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이 제정된 지 한 세대나 지났다. 우리 사회가 ‘스승’을 의미 있게 인식하고, 교원의 역할 가치를 국민적 차원에서 공유하려는 기념일을 30년 이상 유지해 온 것이다. 한 세대라는 시간은 사회적 의식의 변화를 짚어내는 변곡점으로 인식된다. 교사에 대한 인식, 교원의 역할 가치 등에 대한 변화가 요청되는 시점이다. 낡은 시대의 교사상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교사의 역할 위상에 대해서 진화적 고민을 해야 할 때다. 지난 한 세대 동안 한국 사회의 변화는 그 어느 시기보다도 역동적이었다. 산업화 이후 진전된 고도의 정보·기술 사회는 국민들 삶과 일의 양태를 빠른 속도로 변환시켰다.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성 수요가 늘어나고, 전문성 역할 자체도 왕성한 분화를 하게 됐다. 따라서 서로가 서로에 대한 역할 정체성을 이전과는 다르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공동체들이 그 나름의 주장과 참여와 소통을 시도하는 그런 역동성의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교원과 교직 또한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한 세대 전의 교사상과 교권의 모습이 고정 불변의 것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게 됐다. 새로운 교사상과 교권의 추구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우여곡절 끝에 공무원들의 양보를 바탕으로 여야 합의안을 도출했으나 아쉽게도 4월 국회 본회의는 통과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는 선진정치의 제도 형태인 ‘공무원연금개혁을 위한 실무기구’를 통해 합의안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공무원연금개혁은 초기부터 정부와 여당의 잘못된 접근이었다. 모든 공무원을 마치 세금도둑으로 몰아붙이며 국민여론을 호도했고 대통령까지 공무원연금으로 인해 내년부터 ‘하루 100억 원씩 세금폭탄’이라고 압박해 공무원들을 더욱 화나게 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서비스하는 공무원들을 마치 공공의 적으로 몰고 가는 것은 사용자인 정부의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었다. 연금개혁 과정을 통해 공무원들의 상처가 깊다. 특히 교원의 보수나 처우가 얼마나 열악하고 체계가 없었는지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다. 15년째 교직수당 동결과 12년째 담임·보직교사수당의 동결, 그리고 교원과 일반직 공무원 간 보수체계의 형평성도 미흡했다. 교원의 초기 봉급은 일반직 공무원의 7급보다 높은 수준이지만 20년이 지나면 8∼9급의 중간수준이었다. 그 원인이 교원의 직급(교사, 교감, 교장)이 단순하기 때문이라는 건 너무나 궁색한 변명이다. 교육기본법
스승의 날은 본래 제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기념일이다. 1958년 충남 강경여고 청소년적십자회원들이 평생을 교직에 몸바쳐오다 퇴직해서 병마에 시달리고 계신 은사님을 찾아뵙고 위로하고 보살폈던 것이 시작이다. 그 후 면면이 이어져 오다가 한때는 폐지되기도 했던 것을 1982년 5월15일에 교육입국의 기반은 교권의 존중과 신장에 있음을 확인하고 정부가 기념일로 부활시켰다. 이처럼 스승의 날은 교원단체 또는 정부기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순수하게 스승의 은혜에 감사와 존경의 일환으로 기념하던 것을 정부가 기념일로 제정 공포한 것임을 재인식해야 한다. 스승 존경은 예부터 우리 조상들뿐 아니라 세계의 여러 나라들도 행해왔었고, 이를 통해 그 나라의 국민성과 국가 魂의 기틀을 마련한 사실은 역사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특히 나라를 잃고 1000년여 간 흩어져 설움과 핍박을 받으며 떠돌다 지금은 그 어느 나라보다 강대국을 구축한 이스라엘의 경우, 위험에 처한 아버지와 선생님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하느냐에 대한 문제에서 미래의 나라를 이끌어갈 사람을 기르는 중대한 사명을 가진 분이기 때문에 선생님을 먼저 구해야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오늘 내가 있기까지 몸을
학교마다 중간고사를 마무리하고 이번 주부터 짧게는 5일, 길게는 10일 가까이 단기방학에 들어간다. 정부는 5월 1일부터 14일까지의 기간을 관광주간으로 설정하고 경기 활성화 차원에서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진로와 관련해 다양한 체험학습이 이뤄질 수 있도록 권장하고 있다. 학생들은 모처럼 교실을 벗어나 가족과 함께 여행이나 체험학습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보고 즐기며 체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방학’이라는 말을 사용할 정도로 휴업 기간이 길다보니 일부에서는 사교육 시장의 배를 불린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극성스런 일부 학부모들이 교육적 선의를 악의로 전용하는 사례가 예상된다. 단위 학교는 예방 차원에서 여행이나 체험학습의 구체적인 근거가 담긴 자료를 첨부해 보고서를 작성한 후, 제출하도록 유도하고 있는데 철저히 지켜야 할 것이다. 또 관광주간을 지나치게 경제적 논리로만 접근하기보다 감사를 실천하는 인성교육 차원에서의 접근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기간을 단순히 노는 기간으로 삼기보다 ‘감사주간’으로 드높일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 기간에는 ‘어버이 날’(8일)이 있고, 끝나자마자 ‘스승의 날’(15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1심에서 당선무효형 판결을 받으면서 식물교육감 처지가 됐다. 대한민국의 수부인 서울의 교육현장에는 혼란이 가중될 우려가 짙다. 2008년 직선제 도입 이후 선출된 서울교육감 4명이 모두 사법적 판단을 받았다. 공정택·곽노현 교육감은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했고, 문용린 전 교육감도 재판 중이다. 다른 시도교육감 여러 명도 법의 심판대 앞에 서거나 앞으로 서게 된다. 이 같은 현상은 개인의 잘못보다 제도적 문제점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반증이다. 그동안 교육감 직선제는 ‘깜깜이·로또·묻지마 선거’ 등 각종 부작용을 노출해왔으며 ‘진흙탕·막장드라마 선거’, ‘공작·정치 선거’라는 비판도 받아왔다. 교육감 당선 후에도 정치적 성향과 이념의 대립으로 지자체장, 교육부와 각종 정책과 사안을 두고 마찰을 빚는 일도 잦았다. 포퓰리즘 공약 남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 논공행상 인사 전횡 등도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교육감 직선제 자체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등을 규정한 헌법의 가치를 훼손한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광역 지자체장보다 더 많은 돈을 쓰는 ‘고비용 선거’도 문제다. 작년 6·4 지방선거에서 교육감 후보들이 쓴 비용
일부학교에서 시범 운영되고 있는 자유학기제가 2016학년도부터 전면시행을 위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돼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아직도 시범운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면시행의 근거를 마련했지만 당초 우려는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국가사회적 인프라가 절대 부족한 상황임은 물론이고, 학부모들의 학력저하에 대한 우려 역시 한층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취지에 백 번 옳다고 해도 시범운영을 거치면서 나타난 문제점을 해소하지 않고 당장 전면시행을 강행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 아니다. 진로체험활동을 하고 싶어도 마땅히 갈 장소가 없다. 시범운영 기간임에도 2016학년도에 인프라가 당장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지방의 중소도시나 농어촌 지역의 상황은 더욱더 심각한다. 비슷한 학사일정 운영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일시에 몰려나오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학교 내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법도 있지만 다른 학년의 시험 진행에 방해가 될 뿐 아니라 당초 의도대로 체험 중심의 진로교육은 물 건너가게 된다. 비전문가에 의한 시간 때우기 식 프로그램 운영이 불가피할 뿐이다. 견학위주의 체험활동을 지양하라고 하면서 견학위주의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대한민국 국민은 저마다의 인권이 보장된 나라다. 최근 갑의 횡포니, 을의 분노니 하며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가 더 이상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러나 인권이란 이름의 정의는 늘 정의 편에만 서는 것이 아니다. 교권과 관련해선 더욱 그렇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희롱당하고 학부모에게 멱살을 잡혀도 매뉴얼대로 하라는 교육청과 인권담당자들이다. 스승을 바보로 만들어 놓고 아이들 앞에 풀어놓은 신생 콜로세움이나 다름없다. 교사가 학생·학부모에 능욕당해도 눈감아 버리는 교육감은 도대체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관료들인가. 현실을 너무나 보지 못한다. 입시공부의 폐해라고 생각해 10시 등교를 권할 것인가. 학생이 수업 시간에 스마트폰을 보고 키득거리며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주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개인의 특기라며 존중해 줄 것인가. 라이터를 들고 나가는 학생에게, 머리를 염색하고 술 냄새 나는 학생과 대화 할라치면 욕설을 내뱉으며 흰 눈자위를 번뜩일 때 그래도 혁신 교육이 성공한 결과라고 기쁘게 웃을 것인가. 얼마나 많은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당하고, 얼마나 많은 선생님이 명퇴를 준비해야 겸손을 회복할 것인가. 요즘 선생님들은 학생이 무섭
한국 성인 중 7%는 사실상 ‘까막눈’이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발표됐다. 최근 통계청 자료 등을 인용해 교육부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19세 이상 성인 중 글자는 읽을 수 있으나 문장 이해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비문해자와 반문해자가 260만 여명(대상 인구의 7%)이고, 20세 이하 저학력 문해 교육대상 국민이 577만 여명(대상인구의 15.7%)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심각한 대한민국 교육의 위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해방 후 미군정기 당시 78%에 달하던 문맹률을 낮추기 위해 초·중등교육과정에서 문자교육을 강화하고 문교부 내 성인교육국을 설치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이제 우리 국민의 문맹은 거의 해소된 줄 알았다. 그러나 형식적 문맹만 해소됐을 뿐이었다. 쉬운 한글을 바탕으로 문자를 단순히 읽고 쓰는 수준의 교육에 머문 나머지 문장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적용할 수 있는 문해력은 등한시 한 결과다. 그동안의 우리 교육이 반쪽짜리 교육이었다는 반증이다. 외국의 사례를 들면 핀란드는 일찍이 무제한 교육 투자 정책으로 문해율 100%를 달성했고 미국에서는 아동낙오방지법(No Child Left Behind Act)을 통해 연간 약 1조6
2015년 교육주간 실천 주제로 ‘사제동행으로 행하는 사회적 봉사’가 제시됐다. 교육자들의 사회봉사는 매우 실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주제다. 봉사를 통해 학교 안과 밖을 연속된 공간으로 인식하고, 교육자들이 실천궁행(實踐躬行)의 자세로 열정을 기울이는 것은 교육의 사회적 위상과 역량을 보이는 데도 더 할 수 없이 바람직하다. 봉사는 그 행위의 본질이 선한 것이고 사람의 본성을 순수한 상태로 고양시키며 그 순수함을 사랑하게 만든다. 사제동행의 사회적 봉사는 스승과 제자를 합심하게 하고 학교와 사회가 서로의 경계를 따뜻하게 풀어 헤치게 한다. 그리하여 사회를 향해 교사들의 교육적 감화력을 전파해 갈 수 있을 것이다. 학교 또한 지역사회와의 융합 속에서 인성교육의 효과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사제동행의 사회적 봉사는 매우 설득력 있는 인성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 가장 강력하고도 현실성 있는 인성교육 실천은 ‘봉사’라 할 수 있다. 학교를 출발점으로 그간 죽었던 인성교육을 살려내어 그 가치를 지역사회와 함께 펼쳐가는 획기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교육이 내실을 기하지 못하고 온전한 전인을 기르는 데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서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았다. 세월호 침몰사고는 기본과 원칙을 무시하고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어른들의 잘못이 빚어낸 인재였다. 특히 학생안전을 무시한 선박회사의 이기심이나 항해를 책임질 선장의 무책임한 행동은 우리 모두를 경악케 했다. 그럼에도 교사들이 보여준 ‘살신성인(殺身成仁)’ 정신은 달랐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제자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으며,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자신의 몸을 던져 제자들의 탈출을 돕다가 희생된 참 스승으로 진정한 영웅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교에서 발생한 안전사고가 10% 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월호 이후 많은 학교가 현장학습이나 수학여행을 줄였음에도 학교안전사고가 더 늘었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뿌리깊은 안전 불감증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상이다. 학생안전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학교안전사고 대책은 고작 체험학습안전교육 강화 외엔 별로 달라진게 없다. 따라서 근본적인 학생안전사고 관리나 대책은 학교는 물론 운송회사, 숙박업소 등 사회 전반의 안전시스템 구축과 관리, 그리고 국민의 안전에 대한 인식 개선이
교총 한국교육정책연구소 등이 지난 11일 ‘5·31 교육개혁’ 20주년을 기념해 교육현장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20년 전 문민정부가 추진한 5·31 교육개혁은 수요자 중심의 교육개혁이라고 했듯이 교육활동과 교육체제 운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내용을 담았다. 자율을 위한 정책, 책무를 위한 정책,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정책 등을 담고 있는 5·31 교육개혁안은 우리 교육과 교육체제를 획기적으로 바꿔 놨다. 무엇보다도 교육의 과정에서 주변으로 밀려나있던 학습자들을 교육의 중심에 두는 교육활동을 전개하는 계기가 됐다. 교육행정기관이나 학교 그리고 교원들로 하여금 보다 학습자와 학부모의 요구에 보다 적극적으로 부응하도록 했다. 그리고 교육기관들로 하여금 확대된 자율을 향유하면서 보다 나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교육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교육의 수월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5·31 교육개혁의 기조인 수요자 중심의 교육과 교육체제 구축은 시대적 요구였다고도 볼 수 있다. 20년이라는 한 세대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도 여전히 교육개혁의 논리로 작용하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과연 수요자 중심 교육 패러다
교육부의 ‘수능 출제오류 개선방안’이 발표됐다. 이는 지난 달 중순 수능 개선위와 수능 개선자문위의 ‘수능 출제오류 개선 및 난이도 안정화 방안(시안)’ 발표에 이어진 것으로 출제진 중 특정대학 출신비율을 평균 20%로 하향, 교사비율 점진적 확대, 출제진과 별도로 문항점검위원회 구성·운영, 문제가 제기된 문항이 개선되지 않는 경우 배제, 전년과 같은 출제기조 유지, 수능 교육방송(EBS) 교재 70% 연계 유지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고질적인 수능 출제 오류를 발본색원으로 근절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효과 여부는 미지수다. 사실 대입 수능이 가진 출제, 관리의 태생적 한계가 있고 매년 하반기에는 수능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획기적인 수능출제 방법과 오류 개선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최근 교육부의 갈팡질팡 교육정책을 놓고 보면 수능의 변별력 담보는 여전히 어려울 것으로 예견된다. 물수능, 불수능 등 변별력이 흔들리고 예측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현재 문제는 늘 되풀이 될 우려가 상존한다. 학교에서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이수한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평가 문제가 출제돼야 하는데, 수능은 이 기준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지적인
교원 1만 명을 포함한 약 7만 명이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국민연금 강화!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대회는 지난해 11월 1일 ‘100만 교원·공무원 총궐기대회’ 이후 5달 만에 개최된 대규모 집회로, 참석자들은 ‘4월 처리’를 못 박고 연금 개악 의도를 멈추지 않는 정부와 여당을 규탄하고 바른 연금개혁을 관철시키겠다는 투쟁 결의를 다졌다. 이 자리에서 국민대타협기구의 90일간 활동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이고 무성의한 자세로 일관한 정부와 정치권의 태도에 500만 공무원 가족들의 분노가 그대로 표출됐다. 정부와 정치권은 분명 알아야 한다. 이날 거리로 나온 이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500만 명 유권자의 목소리라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 특히 이번 대회에선 지난 11월과 달리 젊은 공무원들의 목소리가 두드러졌다. 정부·여당의 개악 방안대로라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젊은 공무원인 만큼 그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단순 수치로 재정건전성만을 내세워 공적연금제도 전반을 무너뜨리려 하고, 교원과 공무원을 세금도둑으로 몰아 일방적인 개혁을 강요하는 것은 국가행정과 교육을 담당해 이 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는
공무원들이 정부를 향해 반기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국가를 위해 일생을 헌신해온 공무원들의 마지막 노후보장인 연금이 용돈수준으로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나라가 어려울 때 적은 보수에도 성실히 근무하면 노후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공무원연금 정책이다. 이러한 정부의 약속과는 달리, 이제 와서 국가재정이 조금 어렵다고 해서 마치 공무원을 세금도둑으로 모는 것은 온당치 못한 행태다. 물론 국가경제가 어렵고 국가재정의 주요 압박요인이라면 당연히 공무원연금 개혁을 해야 한다. 하지만 개혁의 과정은 당사자 의견을 충분히 듣고 서로 양보와 이해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그러함에도 정부와 여당은 정상적 절차를 무시하고 공무원연금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앞세워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기에 공무원들이 분노하고 급기야는 총력투쟁 결의대회로 맞선 것이다. 여당은 국민대타협기구의 합의안 도출 여부와 관계없이 28일 기구 활동을 종료하고 국회 공무원연금개혁 특별위원회로 넘겼다. 도저히 타협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밀어붙이기식 정치적 압력은 민주적 대타협이 아니라 공무원에 대한 기만이며 국민대타협의 약속을 파기하는 구태 정치행태다. 이제라도 정부는 공무원연금 소득대체율을
정부가 공무원 연금을 왜곡하는 영상 광고로 가난한 교사의 소박한 꿈을 거덜 내더니, 이젠 서울시교육청이 영상 홍보를 통해 아예 대놓고 교사 집단을 돈벌레 취급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아도 ‘김영란법’이다 뭐다 해서 뒤숭숭한데 서울교육감조차 교사의 발등을 찍고 만 셈이다. 그래도 페스탈로치가 되고자 했고, 돈 보스코처럼 가난한 이들의 희망이 되고 싶었던 교사들을 일거에 매도하는 것은 해도 너무 했다. 세상이 돈의 노예가 되다보니 모두 돈을 좇는 사람처럼 취급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아직 썩지 않은 게 교사집단 아니던가. 일부의 몰지각한 촌지 수수를 50만 교사의 타락한 모습인 양 호도하는 것은 전체 교원들에 대한 치욕적 명예 훼손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교사들이 자긍심 하나로 묵묵히 참아왔는데, 고작 돈푼이나 얻어내려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은 분명 비열한 ‘갑(甲)질’이다. 스승의 날이면 더욱 더 비참해진다. 종례 때 절대 아무 것도 가져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해야 한다. 그리하여 온정조차 차단 된 교실, ‘은혜’라든가 ‘감사’ 같은 말을 ‘대가성 뇌물’로 이해하는, 스승이고 뭐고 고발과 감시의 대상이며 그것이 ‘정의’인 줄 알아가는 학생들 앞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