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품속같이 항상 따뜻하고 포근하게 맞이해 주는 곳이 고향이다. 그런데 고향을 찾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남북으로 허리가 잘리는 바람에 명절이 다가오면 북녘의 하늘을 쳐다보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산가족이나 강줄기를 막아 댐을 건설하며 고향이 물속에 잠긴 수몰민들의 현실이 그러하다. 대청댐이 건설되며 강변의 옥답과 인심 좋은 이웃을 잃은 사람들도 많다. 그냥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해야만 되는 줄 알았기에 보상가가 낮아도 시위 한번 못했고, 멀리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원정리까지 떠나 정착한 사람들도 있다. 2005년 충북인뉴스에서 대청댐 수몰민 집단 취락지를 소개했었다. 문의면 덕유리가 고향인 김학규씨가 ‘졸업식’ 노래를 개사해 불렀다는 이주민의 노래가 그 기사로 알려졌는데 수몰민들의 애처로운 마음을 대변한다. 〈잘있거라 고향산천 정든고향아 선조님 저희들은 떠나갑니다. 물려주신 재산으로 토대를 삼아 남보다 지지않게 살으렵니다. 잘있거라 고향산천 정든 고향아 우리들은 서로서로 헤어집니다.〉 울컥 고향이 그리운 날은 물속에 잠긴 고향마을 위로 산그늘이 맑게 드리우고 있는 모습을 호숫가에서 바라보다가 스치는 바람결에 그리움을 묻고 떠나는 수몰민의 가슴은 천
사계절, 그중에서도 생명이 움트고 희망을 노래하는 봄이면 어느 곳을 막론하고 우리나라 산천에서 꽃 잔치가 벌어진다. 운일암반일암 가는 길가에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지천이다. 도로변에 있는 주천초등학교의 담장을 노란 개나리꽃이 장식하고 있다. 담장 옆의 고목 벚나무도 활짝 꽃을 피워 학교가 꽃 대궐이다. 주천삼거리에서 우회전해 55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운일암반일암이 있는 계곡이 나타난다.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와 대불리를 연결하는 이 계곡에 길이 생기기 전에는 깎아지른 절벽에 하늘ㆍ돌ㆍ나무만 있었다. 운일암반일암이라는 이름도 오가는 것은 구름밖에 없다하여 운일암(雲日岩), 햇빛을 반나절 밖에 볼 수 없다하여 반일암(半日岩)이라 불리었다. 〈운장산 동북쪽 명덕봉(845.5m)과 명도봉(863m)사이의 약 5km에 이르는 협곡에 용소바위ㆍ족두리바위ㆍ천렵바위ㆍ대불바위 등의 집채만한 기암괴석들이 겹겹이 자리 잡고 있으며, 금강의 발원지인 노령산맥의 지붕이라 불리는 1,126m의 운장산 자락에서 솟구치는 맑고 시원한 냉천수가 그 사이사이를 휘감아 용트림하며 흐르다가 곳곳에 크고 작은 폭포와 소를 만들어 옥수청산(玉水靑山) 천지산수가 신묘하게 어우러져 그야말로 자연조
70년대 후반에 교대를 졸업한 사람들은 지지리 복도 없어 2, 3년을 기다려야 발령 받았다. 그 당시 발령을 받아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게 벌써 30년이 넘었다. 어느 날부턴가 그동안 살아온 세월을 뒤돌아보며 짧게나마 글을 남기는 것도 습관이 되었다. 썩은 관솔이 되더라도 주변 사람들의 삶에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타면서 향기로운 냄새를 내겠다는 바람도 가지고 산다. 나만 그렇지는 않을 거라며 위안을 삼지만 아이들에게 잘못 가르친 것도 많다. 어떤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 잘못된 시류 때문이라고 변명도 해본다. 그중 하나가 시도 때도 없이 정신적인 행복을 강조한 것이다. 〈사업체를 운영하며 돈이 많지만 늘 바빠 아이들 얼굴 보기도 어렵고 여기저기 학원을 보내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부모와 회사에 다니며 돈은 없지만 시간이 나면 아이들과 놀아주고 자녀가 들려주는 리코더 소리에서 행복을 찾는 부모가 있을 경우 어느 가정이 행복할 것이냐?〉 바르게 살면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게 아이들에게 늘 들려주던 이야기이자 수업의 주제였다. 지금은 성인이 된 아이들이 그때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를 생각할 때마다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것으로 봐
〈금산읍에서 약9㎞ 떨어진 진악산 남동쪽 기슭에 위치하고, 신라 헌강왕 12년(AD866)에 조구대사가 창건해 역사 깊으며, 앞산 중허리의 암석에서 금을 캐내 불상을 주조한데서 보석사라는 이름이 지어졌고, 주위의 울창한 숲과 암석이 맑은 시냇물과 어울리며 대자연의 조화를 이뤄 속세를 떠난 듯 하다.〉 금산군청 문화관광포털(http://tour.geumsan.go.kr/open_content/life/tour1)의 주요관광지에 소개되어 있듯 보석사(전통사찰 제5호)는 금산에서 진안 방향의 진악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이다. 보석사라는 화려한 이름과 금을 캐내 불상을 주조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꾸밈이 없고 아담하다. 입구의 일주문은 현판이 없어 더 오랜 역사가 느껴지고 일주문에서 사찰 입구까지 늘어선 전나무들도 운치가 있다. 일주문에 들어서면 의선각(毅禪閣) 안에 의병승장(義兵僧將)으로 중봉 조헌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기허당 영규대사의 의병승장비(충남 문화재자료 제23호)가 서있다. 일본 경찰이 비각을 헐고 자획을 훼손하여 땅에 묻었던 것을 광복 후에 다시 세웠다는 순절사적비이다. 추부 IC에서 금산으로 오는 길에 있는 금성면 의총리의 칠백의
민주주의에서 꽃에 해당하는 게 선거다. 또 민주주의는 권리주장보다 의무이행이 앞서야 한다. 그러므로 직접 참여해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 그 자체가 바로 민주주의의 발전에 앞장서는 것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국민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나도 선거를 하는 날이면 가족들이 투표장으로 나가는 것부터 챙긴다. 작년 어머님이 살아계실 때만해도 5명의 가족이 모두 투표에 참여했더니 2006년 5월 31일 실시한 지방선거 때는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최다가족상도 받았다.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모범유권자로 인정도 받은 마당에 식구들 모두가 투표에 참여할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그동안의 룰이 깨졌다. 대학원 졸업반인 큰 아이가 투표를 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늘 100%였던 우리 집의 투표율도 75%로 낮아졌다. 왜 우리 집만 그렇겠는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http://www.nec.go.kr)의 선거정보시스템에 의하면 역대 지방선거 투표율은 1회 68.4%, 2회 52.7%, 3회 48.9%로 낮아지다가 2006년 5월 31일에 있었던 4회에는 간신히 50%를 넘어선 51.3%였다. 비교적 투표율이 높다는 대통령선거도 직접투표가 부활 된 1
‘시유불다(時有不多)’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어떤 일이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궁금해 해야 답을 찾아낸다. 뜬금없이 만난 글자지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해결방법이 있다. ‘다불유시(多不有時)’ 그렇다고 ‘많을 다, 아니 불, 있을 유, 때 시’로 뜻풀이가 되는 사자성어도 아니다. 그냥 쉽게 ‘시간은 있지만 많지 않다’나 ‘많지 않지만시간은 있다’로 풀이하면 된다. 그렇다면 누가, 어떤 뜻으로 ‘多不有時'를 사용했을까? 의견이 분분하나 수세식변소(water closet)의 약자인 'W.C.'를 뜻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것에 관해 전해오는 이야기도 있다. 주로 조금씩 각색되어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이지만 읽어보면 재미있다. 시내에 나갔던 시골 할아버지가 문 앞에 모르는 글자(W.C)가 써있어 화장실을 찾느라고 고생을 했다. 마침 옆에 젊은이가 있어 무슨 글자냐고 물었더니 화장실을 뜻하는 ‘더불유시’라고 친절히 가르쳐 줬다. 집에 온 할아버지가 기억해보니 ‘다불유시’였고 잊기 전에 얼른 화장실 문에 ‘多不有時’라고 써넣었다. 훗날, 이곳을 지나다 작은 문에 ‘多不有時’라고 써있는 것을 본 사람들은 이 글자에 심오한 뜻이 숨어있고, 글을 지은 사람은 학식이
‘교권 추락이 먼저냐, 공교육 붕괴가 먼저냐’에 관한 문제도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만큼이나 복잡해 주장하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다. 하지만 교권 추락에 대한 우려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어 이제 교권은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한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충북 청원군의 한 중학교에서 여교사가 중학생과 학부모에게 폭행당한 사건이 발생해 파문이 일고 있다. 충청타임즈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지난 10일 낮 12시30분쯤 교무실에서 중학생 C군과 그의 어머니는 학교 측의 전학조치에 대해 3학년 부장교사와 말다툼을 했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 동료 여교사가 이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했고, C군과 어머니가 화를 내며 언쟁 장면이 촬영된 휴대전화를 뺏으려는 과정에서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정도 선에서 그쳤더라면 도의적으로 이렇게 지탄받지 않았을 테고 서로 서운한 감정을 풀기에도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C군이 여교사의 머리채를 잡아 쓰러뜨리고 머리를 20여대 정도 폭행했다는 것이다. 휴대전화로 이 장면을 촬영한 것을 따지기 이전에 C군의 어머니가 ‘내 아이를 문제 학생으로 본 근거를 대라’며 3학년 부장교사에게 욕설을 퍼붓고,
세계 최고의 금속 활자본 직지를 인쇄한 흥덕사지가 있는 곳이 청주다. 남북으로 흐르며 청주시내를 상당구와 흥덕구로 나누는 청주의 젖줄 무심천이 흥덕사지와 가깝다. 무심천 변에 있는벚나무들이 활짝 꽃을 피워 청주시내를 꽃대궐로 만들었다. 지난 토요일 사직동 분수대에서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청주의 명물 서문대교를 걸으며 남북으로 길게 터널을 만든벚꽃을 구경했다. 무심천에 있는 분수 터널 주변에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가득하다. 벚나무마다꽃을 배경으로 추억남기기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서 있다. 멀리 눈길을 돌리니 우암산도목을 길게 빼고 꽃구경을 하고 있다. 무심천에 꽃봉오리가 크고 자태가 아름다운 목련이나 한번에 온몸을 불사르는 벚꽃만 있는 게 아니다. 이곳저곳 눈길을 돌리며 자연을 감상하다보면 작거나 적어서 더 아름다운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앙상한 가지에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복숭아꽃, 잡초 속에서 노란색 희망을 전하고 있는 민들레꽃, 작아서 애처롭고 아름다운 제비꽃이 마주보고 웃는다. 늘 같이하지만 자연의 경이로움과 신비스러움을 새롭게 발견하는 순간이다.
스피드 시대답게 인터넷에는 항상 새로운 정보가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마우스를 이용해 여러 신문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편리성, 구독료 부담이 없는 경제성, 원하는 정보를 빠르게 접할 수 있는신속성 때문에 인터넷신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인터넷신문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나는 것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철저히 따르는 사회현상이다. 그런데 인터넷신문에 있는 정보 중에는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들이 많다. 책임감이 부족한 매체들이 시시각각으로 쏟아내는 정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정보의 홍수시대를 헤쳐나가기도 어렵다. 인터넷신문은 활자화된 기존의 신문과 달리 기사를 소홀히 다루는 경향이 있다. 눈길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선정적인 제목도 자주 사용한다. 그러다보니 거창한 제목에 어울리지 않게 내용이 부실하거나 전혀 다른 내용의 기사들도 있다. 위의 글은 4월 7일 저녁 국내 유명 일간지인 H일보에서 운영하는 인터넷신문 메인 면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성폭행에 관한 기사들의 제목 중 '초등생 7명 성추행한 교사'도 큰 글씨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초등생 7명 성추행한 교사'라는 제목으로 남의 나라 이야기라는 것을 누가 알까
괴산 35명산 중에는휴일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다녀올 수 있는 곳이몇 군데 있다. 아내와 함께 다녀온 해발 850m의 덕가산이 바로 그런 산이다.괴산군에서 발행한 ‘괴산 35명산’ 관광책자를 참고하면 덕가산은 원시 그대로의 숲과 자연적인 비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여름산이다. 갈금교에서 마을 방향으로 들어서면 오른편 언덕 위에 옛 정취가 묻어나는 정자가 서 있다. 영의정을 지냈고, 조선시대 성리학에 영향을 끼쳤던 장암(丈岩) 정호 선생을 기념하는 반계정이다. 반계정 앞으로 넓은 냇가가 굽이굽이 이어진다. 냇가의 맑은 물들이 덕가산은 여름철에 등반해야 제맛이 난다는 것을 알게 한다. 충북기념물 141호인 장암의 묘소는 이곳에서 가까운 불정면 지장리에 있다. 반계정을 둘러보고 좁은 길을 달리다보면 길거리 옆에 멋진 소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이 나무가 수령 170년, 높이 8m의 괴산보호수(30호)이다. 나무 옆에 마을의 역사가 적혀있는 ‘입석마을자랑비’가 서 있어 400여 년 전 이곳에 터전을 잡았음을 알려준다. 소나무를 지나면서 만나는 작은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들어가면 마을회관이 나타난다. 여느 농촌과 같이 마을 사람들의 인심이 후해 길손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4일 오전10시 청주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에서 개회식을 열고 제37회 충북소년체육대회가 시작되었다. 학교체육 활성화,체육인구의 저변확대, 생활체육기반 조성을 목적으로 열리는이번 대회는 육상, 수영, 축구, 야구 등 모두 30개 종목(시범종목 1개)이 펼쳐지며 5월31일부터6월 3일까지광주에서 열릴 제37회 전국소년체육대회 선수 선발을 겸한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선수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남녘에서 시작된 봄바람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곳 홈너머까지 불어왔다. 입학생 문제로 고심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활짝 핀 산수유 꽃이 학교 담장을 노랗게 물들였다. 울타리 주변의 운동장에서 나물을 캘 만큼 이곳저곳에서 봄기운이 돋아나니 학교가 활기로 넘친다. 꽃보다 아름다운 게 사람이라고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나 홀로 입학생 수정이의 밝은 모습이다. 해바라기처럼 밝은 표정을 보고 있으면 수정이가 짊어진 가방도 가볍게 느껴진다. 수정이가 도원분교의 학생이 된지도 어느덧 한달이 지났다. 늘 성수 오빠와 함께 등하교를 하고, 학교에서는 나 홀로 5학년생 은지 언니와 둘이서 생활한다. 조용한 성격의 은지와 수정이에게 교실은 넓은 놀이터다. 선생님과 마주앉아 공부하는 것도 재미있어 한다. 도원분교의 막내에다 혼자라 다른 언니, 오빠들의 귀여움도 독차지 하고 있다. 교실 뒤편의 환경판에 학습 결과물인 수정이의 그림이 걸려있다. 물론 은지 언니의 도움을 받았지만 수정이의 마음속에 담긴 학교 풍경이 그림에 있다. '띠띠 빵빵' 수정이와 은지에게는 신나는 날이 일주일에 하루씩 있다. 매주 월요일은 다른 친구들과의 적응교육을 위해 선생님의 차를 타고 본교로 가는
취재된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물론 알기 쉽게 전달하거나 사회의 공기로써 건전한 여론을 조성하는 일도 중요하다. 정부의 홍수시대에 대응하느라 언론사가 많이 생겼다. 언론이 앞장서 정보를 전달하고, 사회를 비판하고, 여론을 형성하고 있으니 사회적으로도 참 좋은 일이다. 그런데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거나 소홀히 여기는 언론사가 늘어나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을 걱정하게 한다. 여러 번의 교정과정을 거쳐 독자들을 만나는 게 신문이다. 그런데 요즘 신문을 읽다보면 틀린 글자,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 속된 말들을 심심찮게 발견한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인줄 몰라 더 떳떳하고 당당한 철부지들을 보는 것 같다. 20면을 발행하는 한 지방지의 3월 28일자에서 왜 신문이 정확성과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하는지와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본다. 아울러 일반적으로 알고 있으면 유용한 한글 맞춤법도 공부해보자. 글자의 크기로 봐 '깨끗이'를 깨끗히'로 잘못 써놓고도 당당하다. 아래의 한글 맞춤법 6장 제51항을 읽어보면 왜 틀렸는지 쉽게 이해한다. 〈부사의 끝음절이 분명히 '이'로만 나는 것은 '-이'로 적고, '히'로만 나거나 '
홍성이 자랑하는 8경중 제1경이 홍성읍에서 약 4km 거리에 있는 용봉산이다. 산세가 용의 형상과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는 용봉산은 천년고찰 용봉사와 마애석불, 수려한 자연경관 때문에 사시사철 등산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또 화강편마암의 돌산이라 해발 381m의 산치고는 기암괴석들이 많고, 병풍바위ㆍ용바위ㆍ장군바위ㆍ사자바위 등 각양각색의 형상들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주차장에서 등산로 입구까지의 거리가 가깝다. 이곳에서 입장료를 내고 작은 다리를 건너면 휴양림을 알리는 표석이 나오고 그 뒤편으로 처음 만나는 갈림길이 있다. 왼쪽의 넓은 길은 용봉사로 가는 길이고 오른편의 산길은 병풍바위로 가는 등산로이다. 수덕사의 말사로 백제 말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용봉사는 일주문에서 눈에 들어올 만큼 가깝다. 오르막길을 걷다보면 사찰 입구의 좌측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용봉사마애불(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118호)이 있다. 서있는 바위를 불상보다 크게 파낸 후 조각하였는데 많이 마멸되어 타원형의 얼굴부분만 양감이 느껴진다. 불상의 왼쪽에 신라 소성왕1년(799)에 조성되었다는 글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어 마애불의 가치를 알게 한다. 천년고찰이지만 사찰의 규모가 작아 용
서해 바닷가를 오가며 많이 지나치는 곳이 홍성이다. 읍내에 홍주성, 조양문, 홍주아문, 안회당, 여하정 등의 귀중한 유물이 남아있어 홍성이 역사의 고장임을 증명한다.모두 가까운 곳에 위치해 짧은 시간에 둘러볼 수 있다. 홍성읍 오관리 홍주초등학교 옆에 있는 홍주성(사적 제231호)은 최초 축성연대를 확실히 알지 못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 홍주읍성의 둘레가 533보2척이고 성내에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재 810m의 성벽만 남아있다. 성내에 있었다는 35동의 관아 건물도 지금은 조양문, 홍주아문, 안회당, 여하정만 남아있다. 일본인들이 헐어 없애려는 것을 읍민들이 반대해 보존한 조양문은 동문으로 읍내 중앙에 우뚝 서있어 화재로 국민들을 안타깝게 했던 국보 1호 숭례문을 생각하게 한다. 군청 입구에 있는 홍주아문은 안회당의 외문으로 우리나라 아문 중에서 가장 크고 건물에 걸려있는 홍주아문(洪州衙門) 현판은 대원군의 친필이다. 두 그루의 나무가 홍주아문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고려 공민왕 때 식재했다는 충남지정기념물 제171호 홍성 오관리 느티나무이다. 마을에 액운이 있으면 밤새 울어 예방하게 했고 홍주에 부임하는 목민관들은 이 느티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