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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중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40대 남성 A씨는 최근 학생들과 운동을 하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어깨를 다쳤다. 통증이 심해 집 근처 한의원에서 침도 맞아보고, 유명하다는 정형외과에서 주사도 맞았다. 치료를 받고 나서 증상이 좋아지는 것 같았지만 다시 통증이 찾아왔다. 심할 때는 어깨가 아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대학병원을 찾았다. 결국 정형외과에서 회전근육파열 진단을 받았다. 어깨에는 팔을 들고 움직이는데 중요한 4개의 근육(힘줄)이 운전대처럼 동그랗게 팔뼈에 붙어 있다. 각각의 근육에 힘을 주면 팔 올리기, 안으로 돌리기, 바깥으로 돌리기 등 특정 동작을 하게 된다. 이 근육을 ‘회전근육’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거나 평소 힘을 많이 쓰면 회전근육에 염증이 생겨서 통증을 일으키고, 계속 진행되면 회전근육이 약해져서 별다른 충격이나 힘을 쓰지 않아도 실밥이 풀어지듯이 파열된다. 또 주변의 뼈와 반복적으로 충돌하거나 과도한 힘에 의해 다치는 경우에도 파열될 수 있다. 가장 흔한 원인은 회전근육이 약해진 상태에서 어깨뼈의 앞부분과 반복적으로 부딪혀서 끊어지는 경우다. 회전근육파열은 어깨의 움직임이 많은 골프, 테니스, 배드민턴 등을 즐기는 사람이나 교사, 요리사와 같이 어깨를 주로 쓰는 직업군에서 자주 발생한다. 어깨회전근육은 1개만 파열돼도 어깨가 아프고 팔을 들지 못하므로 오십견으로 오인되기 쉽다. 대개 파열이 있기 전에도 상당기간 가벼운 증상이 지속되지만 정도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치료 없이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회전근육파열의 특징은 파열된 근육에 힘이 가해지는 특정 운동 시에만 심한 통증을 느낀다는 것이다. 특히 파열 부위에 석회가 차면 통증이 극심해서 밤에 잠을 잘 수 없다. 초음파 또는 MRI 검사로 확인할 수 있으며, 석회가 찬 경우는 엑스선 사진만으로 쉽게 진단할 수 있다. 3개월 정도의 보존적 치료로 좋아지지 않으면 수술로 파열 부위를 봉합해야 완치된다. 힘줄이 다시 튼튼하게 연결되면 예전과 같이 팔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일단 파열된 회전근육은 스스로 아물지 않는다. 점차 범위가 넓어지면서 회전근육의 힘줄과 근육이 지방으로 변성·퇴화된다. 간혹 광범위한 파열을 방치하면 관절의 파괴로 이어지기도 한다. 증상이 경미하거나 수술을 하지 못할 정도로 몸이 쇠약한 경우에는 진통 소염제, 관절운동, 남아 있는 회전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을 시행하는 경우도 있다. 3개월 이상 어깨 통증이 지속될 경우 전문의에게 정확한 진단을 받은 후 치료를 해야 한다. 시기가 늦어지면 찢어진 부위가 더 넓어져 수술 범위가 커질 뿐만 아니라, 이미 지방으로 퇴행 변성이 진행된 경우에는 봉합을 하더라도 재파열 빈도가 증가한다. 어깨 회전근육 손상을 조기에 진단해 관절경으로 수술하면 최소 절개, 정확한 치료, 입원기간 단축, 치료비 절감, 수술 후 빠른 재활치료 및 일상생활로 복귀가 가능하다. ※ 어깨 회전근육 자가진단-캔 테스트 아픈 팔을 어깨 높이로 올리고 가득 찬 음료수 캔을 손으로 잡는다. 엄지손가락이 땅을 가리키도록 팔을 내회전시키고 팔을 어깨 위로 힘껏 들어 올릴 때 어깨 통증이 심해지거나 들어 올릴 수 없으면 대부분 회전근육파열이 있다고 진단할 수 있다. 오십견이 같이 있는 경우도 있으므로 전문의의 정확한 진찰이 필요하다.
한 끼 식사도 나누지 못하는 가정이 늘어나는 것처럼 마주보고 대화하지 않는 가정이 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기러기 아빠, 주말부부, 맞벌이 가족 증가, 이혼으로 인한 결손 자녀 증가, 무기력한 부모, 말을 듣지 않는 자녀 증가, 벼랑 끝에 내몰린 나 홀로 독거노인의 외로운 죽음 등 우리 사회 현상은 심각하다. 한마디로 가정이 안전성이 깨지고 가족 구성원 간에도 고립과 개별화가 가속되고 있다. 그러나 돌아갈 곳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기뻐하고 위로하는 사람이 있는 안식처가 없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 이제는 부모들이 가정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시점에 와있다. 건강한 가정을 되찾기 위해서는 가족 간 정서적 유대감을 강화해야 한다. 전통사회에서는 사회 구성원 간 유대가 긴밀하고 함께 하는 것이 많아 서로 의지하고 살아왔지만 요즘의 사회는 이웃집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회가 빨라지고 다양해짐에 따라 각자의 일에 열중하다보니 가족이 함께하여 지내는 시간도 부족해지는 것이다. 이제라도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가족 구성원 간 정서적 유대감과 문화적 정체성을 만드는 노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 가족 간 정서적 유대감과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가족 식탁 문화부터 되찾자. 그리고 자녀 보호와 가정의 교육적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가정보다 학교나 학원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서 가족과 함께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기회가 부족해지고 있다. 자녀 과외비를 마련하기 위해 직업전선으로 뛰어드는 엄마도 많다. 자녀를 보호하고 가르치는 일은 부모의 몫이다. 다른 사람들이 대신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들이 자녀를 위해 하는 노력은 학원에 보내는 일, 성적 올리기 위한 일에 매진하여 상급학교로 진학시키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다. 이불 개기, 정리하기, 가족끼리 함께하는 시간 갖기, 가족 일 나누기 등 몸으로 실천하는 가정교육의 부재다. 공부는 남과 겨루는 경쟁이 아니다.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른 몸가짐, 즉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아침밥도 해주지 않고학원에만 내몰면 된다는 부모의 그릇된 교육관이 자녀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분업이라는 것을 처음 고안하여 자동차를 생산해냈다. 그의 생산방식은 자동차의 가격을 획기적으로 내릴 수 있게 만들었다. 그 결과 보통 사람도 자동차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자동차가 팔리고 공장은 급속히 성장했다. 그의 경영방식은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는데도 기여했다. 헨리포드는 자신의 경영 방식을 자동차뿐 아니라 직물, 유리, 페인트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체까지 인수해 뛰어난 경영을 하였다. 그 결과 미국사회에 중산층이라는 용어가 생기게 되었다. 헨리포드가 은퇴한 어느 날 파티에 참석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가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중 어떤 사람이 물었다. “선생님, 일생 동안 많은 성공을 이루셨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성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의 이목이 헨리에게 집중되다. “그것은 나의 가정입니다.” 헨리 포드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가정이었다. 인생의 버팀목이 되고 안식처가 된 곳이 가정이라고 했다. 이젠 가정도 웰빙해야 한다. 우리 모두 사랑과 격려가 믿음이 가득한 가정으로 웰빙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 태어나 인생에 아름다운 꽃도 피워보지도 못하고 어른들의 잘못으로 비참한 운명을 달리한 단원고의 학생들의 명복을 온 국민과 함께 조의를 표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호원 국무총리가 4월27일 세월호 참사 전에“ 초동대응과 수습 과정에서 많은 문제를 제때 처리하지 못한 책임을 응당히 져야한다”고 하며 전격 사퇴를 선언했다. 이와 같은 총체적 안전 불감증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관계기관 뿐만 아니라 도의적인 책임을 물어야 할 곳은 경기도교육청도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고 막중하다 그동안 경기도교육청은 학생 안전·재난 대비 컨트롤타워 설치운영을 위한 노력이 부족했고, 도내에 있는(오산시)“위기관리체험센터”(진진, 화재, 가스, 교통사고 등)등을 각학교에 체험활동을 시켰다면 오늘과 같은 비극적인 참사는 최소화 하였을 것이라고 국민들과 경기도민은 물론 학부모들은 아쉬워한다. 아울러 경기도교육감 예비후보 중에서 가칭 “행복·안전 드림 교육”을 최우선 정책으로 다음과 같은 공약을 하는 후보자가 교육감으로 선출 돼야한다. 1. 학생 안전·재난 대비 컨트롤타워 설치운영 2. 위기관리체험센터 도내 모든 학교 체험 의무화 시키고 교통비 전액지원 2. 대단위 수학여행을 폐지하고, 소규모 테마별 체험학습으로 질 제고 3. 교육과정에도 포함된 수영교실 운영비 전액지원 4. 체험학습 사전답사 결과, 학운위 심의결과, 계약서 등 사전공개 의무화 5. 매월1회씩 실시하는 범국민재난대비훈련인“민방위훈련”각학교 적극참여 실태분석 철저히 점검하고 보완대책 강구
혜진아, 요즘 학교에 다니는 것이 재미있는지 궁금하구나. 넌 몸도 건강하게 보이는데 아침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내가 가르친 한 학생은 교장 선생님과의 공부시간을 통하여 어느 방향으로 갈까 선택의 기로에서 방향 제시를 받을 수 있어 매우만족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도 기분이 좋았다. 이제 네가 중학교를 졸업하기 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라는 의미를 발견하기 바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직도 "왜 공부를 해야 하나? “열심히 공부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으니까.” 수준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게 사실일 것이다. 이는 공부를 하는 당사자 뿐 아니라, 공부를 시키는 부모나 교사 모두 가장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은 대학만 들어가면 지긋지긋한 공부와 멀어지기도 하지. 실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버드 대학을 나와서도 노숙자로 평생을 전전하는 사람이 있으며, 대학 문턱에도 가 보지 못한 사람이 성공한 사례도 얼마든지 많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대학입시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쌓기 위해서다. 기반이 튼튼하지 못한 것은 마치 오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배움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되고 공부하는 시간이 덜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너의 꿈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지만 앞으로 진로가 어떻게 결정될지를 확실히 모르기에 다양한 분야의 공부가 필요한 것이 아닐런지? 더욱 어떤 직업과 관계 깊은 전공 과목을 공부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에 시험을 위해서 하는 공부라는 기분이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고등학교라는 사다리에 오를 수 없도록 세상 사다리가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당시의 가장 권위있다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무시하기 어려운 것(교육과정)이기에 통과 의례를 하는 것이지. 이제 우리 학생들이 부모님 때문에, 성적 때문에, 시험 때문에 공부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보다 경쟁력을 기르기 위하여 시험을 선택했을 뿐이라 생각하다면 이번 시험을 앞두고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을런지! 꿈을 이루기 위하여 공부를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입시제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입시제도의 노예가 되었음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너무 서두른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차근차근 기초 실력을 쌓아 네가 진학하고 싶은 학교에 갈 수 있기 바란다. 그래서 너에게 이 편지를 보내니 잘 읽어 보길 바란다.
검찰 수사의 최종 결과가 아직 나온 건 아니지만, 세월호 침몰은 인재였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과적, 운항 미숙 등 수 백 명 목숨을 태우고도 어떻게 그렇듯 애들 같은 짓을 저질렀는지 어른이란 사실이 치욕스러울 정도이다. ‘공부하는 기계’ 양산의 대입제도 등 어른들 죄가 어디 한둘일까만 한 번뿐인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침몰이기에 비통을 넘어 분노가 끓어 넘친다. 어른답지 못한 것들이 나이만 먹었다고 행세를 해대는 잘못된 나라여서 그럴까. 대책이랍시고 내놓은 것도 가히 원시적 수준이다. ‘1학기 수학여행 전면금지’가 그것이다. 일어나선 안 될 참담한 일이 벌어져 수학여행 폐지 여론이 비등한 것은 사실이다. 희생학생 유족들뿐 아니라 자식 가진 부모라면 당연히 그럴 법하다. 일례로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만 해도 그렇다. 세월호 침몰 후 긴급 실시한 학부모 의견조사에서 참가 32.10%, 불참 66.67%, 기타 1.23%로 나타났다. 6월 9일부터 예정된 3박 4일 일정의 제주도 수학여행이었지만, 조사 결과에 따라 전면 취소되어버린 것이다. 국민의 희생자 애도 분위기 속에서 여론도 나뉘었다. 수학여행을 폐지해야 한다는 쪽과 안전을 담보한 존속 주장이 그것이다. 수학여행 전면 금지는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세월호 침몰 원인과 같은 문제가 선박뿐 아니라 항공기 등 모든 운송수단에 잠재되어 있음을 시인하는 것과 같다. 단언하건대 수학여행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안전 규정을 무시한 배에 수학여행길 학생들이 탄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잘못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것을 없애는 것이야말로 진짜 대책 아닌가? 그렇다면 수학여행 전면금지는 아랫돌 빼서 윗돌 막는 임기응변식 꼼수에 불과할 뿐이다. 필자는 30년 남짓한 교직에서 세 번 ‘수학여행 홍역’을 치른 바 있다. 1980년대 말 근무했던 학교의 교장은 수학여행 교통사고를 뉴스에서 보고 취소시켜버렸다. 김영삼정권때는 리베이트 따위 비리사건이 터져 제주도불가 등 제한적 수학여행이 실시되었다. 그때 이름조차 테마현장체험학습으로 바뀌는 등 요란을 떨었지만, 민생이 파탄났다며 해당 지역 및 관련업체의 거센 반발과 하소연이 이어졌다. 지금은 숙연한 사회 분위기에 눌려 숨죽이고 있지만, 수학여행 전면금지 역시 그런 후폭풍을 거세게 몰고올 것이 틀림없다. 오히려 계약취소로 빚어지는 위약금은 사소한 문제다. 수학여행 전면금지는 2014학년도 교육과정 전체가 흐트러지는 대혼란의 문제이다. 거기에 더해 극기훈련의 수련활동이나 교내 체육대회 같은 것도 금지된다면 학생들은 교실에서 수업만 해야 된다. 교실 수업외 교외활동도 해야 학년을 이수하게 되어 있는 교육과정 자체가 붕괴될 상황인 것이다. “그럼 식중독사고가 나면 밥도 먹지 말아야 합니까?” 예정되었던 수학여행이 전면 취소된 날 2학년 학생이 볼멘 표정으로 내지른 말이다. 전면 취소와 함께 기납부한 수학여행비도 반환 조치가 이루어졌다. 한국과 일본에만 있다는 수학여행이라 일제 잔재가 아닌가 하는 껄적지근한 기분이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다. 수학여행, 잘못 아니다.
재량휴업은 학교장의 재량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학부모와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은 기본이다. 일부 언론에서 재량휴업 문제를 또 들고 나왔다. 재량휴업일에 나홀로 학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올해의 재량휴업은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다. 세월호 참사가 있는 현 시점에서 재량휴업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고 본다. 수학여행, 수련회등이 모두 취소된 상황이기에 더욱더 그렇다. 우리학교도 5월2일이 재량휴업일이다. 당초에는 5월 재량휴업일이 없었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관광주간을 정하면서 재량휴업을 하게 되었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관광주간의 의미가 없다. 온국민이 세월호 인명구조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재량휴업을 취소하기에도 어려움이 있다. 학교운영위원회를 거쳐야 하고, 가정통신문을 통해 학부모에게 알려야 한다. 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있기 때문이다. 재량휴업을 실시하더라도 편하지 않다. 나홀로 학생들을 어떻게 해소시킬 것인가와 시기적으로 재량휴업이 적절한 가에 대한 논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학교도 재량휴업에 대한 재량권이 100%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 5월과 10월의 관광주간에 맞춰 재량휴업일을 하루씩 잡아 두었다. 학교도 공공기관이기에 어쩔 수 없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강제하진 않았지만 분위기상 재량휴업일을 잡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언론에 대한 섭섭함도 있다. 이런 시기에 굳이 학교의 재량휴업 문제를 들고 나올 필요가 있었느냐는 이야기이다. 매년 때만되면 지적되는 문제를 답습하고 있다. 특히 초등학교 학생들을 둔 학부모는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많다는 것에 공감을 한다. 그렇지만 모든 학부모들의 만족도를 100%로 끌어 올리기 어려운 것이 학교의 고민이다. 재량휴업일을 정하기 위해 미리 의견을 듣지만 100% 찬성은 없다. 비율이 높은 시기에 재량휴업일을 정할 뿐이다. 지금의 시점에서 다 알려진 문제를 지적하는 것보다는 학교에서 재량휴업일 운영을 큰 문제없이 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아니면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하면서 대안도 함께 제시해 주면 어떨까 싶기도 한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대안을 찾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문제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것이 옳다고 본다.
요즘 아파트는 부엌은 있지만 가정에서 한 끼 식사를 나누는 집이 줄어들고 있다. 가족 식탁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맞벌이 부부의 증가, 홀로 사는 따로 가족의 증가 등으로 부엌을 필요 없게 만들고 있다. 이러다 보면 부엌이라는 공간이 우리 사회에 없어질 날도 조만간 찾아 올 것이다. 가정에서 함께하는 식탁문화가 사라지면 어떤 날이 될까? 그것은 건강한 가정이 줄어든다는 것과 같다. 예전에는 가정이 교육의 시작이었다. 우리 문화의 뿌리였다. 밥상머리 교육이 그렇고 어른의 훈계가 그랬다. 행실이 바르지 못한 아이를 본 데 없이 자란 자식이라고 꾸짖기도 했다. 요즘 남의 자식 훈계하다가 봉변당한 어른이 한둘 아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달랐다. 인륜을 저버린 자식이 생기면 마을 어른들이 나서서 훈계하고 듣지 않으면 추방을 시키기도 했다. 내 어릴 때 살던 마을이 그랬다. 그때 동네에 말 듣지 않는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유난히 거칠고 힘이 넘쳤다. 부모는 연로하지만 워낙 커버린 자식을 대항할 힘도 없었다.하지만 마을 어른들이 나서서 혼내는 모습을 보았다. 마을에서 추방하지는 않았지만 어른들의 단합된 힘으로 삐뚤어진 행실을 바로 잡은 것이다. 당시 마을 사람들의 식사는 대부분 가정에서 이루어졌다. 밥상머리는 부모와 형제가 만나는 장소였다. 나는 항상 어른이 먼저 숟가락을 드시는 것을 확인하고는 밥을 먹었다. 부모님에 바쁠 때에는 ‘먼저 먹어라.’ 말이 떨어져야 먹었다. 고기반찬이 있을 때에는 어른이 수저가 먼저 가야 먹을 수 있었다. 그래도 너무 많이 먹으면 나중에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눈치도 없이 다 먹으면 어떻게 하니?” 언젠가 본 아침밥 먹기 운동을 벌린다는 기사가 생각난다. 세상 많이 변했다. 몇 해 전 보건복지부에서 조사한 아침밥 결식률 통계를 살펴보니 12-18세의 결식률이 30%, 19-29세의 결식률이 37%, 30-49세의 결식률이 24.5%에 이른다고 했다. 통계의 결과는 우리나라 가정의 식탁문화가 사라지는 속도를 나타낸 것이다. 하지만 가정에서의 식탁 문화는 가족 공동체를 만드는 밥상머리 교육의 장이고 가족 관계의 시작이다. 이것이 사라져가는 것이다. 공부하는 아이, 직장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우리나라 기둥이 아침밥 먹기를 않고 있다. 우리 아이, 스승 존경과 부모 존경이 사라지고 고마워할 줄 모르고 행복을 느낄 줄 모르는 것은 밥상머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오늘날 청소년 문제의 대부분은 가정에서 온다. 가정이 제 기능을 못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가족끼리 나누는 식사는 가정의 제 기능을 되찾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가족과 함께 규칙적으로 나누는 식사는 행복한 가족 시간을 공유하며비만을 비롯한 각종 성인병을 예방한다. 가족끼리 나누는 식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여러 연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 대 영양학과의 테리 버지스-샹뿌 연구팀은 청소년 677명을 대상으로 10대의 식습관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살펴보면 가족과 함께 규칙적으로 식사를 나누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건강한 식습관을 하고 그렇지 않은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페스트푸트 등 나쁜 영양을 섭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콜롬비아 대 CASA연구 결과는 가족과 식사를 자주 하지 않는 청소년은 자주하는 청소년에 비해서 부모님과 형제자매와의 유대감도 낮다고 한다. 일본 소아학회에서 발표한 내용도 있다.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은 아동은 영양불균형, 체력저하, 건강상태 악화 등의 증상도 나타나고 스트레스 지수도 높다.’ 다른 연구 내용도 살펴보자. 만 3세 어린이가 책을 통해 배우는 단어는 140개, 가족 식사를 통해서 배우는 단어는 1000개.(하버드대학교 캐서린 스노우의 연구) A, B학점을 받는 학생은 C학점 이하를 받는 학생에 비해 주당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횟수가 현저히 높다.(2009 컬럼비아대학교 CASA 연구) 가족 식사의 빈도는 흡연, 음주, 약물 남용, 우울증, 부적응, 자살 등의 가능성과 반비례한다.(2004년 미네소타대학교 EAT 프로젝트) 가족과 함께 매일 저녁을 먹은 아동은 그렇지 않은 아동보다 과일과 채소를 한 끼니 분 더 먹고, 튀긴 음식이나 탄산음료는 덜 먹으며, 포화지방산과 전이지방의 섭취도 줄어든다.(미네소타대학 EAT 프로젝트 II) 자녀를 비만아로 만들지 않으려면 아침밥을 먹여야 한다. 아침밥을 거르면 비만으로 인한 만성질환의 대가를 톡톡히 받는다. 아침밥을 거르게 하는 부모는 자녀에게 공부 잘 해라 말할 자격이 없다. 아침밥을 거르는 일은 자녀의 뇌기능을 저하시키고 집중도도 떨어지게 만드는 일이니까 말이다. 왕따, 학교 폭력의 원인, 우울증과 자살의 원인도 엄마가 마련해준 식사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라. 엄마가 만들어준 한 끼 식사는 똑똑하고 건강한 아이로 만드는 약이다. 아빠는 아빠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애들은 애들대로 따로국밥 가족, 하지만 가족끼리 함께하는 식사 기회가 줄어들면 아이들의 행복지수도 낮아진다. 아침밥 먹기를 실천하는 가정,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다. 아침밥을 먹이기 정말 어렵다면 한주에 몇 번이라도 ‘가족밥상의 날’을 정하여 가족끼리 함께 먹는 시간을 만들자. 가정에서 마련하는 우리 가족 식사, 엄마들이 관심 두어야 한다. 가족과 아이들의 행복은 엄마의 노력에서 시작된다.
추모시 누가 너희들을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명복을 빌며 최일화 누가 너희들을 보냈니 아무도 너희들을 보내지 않았는데 누가 무엇이 너희들을 데리고 간 거니 하늘이 너희들을 데려갈 리 없는데 바다가 너희들을 멀리 데려갈 까닭이 없는데 저 사월의 꽃바람이 어찌 너희들을 데려 갔겠니 희망의 돛을 올려야 할 너희들의 바다가 어찌 너희들을 데리고 낯선 곳으로 갈 수 있겠니 무엇이 부모의 품에서 너희들을 빼앗아 간 것이니 무엇이 너희들의 등굣길을 막아서고 너희들의 교실에서 너희들을 내친 것이냐 꿈이 자라던 교정에 평화롭던 도시 한 가운데에 대한민국의 가슴 한 복판에 누가 휑한 구멍을 낸 것이냐 누가 국민들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낸 것이냐 누가 온 세상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든 것이냐 날마다 사월은 무르익어 너희들이 달려야할 오월은 목전에 다가오는데 누가 너희들의 꿈을 너희들의 야망을 무럭무럭 자라나야할 너희들의 미래를 빼앗아 간 거니 우리나라가 이렇게 볼품없는 나라라니 피땀 흘려 수십 년 가꾸어놓은 나라가 이 모양이라니 모두 다른 일에 도취해 사방에서 무너지는 소리를 듣지 못했구나 여기저기 구멍 뚫리는 위태로운 상황에 대처하지 못했구나 너희들은 이 땅을 훌쩍 떠나 이제 어디로 간 거니 아빠도 엄마도 없는 그곳으로 누가 너희들을 데려간 거니 봄비가 내린다, 봄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어디로 가고 있니 언제라도 오려무나, 꿈에라도 와서 부모 품에 안기려무나 너희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너희들은 저승에서 이곳을 바라보고 있겠지 그 맑은 눈동자로 이 나라의 앞날을 오래 지켜보겠지 친구들 살아가는 모습 너희들도 다 지켜보고 있을 거야 선배들 졸업식에도 믿음직한 후배로 너희들 참석하고 후배들 입학식에도 너희들 의젓한 선배로 참석하겠지 그래, 그렇구나, 너희들도 자랑스러운 단원고등학교 학생이구나 2014.4.28
우리 아파트 멀지 않은 곳에 카페거리가 있다. 그래서 나는 카페거리를 자주 지난다. 카페거리를 지나면 ‘브런치’(Brunch)라는 말이 붙어있다. 나는 ‘브런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혹시 만들어낸 말은 아닐까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게를 살펴보니 아침에는 문을 닫고 점심이면 붐볐다. 그제야 나는 브런치가 어떤 말인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궁금해져 영어사전을 찾아보니 Breakfast와 Lunch를 합성해서 만든 단어로 나와 있었다. 그러니까 아침 겸 점심으로 먹는 오전 식사를 말한다. 우리말로는 ‘아점’ 또는 ‘어울참’이라고 한다. 우리말에도 나와 있으니전에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생긴 말인지 몰라 궁금했는데 꽤 오래된 신조어, 90년대 푸우 비디오에서 ‘아점’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산업사회, 직장인이 바쁜 출근으로 아침을 먹지 못해서 점심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먹게 되면서 사용하게 된 말이다. 서양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일찍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말이 옥스포드 사전에 등장했을 때는 1896년이라는 것이다. 당시 이 말은일요일 아침예배를 보고 교회에서 조금 일찍 먹는 점심을 위해 사용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사용하는데 우리처럼 바빠서 아침을 못 먹는 현대인이 아침 겸 점심으로 먹는 뜻에서 사용된다고 한다. 서양의 브런치 메뉴는 아침식사용 메뉴 (토스트, 와플, 샌드위치, 베이컨, 계란프라이, 팬케이크)와 점심으로 먹는 메뉴들이 혼합되어 있다. 우리 동네 카페거리에서 먹는 브런치는 아침 예배를 본 후 교회에서 먹는 간단한 식사나 산업사회 바쁜 출근으로 조금 일찍 먹는 식사가 아니다. 주로 20, 30대 여성들이 찾는데 그 중에는 엄마들도 많다.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사교적인 자리로 먹는 식사가 우리 동네 브런치다. 우리 동네 브런치 메뉴는 양식으로 만든 간단한 아침 메뉴에 커피나 음료를 곁들여 내놓는다. 가격도비싸다. 그래도 점심시간 발 딛을 틈 없다. 우리 동네를 벗어나 가끔 손님맞이 할 때도 여성을 위한 메뉴들이 여러 곳에서 눈에 뜨인다. 요즘에는 양식집을 벗어나 한식집까지그런 메뉴가 있다. 어떤 곳인지 장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사모님 밥상’이 그렇다. 사모님을 위해 특별히 개발한 메뉴가 틀림없다. 이렇게 우리나라 점심시간 그럴듯한 곳은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많이 이용한다. 하지만 가정에서 식탁문화가 사라지고 있다.주거 구조도 부엌의 기능을 줄인 곳이 등장하고 있다. 아침은 거르고, 아빠 점심은 직장에서, 엄마 점심은 브런치나 사모님 밥상으로, 아이의 점심은 무상급식으로 따로 해결하고, 저녁은 가족 각자 회식으로 때우는 식사문화, 식탁이 사라져가는 것이다.
어둠이 깊을수록 지금은 칠흙같은 어둠이 대한민국을 덮쳤습니다. 어느 정치인이 말하길, 6.25전쟁 이후 가장 참혹한 국난이라고 말합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사건이라 되짚어 보는 것조차 가슴 먹먹합니다. 돈과 물질, 경제 발전에 가치를 두고 달려온 결과입니다. 어느 한 군데 만이 썩어 문드러진 결과가 아닌 총체적인 부패의 연결 고리가 사건을 이 지경으로 몰고 왔습니다. 그 결과, 가장 죄 없는 학생들에게 어른들의 업보가 얹혀진 씻을 수 없는 사건으로, 수치스러운 대한민국의 민낯을온 세상에 실시간으로 드러내놓고 말았습니다. 온 국민이 좌절하고 슬퍼하고 가슴을 치며 한탄하는 목소리가 천지를 뒤흔듭니다. 시간이 가면 잊히고마는 여타의 참사와 구별되어야 하는 이유가 너무나 많은 세월호 참사입니다. 정치와 종교, 관료주의, 부패와 불공정, 무사안일, 무책임 등 세월호 참사 앞에 붙는 언어는 절망적인 수식어로 가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의 나락에서 희망의 등불을 켠 채 스러져 간 고귀한 분들의 감동적인 사연들이 눈시울을 젖게 합니다. 무엇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자신보다친구나 타인의 생명을 사랑하고 자신을 내준 선생님, 승무원, 학생들, 목숨을 담보로 차디찬 바다에 뛰어들어 몸을 사리지 않고 혼신을 다하는 잠수부, 생업을 뒤로 하고 자원봉사 활동에 나선 진도 군민 등. 수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이 나라에 희망이 있음을몸으로 보여주고 있으니 그나마 안심이 됩니다. 인간은 평소의 생각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동물입니다.습관이 된 행동은 그것이 이성적이든, 감성적이든 그 자신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어려울 때 나타나는 행동을 보면 그의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많이 배운 사람이 더 이성적인 것도 아니고 적게 배운 사람이 더 본능적인 것도 아님을 보여줍니다. 높은 지위에 있건, 말단 공무원이든, 이름 없는 소시민이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지식의 높이와 상관관계가 깊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희망의 불씨, 아! 선생님 지금은 어둡고 슬픈 시절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슬픔의 무게는 깊어지고 좌절하는 목소리는 높습니다. 집단적 우울감으로 소비마저 줄고 있다고 합니다. 어둠이 깊울수록 힘든 때일수록 우리의 절망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처음부터 하나씩 시작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 시작을 교육에서 봅니다.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이 넘치는 가운데에서도 목숨으로 책임을 진 단원고 교감선생님의 가슴 아픈 책임감에 한없는 존경을 드립니다. 그 가족의 슬픔과 절망을 뒤로 하고 교육자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몸으로 보여준 모습은 참으로 숙연하고 처절합니다. 아무도 나서서 책임지는 리더가 없는 현실에서 가장 고귀한 목슴으로먼저 간 사랑하는 제자들 곁을 선택한 용기는 어떠한 수사로도 고매한 그 정신을 표현할 길이 없어 부끄럽습니다. 이는 모두 다 썩어도 마지막 희망은 교육에 있음을 묵언으로 보여주는 엄연한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이 남긴 유서는구구절절 가슴 먹먹한 책임감과 제자를 사랑하는 참 스승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생각으로 살아 오셨는지 단 한 번의 선택, 마지막 모습으로 우리 모두를 울린 교육자를 둔 대한민국의 교단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죽음만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장 소중한 것으로 책임감을 다한 모습만은 아무나 용기내어 따르기 힘든 일입니다. 생명을 주는 것보다 더 큰 책임감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터지던 날, 슬프고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려고 찾아든 책이었습니다. 희망을 품고 교실에 서고 싶었습니다. 교육자가 쓴 글은 아니지만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는 저자가 언론 현장에서 느낀 사건, 자신의 스승의 일화를 반추하며 선생님이 희망임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교육에세이입니다. 다만 몇 군데 정치적 발언이 눈에 거슬릴 수도 있지만 기자라는 직업인의 특성이 나타난 것이니 감안하고 보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세상을 바꾸는 작업이 절실한 때입니다. 저자는 교육을 '사람을 바꿔 세상을 바꾸는 작업'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사람을 바꾸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깊은 한숨 몰아쉬며 내가 서 있는 자리부터 하나씩 바꿔 가는 작업을 하고 싶은 분에게 이 책을 권해 드립니다. 그리고 저자가 드리는 희망의 꽃다발도 한아름 받으셨으면 합니다. "선생님, 당신이 희망입니다. 선생님, 우리가 희망입니다!"
전남교육청 교육과정과(과장 민영방)는28일전남교육연수원에서 전남도내 중고 학교장을 대상으로 2014. 기초학력 향상 지원을 위한 학교장 워크숍을 개최하였다.
1852년 미국의 한 시민이 아프리카 알제리 튀니스에서 사망했다. 그가 죽은 지 31년이 지난 어느날미국 정부는 그의 유해를 본국으로 송환하기로 결정했다. 그해 2월 유해를 실은 군함이 미국으로 입항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유해를 맞으러 나갔다. 군악대의 연주, 예포가 울리고 대통령과 국무위원, 상원위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그의 유해를 맞이했다. 사람들의 애도와 묵념 속에 그의 유해는 워싱턴 DC로 이장되었다. 그의 유해는 현재도 미국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존 하워드 페인(John Howard Payne), 가난한 미국의 평범한 소시민이다. 그럼 무엇이 미국인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만들었을까? 그가 작곡한 한 곡의 노래 때문이다. 노래 가사는 미국인에게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주었다. 즐거운 곳에서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꽃 피고 새 우는 내 집 뿐이리 이 노래가 미국인의 마음에 감동을 준 것은 다음과 같은 일화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을 하고 있었다. 남군과 북군은 워싱턴 시 인근 레파하녹크 강(rappahannock river)을 사이에 두고 밤낮 없이 밀고 당기는 전투를 했다. 전쟁은 지루하게 계속되고 병사들은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군과 북군은 밤마다 음악회를 열기 시작했다. 음악회 시간만 되면 양군은 자기편 군악대가 울려 퍼지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그날 있었던 끔찍한 장면을 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전쟁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군인들은 더욱 지쳐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북군 진영에서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한동안 음악이 계속되더니 누군가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즐거운 곳에서 날 오라고 해도…’ 음악을 듣던 북군의 병사 눈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집에 두고 온 부모 형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옆에서 이 모습을 본 병사들도 하나 둘 따라 불렀다. 잠시 뒤 남군의 진영도 군악대의음악이 흘러나왔다. 북군의 군악대가 연주했던 노래다. 남군의 군악대에서 흘러나온 노래 가락은 남군과 북군 가리지 않고 모두 따라 부르게 만들었다.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 노래 가락에 취해 강으로 뛰어들었다. 모습을 본 몇몇 병사들도 뛰어들었다. 그러자 다른 편의 병사들도 강으로 뛰어들어 삽시간에 모든 병사들이 뒤섞였다. 양군의 군대는 적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물속에서 얼싸안으며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가 끝나자 양군은 전쟁을 중단하고 하루 동안 휴전을 했다. 이 이야기가 퍼지자 남군과 북군은 전쟁을 계속 해야 하나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후 노래는 남군, 북군 가리지 않고 더욱 유행하여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연회 때마다 부르게 했다고 한다. 이 노래가 남과 북, 전쟁의 상처와 갈라진 미국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하지만 이 노래 작사자 ‘죤 하워드 페인’은 한평생 아내를 얻지도 않고 집에 가지도 못하고 떠돌았다고한다.존 하워드 페인은 1791년 보스톤(Boston)에서 출생하였다. 불우한 방랑자 페인은 20대에 영국에 가서 기자와 배우로 활약하다가 비숍 헨리가 작곡한 밀라노의 아가씨 클라리 오페라에 나온 노래 즐거운 나의 집에 가사를 붙이는 일을 맡았다. 작사자가 된 것이다. 즐거운 나의 집 ; Home sweet home 작사자 존 하워드 페인은 프랑스 파리의가난한 방랑자 시절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여 가사를 만들었다고 한다. 얼마 되지 않아 이 노래가 유명해졌지만 여전히 페인은 가정도 없이 방황하였다. 그가 1851년 알제리에서 친구 C. E. 크라크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의 글이 남아있다고 한다. ‘이상하다고 들릴지 모르지만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가정의 기쁨을 노래하지만 나 자신은 아직껏 내 집이 무엇인지 모르고 지냈소. 앞으로도 몸 둘 곳 없이 떠돌아 다녀야 할지 두렵다오.’ 존 하워드 페인은 이 편지를 쓴 이듬해 50세를 일기로 튀니스 길가에 쓰러져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광교산의 족도리풀은 올해도 잘 있는지?자줏빛 꽃은 두 잎줄기 사이낙엽속에 숨어 변함없이 자태를 감추고 있는지? 그것이 궁금한 것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변함없이 그 곳에 무더기로 피어나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그래서 광교산 그 곳을 찾는다. 안부를 전하려고. 등산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다. 대개 건강관리다. 힘든 산행을 하면서 체력을 단련하는 것. 대화와 친목도모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정상정복에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일행들이 가까와지는 것. 자연과의 교감도 있다. 자연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지난 주말 아내와 함께 광교산을 찾았다. 등산 코스는 여러 개 있지만 족도리풀이 자생하고 있는 곳을 택하였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연을 좋아한다.사람은 자연의 일부이다. 봄을 맞아 족도리풀꽃을 살펴보려는 것. 자연이라는 것이 시기가 있어 아무때나 꽃을 보는 것이 아니다. 리포터 기록을 살펴보니 2007년부터 광교산 족도리풀꽃과 관계를 맺었다. 모르는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아 그 이름을 알고 특성을 익히는 것. 그러면 그 식물은 '나의 식물'이 된다. 아는 만큼 보이고관심을 쏟은 만큼 대상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광교산 버스 종점에서 하차하여 창성사 옆길을 가다가 억새밭으로 오르는 코스다. 해마다 보던 길가 옆 습지에는 올챙이가 헤엄치고 있다. 시기가 지나서인지 도룡뇽알은 보이지 않는다. 자연의 변화는 일정한 때가 정해져 있는 것이 순리다. 날이 가물어서 그런지 계곡물이 말랐다. 산을 오르다보면 몇 년 전 멧돼지가 껍질을 벗겨놓은 나무도 발견한다. 그 나무, 수분을 올리지 못하여 그만 고사하고 말았다. 그렇다고그 멧돼지를 미워할 필요는 없다. 멧돼지나 나무나 모두 생태계의 일부다. 생태계는 이렇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드디어 족도리풀 발견! 반갑다. 처음보는 사람은 마치 고구마순 같다. 우리부부는 이 풀이 익숙하여 얼른 밑둥을 살펴본다. 낙엽을 살짝 헤치면 자줏빛 꽃이 보인다. 꽃 모양이 예쁘고 색깔이 선명하면 촬영에 들어간다.그러나 모양이 일그러져 있으면 낙엽을 그냥 덮고 만다. 예년의족도리풀과 올해 족도리풀의 차이점은 딱 하나. 작년까지는 족도리풀꽃이 선명하고 상처가 하나도 없었는데 올해 족도리풀꽃은 그렇지 못하다. 아마도 개화시기가 지나서 그런지 마치 산전수전을 겪은 사람처럼 보인다. 카메라를 가진 사람은 이왕이면 다홍치마를 원한다. 깨끗하고 선명한 장면을 원하는 것. 그러나십 여개의 꽃은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하산길 산철쭉도 예년과는 다르다. 개화기가 지났는지 아직 시작이 되지 않았는지 산철쭉 터널도 밋밋하다. 만약 시기가 지냤다면 꽃잎이 바닥에 보여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이게 다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하루하루가 다르다. 광교산의 족도리풀, 무더기로 피어있는 것만 보아도 안심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연을 집으로 가져가지 않는다. 자연을 눈으로만 관찰하고 그대로 놓아 두어야하는 것이다. 내년 이 맘 때쯤엔 족도리풀 잎 뒷면을 유심히 볼 것이다.운이 좋다면 거기에서 애호랑나비 알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교총이 올해 스승의 날 기념식을 개최하지 않기로 했다. 또 스승의 날을 전후해 1주일간 열리던 스승주간(5. 12~18)을 ‘세월호 참사 희생자 애도기간’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올해 스승의 날 기념식이 열리지 않으면 이는 교총 건의로 1982년 정부 기념일로 부활된 이래 32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 된다. 교총은 26일 서울 우면동 컨벤션홀에서 제100회 임시대의원회를 개최하고 이같이 결의했다. 교총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은 물론, 전 국민이 큰 아픔과 슬픔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기념식을 개최하기보다 소중한 제자들과 선생님 등 희생자를 애도하고, 유가족의 아픔을 함께하는 엄숙한 시간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대의원회의 이같은 결정에 따라 교총은 전국 학교에 이같은 사실을 전달하고 선생님들의 이해를 구하는 한편 학교 현장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할 예정이다. 이날 참석자들은 이같은 마음을 담아 채택한 ‘세월호 참사 제자와 선생님에게 부치는 50만 교육자의 추도와 다짐’을 통해 “꽃다운 청춘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떠난 우리 제자들과 그 제자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동료 선생님을 떠나보내면서 감내하기 어려운 슬픔과 고통으로 가슴이 미어진다”며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이 크다”고 밝혔다. 특히 1999년 씨랜드 화재사고, 지난해 사설 해병대캠프 사고, 올 2월 경주리조트 붕괴 사고 등을 언급하며 “만연돼 있는 안전불감증과 윤리의식 실종, 대형 참사 앞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재난대응 시스템 등의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가 우리 제자와 동료 선생님들을 희생으로 몰았다”고 규정했다. 참석자들은 이에 대해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대한민국의 ‘기본과 원칙’, ‘윤리와 인성’을 되찾기 위해 교원이 역할을 다하겠다”며 “교원 스스로 모범이 되고, 인성교육에 매진하며, 학생들의 안전의식 체화와 안전점검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결의했다. 또 정부와 정치권 등 사회 각계에는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호소한 故 최혜정 선생님의 유족의 호소처럼 사람의 가치가 우선이고, 국민의식이 선진국이 되는 나라 만들기에 나서 줄 것을 촉구했다. 한편 이날 참석한 대의원과 임직원은 실종자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염원을 담아 노란리본을 패용하는 등 경건한 분위기에서 회의를 진행했다. 아울러 기존 대의원회가 안건토의로 시간이 많이지체된 것과 달리 일괄처리 형식으로 회의의 효율성을 높이고, 대의원들의 건의와 토론시간을 확대해 현장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난심 부원장 △이명애 교육평가본부장△이근님 임용시험센터장
찬란한 사월도 아픔으로 저물고 있다. 가로수로 심은 이팝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 밑으로 한 무리의 아이들이 지나간다. 가망을 메고 손전화를 손에 쥐고 단짝인 친구끼리 마주 보는 얼굴과 팔랑거리는 모습이 너무 예뻐 가슴이 아려온다. 아직 피워보지도 못한 저 또래의 아이들이 이 찬란한 사월을 보내고 신록으로 일렁이는 오월도 보지 못한 채 먼 곳으로 가버렸다. 열흘을 넘게 울기도 많이 울고 가슴을 쥐어뜯기도 하였다. 누구를 원망할 필요도 없이 대한민국 어른으로 아버지로 부모로서 한마디의 단말마 비명조차도 지르지 못한 채 오금을 펴지도 못했다. 입속을 맴도는 말은 ‘미안하다 얘들아! 지켜주지 못해서’ 그러나 차마 내뱉지를 못하겠다. 아직도 생사를 알지도 못하는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이 세월호와 함께 저 바닷속에 있다. 평소에 바다를 참 좋아한다. 출퇴근 때마다 보는 바다는 시원함과 후련함으로 답답함을 달래주어 참 좋았다. 그러나 이제는 바다 옆을 지나치면서도 바라보기가 싫어진다. 아이들을 삼켜버린 저 바다가 밉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원망의 넋두리가 쏟아진다. 아이들이 보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었는가? 모든 일을 경쟁으로 포장하여 강요하고 살아남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는 현실을 만드는 것도 우리였다. 그리고 모든 일은 돈을 우선시 하며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현실을 되풀이 하였다. 얼마나 들뜬 마음으로 수학 여행길에 올랐을까? 답답한 교실에서 수능이란 고개를 일 년 남짓 남겨놓고 학창시절의 소중한 추억을 새기려고 나선 길. 그 길이 다시 돌아올 수 없었던 길로 만든 책임이 누구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묻고 싶다. 연일 방송은 세월호 침몰 사건 보도이다. 과열 경쟁 취재로 여과되지 않는 모습들은 지켜보는 이의 가슴을 짓이기고 분노를 끓어오르게 한다. 더구나 발달한 SNS와 인터넷을 악용하는 악성 댓글과 증명되지 않는 진실들이 또다시 활개를 치고 스미싱 앱이 판을 친다. 천사와 악마가 상존하는 것이 세상이지만 전 국민의 아픔을 빌어 주목받으려고 한탕 잡으려고 고개를 드는 파렴치한들은 누가 만들어 내었을까? 그런 이들에게는 주홍글씨를 새겨 주고 싶다. 사월이 가고 있다. 일기예보에 촉각을 세운다. 사리 기간이 다가오며 풍랑이 심해진다는 말에 또다시 가슴이 미어진다. 대한민국 사람으로 모두가 다 이런 마음일 것인데 하늘은 너무 무심하다. 오월이 코앞에 있다. 숙였던 고개를 든다.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산천을 본다. 신록의 새로움이 지난해 잎들과 대조되어 밝은 연두색으로 싱그럽고 예쁘다. 하지만 신록을 보면 볼수록 아이들의 모습이 투영되어 더는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 다시 눈물을 흘린다. 얘들아!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대한민국 어른으로 아빠로서 정말 미안해 얘들아! 정말 미안해 학생증 입에 물고 구명조끼 끈 서로 묶고 고운 별들로 사려져 간 얘들아 대한민국 어른으로 부끄러워 얘들아! 미안해 지구를 거꾸로 돌리는 힘이라도 있다면, 아니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어른의 자리를 한 줌의 재로 보시하여 그렇게라도 하고 싶구나 얘들아! 얘들아~ 교복 입은 아이들만 봐도 가슴 쥐어뜯으며 울먹인다 ‘내 가슴 뜯어서 식은 너희가슴 덮어주고 싶구나’ 얘들아! 미안해 정말 대한민국 부모로서 미안함과 죄스럼에 찬란한 사월의 봄 앞에서도 고개를 못 들겠다 얘들아! 얘들아~
인선아, 요즘 학교애서 진로교육을 강조하면서 많은 학생들이 책상 앞에 나름의 목표나 구호를 써붙이곤 하는데 넌 어떤지? 그런데 구호만으로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다. 현실을 파악하고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는게 어떨런지? 모든 과학 연구는 관찰과 실험에서 시작한다. 자기 통제도 마찬가지이다. 넌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휴대폰을 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보통의 통제력이 아니라 교장선생님은 생각한다. 공부를 잘 하고 싶으면 공부에 대한 거울이 필요하지. 그러나 실물 거울이 아닌 네 자신을 점검한 관찰 항목을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 자신을 먼저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자기 관찰이라고 한다. 자기 관찰이 축적 되어야 그 다음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자기 관찰에는 덤으로 강력한 효과가 하나 있다. 역사 기록을 보면1404년 음력 2월 8일, 조선의 3대 임금 태종 이방원은 노루 사냥을 갔다. 그는 활을 메고 말을 달리다가 그만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다치지는 않았지만 몹시 창피했다. 태종은 주위를 돌아보며 “사관이 알게 하지 말라”고 명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사실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사관이 왕의 이 꼴사나운 이야기를 실록에 그대로 남겼기 때문이다. 역사가 뭐라 하건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역사는 몰라도 주변의 평판이나 눈길을 몹시 의식하게 된다. 형제와 피 튀기는 권력투쟁을 벌인 냉혹한 군주가 고작 사관의 눈과 귀를 두려워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재미있게도 사람은 스스로의 눈길도 두려워하는 듯하다. 셸리 두발과 로버트 위클런드는 사람들에게 지능과 창의성에 대한 긍정적, 또는 부정적 피드백을 해주었다. 그리고는 피드백을 받은 사람을 대기실에서 혼자 기다리게 두었다. 대기실 중에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거울을 둔 대기실도 있었고 빈 벽만 있는 대기실도 있었다. 그런데 부정적 피드백을 받은 사람들은 거울이 있는 대기실에서 금세 나오고 말았다. 사람들은 관찰을 꼭 두려워하는 것만은 아니다. 예쁜 옷을 입으면 거울 앞을 떠날 수 없고 남들의 눈길도 즐겁기만 하다. 못하고 있을 때는 관찰이 처벌이 된다. 하지만, 잘하고 있을 때는 관찰이 보상이 된다. 따라서 관찰을 잘 활용하면 그것만으로도 행동을 바꿀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을 관찰하기만 해도 자기 통제는 훨씬 쉬워진다. 이렇게 관찰로 사람의 행동이 바뀌는 것을 반동성이라고 한다. 방에다 거울이나 비디오 카메라를 두면 누가 보지 않아도 사람들은 일이나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더 도덕적으로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제 스스로에게 거울을 보고 자기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게 하는 시간은 어떨까? 얼굴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들여다 보는 거울이 필요하다.
지난주 교육부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가 '2014학년도 전문대학 입시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전국 137개 전문대의 평균 등록률은 97.9%로 지난해에 비해 0.3%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4학년도 전문대 총 모집인원은 19만1634명으로 전년 대비 3.9%(7834명) 감소했다. 이와 같은 모집 정원 감축은 올해부터 교육부가 재정지원사업 평가에 각 대학의 구조개혁 계획을 반영하기로 하면서 전문대들이 자체적으로 모집 정원을 가축했기 때문이다. 올해 우리나라 137개 전문대 전체 평균 지원율은 7.7대 1로 전년도 7.5대 1에 비해 0.2포인트, 최근 5년전 6.4대1에 비해 1.3포인트 상승했다. 여전히 4년제 대학보다 전문대의 입시 경쟁률이 높은 것은 취업률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취업난, 병역 연기 등으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대학으로 편·재입학하는 이른바 '유턴입학'도 꾸준히 늘고 있다. '유턴입학' 학생은 전국 116개 대학에서 4984명 지원해 1283명이 등록했다. 전년 대비 2.4% 늘어난 수치이다. 이는 2013학년도 대비 지원자는 184명(3.8%), 등록자는 30명(2.4%)이 증가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매년 1,000명 이상이 4년제 일반대를 졸업하고 다시 전문대로 재·편입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학년도 우리나라 전문대 입시에서 가장 선호도와 경쟁률이 높은 학과(부)는 실용음악학부로 185.4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연기과(112.9대 1), 항공서비스과(59대 1), 문예창작과(38.8대 1), 간호과(32.3대 1), 유아교육과(30.2대 1), 사회복지과(27대 1), 보건행정과(25.6대 1) 등으로 나타났다. 그 외에도 뷰티미용 관련 학과, 호텔조리 관련 학과, 패션 디자인 관련 학과 등이 선호도와 경쟁률이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들 학과들은 한결 같이 졸업 후 취업에 유리하고 취업이 잘 되는 학과이다. 이른바 졸업하고 ‘밥줄’을 이을 수 있는 학과인 것이다. 이들 학과가 맞춤식 교육과정으로 운영됨에 따라 취업에 유리하고 타 학과에 비해 특정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높고 나아가 취업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4년제 대학 졸업자들의 전문대 재·편입자 급증 현상은 ‘취업’이라는 ‘현실적 문제’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정상적인 사회 시스템이 아니다. 바람직한 고등 교육의 체제도 절대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 체제와 고용 체제의 씁쓸한 불균형의 한 단면인 것이다. 특히 학교 교육, 특히 고등 교육이 인재를 양성하여 사회 경제 체제에 안정적으로 인력을 공급하는 정상적인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는 역행하는 흐름이다. 고등교육법에 명시된 대로 다 같은 고등교육 기관이지만, 전문대와 4년제 대학은 교육 목적이 다르다. 전문대가 실용적, 실무적 인력 양성이 목적이라면, 4년제 대학은 심오한 학문 탐구가 목적인 것이다. 이와 같은 각기 다른 목적을 달성하면서 자연스럽게 졸업 후 전문대, 4년년제 대학 졸업생 모두가 전공과 희망에 따라 취업이 시스템이 곧 바람직한 양성, 임용(채용) 시스템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양성, 임용 시스템이 불균형을 이루고 불안정하다보니, 전문대 졸업자들의 4년제 대학 편입학, 4년제 대학 졸업자들의 전문대 유턴 재·편입학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절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전문대는 전문대 대로 고유한 교육 목적이 있고, 4년제 대학은 4년제 대학 대로 고유한 교육 목적이 있는 것이다. 대학이 그러한 교육 목적을 달성하면서 취업도 자연스럽게 되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시습한 것이다. 더불어 최근 청년 백수, 88만원 세대, 삼포 세대 등으로 명명되는취업난 등으로 4년제 대학의 경쟁률이 저하되고 문사철(文史哲) 등 기초기본적인 인문학 등이 위기를 맞고 있다. 근래 교육부의 구조 개혁 조정, 재정 지원 사업 선정 등의 정책으로 된서리를 맞고 있는 것이 이들 문학, 역사, 철학 관련 학과 등이다. 누가 뭐래도 문사철 등 인문학은 모든 학문의 기본이다. 나아가 인문학은 모든 학문, 교과를 떠받치는 주춧돌(定石)과 같은 구실을 하는 중요한 학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업 후 취업이 안 된다는 이유로 통폐합, 폐과, 구조조정의 제일 순위로 홀대받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현 대학의 서글픈 현실이다. 그 중심에 평가 척도, 기준인 졸업생 취업률이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어렵기는 하겠지만, 전문대와 4년제 대학이 고유한 교육 목적에 충실해도 취업 등 졸업 후의 장래가 보장되는 교육 시스템으로 바로 서도록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물론 일부는 개인적 사정과 희망에 따라 전문대 졸업자들이 4년제 대학에 편입하고, 4년제 대학 졸업자들이 전문대에 재·편입학할 수도 있다. 그것이 나쁜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러한 현상이 급증하고 있고, 그 근본적 이유가 교육과 취업 시스템의 불안정에서 연유한다면 숙고와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현재 뒤죽박죽인 고등 교육 시스템이 바로서고, 이와 같은 양성, 임용, 취업 등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신진대사가 이루어질 떼 우리나라 고등 교육의 비정상적인 모습이 정상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