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역사드라마의 진화는 끝없는 것일까. 얼마 전 종영한 역사드라마 ‘추노’를 보면서 줄기차게 갖던 생각이다. ‘추노’ 최종회 시청률은 32%. 1월 6일 첫 방송에서 22.9%의 시청률로 대박을 예고한 이래 내내 유지한 30%대 시청률이다. KBS가 ‘아이리스’에 이어 두 달 남짓 시청자들에게 행복을 선사한 셈이다.
우선 ‘추노’는 사상 최초의 ‘천민사극’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금요일만 빼고 방송되는 사극의 전성시대라지만, ‘추노’는 드라마가 진화해야 성공할 수 있음을 확실히 보여 주었다. 노비의 세계가 그것이다. 내시나 백정 주인공의 역사드라마가 있긴 했지만, 노비는 ‘추노’가 처음이다.
그러나 단순히 노비가 처음이라는 이유만으로 ‘추노’의 대박 설명이 충족되는 건 아니다. 80% 이상의 야외촬영과 기존 HD디지털방식보다 4배이상 해상도가 선명한 ‘레드원’ 카메라를 통한 영화 화면 같은 영상미도 한몫했다. 이를테면 파격적인 소재와 첨단적 기기의 조화가 많은 이들의 눈길을 꽉 붙들어 맨 셈이다.
‘위정자와 피지배계층의 이원화된 세계를 교차시키면서 보여준 칼쌈과 총질, 의리와 사랑, 비정과 온정 등 이야깃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벼슬아치들의 악행과 권모술수를 응징하거나 불신하는 추노꾼 대길(장혁)과 추노당한 업복(공형진)의 종횡무진 활약은 보통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을 법하다.
그뿐이 아니다. ‘추노’는 주·조연 배우들의 다양한 캐릭터 형상화와 함께 ‘대사의 힘’을 보여준 역사드라마이기도 하다. 그냥 육담(肉談)이나 속어가 아니다. 예컨대 “언 놈이 지랄 염병을 혀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2월 18일 방송, 대길), “세상에 매여 있는 것들은 그게 다 노비란 말이지”(3월 25일 방송, 대길) 등의 함축적 메시지는 ‘추노’가 단순 오락사극이 아님을 웅변한다.
그렇다고 ‘추노’에 대한 불만이나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중반 이후 잦아들긴 했지만, '선정적' 장면은 가장 먼저 짚어볼 대목이다. 대길이 양반 자제이던 시절 집 마당에서 언년(이다해)과의 키스 신(1월 7일 방송)은 극중 리얼리티에 치명적 흠이었다. 그것을 회상 신으로 2~3회 더 보여줄 때는 다소 역겹기까지 했다.
큰주모, 작은주모, 화백, 설화 등 조연까지의 선정적 모습은 대길과 언년, 언년과 송태하(오지호)가 서로 얽히는 운명적 사랑의 감동을 약화시키는 셈이 되었다. 선정성 논란은 이다해 상반신 노출에서만 따질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선정성은 언년과 태하를 포함한 조연들의 ‘연인화’가 시도 때도 없이 그려진(언년 부상 치료, 원손 모시기 등 절박한 상황) 것이라 할 수 있다.
분장에서도 세심함이라는 과제를 남겼다. 특히 노비 시절 언년이나 초복이는 너무 말갛고 해사한 얼굴이었다. 사당패 출신 설화도 노상 추노꾼과 함께 하면서도 ‘천 것’같지 않은 모습으로 일관했다. 타고난 미모야 귀천이 따로 없겠지만, 360여 년 전(시대적 배경이 1648년 경이다.) 모습과 보다 가까워지려는 제작진 자세는 항상 필수이다.
살아 있는 자신의 아버지를 ‘아버님’이라 부르며 수시로 죽이는(‘아버님’은 죽은 내 아버지나 살아있는 남의 아버지, 시아버지를 일컫는다) 오류도 눈살을 찌뿌리게 했다. 시청자들은 목 바로 아래 있던 언년의 흉터가 다음 화면에서 오른쪽에 있는 (1월 27일 방송) ‘옥에 티’도 용서하지 않음을 명심했으면 한다.
아직 확정, 보도된 바는 없지만, 인기드라마 ‘아이리스’가 그렇듯 ‘추노2’에 대한 기대감도 있는 모양이다. 백정의 ‘제중원’에 이어 새로 시작한 ‘동이’의무수리(물 긷는 궁녀) 등 천민의 세계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