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80,479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
수원 칠보초, 4~6학년 대상으로 예절교육 실시 경기도 수원 소재의 칠보초등학교 (교장 김석진)는 지난 9월 29일 월요일부터 오는 10월 6일 월요일, 총 5일에 걸쳐서 예절교육을 실시한다. 본교 4-6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이번 예절교육은 수원시 예절교육관에서 직접 예절강사를 초빙하여 학급당 2시간씩 이론과 실습을 병행한 심도 있는 교육활동으로써 그 파급 효과도 매우 기대된다. 예절교육은 효행정신을 강조하는 본교의 교육특색답게 매 학기 실시하고 있다. 1학기 때에는 학부모님들이 직접 예절 교육 및 지도를 수료하시고 명예강사로 활동하시면서 우리의 전통 의상인 한복 입는 방법과 공수법을 친절하게 지도해주셨다. 그리고 이번 학기에는 4학년의 경우 실천하는 효와 효행, 친구들과의 바람직한 교우관계 및 다도, 5학년은 예절을 기반으로 펼치는 나의 비전 그리고 최고학년인 6학년은 ‘자아 존중감을 높이는 차(茶)문화 치료’라는 테마와 함께 다도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배우게 된다. 항상 “효도하겠습니다.”라는 인사말로 웃어른께 인사하는 예절이 몸에 배어있는 학생들이라서 그런지 예절교육에 임하는 그들의 태도가 바르고 아름다웠다. 강사분께서는 “학교마다 교풍이 있는데 칠보초등학교는 ‘효’와 ‘예절’을 교풍으로 이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오늘 학습한 내용들이 몸에 배어 선후배에게도 귀감이 되어줄 수 있는 4학년 학생들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어느덧 가을의 쌀쌀함이 성큼 다가온 10월, 1학기 때보다 2학기의 학교생활이 더 즐겁다는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이 친구 간 혹은 선생님과의 관계가 더욱 가까워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 겨우 10여년을 살아온 어린 학생들이지만 그들 또한 서로에게 예를 갖추고 배려하는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쪼록 이번 예절 교육이 학생들에게 깊숙이 스며들어 그들의 삶 구석구석에서 그 빛을 발하길 기대해본다.
경기도 여주 북내초등학교 플로어볼 남녀 대표팀은 지난 9월 13일 포천 대진대학교 특별 경기장에서 열린 2014 경기도 교육감배 플로어볼 스포츠클럽대회에 참가하였다. 이날 대회는 경기도 각 시군을 대표하는 학교 스포츠클럽 팀이 대거 출전하여 지금까지 열심히 훈련한 기량을 겨루었다. 대한 플로어볼 협회의 주관아래 실시된 이번 대회는 초등, 중등이 날짜를 다르게 하여 조별 리그전으로 실시되었다. 각 시군을 대표하는 각 학교 대표팀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경기에 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많은 관람객과 학부모들의 박수를 받았다. 플로어볼이란 북유럽에서 유행하고 있는 하키형 뉴스포츠인데 하키와 아이스 하키의 룰과 비슷하지만 플라스틱으로 된 공을 플라스틱과 카본 파이버로 만들어진 플로어볼 스틱을 이용하여 상대방의 골대에 골을 많이 넣는 팀이 이기는 경기이다. 플로어볼은 운동량이 무척 많고 협동심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는 경기로 학교 스포츠클럽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플로어볼은 역동적인 경기이나 몸싸움이나 격한 보디체크가 허용되지 않음으로서신사적이고 깨끗한 경기로 인식되어지는 뉴스포츠이다. 이날 여주대표로 참가한 북내초 남녀 대표팀은 올해 신생팀으로 경기도 대회에 첫 출전을 하였는데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쳐서 여자부 페어플레이상을 받는등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였다. 앞으로 북내초등학교는 소규모 학교에 스포츠클럽을 활성화 시키고 학생 건강 체력을 기르는 플로어볼을 학교 교기로 발전시켜 즐겁고 신나는 학교생활의 바탕이 되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9월 23일, 청주행복산악회원들과 산행 경험이 있고 올해 두 번이나 유람선에서 바라보았던 제비봉에 다녀왔다. 제비봉(높이 721m)은 단양군 단성면 장회나루 뒤편에 있는 바위산이다. 수상 관광지로 유명한 충주호의 구담봉과 옥순봉에서 동남쪽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절벽 위의 바위 능선이 제비가 날아가는 모습을 닮았다. 산의 모습을 보고나면 '제비봉'이 연비산(燕飛山)이나 연자봉(燕子峰)으로 불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7시 집 옆에서 출발한 관광버스가 중간에 몇 번 정차하며 회원들을 태운다. 운동으로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 무심천의 갈대밭과 가을 하늘을 더 예쁘게 만든다. 중부고속도로 서청주IC를 통과한 관광버스가 북쪽으로 방향을 틀자 3일 전 기차여행을 하며 가까이서 바라보았던 내 고향마을 작은 소래울이 먼발치로 보인다. 힘든 산행만 하면 산악회 무슨 재미로 다닐까. 가끔은 먹고 즐기며 스트레스 푸는 것도 필요하다. 오늘도 빵, 전, 과자, 바나나에 알커피와 믹스커피가 입맛에 맞춰 자리로 배달된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운영진의 미소가 아름다워 기분까지 좋다. 누구나 행복(幸福)을 추구한다. 행복이 무엇인가? 사전에 있는 대로 ‘욕구와 욕망이 충족되어 만족하거나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가 얼마나 자주 있을까. 그래서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야 맛있다. 작거나 소소한 것에서 얼마든지 행복을 찾아낼 수 있다. 어떤 일이든 즐겁게 하면 힘들지 않는다. 늘 흥겨운 청주행복산악회의 운영진들이 그렇다. 제비봉 산행은 장회나루에서 출발해 정상에 오른 뒤 다시 원점회귀하거나 반대편 얼음골에서 출발해 정상을 거쳐 장회나루로 내려서는 코스가 일반적이고 어느 코스든 4시간 정도 거리다. 굽잇길을 달리는 관광버스의 오른쪽 차창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월악산 영봉이 눈길을 끈다. 월악산휴게소에 들렀던 버스가 충주호반의 36번 국도를 달리며 하산 장소가 될 장회나루를 지나 단성면 외중방리 얼음골에 도착한다. 어름골맛집 간판 옆으로 등산로가 보인다. 어름골맛집의 어름이 얼음을 잘못 쓴 것인지 두 사물의 끝이 맞닿은 자리나 구역과 구역의 경계점을 뜻하는지는 모르겠다. 차에서 내려 산행 준비를 하고 10시경 1.9㎞ 거리의 제비봉으로 향한다. 초입부터 오르막이 길게 이어지는데다 조망이 없어 산행이 답답하다. 하지만 흙길이고 군데군데 쉼터가 있어 적당히 운동하기에 좋다. 처음 산행에 참여했다는 45살 젊은이가 제일 뒤에서 고생을 한다. 어차피 인생은 기다림이다. 또한 산행은 인내와 끈기를 배우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저 젊은이가 우리보다 앞서 걸으며 산행을 즐길 날도 멀지 않다. 절벽 위에 있는 정상은 모산인 사봉(높이 879m)과 마주하는데 오래된 적송으로 둘러싸여 조망이 좋지 않다. 정상의 표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고 전망대로 가면 나무데크 사이로 충주호의 긴 물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주변에 ‘미끄럼사고위험, 사망사고발생지점’을 알리는 안내판이 여럿이다. 지난 10년 동안 에베레스트 등반 중 사망한 등반가와 셰르파가 80명인데 북한산 백운대 일대에서 산악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85명이라던가. 어떻든 산에서는 안전이 먼저다. 하산 길에 제비봉 최고의 조망처 544.9m 봉우리를 만나지만 정상에서 1.5㎞ 거리의 476m 암봉까지는 신갈나무와 굴참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뤄 비교적 조망이 나쁘다. 나뭇가지나 암석 사이로 산 아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쉼터를 몇 군데 만난다. 476m 이정표를 막 지나면 갑자기 눈앞에 별천지가 나타난다. 제비봉 산행은 기암괴석과 소나무, 호수와 산봉우리가 어우러진 풍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마지막 구간의 조망 때문에 더 빛이 난다. 공원지킴터로 이어지는 1㎞ 거리의 암릉에 분재를 닮은 소나무들이 여기저기 걸터앉아 있고, 산 아래편으로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충주호와 구담봉이 만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며, 양옆으로 학선이골과 다람쥐골의 아찔한 절벽이 이어진다. 산행도 인생살이를 닮아 가끔 걸음을 멈추고 지나온 길을 뒤돌아봐야 한다. 그곳에 늘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경치가 좋으니 일행들에게 추억을 남겨주는 사진사 노릇도 신이난다. 1시 50분경 하산 후 유람선이 떠있는 장회나루 앞 충주호의 풍경을 구경했다. 계란교 건너편 자투리 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주물럭을 안주로 정이 넘치는 하산주를 마시고 3시 50분경 출발했다. 사랑이든 사업이든 처음처럼만 하면 탈나지 않는다. 청주로 향하는 차안에서 회장님은 초콜릿 나눠주고, 총무님은 일일이 손잡으며 고마움 표시하고, 산행대장님은 멋진 다음 산행 예고하고, 예쁜 미소로 행복산악회를 홍보하는 분도 계시고... 출발할 때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오창휴게소에 들르며 5시 55분경 집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우리 나라는 1950년대 초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농업에 의존한 조용한 나라였다. 그런데 불과 30년만에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농촌 인구가 감소하였고 아직도 진행중이다. 한국의 제조업자들은 제철과 조선업 등에서 세계적 지위를 확보하면서 세계수준의 경제국가로 변모시키는데 성공하였다. 한국을 변화시킨 이러한 전환의 속도는 전례가 없을 만큼 매우 빠르고 극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과를 이루기 위하여 일본이 75년, 프랑스 200년, 미국이 125년 걸렸다는 보고도 있는데 한국은 이를 30년 만에 달성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변화의 물결 속에서 앞으로 다가올 사회와 경제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아직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다. 지금부터 10년 또는 15년 이후의 사회와 경제는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인구증가로 인하여 생산활동은 지속적으로 늘어나지만 생산분야의 고용인력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기업 역시 사업 목표를 하는 시장이 오직 지역시장뿐이라고 하더라도 글로벌적 차원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 역시 자기만의 경쟁력을 갖지 못하면 생존이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취업이 어렵게 되자 많은 사람들은 창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창업이란 쉽게 되어서 아무렇게나 하여도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창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중요한 덕목으로 중요한가이다. 창업가는 혁신적이여만 하는가? 미겔 다빌라는 1994년 대학원 동기들과 멀티스크린 영화관을 열기로 했다. 북미와 유럽에는 이미 멀티스크린 영화관이 즐비했다. 하지만 이들은 멕시코에서는 아직 그렇지 않다는 점에 주목했다. 천신만고 끝에 JP모건의 투자를 받기로 했는데 그해 말 멕시코 정부가 페소화 가치를 달러화 대비 절반으로 끌어내리면서 투자받기로 한 자금의 가치가 반토막 났다. 그래도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투자 금액을 두 배로 늘려 원래 의도했던 만큼을 지원해 달라고 배짱을 부렸다. 이렇게 탄생한 시네맥스는 첫 주말부터 수많은 관객을 모았다. 창업가는 전문적인 지식을 가져야만 하는 것인가? 아비 샤는 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운영 중인 클러치 그룹은 미국, 인도, 영국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400명의 업무를 지원한다. 샤는 월화수목금 일해야 하는 변호사들의 고충을 들었다. 새내기 변호사에게도 시간당 300달러씩 지급해야 하는 의뢰기업들의 불평에도 귀를 기울였다. 이들이 가진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지점에 사업 기회가 있을 것으로 봤다. 변호사 업무 지원 서비스는 여기서 탄생했다. 창업가는 젊어야 하는가? 아쓰마사 도치사코가 MIFC를 창립했을 때, 그는 52세였다. 그는 도쿄 은행에서 30년 동안 일하며 스페인과 멕시코, 에콰도르, 페루 등을 경험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미국 등으로 이주한 이 나라 국민이 본국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할 때 시중은행을 이용할 수 없어 중개업체에 높은 수수료를 물어야 하는 현실을 보며 사업 아이템을 구상했다. 우리는 창업가 혹은 창업가정신을 이야기할 때 스티브 잡스형 천재가 창고에 틀어박혀 컴퓨터 한 대를 앞에 두고 눈을 빛내는 순간을 떠올린다. 하지만 ‘하버드 창업가 바이블’의 저자 대니얼 아이젠버그와 캐런 딜론은 “창업을 하는 데 혁신과 전문적인 지식, 젊음은 필수 조건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보다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간파하는 역발상적 사고와 아이디어를 끈질기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추진력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처럼 취업이 어려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혁신, 지식, 젊음보다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밀고 나가는 우직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의 작은 시골학교인 청원초등학교는 [Artience! 들꽃어울림 활동을 통한 생명존중 의식의 함양]이라는 주제로 경기도교육청 지정 주제체험학습장을 작년에 이어 2년째 운영하고 있다. 청원초등학교에는 평소 눈여겨 보지 않았던 아기자기한 들꽃부터 진귀한 야생화까지 풀꽃들이 보존되고 있다. 그러한 아름다운 환경을 바탕으로 하는들꽃 체험 학습장에서는 학생과 일반인이 교내의 들꽃을 활용하여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학교 체험학습 프로그램 중에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꽃누르미 활동이다. 꽃 누르미 활동에서 학생들은 학교에서 채취한 들꽃을 활용하여 생활용품과 예술작품을 제작하는데, 이를 통해 자연의 꽃을 자세히 관찰 할 수 있으며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고, 우리 생활과 꽃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어 학생들과 지역사회 학부모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외에도 들꽃 체험학습장에서는 우리나라 꽃들에 대한 기본 지식을 알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꽃들의 이름을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화성 청원초 체험학습장에는 이 들꽃들을 체험하기 위해 작년에는 경기도 관내 초중등학교에서 약 1000명 이상이 방문하였다. 청원초가 들꽃 체험 학습장을 운영하는 것은 아티언스교육의 일환이다. 아티언스(Artience)라는 용어는 예술(Art)과 과학(Science)의 합성어이고 과학과 예술을 융합하여 창의성 및 예술적 소양 능력을 기르기 위한 교육의 지표로서 최근에 교육현장에서 크게 이슈화 되고 있다.청원초에서는 이 아티언스를 들꽃에 적용하여 각각 따로 떨어져 있던 과학과 예술 과목이 ‘들꽃’이라는 대 주제 아래에서 한데 어울려 학습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청원초를 방문하는 학생은 들꽃을 관찰, 탐구하여 과학적 지식과 태도를 함양하고 나아가 꽃누르미 활동을 통해 예술적 표현능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체험 만족도 조사 결과 학생, 학부모, 교사들에게 모두 높은 만족감을 얻고 있다. 또한 들꽃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청원초의 주제체험학습장은 다른 체험학습장과는 다른 차별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체험 학습이 단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닌, 캠핑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캠핑체험학습장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가족 관계 회복과 자녀 교육의 일환으로 열풍이 불고 있는 오토캠핑활동을 주말에 학교 시설을 개방하여 캠핑장으로 탈바꿈시켜 운영하였으며 가족이 함께하는 프로그램과 제공하여 학교가 학생만의 학습 공간이 아닌, 가족의 여가 공간으로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캠핑체험학습에 참여했던 수원태장초등학교 최민수 학생은 “가족들과 캠핑을 자주 가는 데 가면 텐트치고 요리해먹고 밖에서 놀 수 있는 것도 좋지만 여기에 와서 꽃을 이용해 재미있는 활동을 하고 가방걸이 같은 것을 직접 만드는 활동을 해서 더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학교 시설을 적극 개방하여 다양한 체험학습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일조했던 청원초등학교 구영회 교장은 “본교의 다양한 체험학습 활동을 통해 학생들에게 작은 꽃들의 소중함을 알게 하고 학생들이 학교생활에 있어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인성 및 감성을 함양하는 데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 것 같아 교육자로서 매우 뿌듯하고 자랑스럽다”라고 말 하였다.캠핑체험학습장 운영활동은 참여했던 많은 가족들에게 가족에 대한 사랑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게 하였다. 들꽃을 이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교육가족들에게 질 높은 체험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청원초등학교의 체험학습장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체험학습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으며 작은 시골 학교의 이러한 움직임이 체험학습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며 나아가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에게 꿈과 감성을 심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자유학기제, 학교폭력 예방, 진로특강 실시- 순천동산여중은 29일 2014학년도 2학기 교육과정 설명회 및 진로특강을 개최했다. 이번 연찬회는 자유학기제에 대한 학부모의 이해를 돕고, 학사력에 따른 학교교육과정 운영에 학부모 의견을반영하기 위하여 마련한 것이다. 또한 원도심 지역의 급격한 학생수 감소에 따른 교육력 약화 문제를 극복하고 학교교육의 발전을 위하여 학부모의 적극적 참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개최한 것이다. 필자는인삿말을 통해 학교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학교란 옛부터 배움의 전당이지만 '지역사회의 꽃'으로 학생들의 실력 향상을 중심축으로 인성교육, 건강교육을 통하여 학생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기초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학교교육의 중요한 네 기둥은 교사와 학생, 시를 포함한 정부의 지원과 학부모의 동행이 조화를 이룰 때 교육력은 살아날 수 있다. 한편 학생들의 생활 상태를 관심있게 살펴보고, 차량으로 등교를 할 때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하여 학교 정문 앞에서 50미터 정도 거리 이상 떨어진 곳에서 하차할 수 있도록 간곡히 부탁하였다. 어서 초빙 강사로 순천교육지원청 소속 박행심 선생님의 자유학기제의 필요성과 미래교육을 연계한 진로지도 특강이 이어졌다. 이어서 강관원 3학년 부장의 3학년생 진학지도를 위한 안내 및 학교폭력 예방 안내가 있었다. 이번 연수에 참여한 1학년 김민경 학부모는 “ 우리 아이가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고 있으며, 오늘 설명회에 참여함으로 학교에 대한 신뢰가 한층 높아졌다.”고 참가 소감을 밝혔다. 지금까지 학부모의 학교교육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가 낮고 맞벌이 하는 부모가 많아 다수가 참여하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에, 이를 개선하기 위하여 오후 6시 반시에 시작함으로 생계유지로 인하여 참여가 어려웠던 아버지가 모습을 나타내는 등 참여 열기가 높았다.
“ 우리 주변에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함을 느낍니다!” 경기도 여주의 북내초등학교(교장 김경순)에서는 지난 9월 25일 나눔과 봉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가 열렸다. 그것은 학교에서 학생들과 교직원이 직접 재배하여 수확한 고구마를 여주지역의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는 “북내초, 찾아가는 나눔” 활동이다. 이날 활동은 학생과 교직원들이 북내초 실습지를 활용하여 재배한 고구마 15상자를 직접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었는데 이번 찾아가는 나눔 활동에는 북내초 전교어린이회 임원단과 4,5,6학년 학급 회장단이 함께 하며 그 뜻을 더욱 의미있게 했다. 또한 이번 봉사와 나눔 활동을 하기위해 여주 자원봉사센터(센터장 허옥희)와 연계하여 도움을 받았는데 지역의 어려운 이웃과 자원봉사가 필요한 곳에 자원봉사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자원봉사센터와 학교와의 연계가 중요함을 느끼며 지역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학교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으면 적극 돕겠다는 약속도 함께 했다. 이번 활동에 함께 참가한 북내초 학생들은 우리 여주 지역에도 도움이 필요하고 나눔과 봉사가 필요한 곳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으며 나의 작은 정성이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큰 희망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북내초등학교 김경순 교장은 학교의 교육과정과 봉사활동을 연계하여 지역에서 내가 돕고 싶은 이웃들을 찾아보고 그 이유를 생각하게 해보는 활동을 함으로서 형식적인 봉사, 나눔이 아닌 내가 스스로 찾아서 나누고 실천하는 봉사활동으로 적극 추진하여 학교와 지역사회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봉사와 나눔이 형식적인 것에 치우쳐 있다 보니 봉사점수만을 위한 봉사가 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는 여주자원봉사센터장의 말도 이러한 북내초의 찾아가는 나눔 활동이 의미 있음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북내초는 연말에 교직원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한 성금과 봉사 활동을 통해 모은 성금으로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에게 연탄을 배달하는 활동을 계획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나만이 아닌 주변의 어려운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나눔과 봉사의 마음이 가득한 어린이들로 교육해 나갈 예정이다.
교육부 “학문 특수성 반영 안 돼” 성과급 누적比 하향 이어 최하등급 기준 개선 추진 국교련 “등급 기준 대학에 맡기고 기본연봉에 누적 폐지해야” 그동안 상호 약탈식 국립대 성과연봉제 개선 방안의 하나로 제기돼 온 최하위 등급(C등급) 절대기준 마련을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는 안전행정부와의 원활한 협의를 위해 국립대 교수들의 협조를 요청했다. 지난달 25일 설훈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 주최로 열린 ‘국립대학 교수 성과급적 연봉제 정책공청회’에서 한석수 교육부 대학지원실장은 “앞으로 정부는 교원의 특수성을 반영한 공정하고 합리적인 차등적 보상체계로서 성과급적 연봉제가 대학 사회에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한 실장은 “현행 성과급적 연봉제가 상대평가로만 돼 있어 학문(전공) 분야별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대학사회 의견을 반영해 최하위 C등급에 대한 절대기준 마련을 검토해 볼 계획”이라며 “안행부와 협의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대학에서도 최하위 C등급에 대한 절대기준안을 올해 안으로 제시해 달라”고 말했다. 2011년 국립대 교수 성과연봉제 실시 이후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국교련) 등은 학문적 특성이 다른 교원들을 상대평가하는 방식에 대해 지속적으로 개선을 요구해왔다. 이날 토론에 참가한 최상한 국교련 실행위원장(경상대 교수)은 “성과급의 상대평가는 김연아, 손연재, 박태환, 박지성 등 종목이 다른 운동선수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상대평가로 월급을 차등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국교련은 그동안 ▲연봉제 기본급 적용 ▲성과급은 추가재원으로 하되 누적은 폐지 ▲학문 전문성을 고려한 평가기준 적용 ▲인센티브 부여 방식의 연봉제로 전환 등을 정책연구팀을 통해 요구해왔다. 이에 교육부는 개인별 근무연수에 따라 일정액을 동일하게 지급하는 경력가급을 도입해 다음연도 기본연봉에 누적되는 비율을 2013년 42%에서 26%로 줄였고, 올해에는 누적비율을 다시 17.5%로 하향한 바 있다. 따라서 교육부가 성과급 누적비율을 하향한데 이어 최하위 등급 절대기준 마련에도 전향적으로 나서면서 성과연봉제 개선에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국교련측 관계자는 “교육부가 성과연봉제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최하위 C등급 절대기준은 교육부가 절대기준을 만들기 보다는 일정정도의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대학자율로 맡겨줄 것을 교수들은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본연봉 누적비율도 많이 하향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 교수들의 입장이라며 제대로 된 개선방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해 달라”고 밝혔다.
정부로부터 권한 위임받고 일선학교로는 내리지 않아 교장에 위임한 권한도 침해 “교육감 권한 지나치게 비대 독주 막을 법‧제도 정비 필요” 1995년 정부는 초․중등학교의 자율성이 부족해 다양하고 창의적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판단, 5‧31교육개혁을 통해 학교운영의 자율성을 확대하고자 했다. 학교 단위의 자치를 목표로 정부와 교육청의 권한을 대폭 이양하는 것이 개혁의 밑그림이었고, 이후 정부 정책은 단위학교의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추진돼 왔다. 2009년 이명박정부 시절 발표된 ‘학교자율화 추진방안’은 사실상 이같은 정책기조의 완결편인 셈이다. 방안에 따르면 3단계로 각종 지침 등을 정비하고, 단위학교에 위임할 권한에 대한 조례와 규칙을 전면적으로 정리했다. 이에 따라 학교평가와 장학지도, 학생배치, 특성화학교 지정 및 취소 등의 권한은 교육감에게 있지만 수업운영이나 교육과정의 세부적 운영 방법 등은 대부분 일선 학교로 위임됐다.표 참조 하지만 이같은 개혁구상과 추진방안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선 학교는 여전히 시‧도교육청의 규제와 관리감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교운영의 자율성을 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행‧재정적 제재와 지원을 통해 일선 학교를 컨트롤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경기도의 9시 강제 등교는 일선학교에서 답답해하는 대표적 사례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49조에 따르면 수업이 시작되는 시각과 끝나는 시각은 학교장이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재정 교육감은 공약 이행을 내세워 강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역교육청 장학사들이 학교장에게 “9시 등교를 시행하지 않으면 컨설팅을 계속 나가겠다”는 식으로 행정적 압박을 가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경기의 한 초등 교장은 “시도 교육감이 선출직이라는 이유로 학교가 가져야 할 권한을 자신이 행사하는 경우가 많아 학교 입장에서는 답답하다”며 “학교자율화가 아니라 교육감 자율화가 됐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교육감의 전횡으로 학교의 자율운영이 제한되는 것은 비일비재하다. 경남에서도 박종훈 교육감이 방과후 수업, 야간자율학습, 연구학교 폐지 등을 추진하기로 해 학교장의 권한 침해 논란에 휘말렸다. 전문가들은 “학교자율화가 허울만 남게 된 데는 교육감 직선제 이후 정부-교육감-학교 간의 권한 이양의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이라며 “이에 대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황영남 서울 영훈고 교장은 “5‧31교육개혁이후 정부에서는 학교자율화를 위해 많은 권한을 이양했으나 교육청이 중간에서 넘겨받은 권한을 단위학교로 주지 않고 있어 교육감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한 경향이 있다”며 “여러 정책에서도 확인되는 것처럼 법령상 권한을 넘겨줬다고 해도 다른 규제를 통해 간접적으로 압박을 가함으로써 실질적인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기오 한국교원대 교수도 “선거를 통해 당선된 교육감이 정치적인 힘에다가 교원인사, 교육비특별회계 편성권까지 가지고 있어 장관도 통제하기 힘든 사실상 제왕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며 “초중등교육법상의 단위학교 자율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비대해진 교육감의 권한 축소와 함께 명확한 권한 분배와 견제에 대한 법령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⑤마을 죽이는 학교 통폐합 2002년 폐교된 경기 연천의 백학초고랑포분교장. 학교가 문을 닫은 지 12년. 건물 곳곳에는 거미줄이 쳐졌고 아이들이 뛰어놀던 운동장은 무성한 잡초만이 남아 쓸쓸히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학교가 사라지자 사람들도 하나 둘 마을을 떠났다. 주민들은 뒤늦은 후회를 해보지만 이제 마을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기 어렵게 됐다. 학교 앞을 지날 때면 마을의 흉물로 남은 학교의 모습에 주민들의 가슴은 아프다. 연천군 장남면에 위치한 고랑포초는 1999년 10km 가량 떨어진 백학초에 흡수돼 분교장으로 운영되다가 2002년 완전히 폐교됐다. 학교는 현재 개인사업자가 임대해 청소년 수련시설로 사용하고 있으나 방문객이 거의 없어 사실상 방치된 상태다. 고랑포초는 장남면사무소를 비롯해 주민자치센터, 보건지소 등이 몰려 있는 마을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고랑포초 동문인 유모 씨는 “폐허로 남은 학교를 보면 화가 난다”고 했다. “깨끗하게 관리해 달라”는 민원을 넣어 봐도 개인 임대지에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그때 왜 반대를 안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후회스럽기만 해요. 학부모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학생 수가 많은 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싶었고, 마을 주민들은 학교가 없어진다 해도 크게 바뀔 게 없다고 생각했죠. 주민들의 반대가 없자 폐교는 일사천리로 진행되더라고요.” 현재 장남면에 거주 중인 초등학생은 15명 남짓이지만 이 구역에는 초등학교가 없는 까닭에 인근의 백학면 백학초와 노곡초, 적성면 마지초로 흩어져서 통학하고 있다. 스쿨버스가 다니고는 있지만 하루 통학 거리만 해도 20km가 족히 넘는다. 학부모 김모 씨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같은 동네 친구인데, 서로 다른 학교에 다니다 보니 방과 후 마을에서 만나도 어울려 놀지를 못한다”며 “옆집에 살면서도 데면데면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러다가는 마을의 정체성마저 없어지겠다는 위기의식이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연천지역에는 22개 유‧초‧중‧고교가 있다. 이 중 학생 수 60명 미만인 학교는 6곳이며 3년 후에는 입학생이 없는 학교도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초등학교가 없는 면도 늘어나고 있다. 장남면뿐만 아니라 중면, 왕징면에도 초등학교가 없다. 왕징면과 미산면이 통폐합되면서 남은 왕산초는 현재 학생수 49명으로 역시 통폐합 대상 학교다. 미산면 주민들에게도 고랑포초의 폐교는 반면교사가 됐다. 지난달 초 실시된 통폐합 관련 학부모 설문조사에서 90% 이상 반대 의견을 피력한 것. 이 학교 안선근 교장은 “우리학교는 동문회와 마을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학교 살리기에 나서고 있어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상황”이라며 “고랑포초가 사라지고 마을이 황폐화되는 것을 지켜본 주민들은 우리 학교만큼은 꼭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학교를 다시 살리고 싶다는 게 장남면 마을 주민들의 바람이다. 여기에 김중기 백학초 교장이 발 벗고 나섰다. 그는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학교의 존폐는 결국 마을 고령화를 가속화 시키고 나아가 마을의 존립마저 위협한다”며 “폐교 후 주민들이 계속 줄고 마을 잔치에도 노인들만 가득한 모습 등 지역사회가 위축되는 것을 보면서 학교를, 마을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현재 김 교장과 마을 주민들이 합심해 준비하고 있는 것은 ‘농산어촌 유학’이다. 농산어촌유학은 도시 아이들이 일정 기간 부모 곁을 떠나 농산어촌의 농가 혹은 센터에서 생활하면서 시골학교를 다니며 그 지역을 알아가는 교육이다. 김 교장은 “다시 학교를 개교할 수 없다면 폐허가 된 학교를 고치고 가꿔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지역센터로 운영하고 싶다”며 “고랑포분교에는 기숙형 유학촌을, 백학면에는 하숙형 유학촌을 조성해 농촌유학 단지를 만들면 백학면과 장남면이 동반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청정 자연을 활용한 ‘아토피, 천식예방 학교’를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는 “이밖에도 유학교육뿐만 아니라 다문화가정 어머니들을 초청해 타국 문화를 배우고, 독거노인들을 센터로 모아 식사를 제공하는 등 마을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구심점으로 삼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 교장을 비롯한 구성원들은 지난 7월 주민자치위원, 군의원, 마을 주민, 학부모들을 모아 ‘농촌유학 공감토론회’를 가졌고 자주 회의를 개최하며 계획을 진행해나가고 있다. 정연남 연천교육지원청 교육장도 지원에 나섰다. 평소 작은학교 살리기에 관심이 많았던 정 교육장은 지난해 9월 부임 후 ‘접경지 농촌 학교 살리기 프로젝트’를 기획해 학교별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정 교육장은 “고랑포분교장과 백학초가 임대기간이 끝나면 지역마을 공동체가 교육적 차원에서 재임대 해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할 생각이고 마을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 지자체 등에서 지원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장은 “농촌유학센터가 마련되면 12년 전 그때처럼 마을이 다시 북적거릴 것으로 주민들은 기대하고 있다”며 “단기간 농촌 체험이든, 귀농이든 학부모와 학생들이 그리워하고 찾아올 수 있는 최적의 환경과 질 좋은 프로그램으로 학교와 마을을 지켜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강원 춘천의 송화초는 2009년 전교생 15명으로 폐교 위기에 처했던 학교다. 그러나 올해 이 학교 학생은 52명으로 5년 만에 4배 가까이 늘었다. 농촌유학센터를 운영하고부터 생긴 변화였다. 농산어촌유학은 도시 아이들이 농산어촌의 농가 혹은 센터에서 일정기간 생활하며 자연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배려심과 인성, 자존감과 사회성을 길러준다는 측면에서 최근 학부모들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한 제도다. 40여 년 전, 도시 아이들에게 자연체험을 주자는 의미로 일본에서 처음 시작됐고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현재 매년 50여 곳에서 1000여 명 정도가 이용하고 있으며 운영을 준비 중인 예비 실행지도 20여 곳에 달한다.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 머물면서 사계절에 맞게 씨앗뿌리기, 모내기, 물고기잡기, 벼 수확, 김장하기 등 자연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두루 체험한다. 송화초와 마을 주민들과 협력해 춘천 별빛 산골유학센터를 설립한 윤요왕 센터장은 “유학생도 27명으로 늘었지만 학교를 보고 귀농한 학부모들도 상당 수 있어 지역 아동도 25명으로 많아졌다”며 “일부 아이들은 2~3년씩 머물기도 할 만큼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밝혔다. 농산어촌유학은 크게 자신의 집을 활용하는 농가형, 마을 내 건물을 활용하는 센터형, 주민들과 협력해 농가와 센터를 오가며 진행하는 마을형으로 구분한다. 센터형의 경우 운영주체가 건물을 임대해 기숙사 형태로 운영하며 마을형은 센터와 농가가 결합한 것으로 활동은 센터에서 하되 숙박은 농가에서 제공한 방에서 하게 된다. 별빛 산골유학센터는 마을형 센터로 학교가 끝나면 유학생들과 지역아동들은 모두 센터로 모여 방과 후 활동을 한다. 저녁 시간이 되면 지역아동들은 각자의 집으로, 유학생들은 지정된 농가로 돌아가 숙박 한다. 농산어촌유학 관계자들은 “센터운영자와 교사, 농가 주민, 교육지원청, 학부모 등 운영주체 간 협력체계를 견고하게 구축하는 것이 성공의 포인트”라고 강조한다. 센터 운영이 민주적이고 투명하지 못하면 자칫 개인사업장화 되거나 마을과의 괴리가 발생해 마찰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센터 설립 전 지역주민과 학교, 교육청 등 관계자들의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윤 센터장은 “근 2~3년 간 전북, 강원, 제주, 충북 경북 등 각 광역시‧도에서 농산어촌유학 지원조례를 제정하는 등 관심이 높아지고는 있으나 아직 본격적으로 시행에 들어가지 않아 운영비 지원, 시설 지원 등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학비는 보통 한 달 60~80만 원 선이다. 도시에서 자녀에게 들어가는 학원비, 생활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부담스럽지만은 않다는 의견도 있지만 아직 저소득가구 등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은 가정에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윤 센터장은 “단순히 학생 수를 늘려 폐교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생각으로만 접근하면 도시 학부모들도 센터를 찾지 않을 것”이라며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지역과 도시의 아이들, 그리고 마을 주민들 모두가 상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1일 오전 서울충무초(교장 홍경희) 학생들이 충남 홍성 친환경농업협회의 지원을 받아 벼베기, 떡메치기, 새끼꼬기 등 전통적인 가을추수 방법을 체험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전북기계공고 동아리는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매년 실시되는 동아리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은 동아리들은 자동 소멸되기 때문이다. 10월에 열리는 동아리발표회에 출품하지 않거나 참가하지 않아도 소멸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평가를 근거로 다음해 예산을 차등 지급한다. 예산이 가장 적은 동아리와 많은 동아리는 4배 가까이 차이 나기도 한다. 예산을 차등지급하고, 활동이 부진한 동아리는 소멸시키는 것이 교육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조금 뒤쳐져도 더 잘할 수 있게 북돋아 주고 평등하게 지원하는 것이 우리 교육이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냐’고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코 사회는 공평하거나 평등하지 않다. 더 많이 노력하고 더 좋은 성과를 낸 사람에게 더 큰 보상이 돌아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지난달 26일 오후. 전북기계공고 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에 여념이 없다. 매주 금요일 5~7교시는 동아리 시간이다. 학생들은 각 동아리 방에서 회의를 하거나, 자료를 작성하고 연습을 하는 등 지도교사가 없는 경우에도 자율적으로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동아리 에 열정과 애정을 갖고 있음을 한 눈에 느낄 수 있었다. 전북기계공고 김준영 교감은 “이런 시스템이 학생들을 훨씬 적극적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이스터고인 우리학교 학생들은 졸업 후 곧바로 사회에 투입되는데 동아리가 성과제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사회성과 책임감을 기르는데 효과적이었다”고 말했다. 전북기계공고 동아리는 모든 것이 학생 중심으로 돌아간다. 10명이 구성되면 원하는 동아리를 개설할 수 있고 지도교사도 학생들이 직접 초빙한다. 동아리 평가도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불만도 없다. 박영훈 창의인성부장은 “3월이 되면 서로 인기교사를 섭외하려고 학교는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며 “‘우리 동아리 좀 맡아 달라’며 선물세례도 마지않는 학생들은 이런 과정에서 어른에 대한 공경심과 경쟁논리, 책임감을 배우게 된다. 마이스터고에 딱 맞는 유형”이라고 설명했다. 무과․무학년제로 운영되며 동아리원은 학생들이 직접 뽑는다. 고재승(3학년) 군은 “경직되기 마련인 선․후배 관계가 동아리를 통해 돈독해졌다”고 밝혔다. 고 군은 “졸업한 선배들도 후배들을 만나면 사회생활에 대한 팁을 알려주고 좋은 회사를 소개시켜주기도 한다”며 “학교에 대한 소속감이 강해졌다”고 덧붙였다. 더 좋은 평가를 받고, 더 많은 예산을 획득하기 위해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창의성도 쑥쑥 자란다. 동아리 명만 봐도 학생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다. 낚시동아리 ‘Boysfishing’, 요리동아리 ‘요리보고’, 볼링동아리 ‘쓰리핑거즈’, 골프동아리 ‘아이언맨’, 야구동아리 ‘야동’, 기업탐방동아리 ‘박기자’ 등 개성과 특징을 드러낸 이름들이 눈에 띤다. 동아리 개수만 73개에 달한다. 박 부장은 “동아리 평가에는 활동에 대한 에듀팟 기록 여부가 100점 중 35점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도록 설계했다”며 “단순 활동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에듀팟에 정리하고 기록하면서 향후 취업활동에도 도움 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몰랐던 재능을 발견하거나 재능을 더욱 발전시킨 학생도 있다. 원래 발명에 관심이 많았던 권시윤(2학년) 군은 발명동아리에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의견을 내면서 발명에 대한 열정이 더 깊어졌다. 지난해에는 연인이 함께 쓸 수 있는 4등분 젓가락을 개발하고 현재 특허를 준비하고 있다. 로봇동아리 ‘휴머노이드’ 학생들은 지난해 제15회 국제로봇올림피아드 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고 싶은 분야에서 마음껏 활동할 기회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 부장은 “적용 3년째에 접어든 요즘 이 모델을 마이스터고 뿐만 아니라 일반고에서도 각 학교 실정에 맞게 변형하면 충분히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며 “각종 연수 및 발표회를 통해 많은 학교에 전파할 것”이라고 밝혔다.
끼니가 아직 안 됐는데도 출출하거나 밤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챙겨 먹는 것을 간식(間食)이라고 한다. 이 말은 일본말 ‘かんしょく’에서 왔다고 합니다.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말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1)간식 → 곁두리, 샛밥, 참, 새참, 군음식 ‘곁두리’는 주로 농사꾼이나 일꾼들이 먹는 음식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샛밥’이라고도 한다. ‘사이에 먹는 밥’이라는 뜻이다. (2)곁두리: 농사꾼이나 일꾼들이 끼니 외에 참참이 먹는 음식. 여기에서 ‘참참이’는 ‘일정한 동안을 두고 이따금’이라는 뜻인데, 이 말은 ‘일을 하다가 이따금 쉬는 시간’을 뜻하는 ‘참참’에 접미사 ‘-이’를 더한 것이다. 이 ‘참참’이라는 말은 다음에 나오는 ‘참’이 겹쳐진 말이다. (3)참 ㄱ. 일을 하다가 일정하게 잠시 쉬는 동안. 한자를 빌려 ‘站’으로 적기도 한다. ㄴ. 일을 시작하여서 일정하게 쉬는 때까지의 사이. ㄷ. 일을 하다가 잠시 쉬는 동안이나 끼니때가 되었을 때에 먹는 음식. ㄹ. 길을 가다가 잠시 쉬어 묵거나 밥을 먹는 곳. 이처럼 ‘참’이라는 말에는 참 여러 뜻이 있다. 시간의 간격을 나타내기도 하고 그 사이에 먹는 음식이나 그것을 먹는 장소를 나타내기도 한다. ‘참’이라는 말에 ‘잠시 쉬는 동안 먹는 음식’이라는 뜻이 있으니 ‘간식’을 대체할 수 있는 말이다. ‘참’이라는 말에 ‘사이’가 줄어든 ‘새’를 덧붙여서 ‘새참’이라고도 한다. (4)새참: 일을 하다가 잠깐 쉬면서 먹는 음식. ≒샛요기(-療飢). ‘새참’이 사이에 요기를 하는 것이니까 ‘샛요기’라고 하는 것도 재미있다. (5)요기(療飢): 시장기를 겨우 면할 정도로 조금 먹음. ‘곁두리, 샛밥, 참, 새참’이 끼니와 끼니 ‘사이’에 먹는 음식이라는 뜻인 데 반해, ‘군음식’은 ‘더 먹는’ 음식이라는 뜻이 있다. 여기서 접두사 ‘군-’은 ‘가외로 더한’, ‘덧붙은’의 뜻이다. (6)군음식: 끼니 이외에 더 먹는 음식. 이러한 ‘군음식’을 먹는 것과 관련된 말로는 ‘군것질’, ‘군입정’, ‘주전부리’가 있다. (7)군것질: 끼니 외에 과일이나 과자 따위의 군음식을 먹는 일. ≒입치레 (8 군입정: 때 없이 군음식으로 입을 다심. ≒군입 (9)주전부리: 때를 가리지 않고 군음식을 자꾸 먹음. 요즘은 ‘새참거리(←간식거리)’로 ‘간편식(←스낵)’을 많이 찾는다. 하지만 간편식은 먹기에는 편하지만 건강에는 그리 이롭지 못하다. 열량은 높지만 영양가는 낮은 ‘즉석식(←패스트푸드)’과 ‘즉석식품(←인스턴트식품)’, 즉 ‘부실음식(←정크푸드)’일 뿐이다. 우리에게 여유식(←슬로푸드)이나 위안음식(←솔푸드)은 ‘한밥’이어도 어머니가 차려 주신 밥상이 아닐까? (10)한밥: 끼니때가 지난 뒤에 차리는 밥.
태우는 그날 아침에도 교실 문 앞까지 엄마의 등에 업혀왔다. 아침 회의를 마치고 계단을 올라오는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자 특유의 눈매를 반달로 만들며 선생님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는 것이었다. 라일락이었다. “선생님, 태우가요, 등에 업혀오다 어디서 향기가 난다며 고개를 들고는 손짓을 하더라고요. 저기라며. 교문 바로 지나서요. 잠깐 향기나 맡으라고 멈춰 섰더니 똑 따는 거예요. 안된다고 하니, 킬킬 웃으며 엎드리더라구요. 선생님, 혼 좀 내주세요.” 태우 엄마의 말을 흘려들으며 손에 쥔 꽃을 코언저리에 가까이 대보았다. 향기로웠다. 짐짓 표정은 향기를 못 맡은 척 “이 녀석” 한마디 하며 눈을 슬며시 흘겨주었다. 태우를 처음 만난 것은 삼월의 둘째 날이었다. 삼월이라 하지만 며칠 전 내린 눈이 바로 녹지 않아 길 곳곳이 질척이고, 쌓아놓은 눈이 구정물을 뒤집어 쓴 채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었다. 그런 날 아침, 태우는 엄마의 등에 업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아이가 둘러멘 가방의 무게로 엄마는 더욱 힘이 들어보였다. 아이는 심장이 약했던지라 4층까지 혼자 걸어 오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특히 몸의 컨디션이 좋지 못한 날에는 더욱 그랬다. 요즘이야 비상용 엘리베이터시설이 돼있지만 그 때만 해도 그런 실정이 못됐다. 파리한 아이의 입술과는 달리 더운 입김으로 엄마의 입술은 붉은 빛을 띠었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5학년 5반. 아이엄마는 푯말을 확인하고 그제야 아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조용히 교실 뒷문을 열어주었다. 앞 쪽 가까이 비어있는 자리에 그녀가 시선을 던지자 엄마의 눈길을 따라 아이도 그리로 가서 앉았다. 그녀의 뒤를 따르던 나는 ‘아, 저 아이가 태우로구나’ 한 눈에 알아보고 태우 엄마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어머, 일찍 오셨네요. 태우 어머니시죠?” “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려요. 어려움이 많으실 거예요.” 태우 엄마는 미안한 표정이었다. “도울 일이나 지도에 필요한 일은 언제든 얘기해 주세요. 아이들이 많다보니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일도 있어서…. 어려워 마시고 그때그때 얘기해주세요.” 그렇게 태우와 태우 엄마와의 인연은 시작됐다. 태우는 그녀의 둘째 아이였다. 그런데 출산의 고통은 잠시, 아이에게 복합 장애가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고, 특히 심장이 약해 인큐베이터 신세를 져야만했다. 아이엄마는 닷새 만에 퇴원하면서도 아기는 그대로 병원에 둘 수밖에 없었고, 몸조리할 틈도 없이 한 달 가까이 병원으로 출퇴근을 하고서야 아이를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단다. 그러고도 응급실로 달려가는 일은 잦았고, 약봉지도 그녀의 손에서 떠날 날이 없었다. 태우는 다른 아이들보다 늘 좀 더디기는 했지만, 고개를 가누고, 뒤집기를 하고, 걸음마를 떼고, 명확하진 않지만 웅얼웅얼 말을 배우고…. 그런 가운데도 태우 엄마는 치료 기관 정보를 얻게 되면 가사 일은 제쳐두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눈물겨운 노력의 대가인지 대여섯 살이 되면서 약을 먹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아이의 말수는 수다스러울 정도로 늘어났다. 그때 그녀는 자신의 간절한 소망대로 좋아지는가 싶어 환희에 들뜨기도 했다. 태우는 장난기 많고 짓궂은 아이였다. 수업 중에도 지루하고 흥미가 없어지면 쇳소리 같은 괴이한 소리를 내며 선생을 골탕 먹이기 일쑤였고, 흥미가 동하면 시도 때도 없이 너줄너줄 끝없이 이야기를 해 듣는 이가 어질어질할 정도였다. 하루는 미래의 직업에 대한 자신의 꿈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태우는 회사원이 되고 싶다 했고, 넥타이를 매고 출퇴근하며 사무를 보는 것이 멋있어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돈을 벌면 엄마에게 집이며 자동차도 사주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은 뭐 좀 안 해주냐고 하니 커피를 사드리겠다고 해 폭소를 자아냈다. 태우는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에 다른 아이들보다 성장이 더뎌 왜소했고, 장도 좋지 않아 실수가 잦았다. 그래서 태우 엄마는 그야말로 ‘5분 대기조’였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놓고도 일을 보러 멀리 갈 수 없었다. 실수를 하고는 화장실에서 자신의 휴대폰으로 바로 연락을 취했고 그러면 아이엄마는 옷가지를 챙겨 곧장 화장실로 달려와야 했다. 당시 같은 반 친구들은 휴대폰을 소지한 아이가 두어 명 될까 말까하던 시절이었는데, 아마도 첫 번째 소지자가 태우가 아니었을까 싶다. 체구는 작아도 나이배기인지라 실수한 일로 선생님의 도움을 받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하는 아이였다. 교실로 슬며시 아이를 들여보내고 돌아서는 그녀에게 “힘드셔서 어떡하죠?”라고 인사를 건네면, 미안한 표정으로 “저는 괜찮아요. 수업에 방해를 드려서…” 그런 태우 엄마를 보며 교사로서 말썽꾸러기 대여섯 아이를 합쳐 놓은 것보다 더욱 힘들게 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로 순간이나마 품었던 아이에 대한 짜증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치기인가 스스로 되새기게 되고, 부끄러운 마음조차 들었다. 늦가을 태우는 결석하는 날이 잦아졌다. 어쩌다 등교하는 날에는 전에 볼 수 없던 하얀 마스크에 때 이른 목도리까지 둘둘 감고 엄마의 등에 업혀 와서는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힘없이 앉아있었다. 수다 많던 아이의 입술은 더욱 파랬고, 얼굴은 백지장 같았다. 그런 날은 점심도 잘 먹지 못했다. 안쓰러운 나머지 “태우, 이것 좀 먹어볼래?”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런 아이가 신통해 국물에 밥을 축축이 적셔 한 술 떠먹이면 받아먹다 구역질을 하면서도 삼키었다. 그 모습에 눈물이 나오는 것을 애써 참고 “태우, 아기네요!”라고 농담을 건네면 힘없이 씩 웃는 것이었다. 퇴근이 가까울 무렵 잠깐 뵙고 싶다며 태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얼마 후 교실에 들어서는 그녀의 안색이 무척 어두웠다. 따뜻한 차를 건네며 기다리니 그녀는 마음을 다잡은 듯 입을 열었다. 태우의 심장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이며, 수술을 해도 희망을 갖기 어렵다는 것, 다른 기관의 기능도 좋지 않다는 것, 어려운 가정의 형편 등. 그녀의 인간적인 고뇌가 전율로 전해져 왔다. 듣는 이 조차 가슴이 격하게 흔들려 할 말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 역시 무슨 위로를 들으러 온 것은 아닌 듯싶었다. 다만 아이를 서로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그 공감대가 위로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들었다. 한참을 이야기 하고나서는 “선생님, 선생님이 늘 언니 같았어요. 이렇게 다 말씀드리고 나니 속이 후련해요. 1%의 희망이 있어도 엄마는 수술을 원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저는 접으려하고 있어요. 나쁘지요?” 그런 그녀에게 뭐라 말해주겠는가. 그녀의 손을 잡고 쓰다듬는 일 밖에. 그 해 겨울은 따뜻했다. 지속적으로 병원에 다니는 태우를 위해선 다행이었다. 방학 동안 집에서 형과 놀며 전보다 식사도 좀 한다고 했다. 수화기 저 편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말수가 는 것으로 좀 좋아졌나 싶었다. 따스한 봄이 어서 왔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얼어붙은 얼음장 밑으로 조심조심 흐르고 있는 물소리가 힘찬 울림으로 바뀌는 그런 계절이. 개학을 하루 앞둔 이월 초순이었다. 태우 엄마로부터 연락이 왔다.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개학날 가지 못할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그길로 집을 나섰다. 아이가 입원한 곳은 심장병 치료기관으로 지역에서는 제법 알려진 곳이었다. 가는 길은 복잡했다. 차도 밀렸다. 시간이 길어지니 마음은 더 초조해졌다. 도착해 보니 다행히 면회가 가능한 시각이었다. 이십 여분을 앉아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는 가운데 아이엄마가 침묵을 깨고 약간 흥분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참. 선생님, 태우가 잠깐 반짝 기운이 났는지 입을 꾸물꾸물 움직이기에 귀를 입 가까이 가져갔더니 저더러 고맙데요. 사랑한데요. 기특하지요?” 독실한 종교인이었던 아이엄마, 그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달리 없었다. “희망을 갖고 열심히 기도해요”라는 말 밖에. 신앙이 없던 나 역시 그 순간은 빌고 있었으니까. 중환자실에 외로이 누워있는 태우는 산소마스크를 낀 채 할딱할딱 숨을 쉬고 있었다. 언제 들어왔는지 아이엄마가 곁에 와 있었다. “태우야, 선생님 오셨어. 들었으면 손끝을 움직여봐.” 아이엄마가 재촉하자 아이가 오른 손끝을 말았다 폈다. 태우는 듣고 있었다. “태우야, 선생님이야. 잘 이겨낼 수 있지? 힘내야 해. 우리 착한 태우…” 아이는 다시 손끝을 움직였다. 그리고도 두 차례 면회를 더 다녀오는 동안 태우는 여전히 차도가 없었다. 퇴근 무렵 교탁을 정리하고 있는데 태우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 들려주실 수 있냐고. 수화기 저편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큼 차분했다. 순간 태우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직감했다. 아이 엄마와 함께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전에 없이 눈에는 두 세 겹 접혀진 하얀 거즈가 덮여 있었다. 산소마스크의 들썩거림조차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침대 맡에 놓인 기기를 보니 맥박은 뛰고 있었다. 나는 힘없이 늘어진 아이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속으로 되뇌었다. ‘태우야, 선생님 왔다. 손 좀 움직여줄래? 태우야. 착한 태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 이것 좀 보세요. 우리 태우 눈이 감기질 않아요. 그래서 거즈를 덮어 놓았어요. 선생님.” 그러면서 하얀 거즈를 올리는데 아이의 동공은 이미 풀어져 있었다. 눈을 뜬 채로. 눈물이 흘렀다. 주체할 수가 없었다. 사흘 후 아이는 저세상으로 떠났다. 삼월이 채 오기 전에. 해마다 겨울의 끝자락 이월이면 남은 찬 기운 탓인지 가슴은 여전히 시리고 허전하다. 그럴 때면 태우 엄마를 떠올린다. 아픈 아이를 먼저 앞세우고 그래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그녀, 좋은 세상에 갔으리라는 믿음과 희망으로 힘과 용기를 내 생활하는 그녀를.
신자유주의 기조로 교사 권위하락 부채질 功過 따져서 교육발전의 토양으로 삼아야 문민정부시절 탄생, 지난 20여년간 우리 교육의 지향점 역할을 한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방안(5․31교육개혁)’은 교육의 양적팽창과 다양성 확보에는 기여했지만 교육격차의 심화, 인성․창의교육 미흡, 교사의 권위하락 등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황우여 교육부장관의 5․31교육개혁 재조명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교총에서 발행하는 월간 ‘새교육’ 10월호가 이 문제를 기획특집으로 다뤘다. 특집은 이신동 순천향대 교수, 안선회 중부대 교수, 한재갑 뉴시스 교육전문기자의 기고와 5․31교육개혁의 산파 역할을 담당한 이명현 전 교육부장관의 인터뷰로 꾸며졌다. 이신동 교수는 “5․31교육개혁이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를 거쳐 현재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우리 교육의 비전을 제시하고, 기틀을 잡는 데 사상적 기초가 됐다”고 밝히면서도 “교육현장에 시장경제의 원리를 도입한 원흉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고 지적했다. “5․31교육개혁은 비전과 목표가 구체적이지 않아 정부가 바뀔 때마다 자의적인 해석으로 최초의 교육개혁 취지를 잘 살리지 못하게 하는 우를 범했다”는 이 교수는 “중등교육의 다양화 정책은 오히려 대입 명문고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안선회 교수는 “현 정부에는 문민정부 이후 유지돼온 대통령 직속의 교육자문기구조차 없다”며 “5․31교육개혁 이후 국가 발전을 위한 총체적인 중․장기 교육발전 전략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행복교육 공약의 진정한 실천을 기대하고 있다”며 대통령의 교육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한재갑 기자는 황 장관이 5․31교육개혁의 재조명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5․31교육개혁이 우리 교육에 미친 영향이 큰 탓도 있지만 그동안 나타난 문제점도 적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해석했다.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기능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기본이념에 대한 시각의 일단을 나타낸 것이다. 한 기자는 “5․31교육개혁은 우리 교육의 고질적인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교육정책을 쏟아냈지만 교사의 권위하락을 부채질한 정책으로 교원들에게 상당한 ‘개혁 피로감’을 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5․31교육개혁이 교사를 단순한 트랜스미터(전달자)로 전락시켰다”는 안양옥 교총회장의 평소 진단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이명현 전 장관은 인터뷰에서 “교육의 다양화․정보화․세계화를 추진한 것이 5․31교육개혁의 핵심 가치”라고 밝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으며 교육예산 GNP 5% 확보를 이끌어내는 등 역대 가장 강력한 교육개혁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장관은 “5․31교육개혁을 재조명, 새롭게 발전시키겠다는 황 장관의 발언에 고마움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한편 ‘새교육’ 10월호는 이슈 리포트로 학폭위의 민낯을 해부하고, 스페셜 테마로 창체와 안전교육을 다루고 있다. ‘2014 서울 중등 교육전문직 시험 서술형 평가 기출문제 해설’도 교육전문직을 준비하는 교사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구독문의=02-570-5774
수업시간에 딴짓하고, 소란 피우고, 장난치고, 말대꾸하고, 심지어는 교사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학생들을 보면 화가 절로 납니다. 그들의 미래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신 차리라고 따끔하게 야단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학생들의 얼굴에서 지겨움, 불안감, 우울함, 분노와 절망감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땐 어쩐지 학생들이 불쌍하고, 가여워 보이고, 안타까움이 생기면서 야단보다는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습니까? 같은 아이를 보면서도 그들의 ‘행동’을 보는가, 또는 ‘감정’을 보는가에 따라 우리의 반응은 완전히 반대로 나타납니다. 아이들의 미숙한 행동을 보면 불편하고, 걱정되고, 화가 나면서 야단치고 싶어지지만 그들의 여릿한 감정을 보면 측은지심이 생기고 보듬어주고 싶습니다. 즉, 학생을 보는 시각에 따라 반응이 이토록 자연스럽게 달라집니다. 행동에 대한 지적, 비판, 지시 일색인 우리 교육 만약에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분명 아이들을 보살펴주기를 원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아이들을 야단칩니다. 심지어는 매를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거나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느냐는 뜻입니다. 정말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행동과 감정, 둘 다 볼 수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흔히 아이의 감정보다는 행동에 시선을 고정합니다. 아이가 울고 있다고 합시다. 어른들의 반응은 “왜 우니? 또 찔찔 짜냐?! 뚝 그치지 못해!”등 행동에 대한 지적과 비판과 지시 일색입니다. 슬프거나 두렵거나 외롭기 때문에 눈물이 나올 텐데 그 감정들은 죄다 무시되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공부해라, 밥 천천히 먹어라, 떠들지 마라, 숙제 빨리 해라, 게임 하지 말라고 했지…” 어른들이 아이에게 온종일 하는 말은 거의 다 행동에 대한 지적이고, 조언이고, 경고입니다. 결국 아이들을 마치 감정이 없는 기계, 또는 무시해도 되는 동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 결과, 아이들은 왕따 당하는 친구의 괴로움을 공감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두들겨 맞는 후배의 고통마저 전혀 느끼지 못하는 흉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 놓고는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이 공감 능력이 없다고 한탄합니다. 훗날 ‘관심병사’나 사회 부적응자가 큰 사고를 치면 “세상이 어떻게 이토록 흉측해졌냐”며 어리둥절해합니다. 그리고는 군에서, 사고지역에서 허둥지둥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가히 각주구검(刻舟求劍)이라 할 만합니다. 정서기반 학문의 시대 도래… 교육 변해야 왜 우리는 감정을 무시하고 행동을 주시하는 걸까요? 가장 큰 요인으로 1970년대부터 우리의 시각을 지배한 행동주의를 꼽을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는 요인(즉,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과학적 방법이 행동주의란 이름으로 심리학과 교육학에 도입되고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즉, 현재 어른들은 알게 모르게 행동을 선택하도록 훈련받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변하였습니다. 동물과 육체에 의존했던 농경시대에 이어 기계가 주도한 산업화 시대는 막을 내리고 지식기반시대라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고 있듯이, 분석주의와 행동주의는 저물고 정서기반 학문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성과 논리와 개인 중심에서 감성과 심리와 관계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교육학도 변하고 교사관도 변하고 인재상도 변해야 하지요. 가장 먼저 변해야 하는 게 우리의 시각입니다. 이제 우리는 행동보다 감정을 먼저 보는 시각을 지녀야 합니다. 시각은 세상을 보는 눈이며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를 줍니다. 새로운 가능성은 세상을 새롭게 볼 때에 나타납니다. 아이의 감정을 포착할 줄 아는 시각을 지닌 교사가 있는 곳에 행복한 학교가 있습니다. 시각은 우리 각자의 선택입니다. 그러니 행복도 우리 각자의 선택입니다.
01 중국의 ‘문화혁명’을 기억하는 젊은 세대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혁명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에는 오늘날 중국 인민은 물론이고 세계가 공감하는 것 같다. 나는 1992년 처음으로 중국을 여행하였다. 이 여행은 나에게 세계 인식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의미 있는 충격도 주었다. 우리 일행은 북경대학교를 방문하여 그 대학 경제학과 교수에게서 특강을 들었다.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얻고 온 사람이었다. 강의에 임하는 그에게 우리 일행 중 누군가가 덕담에 가까운 조크를 했다. “교수님! 굉장히 젊어 보이는데요, 나이보다 한참 젊어 보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돌아온 그의 대답이 정말 기막힌 것이었다.“지난 시기 중국 현대사의 한 지점에서 약 10년 동안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니 저도 나이를 먹을 수가 없었던 거 아닌가 생각됩니다.” 문화혁명에 대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논평이었다. 문화혁명이 한창 광기를 뿜어대며 시작되던 1966년 당시 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이 미친 듯한 대소동을 국내 언론들도 연일 크게 보도했었는데, 나는 이것이 왜 ‘문화혁명’인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업시간에 사회 선생님께서 문화혁명에 대해 특별한 설명을 해 주시기도 했지만, ‘문화혁명’이 왜 문화혁명인지를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이 소동은 내가 아는 ‘문화’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인들 이 광기의 문화혁명이 지닌 정치적, 역사적, 이념적 총체성을 파악하기는 어려웠으리라. 더구나 지금 막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서 잘 정돈된 인식을 하기는 전문가라 하더라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로부터 30년 뒤 국내 한 학자에 의해서 정리 기술된 문화혁명은 다음과 같다. 문화혁명은 중국에서 일어났던 공산주의 정치운동이다. 인민경제를 살린다는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권력기반이 흔들릴 것을 우려한 모택동을 중심으로 한 교조적 공산주의자들이 1965년 가을부터 약 10년 동안 중국사회에 큰 혼란을 불러일으킨 대규모 군중 운동이다. 수정주의 노선 및 자본주의 세력 제거에 목적을 두고 청소년으로 조직된 홍위병들을 혁명의 도구로 이용하였다. 문화혁명은 모든 분야에서 당과 국가의 기능을 마비시킴으로써 중국사회에 대한 당 국가의 영향력을 저하시키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다(서진영, ‘현대중국정치론’, 나남 출판). 02 위의 내용을, 내가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즉 문화혁명이 시작할 바로 그때, 설령 알았다고 하더라도 나는 ‘문화혁명’이 왜 문화혁명인지를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아마도 문화혁명이라면서 왜 문화적이지 못한가, 문화혁명의 방식이 왜 저리도 반문화적이란 말인가 등 의문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문화’라는 것이 왜 이 대사변(大事變)의 소용돌이를 지칭하는 이름에 들어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는 데서 오는 혼란이었기 때문이다. ‘문화’를 나타내거나 함의하는 수많은 의미 자질 중에 이념(ideology)이란 것이 들어간다는 것을 공부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은 마흔이 넘어서 ‘문화교육’ 등의 개념을 내가 자주 쓰게 되면서부터이다. [PART VIEW]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문화’를 나타내는 수많은 의미 자질 중에 하필 이데올로기를 문화와 동의어로 선택하여, 그것을 이름으로 가져갔을까. 그것도 기껏 권력투쟁을 위장한 이데올로기 투쟁에 불과한 것을 ‘문화혁명’으로 명명했을까. ‘문화’의 의미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의미는 ‘인류가 남긴 가장 가치 있는 정신적 산물’이다. 또한 ‘문화’에는 ‘야만적이지 아니한’ 이라는 의미도 들어 있다. 이런 괜찮은 의미들은 ‘문화혁명’이라는 명명법 속에 교묘히 이용되었다가 혹독하게 추방되었다. 대중들은 여기에 속는다. 모든 선전 선동은 특정의 이름을 배타적으로 선점하는 데서 이루어진다. 어떤 이름을 일방적으로 배타적으로 선점하게 되면 그것은 정의의 독점으로 이어진다. 좋은 이름을 배타적으로 선점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심리가 강하게 나타난다. 정의의 독점은 필연적으로 정의의 왜곡을 가져온다. 정의의 왜곡이 공동체 전체의 불행을 불러들이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시기에 있었던 그 대소동을 ‘문화혁명’이라고 이름 붙인 것에 대해서는 다시금 말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렇게 이름을 붙임으로 해서 이 대소동(문화혁명)은 얼마나 그럴듯한 당위를 지니는 혁명으로 보이게 되었을까. ‘문화혁명’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 혁명의 대상이 되었던 중국 공산당 내의 수정주의자들은 얼마나 구차하고 옹색한 자리로 내몰렸을까. 사실 그런 효과를 고려하여 교조주의자들은 ‘문화혁명’이라는 이름을 선점하지 않았을까. 얼마나 당당해 보이는 이름인가. 대신 이 소동의 실체 내용에 부합하게 ‘수정주의 타도 운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면, 그저 당파적 권력투쟁의 발동 정도로 인식되고 말았을 지도 모른다. 여기에 동원된 홍위병 청소년들도 이 ‘문화혁명’이라는 이름의 매력에 흠씬 빠져서 자신들의 광기에 가까운 파괴적 행패들을 정당화하는 심리적 기제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잘못된 말의 운용, 그 폐해가 극단에 이른 것을 여기에서 본다. 03 캠퍼스가 두 지역으로 나뉘어 있던 어떤 대학이 캠퍼스 분할 운영의 비효율과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두 캠퍼스 운영 계획을 새롭게 마련했다. 한 캠퍼스는 학부 중심으로 운영하고, 다른 한 캠퍼스는 대학원과 평생교육원 중심으로 운영하기로 하였다. 이를 다년간 연구 검토하여 ‘??대학교 캠퍼스 특성화 발전 위원회’라는 명칭의 조직을 가동하려 했다. 이를테면 캠퍼스의 구조 조정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캠퍼스 부근의 가게와 학생들을 상대로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 대학촌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당장 ‘??대학 캠퍼스 정상화를 위한 범시민 비상대책 위원회’라는 명칭의 조직을 만들었다. 대학 측의 새로운 캠퍼스 운영 계획을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사실과 현상은 하나인데 인식과 가치는 판이하다. 대학 측 위원회의 이름을 보면, 좀 더 나은 비전을 향해 가려는 의욕이 읽힌다. 이 대학은 새로운 도전을 향하여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하려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주민들이 조직한 위원회의 이름을 보면, 이 대학은 문제점이 엄청나게 많아서 정상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학의 발전 계획이란 것은 비정상(非正常)으로 가는 지름길이고, 마치 대학 캠퍼스가 큰 위기에 처해서 비상 상태에 있는 것 같다. ‘정상화 비상대책’이라는 이름이 빚어내는 착시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치권에서 정파 간 싸움의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이름들을 보면 정말 가관이다. 이런 이름들은 세상을 어지럽힌다. 그리고 불필요한 갈등만 계속 증폭시켜 간다. 그 과정에서 정치인들이 ‘자기 이름 알리기’라는 얄팍한 잔머리 수도 끼어든다. 일찍이 공자는 제자가 정치를 한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하겠느냐 묻자,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고 하였다. ‘정명(正名)’을 강조하여, 이름을 바르게 함으로써 세상을 바르게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름을 어떻게 짓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문제 인식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사람의 전략을 알 수 있다. 이름 부르는 방식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 가는 곳을 알 수 있다. 바르게 이름을 짓지 아니하면, 바르게 이름을 불러주지 아니하면, 바른 관계를 만들기 어렵다. 과도하게 이름에 집착한다는 것은 실체를 보지 못하고 헛된 것에 함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사람은 사기 당하기 쉽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나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편견의 감옥에 갇혀 있음을 뜻한다. 이름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가히 득도(得道)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나았다. 환갑을 넘긴 나이지만 얼굴은 50대 초반처럼 부드럽고 탄탄했다. 다부진 몸매에서 뿜어져 나오는 당당함은 거칠 것 없어 보였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우동기 대구시교육감. 교육의 명가(名家) 대구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뛰어든 그는 대구교육청을 3년 연속 전국 최우수교육청 반열에 올려놨다. 청렴도 평가 역시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실제로 대구 학교폭력 발생건수는 전국에서 제일 적다. 지난 1년간 학교폭력 사건이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은 학교가 77곳이나 된다. 대학 진학 등 학력도 전국 최고 수준. 학부모들이 학교나 교육기관에 갖는 만족도, 즉 신뢰도는 교육부 평가에서 2년 연속 만점을 받았다. 비결이 뭘까, 우동기 교육감은 ‘신뢰’라고 대답했다. 학교와 지역사회, 학부모, 교사, 학생 등 교육을 둘러싼 구성원 모두가 교육을 위해 힘을 모으고 아낌없이 희생한 대가라는 설명이다. 우 교육감은 또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교육현안에 대해서는 자신의 소신을 분명히 했다. ‘9시 등교’는 학생들의 안전과 학부모들의 부담을 고려할 때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수능영어 절대평가에 대해서는 높은 교육열과 치열한 입시경쟁 구도 아래서 경쟁 방식만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며 사교육 풍선효과를 우려했다. 논란을 빚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계와 관련, 국정보다는 정밀한 검증을 전제로 검정화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육감 직선제에 대해서도 부정적 견해를 나타냈다. 우 교육감은 유권자의 무관심, 막대한 선거비용, 정당 정치 개입 등 부작용이 많다며 임명제나 100% 선거 공영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학부모 교육 교재를 만들어 모든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교사를 뽑을 때는 면접 비중을 높여 상담 능력을 평가하는 전국 유일의 교육청. 대구를 대한민국 교육 수도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우동기 교육감. 그가 추구하는 꿈과 희망, 행복이 넘치는 대구 교육의 청사진을 들어본다. - 대구교육청이 3년 연속 전국 최우수교육청으로 뽑혔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교육청은 교육청 평가에서 학교폭력 예방, 교육현장 지원, 교육수요자 만족도에서 전국 최우수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번 결과는 학생을 중심에 두고 대구 교육공동체 모두가 교육의 본질적 가치 실현을 위해 일관성 있게 추진해 온 땀과 열정의 결실이라고 생각합니다.” - 쉽지 않은 결과인데 비결이 궁금합니다. “첫째는 교육행정의 기본에 충실했구요, 둘째는 학부모 등 교육공동체의 신뢰를 얻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청렴하고 희생적인 교육행정과 교사와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 등 모두가 대구 교육을 위해 믿고 힘을 모을 수 있었다는 게 원동력입니다. 저는 특히 교육구성원들 간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뢰가 없으면 교육도 없습니다. 신뢰를 잃은 학교는 설자리가 없는 것이죠.” - 깐깐한 학부모들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았습니까. “얼마 전 한 학부모 단체 대표 분이 찾아오셔서 대뜸 ‘고맙다’고 하더라구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했더니 이 단체가 만든 촌지고발 창구를 개설한 이래 단 한 건도 접수가 안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해요. 진보성향 단체인데다 촌지 고발로 유명세를 탄 곳이어서 긴장했는데 오히려 칭찬을 들었습니다. 제가 교육감이 된 뒤 일도 많아지고 요구하는 것도 많아 선생님들이 힘드셨을 텐데 이런 믿음을 주셔서 너무 자랑스럽고 감사했습니다.” - 교육청 평가 결과를 보니까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이 0.5%로 전국에서 가장 낮더군요. “올 4월 1일 기준 0.5%입니다. 아마 9월에는 이보다 더 낮아져 있을 겁니다. 학교폭력 발생 건수가 하나도 없는 학교폭력 제로 학교도 77곳이나 돼요. 처음엔 초등학교가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고등학교도 상당수 있습니다. 몇 년 전 불미스런 일이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폭력만큼은 뿌리 뽑자는 강한 결속을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 인성교육에 많은 공을 들이신 것 같은데요.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우리는 초·중·고교가 월요일 1교시에는 수업을 안 합니다. 대신 담임교사와 학생들이 서로 대화하고 공감하는 ‘사제동행 행복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학생들과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선생님들이 교재연구, 생활지도에 각종 공문처리까지 너무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아예 한 시간을 빼서 실컷 떠들고 이야기하며 서로 눈을 맞추는 시간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또 맨입으로만 아이들을 만날 수 없잖아요. 그래서 빵도 사먹고 영화도 보고 하라는 뜻에서 초등학생은 1인당 6000원, 중·고생은 9000원씩 예산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 학생 상담체계도 잘 갖춰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든 초·중·고교에 상담사를 배치한 교육청은 대구뿐입니다. 또 선생님들을 뽑을 때는 반드시 상담과목을 치르게 합니다. 그래서 대구의 임용시험은 면접 점수 비중이 다른 시·도보다 더 높지요. 요즘 젊은 선생님들의 상담 능력이 예전만 못한 것 같아 양성 과정에서 각별히 신경 써 달라는 의미로 면접에서 상담 비중을 강화했습니다.” - 학교 인성교육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학교 폭력문제에 국한해서 말씀드리면 우선은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간 교우관계를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둘 생각입니다. 요즘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면 학생들 사이가 원수처럼 달라져요. 잘못한 학생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고 은폐해서도 안 되겠지만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사이좋은 친구로 만들어주는 데 있다고 봅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운영도 이런 방향으로 갈 계획입니다.” - 대구를 대한민국 교육 수도라고 말씀하셨는데, 다른 시·도가 불만을 갖지 않을까요. “예로부터 대구는 교육도시입니다. 근대 교육의 발상지이기도 하구요. 그 뿐입니까. 학생들 공부 잘하죠, 심성 착하죠, 학부모님들 교육열 좋구요, 교육 인프라까지 잘 갖춰져 있습니다. 수도권 집중 현상 때문에 가려져 있습니다만 대구만한 교육도시가 대한민국에 또 어디 있습니까. 최소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교육에 관한 한 아무 걱정 않는 도시를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우 교육감은 특허청에 ‘대한민국 행복교육의 수도 대구’를 내용으로 상표등록을 출원해놓고 있다.) - 현안 사항 좀 여쭤보겠습니다. 한국교총에서 교육감 직선제 위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교육감 직선제는 폐지돼야 합니다. 유권자의 무관심, 막대한 선거비용, 정당정치 개입 등 분명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대통령과 교육부장관, 교육감의 정책 노선이 각각 다르다면 학교가 얼마나 힘들겠어요. 개인적으로 프랑스와 같은 임명제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굳이 직선제를 한다면 100% 선거 공용제로 가야겠지요.” - 교육부가 밝힌 수능영어 절대평가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사교육비를 줄이고 학생들의 학습부담을 경감하자는 출발은 좋은데 지금과 같은 입시 구도 속에서 이런 경쟁 방법 개편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대학 문은 뻔한데 그 모양이 네모건 세모건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저는 오히려 풍선효과가 걱정입니다.” - 대안이 있습니까? “흔히 말하는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등 주지 과목 순서가 있잖아요. 그런데 뉴질랜드는 우리와 달라요. 그곳에서는 국어가 맨 처음이고 두 번째가 예술입니다. 음악, 미술, 드라마 즉 인문학들이죠. 세 번째는 체육, 네 번째가 소수민족 언어, 그리고 맨 마지막이 수학이더라구요. 이 같은 시스템은 싱가포르와 일본 등이 부분적으로 도입하고 있는데 한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9시 등교 논란은 어떻게 보십니까. “실은 저도 한때 검토를 좀 해봤어요. 그런데 학부모들이 너무 힘들어 하고 불안해하더라구요. 직장에 일찍 나가시는 부모님들은 아이를 7시 좀 넘어 학교에 보내는데 애들이 안전한지 걱정을 많이 해요. 초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구요. 그 실상을 보고 현장 적용에 문제가 많겠다 싶어 생각을 접었습니다.” - 대구시민과 학생들은 어떤 교육감을 바라고 있을까요. “우리 대구 학생들은 기대 이상으로 착하고 부모님과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높습니다. 또한, 행복역량 함양에 대한 요구도 큽니다. 저는 우리 학생들이 적절한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도덕적, 지적 역량을 함양하여 ‘진취적이고 개방적이며 따뜻한 사람’으로서 자신들의 꿈과 끼를 가꾸고 펼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얼마 전 한국이 전 세계에서 온 수학자들로 들썩였다. 4년마다 열리는 ‘수학계의 올림픽’, 세계수학자대회가 서울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제 올림피아드에서 우수한 수학 성적을 내면서도 정작 수학에 대한 흥미도 조사에서는 세계 최하위권을 맴돌던 우리나라다. 때문에 이번 대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 각종 언론에서는 우리나라 수학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기사들을 연일 쏟아냈다. 한 달이 넘는 취재 기간 동안 가장 흥미를 끌었던 건 한 유학생과의 인터뷰였다.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서 공부를 하다 고등학교 때 한국으로 온 여학생이었다. 미국의 학교에서 수학 성적으로는 1~2등을 다투던 우수한 학생이었는데 한국에 오자마자 받은 그녀의 첫 수학 점수는 40점대였다. 가장 적응이 힘들었던 건 한국의 수업 방식이었다. 미국에선 철저히 개념과 원리를 중심으로 수업을 했고 시험도 그렇게 출제가 됐으며 개념 하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교사는 다양한 액티비티들을 준비해 왔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 학교에서는 개념과 공식을 짧게 가르치고는 계속해서 많은 문제들을 풀게 했다. 특히, 한국의 시험은 수업에서 배운 것과는 달랐다는 것이 그녀의 전언이다. 공식만 알면 풀 수 있는 예제 위주로 수업을 했지만 정작 시험에는 수업에서 배운 ‘그런’ 문제들이 절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던 수업 내용에 나름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막상 시험지를 받아 들고선 배신감을 느꼈을 정도라고 했다. 더 흥미로운 건 그녀가 어떻게 1년 만에 수학 점수를 98점까지 끌어올리게 됐느냐는 것이다. 그녀의 성공 비법은 철저한 ‘한국식’ 수학공부법이었다. 그녀는 시험을 위해 시중에 나와 있는 거의 모든 수학 문제를 다 풀어봤다고 했다. 공식을 완벽하게 외운 뒤 숫자만 바꾸면 그냥 풀 수 있을 정도로 미친 듯이 문제만 풀어댔다는 것이다. 수학적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 따위는 아예 접어둔 셈이다. 때문인지 높은 수학 점수에도 그녀는 지금도 자신이 결코 수학을 잘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아이러니한 이야기였지만 씁쓸하게도 나는 왠지 그녀의 말이 이해가 됐다. 우리나라 수학교육의 고질적인 문제라는 ‘문제풀이 위주’의 공부에 대한 지적이 나온 것은 사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절대적인 수학 학습량이나 수업시수를 둘러싼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수업 시간에 개념은 짧게, 문제는 많이 풀도록 가르치는 현재의 교육방식에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자신감’이다. 취재 중 만난 한 교사는 아이들이 수학 60점을 받고 꼴등을 하는 것과 20점을 받고 꼴등하는 것은 다르다고 했다. [PART VIEW]바로 ‘자신감’의 문제 때문이다. 비록 등수가 낮더라도 60점을 받은 아이는 아쉬워하며 다음 공부를 계속 할 수 있지만 20점을 받은 아이는 다음을 기약하는 게 아니라 아예 수학을 ‘포기’해 버린다는 것이다. 중학생 시기에 ‘수포자’들이 많이 생겨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지 모른다. 갑자기 어려워지는 학습 내용에 절대적인 점수가 내려가면서 아이들의 자신감도 덩달아 바닥을 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고교 진학을 위한 사교육까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아이들은 수학에 대한 흥미마저 잃어버리게 되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이렇게 보면 절반이 넘게 엎드려 자고 있다는 일선 고등학교의 수학수업 풍경도 분명 새삼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올해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필즈상을 수상한 마리암 미르자카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수상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신도 어릴 때 수학을 싫어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스스로 수학을 못한다고 생각하게 되니 자신감을 잃고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됐다는 것이었다. 같은 자리에 있던 국제수학연맹(IMU)의 잉그리드 도비시 회장 역시 한국의 수학교육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신감’의 문제를 꼽았다. 그들의 말대로 수학 공부를 하다보면 누구나 도중에 지치고 두려워지는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책을 잡고 공부를 계속해 나갈 수 있는 힘은 바로 ‘자신감’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과정도, 교과서도, 수업방식도 이제는 최소한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키워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세계수학자대회는 막을 내렸지만 수학교육을 개선해 나가기 위한 우리의 과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