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7 (금)

  • 흐림동두천 17.5℃
  • 흐림강릉 16.7℃
  • 서울 18.1℃
  • 대전 18.4℃
  • 흐림대구 18.5℃
  • 흐림울산 18.6℃
  • 광주 19.5℃
  • 흐림부산 19.3℃
  • 맑음고창 19.6℃
  • 흐림제주 19.3℃
  • 흐림강화 18.1℃
  • 흐림보은 17.7℃
  • 구름많음금산 17.1℃
  • 맑음강진군 20.6℃
  • 흐림경주시 17.9℃
  • 흐림거제 19.9℃
기상청 제공

라이프

아프리카, 그 붉은 태양 속으로

거리도 멀고, 그렇다고 안전을 보장받지도 못하는 그곳. 여행 조금 다녀봤다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남겨두는 그 선택지. 바로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함께 간직한 동화 같은 대륙 아프리카다. 아프리카 여행을 결정하곤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쉽지 않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인터넷을 수소문해 봐도 서점에 가서 책을 읽어봐도 내가 원하는 정보는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아프리카 여행을 포기한다면, 비단 여행뿐만 아니라 삶의 여러 부분에서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프리카는 여행이 아닌 도전으로 생각하며 준비를 시작했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방법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방법은 모든 여행이 그렇듯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모든 것이 각본처럼 짜여 있는 패키지로 가느냐, 스스로 각본을 만들어내는 자유여행으로 가느냐. 하지만 아프리카 여행의 특징 중 하나는 ‘일정이 정해져 있고 투어를 이끄는 투어리더도 있지만,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여행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를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드라이버도 있고, 세계 곳곳에서 참여하는 여행객들과 밤새도록 다양한 의제로 비공식적인 정상회담까지 나눌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이 독특한 방법은 바로 ‘트럭킹’이다.

 

 

트럭킹은 25톤 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만능 여행기지’이다. 트럭 짐칸을 사람들이 탈 수 있는 공간과 수하물 보관용 락커로 개조했고, 그 밑으로 텐트·각종 취사도구·식재료 등을 모두 실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트럭 안에 여기저기에서 온 여행객들과 함께 먹고, 자고, 이야기하며 여행을 한다는 건 지금까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낭만의 결정판’이었다. 매일 아침 투어가이드는 우리 모두를 불러놓고 오늘 일정을 브리핑 한 다음, 의견이 있으면 자유롭게 말해보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우리나라 사람 같았으면 ‘좋습니다!’라고 끝내겠지만, 외국 사람들 특히 서양 사람들은 이기적이다 싶을 정도로 자기 의견을 마구마구 분출해냈다. 차라리 저렇게 내 뜻을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것이 ‘세상을 더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어쨌든 이동부터 투어까지 모든 과정은 민주적으로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선 어느 누구도 불평불만을 하진 않았다.

 

여행 기간 동안 우리의 숙박 장소는 정해져 있었지만, 식사 장소만큼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었다. 식사시간이 될 때 쯤, 밥 먹기 좋은 곳을 발견하면 ‘오늘 점심은 여기서!’라고 소리 지르면 차가 멈춘다. 그러면 우리는 일사분란하게 트럭에서 취사도구와 의자를 꺼내 식사 준비를 한다.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레스토랑은 화려한 조명과 유려한 음악이 흐르는 곳이 아닌, 대자연 속 어딘가 상상도 못 했던 곳에서 바닥에 퍼질러 앉아 먹는 것이라는 것을 그때서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내가 먹는 밥이 단돈 천 원짜리라 할지라도 말이다.

 

아프리카의 트럭킹 업체는 크게 세 군데이다. 업체별로 특징과 코스가 다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곳을 선택하면 된다. 캠핑을 통한 여행도 중요하지만, 옵션으로 쾌적한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잠자리에 민감한 사람이라도 어렵지 않게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 투어 일정은 짧게는 4일, 길게는 70일 가까이 진행되기 때문에 트럭킹에 참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여행의 방법, 여행의 기술을 체득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대자연의 장엄함 ‘사막 속으로’

아프리카 남서부에 위치한 나미비아는 과거 독일의 식민 지배를 받아 지금도 독일인들의 생활양식이 여기저기 묻어있다. 하지만 그들이 간직해온 유구한 역사의 뿌리가 깊게 박혀있어 아프리카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다.

 

나미비아 여행의 시작점인 수도 빈트후크는 수많은 배낭여행객들이 ‘도전’을 시작하는 곳이다. 나미비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사막이다. 아열대고압대의 영향이 아닌 한류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나미브 사막을 처음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은 빈트후크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스와코프문드이다. 눈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 하지만 등 뒤로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사막. 물과 사막의 부자연스러운 조화는 그곳을 떠나는 순간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상식을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어디 시각만이겠는가!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눈을 감고 있으면 저 멀리 모래바람이 부는 소리까지 들리니 청각을 자극하고, 짜디짠 바다내음과 함께 건조한 모래의 냄새까지 맡고 있자니 후각까지 혼란스러워하는 그곳! 독일인들이 즐겨 찾는다는 이 휴양지에서 이색적인 사막을 뒤로하고 태양처럼 붉은 사막의 심장으로 점점 들어간다. 이곳에서 시작한 트럭킹은 아르헨티나, 캐나다, 독일, 뉴질랜드, 호주 등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했다. 덜컹거리는 트럭 안에서 책을 펴놓고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모래바람을 그대로 맞이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여행은 결국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인문학이 아닐까하는 사념에 빠져보기도 했다.

 

 

DUNE45. 사막에 있는 모래 언덕에 숫자를 붙인, 우리 식으로 표현한다면 마흔다섯 번째 모래사막이다. 그 높이가 엄청나 정상까지 오르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내려올 때 능선이 아닌 가파른 경사로 달려 내려오니 고생해서 올라간 보람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붉은 모래로 만들어진 높은 언덕 그리고 저 멀리 떠오르는 붉은 태양은 누가 더 붉게 타오르는지 내기라도 하듯 빛과 색으로 경쟁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바라본 사막의 일출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라는 용기까지 불어 넣을 만큼 장엄했다.

 

차로 2시간 거리를 더 이동해서 도착한 곳은 Deadvlei(데드블레이)이다. 완벽한 화각과 적당한 보정이 합쳐지면 이곳이 지구인지 아니면 또 다른 행성인지 헷갈릴 정도로 신비로웠다. 붉음으로 경쟁하던 Dune45와는 달리 바닥은 석회암질의 회백색, 이를 둘러쌓고 있는 모래는 붉은색을 나타내니 시각이 혼란스러워 감각의 마비증상까지 느낄 정도였다. 호기심 가득안고 도착한 아프리카에서 색깔의 향연에 심취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건조하다 못해 모든 것이 말라 비틀어져 가는 이곳에서 색깔을 통한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아프리카가 주는 특별함 중에 하나였다.

 

화려함과 초라함, 동전의 양면과 같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 전 세계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인종차별정책을 시행한 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직 깨끗하게 청산되지 않은 아픈 역사가 곳곳에 스며있어, ‘여행이 아닌 삶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해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 나미비아 스와코프문트에서 시작된 트럭킹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도착해서야 완전히 끝이 났다. 그간 매일 열띤 토론과 뜨거운 파티를 함께 했던 친구들과의 헤어짐이 아쉬웠는지 우린 차를 렌트해 우리만의 투어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국제면허증 소지자가 나밖에 없어 운전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지만 점심식사와 저녁식사, 기름 값으로 그럴듯한 역할을 나누어서 그런지 어느 하나 불공평해 보이진 않았다.

 

 

화려함과 세련된 도시는 아니었지만, 그간의 사막생활이 문명과 단절된 상태였던지라 케이프타운에서의 여행은 작은 움직임마저 역동적으로 느껴졌다.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 야생동물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드넓은 사파리, 지중해성 기후에서 자란 포도로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 비현실적인 절벽 아래에 펼쳐진 화려한 도시까지 케이프타운은 무지개와 같이 다양한 색깔을 가진, 한시도 지겨울 틈이 없는 곳이었다. 케이프타운을 상징하는 테이블마운틴은 말 그대로 넓은 탁자처럼 정상부가 평평하게 만들어진 산이다. 케이블카로 정상까지 올라갈 수도 있지만, 체력과 시간만 허락한다면 직접 등산을 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등 뒤로 보이는 에메랄드빛 바다와 화려한 도시의 조화를 각도를 높여가며 마주하다보면 마치 새가 되어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케이프타운 도심을 보고 있으면 탁자 같은 이 산이 케이프타운의 모든 아픔을 감싸고 있는 느낌이 든다. 넬슨 만델라가 27년 동안 수감되어 있던 섬 로벤 아일랜드는 해변가에 있는 워터프론트의 작은 선착장에서 출발한다. 약 20~30분가량 배를 타고가면 섬에 도착하는데, 그 느낌이 마치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사뭇 비슷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 섬에 누군가 억울하게 갇혀 오랜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에 두려움과 초조함이 밀려오더니 이 섬을 떠나는 순간까지 나를 괴롭게 했다. 넬슨 만델라가 갇혀있던 감옥의 손바닥만 한 창문에 서있노라니 자욱한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케이프타운이 보였다. 그리고 케이프타운을 감싸고 있는 테이블마운틴도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넬슨 만델라는 27년 동안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를 생각하니 울컥 감정이 올라왔다. 그리고 잠시 아름답지만 우울한 그 도시에 대한 깊은 고찰에 빠져들었다.

 

케이프타운 중심에서 출발해 약 40분가량을 차로 달리다 보면 희망봉에 도착한다. 폭풍의 곶(Cape of Storms)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이곳은 인도로 가는 항로로 개척되면서 희망봉(Cape of Good Hope)으로 개칭되었다. 무엇보다 대서양과 인도양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을 가진 곳이다. 아프리카 대륙의 남단을 향해 끝없이 걸음걸이를 옮기고 있으면 마치 대륙을 정복한 탐험가의 삶을 살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한 나라의 땅 끝을 밟는 것도 의미가 있는데, 한 대륙의 끝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딘다는 것은 가히 정복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이러한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산과 바다의 경계에 있는 도심은 서구의 화려함과 아프리카의 열정을 함께 느낄 수 있는 환상적인 여행지였다. 음악만 흘러나오면 누군가 어깨를 들썩이다 못해 온몸을 내던지고 있으니 여행에 대한 권태가 느껴질 때쯤 과감하게 도전해봄직한 장소로 추천한다.

 

<에필로그>

25톤 안의 작은 세계. 세계를 떠도는 것은 인생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했지만 25톤 안의 일주일은 자아를 발견해가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상대방의 표정은 나를 비추는 거울 같았고, 하루의 시작은 인생의 시작, 하루의 끝은 인생의 마지막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만약 내게 박사과정을 밟는 것과 일주일의 트럭킹을 선택할 수 있는 순간이 주어진다면, 난 차라리 일주일의 트럭킹을 선택하리라. 내가 나를 먼저 아는 것이 우선이지, 자신을 모른 채 세상을 알아가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나를 알아가는 것, 주변사람과 어울리는 것, 내 생각을 또렷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이 과정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그토록 찾던 유토피아가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아프리카 여행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 중 하나 일 것이라 자부한다. 그리고 어렵지만 용기를 내어 내 모습 그대로를 바라 볼 수 있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