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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학부모로부터 과도한 寸志를 받은 모 초등학교 교사가 징역형에 집행유예, 그리고 추징금을 선고받음으로써 법에 따라 금고 이상의 형이 최종 확정되면 교사직을 잃게 되었다. 재판부의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학부모에게 적극적으로 뇌물을 요구하고 응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것 같은 태도로 불안감을 조성하는 파렴치한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이 판결문이 사실이라면 이는 교사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포기했을 뿐 아니라 교직사회 전체를 불신의 늪으로 집어넣은 처신으로 재판부와 일부 학부모의 동정론에도 불구하고 교단에 서기에는 ‘부적격한’ 교사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이런 교사들 때문에 아이들에게 수업태도나 교우관계 등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싶어도 ‘寸志를 달라는 것’으로 곡해 받을까봐 참아야 할 판이 되었다. 이제는 아이들 가르치는 일보다 학부모를 상대하는 것이 더 힘든 세상이 되었다. 새학기가 되면 우리 교사는 이래저래 신경이 쓰인다. 차라리 학년 초 “나는 절대 寸志를 거절한다”고 공개선언이라도 하고 싶지만 이 또한 아이들 앞에서 차마 꺼내지 못할 낯 뜨거운 말이다. 이제는 교사의 양식이라는 문제를 넘어서 교사들이 앞장서서 아예 ‘스승의 날’을 없애거나 방학 중으로 옮기라는 요구를 하고 이 날을 휴업일로 정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옛날엔 자식을 맡긴 선생님께 참꽃으로 빚은 술 한 병을 선물하는 것이 미덕으로 통하였고, 소풍 때 닭 한 마리를 튀기거나 정성스레 짚으로 싼 토종계란 한 줄을 보내는 게 남에게 흉이 되지 않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서당에서 책거리를 하면 스승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진심에서 우러난 대접을 하는 것은 결코 남의 손가락질 대상이 아니었고 오히려 스승, 제자 그리고 학부모의 인간적인 윤리로 통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오늘날 그야말로 부끄러운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언제부터인가 寸志라는 흉기가 우리 교직사회를 나락으로 떨어뜨렸음은 물론이고 교사들을 절망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심각한 혼란과 피해를 입는 것은 무엇보다도 선량한 대부분의 교사와 학생들이다. 학생들과 교사 사이에 도덕성의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은 고스란히 서로에게 상처로 남게 됨으로써 결국 학생들은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불신하게 되는 것이다. 교단이 이렇게 추잡한 걸로 비춰지면 어느 학생인들 교사를 스승으로 믿고 따르겠는가.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해 있는 부패, 그러나 교직은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 존경으로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집단이건만 그 부패의 연장선상에서 寸志가 우리 교직사회를 불신의 나락으로 밀어 넣고 있다면 이는 교단의 신뢰 회복 차원에서 과감히 척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寸志 근절에 대한 해결책은 간단할 수 있다. 주는 사람이 있어도 받지 않거나 받으려 해도 주지 않으면 문제될 게 없는 것이다. 이미 많은 교사들이 寸志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이제 우리 모두가 나서 도덕불감증으로 얼룩진 유혹과 불신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 학부모들도 교사에게만 寸志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려 들지 말고 스스로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요즘은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들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산업 연수생을 비롯한 국제결혼을 한 여성들이다. 근래에 국제결혼 가정이 많아졌으며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십수 년 전까지 만해도 주로 미국인 중심의 백인들만을 보았을 뿐이었는데 아시안들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인과 결혼한 아시안들이다. 이제 그들의 가정에서 제2세가 탄생 초등학교에 취학하고 있는 학생들이 늘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국제결혼 가정 자녀들의 교육환경에 지극하고도 의도적인 관심이 필요하게 되었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말할 것도 없었고 2·30년 전만해도 우리 국민은 단일 민족, 한겨레, 한 핏줄임을 자랑과 긍지로 여기면서 배웠고 가르쳤었다. 그야말로 민족과 국가와의 관계를 일치시키는 민족의 얼, 민족의 우월성, 민족에 입각한 국익 신장에 최선을 다하는 교육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산업발달과 교통통신의 급격한 변화로 세계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자기 민족을 초월하는 전 인류의 공생공존에 대한 의식이 확산되었고, 이민족과의 국제결혼도 많아지게 된 것이다. 시골 초등학교에 취학하는 국제결혼 가정 자녀들의 학생 수가 날로 늘고 있다. 그들의 생김새나 피부색 그리고 언어생활, 생활습관 등에서 다르기 때문에 일반 학생들이 상당한 이질감을 갖게 되는 것은 어절 수 없는 현실인 것 같다. 수천 년 간 타민족과 어울려 살 기회가 적었던 우리이기에 그런 감정은 지극히 자연스런 문화적 산물일 수도 있다. 초·중학교에 취학하고 있는 ‘온누리안’(‘온누리’와 ‘-ian’ (사람) 합성어 : 전북교육청)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효율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취학 전의 영·유아교육은 가정교육이 가장 중요한데 가정교육의 중요한 담당자인 어머니가 우리의 전통문화나 현실생활에 밝지 못한 ‘아시안’이기 때문에 교육의 효과가 미흡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온누리안’학생들을 위한 학교에서의 교육적 배려는 적극적이며 의도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며칠 전에 모TV에서 국제결혼 가정의 생활 모습이 방영되어 시청했었다. ‘아시안’신부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면서 힘겹게 사는 모습과 자녀들에 대한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하여 답답한 마음을 호소하는 점 등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특히 우리 말, 우리 예절, 우리 관습 등 기초적이고 기본적이며 생활속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되어지는 평범한 내용조차도 그들에게는 큰 장벽이 되고 있었다. ‘온누리안’학생들이 학교생활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놀림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우리말 학습에도 부진을 면치 못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 현실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간과하지 않고 전라북도교육청에서는 국제결혼가정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새롭게 변화 될 필요성을 인식하고 그들에 대한 사회적 교육적 관심과 배려를 높이기 위한 체계적인 지원을 위하여 ‘2006학년도 국제결혼 가정 도움계획(kosian edu plan)’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시기적절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온누리안’들의 애환과 어려운 점을 정확하게 진단 파악하여 그들에게 많은 배려와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모든 학생들에게 격의 없이 어울릴 수 있도록 바람직한 인성교육도 해야겠다. 나와 다른 형편에 처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 수 있도록 의도적인 교육활동를 통해 ‘온누리안’들의 사회적응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한국인으로써 긍지를 갖고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기대한다.
초중등 교원의 시도교육위원 겸직 허용에 대해 정치권과 교직단체는 물론 학부모 단체들도 공감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28일 교육과시민사회,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바른교육권실천행동이 공동주최한 ‘지방교육자치제도 개혁방안’ 토론회에서 한국교총 박남화 교육정책연구소장은 “교육현장에 현실 적합성이 높은 정책 입안을 위해서 전문성을 갖춘 초중등 교원의 진출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박 소장은 “같은 교원임에도 대학 교원은 겸직이 가능하지만 초중등 교원은 당선시 퇴직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특히 사립학교 교원은 신분 상 완전한 사인임을 고려할 때, 헌법상의 공무담임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여당이 관련 법안 발의를 준비 중에 있고 야당도 공감하고 있다”며 “학부모 단체들도 협조해 달라”고 말했다. 이에 학부모 3단체는 “겸직 허용에 공감한다”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또 토론자로 나선 전교조 김대유 정책연구국장도 “교총의 주장에 동감하고 사실 벌써 됐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 초점이 된 교육감, 교육위원 선출 문제는 대체로 ‘직선’에 공감한 반면 시도교육위의 시도의회로의 통합은 학부모 단체와 교직단체의 의견이 엇갈렸다. 주제발표에서 안선회 교육과시민사회 공동대표는 “주민통제의 원리에 입각해 교육위를 일반 상임위원회로 통합해야 한다”면서 “자격도 정당 당원이 아닌 자로만 규정하고 교육경력 등 모든 제한은 철폐해야 한다는 게 3단체의 의견”이라고 밝혔다. 이에 반해 교총 박남화 소장은 “헌법이 보장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자주성, 전문성에 위배되는 것으로 시도의회의 교육사무를 폐지하고 교육위를 독립형 의결기구로 단일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전교조 김대유 국장도 “학교자치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진하는 통합논의에는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총은 28일 열린우리당과 교육부가 당정협의에서 실업계고 대입 특별전형 비율을 정원 외 5%로 확대하고 2010년부터 재학생 전원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기로 한데 대해 즉각 입장은 내고 “실효성을 담보하는 후속조치를 조속히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이 같은 실업고에 대한 관심과 대책이 선거용이거나 또다시 1회성 정치 이벤트가 된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며 실업고 육성의 해법을 제시했다. 교총은 “정원 외 5% 특별전형을 대학에 강제할 일은 아니지만 이를 자율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행재정적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2010년부터 장학금 지급에 연 4000억원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조속히 재원 확충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개정으로 교육세원과 세수를 확대하고 교육세목을 영구세로 전환하는 등의 조치를 조기에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총은 “사실 실업고 문제는 입시와 장학금만으로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크게는 국가인적자원의 효율적 개발과 배분, 직업구조 변화에 따른 연계를 고려하고 작게는 실업고 실험 기자재 확충 등 여건 개선, 실업고 교원에 대한 사기 진작책 강구 등 실업교육 내실화를 위한 종합대책을 조속히 제시,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28일 당정은 정원 외 특별전형 규모를 5%로 확대하기로 해 적용대상 범위를 현재 9377명에서 1만 6500여명 수준으로 늘렸다. 또 2010년부터 전체 실업고 재학생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기로 하고 서울시교육청의 경우는 2년을 앞당겨 2008년부터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당정은 연간 4천 억 원의 예산이 추가로 소요되는 부분은 올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개정해 확보하고, 올 상반기 중으로 실업계 고교 특별전형을 5%로 확대하기 위해 고등교육법시행령을 개정하고, 2008학년도 신입생부터 이를 적용하기로 했다.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은 2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교원들의 각종 성추행 사례를 발표했다. 학사모가 밝힌 성추행 사례는 그 동안 교육기관 등에 접수된 사례 등을 모은 것으로 학교 안팎에서 제자를 상대로 한 성폭행.추행은 물론 학부모에 대한 성추행.희롱도 포함돼 있다(연합뉴스, 3월 28일자). 이번 기자회견은 최근 발생한 기간제 교사에 대한 성폭행사건을 계기로 교사에 의한 성범죄를 뿌리뽑고자 하는 의지가 높은 것으로 보인다.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나설 만하다고 본다. 성범죄를 저지르는 교사는 영원히 교단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것에도 전적으로 공감을 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이 무조건 옳은 방법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우선 그 사례가 빈약한데도 마치 교단이 온통 성추행법으로 들끓는 것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학사모의 홈페이지(ttp://www.haksamo.org)에 게재된 내용은 고작 10여가지의 성추행 사례가 올라있다. 이것을 가지고 기자회견까지 하면서 교단교사를 몰아붙일 필요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또한 이런 사실이 있었던 것이 최근의 일이 아닌것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료를 수집하면서 궁여지책으로 지난 일까지 들추어 낸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꼭 기가회견을 하면서 이런식으로 사례를 밝혀야 했었느냐의 문제도 있다. 이미 교단교사는 물론 교직단체들도 이부분에 대해 자성하고 있는 현실임을 감안할때 굳이 이런 방법이 필요했었는지 그 의도가 궁금하다. 학사모의 주장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교사는 교단에서 영구 퇴출되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이렇게 성추행 문제를 부추기는 느낌을 주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교단이 자꾸 불신을 받게 되고 모든 교원들이 성추행범으로 오인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학부모들의 입장에서도 그리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도리어 불안감이 가중될 우려가 큰 것이다. 학사모의 이번 기자회견은 기본적으로는 공감하지만 너무 성급하지 않았나 싶다. 좀더 신중하게 방법을 모색해야 했고 제도적으로 접근하는 자세를 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로인해 대부분 윤리적으로 정직한 교원들의 아픔과 고통을 학사모는 헤아렸어야 했다. 일부를 전부로 오인하도록 몰아가는 태도는 결코 환영받기 어려운 태도인 것이다.
교직을 떠나서 보낸 시간이 벌써 한 달이 되어 간다. 정년 퇴임이라는 매듭을 풀고 새로운 2모작을 준비해왔었지만, 어쩐지 일이 잘 풀리지만은 않는 것 같아 조금은 걱정이다. 난 요즘 퇴직 할때 이미 자리를 확보한 녹원환경신문이라는 작은 신설신문의 편집국장이 되어서 3월 2일 부터 출근을 하고 있다. 다만 아직 신문이 정상 괘도를 오르기엔 조금은 가파른 오르막이어서 힘이 들지만, 그래도 나가는 곳이 있다는 것만도 즐거움으로 여기고 나간다. 또 어제부터는 국립민속박물관의 로 선발이 되어서 예비자 교육을 받고 있는데, 이것도 희망자가 많아서 2.5 : 1 이라는 경쟁을 거쳐야 했었고, 나는 어린이박물관의 해설사 과정을 택해서 4일간 교육을 받고 바로 4월부터는 현장에 투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순수한 봉사활동이지만, 어린이들과 다시 만나게 되고, 방에 틀어박혀 있지 않아도 된다는 일이 즐거움이어서 택한 일이다. 그래서 요즘은 일이 무척이나 바쁘고 오히려 집안일은 처리할 시간이 거의 없는 지경이다. 내가 스스로 택한 일이긴 하지만, 바쁘고 그래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산다. 흔히 퇴직하면 등산으로 시간을 보낸다지만, 아직 산에 한 번 가본 적이 없이 살고 있다. 그런 생활을 하면서도 아직은 교직생활이라는 전직에서 자유스럽지 못한 것인지, 어린이들을 만나는 일을 스스로 자원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자원 봉사자를 모집하야 교육까지 시켜 놓았지만, 아이들이 오면 상당히 위압적이고 아이들을 마구 호령하는 분들이 있어서 염려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 교육이란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일 것이다. 나는 교직을 떠나면서 내가 그 동안 여러 곳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묶었다. 책이라기 보다는 보고서 정도라고 할까 남 앞에 내 놓기 부끄러운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내용은 많은 학부모님들께 호소하고 참고가 될 내용들이라고 생각한 것들만 모았다. 난 이 책에서 [교육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외쳤다. 그리고 그 머릿말을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은 교직 생활에 몸담은 기간 - 총 15,325일 - 동안의 내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교육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 흔히 우리가 생활하는 중에 [만날 해도 안 된다]는 말을 한다 만날은 무려 27년이 넘는 긴 시간이다. 그 만(萬) 날 하고도 절반을 넘긴 오랜 기간동안을 교육에 몸담았지만, 아직도 교육이란 어렵고 힘든 작업이었음을 고백하는 고백서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우리 나라 국민은 모두의 가장 관심거리가 교육이고, 모두가 교육전문가라고 할 정도로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나라이다. 그런 교육에 만 42년을 종사해온 초등학교 교장이 그 동안 교육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정리하여서 신문 잡지나 사이버상에 올렸던 많은 글들 중에서 중요한 것들을 뽑아서 매체별로 다시 정리하여 편집을 해보았다. 1964년3월15일 운명처럼 국민학교 교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2개도, 11개시군, 17개 학교에서 떠돌이처럼 살다가 2006년 2월28일 마지막 작별을 해야하는 정년을 맞게 되었다. 그 기간이 무려 15,325일. 그 동안에 나는 무엇을 얼마나 하였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내가 직접 담임을 하였던 27년 동안, 내가 맡아서 가르쳤던 제자만도 약 1,000명이 된다는 계산이다. 그렇다면 이 많은 제자들 중에 얼마나 많은 제자들의 가슴에 멍이 들게 만드는 잘못을 저질렀을까? 나를 정말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을 해주는 제자는 몇 명이나 될까? 사실 자신이 없다. 난 정말 이 나라의 교육의 한 귀퉁이를 맡아 왔지만, 정치적으로 이용을 당하기도 하였고, 상사들의 강압에 맞서지 못하고 순순히 따르기만 하였던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 내 자신이 저지른 잘 못은 또한 얼마나 많았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난 내가 이 나라 제일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만큼의 멋진 교육자도 아니었고, 또 그 만큼 큰 성과를 거둔 것도 없는 사람이다. 교사 시절엔 면소재지 정도의 시골구석만 헤매다니 다가 관리직으로 승진을 한 다음에도 큰 학교보다는 작은 학교에 근무한 것이 대부분인 사람이다. 그러나 그 동안에 나는 교육에 관한 생각을 끊임없이 신문이나 잡지 등에 써 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름대로 인정을 받았던지 일간신문에서 연재를 부탁해오기도 하고 원고 청탁도 심심찮게 왔었다. 한겨레신문과 소년 한국은 정식으로 신문사의 요청에 의해 연재칼럼을 썼었다. 사이버 기자로 활동을 하면서 즐거운 학교, 동아일보, 중앙일보 블로그, 서울신문명예논설위원으로 칼럼, 한국일보 디지털특파원, 교육부 사이버자문위원과 청와대 등의 활동을 하면서 교육에 대한 사회의 관심거리나 문제점들에 대한 의견이나 현장의 사정을 알리는 글을 꾸준히 써왔었다. 이 많은 글들을 그냥 팽개쳐 버리기는 너무 아쉽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서 비중이 있는 것들을 골라서 독자들께서 볼 수 있도록 전해드리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으로 15,325일 동안 썼던 글을 정리하여 펴내기로 하였다. 이 작은 글이 대한민국 교육 발전에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되는 것을 기대할 뿐이다.] 이제 한달 동안의 시간이 흘러서 밖에서 본 교육이라는 생각으로 돌아보면서 내가 헛소리를 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된다. 함부로 떠들 일은 아니었는데.......
오늘 나는 슬픈 마음을 안고 이 기사를 씁니다. 3월 28일은 생일을 맞는 날이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생일을 보낸 날이기도 했습니다. 교실 유리창이 맑지 못해서 늘 마음에 걸렸던 터라,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가는 우리 반 19명을 독서를 시키며 청소를 시작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사제동행 아침독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결과는 금방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때마침 눈발이 날려서 마량 앞바다를 가로지르며 날아오는 꽃샘바람에도 몸에 땀이 날 정도로 유리창의 절반을 닦았습니다. 몇 몇 아이들은 나를 향해, "선생님, 조심하세요. 떨어지면 죽는데..." "선생님이 이상하다? " 하며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피곤한 오후가 되면 일손이 안 가서 아침에 끝낼 요량으로 거의 작업복 차림으로 출근을 했던 터였습니다. 말갛게 닦이는 유리창을 향해 보이는 바다 풍경이 시원해서 기분이 좋아지던 것도 잠시, 나는 갑작스런 위경련을 참으며 작업을 진행하다 통증을 참지 못해 가족을 불렀고 그 사이에 교장 선생님의 신속한 판단으로 우리 학교 장주사님의 차를 타고 보건 지소에서 응급 치료를 받으며 2시간 가까이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남편보다 먼저 달려온 존경하는 오난옥 팀장님의 위로와 맛사지를 받으며 생일이면 가장 생각나는 친정어머님의 손길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새 학교에 적응하며 처음이나 다름없는 1학년 19명의 아이들에게 적응하지 못하는 내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20년 가까이 6학년을 즐겨 맡았던 관행을 뒤로 하고 복식학급에서 1, 2학년을 맡아본 경험으로 1학년을 선뜻 맡았던 것은 순전히 내 잘못임을! 출근하기 전, 거의 날마다 '오늘은 어떤 공부로 아이들과 잘 지내지? 어떻게 하면 제 맘대로 날뛰는 아이들을 낯선 학교 생활에 적응 하게 하지? 싸우는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적으로 고쳐주지? 먹기 싫다며 40분 씩 식판과 몸부림하는 아이들을 밥 먹게 하지? 글씨를 전혀 모르는 아이들을 어떻게 빨리 깨우치게 하지? ' 등등의 고민으로 교단 생활에서 가장 긴 3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수업 시간은 많아도 모범을 보이고 좋은 말로 충고하면 잘 따르고 공부도 잘 해 주었던 6학년 아이들과는 너무 다른 1학년 아이들. 한 명씩 대할 때는 말도 통하고 귀여운 꼬마인데 전체 속에 넣어 놓으면 제각각 자기 마음대로 개성을 발휘해서 단 몇 초를 집중하지 못하는 왕성한 운동력과 활발한 '분자 운동'에 번번히 뒤로 넘어진 내 인내심이 한계점에 도달해 있었나 봅니다. 좋은 말로 같은 말을 늘 반복하며 목소리가 커지기도 하고 강화 수단으로 포인트를 주며 칭찬과 벌점으로 아이들을 불러 모으지만 교문 앞에서 집으로 보내는 시간에 이르면 종아리는 이미 퉁퉁 부어버리는 일상. 그래도 이젠 제법 눈길을 맞추는 아이들이 늘어나서 안도하던 참이라 학교 환경심사를 생각하며 2층 유리창 청소를 시작했던 생일 아침의 변고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도 갑작스런 변고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침울한 하루였습니다. 교실의 화분은 마침 내 생일을 축하하며 남편 회사 직원들이 보내준 예쁜 꽃들이 있어서 한결 나아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 아이들의 솜씨 자랑판을 바쁘신 주사님의 손을 빌어 새단장을 했으니 그 동안 아이들이 공들인 작품들은 얼른 붙여주고 싶었습니다. 안정을 취하자며 조퇴를 하면 좋겠다던 남편을 억지로 돌려보내고 교실로 오니 아이들은 자기들 알림장을 보여주며 포인트를 달라고 달려들었습니다. 알림장이나 학교에서 보내는 소식지까지도 부모 도장이나 사인을 받아 오면 일일이 확인하여 자신의 칭찬 포인트에 올려주어 바람직한 습관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실내화를 빨아왔다고 자랑하는 민혁이는 실내화를 들어 보이며 자랑을 하여 별점을 주었지요. 편식을 지도하기 위해 점심 밥을 다 먹으면 별점을 주었더니 거의 모두 가 날마다 별점을 올리는 요즈음이지만 한 시간 가까이 식사 지도를 해야 하는 어려움도 따릅니다. 먼저 먹는 아이들이 교실에 가서 장난하다 다칠까봐 걱정이고 운동장에 나가 놀게 하면 시간을 못 지키니 함께 하교 시키는데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친구를 사귀기 시작한 아이들이라 집에 가면 친구도 없고 부모님도 안 계시니 친구 집에 가서 노느라 학교 차도 안 타려는 아이, 집에 오지 않아서 전화를 걸어서 아이들 집을 뒤지는 일도 있으니 퇴근해도 일이 끝난 게 아니랍니다. 힘든 일상이지만 집에 돌아와 생각하면 혼자서 실실 웃음 짓게 하는 일은 1학년 아이들이 주는 기쁨입니다. 보건지소에서 돌아온 나에게 유림이는 생일을 축하한다며 스케치북에 생일케이크를 그려서 선물하기에 참 맛있겠다며 먹는 시늉을 했습니다. 색종이에 생일축하 한다며 '선생님 사랑해요'를 써준 서경이에게 감동했고 말을 잘 들을 테니 아프지 말라며 곁에 와서 속삭이는 하늘이게는 볼에 가벼운 뽀뽀로 답하며 행복했습니다.늘 4시까지 학교를 헤집고 다니던 권영이는 작품 붙이는 내 곁에서 부지런히 핀을 집어주며 옹알였습니다. 내가 가장 미안해 하는 아이, 권영이! 제 곁에만 있어주면 훨씬 좋아질 아이인데 18명 아이들에게 몰린 내 눈이 그 아이를 품지 못하고 있어서 가장 안타깝습니다. 이 기사를 시작할 때는 '실형을 선고받은 현직교사'에 관한 기사로 인해 가라앉은 마음을 토로하고 싶었는데 예쁜 아이들을 떠올리며 내 마음이 다시 밝아졌습니다. 특히 1학년 선생님, 그것도 나이 든 여선생님들을 질타하는 목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화분을 사오라고 하지도 않았고 청소를 도와 달라고 학부모를 부르지도 않았지만 전체 학급(6개 반)에 진공청소기를 기증해 주신 학부모님(최강, 최희조 아빠 최훈님)을 둔 우리 마량초등학교를 생각하며 용기를 내어 전진하렵니다. 얼마나 많은 선생님들이 그늘진 곳에서 제자를 사랑하고 말없이 직분에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터지는 사연 앞에서 망연자실할 뿐입니다. 타산지석으로 삼아 거듭 나서 교단의 모든 선생님이 짊어지고 해결하며 자성해야 함을 생각합니다. 일부의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욕설이 난무하는 현장, 슬픈 현실을 받아들여 모두 함께 각성하는 시간을 가져야겠지요. 탑을 쌓는 데는 엄청난 시간이 걸리지만 그거을 허무는 데는 극히 짧은 시간이 걸립니다. 한 송이 꽃을 피우는 데는 많은 기다림이 필요하지만 꺾어버리는 데는 순간임을! 교직에 몸을 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그릇까지 깨서는 안 되겠지요? 자연치유력에 맡길 수 없을 만큼 중병인 경우에는 칼을 들이대어 피를 흘리는 과감한 수술로 모두 함께 상생하는 교단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여 신새벽에 이 글을 올립니다. 학부모님! 날아오는 돌팔매를 피하지 않으며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호된 꾸지람 뒤에는 따스한 격려도 같이 주소서! 발전과 상생을 이루며 함께 성숙하는 길까지 함께 고민할 수 있기를 빕니다.
고등학교 학창시절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면 아마도 그건 수학여행일 것이다. 각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는 나겠지만 예전과 달리 수학여행 코스를 제주도나 해외로 정하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고려해 보건대 그 만큼 우리의 생활이 윤택해 졌다는 단면을 엿볼 수가 있다. 학교 일정에 의해 4월에 계획된 2학년 제주도 수학여행에 따른 희망조사를 실시한 결과 예년에 비해 많은 학생들이 수학여행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불참 사유로 여러 가지의 것들이 있었으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 이유로 어려운 가정형편을 들었다. 우리 학급의 경우, 1명의 학생이 불참 의사를 밝혔다. 다음 날 저녁 시간을 할애하여 그 아이와 상담을 해보았다. 그 아이는 수학여행에 참가하지 못한 것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 아이는 애써 눈물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이 왠지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아이는 자신의 현재 사정을 조심스럽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비록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 하였지만 그 아이의 눈빛만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실직으로 인해 가계가 어려워져 수업료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그 아이에게 있어 수학여행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많은 이야기를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그 아이에게 마음의 상처만 더 안겨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용기를 잃지 말 것을 당부하며 그 아이를 교실로 돌려보냈다. 뒤돌아서 교무실을 빠져나가는 그 아이의 양어깨가 축 처져 보였다. 귀가 후, 그 아이의 생각으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문제는 수학여행비가 아니었다. 이런 일로 자칫 잘못하여 그 아이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바로 그때, 휴대폰의 벨소리가 울렸다. 발신인은 우리 학급의 실장이었다. 불현듯 이상한 생각이 감지되었다. 아직까지 야간자율학습이 끝나지도 않은 시간인데 전화를 건 것으로 보아 학급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실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나왔다. "선생님, 좋은 방법이 생각났어요." "아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니?" "OO를 수학여행에 데려갈 수 있는 방법 말입니다." "그래? 무슨 방법인데?" "저희들이 돈을 걷기로 했어요. 그리고 그 돈으로 OO를 꼭 수학여행에 데리고 갈 거예요. 선생님께서도 꼭 동참해 주실 거죠?" "……" 한참을 말없이 실장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듣고만 있었다. 사실은 그랬다. 가정형편 때문에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친구의 딱한 사정을 실장이 어떻게 알았는지 야간자율학습시간을 할애하여 그 친구 몰래 임시학급회의를 열었다고 하였다. 회의결과, 아이들끼리 성심 성의껏 돈을 모아 친구의 수학 여행비를 대주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친구들의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수학여행에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하였다. 실장과 전화를 하고 난 뒤, 왠지 모를 미소가 입가에 지어졌다. 아마도 그건 수학여행비가 해결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친구를 생각할 줄 아는 아이들의 마음에 감동되어 흐르는 미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 그 아이에게 있어 이번 수학여행은 친구들의 따뜻한 우정이 있기에 학창시절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간직되리라 본다.
요즘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에 '우리말 겨루기'란 것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이 '맞춤법' 과정을 넘지 못하고 그만 우리말 겨루기에서 탈락하는 것을 보았다. 모르긴 몰라도 국어학자들도 이 프로그램에 나가 완벽하게 다 맞춘다고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말의 맞춤법은 어렵고도 복잡하다. 따라서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이 완벽하게 맞춤법에 맞게 쓰기란 정말 어려울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어떻게'와 '어떡해'가 있는데 이번 기회에 독자들도 알아두면 유용할 것이다. 우선 이 말들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 리포터가 몇 년 전에 어느 아는 분의 자서전 집필을 도와드린 적이 있었다. 그때 원고가 나온 뒤 세 번째 교정에서 이 단어의 오류를 발견했다. 화보에 나온 사진에 대한 설명을 하는 문장이었는데, 문제의 문장은 바로 이것이었다. "선생님, 그냥 드시면 어떻해요."였다. 분명 문장의 끝 부분에 '어떡해'가 왔는데 '어떻게'로 표기되어 있었던 것이다. 리포터인 필자가 즉시 빨간 볼펜으로 돼지꼬리부호를 친 뒤 '어떡해'로 수정해 놓았다. 드디어 세 번째 마지막 교정을 끝내고 인쇄에 들어갔다. 설레는 마음으로 완성된 책을 펼쳐보니 어라, 이게 웬일인가. 리포터인 필자가 교정해 놓은 '어떡해'가 예전 그대로인 '어떻게'로 인쇄되어 있는 게 아닌가. 이거 뭔가 좀 크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리포터가 출판사 교정 담당자에게 즉시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담당자 왈, 내가 분명 틀렸다는 것이다. 너무나 기가 막혔다. 16년 동안 일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국어만을 가르친 리포터인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분께서 한다는 말이 '어떻게'가 분명히 맞다는 것이었다. 하는 수없이 국립국어연구원에 전화를 걸어 시시비비를 가려 리포터의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한 적이 있다. 리포터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처럼 교정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조차 잘못 쓰는 말이니 일반인들은 더 많이 틀릴 것이므로 더욱 조심해서 써야 한다는 뜻이다. '어떻게'는 '어떻다'의 부사형으로 동사, 형용사 등 다른 말 앞에 놓여 그것을 수식하는 기능을 하며, 그 차제로는 서술어로 쓰일 수 없는 단어다. "요즘 어떻게 지내셔요?" "저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씀인가요?"처럼 어떻게 뒤에는 반드시 서술어가 따라와야 한다 . 자, 그럼 위와 같은 문법적 설명을 하자면 아주 골치가 아프니까 거두절미하고 '어떻게'는 문장의 처음과 중간에 올 때 '어떡해'는 문장의 맨 끝에 올 때는 쓰면 맞는다. 예를 들어 '어떡해'가 문장의 끝에 온 경우 "형이 돼 가지고 그런 짓을 하면 어떡해" "네가 가면 난 어떡해" "학생, 거기에 앉으면 어떡해" '어떻게'가 문장의 중간에 온 경우 "네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니?" "이 돈을 어떻게 쓸지 모르겠다." "성범죄자들이 일반인들과 어떻게 다른 심리적 특성을 지녔는지 살펴보자." '어떻게'가 문장의 처음과 끝에 온 경우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쓸 것인가." 너무나 간단하지 않은가. 이런 간단한 방법을 두고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학부모로부터 금품을 받은 교사에 대해 법원이 처음으로 실형에 해당하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최윤성 부장판사)는 28일 학부모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기소된 부산 사하구 모 초등학교 교사 A(46.여)씨에 대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159만2천원을 추징했다. 지난 99년 학부모로부터 촌지 15만원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구속기소된 대구 모초등학교 교사 전모(당시 52.여)씨에 대해 법원이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한 적은 있지만 실형을 선고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교사에게 전적으로 자식교육을 맡기고 있는 학부모에게 적극적으로 뇌물을 요구하면서 이에 응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것 같은 태도를 취해 불안감을 조성하고 이 같은 촌지요구에 응한 학부모가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교사직을 계속 유지하게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박씨는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금고이상의 형이 최종 확정되면 교사직을 잃게 된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이 오랫동안 교사로 재직해오면서 표창장 등을 여러차례 수상한 데다 수뢰액이 비교적 적고 해당 학부모들도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징역형을 선고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덧붙였다. A씨는 지난 해 3월 초 학부모들에게 '아이가 학교생활 잘하는 지 여부는 학부모가 학교에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렸다'는 취지의 말을 해 학부모 최모씨로부터 20만원을 받는 등 같은 해 6월까지 16차례에 걸쳐 현금과 상품권, 화장품, 양주 등 179만원어치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학부모에게 '저랑 할말 있지요','입학만시켜놓고 지은 죄가 없느냐','감기 걸린 상태에서 소풍을 다녀왔는데 인사도 없느냐'는 등의 말로 학부모의 방문을 유도한 뒤 금품을 받았으며 참다못한 학부모의 신고로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A씨는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 해 9월 타 학교로 전보조치됐으며 이후 징계위원회를 통해 2개월간 정직처분을 받았다.
인하대가 처음으로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부모와 함께 공부한 고졸검정고시 출신 학생을 내년부터 ‘홈 스쿨링(Home Schooling)’ 전형방식으로 선발한다고 한다. 대학 측은 “개성과 잠재력을 가진 인재”를 선발한다는 취지에 따라 홈 스쿨링 학생을 대상으로 대학수능시험 점수는 반영하지 않고 검정고시 성적(70%)과 면접(30%)만으로 뽑겠다는 것이다. 통계치가 일정치는 않지만 현재 1,000여 가구가 '홈 스쿨링'(이하 '재택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해마다 3만∼5만 명의 초중고교생이 학교를 그만둬 해외유학과 더불어 '재택교육'이 더 늘어날 전망이고 보면 교사로써 만감이 교차한다. 과연 대학에서 말하는 '개성과 잠재력을 가진 인재'란 어떤 사람일까. '재택교육'은 일정한 교육과정과 꽉 짜인 하루 일과 속에서 다인수 학생을 대상으로 개인을 우선하지 않는 주입식 교육, 학교폭력 등의 문제를 다수 극복할 수 있고 부모가 교육전문가이거나 교육철학이 뚜렷하여 자유롭고 독창적인 교육내용으로 아이들의 소질과 적성을 잘 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학교를 떠나도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일정량의 공부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는 지식교육을 통한 학문적 성장뿐만 아니라 사회생활 적응을 위한 공동체 의식과 예절을 배우는 중요한 장임을 알아야 한다. 개인의 욕구는 변화하는 사회적 욕구와 항상 일치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학교교육을 통해 서로 타협하고 조정할 기회를 얻어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을 기르고 개인 욕구의 조절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공공교육에서 다양한 아이들이 모여 다양한 가치관을 서로 공유하고 타협하며 보편적인 역사관을 배움으로써 민주시민의식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재택교육' 아이들은 지적인 편식과 사회성이 원만하게 발달하지 못함으로써 사회부적응을 낳아 성인이 되었을 경우 사회적으로 고립될 가능성이 클 우려가 있다. 전인교육을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교육 내용을 접하게 해야 하는데 부모가 모든 내용을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재택교육'을 결단할 수 있는 부모의 특성상 대부분의 일반 가정보다 권위적이고 폐쇄적일 소지가 많다. 가부장적인 문화가 뿌리 깊은 우리 사회에서 오히려 가정이 학교보다 더 권위적이고 닫힌 공간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학생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또래들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와 괴리감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재택교육' 아이들 중에는 아침이면 등교하는 학생들의 시선을 피하여 늦잠을 자거나 밖에 나가는 것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거나 검정고시를 봐서 상급학교에 가려던 아이들이 마음을 바꿔 도망쳤던 학교로 다시 돌아오는 웃지 못 할 일이 생기기도 한다고 한다. 현재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대개의 '재택교육' 가정이 고소득이고 고학력을 가진 부모가 대부분이며 이 아이들도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1주일에 3-4시간 정도 학교에 수학, 읽기, 과학 등과 함께 전통적 교과들을 공부한다고 한다. 따라서 학교교육이든 재택교육이든 결국은 우리사회의, 그리고 특히 부모들의 의식과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가정이든 학교든 아이들을 위한 올바른 교육 환경에서 자율성을 살리는 것이 부모와 교사의 역할이고, 또 이렇게 될 때 우리 공교육도 선진화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장 선생님, 안녕하세요?" "00야, 안녕? 아침밥은 먹고 왔니?" "00야, 할머니는 잘 계시니?" 우리 학교 교문 앞에서 아침마다 볼 수 있는 풍경이랍니다. 아이들보다 먼저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맞아주시며 깊은 인사까지 나누는 분은 우리 학교 최수성 교장 선생님이십니다. 이 낯선 풍경, 흔하지 않은 모습은 첫 출근하던 날 내 가슴에 감동의 물결을 일으킨 장면이랍니다. 몇 년 전 아들이 사레지오고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 앞에서 수사 선생님들이 등교하는 학생들의 어깨를 토닥여 주는 모습을 보고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으며 3년 동안 학부모로서 아들의 학교에 가지 않으면서도 믿고 보낼 확신이 들게 했던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의 주인이니 마음을 다해 최선의 마음가짐으로 가르치겠노라는 마음의 표현이니 참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도 인간 관계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할 때, 이성보다는 감성의 힘이 더 중요함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찌 보면 학부모님들과 불편한 관계의 출발도 래포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나 오해에서 비롯됨을 생각하면 가르침보다 앞서야 할 전제 조건이 원만한 인간 관계일 것입니다. 하루 이틀 어쩌다 한 번 하는 일회성 인사치레가 아니라 연중 행사이니 추운 날씨에 빨개진 코로 눈웃음을 보내며 아이들을 맞는 풍경은 아무리 봐도 따스합니다. 문제는 나였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차량으로 출근하는 저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시는데 차를 모는 상태에서 인사를 받는 황송함 때문에 교장 선생님보다 얼른 출근해서 그 민망함을 덜고 싶은데 번번히 그러지를 못하는 게 새로운 고민거리가 되었습니다. 선생님들에게 일찍 출근하라는 말씀은 없지만 은근한 압력(?)이 되어 출근 시간을 8시로 작정하여 노력하고 있답니다. 마음을 비우고 아이들을 마음에 담지 않으면 실천할 수 없는 일이니 그 따스함이 아이들에게도 전해져서 우리 학교 아이들은 활달하고 밝습니다. 때로는 선생님들과 너무 친하거나 격의가 없이 지내서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선생님들도 계시지만 그래도 그 마음의 발로는 지극히 교육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교생의 이름을 불러주는 교장 선생님! 외국에서는 교장 선생님이 제일 먼저 출근하셔서 학교 문을 열어주고 담임 선생님이 계시지 않은 교실에는 아이들을 들여 보내지 않고 교장 선생님이 챙긴다고 합니다. 퇴청할 때에도 마지막으로 학교를 관리하는 분이 교장 선생님이어서 '키보이'라는 애칭으로 불리우며 그렇게 매사에 고생이 많으셔서 봉급도 많다고 합니다. 철저하게 학교를 관리하는 '사장' 의 임무를 한다는 뜻입니다. 나는 우리 학교에 온 지 이제 겨우 일주일이지만 몇 달쯤 산 것 같은 친숙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최고 관리자가 보여주는 따스함과 배려때문입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그 학교의 풍토와 분위기에 '길들여짐'에 이르기까지는 마음 고생, 몸 고생이 심한 학년 초. 자잘한 안전사고와 불협화음이 가장 많이 들리는 시기도 3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학교 관리자인 교장 선생님이 열린 사고와 행동으로 선생님과 아이들을 가족처럼 따뜻이 맞아주는 모습만으로도 마음의 벽을 허물게 합니다. 옛부터 '인사가 만사'라고 했는데 진정한 인사란 바로 마음이 전달되는 따스함임을 생각한다면 이처럼 학교의 모습도 아이들 위에 군림하거나 권위적인 모습이 아니라 몸을 낮추어 아이들 속으로 내려가 아이들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는 작지만 큰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집에서 꾸지람을 듣고 학교에 온 아이도 웃으며 맞아주시는 교장 선생님이나 담임 선생님의 훈훈함을 대하면 우울한 기분을 날리게 되어 밝은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학년 초에 아이들을 잡지 않으면 일년 내내 아이들에게 휘둘린다고 생각하는 선생님들도 계시지만 그 위험성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봄꽃들이 훈풍에 피어나고 헤어지고 난 뒤에 남는 것도 결국은 인간관계 뿐이라고 생각할 때, 할수만 있다면 힘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4월의 훈풍처럼 따스한 교육 방법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우리 학교의 아침 풍경을 사랑합니다. 다산의 목민 정신이 숨쉬는 강진 땅, 영랑의 시심이 솔솔 풍기는 인정의 땅 강진, 고려 청자의 맥을 잇는 이 고장의 자손들이 너른 대양의 기운을 받아 비상하는 그날을 꿈꿉니다. 부지런한 새가 벌레를 많이 잡듯, 부지런한 관리자를 만나 그 보폭을 따라 가려고 몸부림하는 우리 선생님들의 열정이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도 통하리라 확신합니다. 아이들이 주인인 학교, 아이들을 소중히 하는 학교,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교육이야말로 고객 감동, 고객 만족을 지향하는 진정한 학교의 모습이 아닐까요?
최근 정부 여당은 물론, 청와대에서도 '교육양극화'와 관련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최근 발신인이 청와대 국정홍보실로 되어 있는 E-Mail을 받았다. '교육양극화 그리고 게임의 법칙'이라는 제목이었다. 글의 말미에는 [특별기획팀]이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내용은 대체로 서울의 강남과 강북의 서울대 등 명문대 진학률을 비교해 놓았고 결론적으로 중산층의 거주지역과 그렇지 않은 층의 거주지역에서 이들 대학의 입학률에 상당한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또한 학부모의 직업에 따른 진학률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렇게 교육양극화 문제를 지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이를 통해 현재 서울의 비강남지역은 물론, 전국의 농어촌 지역에서 공부하는 수많은 학생들의 의지에 찬물을 끼얹지나 않을까 염려 스럽다. 이들 청소년은 누구보다도 감수성이 예민하여 조금의 변화에도 흔들리기 쉽다. 그럼에도 이로 인해 그들의 희망이 도리어 절망으로 치닫지는 않을까 염려 스러운 것이다. 또한 언론보도에서도 나타났듯이 '교육 양극화'의 문제 제기가 단순히 지적하는 차원을 넘어 정치적인 의도가 내포되었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우리사회의 양극화 문제가 교육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산층과 비중산층을 지적한다면, 그것은 우리나라의 경제발전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즉 경제발전에 따라 소득의 양극화가 진행되었다고 볼 때, 경제발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결국 경제성장이 불평등한 양극화를 가져왔다는 논리와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본다면 경제성장도 잘사는 사람들이 더 잘살기 위해 이루었다는 논리가 되는 것이다. 이로인해 잘사는 사람들(이른바 중산층)에 의해 교육양극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교육양극화 문제가 정부 여당과 청와대에서 지적되면서 그동안 자립형 사립고 확대를 시사했던 교육부총리 역시 이의 확대가 곤란하다는 의도의 발언을 했다. 이 발언역시 최근의 교육양극화 문제의 지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는 않나 싶다. 이렇게 교육양극화 문제와 연결된 여러가지 정황들이 결국은 '교육양극화'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세계 여러나라는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교육에 적극적인 투자와 다양한 방법으로 교육을 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교육양극화 문제를 다른 곳도 아닌 정부여당과 청와대에서 제기한다는 것은 교육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대학을 세계에 내놓으면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고 한다. 서울대학이 겨우 세계에서 100위권 정도에 든다고 한다. 이런 현실에서 '교육양극화'를 문제삼아 평등만을 내세우는 것은 결코 옳은 주장은 아니라고 본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경쟁력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우리나라 대학들이 해야 할 일이다. 교육양극화 문제를 제기하여 많은 청소년들에게 희망보다 절망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게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해결되는 것은 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교육을 위해 노력해야 할 시점에서 '교육양극화'문제를 자꾸 제기하기보다 경쟁력있는 대학과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것이 더 급선무라는 생각이다. 우리의 희망인 청소년들이 희망의 나래를 펼칠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하고 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 하겠다.
이제 휴대전화는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휴대 전화가 우리에게 주는 이로운 점도 있으나 이로 인해 악영향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새학기가 시작되자 새로운 문제로 부각되는 것이 학생들의 '휴대전화 문제'이다. 요즘 대부분의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으며, 휴대전화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 또한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조사결과 우리 학급의 경우 2명의 학생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소지한 걸로 파악되었다. 가끔 수업 시간 중에도 휴대 전화가 울려 수업이 방해되는 경우가 발생되고 있으며 하물며 선생님의 눈을 피해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학생들도 더러 있다. 그리고 휴대 전화가 없으면 불안한 탓인지 아예 목에 걸고 다니는 학생들도 있다. 또한 일부학교에서는 애국 조회시 교장선생님의 훈화도중 한 학생의 휴대 전화가 울려 교장 선생님의 훈화가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해프닝까지 벌어진 곳도 있다고 한다. 한 때는 컴퓨터에 중독 된 아이들 때문에 고민을 했던 부모들이 이제는 휴대 전화에 중독이 된 자녀를 고민하는 부모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 모든 것은 인터넷 상으로 이루어졌던 모든 기능들이 휴대 전화로도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휴대 전화는 단순히 전화를 받고 거는 것 외에도 동영상, MP3, 영화, 오락, 디지털카메라 등의 다양한 기능을 맘껏 즐길 수가 있다. 현실적으로 맞벌이를 하는 가정이 늘어남에 따라 부모들은 자녀들과 연락을 취하기 위한 방편으로 휴대 전화를 사주는데 급급할 뿐 이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는 것 같다. 아이들의 무분별한 휴대 전화의 사용으로 매월 그 사용료가 과다하여 가계 부담을 위협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보도에 의하면 백 만원이상이 넘는 휴대 전화 요금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결국 자살을 선택한 학생도 있다고 한다. 우리 학급의 경우, 대부분의 학생들이 정액제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몇 명의 학생들은 월 휴대 전화의 사용료가 5만원 이상이 넘어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이유인 즉은 동영상 다운이나 게임 등의 이용으로 인한 정보이용료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이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뚜렷한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의 특별한 관심이 따라야 한다. 가정에서는 매월 통보되는 사용료를 점검해 보고 그 사용료가 과다할 때에는 통신사를 통해 휴대 전화의 통화내역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만들어 적용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쉬는 시간이나 자율학습 시간에 거리낌없이 자연스럽게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는 아이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 누구하나 간섭하는 사람들도 없다. 그 만큼 아이들의 휴대전화 문화가 학교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어쩌면 그 무관심이 아이들의 마음을 더 병들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따라서 학교 차원에서 일주일에 한번 ‘휴대전화 안 가져오기’ 날로 정한다든지 수업시간에 ‘휴대전화 켜놓지 않기’ 운동 등을 전개하여 휴대전화로 인한 피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학생들 스스로가 경각심을 느끼기 위한 방법으로 휴대전화에 대한 ‘표어’, ‘포스터’ , '글짓기' 공모를 하는 행사를 가져보는 것도 좋다. 21세기 정보화 시대, 휴대전화가 없으면 ‘미개인(未開人)’이라는 소리를 듣는 요즘 진정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되는 것은 휴대전화 에티켓을 모르는 ‘미개인(未開人)’이라는 소리만큼은 듣지 않게 해야 한다. 그리고 휴대전화로 인해 패가망신(敗家亡身)하는 아이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지난 30여년간 미국 학생들의 마약 복용이나 임신, 범죄행위 등은 줄었지만 학업 성적은 별로 향상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어린이개발재단(FCD)이 18세 이하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해 28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1년 '낙제학생방지법' 제정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9세, 13세, 17세 학생들의 학업성적은 1975년 이후 정체된 것으로 나타났다. 낙제학생방지법은 어린이의 학업성취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것으로 특히 저소득층 등 소외계층 어린이에 대한 지원책을 담고 있다. 수학과 독해력 부문의 경우 9세 학생들은 다소 실력이 향상됐지만 13세 학생들은 변화가 없었고, 17세 학생들의 경우는 오히려 다소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케네스 랜드 듀크대 사회학 교수는 "1975년부터 2005년 사이를 대상으로 이뤄진 이번 조사는 미국의 교육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불러일으켰으며 청소년을 위한 정책 마련이 시급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10대 출산율과 음주, 마약 복용은 감소하는 등 어린이와 청소년의 안전 및 행동은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어린이 사망률이 감소했음에도 청소년 비만이 늘어나는 등 전체적으로 건강상태는 나빠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함께 미국수면재단(NSF)이 이날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학생들의 20%만이 권장 수면시간인 9시간을 지키는 등 수면부족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단이 지난해 11월 성인 1천602명과 이들이 돌보는 11-17세 자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학생의 5분의 1은 수업중 졸았던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6학년의 경우 학기중 평균 8.4시간 수면을 취하지만 우리나라의 고3에 해당하는 12학년의 수면시간은 6.9시간에 불과했다. 늦잠을 자다가 지각하는 경우도 많았고 졸음운전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필라델피아 아동병원 수면센터 부소장은 "수면부족 상태로 학생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은 아침을 굶기고 보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유채씨 등에서 추출한 식물성 기름인 `바이오디젤´을 경유 대신 사용할 때 장점과 그 판단 근거를 설명하시오.' '(가)와 (나)의 두 작가 유배지 작품을 비교 감상할 때 빈 칸에 들어갈 내용을 조건에 맞게 서술하시오.' 26일 서울시 교육청에서 제시한 서술·논술형 평가 예시문항의 일부이다(서울신문 3월 27일자). 이들 문항을 본 교사라면 예시문항에 대해 별다는 기대감을 갖지 않을 것이다. 서술·논술형 평가에 대해 교사들이 갖는 부담은 문항출제에 있지 않다. 위의 예에서 보듯이 교사라면 누구나 출제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문항들이다. 위와같은 문항은 얼마든지 출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 현직교사들이다. 예시문항 개발에 참여한 것은 분명 교사들일 것이고, 그 교사들이나 일선학교 교사들이나 생각이 같은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항을 출제하는 것에대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교사를 지금껏 본적이 없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상당히 서술·논술형 평가에 대해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그 부담감은 당연히 채점에 있다. 시교육청에서도 밝혔듯이 교사의 주관적 판단을 최소화 한다고 했다. 아무리 기준을 정해놓고 채점을 하더라도 서술·논술형 평가의 채점 과정에서 논란이 생기는 것은 필연적이다. 채점기준을 명확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채점을 하다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을 쓰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들 답안을 분석해 보면 교과서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원론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정답처리가 가능한 경우가 발생한다. 그럴때는 교과서 위주로 해야 할지, 아니면 원론적으로 정답을 인정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것이다. 현재의 단답형 주관식 문제에서도 이런 문제는 흔하게 경험하고 있다. 만일 학부모들이 채점에 문제를 제기하면 그것도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요즈음의 학부모들은 상당한 학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학문적 소양까지 교사가 감당하기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결국은 시험문제 출제에서 겉으로는 서술·논술형 문제일지 모르지만 채점과정의 편리성을 위해 변형된 객관식으로 가야 할 수도 있다. 즉 어느 문제에서 어디까지 답하면 몇점, 어디까지 답하면 몇점 추가 등의 채점기준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결국은 창의력 신장을 목표로 한 서술·논술형 평가가 또다른 암기위주의 평가를 유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학교현실을 따지기 이전에 이런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예측이 가능함에도 무작정 시행방침을 정해놓고 보이지 않는 강요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학원에서 다하는데, 왜 못하느냐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학원의 시험은 학교의 그것과는 다르다. 채점과정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만큼 학교와는 달리 교사의 주관이 개입되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학원의 채점 문제를 문제화 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학교는 내신성적과 직접적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모든 평가에서 객관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예시자료 제시를 하면서 추진하는 것이 과연 옳은 방향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시교육청에서는 시행방침을 정하고 지침을 내리면 그만이지만 학교에서는 그에대한 논란과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서울시 교육청의 이런 방침이 다른 시·도에도 파급된다고 볼때, 민감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평가의 비율까지 인위적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느끼는 부담감은 훨씬 더 높다. 방안 자체는 매우 좋다. 그러나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산적한 것이 서술·논술형 평가이다. 좀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국회는 이달 3일부터 5월 2일까지 한 달간 제259회 국회(임시회)를 연다. 열린우리당 조일현, 한나라당 안경률 원내수석부대표는 3일 임시국회를 개회, 7일 본회의에서 지난 2월 임시국회 미처리 법안을 우선 처리하고 대정부 질문은 10~13일 4일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10일 정치, 11일 통일․외교․안보, 12일 경제, 13일 교육․사회․문화 분야다. 이와 더불어 여야는 이치범 환경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내달 4~6일 사이에 실시하고 24일과 5월1, 2일 본회의를 열어 각 상임위에서 올라온 법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여야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생략키로 했다. 한편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사학법 재개정 문제가 핵심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재개정 법안까지 제출하고 배수진을 친 한나라당과 개정 불가를 고수하는 열린우리당의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러나 교육위의 한 관계자는 “5․31 지방선거 전까지는 여야가 크게 부딪치는 일을 없을 것”이라고 관측해 4월 국회에서는 산적한 법안 처리에 무게를 둘 가능성도 높다.
중국 1/3, 일본보다 훨씬 적은 5만권 판매 그쳐 순간적 애국심 아닌 역사 ‘애정교육’ 강화해야 “작년 4월 후소샤 교과서 검정이 통과되었을 때 여론은 정말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5월에 접어들자 국내시판 중인 지구본에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다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를 배포했음에도 보도가 되지 않을 정도로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이후로도 일본 정치인들의 역사 관련 망언은 계속 반복되고 있지만 우리 언론의 일본 역사왜곡 문제에 대한 관심은 사라진 듯합니다.” 지난해 뜨거웠던 교과서 왜곡에 대한 열정이 진정한 역사에 대한 애정의 결과였는지, 역사 갈등에 대한 호기심이나 맹목적 애국심의 순간적 발로였는지를 회고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하는 이길상(50) 한국문화교류센터 소장. 그는 지난여름 센터에서 한중일 3개국의 시민단체와 학자들과 함께 만든 3국 근현대사 공동부교재 ‘미래를 여는 역사’의 채택률만 봐도 이런 현상을 쉽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부교재의 집필과 출판을 주도한 것은 우리나라였지만 정작 출판된 후 우리나라에선 중국의 1/3, 일본보다도 훨씬 적은 수준인 5만권 정도 판매에 그쳤습니다. 역사왜곡에 대해 가장 격렬하게 대응하는 것이 우리국민이라는 점에서 이는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 소장은 “시민들의 무관심은 그렇다 치더라도 현장 교사들도 자발적으로 이 책을 구입하거나 수업에 활용하는 경우가 아주 적은 것이 현실”이라며 “올해는 센터에서 책을 구입해 학교에 보급하는 문제를 심각히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3년 출범해 매년 20여개 국가의 교과서를 수집・분석, 한국관련 오류를 찾아 외국 출판사나 교육부에 시정을 요구하고, 우리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한 교재를 다양한 외국어로 간행하는 등의 일을 해온 한국문화교류센터에는 세계 80여 개국 교과서 6천여 권이 소장되어 있는 국내 유일의 국제교과서도서관도 운영되고 있다. “교과서 연구에 관심이 있는 전국 교사들에게 센터의 문은 항시 개방되어 있다”는 이 소장은 “교사들이 입시나 수능에 구속된 교육을 해야 하는 현실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학생들에게 보다 넓은 시야에서 우리 역사를 이해하고, 주변국가와의 역사 갈등에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을 가르치는 것은 교사로서의 최소한의 사명이자 의무가 아니겠냐”며 교사들의 진정한 ‘역사교육’에의 관심을 호소했다.
학생 성적 종 모형에서 낙타 곡선(M자 곡선)으로 변해 소득수준 따라 학생 집단 계열화・분화된다면 주목 필요 부모 소득, 학력 따른 고등교육기회 차 분명히 드러나 시계열 종단자료 분석해 격차심화, 중간층 축소 확인을 사회 양극화: 집단 간 이질성 심화, 집단 내 동질성 강화 최근 사회 곳곳에서 양극화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 양극화, 소득 양극화, 노동시장 양극화, 의료 양극화, 교육 양극화, 심지어 대학 내 동아리 양극화까지. 양극화라는 말이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유행어가 된 것 같다. 각기 다른 영역에서 사용하는 양극화라는 말은 때로는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먼저 집단 간 격차와 양극화가 어떻게 다른지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집단 간 격차는 기술적인 용어로 차이가 있음과, 차이의 크기를 말할 뿐이다. 그러나 양극화는 단지 집단 간 격차에 그치지 않으며, 격차의 추세와 경향성을 평가하는 용어이다. 예를 들어 소득 분포의 변화, 노동 시장의 변화를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연구들은 외환위기 이후 다음과 같은 경향을 확인하고 있다. 첫째, 중간 소득층이 감소하고 있다. 둘째, 고소득층의 소득 점유율이 증가하고 있다. 셋째, 빈곤층이 증가하고 있다. 최근의 양극화 관련 연구들은 이러한 경향성, 즉 중간층의 몰락, 양 끝에 있는 집단의 증가, 한쪽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이동 가능성의 약화 등의 추세를 양극화라 일컫는다. 다른 한편에서는 양 끝에 속한 집단 간 이질성의 심화, 한 집단 내의 동질성의 강화의 경향성을 양극화라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그림 1]은 외환위기 시점부터 3년 이후 소득계층별 점유율 증감을 드러내고 있는 바, 5분위 소득계층만이 소득 점유율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위소득자의 소득 점유율이 낮아져 중간층이 위축되고, 저소득자는 더욱 빈곤해지는 경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양극화 경향성은 1990년대 복지정책의 축소와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강화로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한 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부국과 빈국의 양극화 현상까지를 지적하기도 한다. 교육양극화? 이러한 사회 양극화 배경 속에서 교육 양극화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교육 양극화라는 말은 여러 가지로 짚어보아야 한다. 먼저 교육 양극화라는 말이 어떤 현상을 지칭할 수 있을까를 살펴본다. 앞의 양극화 현상에 빗대어 보면 교육의 양극화란 교육계 내에 예컨대 학생 집단이 중간층은 감소하고 양 끝의 집단이 증가하는 현상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최근 교사들로부터 학교에서 시험에서 학생들의 성적이 과거와는 달리 낙타 곡선(혹은 M자 곡선)을 보인다는 걱정을 하는 목소리를 듣곤 한다. 시험 성적이 높은 학생과 낮은 학생이 있을 뿐 중간층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성을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학생들의 성적이 양극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일 성적이 높은 집단과 낮은 집단의 격차가 클 뿐만 아니라 성적이 높은 집단 혹은 낮은 내부에 어떤 강한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다면, 그리고 양쪽 집단 간의 이동이 어렵다면 더욱 양극화의 문제라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의 양극화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실증적인 분석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선행의 연구들은 부모의 소득, 학력에 따른 학생들의 성취 격차를 실증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먼저 부모의 소득에 따른 학생들의 성취 격차를 보자. 교육고용패널 자료를 통해 가계 소득 수준에 따른 학업성취도(수학능력고사점수) 차이를 보면 [그림 2]와 같다. 이 그림을 보면 가계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학업 성취도 수준이 높음을 알 수 있다. 200만 원 이하 소득 가정 학생에 비하여 500만 원 이상 소득 가정의 학생이 평균적으로 30점정도 점수가 높다. [그림 3]은 부모의 학력에 따라 학생들의 학업성취 차이가 뚜렷함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대학원을 졸업한 학생은 아버지가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에 비하여 평균적으로 약 49점이나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이러한 격차는 부모의 직업 지위, 거주 지역에 따라서도 유사한 양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거주 지역의 경우 도시와 농촌의 차이뿐만 아니라 도시내 지역 간 차이도 확인할 수 있다. 가계 소득이나 부모의 교육 등의 가정 배경 요인에 따라서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격차를 보인다는 것은 많은 선행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바이다. 그렇다면 부모의 소득, 부모의 학력이 어떠한 경로를 통하여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하?분석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시도한 선행 연구들은 부모가 지출하는 사교육비, 문화 자본을 비롯한 부모와 자녀간의 교육과 관련된 상호작용 등의 영향력을 확인하고 있다.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고등교육기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모의 소득, 학력 등에 따른 고등교육기회의 차이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계층 간 교육 격차, 즉 학업 성취도의 격차, 고등교육기회의 격차는 단지 연구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체감할 수 있다고 한다. 교직 경력이 오랜 교사들은 예전에 비해 부잣집, 상류층 학생이 공부도 잘하고 학급 반장, 부반장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들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활동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대학 진학 실적도 좋다는 것이다. 실증적으로 그리고 일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러한 격차를 곧 양극화라고 규정짓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앞에서 지적하였듯 양극화란 집단 간 격차의 심화, 집단 내 동질성 강화의 추세나 경향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집단 간 격차의 확인에 근거하여 섣불리 양극화라고 하기는 어렵다. 양극화라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시계열 종단 자료 분석을 통하여 격차의 심화, 중간층의 축소 추세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실증 분석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교육 부문에서도 양극화의 개연성이 있다고 가설적으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소득과 학업성취도간의 상관관계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 소득이 양극화의 추세를 보인다면 학업성취도 면에서도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소득에 따라 학생 집단이 계열화된다거나 분화된다면 그것도 주목해 보아야 할 일이다. 고교 진학 시 일반계와 실업계의 계열 선택은 소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필자는 강남의 한 빈부 격차가 심한 동네에서 학교에 다녔다는 한 학생으로부터 학생들이 가정의 소득 수준에 따라 친구 관계를 형성하고 상대 집단에 무관심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 학교를 다녔으되 실질적으로 같은 학교를 다녔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학교 내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 간에도 발생할 수 있다. 일부 사립고교에는 고소득층만 다닐 수 있다거나 그러한 학교의 비율이 높아지고, 저소득층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도 많아진다면 양극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가설적 논의에 대한 면밀한 실증 분석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교육격차가 심한 사회, 양극화의 우려가 있는 사회에서 한 개인이나 집단이 어떤 여건 속에서 처해 있느냐에 따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채 성장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하여 부모의 가난을 대물림할 수밖에 없다면 공정하고 건강한 사회라 보기 어렵다. 또한 격차가 심각할 경우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통합성, 공동체성이 약화되어 사회의 유지 기반이 흔들리는 위기에 처할 수 있게 된다. 서로 이동이 어려운 집단 사이에 삶의 경험이 다르고 이에 따라 가치관, 문화 등을 서로 공유하기 어렵게 된다면 한 나라 국민으로서의 공동체성을 확보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양극화가 심한 사회에서는 상대 집단에 대한 적개심으로 인해 폭동이 일어나는 등의 사회 문제가 심각한 것은 필연적이다. 집단 간 교육격차나 양극화에 주목, 현상을 제대로 진단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 사회의 통합성과 공동체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육의 기회, 과정, 결과에서 소외되고 있는 개인과 집단을 위한 적극적 대처가 필요한 것이다. 필자소개류방란 [ rbr@kedi.re.kr]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최근 교장선출보직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정 교직 단체를 중심으로 환상에 가까운 주장들이 매스컴을 통해 전파됨으로써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개발독재시대에 만들어진 교원승진 임용규정으로는 새시대에 맞는 리더십을 창출할 수 없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인듯 한데 ‘개발독재시대’라는 거창한 수사를 앞에다 부쳐 놓고 국민의 순정한 감정을 일방적으로 오도면서 출발하는 자체가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현행 제도가 안고 있는 불합리한 요소와 반민주적 요소를 찾아내어 해결책을 찾아내는 이해당사자들의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사실 어떤 제도를 마련하고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데에는 항상 혼란이 따르기 마련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가 ‘혁신’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크린스탠스 교수는 혁신의 의미를 두 가지 관점에서 제시한 바 있다. 하나는 과거의 모든 관행을 페기하고 새롭게 뜯어 고치는 와해성 혁신(disruptive innovator)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 제도의 문제점을 찾아 점진적으로 고쳐나가는 ‘존속성 혁신(sustaining innovation)이다. 기존의 승진임용제도를 폐기하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은 너무나 많은 혼란과 갈등을 야기할 것이다. 왜냐 하면 지금까지의 제도나 법규의 틀에 맞춰 준비해 온 많은 사람들의 겪게되는 혼란과 지금까지는 어떤 성장프로그램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가 새로운 제도에 맞춰 교장으로 선출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치열한 노력들이 교단의 갈등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흔히 쓰는 말로 ’인사‘가 만사라고 하는데 하루 아침에 제도와 법령을 바꾸는 것은 많은 갈등과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존속성 혁신(sustaining innovation)’을 제안하면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우선 현행 교원승진임용규정의 문제점으로 가장 많이 지적되고 있는 것이 근무평정제도이다. 근무평정은 대상자를 이해하는 총체적 자료가 되어야 한다. 물론 그 결과는 환류되어 개선의 자료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행 근무평정은 교감과 교장의 관점에서만 평가되고 있다는 오해를 받고 있고, 또한 대상자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어렵기 때문에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어느 정도 타당한 지적이라고 여겨지며 이의 해결책으로는 최근 교육부가 제안한 다면평가 체제의 교원평가를 도입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는 근무경력 문제이다. 현행 승진임용제도에서 교장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28년 이상의 경력을 갖추어야 한다. 사실 너무 길다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당장 몇 년을 단축시키는 방안은 상대적 피해자를 양산하여 교직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을 위험이 있다. 연차적으로 축소하여 20년까지 내리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최소한 20년 정도의 교육경력을 갖추어야만 교장으로서 전문적 자질과 교육적 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3년 정도 이상 경과해야 1급 정교사가 될 수 있고, 농어촌 학교나 도시학교(또는 중ꋭ고등학교, 초등학교 각 학년 담임으로서)에서 각각 6년 정도의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 또한 부장교사로서 최소 5년 정도의 경력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20년 정도 소요되기 때문이다. 다음은 농어촌 및 벽지 근무자에 대한 가산점 관련 문제이다. 일부 단체에서는 이와 같은 경력은 교장의 임무수행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쳐다보는 단견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교육의 봉사적 희생적 측면에서 이해하고 배려하여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웰빙을 추구하는 다운 시프트족이 늘어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귀찮고 어려운 일은 기피하고, 월급이 조금 적더라도 편안한 생활을 추구하려고 한다. 교사들 대부분이 근무조건이 좋은 학교에서, 그리고 집 가까이에 있는 학교에서 근무하고 싶어 한다. 이런 사회적 추세에서 적절한 인센티브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도 농어촌이나 벽지 근무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일부 단체에서는 별도의 수당을 주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별도의 수당을 신설하거나 인상하는데 역대 정권이 적극적으로 나선 적이 없으며, 설사 수당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교통비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가산점 제도는 없애야 하는 제도가 아니고 교육적 봉사에 대한 상응한 인센티브로 이해되어야 한다. 교장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열악한 농촌지역에서도 교육적 봉사를 실천하여야 한다. 직무 연수나 현장 연구는 개인적 차원의 전문직 역량을 배양하는 방안이므로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할 문제이다. 모든 연구대회를 특정 교원 단체가 주관한 것이라고 오도하거나 연구 성과를 격하시키는 태도로 접근해서는 안 될 일이다. 많은 연구대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교원단체가 연구점수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처럼 호도하는 태도 또한 편협한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현장 연구를 하는 것하고 안 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일년이 다가도 책 한권 읽지 않고 교육에 임한다거나 현장의 문제점에 대해 개선 방향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장의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연구학교 및 시범학교운영 가산점은 여러 가지 부정적 측면이 있다. 유치과정에서부터 로비를 해야 하고, 가산점 수혜자로 선정 과정에서도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교과연구회, 학교단위 동아리 활동 등과 연계하여 교사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을 유인하는 방안으로 수정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은 선출보직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을 살펴보면, 첫째, 교직사회가 크게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누구나 직장에 들어가면 자기 나름대로의 성장 프로그램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은 직장을 위해서나 개인을 위해서도 권장할 만한 일이다. 이미 수많은 교사들이 현행 제도에 맞게 자기 나름대로의 성장 프로그램으로 준비해 오고 있다. 만약 일시에 새로운 제도를 마련하여 실시하고자 한다면 이런 사람들에게는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 되어 혼란을 야기하게 될 것이고,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감을 조장할 우려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음은 교장의 자격요건에 대한 문제이다. 어떤 교직단체에서는 자격요건으로 10년 정도의 교육경력을 제안하고 있다. 이 10년이라는 경력이 많다면 많을 수도 있지만 학교 현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체득하여 학교 경영자로서 기본자질을 함양해야 하는 기간으로 본다면 앞에서 제시한 것처럼 결코 충분한 경력이라고 할 수 없다. 25세에 교사로 발령받은 경우 10년의 경력이면 35세 정도의 나이가 된다. 학교와 같은 수평적 조직에서 이 젊은 교사가 전교원을 아우르는 지도력을 발휘하기 어렵고 변화를 주도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최소한 20년 정도의 경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부에서는 선출보직제가 80년대 교육민주화 운동의 유공자를 배려하는 사회적 합의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정말 그렇다면 당시에 참교육운동을 주도했던 선생님들의 진정성을 왜곡하는 것이며, 또한 당시 학교 현장을 지키며 열심히 지도했던 교사들의 열정을 외면하는 처사가 될 것이다. 다음은 선출 자체가 지니는 문제점이 있다. 전국단위로 학교마다 교장 선출을 위한 행사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상상해 보라. 물론 학교운영위원회가 주관하여 선출한다고 해도 상당한 기간동안 선거(출) 분위기에 말려들 것은 뻔한 일이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이 그대로 재현될 것이다. 선출직 공직 후보자들이 자기 사람 심기에 급급한 것처럼 교장 선출후보자도 단위학교 운영위원 선출과정에 깊숙이 개입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있을 것이다. 또한 선출 자체의 부정적 측면도 지적해 볼 수 있다. 크고 작은 선거 때마다 제기되고 있는 바와 같이 반지성적, 반논리성을 들 수 있다. 이성적이 논리적 사고를 통한 합리적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학연이나 지연에 얽매여 감정적으로 투표행위를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승진제도에는 어느 경우든 대상자들의 치열한 경쟁과 그에 따른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또한 탈락으로 인한 절망과 좌절도 있다. 교장선출보직제라고 해서 이런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경쟁과 갈등, 절망과 좌절은 있을 수밖에 없다. 마치 선출보직제에는 이와 같은 문제가 없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승진임용제에서는 자신이 관리한 객관적 데이터에서 그 원인을 찾기라도 하지만, 선출보직제에서는 뚜렷한 원인을 찾을 수 없다. 아마도 편가르기, 상대방 흠집내기 등 인적 네트워크 관리 탓으로 돌리게 된다. 또한 선출과정에서 생긴 후유증으로 학교를 정상화시키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승진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이것은 흰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학부모들이 마치 교장선출보직제에서는 선생님들이 승진준비를 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최근 교원정책과 관련하여 열린 공청회나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한결 같이 ‘승진 준비하지 않고 오로지 교육에 전념하는 교사’를 주장한다. 교사는 자기 성장에 대한 어떤 프로그램도 갖지 말라는 것은 온당한 논리가 될 수 없다. 교장이라는 직위가 존재하지 않거나 학교 조직의 최하위 직급으로 전환하지 않고 지금처럼 존재한다면 교사들은 교장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할 것이다. 많은 교사들이 제도야 어찌됐든 교장이 되고자 준비할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준비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일은 하나도 없다. 상대방과 비교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 더 많은 일을 준비하여야 한다. 선출보직제에서도 수업을 더 잘해야 하는 기본이고, 화려한 경력 관리를 위해서 늘 남들과 경쟁하면서 한 발 앞서는 노력해야 한다. 심지어는 단위학교에 구성되는 학교운영위원들과 많은 접촉을 해서 친밀감을 확보해야 하고, 때로는 유력한 지역연사를 끌어들여서 학교운영위원들을 적절하게 조정하기도 해야 한다. 이는 교육의 본질을 외면한 교사 활동을 조장하는 것으로 모든 교사들을 정치마당으로 끌어내리는 제도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현행 승진제도보다 더 준비할 일이 많아지게 된다. 충분히 이런 상황이 예견되는 데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우기는 행태는 ‘손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기만행위이다. 일부에서는 사립학교나 자립학교의 성공사례를 지나치게 일반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사실 교장선출보직제는 국공립학교의 경우, 현행 순환근무제와 맞물려서 그 자체로 많은 문제을 내포하고 있다. 구성원들이 한 직장에서 늘 함께 하는 것이 아니고 수시로 근무지를 변경하게 되어 있는 현 순환근무 인사제도에서는 어려움이 있다. 또한 학교 간에도 규모나 교육여건 등에서 엄연한 차이가 상존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하나의 이상적 제안에 불과하다. 어느 조직에서나 구성원이 자신의 발전프로그램을 가지고 열심히 근무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지금 정부나 일부 교원단체에서는 이런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학생만 헌신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교원만을 원하고 있는 것 같다. 이와 같은 생각은 교직 사회의 생명력을 제거하여 궁극에 가서는 교육의 질을 현저하게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성장프로그램이 없고 또한 준비하지 않은 집단은 죽은 집단이다. 자신의 성장 프로그램을 토대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를 만들어야만 개인도 발전할 수 있고 교육의 질도 향상될 수 있다. 어느 제도나 법 규정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구성원 모두를 만족 시킬 수는 없다. 어쩌면 이것이 제도나 법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상호간에 논의를 통하여 최선안을 찾아 나서야 한다. 병을 앓고 있는 환자는 환부를 찾아서 치료해 주면 된다. 병을 앓고 있다고 환자를 죽이고 새로운 사람으로 대체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크린스텐스의 존속성 혁신을 주장한다. 바로 없애고 죽이는 것보다 환부를 찾아내어 죽어 있는 부분에 피를 돌게 하여 생명을 살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적 리더십이나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ship)은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마인드와 역량에 있는 것이다. 마치 제도가 이와 같은 리더십을 구현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것은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일하는 교장은 우리가 원하는 교장상이다. 그러나 낮은 교장은 우리 교육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낮은 교장은 교장에 대한 매력을 잃게 되어 교직사회를 침체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교장의 자리를 교육적 마인드가 부족한 다른 세력에게 내어 주는 단초가 될 것이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 교장은 부단한 자기 연수와 연구, 봉사적 교육활동, 다양한 교육경험을 바탕으로 얻어진 경륜과 식견을 토대로 자격요건을 엄격하게 강화하여 선발하여야 한다. 또한 선발된 연수대상자에는 지금보다도 훨씬 정밀화된 연수과정을 통하여 전문성과 경영능력을 갖춘 경쟁력 있는 교장을 만들어 내야 한다. 교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위가 아니며, 준비 없어도 되는 자리가 아니다. 치열하게 노력하고 준비하여 교육행정가로서 전문성과 경영 능력을 갖춘 사람만이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법적 정당성을 확보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