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기사슴 섬 강화도에 이어 이제 남해의 작은 섬 소록도를 찾아갑니다. 저로서는 세 번째 소록도 방문입니다. 소록도를 향해 달리고 있는 제 차에는 저 말고 두 사람이 더 타고 있습니다. 모두 저보다 더 소록도를 잘 아는 사람들일 듯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내게 말을 걸지는 않고 일방적으로 내게 이야기하려고만 합니다. 한 사람은 한하운이란 이름을 가졌고 다른 사람은 이청준이란 이름을 가졌습니다. 이쯤이면 독자 여러분들은 ‘자네, 그게 뭔 소린가? 이미 작고한 사람들 아닌가? 놀리는 건가?’하고 나무라실지 모르겠네요. 그렇습니다. 두 분은 모두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책이 남아 있어 소록도로 향하는 내게 자꾸만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남긴 책은 내내 차 뒷좌석을 지키며 한센병을 앓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고흥읍 아래 녹동까지 오는 데는 도로가 시원스럽게 확장되었음에도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10여 년 전 폐차 직전 친구 차에 동승해서 이곳까지 왔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소록도(小鹿島). 얼마나 예쁜 이름을 가진 섬인지 모릅니다. 작은 사슴, 아기 사슴의 섬! 하늘에서 볼 때 섬의…
2009-04-01 09:00퇴직을 하고도 80을 넘긴 선배들이 기라성인데 언감생심 내가 후배들에게 무슨 말을 한다는 것은 분명 주제 넘은 일이다. 나는 2000년 이른바 햇볕정책을 표방하던 김대중 정부가 정년을 단축함에 따라 어느 날 문득 준비되지 않은 채 62세의 피 끓는 나이로 교직을 떠난 몸이다. 갑자기 당한 일이라 나는 날개가 부러진 비둘기처럼 휘청거리는 몸으로 거리를 배회했다. 생뚱맞게 지난 동료들에게 안부를 묻기도 하고 생각나는 제자들에게 전화도 해봤지만 그들로부터 나의 헝클어진 정서를 보상(補償)받을 수는 없었다. 주변은 너무도 고요했고 나는 그 하얀 공백의 중심에 있었다. 누구라도 내 손을 잡아주며 위로 한마디라도 건넨다면 금세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고 내 명치 끝을 밀고 올라오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서운함을 누를 수가 없었다. 재직시절, 나와 너무도 가까이 교분을 하던 교육동지들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하고 형님 동생 하면서 혈친(血親)처럼 서로 돕고 아껴주던 선후배들도 없어졌다. 청년교사 때부터 내가 문턱이 닳도록 다니던 교직단체도 점점 멀어져 가더니 지금은 피안(彼岸)의 저쪽 침침한 시야 언저리로 멀어져 갔다. 내 모습은 마치 무장해제된 병사처럼 추레해졌고 내 주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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