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에 이런 말이 나온다. “子路問政(자로문정)한대 子曰先之勞之(자왈선지로지)니라 請益(청익)한대 曰無倦(왈무권)이니라” 이 말의 뜻은 ‘자로가 정치에 대해서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먼저 하고 수고롭게 하라. 자로가 더 가르침을 청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게으름이 없게 하라고 하셨다.’란 뜻이다. 자로는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공자께 정치가 무엇인지 물은 것이다. 그때 공자께서 先之勞之(선지로지)라고 하셨다. ‘먼저 수고하라’고 하신 것이다. 이 말씀 속에는 정치가들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쳤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라 생각된다. 先之勞之(선지로지)의 자세가 참 중요한 것 같다. 先之勞之(선지로지)는 본을 보이는 자세다. 교육은 본보이기와 본받기이다. 교육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고 행함으로 본을 보이는 것이다. 자녀들은 부모님을 닮지만 학생들은 선생님을 닮게 되어 있다. 선생님이 본을 보이지 않고 말로만 하면 그 말은 힘을 잃게 되고 만다. 정치가나 선생님은 본을 보이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본을 보이는 일을 예사로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본을 보이기는 쉽지 않다. 말하기는 쉽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말하기는 천천히 하
2009-07-17 12:51우리나라 기념일 중에는 ‘( )의 날’도 있다. 근대교과서 탄생 110주년 기념행사 자리에서 처음 논의가 시작되어, 해방 후 최초의 교과서 「초등 1학년 국어」의 편찬일인 10월 5일을 이 날로 제정했다. 이는 교과서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교과서를 활용성이 우월한 교육매체로 계승·발전시키자는 취지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희망의 세상에서 ‘철수와 영이’가 함께 공부하고 어린이의 정다운 친구 ‘바둑이’와 어울리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책 탄생일이 마침내 기념일로 부활한 것이다. 이 날은 바로 ‘교과서의 날’이다.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교과서를 생각하는 정서가 남달랐다. ‘책 중의 책’으로 여길 만큼 교과서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새 책을 받으면 먼저 표지를 정성껏 포장하고, 비를 맞아도 교과서만은 절대 젖지 않도록 애지중지했다. 지독한 가난에 교과서 살 돈이 없어 국어, 산수 책만 주문하거나 헌 책을 물려받아 공부한 사람도 있었으니, 교과서야말로 학창시절 삶의 애환이 담긴 숙명적인 동반자였다. 교과서는 우리 근대사와 함께 가장 오랜 역사를 이어온 대표적인 교육 수단으로써 ‘교과서 보는 눈은 곧 우리교육을 보는 눈’이었다. 그런
2009-07-16 15:00논어 자한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譬如爲山(비여위산)에 未成一簣(미성일궤)하여 止(지)도 吾止也(오지야)며 譬如平地(비여평지)에 雖覆一簣(수복일궤)나 進(진)도 吾往也(오왕야)니라.” 이 말의 뜻은 ‘비유하건대(譬) 산을 쌓아올리다가 흙 한 삼태기(簣)가 모자라는 데서 그만 두었다 치더라도 나 자신이 중지한 것이다. 비유하건대 땅을 고르는데 비록 한 삼태기의 흙을 부어 진전이 되었다면 그것도 나 자신이 앞으로 나아간 것이다.’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공자께서 말씀하신 것인데 여러 가지를 가르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우선 학문에는 노력이 필요함을 말씀하고 있다. 학문이 산을 쌓는 것과 같고 땅을 고르는 것과 같다고 하셨는데 산을 쌓으려면 많은 땀과 수고가 필요하지 않는가? 땅을 고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울퉁불퉁한 땅을 평지로 고르게 하려면 엄청난 땀과 수고가 필요한 것이다. 다음은 학문에는 중도에 그침이 없음을 가르치고 있다. 아무리 산을 쌓아올리다가도 흙 한 삼태기가 모자라는 데서, 즉 거의 다 이루어가는데 중단하였다고 하면 나의 학문을 이루지 못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학문을 중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2009-07-14 09:42논어 술이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默而識之(묵이지지)하며 學而不厭(학이불염)하며 誨人不倦(회인불권)이 何有於我哉(하유어아재)오.” 이 말의 뜻은 ‘묵묵히 마음속에 새겨 두고, 배우기에 싫증내지 아니하며, 남을 가르치기를 게으름을 피울 줄 모르는 이 세 가지 일을 나는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구나’란 뜻이다. 이 말씀은 공자께서 하신 말씀이다. 공자께서 스스로에 대한 평가이다. 이 말씀 속에서 공자께서는 좋은 학생이요, 좋은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스스로의 평가에서 겸손이 묻어나옴을 보게 된다. 자기는 배워 얻은 것을 마음에 새겨두고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렇게 못하고 있다고 하셨다. 默而識之(묵이지지)는 잠잠히(默) 마음속에 새겼다는 뜻이고 마음속에 새겨 잊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공자께서는 공부를 요란스럽게 하지 않았다. 잠잠히 마음속에 새겨두었다. 배운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복습을 철저히 하였다. 공부하는 표시를 내지 않았다.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조용한 가운데 공부를 철저히 하였다. 쉬지 않고 하였다. 꾸준히 하였다. 날마다 새로움이 있었다. 날마다 전진이 있었다. 그런데도 자기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고 자신
2009-07-12 19:57
상대방과 만날 시간 약속이 다가왔는데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다면 마음이 다급해 진다. 운전 중일 경우, 차량 사고가 일어나기 쉽다. 운전 경력 16년만에 처음으로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다. 상대방 잘못은 없고 온통 내 잘못이다. 문화센터 주차장에서 정면 주차를 하려다 옆차량을 살짝 민 것이다. 후진해서 살펴보니 내 차량 오른쪽이 약간 긁혔고 상대방 차량은 운전석쪽 문이 약간 밀려 들어갔다. 내 차량이나 상대방 차량이나 눈에 조금 거슬릴 뿐 그냥 운행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미관상 안 좋을 뿐이다. “야, 이럴 땐 어찌하는 것이 좋을까?” 방법은 두 가지. 본 사람도 없겠다 시치미 뚝 떼고 그냥 다른 곳에 주차시키는 것이다. 이른바 뺑소니. 인명 사고도 아니고 커다란 대물사고도 아니고 하니 그냥 양심의 문을 닫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연락처를 남기는 것. 잘못을 시인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겠다는 표시인 것이다. 양심적이고 신사적인 행동이다.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포스트잇에 전화번호를 써서 상대방 유리창에 붙여놓았다. 그 때부터 내 정신이 아니다. 온통 신경은 핸드폰에 가 있다. 전시회 취재를 하는데도 불안하기만 하다. 취재를 마치고 주차장에 가
2009-07-12 19:56학교에서는 사소한 폭력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그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로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는데서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상대방을 불쾌하게 하는 것인가? 소학(小學) 경신편에 보면 상대방을 화나게 만들고 불쾌하게 만들며 기분 나쁘게 하는 일이 많이 나와 있다. 그런 것들을 조심하면 학교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시비도 줄일 수 있고 잦은 학교폭력도 많이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소학(小學) 경신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曲禮 曰(곡례 왈) 毋側聽(무측청)하고 毋噭應(무교응)하며 毋淫視(무음시)하며 毋怠荒(무태황)하며 遊毋倨(유무거)하며 立毋跛(입무파)하며 坐毋箕(좌무기)하며 寢毋伏(침무복)하며 斂髮毋髢(렴발무체)하며 冠毋免(관무면)하며 勞毋袒(노무단)하며 暑毋褰裳(서무건상)이니라” 이 말의 뜻은 ‘곡례에 말하기를, 귀를 벽에 대고 엿듣지 말며, 소리를 높여서 대답하지 말며, 곁눈으로 흘겨보지 말며, 몸가짐과 동작을 게으르고 해이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걸어다닐 때 거만한 자세를 하지 말며, 설 때 몸을 한 쪽 다리에만 의지하여 기울게 서지 말며, 앉을 때 두 다리를 뻗어서 키 모양
2009-07-12 08:37논어 헌문편에 이런 글이 나온다. “古之學者爲己(고지학자위기)러니 今之學者爲人(금지학자위인)이로다”. 이 말은 ‘옛날 배우는 사람은 자기를 위하였는데 지금 공부하는 사람들은 남을 위한다.’는 뜻이다. 古之學者(고지학자) 즉 옛날에 공부하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배웠다. 옛날의 배움에 임한 사람들, 소위 학자(學者)들은 몸을 위하여 배웠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수양을 위해서 배운 것이다. 배움의 목적을 자기의 수양에 둔 것이었다. 자기의 사람됨이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古之學者爲己(고지학자위기)를 줄여서 爲己之學(위기지학)이라고 하는데 이는 자기 자신의 수양을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성에 초점을 두고 공부에 임한 것이었다. 남을 위해, 나라를 위해, 세계를 위해 공부를 해야지 하는 마음이 없었다. 今之學者(금지학자) 즉 오늘날 공부하는 사람들은 남을 위해 배웠다. 남에게 유익을 끼치기 위해 공부하였다. 자신의 유익은 말할 것도 없고 남에게 유익을 주고 가족에게, 이웃에게, 국가에, 세계에 유익을 주기 위해 배웠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자기 수양에 대한 것은 뒷전이었다. 古之學者爲己(고지학자위기)와 今之學者爲人(금지학자위
2009-07-11 08:51기초공사를 서두르면 건물이 붕괴된다. 는 말은 기초교육이 부실하면 아이교육은 실패한다. 는 말과 연관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아주 어린나이에 영재성이 보이면 천재라고 생각하며 요란하게 외국까지 가서 영재교육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세인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그들이 현재는 과연 훌륭한 인재로서 인류와 사회를 위해 공헌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아이답게 자라도록 부모나 선생님들이 기다려 줄줄 알아야 한다. 어른의 기준으로 만든 틀 속에 넣으려고 지나친 간섭을 하며 몰아세우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성장과정을 관찰하고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 건물의 기초공사처럼 아이들의 기초를 튼튼하게 키우는 현명한 지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을 살펴보자. 아이들의 발달수준이 예전보다는 빨라진 오늘날 학부모님들은 조기교육에 온갖 열정을 쏟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내 나라 언어와 풍습에 맞는 인성의 바탕도 형성되기 전에 유학길에 올라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과 떨어져서 생활하게 하는 것은 건물의 기초공사를 바르게 하는 것과 비교가 되는 것이다. 서둘러서 기초공사를 한 다음 건물을 올릴 경우 사상누각(砂上樓閣)이 아닐까? 아
2009-07-10 12:35논어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哀公問 (애공문) 弟子孰爲好學 (제자숙위호학) 孔子對曰 (공자대왈) 有顔回者好學 (유안회자호학) 不遷怒 (불천노) 不貳過 (불이과) 不幸短命死矣 (불행단명사의) 今也則亡 (금야즉망) 未聞好學者也 (미문호학자야)” 해석은 이러하다. ‘애공이 물었다. 제자 중에 누가 배우기를 좋아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안회라는 사람이 있어 배우기를 좋아했습니다. 노여움을 옮기지 않았고, 같은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불행히도 단명하여 죽었습니다. 지금은 없습니다. (지금은)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안회라는 사람은 공자의 애제자다. 수제자라고 할 수 있다. 공자께서 자기의 제자 중에 가장 학문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안회만큼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얼마나 학문을 좋아하였기에 그 많은 제자 중에 안회만큼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을까? 아마 안회는 학문 사랑하기를 임 사랑하듯 했을 것이다. 자나깨나 임 생각하듯이 자나깨나 학문 생각했을 것이다. 자면서도 학문 생각하고 깨어났어도 학문 생각했을 것이다. 자면서도 공부하는 꿈 꿨을 것이고 일어나서고 공부했을 것이다.
2009-07-09 16:43논어의 헌문편 헌문편(憲問篇)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愛之란 能勿勞乎아 忠焉이란 能勿誨乎아.(애지란 능물로호아 충언이란 능물회호아)” 이 말의 뜻은 ‘사랑한다고 근로시키지 않을 수 있으며 충성을 다한다고 깨우쳐 주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공자께서 하신 말씀이다. 이 말의 뜻을 좀 더 깊이 알려고 하려면 우선 이 문장이 어떻게 짜여져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문장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대구로 이루어져 있다. 愛之(애지)가忠焉(충언)과 짝을 이루며 能勿勞乎(능물로호)가 能勿誨乎(능물회오)와 짝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愛之의 之와 忠焉의 焉은 같은 문장성분과 뜻을 가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之와 焉을 대명사로 보고 해석을 하면 이렇게 된다. 여기서 之는 ‘그를, 자식을, 아들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乎는 반문의 뜻으로 해석하면 된다. 그러면 이렇게 해석이 되어진다. ‘아들을 사랑하면 능히 수고롭게 하지 말 것인가?.’ 이 말은 아들을 사랑한다고 해서 어떻게 힘든 일을 시키지 않을 것인가?라는 뜻이 된다. 그렇다 아들을, 자식을 사랑한다고 해서 힘든 일을 시키지 않고 고생을 시키지 않고 수고를 하지 않도록 해
2009-07-09 0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