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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1 _ 티베트 자유여행의 시작
누군가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를 묻는다면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티베트라고 대답한다. 티베트고원과 야크떼, 포탈라궁과 달라이라마 등 티베트를 여행하는 이유는 무수히 많겠지만, 내가 티베트를 최고의 여행지로 꼽는 이유는 당시 티베트는 여행할 수 없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티베트는 중국 서남부에 위치한 자치구로서 수부(首府)는 라싸(拉萨)이다. 1965년 중국에 병합된 이후부터는 시짱 자치구(西藏自治区)로 불린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후로 많은 외국인이 ‘티베트 분리 독립운동’을 지지했고, 라싸에서는 적지 않은 소요사태가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 정부는 외국인의 티베트 자유여행을 엄격히 제한했다. 외국인이 티베트를 여행하려면 허가증이 필요했고, 이를 얻기 위해서는 중국 정부에서 공식 인증한 여행가이드와 호텔에서 묵는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했다.

 

 

당시 인터넷에는 유럽·아시아·미국·남미에 대한 정보는 차고 넘쳤지만, 티베트에 대한 정보는 거의 전무한 상황이었다. 나는 다소 무모하지만, 허가증 없이 자유롭게 티베트를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허가증을 받는 것 자체가 앞서 언급했듯 거의 불가능했고, 중국 공안과 계약관계가 있는 여행사와 함께 티베트를 가더라도 터무니없이 비쌀 뿐 아니라 의미 없고 틀에 박힌 관광이 될게 뻔했기 때문이다.


#2 _ 칭짱철도에서의 46시간
베이징에 도착해 조선족이 운영하는 민박에 묵었다. 여기에서 라싸행 칭짱철도(靑藏鐵道)를 구매 대행해 준다는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라싸행 칭짱철도 티켓은 허가증이 있어야 끊을 수 있는데, 이 티켓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은 나 같은 외국인이 허가증 없이 티베트를 가는 방법이 열린 셈이다. 드디어 티베트 여행이 더 이상 미지의 영역이 아닌 가시권에 들어왔다. 라싸의 푸른 하늘과 포탈라궁, 티베트고원의 야크 떼들이 눈앞에 그려지기 시작한다.

 


100위안을 주고 구매 대행한 티켓을 들고 라싸행 칭짱철도에 올랐다. 칭짱철도는 중국 서부개발을 목적으로 2006년에 완공된 철도로 특히 칭하이성(靑海省) 시닝(西宁)과 시짱자치구 라싸를 연결하는 구간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한 철도’라는 명성을 보유하고 있다. 베이징 서역에서 출발한 칭짱철도는 라싸까지 약 46시간이 소요된다. 달리는 차창 밖 풍경은 그야말로 대자연을 그대로 담은 아이맥스 영화와 같다. 스크린 속의 풍경은 도시에서 초원으로, 황토고원과 사막을 지나 빙하와 야크떼가 있는 고원으로 시시각각 변한다.


그렇다고 2박 3일 동안 창밖 풍경만 바라보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같은 침대칸을 쓰는 한족·티베트족·좡족·위구르족 등 다양한 민족의 친구들과 비록 말은 잘 안 통했지만, 가져간 소주를 나눠 마시기도 하고 함께 고스톱도 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때 과음을 해서인지 아니면 고스톱 규칙을 가르쳐주느라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인지 해발 5,000m 티베트고원에 들어서면서 고산증세가 나타나 고생을 좀 하기도 했다.

 


#3 _ 티베트의 심장, 포탈라궁
허가증과 고산병을 이겨내고 결국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 도착했다. 라싸 중심부에 들어서면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은 바로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갸초의 거주지였던 포탈라궁이다. 사실 어린 텐진 갸초는 이 포탈라궁에서 지내는 것이 불편해서 얼른 여름이 되어 꽃이 많고 햇볕도 잘 드는 여름궁전 노블링카에 가기를 원했다고 한다. 자연스레 포탈라궁은 달라이라마가 겨울철에 지내는 겨울궁전이 되었다. 처음 티베트 여행을 계획할 때 라싸의 파란 하늘과 웅장한 포탈라궁만 내 눈으로 직접 봐도 소원이 없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무사히 도착하여 그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고 있으니 행복감이 밀려온다.

 


포탈라궁은 티베트불교의 총본산이라고 할 수 있다. ‘포탈라’라는 이름은 관세음보살이 사는 산인 ‘포탈라카’에서 비롯됐다. 포탈라궁 내에는 역대 달라이라마의 무덤이 모셔져 있다. 티베트인들은 농번기가 끝나면 자신이 사는 곳에서 라싸까지 오체투지를 하며 몇 개월간 순례길에 오르며, 라싸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이 포탈라궁을 오체투지를 하면서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를 돈다. 라싸가 티베트의 수도라면 포탈라궁은 티베트의 심장인 셈이다.

 

 

#4 _ 여행의 끝판왕들이 모이는 곳, 동쵸 호스텔
라싸에 도착했다 하더라도 안심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포탈라궁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숙소로 가는 길에도 총을 차고 있는 공안들을 수없이 봤기 때문이다. 다행히 공안에게 붙잡히지 않고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혹시나 모를 추방에 대비해 비상식량이 잔뜩 담긴 봉투를 양손에 들고 조심스레 방에 들어서는 순간, 방 가운데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소리친다. “혹시 춘천사람이세요?” 매개체는 바로 춘천의 지역 마트인 ‘벨몽드 봉투’. 이렇게 나는 티베트 라싸의 허름한 호스텔 방에서 춘천사람을 만났다. 이 형은 대학을 졸업하고 세계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제야 긴장이 조금 풀리고 주변이 시야에 들어온다. 일본사람도 있고, 불경을 보며 명상을 하는 독일 사람도 있다.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도 내 머리색은 검은색이니까.


동쵸 호스텔 여행객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티베트에 왔다. 춘천 형은 네팔에서 트럭 짐칸에 몰래 숨어 왔다고 했고, 일본 사람은 쿤밍에서 모종의 뒷거래를 하고 봉고차에 여럿이 함께 타고 왔다고 한다. 독일 사람은 명상 중이라 말이 별로 없었지만 18개월 동안 티베트에서 수행 중이라고 한다. 나는 비교적 정상적인 방법으로 티베트를 여행하고 있는 편이다. 정말 다들 여행의 끝판왕들이다.


#5 _ 하늘 호수, 얌드록쵸(羊卓雍湖)로 가는 길
기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용기를 내서 라싸를 벗어나 얌드록쵸로 가기로 했다. 티베트의 3대 성호(聖湖)로 불리는 얌드록쵸는 라싸에서 시가체 방향으로 2시간을 가야 한다. 이는 중국 공안이 있는 여러 검문소를 거쳐야 한다는 뜻이고, 나는 허가증이 없는 외국인이기에 그곳까지 무사히 데려갈 중국인을 물색해야만 했다. 숙소에는 티베트를 여행 중인 중국인들이 많이 있었는데, 나는 그들 한가운데 서서 함께 얌드록쵸를 가자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사실 중국인들은 외국인과 여행을 가다 공안에 걸리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므로 대부분 거절했다. 몇몇은 허가증 없이 티베트를 온 내가 수상하다며 공안에 신고한다고 협박까지 했다. 그 순간 나의 심정은 마치 제갈량이 오나라에 적벽대전 참전을 설득하러 가서 많은 참모와 장수들에게 둘러싸여 심문받는 그런 기분이었다. 다행히 삼고초려와 같은 나의 설득에 테란이라는 영어 이름을 가진 중국인 친구가 마음을 움직였고, 하루 동안 택시를 빌려서 함께 얌드록쵸로 가기로 했다.


얌드록쵸로 가는 길은 매우 좁고 험한 도로였다. 더군다나 중국말을 모르는 티베트인 택시 운전사는 반대편 차가 시야에 들어오면 갑자기 역주행하며 달리다가 차가 서로 부딪치기 직전에 핸들을 꺾었고, 우리가 겁이 나서 소리를 지르면 껄껄거리며 즐거워하는 매우 용감한 드라이버였다. 이러한 아찔한 치킨게임을 몇 번 하다 보니 어느덧 택시는 얌드록쵸에 도작해 있었다.

 


푸른 보석이라는 별명을 가진 얌드록쵸는 만년설이 녹아 형성된 호수로 해발 5,000m에 위치한다. 저 멀리 하얀 만년설이 쌓인 닝진캉사펑(宁金抗沙峰) 아래 바다같이 푸른 얌드록쵸가 보이고, 오색 타르초(經幡)는 거친 호수 바람에 정신없이 휘날린다. 호수 아래에 내려가니 방목을 하는 야크 가족들이 있었다. 멀리서는 바다같이 짙푸르던 호수 빛은 가까이서 보니 투명한 비취색이었다.

 

에메랄드빛 호수를 배경 삼아 기념사진도 찍고 송아지 같은 새끼 야크 머리를 쓰다듬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우두머리인 듯한 거대한 뿔을 가진 수컷 블랙야크가 나타나 위협을 가했다. 다행히 겁만 주고 들이받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아찔한 순간이었다.


#6 _ 라싸의 사원, 거리 그리고 사람
조캉사원(大昭寺)은 오랫동안 티베트 사람들에게 성스럽게 여겨진 정신적 고향이자 티베트불교의 중심사원이다. 실제로 많은 순례객이 찾아와 신앙생활을 하는 곳은 포탈라궁이 아닌 조캉사원이라고 할 수 있다. 바코르(八角街)는 이 조캉사원을 둘러싸고 있는 대표적인 순례길인데, 이 작은 거리에는 다양한 민족들의 수공예품이 가득해 이국적인 정취가 느껴진다. 포탈라궁과 마찬가지로 순례할 때는 반드시 석가모니상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돌아야 한다. 바코르 광장은 라싸에서 가장 번화한 상업거리인데, 조캉사원을 중심으로 바코르 광장을 한 바퀴 도는 것은 석가모니에 대한 의식이라고 한다.

 


처음 티베트를 여행하게 된 계기는 당시 준비하고 있던 ‘라싸의 경관 변화로 바라본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 이란 논문 때문이었다. 라싸의 거리를 직접 보고 중국 정부가 라싸의 경관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하고 싶었다. 라싸에 도착하고 가장 먼저 들어온 경관은 포탈라궁 전면의 넓은 광장과 그 가운데에서 펄럭이는 중국의 국기 오성홍기(五星紅旗)였다. 이는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이나 모스크바의 붉은광장과 같은 사회주의 체제의 대표적인 상징 공간이다. 또한 라싸 시내의 중심에는 직선의 대로가 건설되었고, 이 길의 이름은 베이징길(北京路)이다. 포탈라궁과 더불어 대표적 순례지인 조캉사원과 바코르 순례길에는 군인들이 총을 메고 걸어 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바코르 광장에는 마자아미라고 하는 작은 찻집이 있다. 이곳에서 티베트대학 역사학과에 다니는 아르바이트생을 만났다. 내가 외국인인 것을 알고 조심스럽게 티베트의 역사에 대한 말을 꺼내면서 타르초(티베트 불교를 상징하는 오색 깃발)의 의미에 관해 설명을 하던 중 중국 공안이 찻집으로 들어오자 흠칫 놀라며 대화를 멈췄다. 100년 전 식민지 조선의 모습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슬픈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티베트 친구가 준 그 타르초를 양손에 들고 만주 독립군의 모습처럼 기념사진을 찍고, 티베트 여행을 마쳤다.

 

 

에필로그

칭짱철도를 타고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길은 처음과 똑같은 길이었지만 생각보다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티베트의 파란 하늘과 웅장한 포탈라궁, 에메랄드빛 호수와 야크, 그리고 라싸에서 만난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10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티베트, 자유, 그리고 여행’ 이 세 단어는 마치 같은 의미를 지닌 다른 단어처럼 느껴진다. 언젠가 다시 티베트를 가게 되는 날이 오게 된다면, 그때 역시 나는 자유로운 여행을 하며 있는 그대로의 티베트를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