 실천하는 행보를 해야 한다. 우수 학생 선발이 아닌 사회 통합을 위한 고른 기회 전형 확대에 힘써야 한다. 그렇다면 서울대는 국립대학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국가적 이미지에 걸맞은 입시 정책을 펼쳐야 하는 것도 임무이다.
교육부의 초등 돌봄교실 확대가 일선학교에 상당한 부담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기본적으로 초등 돌봄교실은 초등학교 1, 2학년 학생 중 희망하는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방과후부터 오후 5시까지 오후 돌봄을 실시하고 추가 돌봄이 필요한 맞벌이․저소득층․한부모 가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밤 10시까지 저녁돌봄을 제공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돌봄교실 운영을 통해 보육문제를 해결하고자 함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정부에서 의욕을 가지고 확대 추진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인 취지는 공감하지만 선결되어야 할 문제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현재 일선학교 중에 방과후학교 야간 수업을 실시하는 학교들이꽤나 많다. 보통 오후 9시를 전후해서 마치게 되는데사교육을 절감하기위한 대안으로 방과후학교 제도가 시행되었고 어느 정도 효과도 보고 있다. 보통은 방과후에 시작되는 방과후 학교가 야간까지 이어지고 있다. 야간까지 이어지는 이유는 학생들이 야간에 주로 학원에 가기 때문에 사교육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방안이다. 방과후 야간 수업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담당부장이나 담당교사 중 최소 1명은 수업을 마칠 때까지 학교에서 근무를 해야 한다.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해서오후 9시 이후에 퇴근을 하게되는 것이다. 여기에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위해또다른 교사들이 근무를 하게 된다.학교 마다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매일 2-3명의 교사들이 방과후 학교야간 수업을위해 근무를 하게 된다. 이미 각 학교마다 방과후교육부라는 부서가 있다. 물론 방과후 학교가 활성화되면서 새로 탄생한 부서들이다. 방과후학교 운영에서 교사들이 져야할 책임은 무한하다. 적지않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교시에 발생하는 폭력 문제나 금품갈취 문제등이 바로 그것인데,학교에서 책임 져야 할 부분들이 많다. 당일 근무했던 교사에게 1차 책임을 묻게 되는데, 하교가 무사히 끝날 때까지 마음을 놓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학교에서의 방과후 야간 강좌 개설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학원처럼 하교시에 차량을 운영하면 좋지만 이 경우에 학부모들의 부담가중으로 운영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돌봄 교실을 야간까지 운영한다면 학교에서는 더욱더 큰 부담을 안게된다. 재정적인 부담은 물론이고, 관리에 대한 문제는 상상을 초월한다. 더구나 참여 학생들이 초등학교 1,2학년 이기 때문에 더욱더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어느 정도 돌봄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을 하지만 늦은 시간까지 학생들 보육을 위해 학교시설을 개방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일은 아니다. 주간이 아니고 야간에 이루어진다는 점을 간과한다면 여러가지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매우 크다. 학생들이 야간까지 학교에 남아 있다면 이에 따른 프로그램도 개설되어야 한다. 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을 학교에 붙잡아 두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고등학교 학생 정도라면 야간 자율학습을 위해 남아 있는 것처럼 운영이 가능하지만 한참이나 미성숙한 초등학교 1,2학년을 붙잡아 둘 수 만은 없기 때문이다. 이에 적절한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이 별도로 필요한 것이다. 더구나 학생들이 더 많아지면 야간 보육을 위한 교사들이 그만큼 더 필요하게 된다. 1-2명의 교사로 해결되기 어렵다.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다소라도 준비가 미흡하다면 당장 확대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하교시에 학부모가 학생을 데리러 오지 않는다면 담당교사가 더 오랜 시간을 데리고 있어야 하는 문제점도 있게 된다. 이 모든 문제들은 돌봄의 대상이 초등학교 1,2학년이기에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야간까지 학생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급식제공 문제도 발생한다. 현재처럼 적은 학생들이 참여할 경우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 있지만 학생수가 많아지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많은 학생들이 남아있게 되면 학교급식실을 운영해야 하고 급식실 운영으로 인한 재정적인 문제와 함께 급식실 종사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등의 문제도 쉽게 생각할 부분이 아니라고 본다. 야간 간식제공등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재정 문제는 학부모 부담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저소득층 자녀들이 주를 이루는 상황에서 학부모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도 쉬운 문제는 아닐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모든 것들은 교사 한 명으로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야간 근무교사를 늘리게 되면 주간에 수업 및 행정업무를 처리하고 야간에 근무하는 교사들이 늘어나게 되면서 학교의 교육력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교사들이 철인이 아니라면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야간 보육담당교사를 초중등교사와 보육교사 2급 자격을 갖춘 경우로 한정하고 있어 인력운용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돌봄교실 운영을 담당하는 교사들에 대한 인센티브로제시된 몇 가지 안 역시 돌봄교실을 전담할 교사에게 제시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특히 승진가산점의 경우 담당교사가 정해지면 해당교사에게 관련 업무가 도리어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학교풍토는 교사가 승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곱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따라서 승진가산점을 위해 돌봄교실을 전담하기 위해 나서는 교사들은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참여하는 교사들에게 관련 업무가 집중되는 기현상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승진가사점을 부여한다면 학교의 풍토가 먼저 개선되어야 한다. 승진가산점만 부여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모든 교사들이 승진을 위해 매달리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전담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훨씬더 효율적이다. 물론 전담인력에게 모든 것을 맡겨 놓았을 경우에 발생할 문제점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책임소재를 명확히 한다거나, 전담인력에 대한 사전 충분한 교육등이 필요하다. 무조건 학교에 짐을 지우는 식의 추진은 바람직하지 않다. 교육의 본질은 보육기능이 아니고 교육기능이다. 따라서 교사들이 교육기능 외에 보육기능까지 책임지고 하도록 하는 것은 교육의 본질을 벋어나는 것이다. 교육의 본질에 더 충실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자격을 갖춘 인력을 확보한 후 확대 운영하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이다.
명절 스트레스 누가 가장 많이 받을까? 아마도 음식을 준비하는 주부일 것이다. 특히 시댁에서 명절을 치루면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남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고향을 찾아 장거리 운전을 몇 시간씩 하다보면 육체적 피로가 쌓인다. 취업을 하지 못하고 실업자인 사람들은 아예 친척들이 모인 곳에 가지 않는다. 친척들의 염려와 걱정이 오히려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미혼인 노처녀, 노총각도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너는 언제 결혼할 거니? 사귀는 사람이라도 있니? 눈높이를 낮춰야지?" 이런 말들에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명절 때마다 받는 스트레스 슬기롭게 이겨내는 방법은 없을까? 신문을 보니 박진박 국립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명절스트레스를 이기는 6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즉,STRESS(Smile·웃으면서 즐겨라, Together·온 가족 모두 함께하라, Respect·서로 존중하라, Event·가족끼리 이벤트를 만들라, Speak·고마움을 말로 표현하라, Slowly·천천히 안전운전하라)로 이겨내라고조언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제시한 여섯 가지가 모두 공감이 된다. 이것만 실천한다면 명절증후군이라는 말도 없어질 것 같다. 오히려 주부들에게도 기다려지는 명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오랜만에 친척들이 모여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교 격려해주면 명절이 재충전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첫째, Smile·웃으면서 즐겨라. 주부가 명절을 준비하는 일이 많으면 자연 짜증이 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남성은 노는데 나만 일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화가 난다. 그러나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즐긴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마음 먹기에 달린 것이다.주부가 명절기간 화를 내면 그 동안의 수고가수포로 돌아간다. 둘째, Together·온 가족 모두 함께하라, 명절 준비, 주부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온 가족 전체의 행사다. 이러한 때 남녀노소 구분없이주부의 일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맡아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일이 좀 서툴더라도 실수를 해도웃고 넘기자. 가족이 함께 동참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족애의 잊지못항 추억도 남길 수 있다. 셋째, Respect·서로 존중하라. 가족 구성원 간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인격을 존중한다면다툴 일이 없을 것이다. 상대방을 존중하면 배려심도 생긴다. 상대방이 바쁘게 움직일 때 '내가 도울 일은 없을까?'를 생각하면 협력이 된다. 백짓장도 맞들면 가벼운 것이다. 넷째, Event· 가족끼리 이벤트를 만들라. 필자의 경우, 아침 식사 후 세배를 하고 가족끼리 편을 갈라 윷놀이를 한 적이 있다. 이런 이벤트 행사를 하니 명절 분위기가 살아나고 가족간의 우애가 더욱 돈독해 진다. 화투놀이, 포커 등도 있지만 권장하고 싶지 않다. 다섯째, Speak·고마움을 말로 표현하라, 가족간에는 모두가 소중한 존재이다.맡은 역할도 그렇고 하는 일도 소중하다. 이것을 말로 표현해 보는 것이다. 제일 먼저 음식을 장만한 주부에게 그 노고에 대한 감사를 말로 표현해 보는 것은 어떨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자식들에게 하는 부모의 고마움 표시도 자식에게는 큰 힘이 된다. 여섯째, Slowly·천천히 안전운전하라. 명절 때 교통사고 발생률이 높다는 통계다. 가족 전체가 한 차량으로 이동할 경우, 사고가 나면 가족 전체가 불행해진다. 고향에 좀 늦게 가더라도 귀경길이 좀 늦더라도 천천히 안전운행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생님이 틀렸어요 실로폰을 처음 연주해 보는 학생들에게 먼저 주법을 설명한 뒤, 다장조의 7음계를 두드려 보기로 했다. 실로폰 건반 위에는 학생들이 알아보기 쉽게 알파벳과 7음계의 이름을 적어 놓았는데, C(다)장조부터 배우기 때문에 C건반 위에 ‘ 도’라는 글자 스티커가 붙어 있다.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아이들이 소리를 맞춰 실로폰 건반을 두드린다. 샘물처럼 맑은 실로폰 음률이 포롱포롱 교실 안을 날아다닌다. 마치 소리의 작은 새들이 줄을 지어 하늘을 날 듯. 그런데 줄을 지어 나란히 날아가던 새 한 마리가 줄을 이탈했나 보다. 같은 음이 아닌 다른 음이 섞여 있다. 실로폰을 치는 아이들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경환이 어깨 뒤에 섰다. “경환아. 도는 이곳이야. 여기 도란 글자스티커가 붙어 있지 않니? 글자스티커가 붙어있지 않아도 선생님이 C가 도라고 했는데, 넌 왜 자꾸 A부터 치니?” 내가 나무라자 경환이가 실로폰 채를 책상 위에 내려놓더니 입술에 힘을 주고 쳐다본다. “실로폰이 잘못되었어요. 선생님도 틀렸어요. A가 맨 앞이고, 도도 맨 앞이니까 A가 도예요. 그러니까 실로폰도 잘못되었고 선생님도 틀렸어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때문에 “다단조나 가장조면 A가 도겠지만, 지금은 다장조를 배우니까 C가 도란다”라며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초등학생에게는 어려운 것이 당연한 이 음악 공식을 쉽게 설명해 줄 방법이 전혀 없었다 . 30년이 훨씬 넘는 교직생활 중에서 초등학교 1학년을 절반 이상 맡았고, 나머지 학년도 대부분 2학년을 맡았기에 해마다 실로폰을 가르쳤음에도 지금까지 난 단 한 번도 이런 상황에 직면했던 적이 없었다. 실로폰 공부를 할 때마다 ‘도’ 건반을 가르쳐 주면 모든 아이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 건반을 ‘도’로 알았다. 아이들은 세상이 끝나도 결코 변하지 않을 확고부동한 자리로 알고 7음계를 연습했으며, 자신이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를 치게 되었다는 사실을 무척 신기하고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재미있게 실로폰 공부를 했다 . 그런데 오늘 나는 특별한 녀석을 만난 것이다. [PART VIEW] “조회할 때 1학년과 2학년 언니들의 자리가 다르고, 1학년 맨 앞과 2학년 맨 앞자리가 다르듯이 장조에 따라 ‘도’ 자리가 달라진단다.” 내가 고민하면서 경환이에게 들려준 답이다. 내가 생각해도 학생이 이해하기 쉬운 설명은 아니었다. 역시나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A가 도라고 우기면서 계속 A자리부터 치는 녀석. “이건 다장조니까 C가 도 자리라고.” 아이와 몇 번 실랑이하다가 결국 실로폰 채를 뺏어 들었다. 경환이는 실로폰 채를 뺏기자 입을 삐죽 내밀고선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특별한 아이 그러고 보니 녀석은 내 교직생활에서 만난 몇 명의 지독한 고집쟁이 중에서도 좀 유별나고 특별한 고집쟁이였다. 입학식 다음 날부터 학교가 떠나갈 듯이 두어시간을 울어대 나를 애먹였다. 이렇게 울어댄 이유는 급식 때문이었다. 서로 먼저 밥을 먹으려고 하는 아이들의 특성 때문에 우리 반은 급식소에 갈 때 교대로 맨 앞에 서기로 했다. 입학식 날은 키가 제일 작은 경환이가 맨 앞에 서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다음날은 다른 아이가 앞에 섰는데, 경환이는 어제 자기가 제일 앞에 섰으니 오늘도 앞에 서서 급식소로 가고 밥도 제일 먼저 먹어야 한다며 고집을 부렸다 . 제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고함을 지르면서 울어대기 시작했다 . 다른 학생들 점심도 먹여야 해서 일단은 통곡하는 아이를 교실에 혼자 두고 밥을 먹으러 갔다. 물론 뒤에 어르고 달래 겨우 점심을 먹였다. 통합교과 시간의 일화도 있다. 짝을 지어 하는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녀석이 하도 말을 듣지 않아 도무지 수업을 할 수 없자 짝인 세연이가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녀석 때문에 수업을 진행할 수 없어서 한마디 했다. “경환이, 너! 그렇게 선생님 말씀 안 듣고, 공부도 안 하고, 친구들 애먹이려면 뭐하러 학교에 오는 거니? 나 같으면 집에서 혼자 신 나게 놀겠다. 친구들 괴롭히지도 않고 친구들 공부 방해도 안 하고……. 또 그러려면 학교에 오지 말아라.” 물론 진심은 아니었지만 얼마나 화가 났으면 아이에게 학교에 오지 말라고 했겠는가. 그렇게 심한 말을 한 나 자신의 잘못을 미처 깨달을 새도 없이 녀석이 시원하게 대답했다 . “네, 선생님. 학교 안 올게요.” 참 기가 막혔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날 수업이 끝난 후에 아이들을 돌봄 교실에 보냈는데, 돌봄 선생님이 웃으며 우리 교실로 들어왔다. “선생님, 선생님! 경환이가요, 저에게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선생님, 학생들은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하지요? 우리 선생님이 내일부터 나보고 학교 오지 말랬어요. 그러니 선생님도 나 학교에 안 오면 그렇게 알고 계세요’ 이러는 거예요.” 돌봄 선생님과 나는 기가 막혀서 한참을 웃었다. 물론 다음 날 녀석은 학교에 나왔다. 학교에 안 가려는 걸 할머니가 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왔다나? 아무튼 그 녀석이 지금 실로폰 채를 빼앗겨 토라져 있다. 선생님이랑 나랑 누가 맞는지 꼭 알아볼 거다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 도 , 시 , 라 , 솔 , 파 , 미 , 레 , 도 .’ 포롱포롱 포로롱. 새처럼 교실 안을 날아다니는 실로폰 음률들. 열심히 연습 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도란도란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 심을 먹는 아이들. 경환이의 짝인 세연이가 자신이 다니고 있는 피아노 학원 이 야기를 한다. 아이들의 소곤거림을 들으면서 식사를 하던 나는 경환이의 말 한마디에 음식 이 목에 걸려 버렸다. “나는 실로폰학원에 다닐 거다. 그래서 도가 어디서 시작되는지 꼭 알아볼 거 다. 우리 선생님이 맞는지 내가 맞는지 꼭 알아볼 거다.” 녀석이 얼마나 억울했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 지난 3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고민하지 않고 가르쳤던 것에 대한 새로운 고 민. 아이가 ‘도’의 자리는 조성에 따라 다르며 그것은 악기를 연주할 때도 마찬가 지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숙제를 베테랑 교사인 나는 어떻 게 풀어나가야 할까? ‘그래, 우리 학생들. 경환이처럼 어떤 의심이 생기면 꼭 밝혀 보려는 마음을 가지 렴. 그렇게 새로운 사실들을 하나씩 깨달으면 몸도 마음도 훌쩍 자란단다.’ 숙제를 하나 안게 된 나는 우리나라에 있는지 없는지 모를 실로폰 학원에 다니겠 다는 경환이와 아이들을 따뜻한 눈길로 쓰다듬은 뒤,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1.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에 에리히 캐스트너(Erich Kastner, 1899~1974)가 있다. 그는 <걸리버 여행기>, <돈키호테> 등의 고전 명작을 현대 시각으로 다시 집필해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전 소설가로서, 안데르센 상 등 수많은 상을 받은 작가다. 그가 전하는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어느 해 겨울 우리는 아주 친한 친구들 몇몇끼리 여행을 했습니다. 우리 일행 중에는 ‘에른스트’ 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여행 일정이 빽빽하고 먼 길이었기 때문에 모두들 피곤했습니다. 그 날 우리는 밤 열차로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나도 밤늦게 찻간에서 피곤해 쿠션에 기대어 앉아 있었습니다. 에른스트는 내 앞좌석에서 이미 잠들어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조용히 에른스 트의 숨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잠이 든 에른스트는 점차 깊이 수면에 빠져드는 듯했습니다. 그가 잠들고 한참 지났을 때였습니다. 에른스트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조끼 주머니를 뒤졌습니 다. 그리고 약통을 꺼내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큰일 날 뻔했어. 하마터면 수면제를 먹지 않고 잘 뻔했군!” 그는 부지런히 약을 먹고 다시 잠드는 것이었습니다. 언뜻 보면 좀 코믹해 보이는 장면이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습관이 그만큼 무섭다는 것을 아찔하게 보여주는 일화이다. 서양 속담에 ‘습관은 제2의 천성(天性)’이라는 말이 있다. 타 고난 본성만큼 그 힘이 크다는 뜻이라 하겠다. 비슷한 말을 몽테뉴(Montaigne, Michel Eyquem de 1533~1592)가 그의 명저 수상록(隨想錄)에서 언급한다. “습관은 제2의 자연이다. 제1의 자연에 비해서 결코 약한 것은 아니다.” 같은 책에서 몽테뉴는 습관의 힘 을 더 직설적으로 말한다. “습관이 하지 않는 일이나 하지 못할 일은 없다.” 습관을 마치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power)처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습관은 적어도 한 개 인의 내부에서는 그런 힘을 가지고 사람을 조종하고 통제한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그래도 가치중립적인 진술이다. 습관이 그저 힘이 막강하다는 것을 말한 것뿐이니까. 습관이란 말 그 자체는 좋고 나쁨을 담고 있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인들이 ‘습관’이란 말을 사용했을 때는 긍정적인 맥락보다는 부정적인 맥락이 더 강하게 개입하는 듯하다. “습관을 버려라”, “습관을 고쳐라” 등의 말을 더 많이 듣기 때문이다. 설령 ‘좋은 습관’을 이야기할 때도 반드시 ‘나쁜 습관’을 고치라는 이야기 끝에 따라 나오는 것을 항용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몽테뉴도 수상록에서 습관 이야기를 꺼낼 때 이 점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습관이란 것은 참으로 음흉한 선생이다. 그것은 천천히 우리들의 내부에 그 힘 (권력, power)을 심는다.” 나쁜 습관을 ‘음흉한 선생’으로 비유한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 겠지만, 우리를 가르치고 인도해 마침내 그렇게 길들이는 어떤 존재를 ‘선생’으로 상정한 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을 것 같다. 달리 생각하면 ‘습관’과도 같은 막강한 힘을 발휘하 는 존재가 ‘선생’이라는 인식이 그즈음부터 있었다는 사실 하나를 확인하게 된다.[PART VIEW] 2. 몽테뉴보다 90년 뒤에 태어난 사상가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 의 습관론도 만만치 않다. 그는 명저 팡세를 통해 습관에 대한 몽테뉴의 인식을 비판적으로 이어받는다. “습관은 제2의 천성으로서, 제1의 천성을 파괴한다.” 타고난 성품이 나쁜 습관 때문에 망가지는 것을 대어놓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습관에 대해서 돌직구를 던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찌 습관에다 대고 하는 말이겠는가. 나쁜 습관에 본성마저도 마비된 어리석은 인간을 두고 하는 비판 아니겠는가. 파스칼의 통찰은 날카롭다. 습관의 힘이 왜 무서운지를 설명하는 가운데 그는 습관의 숨겨진 속성을 이렇게 갈파한다. “왜 습관을 따라야 하는가. 습관은, 그것이 습관이기 때문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합리적이라든가 올바르기 때문에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습관이 지니는 관성(慣性)을 이처럼 통렬하게 지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모든 관성에는 그 과정을 합리적으로 통제하는 어떤 장치도 없다. 이렇게 된 상태를 우리는 ‘중독’으로 부르기도 한다. 사람이 참 이성적인 존재 같지만 습관이라는 기제를 통해서 들여다보면 그렇게 비이성적일 수도 없다. 다음의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남편을 잃고 어린 세 남매를 둔 아주머니가 생계가 어려워지게 되자, 골목 입구 길모퉁이에 나가서 호떡을 팔기로 했다. 처음으로 부딪치는 각박한 생활 전선이라 어려움이 많았다. 호떡이 잘 팔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은 그녀의 천성이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한파가 밀려와 거리는 얼어붙었고 사람들은 종종걸음으로 귀 가하기에 바빴다. 그녀가 호떡을 팔고 있는데 어떤 노신사 한 분이 와서 호떡 가격을 물었다. 아 주머니는 천 원이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노신사는 천 원짜리 한 장을 주었다. 그리고 그냥 가는 것이었다. “아니, 호떡 가져가셔야죠.” 아주머니가 말하자 노신사는 착한 미소로 빙그레 웃으며 “아뇨, 괜 찮습니다”하고서는 그냥 가버렸다. 그런데 다음날도 또 와서 천 원을 놓고 그냥 갔다. 그 다음 날도 역시 그러했다. 그렇게 해서 봄, 여름, 가을이 가고 또 겨울이 왔다. 일 년 동안 노신사는 호떡집을 지날 때마다 아주머니에게 천 원을 내고 호떡은 두고 그냥 갔다. 그렇게 일 년이 다 가고 다시 함박눈이 쌓이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노신사는 어김없이 찾아 와 빙그레 웃으며 천 원을 놓고 갔다. 그때 호떡을 팔던 아주머니가 황급히 따라 나왔다. 그녀의 얼굴은 중대한 결심을 한 듯 상당히 상기되어 있었다. 노신사를 총총걸음으로 따라가던 과부는 수줍은듯하지만 분명히 말했다. “저…… 호떡값이 올랐거든요.” 인터넷에 나도는 이야기다. 누군가 반전(反轉)의 재미를 노리고 만든 이야기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인공 아주머니가 보여주는 행태에 실소(失笑)를 금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지니고 있는 우화적 교훈은 달리 있다고 본다. 그것은 사람이 습관 (관행)의 감옥에 갇히면 도덕심도 지혜도 판단도 모두 사라진다는 점에 있다. 습관이 지니는 맹목의 관성을 경고한 파스칼의 잠언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습관은, 그것이 습관이기 때문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합리적이라든가 올바르기 때문에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3 습관 고치기의 어려움을 두고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시인 메러디스(Meredith, 1828~1909)는 ‘마흔 살이 지나면 남자는 자기의 습관과 결혼해 버린다’고 했다. 마흔 살은 나쁜 습관을 스스로 정당화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나이다. 이렇게 되면 습관은 고집과 결합해 좀처럼 허물기 어려운 철옹성을 쌓는다. 일찍이 장자(莊子)는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지 않다고 우기는 것을 고집이라 했다. 그뿐인가, 고집은 늘 무언가를 미워하는 마음과 붙어 다닌다. 사실 우리는 그렇게 굳어진 자신의 습관 때문에 바르고 참된 것을 보지 못한다. 내 습관에 내가 속는 것이다. 호떡 파는 아주머니도 노신사가 동정심으로 주는 공짜를 습관적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더 많은 비합리적인 동정을 당당하게 자기 쪽에서 요구하는 ‘뻔뻔스러움’의 수준으로 변해 간다.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는 줄 안다면 울고도 모자랄 일이다. 습관에 우리들은 항용 속는다. 그리고 고집 때문에 울게 되는 날을 예약한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자. 인간은 영성(靈性)이 주는 지혜를 길어내는 존재이다. 왜곡된 습관과 고집 속에서도 밝은 희망의 자아를 품는다. 15세기 영성의 지혜를 실천의 잠언으로 남긴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의 한 줄 경구가 우리의 눈을 밝게 한다. “습관은 습관에 정복된다.”
ADHD 학생 학부모가 자녀의 초등학교 1학년 때 생활기록부에 ‘명랑쾌활하나 주의 산만함’, 2학년 때는 ‘명랑쾌활하나 수업시간에 주의집중을 요함’이라고 적힌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문제는 ‘명랑, 쾌활, 주의 산만’이란 서술이 사실(Fact)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Opinion)을 말하는 것이라는 데 있다. 의견이란 것은 매우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외향적인 성격으로 활발한 수업을 기대하는 교사에게 위의 학생은 ‘매우 적극적이고 참여와 소통, 협력을 잘하는 학생’일수도 있다. 이런 교사에게 내성적인 학생은 ‘근면 성실하나 수업시간에 적극성을 요함’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그대로 기록해 주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할까? 최고의 평가는 사실만을 자세히 기술하는 일이다. 가령 위의 학생이 ‘발표수업시간에 항상 발표를 하고, 불편한 일이 있을 때 정확히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으며, 교내 축구대회 때 포워드의 포지션에서 주장을 맡아 학급 팀이 준우승을 하는 데 크게 기여함’이라고 썼다고 하자. 이 역시 읽는 이의 성격에 따라 달리 해석 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내성적인평가자라면 ‘항상 발표를 해? 나대는 성격이군!’이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학생생활기록부의 이러한 서술이 입시사정자료로써 활용되고 있는 것은 더욱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혹자는 모든 학생들에게 자세히 써주면 입학사정자료로써 변별력을 잃는다고 말한다. 학생생활기록부는 ‘학생생활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 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변별력 운운하는 것은 입시경쟁교육을 비판하면서 그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이다. 의미 있는 행동들을 가급적 그때그때 기록하려는 노력은 그래서 필요하다. 특히 그 사실을 학생에게 통보해주면 담임교사가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인지하고 보다 바람직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있는 그대로 평가하는 적절한 방법이 과연 있을까? 교사에게는 아이들을 관찰하거나 상담할 시간이 절대 부족하다. 안타깝게도 이 점은 앞으로도 크게 개선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교사 연수에 가서 질문해 보면 80% 이상의 교사들이 해가 갈수록 여유가 없어진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학급친구’는 최고 평가자 그렇다면 한 학생을 가장 잘 관찰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본인과 학급친구일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자기평가’와 ‘동료평가’ 방식을 개발해 실시해왔다.자기평가란 교사근무평정에서 ‘교육공무원자기실적평가서’와 비유될 수 있다. 학생들이 글을 창작해 쓰는 것은 어려우므로 바람직한 행동덕목 예시를 주고 본인에 해당하는 부분을 고르게 하거나 혹은 추가해 완성된 서술형으로 쓰도록 한 후 이를 기록에 참고하는 것이다. 시행 첫 해,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자신을 잘 기술해 놀랐다. 그 한 명의 아이는 집안에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자존감 부족으로 허덕이던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기 어려워했다. 망설여졌지만 미래 희망하는 모습을 기술한 아이의 표현을 그대로 입력해 주었다. 자신이 이루려는 것을 말로 만들어 마음속에 되새기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이있다. 이 녀석은 졸업 후 필자의 페이스북에 자신의 조퇴증 무더기를 사진으로 찍어 올리고 ‘언제나 조퇴를 잘 시켜준 고마운 송 샘!’이라고 글을 올렸다. 그래서 이렇게 덧글을 달았다. ‘꾀병은 마음의 병이려니 하는 송샘의 생각 탓!’ 그런 사진을 올려놓은 걸 보니 녀석의 자존감이 많이 향상되었나 보다. 교직은 종합예술이다. 다음은 자기평가와 더불어 시행한 동료 평가 과정이다. ◎ 롤링페이퍼 활용 시기상으로 2학기 기말고사 끝날 때가 가장 적당하다. 자치적응시간에 시작해도 하루 종일 걸린다. 우선 롤링페이퍼 상단에 ‘서로 늘 격려하고 인정하는 2013년 면목 1학년 4반 OO의 롤링페이퍼’라고 쓰고, 하단에는 담임교사의 참여 독려 메시지를 넣었다.‘생활기록부에 여러분 학교생활 일 년을 어떻게 저 혼자 다 평가하겠어요? 저도 한마디 쓰고 친구들도 돌아가며 한 마디씩 칭찬 부탁합니다. 그 칭찬을 모아 생활기록부에 기록합니다. 남의 장점을 콕 집어내는 것은 대단히 필요한 능력이랍니다. 여러분의 영원한 담임 ^*^.’ 담임 혼자서 학생 개개인의 1년 생활을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과 협업하자는 것이다. 완성된 롤링페이퍼는 생활기록부에 반영하고 코팅한 다음 교실 뒤 칠판에 게시해 주었다. 우리 반 학생은 물론 다른 반 학생들까지 게시판에 몰려들어 까치발을 들고 칭찬 글을 읽느라 난리다.여기에 보상을 더하면 보다 재미있고 활발한 칭찬릴레이를 기대할 수 있다. 필자의 경우 정확한 평가를 한 학생, 글씨를 예쁘게 쓴 학생, 재치 있게 쓴 학생 3명에게 문화상품권을 준다고 약속하고 심사 후 다음 날 바로 시상하곤 했다. 한 학생이 ‘너를 칭찬하느니 설악산 흔들바위하고 씨름하겠다’고 썼는데 그 학생에게 재치상을 주었다. 롤링페이퍼는 스캔해 학급홈피에 올리고 2월 종업식 때 생활기록부 사본과 함께 나누어 줬다. 이렇게 하다 보니 매나 야단 없이도 환상적인 학급운영이 되어갔다. [PART VIEW] ◎ 행동 특성 동료평가 협업의 또 다른 방법은 생활기록부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란에 직접 적을 수 있는 내용을 요 청하는 것이다. 먼저 학생들의 동료평가를 위해 감정억제· 공감·대인관계·문제해결 기술 등 세계 보건기구(WHO)에서 제창한 라이프스킬 (Life skill)을 학생들에게 안내했다. 그리 고 위 표와 같이 몇 가지 시작 글을 보여주 고 서술문 형식으로 문장을 완성하게 했다. 생활기록부에는 아래와 같이 입력하고, 선 정된 학생에게는 인증서를 수여했다. •학생생활기록부 입력 사례 OOO : 행동발달에 대해 학급 동료들로 부터 자기 절제력이 높으며 긍정적인 사고 를 지녔고 수업 중 과제를 열심히 하고 수행 평가도 열심히 하며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할 줄 알고 규칙을 잘 지키고 꼼꼼하다 고 평가를 받음.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성에 대한 인식은 과거보다 복잡하다. 성적 행위를 한다는 것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인식한다. 자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고, 관계의 완성이 아니라 복잡한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한다. 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성관계를 하고 나면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거나 성관계를 가졌다면 더는 서로의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 가야 할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갈 데까지 갔다’는 표현이 이 말이 아닐까 싶다. 사회 흐름에 따라 성 인식 변화 그러나 현대적인 사고는 그야말로 다양하다. 성적 행위라는 것이 반드시 사랑과 합치되는 것이 아니고, 주체 형성의 도구이자 권력 형성 또는 권력 저항의 도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사회에서는 인간의 성이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었을 수 있으나 현대사회에서는 성적 행위의 관계성에 따라 사적 영역이 되기도 하고 사회적 영역이 되는 것이다. 사랑이 전제돼 있는 관계는 그 허용 폭이 훨 씬 넓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도 간통죄가 폐지되고 동성애 차별 금지와 관련한 논의가 이어지는 등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변화하고 있다. 반면 성폭력, 성매매 등에 있어서 가해자는 처벌을 강하게 하고 피해자는 보호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따라서 학교나 가정에서의 성교육도 성문화와 관련한 사회적 흐름에 민감할 수 있도록 내용을 구성해야 한다. 현대적 개념의 성 건강 개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교육은 ‘섹슈얼리티’ 교육 섹슈얼리티, 어쩌면 생소한 단어일 수도 있다. 중·고등학교 교실에 성교육한다고 들어가서 성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지 물으면 학생들은 키득키득 거리면서 “알 거 다 안다”, “테크닉만 알려 달라”고 장난 섞인 말로 대답하는 학생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대답하는 학생들 머리에는 성하면 무조건 행위로서의 남녀 성기결합인 섹스(sex)를 떠올리는 것이다. 물론 당연한 현상이다. 섹스(sex)보다 폭넓은 성 개념에 대해서는 배워본 바가 없기 때문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성에 대해서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배우기보다는 친구나 야동을 통해 배우고 성을 섹스로만 생각하다 보니 성교육이라고 하면 왠지 쑥스럽고 야하고 심지어 ‘변태(?)스럽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육하는 입장에서는 성을 섹스만이 아닌 전인적인 성으로서 섹슈얼리티(sexuality)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성이란 행위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 행위를 하게 되는 맥락 즉, 관계적 측면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누구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또한그 상황에서 서로의 욕구, 느낌, 태도 등은 어떠한지, 행위 자체가 일어났다 하더라도 그 행위가 권력적 관계에 의해서인지, 돈에 의해서인지, 폭력에 의한 것인지, 사랑하는 사이에서의 합의에 의한 것인지에 따라 무척 다르게 규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적 맥락은 사회적 흐름을 반영하 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성교육 즉, 섹슈얼리티 교육에 임신, 출산, 피임 등만이 아 닌 성적 의사결정, 성 감수성 기르기, 성폭력,성매매, 동성애 등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는 것이다. 성교육 목표는 自己愛 키우는 것[PART VIEW]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만이 남도 사랑할 수있다. 특별한 사례일 수 있겠지만 상담치유프로그 램에서 만났던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10대 초 반에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가출을 했다 가 소위 원조교제를 일삼았던 이 소녀는 이렇 게 말했다. “내가 아버지에게도 당했는데, 이런 짓 한다 고 뭐가 대수롭겠어요? 나는 내 인생이 중요하 지 않아요. 내가 잘못되는 모습을 아버지에게 보이는 것, 그게 중요해요.” 자기 스스로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결과는 또 다시 자기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행위를 연 속적으로 하도록 만든다. 실연을 경험하더라도 자기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 람은 상처를 딛고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다. 성교육은 성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을 가르치 는 것만이 아닌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몸에 자리하고 있는 하나하나의 기관들을 설명하면서도 바로 ‘자신’의 몸속에 있 는 고유한 기능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신비하면 서도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상대와 협상 가능한 성 주체성 키워줘야 해가 갈수록 처음 성관계를 갖게 되는 연령은 낮아지고 비율은 높아지고 있다. 청소년 성문 화실태조사에 의하면 남자 청소년은 열 명 중 두 명, 여자 청소년은 열 명 중 한 명꼴로 성경 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만난 지 한 달 만에 성 관계를 했다는 대답도 적지 않았다. 부모는 내 아들과 딸이 언제쯤 ‘첫 경험’을 하 기를 원할까? 아들은 몰라도 딸은 결혼하기 전 까지는 안 된다고 생각할까? 이 질문에 대한 부 모들의 대답은 그들 스스로의 경험, 종교, 가족 18 NewEdu-Happy Education 사랑해, 얘들아! 분위기 등에 따라 많이 다르다. 물론 정답은 없 지만 대다수 부모는 결혼 전이라면 그 나이가 늦으면 늦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가끔 어른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이런 질문을 던져 본 적이 있다. “당신은 처음 성관계를 원해서 했나요?” 특히 여자들 중에는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 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안타깝게도 “남자가 원 하니까”라는 대답이 많다. 물론 남자들도 성충 동 때문에, 분위기에 휩쓸려서, 술 마시고 엉겁 결에, 어쩌다 보니 등으로 대답하는 경우가 많 다. 이렇게 처음 성관계를 하게 된다면 그 경 험이 그다지 소중하지 않을 수 있다. 처음 성 관계의 경험은 쉽사리 잊히지 않기도 한다. 비 록 결혼까지 가지 않는 관계라 하더라도 경험 그 자체가 스스로의 결정에 의한 것이라면 좋 을 것이다. ‘성교를 포함한 모든 성적 행위 등을 하거나 하지 않을 결정을 스스로 하는 것’ 이것이 성 적 의사결정능력이다. 보다 폭넓은 개념으로는 성 주체성이라고도 한다. 성교육은 자기 주변 의 상황과 조건을 고려해 자신의 욕구도 살피면 서 상대방과 협상해갈 수 있는 능력 즉, 성 주체 성을 키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