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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바람이 불어오는 곳, 케냐를 가다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라는 책에는 ‘당신이 이곳에 처음 왔다면, 입이 아니라 두 눈을 열어라’는 서부 아프리카 속담이 등장한다. 나는 아프리카 대륙에 5번 발을 내디뎠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배웠다. 전쟁·빈곤·기아·난민과 같은 이미지로만 아프리카 대륙을 만난 이에겐 그곳이 멀고 먼 땅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난 아프리카의 모습은 생동감이 넘치고, 낯선 이를 기꺼이 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다양성과 포용의 땅이었다. 입체적인 그곳은 내가 사는 이곳처럼 어두운 것, 두려운 것, 슬픈 것, 밝은 것, 즐거운 것, 따뜻한 것. 모든 것이 맞다. 원시 부족사회의 모습과 세계의 주요 국제기구가 밀집해있는 곳, 과거와 현재가 함께 숨 쉬는 곳,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다양한 이야기가 공존하는 곳. 인류가 시작되었다던 아프리카 대륙, 동아프리카 지구대 끝자락에서 온몸을 감싸는 빛과 바람, 늘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통해 ‘아반투(Abantu, 인간)’인 나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 한국에서 케냐까지

케냐를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나는 주로 방콕 경유 케냐 항공이나, 두바이 경유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을 이용했다. 최근엔 아디스아바바 경유 에티오피아 항공을 이용해 가는 방법도 있는 것 같다. 14시간 가까이 비행을 해야 하는데, 예전 국적기(대한항공)가 수도 나이로비까지 직항을 운행하던 시절에는 10시간 이내로 편안하게 갈 수 있어서 너무 좋았는데, 지금은 운행을 중단해서 아쉽다.

 

pride of Africa, 케냐 항공

케냐 항공은 방콕을 경유한다. 좌석마다 아프리카의 자존심(pride of Africa)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쓰여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마침 내 좌석은 비디오 영상도 안 나오고 팔걸이도 고장 난 상태였지만, 비행 중간중간 뿌려주는 워터 미스트가 얼굴을 촉촉하게 해주기도 했다. 출발지연에 오버부킹이 빈번하지만, 유쾌한 승무원들의 서비스도 ‘no hurry in Africa’를 경험하게 해주는 좋은 시간이었다. 아! 한국 들어올 때 방콕 경유해서 마사지 받던 것도 좋았다.

 

 

아랍에미리트 항공

아랍에미리트 항공은 두바이를 경유하는데, 반나절 정도 스탑오버를 해야 한다. 보통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서 반나절 정도 시티투어를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여권으로는 90일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 급 애국심에 불타기도 한다. 두바이에서 나이로비로 들어갈 때 남는 좌석은 비즈니스 클래스로 업그레이드 서비스가 되기도 하니 혹시 모를 행운을 기대해도 좋다.

 

# 나이로비에서 코어까지

공항에서

입국할 때 꼭 챙겨야 하는 yellow card! 황열주사는 한번 맞으면 10년간 유효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천공항, 국립의료원에서 맞을 수 있으나 가끔 예약이 가득 차 못 맞을 수도 있으니 미리미리 챙길 것. 환전할 때는 US100달러짜리를 챙기는 것이 좋다. 케냐는 실링을 화폐로 쓰고 있는데 100달러가 귀해서 한 번에 환전해야 더 저렴하게 할 수 있다. 이동은 치안 문제도 있고 도로 사정도 좋지 않으니 현지 여행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물론 KBS(Kenya Bus System)라는 이름의 버스가 너무 신기하지만, 상상 이상의 러시아워를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케냐는 대륙 내부로 연결되는 도로망 끝에 위치한 허브지역이라 대륙 각지로 흩어지는 화물차가 많아서 도로 사정이 더 좋지 않다. 그래서 보통 경비행기를 타고 인근의 다른 나라나 국내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근거리 노선을 운행하는 윌슨 공항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케냐산의 만년설을 보는 기분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곳이 '차이나프리카'? 중국자본 극성

설마 아프리카 대륙의 모든 지역을 ‘빈곤’의 프레임으로 보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면, 나이로비의 다양한 쇼핑몰에 가보기를 추천한다. 우리 팀은 여기가 이마트인지 월마트인지 헷갈리는 케냐 마트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나꾸마트(Nakumatt)에서 식재료를 구입하기도 하고, 케냐AA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자바 하우스의 자바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과거 유럽인들의 식민지로 휴양지 역할을 했던 곳이라 고급 주거지도 많고, 저렴한 가격에 고급 레스토랑에서 분위기를 낼 수도 있다. 마트 주차장에서 나에게 ‘니하오~’하고 말을 걸던 사람들을 자주 만나면서, 차이나프리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국자본이 아프리카에 많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흑인 메이드가 만들어주는 김치를 맛보고 싶다면?

나이로비에서는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도 가보고, 사파리 내 럭셔리 로지(lodge)도 가봤지만, 최고는 한인 게스트하우스라고 생각한다. 나이로비 힐링검 지역에 위치하고 깨끗하고 조용하다. 무엇보다 현지에서 직접 담근 김치부터, 최고의 한식 뷔페를 맛볼 수 있어 우리나라의 비즈니스 하는 분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곳이다. 인터넷 사용도 가능하고, 현지에서 오래 살고 계신 사장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나 역시도 급하게 병원을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긴 적이 있었는데, 깨끗하고 좋은 병원으로 연결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에 직접 죽까지 끓여주셨던 사장님 내외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여행지에서는 현지에 아는 사람 있는 것이 최고 아니던가!).

 

 

사파리 투어와 동아프리카 지구대

아프리카에 다녀왔다고 하면 “어떤 동물을 보고 왔느냐?”를 묻는 사람들이 많다. 적도 바로 위에 위치한 케냐는 열대 밀림이 우거져 있을 것 같지만 고산지대라 적당한 기온과 건기·우기의 반복 덕분에 넓은 초원이 펼쳐진 곳이 많다. 여행을 의미하는 아랍어 사프라(Safra)에서 유래된 사파리(Safari)는 원래 유럽인들이 4륜 구동차량을 타고 동물을 사냥하러 떠나는 수렵여행이었다. 야생 생태계가 무분별하게 개발되면서 1973년 멸종위기 종에 대한 야생동식물 국제거래에 대한 워싱턴협약이 체결되고, 관찰 중심의 현재 사파리가 정착될 수 있었다. 케냐 역시 1990년대 후반부터 지속가능한 관광에 대해 고민하고 국립공원이나 동물보호구역 안의 숙박시설인 로지에 대해서 eco 등급을 매기고 있다. 그래서 결론은! 야생동물 보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

 

# 코어(Korr)

바람이 부는 곳이라는 뜻의 케냐 코어지역은 소수 유목민 렌딜레 족이 살고 있다. 이곳 타운(우리나라로 치면 시골의 읍·면 정도의 규모)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교통수단은 비포장길을 달려야 하니 오토바이, 4륜구동, 전통 부족사람들은 당나귀, 그리고 걷기다. 나는 국제개발협력 NGO인 호이(HoE, Hope is Education) 팀원들과 함께 이곳에서 교사자격증을 획득하지 못한 선생님들을 위한 세미나, 사막화 연구,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 등을 수행했다. 무엇이든 한해가 다르게 변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이곳에서의 시간을 소개한다.

 

아미나′s 게스트하우스 최고의 명당은 평상

타운 안에는 샤워시설, 침대까지 갖춘 우리 같은 방문객을 위한 아미나의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아카시 나무가 정말 많은데 나뭇잎이 없어 보여도 그것도 나무라고 우리에게 그늘을 제공한다. 평상 위에 누워서 쏟아지는 별을 보고, 그늘에서 바람을 맞다 보면 시간여행자가 되어 세상을 멈추고, 정지화면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 설거지나 빨래를 할 때도 정해진 물을 가지고 아껴서 해야 하기 때문에 물 한 컵으로 세수하던 순간들마저도 감사하다.

 

 

마니아타에선 차이를 마셔야지

타운에서 차로 1~2시간 넘게 달리면 도착하는 곱(마을). 이곳에서는 마니아타라는 집에서 사람들이 산다. 1평 남짓한 공간에 나뭇가지를 연결해 돔 모양으로 만든 다음, 낙타가죽을 덮는다. 이곳 역시도 가뭄으로 동물이 귀해지면서 외부 국제기구에서 가져왔던 식량 포대를 대신 사용하기도 한다. 막상 들어가 보면 잠자는 곳, 요리하는 곳이 다 분리되어 있다. 낙타 젖에 설탕을 듬뿍 넣고, 찻잎 몇 장으로 우려내는 차이(tea)는 처음엔 너무 달다고 생각했는데 원주민들과 함께 물을 뜨러 갔다 오면서 당 떨어졌을 땐 차이가 최고구나! 했다. 우리도 진짜 힘들 땐 믹스커피가 생각나듯.

 

사람보다 낙타, 염소고기엔 콜라

와디(평소에는 말라 있다가 큰비가 오면 하천으로 변한다) 근처에는 우물이 많다. 그리고 낙타 똥도 많다. 똥을 피해 걸을 수 없으니 일단 확실히 건조된 것으로 예상되는 녀석들을 시원하게 밟아주면 된다. 물을 마실 수 있는 순서는 늘 낙타가 우선이다. “나이로비로 왜 가지 않냐”는 질문에 “가족(낙타)이 여기에서만 살 수 있으니까”라는 말이 자연스러운 곳. 전통음식인 야마초마(염소 숯불구이), 여기에 콜라가 함께하는 신기한 콜라보. 콜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있다. 물은 없어도 콜라는 판매되는 아이러니!!

 

내 이름은 일요일

원주민들은 내가 그들의 말·노래·춤을 배우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곳에서 자고, 그들의 삶을 함께 누리는 모습을 보며 나에게 부족의 이름을 붙여 주었다. 현지 여인들이 쓰는 모자를 쓰고 함께 춤을 추고, 현지어로 랩 공연을 하고, 나무 아래에서 피리를 불고, 만나는 아이들에게 손을 꽉 잡았다가 놓으면서 전기 통하는 마법을 해준다며 마을을 휘젓고 다니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던 고마운 사람들. 같이 갔던 사람들은 비를 오게 하는 사람(헤르켄토), 낙타의 왕(갈투소) 등의 멋진 이름을 받았는데! 나의 마미는 일요일에 왔다고 아하도(ahado, Sunday라는 뜻)라고 지어주셨다. 나는 내 맘대로 일요일은 신의 축복이 가득한 날이요, 난 태양 같은 존재라며 유머를 날렸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일요일이야말로 우리의 일상에 쉼을 주는 생명력이 샘솟는 시간이란 생각이 든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anavea(아나베아, peace with you)를 외치는 사람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늘 공존하기에 매일 매일의 감사와 평화를 기원하는 사람들. 지면에 담긴 사진 너머로 가슴을 뚫어주는 코어의 바람이 이 글을 읽는 분들의 마음에도 닿기를 기대해본다. anav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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