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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그 쓸쓸함에 대하여

뜨거운 태양을 이고 우리 일행은 그님이 잠든 곳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하여 도착하니 한낮의 땡볕! 주변에 햇빛을 가릴 곳도 없고 잠시 더위를 식힐 그 무엇도 없다. 오직 저만치 무심하게 서있는 부엉이 바위와 또 저어만치 우뚝 솟아있는 사자 바위가 오고가는 사람들을 무심히 내려다 볼 뿐이다.

우리를 기다리거나 아는 사람도 없는 그 곳에서 갑자기 가슴이 찡! 하며 그 무엇인가가 울컥 솟는다. 역사의 한 장면을 그릴 수 있는 386세대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서일까?! 그 작은 묘소가 스산한 가을밤 부엉이를 부르게 하는 그 쓸쓸함에 대하여......

방학이 끝나가는 이 순간을 뭔가 의미있게 보내야 하는 의무감으로 내 자신을 채찍질하고자 찾은 ‘봉하마을’은 그동안 언론을 통해 본 그 느낌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보는 관점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냥 섭섭함, 무거움, 우울함이 밀려온다.

그곳은 순박함이 묻어나는 우리 농촌의 정서를 고스란히 갖고 있어 바로 정겨운 투명수채화를 보는 듯 했다. 지극히 평범함에......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미안함이 앞서는 그 집, 작은 묘의 뒤로 펼쳐지는 감나무 밭, 깊은 산골의 골바람, 수려하거나 화려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꼭 나의 어릴적 우리 동네 뒷산을 닮은 산을 오르며, 문득 떠오르는 학창시절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불어(프랑스어)를 가르치시던 젊은 20대 선생님을 어느날 갑자기 더 이상 학교에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여린 소녀들은 남몰래 가슴앓이를 했었다. 얼마 후에 요양원에 계신다는 뒷얘기가 있었지만... 그님은 지금쯤 어디에 계신 걸까?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 추억처럼 담담히 그 상황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서글퍼진다.

지나온 날들의 흔적은 어떤 이유로든 잊혀지게 마련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바람처럼 그냥 나도 따라 지나치면 되는 것이므로... 그리고 삶이란 그래야만 지탱한다고 스스로 말한다. 요즘 흔히 말하는 대중화된 맞춤형 인간이다. 그래도 잊혀지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인생의 지침이 되는 그 무엇! ‘올바로 세상을 볼 줄 아는 마음의 눈’만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스스로 지녀야할 책임과 의무라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저마다 자신만의 인생관이 있고 삶의 이야기가 다르기도 하겠지만 언제 어디서든 꽃을 피울 수 있도록 거름이 되어주는 삶이 가장 값진 삶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초등학교 1학년 국어책에 ‘강아지 똥’이라는 동화가 있다. 누구나 거들떠보지도 않는 강아지 똥이 민들레가 꽃을 피울 수 있도록 거름이 되어주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읽고 자신의 생각을 느낀 대로 말하라고 하면 요즘 아이들은 다양한 자기 의견을 말한다.

“나는 강아지똥이 싫어요. 참새가 쪼아대도 가만히 있잖아요. 왜 참아요?” “저는 강아지똥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엄마한테 혼날거예요.” 참 가슴이 시린다.

이제 기꺼이 강아지똥으로 살고자 하려하니 이미 검은 머리가 반백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오늘은 항상 새로운 날이다. 사자바위에 올라 확 트인 봉하마을을 내려다보노라니 나의 꿈이 되살아나 절로 힘이 솟는 듯 하다.

‘그래, 나는 강아지 똥이야’ ‘나는 바보야’. 지나가는 발길에 채여도, ‘퉤퉤’ 침을 뱉어도 내가 요긴하게 쓰인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잖은가! 그동안 궁금했던 상념들이 걷히고 나니 내려오는 길은 한결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우리는 그곳을 떠나기 전에 ‘찰보리빵’을 샀다. 어릴 때 먹어보았던 보리개떡 맛을 그리며 차에 오르니 온몸이 나른하다. 그 수많은 입줄에 오르내리던 봉하마을이 이번엔 고요한 침묵으로 가슴을 훑어 내린다. 그리고 그 쓸쓸함이 자꾸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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