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들의 가격인하 전쟁에 세간이 시끄럽다. 저마다 앞 다퉈 최저가를 외치는 모습에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가계가 넉넉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런 가격 전쟁 속에서 대형마트를 이용하고 있음에도 살림살이는 별반 나아지는 게 없다는 것이다. 정말 대형마트 물건이 싸긴 싼 것일까?
소리만 요란한 가격전쟁 지난 3월부터 대형마트들의 가격인하 전쟁이 한창이다. 상대 업체가 고시한 가격보다 10원이라도 더 싸게 팔겠다고 서로 나서는 통에 10원 전쟁이라는 말까지 들린다. 가격인하를 통해 저렴한 가격에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소비자들로서는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석연치 않다. 값을 크게 내렸다는 할인품목은 마트에서 판매하는 7만 여 개의 제품 중에 겨우 1~20개 정도이다. 극히 일부품목만 인하를 한 것임에도 대형마트의 가격인하에 대한 생색내기로 인해 소비자들에게는 전체적으로 가격을 내린 것처럼 비춰진다. 게다가 가격을 내렸다는 상품은 이미 품절상태인 경우가 많고 재래시장보다도 비싸기 일쑤다. 이런 눈속임으로 인해 대형마트의 매출은 이미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 정도 증가한 상태다. 결국 값을 내렸다는 대형마트를 찾은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가격을 인하하지 않은 상품을 구매한 결과 대형마트만 돈 벌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대형마트, 정말 싸게 파는 것 맞아? 사람들이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이유는 편리하고 물건 값이 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편리한 것은 몰라도 값이 싸다는 것은 한 번 되짚어 봐야 한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물건들이 동네 슈퍼나 재래시장보다 싸지 않다는 것은 소비자단체나 각종 미디어의 고발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묶음으로 파는 치약, 과자, 식용유 등은 일반슈퍼에서 판매하는 제품보다 용량이 적다. 애초부터 할인점용 제품으로 싸게 만들어 놓고 ‘초특가’ 등의 문구를 붙여놓고 마치 일반제품보다 싼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행사상품이라며 특별히 할인해서 판매한다는 상품들도 마찬가지다. 행사상품 단골메뉴인 계란은 평소에도 늘 할인판매를 해오던 것이다. ‘1+1’으로 팔리는 식품은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제품이 많다. 또 우유는 사람들이 평소에 잘 찾지 않는 2000㎖ 이상 대용량 제품만 싸게 판다. 원래 할인행사를 했거나 잘 안 팔리는 상품들을 중심으로 행사상품이 구성이 되는 것이다. 자체 조달을 통해서 질 좋고 저렴한 상품을 공급한다는 PB상품에서도 마트의 상술은 그대로 드러난다. 흰 우유에는 원유의 등급이 적혀있지 않고, 바나나 우유는 원유의 함량 자체가 적다. 소시지는 어육함량이 적고 햄은 돼지고기 함량이 적고 대신에 닭고기가 들어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그대로 딱 들어맞는 형국이다. 이래서는 굳이 자동차 기름 값 들여가면서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매장 곳곳 숨은 장치가 지름신 부른다 대형마트 1층에서 화장실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푸드코트나 문화시설 등도 항상 매장 위쪽에 있다. 위로 올라간 사람은 다시 내려오기 마련이고 엘리베이터를 적게 설치해놓으면 기다리는 것이 귀찮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게 된다. 내려오는 길에 자연히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과 마주치게 되고 필요한 물건들을 떠올린다. 그렇게 해서 점점 매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창문도 없고 시계도 없는 마트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핑을 하게 된다. 유행하는 상품은 항상 눈높이에 진열되어 있기에 쉽게 손이 간다. 1+1 두부와 만두, 반 값 할인, 오늘의 기획상품, 한정세일 상품 등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카트를 한 가득 채우고 계산대 앞에 서면 3개 묶음 과자봉지와 껌이나 건전지 등이 눈에 보인다. 과자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므로 거의 습관적으로 카트에 넣는다. 계산대에서 차례를 기다리다보면 눈은 계속 껌과 건전지를 쳐다보게 된다. 껌은 왠지 차 안에 두면 좋을 것 같고 건전지도 어차피 쓰게 될 물건이므로 하나 집어 든다. 그래서 대형마트만 다녀오면 장바구니에서 생각지도 못 한 물건들이 술술 나온다. 어느덧 주방에는 1+1으로 산 주방세제가 줄을 서 있고 냉장고에도 역시 1+1 두부, 고추장, 만두 등이 가득 차 있다. 욕실에는 1년은 두고 쓸 만큼의 치약과 칫솔이 놓여있다. 라면이 붙어있는 소주나 맥주를 사면서도 라면은 꼭 묶음에 보너스까지 추가된 제품을 산다. 평소에는 껌을 잘 안 씹는 사람도 차만 타면 껌을 씹는다. 집에 있는 건전지는 여기저기 굴러다니다가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살 때는 늘 묶음으로 산다.
인간의 무의식을 조종하는 대형마트의 뉴로마케팅 오리콤 브랜드전략 연구소에서 작년 11월 발표한 <소통의 네비게이션, 뉴로마케팅>이라는 보고서에는 뇌과학을 이용해 소비자들의 무의식에 침투하는 뉴로마케팅을 소개하고 있다. 대형마트 역시 이런 뉴로마케팅을 통해서 소비자들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동선과 시선은 무의식적으로 오른쪽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오른쪽에는 대형마트의 주력제품들이 진열이 된다고 한다. 눈높이에는 마진이 높은 제품들을 진열하고 초특가 표시는 빨간색으로 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세일 같은 단순한 문구보다는 ‘한정 판매’나 ‘오늘만 이 가격’, ‘1+1’ 등의 조건을 달아서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하고 주부들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느린 템포의 음악을 틀어 쇼핑을 느긋하게 즐기도록 한다. 대형마트는 이렇듯 우리 무의식에 대고 소비를 호소한다. 즉, 대형마트에서 만나게 되는 지름신은 무의식의 영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편리해서 이용하는 마트이지만 이런 편리함이 사실은 나를 위한 편리함이라기보다는 나의 무의식을 조종하기 위한, 지갑을 향한 편리함이었던 것이다.
대형마트의 진열효과 30%, 끊으면 생활비 30% 절약 대형마트에서는 진열을 잘 하는 것만으로도 30%의 매출증대가 이뤄진다고 한다. 이 말은 뒤집어보면 대형마트를 끊는 것만으로도 30% 이상의 식비와 생활용품 등의 생활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뿐만 아니라 대형마트를 다녀오는 기름 값부터 가득 채워 넣는 냉장고로 인해 추가로 발생하는 전기요금과 버려지는 음식쓰레기로 인한 쓰레기 봉투비용까지 고려하면 대형마트를 끊음으로써 얻게 되는 경제적인 이익은 생각보다 크다. 비단 돈 뿐만이 아니다. 한가한 주말 오후를 얻을 수 있고 줄어든 생활비를 가지고 문화생활을 즐기거나 미래를 위한 통장을 준비할 수 있으니 삶의 질도 훨씬 높아지게 된다. 대형마트를 끊어보면 알 수 있는 것이 무겁게 차로 낑낑대며 실어나르던 물건들을 동네슈퍼에서는 전화 한 통이면 집 까지 배달을 해주고, 냉동실이 비어있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더라는 것이다. 대형마트가 아니더라도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은 주변에 많다. 다만 대형마트처럼 한 곳에서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대량으로 구매할 수 없을 뿐이다. 값이 싸지도 않은 곳에서 내 무의식까지 지배당하면서까지 굳이 마트를 이용해야할까? | joy2jo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