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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제로 톨러런스(zero tolerance, 무관용 정책)’, 더 큰 범죄를 막기 위해서 ‘학교에서만은 사소한 규칙 위반에도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는 ‘미국식 체벌주의’ 정책이다. 지난 11월 28일자 J일보에 실린 ‘싸움의 기술’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눈길을 끌었다. 교내 폭력과 기물 파손, 교사에 대한 거친 반항, 심지어는 갱단에 가입한 학생 등 ‘실패 예정 인생들의 대기소’였던 학교를 정상화시켜 모범학교로 변화시킨 미국 LA의 한 고등학교 교장 얘기였다. 이 학교가 폭력이 난무하는 ‘문제학교’를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범학교’로 변화시킨 과정은 비록 짧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그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학생들에게 ‘잘못을 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학생들에게 각인시키는 ‘제로 톨러런스’를 적용한 것, 결국 잘못한 정도에 따라 ‘교실에서 쫓아내기’ ‘부모호출’ ‘교장지도’ ‘가정근신 및 정학’ 등 엄격하고 강한 벌을 가하는 등 교내생활에서 ‘죄와 벌’의 상관관계가 확고해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영국의 사례를 보자. 지난 1999년 토니 블레어 총리가 최근 미국식 체벌주의 ‘제로 톨러런스’ 정책으로 성공한 미국 시카고의 한 학교를 방문한 후 학교에서 문제학생을 엄격히 처벌하는 등 ‘영국식 체벌주의’인 ‘문제학생 영구추방 정책’을 입안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교사들이 학교 내에서 비행학생 지도에 엄격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물론 교외 생활에서의 학생 규율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사법경찰에 준하는 지도 단속 권한을 부여하는 ‘新교육개혁안’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도 발 벗고 나섰다. 학교폭력과 집단따돌림 등 학원 범죄로 고심하던 문부성이 의무교육 과정인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미국식 ‘제로 톨러런스’를 도입하기로 했다. 매년 3만 건 이상 터지는 학생 폭력, 교내에서의 마약 복용과 거래, 교사에게 폭력 행사 등 이른바 심각한 ‘교실붕괴’를 뽑기 위해서 정부 차원의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현실은 지금 어떤가. 최근 국회 교육위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학교에서의 비행 정도가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작게는 학업 부적응으로부터 음주․흡연, 폭력, 절도, 성범죄, 교사에게의 반항 등 그 유형이 다양화되고 비행 정도 심각해지는 추세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학생의 인권 존중을 우선하는 사회적 추세에 따라 비행학생에 대한 징계 수위는 ‘훈계’, ‘교내봉사’, ‘사회봉사’ 등 그야말로 ‘솜방망이 처벌’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일부 교원단체에서는 이마저도 과하다며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엄한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솜방망이’ 처벌로는 잘못을 반성하고 교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징계를 받아 학교를 나오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하는 등 교칙을 비웃는 처지가 되었다. 이제 우리 정부도 나설 때다. 심각한 비행으로 한바탕 몸살을 앓고서야 ‘특단의 조치’를 내렸던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의 경험을 교훈삼아야 한다. 필요하면 미국, 일본의 ‘제로 톨러런스’나 영국의 ‘문제학생 영구추방 정책’과 같은 제도를 참고하여 교육공동체 모두가 공감하는 ‘한국식 체벌주의’ 도입을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방관하고 있는 청소년의 일탈행위, 이제 학교에서만은 청소년들에게 ‘잘못을 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심어줌으로써 붕괴되는 교실, 신뢰를 잃어가는 공교육, 약화되는 교권을 바로 세워야 한다. 유리창 한 장이 깨지면 그 유리창 한 장을 갈아 끼우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남아있는 모든 유리창이 더 이상 깨지지 않도록 하는 대책이 더 중요하다. 이른바 ‘깨진 유리창(Broken window)’ 이론이다.
해마다 가을 정기국회가 열릴 즈음이면 정부 각 부처와 행정기관에서는 국회의원 요구 자료 제출에 정신이 없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및 각급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이 시기에는 전 공무원이 국회의원의 요구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학교의 경우 가르치는 일보다 급할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겨우 하루 이틀 시간을 주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단 몇 시간 만에 자료를 제출하라는 경우도 있다. 참여정부 이후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현장을 개혁하려고 몸부림을 하였건만 이것만은 혁신의 대상이 아닌 것 같아 안타깝다. 학교 현장의 혁신 과제 중에는 “수업저해 요인 줄이기”라는 과제도 있다. 그러나 이맘때쯤이면 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수업이야 어찌 됐든 상급기관에서 요구하는 자료를 만들어 대기에 급급하다. 사정이 급하니까 공문으로 요청하기도 하고, 때로는 “긴급”이라는 업무 연락을 하여 재촉하기도 한다. 문제는 해마다 같거나 비슷한 통계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2, 3년 전의 통계 자료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학교 현장에서는 난리가 난다. 케케묵은 공문서철을 뒤져야 하고, 그 해의 업무 담당자를 찾아야만 한다. 이런 큰 소란이 한 달 내내 이어지고 있다. 그것도 해마다 되풀이 되면서 말이다. 또한 이런 자료 요구를 국회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위원들이 요구하고 지방의회의 교육복지위원회에서도 한다. 국회의원이 요구하는 자료와 교육위원, 지방의원들이 요구하는 자료가 비슷하거나 같은 경우도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아주 복잡한 경우도 있다. 그야말로 구미가 까다로워서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현장교사들은 진땀을 흘려야만 한다. 이 때쯤이면 교단 교사들의 기분은 저기압이다. 온갖 일이 짜증이 난다. 학교에서 애들 가르쳐야지, 중간고사 시험문제 출제해야지, 국회의원, 교육위원, 지방의원 요구 자료 만들어야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처지가 되어 버린다. 또한 교육 해당기관은 애매하기 짝이 없는 내용으로 자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많아 학교 선생님들의 전화 등쌀에 견뎌낼 수가 없다. 유권해석(?) 하느라고 진땀을 빼야만 한다. 때로는 그 짜증스런 내용들로 서로 언성을 높여야 하는 경우도 있다.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도와 가야할 교육의 동반자가 국회의원 등의 요구 자료 작성하다가 파트너십이 무너지기도 한다. 이 따위 자료를 요구하는 사람이 누구냐? 또는 그런 것 하나도 막지 못하냐? 한참 동안 이런 식으로 실랑이를 하고 나면 기운이 저절로 빠져 버린다. 그렇지 않아도 현장의 선생님들은 과중한 업무에 지쳐 있다. 해마다 교원 사기 진작을 위한 방안으로 ‘교원업무경감’을 들고 있다. 얼마나 업무가 많으면 해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할까. 그런데도 뚜렷한 개선책이 없다. 이러한 불필요한 업무 개선을 위하여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교육통계 연감”을 제작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현재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에서 “교육통계 연감”같은 자료를 제작 보급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본 것 같기도 하고 안 본 것 같기도 하다. 만약 있다면 이런 자료들은 학교장이나 기관장실의 서가에 꽂혀 있어 금빛으로 찬란하게 반짝거리고만 있을 것이다. 누구도 쳐다보지도 않고 활용하지도 않는다. 서가에 꽂아 놓기 위한 자료라면 이는 예산 낭비일 것이다. 활용의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이 교육통계 연감에는 교육에 관한 모든 실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도록 구안하여야 한다. 그래서 누구라도 이를 통해서 교육현장의 문제를 발견하고, 대안 제시 및 해결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자료들이 데이터베이스로 집적되어 있다면 정책 입안자는 물론, 현장의 행정가들에게 적시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교육위원들이, 지방의회의 교육복지위원회 의원들이 필요한 자료는 이를 통해서 얻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 연감에는 교육에 관한 모든 자료가 집적되어 있어야 한다. 해마다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례를 모아 “교육통계 연감”을 만들어 각 기관에 배포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물론,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를 활용하여 정책도 마련하고 비전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정감사 및 행정감사가 시작되면 교육부에서부터 시작되어 저 산골 학교까지 해마다 난리가 나는데, 이는 구태의연한 것이다. 세상이 많이 변했어도 변화하지 않은 것이 이 풍경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의 정책담당자와 함께 해야 할 국정감사 또는 행정감사가 되어야 한다. 교실 현장의 교사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 교육에 전념하게 해야 한다.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쳐야 할 선생님까지 각종 감사에 동원하여 허둥거리게 해야만 감사의 신바람이 나는 것인가. 차제에 교육부 또는 시도 교육청에게 “교육통계 연감” 제작을 거듭 제안하고 싶다. 국회의원, 교육위원, 지방의회 의원들이 학교를 괴롭히는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교육통계 연감”을 검토하고 분석하여 교육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였으면 한다.
사람을 ‘만물의 영장’ 이라고 하는 까닭은 사람이 두뇌․ 사고․ 언어․ 손재주 등 여러 면에서 다른 동물이 갖지 못한 월등한 능력을 소유함으로서 만물을 지배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까닭의 하나는 사람은 다른 동물에서는 볼 수 없는 일가 친척관계를 이루고 이를 아주 중요하게 유지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이다. 만약에 사람만이 유지하고 있는 이 친척관계를 그 구성원들이 잘 모르거나 망각하고 살아간다면 그래서 정상적인 일가친척의 관계가 허물어져 버린다면 만물의 영장은커녕 다른 동물과 다를 게 없을 것이며 아니 오히려 그 뛰어난 지능으로 다른 동물보다 더욱 타락한 존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의 우리 어린이들이 알고 있는 친척관계에 대한 지식은 어느정도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촌수로는 ‘아저씨’ 인데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야,자’ 하지를 않나, 분명히 자기 조카 항렬(行列)인데도 자기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아줌마’ 로 부르기도 하고 ‘고모’ 를 ‘할머니’ 로 ‘외삼촌’ 을 ‘형’ 으로 부르는 등 친척관계와 그 호칭법을 몰라서 범하는 오류를 자주 접하게 된다. 어린이들이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이를 그때그때 자상하게 지도해야 하는 것은 어른들의 의무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어른들이 이쪽에 무관심하거나 그런 것쯤 모르는 게 뭐 그리 중요하냐 크면 다 알게 될 것인데 공부나 잘하면 되지 하면서 오히려 설명하는 걸 귀찮게 생각하거나, 아니면 어른조차도 복잡한 친척관계 와 그 호칭법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는 현직교사도 예외는 아닌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부끄럽지만 이를 나무랄 수만은 없는 것이 젊은 현직교사도 어릴 때부터 이방면의 교육을 철저히 받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조부모님을 모신 가정이나 특별히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사람 말고는 입시공부에만 전념해온 그들에게 누가 이 분야를 챙겨서 가르쳐 주었을 리 없는 것이다. 이것이 학교교육의 크나큰 맹점이다. 초중고 교육과정 어디에도 이 분야를 중요하게 다룬 곳이 없고 누구하나 관심을 보이는 이가 없으니 말이다. 일차적으로 가정교육에서 이루어져야 마땅한 일이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므로 초․중학교 어느 교과에서든 ‘친인척의 개념’ ‘친인척의 촌수관계’ ‘친인적 상호간의 적절한 호칭’ 등을 체계화하여 한 영역으로서 교육과정에 반영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 범위를 초․중학교의 발달수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지도하도록 하면 된다. 그리하여 기본적으로 민법에서 규정하는 친척(親族/外戚/姻戚) 즉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등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것이다. 필자가 현직에 있을 때 이 문제를 안타까이 여겨 나름대로 간단한 교재를 만들어 담임재량시간 등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지도를 해보았다. 물론 복잡한 단계까지 가지는 않고 기본적인 수준의 지도였지만 그 반응은 꽤 좋은 편으로 나타났다. 아이들은 친척관계에서의 나의 위치와 촌수 그리고 그에 따른 다양한 호칭에 흥미를 보였으며 특히 자기의 일가친척계통에 실제로 존재하는 친척이 있는 사람은 자신과 친척사이의 관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그 호칭에 대해서도 비로소 실감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였다. 요즘엔 대부분 가정이 하나의 자녀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이러다가는 머지않아 사전에서 ‘형제자매’ 란 단어마저 사라질 위기이고 보니 실제로 자기 일가친척이 많지 않고 그와 같은 친척관계나 호칭법을 일상생활에서 접할 기회가 점차 줄어드는 데에도 큰 원인이 있다고 본다. 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어른들 특히 후세를 기르고 가르치는 이들이 이를 자기소관이 아니라고 해서, 교육과정에 없다고 해서, 번거롭다고 해서, 혹은 별로 필요가 없다고 해서 그대로 묵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나가자. 이것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사람이 지키고 유지해나가야 할 가장 중요한 인륜도덕(人倫道德)이기도 하다.
청년 시절에 읽은 청천 김진섭의 수필 한 대목에 나는 공감했다. 일생을 즐겁고 보람 있게 살 수 있다면 만년에 죽는 자리에 누워 있어도 유유한 마음으로 눈을 감을 수 있다고 하면서 사람의 일생을 귀중한 예술품의 완성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래 젊은 시절에 읽은 이 구절이 영 잊어지지 않고 삶의 고비마다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그런데 어떤 노 정치가가 기자와의 대담 중에 정치를 또 예술에 비유하는 것을 보았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모 원로 인사가 시장 직에서 퇴임하며 행정이 예술과 같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평소에 인생은 예술이라는 생각은 줄곧 가지고 있었지만 정치가가 정치는 예술이라고 하고, 서울시장을 했던 분이 행정이 예술과 같다고 했을 때 나는 아주 신선하게 그 말을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교육도 바로 예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시를 읊조려 보기도 했다. 정치도 예술이라고 노정치가가 말했다 인생도 예술이라고 한 수필가가 말했다 성공한 행정가는 또 말 하네 행정도 예술이라고 교육도 예술이다 청소 안하고 그냥 간 영희 반성문을 쓰게 할까 화단 풀 뽑기를 하게 할까 오늘도 지각한 철수 벌 청소를 하루만 시킬까 이틀을 시킬까 영희가 해야 할 일 지가 하도록 철수가 시간을 잘 지키도록 이리저리 궁리하는 선생님은 예술가 교육도 아름다운 예술입니다 우리는 흔히 교육을 백년지대계라 하였다. 백년의 앞을 내다보고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계획하는 일이라는 뜻이겠다. 그렇다면 교육은 무엇이고 예술은 무엇인가. 교육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엔 그 개념이 너무 복잡하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바르게 가르쳐 그 개인에게도 행복한 삶의 터전을 마련하게 하고 국가와 민족에도 이로운 사람을 육성하는 것이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교육학을 논하는 것이 아니니 오늘은 통상적으로 일컫는 교육에 국한하여 생각해보기로 한다. 정치가가 정치는 예술이라고 하고 행정가가 행정은 예술이라고 말하는 데는 나름대로의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분야에서 연륜을 쌓아오면서 직관적으로 얻게 된 깨우침인 것이다. 전문가의 직관엔 깊은 성찰에 버금가는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 마치 오랜 역사를 두고 전래되어온 민간요법이나 생활 속의 속설들이 현대에 와서 그 과학성이 입증되는 예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교육은 예술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조심스럽긴 하지만 경험에서 얻어진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예술엔 문외한이니 예술의 영역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른다. 다만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것, 우리의 인생에 다양성과 역동성을 부여하는 것이란 초보적 상식만으로도 교육은 예술이라는 명제가 타당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한 교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예술적 성과를 지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술처럼 아름답고 조화롭게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이다. 예술처럼 유연하고 다양하게 교육을 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어떻게 학급을 운영하고 수업을 진행해야 예술처럼 아름다운 교육이 되는 것인가. 나는 오랫동안 시를 써온 터이니 시 창작의 예를 들어 나의 생각을 피력해보기로 한다. 나의 지론은 시는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시는 세상을 보다 낫게 바꾸려는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곧 선과도 무관할 수 없다. 시도 예술의 한 갈래이니 예술은 곧 진실하고 사랑과 선이 내포되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즉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엔 반드시 진과 선의 기본골격이 있어야 한다. 이로써 예술의 개념이 명확해졌고 교육이 나아가야할 방향도 설정된 셈이다. 곧 교육은 진선미의 추구하여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엔 방법상의 문제가 진지하게 대두될 것이다. 방법상의 문제는 학문적으로는 교육공학일 것이지만 현장교사에겐 이론보다 더욱 절실한 문제가 따로 있다. 인류의 행복과 세상의 평화의 증진에 이바지할 사람을 배출하기 위해 현장교사가 힘써야 할 일이 자명해진다. 각 교사는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럴 때 수십만 명의 교육자가 펼치는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대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국민을 감동시키고 미래가 보장되는 대향연이 될 것이다. 나는 28년째 교편을 잡고 있다. 시골학교에도 있었고 도회지 학교에도 있었다. 남학교에도 있었고 여학교에도 있었다. 실업계 학교, 인문계 학교, 또 사립학교, 공립학교에 두루 근무하였다. 다양한 교육현장에서 교육활동을 해온 셈이다. 사반세기가 넘게 교육계 동향을 몸소 겪어 오는 동안 이제 어렴풋이 교육에 대한 안목을 갖게 된 듯도 하다. 어떤 면에서 발전 했으며 어떤 면이 과거의 관행이나 폐습을 답습하고 있는지 상식적인 선의 안목을 갖게 된 것도 같다. 철필로 줄판을 긁어 일일이 수작업으로 등사를 하고 채점을 하고 통계를 냈던 시절에 비해 지금은 컴퓨터의 도움으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발전을 이룩한 것이 사실이다. 또 학급당 학생 수가 줄어들고 교사들의 신분보장이 상당히 향상된 것도 사실이다. 보수체계가 다소 개선된 측면도 있다. 그러나 과연 바람직한 방향으로 교육이 발전하고 있느냐 하는 데는 동의 할 수 없다. 바로 이 점이 교육이 풀어야 할 과제다. 교육이 예술이 되기 위한 당면과제고 시대의 요청이다. 대안교육이 모색되고 특성화 학교의 필요성이 날로 증대되는 이 시점이 바로 교육에 예술적 접근이 절실히 요청되는 때임을 깨닫게 된다. 엄청난 사교육비가 들어가는 지금의 교육은 전혀 예술적이지 못하다. 그것은 지나친 욕심이며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이기심의 발로이며 맹목적인 교육열이다. 과욕과 경쟁심과 이기주의가 진선미를 추구하는 예술이 될 수는 없다. 교육이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절제와 여백이 있어야 한다.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깊이와 폭이 있어야한다. 지나치게 경직돼 있어도 안 되고 자율성과 유연성이 가미되어야 한다. 자율성과 유연성이 모든 생명력의 고양을 가져오고 바로 예술성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교육의 열풍, 일류 대학을 향한 총 진군, 평준화로 인한 획일성 모두 교육의 경직성이다. 이런 경직성이 타파되고 교육이 유연하게 작동될 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또 교육의 다양성이 확보되어 개성이 신장될 때 교육은 진정한 발전의 기틀이 마련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교육의 병폐를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예산의 문제이거나 관리능력의 부족이거나 누적된 병폐가 너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개성이 존중되어야 하고 전인교육을 하여야 되고 특기적성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을 다 알면서도 입시에만 총력을 경주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우리는 그 까닭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정되지 않는다. 시정되지 않는 원인까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단시일 내에 시정하기엔 너무 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는 것인지 모른다. 국가적 차원의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장엄한 음악을 연주하려면 반드시 제도의 정비와 조율이 필요하다. 정부와 교육계, 학부모와 학생이 모두 나서서 개인의 행복을 창출하고 국가의 번영을 약속할 새 교육의 틀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정부 주도의 일방적인 개혁도 부작용을 낳고 교원단체의 정당한 주장에도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다 함께 지혜를 모아 산적한 난제들을 슬기롭게 풀어야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발언이 국민들에게 일파만파로 충격을 주고 있다. 미리 알아챈 청와대 참모들까지도 “제발 하지 말아 달라”고 만류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우리 교육계로썬 임기는 고사하고 교육현실과 교육정책의 역주행으로 교육을 황폐화시킨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노 대통령은 ‘나홀로’ 방식으로 자수성가하여 마침내 대통령까지 오른 ‘성공한’ 사람이다. 그래서 임기 내내 교육수장 임명도, 교육정책 추진도 현실을 도외시한 ‘나홀로’ 방식이었다. 현장의 교원, 교육단체, 시민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치논리’, ‘경제논리’에 따라 교육을 정치화·시장화 함으로써 결국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모두 망치는 결과를 가져 왔다. 교육피폐화의 원조 이해찬 씨는 정치인, 한 술 더 떠 대통령과 함께 경제를 망친 장본인 중의 하나인 김진표 씨에 이어 김병준 씨를 교육부총리로 임명하는 ‘깜짝쇼’를 했다가 결국 조기불명예 퇴진하는 코미디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것이 대통령의 교육적․도덕적 ‘눈높이’였다. 결국 정권 내내 교육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와중에 교육개혁은 ‘교육개악’으로 이어졌다. 사교육비 경감과 교육격차 해소를 내세워 대학입시에서 수능을 약화시키고 학생부를 강화했다. 거기다가 내신·수능고사와는 별도로 대학 입학에서 당락의 결정적인 역할을 할 ‘통합논술’을 도입함으로써 사교육비 경감은커녕 대학의 논술 강화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사교육 시장 폭발 사태를 불러왔다. 학교교육력 제고라는 가면을 쓴 채 반교육적 경쟁을 강요하는 교원평가제는 교사를 개혁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보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정책이다. 무자격 교장초빙공모제 강행함으로써 교육부가 앞장서 교육의 전문성을 무시하는가 하면 법원으로부터 학교 시험 문제가 지적소유권 보호 대상으로 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인문계 고교 시험지를 인터넷에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한 것도 문제다. 최근에는 현재 전국 각 시도별로 분리돼 있는 교육위원회와 시도 의회를 하나로 통합하고, 교육현안을 심의하는 교육위원회 위원을 정당명부비례 대표제로 선출하는 법안을 추진함으로써 교육자치와 지방교육을 말살하려고 하고 있다. 이 외에도 교육재정 파탄, 교원임용정책 실패, 특목고 정책 혼란, 현실을 무시한 교원성과급제, 초등학생부터 해외로 내모는 영어과잉정책 등 현 정부의 교육황폐화 정책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지금 공교육은 존재의의마저 부정당하고 있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제 교육계는 물론 국민들은 정부가 뭐라고 하든 믿지 않는 ‘청개구리 심리’가 퍼져가고 있다. 대통령의 오만한 코드정치와 정부의 이상주의적 탁상행정이 가져온 결과다. 제발, IMF 위기로 ‘경제를 망친 대통령’으로 낙인찍힌 김영삼 대통령처럼 노대통령과 참여정부가 ‘교육을 망친 대통령과 정부’로 기억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일본 지방정부가 한국 학생들의 수학여행을 유치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 열도의 중앙에 위치한 야마나시현, 나가노현, 기후현은 지난달 20~25일 한국 교육관계자 9명(고교장 6명, 청소년연맹 1명, 본지기자 1명, 한나라여행사 1명)을 처음으로 초청해 3개 현의 관광, 견학, 체험코스를 소개했다. 각 지방정부 관광진흥부 부․과장 등은 “한국이 미국․대만에 비해 일본에 오는 수학여행 인원이 적다”며 한․일 학생교류 활성화 방안을 물었다. 한국 측 참석자들은 “무엇보다도 경비 문제가 최대의 걸림돌”이라며 “특히 3개 현은 내륙에 있어 한국 학생들이 주로 활용하는 선박을 이용한 수학여행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청소년연맹 관계자는 해외 수학여행 코스로 중국에 비해 일본이 인기가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청소년단체들에 의한 해외여행에 국한해 보더라도 한 해 7000여 명 정도의 초중고생 중 63%가 일본, 37%가 중국을 찾는다”며 “일본은 청결과 질서의식 등 배울 점이 많아 학부모들이 선호한다”고 말했다. 매년 400여 명이 선박을 이용한 일본 수학여행에 참여한다는 서울 염광여고 김혜선 교장은 “항공을 이용한 수학여행은 경비가 과도할 수밖에 없어 현 단계에서 무리”라며 “일본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한 학생들 일부가 참여하는 단기 어학연수 코스는 별도로 운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도 경비 문제 등 이유로 공립학교 보다는 사립학교에서 해외로 수학여행을 보내는 사례가 많다. 다까야마시 관광과의 한 직원은 “올해 다까야마에는 국내외 429개교에서 7만여 명이 수학여행 왔는데 이들 중 한국 학생은 1200명 이었다”며 “보다 활발한 교류를 위해 홈스테이, 유스호스텔 이용 등 비용 절감을 위해 양국의 관계자들 사이에 정보 교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누마 세이지 야마나시현 관광부장은 “창의적 세계인을 육성하기 위해 한․일 학생교류가 활성화되도록 지혜를 모으자”고 말했다. 이번 초청 행사를 통해 한국 교육관계자들은 일본의 수학여행은 관광과 견학 외에 다양한 체험학습 코스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기후현에 있는 항공우주박물관에서의 헬리콥터 운전 체험, 3~4백년전 가옥들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제이기도 한 히다다까야마 추억관 관광 후 전통인형 만들기 체험, 만년설이 덮인 해발 3000m 이상 산들로 둘러 싼 북 알프스와 에도시대의 주막을 재현한 츠마고쥬쿠 관광후 소바 만들기 체험, 스와시 스하꼬 호수 관광 후 사과농가 체험, 일제시대 한국의 도자기 문화와 산림보호를 도운 노리타카와 타쿠미 형제 자료관 견학 후 키프협회에서의 환경교육 체험, 이찌가와 고교 방문 후 후지산 에코투어로 박쥐동굴 주변 지질과 생태체험 등 관광과 견학 후 체험학습이 뒤따라 여운을 진하게 했다. 관광지 마다 수십 종의 다양한 체험상품들이 즐비하고 잘 훈련된 은퇴 노인들이 자원봉사 가이드로 활약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립학교에서는 자판기 탄산음료의 판매를 규제하고 있고, 미국 의사단체에서는 맥도널드, 버거킹 등 미국의 7개 패스트푸드 업체를 대상으로 위험한 발암성 물질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법원에 제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영국은 학교에서 ‘JUNK FOOD 추방을 위한 계획’을 발표한 바 있고, 인도에서는 탄산음료 캔에 ‘어린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경고문 삽입을 위한 법 규정이 정부 차원에서 시행되고 있다. 이 같은 세계적 추세에 우리나라 역시 어린이 비만 3명 중 1명이 성인 비만으로 이어진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고, 특히 비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면서 세계보건기구에서도 비만을 전 세계적인 건강문제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유․초․중․고 전체 학생 수는 832만 3567명으로, 이 숫자는 전체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저출산과 고령화시대를 우려하면서도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 갈 학생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나 정부차원의 대책은 매우 미흡한 수준이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2년마다 학생들의 식생활 종합에 관한 ‘청소년 조사’를 통해 학생들의 건강 실태를 파악하고 개선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매년 학생신체검사 결과를 교육부가 종합하여 키와 신장 등의 신체검사 결과만을 발표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최근 학생․교원․학부모 교육공동체가 앞장서 ‘건강한 몸, 좋은 교육’ 운동을 주창하면서 학생들의 영양섭취 불균형과 각종 성인병을 유발하는 패스트푸드와 탄산음료에 대해 유해 경고문 의무표기를 입법 청원한 것은 입시위주의 교육구조 속에서 소홀히 취급되는 학생건강 문제를 전 국민들의 관심 사항으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불과 1 개월 만에 입법청원에 학생․교원․학부모 50만 6567명이 연명한 것은 2세들을 위해 해야 할 우선적인 책무가 무엇인지를 재삼 강조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난 7일 국회교육위원회에서 교육자치법개정안이 통과되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식상한 정치에 많은 국민이 등을 돌리는 판에 그나마 정치에 물들지 않고 국가의 미래를 걸고 2세 교육에 전념해오면서 교육 자치를 지켜왔는데 이제 교육마저 진흙탕 정치판에 밀어 넣는 꼴이 연출되고 있어 안타깝다. 큰 나라처럼 땅덩이가 커서 인구규모나 지역적 특성을 살리기 위해 주마다 법이 다르고 제도가 다르게 운영하려는 것도 아니고 한 개의 주보다도 작은 나라에서 무엇을 쪼개고 나누어 어쩌자는 것인가? 재정자립도가 낮은 자치단체는 어쩌라는 것인가? 작은 곳 소외된 곳에도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 정치권에서 할 일이 아닐까? 여권의 교육위원 8명 전원이 찬성하였으니 지지도가 더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지방자치가 만병통치처럼 교육을 지자체에 흡수하려는 논리가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통과된 법안을 자세히 드려다 보면 교육의 재정확충 등 외적인 면의 발전만 기대하고 있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며 2세 교육을 잘 할 수 있는 희망보다는 교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정치적 논리에 교육계가 혼란을 가져올 것은 예상도 안 해보고 만든 법안 인 것 같다.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선출하는데 현재 학교운영위원 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는 간선제라서 불법선거 시비에서 자유로운 주민직선제로 한다는 것인데 현재 운영위원들도 막상 선거를 하려면 어떤 후보가 교육위원으로 마땅한 인물인지도 잘 모르고 투표에 참여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주민들이 뽑아야하는 지방자치 선거에는 광역단체장, 광역의원, 기초 단체장, 기초의원을 뽑아야하기 때문에 헷갈리는데다 학부모도 아닌 주민들에게 교육감과 교육위원까지 뽑아달라는 것도 혼란스럽고 무리가 따르지 않겠는가? 광역단체장이 교육까지 장악하고 교육 자치를 말살하려는 이 법안은 시행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 가지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교육감과 교육위원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판에 줄을 서지 않으면 당선이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광역자치의 교육수장이 교육을 잘 모르는 비전문가가 당선된다면 교원들의 존경을 못 받을 것이며 교육이 정치적 영향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혼란이 초래 될 것이라고 본다. 교육수장 한명이 비전문가가 앉으면 요직도 비전문가가 앉게 되어 교육이 전시행정에 치우치고 정치 쪽에 눈치만 보게 될것이므로 교육의 질이 저하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둘째, 지방자치가 되면서 기초단체만해도 10 여개 이상의 축제가 개최되어 공무원들이 축제에 매달려서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고 축제를 치르다가 한해가 가고 있다는데 교육이 지방자치 밑으로 들어가면 수많은 행사에 학생들을 참여시키고 강제동원 등을 피할 수 없을 텐데 교육과정운영이 제대로 되겠는가? 셋째, 경기도나 서울처럼 인구가 집중되고 있어 학생이 계속 늘고 있는 시도는 재정 자립도가 높아 교육여건이 더 좋아지겠지만 그렇지 못한 다른 시도의 경우 교육격차가 더욱 심화되어 자녀교육을 위해서 대도시로 이주를 하는 현상이 지금보다도 더 가속화되어 학생들이 없어서 문을 닫는 학교가 늘어날 것이며 인구의 도시집중을 부추길 것이다. 넷째, 국가공무원인 교원들을 지방직화 하면 신분보장이 안 되어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지 않아 마음 편하게 교육에 전념할 수 없게 되어 교육의 질도 떨어질 것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시도의 경우 보수격차가 크게 날 것이며 교원의 대도시 집중화현상이 나타나면 교육의 균형이 깨지고 황폐화를 가져 올 것이다. 다섯째,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한 헌법 31조에 위배 되고 교육의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교육위원회에서 조례제정권과 예산 최종 의결권도 부여하는 독립형의결기구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 교육계의 반대 이유이다. 법적인 시비는 또 있다. 평균 12만 명을 대표하는 시의원과 평균 120만 명을 대표하는 교육의원이 동일하게 안건을 심의·의결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위배된다고 하니 위헌시비까지 예상된다. 교육이 백년대계라는 것은 숫자의 의미뿐이 아니라 그만큼 신중하게 계획을 수립하고 제도도 바꿔야 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있는 것이다. 가까운 예로 교원의 수급문제도 생각하지 않고 단칼에 3년을 자른 정년단축의 후유증으로 교육의 질이 저하된 것도 큰 잘못이었는데 교육 자치를 말살하고 지방자치의 정치판에 흡수시키려는 것은 어마어마한 잘못 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100년이 지나도 후회보다는 잘 한 일이라는 평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찬성표를 던진 국회교육위원들의 반성을 촉구하며 지금이라도 교육계의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본 회의 통과를 막아야 한다. 언젠가 후회할 일은 사전에 막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3학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몇 일 앞두고 창가에 서서 요즘 학생 지도를 조용히 생각해 보았다. 서울예술대학 노건일 학장이 “전문대학소식”에서 이렇게 언급하였다. 미국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는 최근 “세계 100대 글로벌 대학”을 발표하였는데, 1, 2, 3등이 다 미국대학으로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예일대 순이고, 이들 대학의 공통점은 대학법인의 충분한 재정적 지원과 교수들의 뜨거운 열정과 사명감, 그리고 총장의 강력한 리더십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한 대학이 잘 되는 조건에는 그만한 여건이 갖추어질 때 가능하듯이, 오늘의 학생지도도 각 교사는 학생에 대한 설득과 인내, 기다림과 사랑, 그리고 전문적인 상담기법으로 지도방향이 선행돼야 하고, 학교의 관리자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전체를 이끌어 나가야 하고, 학부모는 교사가 학생들을 잘 지도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과 베품이 있을 때 학교는 웅비할 수 있지 않을까? 학생지도는 설득과 인내, 기다림과 사랑, 그리고 전문 상담기법으로 요즘같이 톡톡 튀는 학생들을 지도하기에는 여러 면으로 생각을 요하게 된다. 단순히 잘못한다고 종아리를 때려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꾸지람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다. 학생을 지도하는 데 있어서는 너무 가깝게 하지도 말아야 하고 너무 멀리 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러면서 잘못을 범했을 때는 엄하게 지도하고, 그리고 나서는 사랑으로써 다독거리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학생에게 물리적인 폭력이 나타날 수 있으나 설득과 인내를 갖고 기다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학생들의 말을 유심히 들어보면 거의 일방적으로 대다수의 학생들은 잘못을 범하고도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는 식의 이야기며, “이런 정도는 해도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고 우겨대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다. 괜히 선생님만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오히려 아우성이다. 선생님이 좋은 이야기로 지도하면 즉시 듣는 학생은 드물다. 그렇다고 고함을 질러대면 그때서야 듣는 척 하면서 돌아서면 비어를 토해내는 학생도 심심찮게 목격하게 된다. 학생을 지도하는 데 필요한 상담기법도 다양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래포가 먼저 형성되어 있어야 말이 서로 통하게 된다. 학생들도 무서운 선생님의 말은 겉으로는 잘 듣는 척 하지만 그 선생님께 상담하러 간다든가 친밀하게 접근하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카리스마가 있는 교사들이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예를 들면, 두발 문제를 두고도 학교마다 지도방법이 다양하다. 가정에서는 자녀가 머리를 장발처럼 해 다니는 데도 부모는 그것이 학교에서 허락되기에 그렇게 하는가 보다고 생각하기 쉽다. 담임이 부모에게 전화 한 통 없이 방치해 버릴 때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각 담임이 학생을 설득시키면서 인내로써 기다리고, 관리자는 단호한 의지로 문제를 해결할 비책을 제시할 때 과도기에 있는 두발 문제도 쉽게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학생상담전문기법은 교사의 필수요건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새로운 저서 “부의 미래”에서 미래 사회는 속도가 좌우한다고 했다. 학교는 사회의 유행에 민감하기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것을 지켜가려는 데 안간힘을 쏟는 편이다. 그러기에 교사를 예전에는 백면서생이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다. 변화를 모르고 달려가는 사회의 흐름에 조화를 맞추는 학습을 하지 않고는 교사도 학교도 도태되고 마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각 교사도 시대의 흐름에 맞는 학생지도방법을 익히지 않고는 학생을 기존의 방식대로 지도해 나가는 데는 한계에 부딪히기 쉽다. 늘 새로운 신서를 보고 생각하여야 하고, 항상 사이버 공간을 찾아다니면서 청소년의 일거일동을 주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 오늘에 사는 교사들의 책무가 아닐까?
"꼴찌만을 보내 주십시오. 그들을 1등으로 만들겠습니다." 수원시 이목동에 자리잡은 계명고등학교 이달순(수원대 명예교수.70) 교장의 자신있는 외침이다. 꼴찌들끼리 모아 놓으면 그 가운데서도 1등이 나온다는 말이다. 반별, 과목별로 1등이 여러명 나오고 계발활동 등 각종 교육활동에서 1등이 나오게 하여 늘 꼴찌만 하던 그들이 '1등의 희열'을 맛봄으로써 용기와 자신감을 갖고 주체적인 삶을 살도록 지도한다는 것이다. 중앙대 20년, 수원대 20년 총 40년의 교수 생활을 마감하고 정년퇴직한 그가 고교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인 계명고 교장으로 새롭게 출발한 그 이유가 궁금하다. "교수 생활 동안은 지식의 전달자에 불과했습니다. 이제 교육자 노릇 제대로 하려고 합니다. 둔재들에게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주고 적성을 계발하고 기능을 기르게 하는 제 이상(理想)을 실천하려 합니다. 높고 큰 것을 생각하지 않고 낮고 좁은 데서 충실한 교육을 하겠습니다." 계명고는 1975년 평촌재건학교에서 출발, 1996년 수원으로 이전하였는데 현재 14학급 574명의 학생이 있다. 이 중 4학급 120명은 배움의 시기를 놓친 20-60대의 성인이다. 3년제 일반과정을 받고 있는 454명은 입시교육에서 탈락한 학생과 기존 학교 교육체제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 교장은 "재학생 중 고교 탈락자, 부적응 학생이 250명 정도 되는데 여기서는 공부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성실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귀띔해 준다. "일반학교에서 인간성보다는 지식과 성적을 원하니 문제아가 된다"는 것이다. "지식보다 사람이 우선인데 여기 학생들은 인간미와 친근감이 넘친다"고 말한다. 작년 8월 부임하여 활동적이고 건강미 넘치는 이 교장을 교장실에서 만났다. △ 계명고는 어떤 학교인가? 앞으로의 사회는 자기 특성과 창의력을 가진 기능 전문직을 원한다.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려면 암기, 입시위주에서 벗어난 교육을 해야 한다. 계명고는 바로 그러한 교육을 하고 있다. 기본 교양을 바탕으로 세상보는 시야를 넓히고 학생 적성에 맞는 교육을 하며 재미있게 공부하는 학교이다. △ 학교의 자랑은? 교육과정이 미래지향적인 것을 실천하고 있다. 창의력을 길러주는 문화예술교육, 2년제 대학 특성학과를 연계시키는 진학지도, 천주교·기독교·불교·유교 등의 종교교육, 각계각층 지도급 인사 초청의 인성·교양교육, 토요일 이루어지는 체육·봉사활동 등이 있다. △ 특색있는 학교 교육과정은? 오전에 정규 과정이, 오후엔 계발활동과 체험실습이 이루어진다. 영어 불어 중국어 일본어 지도를 위해 해당 국가의 문화와 실제 생활을 지도하고 그 나라 언어 교육을 하고 있다. 최소한도 배낭 여행에 지장이 없도록 회화교육을 하고 있다. △ 우리나라 교육, 어떻게 변해야 하나? 현재 우리나라 교육은 망국교육이다. 고교생은 미성년자로 부모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고교 때부터 경쟁으로 내몰아 어느 대학에 입학했느냐가 인생을 좌우하게 하는데 이것이 잘못된 것이다. 대학에서 사회에 진출할 때 경쟁을 붙여야 한다. 미성년자를 싸움시키면 안 된다. 입시 위주의 고교 교육을 해서는 아니 되고 학생의 취미와 특기를 살리는 교육을 해야 한다. △ 교육에 바라는 점은? 교육시스템이 바뀌어 전국의 고교가 계명고처럼 적성을 살리는 교육을 했으면 한다. 우리 학교의 교육과정이 전국에 퍼졌으면 한다.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학원에서 새벽까지 공부하는 공교육 붕괴 현상,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의하면 흔히 ‘리플’로도 불리는 ‘댓글’은 ‘대답하다, 응수하다’를 뜻하는 영어 단어 ‘리플라이(reply)’를 한국어로 옮긴 것이고, 사이버 공간을 통해 회원 또는 불특정 다수의 사용자들 사이에 각종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인터넷 게시판이 활성화되면서 나타난 말이다. 인터넷 게시판의 활성화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본인의 경험이나 일반적인 사회현실에 대해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마음껏 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긍정적이다. 그래서 인터넷 이용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글쓰기인 댓글문화도 활성화되어야 한다. 문제는 댓글문화가 자유로운 토론의 장을 만드는 긍정적인 측면과 비난을 위한 비판의 장이 되는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 반의 두 아이가 쓰는 댓글 때문에 신경을 쓰며 올바른 댓글문화 정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한다. 두 아이는 학교의 얼굴인 홈페이지가 자신들만의 공간인양 마구 댓글을 올린다. 주고받는 댓글의 내용마저 상식 이하의 글이라 볼 때마다 담임의 얼굴이 뜨겁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초등학교 3학년의 철부지 행동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주의를 줘도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며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습관적으로 댓글을 올리다보니 불만을 일삼고, 친구들을 헐뜯거나 허위 사실을 퍼뜨려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댓글이라기보다는 사사건건 상대방을 비판하기 위한 ‘악성 댓글’이었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 몇 번은 욕먹을 것을 감수하면서 혼도 냈다. 욕설을 마구 쓰고, 친구의 실명을 써서 인신공격을 하고, 미담을 꾸며 친한 친구를 칭찬하면 보는 사람들이 짜증스러워 한다는 것도 설명해줬다. 특히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중 문학에 재질이 있는 아이가 더 문제였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돌려 읽던 편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글 속의 주인공들이 모두 우리 반 아이들이었고, 도저히 3학년 아이가 썼다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성적인 내용도 있었다. 공책 두장 분량의 문학가가 제대로 꾸민 한편의 소설이었다. 편지 때문에 아이와 오랜 시간 대화를 했다. 잘못을 뉘우친 아이는 그동안 썼던 댓글 중 남에게 피해를 주는 글은 자신이 삭제하겠다고 약속했다. 문학에 대한 재질을 살리라는 내 얘기를 받아들여 글쓰기도 꾸준히 하기로 했다. 요즘 나는 어릴 때부터 댓글문화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래서 수업시간 틈틈이 인터넷시대를 살아가는 방법과 예절을 가르친다. 아직은 어린 우리 반 아이들이지만 자주 듣다보니 올바른 댓글문화가 무엇인지 조금은 아는 눈치다.
수행평가가 교육현장에 도입된 지가 10년째에 이르고 있다. 수행평가란 학생의 학습결과 뿐만 아니라 학습준비도, 학습과정, 결과까지도 평가하는 새로운 평가체제로 당시에 상당한 기대를 모았던 제도였다. 특히, 지식기반사회에서 학습자는 단지 지식의 수요자가 아닌 지식을 창출하고 고등사고능력 신장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1996년부터 연차적으로 확대된 제도가 수행평가이다. 이러한 수행평가는 학생의 창의력, 문제해결력을 길러주자는 취지로 도입되었으며, 대체로 교육의 정상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안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최근 수행평가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11월 23일 중앙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수행평가의 파행이 가히 심각할 정도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돈 주고 사는 수행평가, 부모의 도움으로 해결하는 수행평가, 인터넷 사이트에서 무단 복제하는 수행평가 등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한다. 학생들의 창의성과 문제해결 능력을 길러 주기는커녕 남에게 의존하여 점수 따기에 급급하고 인터넷 공간에서 무단 복제하여 적당히 때우는 식의 안일한 태도를 조장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남의 글을 버젓이 도용하고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도덕적 불감증’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이는 분명히 문제가 있고, 이것으로 야기되는 비교육적 결과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순수하고 고운 마음으로 성장해야 할 우리 학생들에게 어려서부터 비교육적 행위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생 스스로 해결과정에서 창의성을 발휘하고 스스로 발견하고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에 대한 반성과 대안 마련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캐나다의 교칙에는 "Plagiarism"이라는 벌이 있다고 한다. 이는 "도용, 표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남의 글을 한 문장이라도 출처를 밝히지 않고 쓰면 곧 ”stealing (훔치는) 행위“로 인정하여 일종의 퇴학에 해당하는 벌을 받는 다는 것이다. 특히 ‘Plagiarism(표절) 금지’ 교칙을 위반하면 기록에 남아 있어 대학진학에도 결격사유가 되기도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견주어 보면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과제수행에 있어서 양심과 기본을 중시하는 캐나다의 경우에 비교하여 보면 우리나라의 의식과 수준이 얼마나 낮은가를 보여주고 있다. 수행평가의 과제물에 대하여 보다 정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수행평가는 학생의 창의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보는 데에서 비롯해야 한다. 보기 좋은 이미지로 만들어 내는 그럴 듯한 수행과제에 넋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인터넷 검색 능력을 보고 평가하거나 잘 포장된 자료에 넋을 잃어서도 안 된다. 문제해결과정에 드러난 학생의 창의력, 지식 창조능력 등을 찾아내어 거기에 상응한 평가를 해야 한다. 바쁜 학원수업으로 전문대행업체에게 의뢰하는 수행평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과제보다는 점수 매기기 편한 과제로 처리하는 수행평가, 인터넷 검색 경연대회로 전락해 버린 수행평가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본래 수행평가의 취지에서 어긋나 있다. 학생의 자기 주도적 학습력을 신장하고, 아울러 창의력과 사고력을 신장할 수 있는 좋은 제도가 현장에서 왜곡되어 잘못 시행되고 있다면 이는 큰 문제이다. 차제에 대대적인 검토와 보완이 필요할 것이다. 단 한 줄이라도 학생의 생각과 노력의 흔적이 드러날 수 있도록 바꾸어야 지도하여야 한다. 수행평가는 수업에 참여도를 높이고, 책에서 배울 수 없는 산지식을 익히는 좋은 역할을 하고 있는 한 우리는 수행평가를 포기할 수 없다. 학생 수준에 맞는 과제를 제시하여 학생 스스로 하게 하는 수행평가, 창의력과 문제해결력을 신장할 수 있는 수행과제 제시, 채점 기준의 객관성을 확보하여 공정한 평가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차제에 수행평가의 본래의 목적과 취지에 맞는 제도적 보완책이 강화되어야 한다. 미국과 캐나다의 “Plagiarism”에 해당하는 강력한 지도 방안을 도입해서라도 학생의 도덕적 기준을 높여주고, 아울러 스스로 문제해결과정에서 지식을 창출하고 놀라운 발견의 기쁨을 누리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수능이 끝이 났다. 이 땅의 수많은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이 혼연일체 되어 몇 년간의 사투가 마무리되었다. 먼저 다들 수고하셨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정말로 중간 중간 이런 힘들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의구심을 제기하며 열심히 공부한 아이들에게 너무 대견하고 대단하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런 수능이 끝이 나고 학교 현장의 수많은 아이들은 입시 전략에 골몰하느라 또 한 번의 홍역을 치러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학부모님들과 선생님들도 이런 저런 자료와 대학의 입시 홍보물들을 통해 우리 아이가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대학과 전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시험도 시험이지만, 이제부터가 문제야! 현행 입시제도가 학생들에게 더 넓은 대학과 전공 선택의 기회를 부여한다고 하지만 실상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이 곧잘 제기된다. “학생들의 선택 범위를 넓혀 준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예전보다 재수를 하려고 오는 아이들은 더 늘어난 것 같아.” “현행 입시제도가 분명 우리 아이들에게 더 혼란감만 준 것은 아닌지 이 시점에서 재고해봐야 할 지 모르겠어요.” “예전 학력고사 시절에야 한 번 떨어지면 거의 재수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현행 입시제도는 그런 점에 비추어 볼 때는 분명 아이들의 선택의 폭을 넓혀준 점은 일리가 있는 것 같아.” “문제는 선택의 폭만 넓혀 주었지, 정말 그 선택의 폭이 우리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적성과 능력을 제대로 고려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성이 없었지 않았나 싶어요.” “맞아요. 더 혼란감만 안겨 준 것 같아요. ○○선생님 말씀처럼 날로 재수, 혹은 삼수를 하려고 학교에 찾아오는 아이들은 예전보다 훨씬 늘어난 것 같아요. 뿐만 아니라, 곧잘 대학을 다니다가 전과를 하거나 편입을 하는 경우도 많고요.정작 아이들의 선택권을 더 존중해 주었다는 점에서는 현행 입시제다고 가지고 있는 장점을 분명 인정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실제 그 선택권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의견이었다. 특히 대학들의 자의적인 입시정책이 날로 늘어갈수록 일선 학교 현장의 입시제도는 혼란을 거듭하게 된다는 지적이었다. 수많은 대학들의 입시정책에 맞추어 내야 하는 학교현장의 혼란을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에게 전가된다는 것이다. 선생님 이런 것 저런 것 따질 여유가 없어요! 비단 이런 현상은 우리 선생님들만의 지적은 아니다.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어 혼란을 유발시키고 있다. 특히 수많은 대학의 상술에 넘어가 수 십 군데에 원서를 넣거나 시험을 치고도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당황스러워 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정시를 치른 후에도 자신의 진로와 적성보다는 대학의 입시홍보와 전략에 넘어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선적으로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고려해 소신 있는 지원을 해야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아이들이 우선 합격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의 소신을 접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 시험 잘 봤나?” “예, 선생님 그런대로 잘 봤어요. 근데 선생님 어디에 지원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예전부터 네가 가려고 하는 대학과 전공이 있었잖아.”“근데 선생님 자꾸만 gpt갈려요. 많은 아이들이 합격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하도 많은 곳을 지원하려고 생각하는 통에, 저도 자꾸 마음이 흔들려요. 다른 곳이 더 좋아 보이기도 하고…” 아이는 수능을 치르고 나서 마음이 꽤나 흔들리는 모양이었다. 이런 저런 대학들의 홍보와 상술에 자신의 소신과 신념이 흔들리고 거기에 따라 소신지원도 마음에서 멀어져 가는 듯 보였다. 물론 이 아이만의 상황은 아니었다. 대다수의 많은 아이들이 대학들의 입시전략에 혼란스러워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단지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는 점에서는 일리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작 그 선택이 자신의 적성과 소질에 따른 합리적인 선택인지는 의문스러울 뿐이다. 아이들의 선택의 폭보다는 시간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현행 대학입시제도는 너무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처리해야 하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이 조급함은 모두 우리 아이들이 정작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진중하게 고민할 수 있는 여유를 빼앗아간다. 특히 대학들의 입시홍보와 전략은 여기에 더해 우리 아이들의 선택의지를 오히려 꺾어 놓기도 한다. 짧은 시간 안에 무수하게 쏟아지는 입시 홍수 속에서 정작 우리 아이들이 자신에 대해 돌아볼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가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런 홍수 속에 자신을 잃어가기 십상이다. 이제 수능이 끝났다. 많은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정작 그런 아이들의 소신에 우리 교육현실이 과연 합리적으로 대응하고 있는지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돌아 볼 때다. 몇 년을 입시에 지쳐버린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의 얄팍한 입시 상술과 전략에 다시 한 번 상처 입는 그런 상황은 벌어지고 있지 않은지 다들 한 번 중지를 모아봐야 할 시점이다.
흔히 쓰는 말로 재물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 세상 어느 것보다 소중한 것이 건강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오랜 세월 2세 교육에 헌신해 온 교원들 중에는 건강을 미처 돌보지 못하고 일에만 열중하다가 건강을 잃고 일찍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일을 주변에서 많이 보아왔고 최근에도 부음의 소식을 들을 때면 교원의 건강을 위한 정부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교원의 사망원인을 살펴보면 각종 암이 가장 많은 것 같다. 암은 생활습관에서 온다고 하지만 직장에서 또는 교단에서 예전보다 가르치기 힘들어진 아이들 지도문제, 늘어만 가는 직장의 격무, 교직원간의 원만하지 못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주범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직장의 일을 처리한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대입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고교선생님들! 장학이라는 고유 업무보다 각종 평가, 감사준비로 자정이 넘어 퇴근하고 아침 일찍 출근하는 교육전문직, 각종행사로 휴일을 제대로 쉬어보지 못하는 교육감, 교육장님, 폭주하는 업무로 야근을 밥 먹듯 하는 교육행정직, 각종 연구학교업무를 추진하는 선생님들, 주어진 업무에 중압감에 눌려 스트레스는 쌓여만 가는데 이것을 풀 수 있는 시간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다고 하니 건강관리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건강을 돌보지 못하여 병이 생기는 것도 모르고 일만하다가 치료시기를 놓쳐서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만 남기고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교원이 건강하지 못하면 올바른 교육을 할 수 없다. 교원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몇 가지 소견을 피력해 보고자 한다. 첫째, 학교와 교육청이 즐거운 곳이 되도록 모든 구성원이 노력하여야겠다. 우선 만나면 밝은 미소로 정이 넘치는 인사를 나누자, 직장에 출근하여 인사도 없이 자기방(교실)로 가서 얼굴을 맞대지 않으려는 풍조는 직장의 분위기가 좋을 수가 없다. 웃음꽃이 피는 직장이 되어야 근무의욕이 생기는 법이다. 편리한 NEIS와 전자결재의 도입으로 직장 내의 인간관계는 더 삭막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인사는 윗사람이 앉아서 받는 것이라는 생각도 바뀌어야하고 먼저 보는 쪽에서 밝은 미소를 나누는 서양의 아름다운 풍습을 본받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들째, 직장에서 체력관리를 할 수 있는 시설도 늘리고 전 직원이 모여서 함께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직장체육을 활성화 하였으면 한다. 직원체육으로 많이 하는 배구도 좋고 배드민턴, 탁구, 테니스, 퇴근 후에 할 수 있는 등산, 볼링, 당구, 골프연습, 수영, 헬스 등 직장동료가 함께 직원체육을 하는 기회를 주1~2회 정도는 마련하여 건강과 친목을 다지는 기회를 마련하도록 예산을 지원하여 교직원의 건강관리에 사용하여 직장체육을 활성화 하는 방안도 좋을 것 같다. 셋째, 교원의 업무경감정책을 펴고 있지만 기존의 일중에 버리는 것은 적고 새로운 일들을 많이 만들어 내기 때문에 일의 양이 증가하여 격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각종 감사 요구자료, 평가요구자료, 각종 통계 보고 등 업무량을 조정하여 교육에 꼭 필요한 일만 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이 부가 되고 행정이 주가 되는 것 같다는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행정도 중요하지만 교육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일들은 지양하는 것도 교직원들의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넷째, 근무시간을 정확히 지키며 일 할 수 있는 직장 풍토조성이 필요하다. 교육력 제고에 도움을 안주는 일에 에너지를 소비하면 건강을 지킬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일할 때 열심히 일하고 휴식이나 여가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삶의 질을 지켜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개인생활을 할 수 있고 가정도 돌보고 가족관계도 좋아질 것이며 취미생활도 할 수 있어 다음날 일의 능률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더 효율적알 것이다. 일주일의 시작은 휴일인 일요일부터라는 의미를 생각해 보자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일을 하면 국가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공무원의 건강관리를 잘하는 것은 곧 국가가 건강해 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지 말고 직장이 즐거우면 일의 능률이 오르고 직장의 구성원인 교원이 건강하면 우리교육의 질도 향상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2세 교육에 종사하는 모든 교육가족이 건강을 지키며 근무할 때 우리교육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시골출신이다. 시골 중에서 아주 시골인 인삼으로 유명한 충남 금산의 칠백의총 근처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가기 위해 산을 넘어서 1시간가량을 걸어 다녔다. 중․고등학교는 읍내로 아침 6시 30분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하였고, 대학교만 대전에서 다녔다. 집안 형제 4남 1녀 중 대학을 나온 사람은 맏이와 막내인 필자 두 명 뿐이다. 그래도 자녀들 모두가 공무원이 되어서 시골에서는 남부럽지 않은 집안 소리를 듣고 있다. 필자 부모님은 일흔을 넘기셨는데 워낙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라 초등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셨고, 아버지만 나뭇짐 값으로 겨우 천자문과 한글을 깨치셨다. 아버지의 배우고 싶은 열망을 무지했었던 村老가 처마 밑에 숨겨놓은 책을 찾아내어 불살랐다고 하셨는데 그 기분을 어이 설명하랴. 시골집에 가면 마을 어르신들이 가끔 말씀하신다. “무지렁이 부모 밑에서 저런 자식들이 나왔으니 개천에서 용난겨. 니덜 엄니아버지는 좋것다.” 도시사람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비웃을 것이다. 무슨 사법시험 합격한 것도 아닌데 기껏해야 7급 공무원 나부랭이 되었다고 용이라니. 경기가 어려운 시절이니 기껏해야 미꾸라지라면 모를까. 개인사를 글머리에 너스레 떨며 장황하게 한 이유는 다름 아닌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의 의미를 재해석해 보고자 함이다. 흔히 어렵고 힘든 집안에서 자수성가하여 대성한 입지전적인 사람들의 성공을 빗대어 하는 말이 과연 옳은 것인가? 가끔 매스컴에서는 이러한 말을 되뇌며, 열심히 하면 모두가 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한 말이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능력껏 노력하고, 도전한 사람에게 안 되는 일은 없을 터이니. 그리고 여기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닌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과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자 함인데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하지만 이러한 배경에 숨겨져 있는 가진 자들의 무서운 허구화된 논리를 파헤쳐보자. 이러한 것은 멀리 찾을 필요도 없다. 이제 몇 달만 있으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될 테니. ‘의지의 000씨, 사법시험 합격(서울대 합격). 부모도 없는 학생가장.’ 이런 제목으로 인간극장을 능가하는 인생드라마가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노력하여 거둔 성과물을 폄훼하고 싶지는 않다.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낸 소수 그들의 성과물은 정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화려한 수식어 뒤에 숨겨진 것은 없을까? 한겨레신문 기사(2006.11.3.)에 따르면, 서울대학교 신입생의 부모 직업을 보면 위 내용이 더 분명해 진다. 특히, 올 신입생 10명중 4명의 아버지 직업은 '전문·관리직'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전문․관리직은 의사·법조인 등 전문직이거나 기업체 고위 간부 등을 말한다. 더불어 아버지의 학력이 대졸 이상인 학생 비율은 최근 4년 새 4.8%포인트 증가했고, '과외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학생은 1991년 28.3%에서 올해에는 72.8%로 늘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고소득 직종이라 할 수 있는 전문직과 관리직을 합한 비율이 1991년 22.7%에서 1995년에는 25.6%로 늘었다. 1996∼2001년 사이에는 전문직·관리직 비율이 49.6%(96년)에서 52.8%(01년)로 높아졌고, 2002년에는 38.7%, 올해 신입생 조사에서는 40.7%로 높아졌다. 대도시 출신 학생 비율은 91년 65.5%에서 올해에는 74.4%로 늘어난 반면, 읍·면지역 학생 비율은 1991년에 9.6%였으나 올해에는 6%로 낮아졌다. 이러한 사례는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미국의 대학능력평가시험(SAT)을 주관하는 칼리지보드(College Board)가 최근 공개한 2006년 SAT성적보고서를 보면 소득이 높은 가정일수록 SAT점수가 높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연간소득이 1만 달러 올라갈 때마다 영어와 수학 점수가 각각 13.3, 11.8점씩이나 높게 나왔다. 가까운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요미우리신문 최근 조사에 의하면, 일본국민 75%가 '부모소득이 자녀 학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물론 위 서울대 합격생중 읍․면지역 9.6%와 대도시 74.4% 속에는 우리가 말하는 개천의 용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뭄속의 밭에 나는 콩처럼 그 경우는 매우 적다. 그 어려운 서울대나 고등고시 합격을 위해 수많은 경쟁을 또 뚫었으니 이 얼마나 희박한 경우인가. 문제는 이렇게 지역과 계급의 격차로 인하여 가지지 못한 사람이 성공하기 힘든 원천이 개인의 능력인 후천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부모의 경제적 여력인 선천적인 것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가진 사회․경제적 富로 인하여 후손인 자식에게도 그것이 대물림되고, 반대의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올바르고 합법적인 방법에 의한 부의 축적은 잘못이 아니므로 권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100미터 경기를 함에 있어 똑같이 출발선상에서 시작해야만 승부가 공평하고, 진 사람들도 그 승패에 승복하지 않을까? 이른바 사회적 불평등의 본류는 바로 교육기회의 불평등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일부 소수의 특출한 사람들은 이런 어려움을 모두 뚫고 사회적 지도층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호롱불 밑에서 콧구멍 새까맣도록 공부해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는 이제 머나먼 호랑이 담배 먹던 옛날 얘기임은 모두들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바라보자. 저소득층 아동들은 학교 정규교육 외에 받는 사교육이 거의 없고, 고액의 사교육을 받는 아동들에 비해 학업 성취력이 저하되기 마련이다. 또 비싼 입학금과 수업료로 명문학교에 입학하기 어려우며(설사 진학한다 하더라도 비싼 학비를 대기가 어렵다.), 종사하는 직업도 전문직과는 거리가 멀게 된다. 이러한 현실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간에 경제력이 학벌, 나아가 사회적 지위와 등치되게 되면 그 사회는 양극화로 인한 격차가 더욱 커지게 되고 이로 인한 갈등 요인은 더욱 증폭돼 나타나기 마련이다. 정부차원에서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교육보호 급여는 입학금 및 수업료 지원에만 국한되어 있다. 그 외에 소요되는 학비 지원과 함께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해 절실히 필요한 교육 성취 프로그램과 건전한 성장을 위한 환경조성에는 손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민간단체의 손을 빌어 생색내기 예산지원을 하고 있는 정도일 뿐이다. 저소득층 자녀들이 빈곤의 세습을 끊고 더 나은 미래의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 전체의 공동의 노력이 우선 필요하다. 적어도 본인이 싫다고 한다면 모를까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선상에서 출발할 수 있는 교육기회의 평등은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앞서 말한 이유로 나는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을 싫어한다.
일본에서 이지메(집단괴롭힘)로 인한 학생들의 자살이 늘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이지메를 방치한 교사를 징계처분하고 학교에 실태 보고를 의무화하는 등의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자문기관인 교육재생회의는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7개항의 '이지메에 관한 긴급 제언'의 최종안을 마련, 29일 발표했다. 구체적인 대응책으로는 ▲교육위원회가 이지메를 방치 또는 조장한 교사를 징계처분하고 ▲이지메의 실태를 숨김없이 보호자 등에 보고하며 ▲학교에서 팀으로 이지메 대응 체제를 구축하는 것 등이다. 또한 제언은 이지메를 '반사회적 행위'로 규정하고 "보고도 못본 척하는 학생도 가해자로 지도한다"고 명시하는 한편 피해 학생이 학교에서 고립되지않도록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에 힘쓰고 이지메를 이유로 타교 전학도 가능하도록 했다. 교육 당국은 이와 함께 이지메 가해학생의 학교 출석을 중단시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일본 학교교육법은 학생의 성(性)관련 불량 행위 등 교육을 방해하는 행위가 발각될 경우 기초 지자체 교육위원회가 학부모에게 해당 학생의 출석 중단을 명령하는 것이 가능토록 돼 있다. 그러나 이지메를 이유로 출석 중단을 취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난 11월 20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작은 도시 엠스데텐의 어느 고등학교(레알슐레)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이 독일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이와 더불어 폭력 컴퓨터게임 금지에 대한 찬반 논란에 다시 불붙었다. 무작위 총탄 발사로 30여명에게 부상을 입히고 그 자리에서 자살한 18세의 세바스티안 B는 ‘카운트스트라이크’ 게임을 즐겨했던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학생은 두 번의 낙제로 2년 동안 학교를 더 다니고 있었으며,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범행에 사용된 총기는 인터넷주문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더욱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또한 지난 2002년 에어푸르트에서 16명의 목숨을 앗아간 학교 총기난사 참사의 범행 학생도 에고-슈터 게임으로 사격 연습을 했다는 사실도 ‘폭력 컴퓨터 게임이 살인자를 양산한다.’라는 명제를 설득력 있게 하는 데 한 몫하고 있다. 이와 함께 독일의 언론과 정치계에서는 청소년보호를 위한 컴퓨터게임 금지를 호소하며 청소년들의 컴퓨터 중독현상의 심각성에 경종을 울리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컴퓨터 중독에 관한 연구조사결과에 따르면 14세에서 19세 사이의 독일 청소년 16%가 컴퓨터 중독의 위험에 놓여 있다고 한다. 또 독일 청소년의 3.5%는 일주일에 35시간 이상을 컴퓨터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그밖에도 자신의 방에 컴퓨터가 있는 청소년들의 학업성적은 컴퓨터가 자신의 방에 없는 학생에 비해 저조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독일 정치계는 폭력 컴퓨터게임 금지를 가속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1년 전 흑․적 연정정권의 출범당시 연정계약서에 폭력컴퓨터 게임을 금지할 것에 합의 서명을 했으나, 살인게임의 규정이 확실치 않아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은 상태다. 특히 보수당인 기민-기사 연합의 정치인들이 폭력 컴퓨터게임 금지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니더작센 주의 내무부장관 우베 쉬네만(기민련)은 연방참의원의 발의로 킬러컴퓨터게임 금지를 추진하려고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쉬네만은 폭력 컴퓨터 게임 생산과 유포금지를 이루려 하고 있다. 그는 컴퓨터 게임소프트웨어의 생산은 대부분 외국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생산 금지는 별 효력을 보이지 못할 것으로 보이지만 유포금지로 “중요한 첫걸음을 이룰 것”이라고 확신했다. 물론 독일에도 컴퓨터 게임 심의위원회(USK)가 있긴 하다. 그러나 이들의 심의기준이 게임생산업체에 더 우호적이진 않은지, 이들 심의기준의 공정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쉬네만은 컴퓨터 심의위원회가 공정한 심의 과정을 거쳤는지 범죄연구소에 의뢰해 조사할 방침이다. 범죄연구소장 크리스티안 파이퍼는 “헌법 1조에 따른 인간 존엄성의 원칙을 저촉하는 게임들이 시중에 돌고 있다”며 심의위원회의 심의기준에 의문을 표했다. 그러나 심의위원회 측은 “독일은 세계의 민주법치국가 중에 가장 현실성 있는 청소년보호법이 있는 나라다”고 밝히며 “우리에게 하자가 있으면 검찰에 고발하면 될 것”이라고 대응했다. 한편 기민련 원내 부총무 보스바흐는 “우리는 더 효과적인 청소년 매체보호가 필요하지, 인간 심성을 거칠게 만드는 카운터스트라이크와 같은 컴퓨터 킬러게임은 필요치 않다.”며 청소년 보호법 강화를 호소했다. 브란덴부르크 주 내무부 장관 요르크 쉬엔봄(기민련)도 “킬러 게임은 청소년들의 공격적 태도를 유도하므로 폭력을 미화하는 컴퓨터 게임에 단호히 대처해야한다.”고 밝혔다. 바이에른주 총리 에드문트 슈토이버는 “이런 종류의 게임들은 생명을 경시하게 한다”며 킬러게임 금지를 강력히 지지했다. 한편 이러한 게임 유통 금지에 대해 회의적 입장을 보이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녹색당 측은 “기민련의 컴퓨터 게임금지 주장은 교육정책과 청소년정책의 실패를 가리기 위한 방책에 불과”하다며 비판하고 있다. 또 만하임 대학 ‘미디어와 의사소통학 연구소’ 소장 앙겔라 케플러는 컴퓨터 게임의 금지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본다. 어차피 청소년들은 인터넷을 통해 어떻게 게임을 할 수 있을지의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더 시급한 것은 인터넷 감시로 폭력 게임의 근본적인 추방이라고 지적한다. 또 카운터스트라이크 커뮤니티의 일원인 한 청소년은 “이번 총기난사사건의 원인을 컴퓨터 게임에 둘 수 없다”며, 오히려 사건의 핵심은 범행을 저지른 학생의 사회적 편입과 지역 네트워크에 있다고 밝혔다. 심리학자 크리스티안 루트케는 텔레비전 방송에서 “총기 난사 범행자는 자신의 내적 환상과 경험세계와 들어맞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게임을 찾는 것이지, 게임 자체가 위험한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독일 수사관연합은 “이번 논란이 정치적 가상논란이 될 것을 우려한다”며 “정치인들의 요구는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거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보다는 이번 사건의 철저한 원인 규명이 더욱 시급하다”고 입장을 나타냈다.
어떻게 하면 학교 현장에서 집단 괴롭힘을 없앨것인가하는 것은 일본 교육이 풀어야 할 중대한 과제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집단 괴롭힘」을 당한 아이들 3명 가운데 한명은 누구에게도 이 같은 사실을 상담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현실로 밝혀졌다. 집단 괴롭힘이 원인이 된 작년 1년간 발생한 사건을 경찰청이 분석한 결과, 피해를 당하면서도 혼자 괴로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러한 아이의 비율은 해마다 증가해 올해는 2001년의 약 5배에 이른다. 경찰청은 인터넷이나 포스터로, 각 도도부현 경찰이 마련하고 있는 상담 창구의 적극적인 이용을 호소하고 있다. 동청에 의하면 상해나 폭행 등, 집단 괴롭힘에 의한 사건은 2002년 94건이었으나 매년 증가하여 작년도는 165건이 되었다. 과거 10년간 볼 때, 2000년의 170건에 이어 2번째 많은 수치이다. 검거·보도된 326명의 학생별 수로는 중학생 240명, 고교생 63명, 초등학생 23명 순이었다. 피해를 당한 203명에게 상담 상대(복수회답)가 누구인가에 대해 물은 바, 보호자에게 상담한 것은 41%로 01년의 65%의 약 3분의 2 수준으로 감소하였다. 한편, 누구에게도 상담하지 않았던 것은 35%로 01년의 7%보다 급증했다. 교사는 31%이다. 친밀한 사람을 상담 상대로 선택한 아이의 비율이 주춤하는 한편, 경찰 등 제삼자의 상담 기관에 상담한 것이 13%로 01년의 6%로부터 4년간에 2배 증가했다. 또, 가해 아동·학생에게 집단 괴롭힘의 동기(복수회답)를 물었는데, 「힘이 약하기 때문에, 무저항이니까」가 27.3%로 가장 많았으며, 「좋은 아이인 체하기 때문에, 건방지기 때문에」가 27.0% 순이었다.「거짓말을 잘 한다」,「동작이 둔하다」가 각각 11,7%와 11.3%순 이었다. 이러한 결과를 볼 때 마치 동물의 세계처럼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구조 속에서 집단 괴롭힘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개선책으로는 가정과 학교, 사회가 강자와 약자가 서로 도우면 살아갈 수 있는 생각이 절실하나 세상은 더욱 강자만 살아남는 정글의 세상으로 변하고 있어 이 문제는 그렇게 쉽게 해결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최소한도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서는 개인 스스로의 힘을 기르는 길 밖에 없다니 약자가 살아가기 힘든 세상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최근 논술이 항간에 떠도는 빅뉴스로 자리잡고 있다. 논술이 서울에 소재한 몇몇 대학에서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전체 대학의 몇 퍼센트를 차지할까? 사실 지금 각 대학에서는 우수한 인재를 길러 낼 생각보다는 고등학생들을 더 공부시켜서 우수한 인재를 만들어야 한다는 선입감을 내 비추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 대학에 입학하는 데 논술이 중요하게 취급되어 우수한 인재를 선별하겠다는 취지는 오히려 사교육을 더욱 부채질하여 공교육을 무산시키겠다는 의도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논술 강조는 대학 교육에서 더욱 강화를 기존의 고등학교에서 논술을 가르칠 수 있는 체제가 갖추어져 있지도 않고 또 그렇게 할 교육과정도 아니다. 소위 명문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논술을 하여야 한다는 취지는 곧 대학 교육의 허실을 고등학교에 떠맡기는 꼴만 된다. 대학에서는 얼마든지 논술을 강조할 수 있다. 대학에서는 기본적인 논술을 강의하기에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논술의 기초를 다지지 못하는 학생부터 학점을 받을 수 없는 바른 지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고등학교에서 백번 논술을 강조하면 무엇하나 전국 대학의 30%에 미치지 못하는 대학에서만 논술을 강조할 뿐 그 외 대학은 논술 시험을 보지도 않고 아예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편파적인 맞춤식 교육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일선 고등학교에서는 학생과 선생님만이 곤욕을 치룰 뿐이다. 학생은 학원으로 치닫고 교사는 논술에 대한 개별지도를 하기에 교사 간에 서로 떠넘기는 보이지 않는 양상이 도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통합 논술이라는 것도 어느 한 교사가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다양한 교사가 자신이 맡은 전공 분야만 강의를 하다 보니 학생의 입장에서는 논술에 대한 체계적인 강의를 받을 수 없어 오히려 혼란스러워 할 뿐이다. 어디에다가 강의의 초점을 두어야 할 지. 어떻게 논술을 대비시켜야 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각 학교는 학교대로 대책을 세우는데 어려움이 있고, 학생은 학생대로 학교에 대한 신뢰성을 잃고 학원으로 달려가는 아이러니를 창도하고 있는 상황만 만들고 있다. 논술을 강조하려는 대학의 본모습은 어디에 있을까? 왜 고등학교에서 논술 교육을 강조하고 있을까? 대학수능시험을 문제은행식으로 전환하여 사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바로 잡아갈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시점에서 일부 대학은 오히려 사교육 시장을 확대시켜 고등학교에 더욱 짊을 떠맡기는 것은. 다시 말해서 대학 당국이 교육에 박차를 가해 대학생들이 고등학생 절반만큼이라도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논술시험은 대학교육의 질보다 사교육을 조장한다 논술이 사교육을 더욱 조장하게 된다는 것에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논술이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오랜 세월을 두고 글을 쓴다고 하여 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월등하게 바뀌는 것도 아니다. 글이란 자신의 얼굴이요, 체험이요, 지식의 그림자다. 그러기에 대학에서 논술을 강조해서 우수한 고등학생을 배출시켜 나가기보다는 대학에서 글을 제대로 쓸 수 없는 학생들을 바로잡지 않고 이것을 고등학교로 밀어붙이려는 교수들의 무사안일주의 자세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진정 논술을 통해 학생을 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현실적인 구조가 바른 지. 아니면 문제은행식 문항을 만들어 대수능을 자격시험 형태로 만들어 놓고, 학생이 대학을 선택해서 입학하되 대학에서 혹독하게 공부를 하여야만 학생다운 학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 바른 지. 현 시점에서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은 아닌가.
어제 7교시째인 오후 4시 10분부터 학생회 간부 및 각반 반장, 부반장 51명과 학생부장, 담당선생님이 참석한 가운데 음악실에서 학생회 회의를 열었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학생회 회의를 할 시간이 잘 없습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빡빡한 일정이 짜여 있어 시간을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학교는 두 달에 한 번 꼴로 학생회를 개최합니다. 어제도 CA시간을 이용해서 학생회를 연 것입니다. 이 학생회를 통해서 학생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습니다. 저는 회의 결과를 언제나 꼼꼼히 챙겨 봅니다. 특히 학생들의 건의사항을 예사로이 보지 않습니다. 그들의 건의사항을 보고서 들어줄 만한 것은 즉각 들어주도록 합니다. 아니다 싶은 것은 각 부서를 통해 학생들에게 이해를 시키기도 합니다. 어제 회의 결과를 보고서 마음에 기쁨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학교 매점에서 컵라면을 팔지 말자는 안이 채택되어 결의되었기 때문입니다. 환경부장 선생님께서 평소에 컵라면의 유해성에 대한 것을 알고 학생들에게 학교 매점에서 컵라면을 팔지 않도록 부장회의 때 건의해 왔습니다만 학생들이 학생회를 통해 자율적으로 결의하도록 미뤄왔습니다. 그래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컵라면을 먹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학생들의 반발과 학생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환경부장 선생님께서는 학생회의에 참가해서 학교 매점에서 컵라면을 팔지 않도록 하면 좋겠다는 안을 제안하고 그것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다고 합니다. 컵라면을 먹어서는 안 되는 이유 즉 컵라면의 유해성을 설명했다고 합니다. 컵라면은 영양 불균형을 가져오고, 미네랄을 녹여 뼈를 약하게 만들고, 비만을 부르고, 식품첨가물의 위해성을 설명하고 환경호르몬의 문제를 지적했다고 합니다. 용기의 문제와 환경호르몬은 기름에 쉽게 녹아나오는데 라면은 면자체를 기름에 튀긴 음식이기 때문에 더욱 많은 환경호르몬이 녹아나올 수 있다고 설명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학생회 간부들은 진지한 토론을 거쳐 표결결과 51명 중 29 대 15(기권5명)로 컵라면을 학교매점에서 팔지 않도록 결정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학생들의 건강도 지킬 수 있겠구나, 학교 안팎이 깨끗해지겠구나, 학교식당에서 식사를 제대로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아침 교장선생님께 말씀 드렸더니 저와 동감이었고 역시 기쁘게 여겼습니다. 저도 평소에 컵라면을 학교 매점에서 팔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강제로 밀어붙이지는 안 했습니다. 학생들의 자발성과 주도성을 갖고 스스로 하는 것이 제일 좋기 때문입니다. 컵라면은 알다시피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쾌적한 환경조성에도 큰 장애물이 되어 왔습니다. 학생들이 컵라면을 교실에까지 가져와서 먹고 나서는 화장실에 그대로 버리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골마루에 화단에도 마구 버립니다. 냄새도 나고 지저분하고 파리가 끓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정말 집에서 식사를 하지 못해 학교를 왔다면 학교에서 빵과 우유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건강에 좋지 않은 컵라면만 고집해야 합니까? 컵라면의 편리함 때문에, 컵라면이 밥맛없을 때는 제격이라고 하는 생각으로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집에서는 아침식사를 못했을 경우 대신 영양가 있는 과일이나 각종 대체음식으로 준비해서 보내 주어야 합니다. 학교에 와서 자율학습시간에 어머니께서 장만해주신 과일로 각종 음식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학교 매점에서도 학생들에게 컵라면을 대신할 대체음식을 생각해서 준비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학교 매점에서는 아예 컵라면을 팔지도 않고 컵라면을 먹지 않는 풍토를 조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도 지킬 수 있고 학교 환경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학교식당에서 식사하는 좋은 습관도 기를 수 있습니다. 냄새 없고 파리 끓지 않는 깨끗한 학교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한 학생도 학생회에서 스스로 결정한 것을 반대하거나 불만이나 불평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다른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함께 실천해야 합니다. 학교매점에서 팔지 않는다고 밖에 나가서 사가지고 들어오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선생님들도 이번 학생회의 결정을 존중하고 하루 빨리 학교에서 학생들이 컵라면을 먹는 일이 없도록 지도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