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의 꿈’을 붙들고 고통의 먼 길을 걷고 또 걸어 교단에 첫발을 뗀 새내기 교사의 설렘 앞에는 늘 걱정과 불안감도 함께 던져진다. 나름대로 공부에는 도가 튼 그들이지만, 막상 교단에서 소위 ‘간’을 보는 학생들과 마주하게 되면 어떻게 가르치고 지도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선배교사에게도 쉽사리 털어놓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들…. 감정을 추스르며 까칠한 학생과 얘기도 나눠보지만 상처 회복은 커녕 서로의 이질감만 명확히 확인할 뿐이다. ‘갈 때까지 따져보자’는 학부모에 눈물짓는 신규교사들 게다가 담임교사를 찾아온 학부모는 더욱 전투적이다. 학생지도에 작은 도움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어렵사리 자리를 마련한 학부모상담에서는 학부모의 일방적인 공격이 쏟아진다. “그게 아니고요, 어머님….” 사실을 설명해보려고 애쓸수록 상황은 꼬여만 간다. 학부모가 떠난 자리에 억울함이 몰아치고 급기야 눈물이 흐른다. 2년 전, 교직 경력 26년 만에 난생처음 맞이한 세 명의 신규교사 중 3월 한 달 동안 울지 않은 이는 없었다. “문제학생의 학부모보다 차라리 문제학생이 더 나아요”라는 신규교사의 절망과 눈물은 두 해를 넘겨 지난 12월까지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 절
자연(自然)이란 ‘스스로(自) 그러함(然)’을 의미한다. ‘저절로 그러함’에 어긋나면 그 본성을 잃게 된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본성에 인위적인 행위를 가했을 때, 물은 우리에게 반격을 가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의 자연성을 해치게 되면 반란을 일으킨다. ‘비행’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편견과 같은 인위적인 관념들을 제거하고 아이들을 바라봐야 한다. 잘못된 인식과 편견은 아이들이 갖고 있는 순수한 자연성을 훼손할 수 있다. 피그말리온과 낙인이론은 그 현상을 잘 대변하고 있다. 우리는 ‘개념의 옷’을 입혀 학습자를 그릇된 인식으로 바라보는 잘못된 판단을 중지해야 한다(epoche). 그래야만 아이들의 올바른 인성 함양에 힘쓸 수 있다. 자연성을 해치는 순간, 반란이 시작된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자연주의 사상가 엘렌 케이(Ellen Key)는 “주지주의 교육은 정신적 살인이다. 교육의 비결은 교육하지 않는 데 있다”고 주장하면서, 아이들의 자연성에 어긋나는 교육은 인성을 해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노자는 인성 회복을 위한 이상적인 삶으로서 무위자연(無爲自然)과 상선약수(上善若水)를 강조했다. 무위자연이란 순수한 자연에 인위적
우리 지역에는 ‘공동학구제’라는 제도가 있다. 도시 인근의 소규모 학교에서 시내 학생들의 유치를 허용하는 일종의 ‘학교선택제’이다. 이 제도는 여러 측면에서 학교문화의 변화를 가져왔다. 소규모 농어촌 학교를 선호하는 학부모는 학교의 특색,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 등을 먼저 살펴본 후, 입학 혹은 전학을 결정한다. 당연히 학교는 학부모와 학생의 요구와 기대를 고민하게 되었고, 학교마다 특색 있는 강점 영역의 교육과정을 찾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몸에 맞는 교육과정을 찾아내는 과정은 합의와 평가가 필수적이다 학교 교육과정은 학교마다 여건과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연 그 교육과정이 교육공동체의 비전과 목표를 담고 있는지, 학교 구성원은 이를 인식·이해하고 있는지, 교육수요자의 요구와 기대가 반영된 계획인지 등에 대한 합의와 평가가 필요하다. 물론 ‘100人 100色’의 교육공동체가 모두 행복한 교육과정을 만들어가는 일은 획일적인 관점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우리 학교가 ‘몸에 맞는 교육과정’을 찾기 위해 노력해온 고민의 흔적을 통해 교육과정이 갖는 일반적인 기본 틀에 대한 개념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학교는 충남의 전형적인 농
국립국제교육원. 찬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말머리가 쉽게 잡히지 않는 곳이다. 입시나 학교폭력, 누리과정 등 교육현안에서 한 발짝 비켜서 있기 때문일까? 쭉 뻗은 분당대로를 지날 때까지도 머릿속이 맴맴 돌았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일로 191. 뉴욕 유엔본부를 본떠 만들었다는 국립국제교육원 신청사에 들어서자 현대식 건물 특유의 쾌적함 풍겨왔다. 국립국제교육원이 초·중등 교육현장에 깊숙이 들어온 것은 원어민교사 초청 사업 때부터. 지난 1995년 의사소통중심 영어교육이 강조되면서 정부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원어민들을 국내 초·중·고교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원어민교사는 지난해 말 현재 전국에서 4,8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어려웠던 시절, 가난한 학생들도 미국과 유럽으로 유학을 떠날 수 있었던 ‘국비 장학생제도’ 역시 국제교육원이 담당했다. 지금도 매년 60명 정도가 해외 유학길에 떠난다. 이뿐 아니다. 한류 바람에 맞춰 해외 곳곳에서 한국어능력시험을 실시하는 등 우리말 보급에 힘쓰고, 국내 대학에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여 대학교육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전초기지 역할도 하고 있다. 최근에는 개발도상국의 기초교육향상을 위해 수학·과학 담당 교사들을
‘인성교육진흥법에 제시된 8가지 핵심 가치?덕목 중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묻는 질문에 교원과 학부모는 모두 ‘배려’를 꼽았다.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성역량’ 역시 학부모와 교원의 의견은 ‘의사소통능력’으로 같았다. 또한 학부모와 교원이 요구하는 지원정책으로는 문화예술교육과 가정·학교·지역사회가 함께하는 인성교육 협력체제 구축, 인성교육 교수·학습자료 보급 등이 높게 나타났다. 이처럼 학부모와 교원 모두가 인성교육에 대한 필요성과 체계적인 지원 강화를 요구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실천 가능한 인성교육의 바람직한 방향과 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인성교육은 부담스럽지 않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내면화시키고 싶은 가치나 덕목을 학교 교육과정에 반영하여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교육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바람직한 인성을 기르기 위해서 개념과 실천방법을 가르치고 안내하는 방법은 효과적이지 않다. 오히려 앎과 행함의 괴리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 따라서 인성교육의 방향을 성품 및 핵심 역량 중심교육으로 설정하고 체험·실천중심의 인성교육을 강조한 것은 바람직하다. 그리고 프로그램 중심에서 학교 교육 전반을 통한 인성교
“너(한국 교육)를 일본으로부터 도로 찾았을 때, 그리고 너를 내 손으로 길러온 지 10년이 넘는 오늘, 내 손으로 길러 왔다고 하기가 부끄럽구나. 병든 너다.” 정확하게 60년 전인 1956년 1월, 새교육 병신년 신년호(제8권 1호)에는 매우 흥미로운 글이 실렸다. 당시 중앙교육연구소 연구원이었던 성내운의 글 ‘교육의 새해, 문제의 교육 : 병신년 교육계의 과제’라는 독백이다.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열한 살이 되는 한국 교육(너로 의인화)에게 바치는 참회의 글이다. 당시 교육은 여러 가지 병을 앓고 있었다. 그는 외국인과의 대화 형식을 통해 다음과 같이 통렬하게 비유했다. “한국에서 오셨다지요? 제가 하나 알고 싶은 것이 있는데 다름이 아니라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비(比)입니다. 대체로 말하여 몇 대 몇이나 될까요?” “예, 한국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공립학교도 없고, 사립학교도 없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공립도 없고, 사립도 없다니.” “한국에 있는 학교란 모두 사친회립(師親會立) 학교입니다.” 제도뿐인 의무교육제에 대한 조소, 교육 불평등에 대한 비판, 정부와 사립재단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비판이었다. 공립학교임에도 불구
정년퇴직 후 1년간 4살짜리 손녀를 승용차로 유치원까지 실어다 주곤 하였다. 재잘거림이 즐거워서 옆자리에 앉혔는데 생각해보니 위험할 것 같았다. 뒷자리에 어린이 좌석을 마련하고 태우려 하니 막무가내로 고집하여 어쩔 방도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담임선생님께 이야기 드렸더니, 이튿날 이변이 생겼다. 앞자리에 타라고 아무리 달래도 손사래 치는 것이 아닌가. 담임교사의 말 한마디가 어린이에게는 큰 힘을 발휘한다. 온갖 지도방법에도 아이들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교사생활 십여 년이 지난 때였다. 2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 후에 국립교육대학교 부설초등학교로 전출발령을 받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담임할 반이 없었다. 몹시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간간히 담임교사가 자리를 비울 때 대신 들어가기도 하였으나 그런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그러던 중 1학년 담임교사가 한 달간 출산 휴가를 얻게 되어 내가 대신하게 되었다. 이 분은 1학년 담임 경험이 많으려니와 학습지도방법을 비롯한 학급경영 능력이 뛰어나 동료교사와 학부모의 신망이 두터웠다. 아직 학교 풍토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내가 과연 버금가게 가르칠 수 있을까 심히 걱정되었다. 게다가 교육대학교 교육실습
“선생님, 내일 또 만나요” “친구들아, 내일 또 만나자” 수업이 끝나면 우리 반은 교실이 떠나가도록 인사한다. 어떤 아이들은 나에게 안기고, 또 다른 아이들은 펄쩍 뛰면서 하이파이브를 한다. ‘내일 또 만나고 싶은 우리’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무조건 먼저 하려고 다투는 아이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친구들을 참 좋아했다. 친구 집 앞에서 친구가 나오기를 목을 길게 내빼고 기다렸다가, 친구가 나오면 너무 좋아서 무조건 말없이 달려버렸다. 내일이 빨리 오려나 싶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때처럼 우리 아이에게 친구와의 소중한 마음을 나누게 해주고 싶었다. 함께하는 1년 동안 서로 자꾸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내일은 또 무슨 재미있는 일이 생길지, 선생님은 우리에게 어떤 것으로 웃겨주실지 이런 기대가 있는 시간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은 방과후활동이나 학원 때문에 친구와 헤어지는 아쉬움이나 보고픔을 생각할 자리가 없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의 마음은 항상 쫓기고 바쁘다. 물을 먹을 때도, 강당에 갈 때도…. 아이들은 무조건 앞에서야 하고, 무조건 먼저 해야 하고, 무조건 빨리 가야한다. 하물며 다 같이 주는 학습지마저 먼저
☞ 이러한 목적을 달성함으로써 체계적이고 내실 있는 진로교육이 될 수 있도록 하는 학교 현장의 추진방안은 무엇이며, 이를 위한 교육청 차원의 지원방안에 대하여 논술하시오. 서론 진로교육 관련 법령의 제정은 어릴 때부터 미리 꿈과 끼를 키울 수 있는 장이 본격적으로 마련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인프라 부족으로 진로교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의 진로교육 여건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공공기관의 체험활동 기회 제공이 늘어나 자유학기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는 등 진로교육의 외연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계기로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진로교육 및 취업지도를 통해 공교육의 질적 변화를 유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진로교육의 기본방향을 정리하고 학교에서 진로교육이 활성화될 수 있는 추진 방안과 교육청 차원의 지원방안에 대하여 논술하고자 한다. 진로교육의 의의와 기본 방향 첫째, 진로교육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진로교육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변화하는 직업 세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최대한 실현하여 국민의 행복한 삶과 경제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둘째, 진로교육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등
01 단테의 신곡(神曲)은 쉬 접해지지 않는 고전이다. 문화사적으로는 르네상스의 새벽을 열게 한 작품이다. 단테의 신곡을 이런 정도의 지식으로 기억하기만 해도, 그 교양은 돋보인다. 돋보이려고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청소년기에는 이런 지적 허영심으로 독서 의욕을 자극할 필요가 있다. 허영심의 또 다른 면모가 곧 ‘강력한 동기 개발’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신곡은 책을 들자마자 몰입하여 정신없이 읽게 되는 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작품의 배경이며, 문화사적 맥락이며, 내용의 종교적 우의(寓意), 사건의 상징성 등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번 방학에 어떤 독서교육 프로그램에서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과 단테의 신곡을 읽고 독서 토론하는 훈련을 해 보았다.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효과를 주려면, 이 책을 어떤 관심의 코드로 읽어야 할지 정하는 것도 중요했다. 무수히 많은 의미의 코드들이 이 작품에 잠복해 있으나, 그걸 다 건드리지 말고 좀 단순히 접근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이 작품을 통해서 ‘벌(罰)’의 문제를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고전을 아이들과 더불어 읽을 때는 가급적 특정 관심거리(topic)를 설정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읽어내는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