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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독일 북부 여행, 북해와 발트해 사이 어디쯤...

 

어느 날 독일에 간 친구가 유학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전해 왔다. 그래서 나는 친구가 돌아오기 전 그곳을 가보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다시는 그곳에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급하게 겨울방학 시즌에 독일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탄 나는 독일 남부의 뮌헨에 도착해 약 1주일간 뮌헨, 퓌센, 뉘른베르크, 밤베르크, 로텐부르크 등 남부 독일의 유명 관광지를 둘러본 후, 친구가 사는 북독일의 킬(Kiel)이라는 곳으로 갔다. 그렇게 친구와 함께 보낸 북독일의 모습과 경관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킬(Kiel) - 북독일을 관통하는 운하의 도시

킬은 독일의 가장 북쪽에 해당하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Schleswig-Holstein) 주의 주도이고, 인구 약 25만 명의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이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이라는 긴 이름이 그리 낯설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마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인 이재성 선수가 현재 소속된 팀이 ‘홀슈타인 킬’이라는 것을 들어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킬이라는 도시는 독일 북부 발트해 연안에 위치한 항구도시이자, 유틀란트 반도를 가로지르는 킬 운하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로서의 중요성이 더 크다. 킬 항구는 발트해 크루즈 선의 중간 기착지이며, 이곳에서 배를 타면 바다 건너 스칸디나비아 국가인 스웨덴의 예테보리, 노르웨이의 오슬로에 갈 수도 있다. 노르웨이의 피오르에 가보는 것이 꿈이었던 나는, 노르웨이로 향하는 크루즈 선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 보았다.

 

 

세계지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독일 위에는 덴마크라는 국가가 있는데 덴마크가 위치한 땅은 북쪽을 향해 튀어나온 유틀란트 반도이다. 독일의 북동부와 북서부 사이에 이 반도가 위치하고 있어 두 지역의 물류를 위해 이 반도를 동서로 관통하는 운하가 바로 킬에서 시작한다. 처음엔 강인 줄 알았던 곳이 친구의 설명을 듣고 운하라는 것을 알고 나는 매우 놀랐다. 그것을 알고 배가 지나가는 모습을 다리 위에서 보니 운하의 선명한 모습이 나에게 다가왔다.

 

킬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친구의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내가 처음 당황한 것이 있다면 화장실 변기의 높이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한국 사람이라면 변기에 앉았을 때 발이 닿지도 않은 정도의 높이였는데,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평균 신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키가 189㎝로 큰 편인 나는 국내에서는 다른 사람의 키로 인해 시야가 가려지는 경험을 거의 하지 못했는데, 이곳에서는 길을 걸어가며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경험을 많이 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북독일 인근 덴마크와 네덜란드의 평균 신장이 1.83m 정도 된다고 하니 이 지역의 평균 신장도 비슷했을 것이다. 남부 독일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경험이었다. 실제 독일 남부 지역은 라틴 민족의 영향을 많이 받아 북부 지역보다는 평균 신장이 작다.

 

뤼베크(Lübeck) - 한자동맹의 여왕

내가 뤼베크라는 도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생 때 미친 듯이 빠진 어떤 게임 덕분이었다. ‘대항해시대’라는 이름을 가진 이 게임은 15~16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유럽 여러 국가의 다양한 주인공이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는 게임이다. 나는 특히 네덜란드의 지도제작자 캐릭터를 많이 했었는데,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며 각종 지리정보를 모으고 다녔다. 이 게임을 통해 전 세계의 지도를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익히게 되었고, 나중에 고등학교에서 세계지리를 배울 때 세계지도를 다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도움 되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그 게임에는 배경이 되는 시대의 여러 도시가 등장했는데, 그때 본 도시 중 하나가 뤼베크였다. 그 도시가 어떤 특징을 가진 곳인지 몰랐지만, 그 이름을 기억했고, 이 기회에 직접 그곳에 가보게 된 것이다.

 

뤼베크는 ‘한자동맹의 여왕’이라고 불린 발트해의 교역 중심지였다. 한자동맹은 13~17세기에 독일 북쪽과 발트해 연안에 있는 여러 도시 사이에서 이루어졌던 상호교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연맹이다. 당시 발트해에서는 청어가 많이 잡혔는데, 뤼베크 시의 상인들은 청어의 가치를 일찍이 눈치챘다. 염장한 청어를 유통하며 뤼베크는 많은 부를 축적했고 이를 통해 한자동맹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염장을 위해 소금이 많이 필요했는데 뤼베크 남서부의 뤼네부르크(Lüneburg)의 암염 산지에서 공수한 소금을 창고에 보관했고, 도적으로부터 이를 방어하기 위해 도시를 둘러싸고 성을 쌓았다. 현재 뤼베크를 대표하는 홀슈텐 문은 그 성의 입구에 해당한다. 양쪽의 통통한 둥근 몸체가 인상적인 이 성문에는 ‘안으로는 화합, 밖으로는 평화’라는 의미의 CONCORDIA DOMI, FORIS PAX라는 글귀가 남아있다.

 

뤼베크의 구시가 전체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중세풍의 여러 건물과 오래된 범선은 과거의 영광을 보여주었다. 그중 특히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리엔 교회 벽 옆에 있던 악마의 동상이었다. 두 개의 뿔과 긴 턱수염, 그리고 꼬리를 가진 귀엽게 생긴 악마상이 교회 옆 벽에 있었는데, 여기에는 오랜 이야기가 있다. 술을 좋아하는 악마가 교회 건물이 술집인 줄 알고 건물 짓는 것을 도와주었는데, 나중에 교회인 것을 알고 건물을 다 부수려고 하니, 어느 시민이 주변에 술집을 다시 지어준다고 하여 부수려는 것을 참았다는 전설. 알고 보면 그다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서 실소를 금할 수 없지만, 그런 스토리로 인해 작은 악마상에 더 큰 의미가 부여되고, 이를 통해 도시의 매력이 한층 더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쥘트(Sylt)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내가 독일행 비행기를 예약하고 여행을 준비하면서, 친구에게 가장 추천할 만한 곳이 어딘지 물었더니 친구는 큰 고민 없이 ‘쥘트’라는 이름을 말했다. 흔히 우리는 독일이라면 베를린, 뮌헨, 쾰른 등 유명한 도시들을 떠올리는데 왜 이 생소한 이름을 말했냐고 물어보니, 자신이 독일에서 만난 지인들과 여름 휴가를 다녀왔는데 그 풍광이 끝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연 어떤 곳인지 한국에서부터 기대를 하고 있던 곳이 바로 쥘트였다.

 

쥘트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 북서쪽에 있는 섬으로 독일의 최북단에 해당하는 곳이다. 남북 길이는 35km에 달하지만, 폭은 1km밖에 되지 않는 좁고 긴 섬으로 지리학 용어로는 사주(砂洲, sand bar)라고 부른다. 섬이지만 내륙과 기차로 연결되어 있었고, 우리는 후숨(Husum)이라는 도시에서 기차를 한 번 갈아타고 그리 어렵지 않게 쥘트 섬에 들어올 수 있었다. 유럽의 북쪽, 영국과 독일 사이의 바다를 북해라고 부르는데, 북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그대로 맞이하는 이 섬의 서쪽에는 모래 해안이 길게 뻗어있었다.

 

킬에서 이 섬으로 오는 기차를 타고 오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낯설었다. 육지에서 섬에 오기까지 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창밖의 바다에는 풍력발전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를 통해 이곳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풍력발전기의 소음 및 환경 파괴의 이유로 바다 위에 풍력발전기를 짓는 경우가 세계적으로 많다는 것을 볼 수 있는 좋은 사례였다. 기차가 종착역에 도착한 후 우리의 눈에 역 앞에 있는 조형물이 들어왔다. 여러 거인상이 서 있는데, 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몸이 기울어 있었고 머리가 휘날리고 있었다. 이곳에 바람이 많이 분다는 것을 저런 조형물을 통해서 알려주는 것이 재미있었다. 역 주위에는 자전거 대여점이 많았는데, 우리도 자전거를 빌려서 섬을 둘러보기로 했다.

 

 

겨울이라 바람이 더 세게 불었지만,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는 이 섬의 매력은 대단했다. 갈대밭이 펼쳐지고, 드문드문 갈대로 만들 전통 가옥들이 있었다. 나는 그 풍경이 흡사 꿈속에서 보는 것 같아 연신 사진을 찍었다. 바닷가로 가니 바람은 더 강해졌고, 그 바람에 모래가 날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모래 해안 뒤로는 높이가 10m는 넘어가는 거대한 모래언덕이 있었는데, 그 언덕이 모두 바람에 날린 모래가 쌓인 사구(沙丘, sand dune) 지형이었다. 우리나라 충청남도 태안에 있는 신두리 해안사구가 같은 원리로 만들어졌는데, 이곳은 그 규모가 더욱 커서 눈에 잘 들어왔다. 자전거를 타고 가며 중간중간 보이는 하늘과 바다의 풍경은 독일에서 본 가장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플렌스부르크(Flensburg) - 독일과 덴마크의 경계 도시

플렌스부르크는 독일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덴마크와의 경계에 있다. 사진과 같이 시내 곳곳에 독일과 덴마크의 국기가 나란히 걸려있는 모습에서 이곳 가까이에 국경이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역에서 내린 우리는 플렌스부르크의 구시가지를 향해 천천히 걸었는데, 곧 바다와 항구가 보였다. 고풍스러운 배가 정박해 있는 항구의 모습에서 나는 평화로움을 느꼈다. 구시가지의 입구에는 오래된 성문이 있었다. 북문이라는 의미의 ‘Nordertor’라는 이름을 가진 이 문은 1595년에 지어졌다고 하며, 이 도시의 랜드마크이다. 그 문을 들어서면 플렌스부르크 구시가지의 메인 스트리트가 나오는데, 특이하게 길 중간중간 하늘을 보면 신발 여러 켤레가 걸려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나중에 찾아본 바로는 대학생들이 졸업 축하의 의미로 신발을 던져 걸던 것이 전통이 되어 이어졌다고 하는데, 나중에 플렌스부르크를 기억할 때 도시의 상징이라고 했던 북문보다 신발이 마구잡이로 걸려있는 그 모습이 먼저 떠올랐다.

 

구시가지의 오래된 집들과 골목들을 걷다 보니 다양한 물건을 파는 가게를 만날 수 있었다. 그중 우리는 럼주를 파는 가게에 들어갔다. 나는 대항해시대 게임을 통해 오랜 항해를 할 때나 해적들이 즐겨 마시는 술의 이름이 럼(rum)이었고 그것이 꽤 비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술의 생김새나 향 또는 맛을 알지는 못했다. 그랬던 내가 시음으로 나온 럼주를 마시곤 독한 맛에 깜짝 놀랐다. 사실 럼주는 사탕수수를 빚어서 만든 증류주로 도수가 매우 높은 술인데 최소 40도부터 시작한다고. 독일 북부는 사탕수수가 나오지도 않는데 이 술이 유명하다는 것 자체가 과거부터 교역을 많이 해왔다는 증거였다. 나는 기념으로 럼주를 한 병 사왔지만, 독한 맛이 떠올라 귀국 후에도 오랫동안 그 병을 따지 못했다.

 

독일은 ‘맥주순수령’이 있을 정도로 맥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나라이다. 독일 여행을 하는 동안 거의 매일 저녁 맥주를 사 마셨는데, 도시나 지역별로 다양한 맥주가 있어 단 하루도 같은 맥주를 마시지 않았을 정도였다. 대부분의 맥주가 가격도 저렴한데다 맛도 기가 막혔다. 나는 플렌스부르크에서 맥주 공장에 들렀다. 본래 계획에 없던 곳이었는데 기차역에 내리니 바로 인근에 ‘Flensburger’라는 맥주 공장이 있었고 견학하는 시설도 있어 가보기로 했다. 가볍게 둘러본 후 그 공장에서 막 생산된 6종의 맥주 세트를 샀고, 킬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맥주를 마셨다. 기차의 창밖으로 펼쳐지는 북독일 평원과 손에 쥐어진 갓 만든 맥주는 나를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여행자로 만들어 주었다.

 

<에필로그>

킬에 있는 친구의 자취방에서 숙식하며 지내는 동안, 하루는 친구의 후원자인 독일 아저씨의 집에 놀러 갔다. 때마침 그날은 아저씨 딸 산드라의 약혼 파티가 있었다. 멀리 한국에서 후원 학생의 친구가 왔다고 꼭 같이 불러오라고 하셨단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주기 위해 손수 뜬 빨간 목도리 선물을 만들어 놓으셨다. 돼지 뺨 고기로 만들었다는 주요리로 식사를 하고 축하주가 돌았다.

 

술을 곧잘 마시는 나에게 다들 다양한 와인과 맥주를 건네주시길래 주는 대로 받아마셨더니 나는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니 다음 날 아침이었고 친구의 자취방이었다. 친구의 말을 빌리면 그날 저녁, 내가 그들과 같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가관이었단다. 멀리 타국의 어느 가정 약혼 파티에서 동양의 처음 보는 남자가 와서 필름이 끊기는 순간이라니. 그때는 부끄러웠지만 지나고 보니 나는 보통 사람들이 쉽게 하기 힘든 엄청난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독일에서 보았던 어떤 풍경보다 그들이 더 그립다. 내가 다시 독일에 간다면 그들을 만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그랬다. 어딘가에 물건을 두고 오면 다시 그곳에 가지 않을 수도 있는데, 사람을 두고 오면 다시 가야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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