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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5월은 스승의 날이 있는데 본질에서 어긋나는 이야기들이 더 많아 교육에 평생을 걸고 있는 나로서는 결코 마음이 편하질 않다. 흔히 교사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아이들은 교사에 대하여 별로 아는 것이 없다는 착각이다. 그러나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아이들은 어릴 뿐이지 나름대로 선생님을 잘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1년 동안 담임한 교사는 한 학급 학생들로부터 평가를 받지만 10년 ,20년 아니 30년 이상 경력의 교사라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박수를 보내거나 아니면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교사의 일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한 여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치다 육아 때문에 휴직을 한 후 다시 복직하였는데 제자들은 벌써 6학년이 되어 있었다.'또 그 아이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신학기에 교실에 가서 다시 한번 놀랐다. 아이들의 모습은 잔뜩 어두운 분위기로 모두 자신감을 잃고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차고 그 반짝반짝 빛나던 옛날 아이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Y라는 남학생이 어두운 얼굴로 「선생님, 우리는, 무엇을 해도 안됩니다」 「어?」라고 되물었다.「무엇을 해도 옆 반에 이길 수 없습니다……. 전의 건강했던 우리가 아닙니다」. 순간 「좋아 , 오늘부터 졸업 때까지 모두 이 클래스를 「세계 제일 학급」으로 만들자! 모두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대단한 가능성이 잠자고 있단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실현될 수 있다. 좋아? 나는 너희들의 그 가능성을 믿는다」 이렇게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년간 아이들과는 「세계 제일의 학급 만들기」를 향해서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 학급의 일체감을 만들기 위해 노래를 만들고, 자신의 꿈이나 소원을 담은 일기스기를 시작했다. 마라톤 대회나 체육대회에서는 필사적으로 연습해 옆 반에 이기는 등 좋은 성과를 올렸다. 드디어 맞이한 졸업식 날 이었다. 아이들과의 이별은 정말로 괴로웠으며, 아이들이나 나도 많이 울어 울음바다가 되었다. 허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면 도화지를 말아 장식된 리본이 걸려 있는 선물이 눈에 들어온다. 열어보니 그것은 아이들이 나에게 준 졸업 증서였다. 「세계 제일 학급증서, 선생님은 6학년 2반의 담임으로서 우리와 함께 세계 제일이라고 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으며 훌륭하게 우리를 졸업시켜 주셨으므로 이에 칭찬의 증서를 드립니다」 또 다시 눈물이 넘쳤다. 지금도 이것을 볼 때마다 「세계 제일의 학급 만들기」를 향해서 노력하였던 아이들의 껄껄거리며 웃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는 이야기 이다. 그렇다. 어떻게 세계 제일의 학급이 있을 수 있겠는가? 문제는 교사와 학생들의 목표의식이다. 먼 훗날 선생님은 영원히 잊지 못할 선생님이었노라고 이야기하는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자. 세상이 우리를 위하여 꽃다발을 예전처럼 주지않더라도 꿋꿋하게 교사의 길을 걸어가자. 교사는 총장도, 교수도 교장도 교사이다. 어느 직책에 있던간에. 그리고 더 활기차게 아이들에게 다가서 보자. 공부 잘 하는 아이도 못하는 아이도 차별하지 않고 사랑으로 대하여 보자. 풀 죽은 가슴에 희망의 씨를 뿌려보자. 먼 훗날 부끄럼없는 만남을 위하여...
학창시절의 아련한 추억중 입가에 미소를 머금케 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수학여행(요즈음은 체험학습활동이라고 말하지만 옛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 수학여행이라고 칭한다)이 아닌가 한다. 특히 요즈음같은 5월은 가히 수학여행의 정점을 이루는 때가 아닌가 싶다.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보면 중학생의 경우는 경주나 설악산이고 고등학교는 대개가 제주도를 많이 다녀오기도 하나 일부는 설악산을 다녀오기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렇게 학창시절의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수학여행이 때로는 씁쓸한 뒷말을 남겨 서운한 감정이 드는것은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나 직원인 필자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한 문제점은 이전에도 간헐적이긴 하지만 리포터들도 지적했듯이 조금 심층적으로 접근해 보고 문제점을 제시한 후 대안을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수학여행(修學旅行)이라 함은 학교내에서만 배울수 없는 것을 현장에 찾아가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활동이다. 단순히 놀러가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백번 듣는것 보다 한번 보는것이 교육에는 더 좋기 때문이다. 더욱이 입시와 빡빡한 생활에 시달렸던 학생들에게는 집단의 규율에서 일탈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자율적인 생활도 할 수 있으니 더욱 좋은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장점을 가진 수학여행이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계획이 부족하여 잡음이 계속 나오고 있으니 한번 그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한다. 첫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은 천편일률적인 수학여행 장소와 프로그램이다. 이는 많은 학생들을 숙식시키고, 관람시킬 곳이 몇몇 곳에 불과하다는 이유를 들 수도 있겠지만 조금 다른 각도에서 아래의 사례를 본 다면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 한겨레신문 2006.5.8 기사를 보면, 전남 ㅁ고 교사인 이아무개씨는 동료교사들과 함께 지난해 여행업체를 통하지 않고 수학여행을 준비했다고 한다. 교사들이 수학여행지에 미리 가서 숙소를 직접 둘러본 뒤 가장 쾌적하고 저렴한 곳을 고르고, 일정에 맞춰 식당도 정했다. 우선 틀에 박힌 장소 대신 경기, 충청, 전라권에 걸쳐있는 유적지를 둘러보는 코스로 짰고, 자동차 회사 견학, 험하지 않은 산 등산, 유명 놀이공원 유람 등의 일정을 넣었다고 한다. 기존 여행업체에서 정해준 대로 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입맛에 맞도록 식사 주문도 했고, 도시락을 맞추기도 하였다. 또한, 식당에는 교사들의 식사를 공짜로 준비하지 않도록 말 했다고 한다. 학생들의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고 한다. 잠자리와 먹거리에 만족했고 알차게 여기저기를 돌아봤다고 한다. 자, 위의 사례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점이 도출되고 해결책도 나온다. 수학여행의 주도권을 관광업체에 넘김으로 인해 교육목적에 맞는 프로그램 실현이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심지어 교직원들이 리베이트를 챙기려고 수의계약 쪽으로 하는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의심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소수의 사례이긴 하지만 퇴직 교장이 업체를 끼고 영업사원으로 뛰면서 수의계약을 하는 조건으로 학교에 리베이트를 건네다 물의를 일으킨 경우도 있었다. 해결책으로는 우선 담당 교사의 수학여행에 대한 의식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단지 사고가 덜 나고, 안전성이 검증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천편일률적인 장소 선택과 프로그램은 이제 재고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청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생각을 달리하여 지자체와 연계하여 좋은 역사유적지에 대한 소개를 받아 새로운 수학여행지를 발굴하여 단위학교에 조언해줄 필요성이 있다. 둘째, 말하기 거북한 수학여행을 둘러싼 검은돈이다. 부인하려고 해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수학여행시 업체나 숙박업소에서 건네는 이른바 ‘수고비’다. 필자 또한 중학교 직원으로 있을때 수학여행 인솔시 주저하였지만 받은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크든 작든간에 그 금액은 거의 1인당 10만원꼴은 된다. 받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단 교직원들의 출장비에서 업체에 숙식비를 입금하면 업체에서 이를 되돌려주는 방법이 가장 흔하다. 문제는 이러한 수고비가 순수한 의미에서 건네는 돈이냐는 것이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것은 수고비가 아닌 ‘리베이트’가 맞다. 다음해에도 수학여행 단체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학교 교직원들에게 건네는 일종의 뇌물인 것이다. 더욱이 수학여행을 가는 교직원들은 모두 관외출장을 달고 가며, 시간외 수당까지 챙기기 때문에 검은돈을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업체들이 건네는 이러한 리베이트에는 학생에게 부과되는 수학여행비에 얹혀지기 마련이므로 궁극적인 피해자는 수혜자여야 할 학생이 된다. 대개 검은돈은 합계액으로 일백여만원에서 이백여만원이 건네지는데 이러한 검은돈은 애초부터 수수하지 말아야 하며, 학생들의 식사 질을 높이거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의 수학여행비를 면제하는데 노력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검은 돈의 흐름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업체를 통한 수의계약 보다는 조금 업무가 늘어나고 귀찮을 지라도 전자입찰 계약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행건수는 극소수라고 한다. 앞서 말한 전남 ㅁ고도 올해에는 수의계약을 통해 여행업자를 선택해 추진했다고 한다. 물론 계약 방법이 수의계약이라고 해서 반드시 부정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투명하게 공개하고 추진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학교에서 수학여행 후 시행하고 있겠지만 수학여행에 대한 느낀점과 개선할 점을 학생들로부터 건의받아야 할 것이다. 단순한 기행문이 아닌 몸으로 느꼈던 점들을 학생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교육활동이 있었으면 한다. 끝으로 즐겁고 신나야 할 학생들의 수학여행이 몇몇 개운치 않은 사례를 열거함으로 인해 열심히 노력하고 인솔하였던 교직원들에게 멍에로 다가오지 않는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수학여행 철이다. 일선 학교에서는 수학여행 담당 선생님들이 몇 달 전부터 준비에 골머리를 앓는다. 아이들의 경비에서부터 숙박시설, 관광코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손수 준비해야 하고 아이들과의 논의를 통해 결정하게 된다. 이런 어려운 일이기에 일선 학교에서는 수학여행 업무라면 피하고 싶은 업무 중의 하나에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것이기에 누구도 업무를 맡게 되면 피할 수 없는 일이 또한 수학여행 관련 업무이기도 하다. 첫발령을 받고 운 좋게 그해에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물론 수학여행을 가기 전까지는 그저 학생의 입장으로 돌아가 흥분되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그런 지난시절의 낭만과 추억은 곧 깨지고 말았다. 그런 소리까지 들어가며 수학여행 가야 하나! 요즈음 일부 언론에서는 교사들이 수학여행을 핑계 삼아 여러 가지 이권을 업체로부터 받기도 하고, 더 나아가 검은 돈까지 받아 챙긴다는 기사를 곧잘 내놓는다. 이는 곧 교사 집단 전체의 무능과 부패, 나아가 대한민국 교사의 질적 수준을 폄하하는 범위로까지 곧잘 확대되기도 한다. 수학여행 때문에 학기 초부터 신경을 써야하는 일선학교 담당 교사들을 이런 말들에 낙담하기에 앞서 대꾸할 여력조차 없음을 토로하기도 한다. “정말이지 대꾸할 여력도 없어요. 아이들 수학여행 준비 때문에 행정실과 업체, 그리고 학생들의 여러 가지 제반 사항을 준비하다보면 정말로 골치 아픈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에요. 그런 몹쓸 욕까지 얻어 먹다니 만약에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수학여행 가지 않는 편이 낫겠네요.” “이거 수학여행 가면 밤을 세워가며 아이들 감독하느라 제대로 잠도 못 자는 판에 무슨 융숭한 대접이라도 받는다고….” “하지만 밖에서 교사들을 보는 시각이 쉽게 바뀌지 않으니, 어떻게 해. 그저 우리 스스로가 아이들을 위한다고 생각해야지.” 선생님들은 수학여행 가시면 돈 안 내나요? 아이들은 거저 수학여행이라면 멀리, 그리고 재미나는 곳으로만 가기를 대부분 원한다. 특히 최근에는 외국으로 여행을 가자는 말로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일부 대도시의 큰 학교에서는 중국이나 일본 등지로 수학여행을 다녀오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농어촌의 소규모 학교에서는 경비나 기타 사정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움에 많은 것이 현실이다. “선생님 이번에 우리 수학여행 어디로 가요?” “그건 너희들이 학생회의에서 결정해야 할 문제 아니니.” “그래도 선생님의 생각이 중요하잖아요.” “선생님들이야 그저 너희들이 가자는 곳으로 갈 뿐이다. 선생님들이 너희들의 경비를 부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들이 가서 유익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하지 않겠니.” “그럼 선생님 우리 이번에 독도나 외국으로 한 번 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외국, 독도! 그건 경비나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렵지 않겠니. 더군다나 수학여행 경비 내는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도 많잖아.” “예이, 다른 학교에서는 일본이나 중국 간다고 하던데….” 아이는 그만 자신의 생각을 내본 것이 자못 후회스러운 듯 했다. 하지만 몇몇 아이들은 외국이나 심지어는 독도로 여행을 가자고 졸라대기도 한다. 물론 학생회에서 이런 점들이 곧잘 반론에 부딪치기도 하지만, 몇몇 아이들의 이런 생각도 무시하기에 어려운 경우도 곧잘 생긴다. “선생님들은 이번 수학여행 가시면 돈 안 내나요?”“이놈들아, 그럼 우린 돈 안내고 무엇으로 밥 먹고 비행기 탄 단 말이야.” “기껏해야 오육십명 되는 너희들 데리고 제주도 가는데 선생님들이 돈 안내면 너희들이 내 줄거니?” “아이, 선생님도 농담이에요.” 첫 수학여행길에서 아이들과 밥을 같이 먹으며! 첫 발령과 동시에 떠난 수학여행은 그야말로 고행길이었다. 학생시절에 생각했던 선생님들에 대한 생각들과는 너무나도 차이나는 수학여행에 그만 추억은 커녕 두 번 다시는 수학여행은 가지 말았으면 하는 행사처럼 각인되고 말았다. “선생님은 우리하고 같이 밥 안 먹나요?” “선생님들이 수학여행 와서 무슨 호의호식이라도 하는 줄 아니?” “그럼 우리하고 같이 밥 먹나요.” 당시 수학여행 인솔 책임을 맡고 계시던 선생님은 아주 짧은 말로 아이의 물음에 답을 하시는 것이었다. 솔직히 옆에서 지켜보던 당시 신임 교사인 나로서는 의외의 답변이었다. 솔직히 학창 시절의 수학여행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밥을 먹어본 기억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정말로 아이들하고 같이 밥 먹습니까?” “서선생, 무슨 소리고. 그럼 밥 안 먹을꺼야.” 선생님의 짧고 퉁명스러운 답변에 그만 물음이 궁색해져 그저 그 선생님의 일과 진행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날 저녁 시간 아이들 지도를 어느 정도 마치고 난 뒤에야 그 선생님으로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수 있었다. “서선생, 내 말에 조금 마음 상했지.” “아니요, 선생님. 그게 맞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실제 그럴 줄은 몰랐거든요. 저도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었어.” “맞아, 수학여행 때문에 하도 학부모나 일부 단체들에서 많잖아. 솔직히 수학여행 와 보니 즐거워?” “솔직히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네요. 잠도 제대로 못자고, 모든 게 불편하네요. 왜 아이들이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수학여행을 가자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이후로 몇 번 수학여행을 더 갔지만, 밥을 아이들과 따로 먹은 적은 없었다. 물론 지난 학생시절 내가 보았던 그런 선생님들의 모습은 애시당초 나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고, 밖에서 들려 오는 수학여행 관련 교사들의 비리를 들으면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나기나 하는 건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교실에 들어가는 순간 ‘따닥’ ‘따닥’ 폭죽 소리와 함께 5색 테이프가 내 얼굴을 뒤덮었다. 별로 놀랍지는 않지만 아동들에게 많이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웃으면서 들어갔다. 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하려는 아동들을 만족스럽게 해 주기 위해서 어색할지 모르지만 깜짝 놀랐다는 연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 웃는 아동들의 모습이 너무도 예뻤다. 4년 전 ‘스승의 날’이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아직 2학년인 아동들이 부르기에는 약간 어렵기도 하고 가르친 적도 없었는데 그 노래를 불렀다. 20명의 아동들이 부르는 ‘스승의 은혜’ 노래부르기는 무척 어설펐지만 ‘스승의 날’을 맞아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리겠다는 작은 마음들이 너무나 대견스러웠다. 칠판에는 삐툴삐툴 색분필로 ‘선생님 축하해요.’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고마워요.‘ 제각각 한마디씩 써서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 글들을 썼다. 칠판 주변에는 울긋불긋 몇 개의 풍선이 매달려 있었다. 색종이태잎으로 주변을 장식하기도 했다. 학급 반장이 카아네이션을 가슴에 달아 주기도 했다. 각 분단마다 다과회를 하려고 직접 가져온 사탕 비스켓 마실 음료수 등을 은박 접시에 담아 놓았고, 교탁에는 훨씬 많은 다과가 성대하게(?) 차려져 있다. “선생님 많이 드세요.” “그래 많이 먹자. 어린 애기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멋진 자리를 만들었구나. 선생님은 오늘이 세상에서 제일 기쁜 날이다.” 아동들 모두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서로서로 만족스런 웃음과 함께 마주 보면서 의기양양해 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어린 동심들이 ‘스승의 날’을 맞아 선생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드리고 싶었고, 맛있는 것을 대접하고 싶었고,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드리고 싶어서 끼리끼리 사전계획을 세우고 물품을 준비하고 장기자랑의 프로그램을 계획 연습하여 이런 잔치(?)를 벌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었다. 시골학교에서의 아동들과 함께 보냈던 담임교사 시절의 ‘스승의 날’ 그날을 생각하면서 오늘(스승의 날) 집에서 놀고 있을 학생들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지금 우리 어린이들이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을까? ‘스승의 날인데 왜 학교에 오지 말라고 할까? 작년에는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을 위한 잔치도 했는데…….’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것 같다. 도대체 ‘스승의 날’만 되면 왜 촌지문제가 당연한 듯이 보도될까. 으레 촌지나 뇌물성 선물을 수수하는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까. 스승의 은혜에 대한 본질적인 면은 경시하고 극소수의 지역, 극소수의 교사, 극소수의 학부모들의 부정적인 행태에 대한 것을 침소봉대하는 것일까. 결국 ‘스승의 날’에 스승과 제자의 당연한 만남을 ‘휴업일’로 정해 차단시켜 버린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누구나 자기의 가슴 속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스승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꼭 그 스승에게 가시적인 보답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스승에 대한 가르침을 되새기고 가르침에 대한 고마움을 갖고 바른 행동과 인격적인 삶을 산다면 그것이 바로 보답하는 길일 것이다. ‘스승의 날’을 맞은 어린 학생들이 스승의 고마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스승을 위하는 길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고 그것들을 실천을 통하여 내면화시킬 때 참다운 의미가 있을 텐데 어른들의 잘못된 사고방식 때문에 ‘스승의 날’ 스승과 제자의 만남까지도 단절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작지만 크고, 어설프지만 성대한 아동들의 ‘스승의 날’ 행사는 그들의 가슴 속에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군사부일체라는 도덕적 가치관을 형성시켜 줄 것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학부모들의 고성으로 떠들썩한 회의실, 담임교사에게 화를 내는 격앙된 목소리, 울먹이다 무릎을 꿇은 채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며 죄인이 되는 담임교사, 분을 삭이지 못한 듯 ‘조용히 인정하고 사표내면 다 조용한다고 했잖아.’를 소리치는 학부모의 모습을 감히 상상이나 해봤는가? TV에서 본 뉴스의 내용은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봐도 낯익은 모습이 아니었다. 군사부일체니 교육은 백년지대계니 그런 구차한 얘기를 결부시키기도 싫다. 그저 낯선 모습에 놀랐던 가슴을 추스르며 교사이기 이전에 교육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묻고 싶다. 전날 집으로 찾아가 항의한데 이어 다시 여럿이 학교를 찾아가 소란을 피우며 무엇을 얻어내고 싶었는지? 담임교사가 무릎을 꿇은 채 사과를 하지 않았더라면 도대체 어디까지 문제를 확대시키려고 했었는지? 그렇다면 담임교사의 인권과 교권을 유린해서라도 급식의 문제점을 파헤치려는 사명감이 그렇게 컸었는지? 무릎을 꿇어야 했던 담임교사를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과 귀한 딸이 겪는 슬픔을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은 생각이나 해봤는지? 누구라도 자기의 의견을 떳떳하게 밝힐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학교도 잘못을 감추는데 급급하던 구태에서 벗어나 모든 구성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학교운영위원회 등을 통해 다양하게 의견을 수렴하고 포용한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유가 교직원들 탓이라고 원망한다면 굳이 변명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 귀여워하는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가서 담임교사에게 위세를 부리는 것은 지식인의 행동으로 적절치 않다. 잘못의 경중을 떠나 ‘조용히 인정하고 사표 내라’는 학부모들의 주장에 따라야 할 만큼 교권이 추락하면 정상적인 교육은 이뤄지지 않는다. 혹 대화에 이견이 있었다면 밤늦게 담임교사의 집에 찾아가 감정의 벽을 쌓기 전에 정당한 방법으로 건의하는 게 우선이어야 한다. 언론에서 한 작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정말 요즘 몇몇 언론에서 하고 있는 일을 보면 북치고 장고치고 혼자서 다한다. 왜 그뿐인가? 이번 사건을 보면 병 주고 약까지 준다. 2명의 기자가 교실에까지 들어가 어린 학생들에게 “선생님이 좋으냐? 뺨을 때렸느냐?”를 질문하고, 민원을 제기한 측에서 취재 내용에 대해 보도하지 말 것을 요청했음에도 보도를 한 것은 언론의 사명인 공익은 뒷전이고 교육을 무시하면서까지 사익 챙기기에 급급하고 있다는 증거다. 취재내용을 보도한 SBS의 지역방송인 청주방송(CJB)이 19일 뒤늦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급식을 빨리 먹일 수밖에 없는 현행 급식체계와 교권추락의 문제점을 다뤘지만 은근슬쩍 자신들의 잘못을 덮는 우리나라 언론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았다. 한국교총 등 교원단체의 적극적인 대처에 ‘이번 건을 정당한 절차와 방법으로 제기하지 못해 사건을 확대시킨데 대해 반성하며 해당 선생님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요지의 사과문을 발표한 학부모들보다 오히려 측은하게 보였다. 어느 학교나 급식이 골칫거리다. 시간 조절을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니 자리가 한정되어 있는 좁은 급식소에 아이들이 몰리기도 한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아이들이 빨리 먹고 자리를 비워달라고 독촉하기도 한다. 급식소를 크게 지으면 해결될 문제지만 국가에서 교육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있어 요원한 얘기다. 여러 가지 음식을 골고루 먹여야 하니 때에 따라서는 급식종사원들의 손을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식단도 있다. 그런 날은 배식이 원활하지 않아 급식이 더디기도 하다. 급식종사원을 많이 고용하면 금방 해결될 일이지만 그만큼 급식비가 인상되어야 한다. 현재도 급식비 미납자가 많아 어려움이 많은 현실에서 어느 것 하나 쉽게 해결될 게 없다.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게 학교 급식이다. 그래서 더 이해를 필요로 한다. ‘교원 예우에 관한 규정’에 임의 조항으로 되어 있는 학교교육분쟁조정위원회를 상설화하여 교육활동과 관련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일방적인 물리력이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에 의해 해결하는 방안도 강구되어야 한다. 하지만 서로 이해하면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에게는 슬픈 노래도 나쁘다고 한다. 괜히 김세환이 부른 ‘슬픈 노래는 싫어요’를 중얼거려본 하루였다. ‘슬픈 노래는 싫어요. 아무런 말도 하지 말아요.’ 그래도 우리 주변에는 훌륭한 학부모님들이 더 많아 힘이 난다. 작년 가을에 있었던 아름다운 사연 하나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To. 존경하는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여러모로 신경써주시고 애써주신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부족하고 철없는 우리 민욱이에게 관심 가져 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어제 일은 잘 해결됐어요. 보배 어머니께서도 안심하고 가셨어요. 개구쟁이들과 함께 하시다보면 보람과 어려움도 있으시죠. 애쓰시는 선생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10월 15일 안민욱 엄마 드림 그날 우리 반에는 작은 사고가 있었다. 체육 전담 시간에 농구시합을 했고, 시합과정에 신체 접촉이 있었는데 그것이 빌미가 되어 수업이 끝나고 교실로 오는 과정에 다툼이 벌어졌다. 여기까지는 아이들 세계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고 교실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던 나에게 전해진 소식은 그렇지 않았다. 맞은 민욱이의 이가 부러졌다는 것이다. 순간 긴장을 하며 민욱이가 있다는 보건실로 향했다. 그때 민욱이 어머니에게 걸려온 전화마저 통화불량으로 중간에 끊어져 궁금증을 더했다. 민욱이를 만나보니 앞 이의 끝 부분이 아주 조금 깨져 있었다. 아이들에게 들었던 내용보다 깨진 부분이 적었고 이가 시리지 않다고 해 다행이었지만 사고가 일어난 경위를 조사하며 영구치라는 걸 걱정했다. 회사에 있는 민욱이 엄마에게 전화로 진상에 대해 알려주고 하교하면 앞 이를 자세히 본 후 판단해 달라는 얘기도 했다. 어떤 사고든 뒤처리가 중요하다.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으면 일은 쉽게 풀린다. 다같이 아이들을 키우는 학부모님들이지만 보배 엄마가 먼저 전화를 하는 게 순서일 듯 싶었다. 보배 엄마에게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전화로 자세히 알려줬다. 엄마가 민욱이를 만나 상태를 확인했다고 생각돼 전화를 했다. 하지만 민욱이는 아직 학원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보배 엄마가 찾아와 걱정하다 갔다는 것이다. 얼마 후 아이를 보니 그나마 다행이고, 다시 찾아온 보배 엄마를 아이들 일로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돌려보냈다는 민욱이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그날 나는 며칠 전의 퇴근 시간을 떠올렸다. 운전 중에 전화를 받았는데 우리 반 자모였다. **가 자기 집 아이를 괴롭힌다는 하소연이 길게 이어졌다. 말끝에 **의 집에 찾아가려고 하니 전화번호를 가르쳐달란다. 나도 잘 알고 있는 일이라 수시로 지도 중이었고 일부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어 전후 사정을 얘기했지만 감정이 격한 상태라 뜻이 전달되지 않았다. 또 그런 상태에서 전화번호를 가르쳐 줄 수도 없었다.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테지만 아직은 미완성인 게 아이들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일어날 일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내 자식이나 남 자식이나 다 똑같은 자식이다. 남 자식이 저지른 일 내 자식도 저지를 수 있다. 제몫 챙기기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양보할 줄도 알아야 세상살이가 재미있다. 어떤 일이든 이해하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고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어려운 일을 슬기롭게 해결해 준 민욱이와 보배 엄마 같이 훌륭한 학부모님들이 많다면 분명 교사들은 행복할 것이다. 교사가 행복하면 아이들이 즐거운 것 당연한 일 아닌가.
며칠 전 일선 교육관련 기관에서 학생들 문제집과 관련된 비리로 문제가 발생한 경우를 접했다. 일선 교육 관련기관에서 수능과 관련하여 일부 업자들로부터 청탁이나 금품을 수수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기사였다. 내심 이런 기사를 보면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 대학입시와 관련된 기관들의 비리가 심심치 않게 내재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대부분이 학생들의 문제집이나 참고서와 관련된 일임을 보면 정말로 교육적이어야 할 곳이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에 분노를 삼키게 만든다. 선생님 또 문제집 사요? 일선 고등학교 현장에서는 대부분 보충수업으로 학생들에게 문제집이나 기타 참고서를 선택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수능이나 대학입시와 관련한 것이기에 학생들도 별 군말 없이 구입하게 된다. 하지만 구입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 곧잘 학생들의 반발을 사기도 한다. “선생님 또 문제집 사요, 도대체 문제집이 몇 권이나 되는 줄 아세요?” “그렇게 말하면 선생님 섭섭하다. 마치 내가 문제집을 팔기 위해 광고라는 하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그건 아니고요, 과목마다 대부분 문제집을 사야하니 너무 부담이 많이 되서 그래요.” “선생님도 안다. 하지만 수능을 보기 위해서는 부득불 문제집이나 참고서를 통해 공부를 해야 하지 않니. 선생님도 마음이 정말 아프다.” 많은 아이들은 새 학기가 시작되면 구입해야 되는 문제집이나 참고서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하소연한다. 특히 이는 시골의 농․어촌 학교로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그것도 투자 못하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정말로 하루 벌어먹고 사는 이들에게야 그것도 정말 큰 비용이 아닐 수 없다. 문제집과 참고서로 찌든 우리의 입시현실 입시를 목전에 둔 고3은 특히 수많은 문제집, 참고서를 통해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교과서는 이전에 진도를 끝내 버리고, 문제집이나 참고서를 통한 수업이 이어지게 된다. 입시와 관련해서 우리 학교 현장이 직면한 문제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문제는 문제야. 이거 원 온 나라가 사교육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학교 다니면서 사야 하는 문제집과 참고서도 아마 단단히 여기에 한 몫을 할 거야.” “맞습니다. 특히 고3이 되면 교과서는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도 없고, 수 십 종의 문제집과 참고서만 교실에 난무하니, 그것도 돈으로 계산하면 꽤나 될 거에요. 전인교육은 말 뿐이고, 정말로 입시지옥이나 다름없는…” “어떤 아이들은 문제집을 사지 못해, 매일 나에게 복사 좀 해 달라고 통사정 하는 아이도 있어요. 참 난감해서, 이놈에 입시만 없다면….” 많은 일선학교 선생님들도 아이들의 문제집과 참고서 구입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입시 위주의 체제에서 쉽사리 문제집과 참고서의 유혹을 벗어나기 힘든 실정이다. 이렇다 보니, 직접적인 입시와 관련된 선생님들은 부득불 문제집과 참고서를 아이들에게 강요 아닌 강요하게 된다. “우리나라만큼 문제집과 참고서가 많이 팔리는 나라는 없을 거야. 과연 이게 교육적인지 물어봐야 하는데, 어느 누구도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이 없어.” “맞아요, 과연 교육적이냐 부터 따져봐야죠.” “하지만, 입시를 앞둔 아이들을 대상으로 모험을 걸 수는 없잖아. 정작 학교에서 맡아야 할 몫을 문제집과 참고서가 어느 정도 대신해 주는 것도 사실이잖아.” 문제집과 참고서 선정의 투명성을 넘어! 보통 일선학교에서는 문제집과 참고서를 선정하는데 학교운영위원회의 간단한 심의를 거쳐야 한다. 물론 대부분 같은 과목 간 선생님들의 협의를 거쳐 선정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일선 학교 선생님들이야 어떻게든 아이들의 교육비를 줄여주려고 애쓰지만 입시라는 장벽 앞에서는 불가항력적인 경우가 많다. 물론 집안 형편이 넉넉해 자신이 볼 수 있는 책을 마음껏 살 수 있는 경우야 두 말할 나위가 없지만, 정말로 공부는 하고 싶지만 마음껏 책을 사지 못하는 경우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사교육비라 정작 말들 많이 하지만, 일선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위한 것으로 구입하게 하는 수십 종의 문제집과 참고서에 대해서는 거의 말이 없다. 물론 대도시에서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거액의 고액과외에야 비할 바 아니지만, 이 돈마저도 생계에 위협을 느낄 정도의 아이들도 우리 주변에 많다는 점은 아마 양극화의 가장 극단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집마저 선생님께 찾아와 복사를 부탁하는 아이를 어떻게 교사가 일언지하에 거절할 수 있겠는가. 물론 문제집을 복사해 주는 것 자체는 분명 법의 잣대로 본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이런 점들을 주지시켜 현실의 모습을 이야기 해 줄 필요성도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공부는 하고 싶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마음껏 책마저도 사지 못하는 아이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는 사실은 가끔 교사로서 서글픔과 아픔을 느끼게 한다. 일부 교육관련 기관에서 문제집과 참고서를 빌미로 일부 업자들로부터 거금의 받았거나 혹은 향응을 제공받았다면 이는 그 기관의 존속자체부터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입시를 빌미삼아 우리 아이들을 대상으로 장삿속을 밝히려고 하는 것은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것이다.
한동안 망설였다. 이렇게 수준낮은 학부모의 오만방자함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있느냐는 고민에서다. 그러나 더 큰 고민은 대응하는 사람마저 부끄럽게 만드는 언론의 보도 수준때문이었다. SBS(청주CJB)에서는 학부모 앞에서 여교사가 무릎을 꿇는 장면을 여과 없이 보도함으로써 양심과 교육적 소신에 따라 학생교육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많은 교사들의 자존심과 권위에 큰 상처를 안겨주며 교직사회의 분노를 사고 있다. 교사의 교권이 무참히 무너지는 이 사건은 단지 한 여교사의 아픔이 아니다. 실로 이 땅의 40만 교사들의 소신과 사명감을 일시에 뒤흔들어 놓은 사건으로 결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교권을 빌미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싶지는 않다. 시간이 흐르면 진실은 언제나 밝혀지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분개하는 것은 학부모의 오만방자함뿐이 아니다. 취재 과정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의식 조차도 없는 언론의 행태에 분노한다.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들은 사전에 자신들의 입장에 서서 지역 방송사 카메라 기자를 동반한 후 교장실에서 충격적인 모습을 촬영하게 했다. 그리고 2명의 기자가 어린 학생들만 있는 교실에까지 들어가 학생들에게 “선생님이 좋으냐”, “뺨을 때렸느냐” 등의 유도성 질문을 하고 학생들의 다양한 답변 중에서 자신들이 의도하는 답변만을 보도에 인용하는 비겁함을 보였다. 더욱이 언론이 취재를 마치고 돌아간 뒤 해당 학부모들은 “교권을 유린할 의도는 없었다”며 담임교사와 학교 측에 공개 사과하고, 사건을 주도했던 학생의 외조모가 직접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그동안의 과정을 설명한 후 방송 보도를 하지 말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방송사는 취재를 요청했던 당사자의 말도 무시함은 물론 사후 해결과정은 외면한 채 여과 없이 그대로 지역방송에 보도하고, 이는 곧이어 전국으로 방송됐다. 사실 “교사가 개혁의 걸림돌이다”라는 대통령의 해외 망언 이후 정권의 총애를 받고 싶어 하는 매스컴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교사들의 잘못을 찾아 국민들이 격분할 정도로 과대 포장함으로써 교원집단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개인의 인권과 언론자유라는 기본권을 동시에 보장하고 있다. 또한 그들이 말하는 대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발 빠른 보도를 통해 경각심을 주는 것 또한 언론의 중요한 순기능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언론의 비판기능과 국민의 알 권리가 소중하다 할지라도 개인에 대한 언론의 인권침해와 명예훼손 그리고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만한 비윤리성까지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 시대적 조류이다. 우리나라 언론의 자유는 아시아에서는 당당히 1위, 전 세계 167개국 중 34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언론의 윤리 수준은 아시아에서만도 7위, 베트남(6위)보다도 낮은 수준임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아무리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않아야 할 때가 있다. 취재와 보도 윤리의 위반이 가져오는 해악과 그것이 추구하는 사회적 이익, 혹은 사회적 해악의 예방을 비교해 보아야 한다. 더구나 그것이 진실인지 왜곡인지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언론은 먼저, 사태의 본질에 대해 직접 나서서 정면으로 파헤치기 전에 근거가 부족한 일방의 주장을 중심으로 편파적인 입장에서 취재하고 최소한의 검증과정도 거치지 않은 내용을 여과 없이 서둘러 보도하는데 급급했다. 심지어 시중에 떠도는 악성루머마저 버젓이 기사로 둔갑시키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특종’에 목숨 거는 언론의 행태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SBS(청주CJB)는 해당 여교사의 인권침해는 물론 대부분의 선량한 교원들의 자존심과 권위에 큰 상처를 입힌 보도 행태에 대하여 정중히 사과할 것을 촉구하며, 한국교총에서도 이에 대하여 ‘말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강력히 항의하길 바란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모든 교육 활동은 종류와 경중을 떠나 그 영향력이 매우 크다. 장차 학생들의 지적 발달과 인격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학교 교육과정 속에 '봉사활동'이란 것이 있다. 즉, 현행 중·고등학생들은 각자 1년 동안 학교에서 지정해준 시간과 장소에서 봉사활동을 한 뒤 확인서를 발급 받아 학교에 제출하면, 담임선생님은 그것을 생활기록부 봉사활동란에 누가 기록하게 된다. 대학에선 이를 다시 각 학년별로 20시간을 기준으로 삼아 신입생을 선발할 때 중요한 전형자료로 삼기도 한다. 1995년 교육인적자원부가 5·31교육개혁조치의 일환으로 전국의 중·고등학교에 봉사활동을 도입한 근본 취지는 '성적 지상주의 교육에서 탈피하여 지성과 인성의 조화로운 발달을 위한 전인교육을 도모하고자 함'이었다. 아직도 이런 도입 당시의 취지를 그대로 살리고 있다면 이 얼마나 좋은 제도인가. 그러나 지금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봉사활동은 절차와 방법을 비롯해 많은 문제점이 발생되고 있어 시급한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구체적인 사례를 몇 개만 들어보자. 우선 지도하는 선생님이나 현장 책임자 없이 봉사활동을 학생 마음대로 실시하고 확인서를 받아와 제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인정하는 시간과 장소라면 누구나 구애 없이 허위로 확인서를 떼거나 시간을 채울 수도 있는 허점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봉사활동 장소까지 가서 시간을 때우고 오는 학생은 그나마 낳은 편이다. 어떤 경우에는 아예 봉사활동을 하지도 않고 연줄이나 소위 말하는 빽을 동원해 가짜 확인서만 받아 제출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봉사활동을 도입한 원래의 취지를 망각한 채 무조건 점수만 따면 된다는 성적지상주의가 드디어 봉사활동에까지 스며든 것이다. 이는 정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직과 원칙을 생명으로 하는 학교 교육에서 오히려 편법과 탈법을 가르치는 상황이 된 것이니 말이다. 가장 정직해야 될 학교에서부터 거짓과 편법을 배우게 된다면 장차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사실 교육 당국이나 학부모들도 이러한 사실을 대충은 알고 있으면서도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는 쉬쉬하면서 덮어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하루 빨리 봉사활동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보안작업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각 학교의 담임선생님이나 봉사활동 담당 교사가 반별로 또는 학년별로 나누어 봉사활동 장소와 일시를 지정한 뒤, 학생들을 직접 인솔하여 봉사활동을 시킨 후 그곳 책임자의 확인 도장과 인솔 교사의 날인을 받아 학교에 제출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봉사 활동을 에멜무지로 하거나 또는 하지도 않고 편법으로 확인서만 떼어 내는 사례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학교에서 바른 인성과 지성을 교육 받아야할 우리의 순수한 아이들이, 제도상의 허점으로 인해 벌써부터 불법과 탈법, 편법 등에 물들어 가고 또 학부모들은 이를 악용한다면 이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도 매우 불행한 일이다. 우리 모두가 조금만 더 심사숙고하여 봉사활동 제도를 보완하여 원칙대로 운영한다면 정말 아이들에게 양약이 되는 봉사활동을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조속한 시일 내에 교육 당국의 꼼꼼한 검토가 있길 바란다.
학년 초, 아이들을 앞에 놓고 올 일 년 동안 하고 싶은 일로 아침 독서를 한다고 했을 때의 아이들 반응은 “또 귀찮은 일 하는 거야.” “또 감상문 쓰라고 하겠군.” “숙제하기도 바쁜데 아침에 무슨 독서?” 하는 표정들이었습니다. 다만 평상시 책읽기를 좋아하던 몇 몇 아이들만이 약간의 기대감을 드러냈을 뿐입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 생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또 학교 생활은 물론 개인의 생활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해 제 생각을 이야기 하고 아침 독서를 시작한지 세 달이 되어 갑니다. 그 동안 아이들의 생각도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책을 읽는 것에 대한 몇 몇 아이들의 생각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책 읽기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 엿보기 우리 반은 아침자율학습시간을 이용해서 이삼십 분정도 아침독서를 한다. 나는 책 읽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워낙에 게으른 편이라 읽자 다짐하면서도 항상 다짐으로 끝난 적이 많았다. 그리고 책을 읽다가도 집중이 안돼서 몇 분 못 읽고 금방 덮어버리는 편이라 방학 외에는 거의 책을 읽지 않는다. 처음엔 아침독서란 말에 짜증도 났지만 이젠 학교에 오자마자 자연스럽게 책을 꺼내놓게 되었다. 거기다가 30분이라는 시간이 무척 짧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다른 아이들도 처음엔 귀찮아하는 눈치였지만 이제는 쉬는 시간, 점심시간 할 것 없이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보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이렇듯 나 역시도 아침독서를 하면서 많은 것을 얻게 된 것 같다. 아침 자율학습시간이라고 하면 숙제하기 바쁘고 떠드느라 소란스러운데 모두 앉아서 책을 보게 되면서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내게 되었다. 그래서 그만큼 집중력이 향상되었다. 아침에 책을 읽으니 집중도 더 잘되고 머리가 맑아서 이해도 더 잘 되는 것 같다. 집중력이 향상돼서 그런지 이번 중간고사공부를 하면서도 무척 쉽게 할 수 있었다. 낮에 책을 읽으면 금방 졸음이 쏟아지는데 아침에 읽으니까 굳이 읽으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책에 빠져들게 되는 것 같다. 이것은 아침독서가 주는 최고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거기다 아침독서를 하면서 책을 읽는 속도도 빨라지게 되었고 정말 아는 것도 많아졌다. 그래서 은근히 자신감마저 생겼다. 이제 아침독서는 내 습관이다. 아침독서를 통해 책이 주는 재미를 느꼈고 얻어진 것도 많았으며 책을 많이 읽게 되었다. 앞으로 아침독서시간을 통해 더 많은 책을 읽어 볼 생각이다. 애진이라는 아이가 쓴 글입니다. 0교시가 없는 우리학교에서 아침시간이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숙제를 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부족한 공부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소란스러운 잡담으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입니다. 특히 요즘 아이들은 책을 읽는 것에 그리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인지 책을 펴고 읽는 아이를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책을 읽자고 하는 것이 귀찮은 것이 될 수 있겠지만 대부분 처음의 생각일 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반에서는 아침 자율학습시간에 20분정도 책을 읽는다. 아침 자율학습 시간에 책을 읽으면 어떤 것이 좋을까? 나는 우선 20분을 헛되게 보내지 않아서 좋다고 생각한다. 독서를 하지 않으면 반 아이들은 소란스럽고, 모두들 숙제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독서를 함으로써 20분 동안 이지만 알차게 보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몇 시간씩 지루하게 억지로 독서를 하거나, 재미없어서 기억에도 잘 남지 않는 것 보다 10분, 20분 동안 집중해서 읽을 수 있어서 책 내용이 더 오래 남는다. 인터넷 에서도 보았는데, 우리 몸은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에너지를 섭취하여 몸이 다시 최적의 상태로 돌아오는 아침은 집중력이 높아진다고 한다. 읽으라고 시키지 않으면 책을 읽을 기회가 많지 않다. 하지만 학교에서 매일 20분씩만 읽어도 하루 중에는 정말 짧은 시간이지만 이 20분이 일주일이 모이고 한달이 모이고 일년이 모인다면 정말 폭넓은 지식을 갖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라라는 아이가 쓴 글입니다. 처음 아침에 책을 읽자고 할 때 안 좋은 얼굴을 보였던 이 아이는 지금 늘 책을 끼고 있습니다. 물론 읽는지 읽지 않은지는 모르지만 늘 책을 가까이 하려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습니다. 빗방울이 모여 냇물을 이루고, 냇물이 모여 강물이 되듯이 매일 읽는 20분, 30분의 책 읽음이 일 년의 강물이 될 거라 믿어봅니다. 난 평소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책을 가까이 두고 읽진 못했다. 그러다 2학년이 되어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아침에 책을 읽게 되었고 틈나는 대로 책을 읽으려고 하고 있다. 철이 없었던 1학년 때에는 아침자율시간에 얘들이랑 놀고 자는 것이 전부였는데... 2학년이 되어서 아침자율시간에 독서를 한다는 것은 저에게 너무 어색하고 생소한 일이었다. 처음 아침 독서를 한다는 것에 조금 망설여지기도하고 막막하기도 했다. 그리고 걱정거리도 많이 생기곤 했다. "내가 과연 집중을 잘 하여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아님 " 책 한 권을 꾸준히 잘 읽을 수 있을까" 등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처음에 학교에서 책을 펼치고 읽었을 때는 왠지 적응이 잘 안되고, 책 한 소절 읽고 주위 아이들을 돌아보고 또 책 한 소절 읽고 주위아이들을 돌아보고..자꾸 산만한 저의 모습이 보였었다. 그런 내 모습 때문에 왠지 자신감이 떨어지고 걱정이 되었었다. 산만하고 집중을 잘 못했지만 참고 꾸준히 하루하루씩 시간을 늘려가면서 열심히 책을 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책 한 권을 정말 빠른 속도로 읽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한번 책을 읽으면 웬만해선 책에 손을 놓지 않으려는 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심지어 아침독서 시간 외에 쉬는 시간이든지 .. 점심식사를 하고 남은 점심시간이라든지..학교생활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 덕분인지 다른 아이들이 책 한 권정도 읽을 때 난 2~3권을 읽을 정도였다. 그리고 아침자율시간이 30분정도 되는데, 그 짧은 시간에 틈틈이 책을 읽으니깐 장시간에 걸쳐 책을 읽는 것보다 집중력도 좋아지고 책의 흐름도 의외로 머리에 잘 들어오고.. 짧은 시간이지만 그 결과는 알찼다고 할까. 또 책을 꾸준히 읽음으로써 이해력이나 언어능력이 많이 좋아졌음을 느꼈다. 책을 잘 읽지 않았던 예전에는 과제나 문제들을 풀 때 이해가 안돼서 몇 번이나 다시 읽곤 했는데 이제는 예전보다 수월해져서 문제의 요점을 빨리 이해해서 빨리 풀었다. 이런 변화된 나의 모습을 보면 "책은 정말 좋은 거구나 "를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곤 한다. 책을 많이 읽음으로써 지식도 많이 생기고 생각도 깊어지고... 제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이익을 얻어서 뿌듯해졌다. 주위에서 책을 많이 읽으라는 소리를 처음에는 이해 못했던 나인데... 이젠 좋은 책을 보면 많은 친구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권장하고 싶을 정도이다. 아직 많은 책들을 다 접하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책을 읽고 앞으로는 더 많은 여러 분야의 책들을 접해보고 싶다. 그리고 처음으로 저에게 아침에 책읽기를 하자고 권유해주신 선생님께도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우리 반 실장인 민정이라는 아이가 쓴 글입니다. 공부를 썩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성격이 좋아 실장을 시켰지요. 우리 아이들은 어찌된 일인지 실장을 하라고 하면 서로 안 하려고 뒤로 물러서곤 합니다. 민정이도 겨우 사정해서 실장을 하라고 했는데 반 아이들을 다독이며 아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원칙을 정하고 아이들에게 충분히 전달 아이들과 무언가를 함께 하려고 할 땐 하나의 짐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충분히 그 취지를 알리고 설득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먼저 독서의 효용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해주어야 합니다. 동의를 얻어 함께 하겠다는 분위기가 전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선 실패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그 의도를 설명하여 동의를 얻은 다음에 몇 가지 원칙을 정하여 꼭 지키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땐 담임의 의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누군가 다른 행동을 하거나 할 땐 바로 방향을 잡아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흐트러져 본래의 취지를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원칙을 보면 이렇습니다. 첫째로 그냥 읽기만 하자고 했습니다. 책을 읽는데 가장 부담스러운 것이 쓰라고 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도 매주 수요일 7교시에 독서 시간을 두어 운영하고 있지만 쓰기를 두기 때문인지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일단 쓰지 않은 것만으로 읽는 것에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모두 다 같이 읽자고 했습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읽어갈 때 그 효율성이 늘어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러아 아침 독서를 함에 있어서 다 함께 참여시키는 일이 조금 어렵습니다. 종종 몇 몇 아이들이 숙제를 하거나 연습장에 낙서를 하며 이야길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부분 책을 놓고 온 경우입니다. 읽을 책이 없으면 아무래도 다른 행동을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분위기를 흐려놓을 수 있어 각별히 주의를 해야 합니다. 그런 아이들을 설득하고 참여시키기 위해선 조금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윽박지르는 식으로 하면 본래의 취지가 상실되어 역효과를 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매일 쉬지 않고 하는 게 중요합니다. 행사가 없는 3월의 경우엔 책읽기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데 중간고사나 현장체험, 체육대회가 있는 4월엔 그 분위기가 흐트러져 추스르는데 어려움이 많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 나는 대로 독서의 효용성과 미래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그 의미를 스스로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아침 독서를 시작한 지 이제 석 달이 다 되어갑니다. 그동안 아이들의 모습과 행동도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아이들의 자부심 또한 대답합니다. 우리 아이들 대부분이 공부나 책과는 담을 쌓고 지내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이젠 ‘책이 정말 좋아요.’ 하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진지하게 책을 읽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사람으로서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한 방울의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미약하지만 아이들의 지금의 책읽기가 하나의 습관이 되어 후에 바위를 뚫는 열매를 맺는 날이 있길 고대해봅니다.
일본 문부과학장관의 자문기관인 중앙교육심의회의 부회는 향후의 교원 양성과 자격증 제도에 관한 중간 보고를 정리한 결과, 교원 자격증 갱신제를 현직 교원에 적용할 것인가에 대하여「한층 더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그리고, 대학의 교직 과정에 새로운 필수 과목으로 가칭「교직 실천 연습」을 포함하기로 하였다. 부회는 중간 보고 내용에 대하여 국민들의 의견을 모아 정리할 방침이다. 교원 자격증 갱신제도는 2005년 10월에 나카야마 전 문과상이 중앙교육심의회에 도입에 대한 의사를 피력하여 검토하게 된 것이다. 중앙교육심의회는 당초 현직 교원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불이익을 받는 변경이 된다」라고 하여 예외로 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시켜 왔다. 그러나, 최근에 교사의 자질에 관한 문제가 교육에서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고, 위원들로부터 「보호자나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현직 교원에도 적용이 불가피하다」는 등의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중간 보고에서는 「현직 교원을 포함한 자격 보유자에게도 적용이 가능할 것인가, 법제도상이나 실시상의 과제 등을 한층 더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보아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또, 자격증의 유효 기간은 10년을 기본으로 하며, 최초의 갱신을 5년 후로 할 것인가, 10년 후로 할 것인가에 대하여는 한층 더 검토하기로 했다. 이 외에, 교원으로서의 자질,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대학의 교직 과정에 가칭 「교직 실천 연습」을 신설하고, ▲사명감과 책임감 ▲사회성과 대인관계 능력 ▲유아와 학생에 대한 이해 ▲교과의 지도력을 몸에 익히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같은 논의로 보아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교원의 자질에 관한 문제는 모든 국가들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진정 어떻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교육에 도움을 줄 것인가에 대하여는 심사숙고하여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청소년의 달, 5월을 마무리하며 EBS가 특집 콘서트를 열었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와 (사)한국에이즈퇴치연맹, 삼육대학교의 후원으로 음악과 뜻 깊은 메시지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날들』을 기획, 방송한다. 프로그램은 최근 급증하고 있는 청소년을 상대로 한 성범죄와 잘못된 성 가치관과 의식으로 인한 청소년 성문제들을 청소년의 눈높에 맞춘 콘서트라는 문화적 코드로 접근해 유쾌하게 풀어본다. 지난 17일 건국대학교 새천년관에서 진행된 녹화에 장영란과 슈퍼주니어의 강인이 진행자로 나서 댄스스포츠로 멋진 오프닝 무대를 장식했다. 또 꽁트 형식으로 꾸며진 과학강사 장하나의 성교육 특강에도 청소년들과 함께 참여해 멋진 코너를 이끌었다. 그 외 S.G워너비, 버블시스터즈, 김현철과키즈팝, 린, 틴틴파이브 등의 가수들이 출연해 청소년들에게 인생 선배로서의 메시지와 멋진 음악을 선물했다. 특별출연한 강지원 변호사는 성희롱이나 성범죄에 관한 여러 가지 상황 재연을 통해 성범죄 대처법과 성에 대한 법 지식을 알려주었고, 교육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하버드대학 출신의 존 치틱 박사는 외국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성교육, 동료교육 시스템을 설명했다. 이 날 콘서트에는 친구들에게 성교육 상담을 해주는 청소년 모임 ‘또래지킴이’ 학생들 50여명과 중, 고생 9백여 명이 초대돼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했다. 학생들은 모두 “좋아하는 연예인들이 노래도 부르고, ‘성’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해주어서, 내용이 전혀 딱딱하지 않게 느껴졌다”며 즐거워했다. 방송시간은 5월 28일(일) 오후 6시 50분부터 8시 20분까지.
사용하지 않는데도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하는 교과서 권수가 4권 이상인 학교가 절반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고교생들이 불필요한 교과서 구입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전국 고교 학생회 모임인 한국고등학교학생회연합회(한고학연)는 전국 고등학생 3천88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사용하지 않는 교과서 권수가 1년에 7권 이상이라는 답이 25.9%, 4∼6권이 22.3%, 1∼3권이 43.7%를 차지했다고 25일 밝혔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없다'고 대답한 학생은 8.1%에 그쳤다. 이 단체는 조사 대상의 3분의 2에 이르는 63.7%의 학생이 "쓰지 않는 교과서를 구입한 돈이 아깝다"며 불만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수업에서 교과서 대신 사용하는 문제집의 구매 금액을 묻는 질문에 '10만원 이상'이 28.4%, '7만~9만원'이 26.6%, '4만~6만원'이 23.6%, '1민~3만원'이 13.7%, '없음'은 6.7%로 집계돼 고교생들은 쓰지않는 교과서와 그 대신 쓰는 문제집 부담을 이중으로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단체는 "교과서는 수능 시험에서는 별 효과가 없다는 인식이 학생과 교사 사이에서 널리 퍼져있는 상황에서 형식적으로 교과서를 구매하고 다시 문제집을 사야하는 현재 상황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한고학연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수능시험과 연관된 교과서를 만들어 학생의 학습욕을 자극할 수 있도록 하든지 아예 수업에서 교과서 대신 문제집을 사용하는 것을 허가하라"는 성명을 교육부 장관에 전달할 예정이다. 이들은 또 격주 주5일제 수업, 일명 '놀토제' 도입 이후에도 학생들의 학업 부담은 줄어들지 않았다는 내용의 설문 결과도 교육부에 전달할 방침이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24일 "최근 교권 침해 사례가 인내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김 부총리는 이날 전주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전국 시ㆍ도 교육감협의회에 참석, "최근 일부 학부모님들의 비판과 의견 제시는 우리 사회가 인내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선 내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 부총리는 "교육권이 침해되면 결국은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는 것이고 이 경우 우리 교육은 땅에 떨어지게 될 것"이라며 "이번 사례를 계기로 선생님들의 교권을 마지막으로 지켜줄 사람을 찾기 위해 교육감과 교육당국이 분명하고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단호하게 대처해야 이러한 교권 침해 사례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학부모와의 관계에서 일어난 일은 쉬쉬해왔던 관행을 없애고 교육감들도 (교권 침해 사례를) 엄중히 문책, 교권을 수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학교 급식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국 초ㆍ중학교에 급식 경비만 3조1천700억원이 소요되고 급식 종사자만 1천만명에 달한다고 한다"며 "잔반을 먹이는 영양사가 있다거나 하는 일로 사회문제가 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부총리는 소규모 학교 통폐합 논란과 관련, "저출산 추세로 도시로 향하는 인구가 늘면서 전체 농어촌 학교의 30%에 달하는 1천600개교의 학생수가 50명 이하인 소규모"라며 "농어촌의 교육환경은 열악한 여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와 같은 추세가 10년 동안 계속되면 심각해지는만큼 통폐합을 통해 학교 교육 여건을 높여줘야 한다"며 소규모 학교 통폐합의 필요성을 부연했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건강을 위해 순수한 교육적 열정에서 편식을 예방하고 인스턴트 음식을 가급적 피하도록 노력을 기울인 것이 이런 물의를 일으켜 여하튼 죄송스럽게 생각해요. 하지만 학교 영양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고른 영양 상태에서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신념을 갖고 급식지도를 하는 것이 이렇게 돼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교육적인 사랑의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최근 모 초등학교에서 점심 급식 때 어린이들이 먹다 남긴 음식(일명 ‘잔반’)을 강제로 먹도록 했다는 이유로 문제가 되었던 영양교사의 말이다.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방법상의 잘못은 있었을지 몰라도 교육자로서의 잘못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의 식습관을 바르게 지도해야 한다는 교육적 소신에는 변함이 없지만 더 이상 문제가 확대되지 않기를 바라는 뜻에서 학부모들에게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점심을 빨리 먹도록 강요하고, 식사시간을 잘 지키지 못한 학생에게 벌을 주고 반성문도 쓰게 했다는 이유로 학부모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한 초등학교 여교사의 말이다.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학생들이 나의 기대에 못 미쳐 그렇게 한 것이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법상 잘못됐음을 인정합니다.” 모 여고 교사가 학생 가운데 ‘수업에 따라오지 못한다는 이유’로 교실 안에 남겨둔 채 교실 문을 잠그고 나가버린 것을 두고 학부모들이 반발하는 등 논란에 대하여 자신의 소신을 말한 것이다. 두발지도 문제도 보자. 학교에서의 두발규제가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시정 권고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대체로 학교와 교육당국에서는 인권을 침해하고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 생활에서의 학생다운 용모 지도를 위한 ‘교육적 차원’이라고 판단하고 있어 당분간 ‘인권’과 ‘교육적 차원’ 사이에서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모두가 한결같이 ‘교육적 사랑’, ‘교육적 소신’, ‘교육적 지도’, ‘교육적 차원’을 위하여 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과연 어디까지가 ‘교육적’인 것일까? '교육적 차원'의 판단 기준은 무엇이며, 교육적이냐 아니냐의 판단은 누가 내려야 할 것인가? 최근 들어 갑자기 대두된 이런 갈등으로 인하여 결국 교사들의 순수한 ‘교육적’ 열정마저도 식어버리지나 않을지 염려된다. 요즘 교육 관련 기사들을 보면 벌을 주어서라도 바른 길로 안내하는 ‘교육자’를 원하는 게 아니라 말썽나지 않게 적당히 처신 잘하는 ‘처세꾼’ 되기를 요구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상하게 감싸주는 어머니와 엄하게 나무라는 아버지가 모두 필요한 법인데 요즘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교사들에게 자상한 어머니만 되라고만 한다. 그러면 엄한 아버지로서의 역할은 누가 할 것인가. 가장 숭고한 정신세계를 지향하는 종교의 수도자들도 수행의 과정에선 엄한 규율아래 심지어는 체벌을 가하는 법인데 말이다. 물론 교사에게 주어진 교권은 학생교육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원이 학생교육 활동 중 학생의 인권을 심각히 침해하거나 정상적인 교육활동의 범주를 벗어난다면 그것이 아무리 ‘교육적 소신’이라 할지라도 바람직하지는 못한 것이다. 그러나 정당한 교육활동을 위한 ‘교육적 지도’라면 학생과 학부모가 다소 반대할 지라도 가르칠 건 가르쳐야 한다. 만약 이로 인하여 교원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교권확립에 걸림돌이 되는 일에 대해서는 단호히 그리고 의연히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가정의 달 5월을 보내면서 우리나라부모들에게도 경각심을 주는 중앙일간지 신문 기사를 읽고 느낀 점이 많았다. 5월 22일자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기사 중 자녀를 독립적으로 키우는 방법 12가지를 소개하면서 헬리콥터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즉 어린아이 부터 대학생이 되어서도 시시콜콜 간섭을 하며 자녀주위를 맴도는 부모를 가리켜 헬리콥터 부모라고 한단다. 자녀를 독립적으로 키우는 여러 가지 방법 중 가장 핵심은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지 말라’ 는 것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 부모의 자식사랑은 도를 넘어서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어린아이가 아장 아장 걸음마를 배울 때 넘어지면 쫒아가서 일으켜 세워 주는 것부터 시작하여 자녀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부모가 해주려는 무조건 적인 사랑으로 자녀를 길러야 부모의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옷을 스스로 입게 하지 않고 입혀준다든가, 밥까지 먹여주고, 학습준비물과 가방까지 챙겨주고 자가용으로 등교를 시켜주고 5-7개의 학원에 준비된 가방을 바꿔가며 보내는 극성스런 학부모, 숙제까지 해주고, 그것도 모자라 남편을 기러기 아빠로 만들고 조기유학을 떠나는 모정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남자아이를 군에 보내지 않으려고 온갖 비리도 겁내지 않으니 자식이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자식의 삶을 대신 살아주려는 부모의 빗나간 욕심이다. 이러한 잘못된 욕심 때문에 독립심을 기를 기회를 주지 않으니 연약한 마마보이로 자라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지 못하는 경쟁사회에서 낙오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왜, 하지 못하는가? 분에 넘치는 혼수를 장만하는 것도 모자라 아파트까지 마련해주어야 부모 노릇을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셋방부터 시작하여 적금을 모아 살림도 장만하고 내 집 마련을 하는 기쁨과 보람마저도 부모가 빼앗는다면 자녀들은 언제 내일을 스스로 하며 성취감과 기쁨을 맛본단 말인가? 자녀의 독립심을 키우는 12계명을 참고로 소개한다. 1. 느긋해져라 2. 갈등 해결법을 배우게 하라 3. 실망에 대처하는 법을 가르쳐라 4. 아이의 관심사와 열정을 존중하라 5. 스스로 자신을 대변하도록 하라 6.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우도록 하라 7. 매년 아이의 자유와 책임을 조금씩 늘려라 8. 돈 관리하는 법을 가르쳐라 9. 시간관리 하는 법을 가르쳐라 10. 자녀가 도움을 청해 올 수 있는 코치가 되라 11. 든든한 버팀목이 돼라 12. 자녀가 대학생이 됐다면, 아이는 이미 당신이 한 말과 보여준 행동을 충분히 기억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안을 보면 자녀를 학교에 맡겼으면 등교하여 집에 돌아올 때까지는 선생님의 교육권을 침해하지 말아야한다. 대부분 가정교육을 잘시키지 못한 부모들이 일일이 교육활동을 간섭하며 자기자녀에게 불이익이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학교를 찾아와 항의를 하며 선생님을 사표를 내라느니,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라느니 하는 몰상식한 일이 신성한 교육기관인 학교현장에서 벌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 나라의 앞날을 생각해서라도 교권을 세우는 범국민운동이 일어나야만 가정의 달인 5월이 기쁨과 사랑이 넘치는 행복한 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6년 5월 15일 스승의 날 저녁 7시 30분! 해도 길어져 한창을 뛰어놀 수 있는 환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군포시에 위치한 도장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놀이터와 운동장 대신 TV앞에 앉아있다. 시간이 흐르고, 한 문제 한 문제 지날 때마다 아이들의 눈에서는 안타까움과 기쁨이 교차하고, 온 가족은 숨을 죽여가며, 핑크색 옷을 입고 긴장한 채 문제를 풀고 있는 한 앳된 청년을 응원하고 있다. 2002년의 월드컵 응원이 이보다 간절했을까? 한국에 존재하는 인기 TV 퀴즈프로그램은 단 세 가지! 고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KBS1의 도전 골든벨,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KBS1의 퀴즈 대한민국과 KBS1의 우리말 겨루기가 그것이다. 나른한 하루 일과 중에 가끔씩 TV에서나 보아오던 그런 퀴즈 영웅들의 모습을 보며 막연한 동경을 보낸 것은 비단 이 글을 쓰는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경기도에서…… 그 중에서도 군포라는 조그마한 시에서…… 그중에서도 20학급을 가진 조그마한 도장초등학교의 한 청년 교사가 학생들과 주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달해주기 위해서 퀴즈의 세계로 뛰어든 것이다. 과연 그는 ‘우리말 달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을까? 5월 15일 뜻 깊은 스승의 날에 펼쳐진 ‘우리말 겨루기’의 진정한 승자를 찾아가본다. 도장초등학교 6학년 3반에는 할머니와 함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한 아름다운 소녀가 있다. 여동생을 챙겨가며 사실 상의 소녀가장 역할을 해내고 있지만, 힘든 기색 한번 않고 지내온 13살의 천사였기에, 담임인 전영준(32) 교사도 그 아이의 어려운 가정환경을 파악하고서는 크게 놀랐다고 한다. 가출하신 아버지 때문에 생활보호대상자 지정도 쉽지 않아, 할머니께서는 칠순이 지나신 연세에도 파지수집으로 가계를 꾸려야 나가셔야 해서 집안 형편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에 전 교사는 그 기특한 꼬마 어른에게 조그마한 힘이라도 되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하였고, 인기 퀴즈 프로그램 ‘우리말 겨루기’ 제작진에게 장문의 편지를 띄우게 된다. “사랑하는 우리 반 아이에게는 돈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저에게는 단지 그 아이를 위해 무엇인가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만 확인하면 될 뿐입니다. 상금은 그 아이에게 모두 다 주고 싶습니다.”라는…… ‘우리말 겨루기’의 한석준 아나운서가 아쉬운 표정으로 정답 판정의 순간을 미루고 있다. 전 교사는 차라리 눈을 감아버린다. 그리고는 이내 TV와 스튜디오에 울려퍼지는 아쉬운 짧은 판정! “아니었습니다.” TV를 바라보던 700명의 제자들과 학부모들은 아쉬움에 탄성을 지르지만, 이내 감동의 눈물을 글썽거리고 박수를 치며 TV 속의 앳된 청년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너희 선생님 정말 잘 하셨어” “우리 선생님 최고야! 그래도 우승하셨잖아!” 군포시의 조그마한 아파트 단지에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박수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비록 달인의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사연신청과 예심, 면접을 통해 선발된 5명 중에서 모든 경쟁자를 제치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 경력 3년차의 초보(?)교사. 그는 ‘우리말 겨루기’에서 우승하였건만, 우승의 기쁨은 뒤로 한 채 “한 문제만 더 맞추었어도 우리 반 아이에게 더 큰 도움이 되었을텐데, 너무 아쉽습니다.”라는 우승 소감으로 기쁨보다는 아쉬움을 먼저 표현하고 있었다. 스승의 날, 당연히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스승’의 자리를 자신의 학생들에게 내어주고 있는 그의 모습을 다시 물끄러미 쳐다본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밝게 웃는 녀석의 모습을 보면, 부족함 없이 자란 제 모습이 오히려 부끄러워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 녀석을 위해서 무언가 실질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TV프로그램 ‘우리말 겨루기’를 떠올렸었죠. 내가 우승은 못한다 하더라도, 저 안에 서서 그 녀석에게 희망의 메시지라도 전해줄 수 있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큰 힘이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구구절절한 편지를 써서 제작진에게 보냈었죠. 그 진실은 통했고…… 제가 지금 어쩌다 보니 여기 서 있네요.” 그는 국어교사가 포함된 경기, 강원, 대전, 경남의 초 중 고 교사 5명이 함께한 우리말 겨루기에서 우승을 했고 182만원의 상금을 획득했다. 이를 모두 자신의 학급의 불우아동에게 기부하게 되었지만, 보너스 형식으로 주어지는 ‘우리말 달인’ 단계 중 2단계에서 아깝게 탈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우리 학생들도, 학부모들도 알고 있다. 그는 우리말 달인 등극에는 실패했지만, 학생과 학부모를 비롯한 우리들 모두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존재할 ‘제자사랑의 달인’으로 이미 자리잡고 있음을……
우리나라의 경직된 문.이과 구분이 학문의 균형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서울대 김영식 교수는 24일 오후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 www.feelsci.org)'이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포럼에 참석, 주제 발표를 통해 이같이 지적하고 "역사적 근거와 실체가 없는 관습인 문.이과 구분은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문.이과 구분이 매우 심해 이 중 하나를 선택하면 그 결정이 학생들의 장래에 상당한 제약 요인이 되고 있다고 김 교수는 개탄했다. 김 교수는 "문.이과 구분으로 인해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전공 공부의 폭이 좁아지는 것은 물론 과학기술과 일반문화의 유리상태가 심화되고, 학문의 균형발전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문.이과 선택이 학생들이 거쳐야 할 필수적인 과정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바로 이런 관습이 개인의 학습 뿐 아니라 학문 발전도 가로막는 폐해를 낳는다는 지적이다. 특히 복합학문의 경우 문과나 이과 중 어느 한 분야로 묶는 것은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제도나 관습은 학문분야를 억지로 구분해서라도 한 쪽에 집어넣을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실제로 학문의 결과보다는 형식적인 분류를 우선하면서 심리학과 지리학을 관습적으로 문과에 속하게 함으로써 이들 분야의 성격이 크게 좁아졌다는 게 김 교수의 진단이다. 김 교수는 "경제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이과인 수학을, 해양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문과인 사회과학을 무시하는 현상이 있다"며 "이런 장벽은 결국 무지와 편견에 따른 대립을 낳고, 과학 기술과 일반 문화의 유리 상태를 심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일반인들은 과학기술을 잘 몰라도 되고, 과학기술자들은 사회와 문화에 초연해도 된다는 비뚤어진 인식이 문.이과 구분이 철저한 우리 사회에서 유난히 심각한 이유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특히 학문분야간 경계가 흐려지고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 현대사회에서는 한 가지 학문에도 여러 가지 접근법이 한꺼번에 요구되는 것이 현실인 만큼 맹목적으로 모든 분야를 문.이과로 나누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
현직 교사가 학교에서 교감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해 물의를 빚고 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24일 자신이 근무하는 고등학교의 교감을 폭행한 혐의(폭행등)로 서울시내 모 고교 교사 이모(33.여)씨를 체포해 조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이날 오전 8시30분께 이 고교 교무실에서 이모(58.여) 교감과 말다툼을 벌이다 소파에 있던 등받이 베개로 이 교감의 얼굴을 수차례 때리고 폭언을 하는 등 50여분간 행패를 부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지난 17일자로 2주간 신경쇠약, 수면장애 등으로 병가를 낸 뒤 병세가 호전돼 이날 오전 수업에 복귀하겠다고 주장하다 이를 거부하는 교감과 말다툼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교감에게서 '병가 중에 수업에 복귀하려면 병가 포기 각서를 쓰라'는 말을 듣자 먼저 폭언을 하면서 말다툼 끝에 폭력을 휘둘렀다"고 전했다. 이씨는 경찰에서 "교감이 '부모가 이렇게 가르쳤느냐'며 부모 욕을 하기에 홧김에 일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이씨는 방과후 학교의 예산배분 문제 등을 놓고 학교 측과 갈등을 빚으며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 의해 학교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돼 연행됐다. 한편 이씨는 "남자 경찰관이 내 팔을 강하게 잡고 무리하게 체포해 팔 등을 심하게 다쳤다"고 주장했다.
얼마 전 수업시간 교실을 둘러보는 가운데 한 젊은 여 선생님께서 자신감을 갖고 힘 있게 열정적으로 수업하시는 것을 보면서 저런 힘이 어디에서 나올까 하고 잠시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아마 자기 과목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예비지식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요? 학생들에게 최고의 선생님이라는 존경의 소리를 들으면서 본인 자신도 행복해하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일본의 이쿠시마 아키라 토요타 공업대 학장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교수가 최고여야 학생도 최고 된다’며 ‘교수가 그 분야의 첨단에 서 있지 않으면 학생들에게 엉뚱한 것을 가르치게 된다’라고 항상 강조했던 것처럼 학생들에게 엉뚱한 것을 가르치지 않기 위해 밤낮 연구하는 선생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학교 한 선생님은 자기가 어느 선생님보다 가장 수업을 잘할 자신이 있다고 말한 것을 간접적으로 들었습니다. 아마 이 선생님이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무엇보다 자기 과목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말할 것도 없고 수업방법에 대해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선생님은 저를 보고 시간이 나면 수업에 참관하면 좋겠다고 하면서 요일, 시간까지도 말해 줄 정도입니다. 요즘 선생님들은 수업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참관하는 걸 원치 않는데 정말 보기 드물 정도로 대단한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15년 전 동계교사 세미나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한 강사님께서 서두에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면서 어느 시골할머니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어느 시골 할머니께서 어렵게 손자를 얻어 애지중지 키워왔는데 이 손자는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과는 달리 계속 병치레를 했습니다. 하루는 열이 나고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하여 동네 사람들에게 애가 열이 나고 아프다고 이야기했더니 열이 많이 나고 하니 홍역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말만 믿은 할머니는 홍역에는 어떤 약이 좋은지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홍역에는 가재를 너댓 마리 잡아 생즙을 내어 먹이면 낫는다고 하더랍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할머니는 손자를 살리고 싶은 나머지, 힘들여 가재 몇 마리를 구해 생즙을 내어 먹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낫기는커녕 더 아파 그 때서야 조그만 의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의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여도 낫지 않자 비로소 큰 병원을 찾게 되고 종합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종합진단 결과 디스토마균이 뇌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수술을 하였으나 결국 살리지 못하고 그 귀여운 손자를 죽이고 말았다’는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에 나오는 할머니, 의사를 교사에 비유하고, 죽은 어린아이를 학생들로 비유하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병을 정확히 몰라 약을 잘못 쓰니 그 약은 양약이 아니라 오히려 독약이 되었던 것입니다. 병명을 정확히 아는 것이 병을 고치는 지름길이듯 전문적인 지식의 토대 위에 학생들의 효과적인 학습과 바른 인성교육을 위해 학생 개개인이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만 효과적인 지도가 될 수 있습니다. 풍부한 전문지식이 없으면 결국은 학생들을 망치게 됩니다. 지방의원에 찾아갔을 때 의사가 대충 할머니 이야기만 듣고 정확한 병명을 모른 채 적당히 처방을 내리니까 낫기는커녕 병을 더 악화시킨 것입니다. 할머니가 병에 대한 예비지식이 없이 열성만으로 결국 어린 손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 같이 우리 선생님들도 풍부한 전문지식과 예비지식의 부족으로 인해 학생들을 망치는 오류를 범치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열성보다 앞서야 하는 것이 끊임없는 연구와 자기연찬으로 인한 실력 연마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돌팔이 의사라는 소리를 듣듯이 돌팔이 선생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시골할머니는 손자를 살리고자 하는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이 열성과 의욕만 앞선 채 사방팔방으로 뛰어보았지만 그 정성이 허사로 돌아가고 만 사실을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내가 맡은 전공과목만은 자신 있게 가르칠 수 있도록 부단한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의사가 병명을 바로 알고 약을 바로 쓰면 쉽게 치료될 수 있듯이 학생들이 안고 있는 교과 및 인성의 문제점을 정확히 진단하고 이에 따른 지도대책이 세워진다면 학습효과는 뚜렷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 선생님들에게는 열성보다 전문지식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며칠 전 초등학교 한 여선생님이 급식지도를 잘못한 죄로 학부모에게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빈 동영상이 공개되었다. 이런 저런 사유로 그 교사는 대한민국 교사의 현 주소를 실감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문득 우리 아이들도 그것을 보았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새삼 우리 아이들을 똑바로 보기가 힘들었다. 요즈음 교사가 최고 인기 직종이라고들 난리다. 특히 대학만 입학하면 무조건 교사가 되는 교대의 경우 그 점수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심지어 일류대를 그만두고 교대에 편입하는 경우도 종종 신문지상이나 방송 등에서 접하게 된다. ‘새삼 교사라는 자리가 몇 년 사이에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론 언젠가 또 갑작스럽게 천대받을 수 있는 시절이 오지 않을까 내심 두려워지기도 한다. 선생님! 정말 하시기 힘드시겠습니다 “선생님, 정말 큰 일 입니다. 어떻게 학부모가 학교에 찾아와 학교의 사정도 들어보지 않고 그렇게 막무가내로 교사를 몰아붙이다니….” “이놈아, 엉뚱한 소리 말고 공부나 신경 써라!” “선생님, 그래도 저도 세상 보는 눈이 있는데….” “그런 세상 보는 눈으로 책을 더 뚫어지게 열심히 봐라.” 그 아이는 곧잘 엉뚱한 소리로 교사인 나를 한편으로 즐겁게 하지만, 또 한편으론 곧잘 나의 마음을 훤히 내다보듯이 아픈 곳을 찌르기도 하는 아이였다. “그래 넌 그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선생님 제 꿈이 뭡니까?” “아마, 역사 선생님이 되는 것이라고 했지 싶은데.” “맞습니다. 근데 며칠 전 그 사건을 보고 갑자기 제가 기존에 생각해 왔던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깨어져 버렸습니다.” “이놈아, 환상은 깨지라고 있는 것 아니니!” “아이, 선생님도 제 말의 맥락을 좀 이해하시면서 들으세요, 맨 날 국어 시간에 맥락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다면서….” “알았다! 내가 오늘 너에게 한 수 배워야겠구나.” 그 아이는 딴에 흥분해서 그 사건의 대해 나름의 견해를 늘어놓는 것이었다. 물론 교사인 나의 면전에서 교사를 비판하기 보다는 열악한 학교의 현실과 당시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학부모를 나무라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내내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심 부끄럽기도 했고, 한편으론 교사가 꿈인 그 아이가 교사에 대해 그릴 심각한 왜곡상이 자못 걱정되기도 했다. 물론 현실을 나름대로 비판하면서 스스로의 시각을 형성해 가는 모습에 마음이 뿌듯하기도 했다. 교사가 그 이상도 할 수 있을 각오가 되어야 한다고! 교사가 무릎을 꿇어 학부모에게 사죄했다는 점을 두고 정작 학교 현장에서는 그저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맞을 듯하다. 하도 교사 죽이기에 혈안이 된 언론과 학부모 단체에 질리기라도 한 듯 그저 입을 다문 채 아이들과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는 선생님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주 불거지고 있는 일부의 극단적이고 다소 과장되어 알려지는 일들을 두고 교사들을 자꾸만 난도질 하는 것에는 일부 선생님들은 참을성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선생님들 내부에서 좀더 반성하고 자성하는 계기를 삼자는 말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예전에는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고 비꼬듯이 말하드니, 어느새 세상이 바뀌어 무슨 교사가 대단한 권력이라도 지닌 존재처럼 심심하면 무슨 큰 범죄를 일삼는 존재냥 오르락 내리락 하니….” “그저 아이들과 사심없이 몇 십년을 지낸 온 이 땅의 대부분의 교사들을 제쳐두고 그저 몇몇 극소수의 잘못된 행위만을 문제삼는 것이 과연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 “하지만, 시대가 변하는 만큼 우리 교사들도 변해야 하지 않겠어. 잘못하면 무릎을 꿇는 그 이상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 세상이 그걸 원하니 우리라고 버텨낼 수 있겠어요.” “하지만 이번 사건은 좀 심했다고 봐요. 한 아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수많은 아이들도 소중한 법인데. 집단 생활에는 규칙과 규율이라는 것이 엄연히 있는데, 그것 마저도 무조건 인권이라는 잣대로 눌러 버린다면 과연 이 사회가 제대로 존속할 수 있겠어요. 물론 그 여선생님의 행위가 잘 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학교 현장의 사정을 제대로 모르는 많은 학부모와 언론들이 자꾸만 교사들을 왜곡된 형상으로 몰아 붙이는 것이 정작 문제죠.” 이 시대 대다수의 선생님들은 나름의 교육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나름의 교육관에 깔려 있는 기본 토대는 아마도 우리 아이들을 위함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분명 아닐 것이다. 제 자식이 소중하듯 선생님들 역시 자기가 맡은 아이들이 자식 이상 소중하게 여겨진다. 혹시라도 학교안에서 다른 선생님들에게 혹은 아이들에게 맞기라도 하면 그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이 대다수의 우리 선생님들이다. 문득 그 젊은 여선생님의 모습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비쳐질까 자꾸만 괴로워진다. 이 땅의 수많은 아이들이 교사가 꿈이라도 하는 마당에 과연 작금의 그런 모습에 우리 아이들이 만들어 갈 교사상은 과연 어떤 것일까 자못 궁금해지기까지 하다. 교육의 주체는 교사, 학생, 학부모이다. 이 주체들이 서로 마음을 맞추어 가야만 진정 교육의 결실이라 할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해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가 불신의 벽을 쌓고 자꾸만 서로에게 거리를 둔다면 이는 자칫 우리 교육 전체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누가 누구에게 무릎을 꿇고 막말을 해대는 그런 모습이 다시는 우리 교육현장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 학교현장은 이 땅의 수많은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는 곳이다. 여기에는 교사도 학부모도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