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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한상철 | 대구한의대 청소년교육상담학과 교수 학생만 있고 청소년은 없는 사회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단지 한 세대 이전의 청소년들이 겪었던 것보다 더 많은 모험과 위기 그리고 요구 및 기대에 직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아동기에서 성인기로 이동하는 경로를 성공적으로 통과하고 있다. 몇 가지 준거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10년이나 20년 전의 청소년들보다 더 훌륭한 것 같다. 청소년의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있으며, 심지어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에 걸쳐 청소년 문제와 살인사건은 약물남용이나 청소년 비행 그리고 청소년 임신과 함께 다소 줄어들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긍정적인 자아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과의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의 많은 성인들과 대중매체가 묘사하는 것보다 더 긍정적인 경험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일부 청소년들은 그들이 유능한 성인이 되는데 필요한 적절한 기회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10년 또는 20년 전의 청소년들보다 덜 안정적인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높은 이혼율, 청소년층의 높은 임신율, 그리고 가족의 잦은 이사는 청소년들의 삶의 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여자 청소년 가운데 20% 이상이 출산을 하고 있고, 약물남용이 청소년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으며, AIDS의 유령이 청소년의 육체적, 정신적 황폐화를 가속화시켜 국가적 차원의 관심과 지원 대책을 마련 중이다. 특히 M. Wright Edelman은 다음 세대인 어린이와 청소년을 양육하고 보호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말하고, 과거 어떤 시대보다 더 중요한 정책적 이슈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해 청소년 문제행동이 적다고 안심하고 있을 단계가 아니다. 오히려 실종된 듯한 청소년문화에 대해 염려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할 때이다. 문제행동이 소수 청소년들에게 존재하는 일탈적 행위가 아니라 비교적 건강하다고 하는 다수의 청소년들에게 잠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 잠재적 비행의 배경에는 학생만 있고 청소년은 존재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특이한 문화 환경이 자리 잡고 있다. 사회변화에 따른 청소년의 지위변화 한국의 ‘청소년’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대학생 운동일 것이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반독재 정치 운동의 선봉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운동은 사춘기적 방황과 갈등, 이상사회에 대한 열망과 실험정신, 대안 문화 등과 같은 청소년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서구의 청소년들이 근대화 이후 부모나 기성세대로부터 독립하고, 구별화됨으로써 그들 나름의 확고한 사회적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된 것과 차이가 있는 것이다. 서구의 경우 1970년대 히피운동이나 반 문화운동을 통하여 평등과 자유라는 근대적 이상을 실현하려는 청소년들의 움직임이 그들의 주류 문화를 형성하였고, 21세기 사회에서 그들은 대량실업과 세기말적 혼란 속에서 사회의 불안 세력이자 가능성의 세대로 인정받게 되었다. 한국의 청소년은 1980년대 대학생 운동의 절정기를 맞으면서, 조직력과 이데올로기가 극도로 강조되는 분위기에서 청소년의 실험성과 자유로움은 상실되어 버렸던 것이다. 청소년에 의한 문화 변혁적 운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30년대 ‘신여성’과 ‘모던 보이’들이 불러 일으켰던 신문화 조류나 1960년대 말부터 일었던 ‘청년문화운동’이 그러한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통기타와 히피풍조 패션으로 대변되는 청년문화운동은 서구 풍조의 모방이자 퇴폐풍조로 간주되어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 정책에 의해 억제되었고, 새로운 문화를 주도했던 그 시대의 청년들은 군대를 갔다 오면서 곧바로 기성세대 체제에 편입되어 버렸던 것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반독재 투쟁은 어느 정도의 결실을 이루게 되지만, 청소년들의 행보는 곧바로 소비에만 열중하는 ‘신세대’로 규정됨으로써 하나의 독자적인 세력으로 형성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연세대 사회학과 조혜정 교수의 글에 따르면, 근대 한국사에서 청소년의 위상은 크게 세 단계를 통해 발전하였다. 여기서는 조혜정 교수의 단계구분에 근거하여 필자 나름의 견해를 덧붙여 설명하고자 한다. ‘학생’이 선망의 대상이었던 근로 청소년 첫 번째 단계는 대가족의 ‘소인’일 뿐이었던 청소년들이 가족을 빠져나와 ‘학생’이라는 독자적인 위상을 갖게 되는 단계이다. 근대 국가기구는 모든 아이들을 ‘근대적 국민’으로 만들기 위해 학교를 지었고,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가정에서 벗어나 개인의 공간을 갖기 시작하였다. 학생이라는 새로운 지위를 획득했고, 이 시대에는 청소년 자신들이 이 지위를 선호했다. 그러나 이 범주에 들지 않는 이들은 주변적 범주로 인식되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소외 계층’, ‘학교 공부보다 생계유지가 더 시급한 사람’이라는 식의 범주화가 근대 전반부에 청소년들의 삶을 지배했던 것이다. 이 시대에 행운아는 자기를 상급 학교에 보내 줄 경제력을 가진 아버지나 잡다한 집안일을 시키지 않고 숙제를 하도록 배려하는 어머니를 가진 아이였다. 소수의 선택된 아이만이 학교에 갈 수 있었던 시대에 ‘학생’이 되는 것은 축복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이 시대에 ‘학생’에 속하지 않는 청소년은 주변적인 범주인 ‘근로 청소년’에 속한다. 교복을 입은 같은 또래의 학생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계층인 이들을 위해 1970년대 국가는 ‘산업역군’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고, 근로 청소년회관을 지어서 검정고시 반을 운영하거나 취미교실을 운영하여 이들을 위로하기도 하였다. 1980년대 후반에는 화장법을 가르쳐서 이들을 숙녀로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 더 이상 학생과 근로 청소년의 이분법은 성립되지 않는다.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고등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학생은 ‘좋은 청소년’, 비학생은 ‘불량 청소년’ 두 번째 단계는 다수의 청소년들이 학생인 시점에서,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이 더 이상 불우한 청소년이 아니라 부적응자이거나 일탈자로 범주화되는 단계이다. 이 시점에서 10대는 ‘학생’과 ‘비학생’으로 이분화되었으며, 학생은 ‘좋은 청소년’인 반면 비학생은 ‘불량 청소년’으로 취급되었다. 1980년대까지 지속된 대량생산 체제에서 학교는 그 체제가 필요로 하는 인력을 대량으로 생산해 내는 기능을 수행했으며, 기성 사회는 그 체제에서 이탈하는 청소년을 ‘불량 청소년’으로 낙인찍었던 것이다. 또한 한국의 청소년은 대학생과 중·고등학생으로 구분되고, 청소년이란 용어는 중·고등학생을 지칭하는 것으로 변하였다. 대학생들이 고등학생들을 의식화시킬 것을 두려워해서 선배들이 모교에 와서 동아리 활동을 하던 것이 금지되었고, 그래서 많은 선후배가 함께 하는 청소년 동아리의 맥이 끊겼다. 따라서 1980년대를 통해 중·고등학교는 가장 폐쇄적인 공간이 되었으며, 중등학교 학생들은 ‘학생’ 이외의 정체성을 버려야 했다. 강압적이고 통제 일변도의 학교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이런 특수한 역사적 시점을 거치면서이다. 이 시대의 학생은 더 이상 특권 계층이 아니었으며 단지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사람만이 훌륭한 사람, 모범생 등으로 인식되었을 뿐, 공부하는 곳에서 공부를 게을리 하거나 공부를 포기한 사람들은 열등생, 부적응자, 비행자로 분류될 수밖에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만이 인정받았으며, 그들의 사소한 허물이나 실수는 묻힐 수 있을망정 공부 못하는 사람의 허물은 인생의 실패나 부도덕으로 낙인 되었던 것이다. 대량 생산시대에 필요한 인력은 뛰어난 엘리트가 아니라 대중화되고 평준화된 사람이었다.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지만, 학교교육은 점차 평준화를 지향함으로써 모든 학생들을 백화점의 상품과 같이 개성 없는 생산품 또는 진열품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소비 주체로서의 청소년 세 번째 단계는 1990년대 전후 본격적인 소비 자본주의 체제가 진행되면서 ‘학생’의 위상이 ‘청소년’이란 위상으로 또는 ‘소비자’란 이름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단계이다. 이제 학교라는 울타리와 학생이라는 신분을 적극적으로 이탈하는 아이들이 생겨났으며, 이에 따라 정부에서도 학교의 규범에 얽매인 학생들을 보다 자유로운 인격체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게 되었다. 구체적인 예로써, 1987년 당시 체육부는 ‘청소년육성법’을 제정하였고, 1988년에 체육부 내에 ‘체육청소년국’이 설치되었으며, 1990년에는 청소년헌장이 선포되고 ‘체육부’가 ‘체육청소년부’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은 당시 정부 차원의 청소년 정책이 비교적 활발하게 전개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의 신분을 ‘청소년’이라는 신분으로 이미지 변신을 도모한 것은 성공적으로 평가되지만, 학교 내 각종 규제에 얽매여 있는 10대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크게 바꾸어 놓지는 못하였다. 1991년 청소년기본법이 제정되면서 학생들은 잠시 학교를 떠나 자연 속에서 수련활동을 할 수 있도록 되었다. 청소년의 범위를 9세부터로 정한 것도 학생들의 수련원 활동을 권장하기 위한 차원에서이다. 1997년 이래로 다시 청소년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청소년헌장을 개정하는 등 ‘학생’이 아닌 ‘전인적 청소년’을 강조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국가발전을 위해 청소년을 육성하겠다’는 식의 국가주의적 패러다임이 잔존해 있는 한, 그리고 교육부와 교육청의 학생 지배에 대한 욕심이 계속되는 한 청소년 활동의 활성화는 사실상 쉽지 않은 형편이다. 그러나 국가적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본시장의 급격한 변동에 의해 청소년의 세계가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자본은 청소년을 위한 길거리 농구장을 마련하였고, 유명 상표를 부착한 신발과 의류를 팔았으며, 10대를 위한 각종 잡지와 패션 책을 통해 10대들만의 무수한 이야기를 제공하였다. 청소년들은 정부에서 벌인 행사에서와는 달리 시장의 자본이 만든 공간에는 자발적으로 찾아다녔으며, 노래방, 피시방, 오락실, 호프집, 콜라텍을 선택하였다. 1980년대 이후 자본에 의해 청소년들의 학교 밖 놀이공간들이 광범위하게 만들어졌으며, 청소년들은 그 공간에서 자기들만의 개별공간을 만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하면, 10대들은 한편으로 자본이 만든 새롭고 광활한 소비 공간의 유혹을 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낙후된 학교가 밀쳐내는 힘의 작용에 의해 독자적인 생활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인터넷으로 온갖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된 아이들에게 학교는 더 이상 재미없는 공간에 불과하며, 오래 머물다가는 낙후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심어줄 뿐이다. 실제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의 수는 적지만, 다수의 아이들이 몸만 학교에 있는 식의 태업에 들어갔고, 상당수는 학교생활을 삶의 일부로만 간주하는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다. 가끔 우리는 한국의 청소년이 서양의 청소년들보다 학교에 더 잘 다니지만, 또한 더 폭력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학교에 대한 문제제기를 학교 망신시키는 행동이라고 하면서 여전히 고답적인 자세를 버리지 못하는 학교 운영책임자도 있다. 청소년 문제가 너무나 심각하고 해결책이 없으니까 그냥 덮어두자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청소년들의 행동에 포함되어 있는 권리와 자유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그래서 그들의 반항적인 행동만을 문제 삼는다면 앞으로도 영원히 청소년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 내 청소년문화의 형태 교육이란 본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작용이며, 개인의 전인적 성장을 조력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학교는 교육의 일차적인 장(場)으로서의 기능을 포기하고, 입시경쟁으로 학생들을 구속하는 스트레스의 원천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학교 내 청소년들은 크게 4가지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학교에서는 모범생이지만 그들 나름대로 사이버공간이나 B-boy 댄스 활동, 밴드 활동 등에 몰두하면서 학교 밖의 공간을 확보해 놓은 청소년들이다. 이들은 자기들만의 활동공간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 대해 큰 기대도 불만도 없는 편이며, 학교에서는 그들 나름의 시간 때우기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듯하다. 학교에서 무턱대고 잠자기, 그들만의 정보교류, 쉼터, 그리고 부모님께 최소한의 효도를 제공하기 위한 곳쯤으로 인식하고 있다. 두 번째 부류는 아예 학교를 떠난 아이들이다. 이들은 학교 밖에서 학원에도 다니고 여러 종류의 비공식적 모임에 참여하거나 독학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계획해 나간다. 문화센터를 통해 영화 만드는 것을 배운다거나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사회경험을 하는 등 새로운 학습의 공간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라는 폐쇄된 공간에 더 머물다가는 변화되는 역동적인 사회 환경에서 도태되고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으로 인해 스스로 학교를 탈퇴하고 자기만의 공간 및 생활터전을 창조해 나가는 적극적인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부류는 딱히 자기만의 창조적 공간을 마련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열심히 노는 아이들이다. 인기 대중가수의 열성적인 팬 클럽회원이기도 하고, 때로는 나이트나 콜라텍 등에 가서 열심히 춤도 추고, 노래방에 가서도 적극적으로 노는 아이들이다. 이들은 발랄하고 당돌한 신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이들에게 어른들의 걱정스러운 간섭은 잔소리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당돌하리만큼 정열적이고 반항적이지만, 노는 데 빠져있을 뿐 비행이나 일탈에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 네 번째 부류는 아마 현재 대다수를 차지할 것으로 생각되는 수동적인 청소년들이다. 부모님을 실망시킬 수 없으니까 학교에 가라면 가고, 텔레비전도 조금 보고, 친구를 따라 콜라텍에도 가끔 가고 노래방에도 간다. 이들은 대체로 “별 생각 없이 살아요”, “사는 게 재미없어요”라고 반응한다. 일 중독증에 걸려 놀 줄 모르는 부모세대의 보호를 받으면서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놀고,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고자 하는 모습이다. 아마 이들 중 다수는 10년 후에도 이런 생활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앞의 세 부류는 오늘날 그 숫자가 점차 증가되고 있지만, 아직도 소수일 뿐 지배적인 청소년 세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마도 90% 이상의 청소년은 네 번째 부류에 속할 것이다. 어른들은 앞의 세 부류에 대해 염려하고 심지어 문제청소년으로 오인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들의 경우 나름대로 문화공간을 가지고 있거나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고 그리고 열심히 놀고 있을 뿐, 비행이나 문제행동에 개입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오히려 이들이 새롭고 역동적인 청소년문화를 창조하는 주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네 번째 부류의 청소년들은 따분하고 재미없는 삶을 엮어가고 있으며, 잠재적 비행요인을 어느 누구보다 많이 내포하고 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스트레스와 욕구불만 등으로 신체적·정신적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변화에 따라 청소년들의 의식과 가치관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현대 사회의 청소년들은 성인 사회의 문화를 단순하게 수용하고 흡수하는 스폰지 세대가 아니라 그들 나름의 독창적인 문화를 생성하는 문화 주체적 세대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다수가 아닌 소수에 의해 생성되고 확산되는 청소년문화이기에 하위문화 또는 대항문화라는 좋지 못한 평판을 듣고 있는 듯하다.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의 당당한 동반자로서 가치를 높여나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청소년들이 학교와 가정의 울타리에만 안주하지 말고 사회의 더 큰 터전으로 뛰쳐나와서 자신의 역량과 잠재력을 시험하고 개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조혜영 | 한국청소년개발원 부연구위원 학생만 있고 청소년은 없는 사회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단지 한 세대 이전의 청소년들이 겪었던 것보다 더 많은 모험과 위기 그리고 요구 및 기대에 직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아동기에서 성인기로 이동하는 경로를 성공적으로 통과하고 있다. 몇 가지 준거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10년이나 20년 전의 청소년들보다 더 훌륭한 것 같다. 청소년의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있으며, 심지어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에 걸쳐 청소년 문제와 살인사건은 약물남용이나 청소년 비행 그리고 청소년 임신과 함께 다소 줄어들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긍정적인 자아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과의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의 많은 성인들과 대중매체가 묘사하는 것보다 더 긍정적인 경험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일부 청소년들은 그들이 유능한 성인이 되는데 필요한 적절한 기회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10년 또는 20년 전의 청소년들보다 덜 안정적인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높은 이혼율, 청소년층의 높은 임신율, 그리고 가족의 잦은 이사는 청소년들의 삶의 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여자 청소년 가운데 20% 이상이 출산을 하고 있고, 약물남용이 청소년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으며, AIDS의 유령이 청소년의 육체적, 정신적 황폐화를 가속화시켜 국가적 차원의 관심과 지원 대책을 마련 중이다. 특히 M. Wright Edelman은 다음 세대인 어린이와 청소년을 양육하고 보호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말하고, 과거 어떤 시대보다 더 중요한 정책적 이슈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해 청소년 문제행동이 적다고 안심하고 있을 단계가 아니다. 오히려 실종된 듯한 청소년문화에 대해 염려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할 때이다. 문제행동이 소수 청소년들에게 존재하는 일탈적 행위가 아니라 비교적 건강하다고 하는 다수의 청소년들에게 잠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 잠재적 비행의 배경에는 학생만 있고 청소년은 존재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특이한 문화 환경이 자리 잡고 있다. 사회변화에 따른 청소년의 지위변화 한국의 ‘청소년’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대학생 운동일 것이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반독재 정치 운동의 선봉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운동은 사춘기적 방황과 갈등, 이상사회에 대한 열망과 실험정신, 대안 문화 등과 같은 청소년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서구의 청소년들이 근대화 이후 부모나 기성세대로부터 독립하고, 구별화됨으로써 그들 나름의 확고한 사회적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된 것과 차이가 있는 것이다. 서구의 경우 1970년대 히피운동이나 반 문화운동을 통하여 평등과 자유라는 근대적 이상을 실현하려는 청소년들의 움직임이 그들의 주류 문화를 형성하였고, 21세기 사회에서 그들은 대량실업과 세기말적 혼란 속에서 사회의 불안 세력이자 가능성의 세대로 인정받게 되었다. 한국의 청소년은 1980년대 대학생 운동의 절정기를 맞으면서, 조직력과 이데올로기가 극도로 강조되는 분위기에서 청소년의 실험성과 자유로움은 상실되어 버렸던 것이다. 청소년에 의한 문화 변혁적 운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30년대 ‘신여성’과 ‘모던 보이’들이 불러 일으켰던 신문화 조류나 1960년대 말부터 일었던 ‘청년문화운동’이 그러한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통기타와 히피풍조 패션으로 대변되는 청년문화운동은 서구 풍조의 모방이자 퇴폐풍조로 간주되어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 정책에 의해 억제되었고, 새로운 문화를 주도했던 그 시대의 청년들은 군대를 갔다 오면서 곧바로 기성세대 체제에 편입되어 버렸던 것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반독재 투쟁은 어느 정도의 결실을 이루게 되지만, 청소년들의 행보는 곧바로 소비에만 열중하는 ‘신세대’로 규정됨으로써 하나의 독자적인 세력으로 형성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연세대 사회학과 조혜정 교수의 글에 따르면, 근대 한국사에서 청소년의 위상은 크게 세 단계를 통해 발전하였다. 여기서는 조혜정 교수의 단계구분에 근거하여 필자 나름의 견해를 덧붙여 설명하고자 한다. ‘학생’이 선망의 대상이었던 근로 청소년 첫 번째 단계는 대가족의 ‘소인’일 뿐이었던 청소년들이 가족을 빠져나와 ‘학생’이라는 독자적인 위상을 갖게 되는 단계이다. 근대 국가기구는 모든 아이들을 ‘근대적 국민’으로 만들기 위해 학교를 지었고,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가정에서 벗어나 개인의 공간을 갖기 시작하였다. 학생이라는 새로운 지위를 획득했고, 이 시대에는 청소년 자신들이 이 지위를 선호했다. 그러나 이 범주에 들지 않는 이들은 주변적 범주로 인식되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소외 계층’, ‘학교 공부보다 생계유지가 더 시급한 사람’이라는 식의 범주화가 근대 전반부에 청소년들의 삶을 지배했던 것이다. 이 시대에 행운아는 자기를 상급 학교에 보내 줄 경제력을 가진 아버지나 잡다한 집안일을 시키지 않고 숙제를 하도록 배려하는 어머니를 가진 아이였다. 소수의 선택된 아이만이 학교에 갈 수 있었던 시대에 ‘학생’이 되는 것은 축복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이 시대에 ‘학생’에 속하지 않는 청소년은 주변적인 범주인 ‘근로 청소년’에 속한다. 교복을 입은 같은 또래의 학생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계층인 이들을 위해 1970년대 국가는 ‘산업역군’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고, 근로 청소년회관을 지어서 검정고시 반을 운영하거나 취미교실을 운영하여 이들을 위로하기도 하였다. 1980년대 후반에는 화장법을 가르쳐서 이들을 숙녀로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 더 이상 학생과 근로 청소년의 이분법은 성립되지 않는다.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고등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학생은 ‘좋은 청소년’, 비학생은 ‘불량 청소년’ 두 번째 단계는 다수의 청소년들이 학생인 시점에서,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이 더 이상 불우한 청소년이 아니라 부적응자이거나 일탈자로 범주화되는 단계이다. 이 시점에서 10대는 ‘학생’과 ‘비학생’으로 이분화되었으며, 학생은 ‘좋은 청소년’인 반면 비학생은 ‘불량 청소년’으로 취급되었다. 1980년대까지 지속된 대량생산 체제에서 학교는 그 체제가 필요로 하는 인력을 대량으로 생산해 내는 기능을 수행했으며, 기성 사회는 그 체제에서 이탈하는 청소년을 ‘불량 청소년’으로 낙인찍었던 것이다. 또한 한국의 청소년은 대학생과 중·고등학생으로 구분되고, 청소년이란 용어는 중·고등학생을 지칭하는 것으로 변하였다. 대학생들이 고등학생들을 의식화시킬 것을 두려워해서 선배들이 모교에 와서 동아리 활동을 하던 것이 금지되었고, 그래서 많은 선후배가 함께 하는 청소년 동아리의 맥이 끊겼다. 따라서 1980년대를 통해 중·고등학교는 가장 폐쇄적인 공간이 되었으며, 중등학교 학생들은 ‘학생’ 이외의 정체성을 버려야 했다. 강압적이고 통제 일변도의 학교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이런 특수한 역사적 시점을 거치면서이다. 이 시대의 학생은 더 이상 특권 계층이 아니었으며 단지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사람만이 훌륭한 사람, 모범생 등으로 인식되었을 뿐, 공부하는 곳에서 공부를 게을리 하거나 공부를 포기한 사람들은 열등생, 부적응자, 비행자로 분류될 수밖에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만이 인정받았으며, 그들의 사소한 허물이나 실수는 묻힐 수 있을망정 공부 못하는 사람의 허물은 인생의 실패나 부도덕으로 낙인 되었던 것이다. 대량 생산시대에 필요한 인력은 뛰어난 엘리트가 아니라 대중화되고 평준화된 사람이었다.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지만, 학교교육은 점차 평준화를 지향함으로써 모든 학생들을 백화점의 상품과 같이 개성 없는 생산품 또는 진열품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소비 주체로서의 청소년 세 번째 단계는 1990년대 전후 본격적인 소비 자본주의 체제가 진행되면서 ‘학생’의 위상이 ‘청소년’이란 위상으로 또는 ‘소비자’란 이름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단계이다. 이제 학교라는 울타리와 학생이라는 신분을 적극적으로 이탈하는 아이들이 생겨났으며, 이에 따라 정부에서도 학교의 규범에 얽매인 학생들을 보다 자유로운 인격체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게 되었다. 구체적인 예로써, 1987년 당시 체육부는 ‘청소년육성법’을 제정하였고, 1988년에 체육부 내에 ‘체육청소년국’이 설치되었으며, 1990년에는 청소년헌장이 선포되고 ‘체육부’가 ‘체육청소년부’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은 당시 정부 차원의 청소년 정책이 비교적 활발하게 전개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의 신분을 ‘청소년’이라는 신분으로 이미지 변신을 도모한 것은 성공적으로 평가되지만, 학교 내 각종 규제에 얽매여 있는 10대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크게 바꾸어 놓지는 못하였다. 1991년 청소년기본법이 제정되면서 학생들은 잠시 학교를 떠나 자연 속에서 수련활동을 할 수 있도록 되었다. 청소년의 범위를 9세부터로 정한 것도 학생들의 수련원 활동을 권장하기 위한 차원에서이다. 1997년 이래로 다시 청소년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청소년헌장을 개정하는 등 ‘학생’이 아닌 ‘전인적 청소년’을 강조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국가발전을 위해 청소년을 육성하겠다’는 식의 국가주의적 패러다임이 잔존해 있는 한, 그리고 교육부와 교육청의 학생 지배에 대한 욕심이 계속되는 한 청소년 활동의 활성화는 사실상 쉽지 않은 형편이다. 그러나 국가적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본시장의 급격한 변동에 의해 청소년의 세계가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자본은 청소년을 위한 길거리 농구장을 마련하였고, 유명 상표를 부착한 신발과 의류를 팔았으며, 10대를 위한 각종 잡지와 패션 책을 통해 10대들만의 무수한 이야기를 제공하였다. 청소년들은 정부에서 벌인 행사에서와는 달리 시장의 자본이 만든 공간에는 자발적으로 찾아다녔으며, 노래방, 피시방, 오락실, 호프집, 콜라텍을 선택하였다. 1980년대 이후 자본에 의해 청소년들의 학교 밖 놀이공간들이 광범위하게 만들어졌으며, 청소년들은 그 공간에서 자기들만의 개별공간을 만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하면, 10대들은 한편으로 자본이 만든 새롭고 광활한 소비 공간의 유혹을 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낙후된 학교가 밀쳐내는 힘의 작용에 의해 독자적인 생활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인터넷으로 온갖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된 아이들에게 학교는 더 이상 재미없는 공간에 불과하며, 오래 머물다가는 낙후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심어줄 뿐이다. 실제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의 수는 적지만, 다수의 아이들이 몸만 학교에 있는 식의 태업에 들어갔고, 상당수는 학교생활을 삶의 일부로만 간주하는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다. 가끔 우리는 한국의 청소년이 서양의 청소년들보다 학교에 더 잘 다니지만, 또한 더 폭력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학교에 대한 문제제기를 학교 망신시키는 행동이라고 하면서 여전히 고답적인 자세를 버리지 못하는 학교 운영책임자도 있다. 청소년 문제가 너무나 심각하고 해결책이 없으니까 그냥 덮어두자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청소년들의 행동에 포함되어 있는 권리와 자유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그래서 그들의 반항적인 행동만을 문제 삼는다면 앞으로도 영원히 청소년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 내 청소년문화의 형태 교육이란 본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작용이며, 개인의 전인적 성장을 조력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학교는 교육의 일차적인 장(場)으로서의 기능을 포기하고, 입시경쟁으로 학생들을 구속하는 스트레스의 원천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학교 내 청소년들은 크게 4가지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학교에서는 모범생이지만 그들 나름대로 사이버공간이나 B-boy 댄스 활동, 밴드 활동 등에 몰두하면서 학교 밖의 공간을 확보해 놓은 청소년들이다. 이들은 자기들만의 활동공간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 대해 큰 기대도 불만도 없는 편이며, 학교에서는 그들 나름의 시간 때우기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듯하다. 학교에서 무턱대고 잠자기, 그들만의 정보교류, 쉼터, 그리고 부모님께 최소한의 효도를 제공하기 위한 곳쯤으로 인식하고 있다. 두 번째 부류는 아예 학교를 떠난 아이들이다. 이들은 학교 밖에서 학원에도 다니고 여러 종류의 비공식적 모임에 참여하거나 독학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계획해 나간다. 문화센터를 통해 영화 만드는 것을 배운다거나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사회경험을 하는 등 새로운 학습의 공간을 개척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라는 폐쇄된 공간에 더 머물다가는 변화되는 역동적인 사회 환경에서 도태되고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으로 인해 스스로 학교를 탈퇴하고 자기만의 공간 및 생활터전을 창조해 나가는 적극적인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부류는 딱히 자기만의 창조적 공간을 마련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열심히 노는 아이들이다. 인기 대중가수의 열성적인 팬 클럽회원이기도 하고, 때로는 나이트나 콜라텍 등에 가서 열심히 춤도 추고, 노래방에 가서도 적극적으로 노는 아이들이다. 이들은 발랄하고 당돌한 신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이들에게 어른들의 걱정스러운 간섭은 잔소리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당돌하리만큼 정열적이고 반항적이지만, 노는 데 빠져있을 뿐 비행이나 일탈에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 네 번째 부류는 아마 현재 대다수를 차지할 것으로 생각되는 수동적인 청소년들이다. 부모님을 실망시킬 수 없으니까 학교에 가라면 가고, 텔레비전도 조금 보고, 친구를 따라 콜라텍에도 가끔 가고 노래방에도 간다. 이들은 대체로 “별 생각 없이 살아요”, “사는 게 재미없어요”라고 반응한다. 일 중독증에 걸려 놀 줄 모르는 부모세대의 보호를 받으면서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놀고,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고자 하는 모습이다. 아마 이들 중 다수는 10년 후에도 이런 생활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앞의 세 부류는 오늘날 그 숫자가 점차 증가되고 있지만, 아직도 소수일 뿐 지배적인 청소년 세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마도 90% 이상의 청소년은 네 번째 부류에 속할 것이다. 어른들은 앞의 세 부류에 대해 염려하고 심지어 문제청소년으로 오인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들의 경우 나름대로 문화공간을 가지고 있거나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고 그리고 열심히 놀고 있을 뿐, 비행이나 문제행동에 개입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오히려 이들이 새롭고 역동적인 청소년문화를 창조하는 주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네 번째 부류의 청소년들은 따분하고 재미없는 삶을 엮어가고 있으며, 잠재적 비행요인을 어느 누구보다 많이 내포하고 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스트레스와 욕구불만 등으로 신체적·정신적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변화에 따라 청소년들의 의식과 가치관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현대 사회의 청소년들은 성인 사회의 문화를 단순하게 수용하고 흡수하는 스폰지 세대가 아니라 그들 나름의 독창적인 문화를 생성하는 문화 주체적 세대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다수가 아닌 소수에 의해 생성되고 확산되는 청소년문화이기에 하위문화 또는 대항문화라는 좋지 못한 평판을 듣고 있는 듯하다.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의 당당한 동반자로서 가치를 높여나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청소년들이 학교와 가정의 울타리에만 안주하지 말고 사회의 더 큰 터전으로 뛰쳐나와서 자신의 역량과 잠재력을 시험하고 개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무, 새 2008년 4월! 한국인 최초 우주인이 러시아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납니다. 경쟁률만 18,000:1. 요즘엔 이벤트 상품으로 우주여행권도 등장하였으니 바야흐로 우주탐험이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실제 상황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옛사람들이 우주라고 여겼을 하늘을 바라봅니다. 저 멀고 높은 하늘세계에 우리 사람들이 근접할 수는 없을까? 옛사람들의 이러한 염원에 답하기라도 하듯 신수(神樹)가 등장했습니다. 시베리아의 세계수(World Tree)나 우주나무(Cosmic Tree), 단군신화의 신단수(神檀樹)가 그것입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나무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지상으로 내려오는 교통로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지금껏 산신제를 지내고, 당수나무에 제를 지내고, 무당들이 신대라는 대나무를 통해 신내림을 받는 것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신성한 나무를 길게 잘라 만든 것이 바로 장대입니다. 나무나 장대가 신과 교감하는 통로였다면 나무 위에 앉아 있는 새는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전령입니다.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새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컸던 것 같습니다. 고구려의 상징인 삼족오(三足烏)는 태양 속에 사는 세 발 달린 까마귀입니다. 기러기는 소식을 전해 주는 새이자 부부 간 백년해로의 상징이었습니다. 때와 시를 알리는 닭은 희망찬 출발이나 상서로움의 상징이며, 원앙은 부부 간 금슬의 상징으로, 까치는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해주고 꿩은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새로 알려져 있지요. 이웃한 나라에서도 새를 신성한 존재로 보았습니다. 일본 신사의 상징이랄 수 있는 도리이[鳥居]는 신이 사는 세계 ‘천(天)’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하늘의 신에게 사람의 뜻을 전달해 주는 새가 그 위에서 쉬어가라는 의미이지요.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새인 가루다는 불교에 수용되어 팔부신중으로 당당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이 가루다는 사람의 몸에 새의 머리를 하거나 전신이 새의 형상을 띠기도 하지요. 전남 구례 연곡사 서부도는 상륜부가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는데 그 상륜부에 봉황 네 마리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동부도와 북부도에서도 상륜부에 머리 부분이 훼손된 봉황을 볼 수 있는데, 이 봉황 네 마리가 혹시 4천하(天下)를 상징하는 가루다가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봅니다. 한편 연곡사 부도의 상대석에는 가릉빈가가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가릉빈가는 극락조라고도 불리며 사람의 머리에 새의 형상을 하고서 극락정토에서 그윽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 심양 고궁 청녕궁의 정문 앞에는 7m 높이의 신간(神竿)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황제가 거주하던 공간에 어울리지 않게 나무장대가 있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윗부분에 있는 자그마한 용기에 쌀과 잘게 썬 돼지내장을 담아 까마귀에게 먹이를 주던 만주족의 전통에 의합니다. 만주족의 이러한 풍속은 누르하치가 위험에 처했을 때 까마귀떼가 날아와 전신을 감싸주는 바람에 살아날 수 있었다는 데서 연유합니다. 티벳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 몸을 독수리의 먹이로 주는 ‘천장(天葬, 鳥葬)’이라는 독특한 풍습이 있지요. 그들은 사람의 영혼이 독수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고 있습니다. 솟대=장대+새 솟대란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나무장대나 돌기둥 위에 얹은 신앙대상물입니다. 그러니까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자로서의 새,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연결하는 교통로로서 나무를 상징하는 장대나 기둥이 결합된 것이죠. 지역에 따라서 짐대, 수살대, 진또배기, 거릿대, 솔대, 당산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단독으로 세워지기도 하고 장승이나 선돌, 돌탑 등과 함께 세워지기도 하죠. 이 솟대의 기원을 내부적으로 찾는 시각은 삼한시대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신성한 공간 소도(蘇塗)에서 비롯됩니다. 소도라는 공간에서 장대에 새를 올린 솟대의 형식이 나왔다는 거죠. 솟대를 세운 이 곳은 신성한 곳으로 여겨 죄인이 들어와도 잡아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각은 현존하는 솟대가 남부지방에 치중하여 분포하기에 북방유입설에 맞설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솟대문화는 만주, 몽고, 시베리아, 일본 등 북아시아에서 고루 보이는 보편화된 샤머니즘 문화라는 점입니다. 솟대의 새는 대부분 오리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오리는 천계(天界)의 신과 왕래하는 사신이요, 물새이기에 농사에 절대적인 물을 관장하여 홍수와 화재를 막아주기도 합니다. 알도 많이 낳으니 풍농, 풍어, 다산까지 기대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철새로 남북을 오가는, 즉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새로 받아들여져 옛 가야 땅에서는 사자(死者)를 저승까지 동반하는 의미에서 오리 모양 토기를 부장하곤 했지요. 솟대의 기능은 기본적으로 액막이 즉, 제액초복(除厄招福)을 기원하기 위함입니다. 이 경우에는 단독으로 보다는 당수나무, 장승, 돌탑 등 다른 마을 지킴이와 같이 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산신 중심의 상당신(上堂神)과 함께 마을 하당신(下堂神)으로서의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죠. 강릉 진또배기는 경기도나 충청도 등지의 솟대가 주로 장승의 하위개념으로 들어선 것과 달리 당당하게 단독으로 강문(江門)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장대 위 물오리가 육해공(陸海空)에 두루 능한지라 바람, 물, 불의 삼재(三災)를 막아주기를 토속신에게 기원하며 풍년과 풍어를 빌었던 것이죠. 솟대만 있으면 외롭고 약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장승이나 돌탑 등에 묻혀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보다 본연의 임무에 더 충실할 수 있죠. 따라서 독립형 솟대는 혼자라기에 더 막강하고 자생력이 강합니다. 하늘을 향해 쭉 올라간 장대는 마치 수묵화에서 한 획에 선을 그은 듯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한편, 과거시험에서 급제자를 내면 솟대를 건립하기도 하였는데 이 경우 솟대의 새에 붉은 색을 칠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이 때 문과 출신자의 경우는 솟대 위의 새를 학으로 부르고, 무과 출신자의 경우는 봉황이라고 불렀다네요. 이러한 풍속은 오리[鴨]가 ‘甲’과 ‘鳥’가 결합된 말로 새 중에서 으뜸가는 새이자, 과거시험에서의 으뜸인 장원급제를 의미하는데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PAGE BREAK]안녕과 복을 가져다주는 돛대 액막이로서, 과거급제 기념으로서 솟대를 세웠다지만 한편으로 풍수지리적인 측면에서도 솟대가 등장하였습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행주형(行舟形) 지세의 마을이 있습니다. 주로 두 물줄기가 합류하는 곳이나 물돌이 마을이 대부분인데 이런 지형에는 돛대를 세워야 배가 안정적으로 운항을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돛대로 솟대를 세웠던 것입니다. 큰 마을에는 돛대가 여러 개 있으면 좋다고 하는데 울산 언양 어음리에는 무려 다섯 개의 솟대가 들어섰다고 합니다. 이 행주형 솟대를 찾아 마을 어르신들을 상대로 솟대의 행방을 수소문해보았으나 결국은 실패였습니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하던 새마을운동 시절에 일부 사라지고 또 경지정리를 한다며 흔적 없이 밀어버렸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럴까요? ‘언양 불고기’로 유명한 이 일대는 고속도로 인터체인지가 이동하면서 상권이 위축되었고 또 고속철 건설로 엄청난 높이의 교각이 들어서 있어 곧 배가 침몰할 듯 정신없습니다. 어디 이곳만 그러하겠습니까. 흔적 없이 사라진 수많은 솟대가 어디 여기뿐이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나무로 솟대의 문화재지정 문제입니다. 나무의 특성상 현존하는 것들도 언젠가는 썩어 없어질 것입니다. 더군다나 동제가 계승되고 있는 지역일지라도 향후 그 전통이 단절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해있다면 문화재지정을 서두르거나 적어도 그 솟대를 이어갈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강구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경북 군위군 부악면 한밤마을은 부림 홍씨 집성마을로 팔공산 줄기로 둘러싸인 분지형 마을로 이곳도 선형(船形)마을입니다. 마을 입구 솔숲에는 진동단(鎭洞壇)이라 해서 약 4m의 돌기둥에 돌로 만든 오리를 올려 두었습니다. 이곳 역시 마을의 지세가 바다에 떠있는 배 모양이어서 오리처럼 물에 잠기지 말라는 의미로 돛대형 돌기둥을 세워두고 오리를 올려둔 것입니다. 이렇게 배와 관련한 지형에서는 우물이 많으면 배 바닥에 구멍이 나서 침몰하는 격이라 우물이 적고 대개 무거운 돌담보다는 비교적 가벼운 흙담이 많이 보입니다. 전북 부안읍 내요리에서는 ‘당산할머니’ 혹은 ‘짐대할머니’로 불리는 돌기둥이 이 마을의 수호신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당산이 풍수적으로 배의 형국인 내요리에 안녕과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고 있고 있습니다. 그것은 배가 거친 풍랑에 안전하기 위해서는 큰 기둥을 꽂아 안정감을 주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생각에서죠. 매년 정월 보름에 주민들이 이 당산에서 마을의 복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내고 줄다리기 후 동아줄을 당산에 감는 ‘짐대할머니 옷 입히기’를 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옷을 입혀주면 그 해의 농사가 잘 된다고 합니다. 절로 간 솟대 부안 동문 안 당산과 서문 안 당산은 숙종 15년(1689)에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위하여 세웠다고 합니다. 동문 안 당산에서 ‘당산하나씨’, ‘짐대하나씨’ 라고도 부르는 솟대당산에는 머리를 바다 쪽으로 향하고 있는 오리가 앉아 있는데, 이는 마을의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곳에서도 정월보름이면 줄다리기를 하고난 후 당산에 줄을 감는 옷을 입히고 당산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서문 안 당산의 ‘할아버지당산’ 받침돌에는 성혈과 같은 ‘알받이구멍’이 있는데 당산제를 지낼 때 쌀을 담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고 합니다. 쌀을 오리알로 동일시하여 풍요와 다산을 바라는 염원입니다. 안타깝게도 ‘할머니당산’은 반쯤 부러져서 윗부분을 볼 수 없습니다. 강원도 고성군 건봉사에서는 특이한 형태의 돌기둥을 만날 수 있습니다. 1928년에 건립된 돌솟대로 민간의 솟대문화가 사찰에까지 영향을 미쳤음을 주목할 수 있지요. 왜 솟대가 절로 들어왔을까요? 그 까닭을 이야기하기 전에 당간지주가 어떤 것인지를 언급해 봅시다. 장대를 높이 올려 꼭대기에다 새 대신 당(幢)이나 번(幡)을 달 수 있는 장치를 두고 장대가 쓰러지지 않도록 고정시킨 것이 당간지주입니다. 이 당간지주는 다른 나라를 통해 들어왔지만 지금은 우리나라만큼 당간지주 문화가 발달한 곳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한국판 불교의 특징 중 하나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지요. 사찰이란 이름도 찰간지주 즉, 당간지주에서 유래한 명칭입니다. 당간지주는 주로 절의 경계에 위치하여 특정 종파나 사찰임을 나타냄과 동시에 이곳이 성소(聖所)임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신성한 공간이었던 소도에서 비롯된 솟대 또한 우리 마을이 액을 피하는 성소임을 의미하지요. 그렇다면 우리 솟대신앙이 불교와 결합하여 당간지주로 발전하였음을 추리할 수 있습니다. 다음 호에서는 이런 관점에서 전국의 당간지주를 찾아가고자 합니다. 요즘 TV에서 마빡이 개그가 유행합니다. 이 마빡이 개그가 옛날 민요에서 유래하였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옛날 아버지들이 시집간 딸을 처음 찾아갈 때는 다듬잇돌을 메고 갔답니다. 딸은 아버지가 선물한 다듬잇돌에 다듬이질을 해가며 다음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씨에미 마빡 뚝딱, 씨누이 마빡 뚝딱, 씨할미 마빡 뚝딱, 씨고모 마빡 뚝딱…” 역사는 돌고 도는 것입니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으로 떠나는 시대이지만 그 이전에 도 소박한 마음으로 나무를 통해, 솟대를 통해 우주와 교통하려했던 민초들의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방학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 울산 옥현초 교사
근자에 들어 공무원 장외투쟁 가운데 규모가 큰 것을 꼽는다면 1998년 11월 서울 여의도 한강둔치에서 열린 ‘교원정년단축 반대 전국교육자 총궐기대회’가 아닌가 싶다. 7만여 명도 더 되는 교원들이 차가운 땅바닥에 앉아 초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쿠데타적 정년단축 철회’를 외쳤다. 교원들의 처연하기까지 한 공분(公憤)이 표출됐지만 언론은 짐짓 이를 외면했다. 조선일보에 사진 한 장 달랑 실린 것이 전부인 것으로 기억된다. 신문․방송은 연일 ‘노령교사 1명을 퇴출하면 젊은 교사 2.5명을 채용할 수 있다’는 앵무새 같은 보도를 내보냈다. IMF사태로 경제는 파탄 나고 실업자가 넘쳐나는 때에 이보다 더 확실한 여론몰이는 없었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심리를 부추긴 행태는 교육계의 어떠한 논리와 주장도 먹혀들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갔다. 당시 이해찬 장관과 교육부 고위관료들의 언론플레이가 무용담처럼 넘쳐나기도 했다. 교육계는 대패(大敗)했고 정년은 3년이나 싹둑 잘려나갔다. 물론 교단을 뒤로한 교원들 대신 젊은 교사가 2.5배로 충원되지도 않았다. 정년단축의 결과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우리 교단을 황폐화시켰으며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을 앓고 있다. 새삼 아픈 기억을 더듬는 것은 ‘공무원 연금 개혁’을 둘러싼 작금의 논쟁이 교원 정년단축 때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공적(公敵)의 범위가 공무원 모두로 확대됐다는 것이다. 이른바 개혁 논리부터 보자. 한 신문에 실린 찬성론자의 주장이다. “국민연금에 비해 ‘덜 내고 더 많이 받아오던’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과의 형평을 고려하여 수급액을 낮추겠다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공무원은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운 이 시기에 정년이 보장된 안정된 직업이라는 하나만으로도 선망의 대상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청춘을 바쳐 공무원 시험에 매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 이상 공무원들의 집단이기주의는 안 된다.” 다음은 개혁에 저항(?)하는 한 공무원의 반론. “국민연금 대상자는 월 소득액의 4.5%를 납부하지만 공무원은 8.5%를 내고 있다. 그래도 연금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어 공무원들은 전혀 고통분담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먼저 연금 부실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정부가 공무원의 동의 없이 쓴 7조 원의 기금을 메우고 또한 그간의 공로보상을 어떻게 할지 납득할 만한 대책을 세운 후 대화에 응해야 한다.” 논지의 요약에 한계가 있을 수 있으나 핵심은 이런 것이다. 국민들 입장에서야 손해 볼 것 하나 없는데 반갑지 않을 리 없다. 게다가 공무원연금의 엄청난 적자를 국민세금으로 보전해 줘야 한다는 말까지 더해지면 공무원의 논리는 맥을 출 수 없게 된다. 이 정부의 주특기인 ‘편 가르기’가 마침내 공무원과 국민을 나누고 있다. 교원과 국민이 나눠졌던 시기를 생각하면 섬뜩한 기분마저 든다.
김경원 | 저자 [문제] 괄호 안에서 자연스러운 표현을 고르시오. 1. 허구헌 날 밥그릇 (다툼만/싸움만) 허고 앉아 있는 놈들 좀 보게. 2. 갑돌이와 갑순이는 늘 1, 2등을 (다투는/싸우는) 라이벌이다. 3. 개 두 마리가 으르렁거리며 (다투는/싸우는) 장면이 볼만했다. 4. 그 친구는 말로 (다퉈서는/싸워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상대다. 5. 고래 (다툼/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풀이] ‘다투다’는 어디까지나 말로 시비하는 것 매일같이, 아니 시시각각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과도 부딪히며 다투거나 싸우는 것이 우리네 일상이다. 그런데 ‘권력싸움’이 아니라 ‘권력다툼’인 것은 왜일까? 그리고 ‘파벌다툼’이 아니라 ‘파벌싸움’인 까닭은? 또 ‘부부다툼’이 아니라 ‘부부싸움’인 것은 어째서일까? 실로 ‘다툼’과 ‘싸움’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먼저 ‘다투다’는 의견이나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 서로 따지며 옥신각신한다는 뜻이다. “다투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 “아이들 교육 문제로 아내와 다투다”, “돈 문제로 집안 사람들끼리 심하게 다투었다” 등에서 ‘다투다’는 어떤 사안과 관련해 상대를 누르고 자기를 내세우고자 하는 행동인데, 다행스럽게도 이때 이기고자 하는 의지는 ‘말’로만 나타난다. 즉, ‘다투다’는 상대의 감정을 언짢게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말로 시비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니 말을 할 줄 모르는 동물들은 ‘싸우기는’ 해도 ‘다투지는’ 못한다고 봐야겠다. 한편 ‘싸우다’는 사람이나 동물이 힘이나 무기를 써서 상대를 공격하여 이기고자 하는 행동을 가리킨다. 이때 ‘무기’에는 ‘말’이라는 수단도 들어간다. 따라서 ‘친구와 싸운다’나 ‘칼로 싸운다’ 같은 용례와 더불어 ‘말로 싸운다’는 표현도 성립한다. ‘다투다’ 안에는 이미 말로 치고받는다는 전제가 들어 있으므로 ‘말로 다툰다’는 표현은 어색할 수밖에 없으나 복합어로서 ‘말다툼’이나 ‘말싸움’은 모두 훌륭하게 성립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는 이유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은 힘이 센 놈들끼리 싸우는데 뜻하지 않게 사이에 끼여 애꿎은 피해를 입는 경우를 뜻한다. 필자는 어릴 때 이 속담을 들은 뒤로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진다”와 곧잘 헷갈렸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고래 싸움’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제대로 그리지 못했던 듯싶다. 고래 두 마리가 거대한 몸집을 서로 부딪쳐 싸우면서 바닷속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장면을 생동감 있게 상상했더라면 그런 혼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고래들이 벌이는 수중 소동이야말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제3자인 새우를 피해자로 만드는 원인일 테니 말이다. 여기서 조금 장난기를 발동해서 ‘고래 다툼’을 떠올려보자. 두 마리 고래 사이에서 끼이끼이 하며 고성(?)이 왔다갔다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흥분한 다혈질 고래라면 삿대질도 하고 몸부림도 칠 터이니 바닷속이 꽤나 시끄럽고 물살이 일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말만 왔다갔다하는 시비인 바에야 새우 등이 터지는 비극까지는 벌어지지 않을 듯하다. 물론 ‘다툼’이 ‘싸움’으로 번지면 새우의 안존이 위태로워질 터이니 눈치빠른 새우라면 몸을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쯤은 진작에 알고 있으리라. 이렇게 ‘고래 싸움’이냐 ‘고래 다툼’이냐에 따라 새우의 등은 무사할 수도 있고 터질 수도 있으니, 여기에 ‘다툼’과 ‘싸움’의 큰 차이가 있다. ‘다툼’보다 ‘싸움’의 규모가 크다 이렇게 새우 등이 터지느냐 마느냐 하는 절실한 문제에서 충분히 알아챌 수 있듯이, 어쨌거나 말로 싸우는 편이 물리적인 완력으로 싸우는 것보다는 덜 격렬하다. 물론 한마디로 상대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드는 ‘독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물리력 자체만 따져보건대, 아무리 심한 말이라도 상대를 땅바닥에 쓰러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투다’와 ‘싸우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수단의 차이는 겨루는 주체들이 누구냐 하는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다투다’는 개인들 사이에서 일대일로 벌어지는 대립이나 갈등을 나타내는 데 비해 ‘싸우다’는 나라와 나라, 아군과 적군, 관군과 의병처럼 집단과 집단 사이에 벌어지는 큰 규모의 대결을 가리키기도 하는 것이다. 즉 “이라크와 미국이 싸운다”, “죽창을 들고 적과 싸웠다” 할 때 ‘싸움’은 ‘전쟁’이나 ‘전투’와 동의어가 된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갈등이 표현되는 격렬함의 정도에서도 두 낱말 사이에 차이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죽자사자 ‘다툰다’고 한들 ‘싸움’이 발산하는 격렬함에 비하면 약과일 따름이다. ‘싸움’의 대상이 더 고차원적이다 ‘다투다’가 주로 개인들 사이에서 사적이고 일시적인 사안을 두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의견 대립을 의미하는 데 비해 ‘싸우다’는 윤리적인 견해나 정치적 입장을 둘러싸고 공적으로 혹은 장기적으로 대립하는 경우를 포함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다투다’는 감정적인 측면이 강하고 때로는 좀스러운 갈등이라는 느낌을 주는 반면, ‘싸우다’는 갈등의 면모가 거창하고 대단하게 느껴지는데다 때로는 정신적 분투나 내면적 투쟁처럼 추상적인 차원까지 아우르는 어감이 있다. 그래서 ‘싸우다’에는 가난, 굶주림, 고통, 죽음, 병마, 추위, 유혹, 자신 같은 추상적인 대상에 맞서 그것을 이겨내려고 노력하거나 시련을 참아낸다는 뜻이 들어 있다. “조국의 발전을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 “시베리아에서 겨울을 맞이한 군대는 살인적인 추위와 싸워야 했다”, “자유는 피 흘려 싸워야 얻을 수 있다” 등이 모두 이런 경우다. ‘다투다’와 ‘싸우다’는 공격성에서도 차이가 난다. ‘다투다’가 상대를 제압해서 쓰러뜨리려고 하기보다는 자기가 옳다는 것을 주장하는 데 초점을 두는 데 비해 ‘싸우다’는 기필코 자신이 상대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싸우는’ 목적을 달성하려면 반드시 자기 발아래 상대의 무릎을 꿇려야 하니,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식의 오기와 승부욕이 따라붙을 수 밖에 없다. 목표가 초점이면 ‘다툼,’ 상대가 초점이면 ‘싸움’ 앞에서 왜 ‘권력싸움’이 아니라 ‘권력다툼’이며 왜 ‘파벌다툼’이 아니라 ‘파벌싸움’이냐는 질문을 던졌었다. ‘다투다’는 남보다 앞서거나 상대를 이기기 위해 서로 겨루되, 어디까지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함이라는 긍정적인 뜻이 강하다. 즉 ‘권력을 다투다’, ‘왕권을 다투다’, ‘수석을 다투다’, ‘우승을 다투다’, ‘선두를 다투다’, ‘앞을 다투다’, ‘주도권을 다투다’ 등에서 ‘다투다’는 상대를 꺾어 누르기 위함이 아니라 권력, 왕권, 수석, 우승, 선두, 앞, 주도권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따라서 ‘다툼’이나 ‘싸움’이 따라붙는 복합어의 경우에 앞에 오는 말이 어떤 목표를 제시하는 것일 때에는 응당 ‘다툼’이 되어야 한다. 이런 뜻을 좀 넓힐 때 ‘시간을 다툰다’는 관용 표현을 얻을 수 있다. “한시를 다투는 긴급한 출동”, “1분 1초를 다투는 위급한 수술”에서처럼 짧은 시간이라도 되도록 아끼려고 애쓸 때 ‘다툰다’고 하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목표가 초점에 놓여 있기 때문에 가능한 표현이다. “고도의 정확성을 다투는 기술”, “1mm를 다투는 정밀성”같이 아주 미세한 차이로 성패가 갈릴 때 ‘다툰다’는 말을 쓰는 것도 똑같은 맥락에서다. 한편 ‘싸움’의 경우에는 대결의 상대가 표면으로 떠오른다. “최선을 다해 싸운 경기였다”, “강한 팀을 맞아 힘겹게 싸웠다”에서 ‘다투다’가 아니라 ‘싸우다’가 쓰인 까닭은 승리라는 목표 자체보다는 상대를 염두에 둔 전투적 대결의식과 승부욕에 초점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중요한 차이점이 또 하나 있다. ‘다투다’는 엇비슷한 힘을 소유한 이들끼리 대등한 관계에서 갈등하는 것인 데 비해 ‘싸우다’는 힘이나 실력에서 우위에 있는 상대와 대결하는 경우에 쓰인다는 것이다. ‘부부다툼’이 아니라 ‘부부싸움’인 까닭 그렇다면 목표가 앞에 제시되어 있는 ‘밥그릇싸움’의 경우에는 왜 ‘밥그릇다툼’이 아닌 걸까? 그 까닭은 ‘밥그릇’이 단순히 먹을 것이나 이익을 비유했다기보다는 부정적인 의미의 이권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밥그릇싸움’이라는 말에는 정당하지 못한 목표를 놓고 이전투구를 벌이는 사람들에 대한 윤리적 비난의 의미가 담겨 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다툼’ 앞에는 어디까지나 긍정적인 목표가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밥그릇’과 달리 긍정적인 대상인데 어째서 ‘사랑다툼’이 아니라 ‘사랑싸움’인 걸까? 여기서는 ‘사랑’이 쟁취의 대상이 아니라 갈등의 주체라는 데 열쇠가 있다. 즉 ‘사랑싸움’은 두 사람이 서로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이 서로 부딪치며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을 나타낸다. 이렇게 대결의 주체가 앞에 붙었기 때문에 ‘사랑다툼’이 아니라 ‘사랑싸움’이 된 것이다. ‘소싸움’, ‘닭싸움’에서 ‘소’와 ‘닭’이 대결의 주체인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부부싸움’이다. ‘부부다툼’이면 좋았을 것을, 왜 하필 ‘부부싸움’이 된 것일까? 앞에서 살펴본 대로, 해답은 부부라는 갈등의 주체가 전면에 등장하고 또 ‘상대’가 초점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니 아무리 부부라도 일단 ‘싸움’을 벌인 이상 우열을 가리는 일은 피할 수 없다. ‘다투다’가 그저 남보다 더 잘하고자 하는 것이어서 상대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지는 않는 데 비해 전투성과 공격성을 전제로 하는 ‘싸우다’에서는 진 쪽이 쓰라린 피해를 입게 되어 있다. 따라서 ‘부부다툼’이 아니라 ‘부부싸움’이 된 까닭은 무릇 이런 갈등이 상대의 가슴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히기 마련이어서인지도 모른다. 실로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요약] 다투다 ∙개인들 사이의 일대일 대립만을 가리킴 ∙말이 주요 수단 ∙대등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갈등, 경쟁, 비교적 일상적인 대립 싸우다 ∙개인 대 개인, 집단 대 집단 대결을 두루 가리킴 ∙말보다는 힘이나 무기가 주요한 수단 ∙제압을 목적으로 한 격렬한 대립 [답] 1. 싸움만 2. 다투는 3.싸우는 4.싸워서는 5.싸움
박경민 | 역사 칼럼니스트(cafe.daum.net/parque) 근대로 가는 역사 구분의 전환점 우선 개념정리부터 필요하다. ‘소생’ 또는 ‘재생’을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된 ‘르네상스(Renaissance)’는 역사상 어느 특정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구분을 뜻하는 말이다. 즉, 중세를 졸업하고 근대로 가는 역사 구분의 전환점에서 바로 르네상스가 동행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르네상스가 이탈리아 특히 북부지역에서 시작된 배경은 옛 로마제국 시대로부터의 유산을 직접적으로 물려받고 일찍부터 다른 유럽 국가보다도 도시 활동이 활발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십자군 운동기간에 이탈리아 상인들은 동방의 여러 나라와 접촉하여 고도로 발달되고, 아라비아의 과학이 접목된 그리스 자연과학 및 철학사상과 접할 수 있었으며 이때 그리스-로마신화가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당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적극적 후원자였던 교황들과 제후들은 미술과 문학 분야에 있어서 인문주의자의 활동을 마치 자기 일처럼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였는데, 특히 교황 율리우스 2세와 레오 10세, 피렌체의 메디치가(家), 밀라노의 비스콘티가(家)가 대표적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쟁쟁한 인문주의자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휴머니스트 중의 휴머니스트, 휴머니스트의 왕’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네덜란드의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는 루터의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순수성과 소박함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벌여 교회의 타성화된 의식(儀式)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그리스도를 본뜬 참다운 생활로 돌아가자고 호소하면서 당시 교회에서 사용되어 오던 ‘불가타역(譯)’이라는 라틴어 신약성서를 불신하고 그리스어로 된 원전을 다시 번역하여 수년간의 고생 끝에 초기의 필사본에서 신약성서를 번역하고 주석을 달아 1516년에 출판하였다. 비록 우리나라보다는 200년이나 늦었지만, 이미 1447년에는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하였고 1454년에는 구텐베르크 성서출판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최초의 원어 신약성서 출판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에라스무스의 노력은 가톨릭교회의 타성적 형식주의를 비판하는 데에 이르렀는데, 대표적 저서인 〈치우신예찬(痴愚神禮讚, Encominum moriae)〉에 그의 속마음을 모두 털어놓았다.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이 책은 교회 성직자의 부조리와 부도덕성을 공격함으로써 루터의 종교개혁(1517)에 민중이 호응할 수 있는 기틀을 다져 놓았던 것이다. 새로운 항로 개척에 나선 두 나라 중세 말까지 유럽인의 세계관은 극히 제한적이었으나 십자군 원정 기간을 통해서 접한 동방 문명으로 세계관이 넓어짐에 따라 아라비아 저편의 동쪽 지역과 대서양 건너편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대항해 시대 이전에도 탐험의 시도는 있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5세기 전에 당시 노르웨이인 에릭이 아이슬란드에서 추방되어 그린란드를 발견하였고, 다시 11세기 초 에릭의 자손인 라이프가 아메리카 쪽으로 내려와 라브라도르에 도착하였으며 더 남하하여 뉴잉글랜드에 닿았다. 그 밖에도 노르웨이인들은 북극지방으로 항해한 적도 있었으나 하나의 전설로 유럽사에서 잊혀진 일이 되고 말았다. 7세기에 모하메트가 이슬람교를 창시한 이후,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투르크에게 점령을 당한 후에는 더욱 유럽 세계가 좁아졌고 실크로드를 통한 유럽과 동양 사이의 통로가 사실상 폐쇄되었다. 그러나 15세기 말부터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유럽에서 제해권을 장악하고 나아가 세계 탐험에 나서면서 탈 유럽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는 불가능해진 육로 무역을 포기하고 동양 항로를 개척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베리아 반도의 두 나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기나 긴 세월동안 이슬람과의 국토회복 전쟁을 통해서 천문과 지리에 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으며, 게다가 몽골제국 시대에 유럽으로 전해진 나침반으로 장거리 항해를 위한 성숙된 여건을 갖출 수 있었다. 포르투갈이 먼저 선수를 쳐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기 4년 전에 이미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인 희망봉에 도착하였고 10년 후에는 인도의 캘커타에 도착하였다. 당시 인도의 후추를 비롯한 향료는 유럽에서는 같은 비중의 금과 교환된다고 할 정도로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어 유럽인들은 항로개척에 정열을 쏟아 부었다. 바다의 동쪽 길을 이미 포르투갈에 의해서 선점 당한 스페인은 바다의 서쪽 길을 통해서도 향료의 나라 인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 콜럼버스에게 후원을 약속하였고, 그에 대한 보증으로 ‘산티페 협약(1492년)’을 맺었다. 식민지 건설로 이어지는 대항해 드디어 콜럼버스는 구름이 짙게 깔린 스페인의 사르테스 강을 핀타 호, 니냐 호, 산타 마리아 호를 이끌고 조용히 빠져 나와 대양을 항해 하였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망망대해에서 선원들은 지치기 시작하였고, 콜럼버스 자신도 회의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인도로 가는 길이 너무 험하고 멀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그 순간, “육지다, 육지!” 핀타 호의 마스트에서 불침번을 서고 있었던 갑판원이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1492년 10월 12일 새벽 2시 무렵이었으며 콜럼버스는 자신의 계산이 들어맞았다며 인도라 믿는 바람에 그 뒤로부터 졸지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인도 사람(인디오, 인디언)이 되고 말았다. 아무튼 콜럼버스가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고 네 차례의 항해 끝에 1518년 산또 도밍고(Santo Domingo)에 본격적인 식민지 경영을 위한 총독부를 설치함으로써 라틴 아메리카에는 유럽인들에 의한 침략과 정복, 약탈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항해술이라고 하면 결코 스페인에 뒤질 포르투갈이 아니었다.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 1469~1524)는 1497년 포르투갈의 마누엘 1세로부터 인도 항로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고 리스본을 출발하여 이듬해에 아프리카 동해안의 메린다에 도착하였다. 그 후 10년 동안 항로를 찾아 인도에 도달하여 동양 항로를 개척하였고(1498), 까브랄은 브라질을 발견하여 그곳에 포르투갈 식민지를 건설하였다(1500). 특히 원래 포르투갈 사람인 마젤란(?~1521)은 1518년 스페인 국왕(카를로스 1세)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카알 5세)의 특허장을 받고 1519년 5척의 함대와 승무원 280명을 이끌고 세비야(Sevilla)를 출항하여 세계일주여행(1519~1522)을 떠났다. 1520년 남아메리카의 남단 마젤란 해협을 통과하자, 그 때까지 보이지 않았던 큰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는‘태평양’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는 계속 항해하여 1521년에는 괌도를 지나 필리핀 제도를 발견하였지만, 막탄섬에서 원주민들과 싸우다가 전사하고 말았으며 드디어 1522년 만신창이가 된 한 척의 배가 귀항하였는데, 그 배는 다름 아닌 마젤란의 탐험대 가운데 한 척이었다. 살아 돌아온 인원을 세어보니 거지꼴을 한 18명이 타고 있었다.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항로를 개척한 이후, 포르투갈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인도로 항해하였고, 그 때 고아, 실론, 수마트라, 자바 등을 점령하여 무역 전진기지로 삼았으며 1542년에는 포르투갈 상선이 일본에까지 이르렀다. 1557년에는 마카오에 식민지를 건설하여 극동 무역의 중심지로 삼았다. 사회 변화로 이어지는 종교개혁 종교개혁의 도화선에 불을 댕긴 루터의 주장이 많은 유럽인들의 호응을 얻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루터의 개혁(프로테스탄트 개혁)운동이 단순히 종교적인 면에서만 출발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루터의 개혁운동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고 각 지역의 정치적·사회적·경제적인 요인이 추가되어 하나의 역사적 대사건으로 전개되어 나갔다. 하지만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한 일차적인 원인은 가톨릭의 쇠퇴와 형식주의적 타성에 있었으며 또 한 가지 중세 말기의 경제 및 사회적 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도시의 발달과 상업 르네상스가 ‘황금만능주의’를 유발시킴으로써 면죄부 판매의 길을 쉽게 열어주게 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루터는 세 가지 유일사상, 즉 ‘오직 성서(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총(Sola Gratia)’이라는 오캄의 유명론 신학을 발전시켜 ‘만인 사제론(萬人 司祭論)’을 주창하였다. 그는 1517년 면죄부 판매에 반발하여 95개 논제를 제기함으로써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겼는데, 라이프치히, 뉘른베르크, 바젤의 출판업자들이 이 내용을 출판함으로써 1518년에 들어서면서 이 논제가 세인의 관심을 모으게 되었다. 이는 활자매체를 통한 언론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 최초의 사건이었으며 결국 루터는 1521년 1월 3일에 공포된 교황의 교서에 의해 정식으로 파문을 당했다. 그러나 루터의 명성은 독일 전국에 퍼졌고 대다수의 독일인들이 그를 지지하여 루터는 1522년에 비텐베르크로 돌아가 루터교(Lutheranism)를 창립하였다. 스위스에서는 츠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의 주도로 개혁운동이 진행되었는데 그는 루터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사제서품을 받고 신부가 되었다. 츠빙글리의 개혁은 에라스무스의 종교적 관념을 일상생활의 철학적 지침으로 받아 들였다. 츠빙글리의 개혁은 루터보다 더 과격하였으며 자유로운 성서 해석을 하였다. 츠빙글리의 프로테스탄트는 유아세례 문제로 1524년 재세례파가 등장함으로써 분열되었는데,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시작된 츠빙글리의 개혁운동은 다른 주(canton)로 옮겨가고 차츰 스위스 밖의 지역, 예를 들어 슈트라스부르크 및 라인강 상류의 다른 독일 도시로 전파되었으나 1531년 츠빙글리가 전사하자 그의 개혁교회는 지도자를 잃고 침체하였다. 1532년 스위스의 가톨릭 주(canton)와의 싸움에서 츠빙글리가 전사한 후 개혁운동이 주춤했으나 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의 출현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대륙에서는 루터파의 직접적인 영향이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이외 지역에는 미치지 못하였고, 스위스·프랑스·네덜란드·스코틀랜드 지역은 칼뱅의 개혁교회 세력에 지배되고 있었다. 특히 스위스를 중심으로 칼뱅의 개혁교회가 쉽게 뿌리를 내린 것은 이미 앞에서 말한대로 츠빙글리에 의해 기초가 다져진 덕분이었다. 사실 칼뱅의 개혁사상은 루터보다는 츠빙글리에 가까웠으며, 16세기 전반기 스위스 13개주는 신성로마제국의 영향권에 있었지만 각기 독립적인 공화정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당시 유럽의 심장부에 위치한 스위스는 상업과 교역으로 크게 번창하였고 스위스의 북부 도시, 예를 들어 취리히, 바젤, 베른 등은 일찍부터 그리스도교적 휴머니즘을 받아들였으며 특히 에라스무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다. 칼뱅은 장로직제를 골자로 하는 개혁을 단행하였고 상공계급이 많은 북 네덜란드에서는 고이센파, 프랑스에서는 위그노파, 스코틀랜드에서는 퓨리턴파라 불렀으며 그의 개혁운동이 성공한 요인은 ‘경제활동의 합리화’로 이는 궁극적으로 근대적 자본주의 형성에 기여하였다.
박준용 | 한양대 강사, 영화평론가 도라, 조슈에와 세상에 나서다 전직교사 출신의 도라는 브라질의 대도시 리우 데 자네이루의 중앙역에서 글 모르는 이들을 위해 편지를 대필해 주는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는 중년의 여인이다. 사랑을 호소하는 이, 아들에게 관심을 촉구하는 늙은 아버지, 받을 돈을 독촉하는 사람, 헤어질 것을 통보하는 연인 등 중앙역을 가득 메운 사람들처럼 그네들의 사연도 다양하다. 고된 하루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도라의 유일한 즐거움은 친구와 함께 편지를 뜯어 읽어보고 자신이 보기에 쓸데없는 소리를 적어놓은 편지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머지 편지들은 그냥 서랍 속에 넣어두는 것이다. 편지를 부탁하는 이들이야 절박할지 몰라도 그녀에게 있어 이 모든 일들은 그저 먹고 살기 위한 기계적인 직업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계나 자본과 같은 비인간적인 대상을 다루는 직업과 달리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매개하는 ‘편지’를 써 주는 도라의 직업은, 학생이라는 살아있는 대상과 관계를 맺고 이를 토대로 성장과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일인 그녀의 전직이었던 교사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게 느껴진다. 문제는 도라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상처로 인해 세상의 모든 인간관계를 일종의 거짓이나 허상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데 있다. 이런 이유로 그녀에게 있어 편지란 무의미하며, 대필하는 일은 말 그대로 고단한 직업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여인 아나가 도라에게 떠나간 남편에게 보낼 편지를 부탁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집에 돌아온 그녀는 편지를 서랍 속에 내팽개쳐둔다. 그리고 다음 날, 도라는 전날의 편지를 고쳐달라며 다시 찾아온 여인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는 장면을 목격한다. 졸지에 갈 곳 없는 고아가 되어 버린 소년 조슈에는 역 주위를 떠돌고, 도라는 소년의 미래를 위하는 것이라며 입양원에 팔아넘긴다. 그러나 사설 입양기관 직원을 자처했던 그들은 아이들의 장기를 빼내 팔아넘기는 인신매매꾼들이었고, 도라는 그 사실을 알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결국 무작정 조슈에를 구해낸 도라는 소년의 아버지를 찾아주기로 결심하고, 둘의 여행과 더불어 영화는 본격적인 ‘로드 무비’ 장르의 형식을 취하게 된다. 교제와 나눔을 전제로 하는 신뢰 월터 살레스 감독의 최근작으로 혁명가 ‘체 게바라’의 초기 삶을 다룬 영화 처럼 로드 무비 형식의 영화는 대부분 등장인물들이 긴 여행 과정에서 다양한 인생의 굴곡을 경험하며 겪게 되는 변화와 성숙의 과정을 그린다.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 역시 마찬가지이다. 함께 긴 시간을 보내면서 두 사람은 때로는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도 하고, 그 이상의 연민의 정을 나누기도 하며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것은 마음을 연다는 것이 꼭 모범적인 삶의 실천을 통해서만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도라는 어느 간이역 매점에서 배고픔에 음식을 훔치는 조슈에를 발견한다. 크게 놀라 야단을 치지만, 그녀는 좀 더 대담하게 많은 식료품을 훔쳐 나온다. 소년은 자신에게는 하지 말라고 하면서 음식을 훔친 그녀에게 대들지만, 먹기 좋게 빵을 잘라 나누는 도라의 손길에 마음이 풀어지고 만다. 대개 사람들은 참된 교육이란 진실한 신뢰의 관계를 토대로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절대적인 시간의 교제와 나눔을 전제로 하는 신뢰는 상황과 현실에 대한 변명 속에서 애써 외면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국 피상적 지식전달자와 수용자의 메마른 사제관계는 회피하기 어렵다. 마치 도라의 문장력이 일종의 기능적인 기술로 돈벌이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말이다. 자의건 타의건 간에 도라와 긴 호흡의 시간을 나누게 된 조슈에는 어린 나이임에도 메말라버린 그녀의 몸과 마음을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뿐만 아니라, 다시 여성으로서의 삶을 회복하기를 응원하기에 이른다. 그렇다. 교사의 삶이 언제나 학생을 일방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라면, 세상에 그렇게 고단한 직업이 또 어디 있겠는가? 교육의 진정한 기쁨 중 하나는 바로 이렇듯 도리어 아이들이 어른을, 학생이 교사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역설적인 나눔의 순간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도라는 어린 조슈에로부터 너무나 오랫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삶의 생기어린 격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새로운 삶의 의지가 슬며시 일어나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개개인의 다양한 ‘이야기’ 봐야 그러나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이 늘 이상적인 즐거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간 마을에 조슈에의 아버지는 이사를 가고 없다. 다시 떠나야 하는 고된 길. 신경이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둘은 서로 충돌하게 되고 조슈에는 ‘가출’을 감행하게 된다. 도라는 걱정스런 마음에 소년을 찾아 헤매던 중 그만 정신을 잃고 만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도라는 밤을 새워 자신을 간호하고 있는 소년을 발견한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평범한 그러나 인생의 묵직한 지혜가 느껴지는 말처럼, 두 사람은 이 일로 인해 서로를 보다 깊이 사랑하는 관계가 된다. 이후 조슈에의 재치 있는 제안으로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도라는 시골사람들을 위해 편지를 써주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편지를 쓰면서 이전에는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순박한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고통, 감사의 살아있는 말들을 느낀다. 일이 끝나자 조슈에는 당연하다는 듯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려 한다. 하지만 황급히 그것을 말리면서 도라는 그동안 자신이 한 일이 얼마나 잔인한 일이었는가를 가슴깊이 깨닫게 된다. 삶의 이야기로서 맥락을 잃어버린 ‘편지’는 글로 채워진 종이뭉치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러티브’, 곧 살아있는 관계의 눈으로 보는 ‘편지’는 하나하나가 세상의 유일무이한 가치요 존재인 것이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학생들은 자칫 그저 번호나 명목상의 이름으로 불리는 단순한 교육대상인 집단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열 명, 스무 명의 아이들은 각기 고유한 삶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이야기’라는 의미에서 특별한 존재들이다. 도라가 ‘편지’를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그런 맥락을 발견하는 순간이 되었듯이, 교사에게 있어 학생이 그런 소중한 존재로 자리매김 되는 것은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볼 수 있게 되는 순간이 아니겠는가! 정해진 시간 이후 떠나는 마음 긴 여정의 끝에 드디어 도라와 조슈에는 아버지의 집을 찾게 되고, 그 곳에서 다른 형제들을 만나게 된다. 비록 아버지는 없었지만 소년을 너무나 잘 대해주는 장성한 형제들의 모습을 보며 도라는 이제 자신이 떠나야 할 때가 다가왔음을 느낀다. 마지막 날 새벽 도라는 소년이 사준 옷을 입고, 곱게 화장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잠든 조슈에의 얼굴을 바라보고, 자신이 부치지 못했던 소년의 어머니가 쓴 마지막 유언이 되어버린 편지를 남겨놓고 길을 떠난다. 새벽을 향해 걸어가는 도라의 발걸음은 희망찬 새 삶을 시작한 어떤 사람처럼 가볍고 경쾌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녀는 떠나가는 버스에서 조슈에에게 편지를 쓴다. 자신의 아버지로 말미암은 상처를 떠나보내며, 자신의 사랑과 진심 그리고 깊은 그리움을 담은 편지를 쓰면서 말이다. 이런 도라의 모습은 이상적인 교사의 삶에 대한 훌륭한 은유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아니지만 어미의 심정을 가지고 한정된 시기를 아이와 함께 살아가다, 정해진 때가 되면 그 자리를 말없이 떠나 뒤로 물러나야 하는 삶 말이다. 떠나는 도라의 뒤를 숨이 턱에 차오르게 쫓아오는 조슈에의 모습은 그간 그녀의 노력과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열매이다. 모쪼록 새롭게 시작한 2007년, 모든 교사들에게 풍성한 결실의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최근 교육계에 워낙 많은 이슈가 있어서 어지간한 이슈는 수면위로 떠오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이슈는 교원평가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교단개혁이 단연 으뜸이다. 이 틈을 타고 종종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 교복문제이다. 원가보다 엄청나게 부풀려진 가격문제 때문인데, 학부모들은 교복없이 등교시키는 문제까지 검토하고 있다니 쉽게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교복역시 업체마다 하청업체를 두고 있다(특히 대기업일 경우). 이들 하청업체에서 제작하는 교복의 원가는 인건비를 포함하여 10만원 남짓이라고 한다. 실제로 교복을 유통시키는 업체에서도 이와같은 사실을 인정은 하고 있다. 문제는 유통과정이라고 하는데, 공장원가 10만원짜리를 본사가 지역총판에 15만원 정도에 넘긴다. 이 가운데 1만 5천원을 지역총판에서 남기고, 지역총판은 다시 대리점에 교복을 넘기게 되는데, 대리점에서는24만 5천원 정도에 판매를 한다. 이렇게 유통을 거치면서 본사 이익이 3만 5천원. 지역총판 1만 5천원, 대리점 9만 5천원 정도의 이익이 포함되어 원가보다 2.5배 정도에 학부모가 구입하게 된다.(자료: MBC뉴스, 1월 31일자) 결국 원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교복을 구입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인데, 여기에 유명연예인을 동원한 광고가 성행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교복값은 얼마나 더 오를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런 부담들은 당연히 학부모들에게 경제적 압박을 가하게 된다. 대리점 측에서는 한철 장사라고 주장한다. 당연히 교복판매이익이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업체측에서는 교복은 일반양복보다는 사정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따라서 거품이 많지 않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교복을 공동구매로 구입하면 가격을 많이 낮출 수 있지만 이 방법도 쉽지만은 않다. 지난해의 경우를 보면 대기업체는 공동구매에 참여하지 않거나, 참여하더라도 할인폭이 높지 않아 실효를 거두기 어려웠다. 또한 공동구매에 참여하는 업체도 일정량 이상 구매할때 가격을 낮추겠다는 옵션을 내걸기도 한다. 만일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다음해에 공동구매추진에 상당한 애로가 있게 된다. 그래도 일선학교에서는 학부모를 중심으로 공동구매를 매년 추진하고 있다. 많은 학부모들이 공동구매에 참여해야 하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다. 현실적으로 공동구매를 통해 구입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공동구매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학부모들의 대기업체 교복을 선호하는 인식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공동구매로 계약된 업체의 교복보다 참여하지 않은 업체의 교복의 질이 더 좋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더라고 공동구매에 참여하지 않은 업체의 교복을 구입한다.'고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업체가 공동구매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현재로써는 공동구매가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많다면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즉 교복을 폐지하면 어떨까 싶다. 학생들의 두발자율화가 대세인 요즈음에 굳이 교복을 입혀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두발은 자율화 하면서 교복은 억지로 입힌다는 것이 시대적으로 볼때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물론 교복을 없애면 많은 문제가 발생할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그렇지만 현재와 같이 교복 문제가 수시로 대두되는 시점에서 하나의 방안으로 검토해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예전에 교복자율화를 실시했을때도 생각보다 큰 문제는 없었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교복가격거품을 제거하여 적절한 값으로 학생들에게 교복을 입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문제가 자꾸 커진다면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며 그 대책중에는 교복폐지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치원 전환’을 조건으로 지난 2년간 유아교육비를 지원받은 유아미술학원 대부분이 유치원으로 전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교육부는 약속을 어긴 유아미술학원에 대해 1년간 더 예산을 지원할 방침이어서 “혈세 낭비”라는 유아교육계와 교총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유아교육발전을 위한 유아교육대표자 연대’는 31일 교육부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지원을 받은 미술학원 중 유치원으로 전환하겠다는 비율은 고작 14.6%고 나머지는 거부 의사를 밝혔다”며 “정부의 허술하고 무계획적인 지원이 공교육비로 사교육을 조장한 꼴이 됐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교육부가 최근 41개 유아미술학원을 표집조사한 결과, 단 6곳만이 유치원 전환 의지를 밝혔고 나머지는 ‘전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는 ‘유치원 전환 희망 학원에 대해 유아교육비를 지원한다’는 유아교육법시행규칙에 정면 위배되는 것으로 “정부가 불법 지원을 자행하고 있다”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이번 연구를 수행한 육아정책개발센터 한 관계자는 “시도에 따라 각서를 받기도 하고 안 받기도 하는 등 기준이 모호했고, 사실 처벌규정이나 지원비 환수 규정도 없어 미술학원에 유치원 전환을 강제할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유아교육대표자연대는 “미술학원 지원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2년 한시로 못박은 법에 따라 추가 지원 방침을 즉각 중단하라”며 “이를 거부한다면 유아교육계는 감사원 감사청구, 위헌 소송, 가처분 신청은 물론 시민, 학부모, 교원단체와 총연대해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 1일 당정협의를 가진 정부와 교육부는유아미술학원 1년 연장 지원과 함께 좀더 근본적인 정책방향을 모색하기로 해귀추가 주목된다. 한 관계자는 "매번 연장 지원을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장기적인 정책대안을 마련해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정협의를 마친 교육부는 바로유아미술학원 지원 유효기간을 2008년 2월 28일로 하는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한나라당 대권주자인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가 31일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지원 강화를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막고 국가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다. 박 전 대표는 이날 낮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정례 기자간담회를 갖고 "저소득층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문화 및 정보 격차에 노출돼 있는데도 이를 그대로 두고 같이 경쟁하라고 하면 결국 그 문화.정보격차가 가난의 대물림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며 교육분야의 지원 필요성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특히 구체적인 지원방안으로 문화ㆍ교육ㆍ정보통신 분야에서 '바우처 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주장할 예정이다. 바우처란 정부가 저소득층에게 보육, 교육.훈련, 문화, 주택, 의료, 식료품 지원 등 해당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불을 보증해 주는 증서로 일종의 이용권(교환권)이다. 그는 또 실업고와 전문대를 통합한 '기술사관학교'를 설립해 학비를 전액 지원하고 졸업 이후에는 취업까지 보장하도록 하는 방안도 제시할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표는 이와 함께 최근 영어 교육을 위한 해외 조기유학이 급증하면서 연간 15조원 가량의 돈이 빠져나가고 이 과정에서 '기러기 아빠'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영어 교육에 대한 획기적인 국가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할 예정이다. 그는 또 대학 교육과 관련, 교육부의 각종 규제 철회를 촉구하는 한편 1천만원 시대에 접어든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도 모색 중이라는 입장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교수노조 합법화가 2월 임시국회에서 가시화될 전망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배일도 의원과 전국교수노조가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30일 연 ‘교수노조 설립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는 그런 분위기로 충만한 자리였다. 인사말에서 한나라당 배일도 의원은 “OECD 국가 중 교수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 뿐”이라며 “교수에게 노동권을 보장하고 교수노조가 이 사회에서 어떻게 기능하게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게 오늘 토론회의 의미”라고 강조했다. 배 의원은 토론자로 나서서도 “세간에서는 한나라당이 교수노조 합법화를 발목 잡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결코 그런 당론을 정한 바가 없다”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법안인만큼 2월 임시국회에서 적극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열린우리당 우원식(환노위 법안심사소위원장) 의원도 “2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법안을 다룰 것이며 공청회도 개최할 계획”이라고 교수노조에 밝혔다. 또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민노당 단병호(환노위 법안심사소위위원) 의원도 “교수는 당연히 노동자로서 지난해 정부 의지만 있었다면 교수노조 합법화 법안이 연말에 통과됐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환노위 여야 3역이 교수노조 합법화에 긍정적인 입장인 점을 감안하면 늦어도 4월까지는 이 문제가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배일도 의원은 “법안소위에서 정부와 이해당사자들과의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안을 마련하고 의원들을 설득하며 잘 될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교수노조 합법화를 위한 입법방향에 대해서는 지난해 11월 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이 제출한 교원노조법 개정안이 가능성 있게 논의됐다. 현재 국회 환노위에는 기존 교원노조법 조항에 고등교육법에 의한 교원을 적용대상으로 추가하는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김한성 전국교수노조 부위원장은 주제발표에서 “장기적으로야 교원노조법을 폐지하고 일반 노조법의 적용을 받아야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우선 이목희 의원안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노동 3권도 장기적으로는 모두 보장돼야 하겠지만 우선 단결권, 단체교섭권 일부를 갖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측 입장을 대변한 김민석 노동부 공공노사관계팀장은 “교수 직군의 특징이 일반 근로자와 다르다는 인식이 엄존한다”며 “노동권 허용시기, 범위 등에 대해서는 좀더 국민적인 여론수렴과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김 팀장은 현행 교원노조법에 대학교원을 추가하는 입법방향에 대해서도 “현행 교원노조법은 정치활동의 금지를 명시하고 있고, 또 교섭단위가 시도, 전국 단위로 돼 있어 현재 학교 재정상황, 전문대․대학 별로 상이한 근무조건에 놓인 대학에 바로 적용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또 “대학평의원회 구성이 사학법 통과로 명시화된 상황에서 교수노조가 꼭 필요한가하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노동부의 입장을 볼 때, 법안 논의과정에서 정부 측의 상당한 반대가 예상된다.
치열한 대입 경쟁이 논술 시험으로 판가름 난다는 홍보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실제로 합격의 판별이 논술로 드러날 것을 예상하는 입시생과 학부모는 적지 않다. 그럼에도 어느 한 곳에서도 응시생을 위한 논술의 원리를 말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기이한 일이다. 그 까닭이라도 헤아려 보면 입시생의 긴장과 학부모의 초조한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교육부가 바라는 논술의 평가 기준과 각 대학 입시 관리본부가 밝히는 논술 채점 기준에 전폭적으로 공감하지 않는 데는 까닭이 있다. 우리나라 작문의 원리와 평가 기준이 학문적으로 명쾌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이 문제는 논술 평가 기준이 대학마다 다른 데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대학 입학의 합격을 좌우하는 논술이라지만 글쓰기의 원리를 벗어난 문장 기술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문자를 창제하고 그 배경을 기술한 문서를 국보로 지정한 겨레이다. 그런 훈민정음에서 작문과 그 평가 원리를 도출하였기에 더욱 뜻 깊은 일이다. 이런 정전에서 도출한 선택, 확장, 배열, 통합, 전이 원리는 논술의 원리로도 활용할 수 있다. 선택 원리는 주제, 제목은 말할 것 없고, 낱말, 문장, 문단이 그 하위 범주이다. 이렇게 선택한 주제에 따라 생각을 펼치는 데는 확장 원리가 작용한다. 개념을 분명히 하여 문장을 진술하고, 넓힌 생각을 연결하여 문단을 조직하고, 이런 작은 주제 단위의 문단을 배열 원리에 따라 구성하면 담문(글)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문장 기술에 작용하는 3대 원리이다. 그런데 여러 대학이 요구하는 논술은 이러한 기본 원리에 통합과 전이 원리를 충족시켜야 한다. 원래 통합은 전통적 가치와 불변의 진리일지라도 변증법적인 진화의 정신을 지향하는 개념이다. 통합 논술은 인문학문과 과학학문, 사회학문과 예술학문의 문제를 상보의 시각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 방식이다. 이런 논리 전개에 새로운 세대의 참신한 발상을 반영하려면 당연히 수사 기법이 활용된다. 이 때 표현의 전이 원리가 논술의 정체를 드러내는 전략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여기서 논술의 의의와 문제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논술은 우리 글쓰기의 전통임을 알아야 한다. 중세의 과거와 현재의 고시 또한 논술 체제임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러한 논술의 경쟁력을 높여야 문사철의 전통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다. 이 또한 인문학의 위기를 타개할 좋은 방법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앞으로의 통합 논술은 우리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장기 전략임을 깨달아야 한다. ‘3불 정책’으로 어떻게 교육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단 말인가. 통합 논술 문제를 시비하기보다 논술의 평가 기준을 표준화할 방안 탐색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드디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학교용지확보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학특법') 일부 조항에 대하여 위헌제청이 되었다. 2007년 1월 8일에 헌법재판소에 대전지법과 부산지법에서 학교용지 부담금 부과처분 취소 소송의 판결에 앞서 이 법률의 위헌여부가 판결의 전제조건이 되어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게 된 것이다. 학특법의 제정 목적은 공립의 초등학교·중학교 및 고등학교용 학교용지의 조성·개발·공급 및 관련경비의 부담 등에 관한 특례를 규정함으로써 학교용지의 확보 또는 학교용지의 확보가 불가능한 경우 인근의 기존 학교 증축을 용이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 규정 중에서 100세대 이상을 개발하는 사업의 경우에 개발사업시행자에게 학교용지부담금(이하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에 대하여 대전의 건설업체와 부산의 모 공공기관이 불복하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게다가 자신들이 낸 부담금에 대해서 대부분의 건설업체들이 이의신청을 제기해 놓은 상태라서 만일 위헌판결이 날 경우 모두 되돌려 줘야할 상황이다. 이러다 보면 가뜩이나 학교설립에 필요한 재원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도교육청은 이중삼중의 고충을 겪게 된다. 특히, 경기도 같은 곳은 수많은 택지개발사업의 시행으로 인하여 학교신설 수요가 폭증하여 위헌판결이 날 경우에는 교육여건개선은 물 건너가게 되며, 70~80년대의 콩나물시루 교실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가 입게 될 것이며, 단위학교의 혼란과 교육과정의 파행운영이 예상된다. 가장 먼저 비판받아야 할 것은 위헌가능성이 있는 제대로 되지 않은 법을 제정하여 이러한 사태를 야기한 교육부겠지만 지금에 와서 누구 탓만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느낌이다. 갈수록 교육재정 확보를 하기가 어렵고, 택지개발로 인한 학교신설 수요는 자꾸 늘다 보니 고육책으로 학특법을 제정한 것이지만 면밀한 검토가 부족했던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아울러 학특법에 규정된 학교용지매입비의 절반을 시․도 일반회계에서 부담토록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전국의 지자체장에게도 이에 상응하는 불이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전의 경우만 해도 435억 원 정도를 대전광역시에서 받지 못하였으며, 이러한 현상은 금액의 차이만 있지 전국이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법상으로는 절반을 부담토록 명시하고 있으나 불이행으로 인한 벌칙규정이 없다보니 무시 하고 있다. 더욱이 업무만 달리하고 있는 시․도지사와 시․도교육감간 소송 또한 현행법상으로는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교육에 대한 열의와 관심이 있는 자치단체장의 양심에만 의지해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러지 못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이처럼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으로 부담금을 찾기 위하여 소송까지 불사한 일부 건설업체의 행태도 비난받을 만하다. 공동주택을 신설하여 이익을 얻었고, 인구증가의 원인제공자로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싶다. 국가에 재정이 넉넉하여 부담금 같은 것을 따로 걷지 않는다면 별문제 없겠지만 그러하지 않으니 말이다. 이제 모든 결과는 헌재 재판관의 방망이에 달려있다. 사견이지만 2005년 입주예정자가 부담토록 했던 구 학특법의 위헌판결 판례를 본다면 이번 판결도 위헌으로 결정 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금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담당자들은 대책협의회를 꾸려서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지만 만족할 만한 대책수립은 어려운 형편이다. 우리교육청에서는 조만간 해당지역의 학교설립이 불가하다고 업체에 통보할 예정이며, 관련기관에도 우리가 처한 현실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려 추진 중이다. 또한 언론계에도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려 하는데 여론이 호의적으로 대해줄지는 회의적이다. 훌륭한 理想과 바람직한 법논리만으로 개인의 권리를 찾아줄 수 있겠지만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 그것들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이전부터 대통령 후보들은 GNP 대비 교육예산 6%를 확보하겠다고 주장했지만 지금까지도 그 공약들은 空約이 된지 오래다. 경기침체로 인한 양극화로 인하여 사회비용에 더 예산이 투입되고, 노령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복지비용도 천문학적으로 투입되는 이 마당에 교육의 출발점이 되는 교육 인프라인 학교설립에 예산을 확보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임에 틀림없다. 위헌판결 여부를 떠나 교육예산은 어떤 예산보다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교육에 대한 투자 효과가 10년, 20년 후에 나타나 당장 표가 되지 않겠지만 정치하는 분들의 관심이 요구된다.
“선생님, 해외 어학연수 관계로 문의하고 싶은데요?” “말씀하세요. 문의 사항은 무엇인지요?” “이번 방학 때 해외 어학연수를 가려고 하는데, 언제까지 어학연수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문의하고자 전화를 드렸습니다.” “글쎄요. 그게 단위학년의 수업일 수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인데….” 방학 중에도 어학연수에 대해 문의 전화를 근래에 자주 받게 된다. 그러나 명쾌하게 답을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난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현장체험학습은 국․내외 체류기간 규정이 1개월까지 이므로 1개월 이상 귀가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1개월이 지난 후에는 결석으로 하여야만 하는데, 그 이후에 2주일 이상 결석이 되면 학부형님께 연락을 하여 출석을 하도록 통지를 하여 출석 독촉을 한 후에도 3개월까지 출석을 하지 않으면 보호자의 신청에 의해 정원 외 관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이다. 보통 6개월이나 1년을 외국에서 체류하다가 귀국 후에 일처리가 명쾌하지 않은데 문제가 있다. 학교 현장에서 해마다 해외 어학연수를 받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 학생 수는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명확한 법적인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29조①항 초등학교장은 정당한 사유 없이 3월 이상의 장기 결석을 한 자에 대해 학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정원 외로 학적을 관리 할 수 있다. ②항 초등학교장은 정원 외 학적관리자 또는 유예결정을 받은 자가 다시 학교에 다니고자 하거나 취학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조기진급 및 조기졸업에 관한 규정』에 의하여 교과목별이수인정평가위원회가 실시하는 교과목별 이수인정 평가의 결과에 따라 학년을 인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 의무교육대상자 유예관련 학적처리 안내 에 따르면, 출석일수 부족한 학생이 학년 말에 진급할 수 있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의무교육 대상자의 유예관련 학적처리를 적극적인 지도로, 1)출석일수 부족한 학생의 당해 연도 재 취학은 원칙적으로 금지(수업일수 2/3 미만자)하고, 2)학교장의 권한에 의해 재 취학을 허용하더라도 교과목별이수인정평가위원회 통해 학력인정조치 불필요(수업일수 부족하면 학년말에 진급이 불가하다는 내용을 학부모에게 주지 필요)하다는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시․도교육청 협조 공문을 시달한 바 있다. 그런데 학교현장에서는 이를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학교마다 적용이 다르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서로 타 학교와 비교를 하며 불만을 터뜨리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학교마다 다른 적용으로 인해 업무담당자 및 담임교사들은 오해의 소지가 많이 있기에, 교육부에서는 이에 대한 분명한 법적 규정과 허용범위를 분명히 하여 학부모나 담당자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심지어는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이나 학원과 같은 곳에서 2년이나 3년을 다니다가 환원하는 경우가 있어서 난감할 때가 있다. 그래서 현장체험학습 업무담당자나 담임교사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시․도교육청이나 교육인적자원부에 직접 문의해 보도록 권유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학부모들도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분명히 규정을 알려 주었으면 그에 따라 해외 어학연수를 고려하였을 터인데, 주위의 학생들이 해외 어학연수 가는 것을 보고 우리 아이만 뒤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바심에 경쟁적으로 보내고 있는 처지고 보니, 일률적으로 적용을 하지 않는 학교에 대해 불만이 쌓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국회 교육위원소속 유기홍 의원이 2004~2006년 9월까지 초중고 학생들의 해외 어학연수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지난 3년간 어학연수를 다녀온 학생 수 4만 1452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또 어학연수를 다녀온 학생들 중 초등학생 80%, 중학생의 57%가 수업일수를 빠트리면서까지 어학연수를 강행하는 것으로 파악되어 공교육의 위기를 실감케 하고 있다. 중앙대 장치순 교수팀은 오는 2011년 우리 국민이 해외 유학과 연수에 쓰게 될 돈이 103억달러(약 9조6000억원)가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2000년 10억달러에서 11년 만에 10배가 되는 것이다. 올해 해외 유학 연수비용은 45억7000만 달러(약 4조3000억원)로 추정하고 있다. 해외 유학과 연수가 선진국의 앞선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고급 인적자원을 키우는 일이라면 걱정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2005년의 조기 유학생 수는 해외파견 부모를 따라간 경우까지 합치면 3만5000명이다. 그중에 중국에 간 경우가 6300명, 동남아가 4000명이나 된다고 한다. 대한민국 학부모와 학생이 대한민국 GDP의 5분의 1, 10분의 1밖에 안 되는 나라의 교육이 우리보다 낫다며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미국․영국․캐나다는 물론이고 호주․뉴질랜드․싱가포르․태국․홍콩 등 각국의 변두리 거리에 한국인 어머니와 자녀들이 ‘교육 난민촌’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이 현실을 언제까지 모른 체하고 있을 것인지 묻고 싶다. 이제는 현지적응을 하지 못한 국제 떠돌이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해마다 증가하는 해외어학연수 이대로 보고만 있을 것인가. 물론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는 교육현실 이면에는 교육정책이 불안하고 실속 없는 교육혁신의 난무로 혼란에 빠진 점도 있지만, 학부모들의 조급함과 왜곡된 교육관이 자리하고 있음을 부인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불법적인 어학연수를 언제까지나 방치하고 묵인할 수만 없다. 또 해외 어학연수를 떠나지 않는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들은 상대적인 교육박탈감과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심각한 상태이다. 당국에서는 시급히 국제화 교육, 세계화 교육, 글로벌 스탠더드 구축으로 어학연수나 해외 현장체험학습내지 교환학습에 대한 명쾌한 법적인 규정을 마련하여, 학교 현장의 업무 담당자나 학생 및 학부모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2008학년도 서울지역 외국어고 입학전형부터 내신 실질반영률이 30% 이상으로 높아지고 우수학생 선점을 목적으로 과도하게 책정됐다는 판단에 따라 특별전형 선발인원은 줄어든다. 서울시교육청은 30일 이런 내용의 2008학년도 서울지역 외국어고 입학전형 변경 내용을 확정해 발표했다. 새로운 입학전형에 따르면 그동안 4∼15% 수준이었던 내신 실질반영률을 2008학년도 입시부터 30% 이상으로 올린다. 학교별 내신 실질반영률을 보면 명덕외고가 기존 4%에서 30%로 높아지고 대원외고는 6%에서 30%로, 대일외고는 7%에서 30%로, 이화여고는 14%에서 30%로 조정되며 한영외고와 서울외고는 각각 8%, 15%에서 모두 32%로 올라간다. 하지만 특별전형 선발인원은 대부분의 외고에서 감축된다. 대원외고는 그동안 특별전형으로 175명을 뽑았지만 앞으로 성적우수자 전형을 폐지하고 국제화전형(55명), 영어능력우수자(25명), 학교장 추천자(42명), 체육특기자(3명) 전형 등을 통해 50명 줄어든 125명을 선발한다. 한영외고는 182명에서 105명으로 70명 이상 줄이면서 성적우수자 전형을 학교장 추천자 전형으로 통합하고 글로벌인재 전형은 폐지했으며 대일외고와 명덕외고도 각각 138명과 128명으로 44명, 12명씩 선발인원을 줄였다. 서울외고는 다른 전형 인원을 줄인 대신 글로벌전형(25명)을 신설해 선발인원을 10명 늘린 110명으로 조정했고 이화여고의 선발인원은 바뀌지 않는다. 2008학년도 외고 입학전형부터는 구술ㆍ면접시험 출제위원에 수학ㆍ과학 교사를 배제함에 따라 해당 과목 문제가 출제되지 않으며 문항 수도 축소된다. 또 중학교 교육과정 범위를 벗어난 고교 수준의 문제가 출제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중학교 교사를 출제본부에 참여시켜 이를 감독하게 된다.
경기도와 일선 시군이 교육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난 4년간 교육부문에 지원한 예산이 모두 2천44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도(道)에 따르면 지방교육자치제의 문제점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2003년부터 도교육청과 교육협력사업을 추진, 지난해 말까지 모두 8개분야 27개사업에 모두 2천440억9천600만원(경기도 1천730억5천500만원, 시.군 710억4천100만원)을 지원했다. 또 도 교육청도 1천496억4천600만원을 부담해 교육여건 개선사업을 벌였다. 사업별로는 농어촌 좋은학교만들기 사업에 743억원, 소규모학교 살리기사업 590억원, 초등학교 원어민교사 지원 356억원, 저소득층 자녀 무상급식 지원 302억원, 학교도서관 설치비 지원 189억원 등이다. 경기도와 교육청의 협력사업으로 도내 1천911개 각급학교 가운데 32% 611개 학교가 재정적 지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대 하봉운 교수는 30일 열린 경기도 교육협력사업 발전 방안토론회에서 농어촌 좋은 학교만들기 사업의 지원을 받는 33개학교의 경우 성적 우수자가 10% 이상 증가했고 농어촌지역 소규모 학교살리기 사업을 통해 예산을 지원받은 100개 학교는 재학생수가 11.4%나 증가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도와 교육청은 교육협력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교육청은 도에 서기관급(4급) 1명과 6급 1명 등 2명을 파견했고 도는 지난해 9월 3팀 12명으로 구성된 교육협력과(과장 서기관급)를 전국 최초로 설치, 운영 중이다. 또 지난해부터 '경기도교육지원조례'를 제정, 각급학교에 대한 행.재정적 지원을 제도화했다.
2007학년도 정시 논술고사가 마무리되면서 2008학년도부터 새롭게 도입되는 통합논술이 학생이나 학부모들에게 최대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사교육 못지않게 공교육에서도 교사들이 논술 동아리를 조직하거나 논술 연수에 참여하는 등 신학기부터 시작될 통합논술 지도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만큼 학생들도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서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비 고1, 2]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예비 고1과 2학년으로 진급하는 학생들은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는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단계적으로 준비하되, 통합논술에서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알아두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즉 통합논술이란 개별 교과의 지식에 한정되지 않고 쟁점을 중심으로 교과 간의 지식 전이를 통한 통합적 사고력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존의 주입식․암기식 학습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고 의문을 품어보며 다양한 상황에 적용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실천해볼 수 있는 내용을 알아보기로 한다. 첫째, 교과서는 최적의 논술학습서이다. 학생들 가운데는 논술이란 교과목이 없기 때문에 별도의 교재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잘못된 생각이다. 통합논술은 교과서의 지식을 활용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으며 특히 교과서의 각종 학습활동은 통합논술이 요구하는 문항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논술의 보고라 할 수 있다. 둘째, 독서를 통하여 지식의 폭을 넓혀야 한다. 논술은 주장에 대한 논리적 근거가 풍부한 글일수록 좋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논거는 교과서의 지식을 중심으로 하되 좀더 심층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교과외의 배경지식까지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많은 책을 읽기 보다는 관심 분야에 대한 책을 선정하여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집중적으로 읽는 것이 좋다. 셋째, 신문읽기를 생활화해야 한다. 논술은 현실 상황에서 벌어지는 쟁점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시사적인 내용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꾸준히 신문을 통하여 시사현안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특히 국민적인 관심이 높은 사안에 대해서는 스크랩을 해 두고 교과와의 관련성을 따져본 후, 간단히 자신의 의견을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 넷째, 규칙적인 글쓰기 연습이 필요하다. 논술고사를 통하여 평가하는 영역 가운데 표현력, 논증력, 창의력은 글쓰기 능력에 해당된다. 말하자면 고급 지식을 많이 갖고 있어도 글을 통하여 적절하게 표출할 수 없다면 이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글쓰기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기처럼 꾸준히 계획을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 [예비 고3] 고3으로 진급하는 학생들에게 있어 통합논술은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중상위권대학들은 대부분 통합논술을 시행하고 있고 수시모집의 반영 비율이 40~60%, 정시모집은 10~30%를 반영하기 때문에 당락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 있다. 비중이 높아진 만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제도인 만큼 대부분의 예비 고3 학생들의 수준이 비슷하다고 보고, 지금부터 계획을 세워 꾸준히 준비한다면 목표 이상의 결과를 얻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 점에서 2학기 수시모집을 염두에 두고 단계별로 실천해 볼 수 있는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 1단계 (2월) → 자신이 지원할 대학을 미리 정한다. 수시모집에 지원한다는 가정하에서 희망대학을 미리 정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목표가 분산되는 것보다는 한 두개 대학에 초점을 맞춰 준비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 2단계 (3월) → 희망대학의 예시문항을 파악한다. 통합논술을 시행하는 대학은 지난해부터 예시문항을 발표하고 있다. 손자병법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 있듯이, 예시문항은 지망대학의 논술을 준비하는 최적의 안내자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고려대 등 일부 대학은 통합논술의 예시문항 형태로 2007학년도 논술문제를 출제한 바 있다. ☞ 3단계 (4~5월) → 교과서의 개념과 원리를 정리한다. 단기간에 많은 내용을 외우는 공부보다는 기본적인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통합논술에서 요구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의 활용능력’이다. 따라서 기계적인 문제풀이보다는 원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적용능력을 길러야 한다. ☞ 4단계 (6~7월) → 예상 주제를 설정하여 교과 내용을 통합한다. 통합논술은 주제를 중심으로 문항이 구성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인류 역사 속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주제(삶과 죽음, 욕망, 경쟁 등)와 현실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주제(세계화, 지식정보화, 자유무역주의 등)를 분야별로 나눠, 이와 관련된 교과 지식을 한 데 모아서 통합적으로 정리한다. ☞ 5단계 (8~9월) → 실전문제풀이에 역점을 둔다. 해당 대학의 예시문항을 다시 한번 정리한 후, 예상 가능 문항을 직접 만들어 볼 필요가 있다. 이미 주제별로 정리해 놓은 다양한 자료가 있기 때문에 문항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다. 출제자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항 제작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그리고 사설평가기관에서 주관하는 논술모의고사도 몇 차례 응시하여 실전 감각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연수원에 근무할 때는 한 주일에 두 학교 학생들이 와서 수련활동을 하였다. 2박 3일간 하게 되는데 앞 기는 월요일 오전에 입소해서 수요일 오전에 끝나고 뒤의 기는 수요일 오전에 입소해서 금요일 오전에 끝이 난다. 지금은 내가 근무한 연수원은 선생님들과 교육공무원만 연수를 받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고 학생수련활동은 울주군 언양 배내에 수련원을 옮겨 그 곳에서 수련활동을 하고 있다. 1년 안에 모든 고등학교 학생들의 수련활동을 할 수 없어 학교마다 한 해는 울산광역시교육청 산하 배내 학생수련원에서 수련활동을 하게 되고 다음 해는 다른 사설 수련원에서 수련활동을 하게 된다. 수련활동을 하게 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마음가짐이 남다르다. 수련활동을 통해 봉사정신, 협동정신, 체력단련, 정신력 강화 등 무언가 새로워지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임하게 된다. 하지만 일부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 그냥 수학여행처럼 노는 기간으로 생각하고 즐기고 가려고 한다. 그러니 수련원에 수련활동을 하러 오면서 가방에다 술도 가지고 오고, 담배도 가져오기도 한다. 수련활동 시작하기 전 오리엔테이션 시간이 되면 담당 교육연구사님께서 자기가 맡은 반의 수련생들의 가방과 호주머니를 일일이 조사하게 된다. 그러면 학교에 따라 여러 가지가 나온다. 사전지도가 잘된 학교는 술, 담배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없지만 사전지도가 되어 있지 않은 학교 학생들에게는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날 하루는 저녁 식사하러 가면서 정만영 교학부장님께서 저에게 글감을 하나 줄 테니 교학부로 오라는 것이었다. 저녁식사 후 교학부에 갔더니만 술병 서너 병과 음료수가 몇 병이 보였다. 아마 학생지도 차 오신 선생님께서 수고하시는 연구사님을 위해 오실 때 사 가지고 온 것이겠지 하고 무심코 넘겼다. 다음 날 점심시간에 정부장님께서 글감을 보았느냐고 하기에 “무슨 글감을 말하십니까?”하고 물으니 그때서야 교학부에 놓여 있는 술과 음료수가 학생들이 수련기간에 먹기 위해 몰래 가지고 들어왔는데 사전 조사하는 가운데 발견되어 가져온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학생들이 그것도 여학생들이 여행도 아닌 수련교육을 받으러 오면서 담배는 몰라도 어떻게 술을 가져 올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40년 교직생활 가운데 이런 일은 처음 봤으며, 옛날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씀을 듣고서 ‘학생들의 비뚤어진 생각이 문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바른 생각, 바른 행동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된다. 시대가 변화고 세대가 많이 바뀌어 옛날 학생들의 사고와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 학생들의 사고는 문제가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요즘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 들어도 소름끼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언론보도에서와 마찬가지로 교사가 학생을 체벌한다하여 경찰에 신고하여 자기를 가르치는 교사를 현장에서 체포해 가는 사례라든가, 어떤 학교에서는 학생의 잘못을 지적하고 사랑의 매를 들려고 하면 학생은 “선생님 퇴직금이 많다고 하던데요?”하면서 때리려면 때리라고 한다는 꿈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장에서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말을 듣지 않고 애먹이는 학생에게 꿀밤을 서너 대 주면 그것도 못마땅하게 여기고 가방 메고 집에 간다고 하는 세대가 되었으니 어떻게 하리오! 일선 교장선생님께서는 선생님들에게 학생들을 체벌하지 말라고 하고, 학생들이 처벌을 받아 학교에서 멀어지면 사회문제아가 되니 퇴학도 시키지 말라고 하며 만약 퇴학당한 학생들은 새 학기에 학교에 다닐 의사가 있는지 반드시 확인하고 나서 본인이 희망하면 다시 학교에 들어오게 하라고 하니 일선 선생님들은 어떻게 학생들을 지도할 것이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서 저 선생님의 말씀하시는 것이 겁을 주기 위한 것인지 아닌지 다 알고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 이르기까지의 잘못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 물론 학생들을 바르게 지도하지 못한 학부형이나 일선 선생님들의 지도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더 큰 문제는 학생들의 비뚤어진 생각 때문이리라! 학생들의 사고는 심각하다.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바로 보지 않으려는 생각, 수련활동 기간에도 수련원에 가서 술 먹고 신나게 놀다 가려고 하는 생각, 친구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고 왕따를 시키려는 비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학생들의 행동이 오히려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고 그와 같은 생각을 하려는 학생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게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바른 생각을 가져야 한다. 지금이라도 비뚤어진 생각을 버려야 한다. 바른 생각 속에 바른 행동이 나온다. 수련활동을 하러 오면서 술, 담배 가져오려는 잘못된 생각은 아예 버려야 할 것 아닌가? 제발 악하고 더럽고 추한 생각은 꿈에서라도 버려야 한다.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명예롭고 덕이 있는 생각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쁜 생각에 의한 잘못된 행동이 자신만 망치는 것이 아니고 주위 학생들까지 멍들게 하고 병들게 하며 망치게 하고 만다. 이래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