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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원일석 | 광운대 정보통신대학원 교수․교육용게임 쉽게 빠질 수 있는 게임의 유혹 A군은 고향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가 온라인 게임을 하게 된 것은 주변 친구들의 자연스러운 권유에 의해서였는데, 그 별 의미 없는 권유가 A군 인생을 완전히 변화시켜 버릴 것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온라인 게임의 전투와 커뮤니티의 재미에 푹 빠져버린 A군은 강의가 없는 낮에는 대학가의 PC방에서, 밤에는 자취방에서 게임에 몰두하게 되었다. 점차 온라인 게임에 접속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그것에 비례해 학업에 쏟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과제물도 제출하지 않고, 강의에도 잘 나가지 않던 A군은 더 이상 출석점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휴학을 해버렸다. 그리고는 자취방에 틀어박혀 온라인 게임의 무한한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A군의 말에 의하면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자취방에서 일 년 동안 온라인 게임만 하다가 초췌해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현실에 눈을 뜬 것이다. 현실은 더 참혹했다. 휴학상태로 두 학기를 허송세월하고, 등록금은 게임 아이템을 사는데 모두 탕진해 버렸다. A군은 더 늦기 전에 다시 복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힘든 결정이었다고 한다. 후배들과 함께 재수강하기도 창피하고, 무엇보다도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일 년 동안 게임만 하며 시간을 보냈으며 등록금을 더 달라고 말할 면목이 없었던 것이다. A군으로부터 필자가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다행이도 A군은 복학하여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간 뒤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대학생활에서 잃어버린 일 년이 넘는 시간을 어떻게 만회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었고, 자신을 이런 상태로 몰고 간 온라인 게임은 다시는 보기 싫다고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A군이 이런 일을 겪기 전에 필자나 다른 전문가들이 상황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대학생인) A군이 어느 순간 자신이 스스로 정신을 차렸다는 점, 그리고 빨리 잘못된 상황을 회복시키려고 노력했으며 그 노력이 성과를 보였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게임중독 상황에서 스스로 정신을 차리는 행운은 정말 찾아오기 힘들다. 특히 혼자서 살며 주변 사람과 격리된 상태에서는 더욱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학생들의 주변에 이런 친구가 있다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빨리 알리도록 당부해두는 것이 좋다. 집에서는 밤새고, 학교에서는 자고 초등학교 고학년인 B군은 활발하고 성적도 비교적 좋은 아이다. B군의 부모와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어 자주 만나게 되었는데, 어느 날 B군의 부모가 B군이 게임 때문에 성적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하며 필자에게 상담을 요청해왔다. B군의 부모는 가게를 하고 있기 때문에 아침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와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아침에 나가는 사이클이 반복되어 B군이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B군과도 구면이고 집에도 방문한 적이 있어 B군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B군은 집에 와서 잠을 거의 자지 않았다. B군은 집에 오면 곧장 게임을 시작한다. 그리고 부모가 올 때쯤 되어 컴퓨터를 끄고 자는 척하다가 부모가 잠자리에 들면 다시 게임을 시작한다. 외아들인 B군은 자기 공부방 안에 컴퓨터를 가지고 있었는데, 방문을 닫으면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구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상태로 게임을 하다가 새벽에 잠들고, 아침에 엄마의 성화에 깨어나 등교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쉬는 시간에 자고, 수업시간에는 조는 등 학교에서 수업이 잘될 리가 없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생체리듬이 고정되어 밤에는 정신이 또렷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므로, 성적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러한 경우 중독적 환경을 개선시키기 위한 조치가 우선되어야 하고, 폭력적이거나 강제적 방법보다는 스스로의 조절력을 높이는 방법을 유도하여 B군의 현실 생활 복귀를 찾아야만 했다. 일단 B군의 컴퓨터는 방 안에 있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부모님도 써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컴퓨터를 거실의 공개된 장소로 내놓았고, 또한 담임선생님과 B군의 학습문제에 대해 상의하도록 하였다. B군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시간조절을 하게 되었으며, 지면에 다 쓸 수 없을 정도의 크고 작은 마찰이 있었지만 이제는 일상생활과 학업에 있어 큰 문제없이 적응하고 있다. 그러나 B군의 경우는 가정환경 때문에 지속적으로 지켜봐야만 한다. 맞벌이나 부모의 갈등 문제 등으로 자녀에게 관심을 덜 기울이는 가정의 경우 게임중독문제는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일단 일어나면 심각한 수준으로 빠져버려 회복에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가정환경을 살펴보자. 가족이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환경의 아이들은 일단 게임중독을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그만큼이나 게임은 아이들의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고, 새로운 도피처이자 안식처가 되었다. B군이 게임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발견한 또 다른 문제도 있다. 게임에 몰입하자 B군도 모르게 다리 한쪽이 의자로 올라가더니 화면을 향해 목을 쭉 뺀 자세가 게임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성인에게서나 볼 수 있는 컴퓨터 직업병 자세를 초등학생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문제는 아이들의 게임중독과 함께 반드시 확인해보도록 당부하고 싶다. 청소년 10명에 3명이 게임중독 21세기형 지식산업이며 정서서비스산업 및 감성산업인 게임산업.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할 중요한 국가전략산업이며, 종합예술산업이며, 멀티미디어 데이터의 보고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불리는 신규산업이다. 국내 규모는 4조 이상, 세계적 규모는 1200억 불(약 140조 원) 이상에 달하는 대규모의 시장이며 매년 30% 이상의 경이적인 성장률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화려한 게임시장에서 파생되는 게임중독 문제는 그냥 지나칠 때가 있다. 모든 사람들이 달의 밝은 앞면을 보면서 달의 어두운 뒷면은 상상하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달의 뒷면이 실재하는 것처럼 청소년 10명 가운데 3명이 게임중독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추산되는 현실도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야만 한다. 과연 청소년들은 얼마나 게임을 할까? 청소년들이 한 달에 얼마나 온라인게임을 하는지에 대한 조사에서 거의 전 연령의 30% 정도가 하루에 한 번 이상 온라인게임을 한다고 대답했다. 이것은 거의 ‘일상’이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게임 시간대를 조사한 것에서는 초등학생 연령대는 반수 이상이 정오부터 저녁 6시 사이의 시간에 게임을 한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이나 PC방에서 게임을 하는 인원수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저녁 6시 이후에는 집에서 부모님들과 함께 있으므로 게임을 하기에는 다소 곤란해지고, 수면시간이 시작되는 10시 이후에는 게임이 더욱 곤란해진다.이에 비해서 중학생 이상 연령대를 보면 학교가 끝난 뒤부터 새벽 2시까지의 분포가 고른 편이다. 이 연령대는 비교적 시간에 자유롭게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0.7%(새벽 2시부터 아침 6시까지)의 초등학생이다. 과연 이들은 어떤 일상을 보내는 것일까?[PAGE BREAK] 아직도 해결은 가정 내에서만 게임중독 문제가 맨 처음 발견되는 장소는 대부분 가정이다. 자녀의 게임중독 증상을 인지한 뒤 부모들의 대응방법을 보면 자녀의 게임중독 문제는 부모가 스스로 해결하거나 강제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는 답변이 상당히 많다. 전문 상담기관이나 교사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답변은 상대적으로 적다. 만약 자녀의 게임중독이 심각한 상황이라면 전문가와 상담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자칫 놓칠 수도 있다. 교사와 부모와의 긴밀한 교류는 이러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믿음직한 방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경험에 의하면, 컴퓨터를 없애버린다거나 전원케이블을 숨긴다거나 하는 강제적인 방법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게임에 일단 빠진 사람은 게임이 가능한 곳을 찾아 이동한다. 더구나 지금 우리나라는 온라인 게임 최적의 환경이다. 학교와 공공시설의 컴퓨터는 개방되어 있으며 PC방 사용요금은 초등학생의 용돈으로도 충분히 밤을 샐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해졌다. 게임중독 알고, 대처하자 그렇다면 교사는 어떻게 학생들의 게임중독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인가. 물론 학부모와의 연락이 제일 효율적인 방법이겠지만, 몇 가지 요령을 통해 학생들을 살펴보면 게임중독의 전조 또는 심화증세를 눈치 챌 수 있다. 첫 번째로 학생 생활의 급격한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다. 만성적 피로, 수면부족, 교우관계의 변화, 언어의 변화, 잦은 지각 등이 있다면 게임몰입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쉬는 시간에 책상에 팔을 포개고 자는 학생을 살펴보라. 두 번째로 학급의 유행 게임을 주시하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의 경우 학급 내 친구들이 게임에서도 다시 모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단 학급 내 일정 비율 이상의 인원이 하는 게임은 유행이 되어 버린다. 이때, 몇몇 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중독 상태에 빠져 오랜 시간 게임을 하는 학생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특히 해당 게임의 ‘고렙(높은 레벨의 게이머)’은 그만큼 투자한 시간이 많다는 뜻이므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세 번째로 가정환경을 살펴보는 것이다. B군의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게임에 중독되기 쉬운 환경을 가지고 있는 학생은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좋다. 상담기법에 대해 배우고 싶어 하는 교사라면 국내 여러 기관에서 시행하고 있는 인터넷 게임 중독관련 상담교육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서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인터넷 중독 전문상담사 교육과정’의 경우 인터넷과 청소년의 디지털 문화 및 신체건강, 그리고 온라인 게임중독에 대한 개인 및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소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한국 청소년상담원의 ‘청소년 온라인게임중독 예방프로그램 지도자 양성교육’ 또한 각 급 학교 교사들이 온라인 게임중독에 대한 강의와 실습을 통해 학교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한국교총 원격교육연수원(www.educa-tion.or.kr)에서 운영하는 ‘학생지도를 위한 인터넷 중독 상담과정’은 6주간의 온라인 강의 프로그램을 통해 온라인 게임, 채팅, 사이버섹스 등의 다양한 문제와 실제 사례와 상담내용을 중심으로 36강좌가 구성되어 있으므로 시간적, 공간적으로 여유가 없는 경우 상담에 대한 정보 습득이 가능하다. ‘직무연수’ 메뉴를 선택하면 손쉽게 찾아갈 수 있다. 학교에서 지도할 수 있는 중독 예방법 그렇다면 교사가 지금 당장 시행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중독 예방법은 무엇일까? 첫 번째, 컴퓨터는 게임기가 아니라는 점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컴퓨터는 최소한 한대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생활필수품이 되어버렸다. 성인은 그 컴퓨터를 이용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정보를 검색하거나 프로그램을 만들겠지만 그런 작업을 할 필요가 없는 청소년들에게는 컴퓨터는 단지 게임기 아니면 채팅용 단말기일 뿐이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우선적으로 알려주어야 할 것은 바로 컴퓨터와 인터넷의 용도인 것이다. 정보검색과 자료작성이라는 컴퓨터의 기본적인 용도를 이해하고 학습에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이 인터넷과 게임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하고 싶다. 두 번째, 학생 스스로가 인터넷과 게임 사용규칙을 만들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지도를 통해 학생들이 자신이 컴퓨터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규칙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신이 스스로 정한 시간에 게임을 끝낼 수 있다면 최소한 게임 중독을 예방하는 기본적인 한 단계를 성공한 것이다. 이러한 인터넷과 게임 사용규칙에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항목이 들어가도록 한다. * 하루 중 (집과 학교, 게임방에서도) 언제부터 몇 시간 동안 인터넷과 게임을 한다. * 부모님의 허락 없이 나와 가족의 개인정보와 비밀번호를 공개하지 않는다. * 부모님의 허락 없이 휴대폰/카드 결제하지 않는다. * 부모님의 허락 없이 게임에서 친하게 된 사람을 현실에서 만나지 않는다. 이것은 최소한의 목록이며, 여러 중독 예방교육 프로그램을 참고하면 다양한 규칙 목록을 연령대에 맞게 만들 수 있다. 세 번째, 자녀에 의해서 가정의 분위기가 변화되도록 유도한다. 예를 들자면 컴퓨터를 가족들이 모두 볼 수 있는 거실로 꺼내도록 학생들을 지속적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일부 가정은 부모가 사용하기 위해 골방에 컴퓨터를 넣은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부모의 채팅과 게임 등 바람직하지 않은 습관을 자녀가 지켜보면서 따라하게 된다. 교사와 학생의 주도로 부모로 하여금 은밀한 작업을 하던 컴퓨터를 가족 공동 소유물로 만들게 하자. 그것이 안 된다면 최소한 컴퓨터를 쓰는 동안에는 문을 활짝 열어놓도록 지도하자. 게임중독 문제는 모두의 책임 게임중독 예방과 치료의 최일선은 가정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의 대화와 관심이 게임중독을 예방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인 것이다. 여기에 교사의 도움이 함께 한다면 더욱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교사가 자녀의 게임사용량에 대해 학부모와 의견을 나누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의 사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온라인게임개발업체가 이 문제에서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 태국의 온라인 게임에는 ‘셧다운 제도’라는 것이 있다. 오후 10시가 넘으면 모든 온라인게임에 경고메시지가 출력된 뒤 미성년자의 계정은 모두 접속을 끊어버리는 제도이다. 게임 산업의 위축 가능성이나 실행 방법 자체를 고려해 볼 때 다소 심함이 느껴지지만, 청소년들의 수면시간 보장을 위해서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한 제도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활동과 제도들은 청소년들이 건강하고 훌륭히 자랄 수 있도록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 어른들에게 주어진 시급한 과제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장근영 | 한국청소년개발원 부연구위원 나에게 축구는 생활이 아니라 ‘밀리면 끝나는 전투’였던 것 같다. 그런데 아들 두리는 확실히 다르다. … 본인도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축구선수이면서 베컴의 자서전을 머리맡에 놓고 잠들거나 지단에게 가서 공에 사인을 받고는 즐거워하는 것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상대가 아무리 대단한 선수였어도 나에게는 한번 붙어 보고 싶은 경쟁자일 뿐이었다. 우리 시대의 삶은 ‘성공’에 모든 것을 두었다. 그러나 두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행복과 즐거움’이 그들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 이 글은 2006년 6월 차범근 감독이 자기 아들과 함께 월드컵 해설을 하면서 느낀 바를 담백하게 적은 칼럼이다. 그는 이 글에서 아들과 자신의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명확히 지적한다. 차범근과 차두리는 같은 축구를 하지만 그 둘에게 축구의 의미는 달랐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나라의 부모세대와 자녀세대는 같은 단어를 말하지만 그 의미는 다르다. 이것은 모두 새로운 정보화 시대의 도래와 그 속에서 일어난 새로운 사회화 과정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은 처음에는 우리에게 시공간의 제약을 적게 받는, 저렴하고 즉각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즉, 인터넷은 새로운 매체(media)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간격을 좁혀주는 역할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었다. 실제로 전자우편(e-mail)이나 MSN 채팅 서비스와 같은 인터넷의 의사소통 기능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의 방식을 크게 변화시켰다. 예전에는 오고 가는데 최소한 2~3일은 걸렸어야 할 공식적인 의사소통조차도 전자우편으로 대체함으로써 거의 실시간으로 교환이 가능해졌고, 채팅이나 네트워크를 통한 의사소통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심리적으로 가까운 사람들과는 언제든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 준다. 더구나 무선 인터넷 혹은 모바일 인터넷과 같은 서비스는 우리들로 하여금 언제 어디서든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인터넷 서비스는 이제 어디에나 존재함으로써 그 존재의 특이성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까지 이르고 있다. 그 결과 N 세대라고 불리는 새로운 청소년문화가 등장했다. 차범근 감독이 아들의 행동을 보며 느낀 생경함은 지금 우리나라 기성세대 모두의 경험이다. 그렇다면 실제 인터넷의 어떤 특성이 청소년들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청소년들은 이 공간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배우고 발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청소년기 심리적 특성이 ‘몰입’ 배경 분명히 우리나라에서 인터넷과 컴퓨터와 게임은 청소년들이 주류를 이루는 영역이다. 인터넷 통계정보 시스템(isis.nic.or.kr)에 의하면 2006년 1월 현재 6세에서 19세 사이의 청소년들은 97% 이상이 최근 한 달간 한번 이상 인터넷을 사용했으나, 이용률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줄어들어서 50세 이후부터는 60% 이하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시간은 중학생일 때 보다 고등학생 시기에 더 높아졌으며, 이메일은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여자청소년들은 모바일 통신의 문자메시지를 더 많이 의존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이 이렇게 인터넷에 적극적으로 몰입하는 배경에는 청소년기의 심리적인 특성이 있다. 발달심리학자 에릭슨(Erikson)에 의하면, 자아정체감의 문제는 청소년기에 이르러 차츰 의식적 수준으로 떠오른다. 청소년기를 심리적 유예기(psycholog-ical moratorium)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심리적인 특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청년기의 신체성숙과 성적 발달은 신체에 대한 강한 자의식을 불러 일으켜서 신체적 변화로 달라진 자신의 모습으로 인한 자아개념의 혼란이 일어난다. 둘째, 청년기의 인지 능력의 성숙은 추상적 개념을 사고할 수 있게 하는데, 이는 자신의 내면세계까지 바라볼 수 있게 하여 개인의 역할, 성격, 능력, 그리고 가능성 등을 탐색하고 가치관이나 도덕, 신념 등에 대한 탐색을 가능하게 하여 현실적인 자신과 이상 간의 괴리를 발견하고 고민하게 된다. 셋째, 사회적 관계망이 확대되어 이전보다 훨씬 넓어진 세상과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는데, 이는 동시에 청년들에게 요구되는 역할의 확대를 의미한다. 그들을 ‘주변인(marginal man)’ 이라고 하듯이 상충된 역할 요구에 직면하고 자신에 대한 모호성에 빠진다. 넷째,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고 자신의 판단기준에 참조가 되어왔던 아동기 때의 동일시 대상의 가치가 그 효용성을 상실하면서 자신에 대해 심각하게 고뇌하게 된다. 다섯째, 현대사회는 예전과는 달리 다양한 삶의 방법을 보여주며, 유한한 기회를 가진 우리는 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정체감의 위기가 심화된다. 특히 자신이 앞으로 어른이 되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두려움, 다시 말해 ‘역할전망’에 대한 두려움은 청소년들로 하여금 필사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게 만든다. 일단 현재 자기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도 판단할 수 있지 않겠는가. 또한 정체감의 위기는 인생살이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각되는데, 현대사회는 너무나도 다양한 인생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많아지고 그래서 갈등도 더 심해진다. 이런 이유로 청소년들은 어떻게든 현재 자신의 모습을 확인해야 한다. 자신들만의 세계 만드는 집단정체성 정체감을 확립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바로 ‘집단정체성’(Group identity)을 형성하는 것이다. 집단정체성이란 심리 / 사회적 정체감(psychoso-cial identity)으로 개인이 속한 집단에 대한 소속감 또는 일체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나는 연대생이다’, ‘나는 한국 사람이다’ 등과 같이 집단 단위로 유지되는 ‘집단적 정체의식’이다. 언제나 청소년들은 부모세대와는 분리된 공간에서 자기들만의 집단정체성을 형성하고자 한다. 이때 기성세대가 잘 모르거나 불온시하거나 금지하려고 하는 대상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기성세대가 이런 거부감을 보이는 대상은 바로 청소년들에게는 자신들의 집단정체성을 경계 지을 수 있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헤비메탈, 록음악이 이런 집단정체성의 경계선 역할을 했다. 청소년들이 즐기는 음악이 갈수록 험악하고 선정적이 되어갔던 이유는 그렇게 해야만 기성세대가 거부반응을 보이기 때문이었다(Lull, 1987). 그리고 21세기인 현재 우리나라에서 청소년들의 집단정체성을 경계 짓는 역할은 인터넷과 컴퓨터게임이 담당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인터넷에 접속해 들어가 부모세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공간에서 기성세대가 알아듣지 못하는 통신어나 외계어를 이용하는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들만의 집단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이버 공간 집단정체성의 세계에서도 다양한 갈등과 공격행동이 나타난다. 특히 사이버공간은 물리적인 위협이 없는 상상의 공간이기 때문에 현실공간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극단적인 행동이 부각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아직까지도 이 사이버 공간의 공동체를 무차별적으로 일어나는 타인 비방이나 공격 행동, 음란물의 유통, 그리고 자살 사이트와 폭탄 사이트 등으로 대표되는 위험한 무엇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같은 이유로 일부에서는 청소년들의 가상공동체 형성과 자기들만의 사이버 문화 형성을 어떻게든 규제하거나 금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단지 인터넷이나 컴퓨터게임이 청소년들과 기성세대 간의 세대격차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기성세대로 하여금 청소년들의 행동과 심리에 대해서 새로운 걱정을 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 걱정은 보통 인터넷 중독, 혹은 게임중독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새로운 기술 시대를 따라잡지 못해 전문가의 위치와 통제력을 상실한 기성세대와 오히려 이 새로운 세계에서 주도권을 잡은 청소년들의 역할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이제 부모는 자녀가 켜고 들여다보고 있는 컴퓨터의 모니터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해서 두렵다. 비명과 선혈이 낭자한 화면 앞에서 격렬하게 게임에 몰입하던 자녀 때문에 걱정하는 부모도 많다. 게임하면서는 화를 내던 자녀가 다음 순간에 누군가와 채팅을 하면서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볼 때는 안심이 되다가도 더욱더 불안해진다. 도대체 그 안에 뭐가 있기에 정신 나간 사람처럼 화내다가 웃기도 하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정말로 내 자녀가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된다. 그리고 이런 걱정은 자녀가 지금 당장 완수해야 하는 학업 문제와 만나면서 냉엄한 현실이 된다. 컴퓨터로 무엇인가를 하느라고 공부를 못하게 된 자녀들을 데리고 인터넷 중독 상담센터에 찾아오는 부모들은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PAGE BREAK] 충분한 이해 없는 개입은 부작용 낳아 좀 더 구체적으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평범한 청소년들이 인터넷과 컴퓨터게임에 몰입하는 이유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또래 문화 : 모든 인간에게는 남이 한 일을 따라하려는 동조경향이 있다. 그런데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이 경향이 특히나 더 심하다. 주변 친구들이 하는 활동에 함께 참여하려는 욕구는 결국 또래문화에 동조하려는 경향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또래 문화가 바뀌면 놀이도 바뀐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2) 역할놀이의 본능 : 고프만 등에 의하면 우리는 일종의 배우들이다. 우리가 일하거나 공부하는 배경은 심리적으로는 연극 무대에 가깝다. 현재 나의 무대와 무대, 대본과 대본을 구분하는 능력은 기본이고 말이다. N 세대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역할놀이를 통해서 이런 무대와 대본, 그리고 각자의 역할을 숙지한다. 3) 암묵적인 사회적 암시 : 해리스(Harris)의 연구에 의하면 청소년들은 언제나 자기가 접하는 것들 중에서 첨단의 활동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그런 활동일수록 앞으로 자신이 성인이 되었을 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임을 본능적으로 인지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활동일수록 기성세대가 잘 모르거나 두려워할 가능성이 높으며 청년들에게는 집단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게 만드는 뚜렷한 표지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청소년들이 기성세대와 다른 사고 다른 행동을 하고 다른 문화를 형성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있었던 정상적인 발달과정임을 알 수 있다. 단지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인터넷과 게임이라는 최첨단 기술영역을 배경으로 일어나면서 더 눈에 많이 띄고 있을 뿐이다. 사이버 공간의 청소년문화를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개입은 충분한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온라인 게시판에서의 욕설사용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만들어진 욕설 금지장치를 피하기 위해서 청소년들은 욕설의 철자를 변형했고, 결과적으로 새로운 유형의 통신어를 만들게 되었다. 즉, 사이버 공간을 정화하기 위한 개입이 오히려 사이버 공간을 예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변화시킨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인터넷, 게임은 청소년 이해의 열쇠 내가 두리에게 배우는 게 하나 있다. 언젠가 자전적인 글에도 썼던 적이 있지만 ‘남의 행복이 커진다고 내 행복이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이 녀석은 항상 여유가 있다. 늘 최고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남을 인정하는 여유가 없는 나에 비해 두리는 동료를 인정하는 여유가 있다. 부럽다. 그리고 이런 세상을 그들에게 물려준 우리 세대가 자랑스럽다. - 앞의 칼럼에서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언제나 청소년들은 부모세대와 다른 사고방식과 행동을 해왔다. 부모가 자녀의 마음과 행동을 통제하고 원하는 대로 길러낼 수 있다는 생각은 사실상 환상이었다. 부모는 언제나 자녀가 자신의 일부이며 어느 누구보다도 자기 자녀를 가장 잘 알고 통제한다고 오해해왔고, 뒤늦게 달라진 자녀의 몸과 마음을 발견하고는 놀라곤 했다. 컴퓨터가 없던 필자의 청소년 시절에도 우리 또래 친구들은 독서실 간다고 하고는 오락실에 가는 것처럼 언제나 부모나 선생님 몰래 자기들만의 활동을 해왔다. 발달심리학자 해리스(J.R. Harris)는 이러한 또래 문화야 말로 새로운 세대가 변화하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만약에 일반적으로 부모가 꿈꾸는 것처럼 친구들보다는 자기 부모와 더 말이 잘 통하고 자기 부모와 일치하는 가치와 행동방식을 습득한 자녀가 있다고 치자. 그 아이가 과연 어른이 되어서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대답은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그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마주친 세계는 부모가 살았던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가치와 행동방식은 그들이 살아야 했던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자녀들이 살아야 하는 세계가 기성세대의 그것과 같지 않다면, 자녀들은 부모보다는 자기들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자기 또래에 더 주목을 하고 그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사이버 공간은 청소년들을 더 안전한 곳에서 더 쉽게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일 수 있다. 예전에 청소년들은 자기들만의 문화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 분리된 공간을 필요로 했다. 그것은 으슥한 공터나 폐건물이거나 산 속이 되기도 했다. 이런 공간에서 이들은 실제 자신의 몸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꿈을 검증했고 그 결과 매우 많은 사고 위험에 노출되어야 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중요한 타인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연결된 지금, 청소년들은 자기들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으슥한 공터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인터넷 속의 게시판이나 온라인 게임이 바로 그 공간이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안전한 자기 방에 앉아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자기들만의 문화를 만들고 자기 신체를 사용할 필요 없이 아바타를 통해서 안전하게 자신의 꿈을 실험할 수 있다. 그 결과 인터넷을 통해서 청소년들은 안전해졌지만 부모가 체감하는 자녀의 위험은 더 커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예전에 부모가 자녀의 활동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공간을 찾아가야 했다. 실제로 자기 자녀가 자기들만의 공간에서 무슨 일을 하는 지를 볼 수 있었던 부모는 극소수에 불과했으며, 그 결과 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어디서든 집에서와 똑같이 조용하고 얌전할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오해에 기반을 둔 안심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인터넷을 통해서 앉은 자리에서 자기들의 공간을 경험하는 청소년들은 부모에게 예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부모는 자기 자녀가 자기가 아는 익숙한 모습뿐만 아니라 더 다양하고 극단적인 모습까지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습은 컴퓨터와 인터넷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제 드러난 것일 뿐, 예전부터 있어왔던 것이다. 청소년들의 행동방식은 기성세대와 다르고 그들이 활동하는 공간도 다르다. 그러나 이것은 예전부터 그래왔던 것이다. 변하지 않은 것은 또 있다. 기성세대와 다른 자기를 만들고자 하면서도 기성세대로부터 충고와 조언을 필요로 하고, 기성세대가 제공하는 언제든 돌아갈 곳을 믿고서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는 청소년의 심리는 변하지 않았다. 차이가 드러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분명하게 서로의 다름을 확인할 수 있고 그 결과 소통의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고 할 수도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 청소년 자녀가 무슨 게임을 좋아하는지 주로 어떤 사이트에서 활동하는지만 알면 자녀와 소통할 수 있는 확고한 통로를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호에서는 변강쇠와 옹녀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함양과 남원 지역의 장승을 찾아갔었지요? 이번 호에서는 돌장승을 중심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돌은 나무에 비해 내구성이 뛰어나기에 처음 조성 당시의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일부 장승은 조성했을 당시의 날짜를 기록해 두어 장승의 변천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기도 하지요. 그에 반해 나무장승은 일정한 시간을 두어 교체를 해야 하기에 장승을 만드는 사람에 따라 저마다 개성을 뛴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장승에 대한 자료를 뒤지다가 다음 ‘장승코’라는 시를 찾아내곤 그 여운이 진하게 남아 소개하고자 합니다. 예로부터 코는 남성을 상징하였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돌부처의 코를 갉아 마시면 득남한다는 속신(俗信)을 갖고 있었지요. 그런데 1931년 7월 1일자 동아일보 문예란에 박 금이라는 사람이 쓴 시에서 장승의 코는 다른 용도로도 사용이 된 듯합니다. 장승코 - 洪原아리랑 朴 錦 낙태약 된다고 저 장승코를 어제 밤 비온 뒤 또 글거갔소 오목오목 들어간 고무신 자국 키 작은 여자가 발버팀쳤소 우뚝하던 그 코가 없어지고도 그 자리가 한 치나 패어드러났네 캄캄한 밤중타서 찬칼을 품고 저 장승 코 베려 달려들 때에 약한 맘 얼마나 발발 떨었노 아니다 대답하지 그 처녀아기 야심한 밤, 두려운 맘으로 장승 곁으로 가 작은 키로 발돋움하며 장승코를 긁어댔을 그 상황을 떠올려 봅니다. 얼마나 긴박한 상황이었기에 오죽했으면 장승에게 달려들었을까요. 장승이란 산신, 성황당, 당수나무, 돌탑, 솟대 등과 함께 당당한 마을 지킴이인데, 그 장승코를 베고 긁고 하다니요. 키 작은 그 여자는 그의 저주에 겁먹으면서 얼마나 몸서리쳤을까요. 하지만 그는 주먹만 한 자신의 코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왕방울만한 눈으로 내려다보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그녀를 보듬고자 했을 겁니다. 발악 한 번 하지 못하고 벅수같이 그냥 그 자리에 우두커니 그 자세로 서서 ‘그려, 그러면 내 몸뚱이라도 주마’ 그러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코를 베이고도 모른 척하는 그 녀석의 넉넉함에 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돌장승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무섭다는 생각보다는 ‘벅수 같다’는 표현처럼 푼수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석공이 장승을 만들 때 더 무섭게 표현하기 위해서 애쓴 흔적이 역력하지만 결국 그 석공 또한 민초의 여리고 착한 마음을 가졌을 터인데 그 심성에서 만들어진 무서움의 정도가 과연 얼마만큼이나 표현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네 장승은 무섭고 화난 모습이 오히려 어색해 보일 정도로 친근할 때가 많습니다. 저래 가지고 어떻게 잡귀니 재액을 쫓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까지 합니다. 그런 느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어떤 이들은 장승의 모습이 마치 우리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닮아서 그렇다고들 이야기하고, 어떤 이들은 농사만 짓고 살던 순박한 민초들이 아무리 매섭게 눈썹을 치켜 올리고 한들 결국 드러내지 않는 웃음을 띠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서양의 악마는 근본적으로 악에 가득 찬 존재입니다만 우리에게 있어서 잡귀나 재액은 어쩌면 적당히 잘 대접하여 원한을 풀어주어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융통성이 있기에 악의 근원인 서양의 악마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장승을 영문으로 ‘Devil Post'라고 표현하는 것은 서양식 악마의 개념이 강조된 것 같아 적절치 않다고 보아집니다. 하여튼 얼굴을 제아무리 무섭게 조각하고 몸집에 칼을 채우고 한들 장승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장승의 주된 기능을 알리면서 그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몸뚱이에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호법선신(護法仙神),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등이 적힌 명문(銘文)이 필요했는지 모릅니다. 이 명문을 통해 하늘에서나 땅속, 동서남북 어느 곳에서나 빈틈없이 한 공동체를 지키는 늠름한 장군이나 역사(力士)로서의 지위를 부여받게 되지 않았을까요? 사찰의 돌장승 남원 만복사터는 김시습의 금오신화 중 만복사저포기의 무대가 되는 곳입니다. 이 절터에 가면 마치 목을 옥죄는 듯한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얼굴과 목, 어깨 일부만 드러내고 나머지 몸통이 땅에 묻힌 채 길가에 방치되다시피 한 돌장승이 한 점 있기 때문입니다. 얼굴 부분만으로 보아서는 사찰의 금강역사로 볼 수도 있지만 발굴 결과 드러난 일자형 몸통으로 보아 장승으로 보는 시각이 합당할 듯합니다. 땅에 묻힌 채 하루 종일 자동차 매연을 마셔야 하는 그를 바라보고 애틋함을 갖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비록 그런 열악함에도 볼에 탄력이 넘치고 퉁방울을 치켜떠서 응시하는 그 당당함은 만복사 넓은 절터를 수호했을 과거의 영화를 떠올려 주기에 충분합니다. 곶감과 자전거로 유명한 상주 남장사 석장승은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 임진구월립(壬辰九月立)’이라는 명문이 남아 있어 남장사 극락보전의 현판과 대조하여 조선 순조 32년(1832) 혹은 고종 29년(1892)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코에 비뚤어진 입, 가분수 머리에 좌우에 귀, 쭉 삐져나온 이빨 두 놈까지 달린 이 장승을 보면 누구나 투박하고 친근한 정감을 갖게 됩니다. 그와 나란히 서 있었을 ‘상원주장군’은 어디에 있을까요? 서울 안국 전철역에서 내려 인사동으로 오다 보면 인사동 거리 입구에 장승 두 기가 서 있습니다. 서울 한 복판에 서 있는 이 장승은 ‘88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와 인사동과 관훈동 지역주민의 평안과 발전을 기원하기 위해 1988년 6월 18일에 세운 것으로 나주 불회사 입구 돌장승을 모델로 제작한 것입니다. 불회사는 절집으로 들어가는 숲길이 매우 아름다운 곳입니다. 불회사 석장승은 중요민속자료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오른쪽 남장승에 하원당장군이라 적혀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남장승은 상원주장군으로 불리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또한 누군가 ‘下’ 자를 ‘正’ 자로 바꾸어 놓은 흔적도 보입니다. 왼쪽 여장승에는 주장군이라는 명문이 남아있는데 이는 상원주장군을 줄여 이름붙인 것입니다. 콧등과 미간에 주름이 가득하고 잇몸이 쭈글쭈글한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푸근하게 느껴지는 장승입니다. 불회사 돌장승을 만나기 전 근래 새로 지은 일주문 근처에도 수많은 나무장승이 각양의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회사 돌장승과 가까운 운흥사 터에도 돌장승 두 기가 남아 있습니다. 불회사 돌장승과 비교해 봅시다. 대개 장승은 오른쪽이 남자 장승이 왼쪽이 여자 장승입니다만 이곳은 남녀장승의 위치가 반대입니다. 또한 불회사와는 달리 남장승은 상원주장군으로, 여장승은 하원당장군으로 불립니다. 비로소 제 이름을 찾은 것입니다. 불회사 남장승의 수염이 한 줄기로 길게 늘어서 있는 반면 이곳의 남장승은 수염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습니다. 여장승인 하원당장군의 뒷면에 강희 58년(1719년)이라는 명문이 있어서 조성연대를 알 수 있어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두 장승 모두 안경을 쓴 듯 굵은 테를 둘렀고 특히, 턱과 입 부분이 움푹 들어가 불회사 장승, 정읍 원백암 마을 장승과 함께 대표적인 할머니, 할아버지 형 장승이라 하겠습니다. 장승 바로 앞에는 성혈바위가 자리하고 있어 장승과 함께 기자(祈子)를 향한 민초들의 염원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경남 창녕 관룡사 돌장승은 단정하고 투박한 멋이 우리나라 돌장승 중에서도 최고로 꼽을 만합니다. 왼쪽의 장승은 벙거지 모자를 쓴 듯한 형태에 얼굴만으로는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돌하르방의 이미지가 느껴지고 오른쪽 장승은 눈도 동글, 코도 동글, 얼굴도 동글동글합니다. 모두 명문은 없으며 다문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장승은 지난 2003년 태풍 매미로 쓰러져 있던 것을 군청에서 흙으로 덮어두었는데 누군가가 훔쳐가고 말았습니다. 결국 한 달 가까이 노력한 끝에 절도범들이 군청에 전화를 해 충남 홍성군 폐 공장에서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원래 위치보다 더 위에 옮겨 세웠습니다.[PAGE BREAK] 미륵, 裨補神으로 다가온 그들 장승은 미륵신앙으로도 발전하고 나아가 문무인석과 닮은 형태도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곳곳에서 장승신앙과 불교신앙이 결부되어 미륵으로 불리는 곳이 많습니다. 절집에서 볼 수 있는 미래불인 미륵불과 달리 장승형 미륵은 질박하며 자비스럽고 친근하게 우리를 맞이합니다.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강댕이미륵불은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원래 위치에서 상류로 옮기게 된 것입니다. 이 장승은 서해를 통한 중국과의 교역로에 위치하여 안전운행을 위한 의도로 세웠다고 보기도 하고 보원사의 비보장승으로 세웠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오른쪽 팔은 가슴까지 올리고 왼쪽 팔은 배까지 올리고 있으며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습니다. 전북 익산 동고도리에 있는 보물 제46호인 고도리 석불입상은 명칭은 석불이지만 흔히 수구막이라고 불리는 장승에 속한다고 봅니다. 중건비석의 내용에 ‘그 형(形)이 불(佛)과 같고’, ‘옛 사람들이 처음 세울 때에 수문(水門)의 허(虛)를 막기 위함이었다’는 내용이 있어 풍수지리상 세워진 비보장승으로 분류됩니다. 100m정도 거리를 두고 사다리꼴 모양의 돌기둥에 2구의 석상이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전남 화순군 화순읍 대리 석불입상은 높이 350㎝의 돌기둥을 사각형으로 다듬어서 전면에 얼굴 부분만 돋을새김 하고 나머지 신체부분은 선각으로 처리하였습니다. 육계나 삼도와 같은 불상의 특징은 볼 수 없고 대신 넓적한 코, 부라린 눈 등 석장승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조선후기 불교와 민간신앙의 혼합된 유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합천군 삼가면 원금마을 미륵불은 마을 입구 냇가에 자리해 있는데 아들을 낳고자 하는 강씨 집안에서 치성을 드렸더니 소원을 잘 들어주셨다고 합니다. 수년 전 이 미륵불 앞으로 도로가 나면서 사람들이 미륵불 앞 돌탑을 없애버렸다는데 그 해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많이 죽었다고 합니다. 합천 묘산면 가산리 장승은 마을 입구에 한 쌍, 고갯마루에 한 쌍이 자리하고 있어 한 곳에서 네 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중요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된 통영 문화동 벅수는 마을의 전염병과 액운을 빌기 위한 비보장승으로서, 동남방이 허하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1906년(고종 10년) 세워졌습니다. 토지대장군이라는 명문은 비보장승임을 말해줍니다. 우리나라 돌장승 중에서 유일한 채색 장승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U자형으로 벌린 입과 입 밖으로 솟아난 두 개의 송곳니가 요물스러운 귀신을 막아내는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벅수를 보면 다른 돌장승과는 달리 왠지 음습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그 이유는 장승의 색채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관모와 눈썹, 귀, 세 갈래로 갈라진 턱수염은 검은색으로 치장되었고 얼굴과 몸통 뒷부분은 붉은빛이 감돌고 있습니다. 다른 돌장승들이 육안으로 형체가 잘 구별되지 않지만 이곳은 눈, 코, 이빨, 잔주름까지 훤하게 드러나는지라 그런 기분이 더 강하게 드는 듯합니다. 양쪽의 송곳니도 유달리 커 보이고 붉은빛의 얼굴은 처용설화에 나오듯이 귀신을 쫓기에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대개의 장승이 우락부락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울산 언양벅수의 경우는 색다릅니다. 한 마디로 부라린 눈, 우뚝한 코, 큰 입에 튀어나온 이빨 등 돌출된 형태와는 전혀 거리가 먼 수줍은 새색시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입도 있는 둥 마는 둥 육안으로 드러나지가 않습니다. 윤곽으로나마 눈과 코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원래 이 벅수는 돌다리로 쓰였었는데 뒤늦게 벅수임이 밝혀진 것입니다. 중원고구려비가 빨래판으로 쓰였던 것처럼, 이 벅수도 기묘한 과거사를 갖고 있습니다. 한편, 대전 동구 비룡동 지하여장군은 하트형의 얼굴에 여느 장승과 다른 자그마한 코에 살풋 웃음 띤 얼굴이 사랑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충북 음성 원남면 마송리 정계대장군(淨界大將軍)은 세상을 정화하고자 하는 염원을 명문으로 담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방학에 광화문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주최한 교원직무연수를 5일간 받았습니다. 연수기간 민속박물관을 쉼 없이 돌아다니면서 인상 깊었던 점은 바로 외국인이 눈에 띄게 많이 찾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실제로 박물관 측의 안내에 의하면 용산에 재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경복궁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외국인이 민속박물관을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서양인들이 처음 우리나라를 찾았을 때 그들은 장승을 일컬어 ‘조선의 우매한 민중들의 우상숭배’로 폄하하였지만 이제 그들은 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서 있는 장승을 보며 그 속에서 한국인을 찾고,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느끼고자 합니다. 한 나라의 문화가 경쟁력이 되는 이 시대에 박물관에서만이 아니라 곳곳에서 장승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다음 호에도 장승답사는 계속됩니다. | 울산 옥현초 교사
서울지역 초․중․고생 가운데 35.9%가 정신장애를 겪고 있으며 13.2%는 2가지 이상의 정신장애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는 최근의 보도는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3명중 1명은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문제치고는 간단치 않다. 이 같은 결과는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와 서울시가 지난해 9~12월 초․중․고교 19개를 무작위로 선정해 2672명을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에 따른 것이다. 학생들의 정신장애는 특정공포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적대적반항장애, 틱장애 순이었다. 특정공포증은 천둥․어두움․벌레 등 특정 대상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이고, ADHD는 지나치게 부주의 하고 학업에 몰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어른에게 사사건건 반항하는 것을 적대적반항장애라고 하며, 끊임없이 눈을 깜빡거리거나 이상한 소리를 계속 내는 것이 틱장애다. 남학생의 정신장애는 ADHD, 여학생의 정신장애는 특정공포증이 많았다.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고 인터넷을 많이 하는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에 비해 ADHD, 적대적반항장애, 품행장애(절도․가출․결석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장애), 조증(지나치게 즐거워하는 장애) 등이 더 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교사들이 흔히 ‘골치 아픈 녀석’으로 치부(置簿)하는 그 녀석들의 ‘골치 아픈 행동’을 전문가들은 정신장애라 한다. 멀리 있는 강아지를 보고 지레 겁을 먹고 달아나거나, 공부를 하면서 계속 다리를 떨어대는 것도 일종의 정신장애다. 서울대병원 조수철 교수는 “ADHD에 적대적반항장애, 품행장애가 병행되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있다”면서 “대부분의 부모나 교사가 학생들이 심각한 정신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고 걱정했다. 학생들에게 많은 ADHD는 충동적․무절제․과다행동이 나타나면서 소근육 협응이 안 되고, 학습장애와 정서불안이 나타나는 질병이다. 발병 원인은 전두엽(frontal lobe) 기능상실 정도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학령기 아동의 5% 정도가 ADHD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는 한 반에 두 명꼴이다. 약물치료만으로도 나아질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뇌파훈련과 함께 식이요법 등의 비약물치료도 받게 된다. 전문가들은 ADHD를 앓고 있는 학생들은 교사가 쉽게 구분할 수 있으므로 각별한 관심을 갖고 돕고자 하면 상태가 크게 호전될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달부터 본지에 ‘뇌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한 정신과 전문의 박형배 박사(마인드메디 원장)는 “되도록이면 교사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게 하고 수업 중에 시선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흐트러지는 집중력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ADHD 학생들이 증가하는 만큼 교사들의 역할도 커지게 됐다. 두 손 두 발 다 들게 하는 한두 명의 골치 아픈 아이, 바로 치료가 필요한 아이다. 가장 가까이서 그들을 지켜보는 교사들의 관심과 사랑이 1차적인 치료가 될 것이다. | 이낙진 leenj@kfta.or.kr
전제상 | 경주대 교수 평가는 인간이 조직의 일원으로 생활하는 한 어디서나 수시로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활동으로 특정 대상에 대한 가치를 판단하는 것을 뜻한다. 교원평가는 본질적으로 사람의 사람에 대한 평가, 즉 주관적 가치를 전제로 판단하는 것이므로 아무리 타당한 평가기준을 새롭게 설정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나름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교원평가를 둘러싼 공정성, 객관성, 신뢰성 을 확보하기 위한 논의와 논쟁이 치열하게 진행되어 왔다. 지난 8월 11일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는 교장(50%)과 교감(50%)이 교사를 평가하는 현행 시스템을 교장(40%), 교감(30%), 동료교사(30%)가 교사를 평가하는 개선방안을 확정․발표하였다. 당초 교육혁신위원회가 교사평가에 학생 및 학부모(10%)를 참여시키는 개선방안을 제안하였다가 교육계의 거센 반발 등으로 인해 최종적으로 철회하였다. 현행 교사근무성적평정은 1964년부터 지금까지 교장과 교감만이 참여할 뿐 다른 이들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폐쇄적 운영시스템 때문에 교사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오랫동안 제기되어 왔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평가시스템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이 줄기차게 진행되었지만 교육공동체간 합의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교사평가과정에 교육공동체, 특히 학생 및 학부모가 참여함으로써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일정 부분 향상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평가의 신뢰성마저 완전하게 담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사평가는 교사의 자질과 태도를 비롯한 직무수행 능력과 과정, 그리고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고도의 가치판단 활동이다. 교육공동체가 교사를 올바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교사에 대한 정보를 함께 공유하면서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교육활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식견을 갖췄을 때 평가하는 사람이나 평가받는 사람이 평가의 공정성, 객관성, 신뢰성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수용할 수 있다. 물론 교육공동체의 일원인 학생 및 학부모가 교사평가과정에 참여함으로써 그들의 교육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가진다. 특히 학부모는 학생 교육을 위임한 자로 학생의 학습권이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 지를 확인할 권리가 있으며, 학생은 교사 교육의 직접적인 수혜자로 교사평가에 참여하는 것이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교사평가에 있어서 누가 평가자로 설정할 것인 하는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교사평가의 결과는 특정 교사의 현재와 미래 행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이 교사평가의 결과가 주로 승진에만 활용되는 시스템 속에서는 동료평가, 학부모 및 학생평가의 결과가 일정 비율로 승진점수에 반영된다면, 해당교사들의 평가결과에 대한 공정성과 신뢰성 담보장치에 대한 요구가 빗발칠 것은 당연하다. 만약 이러한 교사평가결과에 대한 공정성과 신뢰성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없으면 학교현장은 교원승진을 둘러싼 막심한 갈등과 혼란이 발생될 수밖에 없다. 물론 교사평가에 대한 교감과 교장에 의한 폐쇄적인 평가방식에서 벗어나 동료교사, 학생 및 학부모에게 평가참여의 기회를 확대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나, 교사근평의 결과가 승진에 반영된다는 현실적인 점들을 고려한다면 학생 및 학부모의 교원평가는 참고자료로 활용되는 수준에 국한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선진국의 경우에도 평가자는 평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역량을 가진 자로 평가결과에 대한 책임도 동시에 질 수 있는 사람에 국한하여 참여하고 있다. 미국교육연구소(Educational Research Service)가 909개 교육구의 교원평가방식에 대해 조사한 결과, 관리자 평가 99.8%, 동료평가 6.0%, 학생평가 3.0%, 학부모 평가 1.0% 등을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 조사 결과는 미국의 경우에 교사평가의 결과가 교사의 재임용과 보수 및 승진 등에 직결되는 민감한 문제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만일 교사평가시 평가자가 잘못된 정보와 판단에 의해 특정 교사에 대한 평가점수가 낮아 해고되거나 연봉 등이 삭감될 경우에 해당 교사는 평가자 및 교사평가위원회를 대상으로 각종 소송으로 이어지게 된다. 교사의 교육활동에 대한 법정의 판결은 일차적으로 평가자 등이 특정 교사의 학생교육 과실에 대한 책임을 입증을 해야 하는 등의 절차를 가지며, 이 과정에서 교사의 교육활동 과실에 대한 인과관계 불명료성을 인하여 교사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선진국들이 학생 및 학부모의 교사평가에 참여하는 방식은 대부분 교사에 대한 만족도 정도를 알아보고 이것을 교사의 교육활동에 참고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것은 교사의 교육활동에 대한 평가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지적인 가치판단의 활동으로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 등의 중요성을 고려한 결과이다. 평가에 있어서 공정성과 신뢰성을 상실한다면 평가로서의 존재 가치가 상실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평가는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전문적인 방식으로 평가할 때 평가 존립의 의의를 가진다는 기본을 인식한 결과이다. 따라서 새로운 교사평가시스템을 마련하는데 있어서 외국의 사례를 무분별하게 적용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장 교육실정에 어느 것이 부합되는 지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요구된다. 즉, 교사다면평가시스템의 장․단점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더불어 교사다면평가 설계시 고려사항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 지, 그리고 평가자를 어떻게 구성하고 평가자의 비중은 어떠한 방식으로 할 것인지, 또한 평가요소와 평가척도는 무엇으로 할 것인지, 평가결과의 활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에 대한 세부적인 검토가 뒤따라야 한다.
박경민 | 역사 칼럼니스트(cafe.daum.net/parque) 충돌할 수밖에 없는 두 세력 문제(文帝)는 북주(北周)로부터 정권을 넘겨받아 새로운 국가를 건국하면서 국호를 수(隋)로 삼았다. 이는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하는 국호였다. 서기 589년 문제는 마지막 남조 국가인 진(陳)을 멸망시키고 무려 370년 만에 중국을 재통일했으나, 역사가 주는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진나라의 시황제와 거의 비슷한 길을 걸었다. 문제는 짧은 기간에 통일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지는데 주력하여 관료의 등용문인 과거제를 비롯하여 본격적인 율령국가 체제를 완성시켰다. 중국에서 과거제도는 청나라가 멸망하기 직전까지 약 1300년 간 지속되었다. 604년 양제(煬帝)도 부황(문제)의 국가건설 의욕을 그대로 이어받아 대규모 건설 사업을 강행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전체 길이 1800㎞에 달하는 대운하를 비롯한 여러 가지 토목사업이었다. 610년에 완공된 대운하 덕분에 중국에서는 물류혁명이 일어났다. 즉, 항저우[杭州]에서 베이징[北京]까지 선박수송이 가능해졌으며 강남의 풍부한 쌀을 비롯한 곡물을 화북지방까지 수송할 수 있어 중국을 명실상부한 통일국가로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대규모 토목사업은 백성들의 고통을 수반하므로 욕을 먹게 되어 있다. 공사장에 나가서 노역을 해야지, 세금은 세금대로 내야지, 정말 죽을 맛이었다. 모두 양제를 비난하여 결국 수나라를 단명에 그치게 하고 정작 이익은 당나라가 보았다. 대운하를 건설하는 양제에게는 또 하나의 고민이 있었다. 왜냐하면 동북방민족(한민족과 같은 계열)이 중국의 분열시대에 힘을 쌓아 강성해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수나라도 전신이 같은 계열인 북주가 아닌가! 한 무제 이후 역대 중국 정권은 토벌작전과 동화정책으로 흉노는 사라졌으나 그 대신 돌궐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부황인 문제는 고단수 이간책을 써서 돌궐족을 동 돌궐과 서 돌궐로 분리시켜 세력을 약화시켜 놓았지만 이번에는 소수림왕 이후,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으로 이어지는 영토 확장으로 동북아시아 강대국으로 떠오른 고구려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먹지 않으면 먹힌다!' 양제는 위기감을 느꼈다. 고구려가 수나라에 결코 뒤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언제 서진하여 중국을 도모할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였다. 더욱이 문제 때에도 고구려의 선제공격으로 혼쭐이 난 바 있었으므로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생각했는지, 결코 만만치 않는 고구려를 상대로 무모한 군사도발을 감행하였다. 무모하게 끝난 양제의 도전 양제는 나름대로 정복 시나리오를 짰다. 즉, 대군을 동원하여 속전속결로 결판을 내되, 만약 장기전으로 이어지게 되면 대운하를 통해서 원정군의 보급을 확보하여 지속적인 작전수행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대륙과 해상을 봉쇄하여 고구려를 말려 죽이겠다는 작전을 세웠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대운하를 너무 믿었다. 611년 양제는 무모한 군사도발을 감행하였다. 중국 역사상 그 유례가 없는 어마어마한 대군을 동원하여 침략전쟁에 나섰으나 고구려도 이미 만반의 대비를 갖추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에 통일왕조가 들어섰다 하면 그 다음 순서는 이민족 정리였기 때문이다. 양제는 고구려가 곧 무너질 줄 알았지만, 처음부터 무리였다. 엄청난 병력의 수나라 군대가 쳐들어오자 고구려는 을지문덕을 중심으로 치밀한 작전을 세워 전쟁은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당시 고구려의 전략은 첫째, 대규모의 군대를 맞이해서 정면승부를 건다는 것은 무모하니 성을 중심으로 수비에 들어가서 적과 말을 배고프게 만들고 둘째, 시간이 갈수록 적의 사기가 떨어질 것이다. 적의 염탐꾼에게 아군의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보안에 각별히 유의하며 치고 빠지는 유격전술을 적절히 구사한다는 것이었다. 고구려의 작전계획은 들어맞았다. 양제가 몸소 친정을 하여 대군을 이끌고 요동성을 공략했으나 4개월이 넘도록 함락하지 못하고 들판에서 이슬을 맞으며 자야 했다. 초조해진 양제는 우중문과 우문술에게 병력 30만을 내어주면서 평양을 신속하게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편 우중문 군대 이외에 수나라 병사들은 수륙양면으로 평양을 공격하는데, 손발이 맞지 않아 수군이 단독으로 공격하다가 나중에 영류왕이 되는 건무에게 전멸을 당하다시피 하였다. 수나라 육군은 당황하였다. 평양에 먼저 도착한 수나라 군대가 보급물자를 받을 수 없는 난감한 입장에 빠진 것이다. 적을 눈앞에 두고 수나라 병사들은 굶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을지문덕 장군의 차례다. 아무리 적군의 숫자가 줄었어도 대군은 대군이다. 그는 우중문의 군대를 상대로 전선을 축소하는 작전을 썼다. 넓은 들판에서 싸우면 적군에게 포위되기 십상이지만 협곡 등 좁은 장소에서 싸우면 아무리 대군이라 하더라도 분명히 앞뒤가 생기기 마련이다. 넓은 장소에 많은 사람을 풀어놓으면 '옆으로 나란히'가 가능하여 포위망을 구축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좁은 곳에서는 '앞으로 나란히' 밖에 될 수 없기 때문에 제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차례차례 맞서 싸우면 된다. 을지문덕은 적의 대군을 유인하여 치고 빠지면서 심리적으로 지치게 만들고 길목마다 병사들을 매복시키는 한편, 백성을 성안으로 대피시키고 양식을 감추고 우물까지 메워버렸다. 흥분한 우중문은 숨을 몰아쉬면서 병사들을 독려하여 을지문덕을 추격하였으나 낌새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우중문의 퇴각명령과 함께 을지문덕의 공격명령이 동시에 내려졌기 때문이다. 때를 기다리며 전투다운 전투를 못해 스트레스가 쌓은 고구려군은 살수(청천강)에서 수나라 대군을 몰살시켜 버렸다. 왕조는 바뀌어도 고구려만은 양제의 도전정신은 대단했다. 그 뒤로도 두 차례의 원정을 준비하였으나 백성들의 반응이 냉담했다. '정말 속없는 황상폐하, 못 말리는 황제폐하, 언제나 철이 드나'였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운하 건설에 불만이었던 백성들은 무모한 전쟁준비에 반기를 들고 말았다. '사지(死地)에 들어가 고구려군의 칼에 맞아 죽거나 물귀신이 되기보다는 폭군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죽더라도 죽자'면서 '양현감(楊玄感)의 난'을 계기로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결국 618년 양제로부터 모반의 위험인물로 몰려서 지방으로 쫓겨났던 이연(李淵)이 수나라의 수도인 장안을 점령하여 당나라를 세웠다. 시황제의 진나라보다는 조금 나아도 명이 짧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수나라를 보면 '죽 쑤어서 개준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당 고조 이연은 수나라의 제도를 고스란히 이어 받았다. 문제와 양제가 나라의 기초를 너무 잘 정비해준 덕분에 손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당 시대'가 여러 면에서 '진·한 시대'와 비슷하지만 성격은 크게 다르다. 오늘날의 국가적 의미는 수·당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진·한 시대에는 봉건적 잔재가 남아있었지만, 수·당 제국은 율령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율령은 오늘날의 모법, 즉 헌법에 해당되며 북조시대에 싹이 터서 수나라를 거치면서 당나라에 이르러 통치의 근간으로서 자리를 확고히 했던 것이다. 정관(貞觀)은 당 태종의 연호이다. 그가 통치한 23년을 역사에서는 '정관의 치(貞觀의 治)'라 하며 당나라의 번영을 표현하고 있는데, 당 태종은 내치만이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당의 세력판도를 크게 넓히는 과정에서 고구려와 나쁜 인연을 맺었다. 당이 건국되자 고조(高祖)는 백성들의 여론을 감안하여 고구려에 대해서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냈으며 고구려 역시 당나라와 싸움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두 나라는 서로 긴장감을 풀기 위해서 포로도 교환하고 이때 당으로부터 도교가 들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야심만만한 태종이 제위에 오르자 사정이 달라졌다. 국내정치가 안정되자 고구려에 대해서 압력을 가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바람에 고구려가 반발하였고 연개소문을 중심으로 요동지방에 천리장성을 쌓는 등 철통같은 경계태세로 맞섰다. 이때 고구려의 영류왕은 당과의 긴장관계를 해소하기 위해서 북수남진(北守南進)을 대외정책으로 삼았다. 이는 북으로 당나라와 평화를 유지하고(北守), 남으로는 신라를 친다(南進)는 정책이었다. 이에 불안을 느낀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서기 642년 쿠데타를 일으켜 왕을 시해하고 정권을 장악하여 당에 대해서 강경책을 썼던 것인데 당 태종은 쿠데타를 일으키고 임금(영류왕)을 시해한 연개소문을 벌한다는 명목을 내걸고 고구려를 침공했다. 패배 이후 장기 전략으로 전환 서기 644년 당 태종은 대군을 이끌고 난공불락의 요새로 알려져 있는 요동성을 공략하여 고전 끝에 함락에 성공하였으나 안시성에서 양만춘 장군의 지휘 하에 고구려의 백성들과 병사들이 목숨을 건 총력전을 전개하는 바람에 두 달간의 공격을 포기하고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군대를 철수시켜야만 했다. 그 후 두 차례나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그때마다 고구려에 의해서 격퇴당하는 수모 때문에 당 태종은 깊은 마음의 병을 얻어 서기 649년 '고구려'라는 외마디의 비명과 함께 눈도 감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당 태종의 죽음을 계기로 고구려에 대한 당의 전략이 수정되어 속전속결의 단기전을 버리고 장기전의 우회공격으로 전환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당은 고구려의 남쪽 백제를 먼저 치는 전략을 세우게 되었다. 한편 고구려의 북수남진(北守南進) 정책에다 백제의 측면공격으로 신라는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당에 접근하였고 이것이 나중에 나·당 연합군의 결성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포괄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우리 국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7세기에 이르러 한반도의 상황은 복잡한 삼국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해서 수 양제나 당 태종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한반도의 허점을 최대한으로 이용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던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7세기를 기준으로 이미 삼국은 전쟁과 평화, 동맹과 적대 관계를 복잡하게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원의 통일제국으로서 삼분된 한반도를 공략한다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했을 것이며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정리를 해야 한다는 절실한 시대적 요청도 작용했을 것이다. 7세기에 벌어졌던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종전의 산발적인 전투가 아닌 삼국의 총력전에 당나라와 왜국(일본)까지 개입된 국제전 양상을 띠게 되었고 결국 신라의 불완전한 승리로 삼국시대가 마감되었다. 요동과 만주, 한반도를 잇는 옛 조선(고조선), 그리고 조선의 실지회복을 국시로 삼았던 고구려는 찬란하게 빛나는 영광된 한민족의 역사이다.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 전제한다면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과거에 그러했듯이 현재도 민족의 역량을 모아 선조의 영광을 되살리겠다고….
김정호 | 서울 양화초 교사 사건은 상하이시의 한 지역에 설립된 ‘맹모당(孟母堂)’이라는 사설교육시설에서 발단이 되었다. ‘맹모당’은 의무교육기관에서 수업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국가의 의무교육이 아닌 사설교육을 실시하는 전일제 사설교육시설로,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의 고전인 공자와 맹자의 경서 암송을 위주로 하는 과거의 전통식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시작되어 현재 12명의 학생을 상대로 학부모를 포함한 4명이 교사가 운영하는 이 교육시설이 문제가 된 것은 최근 맹모당의 독특한 교육방법이 언론에 보도되고, 상하이시 교육위원회의 감사가 시작되고 난 후부터이다. 언론에 맹모당의 특별한 교육방법이 보도된 후 상하이 교육위원회는 즉각적인 감사를 실시하여 맹모당의 교육방법은 일반적인 부모가 자식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가정교육의 범주를 넘어섰기 때문에 순수한 가정교육(Home Education)도 아니고, 중국의 의무교육법의 규정을 위배하였으며, 학교설립과 관련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채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불법임을 지적하고, 맹모당을 즉각 폐쇄할 것을 명하였다. 하지만 상하이시의 이러한 조치에 대하여 맹모당의 설립자 및 학부모들은 강력히 반발하며, 상하이시 교육위원회를 기소하는 동시에 가정교육(Home Education)의 권리에 대한 토론을 요청하였다. 이들 학부모 및 설립자는 맹모당의 교육방식은 의무교육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학부모들이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이 교육시설은 단지 가정의 자주적인 학습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국가가 규정한 학교설립조건을 갖추어야 하는 교육기관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이러한 이유로 정부에 학교설립을 허가받을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이들 주장의 핵심은 맹모당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와 학생들은 서로 아는 사이로 서로 자기의 교육방식을 가지고 자신의 자식들을 교육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식 학교 교육은 아니라는 것이다. 中 정부, 맹모당 정식 교육 아니다 이와 같은 쌍방의 논쟁은 의무교육논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상하이시 교육위원회 측이 주장하는 맹모당 측의 의무교육 위반 사실은 의무교육 단계에 있는 학생들의 교재와 관련해서는 국가에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으며, 의무교육단계의 사립학교들은 반드시 자금, 교실, 교사와 학생의 수에 있어 정부의 규정에 따라야 하는데, 현재 맹모당의 교육내용이나 시설, 교사 등의 질이 이러한 의무교육법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맹모당 측은 이들이 현재 받고 있는 수업의 질이 의무교육에서 제시하고 있는 교육의 요구에 도달하고 있으며, 중국 의무교육법에는 적령아동들은 반드시 교육부문이 인가한 교육기관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고, 가정교육을 불허한다는 규정 역시 없기 때문에 이는 의무교육법 위반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의무교육법 제정의 목적이 적령기 아동들에 대한 교육의 보증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행 학교교육에 만족을 못하는 학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보다 나은 교육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은 의무교육법 위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상하이시 방송국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과반수의 학부모들은 맹모당의 교육방식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세상에서 부모보다 더 자기의 자식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고, 자녀들의 교육적 요구에 대해 이해를 많이 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학부모들에게는 마땅히 자녀의 교육을 책임져야 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학부모들은 현행 교육의 문제, 즉 현행 의무교육체계는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아이들을 몰아가고, 교육 본래의 책임을 홀시하고 있기 때문에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더 좋은 교육방법을 갈망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교육전문가들은 학부모들이 주장하는 중국의 현행 의무교육제도의 문제점에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입시교육의 문제는 정부의 교육정책과 관계가 있는 것이지, 의무교육법률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실제로 의무교육법 제1조에 의무교육과 관련하여 ‘적령기 아동, 소년의 의무교육 받을 권리의 보장, 의무교육의 실시의 보증, 국민의 소질 제고를 위하여 헌법과 교육법에 근거하여 본 법을 제정한다’고 그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는데 맹모당 사건은 이러한 교육법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안학교인가, 사교육인가 결국 교육당국의 공통된 의견은 맹모당 식의 교육방법은 현행 교육기관에 의한 교육을 보충하는 교육으로 실시되어야할 것이지 그 자체가 주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맹모당 측이 그들의 교육사상대로 이 교육을 실시하려면 반드시 국가의 의무교육법과 상하이시의 유관 규정에 따라 교육부문의 학교설립조건, 교사, 학교설비, 수업의 질량 등의 방면에서 비준을 획득한 후 허가증을 받게 되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맹모당 측과 상하이 교육위원회 측의 논쟁은 상하이 교육계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관심거리로 등장하였다. 실제로 맹모당과 같은 국가의 교육기관을 대체하는 사설교육기관들은 전국적으로 여러 곳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란조우[蘭州], 시아먼[厦門], 광조우[廣州] 등에는 이와 유사한 전일제 사설교육기관들이 있으며 이들 역시 아직 합법적인 지위 및 신분을 취득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이번 맹모당과 상하이시 교육위원회 간의 분쟁의 해결 결과에 따라 전국적으로 사설교육기관의 설립을 부추길 것인지 아니면, 의무교육법에 따른 보조적인 학원으로 전락할 것인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신동호 | 코리아 뉴스와이어 편집장 바람직한 식사는 채식과 육식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인간은 초식동물이 아닌 잡식동물이기 때문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고기 좋아하는 원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백만 년 동안 인류의 고기 섭취 비율은 장소와 계절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대개 20∼40%였다. 인간의 고기 섭취 비율을 20%로 낮게 잡아도, 이 비율은 235종의 영장류 가운데 가장 높다. 진화의 레이스에서 최근 인간과 갈라져 나간 침팬지도 고기 섭취 비율이 4%에 불과하다. 육식 위한 과잉 사냥으로 동물 멸종 인간의 진화를 설명하는 유력한 이론으로 '사냥 학설'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냥과 육식을 통해 언어와 사회적 협동 관계가 발달하고, 영양 상태가 좋아져 뇌가 커졌다는 것이다. 인류학자들이 원시 사회의 표본으로 삼고 장기간 연구를 해온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쿵족은 하루 일과의 40%를 사냥을 하거나 또는 사냥 얘기로 보낸다. 이들 사회에는 '고기 고프다'는 단어도 있다. 인간이 고기 좋아하는 원숭이로 진화하면서 지구에서는 매머드 등 대형 포유류들이 대량 멸종했다. 그 원인도 사실은 워낙 인간이 사냥과 육식을 즐겼기 때문이다. 그동안 과학계에서는 동물의 멸종 원인을 놓고 빙하기 때문이라는 가설과 인간 때문이란 가설이 팽팽히 대립돼 왔다. 2001년 과학 잡지 에는 신대륙인 호주와 아메리카에 인간이 침입한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아 엄청난 숫자의 동물이 멸종됐다는 논문이 두 편 실렸다. 호주에서는 마지막 빙하기 때 무서운 발톱을 지닌 캥거루 등 무게 45㎏ 이상의 대형동물 24속 가운데 23속이 멸종했다. 멜버른 대학 지질학자 리처드 로버츠가 이끄는 연구팀은 대형동물의 뼈가 무더기로 나온 호주 지층들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이들이 묻힌 시기는 약 4만 6400년 전이었다. 호주에 인간이 발을 들인 시기는 5만 6000년 전. 불과 1만 년 만에 인간은 사냥을 통해 대형동물의 씨를 말린 것이다. 호주보다 훨씬 늦게 인간이 침입한 북미 대륙에서는 약 1만 년 전 41종의 초식동물 가운데 30종이 멸종했다. 들소, 매머드 등이 그것이다. 산타 바바라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 존 앨로이 교수팀은 수렵 채취인이 늘면서 동물이 한꺼번에 멸종했다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사람과 초식동물 41종의 개체수 변동 관계를 모형으로 만들어 컴퓨터로 모의실험을 했다. 이 실험은 전체 41종의 초식동물 가운데 32종의 운명을 비교적 정확히 맞추어 '인간에 의한 과잉 살육 가설'을 입증했다. 이 모의실험에서 30종의 동물이 멸종하는 데 걸린 평균 시간은 1229년. 이는 1만 3400년 전 무렵부터 북미 대륙에서 살았던 최초의 인류 거주 흔적과 1만 2260년 전 동물의 잇따른 멸종을 알려주는 화석 기록과도 거의 일치했다. 15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다른 대륙으로 진출한 호모 사피엔스는 다름 아닌 '킬러 사냥꾼'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음식으로 단백질 섭취해야 인류가 수백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원숭이로 살 때는 숲 속의 과일과 견과류를 주로 먹는 원숭이였다. 그러나 빙하기가 엄습해 아프리카의 숲이 건조한 사바나 초원으로 바뀌고 사냥과 육식에 오랫동안 적응하면서 육식에 적합한 신체 구조를 갖게 됐다. 즉, 인간은 생선이나 고기에서 풍부한 필수 아미노산과 지방산, 철, 아연, 비타민 B6, 비타민 B12를 얻게 된 것이다. 우리의 몸은 단백질이란 벽돌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카락, 피부, 눈, 심장, 뇌, 근육이 대부분 단백질이다. 뿐만 아니라 산소를 실어 나르는 헤모글로빈, 적혈구와 인체의 대사를 조절하는 호르몬과 효소도 단백질이다. 식물이나 미생물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단백질을 스스로 합성할 수 있으나, 동물은 그런 능력이 없으므로 단백질 또는 아미노산을 음식물로 섭취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동물성 단백질은 식물성 단백질보다 영양가가 높다. 또 단위 중량당 단백질의 함유량도 동물이 식물보다 많다. 단백질의 종류에 따라 아미노산의 종류와 양도 다르므로 여러 가지 단백질을 고루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가 단백질을 먹으면 아미노산으로 잘게 부서져 혈액 속에 공급된다. 그러면 세포가 이들 아미노산 가운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골라 항체, 호르몬, 효소, 혈액을 만든다. 이때 8개의 필수 아미노산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일 이 가운데 하나라도 부족하면 세포와 효소를 만들지 못해 몸에 이상이 온다. 다양한 살코기는 완벽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설사 채식주의자라 하더라도 계란과 우유를 먹으면 필수 아미노산을 얻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채식주의자가 필수 아미노산 부족에 걸리지 않으려면 콩, 과일, 호두, 식물 씨를 적절히 먹어야 한다. 그래야 채식만을 할 때 부족해지기 쉬운 리신, 트립토판, 메치오닌 같은 필수 아미노산을 공급받을 수 있다. 채식과 육식의 적절한 조화 필요해 채식만을 할 경우 부족해지기 쉬운 또 다른 영양분은 붉은 색 고기에 특히 많은 철과 아연이다. 세계적으로 볼 때도 가장 흔한 영양실조가 바로 고기를 섭취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철 결핍성 빈혈이다. 혈액이나 살코기가 붉은 색을 띠는 것은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이 철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은 체내의 산소 운반을 맡는 헤모글로빈이 산소와 결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철분이 부족하면 헤모글로빈을 만들 수 없어서 안색이 창백해지고, 쉽게 피로해지며, 저녁이 되면 발이 붓는다. 철 성분은 붉은 색 살코기나 간에 많지만 시금치, 해조류, 참깨, 콩에도 꽤 들어 있다. 하지만 식물에 들어 있는 철은 체내에 잘 흡수되지 않는다. 고기에 들어 있는 헴철은 식물에 들어 있는 철보다 인체가 이용하기가 훨씬 쉬워 체내 흡수율이 4배나 높다. 식물 속에 들어 있는 철분은 무기 화합물 형태의 철이고, 육류에 들어 있는 철은 인체가 흡수해 이용하기 쉬운 유기 화합물 형태의 헴철이다. 현재 유럽에서는 철 결핍 때문에 정부의 지도 아래 주식에 철을 첨가하는 방법이 실시되고 있다. 스웨덴 정부는 밀가루에 철을 첨가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 덴마크, 영국, 일본에서도 철의 함량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철의 결핍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낮아서 효과적인 대책은 아직도 세워지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는 유아의 아연 부족도 심각한 문제다. 아연이 부족하면 인지 능력과 생리 발달이 저해되고 면역력도 약화된다. 한국의 어린이에게도 아연 부족은 성장 장애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경희대 식품영양학과 박현서 교수가 2003년 유아의 머리카락을 조사한 결과 열 명 중 아홉 명이 아연 부족증에 빠진 상태였다. 어린이들의 체내에 아연이 부족할 경우 입맛이 없고 키도 정상적으로 자라지 않는다. 어린이들에게는 아연이 풍부한 살코기, 굴, 조개 등 아연 성분이 많은 음식을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는 직업인이 아닌 '선생'의 길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적잖은 도전과 위로를 주는 영화이다. 박준용 | 한양대 강사, 문화평론가 불가능한 완성에 맞서 투쟁하는 삶 흔히 사용하는 속담에 말을 물가에 까지 이끌 수는 있으나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말이 목이 마른지 어떤지를 분간하여 물가로 인도하는 사람조차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예로부터 교사에게 기대되는 여러 가지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아이들의 잠재적 가능성을 찾아내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 교육현실에서 교사가 학생 개개인의 특별한 재능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발전하도록 돕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지나치게 많은 학생 수는 물론, 교사로 하여금 아이들에게만 집중할 수 없게 하는 과중한 업무와 입시 위주의 실용주의적 교육환경 등등은 교사를 인생을 먼저 살고 경험한 '선생(先生)'의 삶이 아닌 단순한 직업인의 길로 전락시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의 삶, 곧 그네들의 생각과 태도를 바람직한 방향성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긍정적인 가능성으로 충만한 관계가 곧 교사와 학생과의 만남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어찌 보면 이 땅에서 교사의 길이란 불가능한 완성을 향해 끊임없이 투쟁하며 나아가는 삶인지도 모른다. 이번에 감상할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는 그런 스승의 길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적잖은 도전과 위로를 주는 영화이다. 외로운 가능성을 희망으로 이끌어 소년 빌리(제이미 벨)의 환경은 사방이 벽으로 가로막혀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함 그 자체이다. 자상했던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쇠락해 가는 탄광의 광부인 아버지(게리 루이스)와 형은 가망 없는 파업으로 정부와 투쟁 중이며, 빌리가 돌봐야 할 할머니는 치매로 동네를 떠돌아다닌다. 사람들이 고통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 모습이다. 하나는 고통으로 인한 절망 속에서 자포자기한 채 살아가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고통을 창조적인 에너지로 승화시켜 이를 극복해 내는 것이다. 후자의 표현이 좀 더 멋있어 보일런지 모르지만 현실적인 조건에서 이런 승화는 대단히 드물 뿐만 아니라, 대개 반항적인 일탈의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기 쉬워 쓸데없는 객기로 오해받기 쉽다. 빌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느 사내아이들처럼 권투도장에서 원하지도 않는 권투를 배우던 빌리는 장소상의 문제로 같은 공간을 나누어 쓰게 된 여자아이들의 발레레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에게 있어 '춤'이란 꽉 막혀있는 현실을 잊고 자유로운 비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유일한 기쁨이요, 즐거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열악한 경제상황에 처해 있던 보수적인 아버지와 형,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눈에 사내아이가 권투를 하지 않지 않고 발레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종의 객기요 일탈이며 반항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 빌리의 도전은 제약을 받는다. 그런 빌리에게 유일한 희망이 되었던 것은 발레 레슨을 맡고 있던 윌킨슨 부인(줄리 월터스)이었다. 아이들을 레슨 할 때조차 담배를 손에 놓는 법이 없는 윌킨슨 선생은 쇠락한 탄광마을처럼 지친 삶의 일상에 찌든 채 평범한 소녀들에게 발레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 권투 글러브를 낀 채 호기심어린 눈으로 춤추는 소녀들을 바라보고 있던 빌리의 모습이 보였다. 잠시의 만남이었지만 윌킨슨은 빌리가 가진 가능성의 가냘픈 빛을 '탈선'이 아닌 가능성으로 발견한다. 부모의 기대와 충돌하는 교사의 발견 하지만 그녀가 빌리를 대하는 방식은 혹자가 상상하듯 자상함과 배려로 가득 찬 이상적인 어떤 교사의 모습은 아니었다. 가난한 빌리에게 꼬박꼬박 레슨비를 독촉해 받아내는 냉정한 모습에서 볼 수 있듯, 그녀는 일방적인 도움을 주기 보다는 빌리 자신이 원하는 것이 얼마나 간절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스스로 깨닫고 따라올 수 있도록 자극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말을 물가로 이끌 수는 있지만 결국 물을 먹어야 하는 말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빌리가 발레를 배운다는 사실을 알고 아버지와 형이 이를 막으려 하자 가족들과의 충돌을 무릅쓰고 단호한 어조로 빌리의 재능과 가능성을 주장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학부모와 교사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것을 요구받는 오늘날, 아이를 사이에 두고 가정에서의 기대와 이와는 다른 가능성을 발견한 교사의 의견이 충돌하는 상황은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니다. 더욱이 가정이 교육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현실에서 교사가 거기에 개입해 방향과 진로를 바꾸려 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긴장과 갈등을 감수해야 한다. 또 설령 이렇게 된다한들 교사에게 돌아오는 것은 잘못되면 욕설이요, 잘되 봐야 그것은 오늘의 일이 아닌 먼 훗날의 어떤 것이기 십상이다. 한 마디로 지금 당장 교사에게 득 될 것이 없는 개입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긴밀해야 할 가정과 교사 사이의 간극은 현실 속에서 멀어지기만 한다. 예정된 실패임에도 불구하고 빌리의 미래를 위해 윌킨슨 부인은 어떻게든 이 간극을 뛰어 넘으려 애써본다. 그리고 기다린다. 최선을 다해 빌리의 가능성을 가정에 알리고 그것이 당장 거부되었을지라도 잠잠히 시간을 두고 가족들이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그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교사의 몫은 바로 여기까지이다. 완고하기 그지없던 빌리의 아버지는 윌킨슨 선생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사내아이가 발레를 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난방연료가 없어 죽은 아내가 소중히 여기던 피아노를 땔감으로 쓸 수밖에 없던 어느 암울한 크리스마스 저녁, 권투도장에서 자유롭게 춤추는 빌리의 비상을 목격하고는 자신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 때부터 아버지는 빌리를 위해 모든 것, 곧 자신의 존재감을 유지시켜 주던 유일한 힘이었던 자존심마저 내 던지는 결심을 한다. 멀리 윌킨슨 부인의 집에 찾아가 그녀가 옳았음을 인정하고 빌리를 부탁하는 것은 물론 파업 중인 동료들의 비난을 감수한 채 돈을 벌기 위해 일터로 돌아가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잠재력을 실현시키는 '선생'의 역할 가능성으로 가득 찬 아이가 훌륭한 모습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있어야 하는 이상적인 조건을 영화 는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아이의 원함과 행함, 그리고 이를 발견해 이끌어주는 교사와 희생적인 가족들의 헌신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적어도 영화 속에서 그것은 윌킨슨 부인으로 상징되는 교사의 역할이다. 그녀는 빌리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것이 온전히 발현되도록 자극할 뿐만 아니라 부정적이었던 가족이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 안도록 설득했다. 이를 통해 교육의 세 주체라 할 수 있는 가정과 학교 그리고 학생이 같은 목표를 향해 걸어갈 수 있게 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했던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최고의 무용수로 성장해 빌리의 공연장을 찾은 가족과 친구들의 모습 속에 뜻밖에 윌킨슨 부인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인생을 변화 시킬 만큼의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선생님과의 만남을 가졌던 이들은 분명 알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그 분이 어디에 계시는 지 알 수는 없지만 바로 우리 가슴 속에 선생님의 가르침이 생생한 감동으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무대 위 어둠을 가르며 비상하는 백조로 분한 빌리의 날갯짓 속에 윌킨슨 선생은 살아 있었다.
신태식 | 본사 교육전문직 특강 교수 1. 이상제시형의 특징 이상제시형은 지향해야 할 방향이나 문제해결을 위한 바람직한 역할과 해결을 논해야 할 경우에 유용한 형태이다. 이상제시형은 '…적합한 교사상에 대해 논술하시오', '…정보화 시대에 적합한 교육의 방향에 대해 논술하시오'등으로 진술된다. 이상제시형의 변형된 형태로는 '바람직한 교사상에 대해 논술하시오'등이 있다. 이상제시형 문제에서는 무엇보다도 해결에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또 그 조건에 알맞은 방향이나 이상적인 상태는 무엇인가를 적절하게 제시해 주어야 한다. 단, 조건은 치밀하게 검토하되 이상적인 방향이나 상태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지지 않게 제시해야 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은 실현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상제시형에서 주제에 대한 내용은 대체로 시대상황이나 사회에 대한 것이 된다. 즉 '정보화 시대에 적합한 교사상에 대해 논술하시오'나 '21세기의 교육의 방향에 대해 논술하시오'등의 문제가 출제될 때 조건인 '정보화 시대'나 '21세기'를 생각하지 않고 교사상이나 교육의 방향을 첫째, 둘째, 셋째, … 등으로 논술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논술의 채점기준인 논리적인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이는 교사상이나 교육의 방향은 시대나 사회적 특징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조선시대나 일제시대, 산업사회의 교사상이나 교육의 방향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상제시형에서는 앞의 조건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조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면 조건인 '정보화 시대'나 '21세기'의 무엇을 논해 주어야 하느냐가 문제가 된다. 일반적으로 '정보화 시대'는 정보화 시대의 개념이나 특징(특성), 기능, 요구되는 인간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또 '21세기' 역시 21세기의 사회적 특징이나 기능 등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즉 정보화 사회가 ○○○ 특징과 기능(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 인간을 길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 교사의 자질이나 태도(모습)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써 내려가야 한다. 또, 21세기에 적합한 교육의 방향의 문제에서도 '21세기'의 특징이 ○○○ 때문에 21세기에 적응하는 인간은 ○○○ 자질을 갖춘 인간이다. 이 인간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교육의 방향(내용과 방법)은 ○○○ 달라져야 한다는 식으로 서술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조건에 대한 설명을 한 후 그에 가장 적합한 내용(교사상이나 교육의 방향)을 서술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이상제시형의 기출 및 예상 1) 학급담임으로서의 바람직한 교사상에 대하여 논술하시오.(1993, 서울) 2) 우리 사회는 정보화 사회로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방향과 관련하여 21세기에서 요구하는 이상적인 교사상을 논술하시오. 3) '서구화의 진행 과정이 한국 전통 문화와 한국인의 정체성에 미친 영향'과 '이러한 상황 속에서의 교사의 바람직한 역할'에 대하여 논술하시오.(2001, 전주교대 편입) 4) 현재 초등학생들은 21세기 지식기반사회의 주역이 될 것이다. 이들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능력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이 능력을 키워주기 위한 교사로서의 역할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진술하시오.(2003, 서울교대 편입) 5) 바람직한 교사상에 대해 논술하시오.(2000, 부산교대 편입) 6) 제시문의 의도에 적합한 바람직한 교사상에 대해 논술하시오.(2002, 대구교대 편입) 7) 정보화 시대에 교육의 방향에 대해 논술하시오. 3. 이상제시형의 개요작성방법 논제 : 우리 사회는 정보화 사회로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방향과 관련하여 21세기에서 요구하는 이상적인 교사상을 논술하시오 1) 서론 이상제시형에서 서론은 단도직입표현을 제시하고, 이어 정보화 사회의 중요성에 대해 논술한다. 즉, 정보화 사회가 학교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객관적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교사상의 필요성을 암시한다. 이 과정에서 본론의 정보화의 특징 등과 중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위 문제와 같이 정보화가 중심이 된 21세기가 요구하는 교사상을 논술하라면 "우리 사회는 20세기 산업사회에서 21세기 정보화 사회로 진행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전국 초·중·고 교실에 인터넷이 깔리고 모든 교사들에게 컴퓨터가 지급됨으로써 세계 최초로 '학교 온라인화'도 완성되었다. 이는 미래사회 변화의 방향에 적응하기 위한 학교현장의 적응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대변화에 적합한 교사상의 재정립이 필요한 때이다"라고 서술할 수 있다. 2) 본론 본론의 핵심논점은 이상제시형의 특징인 조건과 조건에 적합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위 문제에서는 21세기의 특징(조건)과 21세기 특징에 적합한 이상적인 교사상(내용)이 될 것이다. 여기서 21세기 사회의 의미와 특징을 제시해야 할 것이고, 이에 근거한 교사상을 제시하면 된다. 그런데 우수한 교사는 전인교사라고 할 수 있고, 전인교사는 지·덕·체를 갖춘 교사이다. 그 중 '지'에 대한 전문성은 교과에 대한 전문지식과 교수·학습방법이 핵심이 될 것이고, '덕'에 대한 전문성은 사명감이나 윤리의식, 학생에 대한 사랑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실천하면 훌륭한 교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 문제에서처럼 21세기의 특징이 지식정보화사회, 세계화, 다양화, 비인간화라고 규정된다면 '지'와 '덕'에 대한 내용이 추가되는 것이다. 즉, '지'에는 정보화 능력이 추가된다. 정보화 시대에서는 다양한 수업활동이나 업무처리에서 정보화 능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또 정보화 시대는 '덕'이란 측면에서도 교사는 학생의 인격과 개성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전제로 학생을 지도해야 하며, 세계화에 맞는 개방적 사고와 열린 마음을 지녀야 하는 한다. 이에 근거하여 정보화 사회의 특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 사회는 첨단 정보통신 기술이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여 정보통신망이 확대되고, 정보통신기기가 대량 보급됨으로써 사회 전반의 정보화가 진전되고 일상생활이 크게 바뀌고 있다. 즉, 다가오는 사회의 특징은 정보화, 세계화, 개방화, 다원화, 민주화, 비인간화로 요약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회는 창의적이고 주체적이며, 합리적이고 인간성이 풍부한 인간을 요구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지도하는 교사들의 자질과 역할이 달라져야 하고, 교사 자신도 이 같은 사회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위 조건에 적합한 교사상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이를 위해 먼저 정보화 능력을 갖춘 교사이어야 한다. 교사는 학교 온라인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을 갖추어 필요한 정보를 찾고 올바로 해석하여 학습상황에 맞게 가공하고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가르치고 이들 정보의 활용 및 응용능력을 갖춘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을 육성하는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사는 변화하는 사회의 환경에 맞도록 다양한 학습 환경을 조성하고 지도할 수 있는 전문적인 교과 및 교수·학습 능력도 갖추어야 한다. 교실 환경이 사회 환경의 한 단면이 될 수 있도록 학습 자료 및 참고 자료를 개발하고 끊임없는 연구와 연수 및 자기계발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다원화, 민주화, 인간화라는 사회적 변화는 교사에게 학생들의 다양성과 개성을 고려하도록 하며 따뜻한 인간애를 가진 교사를 요구한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들의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면서 물질문명과 가치관의 혼돈으로 인해 황폐화되기 쉬운 인성을 올바로 가꾸어 주는데도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사는 세계화, 개방화 시대에 걸맞게 학생들의 의식을 세계화하고 세계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세계인으로 길러 낼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반드시 주체성을 가진 세계인이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교사는 주체성에 입각한 개방적인 사고를 갖고 열린 교사로서의 자질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3) 결론 결론은 단도직입 표현에 본론의 내용을 핵심적인 단어 중심으로 요약한 후 이를 위한 과제 등을 제시하면 된다. 핵심내용의 요약은 '만큼'이란 표현을 통해 묶어 제시하면 간단하면서도 핵심중심으로 정리된 느낌을 준다. 즉, '만큼' 앞부분에는 조건에 해당되는 21세기의 특징을 3~4가지 제시하고, '만큼' 다음에는 조건에 적합한 이상적인 교사상의 내용을 3~4개 정도 제시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전망이나 과제를 제시하는 데 과제를 제시할 때는 교사가 해야 할 일을 제시하면 좋을 것이다. 이에 근거하여 21세기 정보화 시대의 교사상에 대한 결론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사회가 변함에 따라 요구되는 교사상도 다르기 마련이다. 앞으로 다가오는 사회는 정보화, 세계화, 개방화, 다원화, 민주화, 비인간화로 특징지을 수 있는 만큼 정보화 능력을 갖춘 전문적인 교사 그리고 주체성이 있는 인간적인 열린 교사라고 볼 수 있다. 모든 교사가 이러한 교사상에 입각해서 부단한 자기 노력을 할 때 21세기를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4. 이상제시형의 실전연습 논제 : 정보화 사회에 있어서의 학교교육의 방향에 대해서 논술하시오. Ⅰ. 序論 (1) 정보화 사회의 도래 및 학교 현장의 변화 우리 사회는 첨단 통신기술이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고 정보통신망이 확대됨으로써 사회 전반에 정보화가 진전되고 있다. 초고속 인터넷, 전산 온라인화, PC방 등이 그 단적인 예이다. 이에 전국 초·중·고 교실에 인터넷이 깔리고 모든 교사들에게 컴퓨터가 보급됨으로써 세계 최초로 '학교 온라인화'도 완성되었다. 이는 정보화 사회의 방향에 적응하기 위한 학교현장의 적응 모습을 보여 주는 바, 이제는 학교교육의 방향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Ⅱ. 本論 (1) 정보화 사회의 특징 정보화란 지식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정보를 창출, 습득, 활용하는 활동 일체를 의미하는데 이러한 정보화가 전체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회를 정보화 사회라고 한다. 이러한 사회는 국민의 삶의 질을 제고시켜 줄 뿐만 아니라 국민의 의사전달도 용이하게 해주어 민주화에도 크게 기여하게 된다. 반면 정보의 악용·오남용, 불건전한 정보의 공유, 컴퓨터 세계에의 몰입 등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과 인간소외, 도덕성 결여 등의 부작용도 초래될 수 있게 된다. 음란 및 자살 사이트의 정보 공유라든지 개인정보의 유출, 사이버 세계와 현실 세계의 혼동 등이 그 예이다. 따라서 학교교육은 이와 같은 정보화 사회의 특징을 반영하여 바람직한 정보사회관을 갖고 변화하는 사회에 조화롭게 적응하며 정보화 사회를 선도하는 인간성이 풍부한 창의적인 인간을 길러내는 방향으로 변환되어야 한다. (2) 학교교육의 방향 이를 위해 학교교육은 먼저 학생들의 정보 활용 능력을 신장시켜 주면서 정보 창조력을 길러 줄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한다. 정보화 사회에 맞는 다양한 학습 환경을 조성하는 일에서부터 학교 온라인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능력과 필요한 정보를 찾고 올바로 해석·가공·처리할 수 있는 자기 주도적인 학습 능력을 배양시켜 주어야 한다. 나아가 이것이 정보 창조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창의적인 교수·학습 방법도 적극 추진해야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성 신장을 위한 교육, 도덕성 함양을 위한 교육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보화 사회의 부작용이 자칫 인간성 황폐화 내지 인간 소외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정보매체 위주의 기계적인 교육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정보윤리교육을 비롯하여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간의 인격적인 교류를 통한 인간성 교육도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눈에 보이는 기계의 측면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교육방법, 전략, 교육철학이 더욱 중요시된다고 불 수 있다. Ⅲ. 結論 학교교육이 정보화 사회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은 정보화의 긍정적 요소들을 최대한 살리면서 부정적 요소를 가능한 한 억제해 나가는 길이다. 따라서 학교는 학생들이 올바른 인성을 가지고 정보화 사회를 선도할 수 있도록 그 역량과 지혜를 모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바람직한 정보화 사회의 건설은 학교교육의 방향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일본 북부에 위치한 아키타시의 학교 법인 「아키타 경제법과대학」은 10월에 동 대학과 같은 계열의 아키타 영양 단기 대학에 갈색 머리와 귀걸이를 금지하는 규칙을 제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에 따르지 않는 경우에는 「징계」도 있지만, 지도에 응한 학생에게는 포상금 1만엔이 부상으로 주어지는 학장상을 주는“당근과 채찍”을 겸하게 된다. 문부과학성 학생 지원과도 지금까지 이같은 일은「들은 적이 없는 사례」라는 것이다. 새롭게 제정된 「학생의 두발·장신구에 관한 요강」에서는 남녀 모두, 두발에 대해 「주위에 불쾌감을 주는 특이한 머리 모양, 염색, 탈색은 금지」하며, 장신구도 「지나친 위화감을 피하고 품위를 유지하며 귀걸이는 금지한다」라고 명기했다. 해당하는 학생에게는 신설된 교육 지도실 담당 교수들이 지도하게 된다. 아무래도 지도를 받아 들이지 않는 학생은 교수회에서 상의한 위에 주의 처분 등의 「징계」도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규정도 포함시켰다. 대학, 단기 대학 합하여 학생 약 1,800명이 재적하고 있지만, 대상이 되는 학생은 약 50여명 이상으로 보여져 포상금으로 총액 100 만엔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전 검사출신으로 변호사이기도 한 코이즈미 이사장은, 「니트나 프리터 등의 문제는 학생의 모랄이나 매너의 저하로 인한 것도 한 요인이 아니겠는가. 학생의 복장이나 두발의 무질서는 대학이나 본인의 평가로도 연결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아키타현내의 고등학교등에는 이러한 대처 방법을 기재한 홍보자료를 배포해 교원이나 보호자에게 어필하면서 지원자의 확보에도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에 대하여 대상이 되는 학생들은「왜 거기까지 할 필요가 있는 것인가」라고 하는 반발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9월 22일 교육혁신위 주최로 부산에서 열린 ‘제2차 학제개편 대토론회’에서 나온 실업계 고교생 67%가 대학에 진학한다고 하는 기사는 이미 학교 일선에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이 보편화되어 있는 현실이다. 이는 국가 시책에 새로운 변화를 촉구하는 신호탄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교육의 새로운 문제점이기도 하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해 취업을 해도 그것으로 인해 보수에서 승진에서 차별을 받는다면 그 누구 이런 계통의 고등학교에 진학할 것이며 또 졸업했다고 하더라도 대학을 졸업한 이에 비해 홀대를 받는다면 그 누구 기능직으로서의 자부심을 내세우겠는가? 학벌만능주의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 9월 27일 인천 문학경기장 컨베이션홀에서 열린 전문대학 입학처장회의에서 “진학사”의 한 관계자는 전문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의 다수가 실업계 고등학교 학생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거기에 참석한 대부분의 진학담당 교사들도 실업계 학교의 교사들이었다. 이미 실업계는 실업계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기 보다는 대학 진학이 목적이 돼 버린 현재. 실업계통 고등학교의 발전 방안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실업계를 5년제로 또는 6년제로 만들어 가는 복고주의 정책을 되새겨 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이렇게 되면 전문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원서를 제출해야 하는 이중고를 방지할 수도 있고, 학생들은 공부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어 더욱 좋고, 정부는 실업계에 투자하는 비용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어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의 전문대학은 학생을 절름발이로 만들어 가는 징검다리와 같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자신이 익힌 기술을 가지고 전문대학에 들어갈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또 전문대학에 들어갔다고 해도 고등학교 때부터 쭉 배워온 것을 이어가는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지 않아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모순을 낳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손에 일이 익숙할 정도가 되면 벌써 졸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러 선무당의 모습에 지니지 않는 대학생이 돼 버리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실업계 고등학교라고 칭하는 과학고등학교, 외국어고등학교, 금호공업고등학교 등이 지금 어떠한 상태로 변질되고 있는가. 명목상의 이름만 실업계 학교일 뿐 실제는 우수한 대학에 가기 위해 기숙사까지 갖추어 놓고 밤낮으로 밝은 조명이 꺼질 줄 모르고 있는 현실을 주시해 본 사람이라면 누가 실업고의 장래를 밝게만 내다볼 수 있을까? 학벌지상주의, 지연중심주의, 혈연중심주의, 지역편승주의에 힘입어 달려가는 우리 교육의 자화상을 어떻게 그려내야 할까? 아무리 우수한 시스템으로 학생을 교육시켜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회구조가 어긋나 있다면 교육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교 교육과정은 현실에 맞게 실업계 고등학교와 인문계 고등학교와의 구별이 뚜렷하지 못한 현실교육에서 학교 계통 구별이 필요한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사실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대학을 가려는 학생이 있으면 그 학생에게 실업계의 취지를 잘 설명하여 자신의 적성에 맞는 취업 계통을 알선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마당하나 지금의 처지로서는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오히려 진학반을 만들어 인문계통의 공부를 권장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실업계 고등학교의 취지는 아닌 지 생각해 볼 일이다. 또 학생은 실업계 고등학교가 좋아서 가는 것이 아니라 실업계통의 학교에 진학하여 좋은 내신을 받아 우수한 대학에 가는 지름길을 얻기 위한 수단은 아닌 지도 곰곰이 생각할 문제다.
최근 내년도 예산안 작성에 들어간 서울시교육청을 비롯한 산하기관이 예산삭감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올해대비 30%의 예산이 삭감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연수를 담당하고 있는 산하기관들까지 예산이 삭감되어 내년도 교원연수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는 내년부터 매년 15시간의 연수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한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예산삭감과 관련하여 교육전문직들은 물론 일선학교 교원들도 우려하고 있다. A장학사는 '아무래도 좋은학교 만들기 자원학교를 선정하여 여기에 투입되는 예산이 예상외로 많고 세수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어 예산이 삭감된 것으로 보인다. 내년도 서울교육이 염려된다.'는 우려의견을 제시하였으며, A중학교 B교사는 '무리한 사업(좋은 학교만들기 자원학교 선정 등)추진으로 예산압박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교육감의 의욕적인 행보도 좋지만 특정사업추진으로 예산이 삭감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아직까지 일선학교에까지 예산이 삭감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서울시교육청과 그 산하기관의 예산삭감과 맞물려 학교에도 상당한 충격파가 내려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특히 당장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음에도 예산증액은 고사하고 삭감된다는 것은 교육여건 개선이 가물가물해지는 느낌이라는 의견들이 많았다. B중학교 C교사는 '대학생 멘토링제도나 특별보충반운영등에 소요되는 예산을 좀더 적절히 사용하고, 서울시교육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각종 공모제도 등을 축소할 필요가 있다. 일선학교에서는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제도를 계속추진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좀더 효율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혁신담당부서의 예산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혁신은 학교교육여건만 개선해 주면 자동으로 되는 것이다. 억지로 혁신한다고 혁신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하면서, '학교예산이야말로 대폭증액되어야 함에도 이를 등한이 하는 것이 문제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전교조 소속인 C중학교 D교사는 '선출직 교육감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런 것이다. 임기중에 뭔가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무리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예산이 실제로 쓰여야 할 곳에는 쓰이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교육이 아니다. 교육은 10년 20년을 두고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가시적인 효과를 얻을수 있다. 그런데도 무조건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문제다. 역효과가 우려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결국 예산부족의 첫째 이유는 세수감소, 두번째는 무리한 사업추진으로 요약될 수 있다. 아무리 어려운 살림이라도 학교의 예산을 삭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학교가 수익사업을 하는 곳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디서 예산을 받아올 곳도 마땅치 않다. 따라서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예산절감을 위한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 무조건 예산을 삭감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 일선학교에는 꼭 해야 할일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학교교육 현장에서「자신에게 관리직은 적합하지 않다」라며, 학교 교장이나 교감이 일반 교원으로 격하를 스스로 신청하는 「희망 강직」이 전국에서 증가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바쁘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큰 직책을 감당하지 못하며, 고민하거나 건강을 해치거나 하는 예가 많다는 것이다. 문부 과학성에 의하면, 전국의 공립 초중고교 등에서 2005년도에 스스로 격하를 신청한 관리직은 71명이다. 2001년도의 26명에 비하여 3배 가깝게 증가했다. 이 중, 교원으로 「첫 관리직」인 교감에서 교사로 강직이 62명을 차지해 가장 많다. 자치체별로는 도쿄도(18명), 키타큐슈시(7명), 카나가와현, 오사카부, 히로시마현( 각 4명) 순으로 많았다. 문부 과학성에 의하면 강직 이유는, 「건강상의 문제」34명(48%), 「직무상의 문제」16명(23%), 가족의 간호 등 「가정의 사정」5명(7%), 「그 외」16명(23%)이었다. 「건강상의 문제」와「직무상의 문제」에 대해서, 문부 과학성은 「직무상의 문제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을 해친 예도 있어, 구별 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한다. 관리직에 종사하면, 보호자나 지역 주민에게 대한 대응, 교육위원회와의 연락 조정, 교원의 인사관리 등, 일의 질도 바뀌어 업무량도 증가하게 되어 힘들다는 것이다. 키타큐슈시 교육위원회는 「희망 강직의 이유의 대부분이 「직책이 너무 힘들다」.확실히 교감은 일이 많아 잔업으로 늦게까지 학교에 남는 경우가 많다」라는 것이다. 도쿄도 교직원 조합은 「교장이나 교감이 명예직이었던 시대가 지나 지금 학교 경영이 간단하지가 않다. 요구되는 관리직상이 바뀐 것도 한 요인이 아닌가」라는 것이다. 한편, 키타큐슈시 교육위원회는「관리직으로부터 일반 교원으로 돌아옴으로, 본인의 능력·적성을 살릴 수 있고, 인사도 여유가 있게 된다」라며 희망 강직 제도의 장점을 이야기 한다.
학원을 다니면 성적이 올라간다는 학생이 있어서, 왜 학원에 다니니 했더니, 학원에 가면 학생들이 모두 열심히 공부한다고 한다. 학원선생님이 때리기도 하고 심하면 밤 2시까지도 잡아둔다고 한다. 학교에서의 체벌은 사라지는 반면, 학원에서의 체벌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공부하러 학원에 간다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학원에 가면 공부가 된다고 그 아이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학원에서는 11시 정도에 끝난다고 한다. 밤늦게 11시 넘게까지 있다 보니 학교에 와서는 피곤해서 자기도 한다고 한다. 중학교 학생들에게 예체능과목이 아닌 기초교과를 꼭 학원을 다니면서까지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신의 비중이 큰 중학교에서, 시험문제는 학교의 교사가 출제하는데, 학원교사의 말을 더 믿는 것 같았다. 혼자 공부하면 안 되느냐고 했더니, 자기는 의지력이 약해 혼자 공부를 못한다고 한다. 자기주도학습 능력은 떨어지는데, 주의에서 누가 통제해 주면 공부를 열심히 해주는 학생 같았다. 나중에 커서도 누가 통제해 주어야만 공부를 할텐데, 그것이 지금에야 좋겠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좋은 것이 아닌 것 같다. 학교에서 공부하면 안되느냐고 했더니, 학교에서는 애들이 집중을 않 한다고 한다. 학생들 개개인의 수준 차이가 있고, 학생들도 많아 떠들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는 친구를 사귀는 곳 노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방과 후 자기의 적성 및 소질을 개발해야 할 학생들이 기초교과의 학습을 위해 과외나 학원에 다닌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시간낭비고 돈낭비라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학생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지금처럼 학원에서 공부하고 학교에서 자고 시간과 돈의 낭비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없는 것인가?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각 교과시간마다 학생들 수준에 따른 수업을 하면 좋겠지만, 우리나라 체제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다. 좀 고쳐야 할 것들이 많은 것 같다. 학생들이 교실을 이동해야 실행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학생은 교실에 고정돼 있고 교사가 움직이다보니 힘든 것 같다. 각 교사에게 교실 하나씩을 배정하는 것인데, 쉬운 문제가 아닌것 같다. 교실 수가 교사 수 만큼 늘어나고 교육과정도 정비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수준이 낮다는 생각되는 학생들이 말을 잘 들을지 의문시 된다. 학습을 포기하지나 않을지 걱정된다. 공부 잘하는 학생의 학부모는 수준별 학습을 선호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학부형은 반대할 것이다. 그렇다면 공부 잘하는 학생의 학부모 보다 못하는 학생의 학부모가 많으므로 실행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학생들의 인성문제는 지도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 같다. 지금도 담임이 말을 잘 않듣는 상황에서. 그렇다고 계속해서 이렇게 내버려 두었다가는 학원에서 공부하고 학교에서 논다는 인식이 박혀버릴지도 모른다. 하나의 시스템을 계속해서 유지하기 보다는 적절히 상황에 맞게 변화를 주는 것도 좋으리라고 생각된다. 그 변화의 양이 얼마로 하는 것이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학원으로 학생들은 몰고 있지는 않은가? 맞벌이 부부의 경우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다보니 학원에 보내는 수가 많은 것 같다. 한 학생은 그 학원가면 진짜 성적 오르지 않아요. 그러면서도 계속 학원을 다니기에 그런데 왜 너는 그 학원을 계속 다니냐고 했더니, 어머니가 다니래서 어쩔 수 없이 다닌다고 한다. 건전한 놀이문화나 여가 생활, 취미생활이 없는 것도 문제이다. 모두 공부해야만 한다는 생각 속으로 우리 모두를 몰아넣고 있지는 않은 것인지. 건전한 놀이문화나 여가생활 문화가 있었다면, 아니면 학생을 방과 후 믿고 맡길 곳이 있었으면 꼭 학원을 보내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공부 안 해도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방안을 만들어 간다는 식의 극단적인 접근을 유도해 학생들의 학력을 낮추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공부할 학생은 공부하고 자기의 취미와 적성을 개발할 학생은 개발하는 시스템. 이것을 구현하는 것도 하나의 해결방안이 되지 않을까? 엘리트는 엘리트교육을 받아 사회를 이끌어 가고, 모든 학생들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취직을 하고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사회적 시스템이 돌아가면 될까? 자녀를 1명에서 많아야 2명을 낳는 사회에서 모두를 엘리트를 꿈꾸고, 대학을 진학해야만 사람대접을 받는다고 인식하는 사회에서 그것이 가능할까? 아마 큰 고통을 격은 다음에야 가능하지 않을까싶다.
국립대학을 특수법인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립대학법인의 설립ㆍ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이 연내에 국회에 제출된다. 특수법인으로 전환되면 국립대학들은 이사장 및 이사 선출, 총장 선출 등 인사문제를 비롯해 재정, 행정 등 대학운영 전반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29일 오전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개최하는 '자율선택에 따른 국립대 법인화를 위한 공청회'에서 이런 내용의 특별법안 주요 내용을 공개한다. ◇ 법안 주요 내용 = 대학 이사는 총학장 등 당연직 6명과 산업계 또는 경제계 인사 등 외부인 9명 등 15인 이내로 구성된다. 이사회에서 이사장을 선출해 교육부 장관의 승인을 받는다. 이사회는 정관의 변경, 법인의 예결산ㆍ차입금 및 재산의 취득ㆍ처분과 관리, 대학의 조직 신설ㆍ폐지, 교원 및 직원의 인사와 보수 등 법인 운영의 주요사항을 심의 의결하는 역할을 한다. 또 심의기구인 대학평의원회는 교원, 직원, 학생 등으로 구성하되 운영과 구성은 정관으로 정하도록 했다. 대학법인을 대표하고 대학 운영에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총ㆍ학장은 이사회에서 선출하고 임기 4년에 연임이 가능하다. 법인전환 이후 교직원은 법인 소속으로 고용을 승계하고 정년을 보장하되 법인직원으로의 전환을 원치 않는 공무원은 5년간 공무원 신분을 유지한 뒤 다른 국가기관으로 전출된다. 법인전환 이후에도 기존 직원은 공무원연금을 적용하고 신규 채용되는 교직원은 사립학교교직원 연금을 적용한다. 회계 구조는 법인회계로 일원화해 대차대조표, 손익계산서 등을 공개하도록 하고 법인으로 전환하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대학 소관 국공유재산과 물품을 무상으로 넘겨받는다. 또 교육연구활동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수익사업이 가능하고 수익금은 학교운영에 충당하게 된다. 법인으로 전환한 국립대학에 대해서는 기초학문 분야를 육성하기 위한 재정지원이 이뤄진다. ◇ 국공립대 반발과 입법 전망 = 교육부는 공청회에서 논의된 내용과 대학 및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의견을 모은 뒤 올해 안에 국회에 법안을 제출키로 했다. 원하는 대학에 한해 특수법인으로 전환하도록 한다는 것이 교육부의 기본 방침이다. 아울러 서울대를 비롯해 신설되는 울산대, 인천시립대 등 5개 가량의 대학을 2010년까지 특수법인화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국공립대학들은 법인화 전환이 시기상조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정해룡 회장은 "법인화 자체에 반대하기 때문에 법안의 문제점을 일일이 지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며 "자율을 내세우면서도 20개 이상의 주요 업무 등에 대해 교육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회장은 "정부가 국공립대학을 개혁한다는 명분 아래 국공립대를 법인화할 경우 기초학문의 붕괴, 국립대학 등록금 인상, 교직원의 비공무원화로 대학 구성원간 불안감 조성 등 많은 문제점이 생긴다"며 "고등교육 투자비가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의 절반도 안되는 상황에서 법인화 추진은 고등교육에 관한 국가의 책무성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육부가 유치원 교사(예비교사 포함)도 전문상담교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초중등교육법에 명시된 전문상담교사 자격 기준이 ‘초중등교육법 상 교사 자격 소지자’로 돼 있어 유치원 교사 자격 소지자는 배제돼 왔다. 이 때문에 올 5월부터 2정 자격 소지자를 대상으로 2년간 한시적으로 개설된 전문상담교사 2급 양성과정에도 유치원 2정 소지자는 응시 자격조차 없었다. 당시 교육부는 “유치원에는 전문상담교사 배치계획이 없어 초중등교육법의 전문상담교사 자격기준에서 배제됐다”고만 밝혔다. 이에 유치원 교사들은 끊임없이 제도개선을 요구해 왔다. 한국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와 한국교총은 건의서를 내고 “청소년 비행이 저연령화로 지금은 유아기의 폭력성 등이 점차 문제가 되고 있고 나아가 유아기가 인간 심성의 기틀이 된다는 점에서 전문상담교사 배치가 필요하다”며 “관계 법령을 정비하고 배치기준을 조속히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아직은 추진여부를 말할 단계가 아니다”면서도 “수반되는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이르면 올 정기국회에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26일부터 본격적인 중간고사가 시작됐으니 오늘로써 3일째다. 내일부로 4일간의 2학기 중간고사 일정이 모두 끝나기 때문에 오늘이 막바지 고비인 셈이다. 밤낮으로 시험 공부에만 매달리다보니 아이들은 잠이 부족하여 무척 피곤한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문제를 다 풀자마자 책상에 쓰러져 잠을 자는 아이들이 꽤 많다.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이렇게 안쓰러운데 부모님들 마음은 오죽하랴. 부모의 그런 안쓰러운 마음을 정성스런 사골국으로 대신해도 가슴이 짠한 것은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그저 어서어서 아이들이 생생한 얼굴로 활기찬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는 그런 좋은 시대가 도래하길 고대할 뿐이다.
일본 후쿠오카시 니시구의 한 시립초등학교에서 2003년, 담임인 교사로부터 체벌이나 「피가 섞여 더럽다」 등 차별적인 발언을 반복으로 인하여, 심한 심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해(PTSD)가 되었다고 해, 당시 초등학교 4년의 남자(12살)와 부모가 교사(49살)와 시를 상대로 해 총액 약 5,800 만엔의 손해배상을 요구한 소송의 판결이 27일, 후쿠오카 지방 법원에서 있었다. 노지리재판장은 교사가 폭력을 휘두른 것을 인정, 220만엔을 배상하도록 시에 명했다. 원고측은 교사 개인에게도 배상 책임이 있다고 호소하고 있었지만, 판결은 「공무원이 직무상 위법으로 타인에게 손해를 주었을 때는 공공단체가 배상 책임을 진다」라고 하는 국가배상법에 근거하여 개인 배상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송 이유를 보면 교사는 2003년 5월 12일, 남학생 자택을 가정 방문했을 때, 모친으로부터 남자의 증조부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피가 섞였고 있습니다」 등의 발언을 하였으며, 다음날부터, 남학생에게 10초 이내에 짐을 정리하도록 명령해 할 수 없으면 볼을 강하게 꼬집거나, 귀를 잡아당기는 등 체벌을 하고, 가방 등 학습 용구를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하는 등 괴롭힘을 반복하였다는 것이다. 체벌 이외에도 「외국인의 피가 섞이고 있으므로 피가 더럽다」, 「피가 섞인 인간은 살아갈 자격이 없다. 빨리 죽어라 」 등 차별적인 발언을 반복했다고 한다. 이같은 문제를 조사한 후, 동 시교육위원회는 교사 등 관계자를 불러 조사한 후 일부 체벌이나 차별 발언을 사실이라고 인정하여, 같은 해 8월 교사를 정직 6개월의 징계처분을 하였다. 이처럼 학교 현장에서 체벌 문제가 사회적으로 제기되어 민사 소송에 이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교사의 체벌에 대한 감각이 아직도 무딘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없지 않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가끔 체벌로 인한 소송이 신문에 보도되고 있는바,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체벌에 대한 교사들의 인식 제고가 요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