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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고학력·전문직일수록 경제적 상태에 대한 불만 높아

■ 경제기사의 裏面 살피기

지난달 국내 모 금융지주회사의 부설 경영연구소에서 ‘한국 교사 가구의 금융생활보고서’를 발표했다. 올 4월 전국의 25~59세 교사 7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분석한 결과로, 일반 가구에 비해 총 자산이나 금융자산 규모가 더 크고 연금 덕분에 노후 준비가 탄탄하다는 내용이다. 해당 내용을 보도하는 기사 제목들 역시 ‘교사 가구 재산 보니… 알부자의 전형’ ‘교사가구 자산 많고 노후도 든든…’ ‘노후 경제적 준비 충분하다’ ‘교사가구 총자산 일반가구보다 5000만 원 많아’ 등과 같이 교사 가구의 경제적 여유로움을 다소 민망할 정도로 강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보고서가 공개되고 다수의 언론들이 이 내용을 일제히 보도한 때와 맞물려 해당 금융회사에서 교사를 위한 새로운 금융상품 패키지를 출시했고, 금융 면에는 해당 상품에 대한 친절한 소개 기사가 실렸다는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당연히 해당 상품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교사에게 우대 이율로 돈을 빌려주고 교사의 소비 패턴에 맞춘 혜택들이 탑재된 신용카드와 교권침해 피해에 대비한 보험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이쯤 되면, 교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설문의 목적이 명확해진다. 특정 고객층을 타겟팅 해 니즈를 분석하고 신제품을 개발하려는 마케팅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물론 설문조사가 표본의 타당성과 신뢰성, 통계 분석의 윤리성이 확보된다면 마케팅 목적이었다 하더라도 분석 결과의 객관성을 의심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한국 교사 가구의 금융생활보고서’라는 자료는 해당 경영연구소의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포털에서 검색해도, 그 연구소에서 발표한 다른 자료로 링크가 연결될 뿐이었다. 

 

 

 

‘교사 알부자’는 비교대상 오류

 

흔히 갖는 편견 중에 하나는 ‘숫자는 객관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숫자만큼 조작하기 쉬운 것도 없다. 때문에 해석에 있어서 output인 숫자만이 아니라, 어떤 input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인지를 살펴봐야만 한다. 더군다나 그 숫자를 다른 무엇과 비교하기 위해서는 그 기준이 타당하고 신뢰할 만한지,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비교되는지 비판적으로 봐야 한다. 무엇과 비교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사 가구의 금융생활보고서’ 원자료(raw data)를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신문 기사 내용을 토대로 보자면, 교사 가구의 평균 자산이 4억 4840만 원으로 일반 가구의 3억 9714만 원보다 5000만 원 자산이 더 많고, 금융자산만 따져도 1억 3272만 원을 보유해 일반 가구보다 2000만 원가량 더 많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에서 보도된 교사 가구의 자산에 관련한 내용을 정리해 통계청의 최근 가계금융복지조사와 비교해봤다. 
 

가계금융복지조사의 가구 평균과 비교하면, 교사 가구의 자산 보유 금액이나 금융자산 보유액은 기사대로 가구 평균에 비해 여유로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비교는 유사한 특징을 가진 두 집단의 차이를 보는 것이다. 교사는 고용상의 지위가 안정적인 상용근로자이고 학력으로 따졌을 때도 대졸 이상이다. 이러한 가구의 특성을 감안해 상용근로자 가구나 대졸 이상 가구와 비교해보면 어떨까? 상용근로자 가구와 비교하면 평균 자산이나 부동산자산, 금융자산 면에서는 상용근로자 가구에 비해 약간 더 자산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가구 평균과 비교했을 때보다는 차이가 많이 줄어든다. 

 

‘대졸가구’ 비하면 오히려 적어

 

반면 대졸 이상 가구와 비교해보면 오히려 평균 자산이 1억 가량 적고, 현재의 소비나 재무적 여유와 직결되는 금융자산 역시 2000만 원가량 더 적다. 이 부분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흔히 교사니까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어서 좋겠다라는 주변 사람의 말이나 위의 기사들처럼 숫자로 비교해 보여주는 풍족함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흔쾌히 동의가 되는가? 아마도 대부분은 아닐 것이다. 주변 친구들이나 지인들, 혹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비교해 봤을 때 딱히 교사인 내가 더 여유 있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경제적 지위를 결정짓는데 중요한 요소인 학력이나 종사상 지위를 기준으로 통계적으로 비교해 봤을 때, 즉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비교해 봤을 때 특별히 경제적으로 더 우월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더 부족하기도 하다. 
 

재무 상담을 하면서 만나본 경험에 의하면 고학력일수록, 전문직일수록 자신의 재정적, 경제적 상태에 대한 불만이 더 높은 경우가 많다. 똑같은 학교 나왔는데 대기업 다니는 저 친구가, 같은 의사인데 강남에 개업한 그 선배가, 똑같이 박사 땄는데 그 학교에 임용된 후배가 나보다 더 잘 벌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체가 없는 평균 가정이 아니라 내 주변의,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비교해보기 때문에 소위 좋은 직업, 잘나가는 직장에 다닐수록 경제적인 기대치가 높아지고 불만이 쌓이기 쉽다. 그리고 이러한 불만은 종종 충동적인 소비로 이어지거나 자칫 조급증을 불러 일으켜 섣부른 투자나 유혹에 넘어가게 만들기도 한다.    
 

‘교사 가구의 금융생활보고서’를 인용한 기사에서 한결같이 지적하는 부분은 교사 가구는 연금으로 인해 노후에 대해 안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기대수준 역시 높다는 것이다. 즉, 노후 준비 정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응답한 비중이 높고 노년에 중산층이나 상류층일 것이라는 응답 비중 역시 높았으며 노후의 적정 생활비로는 319만 원이라고 답해 일반 가구의 254만 원에 비해 25% 가량 더 높게 생각하고 있다. 교사 가구들이 인식하는 이런 노년의 재무적 안정감, 여유로움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본인이 원하면 정년까지 일할 수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소득이 올라가고 공적인 연금체계에 편입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은 동시에 다른 전문직 혹은 대기업 정규직에 비해 소득활동기간의 명목소득이 적다는 단점을 내포한다. 결국 교사들이 갖는 은퇴 이후의 재정적 안정성은 현재 누릴 수 있는 경제적인 부를 미래로, 은퇴 이후로 이연시켰기 때문이다. 비록 현재의 명목소득은 적을지라도 더 오래 일할 수 있고 은퇴 이후에도 소득이 지속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인생의 전 기간에 걸쳐 벌어들이는 생애소득은 훨씬 높을 수 있다. 
 

가정의 재무관리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바로 이 생애소득이다. 일정정도의 소득이 평생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돈 걱정도 훨씬 줄고 돈 관리도 수월해진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교사란 직업은 재무관리 측면에서 큰 장점과 관리가 용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재의 명목 소득과 자산 규모에 대한 상대적인 박탈감만 잘 관리한다면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셈이다.    
 

현재의 상대적인 박탈감 때문에 미래의 안정을 망쳐버린 안타까운 상담 사례로 글을 마무리하겠다. 
 

 

사립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사례자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막연히 외국에 나가 공부하고 싶다는 아들을 조기유학 보냈다. 자녀가 한명 뿐인데다가 학교 문제로 자꾸 갈등을 빚는 아내와 아들의 관계도 걱정스럽고 주변에 조기유학을 보내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체면이 있다 보니 아내와 본인의 품위유지비도 꽤 필요했다.

 

식구가 적으니 생활비가 많이 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크게 돈 관리에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카드 한도는 넉넉했고, 어느 은행이건 쉽게 돈을 빌려줬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많이 쓴다거나 사치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주위에는 늘 나보다 더 많이 쓰고도 잘사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았다. 어느새 월급의 대부분은 빚 갚는 데 쓰이고, 여러 장의 카드가 아니면 생활이 유지되지 않았다. 학교를 마친 아들은 병역을 연기하기 위해 귀국해 다시 대학원에 입학했고 당분간 학비며 생활비를 계속 더 지원해야만 한다. 이미 늘어나버린 소비 수준을 줄이기 어렵고, 체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써야하는 것도 많다.  
 

결국 사례자는 집을 정리해 빚을 줄이고, 상환 기간을 늘려 장기간에 걸쳐 나눠 갚는 걸로 채무를 조정했다. 앞으로 자신의 노후 소득 대부분을 빚을 갚는데 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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