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산폭발이 빗은 오름과 화구호제주도 사람들은 한라산의 품에서 태어나 오름에 기대어 살다가 오름의 자락에 묻혀 삶을 마감한다. 오름이란 한라산을 기점으로 그 언저리에 만들어진 기생화산을 말하는데, 작은 산이란 의미이다. 오름의 대부분은 화산쇄설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떤 것은 작은 분화구를 가진다. 분화구는 화산가스, 용암, 화산쇄설물을 분출했던 화구로서, 만들어진 원인에 따라 분석구(스코리아구), 수중화산(응회구, 응회환, 마르), 용암원정구로 나눈다. 분석구는 335개(91%), 수중화산은 24개, 용암원정구는 9개로 총 368개의 오름이 있다. 마르에 속하는 대표적인 화산은 산굼부리이고, 용암원정구의 대표적인 것은 산방산이다.
형태로 분화구를 나누면, 말굽형화구, 원형화구, 원추형화구, 복합형화구 등 4가지가 있다. 전체 368개 중 말굽형화구가 174개(47%), 원추형화구가 102개(28%), 원형화구 53개(14%), 복합형화구가 39개(11%) 있다. 원형화구 중에서 산정상부에 화구를 가지는 것은 39개이다.
화구호는 원형화구이면서 물이 고인 오름을 말한다. 화구호에는 백록담(한라산은 오름이 아님), 물장오리오름, 어승생악, 원당봉, 금악, 세미소, 물찻오름, 사라오름, 물영아리오름, 동수악 등 10개가 있다. 이 중에서 물이 가득 차 있어 가장 보기 좋은 오름은 물찻오름이고, 인공적으로 호수를 조성해 놓은 곳은 원당봉과 세미소이며, 가끔씩 물이 마르는 것은 어승생악, 동수악, 금악이다.
특히 사계절 물이 차 있는 물찻오름을 찾아가는 길은 너무나 조용하고 운치 있는 아름다운 숲속 길로 11번국도(일명 516도로)를 타고 서귀포방향으로 가다가 삼나무 가로수가 하늘을 찌르는 1112번 도로로 접어든다. 그리고 이 길을 약 1킬로미터 달리면 오른쪽 숲길 사이에 시멘트로 포장된 좁은 길이 나오는데, 이 길로 우회전하여 물찻오름을 새겨둔 바위 표지석까지는 약 4.5킬로미터이다.
몇 개의 작은 하천을 건너고 꼬불꼬불한 숲길을 지나면 물찻오름을 가리키는 화산석으로 만든 표지석을 만난다. 여기서 차를 내려 물찻오름을 오르는 길은 낮에도 햇살이 잘 내리지 않고 비가 오면 끈적끈적하게 변하는 산길이다. 원시림을 헤치고 가다보면 오름의 등성이에 화산탄으로 만든 석탑과 주변에 널린 화산탄을 만날 수 있다. 가쁜 숨을 몰아 내쉬고 오름에 올라서면 물이 가득한 호수와 낙엽림으로 뒤 덮인 물찻오름을 만날 수 있다.
물찻오름물찻오름의 화산탄으로 만든 탑물 속에는 붕어가 살고 가끔 강태공들이 낚시를 하는 이곳은 분화구의 둘레 모양이 잣(城)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령스러운 산이라 검은오름으로도 불리는 물찻오름은 높이 717미터이나, 분화구의 실제 높이는 150미터이다. 분화구의 둘레는 1킬로미터이고, 물의 깊이는 약 15미터로 추정되는데, 물가에 앉으면 쪽빛 하늘과 호수의 물 및 초록의 산림이 조화를 이루어 무릉도원에 앉은 기분이다.
육지와 수상 생태계 젓줄 화구습지
하늘을 향해 넓게 가슴을 펼친 분화구는 하늘이 울면 물이 고인다. 또 어떤 오름은 스스로 물을 뿜어내는 샘(제주도어로는 ‘세미’)을 가지는데, 오름의 이름 속에 물, 수, 세미가 들어 있으며, 세미오름, 절물오름, 원수악 등 37개가 있다. 대부분의 분화구는 비가 오는 시절에만 물이 고이지만, 어떤 분화구는 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 호수를 가진다.
이렇게 사계절 물을 품어 다양한 생물의 서식처를 제공하는 화구호는 10개 정도이지만, 호수 주변에 넓은 화구습지를 만드는 곳은 물영아리오름과 물장오리오름 뿐이다. 대부분의 화구호가 화구습지를 가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든 화구호가 비가 내리는 시기에는 화구습지를 만든다. 마치 사막에서 비가 오면 많은 꽃들이 일시에 꽃을 피우듯이, 빗물이 고인 화구호에는 다양한 습지식물들이 싹을 틔워 파란 생명들이 파란 융단을 만든다. 또 제주도의 습지에는 화구호, 갯벌, 연못, 하천에 만들어진 습지 외에도 산지습지가 있다. 그곳이 한라산의 언저리에 만들어진 1100고지습지로서 99번국도(일명 518도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습지보호지역인 물영아리오름의 생물가족은 식물 210종류를 포함하여 다양하다. 분화구 바깥쪽의 산림에는 활엽수가 주종을 이루면서 식재림인 삼나무와 곰솔이, 안쪽에는 산딸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참식나무 등의 활엽수가 자라고 있다. 또 산림과 습지 사이의 경계점에는 키가 작은 좀찔레와 상산이 환상으로 습지를 감싸고 있다.

분화구 안쪽에는 소규모의 습지식생이 환상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가장자리에는 고마리 군락이 10미터 폭으로, 그 안쪽에는 보풀과 물고추나물 군락이 10미터 폭으로 나타난다. 중심부에는 세모고랭이 군락이 40미터 폭으로 동심원을 그리고 있다. 습지의 가장 중심부에는 개방수면이 자리잡고 있는데, 몇 개로 나누어져 있고 드물게 좀어리연꽃이 나타나는 애기마름 군락이 나타난다. 그 외에도 물장군이 포함된 수서곤충 18종류가 나타났는데, 물장군은 수서곤충 중 다른 동물의 체액을 뽑아먹는 폭군이면서 환경부 지정보호 동물이다. 또 제주도에만 나타나는 비바리뱀을 비롯하여 도롱뇽, 맹꽁이, 대륙유혈목이 등도 조사되었다.
한라산 중턱에 위치한 1100고지습지에는 제주달구지풀, 금방망이, 물부추 등을 포함한 207종의 식물이 나타났고, 149종류의 곤충이 조사되었다. 한라산 백록담에는 식물 163종, 곤충류 214종류가 조사되었다. 이 외에도 제주도의 화구습지에는 순채, 이삭물수세미, 둥근잎택사, 통발 등이 살고 있다.
화구습지는 제주도에만 있는 습지로서 그 자체로 희귀한 자연유산이며 습지는 육지와 수생 생태계의 전이대로서 각종 곤충이나 어류 및 조류의 서식처와 산란 장소로서 사용된다. 그 뿐만 아니라 여러 생물들이 사는 생태계의 보고로서 식수를 공급하는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심미안적인 마음과 눈을 뜨게 해 준다.
화구습지는 오름의 정상에 고립된 생태 공간으로 희귀동식물인 물장군, 물여뀌, 물고추나물 등에 삶의 터전을 제공하고 있다. 예전부터 목장으로 이용된 화구호는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는 가축들에게 식수를 공급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적응되고 진화되어 온 제주달구지풀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생물들이 살고 있다.
물 있는 영산 물영아리와 물장오리오름
물영아리오름은 전국에서 최초로 습지보호지역으로 2000년에 지정되었다. 남제주군 남원읍 수망리 수령산(504미터) 일대 약 30만㎡에 지정되었다. 물영아리는 수령을 의미하는데, 물이 있는 영산을 뜻한다. 이곳은 제주도의 기생화산 및 온대 산지습지의 전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지형과 지질 및 경관적으로 우수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각종 희귀한 습지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으며 생태적으로 우수한 지역이다.
물영아리오름을 찾아가는 길은 11번국도를 가다가 1112번지방도로 가서, 1118번지방도로(일명 남조로) 옆의 남원읍충혼묘지에 차를 주차하고, 길을 건너 목장의 진입로로 들어간다. 목장의 철문을 넘고 철조망을 지나 북쪽의 목장으로 접어든다.
소떼와 소똥으로 이루어진 지뢰밭을 지나면 수령산 아래에 세워져 있는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잠시 숨을 고fms 다음 탐방로가 만들어진 산길을 오른다. 넓게 펼쳐진 운무가 실루엣처럼 흔들리는 탐방로를 지나면, 드디어 분화구의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안개가 흐릿하게 맺힌 분화구 속에는 더욱 신비로움이 싹튼다. 호수에 도착하면 호수의 남단에 탐방로가 설치되어 있고, 운무 속에서 보이는 습지식물은 더 푸르게 보인다.
물장오리오름은 예전부터 한라산, 오백나한과 더불어 제주사람들이 신성시 해온 3대 성산 중 하나이다. 제주도 개벽 전설의 여신인 설문대할망의 영혼이 깃든 곳으로 알려진 곳도 이곳이다. 이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며칠 전부터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해야지, 전날 술을 마셨거나 몸이 깨끗하지 못하면 짙은 안개가 끼어 산정의 호수가 모습을 감춰버린다고 한다. 물장오리오름은 한라산국립공원 지역 안에 있고, 오름의 높이는 937미터이다. 화구의 바깥 둘레는 1.5킬로미터이고, 화구호의 둘레는 약 400미터 정도이다.
수심은 헤아릴 수 없이 깊다고 하여 ‘창(밑) 터진 물’이라고 하는데, 거신 설문대할망이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물장오리에서 올은 ‘산’을 의미하고, 물장오리 옆에는 세 오름이 비슷하게 분포하므로 ‘둘러서 있는 오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장오리오름을 찾아가는 길은 11번국도를 가다가 제주시와 북제주군 사이에 위치한 물장올교(물장오리다리) 옆에 남아있는 구도로로 가야 한다. 구도로의 입구는 차단막이 만들어져 있고, 이곳을 지나 한적한 도로를 300미터 정도 올라가다 철조망을 지나면 등산로로 접어든다. 설치된 철조망을 지나 울창한 숲길로 들어서면, 두 갈래의 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화구호까지 40분이 걸린다.
오름의 동쪽으로 물이 흘려나가는 수로가 있고, 화구호의 주변에는 습지대가 형성되어 큰고랭이, 세모고랭이, 골풀 등 여러 습지식물이 자라고 있다. 분화구의 안에는 천연림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고, 그 아래에는 박새와 관중 및 금새우난이 가득 자라고 있다. 그리고 습기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이곳에는 노루귀버섯과 달걀버섯을 비롯한 다양한 버섯들이 무리지어 자라고 있다. 또 역사의 흔적으로서 예전에 있었던 사찰의 흔적과 4․3사건 당시에 만든 도당본부와 유격훈련학교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제주사람과 오름에 깃든 전설제주도를 개벽시킨 설문대할망이 백록담의 정상부를 주먹으로 치고 나니 떨어져 나간 부분이 멈추어 산방산이 되었고, 치마폭에 품고 있던 흙을 조금씩 흘리면서 오름을 만들었고, 오름의 봉우리가 너무 뾰족하여 손으로 봉우리를 조금씩 집어내니 움푹한 분화구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 이처럼 제주도는 전설과 이야기의 섬이다. 그래서 각 오름마다 사람이나 동물, 나무, 심지어는 선녀나 천상의 신들과 인연이 있다는 이야기 등 다양한 문화의 형태도 전해지고 있다.
제주도민들에게 있어 오름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는 곳이며, 태어나서 육신을 묻는 곳으로서 결국은 돌아가야 되는 곳이며, 하나하나가 생명을 가진 귀한 곳이며, 문화적인 의미를 가지는 곳이다. 이런 오름에 물이 고여 있으면 더 높은 생명력을 보인다. 이처럼 제주도민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오름은 그 자체가 귀중한 자연유산이다.
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의해 훼손된 한라산 등산로는 몇 년의 휴식년을 지낸 후에도 아직까지 처음의 모습으로 회복되지 않고 있다.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제주도에서 귀하고 하나 밖에 없는 자연습지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