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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지리교사와 소프라노의 ‘21일간의 신혼여행’

 

#1. 21일간의 신혼여행

결혼을 준비하며 소프라노인 아내는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 독일과 이탈리아를 신혼여행 리스트에 올렸다. 그곳에서 모차르트, 베토벤,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같은 거장들의 음악적 숨결을 느껴보고 싶다고 했다. 임용시험을 준비하느라 한동안 여행에 굶주렸던 나는 전략적으로 결혼식 날짜를 여름방학 시작 직전으로 잡아서 최대한 길게 신혼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기왕 길게 떠날 거 아내의 인생 첫 여행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눈과 귀가 즐거운 도시 체코 프라하도 목차에 추가됐다. 우리의 신혼여행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체코를 거쳐 이탈리아까지 떠나는 대장정의 여행이 되었다. 나는 방학이 있었지만, 아내는 특별휴가로는 부족해 남은 연가를 모두 소진해야만 했다. 기간이 긴 만큼 숙박은 도시의 특성과 머무르는 기간을 고려하여 호텔과 숙박공유를 적절히 조화시켜 예약하였다. 도시 간 이동은 저가항공과 고속철도를 조합하여 최적의 루트로 이동시간을 최소화하였다. 이렇게 지리교사와 소프라노 부부는 지금으로부터 3년 전 2016년 7월, 21일간의 신혼여행을 떠난다.

 

#2. 뮌헨에 숙소를 잡은 이유

마인(Main)강이 흐르는 괴테의 고향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기차를 타고 바이에른주 뮌헨에 도착했다. 뮌헨은 남부 독일의 최대 도시로 독일의 경제적·문화적 중심지이다. 유럽 최고의 축구팀을 가리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다수의 우승을 차지한 분데스리가 최고의 명문 축구팀 바이에른 뮌헨의 연고지이며, 매년 9월 말부터 2주간 열리는 세계 최대의 민속축제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로맨틱 가도’라는 이름은 고대 로마시대에 로마인들이 가도를 만든 데서 유래된 것이다. 바이에른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사이에 걸쳐 있으며 1950년대부터 관광자원으로 개발되었다. 그림 같은 도시와 성곽으로 유명한 관광도로이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몰린다.

 

중심에 위치한 기차교통의 요지로서 뮌헨에 숙소를 잡으면 뉘른베르크, 퓌센과 같은 남부 독일의 아름다운 도시들을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와 체코 프라하 같은 도시와도 인접하여 뮌헨에 숙소를 잡으면 여행 계획을 세우는 데 매우 유리하다.

 

 

맥주가 물보다 싸다는 독일, 옥토버페스트의 도시 뮌헨에 왔으니 맥주가 빠질 수 없지! 뮌헨은 야외에서 맥주를 마시는 비어가르텐(Biergarten)이 유명하다. 19세기 바이에른 왕국은 맥주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뮌헨의 이자(Isar) 강변에 맥주 양조장을 지었다. 맥주 저장고는 서늘한 환경이 유리하기 때문에 넓은 잎을 가진 밤나무를 심어 그늘을 만들었고, 양조장들은 그 나무 아래 테이블을 설치하고 신선한 맥주와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 비어가르텐의 전통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뮌헨에서 손꼽히는 비어가르텐 아우구스티너 켈러(Augustiner-Keller)는 평일 낮이었는데도 수많은 사람이 활기찬 분위기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1L도 넘어 보이는 커다란 맥주잔을 양손에 여섯 개씩 들고 바쁘게 오고 가는 종업원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아내가 독일에 와서 사랑에 빠진 슈니첼과 나의 최애안주 뉘른베르크 소시지를 주문했다. 그리고 묵직하면서 쌉싸름한 진짜 독일의 향기에 취했다.

 

#3. 모차르트와 사운드 오브 뮤직

잘츠부르크는 뮌헨에 숙소를 잡고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했다. 뮌헨에서 기차로 약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잘츠부르크는 당일치기 여행지로 인기가 많아서 종종 기차표가 매진되곤 하는데, 원래 계획했던 날도 표가 매진이어서 그 다음날 잘츠부르크로 떠났다.

 

잘츠부르크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태어난 도시로 많은 장소에 그의 흔적이 스며있다. 마침 모차르트 탄생 260년이라 거리에서는 다양한 모차르트 관련 행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상점에는 각종 모차르트 기념품이 넘쳐나고, 모차르트가 태어난 집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모차르테움은 모차르트를 기념하기 위해 설립된 연구기관으로 음악가들을 양성하기 위한 음악대학도 운영하고 있다. 나는 여행을 할 때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그곳에 있는 대학을 들러 책을 보고 식사를 하며 대학의 분위기를 느끼곤 한다. 이번에도 역시 음악가인 아내와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많은 나는 곧장 모차르테움 음악대학으로 향했다. 모차르테움 음악대학은 규모가 크진 않고 현대적인 건물이었다. 마침 마스터클래스 강의들이 열리고 있었는데,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들과 가르치는 교수들의 표정에서 그들의 음악을 향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거리 곳곳에서는 모차르트의 곡을 비롯하여 다양한 음악들이 버스킹 중이었는데, 버스킹은 ‘길거리에서 공연하다’라는 의미의 버스크(busk)에서 유래된 용어로 거리에서 자유롭게 공연하는 것을 뜻한다.

 

마차가 지나고 있는 터널을 울리는 소프라노의 연주, 남매로 보이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모차르트 곡 메들리, 그리고 모습은 생소해 보이지만 친숙한 소리가 나는 덜시머(Dulcimer) 연주까지. 잘츠부르크라는 장소에 있으니 왠지 더 예술을 사랑할 것같이 보이는 사람들은 연주를 감상하고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아내와 나는 예술의 거리를 하염없이 걸으며 음악을 느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온 유명한 노래들이 들려왔다.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마치 아이가 맛있는 냄새를 쫓아가듯 익숙하고 향기로운 음악을 따라 걸어갔다. 걸음이 다시 멈춘 곳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노래가 하우스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되고 있는 이층집 앞이었다. 우리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이 한동안 2층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귀 기울이며 감상하였고, 노래가 모두 끝났을 때는 광장에 모인 꽤 많은 관객이 함께 2층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미라벨 정원은 잘츠부르크 신시가지의 미라벨 궁전 앞에 펼쳐진 정원으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여주인공 마리아가 아이들을 데리고 ‘도레미 송’을 불렀던 곳으로 유명하다. 음악의 도시 잘츠부르크에서 이대로 감상만 하다가 마무리 짓는 것은 아무래도 아쉬웠다. 거기다가 <사운드 오브 뮤직>은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삼고초려와 같은 나의 설득에 소프라노 아내는 미라벨 정원을 활기차게 산책하며 도레미 송을 불렀고, 나는 그 장면을 뮤직비디오로 촬영하여 추억으로 남겼다.

 

#4. 누가 뮌헨으로 신혼여행을 가냐?

잘츠부르크를 여행하고 뮌헨으로 돌아오는 길, 기차가 갑자기 멈추고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뮌헨에서 총기 테러가 발생하여 모든 대중교통이 멈췄다는 소식이 기차 방송을 통해 들려온다. 기차는 뮌헨의 가장 외곽 역까지 가서야 비로소 완전히 멈춰 섰고, 우리는 그곳에서 뮌헨 시내에 있는 숙소까지 걸어올 수밖에 없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두운 밤, 거리의 사람들은 서로를 두려운 눈빛으로 의심하며 빠른 걸음을 재촉한다. 나는 그 와중에도 생생한 테러 현장을 사진과 영상으로 찍어서 세계지리 수업자료로 남겼다.

 

겨우겨우 마리엔플라츠(Marienplatz) 근처 호텔에 도착해서 TV를 켜니 세계 각국 뉴스가 뮌헨 총기테러로 도배가 되었다. 그때 불현듯 어제 매진되었던 잘츠부르크행 기차표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오늘 테러가 난 장소와 시간이 어제 우리가 갔던 장소와 시간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고 소름이 끼쳤다. 때마침 국내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뮌헨 테러 관련 기사에 댓글을 단다. “지금 뮌헨으로 신혼여행 왔는데 총기 테러 나서 죽을 뻔함” 그 댓글에 바로 누군가의 댓글이 달린다. “누가 뮌헨으로 신혼여행을 가냐? 마리엔플라츠도 못 가본게 어디서 뻥을 쳐”

 

#5. 지중해의 태양 아래, O Sole Mio!

피렌체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고속열차를 타고 나폴리를 거쳐 곧장 살레르노로 향했다. 살레르노는 휴양지로 유명한 아말피 해안으로 가는 페리가 출발하는 곳이다. 독일에서부터 체코 프라하, 이탈리아 베네치아, 피렌체를 거쳐 약 1,000km가량을 남쪽으로 내려오니 고온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Cs)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아내는 청량한 하늘과 작열하는 태양을 바라보며 나폴리 민요 ‘오 솔레미오’가 왜 여기에서 탄생하게 되었는지 알겠다고 한다. 나 역시 청량한 하늘과 작열하는 태양과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다. ‘그 태양보다도 더 아름다운 너의 눈동자. 오, 나의 태양이여, 그것은 빛나는 너의 눈동자!’

 

고속페리는 거친 물살을 가르며 20분 만에 아말피 해안(Amalfi Coast)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숙소는 아말피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떨어진 아트라니(Atrani)로 잡았다. 아말피는 교통이 편리하고 식당이 많지만,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다소 번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숙소 앞에 앉아 체크인 전에 잠깐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이웃 주민이 더운데 집 안에 들어와 커피 한잔하면서 쉬고 가란다.

 

역시나 외향적이고 친근한 이탈리아 사람들. 하늘에 매달린 알록달록한 우산이 인상적인 아트라니는 아담하지만 조용한 휴양지이다. 캐쥬얼한 식당에서부터 고급스러운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까지 꽤 다양한 식당이 있고, 해변까지 걸어서 1분이면 다다르는 접근성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아트라니에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지중해가 바로 들여다보이는 3층짜리 독채 숙소였다. 밤이라 선선해진 테라스에서 비치 베드에 누워 맥주 한잔하며 영화 보는 순간은 신혼여행 최고의 한 장면이다.

 

 

#6. 함께 하는 여행

3주간의 긴 여정의 마무리는 이천년 전 로마 제국의 중심에서 매듭지었다. 10년 전 나의 첫 유럽 여행에서 만났던 로마는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10년 후 아내와 함께 온 로마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트레비 분수도 스페인 광장도, 콜로세움도 포로 로마노도, 바티칸도 성 베드로 성당도 모두 그대로였지만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확실히 여행은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기억되는 것 같다. 우리는 3주간 더운 날씨에 걷느라 또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느라 애썼다며 서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일상 속으로의 진짜 여행을 시작하며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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