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임에도 풀리지 않는 겨울이 제 고집대로 빙점의 날씨를 품고 있었다. 교육부 정책의 쟁점이 되었던 교사 정년 단축이 현실로 들어선 삭막함이 교사 정기 이동과 함께 이어지면서 호세의 학교 풍경은 교장, 교감, 교사들이 한꺼번에 바뀌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겹쳐졌다. 승진하여 온 젊은 새 교장은 키가 작고 대추씨같이 작은 눈이 형사처럼 민첩하게 움직이며 교사들의 동태를 재빠르게 간파해낼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부임 인사말에서 교감 시절에 학교를 자주 순시하여 얻어진 쳇바퀴라는 별명이 붙여져 있음을 본인은 모르는 듯, 인생살이 별것 아닌데 감시형으로 학교를 이끌어 간다면 학교장으로서 무능함이 분명하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자율에 맡긴다고 말하여서 그가 달고 온 소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두고 교사들은 어느 쪽이 진실인가를 놓고 가늠해 보기도 했다. 당분간은 혼돈이 이어질 것 같았다. 8월에 정년을 앞두고 있는 교사들은 이런 저런 모습의 세월을 다 겪어 온 탓에 그렇게 하나 이렇게 하나 학교는 여전히 같은 모양새로 굴러 갈 뿐이라고 별 감동 없이 입 속으로 궁시랑거렸다.
“종씨 하는 일이 뭔가?” 진땀을 흘리며 교무실 책상에 엎드려 붓글씨를 쓰고 있는 문현석에게 문호세가 말을 걸었다. “교육부 시대의 새 교육 개혁 방향일세.” “채 소화도 되기 전에 또 바뀌는 교육 개혁이군.” “다 그런 거 아이가, 장관이 바뀌면 따라서 줄줄이 바뀌는 거 어디 한두 번 겪어 본 일 이라고 되씹나?” “그렇다고 정착도 안 된 교육개혁들이 자꾸 바뀌기만 하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까?” “그야 간단하네 새 장단이지. 만약 자네가 새 장관이 되었어도 자네의 생각하고 맞지 않은 것은 빨리 바꾸고 싶어 저것 당장 떼게 하는 소리가 나오게 돼 있어.” “사람 잘못 봤네. 나라면 문현석 비서관 현지로 나가 모든 교사들의 여론을 수렴하여 진정한 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아 오게. 특히 초등 교육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오게 라고 하겠네.” “정말 훌륭한 장관이 여기서 썩고 있다니 아까울 뿐이네.” 현석은 마지막 글씨를 마무리하고 허리를 펴며 말했다. “자네 말 꼬지 말게. 착각은 자유니 내가 장관이 되면 자넬 틀림없이 비서로 쓰겠네.” “비서 말고 교육장 자리를 내주게.” “술 사는 것 봐서.”
둘이 웃지 않고 말하기 때문에 주위에 있던 새로 부임한 교사들의 눈에는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호세는 현석이 교장실에 액자를 걸고 올 동안 기다린 다음 입을 열었다.
“부탁할게 있네. 우리 반에 있던 종석이가 진급하여 자네 반으로 들어가는 영광을 가지게 되었네.” 호세가 주위를 돌아보며 뜸을 들였다. “정확하게 무엇을 부탁하고 싶은가?” “종석이는 정상아가 아니라는 점이지. 아비의 쓸데없는 성병 균이 아이의 뇌에 침입한 것 같아. 발음이 정확하지 못하고 이따금 왜가리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극장에 가기 위해 학교를 줄줄 빼먹지. 영화구경은 그놈의 인생 전부고, 그 애 죄는 아니네. 엄마가 살기 위한 수단으로 돈을 벌 동안 아이는 갈 데가 없기 때문에 극장으로 보낸 것이 아이의 적성과 취미에 맞아떨어진 셈이네. 18번지에서 살고 있으니 환경을 참고하게.”
‘포주의 아들이군.’ 현석은 낮게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종석이를 극장으로 데리고 다니란 말은 아닐 테고.” “내 생각은 자네 같은 페스탈로치 선생에게 맡겨지면 그 아이에게 발전이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네. 그 녀석에게 내가 찾아내지 못한 예술적인 감각이 숨어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찾아내지는 못했네. 중요한 것은 그 애가 학교 생활에서 관심을 가지는 거라곤 남의 주머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뿐이네. 그 분야에선 비상한 솜씨가 그 녀석의 특기이기도 하고. 자넨 말야 제자 양성 방법이 독특한 데가 있고 어떤 문제아도 정상아로 돌리는 비상한 교육자 즉, 페스탈로치라서 내가 믿고 있네.” “페스탈로치는커녕 난 비슷탈로찌도 못되네.” “꼭 같네, 콧구멍 차이만 좀 날 뿐.”
호세의 말에 현석은 쓴웃음 지으며 다 쓴 붓을 빨기 위해 교무실을 나갔다. 갑자기 교무실은 침묵이 감돌았다. 새로 부임한 교사들이 난로불가로 둘러서서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묘한 이질감들이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서로를 알 때가지 붙들고 있을 것이다. 이런 진저리나는 3월의 분위기를 친목회에서 빨리 주관하여 분위기를 바꾸어 놓아야 할 텐데 안내 칠판에는 금일 중 출석부 완료라고만 적혀 있었다. 호세는 다음 선생을 위해 교무실 책상 정리를 깨끗이 한 다음 새 교실로 향했다.
교무실과 1학년 교실 사이의 현관에서 새로 온 젊은 교사가 운동장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저 나이 땐 무엇을 생각할까? 도대체 자신의 20대 교사 생활은 뚜렷하게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에게 말을 걸어 상념을 깨울까 하다가 3층으로 올라갔다. 5학년에서 6학년으로 올라가 같은 학년이 된 박현우가 새 교실의 짐 정리를 하기 위해 구식 난로에 쓰레기를 태우고 있다가 창 위로 얼굴이 솟아오른 호세를 보고는 흐물흐물 웃었다. 호세는 도다의 학부모임을 신고하기 위해 교실로 들어갔다.
“자네 꼭 실성한 사람처럼 보이는군.” “실성할 수밖에 없는 환경 아닙니까? 2000년대를 거창하게 내다보는 시대에 그 동안 거두어들인 교육세를 어디에 감추어 두고 아직도 콧구멍이 더러워지는 이 구식 난로에다 제 인생을 걸고 있으니 말입니다.” “자네 또 지병이 발작이군. 희망을 갖게. 교육부 시대가 시작되었으니 곧 열악한 교육환경들이 청산될 걸세. 대통령이 공약하지 않았나? 믿어보세.” “제발 헛 공약이 아니길 바랄 뿐이죠.”
박현우가 쇠꼬챙이로 불을 일구었다. 난로 속에 교육적으로 적용되지 못했던 허울좋은 작년 계획서들이 불꽃 춤을 추며 달아났다. 연구가 타낸 금상만 믿고 담임 장학사가 침 발라 칭찬했던 인성교육 지도서도 현실에 맞지 않은 이유 때문에 불쏘시개 감으로 전락되어 마지막 불꽃으로 꼬리를 감추었다.
“선배님은 제발 이따위 불쏘시개 감을 연구하지는 마십쇼. 연구한답시고 아이들 자습시키고 남의 나라 연구 서적 베낀 것이 어떻게 금상이 될 수 있습니까? 도대체 심사관들은 얼마나 외국 서적을 보지 않았으면 금상으로 통과시킵니까? 남의 연구를 도용하여 짜깁기만 잘하면 되는 현실은 개도 웃을 일입니다. 더 웃기는 일을 그렇게 해서 자기 것인 양 잘난 척하는 작자들도 한심하구요. 그 점수를 모아 일찍 교장이 된 사람들이 목에 힘주는 것이 보기 싫어 빨리 손 털고 나가야겠습니다.” “박 선생, 세상을 네모나게만 보지 말게. 둥글게 보는 습성을 길들여 보게. 장단점은 어디나 있기 마련인 것을 쉽게 분노하지 말게. 학교를 너무 날카롭게 바라보다 보면 자네 자신을 스스로 괴롭히는 꼴이 될 수 있으니 그냥 좋게 넘기게.” “선배님, 기성 세대들의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삶의 방법도 민주시민으로서 자격 상실입니다. 눈치만 보는 세대니까요.” “듣고 보니 그렇긴 허군. 그러나 자네들만의 세대가 모인 사회가 있다면 인정도 피도 없어 사람이 살 것 같지가 않네. 지금 생각한 것인데 자네 오늘 이 학교를 그만 둘 수는 없나? 하나밖에 없는 내 귀한 아들이 자네 반으로 들어갔거든 자네의 지병이 내 아들에게 옮겨질까 봐 걱정이 되네. 그 스승 속에 그 제자가 탄생되니까 난 공부 잘한다고 잘 난 척하는 놈보다 어디서든지 잘 적응하고 겸손하여 사랑받는 인간미가 넘치는 아들을 만들고 싶으니까. 자네처럼 남의 연구물이나 남의 인격에 칼질하는 인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내 아들의 스승으로 모시게 할 수는 없네. 빨리 나가주게.” “우와 이게 웬 횡재입니까? 어쩐지 선배님의 이미지를 닮았다고 생각한 장다리 같은 키큰 놈을 보긴 보았죠. 이거 선배님께 큰소리치며 1년간은 공술을 얻어먹고 나가야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선배님?” “요새 학부형 등을 치면 어떻게 되는지 아나?” “그야 뒤를 돌아보는 거죠. 오늘 당장 한 잔 사셔야지만 아마 그 장다리 놈이 제 구박을 면하게 될 겁니다.” “급하기도 하군.”
호세는 교실로 돌아오며 도다의 담임을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의 박현우나 동갑인 문현석 교사 모두들 호세의 눈으로 볼 때는 인성을 존중한 매력 있는 수업기술로 제자들을 사로잡는 그들은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는 단점은 있지만 가장 정확한 평가의 잣대인 동료 교사의 눈으로 볼 때 교육부의 스타감들이다. 호세는 새로 맡게 된 6학년 5반 교실로 향하면서 종석이의 교실을 넘겨다보았다. 찾아가지 않은 종석이의 가방이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교실은 비어 있었다. 분명 어디선가에서 사업 자금을 마련한 종석이는 담임한테 말도 하지 않고 도망갔을 것이다. 곧 현석은 종석이의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여 그의 특유한 학급 운영 방법으로 종석이를 학교 생활에 의욕을 불어넣어 주리란 것을 생각하며 아이들이 모두 돌아 간 빈 교실로 들어섰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아이들이 앉았었던 책걸상 위로 숨어 있었던 미세한 먼지와 햇빛이 들어와 있었다. 오래간만에 빈 오후가 호세의 마음속으로 가득 차면서 아이들과 나눈 정겨운 대화가 건너 왔다. 치밀한 눈으로 새 담임을 간파하려던 아이들의 눈빛을 집중적으로 받으면서 가능한 같은 학년이 된 아들 도다의 입장에서 들을 수 있는 멋진 아버지와 훌륭한 담임으로 함께 부상할 수 있도록 권위와 품위로 첫인상을 보여 주려고 인상 깊었던 어느 영화의 비슷한 장면으로 음성을 가다듬고 나섰다.
“여러분, 나는 6의5 선장 문호세라고 한다. 같은 배를 탄 선장으로서 손님 여러분은 이 배의 질서와 규칙을 잘 지켜 배가 좌초하지 않고 즐겁고 멋있게 나갈 수 있도록 협조해 주기 바란다.”
계집아이들은 영 맞지 않은 배역에 킥킥거렸고, 사내놈들은 박수를 쳤다. 호세는 목에 힘을 넣고 다시 말했다. “오늘 이 배가 출항하기 전 여러분의 소감과 꿈을 들어보겠다. 아직 이름을 서로 모를 테니까 자기 소개를 먼저 한 다음 이야기해 주기 바란다.”
한 녀석이 멋쩍어하며 나왔다. “저는 5학년 3반에서 온 모성진이라고 합니다. 6학년 때 꿈은 예쁜 처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었고 앞으로 희망은 뱀 사육사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 징그러워.” 앞에 앉아 있던 작은 계집아이가 호들갑을 떨었다. “뱀이 춤을 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모성진이의 코브라 뱀 흉내에 아이들은 까르르 웃어댔다. 호세는 그럴법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아이가 자신 있게 걸어 나왔다.
“저는 5의 1에서 온 우영세라고 합니다. 저는 5학년 때 가르쳐 주신 박현우 선생님이 담임이 되길 원했습니다. 저의 장래 희망은 오락실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오락실 주인이 되면 여러분들을 공짜로 시켜주겠습니다. 나중에 한 표도 부탁합니다.” “우와!” 아이들 입에서 환성이 튀어나왔다. 다음 아이는 유명한 지휘자가 되고 싶어했고, 그 다음 여자는 119 대원이 되길 희망했다. 몇 명은 운동 선수였고, 아예 장래 희망이 없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세월이 바뀌어 있었다. 대통령이나 장관이 되겠다는 희망자는 없었다. 아이들의 눈에 대통령도 장관도 오락실 주인보다 못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적어도 아이들 눈엔 대통령이 되는 게 꿈과 희망 사항으로 가지고 있었던 그 옛날의 어린이다운 순진함 들을 갖고 있어야 할 텐데…… 요즘의 아이들은 점점 흥미 위주로 사회의 나쁜 흐름 쪽을 따르는 것 같아 안타까워졌었다.
호세는 반 아이들의 모습들을 생각속에서 걷어내며 작년 교실에서 옮겨 온 물건 중에 낡은 라면 박스 속에서 먼지가 케케하게 쌓인 묵은 원고 뭉치를 꺼내 놓았다. 점점 초라해지고 있는 자신의 꼴을 이름 있는 조간 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마누라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당당하게 부각시키고 싶어 몇 년째나 질질 끌며 쓰다가 만 소설 속으로 호세 자신의 삶의 방식을 다시 밀어 넣으려고 막 떠오르는 영감을 쓰려는데, 노크도 없이 박현우의 커다란 머리통이 들어왔다.
“자유 퇴청이라는데 가시죠.” “벌써 그렇게 됐나?” “무얼 그렇게 골똘히 연구하고 계십니까? 설마 불쏘시개 감은 아닐 테고요.” “페스탈로치 선생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 분석 연구하고 있네.” “미처 몰라 뵈었습니다.” “그럼 날 알코올에 빠진 위인으로 만 보았나?”
나오는 원고 뭉치를 상자 속으로 다시 밀어 넣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렇게 보아 드릴 수도 있죠.” 박현우는 궁둥이와 다리는 복도에 내놓고 얼굴만 교실로 들이밀고 말했다. “먼저 가게, 난 좀더 그분에 대해 연구해야 하니까.” “남의 책에서 글 빼 짝만 잘 맞추면 될 일을 남들이 쉽게 가는 길 어렵게 가시지 말고 빨리 나오세요.” “아까 하고는 이야기가 좀 다르지 않나?” “아, 선배님이 세상을 둥글게 보며 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담임 선생 인간성을 보니 마누라에게 담임 잘 만났다고 자랑한 것 후회스럽네.”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저 밑에선 공술을 기다리는 문현석 선배님도 기다리고 계시니까요.”
둘이 내려오자 현관에서 기다리던 현석이 물었다. “오늘 무슨 바람이가?” “마이동풍입니다. 학문적 용어로는 아부 주입니다.” 현우가 현석에게 설명했다. “오래 산 보람이 있어. 노랭이 공술을 1년 간 퍼먹게 됐군. 이게 웬 횡재인가?”
현석이 킁킁 코를 떨며 웃음소리를 냈다. 12월 같으면 벌써 거두어 갔을 햇살이 아직도 길게 남아 있는 역전 통로 신흥상가 앞 뻥 과자를 누르는 주인 옆으로 눈에 익은 아이 하나가 잽싸게 뻥 과자 한 뭉치를 가지고는 골목으로 달아나 버렸다. “저런 망할 놈의 개새끼.” 주인은 뒤를 쫓다가 더 많이 남아 있는 뻥 과자가 걱정스러워 포기한 채 욕을 퍼부어 댔다. “잊은 게 하나 있네. 종석이가 달리기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오늘 발견했네. 늘 자네의 주머니도 조심해야 하구 자주 종석이의 주머니도 검사하게. 쓸데없는 것이 들어 있는 날이 많아. 특히 가방을 두고 사라지는 날이 바로 D데이니까 각별히 신경을 쓰게.” 호세는 주인에게 가 뻥 과자 값을 지불하고 한 뭉치의 뻥 과자를 더 사왔다. “어디로 갈 텐가?” “얻어먹는 술일수록 비싼 데로 가야죠, 현석 형님.” “당연하지.”
현우가 앞장 선 곳은 네거리 분수대 왼쪽에 있는 초막이었다.초막의 늙은 안주인은 오랜만에 뻥 과자를 안겨주며 나타난 그들을 반색하며 맞이했다. “마님 돈 벌었음, 미녀도 둘만 하잖우?” 늘 여자가 그리운 현석이 말했다. “암, 눈에 쏙 들 새 미녀를 구해놨지.” 안주인이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하여 술을 들고 나타난 아가씨는 뚱뚱한 뱃살과 함께 눌어붙은 듯한 가슴을 가진 동동주와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젖꼭지 하나는 쓸만하겠군.”
현석이 색 끼를 발휘하며 여자의 가슴을 손으로 툭 건드렸다. “난 숫총각인데 연애 한번하지.” “나도 숫처녀랍니다.” 간덩이가 부은 여자는 장삿속이 가득한 눈으로 현석이 옆으로 치근치근 달라붙으며 말했다. 작부의 느낌을 요약하니 비곗덩이고 더 줄이면 뚱보, 호세는 생각을 접으며 현우에게 술을 권했다. “자, 내 술 들게.” “건배, 우리 선배님의 아들을 위해. 자, 이 술이 바로 아부 줍니다. 문호세 선배님께서는 저 보고 이 술 먹기 전에 학교를 떠나라고 했지만 1년치 공술이 예치된 이상 저는 먹고 떠날 겁니다.” “암 공술을 외면하는 건 바보짓이고 말고.” 현석은 맞장구를 쳤지만 뚱보의 젖꼭지를 만져 보는 게 지금의 희망 사항이었다. 현석이 뚱보에게 사탕발림을 할 동안 현우는 호세와 술을 주고받으며 속마음을 털기 시작했다. “선배님은 교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년째 들어 본 소리였다. “좋은 곳이지.” “저는 공술을 마시는 기간이 끝나면 교직을 떠날 생각입니다.” “교직 생활 3년을 넘기 전에 다들 그렇게 말하지. 그러나 그 고비가 지나면 사표를 내는 사람이 드물지.” “두고 보십시오. 저는 한다면 합니다.” 호세는 술잔을 기울이며 죽마고우였던 영두를 만류하지 못했던 후회를 현우에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친한 친구도 고도를 꿈꾸며 자네와 같은 생각으로 고민하다 교직을 떠났었네. 근사한 회사도 다녔고, 장사도 했고, 지금은 노사 분규를 중재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자신이 교직을 떠나서야 자기가 교직이 가장 적성에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후회하더군. 나는 때로 그 친구가 교직을 떠나려고 할 때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네. 왜냐하면 그 친구야말로 앞날의 훌륭한 교직자로서 멋진 교육을 할 자질을 골고루 갖춘 아까운 놈이었지.”
현석의 비상금이 여자의 젖통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훌륭한 교육자의 자질하고는 반비례하는 행위이지만 마누라가 없는 고독한 현실의 삶의 현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호세는 술잔을 비우며 언제나 마음이 맞는 사람들하고는 술이 달고 목으로 쿨렁쿨렁 잘도 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세가 말을 이었다.
“문교부 시절의 교육은 인성의 중요성보다 지식을 많이 가르치는데만 급급했기 때문에 지식 위주 교육의 문제점이 표출되는 오늘의 현실에서 인성 위주의 교육 목표로 궤도 수정을 하기 위해 자네 같은 젊은 인재들을 지금 필요로 하고 있지 않나? 무엇보다 인성 위주의 교육의 가장 중요한 자료는 훌륭한 성품을 지닌 교사이고, 그런 교사를 꼭 필요로 하는 시대에 왜 비겁하게 자넨 떠나려고만 생각하나? 교육의 발전을 위해 나서려고 하지 않고 말야.” “선배님 사회에서 바라보는 교육계의 눈은 교육자로서 자부심을 갖고 일하기엔 우리를 너무 맥빠지게 하지 않았습니까? 신문을 보시지 않았습니까? 스승을 고발한 제자와 학부모들에게 얻어맞는 교사의 비참한 현실, 그리고 마치 교사들을 돈 봉투로만 생각하는 학부모들과 그렇게 더러운 인물로 교사들이 추락하도록 가만히 보고만 있었을 교육부의 무책임이 교사로서 사명감을 갖고 일하려는 의욕을 잃게 하고 있습니다. 학교의 현실도 우리를 매력 있는 근무지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려는 교장이 있었습니까? 제가 이 학교에 발령받아서 3번이나 바뀐 교장님들은 터놓고 우리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학교 계획에 반영하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까? 자기 중심적인 계획에다 교사들을 짜맞추려고 했을 뿐, 교장의 계획에 이의를 달지 말고 묵묵히 따라야만 하는 현실 아니었습니까?” “내가 바라는 것도 자네가 꿈꾸고 있는 그런 멋진 교장을 한번 해보라는 뜻일세.” “흐흐, 선배님 저도 벌써 주제넘게 일장춘몽을 꾸긴 했지요. 그런데 교장의 길도 줄을 잘서야 된다는 것을, 그리고 첩경으로 가려면 상당히 재롱을 떨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아니면 교장이 되기 위해서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인내심도 저의 성격하고는 맞지 않고요.” “편견을 버리게. 자넨 너무 단면만 보는 게 흠이네. 왜 교장으로 가는 길에만 초조해 하나? 선진국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게 1급 정교사라는 것을 자네도 알 테고 정년까지 아이들만 가르치겠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는 없나?”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교사로서 자부심을 갖고 늙어 가기에는 국가나 사회적인 차원에서부터 인식이 잘못 되어 있으니까요. 선진국은 교사의 길과 교장의 길이 출발점에서부터 선택하기 때문에 인식이 다르지만 우리의 현실은 교장의 요구에 맞추며 살아가는 쪽 아닙니까? 선배님은 그걸 못 느끼십니까? 아니면 외면하시는 겁니까? 저는 선배님 같은 분이 꼭 교장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왜 포기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호세는 현우가 자신의 무능함을 환히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들게.” 호세는 술을 권하면서 어리하게 취해오는 눈길로 현석이 두 팔로 안아도 모자랄 뚱보를 여자로 바라보고 있는 현석의 50대 실루엣은 30대에 가정을 버리고 나간 마누라를 아직도 기다리는 고독이 보였다. “현우, 유미나 선생에게 장갈 들게. 가정이란 걸 갖게 되면 둥둥 떠다니던 생각들이 오금이 박히고 정의를 위해 공감하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비굴함도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네.” “선배님 바로 기성세대들의 그 무사 안일주의식 사고 방식에 제가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간단하게 만들어 살게. 결코 길지 않아. 자, 잔 비우라고. 내 새끼 문도다를 위해 난 지금 아부 주를 사고 있는 중이네. 지금 교육이 어쩌고저쩌고하고 내가 떠들지만 내 교육 방법은 엉망진창일세. 말썽꾸러기 내 새끼지만 40세에 얻은 내 생명일세. 새끼를 위해 아까울 게 없지, 실컷 마시고 잘 봐 주게.”
호세의 혀가 꼬부라져 묘한 음색을 냈다. “흐흐, 선배님 사람 잘못 봤죠. 학부모 술 한잔에 매수가 될 박현우가 아닙니다.” “자넨 꽤 까다로운 담임을 만난 거야.” 뚱보와 노닥거리기 끝난 현석이 현우를 겨누며 대화로 끼여들었다. “인생은 별것 아니야, 까다롭게 살지 말고 그냥 평범하게 살게. 밥 먹고 똥 누고 여자와 자고 하는 게 인생이지.” “인생이 밥 먹고 똥 누고 여자와 자는 것이라면 그 인생 재미없어 저는 포기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오줌을 누러 간다고 하고는 술값 계산을 깨끗이 마친 현우가 먼저 사라져버렸다. 현석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어둠과 추위가 함께 포개진 흐릿한 시야에 초점을 맞추며 몸의 균형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할수록 마음같이 되지 않았다. 호세는 20대의 박현우 나이에 무엇을 했는지 다시 떠올려 보았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선배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술 마시고 당구 치고 흐릿한 세월을 보낸 것 외엔 뚜렷한 것이 없었다. 현우처럼 학교를 보는 날카로운 눈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지금쯤 교장의 자리를 차고앉았을 것이다.
동갑인 새 교장과 호세를 현우의 눈길에서는 분명 자신을 처량하고 무능함으로 처리했을 것 같았다. 눈 깜짝하는 사이 지나간 세월의 아쉬움이 잠시 호세의 마음으로 밀려들었다. 그래도 옛날에는 교사들의 권위와 품위는 인정되었다. 학교는 아이들과 학부모와 교사들 사이에 존경과 신뢰와 사랑이 적당히 굴러다니며 조화를 잘 이루었다. 교사들끼리도 퇴근 후 한잔의 술도 서로 있었고 인정도 나누었다. 어느 순간부터 점점 학교와 교사를 납작하게 내려다보는 학부모의 권위가 드세지고부터 교육의 균형은 깨어지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서로가 미로를 헤매는 꼴이 된 것이다.
“빌어먹을.” 엉뚱하게 다른 집 여자처럼 문 앞에 나와 술 취한 남편을 기다려주지 않는 마누라에게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른 호세는 퍼들어 자고 있을 마누라를 상상하며 발로 대문을 걷어차고 들어가는 순간, 대문 뒤에 숨어 있었던 유기가 껑충 뛰어오르며 호세의 목을 끌어안았다. “깜짝 놀랐네. 징그러운 할망구야 남이 보면 웃는다.” “어때요, 내 서방 내가 안는데 흉보라면 보라지요.” “이 할망구 늙어 가면서 간이 퍼들어지는군.” 기분이 좋아진 호세는 유기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문지방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이 지독한 술 냄새.” “박현우가 도다의 담임이 돼서 기분 좋아 한잔씩 했지, 1년 간 공술을 대줘야 하는데 마누라 팔아먹게 생겼어.” “어이구, 술독끼리 잘 만났군요.” “이봐 말조심하게. 담임을 술독에다 비유하다니 담임은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높은 사람이야. 부모가 먼저 선생님을 존경해야 자식이 배운다구. 도다에게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미리 일러둬.” “도다는 담임 선생님이 무서워서 싫대요.” “그렇다면 자네가 도다의 마음이 바뀔 수 있도록 노력 좀 하게.” “노력은 당신이 해야 해요. 같은 학교에서 아들 때문에 창피 당하지 않으려면요. 오죽하면 같은 학교 직원임에도 장난이 심하다고 통지표에다 썼을까? 나라면 부끄러워서 끼고 가르칠 것 같아요. 제발 올해부터는 더 창피 당하기 전에 도다를 위해 시간 좀 내서 잘 가르쳐 봐요. 친구라고는 매일 그 멍청해 보이는 종석이 놈하고 어울리니 무얼 배우겠어요. 걔의 말더듬을 배워서 도다가 말을 더듬고 있어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엄마들 사이에서는 종석이랑 짝이 될까 봐 걱정하고 있어요. 지난번에 도다 놈이 종석이를 데려와 놀고 간 후에 도다의 저금통을 모두 털어 간 것 아시죠. 그러니 집집마다 종석이를 데려 오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부탁하는 것 같아요. 또 종석이를 조금만 건드려도 종석이 엄마가 집까지 찾아와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어 대니 모두들 수모를 당할까 봐 아예 몸을 사리죠. 이제 도다도 걔랑 못 놀게 해야겠어요. 잘못하다간 도둑질까지 배울 것 같아요.” “내버려두게. 친구란 서로 마음이 맞아야 되는 거라구. 우리가 놀지 못하게 할 권한은 없네. 자네가 바라는 반장을 도다가 또 하려면 많은 친구를 골고루 사귀어야 하고 말고. 그리고 종석이는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쁜 아이가 아니야. 그 녀석이 성인 영화까지 노린다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쓸데없는 자존심만 가지고 있는 여편네들에게 내 아이만 생각하는 이기심 좀 버리라고 하게.”
호세는 점점 술의 역사 속으로 빠져 들어가면서 5학년 한 해 동안 종석이를 위해 무엇을 해주었던가를 기억해 보려다가 곧 잠 속으로 나가 떨어졌다. 반 아이들이 종석이의 외모가 외계인 이티와 닮았다고 붙여 준 이티란 별명을 달고 눈 깜짝할 사이 전교를 뒤지며 아이들의 돈을 가져갔고, 체육시간에는 교사들의 주머니까지 서슴없이 뒤지는 용감무쌍한 놈은 뒤떨어지는 IQ임에도 성인 영화를 많이 본 탓에 어느 날 같은 5학년의 특수반에 다니는 여자 애를 데리고 아빠놀이를 하러 강당으로 간 일 때문에 오죽하면 믿지도 않는 예수한테 종석이가 바르게 자라도록 기도까지 했었다는 것을 떠 올렸을 것이다.
젊은 새 교장은 정년 단축과 점점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아이들의 부모들로부터 불신을 당하고 있는 불쌍한 교사들의 사기 앙양을 위해서 학년별로 학부모와의 대화 시간을 가질 계획을 세웠다. 우선 학교 분위기를 새롭게 바꾸어 교사들의 권위를 찾아 주는 데 앞장서겠다고 직원회 때 선언한 후 곧 일하는 교장으로 나서서 칙칙한 색깔의 낡은 교사의 색깔부터 밝고 안정된 느낌을 줄 수 있는 2가지의 색으로 섞어 오묘한 소라색으로 바꾸어 학교 안팎으로 페인트칠을 시작했다. 아직도 3월의 깍쟁이 같은 추위는 학교 주변을 맴돌며 학교장의 성급한 마음같이 칠이 빨리 마르지 않고 시간을 끌고 있을 무렵, 학교운영위원회 위원들도 학교장의 새 교육정책을 듣기 위해 자가용을 운동장까지 끌고 들어 왔다.
마지막 수업을 운동장에서 마친 현우는 운동장까지 차를 몰고 들어오는 학부모들의 몰지각에 실눈을 뜨고 못마땅한 그 모습을 잠시 째려보았다. 그리고는 오늘 학교운영위원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교장실로 향했다. 현우의 뒤를 이어 호세도 운영위원회 교사 대표 참석자로 들어왔다. 10명의 운영위원들 앞에서 많은 경쟁자를 뚫고 교육감으로부터 픽업되어 자신이 왔다는 사실 때문에 조금은 우쭐한 기분이 된 새 교장은 그가 교사를 위해 계획하고 설명하려고 했던 것을 까맣게 잊고는 자신의 자랑이 넘치자 교장의 경박한 인간성에 흥미 없게 듣던 차갑게 생긴 똑똑한 여자 부위원장이 조심스럽게 회의를 시작하겠노라고 선언했다. 교장이 낙후된 학교 시설에 대해서 말한 다음 앞서가는 학교가 되기 위해서는 컴퓨터 보급을 시급히 확대해야겠다는 것을 긴급사항으로 내놓고 토의하고 있을 무렵, 동네 파출소에서 나온 경찰관 두 사람이 서무의 안내를 받으며 교장실로 들어왔다. 회의가 잠시 중단되고 뜻밖의 출현자들에게 모두 시선을 겨누었다.
“회의중이신 데 실례하겠습니다. 사실 저희들도 뜻밖의 사실이라 요새 이런 어린이들이 있는가 해서요.” 경찰관은 메모된 종이를 펴서 눈으로 읽은 다음 내용을 요약해 말했다. “학년은 6학년이라고만 밝히고 끊었습니다. 아이는 분명히 고소한다는 낱말을 사용했습니다. 내용은 전교 어린이회 시간에 여러 가지 문제를 건의를 해봤자 학교에서 반영이 안 되니 그걸 해결해 달라는 내용과, 담임 선생을 바꾸어 달라는 내용인데 머리가 좋은 아이 같았습니다. 학년을 묻자 자신의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코를 쥐고 코맹맹이 소리를 냈습니다. 그리고 약간 말을 더듬는 버릇도 있는 듯했습니다.”
모두들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되어 서로를 쳐다보았다. 학교장은 당황한 눈빛이 되어 되물었다. “확실히 우리 학교 어린이란 걸 어떻게 아십니까?” “이 학교 교무실 앞에 설치해 놓은 공중전화에서 금일 오전 10시 50분경에 전화를 건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저희들도 믿기 어려워 전화번호 조회를 해 본 겁니다.” “무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운영위원회 참석자들도 설마 초등학교 어린이까지 그럴 수 있을까 하고 놀라움을 나타냈다. “아마 매스컴의 영향인 듯싶기도 합니다. 요즘 선생님들의 비리 꼬투리를 잡아 어디론가 전화를 걸라고 학부모들을 부채질하는 정부의 무책임한 홍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스승을 존경하는 풍토가 안 되면 그 나라의 교육은 바로 설 수가 없는데 말입니다.”
경찰관 중 한 명이 세상에서 점점 딱한 궁지로 몰리고 있는 교사들 편에서 이야기를 했다. “저희가 온 것은 저희들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학교에서도 참고로 아셔야 할 것 같아 들렸습니다. 저도 6학년인 아들놈이 있는데 무척 놀랐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서는 안 될 것 같은데 걱정이 앞섭니다. 자, 그럼 선생님들 힘내십시오.” 경찰관들은 예의바른 인사를 남기고 간 후 잠시 침묵이 흘렀다. “10시 50분이면 둘째 공부시간 시작이므로 각 반에 그 시작에 자리를 비운 어린이를 조사하면 금방 알아 낼 것 같군요.” 운영위원회 회장이 자기 자식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자신감을 가지며 제의했다. “물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찾을 수야 있겠지요. 문제는 찾아서 어떻게 처리를 하겠다는 겁니까? 틀림없이 그 아이의 뒤에는 도덕성이 부족한 부모의 환경이 있을 겁니다. 도덕성 교육만은 부모님들의 몫입니다. 학교 교육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박현우가 학부모의 허를 찌르고 싶어 나서는 같았다. 운영위원회 위원들은 현우의 말에 긍정적인 표현을 했다. “이렇게 요즘의 학교는 아까 들으신 것처럼 학부모님들의 생각 이상으로 점점 다루기가 힘든 아이들을 맡아 선생님들이 고생들하고 계십니다. 물론 그런 아이의 뒤에는 반드시 박 선생님 말씀처럼 문제 부모가 있고, 훌륭한 부모님 밑에는 훌륭한 자식이 있기 마련이지요. 그걸 학부모님들께서 아시고 선생님들을 이해하고 많이 도와 드려야 합니다.”
교장은 뜻밖의 현실적인 자료가 되어준 공중전화 사건 때문에 운영위원 앞에서 교사들을 위해 나서서 말하는 데 힘이 실렸다. 학교운영위원회는 뜻밖의 사건 때문에 컴퓨터에 대해 별 구체적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다음으로 미룬 다음 그렇게 끝났다. 호세는 잠시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교무실로 새 출석부를 가지러 오면서 공중전화를 걸고 있는 도다를 본 것은 10시 50분 경이었다. 늘 빠뜨리고 잘 잊고 다니는 놈이 반장이 되고 책임감 때문에 집에 두고 온 책이나 준비물을 갖다 달라고 걸고 있을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경찰관은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고 했지만 도다는 원래 축농증 때문에 코맹맹이 소리다. 현우는 내 새끼가 그런 놈이라고 알고 있을까? 내 자식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지금까지 믿어 왔었다. 그러나 이 순간 아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많은 학부모들이 학교에 와서 아이의 학교 생활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기 자식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있다고 비웃었던 현실이 자신 앞으로 다가섰음을 느끼자 시야가 뿌우옇게 서려 왔고, 전신에 힘이 빠졌다. 유기의 말대로 학교의 교육자로서 자기 자식 교육 하나 제대로 못시킨 게 망신살이 뻗칠 것 같았다. 그래도 자꾸만 모든 부모들이 공통으로 생각하는 내 자식만은 절대 아닐 것이라는 쪽으로 슬쩍 마음을 기대며, ‘중이 자기 머리 못 깎는다’는 옛말이 호세의 머릿속으로 뚜렷이 떠올랐다.
봄의 느낌이 느릿하게 깔리는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여전히 어린이의 모습으로 뛰놀고 있었다. 아무도 어린이들이 무서운 계획들을 마음 속에 갖고 있음을 모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