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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 Soul A man lives through his spirit, not by denying his body at the same time. All our troubles come from the fact that we forget God lives within us. My understanding of my spiritual life is the beginning of everything. We cannot have a kind and happy life without believing in the existence of an eternal, timeless life. There is not life in a body without its spirit. A body lives through it. If it seems to you that you live through your body alone, then you don't know what life is all about. And to live a good life, you must live through your spirit. 영혼 사람은 영혼을 통해서 살지만 동시에 육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모든 문제는 신이 우리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잊는 데서 온다. 내 영혼에 대한 이해는 모든 것의 시작이다. 영원하고 무한한 삶이 있다는 믿음이 없이는 관대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 정신이 없는 육체 속엔 삶이 없다. 육체는 정신을 통해서 산다. 육체를 통해서만 사는 것처럼 보이면 인생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이다. 훌륭한 삶을 살기 위해 영혼을 통해 살아야 한다.
인천 부평구 삼산동에 위치한 부일중학교(교장 김경례)는 서로 다른 문화를 알고 그것을 존중하고 살아갈 수 있는 다문화 공동사회를 위해 지난 29일부터 31일까지 일본 가시와자키시 학생들과 서로 홈스테이를 비롯한 다양한 체험활동을 실시했다. 이번 교류체험활동에서는 일본 학생 7명이 부일중학교를 방문해서 한국 학생들의 교육활동 모습을 보고, 직접 같이 체험해 보기도 하고, 홈스테이도 하고, 인사동, 한옥 마을 등에서 문화 체험을 같이 하는 등 1박 2일간의 짧은 체험활동을 벌였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도 많고, 교과서적인 평면적인 지식이 서로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품게 하기 때문에 정치·사회적인 교류도 중요하지만 학생들 개인과 개인의 순수한 교류의 기회가 확대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한편 부일중 김경례 교장은 이와 같은 학생들 개인과 개인의 순수한 교류의 기회는 다문화 공동시대에 양국의 상호 이해 및 교류 활성화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교육활동이 될 것이라고 말했으며, 일본 학생들을 인솔했던 가시와자키 국제화협회 우미코 씨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정치적 문제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스터디튜어 처럼 얼굴을 보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가진다면 서로를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초등수석교사협의회(회장 최수룡)는 29일 오후 5시 대전버드내초 영상정보실에서 시도지회장협의회를 열고 향후 제도 활성화를 위한 정보교류와 대외 홍보활동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김동건 대전교총 회장, 김관익 버드내초 교장과 지회장, 대전시교육청 이희자 장학사 등 20여명이 참석한 이날 협의회에서 최수룡 회장은 “시범운영 기간 동안 주기적으로 모여 각 시도의 운영사례를 점검하고 더 나은 활동을 위해 보완해야 할 과제와 발전방안 등을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협의체 운영방향을 밝혔다. 축사에서 이원희 교총회장은 “운영상 보완과제에 대해서는 교육부와 교섭을 통해 해결해 나가겠다”고 힘을 실었다. 이 날 첫 회의는 지난 한 달간의 운영사례를 발표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와 개선방향을 짚어보는 자리. 토요일 오후 빗속을 달려 온 지회장들은 시범 한 달을 이구동성 ‘제자리 찾기’에 고민한 시간으로 평가했다. 수석교사 도입 취지, 역할, 위상과 관련, 학교에 어떤 지침이나 홍보도 없이 ‘알아서 하라’ 식이 되다보니 제대로 ‘시범 보이기’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충북지회장 동주초 권영훈 수석교사는 “어떤 일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 정할 수가 없다. 교내 장학 및 교사 코칭 및 멘토는 교감선생님 몫이어서 갈등의 소지가 있다”며 “역할 분담과 상호 협조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지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종규 우석초 수석교사(강원지회장)는 “학교에 따라 수석교사를 교감급으로 인정해 주는 곳이 있는가 하면, 부장급이나 부원 급으로 보는 곳도 있어 천차만별”이라며 “수업도 10시간에서 많게는 25시간까지 해 과연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가장 시급한 개선과제로는 인식제고를 위한 ‘홍보’를 꼽았다. 경북지회장 김홍완 칠곡대교초 수석교사는 “교육청 장학파트에 수석교사 업무분장이 없었을 정도”라며 “기존의 관행과 틀을 깨는 일은 자칫 갈등과 위화감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수석교사에게만 짐을 떠맡길게 아니라 학교, 특히 관리자 대상 홍보에 교육당국이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나아가 현장 교사들의 이해와 공감대 형성도 절실하다는 의견이다. 김병무 전남 나진초 수석교사는 “학교 교육과 수업을 발전시키고 운영상 나타나는 문제를 예방하는 역할의 수석교사제는 결국 그 수혜자가 교사”라며 “교사들이 함께 책임감을 공유하고 제도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이라는 부담, 거기에 교육당국의 무관심과 ‘색안경’을 쓰고 보는 시선을 접할 땐 ‘내가 이 길을 왜 택했나’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는 이들. 하지만 그보다는 교실의 ‘희망’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크다. 경기지회장 김신숙 광명초 수석교사는 발표에서 “저 선생님께 수업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이들의 희망, 나도 노력해서 수석교사가 돼야지 바라는 후임 교사들의 희망이고 싶다”며 의욕을 내비쳤다. 이도인 신진초 수석교사(경남지회장)는 “우리를 수석교사로 볼 건지 말 건지를 떠나 과연 우리의 제자, 후배들을 위해 교수직 분화가 필요한지, 역할․지위모델은 어떻게 해야하는 지 냉철히 고민하고, 심도 있는 연구가 병행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수석교사들은 그런 희망을 현실화하고자 주어진 여건에서 나름의 활동을 펼 계획이다. 강종규 수석교사는 “지날달 신임교사를 위해 교수학습․생활지도 등 5가지 자료를 담은 가이드북을 제공하고 월 2회 수업컨설팅을 계획하고 있다”며 “4월에는 수업공개를 할 생각”이라고 발표했다. 또 곽이섭(금포초) 대구지회장은 “교장선생님께서 타 학교의 수업개선에도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고 제안했다”며 “관내 학교들은 1년에 4번 외부강사 초빙연수를 하고 있어 이를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김신숙 수석교사는 “도내 수업실기대회에 참가할 예정인 7명의 저경력 교사를 도와 계획서 작성을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고, 김홍완 수석교사는 “4월부터 장학관님을 모시고 수석교사 5명의 소속교를 돌며 연수회를 가지기로 했다”고 말했다. 협의회도 수석교사들의 활동 노하우와 고충을 공유하는 홈페이지를 4월 중에 구축하고, 88명의 시도 수석교사 별 △수업시수 △시수 확보방법 △위상 △고유 업무분장 마련여부 △행정업무 담당여부 △재정 지원현황 등도 파악해 향후 제도연구와 법제화를 위한 기초데이터로 활용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기획부, 총무부, 정책부, 홍보부 조직도 갖췄다. 최수룡 회장은 “무엇을 바라기에 앞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논의할 것”이라면서도 “제도 정착을 위한 체계적 연구와 법제화에도 일조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요즘 학생들은 대부분 학교수업을 마치고 나면 또 다른 배움의 장소인 학원으로 저마다 발길을 재촉한다. 언제부터인가 학원은 학생들의 야간 학교가 되어버린 것 같다. 학생들이 학원을 찾는다는 건 어떠한 이유에서든 학교 공부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심화를 위해서, 공부가 떨어지는 학생들은 보강을 위해서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이제는 굳이 방과 후에 학교 외부의 학원에 가지 않아도 학교에서 학원 수강이 가능한 곳이 생겨나고 있다. 동경도 스기나미구의 한 구립중학교 교실에서 ‘야간학원’이 문을 열게 된 것이다. 도교육위원회로부터의 지도로 시작을 목전에 두고 일시 연기가 되었지만 구교육위원회의 반론 답신으로 지적한 내용들이 해결되었다고 판단되어 최종적으로 용인된 것이다. 일본은 최근 수년간 학력향상을 목표로 학습을 위한 학원과 공립 초·중학교의 연계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어 오고 있으나 한계점도 적지 않다. 특히 평등이 중시되는 공교육의 세계에 경쟁으로 승부하는 학원의 힘을 빌리는 것이 어디까지 허용될 것인지에 대해 일본 교육현장에서도 여론이 양분되고 있다. 스기나미구교위에서 세운 계획을 보면 평일 주 3회 오후 7시부터 특정 진학학원이 2학년 학생들 중 희망자를 대상으로 수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상위층을 늘리는 일에 공립학교의 관심이 낮은 상황에서 학교 교사에게 무엇이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므로 학원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라고 와다중학교 교장은 말한다. 학교를 지원하는 자원봉사단체인 지역본부 주최라는 형태로 수강료는 보통의 반액 정도이고, 사용되는 교재 작성에 학교 측의 의견도 수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처음에 도교육위원회가 구교육위원회의 계획에 반대한 이유는 첫째, 입실 테스트와 유료제가 기회균등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둘째 사설 학원에 학교 시설을 이용하게 하는 것은 공립학교의 비영리성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셋째 겸업금지의 의무가 있는 공무원이 교재의 개발에 관여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세 가지를 문제시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와다중학교와 스기나미구교위는 ▲보습은 앞으로도 계속하고 전교생에 배려를 하고 있고 ▲수업 1시간당 500엔으로 수업료가 싸며, ▲학원 측에는 거의 이익이 없고, ▲교사에게도 이익은 없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보호자를 대상으로 한 설명에서도 이 학교 교장은 “학습이 부진한 학생들을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도 비판하지 않으면서 상위층 학생들이 더욱더 잘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하면 ‘공평성’이라든지 ‘평등’이라는 말을 한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현재 스기나미구 외에도 지방의 일부 지역에서 공영학원이 운영되고 있다. 아오모리현 시모기타 반도에 있는 히가시도리 마을 소재 3개 촌립 중학교에서는 겨울 방학을 이용한 특별 강습을 2005년부터 실시해 오고 있다. 계기는 이 마을에 진출해 있던 사설 학원이 학생들의 학원 수강률이 수도권 지역과 비교해 현저히 떨어져 문을 닫게 되자 지역 차원에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도시와 같은 교육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판단하여 공영학원이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통상적으로 수업은 3학년의 경우 수요일 밤 3시간과 토요일 3시간 30분을 학원 강사가 학교로 와서 가르친다. 중학교측은 수요일 부활동을 쉬면서 협력하고 있다. 당초는 3학년을 중심으로 2개 교과만 실시했으나 2006년부터 전 학년을 대상으로 하여 5개 교과로 확대하였으며 초등학생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는 것을 검토 중에 있다고 한다. 동경에서는 몇 개의 구에서 학교와 학원의 연계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미나토구에 있는 전체 10개 중학교에서 토요일 실시되는 강좌에는 약 70%의 학생이 참가하고 있는데 주된 학습은 복습으로 기초, 기본의 정착이 목적이라고 한다. 이와는 좀 다르게 고토구의 구립 초·중학교에서는 평일의 수업에서 교사와 학원 강사가 함께 가르치기도 한다. 강사를 파견하고 있는 전국학습학원협회는 외부의 도움으로 학교 수업에 여유가 생기게 되면 좀 더 자세하게 가르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한다. 사실 이러한 동향에 도교위가 반대해 오지 않았으나 와다중학교에 유예를 지시하게 된 것은 “너무 급하게 진행되는 감이 있으며 학원의 영업활동에 학교가 그대로 편승했다는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동경을 비롯한 지방의 일부 지역에서 학교와 학원의 연계가 활발한 곳도 있지만 다른 지역으로 확대될 기미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 이유의 하나는 학교 측에 뿌리내리고 있는 학원에 대한 불신감을 들 수 있다. 미나토구립 중학교에 강사를 파견하고 있는 와세다 아카데미의 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처음에 교사로부터의 저항감이 강했다고 한다. “학교와 같은 내용으로 가르칠 바에는 무엇 때문에 학원에 부탁하겠는가”라며 비판을 받거나 학교의 진도를 추월하지 말라는 요구도 있다는 것이다. 동경의 경우는 사립학교에 대한 대항책이라는 사정도 놓칠 수 없다. 치요다구립 중고일관교인 구단중등교육학교에서는 토요일에 전교생이 참여하는 강좌를 실시하고 있다. 일본의 사립학교는 토요일도 수업하는 곳이 많아서 중·고 6년 동안의 토요일 시간을 계산하면 막대한 시간차가 발생하는 것이다. 5일제 수업인 공립학교는 정규 수업을 할 수 없어서 학원의 힘을 빌리고 있다고 학교 측은 설명하고 있다. 지금 운영되고 있는 일련의 공영학원은 근본적으로 자금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시작할 수 없는 것이다. 동경 미나토구가 부담하는 비용은 연간 5300만 엔이나 된다. 전국의 자치단체가 미나토구 시찰을 위해 방문하고 있으나 대부분이 자기 지역에서는 어려운 일이라고 한숨만 쉬고 돌아가는 상황이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아오모리현 히가시도리 마을 공영학원의 경우 수업료는 중학교 3학년인 경우 1000엔이다. 사설 학원에 다니면 약 1만5000엔이 드는데 차액은 지역 마을이 부담하고 있다. 이 지역은 인구 7600명의 작은 마을이지만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관계로 그 세수로 운영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스기나미구의 와다중학교의 경우만 보더라도 학교 내에서의 야간 학원 운영에 보호자들은 찬성하는 입장이다. 어차피 보내야 하는 학원이고 조건이 비슷하다면 수강료가 현저히 싼 학교 내 야간 학원이 훨씬 낫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관리 당국인 도교위에서 바라보는 시각에는 그러한 현실적인 문제보다는 어떠한 형태로든 공립학교 내에 학원이 설치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볼 수도 있는 문제이다. 일본은 행정 및 교육에 있어서 지역별로 차이가 많고 자율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예산을 비롯한 여러 조건으로 인해 야간 학원과 같은 공영학원이 얼마만큼 일반화될지는 의문이다. 공영학원을 실시하고 있는 지역에서 향후 어떠한 가시적 성과 내지 결과를 내놓을지 기대된다.
드레스덴 공대의 연구는 동독지역인 작센 주의 전일제를 실시하는 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전일제는 공식 수업이 끝난 방과 후에 학생들이 학교에 남아서 교사의 지도아래 숙제를 하거나 다른 특별활동을 하는 학교운영방식이다. 연구팀은 전일제 실시 학교의 약 1300명의 학생, 500명의 교사와 인터뷰 설문조사를 했는데 이 조사에서 설문 대상 교사의 3분의 1은 숙제가 학습에 정말 효과적인지에 대해 잘 평가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전체 학생 4분의 3에겐 실제로 숙제가 별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고 보고하고 있다. 연구원 한스 겡을러는 “우수한 학생들이 숙제를 한다고 해서 학업 능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또 부진한 학생들은 숙제로 단순 반복을 한다고 오전에 이해 못 한 것을 깨우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설문 대상 학생의 70%가 숙제를 통해 오류를 줄이고 문제를 더 빨리 풀 수 있다고 대답했지만, 숙제를 함으로써 성적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는 학생은 전체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드레스덴 공대 교육대학 안드레아스 비레 연구원은 “우리는 이제 다른 학습문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드레스덴 연구팀은 현재 작센 주의 전일제 학교 열 개를 선정해 여러 가지 방과후 학교 실험교육을 하고 있다. 그 중 하나로 어떤 두 학교에선 교사가 독일어, 영어, 수학 과목에는 천편일률적인 숙제를 내는 대신에 각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다른 학습과제를 내주고 있다. “학생들은 숙제를 하는 게 아니라 각자 자신의 부족한 것을 공부하며 학습동기를 얻는다”고 비레 연구원은 설명한다. 바로 이런 방식이 미래의 대안 학습법이 될 것을 이들 연구팀은 바란다. 학업능률을 높이는 것은 숙제가 아니라, 교사가 어떻게 교육적으로 각 학생을 지도하는가에 달렸다는 것이다. 즉, 숙제보다는 수업시간에 교사가 학생들에게 학습전략을 가르쳐주거나 학습내용을 연습과 알맞은 수업방식으로 심화 학습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들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미 성공적으로 숙제 없이 공부하는 독일의 대안학교들이 있다. 독일 빌레펠트 시의 라보아 학교에 다니는 카밀라 쉬베어스(13세)는 오후 3시면 하교해서 말을 타거나, 축구를 하거나, 친구들을 만난다. 학교에서 내준 숙제는 없다. 모든 과제물은 학교에서 해결하며 질문이 있을 때 도와줄 선생님은 항상 근처에 있다. 단 학교에서 과제물을 다 해결하지 못한 경우에만 집에서 한다. 이런 경우는 일주일에 최대 두 번 정도 생긴다. 그럴 때면 집에서 30분 내지 한 시간 동안 과제물과 씨름을 해야 한다. 그래서 카밀라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학교에 있는 동안 열심히 해요. 그래야 말 타러 가거나 놀러 갈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1974년에 세워진 공립 실험학교 라보아 학교는 전일제 학교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거의 모든 과제물을 학교에서 교사의 지도아래 해결한다. 또 다름슈타트의 자유 코메니우스 학교의 해닝 초아스 치프 교장도 아이들이 집에서 숙제를 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그는 숙제 때문에 아이와 부모 사이가 나빠진다고 말한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숙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수업내용을 수업시간 동안 이해시키는 것은 학교의 몫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치프 교장은 “학교의 과제물은 학교 안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혼자가 아니라 급우들과 함께 도우며 공부해야 한다”고입장을 피력했다. 뒤스부르크의 코페르니쿠스 인문학교도 고전적 의미의 숙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했다. 이 학교는 학부형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저학년의 학생들은 숙제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나, 8학년부터는 방과 후 숙제를 하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2년 전부터는 영어나 수학문제를 숙제로 내는 대신에 수업시간에 사용될 장기 프로젝트 과제물을 학생들에게 내준다. 이 학교 교장 데틀레프 뵈스테펠트는 “가령 라틴어 수업시간에 로마신화 신을 다루면 학생들이 수업 내용을 스스로 준비해서 발표하게 한다.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스스로 수업준비를 하면 학습동기부여가높아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법이나 어휘를 외우려면 고전적 학습도 피할 수 없다. 이에 대해 뵈스테펠트 교장은 “그래도 우리는 될 수 있으면 단순한 반복학습은 피하려고 한다. 가능하면 실제상황에 연결된 과제물을 내 주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드레스덴 공대 연구팀은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관련하여 학생들의 사회적 환경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불이익을 얻고 있는 학생들은 저소득 가정의 학생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가정에서 별다른 학습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각 학생들의 학습 능력을 고려한 전일제, 즉 오후 방과 후 학교 교육이 중요하다고 연구원 비레 씨는 강조한다. 그 밖에도 막스 플랑크 교육 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숙제는 학생들이 자신이 뭘 배워야 하는지를 이해했을 경우에만 효과가 있다. 이 연구소의 울리히 트라우트바인 연구원은 “학생들이 숙제를 너무 오래 붙잡고 있으면 자신의 무능력에 대해 좌절하기도 한다. 오히려 이런 심리적 이유로 숙제를 능률적으로 해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한다. 그는 또 “이런 경우 오히려 학습동기가 저해되고, 시간도 많이 들고, 결국 학생들이 짜증을 내게 되고, 성적향상에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고 덧붙인다. 이때 학생들의 능력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교사가 효율적 숙제를 내느냐는 각 교사의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트라우트바인의 연구에 따르면 오히려 숙제를 잘 내주지 않는 교사의 학급이 더 학습능력을 보이는 경향을 보인다. 트라우트바인은 “중요한 것은 교사가 얼마나 과제물의 질을 향상시키나 하는 것이다. 교사는 과제물을 해결에 필요한 교과서의 해당 페이지를 가르쳐 주는 것보다 스스로 과제 해결을 하는데 필요한 방법을 알려줘야 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학생들은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과제의 목표를 더 잘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 소재한 독일 국제교육원의 루트비히 슈테혀 연구원은 “숙제가 근본적으로 의미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그 숙제에 어떤 콘셉트가 들어 있느냐는 것이다”고 말한다. 전일제를 연구하고 있는 그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학생들이 숙제를 하며 모르는 것에 부딪히면 물어볼 누군가를 곁에 두는 것이다. 그래야 아이들 학습에 진정한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를 운영하기 위해선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전일제를 운영하고 있는 대부분의 학교들은 “아이들이 창문으로 떨어지지 않는가를 지키는 수준”이라며 현재 공교육 전일제 실태와 한계를 지적했다. 드레스덴 대학이 있는 작센 주의 녹색당은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작센 주 모든 학교의 숙제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작센 주 지방의회의 녹색당 아스트리트 귄터 슈미트 원내총무는 “진정한 전일제 학교는 숙제 없이 교육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시간 자원과 콘셉트를 제공해야 한다”며 전일제 학교 질을 향상하기 위한 예산 확충을 요구했다.
바닥까지 떨어지는 증시, 연초 1700에서 1600으로 내려앉다가 1500까지 곤두박질 쳤던 주가 그래프를 바라보며 한숨만 쉬었던 것이 타인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얘기 아니었던가요? 하지만 주변에서 잘 됐다는 얘기는 모두 내 얘기가 아니라 남의 일인 것만 같습니다. 월급만 가지고 3년 동안 1억을 모았다는 평범한 직장인의 인터뷰에서부터, 무일푼에서 해외부동산 투자 성공으로 준재벌이 되었다는 아무개 씨의 신문기사까지. 우리에겐 멀게만 느껴지는 재테크 월드, 어떻게남들처럼 돈 좀 불릴 수 있을까요? 새는 돈을 어떻게 막지? 재테크 서적의 대부분이 기본적으로 깔고 가는 얘기에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수입의 30~50% 는 우선 저축하라 2) 가계부를 써서 지출을 확인하고, 새는 돈을 줄여라 3) 나만의 중장기 포트폴리오를 구상하고 실행에 옮겨라(가령 3년, 5년 후 목표액 얼마) 사실 이런 건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죠. 알면서도 실천에 옮기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은 넓고 돈 쓸 일, 돈 들어갈 일은 얼마나 많은지요. 게다가 좋은 물건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새로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디지털기기들은 최신사양에 품격 있는 디자인, 신기술을 탑재하고 신 버전을 출시하여 ‘나 좀 사주세요’하며 소위 지름신을 강림케 합니다. 그뿐인가요? 퇴근 후 집에 누워 리모컨이나 돌릴라 치면 좋아하는 의류브랜드의 ‘마감임박', ‘12개월 무이자'의 깜박거리는 홈쇼핑 자막이 심장을 벌렁거리게 합니다. 게다가 냉장고 열어보면 먹을 건 어떻게 하나도 없는지, 부식을 좀 사려고 집 근처의 24시간 대형마트에 들르지만 계산대에서 카드를 긁을 때는 10만 원 정도야 가볍게 넘기는 건 당연지사가 되어버렸습니다. 봄이 되니 여기저기 청첩장과 돌잔치, 칠순잔치 등 넘어갈 수 없는 행사들도 수만 가지 따라오게 되죠. 이러니 줄일 틈 없이 돈이 술술 빠져나가는 겁니다. 결국 ‘합리적 목표' 에 수반하는 ‘굳건한 의지'가 없으면 재테크는 남의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금 이 글에 고개 끄덕이는 분이 있다면 당장 온라인 가계부라도 장만 하실 것을 적극 권유합니다. 쓰기만 하면 뭐하냐는 사람도 많지만, 일단 한 달에 내가 얼마를 쓰고 변동지출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계획적인 소비를 하는데 도움이 되더란 말입니다 온라인 가계부 제공 사이트 모네타 www.moneta.co.kr 이지데이 www.ezday.co.kr 인터넷 가계부 www.gagebu.co.kr 정보에 밝은 사람을 곁에 두어라! 꼭 한두 명 정도 재테크에 뛰어난 수완을 자랑하는 주변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배운다는 자세로 그런 지인들의 행동을 꼼꼼히 살펴보세요. 제게도 늘 자극이 되는 재테크 달인인 선배가 하나 있습니다. ‘투자를 배우고 싶으면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말고 3대 경제지 정독한 다음 나 찾아오라'고 할 정도로, 그는 우선 경제 흐름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많이 알면 그만큼 눈에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주변에 한 ‘투자'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정보력에 밝은 사람들이기도 하죠. 어느 날 선배가 제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재테크는 끊임없는 자기 목표와의 싸움이야. 목돈이 없다면 종자돈부터 모으고자 계획을 세우는 게 우선이지. 3년에 1억을 모으려면 최소 매달 250만 원씩 모아야 하는 거야. 물론 처음에는 힘들겠지. 하지만 3년 후에 1억을 모은 사람은 그 돈을 1억 5천으로 불리는 건 3년간 1억 모은 것보다 훨씬 쉽고 빠르게 달성되지. 그다음 목표도 마찬가지이고….” 내게 맞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게 투자 비결 샤디가 재테크 전문가가 아닌 이상, 저보다 훨씬 많은 비법을 알고 계실 여러분께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 감히 훈수를 둘 처지는 아닌 듯하고요, 올해 갖고 계신 재테크 계획이 있다면 1/4분기가 지난 지금 계획대비 실천의 결과를 한 번 정도 훑어보며 작게는 CMA, 적금, 적립식 펀드에서부터 증권, 부동산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2/4분기의 청사진을 그려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결국 재테크는 꾸준한 관심과 노력의 결과인 것 같습니다. 로또도 꾸준히 사는 사람이 맞는다고 하질 않습니까? 현재 내 상황에 맞는 장기적인 투자플랜으로 성공하는 재테크로 부자 되는 상반기 되시길 기원합니다.
‘조사 편’ 연재 8개월의 질주를 잠시 멈추고 2007년 7월부터 2008년 2월까지 8회에 걸쳐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말’에서는 ‘로-에’, ‘에-에서’, ‘조차-까지-마저’, ‘같이-처럼’, ‘와-랑’ 그리고 ‘관형격조사 의’까지 줄기차게 ‘조사’를 다루어왔다. 이제까지 다루어왔던 명사나 동사, 부사 등과는 달리 조사는 자립성도 없고 그렇다 할 뚜렷한 의미도 없다. 다만 말과 말의 관계를 나타낼 뿐이다. 한복이라면 옷고름이요 화학반응이라면 촉매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아 다르고 어 다른’ 말뜻을 다루는 데 다른 때보다 글쓰기가 훨씬 까다로웠다. 모자란 능력을 탓하기 일쑤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막상 글을 써놓고 보니 딱딱하기 이를 데 없다. 지금까지 쓴 ‘조사 편’에 읽는 재미를 가미하려면 맛나고 곰삭은 글로 다듬어 내놓아야 할 것 같다. 8개월 동안 인내와 끈기로 졸고를 읽어주셨을 독자 여러분께 큰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다. 설날 연휴에 집안에 들어앉아 마음먹고 ‘조사 편’의 마지막 주자인 주격조사 ‘은/는-이/가’를 쓰려고 했었다. 하지만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머리만 아프고 도통 진척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쉬어가기로 했다. 높은 산에 오르기 전 숨고르기를 하는구나 하고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란다. 신성하고 정결한 희생양 오늘은 평소에 생각하던 ‘희생’과 ‘피해’에 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려 한다. ‘희생’과 ‘피해’라고? 어? 이건 ‘아 다르고 어 다른’ 정도가 아니라 뜻이 분명히 구별되는 말이잖아? 이렇게 반문하실 법하지만,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다음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원폭 희생자인가 원폭 피해자인가? 기름 유출 사고의 희생자인가 피해자인가? 만약 둘 다 성립한다면 과연 희생을 당하는 일과 피해를 입는 일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희생’과 ‘피해’는 둘 다 어떤 손실을 당하거나 해를 입는 상태를 가리키지만 그 대상의 성격이 좀 다르다. ‘희생’에는 본디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소, 양 따위의 산 짐승을 가리키는 뜻이 있다. 제의와 관련이 깊은 만큼 ‘희생’의 본질적인 요소는 신성함이다. 희생양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희생’의 대상은 신에게 바치는 신성하고 정결한 것이며 거기에는 혼이나 목숨이 깃들어 있다. 반면 ‘피해’의 대상은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아무리 소중한 것일망정 신성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다. 희생물로 바친 돼지의 영혼은 신에게 기원을 전해주는 영물이 되지만, 홍수에 떠내려간 돼지는 재산의 피해를 가져다줄 뿐이다(돼지를 예로 든 것은 통상적인 돼지의 이미지와는 달리 돼지에게도 혼이 있음을 말하고 싶었을 뿐 결코 돼지를 폄하하려는 뜻은 없다). 자기피해는 있을 수 없다 희생은 자발적이고 의식적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가 특별하고 심오하다. 희생물로 삼으려고 짐승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결국 자기 목숨을 대신해서 바치기 위함이 아닐까. 원래 기독교에서는 소명에 따라 몸을 바치는 것을 ‘헌신’이라고 하여 가장 고귀한 자기희생으로 여겼다. 나아가 생명체가 아니라 하더라도 공물이나 제물은 단순한 물질이나 소유물이라기보다 자신의 일부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피해’의 대상은 자신의 일부라기보다는 자신에게 속한 것, 자기가 소유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자기희생’이라는 말이 자연스럽다. ‘희생’은 굳이 종교적인 토양에 뿌리를 내리지 않을지라도 다른 사람이나 어떤 일을 위해 자신의 몸이나 재물 같은 귀중한 것을 바치는 행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피해’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희생적’인 자세나 마음가짐, ‘희생정신’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피해적인’ 자세나 마음가짐, ‘피해정신’은 성립하지 않는다. ‘피해’는 어디까지나 자기가 갖고 있는 재산, 명예, 신체 따위에 손해를 입는 일이다. 따라서 보험금을 노리는 것처럼 딴 뜻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결코 자발적인 피해 같은 것은 애당초 있을 수 없다. 그래서 ‘희생하다’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행위를 지칭하는 동사로서 버젓이 사전에 올라 있지만 ‘피해하다’는 동사가 될 수 없다. 무엇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것 소유물은 어디까지나 나와는 별개의 물건(대상)일 뿐이기에 손해를 입거나 잃어버리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피해 보상’이라는 말이 가능하다. 그러나 ‘희생’은 스스로 남을 위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기 자신(혹은 그 일부)을 바치는 것이지 결코 어떤 손해를 입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아무리 보상하려도 해도 보상할 수 없다. 따라서 돈으로 환산하는 것을 전제로 삼는 ‘피해액’이란 말은 두루 쓰이는 반면 ‘희생액’이란 계산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말 자체가 성립하지도 않는다. 물론 피해에는 정신적 피해도 있으므로 이것 역시 원칙적으로 보상할 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률의 테두리에서는 가시적인 형태로 쌍방의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정신적 피해도 물질로 환산해서 판결을 내린다. 이를테면 스토커 갑은 피해자 을에게 정신적 피해로 입은 몇 백만 원을 주라는 식이다. 희생자의 경우는 이와 좀 다르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한결같이 잘못을 시인하고 사죄하기를 바랄 뿐이며 물질적 보상을 2차적인 것으로 여긴다. 앞에서 “원폭 희생자인가 원폭 피해자인가? 기름 유출 사고의 희생자인가 피해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물론 두 가지 다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원폭이나 기름 유출 사고는 뜻밖에 벌어진 재난이므로 여기에 자발적인 ‘희생'이란 뜻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게 보면 '피해자'가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 피해자들 덕분에 전쟁이나 생존, 환경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 깊은 성찰과 반성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들을 '희생자'라고 일컬을 수 있는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물론 ‘희생’의 대상이 아무리 신성하고 정결하다고 해도 누구(혹은 무엇)를 위한 ‘희생’이냐에 따라 원통하고 억울한 ‘희생’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을 역사는 늘 증언해주지만 말이다. ‘희생’타에 박수를 보내는 까닭 세상은 자발적인 ‘희생자’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이것은 피해를 입은 사람한테 표명하는 유감의 뜻과 차원이 좀 다르다. 여기서 희생자가 영웅이 되는 구조를 엿볼 수 있다. 야구만큼 ‘희생’을 작전으로 구사하는 스포츠가 또 있을까 하는 인상마저 풍길 정도로 스포츠 중에서는 야구가 특히 ‘희생’과 친근한 듯싶다. 전체의 승리를 위해 희생구, 희생타, 희생 번트, 희생 플라이 등 ‘희생’이 빈번하게 활용된다. ‘희생’타를 날린 선수는 아웃을 당해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퇴장하지만, 덕분에 자기 팀 선수가 진루를 하거나 득점을 하게 되면 그 공을 인정받고 영웅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대의를 위해 ‘희생’을 한 사람은 만인의 존경을 받고 영웅으로 취급된다. 거꾸로 말하면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희생’이 필요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성경 구절이야말로 ‘희생’의 진정한 의미를 나타낸다. 결국 희생은 본질적으로 무고한 희생이 될 수 없고, 반드시 희생의 당사자나 희생물이 지닌 원래의 가치보다 더 큰 가치의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약속을 내포한다. 희생이 희생으로 끝나지 않고 언젠가 그 진정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으리라는 예정이야말로 희생정신이 끊어놓은 천국행 표일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파주에 있는 전문계고등학교다. 새 학년 새 학기가 되면 늘 치르는 곤혹스러운 일들, 결석생이 늘어만 가는 현실, 아이들은 고개 숙이고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오늘은 왜 이리 늦었니?” “어머니가 안 계셔요. 그러다 보니 늦잠을 잤어요.” 어딘가 모르게 기가 꺾여 있고 서로의 눈치만 살피는 아픈 풍경들…. 인문계고에 진학하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불우한 가정환경 탓으로 실의에 빠져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의기소침한 상태로 하는 일에 자신감도 없었고 풀 죽어 지내는 그들의 모습은 한마디로 절망이었다. 그들에게 뭔가 얘기할 수 있는 공감의 장이 필요했다. 그래야만 그들에게 내일의 비전을 말할 수 있고 희망을 말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고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속마음을 그림으로 말하는 일이었다. 자신의 불만이든, 기쁨이든 볼펜 하나로 열심히 그림으로 표현하는 일, 때로는 수업 중에 자신의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10년 후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고, 자신의 가족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 첫 시작은 2003년 3월 13일이었다. 어느새 5년이나 되었다.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우리의 첫 만남은 어설프게 시작되었다. 절반의 학생들이 아직 등교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게 한 달이 되어가고 이제 푸른 오월을 준비할 무렵이었다. 처음에 아이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기 싫어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또래끼리 모여서 정을 나누면서 자신들의 아픔도 말하고 또 즐거움을 맘껏 토로하기 시작했다. 서로 발표를 기피하고 앞에 나서기를 거부하던 학생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고 서로의 성취감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으면 좋으련만, 그들은 말이나 글로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낙서와 그림 그리는 일을 시작했다. 그래서 발전한 모임이 바로 ‘장미문학회’라는 작은 모임이다. 먼저 포털사이트 다음에 인터넷 카페(cafe.daum.net/jangmimunhak)를 개설했다. 학생들이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든 국어 글짓기와 숙제는 인터넷을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숙제를 잘 한 학생에게는 도서 상품권도 나눠주고, 맛있는 간식도 서로 나누었다. 때론 자장면과 탕수육으로 그들을 격려했다. 어느덧 107명의 회원이 가입해서 활동하기에 이르렀다. 매년 각종 백일장 대회나 글짓기 대회에는 무조건 출전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는데 실력이 일취월장하여 파주시 대회는 물론이고 경기도 대회, 전국 글짓기대회에서도 입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업을 빠지고 글짓기 대회에 나간다는 즐거움 때문에 문학회에 가입한 학생이 많았다. 학교 수업에 얽매여 있기보다는 답답한 교실을 벗어나 자유롭게 열린 공간으로 줄달음치고 싶어 했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아픈 세계가 있었기에 뭔가 얘기하고 떠들고 싶은 뭔가가 분명 있었다. 자유롭게 말하고 얘기할 수 있는 그 어떤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사실, 누군가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어야 함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그들과 눈을 맞추지 못했고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다. 장미는 우리 학교 교화다. 이름에 걸맞게 ‘열정적으로 살아가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푸른 오월의 붉은 장미처럼 향기롭고 빛나는 삶을 살자’는 의미도 있다. 장미문학회는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하나의 희망이다. 처음 우리들의 마음을 모은 곳은 지금은 도서관이 된 자리인데 그 때는 붉은 장미로 온통 가득한 명상의 숲이 있었다. 오솔길을 따라서 걷다가 잠시 앉아서 얘기하고 붉은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우리들의 소망을 적었다. 어쩌면 장미는 나와 우리 학교 학생들의 만남을 가져온 열정적인 매개체였다. 우리들은 모두 뭔가에 목말라 있었다. 열정의 감로수를 마시고 싶었다. 축 늘어진 삶이 아닌 빛나는 열정을 꿈꾸고 있었다. 푸른 사월과 오월의 장미처럼.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장미문학회다. 전문계고 학생들에게 사실 자랑하고 내세울 만한 것이 그리 없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의 학생들도 있고 한 부모 가정, 조손부모 가정의 아이들이 참 많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어떤 긍지나 자부심은 찾을 길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성적을 얘기하면 언제나 고개를 숙여야 했고 부모님, 가정사 얘기를 하면 풀이 죽어 어느새 조용해지고 만다. 그 때문일까? 그 어떤 것으로도 인정을 받은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또 인문계 학교가 아닌 전문계고에 진학했다는 자괴감은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의 속내를 쉽게 열지 않는다. 그들과 하나가 되어 공감하려면 수다를 떨고 공도 차고 목욕탕도 함께 가봐야 한다. 그래야 인생 문제도 얘기하고 때론 자신들의 아픔을 쉽게 말하곤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자신이 그린 그림에 대해 설명을 하기에 이르렀고 그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가슴 속에 묻은 속내 이야기를 차츰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카타르시스라고나 해야 할까? 그리고는 글로 적는 일이 익숙해지기 시작 했다. 수업 시간 마다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짧은 글로 표현하는 일이 거둔 작은 발전이었다. 어느덧 서로에게 친근해지고 환한 웃음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그림 그리는 일은 그렇게 언제나 즐거움이었다. 처음엔 학생들이 엉거주춤했었다. 뭘 하는지 몰랐고, 왜 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가슴 저린 이야기들이 하나, 둘 술술 나오기 시작하더니 가슴을 맞대고 서로 울기도 했다. 때론 우스꽝스런 말과 글에 배꼽을 잡고 웃는 일도 참 많았다. 장미문학회 시화전을 시작한 지 어느덧 5년이 흘렀다. 작년까지 교내 행사로 진행되었던 시화전, 이제 학교가 아닌 세상을 향해 그들의 가슴을 열 때가 온 것이다. 교내 시화전에 대한 잔잔한 소문이 번지면서 지역사회에서 전시 요청이 연이어 들어왔다. 파주시 청소년 문화의 집 전시를 했고, 파주시 우수 동아리 경연대회에 참여하는 기쁨도 있었다. 지난해는 2007년에는 경기문화재단에 공모한 청소년 문화 활동 우수단체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지원금이 제법 컸다. 아이들은 날뛰듯 기뻐했고 얼굴엔 싱글벙글 신나는 표정이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영광된 일이던가. 아이들에게 좋은 붓과 멋진 그림물감도 사줄 수 있었고 더 좋은 캔버스를 사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더운 날 아이스크림 하나라도 더 사줄 수 있어 기뻤다. 이런 사연이 알려지면서 많은 출판사에서 우리를 지원해 주셨다. 월간 샘터와 새마을 문고에서 100여 권씩 좋은 책을 보내주었다. 그래서 새로운 마음으로 아침 독서운동도 시작했다. 이제 학급문고를 만들어서 많은 학생들과 글 읽는 즐거움에 푹 빠지고 싶다. 장미의 이름으로 시작한 우리들의 만남, 이제는 꽃을 피워서 이웃에게 향기를 나누는 아름다움이 되고 싶다. 얼마 전 영화배우 안성기가 나온 한 은행의 광고를 본 적이 있다. 친절은 실력이라는 것이다. 사실 지금 시대는 지식의 능력만으로 세상을 살아가기가 그리 쉽지 않다. 때론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이 필요한 세상이다. 요즘, 의사, 검사, 변호사라는 직업이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나는 시대가 되고 있지 않든가. 지금은 문화가 사회를 이끌고 있는 세상이다. 탁월한 재능(끼)이 이끄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 학생들에겐 다양한 능력이 잠재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끼와 열정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많은 문화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오는 5월에 파주시 근린공원에서 열릴 ‘제6회 장미문학회 시화전’을 준비하고 있다. 교내가 아닌 세상에서 우리들의 향기와 빛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오는 6월과 11월에는 파주 청소년 문화의 집으로부터 전시 초청을 받았다. 전문계고 학생들이 시화전을 연다고 하면 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혹시 지난 시절, 학업에 대한 편견을 갖고 우리들을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두렵지만 그 편견에 도전해 보련다. 시화전이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왔다. 현수막도 달아야 하고 시화를 걸 이젤도 준비해야 한다. 이리저리 홍보문을 발송하고, 멋진 시화집도 만들어야 한다. 분주하긴 하지만 이처럼 두근거리는 설렘으로 가슴 벅찬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희망이 있기 때문이리라. 꿈과 사랑이 함께 하는 제6회 장미문학회 시화전, 그 슬로건처럼 ‘아름다운 글로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젊은 손길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최근 세계 각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학교변화 동향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학교현장의 의미 있고 본질적인 변화를 강력하게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개선에 대한 관심은 그동안 수차례 추진되었던 교육개혁과 일련의 연속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강조점에 있어 주목할 만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학교 현장의 변화를 강조하는 최근의 동향은 지금까지의 교육개혁이 학교현장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데 대체로 실패했다는 반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범세계적으로 학교 변화를 추구하기 위한 이러한 노력은 결국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동시에 그에 따른 책무성도 증대시키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향후 미래사회에서는 기능의 분화와 구조적 복잡성이 더욱 증대될 전망이고, 이러한 사회에서는 중앙집권적이고 획일적인 통제에 의한 교육체제 운영은 부적합하다. 미래사회에서는 지역별, 학교별 특성이 고려되고 융통성이 발휘되는 자율성이 주어진 체제가 보다 적합하다. 단위학교가 교육체제의 중심축을 형성하도록 구조를 개편하는 일은 현재의 관료적 중앙집권체제를 개편하고, 실질적 자율화를 통해 단위학교가 행사할 수 있는 자유 재량권의 넓은 공간을 확보해 주는 일이다. 단위학교의 교육활동에 있어서 재량권을 갖도록 하는 이른바 ‘학교단위자율경영제’가 정착되어야 한다. 자율은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는 일이다. 즉,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하여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를 가리킨다.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하였을지라도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제3자가 알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외부의 압력을 받아 행동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율은 스스로 합리적인 판단에 의하여 행동으로 나타난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판단의 준거로 사용되는 것은 합리성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율이란 인간의 이성이나 사물의 이치에 비추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여 행동하고, 그 결과에 대하여 책임지는 것을 말한다(신재철 외, 2003). 해방 이후 우리의 교육은 공공재이며, 공공성이 강하기 때문에 정부가 학교교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그 결과 국·공립학교가 많이 생겨나고, 사립학교라 하더라도 정부의 통제에 놓여 우리 교육은 사실상 정부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주도로 교육이 이루어질 경우,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교육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형평성의 논리가 자연스럽게 뒤따르게 되므로, 이는 모든 초·중·고등학교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획일성과 평준화라는 교육정책을 가능하게 하였다. 자율성이 확보되지 못한 교육이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나아가 교육 수요자의 요구에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점은 경제학적인 논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학교를 교육서비스를 생산하여 판매하는 기업으로 인식하는 관점으로 보았을 때, 교육서비스 생산하는 데 있어서 외부 시장거래를 조직 내의 내부거래로 전환함으로써, 이를 체계적이며 효율적으로 공급하는 조직이 학교이므로, 학교교육은 교육서비스의 공급자와 소비자의 선택 자유가 보장될 때 가장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학교 운영이 자율화되면 교육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다양한 학교가 출현할 것이며, 소비자는 자신의 소질과 기호, 특성에 맞는 학교를 선택하여 자신의 생산성을 높이고, 교육의 경쟁력 제고에도 기여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이러한 경제논리를 따지지 않더라도, 이미 세계적인 학교운영의 패러다임은 자율화와 다양화를 기본 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학교의 자율경영은 시대적 변화에 부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단위학교 자율경영의 방향 단위학교 자율경영은 특정한 학교경영체제라기 보다는 학교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권한을 정부나 교육청으로부터 단위학교로 이양하여 학교운영의 자율성과 책무성을 강화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을 의사결정에 폭 넓게 참여시키는 학교경영의 자율적 형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김성열 외, 2006). 따라서 단위학교 자율경영은 권한 이양을 통한 학교자율권의 강화, 학교경영 과정에 다양한 관련자들의 참여 확대, 자율운영에 따른 책무성 강화 등을 특징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은 지금까지 중앙정부의 교육시책 수행에 그 기능이 집중되어 왔기 때문에 학교의 자율성이 사실상 거의 없어, 우리의 실정에서 완전한 학교단위의 자율경영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러 가지 교육 분야의 변화에 따라 학교경영 구조 역시 크고 작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으며, 교장의 경영철학과 의지에 따라서는 학교 단위별로 특색 있는 학교경영을 모색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 학교경영구조 변화의 주요 내용을 보면, 새로운 형태의 학교단위 자율경영 중심의 학교는 자율과 책임 위주의 학교경영, 민주적 의사결정, 다양한 교육과정과 수요자의 선택권 확대, 재정 운영의 자율성 제고 등을 특징으로 한다. 교육은 그 본질적 특성상 자율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교육이 추구하는 가치와 목적 안에 이미 자율의 요소와 자율주장의 근거들이 내재해 있고, 이에 따라 그러한 가치와 목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교육활동의 특성이 또한 자율성 요구의 정당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학교의 자율성 개선을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단위학교의 독자적인 의사결정 권한이 증대되어야 한다. 즉, 상급 행정기관으로부터 단위학교에 많은 권한이 이양되어 단위학교가 상당한 재량권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권한의 이양1)은 지엽적인 사항보다는 교육과정, 인사, 재정 등의 핵심 사항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단위학교 자율경영의 저해요인 가. 대표성 부족한 학교운영위원회 단위학교의 의사결정(심의)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는 10여 년의 역사를 바탕으로 학교를 구성하는 주요 기구로서 자리 잡고 있으며, 나름대로 기여한 바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명실상부한 학교의 의사결정기구로 작용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우선 심의영역이 제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학교교육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 학업성취도 등과 관련하여서는 역할이 미미하다. 여기에다가 위원의 대표성 확보가 미흡한 문제도 학운위가 도입된 이래 지금까지 개선되지 못하는 상황에 있고, 위원의 전문성 부족 문제도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 그밖에 교내의 각종 위원회는 교장의 자문기구로서 역할을 해내고 있으나, 자문기구가 갖는 한계 때문에 교장의 일방적 의사결정을 견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나. 획일적인 교육과정의 운영상 한계 교육과정의 운영에서도 한계가 있다. 현재 학교의 교육과정 결정권은 국가수준에서 대부분이루어지고, 그 다음이 교육청이며, 단위학교는 권한의 여지가 가장 적다. 물론 과거에 비하면 최근에는 학교교육과정을 편성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 있기 때문에 권한의 여지가 확대되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실제적으로 자율성을 발휘하는 영역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교육청에서 장학지도나 학교평가 등을 통해 획일적인 기준을 가지고, 단위학교의 교육성과를 확인하고 점검하는 일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는 단위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수의 부족으로 자율성을 발휘하기보다 기본업무의 수행에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다. 학교 재량권 없는 교원 인사권 교원 인사권은 대부분 교육감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위학교의 인사 재량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재량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제도의 관행으로 인하여 실질적 재량권을 행사하기 쉽지 않다. 예를 들면, 교장이 소속직원의 근무성적을 평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나, 승진에 임박한 교사에게 좋은 점수를 주는 관행 등이 있다. 행정실장에 대한 평정도 대상자가 한 명밖에 없어서 좋은 점수를 주는 것이 관례이고, 행정직원에 대한 승진이나 전보권이 실질적으로 교육청에 있기 때문에 실질적 권한을 갖기가 어렵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권한행사 수단이 될 수 있는 보수의 경우도 단위학교에서는 거의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실정이다. 라. 재정운영의 자율성 발휘 제한 현재 단위학교는 재정운영과 관련하여 학교회계법 제도의 시행으로 비교적 자율권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경직성 경비가 많아서 자율운영의 여지가 적으며, 단위학교의 예산활용 능력도 미흡하여 전년도를 답습하는 관행이 널리 퍼져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예산편성과 운영과정에 교직원 참여가 확대되고 있으나, 교사들의 관심부족으로 새로운 예산 요구가 별로 없다는 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재정의 획일적 분배나 회계감사 중심의 운용 등의 문제로 자율성의 발휘가 제한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단위학교 자율경영의 과제 단위학교가 자율경영체제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교육청과 단위학교 간에 권한과 역할이 조정되어야 한다. 교육부는 국가수준의 교육정책의 수립 및 필수적 국가교육과정의 유지 기능만 수행하고, 초·중등교육의 책임기능을 시·도교육청에 이관하며, 시·도교육청은 시·도차원의 교육정책 및 기획, 직무조정, 평가 등 핵심적 기능만을 수행하고, 구체적인 관리기능은 지역교육청으로 이관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교육청은 학교에 대한 교육지원과 장학지원을 수행하며, 구체적인 학교교육 활동에 대해서는 단위학교가 중심이 되어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행정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가.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중심은 학교 예를 들면,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중심이 단위학교가 되도록 해주어야 한다. 교육청은 교육과정 편성의 지침을 최소화하고, 단위학교가 학교의 특성을 살리어 자율적인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어야 한다. 특히 선택교과의 선정, 수업일수와 교과시간 수의 조절 등과 같은 실질적 자율권이 단위학교에 주어져야 하며, 교육내용을 획일화시키는 국정교과서 제도 개선, 교과교사의 교재선택권, 재량시간 확대도 검토해 보아야 한다. 나. 교사, 일반행정직 인사관리권 보장 단위학교에 인사관리 자율권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교원초빙 범위를 확대하여 단위학교의 교사 선택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교원전보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행정 및 보조 인력의 채용권도 단위학교에 보장해 주어야 하며, 문제교사의 징계나 우수교사의 포상권도 단위학교에 이양하여 교육청의 간섭을 없앨 필요가 있다. 다. 교육과정 재정관리의 자율권 단위학교의 재정관리 자율권도 보장해 주어야 하는데, 현재 시행되고 있는 학교회계법은 교육과정영역이나 인사관리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육재정영역의 자율권을 확보해 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교육과정 영역과 인사관리 영역에도 학교회계법과 같은 자율운영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학교교육과정법과 학교인사관리법에 획기적인 내용을 담아 새로이 제정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학교재정이 완전한 자율권을 확보한 것은 아니다. 비록 법과 제도가 마련되었다고는 하나 운영의 과정이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교원과 학부모 및 학생의 참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학교 구성원 전체가 참여하여 교육과정 운영에 필요한 기자재 확충, 시설관리와 확충 등 학교운영 전반을 포함하는 학교운영계획을 수립하여, 그 계획에 따라 학교예산을 편성하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라. 학운위 심의 영역 확대 학교운영위원회의 예산 및 결산 심의 시기도 문제가 있다. 위원이 임기가 시작되는 4월에 예산을 심의하고, 위원의 임기가 끝나는 2월에 결산을 심의하게 되면 시기적으로 충실한 심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러므로 위원의 임기의 변경이나, 예·결산 심의 시기의 변화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영역의 자율권이 확보되기 위해서는 의사결정시스템의 기능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학교운영위원회가 명실상부한 자율기구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심의영역이 확대되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교육과정 편성·운영과 학업성취도 등에 대한 실질적 심의·의결권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운영위원회 산하에 교육과정소위원회를 필수기구화할 필요도 있다. 마. 학운위원 위한 전문성 신장 연수 필요 학교인사에 대한 심의·의결권도 부여해야 한다. 학교에 필요한 교원의 초빙, 공모교장의 선발과 평가, 행정 및 보조 직원의 채용 등이 단위학교에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학교운영위원회의 실질적 기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실적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위원의 전문 능력이 필수적 요소이므로 이들에 대한 전문성 신장 지원이 있어야 한다. 현재의 교육연수원 프로그램에는 학교 교직원만을 위한 프로그램만이 존재할 뿐, 운영위원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없다. 이의 개선도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자율은 책임을 전제로 한다. 책임지지 않는 자율은 자율이 아니라 방종일 뿐이다. 그리고 책임지기 위해서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므로 단위학교가 자율경영체제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능력을 갖추는 일 즉, 전문성 제고가 관건이 된다. 일부에서는 우리나라의 학교가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원인으로써 자율이 주어지지 않았다기보다는 자율을 수행할 역량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새 정부의 교육부문 운영 키워드가 ‘자율’과 ‘경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자율과 경쟁은 언뜻 다른 말인 것 같지만, 그것의 속성은 같다. 즉, 능력과 역량으로 표현되는 ‘전문성’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율을 누리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필요하며, 경쟁하기 위해서도 전문성이 필요하다. 단위학교 자율경영의 성패는 단위학교가 어느 정도의 역량, 즉 전문성을 지니고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교육 없이 경제 없다”, “공교육 두 배, 사교육 감소”라는 슬로건을 통하여 교육대통령을 표방한 바 있고, 이에 따른 다양한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2일 발표된 ‘단위학교의 자율성 확립을 위한 교육행정권한 이양’계획은 새 정부의 교육정책 방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담긴 ‘자율과 책무성을 바탕으로 한 단위학교의 교육활성화’의 밑그림에는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실제적 효과를 낼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이나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서두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교육부 권한 이양과 관련하여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다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유·초·중등교육의 지방 이양으로 시·도교육청의 권한이 지나치게 집중됨으로써 중앙정부의 지시와 통제를 시·도교육청이 대신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둘째, 지역의 재정자립도가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유·초·중등교육의 지방 이양은 교육 불균형 및 교육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중앙정부의 권한 이양은 이와 같이 예견되는 문제에 대하여 심층적인 논의를 거쳐 대책이 강구될 때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 교육 측면에서 바라본 문제점 지난 1월 2일 발표된 학교단위 자율운영 체제 확립과 현장교육의 활성화를 위한 ‘교육부의 권한 및 업무 이관 방침’은 신선한 충격으로까지 느껴졌다. 그러나 교육부 폐지와 권한 이양이 맞물리면서 그 의도와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특히 공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을 지방으로 떠넘기려는 의도로 파악되어 현장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국민의 보통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유·초·중등교육에 대한 국가수준의 질 관리와 지원의 필요성이 오히려 증대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은 사교육 중심의 왜곡된 구조 속에서 심각하게 위축되어 있다. 연간 사교육비 부담이 20조 400억 원에 이르고 있고, 초·중·고 전체 학생의 77%가 이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공교육의 현실과 소득 차에 의한 지역·계층 간 교육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교육에 대한 국가적 전략과 지원체제 강화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중앙정부의 권한 이양이 시장주의적 관점과 경쟁논리에 치우쳐 있다면 교육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숲을 바라보는’ 통합적 관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교육부 권한 이양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이 문제다. 시·도교육청별로 특색 있는 교육으로 자율성을 강화하고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의도는 그럴듯하지만 유·초·중등교육은 보통교육이지 전문화되고 특성화된 교육이 아니다. 즉, 보통교육은 국민으로서, 민주시민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질과 상식을 가르치는 교육일 뿐 전문화하거나 특성화할 대상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보통교육을 ‘자율과 경쟁’ 논리에 집착하여 그 생산성 및 효과성만 집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보통교육은 경쟁과 시장논리로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국민 복지적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둘째, 교육격차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 광역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매우 낮다고 한다. 2007년도 전국 광역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평균 53.9%에 불과하고, 서울이 85.7%로 가장 높고 전남은 고작 11.0%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기초자치단체는 서울 중구가 86.0%인 반면, 전라남도의 완도와 신안군은 겨우 6.4%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초·중등교육의 지방 이양은 비교적 지방 재정이 탄탄한 지역은 어느 정도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할 수 있지만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에서는 교육투자가 지역의 현안 사업에 밀려 소홀히 될 수밖에 없다. 셋째, 단위학교 지원보다는 통제 강화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중앙정부의 권한이 대폭 시·도교육청에 이양될 경우, 시·도교육청의 지시와 통제는 강화될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의 정책 방향이 권한 이양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에 상응한 평가체제를 강화하여 경쟁을 유도하면 필연적으로 단위학교의 자율성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결국 또 다른 지시와 통제를 양산하여 단위학교의 활성화와 자율경영을 가로막을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넷째, 권항 이양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 단위학교에 넘겨주어야 할 것은 교육과정 및 학사 운영, 재정 운영, 조직 편성 등에 관한 권한이다. 지금까지 이와 같은 권한은 중앙정부나 시·도교육청에 집중되어 있어서 단위학교의 교육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지 못한 채 포괄적인 지도, 감독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참고로 단위학교의 실질적 의사결정권한의 정도를 살펴보면 뉴질랜드가 71%, 스웨덴이 48%, 미국이 26%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얼마나 될지 구체적인 자료가 없는 것 같다. 교육과정과 학사 운영, 재정운영, 조직 편성 운영은 단위학교에 과감하게 이양해서 단위학교 교육에 활력을 주어야 한다. 아무런 준비나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문제를 중심으로 공허한 논리에 집착하기보다는 실천 가능한 문제부터 서둘러 이양해야 한다. 새 정부 교육정책에 담긴 문제점 지난 10년 동안 우리 교육계는 개혁의 한가운데서 상처투성이의 고통의 세월을 겪어왔다. 무엇하나 그럴 듯한 정책하나 만들지 못하면서 교원조직의 분열과 갈등만을 양산해 온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대선 기간 내내 ‘공교육 두 배’를 강조한 이명박 정부에 많은 기대를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교육정책들을 보면서 여전히 우리교육은 “실험 중”에 있는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함께 고민했던 교육 문제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면서 지나치게 시장주의와 경제 논리에 경도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우려하는 몇 가지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새 정부의 교육정책에는 ‘교육 철학’이 담겨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조직 개편과정에서 보인 바와 같이 ‘교육’과 ‘인재’의 기본적 의미마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교육계의 반발에 부딪쳐 ‘인재과학부’를 ‘교육과학부’로 바꾸더니 어느 날 슬쩍 ‘기술’을 더하여 이젠 ‘교육과학기술부’가 되었다. 청와대의 수석 인선에서도 교육은 여전히 소외되고 있는 느낌이다. ‘인재과학’ 수석 지명을 통하여 교육을 ‘시장주의와 경쟁 논리로 풀어갈 것 같다. ‘영어전용교사제’ 도입에서 보인 ‘교육과 교원에 대한 편견과 왜곡, 그리고 조급함’은 어느 사설에서 지적했듯 ‘대운하의 토목 공학’에 대응하는 ‘영어공학(英語工學)’을 보는 것 같다. 둘째, 대학입시를 대학교육협의회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은 공교육을 심각하게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대학에게 입시의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은 형식적으로는 대학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 같지만 유·초·중등교육은 ‘죽음의 입시 정글’로 몰아넣은 악순환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공교육 살리기’에 대한 확실한 중심이 서지 않은 채, 대학교육협의회의 통제되지 않는 입시관리는 유·초·중등교육을 대학의 시녀를 만들 우려가 있다. 대학의 근본적인 구조와 패러다임을 고치지 않고 대학교육협의회에게 권한을 이양하는 것은 각급 학교의 무한 희생을 강요할 뿐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초·중등교육의 성과는 국제학력비교(PISA)에서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은 어떠한가. 세계 100대 대학에도 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대학의 구조와 패러다임 개선은 무엇보다도 시급한 생각이 든다. 셋째,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교육 문제에 대한 해결의지와 고민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강도 높은(?) 교육 개혁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약화, 사교육 극성, 계층 간 지역 간 교육격차 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가장 환호작약하고 있는 곳이 사교육 시장이라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새 정부의 교육정책은 ‘공교육 강화’라는 목표와는 거리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넷째, 초·중등교육을 시·도교육청으로 대폭 이양하는 것은 공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될 것이다. 또한 지역 간, 계층 간 교육 격차를 심화시켜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원인이 될 것이다. 권한 이양을 위한 전제조건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해도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재정적 물리적 여건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결코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 교육재정을 충분히 확보하여 교육여건으로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못하고, 교육의 중심 주체인 교원들을 개혁의 중심세력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절대로 그 효과를 충분히 낼 수 없다는 것을 지난 10년 동안에 확실히 배우지 않았던가. 가. 안정적 교육재정 확보 첫째, 교육재정 확보가 선결과제이다. 거창한 구호나 제도들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늘 이상과 현실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초·중등교육의 지방 이양으로 자율성과 책무성을 높이는 교육을 실천하겠다는 비전도 교육재정이 확보되지 않으면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광역단체장들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교육 자치를 일반자치에 포함시켜 달라고 건의하였다고 한다. 지방재정자립도가 30%도 미치지 못한 광역자치단체가 무슨 교육을 제대로 할 것인지 걱정이다. 경기도 광명시와 경상북도 칠곡군의 교육비 지원 비율이 15,000:1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역별로 심각한 교육격차가 생겨날 것은 뻔한 일이다. 실제로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도 기초자치단체가 지원하는 학교급식지원비가 지역 현안사업에 밀려 작년 대비 1/3로 축소되었다. 이런 사례로 미루어 볼 때, 중앙정부의 권한 이양의 효과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재정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지역별로 현격한 차이가 있고, 교육재정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아무리 많은 권한 이양을 하고 다양한 정책을 마련한다고 해도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 대학입시제도의 정착 둘째, 대학입시제도가 보완·정착이 되어야 한다. 새 정부의 교육정책에 의하면 대학입시는 대학교육협의회에 맡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은 교육과정에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고 있어도 대학입시제도가 이를 반영하거나 지원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유·초·중등교육에서는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논술시험 제도 도입이 가져온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알고 있지 않은가. 대학에 논술시험이 도입되자 전국의 각 급 학교가 대책을 마련하느라고 부산을 떨고 있는 모습을 보라. 아무리 대폭적인 권한 이양으로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강화한다 해도 입시제도가 이를 담아내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다. 원칙은 실현가능한 것부터 앞에서 논의된 문제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실현 가능하고 그 효과성이 기대되는 것은 적극적으로 이양해야 한다. 교육의 현장은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단위학교 현장이다. 중앙정부에서는 국가적인 정책 방향이나 지향점만 제시하고 구체적 실천 방법은 단위학교로 이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여기에 제시된 구체적 사례들은 현장에서 충분히 그 효과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으로 지금 당장 이양하여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는 과제들이다. 첫째, 중앙정부에 존치해야 할 업무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중앙정부의 역할은 국가적 비전을 제시하고 이에 맞는 정책목표설정 및 기본 방향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중앙정부에 존치해야 할 주요 업무는 다음과 같다. 중앙정부에 존치해야 할 업무 - 국가 의무교육의 기본 정책 수립 - 유·초·중등 교육정책 개발 및 수립 - 국가수준교육과정 총론 결정 및 각론의 개발 - 우수 교원 확보 및 교원 양성·자격·연수·보수 등 교원정책 수립 - 국가 교육재정 확보 및 시도교육청 교육재정 지원 확대 - 통일교육 등 국가수준에서 마련해야 할 특수 교육프로그램 개선 둘째, 시·도교육청의 업무는 중앙정부의 방침을 실현할 수 있는 중간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따라서 이에 대한 장학 지원 및 조정은 시·도교육청으로 이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시·도교육청에 이관해야 할 주요업무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시·도교육청에 이양해야 할 업무 - 교원임용 및 연수에 관한 사항(최소의 기준만 정하고 시도의 자율성을 강화해야 한다) - 초·중등 및 과학·직업 정책 - 유아·특수·학교체육 및 보건 급식 - 교육과정 마련 - 교육복지 및 학교폭력 대책 - 지방교육정책 및 교육단체 지원 등 셋째, 단위학교에는 교육활동이 일어나는 일차적 공간이다. 모든 교육활동에 대한 자율성과 책무성이 강화되어야 하고 단위학교의 특색이 드러날 수 있는 것은 학교단위로 이관되어야 한다. 단위학교에 이양해야 할 업무는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단위학교에 이양해야 할 업무 - 교육과정 및 학사운영권 확대 - 인사권 대폭 확대(우수교사 초빙권, 전입교사 지정권, 행정실 초빙권 등) - 학교규칙 및 헌장 제정권 등 - 학교운영에서 교원 및 학생보호에 관한 자율 권한 부여 등 이 외에도 교육과정평가원, 지방자치단체, 교원단체 등에 이관해야 할 내용들도 상당수 있다. 지금까지 정부가 가졌던 권한을 조직의 기능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적절하게 조정하여 이양하는 일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교육은 우리 국민의 지대한 관심사이다. 특히 유·초·중등교육은 보통교육의 일환으로 국민 복지적 차원에서 검토하고 이에 따른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교육목표나 방향, 정책은 국가에서 수립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 실천 방안은 시·도교육청 및 단위학교에서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 실효성이 있고, 역할 분담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다만 중앙정부의 권한이 시·도교육청에 집중 이양되어 또 다른 지시와 통제를 양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특히 시·도교육청과 대학교육협의회,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단체에 대한 권한 이양이 시장주의와 경쟁을 유인하기 위한 것이라면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교육의 공공성과 국가적 책무성은 크게 약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의 공공성과 국가 책무성을 담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권한 이양은 적극 검토하되, 단위학교의 교육을 활성화하고 학교장 중심의 자율경영체제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학교현장에 오랫동안 근무한 경험에서 터득한 것 중 하나가 ‘아주 평범한 것이 진리’라는 생각이다. 식물이나 나무가 싱싱하게 자라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알찬 열매를 수확하려면 그 뿌리가 튼튼해야 하듯이 단위학교의 교육과정이 잘 운영되어야 교육이 활력을 얻고 살아난다는 것이다. 단위학교를 책임지고 있는 학교장의 경영과 리더십, 역할이 매우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단위학교도 초등, 중등이 차이가 있고 학교의 규모나 구성이 다양하고 대도시의 거대한 학교에서부터 농산어촌의 소규모 학교까지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획일적인 지시와 감독으로는 자율적이고 특색 있는 학교경영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의 교육정책은 교육부에서 좋은 정책을 구상해도 이런 다양한 학교의 성장풍토를 고려하지 않고 좋은 결실만 얻으려는 성과주의 위주였기 때문에 학교 현장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고 본다. 지금까지 자율경영이 전혀 안된 것은 아니지만 단위학교 책임경영이 더욱 활성화되려면 현재 학교현장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짚어보고 앞으로 변화되어야 할 과제는 어떤 것인지 필자의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제시해 보고자 한다. 시·도교육청 지시 → 지원 업무로 첫째, 현행 학교경영시스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시스템의 변화에 앞서 단위학교를 책임지고 경영하는 학교장의 생각과 의식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자율경영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상부관청의 지시에만 의존하지 말고 단위학교 구성원과 함께 자율경영의 폭을 넓혀 나가되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상부관청은 단위학교의 자율경영에 따른 권한을 선별하여 단계적으로 이양해야 한다. 그래서 단위학교의 특색이 최대한 살아나도록 지원해주고 관리해주는 시스템으로 변모해야 할 것이다. 현재까지의 학교장은 교육청의 공문지시에 따라 자율경영보다는 단위학교에 대한 무한 책임만 지워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교가 비슷비슷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마치 공장에서 벽돌을 찍어내듯이 다양성이 부족한 교육을 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단위학교를 경영하는 데는 인적구성, 학교재정, 학교교육과정운영 등으로 크게 구분해 볼 수 있다. 단위학교 인적구성을 위해 학교장의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는 인사시스템으로 상부관청의 인사발령에 따라 학교의 인적구성을 하여 경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도 따른다. 교원들이 선호하는 가산점이 있는 학교는 그래도 인적구성이 좋은 편이나 가산점이 없는 학교의 경우 근무의욕이 저조한 교원이나 신규교사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부장교사 업무를 맡아 학교교육과정 운영을 이끌어갈 사람이 없어서 교육경험이 짧은 2급 정교사가 보직을 맡아야 할 정도이기 때문에 학교경영에 어려움이 많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학교장이 많이 늘고 있다. 학교장에 부분적 인사권 부여를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학교장에게 학교구성원의 필수요원인 부장급 교사를 선택하여 교원조직을 할 수 있도록 인적구성 권한을 부여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순환근무제에 따라 본인의 희망을 받아 교육청의 인사규정에 근거한 점수를 내어 순위명부를 작성한 다음 비교적 공정한 인사를 하고 있다. 단위학교의 탄력적이고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학교특성에 맞는 필요한 교직원을 확보할 수 있는 학교장의 인사권이 필요한 것이다. 정작 필요한 교원이나 일반 행정직원을 발령할 때 학교장의 의견을 반영하여 인적 구성으로 인한 학교구성원의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인사시스템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학교 재정도 학생 수나 학급 수에 따라 획일적으로 예산을 배정해주는 시스템에서 단위학교의 실정에 따라 필요한 재정의 요구를 받아 교육청과 조율과정을 거쳐서 획일적인 배정이 아닌 지역과 학교여건을 고려한 신축성 있는 예산지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역자치단체로부터 지원받는 교육경비보조금도 시·군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이므로 지역교육청에 일괄적으로 지원하여 교육청이 단위학교의 재정을 고려하여 예산요구에 따른 조정과정을 거쳐 타당성 있고 필요한 학교에 보조금을 지원해 주고 그 사용 내역만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해 주는 시스템으로 가야 교육재정이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교권도 존중될 것이다. 자치단체 공무원이나 의원들에게 예산을 받으려고 머리를 숙이며 로비를 하는 행태는 결국 주민의 세금으로 행정기관이나 지방의회만 생색을 내게 해주는 꼴이다. 교육자치가 지방자치단체에 끌려가는 형국은 교육자치의 손상이요, 교권의 문제와 자존심과 맞물려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는 학교현장의 여론이 지배적이다. 학교교육과정 운영은 비교적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분야라고 볼 수 있다. 3월 1일자로 발령을 받은 학교장은 실질적으로는 전임교장이 수립해 놓은 학교교육계획을 가지고 단위학교를 경영하는 모순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학교장 자문기구로 교무위원회 제도화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학교가 비슷비슷한 교육계획이기 때문에 운영과정에서 수정해가면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더군다나 2학기에 승진이나 전보를 받아 부임하는 학교장의 경우는 한 학기는 단위학교 교장의 경영철학이나 교육관이 반영되지 못하고 운영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교원정년시기를 학년말로 일원화해야하는 문제와 맞물려 있어서 국가적 차원의 제도 개선이 수반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1년 단위의 교육과정을 정말 알차게 수립하여 운영하려면 교원정기인사를 새 학기가 시작되기 한 달 전인 2월 1일자로 발령해야만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자면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학하여 졸업식과 종업식을 하고 봄방학에 들어가던 1∼2주의 기간을 1월 말로 앞당겨서 실시하고 인사발령에 따른 학생과 이임인사도 모두 마친 후 학생들은 2월 말까지 다시 방학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업이 없는 이 기간에 새 학년도의 교내인사조직을 하고 새로 맡은 업무분장에 의해 새 학년도의 학교교육과정 계획과담당업무계획도 수립해야 한다. 또 새로 맡게 될 학생들의 실태를 미리파악하고 학교나 학급의 기본환경도 손질하여 새 학년도가 시작되는 3월에 신입생 입학식과 함께 아주 정상적인 교육과정이 운영되도록 모든 준비를 2월에 하면 산뜻하게 새 학년을 출발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지금처럼 3월 한 달이 어수선하고 우왕좌왕하며 정신없이 시작하는 시행착오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안정된 알찬 출발이 가능하다고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특별목적경비 편성할 재정권 보장해야 둘째, 단위학교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위한 각종 조직이 활성화 되도록 해야 한다. 현행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경영에 따른 행정적 측면이 강조된 조직이므로 학교 교육과정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학교장의 자문기구로 교무위원회를 제도화하여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단위학교의 특색 있는 교육과정운영을 위한 특별목적경비를 편성하여 운영할 수 있도록 교육청의 지원 체제가 필요하다. 이러한 권한을 주어야만 교육수요자들에게 만족감을 주는 다양한 교육과정운영이 가능해질 것이다.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자면 단위학교에 필요한 교원을 초빙할 수 있고 전임교원을 선택하여 교육과정운영에 참여시킬 수 있는 부분적 인사권도 주어져야 할 것이다. 학교의 업무가 증가하면서 행정실의 역할이 증대되었고 교원 외에 급식, 차량운행, 비정규직보조원 등 일반직 직원의 관리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교장이 점차 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교원을 관리하기보다 어려움이 더 많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 행정지원과 기능직 등의 인사이동 때는 학교장의 의사는 거의 반영이 되지 않고 교육청에서 일방적으로 인사발령을 내기 때문에 학교장의 권한이 전혀 없는 셈이다. 심지어 경력이 짧은 행정실장이 경력 25년이 넘는 교감과 동급으로 생각하거나 지시를 거역하는 잘못된 현상도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단위학교의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서는 일반직의 인사권한도 학교장에게 어느 정도 이양되어야 한다. 학교장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인사는 학교장이 힘은 없고 책임만 지는 무력한 기관장으로 만들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교에 두도록 되어 있는 각종 위원회나 후원단체도 학교장의 자율권을 존중하여 필요한 것만 존치시키도록 권한을 위임해 주어야 한다. 천편일률적으로 위원회를 설치토록 하기 때문에 유명무실한 위원회는 폐지시키도록 해야 한다. 물론 학교장이 독단으로 존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운영위원회나 교무위원회 등의 자문을 받아 학교장이 결정하도록 하여야 한다. 단위학교 자율성 침해할 법규 정비를 셋째, 단위학교 교육과정운영에 걸림돌이 되는 법규나 규제를 정비하여 자율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학교현장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교원의 목소리를 들어서 각종 법령이나 규칙을 손질하여 교육과정운영에 대한 자율권과 창의성을 단위학교에 더 확대해 주어야 할 것이다. 민족의 혼을 심어주는 기본공통 교육과정은 교육부에서 관리하고 지역교육과정은 지역의 특색을 살려서 창조적으로 운영하도록 재량권을 확대해야 한다. 수업일수와 시수도 초등은 더 줄여서 많이 가르치려는 욕심보다는 꼭 필요한 것을 쉽고 재미있게 가르쳐 흥미와 학업성취동기를 만족시켜주는 체험과 인성위주의 교육과정에 주력해야 한다. 중·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더 많이 배우고 대학은 몇 배 더 공부하는 풍토조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습관을 형성하며 인성교육에 중점을 두어야 할 어린 시절부터 공부에 억눌려서 진을 빼버리면 학문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무한한 가능성의 싹을 말리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량휴업일 운영이나 반쪽으로 끌고 가고 있는 주5일수업제 등 국가수준에서 법령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한 조속한 정비가 이루어져야 학교단위 교육과정운영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청에서 주요업무계획을 수립할 때 많은 내용을 단위학교 교육과정수립에 반영하도록 요구하면 학교교육과정이 교육청단위로 대동소이해져 버린다. 단위학교의 특색을 존중하려면 학교현장을 어떻게 지원할까에 대한 계획을 지역별, 학교 급별에 따라 세워야 한다. 교육청단위 계획 중에서 학교에서 필요한 부분만 학교실정에 맞게 선택하고 가공하여 교육과정에 반영하도록 자율권을 부여해 주어야만 학교마다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 학교장의 의식변화 위한 연수 필요 넷째, 교육부나 교육청의 역할과 기능이 지시 관리감독 통제에서 단위학교를 지원해 주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교육격차해소를 위한 업무조정, 재정지원, 우수인적자원지원 등 좋은 정책을 개발 보급해 주는 조언자 상담자 지원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단위학교 교육과정운영에 초점을 맞추어 학생과 학부모가 만족하는 교육의 꽃을 피우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단위학교가 지역의 교육센터의 기능과 역할을 하도록 지원해 주어서 평생교육의 센터로 지역사회학교가 거듭나야 한다. 단위학교 교육과정이 잘 운영되어 일반화시킬 때도 획일적인 행정력으로 밀어붙이지 말고 단위학교에서 현장을 방문하여 꼭 필요한 부분만 벤치마킹하여 점차적으로 확산 보급되도록 지원해 주어야 한다. 다섯째, 단위학교 자율경영으로 학교장에게 권한이 이양되어 정착하려면 맡은 역할과 기능을 조정하면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단위학교 자율경영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지금까지의 관행에서 과감히 탈피하여야 한다. 그러려면 연수나 연찬회를 통하여 학교장의 의식의 변화를 가져와야 하고 자율권이 주어진 만큼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교육청이나 학교의 모든 업무가 전자문서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예전에 비해 너무나 편리해졌다. 그러나 학교를 경영하면서 항상 느끼는 점은 구성원 간의 인간적인 예절이나 최소한의 도리마저도 사라져가고 있다는 안타까움이다. 복무상황도 교육행정정보 시스템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연가, 병가, 특별 휴가 출장, 조퇴 등도 전자시스템의 편리성에만 익숙해져가고 있어 학교장이나 교직원간에 얼굴을 대하며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동료의식이 소원해지는 단점도 있다. 인간이 기계에 예속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단위학교를 자율적으로 경영하자면 인간관계가 매우 중요한데도 말이다. 이를 극복해 나가자면 학교장의 리더십이 더 강화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청의 권한을 무조건 단위학교로 이양하는 것이 단위학교경영에 도움만 주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 부담되는 각종 관리는 교육청이 예를 들면 학교의 잡종재산관리나 학생수 감소로 인한 통폐합으로 폐교된 학교의 관리 등 교육청에서 관리해야 할 것을 학교에 위임하고 있어 학교장에겐 부담이 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학교현장에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관리부문은 교육청에서 관리해 주는 것이 단위학교를 도와주는 지원행정의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장은 단위학교 교직원과 시설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기관과 유대관계 유지는 물론 축제행사나 동문회행사 참여 학부모와의 유대관계 등을 원만히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업무추진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힘들어한다. 학교운영위원회가 단위학교 운영의 주요안건을 심의하며 학교발전기금을 접수 관리하는 기관으로 출발했는데 학교장을 통제하고 감독하는 기관으로 잘못알고 지역의 정치세력이나 특정단체와 연계하여 학교경영에 파행적으로 관여하며 학교장의 자율경영체제에 걸림돌이 되거나 권한을 약화시키는 위원회로 남아서는 안 되겠다. 도리어 학생과 교원의 복리증진과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단위학교의 교육이 더욱 활성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사회학교의 기관단체장으로서 학교장이 품위를 유지하며 존경의 대상으로 학교경영을 하기 위해선 학교장에게 재정운영재량권을 확대해 줄 필요가 있다. 그 다음은 상부관청으로서 지시, 감독, 통제로 교육행정을 펼치던 교육청의 관리시스템이 단위학교를 살리기 위한 상담, 지원, 격려자로 변신하여 일선 교육현장에 도움을 주는 후원 기관으로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교육부에서 쥐고 있던 중앙의 권한이 교육청과 단위학교로 이양만 하면 단위학교 교육이 잘되고 금방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동안 추락된 교권을 보듬어주는 것이 우선될 문제다.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신뢰를 얻고 청렴하고 투명한 학교경영으로 일반국민이 교원을 존중하도록 교육자부터 스스로 자정노력을 하여야 한다. 또한 학교장도 이제는 권한만 행사하려는 학교장이 아닌 단위학교 구성원과 대화로 협상하고 타협하며 설득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새 정부에서는 교권이 존중되고 바로 서도록 교육정책을 펼쳐서 교원과 학생이 배움의 기쁨을 안고 꿈과 희망을 싹틔우고 활짝 펼쳐나가는 행복한 학교가 되었으면 한다.
그동안 일선학교는 정부와 각 시·도 교육청의 획일화된 교육정책추진으로 큰 어려움 없이 안주해왔다. 즉, 학교장은 학교경영에 대한 구체적인 전문성이나 자율적인 학교운영에 관한 전문적 지식이 없어도 정부와 각 시·도 교육청의 방침만 충실히 수행하면 학교경영에 어려움이 없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상급교육행정기관에서 실시하는 학교경영의 실태와 점검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게 되는데, 결국은 상급교육행정기관의 방침을 얼마나 충실히 따랐는지에 점검이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획일화된 지시일변도의 교육으로는 교육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단위학교에 권한을 대폭 이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미 1995년 이후에 정부에서는 수요자 중심교육을 강조해 왔으나, 아직도 일선학교에서는 중앙의 교육방침 시행을 그대로 따르고 있을 뿐 별다른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자치제의 본격적인 실시와 함께 학교자치도 더욱더 중요시 되는 시점에서 지난해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그동안 교육부(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관장하던 각종 업무와 권한을 각 시·도 교육청에 대폭 이양하고 아울러 단위학교에도 권한을 이양하겠다고 밝혔었다. 이런 기본적인 방침이 새정부 출범과 함께 더욱더 구체화되고 있다. 이렇듯 중앙교육행정기관에서 관장하던 각종 업무와 권한을 각 시·도교육청과 일선학교로 과감히 넘기겠다고 했지만 이에 대해 학교에서는 기본적으로는 환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즉, 중앙교육행정기관에서 각 시·도교육청으로 각종 업무가 대폭 이양되는 것에는 원칙적으로 찬성을 하지만 각 시·도교육청에서 어느 정도의 권한을 일선학교에 넘겨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리어 각 시·도교육청에서 중앙으로부터 이양받은 각종 권한을 필요이상으로 행사하면서 도리어 일선학교의 교육활동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도 필요 이상의 간섭과 지시로 인해 일선학교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흔히 접할 수 있다. 단위학교에서 이런 우려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너무나 당연하다 하겠다. 왜 이양되어야 하는가 단위학교에 대폭적인 권한이 이양되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학교라는 공동체의 직접 당사자인 학생, 교원, 학부모 및 지역사회가 학교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 구성원들이 단위학교교육활동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다양한 학교교육이 가능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학교경쟁력을 끌어올려 당초 목표한 교육의 성과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간에도 단위학교에 권한이 많이 이양된 것으로 오인하도록 하는 여러 가지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 중 대부분이 실질적인 권한 이양이 되지 못하였고, 필요에 따라 권한 이양의 형태로 포장되었을 뿐이다. 이들 경우의 예로, 지금은 교육행정정보시스템과 교무업무시스템이라는 이름의 두 시스템이 일선학교에서는 단 하루라도 없으면 안될 만큼 일반화되어 있지만 이 시스템이 자리 잡기까지 어려움을 겪었던 것을 교사들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한창 문제가 심각했을 때, 당시의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에서는 논란이 가중되자 일시적인 처방으로 새로운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시스템결정을 학교장에게 일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일선학교에 슬그머니 미뤄 버렸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교원단체를 비롯한 교원들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한 권한이 주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단위학교 교원들 간의 갈등만 조장했을 뿐 그 어떤 권한도 행사할 수 없었다. 그 당시를 돌아본다면 어느 누구도 학교장에게 권한을 넘겨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많은 교원들이 교육행정기관에서 해결하기 난감하고 책임지기 어려웠기 때문에 일선학교로 넘겼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일들은 현재까지도 계속 반복되고 있다. 교육행정기관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일방적으로 학교로 떠넘긴 사례로는 현재도 매년 되풀이 되고 있는 교원성과급문제이다. 성과급 자체가 등급을 정해야만 쉽게 지급이 가능한데, 그 등급을 정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고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이 문제를 슬그머니 학교에 떠넘겼던 것이다. 최소한의 기본만을 제시하고 나머지는 학교에서 알아서 하도록 했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당연히 학교에서는 성과급 심사위원회 구성부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고일정을 짧게 함으로써 일선학교에서는 졸속으로 결정해서 보고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학교장에게 일임했으니 교육행정기관의 책임이 없는 듯하지만 실제로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실질적인 권한 이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선학교에 권한 이양이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지만 그동안의 경우를 보면 실제로 학교에 넘겨줘야 할 권한은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반드시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슬그머니 학교로 밀어 버린다. 이런 행태가 지속되는 한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하여 권한 이양을 하더라도 실질적인 권한 이양이 되지 않을 것이다. 권한 이양에 필요한 선행조건 일선학교에 대폭적인 권한 이양을 추진하고 있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일선학교의 여건이다. 다양한 여건이 필요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학교현장의 분위기이다. 즉, 권한을 넘겨받을 준비가 되어있느냐는 것이다. 그동안 학교장이 충분히 권한을 발휘할 수 있는 경우에도 상급교육행정기관의 의도를 파악하느라 제대로 권한을 발휘하지 못한 경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학교장의 과감한 권한행사와 단위학교 구성원들의 인식전환이 무엇보다 중요한 선행조건이라 하겠다. 현실적으로는 이양 받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학교 내의 다양한 위원회의 활성화, 교무회의의 기능강화,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유기적인 관계유지를 통한 의견수렴방안모색 등이 당장에 해결되어야 할 학교 내의 조건들이다. 또 하나는 상급교육행정기관이 실질적인 권한 이양에 어느 정도의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즉, 상급교육행정기관에서는 일선학교에 행·재정적 지원을 해 주는 지원행정위주로 변화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각종 행정행위도 지시와 통제위주보다는 논의와 협의를 통해 단위학교에 완전히 넘기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겠다. 따라서 상급교육행정기관인 교육과학기술부나 각 시·도 교육청에서도 기본적인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 즉, 학교를 단순히 최하위 교육행정기관으로 판단하여 일일이 간섭하고 지시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교육행정기관에서는 일선학교의 교육활동을 도와준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감시하고 통제한다는 인식을 바꾸기 전에는 어떠한 권한도 학교에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큰 틀의 업무만 학교에 전달하고 세부적인 영역은 절대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권한이 필요한가 학교교육은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단위학교가 조직의 관리에서부터, 교육과정운영, 인사, 재정 등의 자율권을 가지고 학교교육활동을 진행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면 당연히 단위학교에 최대한 많은 권한이 부여되어야 한다. 또한 학생과 학부모의 다양한 요구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단위학교도 다른 학교와의 자율경쟁체제에 대비해야 한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지역이나 학교급에 따라서 여건이 다른 것을 감안한다면 천편일률적인 학교교육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최소한의 기본적인 여건(국가교육과정 준수 등)을 충족해야 하겠지만 독자적인 교육활동은 필수적 요소라 하겠다. 이렇게 단위학교마다 독자적인 교육활동이 가능하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반드시 이양되어야 할 권한들이 있다. 학교에 넘겨져야 할 권한이나 업무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꼭 필요한 사항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가. 교육과정 편성, 운영권 첫째, 학교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에 관한 사항이다. 일선학교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이 학교교육활동이다. 연간 계획에 따라 교육계획이 세워지고 여기에 부합되는 학교교육과정을 편성하게 된다. 학교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가 교육활동에 있다고 볼 때, 학교교육활동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학교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은 전적으로 학교에 넘겨주어야 한다. 그동안은 중앙교육행정기관의 방침과 각 시·도 교육청의 방침, 각 지역교육청의 방침 등을 반드시 따라야 했다. 이것저것 다 따르다보면 특색 있는 교육과정편성이 어렵고 설령 일부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편성했다고 해도 이를 실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었다. 따라서 단위학교에 권한을 이양한다는 의미는 단순한 권한부여가 아니고, 학교장을 중심으로 단위학교 구성원들이 스스로 교육과정편성에서 운영까지 완벽하게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모든 권한을 넘겨주고 상급행정기관의 관여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야만 이 다양한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연간수업일수조정 및 수업시수조정, 각종행사와 관련된 내용, 각종 평가에 관한 내용, 체험학습 및 재량활동, 봉사활동 등이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현재처럼 수업일수와 수업시수를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모든 것을 지침에 따르도록 하면서 자율적으로 학사운영을 하라는 것은 아무런 권한 없이 그대로 따르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나. 다양한 위원회 활성화를 위한 권한 둘째, 학교 내의 각종위원회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 최대한의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단위학교에서 책임경영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위원회가 설치되어야 한다. 그만큼 단위학교 구성원들이 서로 협의하고 토론하여 가장 효율적인 결정을 내림으로써, 학교교육과정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대표적인 위원회가 학교운영위원회인데, 원래 학교운영위원회의 설립목적은 학교운영에 관한 규제를 철폐하고 권한을 과감히 이양·위임함으로써 학교운영의 자율성을 증대하며, 운영결과에 대한 평가를 통하여 책무성을 증진시킴으로써 학교단위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한다는 것과 학교운영을 민주화하고 투명성을 제고하고 아울러 학교를 운영하는데 교직원, 학부모, 지역사회 인사의 요구를 체계적으로 반영해 나간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극히 상식적이고 설득력 있는 취지에서 출발한 학교운영위원회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든 사항이 한 곳에 집중됨으로써 학교운영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즉, 연간 몇 회 이상 학교운영위원회를 의무적으로 개최하도록 하여 학교 내의 거의 모든 사항을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명문화함으로써 또 다른 규제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 사항을 일일이 정하여 대부분의 모든 사항으로 할 것이 아니고, 학교장과 학교구성원 및 학부모의 판단에 의한 심의활동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학교 내에 설치된 나머지 위원회를 적절히 활용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하겠다. 다. 학교장의 교원인사 요청 권한 셋째, 교원인사에 관한 사항의 이양이다. 물론 기본 틀은 유지해야 하겠지만 지나치게 규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가령 정기전보시에 유예율이나 학교장이 요청할 수 있는 비율 등을 교육청에서 일괄적으로 인사관리기준을 제시하여 정확히 맞추도록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학교교육활동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학교별로 필요한 인재가 달라지게 된다. 특색 있는 학교교육활동을 위해서는 여기에 가장 적합한 교사들의 필요성이 대두되게 된다. 지금처럼 구체적인 비율을 제시하기보다는 최소한의 하한선과 상한선만을 제시하고 나머지는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하도록 하면 될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상급교육행정기관의 업무경감측면에서도 상당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학교에서는 교육청에서 제시된 유예기준을 따르기 위해 유예를 원하는 교사들을 상대로 별도의 협의를 거쳐 유예가능교사와 불가능 교사를 구분하고 있다. 완전한 권한부여가 필요하다 하겠다. 또한 교사초빙문제도 학교장에게 권한을 넘겨야 한다. 이런 일련의 권한들이 학교로 넘어오게 되면 학교별로 다양하고 특색 있는 교육활동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라. 예산 투입, 집행에 대한 권한 넷째, 예산의 편성에서 집행까지의 모든 권한을 학교에 넘겨야 한다. 이 부분은 다른 분야에 비해 비교적 많은 권한이 일선학교에 넘어와 있지만, 아직도 미흡한 부분이 있다. 현재의 학교예산편성과정은 상급교육행정기관으로부터 예산편성지침을 받아 그 지침을 그대로 따르면서 편성하고 있다. 지침을 따르도록 하는 것 자체가 단위학교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즉, 이런 지침 때문에 일선학교에서는 적절한 예산 투입을 위한 우선순위 선정에서부터 기본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현재는 목적경비를 별도로 내려 보내고 있으나, 이렇게 내려오는 목적경비 외에도 단위학교에서 교육과정운영상 특별히 필요한 경우, 특별목적경비를 편성하여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예산편성 및 집행에 대한 권한의 대폭적인 이양이 필요하다. 학교장, 교원, 학부모 모두 책무성 강화해야 지금까지는 중앙교육행정기관이나 각 시·도 교육청에서 대부분의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향후에 문제가 발생해도 책임소재가 불분명하여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즉, 상급교육행정기관에서 지시·전달한 내용을 일선학교에서 그대로 따랐음에도 문제발생 시에는 도리어 학교에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권한 없이 책임만을 떠안는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선학교에 대폭적인 권한을 이양하고 그에 따른 책임의 한계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즉, 학교단위에서 충분한 검토와 협의를 통해 결정된 사항이라 할지라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경우에는 단위학교에서 전적으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책임을 묻게 될 경우 학교장과 나머지 교원을 포함하는 것은 물론, 학부모도 함께 책임지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날로 증가하는 학부모의 학교운영참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활성화하되, 학부모도 잘못된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는 풍토의 조성이 필요하다. 학부모의 학교 교육활동 참여의 가장 일반적인 경우가 학교운영위원회라고 본다면 학교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논의·심의된 사항에 대해서는 단위학교 교원은 물론 학부모도 함께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많은 권한 이양과 함께 책무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단순하게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에서 현재의 학교평가를 좀 더 개선하여 적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우선적으로는 단위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자체평가를 좀 더 활성화하여 적절한 피드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지만 좀 더 발전적인 방안으로 각 시·도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학교평가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의 학교평가형태로는 어떠한 책임도 물을 수 없기 때문에 학교평가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이루어진 후에 논의되어야 한다. 즉, 평가단의 구성부터 평가단의 활동까지 모든 것이 공정하고 객관성 있게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 하겠다. 단위학교에서 이루어진 교육활동에 대해 적절히 평가하고 개선점을 찾아내어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단위학교의 자체평가에서 모든 것이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교육목표달성이 가장 중요하다 학교교육의 성패는 학생이 중심이 되고 교사와 학부모의 역할이 어느 정도 고려되고 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학교경영은 학교장을 비롯한 단위학교 구성원들이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노력하는 과정이다. 여기에 학부모가 함께한다면 그야말로 교육의 3주체가 완벽하게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어 최대한의 성과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런 훌륭한 인적 조건이 모두 갖추어져 있더라도 현재의 학교교육은 어느 영역 하나라도 단위학교에서 단독으로 수행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향후의 학교교육은 규제와 통제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개별학교의 자율성과 책무성을 중시하는 교육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며, 학생과 교사 학부모는 물론 단위학교 교육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인사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만 자율적인 학교운영이 가능할 것이다.
1. 고전과 일반 대중, 그리고 청소년 누구나 읽었다고 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작품이 바로 고전이란다. 이는 고전을 즐겨 말하기는 해도 실제로 읽지 않는 세태를 꼬집은 촌철살인. 고전을 잘 읽지 않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뿐이다. 따라서 고전을 안 읽는다고 새삼스럽게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과거에 고전이란 특정 계층에만 한정되었던 특별한 책들이었다. 계급적으로 상류층, 그 가운데서도 지식을 사랑하는 교양인에 극히 국한 되었던 정전(正典, canon)들이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에게는 고전을 읽지 않는다기보다는 읽지 못한다는 말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고전을 읽을 만한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으며 이를 제대로 소화할 만한 지적 능력 또한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허용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고전을 손에 들기란 그 자체로도 좀처럼 쉽지 않다. 언어의 심연을 건드리며 오랜 세월에 걸쳐 사색과 성찰의 숙성 끝에 감수성이 예민하고 지적으로 까다로운 사람들의 공감과 수긍을 끌어내는 고전은 정말이지 힘들게 거둬들이는 인류 문화의 정수다. 당연히 접근하고 음미하기가 매우 어렵다. 곰곰 따져보면 청소년 역시 마찬가지다. 일반 대중들이 고전을 가까이 하기가 어렵듯이 그들 역시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으며 이를 제대로 소화할 만한 지적 능력 또한 연령상 아직 갖춰지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고전을 향한 청소년들의 손길이 뜸하다고 해서 마냥 함부로 비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 자신들은 물론 청소년들을 가능한 한 고전에 가깝게 가게 만드는 방법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소년들 자신을 위해서나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서나 모두 그러하다. 고전의 힘을 보여주고 느끼게 하여 자연스럽게 고전에 접근하고 음미하게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2. 고전의 힘, 이솝 우화의 힘 고전의 힘, 그 가운데서도 이솝 우화의 힘은 막강하다. 인터넷 검색 서비스를 활용하면 이솝 우화가 단지 생존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현실을 다양하고 역동적으로 바꾸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인터넷 동화로 서비스 되는가 하면, 비디오 영어 교재로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이솝 우화를 활용하여 공부하는 영어 단어장, 이솝 우화 뮤지컬, 이솝의 집 건축 등등. 이솝 우화와 연관된 사물이나 사건, 사람들은 많고도 많다. 이솝 우화의 힘이 막강하다는 가장 두드러진 증거는 뉴스와 같은 현실적인 글에서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등 시사적인 문제들을 다룰 때 이솝 우화는 그 자체가 ‘글로벌 스탠다드’ 역할을 한다.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주장이나 의견을 피력할 때 이솝 우화는 누구나 알고 있는 공통 준거로 활용되는 것이다. 이솝 우화를 모르면 그 이상의 이해가 불가능하게 쓰는 글들이 많다는 말이다. 이솝 우화는 이미 알고 있지 않으면 문제를 풀 수 없게 만드는 수학의 공리와 같은 셈이다. 예) 이처럼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정부가 또 있을까. 마치 이솝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을 대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윗사람이 듣기 좋은 말만 하려는 ‘간신들’ 때문에 국민과 나라가 치러야 하는 비용은 어마어마하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런 고약한 버릇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국민 속이는 못된 버릇 바로 잡아야”, 연합시론, 연합뉴스 2007. 12. 10.) 예) `해와 바람이 내기를 합니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내기죠. 바람이 먼저 하겠답니다. 강한 바람을 나그네에게 몰아치죠. 그러나 나그네는 옷을 여밀 뿐입니다. 이제 해가 나서죠. 따뜻한 빛을 내려쬡니다. 나그네는 더워서 옷을 벗어요.` 이솝우화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이솝우화의 `바람` 같았습니다. 집값을 잡기 위해 온갖 규제책을 몰아쳤죠. 결과는 대단히 실망스러웠습니다. (“MB의 햇살이 비출 부동산은?” 매일경제, 2008.01.18) 이렇듯 이솝 우화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우화의 특성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준다. 동물은 곧 사람을 뜻하고 그들의 세계는 일상의 현실을 뜻하는 우화. 그러기에 동물은 그저 동물이 아니고, 우화 역시 마지막에 곱씹을 교훈을 결론 삼고자 탄생한다. 나아가 이솝 우화를 제시하며 시작하는 거의 모든 글의 공통적인 표현상 특징을 낳는다. 쉬운 우화를 통해 어려운 통찰, 재미를 통해 의미를 찾는 우화의 특성을 살려 쓸 때 이솝 우화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로서 의미를 지니며 눈앞의 현실에 대해 메시지를 간결하고 인상 깊게 던진다. 결국 우화의 최종 목적은 결국 메시지의 표현과 전달, 소통이다. 예) 누구나 아는 이솝우화 한 토막. 고깃덩이를 문 까마귀가 나뭇가지에 앉았다. 여우가 다가와 말했다. “아름다운 목소리의 까마귀님, 노래를 들려 주셔요.” 우쭐한 까마귀가 목청을 높였다. 입을 벌리는 바람에 떨어진 고기를 물고 달아나며 여우가 말했다. “멍청한 까마귀야. 고기나 먹지 그 목소리로 무슨 노래냐.” 이처럼 교훈 담긴 우화를 입에 달고 다닌 이솝이지만 정작 자기 처신은 그렇지 못했다. 그가 델포이에 갔을 때다.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에 감탄하면서도 노예 신분인 그를 천대했다. 그러자 그는 델포이 사람들을 어리석다 깔보고 비웃었다. 화가 난 사람들은 그의 짐 속에 신전의 제기를 몰래 넣었다. 도둑 누명을 쓴 이솝은 절벽에서 내던져졌다. (“총리감이 없다고요?” 이훈범의 시시각각, 중앙일보, 2008. 1. 21.) 하지만 우화가 현실을 말해주더라도 현실은 종종 우화를 넘어서기 일쑤다. 앞서의 예에서처럼 이솝의 종말은 우화의 밝음과 어둠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현실에 적확하게 들어맞는가하면 현실을 넘쳐나는 괴리를 지니기도 한다. 우화의 본질적 한계를 이솝 스스로의 운명으로 다시 증거하고 있는 셈이다. 이솝과 이솝 우화의 아이러니는 인간과 우화, 그 힘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3. 이솝 우화를 교육적으로 활용하기 우화는 기본적으로 짧고 간결하다. 그러면서도 복잡한 현실에 명쾌하게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을 품는다. 우화의 이런 특성을 잘 살리면 얼마든지 다양하게 교육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다음은 그 몇 가지 방법들. 일단 이솝 우화를 읽게 한 다음, 자신이 좋아하는 우화들을 10가지에서 20가지 정도 고르게 한다. 일정하게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각자 그 근거를 달아보게 하면 자연스럽게 근거와 주장의 형식을 익힐 수 있다. (평소에 근거와 주장의 형식으로 생각하고 글을 쓰게 하는 작업은 논증의 가장 기초. 논술 능력을 키우는 가장 기본 단계다.) 우화의 중간이나 결말에 빈 괄호를 만들어 다른 친구들에게 걸맞은 원래 대사를 채워넣게 하거나 직접 다른 대사로 바꿔 보는 퀴즈를 만들게 하는 것도 좋다. 빈 괄호 안에 들어갈 내용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읽기 전략을 이해하고 관련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무엇이 들어가면 상대가 합리적으로 추측할 수 있을까란 질문은 필자의 사고와 근본적으로 맞닿아 있다. 어떤 것(내용)을 어떤 곳(구성)에 어느만큼(비중) 넣느냐는 필자의 근본적인 고민을 함께 할 때 자연스럽게 독해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좀더 수준을 높여서 다양한 기준을 직접 설정하여 여러 가지 범주로 묶게 하는 활동도 효과적이다. 이를테면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식의 부문별로 활용할 수 있는 우화들, 인간의 주관적 심리와 객관적 조건 등으로 각각 묶을 수 있는 우화들, 상대적 난이도에 따른 상급/중급/하급 우화들…. 이를 신문활용교육과 접목해도 효과적이다. 신문을 읽으며 자신이 읽은 우화가 가장 적합한 사건이나 상황의 기사를 찾으라는 활동은 그 가운데 하나다. 빠르게 읽으면서도 우화와 사건, 상황을 함께 정확히 읽는 연습으로 적절하다. 앞서의 예들에서 볼 수 있듯이 우화가 딱 들어맞는 현실 문제가 어떠한 부문들인 파악할 수 있는 부가적 이점도 있다. 이솝 우화를 패러디하여 우리 시대의 새로운 이솝 우화를 써보게 하는 것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지도 방법이다. 토끼와 거북이, 개미와 베짱이 등 새롭게 패러디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 시대의 우화를 쓰는 단계로 나갈 수 있다. 곁들여 이솝 우화에 알맞은 현대 음악을 찾게 한다든지, 이솝 우화 라디오 독서프로그램을 십여 분 분량이라도 만들게 하는 방법 역시 책을 여러 가지 매체와 어울려 강력한 창조적 문화 체험으로 강조하는 아이디어다. 물론 세상에는 이솝 우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다양한 세계의 우화들을 읽게 하는 독서 지도도 꼭 덧붙였으면 좋겠다. 이때 17세기 프랑스의 시인 라 퐁텐이 쓴 우화는 이솝 우화와 함께 읽으면 좋은 영순위 작품. 이솝 우화의 막강한 힘을 확인하면서 좀 더 심층적으로 읽을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한다. “17세기에 프랑스의 라 퐁텐이라는 시인이 이솝 우화라는 표현 형식이 가진 본질적인 힘과 가능성을 최대한 살리고 그 위에 시적인 매력을 가미해 독자적인 우화를 집필했다. 그는 ‘이솝’의 단순한 전승이 아닌, 표현상의 비약을 거쳐 ‘라 퐁텐 우화집’이라는, 하나의 독립된 세계를 만들어냈다. 말하자면 그는 이솝이 발명한 엔진을 사용해 비행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라 퐁텐 우화집에는 이솝 이야기 외에 유럽의 설화도 그의 고유한 의도 속에 교묘하게 도입되어, 전체적으로 그와 그 시대의 사상이 자연스럽게 배어 들어갔다.” (다니구치 에리야 지음, 구스타브 도레 그림, 라퐁텐 우화집 1~2, 황금부엉이, 244쪽) (* 이 책은 제목과 달리 라 퐁텐 우화를 직역하지 않고 저자가 나름대로 재구성했다. 그 자체가 이솝 우화를 교육적으로 활용한 궁극의 단계를 보여주는 사례인 셈이다.) 토끼와 거북이, 개미와 베짱이, 늑대와 양치기 소년 등. 이솝 우화를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은 없으리라. 그만큼 이솝 우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널리 전해 오는 인류의 영원한 고전이다. 어쩌면 이렇게 쓸 수 있을까. 감탄을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문학적 상상력과 표현 능력이 빼어난 문화유산이다. 실제로 이솝 우화는 아주 짤막한 분량에 인간 세상의 이모저모를 천의무봉의 솜씨로 흥미롭게 펼쳐 낸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읽고 또 읽어도 그때마다 읽어내는 무늬와 결이 달라지기도 한다. 번득이는 재치와 넉넉한 유머, 날카로운 반어와 놀라운 역설, 생생한 경고와 그윽한 관조 등 이솝 우화는 실로 재미있는 이야기부터 인생사의 독본, 인간과 세상을 읽을 수 있는 거울과 등불로서 다양하게 수용되는 것이다. 유종호 교수가 옮긴 이솝 우화집(민음사)은 그동안 무수히 출판된 여러 이솝 우화책들과는 매우 다르다. 모두 358편으로 알려진 이솝 우화 가운데 약 207편의 이야기를 집중 소개하는데, 원본 연구에 충실한 텍스트를 중심으로 꼼꼼하게 우리말로 옮기고 다시 관련 연구서들을 검토해 일일이 오류를 고쳐놓았다. 그간의 책들은 대부분 원본을 제대로 고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서로 엉터리인 채 모방하여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솝 우화의 원전은 누구도 정확하게 알 수 없는지도 모른다. 저자로 알려진 이솝에 대해서도 제대로 확인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대략 기원전 6세기에 살았던 걸로 추정될 뿐이다. 이솝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설까지 있다. 이솝 우화는 동화가 아니라 우화다. 이를테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실현하는 세계를 동화가 그려낸다면, 우화는 현실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 주며 곱씹게 한다. 때때로 우화는 권선징악이라는 도덕적 교훈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현실적인 깨우침을 주기까지 한다. 그러니 이솝 우화를 읽다가 지극히 세속적인 결론에 도착해도 깜짝 놀랄 까닭은 없다. 외국에서는 이솝 우화를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 피하는 것도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 우화의 세계를 좀 더 깊게 읽으려면 교훈과 재미만을 찾는 태도에서 벗어나 보는 것도 좋겠다. 우화의 세계는 물활론, 즉 모든 사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세계다. 모든 것들이 존중되는 세상이 바로 물활론의 이야기 공간인데, 우화를 낳는 세계관과 현대의 환경 중시 녹색운동의 가치관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생각해 보자. 또한 헤르메스와 나무꾼 이야기처럼, 우리나라의 금도끼 은도끼 전래 동화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경우도 좋은 생각거리다. 신데렐라 이야기와 콩쥐팥쥐 이야기가 유사하듯이, 인류 보편의 상상력이 인간의 삶과 인류 문화 형성에 어떻게 연관되는지도 흥미로운 주제다. (참고: “기존 책 오류 털고 원본 충실 인류 보편 상상력 흥미로워”, 허병두, 한겨레신문, 2004년 10월 31일) Quiz 다음 중 자신이 알고 있는 이솝 우화들을 확인해 보세요. 해당 우화들을 활용할 수 있는 현실의 사건이나 상황, 문제 등을 직접 찾아 볼 것! 박쥐 이야기, 두 친구와 곰, 여우와 황새, 시골 쥐와 서울 쥐, 바람과 해님, 작은 게와 큰 게, 늑대라고 외친 소년, 사자의 탈을 쓴 나귀, 까마귀와 뱀, 늑대와 두루미, 병든 사자, 생쥐 위원회, 생쥐와 개구리, 개구리와 황소, 토끼와 거북, 꼬리를 잃은 여우, 우유 짜는 소녀와 양동이, 목마른 까마귀, 여우와 포도, 사자와 생쥐, 농부와 황새, 원숭이와 치즈, 게으른 거북, 개미와 베짱이, 황금 알을 낳는 거위, 나귀, 여우, 그리고 사자, 세 가지 소원, 솔개, 개구리, 그리고 생쥐, 물방앗간 주인의 당나귀 등등….
“청나라 군대는 자국의 항구들을 공격하고 양쯔강에 진입한 후 전장(鎭江)을 점령해 남북을 차단한 다음 난징으로 육박하던 영국군을 결국 격퇴시켜 중국이 종이호랑이가 아님을 과시했다.” 물론 뒤집은 이야기이다. 청은 잘 훈련되고 근대적 병기로 무장한 영국군에 무릎을 꿇었고, 이후 영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은 빗장이 풀린 중국으로 물밀듯이 들어가 각종 이권을 탈취해갔다. 비교적 잘 알려져 있듯이 아편(앵속, 양귀비)의 수입․판매․흡연을 금지했으나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한 청은 1839년 6월에 임칙서(林則徐)를 특명전권대신으로 꽝조우(광주)에 파견해 영국 상인의 아편 2만 상자를 몰수해 불태우고 영국과의 통상을 단절했다. 하지만 그것은 중국과의 무역확대를 꾀하던 영국에게 좋은 구실을 주었고, 영국은 결국 다음해 6월 청국에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19세기 전후의 중국은 아편에 완전히 노출된 상태였고, 따라서 경제적으로는 물론 국민건강상으로도 심각한 폐해를 입고 있었다. 기원전 34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재배된 것으로 전해지는 아편은 서아시아와 이집트를 거쳐 유럽과 인도로 전래되었으며 중국에는 아랍상인들에 의해 서기 400년에 전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늦어도 당나라 때부터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아편은 명나라 시대에 이르러 약으로 분류되었고, 약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이후 아편은 합법적으로 수입될 수 있었다. 중국에서 아편을 처음으로 흡입한 지역은 타이완이었던 것 같다. 타이완 주민들은 약으로 분류된 이후 곧 아편을 연초에 섞어 흡입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편 흡입은 인도항로를 처음으로 개척한 포르투갈 사람들이 1500년경에 처음 시작했으며 아편을 약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1600년경의 네덜란드인들이라고 한다. 아편전쟁이 어떤 연유로 일어났는지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자. 영국은 18세기에 들어와 동인도회사 등을 통해 청과 활발하게 교역했다. 하지만 건륭제 전후에 번영을 구가하던 청과의 무역에서 영국은 심각한 무역적자에 시달렸다. 물론 영국은 중국의 문호를 보다 완전하게 개방시켜 무역역조를 해소시키려고 애썼다. 1793년에 G. 메카트니경을 중국에 파견하고 그 후에도 수차례에 걸쳐 사절단을 파견해 무역제한을 풀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청나라로부터 번번이 거절당했다. 영국산 모직물과 인도의 면화를 중국에 수출하는 대신 중국으로부터 차(茶)와 비단 등을 수입했지만 지나친 수입초과로 청에 막대한 은을 지불해야 했던 영국 동인도회사는 수입초과 상태를 역전시키기 위해 인도산 아편의 중국수출이라는 묘책을 찾아냈다. 그리하여 동인도회사는 모직물 등 영국 상품은 인도로 수출되고, 인도의 아편은 중국으로, 중국의 차와 비단은 영국으로 수송되는 이른바 삼각무역을 전개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영국과 중국의 교역상황이 바뀌었다. 아편수출 덕분에 영국은 1820년대부터 무역흑자를 누리기 시작했고 반대로 중국은 막대한 은(銀)이 아편대금으로 유출되어 곧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게 되었다. 더욱이 1834년부터 동인도회사의 무역독점권이 폐지되면서 영국의 상인들은 다투어 중국의 아편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리하여 인도산 아편이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확실한 수치는 아니지만 합법적, 비합법적으로 중국에 유입된 아편은 1800년에는 4750 상자, 1826년에는 1만 9386 상자. 1830년에는 3만 3906 상자, 아편전쟁 직전인 1839년에는 5만 350 상자로 추산된다. 아편수입에 비례해 중국의 은이 점점 더 많이 유출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 동안 약 6억 양(兩)의 은이 영국계 상인들의 손으로 들어갔다. 은의 지나친 유출은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했을 뿐만 아니라 청나라의 조세제도까지 위협했다. 은이 귀해져 은과 동전의 교환비율이 1:800에서 1:1,500 내지 1: 2000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무제한의 아편수입은 국가재정을 고갈시키고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을 뿐 아니라 국민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했다. 임칙서는 그 무렵의 중국인 아편흡연자를 400만으로 추정했지만 적어도 200만은 넘었을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처음에는 주로 상류 부유층이 아편흡연을 즐겼으나 아편흡연 관행은 점차 중․하류층으로 확산되어 갔다. 아편흡연 시중꾼을 두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오늘날의 다방처럼 여기저기에 아편흡연방들도 생겨났다. 중국대륙이 아편연기로 뒤덮여 가면 갈수록 국민경제와 국민건강 또한 더욱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갔다. 아편의 심각한 피해를 막기 위해 청왕조는 때늦게 노력했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관리들이 부패한 데다 중국적 향락문화와 명나라 말기부터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흡연풍조가 결합해 아편흡연을 부추겼다. 거기다 영국 상인만이 아니라 천지회․첨도회 같은 중국계 비밀결사들까지 다투어 아편밀수에 나서는 형편이었다. “그 냄새가 향기롭고, 그 맛이 맑고 달며, 기분이 울적하고 답답할 때 마주보고 교대로 흡연하면 처음엔 정신이 밝아지고 머리와 눈이 깨끗해지며, 계속하면 가슴이 갑자기 확 열리면서 감흥이 두 배로 증가한다. 오래도록 하면, 골절이 나른해지고, 두 눈동자가 확 열리고 만 가지 생각이 모두 없어지고 꿈속에서 노니는 것 같으며 영혼이 상쾌해지니 진정한 극락세계다”는 식의 아편예찬 시(詩)들도 등장했다. 비상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던 청나라는 임칙서를 꽝조우로 파견했고, 앞서 이야기했듯이 임칙서는 영국 상인들의 아편을 몰수해 태우고 영국인의 대(對)중국 교역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전쟁을 통해서라도 중국의 문호를 개방시키고 무역확대를 도모하려던 영국에게 전쟁의 구실을 주었을 뿐이었다. 사실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영국으로서는 더없이 좋은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1840년 2월에 중국원정을 결정한 영국은 해군소장 G. 엘리어트를 최고 행정관 겸 전권대사로 중국에 파견했다. 같은 해 6월에 홍콩에 도달한 영국함대는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페이강 하구를 향해 북진했으나 양측은 어떤 합의점도 찾지 못했다, 다음해 5월 영국은 꽝조우시 성벽을 공격해 배상금 6백만 달러를 받아냈으나, 이어 꽝조우시도 반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것은 승산 없는 영국과의 전쟁을 시작하는 것일 뿐이었다. 청조는 강력한 영국 해군에 대항할 어떤 무기도 없었고 효과적 전략도 세우지 못했다. 청이 할 수 있는 대응은 고작 영국 함대를 향해 불붙은 뗏목을 밀어붙여 보복하거나 상금을 걸어 영국군의 머리를 베어오도록 하는 것뿐이었다. ‘제국기(旗) 군단’은 때로는 완강하게 저항했지만 근대적 영국군에 비해 무장과 훈련이 크게 부족했다. ‘청기(靑旗)군단‘도 그와 유사하게 허약한데다 사기도 높지 못했다. 청은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지방의 군대를 긴급히 투입했으나 그도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영국은 자국의 목표가 중국인에게 고통을 주는 관료 및 군인과 싸우는 것일 뿐 인민과 싸우는 것이 아님을 중국인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중국인과 정부 사이에는 심각한 불신과 갈등이 존재했고 전쟁의 혼란 중에 더욱 현저해진 그 불신과 갈등을 영국은 적절히 이용할 수 있었다. 엘리어트의 후임 사령관으로 8월에 마카오에 부임한 H. 포팅어는 아모이와 닝뽀 등을 점령하면서 북진했다. 인도 주둔 영국군으로부터 증원군을 얻은 포팅어는 1842년 5월에 작전을 재개해 상하이의 관문 우쑹과 상하이를 점령했다. 이어 양쯔강에 진입해 전장을 점령해 남북을 차단한 다음 난징으로 육박했다. 8월에 난징이 함락되자 청은 결국 굴복하여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청정부는 1842년 8월에 난징조약에 서명했다. 그리하여 관허(官許)상인으로 대외교역을 독점하던 공행(公行)의 광쪼우무역 독점권이 폐지되고, 5개 항(꽝조우․아모이․푸조우․닝뽀․상하이)이 개항되었다. 이제 영국인들은 개항장들에서 주거자유와 영사재판권을 누리게 되었다. 청은 그밖에도 홍콩의 할양을 약속하고(1842년에 영국에 조차된 홍콩은 150년 만인 1997년 7월 1일에 중국에 반환되었다) 당시로서는 막대한 금액(2천 1백만 달러 상당)을 배상금으로 지불해야 했다. 영국은 이듬해에 추가조약으로 보귀(호문)조약을 맺어 치외법권과 최혜국대우 혜택을 얻어냈다. 난징조약으로 문호를 개방한 청은 여타 서구제국과도 통상조약을 잇달아 체결했다. 1844년 6월과 10월에 미국 및 프랑스와 통상조약을 맺었다. 그 조약들 역시 무역상의 특권을 포함해 불평등 조항을 담고 있었다. 그리하여 중국은 관세부과의 자율성, 치외법권, 자유로운 선교권 등을 구미열강들에게 차례차례 주어야 했다(역사마저 왜곡하는가 하면 주변국들의 깊은 우려를 외면하면서 패권주의적 초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지금의 중국과 비교된다). 난징조약은 그 불평등성을 논외로 치더라도 중국이 바야흐로 유럽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는 본격적 단계라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전술했듯이 난징조약 이후 미국, 프랑스, 독일 등이 차례로 중국에 진출했으며 영국도 제2 아편전쟁으로 불리는 애로우호사건(1856~58) 후 다시 텐진조약을 체결하고 중국의 여러 항구들을 추가로 개항시키고 베이징에 공사관을 두게 되었으며 기독교 포교의 자유와 내지 통행권 등을 획득했다. 물론 아편수입은 더욱 자유로워졌으며 급기야 아편흡연을 합법화했으며 아편재배도 허용했다. 이후 중국 내에서의 아편재배가 점차 증가하여 1870년에는 770만근의 아편을 생산했고 1880년에는 4000만근의 아편을 생산해 수입 아편을 능가하게 될 정도였다. 불붙은 뗏목을 적 함대 쪽으로 밀어붙이는 것 말고는 공격수단을 갖지 못한 중국이 아편전쟁에서 승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편전쟁에서 거꾸로 청이 승리했을 경우 중국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물론 서양제국이 동양으로 물밀듯이 밀고 들어오던(서세동점)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중국이 문호를 개방하는 것은 시간문제였겠지만 적어도 조차라는 이름으로 영토를 굴욕적으로 빼앗기고 상하 국민 모두가 패배의식에 빠져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편전쟁에서 그처럼 저항다운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힘없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중국은 ‘중화‘의 위엄과 권위를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개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을 경우 중국의 근대화운동이 어느 정도 성공해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패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반도의 역사도 아마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비주류를 조명하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은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경기를 소재로 삼았지만 스포츠 영화의 상투적인 관습을 버리고 인간 드라마의 성취를 이룬, 잘 만들어진 대중 영화이다. 우생순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에서 연장전에 승부던지기까지 가는 명승부를 벌였지만, 아깝게 패배해 쓰디 쓴 눈물을 삼켜야 했던 여자 핸드볼팀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여자 핸드볼 국가 대표팀 감독 대행 직을 맡게 된 혜경(김정은)은 팀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오랜 동료이면서 라이벌이었던 미숙(문소리) 등 노장 선수들을 끌어들이려 한다. 왕고참 혜경의 지도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신세대 선수들의 불만이 노장 선수들과 신진 선수들 사이의 불화로, 급기야는 거친 몸싸움으로까지 번지자, 핸드볼 협회는 남자 핸드볼계의 스타 안승필(엄태웅)을 후임 감독으로 임명한다. 우생순은 신선하지만 위험한 모험을 시도한 영화이다. 한국에서는 별 재미를 못 본 스포츠 영화에 그것도 축구나 야구가 아닌 비인기종목 핸드볼, 그나마 심판의 편파 판정에 시달리다 결국은 지고 만 경기로 아쉬움을 남긴 아테네 올림픽을 택했다. 스포츠 영화라면 으레 떠오르는, 역경을 이겨내고 감격스런 승리를 움켜쥔 이야기가 아니라 고군분투했지만 눈물을 삼켜야 했던 실화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의 연출자가 임순례 감독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이유에 대해 고개가 끄덕여지게 될 것이다. 전작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세 친구를 통해 잔잔하지만 마음 깊숙한 곳을 울리는 감동을 선사했던 그는, 초라한 무대와 막다른 뒷골목을 서성이는 비주류, 소외된 이웃들의 현실을 가감없이 담아내며 그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보여 준 감독이다. 그러니 우생순을 통해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은 소재에 이미 다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비인기종목인 핸드볼에 여자, 비주류 중에 비주류를 선택한 이 영화가 지향하는 바는 명백하다. 고난을 딛고 일어선 영광의 순간이 아닌 패배한 경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들이 결코 패배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힘겹게 은메달을 따고도 코트에 주저 앉아 서럽게 울어야 했던 선수들의 사연을 들려주면서 그들의 등을 쓸어 준다. 아줌마의 땀내가 진동하다 우생순의 핸드볼 여자 국가대표팀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명색이 7회 연속 올림픽에 진출한 국가대표팀이지만 그 이름값이 무색하게도 올림픽 본선에 나갈 팀 전력에 차질이 생기자 은퇴한 고참들을 긴급 수혈해야 하는 판국이다. 비인기종목이라 국내에 실업팀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보니 생겨난 안타까운 현실인 것이다. 결국 92년도 승리의 주역이었던 선배 선수들, 미숙과 정란(김지영)이 팀에 합류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들이 백전노장인 아줌마 선수들이라는데 있다. “아니 태릉이 경로당이야?” 후배의 이 한마디는 태릉에서 그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명확히 보여 준다. 체력과 실력에서는 뒤지지 않지만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이유로 그들은 퇴물 취급을 받는다. 이렇게 선 후배간의 신경전, 유럽식 선진 훈련 방식을 새롭게 도입하려는 감독과 기존의 한국식 훈련법을 고수하려는 노장 선수들 간에 갈등이 커져 가면서 대표팀 내엔 균열이 생겨난다. 영화에서 이런 위기 상황을 해결할 돌파구를 찾는 중심축은 노장 언니들, 바로 아줌마들이다. 이들은 각자에게 지워진 삶의 무게를 외면하지 않고 당당하게 경기장에 선다. 혜경은 감독으로서의 자질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이혼 경력이 발목을 붙들게 되어 해임되고 만다. 하지만 미숙의 충고를 받아들여 명예회복을 위해 선수로서 팀에 재합류한다. 감독과의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면서 같은 여자로서, 언니로서 후배 선수들의 처지와 고충을 이해하고 보살펴 준다. 화려한 전적에 빛나는 최고의 핸드볼 선수, 미숙의 현재 상황은 최악이다. 팀이 해체된 후 마트에서 판매원으로 일하게 된 그는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일터에 업고 다니느라 눈칫밥을 먹는다. 동료 선수였던 남편은 사업을 하다 망해 빚을 진 채 숨어 다닌다. 혜경의 도움으로 선수로 복귀한 후에도 미숙은 아이를 코트 옆에 세워둔 채 운동을 해야 한다. 혜경과 정란의 든든한 방어막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눈칫밥을 먹이는 엄마의 마음은 서글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숙은 운동을 포기하지 않는다. 잠시 주저앉아 눈물을 흘릴지언정 코트위에서는 결코 밀리지 않는다. 젖먹던 힘까지 다해 땀을 흘리며 끝까지 달린다. 한편, 우리 사회에서 조롱거리로 불리우는, 소위 ‘아줌마’스러운 행동을 보여 주는 것은 정란이다. 뽀글파마에 목소리큰 그는 버릇없는 후배 머리채 잡고 싸우기, 새치기하기, 보약 챙기기 등의 행동으로 눈총을 받지만 한 치 부끄러움이 없다. 그런 정란의 아줌마 근성은 역도부의 강짜를 이겨내고 후배들을 지키는 힘이자 삭막한 선수촌 생활에 웃음을 가져다주는 묘약이다. 사회적으로 폄하되기 일쑤인 평범한 아줌마 정란은 경기장에서 당당히 제 몫을 해낸다. 그들, 최선을 다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혜경, 미숙, 정란이 그들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이다. 은퇴한 선수들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정신적, 신체적으로 우수하다. 안승필이 제안한 과학적 훈련 방식을 그들의 몸은 뛰어넘어버린다. 아줌마들의 강인한 몸은 안승필의 비웃음과 그 잘난 상식의 틀을 깨버린다. “한국형 핸드볼 한물갔다고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는 혜경의 말은 끊임없는 훈련으로 몸을 단련시키고 끈끈한 결속력으로 팀이 하나되는 것이, 뛰어난 기술보다 먼저라는 것을 시사한다. 우생순은 드라마틱한 실화가 주는 공감대 위에 잘 짜여진 각본, 인물들의 조화로운 앙상블을 추구하는 연출이 빛을 발하는 영화이다. 각 배우들은 탄탄한 연기력으로 캐릭터에 대한 집중력을 살리면서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 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긴 여운을 남기는 인물은 미숙이다. 뭘 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는 것은 없는 그의 현실을 보고 있자면 가슴이 막막해지지만 그의 투혼에 진심으로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게 된다. “이기든 지든 먹고살려고 미친 듯이 뛰었다”는 미숙에게 핸드볼은 혜경처럼 자존심을 건 운동이 아니다. 사회적 지위나 조촐한 가정의 안식이 없는 미숙에게 핸드볼은 밥을 버는 행위다. 핸드볼 선수로서의 뛰어난 재능과 열정을 가진데다 승패에 상관없이 열심히 일하는 일꾼의 미덕까지 가진 미숙. 그런 그가 설 자리가 없는 현실. 그것이 가슴 아픈 것이다. 생애 최고의 순간 덴마크와의 결승전 마지막 승부던지기. 남편의 자살 기도 소식을 듣고 짐을 싸 숙소를 떠났던 미숙이 돌아와 코트 위에 선다. 이후 경기의 승패를 가른 클라이맥스를 보여 주지 않고, 후경(後景)의 인물들의 움직임과 카메라의 안팎으로 넘나드는 선수들, 그리고 미숙의 표정을 담아낸 마지막 장면들은 잊기 힘든 감정적 여운을 남긴다. 결승전의 이 장면이 가슴을 치게 하는 것은 단순히 금메달을 놓쳤기 때문만이 아니다. 우승을 했어도 팀은 해체되었던, 밥벌이를 위해 원치 않는 곳으로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그들의 과거가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암울한 현실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그들에게 주어진 그 시간을 ‘그들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부른다. “지는 경기를 하는, 인기 없는 경기에 목숨 거는 여자들을 통해 최선을 다했을 때의 감동을 만들어내고 싶었다”는 어느 인터뷰에서의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최선을 다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그 기쁨을 경험하게 해준다. 경쟁 사회에서 너무도 쉽게 무시되는, 화려한 결과가 아닌 땀 흘린 과정이 소중하게 기억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노련함과 끈적한 연대감,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언니들, 1인 3역을 거뜬히 해내는 아줌마들의 편을 들어준다. 임순례 감독은 주류 사회에서 무시받고 퇴물 취급받는 이 언니/아줌마들을 더없이 따뜻하게 격려하고 그들의 인생에 찾아온 최고의 순간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씁쓸한 현실에 놓인 우생순의 인물들을 빛나게 하는 것은 그들의 책임감, 동료애,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안쓰러움, 그런 감정들이다. 노장 언니들이 서로를 위해 자신을 내걸면서 서로 삐걱거렸던 팀원들도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감독은 선수들 편에 서게 되고, 아줌마라고 무시하던 후배들이 존경의 눈빛을 보내다. 가슴 뭉클해지는 이 순간들은 어쩌면 영화적인 판타지일수도 있겠지만, 냉정한 현실에서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 않는 감독의 태도는 신뢰를 준다. 결국, 이 영화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당신의 생애 최고의 순간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자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감독 : 임순례 출연 : 문소리, 김정은, 엄태웅 개봉 : 2008. 1. 10 관람등급 : 국내 전체 관람가
“네 머리카락은 검은 강물이다. 너를 쓰다듬을 때면 내 손에서 네가 흘러간다. 아, 나는 네게 이만큼 잠겼구나.”(‘수위표’) 봄 볕이 그리워질 때면 딱딱하고 머리 아픈 책 한번 내려놓고 시 한번 읽어볼 일이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권혁웅 한양여대 교수가 펴낸 ‘몸에 관한 어떤 산문시’ 두근두근. 나긋나긋한 사랑을 기대했다면, 책을 접한 독자들은 잠시 놀라겠다. 정체불명의 형식과 책의 부피에. 누구는 시라고 하기도 하고 산문이라고도 부른다. 현학적인 전문가는 제4의 형식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기도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순가. 시이면서 산문이고, 일기이며 시작 메모이고, 때로는 이성복과 최승호가 거쳐 간 아포리즘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굳이 구별해 읽지 않아도 처마 밑에 떨어지는 반쪽 햇살만큼 우리의 가슴만 울려주면 되는 것 아닌가. 두근두슨은 “몸이 하는 말을 받아 적은” 짧은 산문시다. 1991년부터 일기처럼, 시작 메모처럼 써둔 글들을 주제에 맡게 묶은 ‘사전’같은 시집인 셈이다. 부제가 말해주듯 모든 글들은 손, 다리, 얼굴, 눈, 코, 입, 귀, 머리, 피부, 심장 등의 세세한 신체기관을 잡다, 웃다, 보다, 말하다, 닿다, 두근거리다 등의 동작 혹은 감정들과 연결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짧은 감정들은 침처럼 우리 몸을 짧지만 깊게 찌른다. “편지에 찍힌 소인(消印)도 발자국이다. 동그란 발을 가진 사람이 뒤뚱거리며 내게로 왔다가 뒤뚱거리며 떠나갔다는 것.”(다리편, ‘전족의 슬픔’) “아버지 이마의 주름은 여러 번 강조한 밑줄이다. 봐라, 이건 중요한 거다. 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여러 번 찡그린 거다.”(얼굴편, ‘밑줄’) “눈꺼풀은 장막이다. 한 풍경과 다른 풍경 사이에 칸막이를 치는 일이다. 우리는 그렇게라도 해서 견디는 것이다.”(눈편, ‘막간’) 몸이 하는 이야기만 받아 적었다면 무슨 재미있으랴. 몸이 했으나 시인 특유의 직관과 감성이 배어있다. 황지우 같은 익살, 기형도 같은 절망도 씹힌다. “비밀은 알려져야 비밀이다. 무덤 속까지 가져가는 비밀이란 이미 비밀이 아니다. 이건 아주 중요한 말이어서, 당신에게만 알려주는 거다.”(‘비밀’)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채 고개를 숙인 젊은 귀신들, 지하철 경로석에는 꼭 있다.”(‘전설의 고향A') “잡풀은 이전의 오솔길을 돌보지 않을 것이다. 의자는 눌린 엉덩이 자국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지나간 것은 그렇게, 정말로 지나간 것이다.”(‘지나간 것A’) 짧지만 자주 생각의 깊이를 요구하는 글들을 읽다보면 700페이지가 금방이다. 그리고 이런 ‘까칠한’ 한마디도 독자에게 날려주는 센스. “끊임없이 떠드는 사람이 있다. 무엇이든 이슈화하고, 무슨 대화에든지 끼어들려 하며, 토론의 주제를 자기화하는 사람. 그런 이는 불행하다. 끊임없이 중얼거림으로써 자기 실존을 보장받는 사람.…전화 통화를 할 때 말과 말 사이의 침묵이 불편하다면, 당신도 예외는 아니다.”(‘침묵에 관하여’) 사전처럼 두꺼우니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꺼내보는 것도 좋을 듯. 그 중간에는 낮잠 잘 때 목침으로도 유용하겠다. 몸에 관한, 몸을 위한 시집. 권혁웅 지음. 랜덤하우스. 1만1000원 ----------------------------------------------------------------------------------------- 새로 나온 책 자연과학의 지적 발자취와 미래 ◇ 곽영직의 과학캠프=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이 어떤 변화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는지 일목요연하게 보연주면서 앞으로 인류가 직면한 과학적 화두는 무엇이지 진지하게 탐색하고 있는 책. 아홉가지 주제로 나눠 물질의 세계, 열역학 법칙, 상대성 이론, 우주의 신비, 생명 현상, 나노기술 등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곽영직 지음. 해나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7가지 길 ◇유학, 우리 삶의 철학=저자는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 갖가지 병리적 현상들을 해결하기 위한 시발점으로 유학의 도덕적 자아 수양론을 거론한다. 유학사의 대표적인 학자 7명을 뽑아 자아수양의 차이를 설명하고 그 성과를 다루고 있다. 필립 아이반호 지음. 동아시아 아이의 최고 스승은 부모다 ◇부모대학=아이들의 잘못된 행동들은 부모들의 무의식중 행동이나 몸에 밴 습관을 통해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북경대학교 인재연구소 권장도서로 선정된 이 책은 역사적인 인물들과 유명 인사들의 가정교육 방법을 이야기하고 부모로서 가져야 할 행동을 자세히 설명해 준다. 추이화팡․리윈 지음. 휘닉스드림 눈높이에 맞춘 박물관 탐험 ◇박물관에서 사회 공부하기=사회과목을 밑줄 그어가며 암기한다면 얼마나 힘들까. 이 책은 다양한 박물관 중 5, 6학년이 중점적으로 배우는 헌정기념관, 외교사전시실, 조세박물관 등 나라살림과 관련된 박물관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풀어서 설명해준다. 박물관이야기 지음. 글로연 영어 고수 17인의 공부비법 ◇나의 영어공부 이력서=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영어고수 17인이 자신들의 노하우를 털어놓은 책. 평범했던 이들이 어떤 식으로 공부해 남다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는지를 솔직담백한 어조로 밝히는 그들의 영어공부 이력서이다. 김민식 외 지음. 부키 도서관의 모든 것을 말하는 책 ◇도서관이 키운 아이=멜빈이라는 주인공 아이를 통해 도서관과 사서 선생님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도서관이 어떤 곳인지, 사서 선생님이 어떤 일을 하는지 주인공의 성장과정이 탐스럽게 담겨있는 그림책. 칼라 모리스 지음. 그린북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필자는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다녀와서는 좀 참담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명소의 미술관일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것은 내가 그곳의 작품을 충실하고 진지하게 감상하여, 마침내 의미 있는 미적 즐거움을 맛보았는가 하는 회의가 들기 때문이다. 아마도 런던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을 가 본 사람은 내 경험을 얼마간은 이해해 주시리라. 몇 해 전 이탈리아에서 학술행사를 마치고, 그 유명하다는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미술관)을 찾았다. 개장 전 이른 아침에 갔는데도 대기하는 행렬이 엄청나게 길었다. 세계적 미술의 보고(寶庫)를 직접 내 눈으로 본다는 기대감으로 아침 따가운 햇볕 속에서도 한 시간을 기다려, 미술관에 들어갔다. 세계 명작에 대한 미적 동기가 자못 컸다. 처음에는 미술관 입구의 작품들을 진지하게 느껴보려고 애를 썼다. 또 학창 시절 미술 교과서로만 보았던 눈에 익숙한 그림 앞에 서는 반가움에 한참 시선을 주어 무언가를 느껴 보려 하였다. 하지만 모든 작품들 앞에서 그러하지는 못했다. 내 눈에는 모두 비슷비슷해 보이는 수천 점의 작품들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작품들을 사열하듯 걸어가며 솔직히 좀 질리는 기분이었다. 미적인 향유를 할 수 있는 정신의 느긋함을 가질 수가 없었다.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있겠느냐고 스스로를 재촉하며 허둥거리며 보기는 하지만, 형편이 여기에 이르면 건성으로 지나쳐 오기 일쑤이다. 나는 기껏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고대조각 ‘라오콘’, 라파엘로의 ‘아테네의 학당’ 등을 인상적으로 향유하는 데서 더 나아가지를 못했다. 모두 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익혀 둔 작품들이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명작들이 많다는 상황에서는, 명작은 명작으로서의 의미가 살아날 수 없었다. 즐기든, 마시든, 먹든, 감상하든, 그 대상이 지나치게 많아서 남아돌아간다는 것은 곧 ‘과잉’의 상태이다. 미술 명작은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것이므로 명작의 과잉은 일종의 ‘미적 과잉’이라 할 수 있는데, 필자는 ‘미적 과잉’의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작품의 절대수가 많은 것도 많은 것이지만, 그것을 오전 일정 중에 다 보아야 한다는 것이 내가 빠져 있는 ‘미적 과잉’의 상태를 한층 더 지독하게 만들어 나에게 아름다움에 대한 무기력의 증세를 가지게 해 주었다. 바티칸 미술관까지 가서 아름다움을 만끽하기는커녕 아름다움에 대한 무기력증이라니 이 무슨 낭패란 말인가. ‘좋은 말’들이 넘쳐난다. 아침마다 인터넷을 열면 인생에 지혜를 주고 교훈이 되는 말들이 넘쳐난다. 메일이나 카페에 아는 사람들이 올린 것도 있고, 모르는 사람에게서 온 것도 있다. 인터넷상에서 이런저런 뜻있는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나 프로그램에서 정성껏 보내온 것도 있다. 받아보면 하나같이 아름다운 명언명구(名言名句)들이다. 말의 멋이나 수사(修辭)도 뛰어나 그야말로 주옥(珠玉)같은 표현들이다. 주제나 내용도 참으로 다채롭다.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가기를 권유하는 말들, 긍정적 자아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삶에서 당당한 주인이 되라는 자존을 격려하는 말들, 삶의 활력을 가지고 꿈과 비전을 가지라는 말들, 창의적 마인드를 가지고 일과 사업을 경영하라는 지혜의 말들, 정신 건강을 지키는 데 유익한 가르침의 말들, 욕심과 화를 다스리면 일상의 행복이 찾아온다고 권유하는 말들, 우정이나 사랑에 대해서 깊은 깨달음을 가지게 하는 생활 철학의 언어들, 아름다운 부부생활을 위한 부부대화의 지혜를 일깨우는 말들, 심지어는 병들고 늙어가는 것을 마음으로 다스리는 것들에 이르기까지. 좋은 말을 찾기란 너무도 쉽다. 아니 찾는 노력을 할 필요도 없다. 아침마다 나의 메일로 나의 인터넷 카페로 마치 무슨 점령군처럼 밀어 닥친다. ‘좋은 말’은 말 자체만 많아진 것이 아니다. ‘좋은 말’을 꾸미고 장식하는 기술과 재주까지도 아주 풍부해졌다. 인터넷 공간에서 예쁜 그림이나 아름다운 음악들을 함께 곁들여지는 것이 바로 그 예이다. 크게 보면 이런 현상까지도 ‘좋은 말’이 넘쳐나는 모습 속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멀티 디지털 메시지(multi digital message)로 전달되는 이러한 명언명구의 언어들은 표현조차도 얼마나 우아하고 세련되어 있는지 모른다. 이러한 명언명구의 메시지를 인터넷으로 받는 순간 감각적 분위기에 젖는다. 그러다 보면 명언명구의 메시지가 주는 깊이 있는 사고(思考)는 슬며시 그림자처럼 뒤로 빠져나가기 쉽다. 언어는 세련되고 음악은 우아하고 그림과 사진은 환상적이니, 이런 ‘좋은 말’을 받고 보면, 이성보다는 감성의 베일에 싸여 수용된다. 감각적으로 잘 치장되었으니 받아보는 순간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명언명구의 진정한 의미가, 이성적으로 깊이 사색될 수 있는 쪽으로 처리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뜻 깊은 인생 성찰의 메시지는 증발하고, 언어의 포장 디자인만 그럴 듯하고 멋있어 보이는 상태로 그냥 나를 휘돌아 나가는 것 같다. 그 잘 생긴 명언명구의 ‘좋은 말’들이 마치 하나의 액세서리처럼 아침 메일 박스에 진열되어 나를 감각적으로만 만족시키고 스쳐 지나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시대에 뒤떨어진 지나친 편견일 수 있다. ‘좋은 말’을 전할 때 상대가 되도록 기분 좋게 수용하도록 하기 위해,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시각적 요소와 아름다운 음악을 꾸며 주는 것을 굳이 잘못된 것인 양 치부할 것은 아니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 우리들의 커뮤니케이션 생태를 그런 쪽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 가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렇듯 우아하고 세련된 ‘좋은 말’들이 너무너무 넘쳐나게 흔하다는 데에 있다. 마치 백화점에 가서 좋은 물건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으면 좋은 물건의 좋은 물건다움을 절실하게 느낄 수 없듯이, 좋은 말들도 넘치고 넘쳐서 남아돌아가면, 좋은 말을 좋은 말로 절감하지 못하게 된다. 과잉은 불감증을 불러 오는 것이다. ‘좋은 말’이 마침내 어떤 한 사람에게 ‘좋은 말’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뜻도 소중해야 하고, 그 말의 발견도 소중해야 하고, 소통하는 상황도 의미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은 나만의 말이 되어야 한다. 낡은 구호나 상투적인 표어처럼 아무데서나 나돌아다니는 말이 된다면, ‘좋은 말’이 되기 어렵다. 디지털 카메라가 일반화되면서, 사진 또는 사진 찍기는 너무도 흔한 것이 되어 버리지 않았는가. 편해진 대신 사진이 담아내는 사람들의 추억과 인정의 질은 옛날 같지 못하다. 사진을 소중하게 보관하는 일은 더더욱 시들해졌다. 그 까짓것 아무 때나 찍으면 되지. 대충 찍어두고 포토샵하면 되지. 이런 심리가 언제부턴가 생겨났다. 과잉이 가져다주는 황폐함의 일단이다. 칠판에 백묵으로 글씨나 그림을 써 내려가는 사이에, 어느덧 가르치는 이의 신명이 두드러지게 살아나던 때가 있었다. 선생님은 칠판과 혼연일체가 되어, 역동적으로 몸동작과 손동작을 지어나가면, 칠판 위에는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등등 세상만사의 온갖 이치가 피고 지기를 거듭하는, 그런 수업 풍경을 10년 전만해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그 무렵에는 수업장학지도라도 나올 때면 이런 기원들을 했었다. 그림괘도 하나, 거칠게 빚어놓은 모형 하나 있어도 좋으련만 …. 그렇듯 아쉬워하며 시간을 따로 내어 스스로 만들어 쓰던 선생님들의 모습이 그리 오래 된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결핍했던 시절이었다. 그럴 때 불쑥 하늘에서 떨어진 동영상 교재가 있었다면 얼마나 환상적이고 소중했을까. 아이들은 얼마나 경이롭게 동기화되고 열중하여 집중했을까. 그런데 지금이 그런 세상이 되었다. 디지털 미디어의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되면서, 학교 현장의 수업매체들도 급속히 기술의 진화를 이루었다. ICT 활용교육이 모든 학교를 휘몰아 나간 곳에 파워포인트며, 애니메이션이며, 동영상이 수업시간마다 늘 사용하는 자료들이 되었다. 수업의 능률과 학습의 효과가 증진됨은 물론이다. 그러나 디지털 매체 기술의 활용이 일상 수업에서 넘치고 넘쳐나게 되면, 그 또한 영원한 감흥이 될 수는 없다. 환상적이고 변화감 빠른 것일수록 환멸과 싫증도 먼저 오는 법이다. 동영상이며 파워포인트니 하는 것들이 수업에서 넘치고 또 넘치도록 일상화되면, 그 때부터는 수업의 능률과 학습의 효과는 다시 어떤 임계점을 만나게 된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이 행복의 정복 (The Conquest of Happiness)에서 말했던가. 행복해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적절한 결핍이라고. 절절이 공감이 가는 말이다. 모든 타락은 과잉(過剩)에서 생겨난다. 과잉이란 그런 것이다. 가치를 몰락하게 하고, 정신을 나태하게 하고, 몸을 둔하게 한다. 흔해 빠져서 소중함을 모르므로 가치는 몰락한다. 넘쳐나니 집중할 수 없어 정신은 나태하게 된다. 남아도는 형편인지라 구태여 부지런할 필요가 없으니 몸은 둔해진다. 과잉 속에서는 특별한 불만족도 없지만 만족이란 것도 없다. 만족도 없고 불만족도 없는 것, 이것처럼 고약한 모순이 또 있을까. 바로 이 지점에서 과잉은 타락을 잉태한다. 개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회도 그러하다. 존재가 활력을 서서히 잃는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이 글이야말로, 넘치고도 남는 ‘좋은 말 과잉 현상’에 공연히 부질없는 일조(一助)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늘이여 바라옵건대, 넘치게 마시옵기를!
지난 6일 전국의 중 1학년을 대상으로 10년 만에 실시된 진단평가 결과가 공개되면서 교육현장이 온통 들끓고 있다. 강남과 강북의 학력차가 어떻고 지방과 대도시의 학력차가 크다는 등의 뉴스가 연일 계속 되고 있다. 자녀의 학력 신장을 위해 우리 사회가 지출하는 비용은 이미 천문학적인 숫자를 넘어선지 오래다. 비단 이런 비용 문제 이외에도 자칫 가족해체로까지 이어지는 기러기 아빠를 양산하는 등 사회적 병폐도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런 교육에 함몰되는 시대·사회적인 흐름을 보면서 40여년을 교육현장에서 살아온 필자는 맥을 한참 잘못짚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온통 ‘학력, 학력’이라고 여기저기서 이야기들을 하는데 그 문제가 되고 있는 학력 향상의 방안에 대해서는 오진을 해도 엄청난 오진을 하고 있다. 그래서 처방이 잘못되고 잘못된 처방 탓에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학력 평가의 객관적 지표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가 있다. 이 연구는 60여 개국 15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 조사를 보면 20년 뒤 그 나라의 미래를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PISA에는 학력 증진을 위한 키워드가 있다. 읽기, 수학, 과학 능력을 평가해 나라별로 순위를 매기는데 읽기 능력이 발표 항목의 맨 앞을 차지한다. 글을 정확하고 빠르게 이해하는 읽기 능력을 가장 중요한 학력(學力) 지표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학력 증진을 위한 해답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선진국들이 읽기 능력을 중시하는 이유는 읽는 능력이 부족하면 다른 공부를 잘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많이 읽으면 두뇌활동이 촉진돼 사고력, 비판력이 커진다. 바로 읽기 능력이 제대로 될 때 학력 향상이라는 열매는 저절로 거둘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오랜 교육현장에서 얻은 결론이기도 하다. 요즈음 청소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GUI(Graphic User Interface, 사용자가 컴퓨터와 정보를 교환할 때 그래픽을 통해 작업할 수 있는 환경)에 적응된 아이들이다. 모태 속에 있을 때부터 초음파 등을 이용한 사진으로 부모들에게 첫 선을 보이고 그래픽을 위주로 한 비디오 환경 속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들이다. 그러다보니 컴퓨터 게임이나 비디오, 영화 등의 시청은 하루 종일이라도 가능해도 책을 읽는 것은 20, 30분을 힘겨워하고 있다. 읽기 능력이 해가 갈수록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을 교육현장에서는 실감할 수 있다. 집중력을 가지고 활자를 대하고 활자를 대하면서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에 대하여 중요하게 생각지 못하며 그런 것에 대하여 노력을 집중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도 글자만 있는 것보다는 만화로 되어있는 동화책이 훨씬 더 많이 팔리고 읽힌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학력 향상을 가로막고 있는 주범이 바로 이 GUI(Graphic User Interface)환경이다. 일찍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동네의 작은 도서관 이었다”라고 말하면서 매년 2개월 정도는 경영 구상을 위한 시간을 갖는데 그 시간은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오로지 책 읽기에만 집중한다고 한다. 학력 향상을 위해서는 우리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가정은 가장 고전적이면서 가장 효율적인 교육의 장이다. 부모들이 책을 멀리하면 아이들도 책을 멀리하게 된다. 책 읽는 부모가 책 읽는 아이를 만든다.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부모들이 먼저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어려서부터 책 읽는 습관이 몸에 배인 아이들은 심야학원을 찾을 이유가 없어진다. 조기 유학의 필요도 없어진다. 영어를 가장 쉽고 가장 완벽하게 정복하는 길은 영어로 된 책을 읽는 것이라는 많은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책을 돌려주어야 학력향상도 외국어 정복도 이루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에서부터 책을 읽고 그 책의 논리에 대하여 가족 간에 토의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한다.
앨빈 토플러는 그의 책 ‘부의 미래’를 통해 느리기만 한 학교의 변화 속도를 질타하고 있다. 기업이 고속도로를 100마일로 달리고 있는데, 학교는 겨우 10마일의 속도로 달리며 다른 차량들의 진로마저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10마일로 기어가는 교육시스템 속에서 100마일로 달리는 기업에 취업하려는 학생들을 과연 준비시킬 수 있겠는가?”를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와는 달리 변화의 속도 면에서 한국의 학교들은 예외란 생각도 든다. 대통령이 바뀌고, 교육부 장관이 바뀌고, 학교장이 바뀔 때마다 급브레이크를 밟았다가는 곧 이어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전속력으로 역 질주를 하기 때문이다. 방향이 문제였다. 그래서 급발진 차량처럼 교육이 산으로도 올라가고, 논바닥에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뜨거운 교육열 엔진을 탑재한 우리나라의 학교가 정말로 위험했던 것은 역대정권들이 달아준 ‘교육’이란 이름의 불량 내비게이션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때마침 규제를 풀어 시장주의를 회복하겠다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다. 자율과 창의, 그리고 경쟁을 표방할 것이라 한다. 자율과 창의는 교육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 꼭 필요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교육계의 많은 사람들의 전망은 자율과 창의 보다는 경쟁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자율과 창의는 한낱 깔끄러운 경쟁체제를 희석시키기 위한 윤활유일 뿐 향후 후폭풍으로 다가올 교육정책의 핵심은 경쟁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일 교육과학기술부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이제까지 학생들만 피나게 경쟁했다. 학부모도 경쟁했지만 학교는 경쟁한 일이 없고 선생님도 경쟁할 필요가 없었다”면서 “이래서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없다”는 지적을 했다. 경쟁이란 메커니즘의 작동은 얻는 것과 잃는 것,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하는 만큼 사안에 따른 신중한 검토와 유연성이 요구된다. 경쟁 지향적 정책이 자칫 과열교육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초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교육계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크나큰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교차한다. 교육정책의 방향선회에 대한 기대감과 동시에 언론을 통해 비쳐지는 새로운 정책들이 너무 급제동과 급발진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감 때문이다. 구체화되지 않고 검증되지도 않은 정책들이 언론에 오르내릴 때마다 불안한 가슴을 쓰러 내리는 일선 교사들의 입장도 헤아렸으면 좋겠다. 아무리 좋은 교육정책도 그 정책을 구현하기 위한 선행조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실패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우리가 역대정부들의 과욕에 찬 교육정책을 통해 얻은 교훈이다. ‘학부모들이 무릎을 탁 칠만큼’의 참신한 교육정책을 만들어 내기에 너무 급급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명박 대통령은 약속대로 GDP 6%의 교육재정을 확보해 주고, 그의 뜻을 받드는 정책입안자들은 제반 규제를 풀어 교육현장에 자율권을 찾아주는 일만으로도 성공한 교육대통령, 성공한 교육정책이 될 것이다. 교육엔 정답도 없고, 만병통치약은 더더욱 없다. 자력으로 뛰고 날 수 있는 자들이 능력만큼 뛰고 날도록 규제를 풀어주고, 국가는 공교육을 개선하는 일에 매진하면 될 일이다. 무대에 막이 오르면 모든 역할은 배우에게 맡겨져야 하듯, 중앙정부가 교육의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는 일은 좋지만, 그 이후의 일들은 현장에 넘기는 자세도 필요해 보인다. 기왕에 새로운 정부가 ‘자율’을 표방하기로 했다니 말이다. 교육정책은 투망을 사용해 한 번에 많은 고기를 잡으려는 욕심보다 학생 개개인의 수준과 여건을 고려한 낚시질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어종에 따라 낚시 바늘의 크기도 달라야 하고 미끼도 달라야 성공할 수 있다. ‘자율’과 ‘경쟁’도 좋지만, ‘교사중심’과 ‘현장중심’이 교육정책의 키워드가 되어야 한다. 그 동안 현장에 인재가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단지 인재를 활용할 줄 모르는 정책이 존재했을 뿐이었다. 이제는 제발 일선 교육현장의 ‘교사 프렌들리’가 교육정책의 근간이 되길 기대해 본다.
서울시내 초중등 교원 10명 중 7명은 남교사 할당제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결과는 서울시교육청의 의뢰를 받아 서울교대 박상철 교수팀이 조사한 ‘교원의 양성균형 임용에 관한 교육구성원들의 인식조사’에서 밝혀졌다. 조사에 따르면 지난 해 10월 26일부터 올 2월 29일까지 서울시 소재 초·중·고 교원 1056명과 학부모 1056명, 학생 1056명을 대상으로 ‘남자 교원과 여자 교원의 비율이 다소간 균형있게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학생에게는 남자선생님과 여자선생님의 인원수가 비슷하기를 바라는가)’라고 물은 결과 교원의 89.5%와 학부모의 87.1%, 학생의 63.5%가 찬성에 답했다. 또 교원과 학부모 1999명을 대상으로 ‘남교사 할당제 필요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물은 결과 교원의 73.9%, 학부모의 80.6%가 찬성에 응답했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연구진은 “교내폭력, 안전사고 등 학생의 생활지도에 남교사가 필요하며 학교행정 및 관리업무에서도 여교사가 대부분인 학교에서는 어려움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전국단위 후속연구와 실증적 근거 확인을 위한 보다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시교육청은 이같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교육공무원법 및 교육공무원임용령 또는 ‘양성평등채용목표제 실무지침’을 개정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교육공무원법 및 교육공무원임용령을 개정해 범위를 초·중등 교원까지 확대하는 것. 또 행정안전부의 ‘양성평등채용목표제 실무지침’을 개정, 행정·외무고시와 7·9급 공채시험 등으로 제한된 적용대상을 교원임용시험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교원 임용시험 응시자 중 여성이 남성보다 월등히 많고, 대체로 여성의 시험 점수가 높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성차별에 의한 평등권 침해 논란이 이미 여성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또 교대 신입생 선발 시 특정 성을 25∼40% 할당하고 있기 때문에 임용시험에서 양성평등채용목표제까지 시행하면 ‘이중혜택’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교총은 “학교 현장에사 남자교사의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성별을 기준으로 교원을 선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시교육청은 지난 해 5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교육부에 남성할당제를 건의했다가 관련 연구자료 등 근거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부당한 후 이뤄진 후속조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