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목마을은 서천의 마량포구와 함께 일출과 일몰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조용하고 한적했던 서해의 작은 어촌마을이 서해고속도로가 개통되며 일출과 일몰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대난지도와 소난지도 사이의 비경도 주변을 온통 붉게 물들이며 바닷속 깊이 잠기는 일몰의 아름다움은 그렇다 치고 서해에서 어떻게 해돋이를 볼 수 있을까?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는 아산만에서 왜가리의 목처럼 북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귀퉁이에 왜목마을이 위치해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해돋이의 이치가 동해의 일출과 달라 이곳의 해돋이는 동해보다 5분 정도 늦지만 일출을 볼 수 있는 날이 30여일 정도 많은 것이 장점이다. 가는 해의 일몰과 오는 해의 일출을 보기 위한 인파가 넘쳐나는 곳이지만 올해는 태안 기름 유출 사고의 여파로 3만여 명만 이곳에서 새해를 맞았다는 뉴스를 봤다. 3일 저녁 기상청의 일기예보를 보니 다음날은 오랜만에 날씨가 맑았다. 해돋이를 제대로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새벽에 왜목마을로 차를 몰았다. 바닷물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해가 장관이었다. 하지만 구경 나온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아야 할 만큼 적었다. 새해
어떤 일이든 시작과 끝이 있다. 어떤 일의 처음 단계인 시작과 마지막 단계인 끝은 같은 선상에 있지만 분명히 다르다. ‘시작’이라는 말 자체가 설렘이고 희망이다. 더구나 한 해를 새롭게 맞이하는 시작은 무한한 희망이 담겨있다. 그런데 ‘끝’에서는 왠지 작고 초라함이 느껴진다. 말만 내세우고 마무리를 제대로 하는 일들이 없다보니 그럴 만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신년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그랬다. 노무현 대통령은 ‘올 한 해 뜻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기 바란다’는 내용의 짧은 덕담으로 신년사를 대신했지만 관심 밖이었다. 언론의 조명을 받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신년사는 ‘대한민국 선진화 원년, 다 함께 열어갑시다’로 시작해 ‘마음을 다잡고 신발 끈을 조여 맵시다. 조금만 더 참고 노력하면 그 길이 훤히 열립니다’라는 말로 다짐과 희망을 얘기했다.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뒤끝이 초라한 것을 원했을 리 없다. 5년 후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게 국민들의 마음이다. 국민들의 심판이 이렇게 준엄하다는 것을 안다면 당선의 기쁨보다 책임감이 앞서야 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각 부처의 업무보고를 받으며 발 빠르게 활동을 하고 있다. 첫 단추
하얀 눈이 만들어 논 순백의 세상과 벌거벗은 나목들이 꽃피운 아름다운 설화가 유혹하는 겨울.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는 사람의 손을 잡고 여행길에 나서면 삶이 여유로워진다. 내륙에서는 호수가 바다다. 호수에 박힌 산들이 옹기종기 작은 섬을 만드는 내륙의 다도해가 대청호다. 대청호는 경부고속도로 청원ICㆍ신탄진IC에서도 멀지 않고, 물길이 만든 길을 따라 드라이브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까운 곳에 전통문화유산을 모아 조상들의 삶을 재현한 문의문화재단지와 상설전시장인 대청호미술관이 있어 색다른 문화를 접하기도 쉽다. 대청호와 대청댐의 수문이 발아래로 펼쳐지는 곳에 작은 사찰 현암사가 있다. 현암사는 백제 달솔해충의 발원으로 고구려의 승려 청원선경 대사가 초창하였고, 신라 원효대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봐 이곳이 삼국의 접경지대였음을 짐작케 하는 법주사의 말사다. 요즘 장승공원으로 유명해진 구룡산의 가파른 중턱에 위치하고, 대청호에서 올려다보면 다람쥐가 매달린 모습으로 보여 다람절이라고도 불린다. 현암사는 나뭇잎이 떨어져 대청호반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겨울에 찾아야 제맛이 난다. 현암정 휴게소에서 가깝게 보이는 현암사의 설경을 감상하고 100여m 걸으
새 정부에 바란다. 왠지 낯설다. 새 대통령 당선자에게 바란다. 이게 더 어울린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동안 대통령의 의중대로 밀어붙이거나 오락가락 하는 정책을 많이 봐왔다. 대통령이라는 권력이 얼마나 대단하면 당선자 주변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먹고살기 힘들다, 일자리가 없다’는 게 국민들의 고충이다. 도덕적으로 흠집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흠집은 눈감아 줄 테니 ‘어떻게든 경제를 살려 달라’는 국민들의 바람이 표심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대통령 당선자가 다른 것은 제쳐두고 경제에 올인 할 확률이 높다. 경제만큼이나 중요한 게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교육이다. 백년지대계인 교육을 경제와 하나의 선상에 놓고 보면 어울리지도 않는다. 교육은 과정이 중요해 눈에 보이는 결과를 잣대로 평가하거나 경제적인 가치를 환산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교육은 경제적인 논리로 풀어갈 수 없다. 2007년 한 해를 정리하며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가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인다’는 자기기인(自欺欺人)이다. 분수를 모르는 탐욕과 도덕 불감증을 비꼰 말이다. 자승자박이라고 대통령 주변의 정치인들이 제 새끼줄로 제 목을 매며 정부의 정책을
무자년(戊子年), 새해를 맞을 날이 닷새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눈다운 눈이 한번도 내리지 않아 지구온난화를 실감한다. 눈 때문에 아이들은 겨울철을 제일 좋아한다. 겨울에 들어서며 눈이 내리는 날 아이들과 눈싸움을 하기로 약속했다. 눈싸움 얘기에 아이들은 신이 났고 나는 눈덩이를 들고 쫓아다니며 즐거워할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자기가 던진 눈덩이에 선생님이 맞으면 그렇게 즐거워할 수가 없다. 하얀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추억 남기기도 하고 아이들을 신명나게 하니 겨울철의 눈싸움은 일석이조다. 눈싸움 한번 하지 못한 채 방학이 되는 것을 서운해 하는 도원분교장(충북 청원군 문의면 문의초등학교) 27명의 아이들이 낭추골 눈썰매장을 다녀왔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눈이지만 아이들은 눈썰매를 타며 신이 났다. 얼음판에서 얼음 썰매도 타고, 공포체험과 세줄 로프를 타며 도전정신도 배우고, 국어시간에 배운 고드름과 바람이 몰려오면 일제히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보면서 추억 만들기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김천에서 서쪽으로 약 12km 거리의 소백산맥 가운데에 학이 많이 찾아왔었다는 황학산이 있다. 신라 눌지왕 2년(418년) 아도화상이 황악산 기슭에 세운 직지사는 사찰 주위의 울창한 소나무와 계곡의 맑은 물이 어우러지며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직지사라는 이름은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는 선종의 가르침에서 유래되었고, 직지사를 중창한 고려의 능여 화상이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측지하여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해동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직지사는 30세에 주지가 된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때 선봉에서 큰 공을 세운 일화 만큼이나 으뜸 가람을 일컫는 동국제일가람으로 전해지고 있다. 1천년 묵은 칡뿌리와 싸리나무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일주문에서 1천구의 아기부처가 나란히 안치되어 있는 비로전까지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칠 게 없다. 직지사는 1600여년의 사찰답게 국보 제208호 금동육각사리함, 보물 제670호 대웅전삼존불탱화, 보물 제606호 대웅전앞3층석탑, 보물 제607호 비로전앞3층석탑, 보물 제319호 석조약사여래좌상, 보물 제1141호 한천사출토금동자물쇠, 보물 제1186호 청풍료앞삼층석탑, 경북유형문화재 215호 직지사대웅전 등 가치 있는 문화유물
제17대 대통령을 선출하던 12월 19일 국민의 권리부터 행사하고 한국전쟁 초기 미군에 의해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당한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와 추풍령을 다녀오기 위해 차를 몰았다. 노근리는 경부고속도로 황간 IC에서 가깝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면 만나는 4번 국도에서 좌측 영동읍 방향으로 달리면 도로변 우측에 ‘노근리사건 현장입니다’라고 써있는 안내판이 보인다. 화살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바로 앞에 노근리사건 역사의 현장인 쌍굴다리가 우뚝 서있다. 노근리사건은 1950년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남쪽으로 향하던 피난민들이 미군의 무차별 총격을 받아 300여 명의 희생자가 생긴 대량학살 사건이다. 더구나 대부분이 노인이나 부녀자이고 젖먹이까지 미군의 총탄에 억울하게 희생됐다. 역사 속에 묻혀있던 진실이 모두 밝혀질 만큼 좋은 세상이 되었건만 방명록과 안내책자를 보관하는 낡은 상자, 사진이 잘 보이지 않는 허술한 게시판, 허름한 벽에 사건이 나던 날을 그린 그림이 초입에서 낯설게 맞이한다. 날짜별로 사건개요가 써있고 사건의 위치도가 그려있는 노근리 사건 안내판 옆에 '사건의 진상규명과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하여 현장을 훼손하거나 변형시키는 일이 절대 허용
두타산은 진천군 초평면과 증평군 증평읍·도안면의 경계에 있다. 천년고찰 영수사가 산자락에 있고, 세계 3대광천수의 하나인 초정약수가 가까워 높이에 비해 전국의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산이다. 작아도 크고 높아 보이는 게 있다. 투타산의 높이는 해발 598m에 불과하지만 주위에 높은 산이 없어 이곳에서는 큰 산에 해당한다. 멀리서 보면 부처가 누워 있는 모습이라는데 범인의 눈으로는 구별하기 어렵다. 까까머리 훈련병들의 추억이 남아있는 증평읍 연탄리 주변의 부대가 두타산 자락에 있고, 두타산 줄기가 증평읍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타산을 증평의 산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두타산 정상이 진천군에 위치해 진천 두타산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두타산에 관해 전해져 오는 얘기도 있다. 팽우가 단군 왕검의 지시로 이곳의 산천을 다스릴 때 산봉우리가 섬같이 보일만큼 큰 홍수가 나자 이 산꼭대기로 피신했다. 그때부터 머리 두(頭), 섬 타(陀)자를 따서 두타산이라고 불렀다. 생명에 도움을 줘 가리도(加利島)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진천군 초평면의 영수사가 등반을 시작하는 지점이지만 청주삼백리 회원들과 증평읍 미암리 자양부락에서 두타산을 오르기로 했다. '자양마
문의초등학교도원분교장 아이들이 솜사탕을 만들어 먹으며 신나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솜사탕이 만들어지는 원리도 배웠습니다. 깡통 속에 들어있는 설탕이 녹아 액체가 됩니다. 녹은 설탕이 깡통의 원심력에 의해 작은 구멍 밖으로 내뿜어집니다. 구멍 밖으로 나온 설탕이 순간적으로 굳으면서 가는 실처럼 됩니다. 깡통 밖에서 나무젓가락으로 뭉치면 솜사탕이 됩니다. 집에서 간단하게 솜사탕을 만들어 먹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1. 알루미늄캔의 윗부분에 있는 손잡이를 제거하고 중앙에 작은 구멍을 만듭니다. 바닥의 중심에 구멍을 냅니다. 캔의 옆면 아래 부분에 작은 구멍을 여러 개 만듭니다. 2. 자전거 바퀴살을 캔의 아래 구멍에서 윗구멍으로 꿰어 빠지지 않도록 고정합니다. 3. 모터의 축에 바퀴살을 납땜으로 고정시킵니다. 4. 9V용 건전지와 모터를 전선으로 연결합니다. 5. 캔의 윗부분 구멍으로 설탕을 2스푼정도 넣습니다. 6. 알코올램프에 불을 붙입니다. 7. 캔의 아래 부분에 알코올램프의 불에 갖다대면 작은 구멍에서 솜사탕이 뿜어져 나옵니다. 8. 나무젓가락을 돌려 솜사탕을 뭉칩니다.
대통령선거와 교육감선거가 6일 앞으로 다가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하면 오늘부터 19일의 투표 마감시각까지 정당에 대한 지지도나 당선인을 예상하게 하는 여론조사의 경위와 그 결과를 공표 또는 인용하여 보도할 수 없다. 이번 제17대 대통령선거는 나라를 책임지고 잘 이끌겠다는 대선 후보가 12명이나 되어 그동안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경남, 울산, 제주, 충북은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교육감선거가 실시된다. 길게 이어진 벽보의 길이에 비해 국민들의 관심이 시큰둥해 각 후보 진영은 안달을 하고 있다. 대선 판은 그래도 매스컴에서 관심을 가져주니 다행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115만여 명의 유권자가 직접 선출하는 충북 교육감 선거는 정말 무관심 일색이다. 교육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왜 교육감을 뽑아야 하느냐고 원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청주MBC의 지지율 조사에서도 약 43%의 유권자가 응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백년대계를 맡을 교육감 후보의 선전 벽보마저 차별을 받고 있다. 대선 후보의 3분의 1 크기라는 공직선거관리 규칙 때문에 대선 후보들의 벽보 귀퉁이에서 볼썽사납게 서자 취급을 당하고 있다. 대선 후보가 워낙 많아 벽보를 일일이 살펴보
지난 8일 충북 숲해설가협회 회원들과 청주의 옛길인 상봉재를 답사하기 위해 명암지 주차장으로 갔다. 1921년에 농업용수를 저장할 목적으로 만든 명암지는 바로 밑까지 아파트가 들어서 지금은 호수공원이 되었다. 그 당시 의도했던 일은 아니겠지만 개발을 앞세우는 사회에서 이만큼이나마 녹지공간을 만들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물가에 우뚝 서 있는 명암타워 뒤로 상봉재의 초입인 풍주사와 명암지에서 산성을 연결하는 터널공사 현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명암타워에 예식장이 있어 제방도로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물 위에 떠있는 오리들은 이리저리 먹이를 찾아다니며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송태호 청주삼백리 대표가 답사에 나설 상봉재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했다. 청주 주변의 옛길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고개가 상봉재다. 상당산성과 낭성지역을 연결하고 있는 이곳은 십여 리가 넘는 험준한 산악지형이다. 명암타워 뒤 동부우회도로의 횡단보도를 건너 풍주사 입구로 갔다. 시멘트 길을 따라 풍주사로 오르다 보면 오른쪽으로 상봉재 가는 산길이 나타난다. 상봉재 가는 길의 초입은 가파르다. 1년 전 이 길을 답사하며 숲 속에 들어있는 묘지를 걱정했는데 그사이 깔끔하게 정리해 보기가 좋다. 명
길게 옆으로 누운 잡목에 걸터앉아 봉암사와 구왕봉의 역사를 생각해본다. 심충의 권유로 봉암사의 위치를 산 아래에 정한 지증대사가 큰 못을 메우면서 도력으로 못에 살고 있던 용을 쫓은 곳이 구왕봉이다. 구왕봉을 날개봉으로 부르는 봉암사에서 해마다 소금단지를 묻어 기를 눌러준다. 알록달록 단풍 색깔이 고와 가을 정취가 아름답다고 소문난 곳이 지름티재다. 그런데 봉암사에서 세운 안내문은 가은읍 방향의 고갯길만 막은 것이 아니다. 지름티재 정상에서 희양산으로의 산행도 거부한다. 수행을 위해서라니 경북 가은읍의 봉암사 방향에서 구왕봉이나 희양산으로 산행하는 것은 제한할 수 있다. 하지만 남북도 50년이 넘게 막혔던 분단의 벽을 뚫어 마음대로 금강산과 개성을 여행하는 마당에 은티마을에서 올라온 등산객들까지 희양산 정상을 밟아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가로막고 있는 가느다란 줄 앞에서 고민을 하다 희양산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대부분의 산들이 그렇듯 희양산은 경북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도계에 있다. 해발 998m로 높이에 걸맞게 아름다움도 갖추고 있다. 백두대간의 산이라 등산인들이 즐겨 찾는 희양산은 정상이 경북에 속해 있고 화강암으로 이
휴일이면 충북 괴산군 연풍면 은티마을 입구 주차장에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삼사십 대씩 들어찬다. 산골의 오지마을에 산행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화양동, 선유동, 쌍곡계곡과 대야산, 도명산, 중대봉 등을 품고 있어 산수가 수려한 괴산군에는 산세가 아름다워 사랑받는 명산이 많다. 은티마을은 백두대간의 길목인데다 ‘괴산 35명산’ 중 마분봉, 악휘봉, 시루봉, 구왕봉, 희양산으로의 산행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은티마을에서 등반을 시작하는 구왕봉(898m)과 희양산(998m)은 가까이에서 마주보고 있어 한번에 등반을 해야 참맛을 느낄 수 있다. 11월 24일 은티마을로 차를 몰았다. 주차장에서 마을유래비와 마을 입구의 주막집을 지나면 산행안내판이 서있다. 멀리 지름티재를 사이에 두고 왼쪽의 희양산과 오른쪽의 구왕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밭 사이로 난 넓은 길을 따라가면 한참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농경지가 이어지고 그 끝에서 가까운 거리에 ‘백두대간 희양산’을 알리는 표석과 이정표가 서있다. 하나의 산만 등반하려면 지름티재까지 올라가 등반할 산을 선택하는 게 좋지만 두 곳 모두 등반하기 위해 오른쪽 호리골재 방향으로 향했다. 숲속을
미호천의 또 다른 물줄기인 칠장천의 발원지를 찾아보기 위해 꼬불꼬불 이어지는 도로를 달려 칠장사로 갔다. 주차장 가기 전에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칠장사 당간(경기도유형문화제 제39호)을 만난다.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높이 11.5m의 철제 당간이다. 당간이란 부처와 보살의 공덕과 위신을 기리기 위해 깃발의 일종인 당을 다는 깃대이다. 본래 30개의 원통이 연결되어 있었다는데 현재 14마디만 남아있다. 바로 옆에 있는 칠장사 사적비(향토유적 제24호)는 화강암 석비로 비신의 앞면에 현종 12년(1671년)에 건립되었음을 알게 하는 기록이 음각되어 있다. 이 사적비는 칠장사의 창건 연대와 중수 과정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가게들이 올망졸망 모여있는 작은 주차장 끝에 '칠현산칠장사'라고 써 있는 일주문이 있다. 일주문에서 가까운 곳의 큰 주차장 앞에 있는 칠장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636년)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벽초 홍명희의 소설 에서 꺽정이 의적들을 모으고 스승 갖바치 병해대사와 머물던 사찰이다. 유서 깊은 절이지만 주변이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산기슭에 있어 다른 사찰에 비해 한적하고 조용하다. 칠장사는 고찰답게 칠장사오불회괘불탱(국보
충북 서부지방의 젖줄이라 불릴 만큼 청주분지 등 곡창지대를 끼고 충청남도 연기군까지 흘러가 금강 상류에 합류하는 하천이 미호천이다. 그런데 미호천에 대한 조사가 부족해 소개된 곳마다 발원지가 다르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는 미호천의 발원지를 음성군 생극면과 충주시 신니면을 경계하고 있는 부용산으로 소개하고 있다. 청주삼백리 송태호 대장은 부용산은 한남금북정맥의 주능선에서 벗어나 미호천의 발원지가 될 수 없다며 우리나라의 산줄기 체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에 생긴 오류라고 지적한다. 송태호 대장과 청주삼백리 회원들 몇이 미호천의 발원지로 추정되는 마이산을 찾아보기로 했다. 청주에서 진천까지는 쌩쌩 신나게 달렸지만 물줄기를 만나면서부터는 지도를 봐가며 미호천의 물길을 제대로 공부하는 답사였다. 진천군 이월면 미잠리에서 제법 넓은 물길을 만났다. 그 끝에 있는 합수머리의 좌측 물줄기는 칠장산에서 발원한 칠장천이고 우측 물줄기는 망이산 옹달샘에서 발원한 성산천이다. 성산천을 따라 음성군 대소면을 지나다보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다리들이 연달아 나타난다. ‘작은내’ 등 하천과 관련된 부락 이름도 있고 철새들이 노니는 모습도 보인다. 마이산에서 발원한 물이 호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