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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연변(延邊)에서 바라본, 갈 수 없는 그곳

대학원 입학 후 첫 수업 날, 지도 교수님께서 자신을 지리적으로 소개해보라고 하셨다. 그때 날 소개했던 말은 “한국·영국·미국, 3개의 국가를 이름에 품고 있는 곽영미 입니다”였다. 다행히 교수님께서 단번에 이름이 외워졌다고 말씀해주셨고, 촌스럽다고 싫어했던 내 이름이 지리교사인 내게 퍽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지는 내 이름처럼 3개의 국가를 품고 있는 곳이다. 내 짧은 경험이 그 국가를 모두 대변해주지는 못하겠지만, 학생들의 집중도와 흥미를 높이고 교과서 밖의 지식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업 중에 내 여행 경험을 많이 이야기해준다.

그런데 북한은 여행 경험도 없을뿐더러 잘 알지도 못하고, 이산가족의 아픔을 직접 겪고 있지 않아서 종종 그 단원의 수업이 빈껍데기 같이 느껴진다. 그 북한을 곁눈질로나마 볼 수 있다니! 날래날래 가야지~!

 

 

#1. 중국 고속철을 경험하다.

비행기로만 이동해도 되지만 중국의 고속철을 타보고 싶어서 굳이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장춘 롱지아 공항에 내려 기차역으로 이동하려고 하니, 우리나라처럼 공항에서 역까지 바로 연결되는 길이 없었다. 무려 10분 정도를 걸어 장춘 롱지아 역에 다다르니 홍등과 새빨간 글자들이 중국임을 실감케 해주었다. 이곳에서 바로 고속철이 출발하는 것은 아니고, 길림역으로 가서 고속철로 환승해야 하는데 공항도 아닌 기차역에서 짐 수색이 공항만큼이나 깐깐했다. 일반열차를 타고 길림에서 내려, 앞서 탄 열차의 5배의 가격을 주고 훈춘행 고속철을 탔다. 훈춘은 연변 조선족자치주에 있는 중국의 최동단 도시로, 만주어로 변경이란 뜻이다. 1998년부터 운영하기 시작한 중국의 고속철도는 드넓은 대륙을 포용하기 위해 스위스·독일·프랑스·일본·캐나다에서 기술을 인수하고 제휴하여 2008년에는 시속 305㎞의 베이징~텐진 고속철도가, 2009년에는 세계 최장이라는 우한~광주 고속철도가 개통되었다. 창밖의 풍경만 조금 다를 뿐 한국의 KTX나 SRT와 다를 바 없어 큰 감흥은 없었지만, 학생들에게 이야기해줄 거리 하나는 마련했으니 그것으로 됐다.

 

 

#2. 선을 못 넘는 녀석들

2012년, 태국 치앙콩에서 라오스로 넘어가려 하는데 폭이 좁은 강이 국경이어서 배를 타고 1분 남짓 가면 됐었다. 육안으로도 라오스가 보이는데 태국 출입국 관리소에서 도장을 안 받아와서 뱃삯을 또 내고 돌아가서 도장을 받아왔던 기억이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보다도 가장 강하게 국경의 힘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그 중요성을 간과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국경이라고 하면 철저하게 막혀있는, 폐쇄적 공간을 떠올렸나 보다. 짐이나 몸을 수색하는 엑스레이도 없고, 높은 담이나 철조망도 없고, 무장한 경찰도 없는 평화로운 강가는 내게 국경의 이미지를 다시 인식하게 해주었다. 국가에 따라서는 국경이 그저 ‘선(line)’일 뿐인 평화로운 곳도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유럽 여행할 때처럼 국경의 존재 자체를 느끼지 못하고 넘어가는 곳도 많다. 하지만 내가 서 있는 이 국경은 뭔가 숨 막히고 가슴 한편이 아련하게 아파지는 장소였다.

 

훈춘에서 버스를 타고 두만강 하류에 위치한 권하세관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북한으로 들어가기 위해 출국심사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차들이 있었다. 이곳은 북한 나진-선봉에서 약 50㎞ 떨어져 있는 국경 출입로로 육로와 해로의 이동을 모두 관장한다고 한다. 트럭에 실려 이동하는 컨테이너가 중국과 북한 사이에 무역이 활발함을 보여주었지만, 나는 저 너머에 있다는 북한을 그냥 바라만 볼 뿐이었다. 이런 상황은 방천을 지나 도문변경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폭도 넓지 않고 수심도 그리 깊어 보이지 않는 두만강 너머, 나무 하나 없는 민둥산과 군데군데 김부자 사진과 찬양 문구가 있는 건물들이 보였다. 이 두만강 강변공원을 걷다 보면 다리 색이 반반 나뉜 도문대교를 볼 수 있는데, 주황색 부분까지가 중국이고 파란색 부분이 북한이다. ‘선을 넘는 녀석들’을 보면 프랑스와 독일 국경이 있는 다리에서 한발씩 걸쳐놓고 사진을 찍던데 이곳은 그런 행동이 불가능하다. 인터넷에 보면 중국령까지 다리를 건너보기도 하던데 이날은 문이 닫혀있었다. 우리를 향한 북한의 마음이 닫혀있듯이….

 

 

#3. 한눈에 삼국을 바라보다(一眼望三國)

훈춘역에 내리자마자 붉은색 한자가 눈에 들어왔다. 중국어도 모르는 내가 이 글자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한글·영어·러시아어로도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변 조선족자치주에서는 모든 간판에 한글을 위(왼쪽)에, 한자를 아래(오른쪽)에 쓰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러시아어까지 3개 국어로 써진 간판들이 정말 많다. 아무리 국경이라지만 왜? 이유는 바로 저렴한 물가였다. 러시아인들이 훈춘시에서 싸게 생필품을 구입해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러시아풍 건물로 가득 찬 러시아 거리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한글과 한자가 같이 쓰여 있어 외국인 듯 한국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글씨뿐 아니라 삼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방천이다. 방천은 사구 사이에 둑을 만들어 길을 냈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며 중국·북한·러시아의 국경이 만나는 곳이다. 기념품 가게에 들어서자 중국·북한·러시아의 국기와 물건이 모두 있어 지금 어느 나라에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기념품 가게를 나와 노란 미니버스를 타고 용호각으로 이동했다. 용호각의 원래의 이름은 망해각이라고 한다. 1886년, 청과 러시아 국경문제 협상 당시 청의 대사였던 오대징이 과음하는 바람에 협상에 패하여 중국 영토를 표시하는 토자패가 동해까지 닿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5㎞ 앞두고 동해를 차지 못한 만취의 슬픔을 가진 용호각에 오르면 벽에 써진 글자처럼 일안망삼국(一眼望三國)할 수 있게 되는데, 삼국 국기가 있는 곳에서 보이는 중앙의 흰 건물까지가 중국 영토, 왼쪽의 호수와 평원은 러시아 영토, 오른쪽의 두만강을 통해 러시아의 핫산과 연결되는 철교 너머는 북한 영토이다. 삼국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이름의 특성과 비슷해서일까,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4. 장백산? 백두산!

백두산은 동서남북 방향으로 동파·서파·남파·북파 코스가 있다. 동파와 남파 코스는 북한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지는 두 개다. 백두산에 오르려면 연길에 숙소를 잡는 것이 보통인데, 숙소에 백두산 예약을 부탁하면 한자가 가득한 버스 타는 곳 확정 문자를 받을 수 있고, 조선족이 운영하는 민박에 머무르면 한국어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서파 코스는 많이 걸어야 하는데다가 무려 1,442개의 계단이 있다고 해서 연길에서 이도백하로 이동 후 천지 가까이 차로 이동할 수 있는 북파 코스를 택했다.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서 백두산 중국식 명칭인 장백산이 크게 적힌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한 뒤 줄 서서 기다리면 큰 버스를 타고 산 초입까지 이동할 수 있다. 나는 대략 20분 정도 기다려서 버스를 탔는데, 인구대국 중국인들의 단체관광과 운 나쁘게 겹치면 4~5시간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단다. 대형 버스에서 내리면 다시 표를 구입해서 하얀 봉고차로 환승 후, 천지 입구까지 이동하는데 다들 알다시피 높은 산을 올라가는 도로는 구불구불! 그런데 허술한 도로 가드레일 옆 아찔한 낭떠러지가 보이고, 웬만한 롤러코스터 저리 가라 식의 노브레이크 커브 운전에 몸이 막 흔들리는데, 기사 아저씨가 10분 타이머를 맞춰놓고 운전하시는 게 아닌가! 덕분에 고도에 따라 변하는 백두산 식생의 모습은 제대로 눈에 담지 못하고 비명으로 가득 채웠던 봉고차와 이별했다.

 

봉고차에서 내려 마치 제주 올레길 같은 나무계단을 조금 올라가면 탄성을 자아내는 천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천지를 보기엔 7~8월이 적기이지만 백두산 날씨는 워낙 변덕스러워서 산 밑에서의 날씨로 산 위의 날씨를 예측할 수 없는데, 운이 좋았는지 맑고 눈부시게 푸르른 천지가 날 반겨주었다. 추울까 봐 챙겨간 등산 점퍼가 무색하게 날씨가 따뜻했고, 화산이 만들어낸 신비스러운 천지 부근에 아직 녹지 않은 눈의 차가운 촉감이 꿈이 아님을 실감케 해주었다. 좁은 천지에 가득한 사람 때문에 급하게 사진을 촬영하고 북한 쪽 백두산도 열심히 눈에 담았다. 북한은 천지의 물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인지 천지로 향하는 계단이 눈에 띄었다. 제한속도 30㎞를 지키는 것이 맞는 것인가…. 봉고차를 타고 하산하면서 심한 멀미에 시달렸다. 유황의 매캐한 냄새와 삶은 달걀의 비릿한 냄새가 가득한 온천 지대를 지나 장백폭포에서 백두산 물의 기를 받는 것으로 백두산 관광을 마무리했다.

 

#5. 남쪽 동무, 반갑습네다.

북한 식당 여종업원 집단 탈북 사건 이후 여파가 있을 만도 한데 연길에는 여전히 영업 중인 북한 식당이 꽤 있었다. 천지의 감흥은 아직 남아있었지만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북한 식당을 방문했는데 정말 남남북녀인 것인지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어여쁜 북한 여종업원들이 인사를 해주니 신기함에 피곤이 사르르 녹았다. 음식도 생각보다 큰 이질감이 들지 않았고 맛있었다. 기름진 중국식 음식을 먹다가 북한 식당에 오니 긴 외국여행 끝에 한식당을 찾아온 느낌이었다. 종업원들이 ‘동무’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이 신기해서 음식보다도 그들에게 관심을 쏟으며 사진도 찍었는데, 결국 “사진은 찍지 마시라요”라는 날카로운 책망을 들었다. 다른 외국인에게는 대화도 좀 후한 것 같은데 남한 사람인 나에게는 말도 아끼는 것 같았다. 최근 유엔 안보리가 결의한 해외 파견 북한 근로자 철수 시한이 임박하여 중국에 문 닫는 북한 식당들이 많다고 하던데, 잘 있으려나 궁금하네. 북쪽 동무!

 

 

#6. 중국의 학교 탐방

연길의 북한 식당을 찾아가는 길에 룡정중학교 건물이 눈에 띄었다. 직업병(?)이 발동하여 운동장 밖에서 학교를 살펴보았다.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학생들은 체육복을 입고 삼삼오오 모여 있다가 가방을 메고 교문을 빠져나오곤 했었다. 교무실로 보이는 ‘교수 청사’라는 건물이 하나 따로 있었고, 퇴근하신 선생님들도 계시는지 불 꺼진 곳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학교 외벽 게시판에 있는 ‘우수교사 풍채’였다. 중국은 무슨 기준으로 우수교사를 선정하는지, 그리고 그들도 초상권이 있을 텐데 이렇게 사진을 공개적으로 붙여놓아도 되는지 궁금했다. 다음날은 중국의 대학 캠퍼스를 거닐어보고 싶은 생각에 연변대학을 방문했다. 연변대 정문 맞은편에 대학가 상점들을 집대성한 듯한 ‘대학성’이란 건물이 재밌었고 한국 프랜차이즈 기업들도 많이 보였다. 자매결연을 한 것인지 서울대학교 정문이 새겨져 있는 연변대 정문을 지나 지리과가 있는 건물도 찾아보고 학생식당에 들러 음료수도 사 먹어 보며 캠퍼스 투어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에필로그>

여태까지 다녀온 여행지 중 글을 쓸 장소를 정하고 집필을 반 정도 했을 때 우한 폐렴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시의적절한 것인지 하필 중국 여행기를 쓰고 있을 때 중국발 신종 바이러스가 나타나서 마음 아프긴 하지만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가치가 충분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번 여행에서 연변 조선족자치주 일대만 둘러봤는데, 역시 대국은 대국이다. 중국 지도를 펼쳐보니 이번 여행지가 어찌나 조그마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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