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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앞으로 5일이면 달력에서 곤혹스러웠던 5월을 떼어낼 수 있다. 5월은 1일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 석가탄신일, 어버이날, 재향군인의 날, 세계적십자의 날, 로즈데이, 성년의 날, 5.18 민주화기념일, 발명의 날, 기자의 날, 부부의 날, 방재의 날, 바다의 날, 세계금연의 날 등 기념일이 유난히 많은 달이다. 학부모님에게 불신 받아 많은 선생님들이 폐지를 원하는 스승의 날도 5월이다. 시공간을 떠나 인간이 생활하는데 꼭 필요한 것 세 가지를 얘기하라면 당연히 의식주를 꼽는다. 누구든지 해결하지 않고는 기본생활마저 누릴 수 없으니 의식주보다 중요한 게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의식주 자체가 생활인데다 풍요로운 세상을 살고 있다보니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중 하나인 식사 문제로 교육계는 5월 내내 몸살을 앓았다. 어떻게든, 언젠가는 해결되어야 할 구조적인 문제였지만 식사지도를 하던 영양사 선생님이 안티 카페를 만든 아이들에 의해 수난을 겪고, 급식지도에 불만을 품은 학부모들이 교사의 집과 학교로 몰려가 격렬하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담임교사가 무릎을 꿇는 모습이 방영돼 충북교총과 청주교육청이 교권침해로 학부모 2명을 고발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일의 형세가 뒤바뀌는 게 반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면에 반전을 꿈꾸고 있어 반전드라마나 반전영화를 즐겨본다. 그래서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훌륭한 일을 해낸 사람들의 얘기가 더 가슴에 와 닿고, 역전 골이나 역전 홈런에 더 열광하게 된다. 학부모단체의 ‘학부모에 대한 형사 고발을 취하하지 않으면 똑같이 책임을 묻는 일련의 행동을 하겠다’는 발표를 보니 머리를 맞대고 하나가 되어도 시원찮을 교육당국과 학부모간에 점점 갈등과 반목을 키우는 것 같아 답답하다. 어쩌면 신성해야 할 교육이 교원단체와 학부모단체간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한편의 반전드라마를 연출하며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문의초등학교는 급식을 하는 인원이 유치원까지 199명이다. 인원이 적당하니 요즘 불거지고 있는 급식문제에서도 자유롭다. 아이들과 같이 밥을 먹으며 흔히 말하는 밥상머리 교육도 시킬 수 있다. 학급별로 마주앉아 오순도순 즐겁게 식사를 하다보니 아이들은 점심시간을 기다린다. 그렇더라도 급식지도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급식을 배식 받고 자리로 가면서 딴전 치다 국을 다른 사람 옷에 쏟는 아이도 있다. 밥을 먹으면서 옆 사람과 장난치다 식판을 엎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아이도 있다. 옆에 앉은 친구와 해찰을 떠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는 아이도 있다. 요즘은 핵가족 시대이고, 가족간에 얼굴보기가 어려울 만큼 바쁘게 산다. 혹 가정교육이 최고라는 것이나 옛 어른들이 왜 그렇게 밥상머리 교육을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아는 부모더라도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세상이다. 더구나 자식이 하는 일이라면 오냐오냐 받들어 모시는 형편이니 바른 교육도 어렵다. 물론 가정에서 실시하는 것만큼 교육적인 효과가 크지는 않겠지만 소인수학교에서는 급식시간에 밥상머리 교육이 이뤄진다. 우리 학교는 점심시간마다 재미있는 풍경이 벌어진다. 저학년 아이들이 서로 교직원들에게 물을 떠다주려고 경쟁을 한다. 교직원들이나 아이들이나 저학년들이 경쟁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아이들에게 물 한 컵 얻어먹는 게 즐거워서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어른 공경을 배우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다. 가정에서부터 내 것 네 것 너무 가리지 않도록 교육시키고, 어른 공경하는 것이 인간의 근본도리임을 알게 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되바라지지도 않고, 예의 없는 행동도 하지 않는다. 교육이 잘못되면 결국 우리 모두 피해자가 된다는 것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지난 2002년에 비해 올해는 월드컵 응원가가 아주 풍성해졌습니다. 아니 과열 양상을 빚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월드컵 키드' 윤도현 밴드를 시작으로 버즈, 싸이, 신해철, 인순이, 남궁연, 바다, 김종서, 마야, 김흥국 등 인기가수들이 속속 응원가를 내놓으며 경쟁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가요계는 현재 독일 월드컵 응원가 열기로 뜨겁다 못해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너무 많아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부정적인 반응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한 이동통신 회사가 윤도현 밴드의 '애국가' 록 버전을 광고하고, 또 다른 이동통신 회사가 '붉은 악마'의 응원가가 담긴 음반을 발매하는 등 많은 응원가들이 상업적인 색채를 띠면서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목적을 갖고 응원가들이 양산된다면 문제가 있지요." 문화평론가 이동연님의 우려 섞인 지적입니다. 봇물 터지듯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많은 응원가 중에서, 그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월드컵송은 무엇일까요? 노래를 사랑하는 인터넷 동호회 회원 270여 명을 대상으로 TJ미디어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6%가 여전히 ‘오 필승 코리아’를 이번 월드컵 응원가로 선호한다고 말했습니다. ‘2006 오 필승 코리아’를 아직도 가수 윤도현이 부르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은 ‘오 필승 코리아’를 부르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오노레입니다. 요즘은 꼭짓점댄스의 배경음악으로 더 많이 알려져 부쩍 바빠졌다는 오노레와 그 관계자들을 만나보았습니다. 먼저 한우진 실장에게 몇 가지 질문했습니다. - 월드컵송이 과열 현상을 보이면서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 말씀 하신다면? "예, 그런 말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노레의 ‘2006 오! 필승코리아’는 순수한 응원가에 목적을 두고 있고 또한 또한 '다음'에서는 음원을 무료 스트리밍하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이 점을 알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올해 ‘꼭짓점댄스’와 ‘2006 오! 필승 코리아’로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할 것입니다. 이 노래를 부른 오노레 역시 월드컵 열기에 편승을 한 기획가수가 아니고, 이미 지난 2003년에 1집 앨범을 발표한 가수이고, 본인의 2집 앨범을 3년 넘게 준비하며 이번 가을에 선보일 상황에서 가이드를 해놓은 ‘2006 오! 필승코리아’가 김수로의 꼭짓점댄스에 자연스레 주목받은 가수입니다." -그럼, 2002년 ‘오 필승 코리아’와 2006년 ‘오 필승 코리아’는 어떻게 다른가요? "2002년에는 구호형태의 ‘오 필승 코리아’를 가창곡으로 작곡하여 윤도현에게 부르게 했습니다. 작곡가 이근상 님은 전 국민의 응원곡임을 감안하여 작곡 미상, 작사 미상, 편곡 이근상의 형태로 저작권협회에 등록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06년 완벽한 가창곡 형태를 갖춘 국민 응원곡 ‘2006 오! 필승 코리아’를 완성하였습니다. 그런데 등록과정에서 이상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작곡 형태를 도용, 악보를 채보하여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에 등록한 사람들이 있으며 이 곡에 관한 사용료를 정당과 기업에 징수해 착복했으며 이번 선거와 월드컵에서도 서슴없이 기업과 정당을 상대로 상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좀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오 필승 코리아’는 이근상 님의 순수한 의도에 의해 많은 국민들이 사랑하는 응원가가 되었고, 지난 2002년 4강 신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고 자부합니다. 그런데 일부 몰지작한 사람들에 의해 희생당할 뻔하였지요.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몇몇 사람들 때문에 아름다워야 하고 순수해야할 월드컵 응원가 ‘2006 오! 필승코리아’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도용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현재 조치를 밟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현재 2002년과 마찬가지로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만들어진 꼭짓점댄스 응원의 공식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어, 그 생명력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그 어떤 응원가보다도 ‘오! 필승 코리아’가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다음은 저의 자랑스런 제자이자, ‘2006 오! 필승코리아’의 주인공 ‘오노레’와의 인터뷰입니다. -아직도 국민들 귀에는 ‘오노레’라는 이름이 생소합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본인 소개를 좀? "안녕하세요? 오노레(Honore)입니다. 제 본명은 경성현이고요. 이번 2006 독일월드컵 응원가 ‘2006 오! 필승 코리아’를 부르면서 오노레(honore)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제가 부르고 있는 ‘2006 오! 필승 코리아’는 ‘다음’ 광고에 삽입되었고, P&G위스퍼 프로모션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여러 곳에서 광고에 삽입하겠다는 제의가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노레라는 뜻이 궁금합니다. 무슨 의미지요? "예, 오노레는 영어 honore(영예, 영광, 명예)라는 의미의 불어로 오노레 드 발작 오노레 드 드미에 등 프랑스 최고의 아티스트들의 이름 앞에 붙는 별칭이기도 합니다. - 아 그렇군요. 요즘 부쩍 바빠지셨다고 들었는데? "예, 일본 공연을 다녀온 지금껏 앨범 준비로 하루하루 바쁘게 보냈습니다. 녹음하고 지우고 또 새로 만들고 반복하고…. 또 요즘은 관동대, 강릉대, 건국대, 홍익대, 충남대, 국민대, 호남대 등 대학 축제에 불려 다니느라 바빴고요. 그리고 26일에는 서울월드컵 경기장에서 공연이 있습니다. 앞으로 방송 또한 많이 잡혀있고요." - ‘2006 오! 필승 코리아’에 대해서도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도 몇 마다 한다면? "올해 초에 ‘2006 오! 필승 코리아’를 녹음했습니다. 앨범 작업을 하던 중 지난 월드컵에 만들어 놓고도 발표하지 못한 부분을 완성해놓자는 프로듀서 근상이 형의 제안에 즐겁게 임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인데, 이렇게 꼭짓지점댄스에서, 또한 온라인과 각종 매체에서 자주 듣게 되니 참으로 신기하고 기쁘네요. 이 노래가 월드컵 대표선수와 응원하는 국민들께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로선 무척이나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죠. 이번 월드컵에서도 지난 2002년처럼 ‘2006 오! 필승코리아’와 함께 그리고 꼭짓점댄스와 함께 신나게 축구를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 한 실장님의 얘기를 들어보니, 오노레는 월드컵 열기에 편승한 기획가수가 아니고 본인의 앨범을 3년 넘게 준비하던 중에 ‘2006 오! 필승코리아’가 김수로의 꼭짓점댄스에 삽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이 노래의 주인공이 되었다는데, 그럼 지금도 앨범을 준비 중인가요? "예, 맞습니다. 이번 앨범 작업, 정말 열심히 하고 있고 또 할 겁니다. 게을리 하던 기타 연습도 요즘 재미를 붙였고요. 음악이란 매력에 다시 한번 빠지게 됐습니다. 정말이지 저를 포함하여 모두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과정을 거쳐 나온 음악의 결과에 자칫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단 한사람이라도 제 음악을 통해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제겐 큰 기쁨입니다. 그리고 우선은 이번 앨범 작업을 통해 제 자신에게 떳떳하고 싶습니다. 만족이란 단어를 쉽게 쓸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아쉬움의 단어가 제 머리를 맴돌게 하고 싶진 않습니다. 이 모든 수고가 시간이 지난 뒤에 저를 웃을 수 있게 만들고 싶습니다. 배움은 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전 참으로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음악에서도, 지금의 과정에서도, 하나하나 깨우치며 그동안 발견 못한 나를 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시간이, 순간순간이 정말 소중합니다." 요즘 여러 행사에 잇달아 참여하느라 몹시 피곤할 텐데도, 오노레의 얼굴색과 눈빛은 오월의 신록과 햇살만큼이나 싱그럽고 빛나 보였습니다. 음악에 대한 남다른 애정도 느껴졌고 무엇보다 학창시절 그대로 선한 인상이 좋았습니다. 모쪼록 음악으로 행복한 인생이 되길 소망하며, 동시에 많은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국민가수가 되길 소망해봅니다.
서울시 교육청 산하 11개 지역교육청의 평가가 초읽기에 들어가 있다. 대략 학교평가와 지역교육청 평가가 격년으로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에 따라 지난해에는 학교평가가 있었고, 올해는 교육청을 평가하는 모양이다. 이에 따라 각 지역교육청에서는 평가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평가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학교평가나 지역교육청 평가나 문제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흔히 보이는 문제점보다 잘 보이지 않는 또다른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기 위한 욕망은 학교나 교육청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실시했던 각종 사업을 정리해서 하나의 자료로 만드는 것이 평가에 대비하는 일들이다.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고 보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업무에 만전을 기하기 어렵게 된다. 평가기간동안에는 평가자료 만드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선교육청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우수한 교육청으로 남기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한다.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게 되면 그만큼 각종 인센티브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결국 평가의 결과에 따라 교육청의 이미지가 달라지고 인센티브도 받을 수 있으니 열심히 대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다른곳에 있다. 즉 표면상으로는 교육청 평가라고 하지만 지역교육청에서 독자적으로 실시하는 사업들이 많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대부분 시, 도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사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런 사업들이 지역교육청을 통해 일선학교로 전달되는 것이다. 전달역할을 하는 지역교육청에서 무슨 사업이 가능하겠는가. 독자적인 사업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또 있다. 지역교육청에서 어떤 사업을 했다고 해도 결국은 그 사업을 실제로 실시하는 곳은 일선학교이다. 지역교육청평가와 관련하여 학교에 요구자료가 많아지는 이유이다. 관련자료(실적물)들을 결국은 학교에서 협조받아야 한다. 이렇게 볼때, 이것은 지역교육청평가라기 보다는 학교평가의 성격이 짙다. 결과적으로 일선학교들은 매년 평가를 받는다고 볼 수 있다. 매년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평가자료를 준비해야 하는 것은 대부분 학교들의 몫이다. 일선학교에서는 자신들이 평가를 받지 않으면서 평가자료를 준비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현실이라면 학교평가를 매년 하는편이 도리어 더 낫다는 생각이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얽힌 구조에서 지역교육청 평가는 의미가 크지 않다고 본다. 시, 도교육청의 사업을 실행하는 곳이 지역교육청이고 평가자료를 학교에 요구하는 곳이 지역교육청이기 때문이다. 효율성이 그리 높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안고있는 지역교육청 평가를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효율성이 떨어지고 의미가 별로 없는 지역교육청평가는 폐지되거나 개선되어야 한다.
미국에서 운행중인 수만대의 스쿨버스가 오염 물질을 과다하게 뿌려대는 바람에 학생들에게 천식과 각종 호흡기 질병을 유발하고 있다는 보고서가 25일 제출돼 논란이 예상된다. 미 전역 스쿨버스 운영실태를 조사하는 '의식있는 과학자연맹'은 이날 보고서에서 "스쿨버스가 학생들에게 오염물질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학생들의 건강보호라는 측면에서 볼때 스쿨버스의 오염 배기가스를 줄이는 노력이 수준이하 "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 단체가 50개 주 전체와 워싱턴 D.C.에서 각각 제출된 자료를 면밀히 검토, 공개한 이날 보고서는 "전국 스쿨버스의 95% 가량이 디젤 차량을 사용하고 있다"면서 "이들 차량을 친환경 연료 차량이나 오염방지 특수장치를 부착한 차량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차량 수명이 12년 이상된 차량에 대해서는 오염가스 배출량을 현저히 줄인 새 차량으로 교체할 것을 권장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유독가스 배출량 저하 노력을 기준으로 가장 높은 A등급을 받은 주는 단 한 곳도 없었고, 델라웨어와 펜실베이니아, 뉴욕, 워싱턴 D.C 등 총 16곳이 B등급을 받았다. 특히 메릴랜드주는 B등급으로 비교적 양호한 편이었지만 오염물질 배출 삭감 프로그램이 거의 낙제점 수준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인근 버지니아주도 문제가 많은 곳으로 지적됐다. 페어팩스 카운티의 경우 6년전 친환경 압축 천연가스 차량을 도입했다가 고장이 자주 나자 디젤 스쿨버스로 회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캘리포니아주는 비록 C등급을 받았으나 노후한 스쿨버스를 교체함으로써 오염가스 배출량을 9%나 대폭 줄이는 등 지속적인 노력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워싱턴주도 D등급을 받았지만 보유 스쿨버스 전체차량의 40% 정도에 산화촉진장치를 부착함으로써 오염가스를 7% 줄일 수 있었다. 미시간주는 C등급을 받았지만 많은 학교들이 청정대체연료로 바이오디젤 사용을검토하고 있으며, 주민들에게 운행중인 아닌 경우에는 차량의 엔진 시동을 끌 것을 거듭 당부하는 등 학생들 건강보호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 사이타마(埼玉)현에 있는 45개 공립 초등학교가 '애국심'을 성적평가에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교도통신이 25일 보도했다. 현 교육국의 조사에 따르면 이들 학교의 성적표에서는 6학년 사회과목에 대한 4개 항목의 평가 중 하나를 '애국심' 관련으로 설정, A, B, C 3등급으로 측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항목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정치 및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역할에 관심을 갖고 의욕적으로 공부, 자국을 사랑하고 세계의 평화를 바라는 자각을 갖도록 한다" 는 글귀로 돼 있다. 교육국 관계자는 "문제의 평가항목은 학습지도요령에 따른 것으로 특별히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는 일본 문부과학성 초등학교 학습지도요령에서 6학년생 사회과의 학습목표에 "국가를 사랑하는 심정을 기르도록 한다"고 명기해 두고 있는 만큼 문제될 것이 없다는 해명인 셈이다. 일본 정부는 최근 '애국심'을 명기한 교육기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 심의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양심적 시민.교육단체들은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을 유발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라는 반발하고 있다. 고이즈미(小泉) 총리는 24일 중의원 특별위원회에서 관련 질의에 "초등학생에게 애국심이 있는 지 여부를 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산과 들판이 온통 파란색으로 물들어가는 신록의 계절 5월은 청소년의 달이요 가정의 달이다. 5일은 어린이날, 8일은 어버이날, 15일은 스승의 날, 21일은 부부의 날31일은 지방선거일이다. 가장 가까운 인연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그들의 고마움과 은혜에 감사를 드리는 달이다. 어느 해 보다 조용하게 보낸 스승의 날이 지나가나 했더니 학부모들이 교사의 무릎을 꿇린 사건이 발생하고, 종회를 길게 한다는 이유로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였다는 황당한 뉴스가 나오더니, 야당 당수가 얼굴에 칼질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테러 사건이 일어났다. 상식을 벗어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어 전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고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사회 풍토가 되다보니 세상이 미친 듯이 변해가고 있다. 사회는 전반적으로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사회 기강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인면수심의 겉잡을 없는 마음들이 예측 불허의 사건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야당의 당수가 목숨을 잃을 뻔한 테러를 당하였는데도 인간적인 걱정을 하기는커녕 성형수술 운운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고서에 의하면 전쟁의 와중 속에서도 적장이 죽으면 문상을 하였다는 기록도 나오는데 우리 사회는 인간적인 냄새가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다. 청주 모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한 여교사가 급식지도를 잘못하였다는 이유로 학부모들에게 무릎을 꿇는 사건이 일어났다. 한 교사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전 교사의 자존심이 짓밟히고 교권 전체가 무너지고 있는 처사다. 학생들의 인권이 중요하다면 선생님의 인권 또한 중요하다. 무릎을 꿇어앉은 교사도 무릎을 꿇게 한 학부모들도 모두 이 나라 교육을 받은 사람들인데 어찌 생각이 그리 다를까. 추락해 가는 작금의 교권 침해 사건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교육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이고 참고 양보하는 것도 인간의 한 미덕임이 분명하고 이를 또 가르쳐야 하는데 이가 교육 현장에서 먹혀들지 않고 있으니 답답하다. 아이를 바르게 키우자면 칭찬도 필요하고 금기사항도 있어야 하며 벌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즈음 아이들이나 학부모는 자신에게 불리하면 모든 것을 싫어하는 것 같다. 이래서야 어떻게 바른 교육을 할 수 있을까. 교육이 바로 되려면 풀어줄 때는 풀어주고 엄하게 감을 때는 감아야 한다. 단맛도 있고 쓴맛도 있어야 한다. 축구 선수들에게 자유롭게 자신의 마음대로 공을 차게 하고서 월드컵 경기에 나가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선수들은 하기 싫지만 피눈물 나는 고된 훈련의 과정이 있어야만 월드컵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요즈음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이를 싫어하고 자신의 아이 잘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교육이 바로서려면 가정과 학교에서 칭찬을 할 때는 칭찬을 하고 금기 사항을 지키게 하고 회초리를 들어야 할 때에는 마땅히 들어야 한다. 식사 시간문제로 교사를 무릎 꿇게 하였다면 이는 잘못이다. 얼마든지 학교 운영위원회를 통하여 조정이 가능했던 문제가 아닌가. 이를 참지 못하고 학부모가 교사의 집을 방문하고 또 학교를 방문하여 학부모 여러 명이 공개 사과하라. 사표를 제출하라. '파렴치한 교사', '더 배우고 와', '성격 이상자 아니야'라는 등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하며 피해자의 명예를 마구 훼손하였다. 어떻게 무슨 권리로 학부모들이 사표를 제출하라 말할 수 있는가? 군사부일체의 시대가 있었다. 옛 시대의 유물이라 무조건 버릴 것이 아니라 사부일체는 오늘날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교사가 부모의 역할을 대신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교사는 부모와 같다는 생각이 있어야 바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사부일체는커녕 사부 이체로 일부 학부모들이 교사를 공격의 대상, 지탄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급속하게 사회가 변화하면서 억눌려 왔던 인권문제가 크게 대두되고 자유 분망한 사회가 되다 보니 또 다른 사람들의 인권이 무참하게 유린되고 있다. 학교 현장도 예외가 아니다. 학생의 인권이 강조되다 보니 두발지도나 복장지도를 제대로 하기 어렵고 학생을 위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교사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학생지도하기가 날로 어려워지기에 이를 포기하려는 교사들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걸핏하면 학생들이 교사를 파출소에 폭력 교사로 고발하고 학부모가 학교로 달려와 교사의 멱살을 잡고 욕을 하는 현실을 자주 보면서 일부 교사들은 '애라 모르겠다, 가만히 있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굳어져 가고 있다. 학생의 인권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데 교사의 인권은 끝없이 추락되어 가고 있고 또 유린되고 있다. 교육은 학교만이 하는 것도 아니고 할 수도 없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사회가 잘못되면 교육에 모든 책임을 돌리고 가장 힘이 약한 선생님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교사가 힘이 없어 그런가? 솔직히 교사의 힘만으로 이 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학부모도 학교 교육에 참여하여야 할 권리가 있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지나치게 학교 교육에 참여를 하다보면 학교 교육이 제 갈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 가정교육을 확실하게 하고 난 연후에 학교 교육에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어설픈 지적과 문제 제기만으로는 학교 교육을 더욱 혼란스럽고 곤혹스럽게 할 뿐이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교육에 왕도가 없음을 알고 있는데 일부 학부모들이 왕도가 있는 것처럼 말들을 하고 있다. 작금에 일어나고 공교육을 살리기 대안들은 오히려 공교육을 더 힘들게 할 뿐이다. 교육의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하고 지엽적인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급한 일은 인간 교육에 바탕을 두고 공존을 위한 교육 대안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학생 교사 학부모 교육 당국이 서로 제 목소만 높이지 말고 서로 화합하고 협력하는 대안을 말이다. 어떤 학교에서 학생이 교과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였는데 선생님이 잘 몰라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를 듣고 있던 한 학부모는 '그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선생질을 하느냐'고 아이에게 말하는 학부모가 있는가 하면 어떤 박사 학부모는 자신은 그 답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나도 잘 모르겠다. 다시 한번 알아보자'하며 선생님을 무식한 사람으로 몰아가지 않은 사려 깊은 학부모도 있다고 한다. 바로 그거다. 선생님을 일단 믿어야 한다. 그리고 난 후에 잘못을 가려야 한다. 가까운 일본에서 담임선생님이 가정 방문을 하였는데 아버지가 장관이었는데도 맨발로 뛰어나와 담임선생님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부모가 선생님의 권위를 세워주고 선생님을 존경하여야 아이가 따르고 바른 교육이 될 수 있다고 믿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닐까. 선생님의 인격을 한 없이 깎아내리면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려 하는가? 학부모가 교사를 욕하고, 자식이 부모를 탓하는데 어떻게 학교 교육이 잘 될 리가 있으며 가정이 또 잘 될 수 있을까?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양보하며 보듬어 안아줄 때 학교도 가정도 원만해 진다. 최근 우리사회는 선생님을 아주 우습게 보는 세상인심이 되어 버렸다. 이러고서 어떻게 바른 교육을 기대할 수 있을까. 선생님의 권위를 세워주고 사람다운 사람 즉 인간 교육에 바탕을 두고 이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일 때 교육이 바로 서고 세상이 바로 된다. 선생님 또한 학생을 제 자식처럼 생각하고 제대로 키워나가야 한다. 버려야할 권위도 많지만 버리지 않아야할 권위는 바로 세워주어야만 사회가 유지 존속된다. 내 자식의 인권이 중요하다면 무릎을 꾼 남의 자식의 인권도 깊이 생각해 보자. 웃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어른들이 바른 생각과 행동을 보여줄 때 젊은 세대들은 따라 배운다. 아이는 어른의 분신이요 어른의 거울이다. 한 나라의 젊은이들을 보면 그 나라 장래를 알 수 있다고 하지를 않는가. 부모의 말도 잘 듣지 않는 요즈음 아이들, 핏줄이 통하지 않는 교사가 짧은 시간에 아이들을 바르게 다스려낸다는 것은 정말 힘든 작업이다. 열성을 가지고 바르게 교육을 하려는 교사를 인권을 헤치는 교사, 폭력교사 나쁜 교사로 왜곡하지 말고 그들을 존중하고 도와주라. 그리고 선생님의 잘못이 있다면 일단 현행법으로 냉정하게 다스려 달라.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각종 교육 문제는 교육을 보는 가치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출세주의, 경쟁주의, 황금만능주의, 자기중심주의 사고에 빠져 인간 교육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결과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인간 교육에 바탕을 두라. 그리고 교사들도 끊임없이 자기 혁신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도 명심하여야 한다. 최근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직업이 교사직이라 하지를 않는가.
‘제로 톨러런스(zero tolerance)’, 최근 일본의 초․중학교에 도입키로 한 미국식 체벌주의 정책이다. 이 말을 우리 식으로 번역하면 ‘무(無)관용 정책’, 치안에서 흔히 쓰이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학교 질서 유지에 응용한 것이다. 건물에 깨진 유리창이 하나만 있어도 그 건물은 관리가 허술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 깨진 유리창 한 장 때문에 결국 모든 유리창이 깨지기 쉽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무엇보다 공동체에서의 잘못은 용서하지 않는 사회다. 학교에서 교사의 지도에 따르지 않거나 말썽을 일으키는 학생에 대해서는 학생의 입장을 이해하고 봐주며 말로 지도하기보다는 잘못한 정도에 따라 ‘교실에서 쫓아내기’ ‘부모 호출’ ‘교장 지도’ ‘가정 근신 및 정학’ 등 벌을 가한다.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 시절부터 이런 ‘미국식 체벌주의’를 채택하여 교내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일본 정부도 그동안 학생들의 교칙위반은 물론 폭력, 마약, 교사폭행 등 흉악범죄가 잇따라 발생함에 따라 앞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초․중학생에 대해 학교가 매로 다스리는 ‘체벌주의’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학생이 작은 일이라도 문제 행동을 했을 경우 체벌 등을 통하여 확실히 주의를 주고, 사안에 따라 출석정지를 비롯한 엄격한 징계를 내려 학교 질서를 잡겠다고 생활지도 담당자 모임에서 천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요즘 우리 교육현장의 모습은 어떠한가. 학생들의 심각한 비행으로 몸살을 앓던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보다 오히려 더 심각한 상태다. ‘교실에서 쫓아내기’ ‘부모 호출’ ‘교장 지도’ ‘가정 근신 및 정학’ 대상이 부지기수다. 학생의 신분으로 정단한 규정에 따라 지도하는 두발규제에 대하여 집단으로 반발하고 학생 상호간의 폭력은 물론 자신들을 가르치는 담임 여교사와 원로교사를 폭행하기까지 이르렀다. 여기에다 자식사랑의 도를 넘어선 일부 학부모는 교사의 교육적 소신에 따라 지도한 것을 문제 삼아 그 절차와 방법을 무시하고 교권과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사건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교권을 침해받는 사회에서 참다운 교육은 불가능하다. 정부에서도 최근 무너지고 있는 공교육을 바로 세우겠다는 취지로 새로운 교육정책 수립에 골몰하고 있으나 오히려 교직사회에 갈등을 부추기고 사기를 저하시켜 오히려 교권을 약화시키는 악법을 계속 추진하려 하고 있다. 이에 앞서 교사들이 학생들을 엄한 벌로 다스려서라도 교육적 차원으로 소신껏 지도할 수 있는 교육적 환경을 조성하고 무엇보다 교권을 바로 세우는 일부터 먼저 추진해야 할 것이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지난 24일 전국 시․도 교육감협의회에서 “최근 교권 침해 사례가 인내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고 밝히면서 선생님들의 교권 수호를 위해 교육감과 교육당국이 분명하고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학생 및 학부로 인하여 빈발하는 교권침해 사건에 대하여 교육 수장으로서 단호한 입장을 천명한 것은 시기적으로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환영하며 앞으로 그 의지가 퇴색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 우리도 정부가 나서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 차제에 우리도 ‘깨진 유리창’ 이론에 따라 미국식 체벌주의인 ‘제로 톨러런스’ 정책을 배우자. 정부는 이미 우리와 같은 교육계의 사태와 갈등을 경험하고 다시 태어나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를 거울삼아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누구나 스승의 날이나 혹은 은사의 밤 연회장에서 부르거나 또 선생님이 되어 이를 들었을 때 가슴이 뭉클해졌던 것은 나만이 느낀 감정은 아니었으리라. 금년은 대다수 학교에서 스승의 날 노래를 들을 수 없을 것 같다. 왜냐면 매년 스승의 날이 되면 촌지 문제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서 학교가 스스로 스승의 날을 휴교일로 결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오죽 했으면 이날을 교무회의에서 휴교일로 결정해 버렸을까? 학부모 대표들은 이를 두고 또 말이 많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금년 스승의 날에 정말 편안하게 하루를 보낼 것 같다. 왜냐면 스승의 날 매시간 마다 오전 내내 교실에 들어서면 들었던 장난 끼 섞인 아이들의 노래 소리를 듣지 않아서 좋고, 또 촌지 문제로 본의 아니게 욕을 먹지 않아서 좋으며, 또 하루를 조용히 집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좋다. 제발 학부모나 학생들이 너무 이날을 걱정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스승의 날, 선생님을 편히 쉬게 하는 일도 최상의 선물이 된다는 점도 알았으면 한다. 이 기회에 스승의 날 문화를 확 바꾸어 보자! 스승의 날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부터 학생이나 학부모가 버리자. 이날을 맞아 학부모나 학생들이 일률적으로 선생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는 일은 이제 그만두었으면 어떨까. 선생님이 많이 편찮으시거나, 병원에 입원하여 계신다면 뜻있는 급우 몇몇이 찾아가 뵙는 정도면 족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교사인 나도 과거에 스승의 날이 되면 자식 때문에 선생님에게 그냥 있기도 그렇고, 무엇을 보내자니 그것도 그렇고, 매년 고민을 되풀이 하였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하물며 학부모의 처지라면 어떠하겠는가? 무엇을 보낼까, 보내고 욕먹지나 않을까,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가만있자니 자신의 자녀만 빠지는 것 같아 얼마나 고민을 하였을까? 내가 스승을 예우하려 함은 내 아이를 위해서인가 아니면 선생님을 존경해서인가? 내 아이가 소중하면 남의 아이도 항상 소중하다는 생각을 먼저 하자.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려는 진솔한 마음이 있다면 졸업 후에 그 예를 표하면 어떨까? 스승의 날 무엇인가 선생님에게 물질적 보상을 하려는 생각을 차제에 확 버리자. 스승의 날 학교에서 휴교를 하니까 선생님 댁을 방문하자는 생각을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정말 그런 일은 없었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애써 휴교를 결정한 선생님들의 참 뜻을 더럽히기에 말이다. 왜 학부모들이 스승의 날에 선물이나 촌지를 보낼까? 정말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에서일까, 아니면 자신의 아이에게 무언가 득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일까. 아니면 내 아이가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서일까. 그리고 또 왜 선생님들 이를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버리는 것일까. 주니까 마다할 수 없어서, 아니면 남들이 받으니까 받는 것일까. 선생님들도 공무원으로서 선물이나 촌지를 받지 않아도 생계에 어떤 지장을 받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금년 스승의 날을 계기로 스승의 날 문화를 확 바꾸어 버리자. 스승의 날을 혁신해 보자. 스승의 날은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드리는 날로 정하면 어떨까? 그도 강제성이 아닌 자율적인 편지 쓰기 말이다. 혹시 스승의 날을 전후로 선생님의 몸이 불편하시거나 병원에 입원을 하고 계신다거나, 고령이시라면 선생님을 한 번 찾아가 뵙는 것도 예와 도리가 아닐까. 제발 모든 제자들이 일률적으로 스승의 날 행사를 치러야 하는 생각이나 행동으로부터 벗어나자. 스승의 날, 왜 학생들이나 학부모가 고민해야 하며 당사자인 선생님들 또한 고민하는 날이 되어야 하나? 스승의 은혜에 진정으로 감사하려 한다면 부모님 은혜와 마찬가지로 죽을 때 까지 잊지 않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만이다. 꼭 이를 어떤 물질로 보상해야할 이유는 없지 않는가? 자신이 입은 은혜를 꼭 갚아야 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스승의 행을 그대로 따라 행하면 될 일이 아닌가. 스승의 날이 제정된 것은 스승의 은혜에 감사를 하자는 뜻이지 선생님에게 무엇을 대접하거나 선물을 드리자는 뜻이 아니란 점을 분명하게 강조하고 싶다. 우리 주변에는 각 종 분야에서 묵묵히 스승의 도리를 다하고 계신 이름 없는 스승들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인생은 생방송, NG는 없다.' 리포터가 이번 중간고사 시험 감독을 했던 교실 정면에 걸려 있던 급훈이다. 결연함을 넘어 비장함까지 느껴져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져 왔다. 학교 시험인데도 교실 안은 숨소리마저 집어삼킬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이 아름다운 5월에 교실을 가득 채우는 소리는 오직 아이들의 쿨럭 거리는 기침 소리와 사각이는 볼펜 소리뿐이었다. 마치 병원 대합실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처럼 기침소리는 심했다. 창백한 얼굴을 한 채 연신 터져 나오는 기침을 참으며 시험지를 노려보고 있는 아이들을 50분 내내 지켜보면서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매스컴에선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와 입시 제도의 문제점을 성토하면서 우리 교육의 미래를 무지갯빛으로 제시하지만 현장에 있는 아이들에겐 그저 허망한 구두선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 아이들이 어떻게 변화의 선구자가 될 수 있을까? 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주어진 여건 하에서 기계적으로 입시에 매달리는 일뿐이다. 이윽고 시험 종료를 알리는 차임벨이 울렸다. 모두가 내 자식 같은 녀석들이라 안쓰러움을 안고 나는 교실을 나섰다. 그리곤 오후에 시험 감독이 없기에 마침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도서관에서 한 권 빌렸다. 김덕년 선생님의 '학교야, 훨훨 날자꾸나'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고등학교에서 거의 20여 년 간 국어를 가르치고 계신 김덕년 선생님의 생생한 학교 현장 이야기로 마치 복도에 서서 교실 안 풍경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랑 받는 선생님 DN짱과 사랑 받는 아이들 DNA(DN'Angels)가 1년 동안 엮어 가는 에피소드가 주된 내용이었는데 고등학교 풍경이라기 보단 서로 감싸안고 한 길을 가는 여행자를 연상시킬 정도로 내용이 아기자기했다. 담임선생님은 그 무리의 캡틴으로 보이지 않는 파워를 행사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학급을 경영해 갔다. 반 아이들을 진솔이(진실한 소나무란 뜻)라 부르며 대화 공책을 통해 수시로 개별 상담을 하고, 모둠조직을 만들어 학교 행사 및 교과 시간에도 활용하였고, 대통령 선거를 연상케 하는 학급 반장 선거와 상추 심기, 별 붙이기, 학급 소풍 대신 두레마을로 봉사활동 다녀오기, 학교 운동장에서 하는 뒤뜰 야영, 학급문집 제작. 그리고 학급잔치 등이 창의적 교육 과정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일부 교사들은 각종 잡무와 붕괴되는 공교육 현실을 개탄하면서도 솔선해서 아이들을 위한 창의적인 교육 활동은 하지 않으려는 게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 김덕년 선생님의 사랑과 열정이 넘치는 교실은 읽는 내내 내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일단 교실 안에서 선생님은 '강력한 리더십'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 리더십은 오직 선생님의 열정과 사랑에서만 나올 수 있다고 책은 암시하고 있었다. 교사의 태도에 따라 아이들은 수없이 달라지기 때문에 교사는 항상 일관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지은이는 역설한다. 담임교사야말로 교직의 "꽃"이라고 말하는 필자는 교사의 손짓 하나, 말 하나에도 따뜻한 교육적인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대안을 제시했어도 현실은 아직도 요지부동이다. 그렇다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크게 변할 것 같지도 않다. 여전히 아이들은 대학입시라는 명제 앞에서 주눅이 들 것이고 선생님, 아이들, 학부모들은 터져 나오는 독한 기침을 참으며 또 한 해를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감히 교육에 대한 희망을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다. 박노해 시인은 '사람만이 희망이요, 사람만이 살길'이라고 외쳤듯이, 나 또한 우리 교사들만이 이 시대 아이들의 희망이요 우리 교육을 살릴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한 사람의 영웅으로 역사가 달라질 수 있듯, 교육도 이런 헌신적인 선생님들에 의해 분명 바뀔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김덕년 선생님의 교육 철학에 열렬한 지지를 보낼 것이다. 어서 빨리 학교가, 아니 우리 아이들이 훨훨 나는 그런 교육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지난달 미국의 한 호텔에서 열린 백악관 기자단 만찬에서 ‘진짜 부시’와 ‘짝퉁 부시’가 나란히 연단에 올라 참석자들에게 잠시 즐거움 준 일이 있었다. 그런데 부시의 외모 및 말투 흉내로 유명한 코미디언 스티브 브리지스의 이른바 ‘짝퉁 부시’의 이날 역할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브리지스가 74%의 지지를 얻은 반면, 부시 대통령은 25%를 얻는데 그쳤다. 부시를 ‘흉내 내는 짝퉁’이 ‘진짜 부시’를 압도한 것이다. ‘짝퉁’, 가짜, 모조품, 유사품, 이미테이션 등의 의미를 가진 신조어로 수요·공급 면에서 이익에만 몰입하는 얄팍한 상인들의 상술, 그리고 예술에 가까운 이미테이션 기술 등이 어울려 탄생한 가짜 명품을 일컫는 말이다. 짝퉁PC, 짝퉁폰, 짝퉁화장품, 짝퉁커피, 최근에는 짝퉁소설과 짝퉁비행기....... 거기에다 짝퉁만 취급하는 짝퉁 전문 시장까지 생기고 기존 명품을 모방하던 수준에서 아예 기업을 '통째로' 베낀 짝퉁업체가 진짜 다국적기업을 능가할 정도의 조직력과 마케팅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짝퉁이 진품을 압도하며 판치는 ‘짝퉁 천국’이 됨으로써 앞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원조진품’과 ‘모조짝퉁’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풍경은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짝퉁은 교육도 마찬가지다. ‘사학법’, ‘초빙공모교장제’, ‘교감제폐지-부교장제’, ‘방과후학교’, ‘학운위 교장선출’ 등 현 정부의 주요 교육정책들은 모두 ‘민주화’로 포장되어 진짜를 위협하는 ‘짝퉁 법안’들이다. 교육의 본질을 모르는 자들이 수장이 되어 특정 교원단체의 힘에 밀려 놀아나고, 짝퉁 법안들이 정치적 이해와 경제적 득실에 따라 오히려 진짜 교육을 제압하려는 ‘무늬만 개혁’이 득세하고 있다. 2008학년도 새 대학입시제도에서 반영 비율이 높아진 내신 성적을 관리하기 위한 새로운 경향의 사교육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일선학교의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 기출문제를 모아 교재를 제작하여 학교 시험에 대비하는 학원과 예상문제만을 속 시원히 풀어주는 쪽집게 과외에다 회원제 유료 인터넷사이트 회사까지 성업을 이루고 있다. ‘짝퉁 학교’에서 ‘짝퉁 교사’가 ‘짝퉁 문제지’를 풀어주는 이른바 ‘짝퉁 교육’이 판을 치고 있다. 그들은 학교보다 조금 앞선 학습 진도를 유지하며 공부시키다가 시험 때만 되면 문제풀이에 전념함으로써 학생들의 내신 성적을 올리려는 전력을 구사한다. 여기에 학부모들까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진품으로 모조된 ‘짝퉁 교육’에 고액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한국 ‘짝퉁 교육’의 현주소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스승의 날, 예외 없이 도마 위에 올라 난도질당하기 일쑤인 이날 정작 학교는 문을 닫아 교육의 주체인 학생과 스승은 학교에 없다. 이제 학교에서 스승의날은 ‘자식 없는 아비의 생일잔치’처럼 쓸쓸해졌지만 학원에서는 오히려 더 성대히 스승의 날 기념행사를 한다고 한다. 이른바 짝퉁이 진품보다 더 융숭한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된 것이다. 짝퉁이 무섭게 진화하고 있다. 이러다가 진짜는 아예 없어지고 모조된 짝퉁만 남는 세상이 오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교장자격심사위원회가 20년 이상 된 교육경력자 중 교장 승진 임용 희망자를 심사해 교장자격 연수 대상자를 선발한다. 교장임용심사위원회는 교장자격연수를 거쳐 교장자격증을 획득한 교장임용 희망자를 학교별로 심사해 교육감에게 추천하면 장관이 임명한다. 5년 이상의 교육경력자와 일반인도 교장에 공모할 수 있다. 교감제를 폐지하고 보직개념의 부교장을 학교장이 임명한다.' 3일 오후 4시 국회 헌정기념관서 ‘교장임용제 개선안’을 두고 입법공청회를 열겠다는 열린우리당 백원우 의원이 내놓은 안의 핵심이다. 이 안이 사실상 열린우리당의 당론이라는 것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테러와 같은 교장임용제 개선안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이를 계속해서 추진한다면 다수의 교원들이 간과하지 않을 것임은 물론 엄중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제2의 교원정년단축과 같은 교육의 전문성을 말살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교장임용을 개선하여 백의원의 안대로 실시한다고 해서 무엇이 좋아지는가? 과열승진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승진과열을 더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엄격한 선거법아래에서도 공천을 받기 위해 수천만원의 뇌물이 오가고 있다. 이런 안으로 교장을 임용한다면 교장이 되기 위한 경쟁과 비리는 불을 보듯 뻔하다. 학운위 위원을 상대로 하는 사전로비가 엄청날 것이다. 그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그렇게 임용한 교장의 검증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이다. 현재의 교장은 그래도 최소한 교감을 거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느정도 교장으로서의 자격이 검증된 상태이다. 교장자격심사위와 교장임용심사위에서 검증을 한다고 하겠지만 위원회 천국인 우리나라에서 과연 정확한 검증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절대로 검증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해야 만이 되는 근거를 제시하라. 그 근거라는 것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추상적인 근거가 아닌 현실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하다. 단순히 '근평제가 문제다. 근평이 공개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교장의 전문성이 떨어진다. 교장이 독선적이다. 능력이 떨어진다.'라는 식의 근거는 객관성이 없다. 근평이 문제이면 근평제를 개선하면 된다. 근평이 공개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 공개하도록 하면 된다. 교장의 전문성이 떨어지면 연수를 강화하면 된다. 능력이 떨어지면 그런 교장에 대한 대책을 별도로 세우면 된다. 이번의 백원우 의원 안은 다수당의 횡포로 밖에 볼 수 없다. 만일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머지 야당들도 있다. 가치관이 바로선 의원들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백원우 의원에게 묻고 싶다. 이 안을 어떻게 만들었는가이다. 혼자서 주관적으로 생각해서 만든 안은 아닐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그 뒤에는 이 안을 적극적으로 추천한 전문가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누군가 밝혀야 한다. 또한 이 안을 가지고 일선학교 교원들의 의견을 얼마나 수렴했는지 밝혀야 하다. 무슨 교육정책을 입안하면서 쥐도새도 모르게 하는법이 어디 있나. 이런 안을 지지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만든것으로 본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 일방적인 교장임용제 개선은 교육을 황폐화 시킬 뿐이다. 왜 교장임용제 개선에 매달리는지 알 수 없다. 학교현장에는 그보다 더 산적한 문제들이 줄지어 있다. 그런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한마디로 졸속 그 자체이다. 전교조에서 그동안 주장해온 교장선출 보직제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전교조 조합원들은 모두 교장선출 보직제 찬성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모양인데 그렇지 않다. 특히 공모형 교장제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는 교원들이 상당수 있다. 전교조에서 주장하는 안이 전교조 조합원 모두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 안은 당장 폐기해야 한다. 또 한번 교육계를 뒤흔드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교육자에게 맡기고 국회의원은 정치에만 전념하길 바란다.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끝까지 밀고 나간다면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우리학교에는 5월을 맞아 온통 푸릅니다. 하늘도 푸르고, 운동장 잔디도 푸르고, 나무도 푸릅니다. 그리고 학생들도 온통 푸른 마음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들도 비록 몸은 찌들고 힘듭니다만 마음만은 푸름을 지닌 채 희망을 갖고 힘차게 오월을 출발합니다. 푸른 5월과 함께 희망차게 보내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열린우리당 "교감제 폐지" 3일 공청회…"학운위 선출 교장이 부교장 임명"이라는 교육을 죽이는 검은 폭풍의 기사를 접하게 되어 기분을 망치게 하고 있습니다. 학교 운영위원회가 교장을 선출하고, 선출된 교장이 부교장(교감)을 임명하는 파격적인 교장임용 방안을 열린우리당이 사실상 당론으로 확정했다고 하니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들은 교감폐지제 법안을 입안하는 과정에 과연 얼마나 교육의 경험자들의 귀를 기울였는지 묻고 싶습니다. 교육은 경륜인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교육을 쌓아온 원로 선생님들을 비롯하여 교육전문가들의 의견에 얼마나 귀를 기울었습니까? 모 의원은 ‘교장임용제 개선안’을 내놓기 전에 교장임용에 대해 무엇이 문제이며 그 문제에 대한 해법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며 고민해 본 적이 있기나 합니까? 그리고 교육현장에서 얼마나 근무를 해보셨습니까? 교육관련 서적을 얼마나 읽었으며 폭넓은 교육전문가들과 자리를 같이 하며 밤을 새면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얼마나 하셨는지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듯이 이번 ‘교장임용제 개선안’을 봐도 정치인들의 사고가 너무 편향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교육혁신을 미끼로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쿠데타적인 발상은 지금이라도 당장 철회하고 교육의 현실을 직시하는 혜안(慧眼)을 가졌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교장임용제 개선안에 학운위가 교장을 선출한다고 하는데 지금 현장에서 학운위원이 어떻게 선출되고 어떤 인물이 운영위원이 되고 운영위원들의 활동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요? 저희 학교만 해도 그렇습니다. 작년에는 교육감 선출을 앞두고 관계되는 분들이 대부분 학부모 운영위원이 되었습니다. 학교의 발전과 유익을 위해 운영위원이 되었다기보다 직장과 자식과 자신의 유익을 위해 운영위원을 하고 있는 분이 대부분입니다. 또 이분들은 1년에 운영위원회 대여섯 번 모이기 위해 학교 오는 게 전부이고 대부분은 대여섯 번 모이는 것조차 여러 가지 이유로 불참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분들이 학교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학교에 대한 사정을 모르다 보니 운영위원회 참석해도 1년 내내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운영위원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교장 선출권을 주다니요 말이나 됩니까? 교장 후보자를 어떻게 알아서 교장을 뽑는다는 겁니까? 교장을 뽑을 만한 식견과 지식과 자질과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앞서 어느 선생님이 지적했다시피 운영위원들이 선출권이 있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그들에게 머리 조아리며 교육자의 양심을 잃은 채 이성 없는 행동할 것이 눈에 선하지 않습니까? 정치를 하시는 분들이 왜 그걸 모르십니까? 교원 운영위원도 그렇습니다. 어떤 단체에 속한 선생님들이 과반수나 차지하는 상황에서 그분들의 성향을 가진 젊은 선생님들이 대부분 교원위원이 되는 현실을 눈으로 보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떤 분이 교장으로 선출되며, 앞으로 교육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겠습니까? 농사는 농부가 짓듯이, 정치는 정치인이 하듯이, 교육은 교육자가 해야 합니다. 훈수를 두면 안 됩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훈수를 둔다면 농사도 망치고 정치도 망치고 교육도 망칩니다. 교육이라는 나무를 뿌리째 뽑으면 그 나무는 죽고 맙니다. 문제가 있으면 가지를 치고 거름을 주며 영양제를 줘서 살려야지 통째로 뽑아버리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육은 백년대계입니다. 해방이후 많은 선배 선생님들과 교육전문가들의 연구와 노력 끝에 지금의 교장제도 생겼습니다. 이를 하루아침에 없애버리려는 도발적 발상은 거둬 주시면 어떨까요?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지만 이 정도만 하고 지켜보겠습니다. 5월은 푸릅니다. 학생들의 세상임과 동시에 선생님들의 세상입니다. 더 이상 교육을 망치고 나라를 망치고 선생님들을 망치는 검은 바람이 이 땅 위에 멈추고 훈훈한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기만 고대합니다.
중간고사가 임박했다. 아이들은 제각각 시험 준비에 몰두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날 나도 그랬나 싶어 때론 아이들의 피어나는 얼굴에서 씁쓸함과 피곤함을 느끼곤 한다. “선생님 글씨 예쁘면 수행평가 점수 더 주나요, 저는 글씨가 원체 나빠 아무리 잘 쓰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아요. 그냥 워드로 작성해서 노트 정리하면 안 될까요?” “이놈아, 선생님이 평가안에 글씨나 맞춤법 따위도 넣는다고 했는데, 너 혼자 워드로 작성해서 내면 다른 아이들과의 형평성에 맞지 않잖아!” “아! 어떡하지 내신을 잘 받아야 하는데….” 아이는 연신 공책 정리에 대한 평가 점수에 신경이 곤두 서 있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중간고사 시험공부나 열심히 해, 너 정도면 시험점수에서 충분히 좋은 점수를 받을 건데 너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선생님, 그래도 자꾸만 수행평가도 신경이 쓰여서요.” 내신 때문에 평가 점수에 자꾸만 신경을 쓰는 아이를 보면서 내심 안타까운 마음이 자꾸만 들었다. 그 아이에게 대놓고 수행평가 점수 걱정하지 말라고 할 수 있는 입장도 못 되고, 그렇다고 평가안에 따라 글씨 부분에 점수를 넣어야 되니 교사로서 이만저만 고민되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아이들이 좀 더 신경을 기울여서 하라는 의미로 글씨도 일정 부분 평가안에 넣었는데, 일부 아이들은 그것조차 신경이 쓰이는가 보였다. 기실 수행평가라는 것이 아이들 과제물 평가인데, 교육적으로 아이들의 학습 과정을 평가하라는 의미에서 이전에 없던 것을 추가한 것이다. 수행평가가 나온 것은 학생들의 실제 학습 과정을 평가에 반영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 취지에 대해서는 비판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수행평가를 잘 보기 위해 이런저런 수고를 더해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고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고등학교에서는 지필고사, 모의고사에 더해 수행평가까지 해야 하니 그야말로 아이들이 삼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수행평가의 결과물을 대신해 주는 곳도 생겨난 것을 보면, 수행평가의 단적인 폐해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신관리 좀 더 다른 방법으로 할 수는 없을까! 현재 대입과 관련되는 고등학교 내신 성적은 크게 지필고사와 수행평가로 대별된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지필고사가 수행평가보다는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물론 예체능 교과 영역의 경우는 수행평가의 비율이 큰 경우도 있다. 하지만 수행평가의 비율이 적다손 치더라도 내신에 끼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특히 1,2점이 중요한 아이들에게는 지필고사나 수행평가 둘 모두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영역 때문이다. 이런 중요성 때문인지 내신에 신경을 많은 써는 아이들은 일 년 내내 성적에 관심을 두며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 매년 일선 학교에서는 평가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나날이 평가에 관련된 항목은 늘어나기만 하는 추세다. 물론 아이들의 평가를 더 객관적이고 신뢰성 있게 하고자 하는 것은 알지만, 정작 교사들에게는 업무 과중을, 아이들에게는 늘어나는 시험 항목으로 스트레스만 줄 뿐이다. 가령 봉사활동이라든지, 선행, 효친 등의 다양한 항목들이 이와 같은 평가에 고려되어 대학입시와 결부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있다손 치더라도 요식 행위에 불과하지 정작 중요한 것은 시험뿐이다. 선생님 수행평가 좀 줄이면 안 되나요? “선생님 수행평가가 너무 많아요. 좀 줄여주세요. 과목마다 대개 두세 가지를 해야 하니 이거 원 전 과목하면 무려 20개 항목이 넘는 경우도 있어요. 지필고사 공부도 해야 하는 마당에…” “선생님도 안다. 하지만 어쩌겠니. 한 가지 항목만 해서는 시험에 신뢰성이나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려우니….” “선생님 차라리 수행평가 없애면 안 되나요. 정말 이런 짜깁기 숙제하기 짜증나 죽겠어요.” “짜집기 숙제라고 생각하고 하면 힘들지 않겠니. 자신을 능력을 계발한다 생각하고 열심히 하다보면 도움이 되지 않겠니.” “다들 선생님들이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과제를 모두 해야 하는 저희들은 정말로 죽을 맛입니다.” “선생님도 안다. 하지만, 수행평가가 가지고 있는 취지가 그런 걸 어쩌겠니, 선생님들도 죽을 맛이다. 너희들 과제물 모두 평가한다는 것이 쉽겠니….” 아이들도 나름대로 수행평가의 부당성에 대해 이야기 하곤 한다. 특히 과목마다 지나치게 많은 항목들이 때론 힘들고 괴로운 모양이다. 물론 교사의 입장에서도 힘들고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수많은 아이들의 수행평가 결과물을 채점하고 평가하려면 그만큼 많은 시간과 집중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그저 지필고사 공부만 열심히 하면 내신 성적에 별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는 과목마다 제시된 과제물이나 학습결과물을 제출해야 하는 수행평가까지 치러야 하기 때문에 그 부담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져 버렸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자꾸만 꼬투리를 잡았다. 힘들고 고달픈 아이들의 처진 어깨라도 한 번 두드려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월 4일 청와대에서 열린 '방과후 학교 확산을 위한 교육감.교육장과의 열린 대화'에서 노 대통령은 이날 '방과후 학교 확산을 위한 교육감.교육장과의 열린 대화' 직후 참석자들과 함께한 오찬에서 "서민들의 관점에서 볼 때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공적이 2개가 있다"고 밝혔고 2개의 '공적'은 집값과 사교육비였다. 그동안 교육계와의 불편한 관계였음을 인정하는 듯, 취임 후 뒤늦은 초청에 대한 양해를 해 달라는 말씀도 있었다. 그동안 국정을 운영하면서 서민을 위한 정책이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하면서 정책 실패에 대한 여당의 자성의 소리도 나오고 있는 시점에 대통령의 '공적'에 대한 대상 중의 하나가 사교육비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교육비 문제는 현 정권에서의 문제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해결해야 할 국민적 관심임은 틀림없다. 또한 사교육비가 교육의 양극화를 가져온다는 주장하고 있다. 양극화의 논쟁은 양반 상놈, 친일과 반일, 친미와 반미, 좌익과 우익, 지역감정, 노사간, 사회계층간, 명문과 비명문, 긍극적으로 빈부의 양극으로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이념적 논쟁을 해야 하기에 여기서는 피하고자 한다. 이번 '열린 대화'에서는 '방과후 학교'가 사교육비 절감과 공교육의 정상을 위한 교육정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은 "이 문제만큼은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따른 재정적 보충방안으로 "단기적으로 여기에 필요한 돈은 교육부안에서도 다른 예산을 옮겨서 쓰도록 노력해야 하고, 공교육 예산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정 깎을 데가 없으면 기획예산처에서 돈을 내놓아야 한다"고 할 정도로 현재 공교육을 살릴 수 있는 방안으로 '방과후 학교'를 밀고 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우선 국민적 최대의 관심사인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교육예산 배정의 최우선으로 한다는 데에는 진심으로 환영하며, 꼭 그러한 의지가 현 정부에서 실현되길 기대한다. 그러면 방과후 학교가 성공할 것인가? 이 점에 대하여 결론적으로 방과후 학교에 대한 좀 더 현실적인 파악과 대안을 모색하길 바란다. 방과후 학교란 정규 교육과정 외의 학교교육활동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방과후 학교를 운영하기 위한 방안으로 방과후 특기적성교육, 저학년 저소득층 보육교실운영, 특성화교실운영, 특별보충수업, 평생교육 등 다양한 방과후 학교 교육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방과후 교육활동은 교육활동비의 국고보조에 따른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출발하고 사교육비 절감 차원에서 학원 유입을 학교 생활로 보충하고자 하는 취지이나 운영과정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시행상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연구학교, 시범학교를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으나, 운영하는 학교마다 잘 되고 있다고 하면서도 근본적인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제시된 문제점은 선생님의 과제로 남겨둔 채 잘되고 있다는 결과만을 부각하여 일반화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지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나 교육부장관이 꼭 일선학교의 교사나 교무,연구부장의 경험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교육현실에 대한 이해를 하고 교육정책을 펼쳐 가는지 묻고 싶다. 차제에 학교교육활동의 정상화를 위한 중심축에 있는 교원들의 업무와 업무 처리 과정에 대해서 진지하게 검토해 보기를 바란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교사의 업무는 교육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거나 간접적이나 교육활동을 보조해 주는 업무와 그렇지 않은 잡무를 통칭하여 말하고자 한다. 일전에 몇 분의 선생님의 도움을 얻어 학교일상에서 일어나는 업무를 분석해 본 경험이 있다. 과학적 분석은 아니었지만 일상적인 교원에 대한 업무를 파악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었다고 판단된다. 필자가 소속된 학교에 한정되었기에 학교 여건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나 보통 6개 보직교사와 학년 업무를 통해 600여건의 업무와 갑작스런 공문 말고도 일상적인 공문 처리와 각각의 업무에 대해 세분해서 나타낸다면 몇 배로 늘어날 것이다. 대체적으로 학교의 업무란 계획 단계에서는 학교 수업활동 시간에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지만 추진단계에서는 수업활동이 이루어지는 동안에 처리해야 되는 것이 많고, 특히 쏟아져 내려오는 급박한 공문은 대체로 아동이 있을 때 처리되어야 할 성격이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정상적인 수업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특성화 학교 운영의 일부분이고 96년부터 일선학교에 도입된 특기적성교육을 사례로 보자. 특기적성교육이 학교에 도입되면서 방과후 학급 담임은 내일의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 차분히 준비를 해야 하는 교실에서 쫒겨나(?) 업무처리에 지장을 받고 있다, 특히 초등학교에서는 아동활동 자료가 교실에 있고, 업무 처리를 위한 데이터도 교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담임교사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특기적성교실의 사후 청소, 정리 정돈까지 신경을 쓰게 되고, 아동의 기본생활 지도, 사고처리에 대한 책임 또한 방과후 강사에 일임할 수도 없다. 특기적성 업무 담당자는 어떤가? 수요자 의견 조사, 수렴과정, 강사선정, 강사관리, 운영위원회 회부안 작성 및 설명, 수백명에 대한 수강료 징수, 강사비 지급결의서...과연 교사가 하는 일인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것이란 말인가? 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탑깝다. 이러한 의견은 어찌 그러한 활동이 교사의 몫이 아니라 행정실로 넘기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반문이 있기 마련이다. 또한 교사의 업무 여건을 위한 자리로 별도로 마련해 주면 된다고 한다. 누가 해 주어야 할 것인가? 교감이, 교장이...그렇지 않으면 무능한 관리자인가? 그렇지 못해 무능하다면 대다수의 관리자를 무능하게 한 교육당국의 총수인 장관의 잘못인가? 아니면 의사 결정의 총사령관 격인 대통령인가? 필자는 누구의 책임을 논하고자 함이 아니라 사교육비 경감이 방과후 학교 운영이라는 방안에 대해 현실적인 파악을 더 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고자 함이다. 교원의 자격, 교원의 업무, 교육과정은 초둥등교육법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 특히 교육과정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국가 및 사회적 요청에 의해 변화되어 왔으며 교육은 학교교육과정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학교교육과정의 정상적인 운영은 교육과정의 최 일선을 담당하는 교원의 몫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되며 교원의 몫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 관계기관과 국가는 학교여건을 지원해 주는 정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즉, 학교교육과정의 정상화는 공교육의 정상화이며 이러한 정상화를 위한 노력의 초점은 일선 교사 및 학교 교육과정 운영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예산 배분과 집행도 학교교육과정 정상화를 위한 교육여건개선과 교원의 교육활동 여건개선에 있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교원이 각종 행사, 각종 공문, 수업활동 이외의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한, 또 다른 방과후 학교가 탄생될 것이 자명하다. 어쩌면 0교시 방과전학교가 탄생될지 누가 아랴 따라서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통해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한다면 또 다른 방과후학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에 방과후 활동을 포함하는 제도적 여건과 교원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예산을 투여하면 된다. 즉,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7차교육과정에서 부족한 방과후 교육활동을 교육과정 시수에 포함하고 교원은 오로지 수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업무 지원 행정요원을 혁신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노대통령은 "선생님들도 학원강사 못지 않은 금전적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에 대한 대통령의 시각을 환영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원들의 사회적 시각을 높일 수 있는 투자이다. 국정의 책임있는 사람들이 교원 비하 발언과 비리에 대한 언론의 확대 방송이 지속되는 한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이루기는 어렵다. 방과후학교운영도 공교육의 정규교육과정의 정상적 운영방안 안에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5월은 스승의 날이 있는데 본질에서 어긋나는 이야기들이 더 많아 교육에 평생을 걸고 있는 나로서는 결코 마음이 편하질 않다. 흔히 교사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아이들은 교사에 대하여 별로 아는 것이 없다는 착각이다. 그러나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아이들은 어릴 뿐이지 나름대로 선생님을 잘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1년 동안 담임한 교사는 한 학급 학생들로부터 평가를 받지만 10년 ,20년 아니 30년 이상 경력의 교사라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박수를 보내거나 아니면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교사의 일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다. 한 여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치다 육아 때문에 휴직을 한 후 다시 복직하였는데 제자들은 벌써 6학년이 되어 있었다.'또 그 아이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신학기에 교실에 가서 다시 한번 놀랐다. 아이들의 모습은 잔뜩 어두운 분위기로 모두 자신감을 잃고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차고 그 반짝반짝 빛나던 옛날 아이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Y라는 남학생이 어두운 얼굴로 「선생님, 우리는, 무엇을 해도 안됩니다」 「어?」라고 되물었다.「무엇을 해도 옆 반에 이길 수 없습니다……. 전의 건강했던 우리가 아닙니다」. 순간 「좋아 , 오늘부터 졸업 때까지 모두 이 클래스를 「세계 제일 학급」으로 만들자! 모두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대단한 가능성이 잠자고 있단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실현될 수 있다. 좋아? 나는 너희들의 그 가능성을 믿는다」 이렇게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년간 아이들과는 「세계 제일의 학급 만들기」를 향해서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 학급의 일체감을 만들기 위해 노래를 만들고, 자신의 꿈이나 소원을 담은 일기스기를 시작했다. 마라톤 대회나 체육대회에서는 필사적으로 연습해 옆 반에 이기는 등 좋은 성과를 올렸다. 드디어 맞이한 졸업식 날 이었다. 아이들과의 이별은 정말로 괴로웠으며, 아이들이나 나도 많이 울어 울음바다가 되었다. 허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면 도화지를 말아 장식된 리본이 걸려 있는 선물이 눈에 들어온다. 열어보니 그것은 아이들이 나에게 준 졸업 증서였다. 「세계 제일 학급증서, 선생님은 6학년 2반의 담임으로서 우리와 함께 세계 제일이라고 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으며 훌륭하게 우리를 졸업시켜 주셨으므로 이에 칭찬의 증서를 드립니다」 또 다시 눈물이 넘쳤다. 지금도 이것을 볼 때마다 「세계 제일의 학급 만들기」를 향해서 노력하였던 아이들의 껄껄거리며 웃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는 이야기 이다. 그렇다. 어떻게 세계 제일의 학급이 있을 수 있겠는가? 문제는 교사와 학생들의 목표의식이다. 먼 훗날 선생님은 영원히 잊지 못할 선생님이었노라고 이야기하는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자. 세상이 우리를 위하여 꽃다발을 예전처럼 주지않더라도 꿋꿋하게 교사의 길을 걸어가자. 교사는 총장도, 교수도 교장도 교사이다. 어느 직책에 있던간에. 그리고 더 활기차게 아이들에게 다가서 보자. 공부 잘 하는 아이도 못하는 아이도 차별하지 않고 사랑으로 대하여 보자. 풀 죽은 가슴에 희망의 씨를 뿌려보자. 먼 훗날 부끄럼없는 만남을 위하여...
학창시절의 아련한 추억중 입가에 미소를 머금케 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수학여행(요즈음은 체험학습활동이라고 말하지만 옛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 수학여행이라고 칭한다)이 아닌가 한다. 특히 요즈음같은 5월은 가히 수학여행의 정점을 이루는 때가 아닌가 싶다.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보면 중학생의 경우는 경주나 설악산이고 고등학교는 대개가 제주도를 많이 다녀오기도 하나 일부는 설악산을 다녀오기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렇게 학창시절의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수학여행이 때로는 씁쓸한 뒷말을 남겨 서운한 감정이 드는것은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나 직원인 필자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한 문제점은 이전에도 간헐적이긴 하지만 리포터들도 지적했듯이 조금 심층적으로 접근해 보고 문제점을 제시한 후 대안을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수학여행(修學旅行)이라 함은 학교내에서만 배울수 없는 것을 현장에 찾아가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활동이다. 단순히 놀러가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백번 듣는것 보다 한번 보는것이 교육에는 더 좋기 때문이다. 더욱이 입시와 빡빡한 생활에 시달렸던 학생들에게는 집단의 규율에서 일탈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자율적인 생활도 할 수 있으니 더욱 좋은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장점을 가진 수학여행이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계획이 부족하여 잡음이 계속 나오고 있으니 한번 그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한다. 첫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은 천편일률적인 수학여행 장소와 프로그램이다. 이는 많은 학생들을 숙식시키고, 관람시킬 곳이 몇몇 곳에 불과하다는 이유를 들 수도 있겠지만 조금 다른 각도에서 아래의 사례를 본 다면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 한겨레신문 2006.5.8 기사를 보면, 전남 ㅁ고 교사인 이아무개씨는 동료교사들과 함께 지난해 여행업체를 통하지 않고 수학여행을 준비했다고 한다. 교사들이 수학여행지에 미리 가서 숙소를 직접 둘러본 뒤 가장 쾌적하고 저렴한 곳을 고르고, 일정에 맞춰 식당도 정했다. 우선 틀에 박힌 장소 대신 경기, 충청, 전라권에 걸쳐있는 유적지를 둘러보는 코스로 짰고, 자동차 회사 견학, 험하지 않은 산 등산, 유명 놀이공원 유람 등의 일정을 넣었다고 한다. 기존 여행업체에서 정해준 대로 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입맛에 맞도록 식사 주문도 했고, 도시락을 맞추기도 하였다. 또한, 식당에는 교사들의 식사를 공짜로 준비하지 않도록 말 했다고 한다. 학생들의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고 한다. 잠자리와 먹거리에 만족했고 알차게 여기저기를 돌아봤다고 한다. 자, 위의 사례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점이 도출되고 해결책도 나온다. 수학여행의 주도권을 관광업체에 넘김으로 인해 교육목적에 맞는 프로그램 실현이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심지어 교직원들이 리베이트를 챙기려고 수의계약 쪽으로 하는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의심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소수의 사례이긴 하지만 퇴직 교장이 업체를 끼고 영업사원으로 뛰면서 수의계약을 하는 조건으로 학교에 리베이트를 건네다 물의를 일으킨 경우도 있었다. 해결책으로는 우선 담당 교사의 수학여행에 대한 의식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단지 사고가 덜 나고, 안전성이 검증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천편일률적인 장소 선택과 프로그램은 이제 재고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청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생각을 달리하여 지자체와 연계하여 좋은 역사유적지에 대한 소개를 받아 새로운 수학여행지를 발굴하여 단위학교에 조언해줄 필요성이 있다. 둘째, 말하기 거북한 수학여행을 둘러싼 검은돈이다. 부인하려고 해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수학여행시 업체나 숙박업소에서 건네는 이른바 ‘수고비’다. 필자 또한 중학교 직원으로 있을때 수학여행 인솔시 주저하였지만 받은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크든 작든간에 그 금액은 거의 1인당 10만원꼴은 된다. 받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단 교직원들의 출장비에서 업체에 숙식비를 입금하면 업체에서 이를 되돌려주는 방법이 가장 흔하다. 문제는 이러한 수고비가 순수한 의미에서 건네는 돈이냐는 것이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것은 수고비가 아닌 ‘리베이트’가 맞다. 다음해에도 수학여행 단체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학교 교직원들에게 건네는 일종의 뇌물인 것이다. 더욱이 수학여행을 가는 교직원들은 모두 관외출장을 달고 가며, 시간외 수당까지 챙기기 때문에 검은돈을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업체들이 건네는 이러한 리베이트에는 학생에게 부과되는 수학여행비에 얹혀지기 마련이므로 궁극적인 피해자는 수혜자여야 할 학생이 된다. 대개 검은돈은 합계액으로 일백여만원에서 이백여만원이 건네지는데 이러한 검은돈은 애초부터 수수하지 말아야 하며, 학생들의 식사 질을 높이거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의 수학여행비를 면제하는데 노력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검은 돈의 흐름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업체를 통한 수의계약 보다는 조금 업무가 늘어나고 귀찮을 지라도 전자입찰 계약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행건수는 극소수라고 한다. 앞서 말한 전남 ㅁ고도 올해에는 수의계약을 통해 여행업자를 선택해 추진했다고 한다. 물론 계약 방법이 수의계약이라고 해서 반드시 부정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투명하게 공개하고 추진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학교에서 수학여행 후 시행하고 있겠지만 수학여행에 대한 느낀점과 개선할 점을 학생들로부터 건의받아야 할 것이다. 단순한 기행문이 아닌 몸으로 느꼈던 점들을 학생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교육활동이 있었으면 한다. 끝으로 즐겁고 신나야 할 학생들의 수학여행이 몇몇 개운치 않은 사례를 열거함으로 인해 열심히 노력하고 인솔하였던 교직원들에게 멍에로 다가오지 않는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수학여행 철이다. 일선 학교에서는 수학여행 담당 선생님들이 몇 달 전부터 준비에 골머리를 앓는다. 아이들의 경비에서부터 숙박시설, 관광코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손수 준비해야 하고 아이들과의 논의를 통해 결정하게 된다. 이런 어려운 일이기에 일선 학교에서는 수학여행 업무라면 피하고 싶은 업무 중의 하나에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것이기에 누구도 업무를 맡게 되면 피할 수 없는 일이 또한 수학여행 관련 업무이기도 하다. 첫발령을 받고 운 좋게 그해에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물론 수학여행을 가기 전까지는 그저 학생의 입장으로 돌아가 흥분되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그런 지난시절의 낭만과 추억은 곧 깨지고 말았다. 그런 소리까지 들어가며 수학여행 가야 하나! 요즈음 일부 언론에서는 교사들이 수학여행을 핑계 삼아 여러 가지 이권을 업체로부터 받기도 하고, 더 나아가 검은 돈까지 받아 챙긴다는 기사를 곧잘 내놓는다. 이는 곧 교사 집단 전체의 무능과 부패, 나아가 대한민국 교사의 질적 수준을 폄하하는 범위로까지 곧잘 확대되기도 한다. 수학여행 때문에 학기 초부터 신경을 써야하는 일선학교 담당 교사들을 이런 말들에 낙담하기에 앞서 대꾸할 여력조차 없음을 토로하기도 한다. “정말이지 대꾸할 여력도 없어요. 아이들 수학여행 준비 때문에 행정실과 업체, 그리고 학생들의 여러 가지 제반 사항을 준비하다보면 정말로 골치 아픈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에요. 그런 몹쓸 욕까지 얻어 먹다니 만약에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수학여행 가지 않는 편이 낫겠네요.” “이거 수학여행 가면 밤을 세워가며 아이들 감독하느라 제대로 잠도 못 자는 판에 무슨 융숭한 대접이라도 받는다고….” “하지만 밖에서 교사들을 보는 시각이 쉽게 바뀌지 않으니, 어떻게 해. 그저 우리 스스로가 아이들을 위한다고 생각해야지.” 선생님들은 수학여행 가시면 돈 안 내나요? 아이들은 거저 수학여행이라면 멀리, 그리고 재미나는 곳으로만 가기를 대부분 원한다. 특히 최근에는 외국으로 여행을 가자는 말로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일부 대도시의 큰 학교에서는 중국이나 일본 등지로 수학여행을 다녀오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농어촌의 소규모 학교에서는 경비나 기타 사정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움에 많은 것이 현실이다. “선생님 이번에 우리 수학여행 어디로 가요?” “그건 너희들이 학생회의에서 결정해야 할 문제 아니니.” “그래도 선생님의 생각이 중요하잖아요.” “선생님들이야 그저 너희들이 가자는 곳으로 갈 뿐이다. 선생님들이 너희들의 경비를 부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들이 가서 유익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하지 않겠니.” “그럼 선생님 우리 이번에 독도나 외국으로 한 번 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외국, 독도! 그건 경비나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렵지 않겠니. 더군다나 수학여행 경비 내는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도 많잖아.” “예이, 다른 학교에서는 일본이나 중국 간다고 하던데….” 아이는 그만 자신의 생각을 내본 것이 자못 후회스러운 듯 했다. 하지만 몇몇 아이들은 외국이나 심지어는 독도로 여행을 가자고 졸라대기도 한다. 물론 학생회에서 이런 점들이 곧잘 반론에 부딪치기도 하지만, 몇몇 아이들의 이런 생각도 무시하기에 어려운 경우도 곧잘 생긴다. “선생님들은 이번 수학여행 가시면 돈 안 내나요?”“이놈들아, 그럼 우린 돈 안내고 무엇으로 밥 먹고 비행기 탄 단 말이야.” “기껏해야 오육십명 되는 너희들 데리고 제주도 가는데 선생님들이 돈 안내면 너희들이 내 줄거니?” “아이, 선생님도 농담이에요.” 첫 수학여행길에서 아이들과 밥을 같이 먹으며! 첫 발령과 동시에 떠난 수학여행은 그야말로 고행길이었다. 학생시절에 생각했던 선생님들에 대한 생각들과는 너무나도 차이나는 수학여행에 그만 추억은 커녕 두 번 다시는 수학여행은 가지 말았으면 하는 행사처럼 각인되고 말았다. “선생님은 우리하고 같이 밥 안 먹나요?” “선생님들이 수학여행 와서 무슨 호의호식이라도 하는 줄 아니?” “그럼 우리하고 같이 밥 먹나요.” 당시 수학여행 인솔 책임을 맡고 계시던 선생님은 아주 짧은 말로 아이의 물음에 답을 하시는 것이었다. 솔직히 옆에서 지켜보던 당시 신임 교사인 나로서는 의외의 답변이었다. 솔직히 학창 시절의 수학여행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밥을 먹어본 기억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정말로 아이들하고 같이 밥 먹습니까?” “서선생, 무슨 소리고. 그럼 밥 안 먹을꺼야.” 선생님의 짧고 퉁명스러운 답변에 그만 물음이 궁색해져 그저 그 선생님의 일과 진행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날 저녁 시간 아이들 지도를 어느 정도 마치고 난 뒤에야 그 선생님으로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수 있었다. “서선생, 내 말에 조금 마음 상했지.” “아니요, 선생님. 그게 맞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실제 그럴 줄은 몰랐거든요. 저도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었어.” “맞아, 수학여행 때문에 하도 학부모나 일부 단체들에서 많잖아. 솔직히 수학여행 와 보니 즐거워?” “솔직히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네요. 잠도 제대로 못자고, 모든 게 불편하네요. 왜 아이들이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수학여행을 가자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이후로 몇 번 수학여행을 더 갔지만, 밥을 아이들과 따로 먹은 적은 없었다. 물론 지난 학생시절 내가 보았던 그런 선생님들의 모습은 애시당초 나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고, 밖에서 들려 오는 수학여행 관련 교사들의 비리를 들으면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나기나 하는 건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교실에 들어가는 순간 ‘따닥’ ‘따닥’ 폭죽 소리와 함께 5색 테이프가 내 얼굴을 뒤덮었다. 별로 놀랍지는 않지만 아동들에게 많이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웃으면서 들어갔다. 선생님을 깜짝 놀라게 하려는 아동들을 만족스럽게 해 주기 위해서 어색할지 모르지만 깜짝 놀랐다는 연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 웃는 아동들의 모습이 너무도 예뻤다. 4년 전 ‘스승의 날’이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아직 2학년인 아동들이 부르기에는 약간 어렵기도 하고 가르친 적도 없었는데 그 노래를 불렀다. 20명의 아동들이 부르는 ‘스승의 은혜’ 노래부르기는 무척 어설펐지만 ‘스승의 날’을 맞아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리겠다는 작은 마음들이 너무나 대견스러웠다. 칠판에는 삐툴삐툴 색분필로 ‘선생님 축하해요.’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고마워요.‘ 제각각 한마디씩 써서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 글들을 썼다. 칠판 주변에는 울긋불긋 몇 개의 풍선이 매달려 있었다. 색종이태잎으로 주변을 장식하기도 했다. 학급 반장이 카아네이션을 가슴에 달아 주기도 했다. 각 분단마다 다과회를 하려고 직접 가져온 사탕 비스켓 마실 음료수 등을 은박 접시에 담아 놓았고, 교탁에는 훨씬 많은 다과가 성대하게(?) 차려져 있다. “선생님 많이 드세요.” “그래 많이 먹자. 어린 애기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멋진 자리를 만들었구나. 선생님은 오늘이 세상에서 제일 기쁜 날이다.” 아동들 모두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서로서로 만족스런 웃음과 함께 마주 보면서 의기양양해 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어린 동심들이 ‘스승의 날’을 맞아 선생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드리고 싶었고, 맛있는 것을 대접하고 싶었고,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드리고 싶어서 끼리끼리 사전계획을 세우고 물품을 준비하고 장기자랑의 프로그램을 계획 연습하여 이런 잔치(?)를 벌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었다. 시골학교에서의 아동들과 함께 보냈던 담임교사 시절의 ‘스승의 날’ 그날을 생각하면서 오늘(스승의 날) 집에서 놀고 있을 학생들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지금 우리 어린이들이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을까? ‘스승의 날인데 왜 학교에 오지 말라고 할까? 작년에는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을 위한 잔치도 했는데…….’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것 같다. 도대체 ‘스승의 날’만 되면 왜 촌지문제가 당연한 듯이 보도될까. 으레 촌지나 뇌물성 선물을 수수하는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까. 스승의 은혜에 대한 본질적인 면은 경시하고 극소수의 지역, 극소수의 교사, 극소수의 학부모들의 부정적인 행태에 대한 것을 침소봉대하는 것일까. 결국 ‘스승의 날’에 스승과 제자의 당연한 만남을 ‘휴업일’로 정해 차단시켜 버린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누구나 자기의 가슴 속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스승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꼭 그 스승에게 가시적인 보답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스승에 대한 가르침을 되새기고 가르침에 대한 고마움을 갖고 바른 행동과 인격적인 삶을 산다면 그것이 바로 보답하는 길일 것이다. ‘스승의 날’을 맞은 어린 학생들이 스승의 고마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스승을 위하는 길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고 그것들을 실천을 통하여 내면화시킬 때 참다운 의미가 있을 텐데 어른들의 잘못된 사고방식 때문에 ‘스승의 날’ 스승과 제자의 만남까지도 단절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작지만 크고, 어설프지만 성대한 아동들의 ‘스승의 날’ 행사는 그들의 가슴 속에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군사부일체라는 도덕적 가치관을 형성시켜 줄 것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학부모들의 고성으로 떠들썩한 회의실, 담임교사에게 화를 내는 격앙된 목소리, 울먹이다 무릎을 꿇은 채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며 죄인이 되는 담임교사, 분을 삭이지 못한 듯 ‘조용히 인정하고 사표내면 다 조용한다고 했잖아.’를 소리치는 학부모의 모습을 감히 상상이나 해봤는가? TV에서 본 뉴스의 내용은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봐도 낯익은 모습이 아니었다. 군사부일체니 교육은 백년지대계니 그런 구차한 얘기를 결부시키기도 싫다. 그저 낯선 모습에 놀랐던 가슴을 추스르며 교사이기 이전에 교육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묻고 싶다. 전날 집으로 찾아가 항의한데 이어 다시 여럿이 학교를 찾아가 소란을 피우며 무엇을 얻어내고 싶었는지? 담임교사가 무릎을 꿇은 채 사과를 하지 않았더라면 도대체 어디까지 문제를 확대시키려고 했었는지? 그렇다면 담임교사의 인권과 교권을 유린해서라도 급식의 문제점을 파헤치려는 사명감이 그렇게 컸었는지? 무릎을 꿇어야 했던 담임교사를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과 귀한 딸이 겪는 슬픔을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은 생각이나 해봤는지? 누구라도 자기의 의견을 떳떳하게 밝힐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학교도 잘못을 감추는데 급급하던 구태에서 벗어나 모든 구성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학교운영위원회 등을 통해 다양하게 의견을 수렴하고 포용한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유가 교직원들 탓이라고 원망한다면 굳이 변명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 귀여워하는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가서 담임교사에게 위세를 부리는 것은 지식인의 행동으로 적절치 않다. 잘못의 경중을 떠나 ‘조용히 인정하고 사표 내라’는 학부모들의 주장에 따라야 할 만큼 교권이 추락하면 정상적인 교육은 이뤄지지 않는다. 혹 대화에 이견이 있었다면 밤늦게 담임교사의 집에 찾아가 감정의 벽을 쌓기 전에 정당한 방법으로 건의하는 게 우선이어야 한다. 언론에서 한 작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정말 요즘 몇몇 언론에서 하고 있는 일을 보면 북치고 장고치고 혼자서 다한다. 왜 그뿐인가? 이번 사건을 보면 병 주고 약까지 준다. 2명의 기자가 교실에까지 들어가 어린 학생들에게 “선생님이 좋으냐? 뺨을 때렸느냐?”를 질문하고, 민원을 제기한 측에서 취재 내용에 대해 보도하지 말 것을 요청했음에도 보도를 한 것은 언론의 사명인 공익은 뒷전이고 교육을 무시하면서까지 사익 챙기기에 급급하고 있다는 증거다. 취재내용을 보도한 SBS의 지역방송인 청주방송(CJB)이 19일 뒤늦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급식을 빨리 먹일 수밖에 없는 현행 급식체계와 교권추락의 문제점을 다뤘지만 은근슬쩍 자신들의 잘못을 덮는 우리나라 언론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았다. 한국교총 등 교원단체의 적극적인 대처에 ‘이번 건을 정당한 절차와 방법으로 제기하지 못해 사건을 확대시킨데 대해 반성하며 해당 선생님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요지의 사과문을 발표한 학부모들보다 오히려 측은하게 보였다. 어느 학교나 급식이 골칫거리다. 시간 조절을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니 자리가 한정되어 있는 좁은 급식소에 아이들이 몰리기도 한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아이들이 빨리 먹고 자리를 비워달라고 독촉하기도 한다. 급식소를 크게 지으면 해결될 문제지만 국가에서 교육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있어 요원한 얘기다. 여러 가지 음식을 골고루 먹여야 하니 때에 따라서는 급식종사원들의 손을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식단도 있다. 그런 날은 배식이 원활하지 않아 급식이 더디기도 하다. 급식종사원을 많이 고용하면 금방 해결될 일이지만 그만큼 급식비가 인상되어야 한다. 현재도 급식비 미납자가 많아 어려움이 많은 현실에서 어느 것 하나 쉽게 해결될 게 없다.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게 학교 급식이다. 그래서 더 이해를 필요로 한다. ‘교원 예우에 관한 규정’에 임의 조항으로 되어 있는 학교교육분쟁조정위원회를 상설화하여 교육활동과 관련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일방적인 물리력이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에 의해 해결하는 방안도 강구되어야 한다. 하지만 서로 이해하면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에게는 슬픈 노래도 나쁘다고 한다. 괜히 김세환이 부른 ‘슬픈 노래는 싫어요’를 중얼거려본 하루였다. ‘슬픈 노래는 싫어요. 아무런 말도 하지 말아요.’ 그래도 우리 주변에는 훌륭한 학부모님들이 더 많아 힘이 난다. 작년 가을에 있었던 아름다운 사연 하나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To. 존경하는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여러모로 신경써주시고 애써주신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부족하고 철없는 우리 민욱이에게 관심 가져 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어제 일은 잘 해결됐어요. 보배 어머니께서도 안심하고 가셨어요. 개구쟁이들과 함께 하시다보면 보람과 어려움도 있으시죠. 애쓰시는 선생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10월 15일 안민욱 엄마 드림 그날 우리 반에는 작은 사고가 있었다. 체육 전담 시간에 농구시합을 했고, 시합과정에 신체 접촉이 있었는데 그것이 빌미가 되어 수업이 끝나고 교실로 오는 과정에 다툼이 벌어졌다. 여기까지는 아이들 세계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고 교실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던 나에게 전해진 소식은 그렇지 않았다. 맞은 민욱이의 이가 부러졌다는 것이다. 순간 긴장을 하며 민욱이가 있다는 보건실로 향했다. 그때 민욱이 어머니에게 걸려온 전화마저 통화불량으로 중간에 끊어져 궁금증을 더했다. 민욱이를 만나보니 앞 이의 끝 부분이 아주 조금 깨져 있었다. 아이들에게 들었던 내용보다 깨진 부분이 적었고 이가 시리지 않다고 해 다행이었지만 사고가 일어난 경위를 조사하며 영구치라는 걸 걱정했다. 회사에 있는 민욱이 엄마에게 전화로 진상에 대해 알려주고 하교하면 앞 이를 자세히 본 후 판단해 달라는 얘기도 했다. 어떤 사고든 뒤처리가 중요하다.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으면 일은 쉽게 풀린다. 다같이 아이들을 키우는 학부모님들이지만 보배 엄마가 먼저 전화를 하는 게 순서일 듯 싶었다. 보배 엄마에게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전화로 자세히 알려줬다. 엄마가 민욱이를 만나 상태를 확인했다고 생각돼 전화를 했다. 하지만 민욱이는 아직 학원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보배 엄마가 찾아와 걱정하다 갔다는 것이다. 얼마 후 아이를 보니 그나마 다행이고, 다시 찾아온 보배 엄마를 아이들 일로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돌려보냈다는 민욱이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그날 나는 며칠 전의 퇴근 시간을 떠올렸다. 운전 중에 전화를 받았는데 우리 반 자모였다. **가 자기 집 아이를 괴롭힌다는 하소연이 길게 이어졌다. 말끝에 **의 집에 찾아가려고 하니 전화번호를 가르쳐달란다. 나도 잘 알고 있는 일이라 수시로 지도 중이었고 일부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어 전후 사정을 얘기했지만 감정이 격한 상태라 뜻이 전달되지 않았다. 또 그런 상태에서 전화번호를 가르쳐 줄 수도 없었다.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테지만 아직은 미완성인 게 아이들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일어날 일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내 자식이나 남 자식이나 다 똑같은 자식이다. 남 자식이 저지른 일 내 자식도 저지를 수 있다. 제몫 챙기기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양보할 줄도 알아야 세상살이가 재미있다. 어떤 일이든 이해하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고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어려운 일을 슬기롭게 해결해 준 민욱이와 보배 엄마 같이 훌륭한 학부모님들이 많다면 분명 교사들은 행복할 것이다. 교사가 행복하면 아이들이 즐거운 것 당연한 일 아닌가.
며칠 전 일선 교육관련 기관에서 학생들 문제집과 관련된 비리로 문제가 발생한 경우를 접했다. 일선 교육 관련기관에서 수능과 관련하여 일부 업자들로부터 청탁이나 금품을 수수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기사였다. 내심 이런 기사를 보면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 대학입시와 관련된 기관들의 비리가 심심치 않게 내재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대부분이 학생들의 문제집이나 참고서와 관련된 일임을 보면 정말로 교육적이어야 할 곳이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에 분노를 삼키게 만든다. 선생님 또 문제집 사요? 일선 고등학교 현장에서는 대부분 보충수업으로 학생들에게 문제집이나 기타 참고서를 선택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수능이나 대학입시와 관련한 것이기에 학생들도 별 군말 없이 구입하게 된다. 하지만 구입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 곧잘 학생들의 반발을 사기도 한다. “선생님 또 문제집 사요, 도대체 문제집이 몇 권이나 되는 줄 아세요?” “그렇게 말하면 선생님 섭섭하다. 마치 내가 문제집을 팔기 위해 광고라는 하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그건 아니고요, 과목마다 대부분 문제집을 사야하니 너무 부담이 많이 되서 그래요.” “선생님도 안다. 하지만 수능을 보기 위해서는 부득불 문제집이나 참고서를 통해 공부를 해야 하지 않니. 선생님도 마음이 정말 아프다.” 많은 아이들은 새 학기가 시작되면 구입해야 되는 문제집이나 참고서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하소연한다. 특히 이는 시골의 농․어촌 학교로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그것도 투자 못하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정말로 하루 벌어먹고 사는 이들에게야 그것도 정말 큰 비용이 아닐 수 없다. 문제집과 참고서로 찌든 우리의 입시현실 입시를 목전에 둔 고3은 특히 수많은 문제집, 참고서를 통해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교과서는 이전에 진도를 끝내 버리고, 문제집이나 참고서를 통한 수업이 이어지게 된다. 입시와 관련해서 우리 학교 현장이 직면한 문제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문제는 문제야. 이거 원 온 나라가 사교육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학교 다니면서 사야 하는 문제집과 참고서도 아마 단단히 여기에 한 몫을 할 거야.” “맞습니다. 특히 고3이 되면 교과서는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도 없고, 수 십 종의 문제집과 참고서만 교실에 난무하니, 그것도 돈으로 계산하면 꽤나 될 거에요. 전인교육은 말 뿐이고, 정말로 입시지옥이나 다름없는…” “어떤 아이들은 문제집을 사지 못해, 매일 나에게 복사 좀 해 달라고 통사정 하는 아이도 있어요. 참 난감해서, 이놈에 입시만 없다면….” 많은 일선학교 선생님들도 아이들의 문제집과 참고서 구입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입시 위주의 체제에서 쉽사리 문제집과 참고서의 유혹을 벗어나기 힘든 실정이다. 이렇다 보니, 직접적인 입시와 관련된 선생님들은 부득불 문제집과 참고서를 아이들에게 강요 아닌 강요하게 된다. “우리나라만큼 문제집과 참고서가 많이 팔리는 나라는 없을 거야. 과연 이게 교육적인지 물어봐야 하는데, 어느 누구도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이 없어.” “맞아요, 과연 교육적이냐 부터 따져봐야죠.” “하지만, 입시를 앞둔 아이들을 대상으로 모험을 걸 수는 없잖아. 정작 학교에서 맡아야 할 몫을 문제집과 참고서가 어느 정도 대신해 주는 것도 사실이잖아.” 문제집과 참고서 선정의 투명성을 넘어! 보통 일선학교에서는 문제집과 참고서를 선정하는데 학교운영위원회의 간단한 심의를 거쳐야 한다. 물론 대부분 같은 과목 간 선생님들의 협의를 거쳐 선정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일선 학교 선생님들이야 어떻게든 아이들의 교육비를 줄여주려고 애쓰지만 입시라는 장벽 앞에서는 불가항력적인 경우가 많다. 물론 집안 형편이 넉넉해 자신이 볼 수 있는 책을 마음껏 살 수 있는 경우야 두 말할 나위가 없지만, 정말로 공부는 하고 싶지만 마음껏 책을 사지 못하는 경우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사교육비라 정작 말들 많이 하지만, 일선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위한 것으로 구입하게 하는 수십 종의 문제집과 참고서에 대해서는 거의 말이 없다. 물론 대도시에서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거액의 고액과외에야 비할 바 아니지만, 이 돈마저도 생계에 위협을 느낄 정도의 아이들도 우리 주변에 많다는 점은 아마 양극화의 가장 극단적인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집마저 선생님께 찾아와 복사를 부탁하는 아이를 어떻게 교사가 일언지하에 거절할 수 있겠는가. 물론 문제집을 복사해 주는 것 자체는 분명 법의 잣대로 본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이런 점들을 주지시켜 현실의 모습을 이야기 해 줄 필요성도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공부는 하고 싶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마음껏 책마저도 사지 못하는 아이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는 사실은 가끔 교사로서 서글픔과 아픔을 느끼게 한다. 일부 교육관련 기관에서 문제집과 참고서를 빌미로 일부 업자들로부터 거금의 받았거나 혹은 향응을 제공받았다면 이는 그 기관의 존속자체부터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입시를 빌미삼아 우리 아이들을 대상으로 장삿속을 밝히려고 하는 것은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