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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에 등장하는 화가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의 주인공 도리안 그레이는 자신의 초상화가 대신 늙어가는 동안 자신은 영원한 젊음과 미를 유지하려고 하는 미소년이다. 프랑스 루이 16세 시절 마리 앙투아네트의 전속 화가였던 비제 르브룅(1755~1842) 역시 세상에 남겨질 자기 자신의 모습에 많은 신경을 썼다. 그녀는 당시 남자가 절대다수였던 궁중 화가들 속에서 여류 초상화가로서 많은 활동을 했는데 유난히 자신을 모델로 그린 자화상이 많았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녀가 35세 때(1790) 그린 자화상으로 그보다 8년 전에 그린 20대의 자화상보다 오히려 꽃망울이 피어나는 순수한 아가씨로 표현했다.
자신 역시 그 시대의 재색을 겸비한 인물이었지만 궁중에서 만난 최상류층에 비해 자신의 외형적인 아름다움이 서서히 저물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반영해 스스로를 다소 이상화해서 그린 것으로 보인다. 평생 아도니스의 모습으로 남기를 바랐던 도리안 그레이처럼 그녀 역시 자신보다는 차라리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모습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그보다 한 세기 전 스페인에서 필립 4세의 궁중화가로 많은 족적을 남긴 벨라스케스(1599∼1660)는 명작 ‘시녀들’에서 자신의 모습을 단독 자화상이 아닌 집단 초상화의 형태로 화폭에 담았다.
이 그림은 1985년 예술가와 비평가들이 뽑은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선정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 작품에서 예술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의 진보성 때문이다.
사실 이 그림 속의 상황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일단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 가운데에는 훗날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결혼한 다섯 살의 마르가리타-테레사 공주가 두 시녀들의 시중을 받고 있고, 오른쪽에 개가 한 마리, 난쟁이, 소년 어릿광대가 있으며 그 뒤에는 나이든 남녀 시종과 문을 나가는 또 다른 남자 시종이 있다. 배경으로 루벤스 풍의 그림들이 어둠 속에 묻힌 가운데 왼편에 붓을 든 사람은 벨라스케스이고 공주의 부모인 필립 4세와 마리아나 왕비는 뒤편에 거울을 통해 보이는 등 모두 12개의 오브제가 저마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그림 속의 화가는 뒤편의 거울 속에 비친 왕과 왕비를 그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에 거울이 있다면 그것에 비친 공주나 의외로 화가 자신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이 실제상황이 아니라 화가의 상상 속에 배치된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다의적이며 애매모호한 해석이 가능한 상황 속에 화가 자신을 슬쩍 끼워 넣음으로써 벨라스케스는 이전 시대와는 구별되는 푸코가 언급한 다의성, 자유, 불완전성이라는 근대성의 원리로 예술가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벨라스케스는 당시 유행했던 우화적 상징을 남발하는 과장된 바로크 스타일과 비교되는 자연 그 자체의 모습을 존중하면서 성자나 신화 속의 인물들까지도 범속한 자연인 그대로의 인간으로 묘사하는 것을 즐겼다. 그의 이러한 시각적 사실주의는 훗날 아카데믹한 규범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했던 고야를 비롯하여 19세기 인상파 화가들로 이어졌다.
특히 그림의 윤곽선 대신 물감의 얼룩으로 빛과 색채표현을 구사하는 그의 색채분할묘법은 인상파의 점묘화법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궁극적으로 그가 추구한 것은 전통이라는 틀 안에 갇히기보다 화가로서의 그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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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손드하임의
­­<일요일 공원에서 조지와 함께>

1984년, 점묘화법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신인상주의 화가 조르쥬 쇠라(George Seurat 1859∼1891)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이 등장했다.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의 작가 겸 연출자인 제임스 라핀과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은 <일요일 공원에서 조지와 함께>(Sunday in the Park with George)를 통해 조르쥬 쇠라의 예술혼과 그가 추구했던 그림에 대한 생각을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상과 결합한 걸작을 만들어 냈는데, 이 작품은 그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크게 두 개의 축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훗날 쇠라의 대표작이 된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에 온통 집중하느라 친구는 물론 연인마저 잃어버린 외로운 예술가로서의 운명, 그리고 그 예술가를 사랑하면서도 떠나야 하는 여인과의 안타까운 로맨스다.
이 작품은 창작자인 제임스 라핀과 스티븐 손드하임 자신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스티븐 손드하임은 뮤지컬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창작자라는 평을 들어왔지만 그 예술적 성취도에 비해 늘 흥행은 부진하고 그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는 평가를 들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1막에서 쇠라의 화상(畵商)이 그가 대중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한탄하고 선배인 줄스 부부는 그의 그림에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인생이 담겨 있질 않다며 비웃는 장면은 마치 손드하임이 뮤지컬 작곡가와 작가 콤비의 성장기를 역순으로 다룬 전작 ‘아름다운 시절’(Merrily We Roll Along, 1981)의 실패 이후 들었던 비판과도 같다.
1막의 주제는 세상 사람들이 당장 인정해 주지 않는다 해도 예술가로서 자신의 원하는 길을 고집스럽게 가겠다는 애틋한 희망사항이다.
2막에서는 배경이 현대로 바뀌어 그의 증손자인 미국인 조지가 그의 피를 이어받은 비디오 아티스트로 나온다. 1막의 조지와 같은 배우가 연기하는 미국인 조지는 고급 화랑에서 리셉션에 온 손님들을 접대하는 상황에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인사를 다녀야 한다. 게다가 그의 예술은 이러한 접대가 없으면 지속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엔지니어가 없으면 작업이 불가능하다.
전혀 다른 두 시대와 세대를 하나로 이어주는 인물은 쇠라의 모델이자 연인이며 그 이름-닷(Dot, 점)-에서부터 그의 전부이기를 원했던 여인이다. 하지만 쇠라의 점묘화는 하나의 점으로만 이루어지지 않기에 그녀는 그저 쇠라의 인생에서 한 부분일 뿐이다. 그녀는 1막에서 쇠라를 떠났다가 2막에서 자신의 손자일지도 모르는 미국인 조지에게 환영으로 나타난다. 예술가로서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은 못하고 늘 주저하는 증손자 조지에게 닷은 150년 전의 쇠라가 그랬듯이 계속 앞으로 나가라며 독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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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뮤지컬
<구스타프 클림트>


화가를 뮤지컬의 주인공으로 끌어올린 또 다른 작품이 있다. 2009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서남쪽 구텐슈타인에 위치한 천막극장(Theaterzelt)에서 세계 초연을 가진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이다.
관능적인 여성의 육체를 주제로 많은 걸작을 남겼고 우리나라에서도 특별전이 열리기도 한 바로 그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 클림트의 생애를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대중성과 혁신성 사이에서 늘 고민하는 예술가의 삶에 대해 진지하고 솔직한 태도를 견지한 보기 드문 뮤지컬이다. 천막극장의 여건상 화려하고 정교한 무대 메커니즘으로 그의 예술세계를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스크린과 세트를 겸하는 방풍형 미닫이 세트에 다양한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그의 다양한 작품을 소개했다.
유럽 뮤지컬에서는 추상적이고도 철학적인 개념을 물화(物化)시킨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가령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에서는 ‘죽음’이라는 캐릭터가 극의 초반부터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변을 맴돈다.
두 사람이 죽음으로서 생을 마감하는 스토리 진행에 있어서 복선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댄서로서의 기능도 담당한다. <구스타프 클림트>에는 클림트의 천재적인 영감을 대변하는 ‘천재’(Genius)라는 캐릭터가 있다.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의상을 입은 여배우가 연기하는 ‘천재’가 의미하는 것은 명료하다. 예술가가 부지불식간에 자신도 깜짝 놀랄만한 성취를 이루어 낼 때 흔히 사용하는 표현인 ‘그 분이 오셨다’라고 말할 때의 바로 ‘그분’이 뜻하는 불가사의한 힘이다.
흥행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뮤지컬에서 화가나 작가 등의 고뇌에 찬 예술가의 모습을 전면에 내세우는 작품은 사실 수적으로도 많지 않고 관객이 많이 들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예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예술가의 천재성을 무대에서 어떻게 표현하는지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사실 그러한 무대에서 그러한 작품을 빚어내는 사람들 역시 훌륭한 예술가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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