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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2년 3개월의 외로운 싸움…교총만 제 얘기 들어줬죠”

대법 승소로 명예 회복 길 열린 김영생 부당초 교장

‘한글학습법’ 창안, 장애 학생 교육하다
‘통합교육’ 반대 학부모 민원에 직위해제
소청, 행정소송 등 거쳐 '정직처분 취소'
전북교총·교총 변호사·소송비 전폭 지원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습니다. 교육지원청, 도교육청, 재판부에 저는 잘못이 없다고 수십 차례 항변해도 들어주지 않았죠. 아무 희망이 없었던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 곳이 교총이었습니다. 중대한 교권침해로 보고 도와 저를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했죠. 이제 대법원 판결로 명예를 회복할 길이 열렸지만 제가 가장 바라는 것은 저를 이렇게 만든 학부모들의 진심어린 사과입니다.”

장애학생들을 위해 혁신적인 한글학습법을 지도하던 한 교장이 장애학생들과 같이 공부하는 게 싫다는 학부모의 님비(NIMBY)성 민원으로 직위해제-강등에 이르는 중징계를 받았다. 교원소청심사를 통해 구제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남게 된 ‘정직처분’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녔다. 중징계가 소문나면서 전북교육계와 제자들에게까지 ‘비위’ 교장으로 낙인찍힌 것은 교육자로서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길고 긴 소송 끝에 2월17일 대법원에서 ‘정직처분 취소’ 처분을 받아든 김영생 전북 부당초 교장은 “교원소청심사부터 항소, 행정소송 등 2년 3개월간 11번 법정 출석했던 외로운 싸움의 시간이 떠올라 괴로웠다”고 소회를 밝혔다.

22살에 초임발령을 받아 5학년 담임을 맡았던 김 교장은 한글을 모르던 반의 A군을 가르치다 철저히 실패한 것이 아픔으로 남았다. 지적장애가 있었던 A학생이 4달 동안 ‘아빠’라는 한 단어를 배우다 자퇴해버린 것이다. 이때부터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한글만은 깨우칠까를 연구하다 ‘자음카드 한글학습법’을 창안했다. 자음이 쓰인 카드로 1500자의 한글을 5개월간 집중 교육하면 500권의 책을 읽을 정도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이다.

김 교장의 한글학습법이 입소문 나자 학교로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특히 지능이 낮아 학습이 어렵거나 장애가 있는 학생들에게 효과가 있어 인근 전주부터 멀게는 인천에서까지 학생들이 찾아왔다. 그 덕에 2007년 전교생 20여명의 폐교 직전 학교가 전학 학생들로 100여명이 되면서 폐교를 면했을 정도였다. 그가 카페지기로 있는 ‘자음카드 한글학습’ 다음카페(cafe.daum.net/Hangulsarang)에는 현재 3500여명의 회원이 한글을 배우기 위해 가입해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정기인사로 2011년 9월 김 교장이 인근 B초로 발령이 나면서 시작됐다. 김 교장을 찾아 학생들이 B초로 전학 오는 사태가 빚어졌다. 또 분리교육을 받던 장애학생들이 교육청의 지시로 통합교육을 받게 되면서 이 학생들과 함께 교육받기를 거부한 학부모들이 ‘부적격 교장 퇴출 서명운동’, ‘전교생 등교 거부’ 등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해 민원을 제기, 사안감사 후 직위해제 된 것이다. 김 교장은 “공부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학생들을 교육자로서 내칠 수가 없었다”면서 “그 아이들을 외면했다면 징계를 받지 않고 교장으로 있었다한들 행복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보다 못한 장애학생 학부모를 포함한 300여명이 김 교장을 구명하기 위한 서명운동을 펼쳤고 김 교장도 교원소청심사를 시작으로 명예 회복에 나섰다. 교육부가 소청을 받아들여 2012년 9월 교장으로 복직됐지만 ‘정직처분’이 가슴 속 앙금으로 남았다. 전주지법에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됐고 광주고법 항소도,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도 모두 기각돼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포기하고 싶었지만 ‘정직처분’에 머물기엔 소송비를 지원하고 전폭적으로 도와준 교총에 미안해 대법 상고를 결심했다”면서 “대법원에서 승소한 것은 모두 교총 덕분”이라고 말했다.

학부모 민원에 의한 중대 교권 사건으로 본 교총과 전북교총도 김 교장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전북교총은 현장 진상조사를 통해 사건 경위를 파악하고 임영곤 고문변호사를 연결해 도움을 받도록 했다. 교육청의 무리한 처사에 항의하는 등 전 방위 대응을 펼쳤다. 교총도 교권옹호기금위원회 심사를 거쳐 소송비 300만원을 지원했다. 전북교총 관계자는 “투철한 사명감과 열정으로 교육활동을 해온 교장이 학부모의 악의적인 민원으로 중징계를 받아 교권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과 구제 활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서 “다시는 김 교장과 같은 열정적인 교육자가 정신적인 고통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대법 판결에 따라 징계위를 소집할 예정인 전북도교육청이 내릴 징계 수위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김 교장은 “41년의 교직생활을 명예롭게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훈장도 받을 수 없는 교장이 됐다”면서도 “하지만 교장 7년 반 동안 장애학생들이 한글을 깨우치도록 도운 일은 교육자로서 가장 큰 보람이었고 기쁨이었다”며 후회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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