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32,699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한나라당을 비롯한 야당은 3일 단행된 부분 개각에 대해 "능력과 자질을 무시하고 민심을 외면한 오만한 인사"라며 일제히 비난을 퍼부었다. 한나라당은 권오규(權五奎) 경제, 김병준(金秉準) 교육 부총리의 내정을 '코드 개각'으로 규정, 인사청문회에서 문제점을 철저히 따지겠다며 '전의'를 다졌다. 특히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주도한 김 내정자에 대해서는 "교육 정책마저 망칠 것"이라는 격한 표현을 동원해 불만을 표시했다. 안경률(安炅律) 원내대표 대행은 "이번 개각은 5.31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반영해 정책 실패의 책임을 묻고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을 중용해야 한다는 점을 무시한 코드 인사여서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국회 교육위 간사인 임해규(林亥圭) 의원은 김 내정자에 대해 "교육정책 난맥상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데다 교육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다"며 '코드 인사'임을 강조했다. 교육위원인 이군현(李君賢) 의원은 "교육 비전문가인 김 내정자가 교육을 경제논리로만 풀 것으로 보이는데다, 부동산 정책에 실패한 사람이 교육 정책을 책임질 수 있을 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정현(李貞鉉) 부대변인은 "경제를 망치고 부동산 정책 실패를 이끈 청와대 참모를 교육부총리에 임명한 것은 교육까지 거덜내려는 자포자기 인사"라고 주장했다. 국회 재경위 소속의 한 의원은 권 내정자에 대해 "시키는 대로 하는 '예스맨'"이라고 평가하면서 청와대가 경제 부처를 휘두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건영(尹建永) 수석 정조위원장은 "권 내정자 개인은 큰 문제가 없지만, 청와대가 정책 기조를 바꿀 의지가 없다면 누구를 임명해도 코드 맞추기"라고 주장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도 '민심과 유리된' 개각임을 비판했다. 민주당 이상열(李相烈) 대변인은 "5.31 지방선거에서 심판받은 정책입안자들을 요직에 기용하는 것은 국민과 본격적으로 담을 쌓겠다는 것"이라며 "민심이 고려된 흔적이 없는 7.3 개각은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이 대변인은 "장관 임명권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하지만 너무나 민심과 동떨어져 안타깝다"며 인사청문회를 통한 철저한 검증을 다짐했다. 민노당 박용진(朴用鎭) 대변인은 "개각을 통해 실패한 정책의 반성과 책임을 보여주기 보다 '정권호위형', '친정체제 구축' 개각으로 귀결됐다"고 주장했다. 박 대변인은 "김진표(金振杓) 전 부총리에 이어 교육 비전문가가 또 다시 교육 수장으로 나서게 돼 국민 불안이 가중될까 우려되고, 권 내정자와 새 경제팀이 서민복지를 팽개치고 정권 재창출을 위한 경기부양 정책으로 치달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최근 1년간 불법으로 해외 유학을 다녀온 초.중학교 학생이 7천여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 이주호(李周浩) 의원이 3일 교육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05년 3월부터 2006년 2월까지 학력 미인정(불법) 유학을 다녀온 뒤 국내에서 재취학한 초.중학생은 모두 7천216명으로 집계됐다. 이들 재취학생 가운데 초등학생의 9.5%, 중학생의 60.9%는 진급평가를 받지 않고 재취학하는 문제점이 나타났다. 특히 중학생의 학년 진급평가 응시율은 39%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고, 고등학생은 유학생 4명중 1명 이상이 유학을 위해 자퇴할 당시의 학년 아래로 재취학했다. 이 의원은 "내신성적 등을 개선하기 위해 유학을 역이용하는 경우도 가능하다"며 "이처럼 유명무실화된 국외유학 규정을 사전규제 중심에서 사후관리 체제로 바꾸고 귀국한 학생에 대한 보충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 교육부총리에 내정된 김병준(52.金秉準)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참여정부의 개혁정책을 상징하는 인물로 통한다. 행정도시, 부동산 정책, 전자정부 등 현정부 들어 수립된 대부분의 주요 정책에 대한 로드맵 입안 단계에서부터 집행과 점검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이는 학자 출신답지 않게 일단 '이 길이 옳다'는 판단이 서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강한 추진력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이런 장점은 특히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철학을 구현하는 데 숨은 동력으로 작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정부혁신 업무는 물론 행정도시 건설과 공공기관 이전, 혁신도시 선정 등 분권화 추진 과정에서 김 전 실장의 결단력이 없었다면 숱한 난관을 돌파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청와대 주변의 설명이다. 행정학을 전공했지만 경제와 역사 등 다른 분야에도 조예가 깊고 학자에게 부족하다는 현장감각이 탁월한 점도 대통령의 핵심 브레인으로서 승승장구한 배경이 됐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통령직인수위 정무분과 간사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을 거친 그는 지난 5월 청와대 정책실장에서 퇴진할 때까지 노 대통령과 줄곧 호흡을 같이 해왔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행자부 장관, 감사원장, 청와대 비서실장 등 고위직 인사가 있을 때마다 유력후보로 거론돼, 지난 3월 총리 후보로 올랐을 때엔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13개 자리의 하마평을 들었다"고 담담한 반응을 보였을 정도다. 따라서 정책실장에 물러나 교육부총리로 내정되는 과정은 노 대통령이 김 전 실장에게 준비 기간을 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김병준 교육부총리 카드'가 '예고된 인사'로 풀이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은 김 전 실장의 소신 있는 자세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게 참모들의 전언이다. 지난 1993년 노 대통령과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함께 운영하면서 정책 분야에서 주파수를 맞춰왔지만, 이런 개인적 인연 보다는 냉철한 상황 판단력과 함께 과단성 있는 추진력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부동산정책만 해도 "헌법처럼 바꾸기 힘든 제도를 만들겠다"(2005년 7월 연합뉴스 인터뷰), "오늘 신문에 종합부동산세가 8배가 올랐다며 '세금폭탄'이라고 하는데 아직 멀었다"(2006년 5월 국가균형발전위 심포지엄 특강)는 초강력 메시지를 보내 곧잘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소신 행보는 입각 길목에서 그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올 3월 총리 인선 때에는 거의 낙점 단계에까지 갔으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부담을 의식한 열린우리당내 부정적 여론에 밀려 낙마했고, 이번 교육부총리 인선 과정에서도 여당내 반발기류가 조성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김병준 카드를 '강행'한 것은 그 만큼 참여정부의 국정철학과 노 대통령의 교육개혁 의지를 꿰뚫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확고한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실장은 교육분야에서 평준화를 기반으로 한 공교육 정상화와 대학구조조정을 강조하고 있고, 특히 대학개혁 문제에 대해선 기업과 학생 등 수요자 중심으로의 인식전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평소 "국가경쟁력은 교육개혁에서 나온다"는 소신이 교육개혁 정책에 접목될 경우 국립대 통폐합 등에서 별다른 진척이 없는 대학사회에 거센 태풍이 불어닥칠 전망이다. 부인 김은영(金恩映.48)씨와 2녀를 두고 있다. ▲경북 고령(52) ▲대구상고 ▲영남대 정치학과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경실련 지방자치 위원장 ▲노무현 후보 정책자문단장 ▲인수위 정무분과 간사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
태국 대학 졸업생 3명중 1명은 재학중 정부로부터 대출받은 학자금을 갚지 못해 쩔쩔매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3일 태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학 졸업생의 정부 학자금 상환 현황 조사 결과 재학때 학자금을 융자받은 대학 졸업생의 30% 가량이 실업자 상태이거나 취업은 했어도 상환기일에 대출금을 갚을 수 없을 정도로 수입이 적어 '파산' 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국 정부는 작년까지 저소득 가정 대학생들에게 총 250만건, 2천160억바트(약 5조4천억원)의 학자금을 융자해줬다. 태국 정부는 학자금을 융자받은 대졸자들이 왜 일자리를 못구하고 있는 지, 또 취직은 했지만 수입이 월 상환 하한선인 4천700바트를 밑도는 원인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키 위해 국립 출라롱콘 대학에 연구 용역을 줬다. 출라롱콘 대학의 연구 결과 학자금을 갚아야 하는 대졸자들이 처한 가장 큰 문제는 전공 분야에서 취업 기회가 극히 적다는 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서둘러 가정을 꾸리거나 전문학교를 마친 후 다시 정규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주된 이유들로 지적됐다. 특히 법학이나 정치학, 경제학, 경영학을 전공한 학생들은 구직시장에 넘쳐나지만 이들을 쓰겠다는 곳은 거의 없는 '수요초과' 현상이 문제다. 태국 정부는 작년까지 월 수입이 4천700바트에 못미치는 경우 학자금 상환을 유예해줬지만 올해부터는 하한선을 6천바트로 올린 새 학자금 융자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새 제도는 가정 형편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들에게 융자 혜택을 주되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만 수혜대상에서 제외했다.
교장 공모제 도입 논란에는 교장 연령에 대한 문제도 매우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공・사립학교 교장의 최고, 최저 연령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 2005년 4월 1일 기준으로 공립학교 교장의 경우 평균연령은 초등 57.9세, 중학 57.8세, 일반고와 실업고는 모두 58세로 나타나고 있다. 사립 교장의 평균연령은 초등 57.5세, 중학 57.8세, 일반고 57.8세, 실업고 58.1세로 평균연령은 미세한 차이만 존재할 뿐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최고 연령은 사립 교장의 경우 초등 74세, 중학 77세, 일반고와 실업고는 각각 82세로서 공립학교의 62세(정년) 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나 사립의 경우 교장임용에 있어 연령 제한을 특별히 두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최저연령의 경우도 사립 교장이 모든 학교 급에서 낮게 나타나고 있다. 초등 최저 연령은 42세로 공립학교 초등학교 교장의 46세보다 4살이 낮 으며, 중고교의 경우는 교장의 최저연령이 37세로 공립보다 8~9세 정도 낮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 최대의 교원단체인 미국교육협회(NEA)가 낙제학생방지(NCLB)법의 개정을 촉구했다. 렉 위버 NEA 회장은 2일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 연차총회에 참석해 1년중 하루를 골라 학생의 학업 성취도를 법이 측정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 협회는 또 정부가 지난 2002년부터 NCLB법을 시행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재정지원을 하지 않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올해 초 발표한 미국 정부의 2007회계연도 예산안에는 이 법을 집행하기 위한 예산이 의회 승인 한도의 40%선에 불과한 240억달러였으며 한 교육관련 단체의 집계에 따르면 이 법을 시행하고 있는 40개 주 가운데 24개 주에서 재정 문제로 법 집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 법에 따르면 미국내 각 주는 읽기와 수학을 포함한 과목들의 시험 성적이 향상됐음을 보여야 하며 성적이 부진한 학구(學區)에 대해서는 학생에게 특별 교육을 시키는 것부터 학교 경영진 교체에 이르는 여러 불이익이 주어진다. 미국 교육부는 지난 3월 전체 공립학교의 27%에 해당하는 2만4470개 학교가 이 법에서 정해진 기준에 따라 성적 부진 학교로 분류됐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의 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정신문화는 무엇인가? 라고 외국인이 질문을 한다면 누구나 그것은 “효의 문화다”라고 쉽게 대답할 수 있다. 효란 웃어른을 곤경하고 자신을 길러준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깊이 알게 하고, 나아가서는 사회에, 국가에, 공헌하고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효의 문화는 광의로 본다면 호연지기를 길러가는 개척정신보다는 협의로 나타나는 인간과 인간과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쉬〜쉬’ 문화가 ‘워〜워’ 문화로 문화란 항상 그 사회의 변화에 따라 변주한다. 청소년 문화가 이런 사회적 변화에 민감하게 작용한다. 그러기에 그 나라의 주된 문화의 흐름을 좌우하는 것은 그래도 청소년의 톡톡 튀는 유동적인 문화가 화제거리가 되고 기성세대는 그 문화를 예의 주시하면서 문화비평에 펜을 들게 된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되고 각종 전자장비들이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음에 따라 청소년문화는 엄지족문화라고 할 정도로 손의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말없이 기계와 앉아 있어도 웃음을 자아내고 웃음이 없는 기계 앞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해 가는 청소년의 카타르시스 문화는, 이들의 마음에 이기주의, 고립주의, 폐쇄주의를 심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 지. 그러기에 타인의 문화를 인정할 줄 모르고 자기만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을 싫어하고 자기만의 소왕국을 형성하고 자기 스스로 살아가는 만인지하일인문화를 유지해가는 오늘의 청소년들은 이들이 주장하는 쉬쉬문화는 사라지고 냉소적인 워워문화로 치닫고 있는 것은 마치 몽유병환자가 아닌 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타인의 마음을 위로해 줄 줄을 아는 올바른 사고가 바로 배우는 청소년의 바른 가치관이 되어야 하는 데도 그것은 이미 인터넷 등 전자장비를 통해 기성세대의 가르침을 이론적으로 익혀 체험으로 이야기하는 기성세대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행위가 너와 나는 아는 것에서는 동격이라는 변주를 이들의 내면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닌 지. 너무 잘 아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많이 아는 체하는 깡통천재같은 발상도 요즘 학생들의 사고에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잘못이 있어도 그것을 웃어른 모르게 숨기고 싶어하는 초조감도 잘못을 범한 친구를 보호하려는 그런 아량도 보기 어렵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학교 급식에 관한 폭로전 같은 학내 문제를 확대시켜 학교폭력의 문제까지 싸잡아 학교의 교원을 징계하는 추세를 관조하노라면 학내 문제를 지나치게 사회화시켜 이제는 교사와 학생의 상관관계를 계약제와 같은 실리관계로 변질되게 만들고 있지 않나 싶다. 그렇지 않아도 인성지도가 학내에서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시점에 교사의 비행을 처벌하고 학생의 범행을 감옥으로 옮겨가는 추세를 보고 있노라니 격세지감을 느끼는 것 같아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흐르는 세월을 보며 슬픔을 자아내게 한다. 교사는 계약제로 학생지도는 교내경찰로 한국의 학교 현실에서 지금의 정부가 가장 두드러지게 잘 추진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쉬쉬’문화를 ‘워워’문화로 바꾸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잘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많은 한계를 안고 있다. 감싸지 못하는 폭로는 또 다른 폭로를 자아내게 하는 도미노 이론을 철저하게 야기시켰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라면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이제 교육부는 지금의 학교문화를 바로잡아 가는 올바른 길은 신임교사부터라도 계약제로 하고, 학생지도는 교내 상주경찰과 유기적인 관계를 도모하는 것이 새롭게 출발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 교사는 손을 놓고 지도자는 무사안일주의로 치닫게 된다면 그 결과는 역시 ‘워워’라는 냉소주의 문화를 벗어나지 못하지 않을까?
요즘은 수험생을 둔 학부모 한둘만 모여도 논술 이야기로 시끄럽다. 당장 2008학년도부터 '통합교과형논술'과 구술 시험이 전면 실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류를 반영하듯 얼마 전에는 한 고등학생이 만들었다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란 동영상이 인터넷을 강타해 수많은 학생들의 심금을 울린 일도 있었다. '통합교과형논술'이란, 글자 그대로 전 교과의 종합적 이해 능력을 평가하기 때문에 모든 교육과정에 나와있는 교과서를 독파해야만 쓸 수 있는 논술을 말한다. 흔히 대학별고사로도 불리는 이런 논술뿐만 아니라 여기에 내신과 수능까지도 잘 받아야만 하는 수험생의 처지에선 가히 죽음의 삼각형이라 불릴 만도 하다. 이러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다소나마 해소시키기 위해서 서울대는 2008학년도 논술시험 예시문제를 앞당겨 발표했다. 그러나 발표된 예시문제를 본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었다. 왜냐하면 보통 학생들 수준으로는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전문 지식을 요하는 고차원적인 문제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인문계열의 문제 몇 문항만 보도록 하자. 예시문항 1번은 새만금 간척사업과 동강댐 건설에 대한 정부 측 조사결과와 찬반논쟁, 초기개발 비용의 보전 문제를 겪는 회사와 정부 등에 관한 지문을 제시한 뒤 환경보전과 투자의 효율성 등의 선택 상황에서 수험생의 가치판단과 앞으로의 대책 등을 논술하라는 문제였고, 문항 2번은 권헌의 '묵매기(墨梅記)'와 이익의 '논화형사(論畵形似)'를 지문으로 제시한 뒤 조선시대 문인들이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상호 비교하고 이를 토대로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비교 감상토록 요구했다. 문항 3번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일제 시대 철도부설과 관련된 지문 등을 토대로 경부선과 남한강 인근 주민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을지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글을 쓰도록 요구하고 있었다. 또 황현의 '절명시', 김승옥의 '무진기행',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길' 등 문학작품을 소재로 작중회자의 고뇌하는 상황을 상호 비교하면서 수험생의 선택 방향을 묻거나 긴 지문을 요약하고 그 지문을 근거로 수험생의 생각을 논술토록 하는 문제까지 출제했다. 사실 위와 같은 논제들은 이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도 쓰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논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마저 부족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입장에선 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불안한 마음을 교묘하게 파고든 것이 바로 사교육 시장이다. 이미 사설학원에선 논술고액과외가 성행하고 시중 서점에는 검증조차 되지 않은 수많은 논술관련 서적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가히 논술 광풍이 불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불고 있는 논술 열풍은 과장된 측면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대학 측에서도 제시된 논제들에 대해 학생들이 완벽한 답을 써내리란 것을 그렇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주어진 문제들에 대해 학생은 어떻게 생각하고 이해하는지 수험생 나름대로의 해석과 창의적인 생각을 묻고 있다고 보면 정확하다.그런데도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주어진 논제에 대해 완벽한 지식을 나열해야만 좋은 논술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욕심을 내게 되고 그러다 보니 논술이 자꾸만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예들 들면 이런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우리 역사에 기여한 공로에 대해 논술하라는 문제가 나왔을 경우,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순신 장군은 민족의 영웅입네, 구국의 명장입네 하며 임진왜란에서의 승리와 노량해전에서의 비장한 최후까지 국사시간에 배웠던 내용을 모조리 떠올리며 열심히 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란 지식은 모두 동원하여 쏟아 붇고는 논술을 잘했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논술이 아니다. 왜냐하면 논술은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펼치는 글이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이순신 장군에 대해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진술하는 것이 바로 진짜 논술인 것이다. 따라서 일선 학교에서도 논술에 대해 우왕좌왕할 필요가 없다. 지금처럼 차분하게 교육과정대로 가르치고 그때그때 적절하게 독서를 유도하면 그만이다. 학자들은 논술을 구성하는 요소로 크게 세 가지를 든다. 이해력, 사고력, 표현력이 그것인데 현재로선 독서만큼 이 세 가지를 완벽하게 훈련시키는 방법이 없다고 이구동성 입을 모은다. 따라서 독서만 잘 시켜도 논술을 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나 정보를 모두 얻을 수 있다. 독서와 더불어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는 능력을 함께 길러주면 더욱 좋다. 좋은 문장의 종류와 예들은 국어교과서와 국어생활, 독서교과서에 다양하게 실려있다. 우리 속담에 흔히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듯, 간결하면서도 어법에 맞는 정확한 문장으로 쓰여진 글이 호평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평소 논술에 대한 대비책으로 토론수업 또한 매우 유익하다. 토론 수업은 학생 구성원들 간의 다양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어 창의력을 배양하는 데 아주 좋으며 21세기를 살아갈 민주시민을 기르기 위한 한 방안이 될 수도 있다. 학교에서 토론문화를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정착시키는 길은 학생들이 토론에 익숙해지도록 꾸준히 가르치는 것이다. 다시 하번 강조하건대 논술은 지금 사회 일각에서 떠는 것처럼 그렇게 엄청나게 어렵지도 절대적 시험도 아니다. 따라서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이런 시류에 절대 부화뇌동해선 안 된다. 사회가 아무리 야단법석을 떨어도 그저 지금처럼 뚜렷한 교육철학을 가지고 차분하게 교육과정대로 아이들을 가르치면 되는 것이다. 학교 공부에 충실하는 것이 바로 논술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학교 체벌 문제가 또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일부 몰지각한 교사들의 마구잡이식 체벌로 인해 또 다시 대다수의 선생님들이 언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정녕 무엇이 교육적인지를 떠나 폭력은 그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구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체벌의 대상이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 아이들이었기에 더 안타까웠다. 그 어린 아이들이 언론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일부 교사들에게 손으로 따귀를 맞거나 겁에 질려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은 체벌의 범위를 넘어서 폭력이라고 밖에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그 아이가 받은 상처와 아픔을 생각하면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우리 아이 혼 좀 내달라고요! 수많은 일선 학교 선생님들이 과연 '체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어느 정도까지는 허용되어야 한다고 답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부 학부모들도 어느 정도 범위 내에서는 체벌의 필요성을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되었을 때는 그 교육적 범위라는 것이 애매하게 작용하기 일쑤이다. 특히 학생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손상을 입었을 때는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필요한 경우에는 체벌이 이루어져야 함을 곧잘 역설하기도 한다. 물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앞서겠지만…. "우리 ○○이 공부 좀 제대로 하게, 말 듣지 않으면 회초리로 따끔하게 혼 좀 내어 주십시오." "○○이만큼 하면 무슨 회초리가 필요 있겠습니까. 열심히 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선 학교 현장에서 회초리로 아이들의 공부를 독려하거나 실제로 체벌을 가해 성적을 올리려고 혈안이 되는 선생님들은 계시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아이들의 성적에 관심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그렇게 해서 올라갈 수 있는 성적이라면 차라리 그냥 두는 편이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체벌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초임 발령을 시골의 종합고등학교로 받았다. 아이들로부터 받은 첫인상은 그야말로 교직에 대한 부푼 희망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어수선한 교실 분위기,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대다수 아이들, 곧잘 선생님들과 언쟁을 벌이는 아이들, 그야말로 아이들이 학생들로 보이지 않았다. 심심치 않게 몽둥이로 아이들이 맞는 장면을 교무실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내 맞는 아이들이 계속해서 맞는 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물론 필자가 맡고 있는 아이들로 예외는 아니었다. 눈에서 눈물이 날 정도로 따끔하게 혼을 내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실수를 범하거나 학교규정을 어기는 것이었다. "선생님 이놈들 때려봐야 별 효과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서 선생 아이들 지도하기 어렵지.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놔 둘 수도 없잖아. 그렇게라도 학교에서 잡아 주어야지, 그 아이들 그냥 두면 끝장이야." 선배 선생님들은 그런 식으로라도 지도해야 아이들이 빗나가지 않는다고 강조하시곤 했다. 하지만 몇 년 간 거듭되는 체벌에도 일부 아이들은 그저 그 체벌이 당연한 것 인 냥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렇지 않으면 체벌을 피하기 위해 온갖 거짓 수단을 꾸며 내는 등의 비합리적 언행만 일삼을 뿐이었다. 그렇게 몇 년을 교직생활을 보내고 체벌에 대한 회의를 안고 과감히 회초리를 버리게 되었다. 체벌은 체벌의 악순환을 낳을 뿐이다! 일선 학교 현장에서 이전보다는 확실히 체벌의 모습이 적어지고 있다. 물론 사회적인 현상으로도 볼 수 있지만, 선생님들의 의식 자체도 많이 바뀌어 가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예전과 같이 일부 몰지각한 선생님들의 강압적인 체벌은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물론 언론이나 방송에서 가끔씩 보도되는 일부 강압적인 체벌 현장을 보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들 때리기 시작하니까 그거 습관이 되더라고."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습관이라뇨!" '습관'이라는 말에 약간은 놀란 투로 선배 선생님에게 되묻게 되었다. "80년대만 해도 학교에서 체벌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거든. 서선생도 중·고등학교 다닐 때 그런 모습 많이 보지 않았나." "예, 많이 맞았죠. 제 잘못도 아닌데, 단체로 기압을 받거나 몽둥이로 맞은 적도 많죠. 하지만 그때야 선생님이 그렇게 하는 거면 당연히 받아들였지, 요즈음처럼 따지고 들 수 있었나요." "맞아, 그 때는 조금만 잘못해도 회초리를 들었지. 그런데 어느 순간 자꾸만 회초리에 의존하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되더라고…." 선배 선생님은 체벌의 도구로 사용했던 회초리의 추억 아닌 추억을 떠 올리면서 자꾸만 그런 체벌도구에 중독되다시피 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그것이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늦게야 깨달았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자신의 현재 모습에 만족해하시면서…. 자꾸만 방송에서 보도된 어린 아이의 겁에 질린 모습이 떠오른다. 그 조그마한 아이가 받은 상처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지난날 초등학교 저 학년 시절 한 선생님이 많은 아이들 앞에서 창피를 주고 질책을 한 바람에 서른이 넘도록 남 앞에만 서면 괜스레 자신감을 잃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 때나마 지난날 그 선생님이 자꾸만 불편하게 떠오른다.
최근 학교는 물론 온 나라가 사상 초유의 급식 사태에 몸살을 앓고 있다. 더구나 집단 식중독 사태가 식품업체로서는 브랜드 이미지가 높은 대기업이 관리하는 위탁업체라는 점에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노로바이러스'에 의한 식중독이라는 것 외에 감염경로나 책임소재를 속시원히 밝혀내지 못한 점은 아쉬운 면이다. 사고가 터지자 모두들 기다렸다는듯이 위생관리와 감독체계 부실, 이윤추구에 급급한 위탁급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며 학교급식은 직영 전환만이 대안이라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학교에서 급식을 직영체제로 전환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나름대로의 논리로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그렇다고 위탁급식 옹호론자는 결코 아님도 아울러 밝혀둔다. 다만, 각각의 문제점을 알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제주도는 학교급식을 100%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는 전국 유일의 시범 지역으로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급식지역이라는 격려를 받아왔음은 물론이다. 그러면 제주도는 집단 식중독 사고 등 학교급식의 문제점이 완전히 해결됐을까. 그렇지 않다. 매년 4~5건의 식중독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지역의 규모와 학교 수를 감안하면 오히려 더 높은 사고율이다. 학교 직영급식이면서도 똑같은 잘못이 나타난다면 급식의 문제가 다른데 있다는 말이다. 물론 직영급식, 위탁급식은 모두 장점과 단점이 있다. 직영급식 체제는 관점에 따라 나름대로 장점이 많을 수 있다. 우선, 학교장의 전적인 책임 하에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고, 학부모의 노력봉사를 포함해 재정적 절감효과가 있으며, 급식 운영상 문제점이 있을 경우 즉시 조치할 수 있다. 특히 학생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영양교육이나 식사예절 등의 식생활 교육을 할 수 있으며 학부모와 교사들이 배식에 관여하므로 보이지 않는 인성교육까지 이루어질 수 있다. 이 외에도 교육당국에서 시설비와 인건비 일부를 부담하고 지방정부로 부터 운영비를 일부 지원받음으로써 학부모의 급식비 부담을 다소 줄여줄 수 있다. 따라서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위탁업체와는 달리 양질의 식재료 사용에 따른 보다 균형 잡힌 영양식을 제공할 수 있고 위생안전과 관련, 문제점이 발생할 경우 즉시 개선조치가 가능한 점도 직영급식의 좋은 측면으로 꼽히고 있다. 이처럼 직영급식의 바람직한 면을 부각시키며 체제 변경을 유도하거나 이제는 아예 법으로 직영을 의무화하려는 추세다. 그러나 현실을 조금만 직시하면 직영급식만이 모든 급식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상은 다소 성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슨 제도이든 운영 방법 내지는 관리가 중요한 것이지 제도가 잘못되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직영이냐, 위탁이냐를 결정하기에 앞서 각각의 문제점을 꼼꼼히 짚어보고 대안을 세운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학교급식에서 직영체제가 나름대로의 많은 장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시할 수 없는 문제점 또한 적지 않다. 첫째, 모든 학교에는 영양교사는 물론 국가가 인정하는 조리사를 의무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총정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현행 교육부의 회계제도 하에서는 배치되는 영양교사 수만큼 수업담당 교사가 줄어 사서교사, 상담교사, 보건교사, 치료교사 등과 함께 학교현장에서 정원관리상 또 다른 갈등 요소가 될 공산이 크다. 둘째, 학교장 등 교직원의 책임이 지나치게 커진다는 문제점이다. 급식 사고 발생 시 관리자는 도의적 책임을 넘어 1차적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음식물 책임배상보험’ 등 각종 보험가입을 통한 위험에 대한 대비책이 갖춰진 대형 위탁업체와는 달리 위험에 무방비 상태인 학교장이나 행정실장 등은 사활이 걸린 부담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책임을 피하기 위한 또 다른 부작용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셋째, 직영체제라고 해서 반드시 양질의 식재료만 사용하거나 예산이 크게 절감된다는 보장이 없다. 기업이윤을 증대시키기 위해 식자재를 공동으로 구매하거나 가격 급등에 대비한 저장 관리가 가능한 대형 위탁업체와는 달리 학교는 이런 면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격 변동에 대처하기 어렵다. 공동 전처리시스템, 업무 분업화, 식단 개발, 서비스 개선, 첨단설비ㆍ시설 활용 등 업무 효율성을 위해 첨단 식품산업기술을 활용하고 적용하는 측면 또한 학교는 전혀 고려할 수 없다. 넷째, 가장 큰 문제는 직영체제로의 전환에 따른 예산 문제다. 현재 전국에는 초등학교의 99.6%, 중학교의 75.2%에 직영급식을 하는 반면 고교의 경우 직영급식 비율이 6.3%에 불과하다. 직영으로 전환하는 데 학교당 대략 시설개선 등 2억 원씩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따라서 직영으로의 전면 전환은 범국가적 차원 아니면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다섯째, 급식관련 시설이나 지원을 받는 일부 인건비를 제외한 급식 종사원의 인건비 추가 등이 결국 학부모에게 커다란 부담으로 돌아갈 수 있다.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최소한의 시설 외에는 투자를 피함으로써 안전과 급식의 질 저하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인건비도 절감하기 위해서 인력 채용을 최소화 하면 학생들에게 기호도에 따라 다양한 식단을 제공할 수 없고, 결국 학부모의 지원을 받거나 전문성이 없는 아르바이트나 학생까지 동원함으로써 급식 서비스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여섯째, 원재료가 오염된 상태에서는 학교급식에서 집단 식중독을 방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안전하고 품질이 좋은 우수 농산물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식재료의 가공과 안전관리 기술에 대한 노하우가 학교에는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과연 학교가 전문업체 이상으로 관리ㆍ유통 단계에 대한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 문제다. 실제로 직영학교에서 식재료는 ‘최저가입찰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몇몇 업체가 담합하여 응찰함으로써 서로 돌아가며 낙찰되거나 경쟁력을 갖춘 몇몇 업체가 수십 개 이상의 학교를 독과점 하는 현실을 뻔히 보면서도 현행법상 학교는 어쩔 도리가 없다. 이 외에도, 위생사고가 발생할 경우 해당업체와 관련자를 제재하기가 어렵다거나 급식관련 업체의 로비활동, 횡포 등에 학교가 일일이 대응해야 하는 것도 일이다. 학교장이 학력신장이나 학교운영 등 고유 업무보다는 사고예방을 위해 급식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기현상’이 벌어질 것이며, 급식사고가 나더라도 학교 내에서 은폐 또는 축소되는 경우도 우려된다. 결론은 이렇다. 직영급식이든 위탁급식이든 나름대로의 장점과 단점이 있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단점은 없애고 장점을 신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 정부나 교육당국은 직영이냐 위탁이냐에 지나치게 집중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질 좋은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인지, 올바른 식생활 지도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국민 식생활 개선에 기여하고 있는지, 교육의 일환으로 학교급식이 운영되고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중장기적으로는 학교급식을 전담할 수 있는 전문기관을 설립하는 것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아침 7시가 채 되기 전에 교문을 들어서니 교실마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습니다. 교실마다 불이 켜져 있다고 하니 당직하신 오 주사님께서 아침 6시가 되기 전부터 문 열어 달라고 문을 두드린다고 하더랍니다. 학생들의 기말고사 전쟁을 치르는 모습을 실감할 수 있는 아침입니다. 어제 시험 첫날 오후, 무용을 가르치시는 선생님께서 제9회 울산무용제 팜플렛과 초대권 두 장을 가져 왔네요. 토요일 오후 7시 울산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해프닝’이라는 현대무용을 선보인다고 하면서요. 그리고는 따뜻한 녹차 한 잔을 가져와 차를 마시면서 ‘해프닝’에 관한 대화를 잠시 나눴는데 무용선생님의 진면목을 보는 듯했습니다. 무용의 전문가라 방학 때만 되면 강사로 초빙되고 전국체전 때 팔선녀 지도, 개막식 무대공연 지도 등을 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 이상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팜플렛에 ‘해프닝’ 제목 하에 선생님의 사진과 함께 ‘안무 정○○’라고 되어 있어 안무가 무슨 뜻인지 물었더니 춤동작을 만들고 지도하는 사람이라고 하네요. 정 선생님께서 직접 춤 내용을 구상하고 16명의 무용수들에게 역할분담을 하고 춤을 가르치고 하면서 약 두 달 동안 연습을 해 ‘해프닝’이라는 현대무용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출연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자들인데 서울에서 현재 대학 다니고 있는 학생들, 무용학원 강사들로 16명의 무용수들이 시험을 앞두고서도 서울에서 울산에 왔다갔다하면서, 학원일도 뒤로한 채 한 자리에 모여 ‘울산춤포럼’이라는 무용단을 만들어서 준비를 했다고 하네요. 춤 내용은 허무를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복잡한 삶을 일종의 ‘해프닝’으로 해석해 일상의 삶과 내면세계를 색다른 관점에서 조명한 것이라고 합니다. 현대창작 ‘해프닝’은 각자의 삶 속에서 모양을 달리해 다가오는 슬픔, 고독, 갈등의 무거운 이미지를 때론 활기차고 때론 박력 넘치는 몸짓에 담아 현재에 얽매여 앞으로 내달리지 못하는 자들의 마음에 신선한 자극제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든 거라네요. 주제 선정도 좋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총 4개의 에피소드로 꾸며지며 첫 번째는 ‘무의식, 무의미 일상의 풍경’, 두 번째는 ‘갈등의 태동’, 세 번째는 ‘갈등의 시간’, 마지막 네 번째는 ‘자각과 인식의 시간’ 주제로 춤사위를 펼치는데 정 선생님은 ‘울산의 현대무용을 전국에 알리고 싶은 욕심으로 작품을 통해 관객 스스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차분히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두 달 전 공연 때도 초청을 받았는데 사전 약속이 있어 참석하지 못해 미안했었는데 이번에도 또 사전 약속으로 참석치 못해 안타까움이 더합니다. 이번 기회에 참석해 현대무용에 대한 이해의 폭을 좀 넓히고 선생님에게 조금이라도 격려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할 뿐입니다. 정 선생님의 작품구상 능력이 이렇게 탁월한 줄 전에는 전혀 몰랐었는데, 이번에 팜플렛 내용을 읽어보고 소설가나 극작가만이 할 수 있는 대본구상능력을 소유한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무용을 사랑하는 열정, 작품 내용에 따라 어떤 때는 어둡고 밝은 춤을, 어떤 때는 빠르고 느린 춤을 구상하는 것이며, 무용수와 남자무용수의 몸짓향연이 군무 사이사이 펼쳐져 화합의 가능성을 살짝 맛볼 수 있도록 구상하는 능력이며, 내용 줄거리에 따라 음악을 편집하는 음악 편집능력까지 소유하고 있구나 하는 점을 알게 되네요. 정 선생님은 평소에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정적인 어려운 문제로 고민하는 학생, 시험성적으로 인해 갈등하는 학생, 부모 잃고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땀을 흘려가며 무용을 통해 힘을 실어주고 활기차고 박력 넘치게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모든 고민과 고통과 슬픔과 갈등 속에 살아가는 기죽은 학생들에게 활기차고 진취적인 군무와 같이 쭉쭉 뻗어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정 선생님이야말로 정말 위대해 보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바쁘신 중에 있는데도 담임이 아니지만 야자감독에 함께 동참을 해 담임선생님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학생들에게 용기를 줍니다. 무용만 사랑하는 예술인이 아니라 무용 을 통해 우리의 위축된 삶을 자극하고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도 톡톡히 해내며 틈틈이 밤 10시까지 학생들의 야자감독에도 함께 참여하고 있으니 정말 존경할 만합니다. 우리학교에 이렇게 능력 있고 열정적인 무용선생님이 계신다는 게 우리학교의 보배요,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통사고만 아니었다면 직접 ‘해프닝’의 현대무용에 참여하고 싶다고 하는 정 선생님! 한 작품을 만드는데 엄청난 경비가 드는데도 자비를 들여가면서, 돈이 되지 않는데도 현대무용을 사랑하기에, 학생들에게 용기와 힘을 실어주기 위해, 어둡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밝고 활기차게 살아가도록 하는 정 선생님! 하루 빨리 교통사고 후유증에서 벗어나도록 하시고 울산현대무용이 전국수준에 이를 만큼 한 차원 높여주시고 어둡고 힘들게 살아가는 학생들이 무용교육을 통해 밝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학교무용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어주셔야죠. 7월 1일의 현대무용 ‘해프닝’이 좋은 반응 얻기를 기대합니다. 정 선생님, 파이팅 !!!
“새터민 학생, 이제 걱정 없이 공부해요” 지난 3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새터민(북한이탈주민) 청소년들의 남한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한 중·고 통합 특성화 학교 한겨레중·고가 개교했다. 학교법인 전인학원(이사장 박청수)이 설립하고 교육부가 시설비를, 통일부에서는 운영비를 지원했다. 곧 다가올 새터민 1만명 시대를 앞두고 이 학교의 곽종문 교장을 만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 한겨레 학교의 개교 의미, 새터민 청소년들의 남한사회 적응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통일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이념과, 문화 격차를 줄이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다음세대를 길러낼 교육”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새터민 학생들은 늘어나는데 정부지원은 갈수록 줄어 고민”이라고 우려했다. -한겨레 중·고는 어떻게 설립하게 됐나요? “2003년에 새터민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관련 기관, 학자들 사이에서 학교 설립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당시에 한국에 입국하는 새터민들 중 청소년의 비율이 20% 정도로 높았는데 이들의 남한사회 부적응 문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습니다. 나이가 어려 적응이 빠른 초등학생은 취학률이 100%에 이르지만 중학교는 70%, 고등학교는 취학율이 10%밖에 안되는 실정이어서 이들을 전담하는 학교가 절실했습니다. 현재도 8000~9000명 정도로 추산되는 새터민 중에 1200~1300명이 청소년이어서 이들의 교육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학교 설립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경기 이천 율면에 학교를 설립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혐오시설로 생각해서인지 그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거셌어요. 때문에 주민들의 반대가 적고, 하나원과 가까운 곳을 찾아 안성시 죽산면으로 옮기게 됐죠. 하지만 이곳에서도 반대하는 주민들이 있어 학교 설립이 1년 넘게 보류됐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설립이 계속 지연되면서 지난해에는 관련 부처에서 예산을 절반으로 삭감했습니다. 처음에 280명 규모의 학교였다가 지금은 140명 규모의 학교로 설립되는 상황입니다.” -아직 학교가 완공된 것은 아니지요? “지금 수업을 하고 생활하는 곳은 임시 학교입니다. 처음에는 학교법인이 학교 부지를 마련하면 교육부에서 시설비를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해 특별법을 만들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관련 법규에 따라 학교가 먼저 지어져 인가를 받아야 교육부의 시설비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지어진 학교는 법이 허용한 최소한의 기준만 충족시킨 규모이고, 내년 3월 정식 개교를 할 예정입니다.” -280명 규모에서 140명 규모로 예산이 줄었는데 앞으로 학교 운영하는데 문제가 없을까요? “예산을 삭감할 당시 두 달 정도 일시적으로 새터민의 입국이 줄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죠. 임시 학교 생활이라 올해는 40명 정도의 학생수를 유지하려고 하는데 현재 학생 증가 추세를 보면 연말에는 150명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저희 학교가 중·고 통합학교인만큼 6개 학년이 모두 누적되면 400명 규모의 학교가 될 것 같은데, 학교는 현재 140명 규모로 짓고 있는 실정이죠. 남한 학생들은 교실이 부족하면 다른 학교로 보내면 되지만 이 학생들은 다른 학교로 보낼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정책 판단이 합리적이지 못했죠.” -한겨레중·고 개교가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지금까지는 새터민의 사회적응을 위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대북지원사업은 해왔지만 국가가 정책적으로 국고를 들여 새터민을 위한 학교를 세운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습니다. 정부가 이제는 그들을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보살피겠다는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한겨레중·고 개교는 통일을 준비하는 공식적인 첫 발을 내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겨레학교에서 새터민 학생을 가르침으로써 통일을 대비하고 남북통합교육의 기초 작업도 할 수 있어 여러 가지로 발전적인 출발입니다.” -새터민 청소년들이 남한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같은 민족이지만 서로의 언어가 너무 달라 의사소통이 잘 안될 때가 많고, 사회체제와 문화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또 새터민 학생들이 탈북해서 한국에 입국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생긴 심리적인 상처는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해요. 아울러 탈북 기간 동안의 학습 공백이 크고, 북한에서도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인민학교 중퇴자가 40%가 넘을 정도로 학습 결손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런 이들이 3개월 동안의 하나원 적응교육만으로 남한사회에 제대로 적응하길 바라는 것은 그저 바람일 뿐입니다.” -한겨레 중·고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일단 북한이탈주민이 국내에 입국하면 조사를 거쳐 하나원에서 3개월간 남한사회 적응 교육을 받게 됩니다. 한겨레학교는 하나원을 퇴소 하는 학생들 중에 신청을 받아 입학하게 돼요. 현재 34명의 새터민 학생, 30명의 위탁교육생들을 17명의 교사가 지도하고 있습니다. 저희 학교는 국고로 지원돼 학생들이 기숙사비와 학비가 면제되고 일반 학교와는 달리 순수하게 새터민 학생들의 수준과 학습능력을 고려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 가장 결정적인 특징은 일반학교와는 달리 초월반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학력심사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학력을 인정받아 졸업이 가능하고, 일반학교에 편입도 가능합니다. 이를 위해 방학도 없이 1년 3학기제로 운영되는데 최소한 중학교 2년, 고교 2년 총 4년이면 정규 교육과정을 마칠 수 있습니다.” -새터민 학생들을 위한 교육과정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교육과정 중 40%정도 국민공통기본과정을 배웁니다. 이것은 남한 학교와 공부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죠. 이밖에도 특기적성·직업능력 교육이 30%, 심리치료 및 사회적응 교육이 30%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방학이 없어 학생들의 학습량은 많습니다.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선생님과 같이 공부하고, 또 매주 수요일과 주말에는 현장체험학습을 갑니다. 남한 학생들과의 학력차 때문에 기초학력을 다지기 위해 6개 학년을 12단계로 세분화 해 맨투맨 집중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남한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를 경험 할 수 있는 현장학습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옳은 이야기입니다. 공부도 공부지만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보통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단편적인 지식보다는 삶과 배움, 자신의 생활이 함께 어우러지는 교육이 이 아이들에게는 절실하죠. 새터민 학생들은 대부분 남한사회의 부유한 상위계층에 대한 환상을 많이 갖고 옵니다. 꿈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현실을 정확히 바라봐야 해요. 현장학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 농촌, 서민 등 여러 계층의 생활을 경험하게 합니다. 서울 포이동의 판자촌을 찾는다거나 소록도 봉사활동을 다녀오기도 합니다. 현장학습 후에는 서로 느낀 점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이후 분석해 보고서도 제출합니다. 무엇이든 정확히 보고 분석하는 능력을 기르는 훈련이죠.” -새터민 학생들을 교육하시면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새터민 학생들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의욕이 대단하죠. 그런 아이들이 저는 너무 매력 있어요. 조금만 도와주면 얼마든지 우리 사회의 훌륭한 인재로 자라날 것입니다. 또 이들이 가지고 있는 통일에 대한 절박함은 우리의 통일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을 교육하시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예산 부족 문제입니다. 교육자로서 학교에 들어오겠다는 학생들을 막을 수는 없어요. 그리고 이들은 맨투맨식 집중교육이 필요해 남한의 일반 학교보다는 예산이 더 많이 듭니다. 얼마 전에도 학교 운영비를 담당하고 있는 통일부에서 예산을 절반 가량 삭감한다는 연락이 왔어요. 계속 늘어나는 아이들과 줄어드는 예산을 가지고 학교를 어떻게 운영할지 고민입니다.” -한겨레중·고에서 올해 계획하고 있는 일들을 소개해 주세요. “새터민 아이들의 교육을 맡다 보니 이들의 모든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 학교홈페이지와 전화를 통해 상담할 수 있는 ‘새터민 상담센터’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사들이 누구든, 어떤 내용이든 상담을 하고 있어요. 새터민 뿐 아니라 이들을 돕고 싶어 하는 분들도 상담이 가능합니다. 정확히 알아야 도와줄 수 있거든요. 또 ‘통일문화형성을 위한 시범학교’도 운영할 예정입니다. 이 프로그램에는 대도시, 중·소도시, 농·어촌, 인근 안성의 학교, 대안학교 등 각각 2개교씩 총 10개교가 참여하는데 청소년 또래 문화교육, 사회 적응 도우미 학생 간 교류 등을 통해 남북한 학생들이 서로 문화를 바꿔서 이해해보고 공통으로 통일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아직도 새터민에게는 더 많은 정보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간단한 실수가 평생을 어렵게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의료보험의 개념을 몰라 병을 키우기도 하고, 거주지 이전이 안되는 것을 모르고 직장을 따라 이사를 해 집을 잃기도 합니다. 또 이제는 우리도 자세를 바꾸고 통일을 위한 준비를 해 나가야 해요. 이를 위해서는 학교에서도 올바른 통일교육을 해야 합니다. 지금 세대가 바라보는 통일은 막연하기만 해요.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미래를 제시하는 통일 교육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 이상미 smlee24@kfta.or.kr
*임청각 전경* 최효찬 | 경향신문 기자 "내 자식을 왜놈 종이 되게 할 수 없다" 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다보면 사람의 욕심이 끝없음에 절망한다. 땅을 원하는 대로 차지할 수 있다는 말에 세상을 다 가진 듯하지만 욕심으로 인해 돌아오는 것은 허무한 죽음뿐이다. 그렇다면 명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재산인가 자긍심인가. 과연 명가의 자존심은 수천억대의 재산보다 더 값어치 있는 것일까. 명가에서 가장 위대한 유산은 다름 아닌 자긍심이다. 아마도 위기에 처한 국가를 위해 재산뿐만 아니라 자신마저 버리는 것보다 더 고귀한 것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억만금을 상속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유산일 것이다.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고성 이씨 석주 이상룡(1858~1932) 가문은 서슬 퍼런 일제치하에서 일부 명문가 자녀들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명가의 전통을 잇고자 할 때도 척박하고 살벌한 간도에서 민족의 고난을 함께 해왔다. 석주는 삭풍이 몰아치던 1911년 1월 5일, 52세에 전 가족을 데리고 망명길에 올랐다. "공자, 맹자는 시렁위에 얹어두고 나라를 되찾은 뒤에 읽어도 늦지 않다"는 것이 망명의 변이었고, 나라를 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를 새기고 걸음을 재촉했다. 석주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던 것이다. 이에 앞서 의성 김씨 가문으로 석주의 처남 김대락이 만삭 임부인 손녀손부를 포함해 가신들을 이끌고 1910년 12월 24일 고향을 출발해 압록강을 건넜다. 의성 김씨는 일송 김동삼과 김대락의 아들 월송 김형식 등 수많은 항일독립운동가를 배출한 항일명문가이다. 또 12월 30일 우당 이회영 6형제들도 전 가족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다. 이들이야말로 한국판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명문가들이다. 석주는 1911년 1월 27일에 신의주에 도착하여 압록강을 건너기에 앞서 비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시를 지었다. 旣奪我田宅(기탈아전택) 이미 내 논밭과 집 빼앗아 가고 復謀我妻努(복모아처노) 다시 내 아내와 자식을 해치려 하네 此頭寧可斫(차두녕가작) 이 머리는 차라리 자를 수 있지만 此膝不可奴(차슬불가노) 이 무릎을 꿇어 종이 되게 할 수 없도다 "내 아내와 자식을 왜놈 종이 되게 할 수 없다"는 석주의 이 시 한 구절에서 올곧은 선비정신, 그 가족 사랑이 온몸으로 전해져온다. 내 아내와 자식은 비단 석주의 처자만 뜻하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민족 전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선조를 두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후손들은 행복하지 않겠는가. 석주는 1910년 한일합방이 강행되자 서간도 망명을 결심하고 사당에 나아가 이를 고하였다. 그는 독립이 되기 전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의로 조상의 위패를 땅에 묻었다. 또 망명에 앞서 집안의 노비들에게는 보상금을 지급하고 방면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노비방면은 안동의 양반가에서는 흔치 않는 일이었다. 흔히 유림이라고 하면 보수주의자, 전통고수주의자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석주와 같은 일부 혁신 유림세력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중심에서 독립운동이나 사회변혁의 주도세력으로 역할을 했다. 석주는 고성 이씨 17대 종손이며 임청각(1519년 건립된 것으로 보물 182호. 안동시 법흥리 20번지)의 소유주였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석주는 경제적 풍요와 종손으로서의 권위를 보장받은 사람이었지만 현실에 안주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고난의 길을 자처했고, 일제의 국권침탈에 대항해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실천적 지성이었다. 오히려 그는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고난의 길을 자처했고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내며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석주는 1932년에 미처 조국독립을 보지 못한 채 간도에서 사망하고 그 아들인 이준형 마저 1942년에 자결로 일제에 저항했다. 독립투쟁의 불씨당긴 '호모 노마드' 50대의 망명객 석주 이상룡은 근대 최초의 '노마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대대로 삶의 터전인 안동 임청각을 홀연히 떠나 서간도로 망명의 길에 올랐다. 그는 국가적인 위기 앞에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불안정한 삶을 선택해 망명객을 자초한 것이다. 망명지인 서간도에서조차 일제의 탄압을 피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면서도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그런 석주의 삶은 파괴와 창조를 거듭하는 21세기 인간형으로 꼽히는 '호모 노마드'를 100년 앞서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이러한 망명생활을 통해 보수적인 유림의 낡은 틀을 깨고 나와 혁신 유림으로 재탄생하면서 국난극복기에 변혁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던 것이다. 노마드(nomad)는 '유목민', '유랑자'를 뜻하는 용어지만,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는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철학적 개념인 '노마디즘'으로 개념화했다. 자크 아탈리도 그의 저서 에서 오늘날 세계는 5억 명 이상이 이민자, 망명객, 이주노동자 등으로 노마디즘이 주류로 부상했다고 주장한다. 자크 아탈리는 "노마드는 인류 역사와 문화 전체를 역동적으로 창조한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석주 이상룡은 의병운동을 주도하면서 노마드적 삶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전통 유림세력들이 자신의 고향에 안주하면서 정주민적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을 때에 일제에 맞서 실천하는 지식인, 실천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진실은 앎의 차원이 아니라 바로 실천의 차원인 것이다. 앎 그 자체로 머물러 있으면 그것은 공론(空論) 혹은 허위의식에 불과하다. 앓을 실천으로 바꿀 때 진실은 비로소 그 모습을 나타내며 역사 속에서 구체화되는 것이다. 체구는 작았지만 호연지기 기상이 넘쳤던 석주는 한때 합천 가야산에서 의병활동을 했는데, 오합지졸과 다름없는 의병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독립운동 및 독립군기지 건설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고의 전환'을 행한다. 이어 석주는 유교적 전통사상에서 깨어난 안동의 혁신유림들과 함께 근대적 민중계몽교육을 전개한다. 신교육을 주장하며 안동지방에서는 처음으로 현대식 교육기관인 협동학교를 설립한다. 서간도로 망명한 이후에는 신흥학교(신흥무관학교의 전신)를 건립하여 국내와 그 곳의 유능한 청년을 모아 문무겸전(文武兼全)의 신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는 일제와의 독립전쟁을 수행할 무관교육과 민족운동의 전위가 된 인재의 양성인 것이었다. 석주가 서간도에서 독립운동과 함께 동포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교육계몽운동도 펴나갔던 것은 석주 선대로부터 대물림되어 내려 온 문필중시의 가풍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공부 시켜 임청각 사람들에게는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공통적인 덕목이 있는데 그 첫째가 학문과 교육에 앞장서는 학풍이다. 석주가(家)는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는 앞장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다. 위기 때 호연지기를 실천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다름 아닌 자녀교육의 전통이 있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녀교육에 소홀하지 않았던 것. 그래서 500여 년 동안 대대로 서첩과 문집을 내는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석주 가문은 안동에 정착한지 500여 년, 20대에 걸쳐 과거에 합격해 벼슬길에 나아간 이는 병조정랑을 지낸 이후영 단 한명에 불과했다. 이는 엄청난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임청각은 안동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명가에 속하지만, 과거를 통해 벼슬길에 오른 이가 500년 동안 단 한명에 불과하고 관직도 높지 않았던 것이다. 정신을 중시하는 호연지기 가풍 석주가에는 아직도 전설적으로 내려오는 가정교육 에피소드가 있다. 석주의 큰아들 이준형은 간도에서 독립운동의 와중에도 며느리에게 직접 공부를 시켰다. 출산 후 몸조리를 할 때를 이용해 며느리에게 꼭 필요한 덕목을 와 등에서 뽑아 한문공부를 시켰다. 시부모가 며느리를 직접 교육하는 것은 집안의 오랜 가풍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또 이준형의 아들 이병화는 한국전쟁 당시 충남 아산에 피신 중에도 스무 살 전후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글을 가르쳤다. 현재 중앙중학교 교장인 이범증은 이병화의 여섯 째 아들로 그때 부친에게서 천자문을 배웠다. 이범증 교장은 중학교를 마치고 진학을 못해 1년 동안 농사를 지을 때 모친에게 맹자를 배웠다고 한다. 이와 같이 임청각 종손들에게 교육은 첫 번째로 중요한 덕목이었다. 학문에 힘써온 전통을 이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제에 항거하면서도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문제가 집안의 제일 큰 과제였다. 이병화의 부친 이준형은 일제에 항거해 자결을 하면서 종손이 될 손자의 교육문제를 유언으로 남겼다. "종손의 학업은 비록 전답을 줄이고 재물을 쏟아 부을지라도 중도에 그만두지 말아라." 일제는 독립운동가 집안이라며 온갖 압력을 행사해 종손이 중학교에 다니는 것조차 막았다고 한다. 이병화의 장남 이도증은 안동에서 공부를 못해 결국 만주로 가 하얼빈중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명문가의 정신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다산은 3대에 걸쳐 의원이라야 약에 효험이 있다고 했고, 또 3대에 걸쳐 글을 읽어야 다음에 제대로 된 문장이 나온다고 했다. 그만큼 명문가를 만들고 유지하기란 쉬운 게 아니다. 그래서인지 석주 이상룡과 그 자손들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오직 한 가지 게을리하지 않은 게 바로 학문과 교육이었다. 둘째, 가문보다 국가를 위해 떨쳐 일어나는 호연지기 가풍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개인이나 가문의 안위보다 국가의 안위가 먼저였다. 임청각은 임란이 일어나기 73년 전인 1519년에 지어졌는데, 정유재란 때는 이곳에 주둔한 명군에게 군량미를 지원했고(선조는 공조참의 벼슬을 내림) 의병장으로 3부자가 전사한 고경명의 장남 고종후의 부인이 바로 임청각의 딸이었다(고경명은 임란이 일어나기 1년 전에 임청각을 다녀가면서 이곳에 '제임청각(題臨淸閣)'이라는 시현판을 남겼다). 임란이후 수백 년을 지난 후에는 3대에 걸쳐 항일 운동가를 배출했다. 석주는 서간도로 가기 전에 해인사 등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데 일본은 이런 임청각의 기운을 말살하기 위해 훼손에 앞장섰다. 임청각의 일부 집을 허물어 중앙선 철길을 내 현재는 67칸만 남아 있다. 셋째, 재물보다 정신을 중시하는 가풍이다. 임청각의 유품을 보면 서책이 유난히 많다. 또 선조들의 숨결이 묻어있는 유품들 가운데 벼루와 거문고 등을 소중히 여겼다. 그러나 후손들은 이를 개인이 소장하지 않고 국가 등에 기증했다. 고려대 중앙도서관 '석주문고'에 기증되어있는 임청각의 서적들은 모두 395종 1309책에 이른다. 1973년에 기증할 당시 고려대 김상협 총장이 4천만 원을 보상하겠다고 하자 후손인 이범증은 등은 "조상의 정신적인 유산을 팔아먹을 수는 없다"면서 거절했다. 당시에도 이범증은 단칸방에서 사는 등 어려운 형편이었다. 오늘날 다시 부활하는 석주의 집안 안 씨(顔氏) 가훈에서 말하듯이 후손에게 재물을 남기면 십년의 재산이 되는 반면에 지혜를 가르치면 백년의 재산을 물려주는 것과 같다고 한다. 임청각 후손들은 선대의 독립운동으로 인해 고난 속에서 현대사를 살아왔다. 직계 후손들은 석주의 증손자인 이항증, 이범증 형제 등이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부분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러시아나 북한 등지에서 귀국하지 못했다. 하지만 선대들이 뿌려놓은 발자취는 결코 이들의 가슴속에서 사라진 게 아니다. 후손들은 선대들의 고귀한 희생을 바탕으로 다시 우뚝 설 날이 오지 않을까. 소설 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은 자긍심을 먹고 사는 게 얼마나 인간적인 긍지를 지니는 삶인지를 역설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준다. "그(조찬하)의 의식 속에는 조 씨 가문을 묻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지 모른다. 형, 그 인간성에 대한 증오감은 혈통에 대한 증오감으로, 나라를 강탈한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은 조 씨 가문의 치욕스러움은 혈통에 대한 열등감으로, 찬하는 가문을 묻어버리고 말살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결국 그는 집안을 매장하고 만 것이다." 임청각의 교훈은 역설적으로 교육을 많이 받아 해방이후 많은 인물을 배출한 다른 어느 명문가보다 더 후손들에게 정신적인 유산을 많이 물려준 것은 아닐까. 고성 이씨 대종가를 이끈 석주의 리더십은 한국적인 '유교적 리더십'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군사부일체의 전통적 덕목에 따라 석주는 망국의 그림자가 드리우자 가문의 보존을 뒤로한 채 오직 조국을 위해 리더십을 행사했다. 석주의 리더십은 단순히 전통지향적인 리더십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집안사람들에게 강제적이고 독단적으로 권한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지만, 가족의 구성원들은 그의 권위에 자발적으로 동참했다. 석주를 이어 아들과 손자 3대에 걸쳐 독립운동의 신산한 길을 걸은 데서 이를 증명한다. 독립운동 서훈자만 3대 9명에 이른다. 이렇게 볼 때 석주의 리더십은 또한 변혁적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하겠다. 가족 구성원에게 독립운동과 조국광복이라는 비전공유를 통해 동기부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몰입도를 높여 결과적으로 3대에 걸친 독립운동사의 큰 획을 그을 수 있었다.명문가의 정신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은 옛글을 인용하면서 3대에 걸친 의원이라야 약에 효험이 있다고 했고, 또 3대에 걸쳐 글을 읽어야 다음 세대에 제대로 된 문장이 나온다고 했다. 그만큼 명문가를 만들고 유지하기란 쉬운 게 아니다. 그래서인지 석주 이상룡과 그 자손들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오직 한 가지 게을리하지 않은 게 바로 학문과 교육이었다. 특히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배운 바를 실천하는 학행(學行)의 전통이 있었다. 임청각은 현재 전통문화체험장으로 개방돼 있다. 일제가 중앙선 철로를 개설하면서 독립운동을 하는 이 집안의 정기를 끊으려 마당에 철길을 냈다. 기차소리가 임청각을 뒤흔들지만 자녀들과 함께 하루쯤 묵으면서 자녀교육과 함께 나라사랑의 참의미를 되새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임청각을 다녀간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방명록에 "이상룡 선생님의 애국정신을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또 종민이네 가족은 "먼 훗날 힘들고 어려울 때 지금의 이 시간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길 바라며"라고 썼다. '자긍심'을 일깨워주는 훌륭한 자녀교육의 장소가 아닐 수 없다.
박경민 | 역사 칼럼니스트 이민족에 의해 다시 혼란 속으로 통일 한(漢)제국 이래 삼국시대를 거쳐 다시 중국을 통일한 사마염(司馬炎)이 국호를 진(晋)이라 한 이유는, 물론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지금까지 중국사를 통해서 나온 국호 가운데 춘추시대 제후국 중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였던 '진(晋)'의 유사 국호라도 붙이는 것이 정통성 확보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강남에서 마지막으로 버티고 있었던 오(吳)나라도 통합함으로써(서기 280년) 재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지만 이번에는 진나라[西晋]도 이민족인 흉노에게 멸망당하여 중국은 기나긴 혼란의 터널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는데, 무제 사마염은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지 즉위하자마자 자신의 일가친족들을 제후로 봉하여 영지로 보내 권력을 분산시켜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무제가 죽자 처음부터 진나라 황실에 대한 충성연습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제후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를 '팔왕의 난'이라 하는데, 10년 사이에 실로 천문학적인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이 시대야말로 중국 역사를 통해서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으며,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장이었다. 북적(北狄)은 동이(東夷)와 민족적 구별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중국인들은 같은 민족을 이렇게 욕설적인 명칭으로 갈라놓았다. 소위 흉노라 일컬어지는 민족은 포괄적인 의미로 우리 한민족(쥬신 : 조선(朝鮮)의 이두식 한문표현, 단군이 세운 나라를 쥬신이라 부름)의 선민족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동북아시아의 터프가이 흉노는 아주 흐뭇하였다. 기회를 엿보고 있던 그들에게 마침내 때가 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팔왕의 난'을 일으킨 제후가 흉노의 세력을 끌어 들였는데 이번에는 한족의 전통적인 이이제이(以夷制夷 : 동이족으로 동이족을 제압한다) 책략이 아니라, 거꾸로 이이제화(以夷制華 : 오랑캐로 한족을 제압한다)라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책략을 썼던 것이다. 그때 흉노를 통치하던 유연(劉淵)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군대를 몰고 들어와 나라를 강탈하고(315년) 전조(前趙)를 세웠는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유연(劉淵)이 멸망한 한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흉노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군대를 끌고 나왔다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한족도 아니고 더구나 한나라 황실의 유씨(劉氏)가 아니다. 일찍이 한나라 고조는 흉노에게 조공을 바치는 화친정책을 썼는데, 한나라 황실과 통혼한 흉노인이나 기타 공이 있는 사람은 '유'라는 성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북방민족의 각축장이 된 중원 한편 졸지에 나라를 잃은 진의 귀족들과 백성들은 서기 317년 강남의 건업을 수도로 하여 새 나라를 세웠는데, 이를 동진(東晋)이라 부름으로써 흉노에게 멸망당한 서진(西晋)과 구별하고 있다. 우리 민족과 근원적 뿌리를 같이 하는 북방민족의 중원진출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흉노가 선두 타자로 홈런을 치고 나가자, 이번에는 나머지 민족들이 최소한 안타 내지는 운이 좋으면 장외 홈런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등판, 속속 진루하여 고구려와 형제국이라 볼 수 있는 북위(北魏)가 화북 일대를 통일하는 439년까지 100여 년간 서로 다투면서 10여개의 나라가 난립하는데, 이것이 바로 '5호 16국 시대'이다. 혼란해진 서진을 노리고 앞에서 이야기한 흉노의 유연이 전조(前趙)를 세우자, 온갖 나라 이름을 총 등장시킨 국호 엑스포와 같은 상황이 북방민족들의 중원 진출로 100여 년이 넘도록 혼전양상을 보이다가 전진(前秦)이 잠시 중원을 통일하였다. 그러나 동진까지 합병시키려던 전진(前秦)이 예상 밖으로 참패하자, 그것을 계기로 전진에 복속되어 있었던 나라들이 각각 독립하면서 일곱 나라로 분열되었다. 그러다가 서기 439년 약 50여 년 동안의 분열 끝에 북위(北魏)가 화북 일대를 통일함으로써, 서기 420년에 동진으로부터 선양을 받아 건국한 강남의 송(宋)과 더불어 150여 년의 '남북조 시대'를 열었다. 통일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전처럼 극도의 혼란상은 보이지 않았다. 이로써 화북에서는 북방민족이 북위(北魏)·동위(東魏)·서위(西魏)·북제(北齊)·북주(北周) 다섯 나라가 북조(北朝)를 형성하고 강남 일대에는 송(宋)·제(齊)·양(梁)·진(陳) 네 나라가 남조(南朝)를 형성함으로써 어느 정도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상황까지 갔다. 남·북조시대 등장의 역사적 의미는 중국대륙이 남과 북으로 갈려 두 개의 역사 변화가 별도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남조에서는 문화적 변화 그리고 북조에서는 사회·경제적 변화로 요약할 수 있는데, 특히 북조국가의 경우에는 통치근간을 이루는 사회제도의 시스템화가 가장 두드러졌다. 일찍이 흉노계열의 진나라 시황제는 군현제를 시행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꾀하였고, 두 번째로 중국을 통일한 한나라도 무제에 이르기까지 이 제도를 완성시켜 나갔다. 중원의 혼란기를 틈타 중원에 진출한 화북의 북방 민족 정권도 기본적으로는 한화정책(漢化政策)를 추진하면서도 한족과 차별화되는 사회적 시스템화를 추진하였다. 사실 그들은 무력에서는 한족을 능가할지는 모르지만, 문화적으로는 중원의 한문화에 비교가 되지 못할 정도로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북조 국가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북위(北魏)는 고구려와 뿌리를 같이 한다는 민족적 인식이 깊었던 국가였는데, 이제는 떠돌이 유목생활을 정리하고 한곳에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고 살고 싶었다. 어차피 한족을 지배하려면 정착해야 하고 정착하려면 차라리 자신들이 한족문화에 흡수 동화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여 조상대대의 유목생활을 포기하고 소위 장강 이북을 송두리째 북방민족이 접수하고 말았다. 우선 한족출신의 유능한 인재를 발탁하여 정치와 행정 분야에 종사케 함으로써 한족의 불만을 무마시키고 적극적으로 그들을 국가경영에 동참케 하여 각종 제도와 율령을 제정케 하는 한편, 조세제도도 손질하였다. 북방 이민족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한화정책(漢化政策)을 추진한 사람은 북위의 효문제(孝文帝)였다. 그는 고구려의 장수왕이 죽자(494년) 친히 상복을 입고 깊은 애도를 표할 정도로 고구려와는 형제적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한족통치를 위한 북위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 도읍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낙양(뤄양 : 洛陽)으로 옮기고 복식과 제도, 의식과 풍습 등을 한조 이래의 유교식으로 개혁하는 한편, 성씨도 중국식을 따르게 하고 효문제 자신의 성씨도 원(元)씨로 바꾸었다. 효문제가 추진한 여러 가지 정책 가운데 백미로 꼽히는 것은 단연 균전제 도입인데, 서기 485년 이안세(李安世)의 건의로 처음 실시된 것이다. '균전제'의 주요내용은 모든 토지는 국가의 소유이며, 토지가 없는 백성들에게 국가가 이를 나누어 주고 경작하게 하고 일정 비율의 세금을 받는 제도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까짓 것 누군들 생각을 못하겠느냐'하겠지만, 춘추 전국시대와 진·한 시대를 거치면서 제후나 호족의 소유물이라는 토지개념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효문제의 균전제 실시로 당시 토지를 잃고 헤매는 농민들과 전란으로 유민이 된 많은 백성들을 안정시킬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일정비율의 세금을 거둘 수 있어서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제도 개혁을 통해 한족 흡수해 효문제를 비롯하여 북조 여러 나라들이 율령국가의 틀을 만들어 사회·경제적 변화를 일으켰다면, 남조에서는 문화적 변화를 통해서 중국판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남조에는 송(宋)·제(齊)·양(梁)·진(陳)이라는 네 나라가 있었으나 이들 네 나라의 평균수명(?)은 고작 40여 년 밖에 되지 않는 정치적으로 극히 불안정한 상태였으며 군사력도 상대적으로 약했으나 오직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문화(文化) 밖에 없었다. 강남 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남조의 나라들은 원래 이민족의 지배를 피해서 호족들과 지식인, 귀족들이 대거 남하해서 이룩한 소위 '화이트칼라' 국가였으므로 중원보다 몇 배 화려한 귀족문화가 융성하였다. 강남에서 발달한 삼국시대의 오(吳)와 동진(東晋),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는 남조의 네 나라를 합쳐서 '육조(六朝)'라 하는데 육조 시대에 발달한 귀족문화, 즉 '육조문화'를 가리켜서 '동양의 문화 중흥기'라 한다. 중국판 르네상스 시대 연 남조 예술이란 고도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영역이다. 우선 천부적인 끼도 있어야 하겠지만 사회적 분위기도 예술문화가 꽃피울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육조는 귀족사회였다. 평균수명(?)이 40여 년 밖에 안 되어 정치적으로 불안정했으니 그만큼 황제권은 상대적으로 허약했고, 전통적인 명문가는 입김이 세었기 때문에 아무리 군주라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불안정한 정국에서 조정에 출사하기보다는 차라리 집에서 예술적 창의성을 발휘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회적 분위기였다. 강남 특유의 온화한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사로잡힌 귀족들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추구하여 수많은 문장가와 화가들이 등장하여 그들의 예술세계를 키워나갔다. 이때의 대표적 인물로는 서예에서는 왕희지(王羲之), 시인으로는 도연명(陶淵明)과 사영운(謝靈運), 회화(繪畵)분야에서는 고개지(顧愷之) 등, 후세 사람의 귀에 익은 쟁쟁한 멤버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국 최고(最古)의 문학평론서로 알려져 있는 유협의 문심조룡(文心雕龍)도 이 시대의 작품이니 당시 예술세계에서는 자유로운 창작과 비평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혼란이 계속되면 민심이 동요하고, 동요한 민심은 심리적인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어떤 절대적 가치를 찾아 그것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근세기에 와서 천주교와 개신교가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사회적 혼란에서 탈피하려는 민중들의 마음과 결코 무관하지 않으며, 서학이 공인되고 서양세력이 조선을 강타하자 그에 대한 반동으로 동학이 일어나는 등, 혼란과 위기가 닥칠 때마다 고도의 정신적 활동을 통해서 이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당시에도 역시 그랬다. 혼란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던 만큼 마음에 위안을 줄 그 무엇이 필요했다. 원래 후한 중기 이후부터 전해진 불교는 잠시 주춤거렸다가 남·북조 시대에 이르러 민중들의 마음을 파고 들어갔다. 불교는 특히 이민족의 침입으로 서진이 망한 이후 동진시대에 크게 유행하였는데, 남·북조 시대에 이르자 귀족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에게도 종교적 위안을 주게 되었던 것이다. 이 시대에 우리나라에 중국을 통해서 불교가 전래되었다. 즉 고구려에는 서기 372년(소수림왕 2년)에 전진(前秦)의 순도(順道)가 불상과 불경을 전하였고, 백제에는 384년(침류왕 원년)에 동진(東晋)의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전하였다(신라에는 그로부터 한참 뒤인 528년에 고구려로부터 전해진다). 당시 귀족들은 국가중심의 유가사상에 반발하게 되었다. 언제 현실정치 문제에 연루되어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군자의 도를 익히고 통치의 경세학을 연구한다는 것 자체가 따분한 노릇이었다. 솔직히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 당시 귀족들의 정서였다. 귀족들의 현실 도피적 도가사상을 청담사상(淸談思想)이라 하며 이를 실천한 사람들이 바로 '죽림칠현(竹林七賢)'이다.
박준용 | 한양대 강사, 문화평론가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 간의 만남 사람들은 서로 간의 만남을 통해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간에 분명한 것은 관계를 통한 영향력이란 단시간 내에 그 결과를 나타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서 그 결실을 드러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교사와 학생의 만남을 전제로 한 교육도 여기에 예외는 아니다. 흔히 인용되듯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은 그런 지난한 인내와 계획의 여정 끝에 개인과 한 세대의 성숙된 인격이 형성되어 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문제는 아이들을 위해 내일은 어떨지 몰라도 오늘 당장은 그 결과를 가늠하기 힘든 수많은 선택을 결정해 나가야하는 막막함이요, 그런 이유로 막연한 내일보다는 오늘의 가시적인 성과와 결실을 요구하는 학생, 학부형 그리고 그 압력과 유혹에 흔들리는 교사가 있을 수 있는 교육 현실이다. 2차 대전 직후의 프랑스의 어느 싸구려 기숙학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 의 이야기는 바로 이런 현실로부터 시작된다. 문제아들의 '이름'을 깨달은 충격 아직 생생한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기숙학원의 아이들은 척박한 삶의 환경만큼이나 거칠고 제멋대로다. 이런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한 학교 측의 제1 지침은 이른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법칙에 따라 말썽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다. 사고와 처벌의 악순환이 만성화되어가는 학교에 새로 부임하게 된 교사 마티유(제라르 쥐노)는 쇠락한 학교, 패배주의에 빠져 있는 교사들, 천방지축인 아이들의 모습이 곧 실패한 음악가인 자신의 모습임을 깨닫게 된다. 전쟁과 같은 첫 날 수업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온 마티유는 거의 기대하지 않으며 아이들에게 적어보게 했던 미래의 꿈에 관한 글들에서 작은 충격을 경험한다. 겉으로 보면 커다란 문제 덩어리처럼 보였던 아이들이 실은 나름대로 꿈과 소망을 간직한 각각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는,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사실에 관한 낯선 깨달음이었다. 이후 마티유는 어떻게든 아이들의 개성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학교 측과 다른 '반작용'을 실천하기 시작한다. 칠판에 자신을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그린 학생을 마찬가지 방식으로 그려 공개적으로 망신을 줌으로서 놀림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게 한다든가, 야단맞은 보복으로 수위 아저씨를 다치게 한 학생으로 하여금 간호를 하게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소모적인 처벌보다는 스스로의 행동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식의 방법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변화의 단초는 아이들이 대머리인 자신을 약 올리기 위해 지어 부르던 장난스런 노래를 접하는 순간에 시작된다. 교장 선생님이었다면 가혹한 처벌을 면하기 힘들었을 모욕적인 장난 속에서도 그는 가사를 지어내고 곡조를 붙이는 아이들의 창의성과 개성 있는 각각의 목소리를 발견한다. 그리고 이내 합창단을 조직하기로 결정한다. 이후의 전개과정은 관객들이 이미 예측하고 있는 바와 같다. 우여곡절 끝에 훌륭한 합창단을 완성하고 아이들은 이 과정을 통해 난생 처음 인생에서 뭔가 멋지게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다시 깨달은 스승의 관심과 배려 이 지점에서 어떤 이들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교육에 관련된 영화는 천편일률적으로 전형적인 패턴, 즉 문제아이들, 탁월한 교사의 출현, 아이들의 변화, 성공적인 교육의 완성이라는 수순을 밟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별 문제없는 아이들을 평범한 교사가 가르쳐 적당한 진학률에 이른다는, 또는 문제아들이 무관심한 학교에서 방치되어 자포자기에 이른다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영화를 비롯한 예술의 판타지는 현실의 문제나 한계를 고민하는 교사를 비롯한 의식 있는 관객들에게 영화라는 자유로운 상상의 영역을 통해 현실에서 상상하거나 시도해 보지 못한 다양한 가능성을 구체화해 봄으로써, 현실의 구체적인 변화를 향한 매우 실질적인 자극과 통찰력, 지혜를 제공하는 장점을 가진다. 그리고 그런 자극은 겉으로 전형적으로 보이는 영화적 맥락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관점과 적용방식에 따라 다양한 삶의 모습처럼 다채로운 변화의 차별점으로 관객에게 다가서기 마련이다. 시작과 더불어 전형적인 교육영화의 맥락을 밟는 듯 보이던 영화 는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교사 마티유를 비롯한 아이들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인하여 차별성을 획득하는데 성공한다. 여느 영화에서의 선생님들과 달리 마티유는 자신의 교육 방식에 대해 확고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때로 교장 선생님의 위압적인 태도를 어색하게 흉내내기도 하고, 처벌과 용납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감행하기도 하며, 문제아로 전학 온 몽당과 같은 거친 아이 앞에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언뜻 보기에 일관성이 결여된 듯 보이는 마티유의 모습은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인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아이들과 함께 무엇인가를 이루어 보고자 하는 열망을 포기하지 않는 몸부림으로 인해 도리어 영화 속 가공의 인물이 아닌 생생한 현실감을 지닌 사실적 인물로 공감을 자아낸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 의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가 시작하면서 기숙학원 학생이었으나 위대한 지휘자가 된 모항주(자크 페렝)가 정작 자신에게 그렇게 큰 관심과 애정을 쏟았던 마티유 선생의 이름조차 기억하고 있지 못한 부분이다. 그는 자신을 찾아 온 옛 친구가 전해준 스승의 손때 묻은 일기장을 읽어 보면서 비로소 자신의 인생에 있어 마티유 선생이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는가를 깨닫는다. 그렇다.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성장하여 성공한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스승인 누군가를 칭송하는 장면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기억'보다는 '망각' 쪽에 가깝다. 종종 실패는 타인의 책임으로 전가되지만 성공의 결실은 제 스스로의 것인 양 착각하기 쉽다. 더구나 어린 시절 헌신적이었던 스승의 관심과 배려의 기억은 너무나 쉽사리 사라지고 만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삶의 가치 하지만 영화 는 이런 현실을 질타하기 보다는 오히려 담담히 감내하며 살아가는 것이 교사의 길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중요한 것은 훗날의 기억과 칭송이 아니라 무명의 단역배우일지언정 아이들의 인생의 무대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마티유 선생이 충실히 감당했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 아이들은 물론 교사 본인도 새로운 삶을 다시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영화 는 유럽에서의 엄청난 흥행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선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멋진 합창단을 만들었음에도 시샘어린 교장의 독단적인 결정에 의해 파면된 마티유 선생이 결국 학교를 떠난다는 비극적 설정이 헐리우드식 행복한 결말에 익숙해 있는 국내 관객들에게 맞지 않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영화 의 매력은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손쉬운 행복한 결말을 택하기 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노력과 몸부림 때문에 도리어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된 결말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소신 있는 삶의 가치로움을 역설한 점에 있다. 겉으로 실패한 듯 보이나 진정 성공한, 이름 없는 교사로서 학교를 떠나는 마티유의 머리 위로, 쏟아지듯 날아드는 아이들의 종이비행기 편지에 담긴 참된 감사와 축복의 소리 없는 외침이 빛나는 영화, 이다.
김원석 | 협성대 교수·T.E.T. 트레이너 전통적으로 리더십 연구에서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가져온 것은 ‘훌륭한 리더는 어떤 자질을 갖고 있느냐’하는 문제이다. 비즈니스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연구에서도 이 같은 연구는 가장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이론을 ‘리더십 자질 이론(leadership traits theory)’이라고 부른다. 과연 리더십 자질론의 입장에서 훌륭한 교사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지난 호에 필자는 대니얼 골먼의 감성리더십을 소개하였다. 그의 이론을 학교 상황에 맞추어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교실의 분위기는 교사의 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교사의 감정상태가 그대로 교실에 전달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얼마 전 스승의 날에 필자의 학과 학생회 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학생들이 교수들을 평가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요지는 교실의 분위기가 교수들의 개인적인 성향(성격)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다혈질에다 유머를 즐기는 A교수는 목소리가 교실이 떠나갈 정도로 큰소리로 말하면서 좌중을 쥐락펴락 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의 B교수는 언제나 강의실 분위기를 조용하고 진지하게 이끌어갔다. 문제는 교사의 영향력이 교실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사의 말 한디는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필자는 교실의 분위기를 어떻게 끌고 가는지, 얼마나 성숙한 모습을 보였는지 자성하는 계기이기도 하였다. 교사 리더십 자질론이란? 리더십에 대해 여러 가지로 정의하지만, 리더십이란 리더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많은 리더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힘(power)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힘이란 주로 물리적인 힘의 사용이 많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힘의 사용은 일시적인 효과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작용이 더 많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전통적으로 리더십 연구에서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가져온 것은 과연 훌륭한 리더는 어떤 자질을 갖고 있느냐는 문제이다. 비즈니스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연구에서도 이 같은 연구는 가장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이론을 ‘리더십 자질 이론(leadership traits theory)’이라고 부른다. 수많은 정치학자들과 경영학자들은 훌륭한 리더십의 본질을 성공한 리더나 국민적 영웅들에게서 찾으려는 노력을 많이 하였다. 따라서 리더십 자질 이론은 ‘위대한 영웅’ 이론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리더십 연구에서 해묵은 논쟁중의 하나는 ‘리더는 과연 태어나는 것인가, 혹은 만들어지는 것인가?’라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리더는 태어난다기보다는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리더십의 본질에 대한 복고적 성향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가 처음 번역한 의 스티븐 코비 박사가 이런 복고적 연구를 부추긴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는 원칙중심의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결국 리더십의 자질론으로 되돌아갔다. 리더십 연구는 자질론에서 출발하여 후천적 개발론을 거쳐 상황이론 등으로 발전한 리더십 연구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아직도 신학이나 기독교 교육학 등에서는 자질론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훌륭한 교사는 어떤 교사인가? 리더십 자질론의 입장에서 훌륭한 교사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필자는 토마스 고든의 교사역할훈련(T.E.T.) 등 교사리더십훈련과정에서 과연 나에게 가장 영향을 주었던 선생님의 모습을 함께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때마다 많은 교사들이 우리에게 공부를 잘 가르쳤던 선생님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던져 주었거나 혹은 등을 두드려주면서 사랑을 베풀었던 모습에서 훌륭한 선생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얼마 전 필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30년 만에 고향을 찾아가서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대화를 나누던 중 모든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기억에 남는 선생님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수학을 잘 가르쳤던 선생님, 영어를 잘 가르쳐주었던 선생님을 거론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이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주었던 선생님을 이야기하면서 선생님께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과연 교사에게 필요한 리더십 자질은 무엇일까? 여기에서 필자는 수많은 학자들이 열거하는 자질론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필자가 처음 강단에 섰던 초심으로 돌아가 평소 생각하고 있던 자질을 몇 가지 열거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관심 있는 독자라면, 나는 어떤 자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함께 점검해보는 것도 좋다. 1) 열정 교사가 갖추어야 할 최대 덕목은 ‘교직에 대한 열정’이다. 처음 교사로 발령받던 초심으로 돌아가 보면 많은 교사들이 이구동성으로 교직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열정들이 교직에 몸담은 기간이 길면 길수록 어느새 열정과 애정은 사라지고 직업인으로써 교직에 몸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기업체 임원을 지낸 로버트 그린리프가 젊은 시절에 성인들을 대상으로 기초대수를 가르친 적이 있었다. 기초대수를 몰라서 일자리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그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수학을 가르쳤는데, 그들 대부분이 가감승제도 겨우 겨우 해내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가감승제부터 조금씩 가르치면서 대수로 다시 넘어갔는데 학생들이열심히 공부하여 고등학교에서 1년 동안 배울 내용을 단 몇 주 만에 끝낼 수 있었다. 그 후 고등학교 교장을 만난 그는 당시 고등학교에서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방법보다 자신의 방법이 더 좋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때 교장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가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 하나 있네. 자네는 진정으로 대수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가르친 게야. 그렇지만 우리의 문제는 대수를 배우고 싶어 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대수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일세. 우리 학생들에게는 자네 방법 역시 아무런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거네.” 이 교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교사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일이 얼마나 많던가? 그러나 처음 교직을 선택할 때 다른 직장을 선택하지 않고(중간에 많은 교사들이 퇴직하였지만) 교직을 선택하여 굳건히 교직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교직에 대한 열정 때문이 아닌가? 얼마 전 내 강의를 들었던 대학원생 한 명이 “교수님께서 소개해 준 책 한 권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고 말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찾아오겠다고 전화를 했다. 교사는 바로 이런 일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켜 사람들을 변화시키겠다고 한다. 선거철을 맞아 공약을 내건 후보자들은 세상을 바꾸어보겠다고 한다. 그러나 위대한 스승이었던 예수 그리스도는 한 사람을 변화시켜 온 세상을 변화시켰다. 2) 헌신 교직에서 다른 직장과 달리 요구되는 덕목은 ‘헌신’이라고 생각한다. 나눔과 베풂의 정신이 없다면 교직은 정말 따분한 직업일 수도 있다. 어느 선생님은 노동절에 근로자들이 쉰다면 스승의 날에는 교사들도 쉬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해 함께 웃기도 하였다. 교사는 노동절이나 스승의 날에 놀거나 놀지 않거나 관계없이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다. 오래 전 연세대 민경배 교수의 강의시간에 들은 내용이다. 어느 학교에서 신임교사가 배정되어 왔다. 그 선생님께는 학생 명단과 함께 ‘85, 90, 95, 97, 100…’이라는 숫자가 적힌 종이가 전달되었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친 후 시험을 치렀는데 학생들의 점수는 평균 60점을 넘지 못했다. 선생님은 실망했지만 낙심하지 않고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심지어는 방과 후까지 남아서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친 결과 1년이 지날 즈음 학생들의 성적은 향상되었고, 마침내 처음 반을 맡았을 때 받았던 성적에 가깝게 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학기말에 교장 선생님은 이 선생님께 큰 상을 내리었다. 이유인즉 처음 선생님께 드렸던 종이쪽지는 학생들의 성적 점수가 아니라 그 반 아이들의 아이큐 점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열심히 반 아이들을 가르친 결과 우수한 학생들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선생님의 헌신적인 희생과 노력이 학생들을 변화시킨 것이다. 역사상 위대한 작가 중의 하나였던 헬렌 켈러의 곁에는 셜리번 선생님이 계셨다. 그분의 헌신이 삼중고의 헬렌 켈러를 위대한 인물로 만든 것이다. 3) 사랑 교사가 갖추어야 할 세 번째 덕목은 학생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다. 학생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교사의 열정과 헌신이 아무 소용없을 수 있다. 필자가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여러 교수님들로부터 배웠지만 그중 두 분의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었다. 한 분은 내가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지도교수였고, 또 한 분은 안식년을 맞이하여 모국에 와서 우리에게 미국식 경영을 소개해준 분이다. 지금은 모두 정년을 하셔서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이 분들의 공통점은 모두 제자에 대한 사랑이 깊다는 사실이다. 두 분 교수님은 필자에게 있어서 학문적 스승이기 이전에 인생의 조언자이고 멘토요, 코치였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결혼하는 문제부터 주택 구입에 이르기까지 자질구레한 일도 모두 의논할 수 있었고 그때마다 인생의 선배로써 이런저런 조언을 들었다. 우리 제자들은 매년 1월 초가 되면 항상 지도교수님댁에서 모인다. 처음에는 전공 제자들만 모였지만 지금은 여러 전공의 제자들이 모인다. 지난 겨울에 그 숫자가 40명을 넘어섰다. 그래도 선생님은 귀찮은 내색을 전혀 하시지 않고 반기시기 때문에 매년 숫자가 조금씩 늘고 있다. 20대에 만난 선생님을 이제 5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행복이다. 필자가 번역을 많이 하다 보니 지금까지 2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좋은 책이라면 무조건 우리말로 옮겨서 소개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또 한 분의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조교수 때에는 많은 책을 번역을 해도 괜찮지만, 부교수가 되면 번역서보다는 자기 저서를 준비하라는 당부이시다. 학자로서의 본분은 자기 생각과 주장을 펴는 저서를 세상에 내어 평가받는 것이라고 덧붙이셨다. 그동안 몇 권의 저서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선생님들의 배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안경애 | 경기 부천교육청 장학사 1. 왜 새교육으로부터 원고청탁을 받고, 바쁜 업무와 일상에서 한 박자 쉼표를 찍으며 작년 이 맘 때를 되돌아본다. 20여년을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만 매달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생활하였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급격하게 변화해나가는 교단 분위기 속에서 20여년은 빛나는 경력이 아닌 무능과 무기력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함께 뒤처지고 낡은 빛바랜 이름표가 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을 통해 우연히 접하게 된 한국교육신문사의 전문직시험대비 연수 강좌는 빛바랜 이름표 뒤에 꼭꼭 숨겨놓은 의욕에 발화점이 되었다. 하고자 하는 의욕과 해야겠다는 결심은 굳혔지만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던 그 때 한국교육신문사의 전문직 특강은 가뭄의 단비였다. 연수를 통해 학습 계획을 세우고, 공부를 해 나가야 할 방향을 잡았으나 산 너머 산! 돌아서면 잊어버리기가 일쑤인 40대 중년 아줌마의 건망증과의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2. 무엇을 가. 교직, 교양(교육학 및 교직실무, 25점) 나. 전공(논술, 25점) 다. 기획능력(20점) 라 면접(30점) 마. 서류 전형(30점) 5개 항목이 130점 만점 척으로 구성 3. 어떻게 가. 교직, 교양(25점) (1) 교육학 이론서를 손에서 놓은 지 오래되고 보니 교육학은 어휘조차도 생소하고 원리나 개념의 정립이 무척 어려웠다. 그래서 학습 계획이 마음먹은 대로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교직, 교양은 범위가 무척 광범위하여 장기간에 걸친 자기 학습 계획 수립이 필요하고 특히 전문직 대비 연수나 강좌 수강을 통해 기본적인 이론 배경 구축이 우선되어야 한다. 교육학 강좌 수강을 통해 기초적인 개념이 정립되면 ① 대충 읽고 책장만 넘기자 처음에는 알든 모르든 그냥 읽어가며 책장만 넘기며 교육학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한다. ② 내용을 파고들자 전반적인 흐름과 개념이 정립되면 정독을 하면서 학자, 이론, 원리 등을 면밀하게 익혀 나간다. ③ 챕터별로 분철하여 내용을 정리하자 챕터별로 분철하여 내용을 요약 정리하는데 정리할 때에는 방대한 내용임을 감안하여 확실히 알고 있는 내용은 제목 제시 정도만으로 그쳐야 한다. ④ 나만의 표기법을 만들자 워낙 광범위한 내용이다 보니 읽고 나서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내용들은 나만의 표기법(암기)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이론을 익히기 위하여 ‘(주)(상)이 (객)(사)(일)이 (궁)금해요’라는 표기법을 만들었다. 이는 주관화, 상대화, 객관화, 사회화, 일반화, 궁극화에 해당되는 표기법이다. ⑤ 교육학 책을 버려라 시험일 한 달 정도를 앞두고는 교육학 책을 볼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다른 것들을 준비하기에도 모자라기 때문에 그 시기에는 요약노트를 중심으로 학습해야한다. 그렇다고 교육학을 완전히 덮어버리면 건망증이 활성화 되고 말기 때문에 꾸준히 내용을 접하고 있기는 해야 한다. 하지만 책을 볼 시간은 없으므로 책은 잊어버리고 노트중심의 학습을 한다. (2) 교직실무 교직실무 책자 속에 제시된 실무 내용을 중심으로 꼼꼼히 살피고, 특히 관련된 여러 가지 법 규정은 ( )넣기 식 암기가 될 정도로 보고 또 보고, 읽고 또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전문직은 교육행정직이기 때문에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모든 일을 추진하게 되기 때문이다. 관련 규정과 지침 및 새롭게 시달되는 공문 내용을 통해서도 실무의 방향을 읽어나가야만 한다. (3)그 외에도 신문기사나 교육관련 보도자료를 찾아보고 또 시사상식, 한자, 고사성어 익히기도 필수이다. 교직,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치러지는 내용은 시사상식과 한자, 고사성어 까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말 그대로 교양이기 때문에 교육과 관련된 내용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식 범위 까지도 광범위하게 익혀야 한다. 나. 전공(25점) 전공은 논술이란 이름으로 불려 지는데 도교육청 및 교육부 각종 계획을 다운받고, 현장에서 이슈화되고 있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논술 목록을 작성하고 그것과 관련된 내용들을 교육마당, 새교육 등의 교육 잡지를 통해 전문가의 관점을 분석해 둘 필요가 있다. 관련도서나 전문가의 관점 분석을 통해 이론적 배경이 정립되면 나름대로의 논조를 가지고 글을 써 본다. 자신이 쓴 글에 대해서는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글로는 논조가 분명한지 마인드 정립이 확실한지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평소에 써 보지 않았던 글이기 때문에 논술 목록을 작성하고 하루에 3~4개정도의 글을 정해진 시간(10분에 1개정도)에 반복해서 써 보는 훈련 과정을 거쳐야한다. 특히나 논술은 ‘서와 결’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피력해야만 한다. 다. 기획력(20점) 기획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교사들이 부장경력을 통해 많은 기획유형을 접해보았고, 스스로도 기획을 하고 있기 때문에 준비에 별 어려움은 없지만 그래도 전문직의 관점에서 자신만의 창의력과 노하우가 어필될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의 기획이어야 한다. 특히 기획은 실행을 전제로 하는 조직적이며 효율적인 목표 달성 수단이기 때문에 추진근거와 관련 규정을 꼼꼼히 체크하여 계획 수립과정이 시작부터 끝까지 일목요연하여야 한다. 주어진 시간 60분 내에 기획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제를 접하면 전체적인 개요를 짜고 기획의 배경, 추진근거, 의도 및 목적, 실천내용, 실천기간 및 장소, 예산 등이 명시 되도록 하여야 한다. 시간 안배를 잘 해야 하므로 꼭 필요한 내용부터 채워나가고 세부추진계획과 같이 자세한 내용을 모두 작성하기에 시간이 부족할 경우에는 물결선처리 등으로 생략해 나갈 수도 있다. 만약 기획을 다 하고 나서도 시간이 남을 경우에는 기획내용과 관련하여 협조 공문, 내부 기안 등의 기안을 덧붙여도 좋을 것이다. 라. 면접(30점) 교사의 경우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늘 일상적인 대화를 해나가고는 있지만 막상 면접시험이라는 이름을 접하게 되면 누구나 떨리게 마련이다. 또한 면접 문항 자체도 일상적인 대화 내용이 아닌 교육과 관련된 자신의 태도나 신념, 의지, 관점을 피력해야 하기 때문에 그와 관련하여 평소 1분 스피치 노트를 마련해 두고 혼자서 1분 스피치를 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면접을 위한 준비로서 복장과 용모를 들 수 있다. 복장은 너무 화려하거나 튀는 복장보다는 차분하고 안정감을 주는 수수한 복장이 좋고 용모는 단정한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하며 긴장하지 않으면서도 밝고 당당한 표정과 태도를 갖도록 한다. 면접실을 들어서면서 나오는 순간까지도 면접의 한 과정이다. 면접실 문을 열고 들어서서 면접관을 향해 공손하고 예의를 갖추고 손을 가지런히 모아 무릎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는 등 자세까지도 신경을 쓰는 것이 좋다. 면접이 시작되면 침착하고 진지한 자세로 질문을 경청하고 질문에 대한 요점을 파악하여 또박또박 분명하고 자신감 있게 말하여야 하며 반드시 경어를 사용하도록 한다. 또한 밝고 온화한 표정으로 긍정적인 사고와 진취적인 신념을 지니고 있음이 드러나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특히 면접관은 많은 응시생으로부터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장시간 들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답변을 할 때에는 그러한 점을 고려하여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결론부터 간결하게 답하도록 한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한 다음 필요한 부분을 부연 설명하는 것이 좋다. 만약 질문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였거나 잘 못 들었을 경우에는 정중하게 잘 못 들었음을 시인하고 다시 한 번 말 해 줄 것을 요구하여 질문의 정확한 의도와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필수이다. 마. 서류전형(30점) 서류의 경우에는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직 생애 전반에 걸쳐 이루어야 할 자신의 이력서로써 평소 서류전형 내용과 관련하여 연구, 표창, 위촉활동 등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여야 한다. 특히 위촉장은 도 단위 이상에만 해당되며 위촉기간도 1개월 이상인 것을 1년에 1개만 사용하게 되기 때문에 꾸준히 활동을 하여야 한다. 표창의 경우에는 교육장 표창까지도 모두 사용할 수 있으며 이것 또한 1년에 하나만 쓸 수 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험 전형 중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준비되어야 하는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4. 맺으면서 학습하는 데는 왕도가 없다는 말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전문직 시험이야 말로 학습하는 방법에 왕도가 없는 것 같다. 누가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고 권해주어도, 또는 어떤 이는 이런 방법으로 학습하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 하더라도 내게 모두 맞을 수는 없다. 학습을 해 나가는 동안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이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니기에 걸어가는 동안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럴 때 자신과의 싸움에서 결코 물러서거나 져서는 안 된다. 어렵고 힘든 길로 들어선 만큼 건강과 자신의 학습 페이스를 잃지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노력하다보면 분명 노력한 만큼의 성과는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것을 나는 경험을 통해 힘주어 말할 수 있다.
신태식 | 본사 교육전문직 특강 교수 1. 원인분석형 유형 간 논점의 차이 원인분석형 논술의 출제형식으로는 '…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대책을 논술하시오', '…향상방안에 대해 논술하시오', '…문제점과 대책을 논술하시오'라는 식으로 서술된다고 하였다. 원인분석형 중 전 호에 소개한 교육 전반에 관한 문제와 청소년관련 문제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크게 원인과 대안 분석의 틀과 내용에서 차이가 있다. 교육 전반에 관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3가지 하위 논점 즉 인간과 관련된 문제, 정책과 관련된 문제, 환경 및 여건과 관련된 문제로 구분해서 제시할 수 있다. 예컨대, 참교사가 부재한 원인을 분석할 때,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교사의 전문성(도덕성, 사명감, 윤리성, 교과지도능력 등) 부족 문제, 교육정책(교사의 사기나 동기를 떨어뜨리는 정책이나 제도-부적격교사 퇴출을 위한 교사평가제, 교사의 복지정책 미흡 등)의 문제, 근무환경 여건(과밀학급, 과중한 업무, 관료적 통제체제 등)의 열악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면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분석이 가능한 것은 모든 체제나 조직의 하위요소를 크게 조직의 구성원과 조직을 통제하는 규범 그리고 조직을 둘러싼 주변 환경으로 영역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역화한 후 세부적으로 분석한다면 비교적 명료하고 논리적이기 때문에 독자나 평가자가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청소년관련 문제의 원인분석은 크게 4가지 하위 논점 즉 청소년 개인의 성격이나 정체성의 미확립, 가정의 문제(핵가족화로 인한 가정교육 부재, 대화부족, 이기적 자녀교육관으로 지나친 기대와 과보호 등), 학교의 문제(입시위주의 지식전달교육과 지식중심의 평가체제), 사회의 문제(각종 유해환경이나 사이버상의 유해한 정보, 폭력 등 상업주의적 매스컴과 영상매체)로 구분하여 원인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개인, 가정, 학교, 사회 또는 개인을 포함한 가정, 학교, 사회로 분석한다면 청소년의 거의 모든 문제가 세 영역에 속하게 되므로 원인이 빠짐없이 분석된 논술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교육전반의 문제와 청소년 관련 문제의 하위 논점 분석방법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교육전반의 문제나 청소년 관련 원인분석형에서는 자신감을 갖고 답할 수 있을 것이며, 일상적인 토론이나 협의에서도 문제의 원인분석이나 대안제시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2. 원인분석형의 기출 및 예상 1) 중·고생들의 비행원인과 지도방안에 대해 논술하시오.('95 경북) 2) 현대사회에서의 청소년 비행원인과 그 지도방안에 대해 논술하시오.('91 경북·대구 초등, 경남 '92 서울, 제주) 3) 오늘날 청소년들의 비행이 격증하여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청소년 비행의 원인을 가정적 요인, 사회적 요인, 학교생활요인으로 분류진단하고 학교교육을 통한 지도방안에 대해 논술하시오.('96 대구·전북, '97 경기) 4) 청소년 비행의 원인을 진단하고 학급 담임으로서의 지도방안에 대해 논술하시오.('98 경기) 5) 집단 따돌림의 원인을 분석하고 학교에서의 대처방안을 논술하시오. 6) (동아일보 1999년 1월 8일자 '왕따' 관련 기사를 제시하고) 이를 참고하여 왕따의 원인과 문제점, 해결방안에 대해 3가지 이상 논하시오.('98 대전) 7) 집단 따돌림의 원인과 지도방안에 대해 논술하시오.('99 전담교사 추가) 8) 학교폭력의 원인과 지도방안을 가정, 학교, 사회의 측면에서 논술하시오. 9) 학교폭력의 원인을 밝히고 우리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시오. 10) 학교폭력의 원인을 밝히고 교사의 입장에서 예방책을 논술하시오. 11) 학교폭력예방특별법의 제정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학교폭력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제시해 보시오. 12) 학교폭력의 원인을 진단하고 학교교육 차원에서의 대처방안에 대해 논술하시오.('96 경기·강원, '97 경기) 3. 원인분석형의 개요작성방법 1) 서 론 원인분석형에서 서론은 크게 주의환기, 문제의 심각성이나 중요성, 문제들이 사회와 국가에 미치는 영향 등을 제시함으로써 호기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효과적인 문제제기는 논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읽어보고 싶도록 하는 것이다. 서론에서 문제와 관련된 최근의 사건이나 사례, 통계치 등을 간단하게 소개한다면 참신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즉 단도직입적 표현을 제시하고, 문제와 관련된 심각한 사례나 사건을 제시함으로써 원인과 대책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동기를 유발하는 것이다. 예컨대, '청소년의 집단 성폭력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논술하시오'가 출제되었다면, ①청소년은 우리의 미래다(단도직입적 표현). 그런데 얼마 전 울산에 사는 여중생이 밀양에서 수개월 동안 고교생 44명으로부터 집단성폭행을 당했다고 한다(심각성을 제시한 사건소개). 또, '성폭력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논술하시오'라고 출제되었다면 ②청소년은 우리의 희망이다(단도직입적 표현).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를 이끌어 온 사회지도층의 성폭력이 불거져 나오면서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민주시민사회 건설에 크게 공헌한 시민운동가의 성추행 사건, 모 대학교수의 여대생 성추행 및 성희롱 사건 등 지도층 인사들의 성폭력 사건이 심심찮게 기사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유사사건 소개). 이러한 문제는 성폭력의 피해자가 인격살인으로 인해 평생 악몽과 수치심에 시달릴 수도 있다는 데 성폭력의 심각성이 크다는 것이다. 단도직입적 표현과 문제의 심각성이나 중요성에 대한 사례나 사건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론의 내용이 부족할 때는 이를 방치함으로 개인이나 학교 더 나아가 사회문제화되고, 국가의 기능약화(신용도 하락, 국가경쟁력 약화, 국가의 신뢰 상실 등)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도 문제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2) 본론 본론은 논술문의 핵심부분으로써 원인과 대안이 체계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주의할 점은 원인이나 대책을 제시할 때 상식적인 수준의 지식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고, 본 문제와 관련하여 교육전문가들이 분석한 원인과 대책들을 나름대로 소화하여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청소년 관련 문제에서 원인의 하위 논점은 개인, 가정, 학교, 사회로 영역화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청소년의 성폭력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논술하시오'의 문제였다면 우선, 청소년들의 성격성의 결함이나 자아 존중감 부족 등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가정교육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어려서부터 남성위주의 성문화로 인해 여성이 경시되고, 불평등하게 대우받는 가정환경에서는 여성의 성이 보호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는 체계적인 성교육 프로그램이 없고, 성상담이나 폭력예방을 위한 체계적인 지도가 미흡한 실정이다. 끝으로 여성의 성이 상업화되고 있는 각종 유해환경이나 인터넷 사이트의 범람은 청소년들을 유혹하여 성폭력 등의 비행을 유발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다음으로 대책에서는 원인에서 구분한 영역에 따라 대안을 제시하되, 원인과 상관없이 보다 적극적으로 추가할 대안이 있다면 추가하면 될 것이다. 주의할 점은 영역마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천방법이 제시되지 못하면 주장만 공허하게 메아리칠 뿐 구체성과 실천성이 약하기 때문에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따라서 각 하위영역마다 '주장(…해야 한다) + 이유나 설명(왜냐하면, 즉, 예컨대) + 실천전략(이를 위해 ○,○,○이 필요하다)'을 제시하면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느낌이 든다. 물론 이유나 설명은 꼭 써야하는 것은 아니고 주장에 대한 보충 설명이나 이유를 제시할 필요가 있을 때 제시해야 할 것이다. 3) 결론 결론은 재강조하는 부분이다. 서론에서 문제제기를 했다면 본론에서는 문제가 요구하는 내용을 논점에 따라 충실하게 제시하고, 결론에서는 지금까지 제시했던 내용을 핵심내용 중심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결론의 내용은 단도직입적 표현, 요약, 전망이나 과제로 구성된다. 요약은 본론의 원인과 대책을 핵심용어 중심으로 묶어서 제시하는 것이다. 효과적인 표현으로는 '(원인)이 ~에 있는 만큼 ~의 (대책)이 요구된다' 등으로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제시한 대로 실천된다면 어떤 긍정적 결과가 예측된다는 전망과 이를 위해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마지막으로 강조한다면 좋은 인상을 줄 것이다. 예컨대, 청소년의 성폭력에 관한 문제라면 청소년은 우리의 희망이다. 청소년폭력의 원인이 남성위주의 성문화, 학교의 성교육 프로그램 부재, 여성의 성을 상업화하는 사회 풍조에 있는 만큼 남녀 평등한 대우, 가정과 학교에서의 체계적인 성교육, 유해환경 감시 등이 필요하다. 이렇게 될 때 성폭력문제는 사라지고, 남녀가 동등하게 대우받는 건전한 민주사회가 정착될 것이다. 이를 위해 남성들의 성에 대한 의식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결론 부분에서는 새로운 문제제기보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마무리하면서 채점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4. 원인분석형의 개요작성방법(예시) 논제 1 : 학교폭력의 원인을 밝히고 그 대처 방안(해결 방안)을 제시하시오. Ⅰ. 序論 청소년은 우리의 희망이고, 학교는 즐거운 곳이어야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이지메가 우리나라 매스컴에 소개되곤 하였으나, 이제는 우리의 교육현장에서도 학생 간의 학교폭력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어 충격을 더해 주고 있다(최근 학교폭력 피해학생수가 16만 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최근의 학교폭력은 중·고교생에서 초등학생으로, 남학생에서 여학생으로 번지고 있으며 단순한 탈선을 넘어 조직화·범죄화 되고, 인터넷 폭력사이트를 모방한 범죄도 속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살해되거나 자살 또는 정신 질환 등에 이른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 학교폭력의 현실이다. Ⅱ. 本論 (1) 학교폭력의 원인 이처럼 심각한 지경에 이른 학교폭력의 개인적 요인으로 공격적인 성격장애에 원인이 있다. 이러한 성격 결함으로 인해 이들은 반사회적 행위를 하고도 반성하거나 고민하지 않으며, 자아조절능력이 부족하고 윤리의식이나 도덕의식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아 반항적, 충동적, 파괴적 행동을 하며 타인을 괴롭히게 되는 것이다. 가정 요인으로 오늘날 가정은 핵가족화로 인해 공동체의식과 연대의식이 약화되었으며 또한 가정의 교육적 기능의 약화, 부모의 바람직하지 못한 양육태도, 과잉보호 또는 지나친 규제, 결손 가정의 증가, 상대적 빈곤가정의 증가 등에도 원인이 있다. 이러한 가정 배경하에서 학생들이 반항적이며 공격적, 부정적인 성격으로 길러지고 있다. 학교 요인으로 입시위주의 지식중심교육은 이기주의적 학력주의 교육풍토를 낳게 하였고 지식중심의 교육에서는 입시과목을 잘하는 학생들과 그렇지 못하는 학생들을 구별하여 차별함으로써 반항, 도피, 폭력, 자살 등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과대학교, 과밀학급의 교육환경으로 인해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의 인간관계가 소홀히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개별지도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정서교육이 부재하여 심신의 조화로운 교육과 건전한 정서함양, 예절교육 등이 제대로 실시되지 못하고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는 단순히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 또는 평가자와 피평가자, 학생과 학생과의 관계는 경쟁의 상대라는 인식을 가지게 하고 있다. 사회 요인으로는 고도산업사회로 인한 가치체계의 혼란과 공동체의 유대 관계가 단절되고 인간소외현상이 심화되어 폭력과 비합법적인 방법이 성행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상업주의에 편승한 매스미디어에 의한 폭력물 방영은 학생들로 하여금 폭력의 모방과 학습을 유도하고 있으며 사회의 유해환경은 학생들을 비행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있다. (2) 학교폭력의 대책 이에 학교폭력의 대책을 제시하면 먼저 개인적인 문제를 가진 학생은 예방을 위한 지속적인 관찰과 상담활동을 강화하며 상담과정에서 자기성찰의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가정에서는 부모의 긍정적 모형을 제시하고 가정의 교육적 기능과 가정 공동체의 회복이 절실하며 부모와 자녀 간의 대화, 부모의 올바른 자녀교육관 확립, 부모와 자녀 간의 시간같이 보내기, 자녀에 대한 건전한 여가지도 등이 필요하다. 또한 학교에서는 학생 스스로 남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인격도 지킬 수 있는 민주인권교육과 더불어 공동체의식을 함양하는 인성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동시에 학교 내·외의 비교육적 환경을 개선하고 학생들의 생활지도도 강화되어야 한다. 학습에 있어서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개별화지도를 해야 할 것이며 학습자중심의 수준별 학습지도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 또한 사회적으로 비폭력 지향의 건전한 사회문화건설과 인간중심의 가치관이 확립될 수 있도록 캠페인을 벌여나가야 하며, 각종 유해환경의 제거와 대중매체폭력에 대한 자율규제가 있어야 할 것이며 청소년의 건전한 놀이문화와 전용공간의 확보도 시급히 필요하다. Ⅲ. 結論 학교는 인간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학교폭력 심화의 원인이 가정, 학교, 사회 전반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큼 가정은 가정의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고, 학교교육은 전인적 인간 육성을 위한 교육적 목표에 부합하도록 교육이 정상화되어야 하며, 사회 전반에 도덕적이고 건전한 사회문화가 정착되고 인간중심의 가치관과 공동체의식이 확립되어 모든 청소년들이 안심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논제 2 : 학교폭력의 원인을 학교차원에서 밝히고 우리 교육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논술하시오. ※ 주의 : 이 문제는 본론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다. 원인과 대책을 제시할 때 모든 원인과 대책을 제시하지 말고, 학교차원에서의 원인과 대책을 논술하라는 문제이기 때문에 학교의 문제를 3가지 정도로 유형화해서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 문제의 본론만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학교 폭력의 원인 이처럼 심각한 지경에 이른 학교폭력의 원인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겠으나 학교 차원에서의 원인을 살펴보면 먼저, 입시위주의 지식중심교육에 문제가 있다. 이러한 교육풍토 하에서는 교사들이 자연히 입시과목을 잘하는 학생들과 그렇지 못하는 학생들을 구별하여 차별하는 경향이 강하게 되고 이에 따라 학생들은 반항, 도피, 폭력, 자살 등의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또한 시험 준비 때문에 학생들에게 가하는 학교와 교사와 부모의 기대는 학생들에게 긴 시간 긴장을 유발시키면서 인격적, 정서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러한 긴장에 대한 도피 책으로 저학년에서는 등교거부나 수업시간 중에 심신장애로, 고학년에서는 현실 도피성의 가출이나 장기결석 등으로 표출되고 나아가 주위의 친구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학생 간의 폭력으로 나타나게 된다. 둘째, 과대학교, 과밀학급 등을 비롯한 우리나라 교육환경에도 문제가 있다. 이러한 교육환경은 교사와 학생 간, 학생과 학생 간의 인간적인 만남과 관계형성에 큰 장애를 주게 된다. 이러한 상태에서 학교에서는 학생 개개인의 사정과 성장에 대한 관심과 배려, 학생과의 대화,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상담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어 교사나 친구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그 울분을 폭력으로 해소하는 경향이 강하게 된다. 셋째, 인성교육이나 정서교육 등 인간교육이 소홀해진 데에도 학교폭력의 원인이 있다. 학교에서는 지나친 지식중심교육에만 치중하고 심신수련이나 건전한 정서함양, 도덕성 함양, 가치의식의 육성, 예절지도 등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교육은 지·덕·체의 조화로운 인간육성임에도 불구하고 정의적 영역이 도외시됨으로써 학생들에게 누적된 욕구불만, 실패감, 무시, 불안감 등이 순화되지 못하고 그대로 표출되어 학교폭력으로 나타나게 된다. (2) 학교 폭력의 대책 따라서 학교폭력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나아갈 교육 방향을 다시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우리 교육은 이제까지의 지식중심만의 교육을 탈피하고 인성교육과 정서교육을 비롯한 인간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구체적으로 교과교육에도 인간을 생각하게 하며 인격형성을 중시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토록 해야 하며 학생들 스스로 남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인격을 지킬 수 있는 민주인권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또한 학생들의 현재의 생활, 경험, 취미, 성향 등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상호 인격적인 관계에서 교사와 학생 간의 만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획일화된 평가체제를 탈피하고 성취도 중심의 평가가 이루어져 상대적 열등감을 해소시켜 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