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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한일랑 교장선생님(2006년2월, 원평초교/정년퇴임), 40년의 긴 세월동안 사랑과 열정으로 학생교육에 전념하시다가 정년퇴임하신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갑니다. 우연히 교장선생님의 교단생활 마지막 1년을 같이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만 열정과 사랑이 넘치던 학생교육과 교직원을 관리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아직도 학교교육의 현장(김제중/배움터지킴이)에서 학생 생활지도에 최선을 다하고 계시기에 참으로 다행이라 여깁니다. 교장선생님만이 지닌 학생교육의 노하우가 교육 현장에서 크게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는 300여 명의 전교생 이름을 모두 아셨습니다. 부임하신지 1년밖에 안되었고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시지도 않는데도 학생들 이름을 모두 아셨습니다. 아침 등굣길 교문에서 만나는 학생마다 이름을 부르시며 무슨 말씀이던지 한마디씩 해 주셨습니다. “잘 잤니?”, “더 예뻐졌구나!” 얼굴을 낮추고 등을 다독거리면서 하시는 말씀 한마디는 학생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기분 좋은 하루를 만들어 주는 첫 인사가 되었었습니다. 출입구에서 복도에서 만나는 학생들마다 이름을 불러주며 생활지도상 필요한 말씀까지도 해주셨습니다. 문제점 있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가정실태, 학업실태, 성격 등을 미리 파악하고 계셨기에 짧은 한마디 속에도 교육적 배려가 배어있었습니다. 점심식사 후 쉬는 시간이면 으레 교장실에서는 서너 명의 학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웃고 떠드는가 하면 진지하고 심각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생활지도가 필요한 학생들을 중심으로 자연스러운 상담의 장을 만드셨습니다. 친구처럼 대하시기에 교장선생님이라는 벽을 느끼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사소한 일만 생겨도 우르르 교장실을 찾아가는 학생들을 수없이 보았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의 훈화교육은 효과적이었습니다. 요즘의 학생들은 주의력 집중력이 무척 약합니다. 몇 분간의 짧은 시간조차 견디지 못하고 발장난, 손장난, 친구간의 잡담 등 때문에 전체 학생들을 모아놓고 하는 훈화 및 생활지도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나 교장선생님께서 마이크를 잡으시면 학생들의 어수선한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불을 토하는 듯한 열정적인 웅변은 학생들의 흩어진 정신을 집중시킬 수 있었습니다. 번뜩이는 시선에서 강렬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청중을 사로잡는 연설은 설득과 설명이 분명하였습니다. 감동과 감화를 일으키는 훈화였습니다. 근래에는 논술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온통 글짓기지도 열기에 빠져있습니다. 글짓기야 말로 논리적인 사고력과 창의성을 신장시킬 수 있는 교육방법이라고 합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이미 교직 초임시절부터 글짓기교육의 중요성을 아시고 글짓기 교육에 최선을 다하셨던 것입니다. 글짓기반을 조직하고 특별지도를 하셨습니다. 재직 중에 학급문집은 물론 학교문집을 제작하는 등 글짓기 능력 향상에 크게 이바지하셨습니다. 40여 년간의 일편단심 글짓기 특별지도로 상당수 제자들을 문인으로 기자로 길러 내기도 하셨습니다. 퇴임 전 마지막 1년 동안에도 모든 담임교사들의 출장 시 보결수업을 도맡아 학생들에게 글짓기지도와 생활지도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 영향으로 모기업으로부터 글짓기 능력 최우수학교로 지정받아 많은 상금을 받기도 했습니다. 교직원 회의를 할 때마다 나눠주시는 유인물에는 아름다운 글귀(시)와 업무 추진에 애쓴 교사들을 칭찬하는 말씀과 학생생활지도에 필요한 사례 및 지도방법과 교사로써의 반듯한 품행을 당부하는 말씀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칭찬을 아끼시지 않았습니다. 큰 시행착오도 잘못을 지적하고 자극을 주기보다는 격려와 도움말로 기분 상하지 않게 개선하려는 의지를 갖게 해 주셨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는 말을 실천으로 옮기셨습니다. 사소한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퇴임하신 후 편안한 나날을 보내시기 보다는 어렵고 힘든 ‘배움터지킴이’가 되셨습니다. 학생 교육의 현장에서 훌륭하신 교육경험에 의한 교육력(상담)을 발휘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시는 것을 정말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사춘기의 중학생들에게는 교장선생님 같은 훌륭한 선생님들의 교육이 절대 필요할 것입니다. 여러 학교에 초청받아서 학생특강(생활지도)을 하신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정년퇴임식을 할 때 장년의 제자가 연단의 교장선생님 앞에 가서 넙죽 엎드려 큰절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교생이었던 교장선생님을 만난 짧은 인연이 평생을 잊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참석자 모두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의 인연이 평생의 사제간의 인연으로 유지되었다는 것은 교장선생님의 지극한 인간적인 배려와 교육적인 추수지도의 결과라고 생각하면서 더욱 존경하는 마음이 커졌던 것입니다. 교장선생님을 모시고 있을 때는 그저 그런가보다고 간과했던 일들이 1년 반이 지난 지금은 새삼 의미가 커져가고 있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보여주셨던 그 모습들을 항상 염두에 두고 바람직하게 학교생활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성취하시길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시옵소서. 이천칠년 칠월 그믐날 이학구 드림
제주교육박물관 평생학습관이 여름방학을 맞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어린이 천자문 서당'을 1일 열었다. 이날부터 22일까지 제주시 이도2동 제주교육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전통초가에서 열리는 '어린이 천자문 서당'에는 인근 초등학교 4, 5학년 학생 16명이 참가해 천자문을 중심으로 기초 한자를 습득하고, 선인들의 학습방법과 전통예절도 익히게 된다. 서당의 훈장은 고응삼 전 제주동여자중학교 교장선생님으로, 교육박물관에서 천자문 서당을 개설한 1999년부터 줄곧 훈장을 맡아 어린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교재는 '한석봉천자문(韓石峯千字文)'이며, 수업은 월∼금요일 매일 오전 9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진행된다. 첫날 수업에 참석한 윤동호(10.동광초 4년)군은 "학교 선생님께서 방학 중 천자문 서당이 열린다고 소개하셔서 찾아 왔다"며 "훈장선생님을 따라서 한자를 읽으니까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아 재미도 있고 머리에도 쏙쏙 들어온다"고 말했다. 제주교육박물관 관계자는 "전통식 한문서당을 통해 단순히 천자문 만을 암송하는 것이 아니라 선인들의 훌륭한 전통예절도 함께 배울 수 있어 어린이들에게는 더욱 뜻 깊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북부교육청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사업 대상교인 인천한길, 진산, 삼산초등학교 학생 87명은 31일 인천 강화군 길상면 장흥리에 있는 학생수련원 해양탐구수련원에서 갯벌체험학습과 농촌체험활동을 실시했다. 한길초등학교 주관으로 개최된 갯벌체험 활동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환경·자원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 있으며, 보호해야 할 중요한 자원임을 인식시키고, 신나는 여름방학동안 즐거운 추억과, 농촌체험을 통해 도시에서만 자라나, 농촌에 대한 경험이 없는 어린이들에게 그저 공허하게만 들리지 모를 신토불이와 우리 농산물의 우수성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지금 피서를 떠난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이 바로 충남 보령시 청라면 의평리에 자리한 냉풍욕장이다. 서해안고속도로 대천나들목을 빠져나와 36번 국도를 타고 청양방면으로 길을 나선다. 청천저수지를 끼고 2㎞정도 달리다 청보초등학교 앞에서 우회전해 1.8㎞를 달리면 성주산 자락에 들어선 냉풍욕장과 만난다. 필자가 2주전 5일간 떠난 충남여행에서 새로이 다녀온 여행지 중 가장 인상깊었던 곳이 보령 냉풍욕장이다. 보령은 한때 석탄을 채취하던 광산이 모여있던 곳이다. 이제는 폐광이 된 것을 냉풍욕장으로 관광자원화한 것이다. 폐광의 부활은 이곳 주민들에게도 의미가 크다. 연간 20여 만명의 관광객이 냉풍욕장을 다녀가고 있으며, 폐광의 찬바람을 이용해 버섯을 재배해서 벌어들이는 소득이 연간 150억원에 이른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곳의 굴 길이는 5km에 이르는데, 이중 200m 길이의 유도터널이 냉풍욕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매년 4~10월 사이 약 12~14도 정도의 찬바람이 나온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찬바람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풍속은 최고 초속 6m로 에어컨보다 더 시원한 찬바람에 한기가 느껴질 지경이라 여름철 피서지로 더없이 좋은 곳이다. 관리사무실을 겸하고 있는 냉풍욕장 홍보관 역시 에어컨 없이 이곳의 찬바람을 끌어들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고 있다. “이야! 폐광의 바람을 이곳까지 끌어왔네요. 제가 사는 마산까지 이 바람을 가져갈 수 있으면 너무 좋겠네요.” 필자가 그곳에 들어섰을 때 한말이다. 바람이 어찌나 시원한지 푹푹찌는 무더위에 이보다 더 좋은 피서지가 또 있을까 싶었다. 편의시설로 원두막과 파고라, 특산물판매장 등을 갖추고 있다. 한편 이곳의 찬바람을 활용해 양송이버섯을 재배하는 곳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냉풍농원(041-934-8154)을 운영하는 이선구씨의 비닐하우스를 찾았는데, 종균을 뿌리고 약 45~50일 후면 수확이 가능하다고 한다. 재배과정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볏짚을 깔고 그 위에다 버섯종균을 심는다. 그리고 점질토와 사질토를 썩은 흙을 60~65도의 온도에서 10일간 살균한다. 종균을 뿌리고 17~18일 후 흙을 얹는데, 흙의 농도는 7.5ppm에 맞춘다고 한다. 흙을 얹고 23~25일이 지나면 버섯을 수확하게 된다. 60평 정도인 비닐하우스 내부는 항상 17~18도의 온도를 유지하는데, 한동에서 하루에 80상자 정도를 수확한다고 한다. 이 마을 버섯작목반에서 약 200동의 비닐하우스에서 냉풍을 끌어들여 버섯을 재배한다. 그런가하면 하면 이곳에서 생산된 냉풍양송이를 이용해 ‘참바람골 냉풍양송이 된장.고추장(041-934-2463)’을 만드는 곳도 있다. 된장과 고추장에 건조된 양송이를 옹기에 넣어 2년정도 숙성시켜야 상품이 된다. 처음에는 버섯 건조에 실패해서 버리는게 더 많았다고 한다. 버섯은 약 3일간 건조하는데 2kg을 건조하면 120g의 버섯분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된장에는 약 3%의 버섯분말이, 고추장에는 약 5%의 버섯분말이 들어간다고 하는데, 건조하기 이전의 양으로 계산하면 상당히 많은 양이다. 양송이가 재래 된장에 들어가면 불포화지방산이 5배가 더 높아져 건강에 좋으며, 된장의 떫은 맛이 없고 한결 연하고 부드럽다. 문의 : 냉풍욕장 041-934-2463, 냉풍욕장 홍보관 934-3595 추천 맛집 동내동 원평마을의 다정식당에서 내놓는 다슬기된장찌개는 부드럽게 씹히는 다슬기의 쫀득한 맛과 얼큰한 국물이 속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추어탕과 토끼탕도 맛깔스럽게 내놓기로 유명하다. 041-936-9833 추천 숙소 SBS드라마 [쩐의전쟁] 주인공인 박신양과 서주희가 묵었다는 무창포 씨사이드호텔(041-936-8626, www.seasidehotel.co.kr)이 편안한 쉼터로 더없이 좋다. 씨사이드호텔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인증한 우수숙박업소 ‘굿스테이’에 지정되었다. 호텔 로비에서 주인공들의 사인과 촬영장면이 담긴 사진도 만날 수 있다. 박신양이 3일간 묵었다는 301호실에서 내려다보는 바다풍경은 한폭의 풍경화 그 자체다. 실내수영장도 갖추고 있어 아이를 동반한 가족여행이 한결 편안하고 안전하다. 해수사우나와 찜질방, 강당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어 기업체의 세미나 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일본의 시골 기타마쓰교육위원회 주최로 지역 주민의 봉사제도인「일일교사」가 정내의 초․중등학교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 사업은 1999년도에「학교교육을 보다 풍부하게 하자」라는 취지에서 시작된 기획이다. 현, 정 직원을 비롯하여, 정년 퇴직한 전 교사, 민간인 등 지역주민이 교육현장에 참가하여 아이들의 풍부한 성장을 돕고 있다. 지도 인사는 43명이 등록하고 있으며, 책 읽어주기, 스포츠, 그림그리기, 다도 등 17개 분야이다. 한 초등학교의 교실에서, 상공회의소 전 전무이사 아카기씨(67세)가 바쁘게 판서를 시작하였다. 매주 1회, 월요일에 있는 2학년을 대상으로 한「책 읽어주기」수업이었다. 판서를 끝내자 2학년 1반 아이들이 들어 왔다. 「셈하기 노래」가 시작되었다. 「“소다”촌의 촌장이 크림소다를 마셨다고 합니다. 계속 10번 먹었다고 합니다…」(‘~었다고 합니다’는 일본말로 ‘소다’라고 한다) 「“소다”는 몇 번 나왔지요?」라고 아카기씨가 질문하자, 아이들은 「18번!」「20번!」이라고 대답한다. 「정답은 22번입니다」라고 아카기씨가 답을 확인하였다. 「맞혔다 -」「틀렸다」라고, 아이들의 환성이 메아리쳤다. 만담에서 말하는「관객을 사로잡는 화법」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뒤에는「종이 연극」을 하고, 맨 마지막에는「책 읽어주기」를 했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거리며 아카기씨의 「낭독」의 세계로 점점 빠져들어 갔다. 아카기씨는 일일교사 그룹「이야기 택배」의 이야기꾼이 된지 벌써 6년째가 된다. 「영상문화 속에서 자란 아이들을 독서의 멋진 세계로 끌어 들이고 싶다」라고 생각한 것이 계기이다. 현재 30대부터 70대까지 10명이 등록해 있다. 매월 1회, 연구회를 열어서 회원 상호간에 책 선택에서부터 강좌의 내용, 억양 체크 등을 하고 있다. 아카기씨는 「나이도 들었고, 문장 암기 등 예습 복습이 힘들지만 아이들을 보면 힘이 난다」라고 하며 웃는다. 1.2학년은 일주일에 한 번, 3~6학년은 한 달에 한 번, 수업을 받고 있다. 이 학교 교장은 「아이들의 반응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앞으로도 지역의 힘을 빌려서, 더불어 아이들을 키워나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 지역 교육위원회에 의하면, 1959년도 무렵 탄광 전성기의 초등학교 아동수는 3631명이었는데, 폐광과 저출산 고령화 영향으로 해마다 감소하여 금년도는 두 개 초등학교에서 348명으로 줄어들었다. 일일교사는 지역 활력의 원천인 아이들을 지역에서 키우기 위한「지역의 인적자원이」이다. 동교육위원회는 「기획 당초에는 응모자가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지역의 인적자원이 점점 늘어났다. 학교 현장의 필요에 따라 앞으로도 대처할 수 있도록, 귀중한 인재를 늘려 나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한국의 정경과 정서를 듬뿍 담은 이 동요는 가사 덕분에 한동안 초등학교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즐겨 불렀다. 예전 우리나라 대부분의 시골에는 집 앞으로는 넓은 들판, 집 뒤로는 야트막한 뒷산이 있었고 저녁이면 당연히 집집마다 굴뚝에서 몽글몽글 하얀 연기가 솟아올랐다. 어쩌면 추상회화를 연상케 하는 저녁연기는 어머니 품속과 같지만 이 아름다운 저녁연기는 아쉽게도 지금은 보기 힘들어졌다. 이젠 저녁연기에 대한 추억이 없는 사람이 더 많다. 보온과 소독 효과에 탁월한 기능 발휘 옛날에는 집집마다 굴뚝에서 뿜어내는 하얀 연기로 저녁시간을 알았다. 저녁 무렵이면 굴뚝에서 나온 연기로 마을이 온통 자욱했다. 이러한 굴뚝 연기는 아궁이에 불을 피웠을 때 뽀얀 색을 내며 지붕 위로 솟아오른다.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기나 소죽을 끓일 때도 고유의 볏짚 냄새와 함께 굴뚝에서는 연기가 난다. 추운 겨울날 바람이 내리 불면 연기가 아궁이로 몰려나와 소죽을 쑤던 눈이 눈물범벅이 되기도 했다. ‘연가(煙家)’라 하면 연기 나는 집이란 뜻이 되겠지만 실제 전통적인 한국 주택의 굴뚝 위에 얹어 놓은 부재의 일종으로 고유한 명사이다. 연가는 진흙으로 빚어 구워낸 조그만 기와집 모양의 도예품으로 벽돌로 높직하게 쌓아올린 네모 굴뚝 위에 한 개 또는 여러 개로 얹어 놓아서 굴뚝 연기가 은은하게 퍼져 나오게 만든 것이다. 말하자면 굴뚝에 씌우는 지붕 구실과 연기의 솟음을 고르게 하는 바람받이도 될 뿐 아니라 그 생김새가 잘 생겨서 굴뚝치레로서도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역할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러한 굴뚝 쌓기에 남달리 정성을 들였다. 또 그 굴뚝이 후원의 조경에 매우 큰 구실을 하고 있는 전통은 한국 독자적인 양식인 온돌방 구조에서 발생된 것이다. 굴뚝은 우리 전통 가옥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구조물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보이지만 굴뚝은 단순히 연기를 집 밖으로 빼내는 구조물이 아니라 우리 건축 문화의 핵심이었다. 서양에도 굴뚝이 있지만 우리나라의 구들 굴뚝과 서양 굴뚝은 차이점이 많다. 서양의 벽난로는 열기가 연기와 함께 그대로 굴뚝으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 구들 굴뚝 바로 밑에는 굴뚝개자리가 있어 고래를 통과한 연기가 집안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막아준다. 굴뚝이 처마 밑에 있기 때문에 굴뚝에서 나온 연기는 집안을 한 바퀴 감싸 돌아나가게 되는데, 이는 집 안팎을 소독하는 효과도 탁월해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굴뚝은 신분과 계층에 따른 굴뚝에 따라서도 모양이나 크기가 다르며, 지역에 따라서도 형태가 달랐다. 보통 굴뚝은 높아야 제 기능을 발휘하는데, 사찰의 굴뚝은 건물에서 떨어져 있는 듯 없는 듯 나지막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굴뚝은 기능의 가치로서도 그렇지만 그 가치를 넘어서 빼어난 조형성을 갖추고 있다. 겸손하면서 질박한 아름다움과 자연과 어울리는 자연미를 함께 지니며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포옹해 준다. 고장마다 집집마다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면서 푸근한 엄마 품을 느끼게 하는 굴뚝을 둘러보자. 겸손하고 검소한 소박미의 굴뚝치레 옛날 한 집안의 아침은 부엌문을 여는 아낙네의 치맛자락이나 잠시 후에 피어오르는 굴뚝의 하얀 연기에서 시작되었다. 황토색 벽과 초가지붕 위에 뽀얗게 솟아오르는 연기는 봉긋한 산봉우리와 어울려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내기도 했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온 우리 민족은 과학이나 생활의 지혜를 이용하면서도 하나라도 손끝의 멋을 놓치지 않았다. 굴뚝을 만드는 것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궁이를 아무리 잘 만들고 구들을 아무리 잘 놓아도 굴뚝의 높이 조절을 잘못하면 실패작이 되고 만다. 보통 아궁이 맞은편에 굴뚝이 자리 잡았다. 우리가 살던 집들은 대부분 한 아궁이나 혹은 방마다 한 개의 굴뚝을 설치하여 서로 방해받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어릴 때 집 뒤로 가면 붉은 토관으로 처마까지 올려놓은 굴뚝도 있었고, 앞마당의 작은 구멍으로 타고 나오는 연기는 건넌방 아궁이 굴뚝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이처럼 서민들이 살던 집의 굴뚝은 초가의 뒤란이나 모퉁이에 있는 듯 없는 듯 숨겨 만들었다. 크기는 다양하지만 대개 처마의 높이를 넘지 않았다. 그리고 굴뚝의 재료는 주로 돌과 흙, 옹기나 나무 널빤지 같은 것이었다. 모양은 예술적 기교나 장식은 없었으나 생활의 지혜에서 우러난 손의 느낌을 살려 질박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다양한 조형미 뽐내는 상류층의 굴뚝 우리나라의 궁궐에는 세계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굴뚝이 있다. 궁궐의 후원은 물론이고 적어도 중류층 이상의 조선시대 주택에는 반드시 남향을 향한 밝은 후원이 있기 마련이다. 이 후원에는 으레 집 본채에서 조금 멀리 물러난 곳에 세워진 벽돌 굴뚝이 훤칠하게 세워졌다. 이 벽돌은 서양식의 붉은 벽돌이 아니라 회색 벽돌이며, 이 벽돌을 맵시 있게 쌓기 위하여 벽돌의 면과 네 측면을 모두 매끈하게 갈아서 사용했다. 이같이 네모 모양의 굴뚝은 굵기와 높이의 비례가 매우 쾌적해서 마치 하나의 탑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하나의 정원에 세운 조각 작품 같기도 하다. 이 굴뚝은 하나만 세워질 때도 있지만 주택 구조와 규모에 따라서 여러 개 같은 모양으로 세워지기도 한다. 후원이 넓으면 멀찍이 떨어지게 세워 저녁연기에 알맞은 석양의 정서를 자아내기도 한다. 그 중 최고의 아름다움과 조형성을 지닌 굴뚝은 단연 자경전의 십장생 굴뚝을 꼽을 수 있다. 이 굴뚝은 보물 제810호로 지정될 만큼 그 조형성과 장식성이 빼어난 것이다. 굴뚝의 기능에 충실하면서 꽃담으로서의 조형미도 살려 한국미를 간직한 유물로서도 가치를 지니고 있다. 경복궁 교태전 후원에 있는 아미산의 굴뚝은 우람하고도 멋진 굴뚝으로 유명하다. 아미산에는 굴뚝 세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데 교태전 방고래에서 지하로 뽑아낸 굴뚝들이 돈대 위에 우뚝 보기 좋게 간격을 두고 늘어서 있다. 굴뚝으로서 기능뿐만 아니라 그 형태와 화면의 구성이 아름다워 교태전 후원의 장식물로도 효과를 겸비하고 있다. 교태전은 왕비의 중궁전으로 1394년(태조 3년) 창건되어 여러 차례 소실된 것을 다시 복구하였으며, 이 교태전의 굴뚝은 1865년 대원군의 불호령 아래 어느 명공이 정성을 다하여 쌓아올린 걸작품 중의 하나다. 그러나 1917년 창덕궁 대조전의 화재 후 일본인들이 재건한다는 명목으로 교태전을 헐어 재목으로 사용하여 이 굴뚝만 남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굴뚝은 그 종류가 다양하다. 그 중 궁궐의 굴뚝은 자경전 굴뚝과 같이 건물의 모양을 본뜬 것이 많다. 기와편을 벽돌처럼 쌓으면서 황토를 바른 ‘와편굴뚝’은 양반가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굴뚝이며 지붕 마감재로 기와가 많이 사용되는 사찰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와편굴뚝은 다른 굴뚝에 비해 규모면에서도 웅장함이 있고 투박하면서도 질박한 멋을 지닌다. 대체로 중상류층 건축에 만든 굴뚝의 재료는 검은 벽돌이나 기와, 돌을 주로 사용하였다. 서민의 굴뚝보다는 다양한 문양으로 화려하면서 조화롭게 꾸몄다. 그러나 번잡하거나 조잡하지 않고 본 건축과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도록 자연미를 최대한 살려 만든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지붕의 구성이 수직과 수평적 조화를 이루도록 만든 것처럼 대단한 조화미를 지니고 있다. 규모도 크고 웅장하게 만들었다. 위치는 대지가 넓고 크기 때문에 집이나 방과 가능한 멀리 떨어지게 하였다. 지역마다 고유한 특색 가지고 있어 조그마한 집이면 후원 양지바른 곳에 아담하게 장독대가 자리를 잡고, 큰집 후원이면 으레 장대석으로 쌓은 돈대 위에 모란꽃나무와 괴석들이 곁들여 지고 훤칠한 굴뚝들이 자리를 잡는다. 이렇게 굴뚝은 굴뚝으로서 뿐만 아니라 정원치레로도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면서 아침저녁으로 다사로운 입김을 하늘 높이 내뿜는다. 이러한 굴뚝은 지방마다 고유한 특색을 가지고 있다. 서양식 화독 굴뚝이나 화이어 프레스의 굴뚝처럼 추녀 가까이에 붙여 세우는 경우도 많지만 기와집 추녀의 곡선에서 구저분한 것을 떼어 놓기라도 하듯이 굴뚝은 멀찌감치 후원 돈대까지 땅 밑으로 연장해서 적당한 거리에 자리 잡아 모양 나게 세우기도 했다. 추운 지방은 굴뚝이 높고 아래지방으로 내려오면서 그 높이는 점차 낮아지는 양상을 보이며 우리나라 전통건축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능을 한다. 경기 중부지역에는 안방, 사랑방, 건넌방 등 각 방마다 아궁이와 반대편에 굴뚝을 설치했다. 서민가옥에는 통나무 한가운데를 파내어 만든 나무통 굴뚝과 깨진 항아리를 엎어서 사용한다. 강원 영동지역에는 안채에 한 개, 사랑채에 한 개가 대부분이다. 모양은 통나무 가운데를 파서 만든 예도 있고, 판자를 짜서 만들거나 돌로 축조하고, 그 아래에 밑 빠진 항아리를 엎어서 사용하기도 한다. 강원 영서지역에는 판자, 흙, 벽돌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한다. 굴뚝 아래 부위에 흙을 덧바르고, 굴뚝 높이도 처마까지 올라가 보온에 상당히 신경 쓰는 것이 특징이다. 경남지역에는 아주 간단한 방식으로 굴뚝을 처리한다. 부엌에서 때는 아궁이의 불이 안방 구들을 돌아 댓돌 정면에 작게 뚫어놓은 구멍으로 연기를 내뿜도록 설치했다. 그리고 충북지역에는 윗방 뒤나 사랑방 뒤에 굴뚝이 위치한다. 대개 규모가 크고, 제대로 갖춘 것과 높이가 낮은 자그마한 보조 굴뚝이 있다. 큰 굴뚝의 경우는 가운데를 파낸 통나무를 연기 통로로 세우고, 밑은 넘어지지 않게 흙돌담으로 받쳐 쌓고 겉은 보온을 위해 짚으로 둘러 사용한다. 보조굴뚝은 흙담으로 쌓아 올린다.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작품인 굴뚝 세상에 민족도 많고 나라도 많지만 한국 사람처럼 굴뚝치레에 세심하게 마음을 쓰고 또 큰 돈을 들이는 민족은 드물 것이다. 굴뚝 기단은 으레 상아빛의 화강석을 곱게 다듬어 받치기도 하고, 사람의 눈높이에 알맞은 부위에는 백회와 회색 벽돌, 때로는 주황색 벽돌로 길상문자(吉祥文字)나 장생류(長生類)의 도안을 모자이크해서 굴뚝 하나가 그대로 작품으로 보이도록 하기도 했다. 이러한 독특하고 고유한 아름다움의 자취인 굴뚝도 서양식 건축에 밀려서 하나하나 그 명작이 자취를 잃어가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굴뚝은 고향이다. 굴뚝에 관한 이야기는 굴뚝의 느낌을 확실하게 한다. 옛날 글자를 모르던 시절에 시집간 딸이 ‘굴뚝과 참새’를 그린 편지를 친정어머님께 보내 “가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은데 참새같이 바빠서 못 간다”고 표현했다는 이야기는 굴뚝이 말하는 사람의 심정을 잘 나타낸 것이다. 왜 굴뚝을 이런 의미로 사용하였는지는 모르지만 굴뚝은 우리에게 과거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이름임에는 틀림없다. 굴뚝은 고향을 그리는 마음과 함께 언제까지 남아있을 것이다.
학문으로 대를 이어오고 있는 집안은 스위스의 세계적인 언어학자인 소쉬르 가문을 들 수 있다. 소쉬르 가문은 5대째 학자를 배출한 세계적인 학문의 명가이다. 소쉬르의 조부 니콜라스 데오도르는 즈네브 대학의 지리학과 광물학 교수를 지냈고, 부친 앙리는 지질학자로 미국과 멕시코를 탐험하기도 했다. 소쉬르는 세계적인 언어학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산 윤선도 가문이 실용적인 학문을 연구하는 가풍을 대대로 이어왔다. 양반가문이지만 공재 윤두서(1668~1715)에서 시작해 그 아들 윤덕희 - 윤용에 이르는 3대 화가를 배출하기도 했다. 양반들은 책을 읽고 벼슬을 해야 성공하는 시대에 이와 거리가 먼 그림에 몰두했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 아들이 3대에 걸쳐 화가가 된다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진화론 처음 제기한 다윈의 祖父 할아버지가 연구했던 학문을 손자가 물려받아 연구하고 또 그 손자의 후손들이 그 연구를 완성했다면 그 가문은 세상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 집안이 인류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규명한 ‘진화론’을 내놓은 찰스 다윈(1809~1882)의 가문이다.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은 진화론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인물이다. 그 손자인 찰스가 할아버지를 이어 본격적으로 연구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진화론을 내놓았다. 이는 하느님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기독교의 창조론을 뒤엎는 획기적인 가설이었다. 찰스의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1731~1802)은 과학자이자 의사, 발명가, 시인이었다. 그는 18세기 중엽 당시 영국에서 매우 유명한 의사였다. 1756년부터 영국 리치필드에서 의사로 활동하면서 불치병 환자를 구해 일약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 생태에 대한 방대한 내용을 담아 진화론을 제기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에라스무스가 처음으로 진화에 관한 관념을 피력했을 때는 1770년이다. 그는 그가 타고 다니던 마차에 라틴어로 ‘E Conchis omnia’를 붙이고 다녔다. ‘모든 것은 조개로부터 왔다’는 뜻이다. 즉, 만물이 조개로부터 탄생했다는 의미로 진화론을 처음으로 제기한 것이지만, 그는 진화론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어 마차에 살짝 그려 넣고 다녔다. 그러다 혹시 부자들이 이를 알아챌까봐 이를 지우고 책의 표지에다 새겨 넣었다. 부자들은 대부분 기독교도들이어서 창조주인 하느님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조개에서 만물이 탄생했다고 한다면 경악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의사인 그에게 치명적이다. 하느님을 불신하는 사람에게 아무도 치료를 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에라스무스가 유명한 명의였듯이 아들인 로버트 역시 의사로서 명성이 높았다. 그 역시 가난한 환자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고 진료를 해주었다. 찰스는 아버지와 동행하면서 가난한 환자들을 접하며 아버지가 가난한 사람을 어떻게 배려하는지,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하면서 진료를 어떻게 하는지를 보며 철이 들어갔다. 조부의 책 통해 자연학자 꿈 키워 어린 시절 다윈의 관심은 자연사에 쏠려 있었다. 아버지가 틈틈이 가르쳐준 동식물에 대한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그의 주된 관심으로 변해간 것이다. 찰스는 당시 화제가 된 길버트 화이트의 〈셀본의 자연사〉를 읽으면서 자연에 대한 관심에 점점 빠져들었다. 찰스는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의학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당시에는 마취제 없이 수술을 했고 찰스는 아버지를 따라 왕진을 갔다 수술하는 광경을 보고 너무 끔찍해 의사에 대한 매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한다. 반면 여행과 자연학에 대한 독서를 열심히 했다. 특히 독서로 자연사에 대한 관심을 계속 발전시켜 나갔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고민은 깊어갔다. 결국 아버지는 아들에게 의학을 포기하고 목사가 될 것을 권유했다. 아버지의 생각으로는 당시 곤충 수집을 하는 목사들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사에 관심이 많은 찰스의 적성을 살리면서 직업인으로 살기에는 목사가 안성맞춤이었다. 자연학자로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목사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관심분야인 자연사도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찰스는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여 19살에 케임브리지 대학 신학과로 옮겼다. 찰스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비슷한 취미를 가진 친구를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그는 이 대학의 교수로 식물학자인 존 스티븐스 헨슬로와 지질학자인 애덤 세지윅이라는 두 신부 과학자를 알게 되었다. 이들에게서 동·식물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우면서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이들과의 만남으로 그는 신부 과학자라는 인생의 목표에서 자연학자로서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잡았다. 다윈에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의외로 쉽게 다가왔다. 헨슬로가 찰스에게 세계를 항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것이다. 당시 영국 군함 비글호가 해안조사를 위해 태평양과 인도양을 항해하는데, 여기에 승선해 자연관찰을 하라는 제안이었다. 찰스는 5년 동안 항해하면서 진화론을 규명할 역사적인 단서를 얻게 된다. 빌 게이츠가 폴 앨런과 스티브 발머를 만난 경우처럼 찰스 다윈도 친구와의 만남이 그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도약하게 했다. 아들을 목사로 만들어야겠다는 아버지는 처음에 아들의 여행을 반대했지만 아들이 여행을 통해 과학적인 발견을 접목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허락했다. 찰스는 18살 때에 할아버지가 쓴 〈주노미아〉를 읽고 크게 감탄했다. 28살 때에는 노트에 자기 생각들을 기록하면서 자기가 할아버지를 이어 진화론을 연구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할아버지 에라스무스가 1794년에 출간한 〈주노미아〉는 그의 손자가 1859년에 출판한 〈종의 기원〉보다 65년 앞서 진화가설을 제기한 것이다.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출판되었고 독일어, 프랑스어, 이태리어로 번역됐다. 에라스무스는 ‘지금 존재하는 모든 식물과 동물들은 원시의 바다에서 자연적인 생명력에 의해 발생한 극도로 미세한 현미경적인 존재들로부터 기원했다’고 주장했다. 아버지의 후원으로 연구 완성 다윈이 5년 동안의 항해에서 돌아온 것은 28살인 1837년이다. 다윈은 이때부터 〈종의 기원〉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미뤄야 했다. 결혼을 하면 장기간 여행을 할 수 없을뿐더러 생계비를 벌기 위해 대학교수 같은 직업을 구하든지 근검절약하며 근근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혼이 부담스러웠던 그는 고민 끝에 아버지에게 결혼문제를 털어놓았다. 그러자 아버지는 매년 수입이 1만 파운드이고 재산이 10만 파운드가 된다면서 전폭적으로 후원해주겠다고 말한다. 재력가인 아버지의 도움으로 그는 평생 돈 걱정 없이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결국 연구를 시작한 지 20년만인 50세 때에 세계사를 뒤흔든 연구 성과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찰스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여기서 교훈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돈에 대한 활용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은 돈을 모으지만 그 돈을 쓸 방법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모으는 데 열중한다. 그래서 나중에 죽음에 임박해서는 가족끼리 돈에 대한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는 돈을 왜 모으는지에 대한 목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녀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돈은 가문의 악의 화신으로 변한다. 찰스와 아버지 로버트는 돈 문제로 부자 간에 분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아버지는 모아둔 돈을 아들이 연구에 전념하게끔 전폭적으로 후원해주었다. 아버지는 의사와 재테크를 통해 모아둔 재산을 아주 요긴하게 사용했고 가문뿐만 아니라 세계사를 뒤흔든 진화론 연구의 후원자 역할을 했던 것이다. 로버트는 재력가인 아버지가 자녀를 위해 어떻게 돈을 쓸 수 있을까에 대한 하나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부자아빠들이 다윈의 아버지처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을 쌓아놓고도 자녀들에 게 무관심한 부모들은 얼마든지 많다. 발명왕으로 갑부가 된 에디슨은 자녀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아 세 자녀들이 모두 가난뱅이로 살아야 했다. 또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억만장자였던 피카소는 화가인 아버지가 그를 위대한 화가로 만드는 데 헌신했지만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어머니의 성(피카소)을 따르면서 아버지를 ‘배신’한다. 더욱이 여성편력(7명의 여성과 동거)이 심했던 그는 아들과 손자들을 방치해 결국 장남은 알코올 중독으로 자살하고 손자도 자살하는 비운의 가정으로 만들었다. 손녀에 의해 빛을 본 〈종의 기원〉 다윈 가문이 진화론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대를 거듭하면서 진화론 연구를 진행해왔다는 점이다. 할아버지가 진화론 연구에 첫 깃발을 들었다. 할아버지는 무엇보다 후손들에게 자연과학에 매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찰스의 아버지 또한 평생 아들이 진화론을 규명할 수 있도록 연구를 뒷받침하는 등 인생 스승으로서 멘토 역할을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찰스의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공동으로 연구를 했다. 찰스의 손녀는 할아버지가 쓴 자서전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애썼다. 지금도 그렇지만 기독교에서는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150년 전에는 자칫 진화론을 주장했다가 가문이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다. 찰스는 이와 관련된 민감한 내용은 빼고 자서전을 출간했었는데, 그의 손녀가 온전한 자서전을 내 할아버지의 연구업적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진화론은 당시 서구사회에서는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지동설처럼 획기적인 주장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경우도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갈릴레이가 천문학자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피렌체의 명문가인 메디치 가문에서 그를 전속학자로 모셔와 연구를 후원했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 세계적 대문호인 괴테도 바이마르 영주인 아우구스트 공작이 평생 후원자가 되었기에 마음 놓고 일생을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학자나 예술가들이 자신의 후원자를 만난다는 것은 생업에 신경 쓰지 않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찰스 다윈은 다름 아닌 부자아빠가 평생 후원자였기 때문에 진화론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다. 찰스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을 출간했다.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는 진화론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진화론을 주장한 그의 할아버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진화론은 다윈 가문이 할아버지와 손자, 손자의 손자까지 5대가 매달려 연구해온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절묘한 가학과 가업의 가문 결합 그런데 다윈 가문이 진화론을 통해 가학을 대물림했다면 다윈의 처가는 가업을 대물림한 집안이다. 다윈의 처가는 지금도 도자기회사로 유명한 웨지우드 가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다윈의 처가가 다름 아닌 그의 외가라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처갓집을 둔 것이다. 이는 다윈의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인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에라스무스는 1776년경에 당대의 과학자와 자연주의 철학자들의 사교 클럽을 만들었다. 이 모임에는 18세기 영국에서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다 모였다. 회원으로는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왓트, 산소를 발견한 조셉 프리스틀리, 위대한 도예가 조시아 웨지우드 등이 있었다. 미국 사람으로서는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된 토마스 제퍼슨과 벤자민 플랭크린 등도 포함돼 있다. 웨지우드 가문은 250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자기를 생산하고 있다. 조시아 웨지우드는 에라스무스 다윈의 친구이자 지지자였다. 에리스무스는 케임브리지 대학과 에든버러 대학에서 고전문학과 의학을 공부했다. 반면 조시아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고 열다섯 살에 형에게 도제교육을 받아 도기장이 되었다. 하지만 에라스무스처럼 조시아도 과학과 발명에 푹 빠져 있었고 정치적 견해와 사상에서도 서로 통했다. 조시아는 부유한 집안의 딸과 결혼한 덕분에 사업을 크게 번성시켜 한때 유럽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를 둔 도자기공장이 됐다. 또 영국여왕이 찻잔세트를 주문하면서 웨지우드는 ‘황실도공’의 직위에 올랐다. 이들의 우정은 결국 양가의 결혼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인연으로 웨지우드 가문은 두 번에 걸쳐 다윈 가문과 혼인관계를 맺게 된다. 찰스 다윈의 어머니가 웨지우드 가문이고 아내 역시 이 가문의 딸로 다윈은 외사촌과 결혼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다윈 가문과 웨지우드 가문은 절묘한 만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윈 가문은 정신적인 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가학(진화론)으로 명가를 이루었고, 웨지우드 가문은 먹고사는 가업(도자기)을 통해 세계적인 명가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대졸 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오는 등 갈수록 먹고살기가 힘들어지고 있어 우리나라도 ‘가업’ 문화가 이미 불기 시작했다. 음식점에 가도 2대가 일하는 광경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가업만들기가 유행처럼 붐을 이룰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가업과 함께 대대로 내려오는 가학(家學)이 있다면 더 격이 높아질 것이다. 같은 학문을 가족들이 공유하고 또 대를 이으면서 연구할 수 있다면, 그것도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좋은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밥’만으로는 충만한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밥과 함께 정신적인 양식이 필요한 것이다. 먹고 사는 데 필요한 것이 가업이라면, 정신적인 양식은 가학이라고 할 수 있다. 끝 - 이번호를 끝으로 세계 명문가의 교육철학 연재를 마칩니다.
“아름다운 화포습지 사랑으로 보호해요” 2008년 10월 경상남도에서 제10차 람사총회가 개최된다. 160개국 정부대표와 국제기구, NGO 관계자가 참석해 환경올림픽이라 불리는 람사총회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됨에 따라 환경교육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에 경남도교육청에서는 올해 습지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습지교육 문화 확산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안군 가야초(교장 이재영)를 비롯해 창원시 화양초(교장 배철), 창녕군 창녕중(교장 김태인), 김해시 한림초(교장 박금남) 등 4개교를 습지시범학교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그 중 화포습지 보호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한림초를 찾았다. 교육공동체 하나로 묶는 체험 활동 화포습지는 낙동강으로 흐르는 화포천을 따라 길게 형성된 하천형 습지로 습지의 중앙부가 한림면 일대에 형성돼 있다. 2007년 말 습지보호구역 선정을 추진 중이며 136종의 식물, 116종의 곤충류, 17종의 어류와 멸종 위기의 조류 등 다양한 동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귀중한 자연유산이다. 시범학교로 지정되기 전부터 매달 화포천 주변에 대한 정화 활동을 해온 한림초는 작년부터 화포습지 살리기 계획을 추진 중이었다. 이 같은 활동의 결과로 한림면내 4개 초등학교 중 한림초가 ‘화포습지 사랑 체험활동을 통한 습지보전 실천의식의 생활화’ 습지교육 시범학교로 선정될 수 있었다. 박금남 교장은 “평소 습지에 대한 관심을 기울인 것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며 “대표가 된 만큼 습지교육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림초가 시범학교를 운영하면서 가장 큰 비중을 두는 것은 지역 민·관·기업의 동참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비록 학생들이 매달 정화활동을 펼치고는 있지만 역부족일 수밖에 없고, 지역주민들도 화포습지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림초에서는 화포예술제 개최, 교사·학생·학부모·지역 주민·습지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화포지킴이 조직·운영,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습지 관련 강연회 등의 행사와 홍보를 위해 환경보전 홍보 통신문 제작, 홈페이지 구축 등에 힘쓰고 있다. 특히 지난 6월 17일 열린 ‘화포습지 사랑 가족 체험 한마당’은 지역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학부모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일요일에 개최한 이번 행사는 학생과 학부모를 비롯해 지역 주민 120여명이 참가해 보트 탐사, 곤충 및 식물 관찰·채집, 풀을 이용한 곤충 만들기, 화포습지 백일장, OX 퀴즈 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이 중에서도 보트탐사는 쌍안경이나 사진으로만 보던 화포습지의 식물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돼 큰 호응을 받았다. 5학년 정순호 군의 학부모 이남진 씨는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참석했는데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고 그동안 무심했던 화포습지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게 된 계기가 됐다”며 “앞으로 아이와 함께 습지 보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 군도 “엄마랑 같이 오니 너무 좋고, 습지 주변에 있는 풀들을 더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즐거워했다. 한국토지공사와 자매결연 맺어 한림초는 이런 활동 외에도 학생들이 환경보호 체험을 경험할 수 있도록 부산 이기대공원 일대의 생태기행에 참가해 바닷가 야생화, 해양생물 관찰 등을 하고 낙동강 시범지역 관리단 주체의 봉암갯벌 도요탐조대회에도 참석했다. 이 같은 학교의 노력이 알려지면서 지난 4월엔 한국토지공사 경남지역본부(이하 토지공사)와 2008람사총회의 성공적 개최와 화포습지 보전활동을 위한 자매결연을 맺었다. 토지공사는 한림초의 습지시범학교 운영을 위해 연간 1000만원을 지원하고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을 위해 매년 800만원의 장학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또 한림초에서 개최하는 각종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토지공사 조수제 업무지원팀 차장은 “직원들이 학교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하면서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며 “앞으로도 한림초의 행사에 꼭 참여해 학교 중심의 습지보전에 작은 힘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재평 교감은 “토지공사의 지원으로 고무보트, 쌍안경, 현미경 등 습지탐사에 필요한 장비를 갖출 수 있었다”며 “특히 고무보트를 통한 화포습지 탐사가 가능해져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주변 학교 학생들의 습지교육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고마워했다. 교사들의 자발적 참여가 원동력 한림초의 습지교육과 환경보호 운동은 지역 언론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일만큼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결과는 무엇보다 한림초 교사들의 부단한 노력이 밑바탕이 됐다. 습지에 대한 이해를 위해 학교 자체 연수를 실시하고, 수업 자료와 홈페이지 자료 구축을 위한 사진을 찍기 위해 직접 수백만원대의 카메라를 구입해 휴일마다 화포습지를 찾는 교사들도 있다. 지난 5월엔 생태보전 시민단체인 ‘사단법인 초록빛깔 사람들(대표 김의부)’과 화포습지 보전 협정을 맺고 자연교육용 기자재·전문 강사·관련 자료 등을 지원받고 있다. 또 ‘김해 생태보전 교사 모임’과도 연계해 습지 연구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이 모임의 최진호 교사(김해 활천초)는 “한림초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열정이 대단하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습지보호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김외규 교사는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학부모에게 알리기 위한 노력들이 조금씩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다”며 “앞으로는 한림면이 아닌 김해시민 전체가 앞장서서 지역 환경을 보호하는 마음가짐을 갖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림초는 앞으로도 습지 체험 학습자료센터 구축, 자연생태학습장 조성, 습지체험 학습지 〈나의 사랑 화포〉 제작, 관찰탐구대회 및 습지 관련 전시회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방학을 이용해 김해시 학교 학생이 참여하는 습지체험 캠프도 준비 중이다. 박 교장은 “학생과 환경을 사랑하는 우리 선생님들이 계속 노력하기 때문에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현재 초등학교의 경제교육은 사회과의 경우 한 단원 수준이며 실과, 도덕과 등의 교과에서 극히 일부의 경제교육요소를 지도하게 되어 경제교육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음에도 초등학생들의 경제교육에 대한 수용 비율이 낮다. 이에 경제교육의 대부분이 학부모와 교사가 들려주는 상식수준의 이야기나 경제상황을 보도하는 방송 및 정보매체의 간접적인 시사 등에서 접하는 실정이다. 초등학생은 주로 소비자의 위치에 있지만, 시대에 따라서 경제 활동 모습이 다르듯이 이에 따른 소비자의 모습도 변화하고 있다. 지금까지 초등학교 학생들은 경제능력이 없기 때문에 독립된 경제주체라기보다 가계의 의존자로 생각되어 경제주체로서 아동의 역할은 별로 중요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의 핵가족 형태와 가정 내 자녀 수의 감소로 자녀의 지위가 높아졌고, 경제 성장으로 인한 가계의 소득 수준의 향상은 자녀의 자유재량 소비액을 증가시켜 초등학교 학생들도 독립된 소비자로서의 경제 주체로 그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초등학생들의 소비 습관이 향후 성인이 되어서의 소비 행동과 직접적인 관련을 갖는다고 생각할 때 올바른 경제교육이 초등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할 중요한 과제라 생각한다. 경제교육은 인간의 생애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 교육의 한 영역이다. 초등학교부터 효과적인 경제교육 프로그램에 투자를 계속해 나가면 결국 장기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경제교육을 확대하는 효과가 있다. 초등학교부터 시작되는 올바른 경제교육은 학생들에게 시장경제의 기본원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경제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의사결정능력을 수행할 수 있게 할 수업장면에서의 문제해결 능력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돈된 경제생활의 윤리의식을 지닌 행위자로의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복잡한 경제 현상 속에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능력을 갖도록 필요한 지식과 경험이 교육적으로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초등학교 학생들이 교육과정 운영의 범위에서 올바른 경제교육을 전개해야 할 실제의 내용과 지도의 방향을 제시하고, 현행의 경제교육 방법을 분석하여 학생들이 직접 피부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경제교육 프로그램과 지도방법의 실제를 초등학교의 경제교육을 중심으로 전개해 보고자 한다. 초등학교의 경제교육 교육과정 초등학교 경제교육 관련의 교육과정 내용을 찾아보면 경제교육 지도요소가 가장 중요하게 제시되어 수업 현장에서 지도하도록 요구되는 교과는 사회과 교과이다. 사회과 교육에서는 3, 4, 5, 6학년에 고루 배열되었으나 사회과 내용의 비중과 학생들 경험의 범위에 따라 각각 다르다. 3학년은 고장사회의 기초적인 경제생활 중심이며, 4학년은 시·도 단위의 지역 경제생활의 중심으로, 5학년은 거시경제의 개념들로 우리나라의 경제생활을, 6학년은 세계경제의 모습 등을 알아보게 되어 있다. 사회과 외에 도덕과와 실과 등의 교과에 경제교육 관련 지도요소들이 제시되어 수업에 적용하게 되어 있다. 도덕과는 경제생활에서의 올바른 경제 윤리의식 형성에 주안을 두고 있으며 실과에서는 경제생활의 이해와 실제 운영의 측면에서 직업의 중요성과 진로지도의 참고자료로서 활용을 기대하고 있다. 초등학교의 7차 교육과정에 제시된 도덕, 사회, 실과 등 범 교과에서 지도하여야 할 경제교육 관련의 주요 지도 내용과 지도 요소들을 관련 교과 단원과 주제를 분석하면 표 1과 같다.(표는 새교육을 참조해주십시오.) 초등학교 경제교육 내용은 주로 3, 4, 5, 6학년의 교과에 집중되고 있으며 지역 확대법에 따라 우리 마을, 우리 고장, 우리 지역(시·도), 우리나라, 세계(국제)경제의 공간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초등 2학년에서는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의 경제생활, 3학년에서는 자기 주변 고장을 중심으로 한 경제생활, 4학년에서는 ‘시·도의 환경과 자원, 경제발전’, 5학년에서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국제무역’, ‘정보화 시대의 생활’, 6학년에서는 ‘경제발전으로 인한 근대화의 과정과 직업의 중요성’ 등에 대하여 공부하게 되어 있다. 초등 경제교육의 방향과 지도법 (가) 경제교육의 방향 경제교육은 경제현상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원리와 그 상호 관련성을 깨닫게 하고 유능한 민주시민의 자질을 양성하여 사회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능력을 육성하는 데 있다. 따라서 초등학교에서의 경제교육은 학생들에게 합리적인 경제생활을 도와주기 위한 초보적인 훈련의 과정으로 습득한 경제의 이론을 학생들이 접하고 있는 경제문제와 환경을 올바로 파악하여 이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경제생활의 지혜를 갖게 함으로써 다양한 경제문제의 해결능력을 함양하려는 데 있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 경제교육은 시장경제체제의 시민성 함양을 기본방향으로 삼고 합리적인 의사결정 능력과 경제적 소양을 지닌 민주시민 육성과 건전한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간육성을 기대하고 있다. 따라서 초등학교 경제교육의 방향은 생활경제의 바른 이해로 경제문제 해결능력과 경제문제에 대한 바른 의사결정 능력의 함양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이에 경제교육의 목표는 학생들에게 밝고 건전한 경제적 사고력의 배양과 합리적 의사결정 능력의 함양을 통한 경제적 시민성을 육성하는데 있다. (나) 초등학교 경제교육의 지도 방법 학생들의 경제교육에 대한 관심도에 대하여 조사한 KDI경제정보센터 경제교육협의회(2007.6)의 자료에 의하면 사회과 영역의 정치, 역사, 경제 관련 단원을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경제 단원의 교과 내용이 가장 이론적이고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흥미도 역시 매우 낮다. 초등학교 사회과 경제영역의 관련단원 지도내용도 학생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경제용어와 개념들이 있어 학습흥미가 낮은 편이다. 사회과 수업에서 경제교육을 강의중심이나 기존의 시청각자료 를 활용한 형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면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본교에서 실천하고 있는 경제교육의 실제 사례와 서울시초등사회교과연구회 회원들의 경제교육활성화 토론에서 정리된 자료들을 근거로 지도의 실제를 논의코자 한다. 사회과, 도덕, 실과 등의 교과에서의 경제교육은 설명식 교수방법이지만 학생들의 실제 경제생활의 문제를 중심으로 교재의 내용과 관련지어 다양한 시청각 자료와 연구 기관에서 개발한 웹자료를 활용한 수업은 초등학생들의 경제교육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저학년에서는 놀이와 역할극 등 흥미 중심으로 생활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장면들을 체험케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가게놀이나 시장놀이 등을 교사의 치밀한 자료 준비와 수업계획에 따라 지도하면 학생들의 수업참여도가 높아진다. 3, 4학년은 경제교육의 주요 내용 요소를 설명할 수 있는 시청각 자료를 미리 확보하고 학생들이 살고 있는 고장과 지역사회에서 수집할 수 있는 경제 관련 자료를 적절하게 제공하여 시·도 지역 경제구조와 경제활동의 모습을 바르게 이해시켜야 한다. 또한 가정의 경제생활에 대한 이해는 가정에서 활용하는 가계부나 어머니의 가정살림 경험 자료를 중심으로 조사학습의 형태가 바람직하다. 4학년 경제 단원의 특징은 경제생활의 개략적인 이해와 가정경제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므로 학생들이 경험한 용돈 사용 등에 대한 실제 사례를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5, 6학년은 우리나라 경제생활의 특징을 바르게 이해하고 국가경제의 중요성과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갖게 하고 자신의 진로에 대한 입장과 태도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따라서 5, 6학년의 경제교육은 학생들에게 다양한 웹 사이트를 안내하고 관련 자료를 활용한 탐구식 수업과정을 적용하여 당면한 경제문제에 대한 현명한 의사결정력을 내릴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 효율적인 초등학교 경제교육 방안 경제교육이 실효성을 갖게 하려면 경제교육에 효과적인 학습형태와 지도 방법을 적용하여야 한다. 전통적인 지식 전달 위주의 교육방법이나 교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탈피하여 학습자 스스로 경제문제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학습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다양한 ICT를 활용한 최신의 경제교육 정보를 검색 및 수집하여, 학년 수준에 맞게 재구성하고 교재 내용과 관련한 학습활동 자료를 학생들이 분석·종합의 과정을 거쳐 경제 지식과 문제에 대한 의사결정 능력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경제관련 단원의 수업은 교과의 특성을 살려 학습자 중심의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활용한 수업기법에 속하는 토의학습, 역할학습, 모의학습 등을 적용하는 것이 좋다. 최근에 한국은행 등 경제 단체나 KDI 등에서 개발한 최신의 경제교육 자료들을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관련 교과별로 산발적으로 지도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경제교육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시키는 데 다소 효율성이 떨어진다. 이에 경제교육 관련단원의 내용들을 근거로 초등학생들에게 소비, 생산, 유통 및 금융 등의 경제영역에 대한 수업자료를 개발 보급한 KDI의 ‘어린이 생활경제 프로그램’을 학교 여건과 학생들의 해결 능력, 교사의 수업 준비도를 고려하여 적용하여 볼 것을 제안한다. 학교 재량활동 시간을 활용하여 지도할 수 있도록 학생들의 생활경제 중심으로 개발한 교사용 지침서, 학생용 워크북, 웹자료 등은 6차시 분량으로 경제교육에 관심 있는 교사들에게 유용한 지도 자료라 할 수 있다. 지속적인 커리큘럼 개발 필요 초등학교에서의 경제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일상생활에서 부딪히게 되는 경제문제를 바르게 이해하고 의사 결정 과정에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분석 능력과 응용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 보더라도 체계적인 경제교육을 받은 국민은 경제 흐름을 원활히 하고 중요한 경제정책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합리적인 경제생활에 솔선함으로써 국가경제 발전에 도움을 준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초등학교에서의 경제교육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경제교육 관련기관의 도움이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다양한 자료를 활용한 교육이 필요하다. 경제교육은 교실과 교과서를 벗어나 실제 활용을 전제로 실시되어야 한다. 또한 경제교육은 시대적 상황에 맞는 교육이어야 한다. 다양한 교육 자료의 개발 보급은 현장의 경제교육을 풍성하게 한다. 셋째, 교사들의 경제교육 연수가 강화되어야 한다. “경제는 어렵다”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경제교육의 성패는 교육과정 내용보다는 교사의 관심과 지도방법에 더 크게 좌우된다. 따라서 경제교육에 대한 교사 재교육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재교육 방법은 학교 내의 자율 연수를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지만 경제 단체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넷째, 지속성과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개발해야 한다. 경제교육은 똑똑한 소비자, 혁신적인 생산자, 합리적인 경제인을 키우는 교육이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라 실행을 통해 습관화하도록 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습관화 교육을 위해서는 지속적이며, 체계적인 경제교육의 다양한 커리큘럼의 개발 및 보급이 필요하다. 끝으로 체계적인 경제교육을 위하여 배당시간의 확보와 독립교과의 운영 등이 요구되나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따라서 초등학생들 중에서 경제교육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나 5, 6학년 학생들에게 재량활동의 일부 시간을 할애, 지도하거나 계발활동 중 부서운영으로 체계적인 경제교육을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도를 담당한 교사들의 의지이며 경제교육여건 조성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학교경영자와 교육정책가들이다. 학생교육을 담당한 우리들 모두가 경제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학교여건에 적합한 실천과 추진에 최선을 다한다면 초등학교에서의 경제교육은 활성화될 것이다.
최근 호주 연방 교육부는 각 학교의 예산액을 동결하는 대신 맡은 학생들의 성적을 올린 교사에게 금일봉 형식의 성과급제 지원금을 편성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기존의 교육부 예산 가운데 학교별로 5만 호주 달러(약 4천만 원)를 교사들을 위한 개별 보너스로 편성하여 ‘베스트 교사들’에게 직접 나누어 주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교육부가 추진 중인 교사 성과급제가 정착될 경우 학생들의 영어 쓰기와 읽기, 수학 점수를 향상시킨 교사들은 이른바 실력 있는 교사로 인정받아 기본 급여 외에 과외 수당을 지급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의 성적 평가에 준한 성과급제가 자리를 잡게 되면 전국의 모든 학교 교사들의 자질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강한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는 게 정부의 예상이다. 교사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학생들의 영어, 수학 점수를 올리지 못하는 ‘무능한 교사’는 5만 달러의 인센티브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같은 학교의 ‘유능한’ 동료 교사들보다 결국 낮은 급여를 받게 된다는 의미이다. 연방 교육부가 이 같은 방침을 마련하게 된 계기는 교사들의 기본 자질에 대한 불신이 갈수록 깊어지는 교육 현실에 대한 현실적 개선책 강구에 기인한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실력 없는 교사들, 즉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엉터리 교사’들로 인해 호주 교육의 질이 나날이 떨어지면서 급기야 일정 수준 이상의 학년에 도달해도 여전히 읽고 쓰고, 기본적인 수셈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추어 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일례로 지난 해 한 사립 초등학교에서는 학부모 중 하나가 자신의 아이가 5학년임에도 여전히 쓰고 읽기와 수셈을 못한다며 학교 측에 항의, 학비를 되돌려받은 사례가 있었다. 공립학교와 달리 수업료를 받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립학교에서 수익자가 만족할 수준의 결과를 내지 못했을 경우 통상적인 상거래법을 적용하여 등록금을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던 것. 이 같은 극단적인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호주 학생들의 학력 저하 현상은 해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차제에 교육부는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본연의 업무를 등한시하는 교사들의 안일한 태도에 대한 책임을 묻는 동시에 격려 차원의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겠다는 의지이다. 이는 곧 교사 개개인의 수행평가를 겸한 기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육부의 이 같은 정책에 대해 당사자인 교사들은 물론 학교장 단체 및 정부 야당, 교원 노조 등 교육 관련기관들은 일제히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좋은 교사, 실력 있는 교사’란 곧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는 교사’라는 정부의 단순 공식에 ‘단순 수긍’할 수 없다는 주장인 것이다. 이는 현실 교육 현장을 무시한 탁상행정이자 공허한 발상에 불과하다며 강한 반발을 하고 있는 것. 교사들은 정부가 말로는 ‘수행평가’에 준한 성과급제를 실시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성적 평가’에 국한된 제한적 의미일 뿐이라고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학생들의 성적 관리가 교사들의 업무 수행의 일면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교직 본연의 업무로 인식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더군다나 대도시나 농촌 등 지역에 따라, 학교에 따라, 혹은 학급에 따라 학생들의 수준이 각각인 상황에서 시험 성적을 단순 비교하여 담당 교사들의 자질에 점수를 매기고 우수 교사와 열등한 교사를 구분하는 발상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부작용으로는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학생들 간의 지나친 경쟁심을 촉발시킬 경우, 그 부작용은 고스란히 교사들 간의 경쟁심 조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렇게 될 경우 교육의 질적 향상에 기여하는 가장 중요하고 직접적인 요소인 동료 교사들 간의 강한 유대감이나 친밀감, 협조, 일체감, 애교심, 수업 노하우 교환과 공유 등에 훼손을 가져올 것이 자명하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또 소도시 및 고립된 농어촌 등 열악한 환경에서 묵묵히 근무하는 교사들이나, 교육현장의 질적 성장을 꾀할 수 있는 전문적인 프로젝트 개발을 위한 지원금 등으로 지급될 때 실적급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만약 그도 아니면 교사 개인의 자기 발전이 곧 교육환경의 발전이라는 의미에서 석사 학위 이상 소지자 등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한다면 그런대로 납득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교육부는 학생 성적 향상도 위주로 ‘베스트 교사’를 관리한다면 이로 인해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학부모들에게 보다 소상히 알릴 수 있는 바탕도 간접적으로 마련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학내 폭력, 성폭행 등으로 자녀를 학교에 보내놓고도 늘 불안해하는 학부모들에게는 교사들이 성적 위주로 학생들을 다잡을 경우, 품행 면에서도 지금보다 모범적으로 변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이다. 그렇게 되면 학생 관리에 허술하다는 학부모들의 학교 측에 대한 불만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제대로 된 수업 분위기는 고사하고 이른바 왕따 현상과 학내 폭력의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공부 위주의 학풍으로 점차 바꾸어 나간다면 서서히 고삐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 이처럼 교사 성과급제 도입을 둘러싼 교육부와 일선 교사들 간의 공방이 치열하지만 정부 시책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선 역시 그리 곱지만은 않은 편이다. 지난 2004년과 2005년 2년 사이에만도 8천 명 이상의 젊은 호주 교사들이 영국 등 해외로 빠져나갔는가 하면, 지난 10년간에는 약 2만여 명의 교사들이 교직을 그만둔 것으로 조사되었다. 호주 젊은이들에게 교직은 그다지 매력적인 직종이 아니며, 그 근본 원인은 타 직종에 비해 낮은 임금체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사들의 급여가 적정한 수준으로 향상되지 않는 한, 어떤 기준을 내세운 성과 급여라 하더라도 우수한 교원확보를 위한 근본 대책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겠다는 교육부의 정책에 대해 당사자인 교사들은 물론 학교장 단체 및 정부 야당, 교원 노조 등 교육 관련기관들은 일제히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좋은 교사, 실력 있는 교사’가 곧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는 교사’라는 정부의 단순 공식에 단순 수긍할 수 없다는 주장인 것이다. 이는 현실 교육현장을 무시한 탁상행정이자 공허한 발상에 불과하다며 강한 반발을 하고 있다.
“길에 가는 강아지나 나만 휴대폰 없지, 세상 사람들 다 있는 것 같더라.” “그럼, 엄마도 휴대폰 사 드릴까요?” “그렇다는 말이지. 집에만 있는 나한테 무슨 필요가 있다고.” 언젠가 필자가 엄마와 나누었던 대화 내용이다. 엄마의 말씀이 조금은 과장된 면도 있고, 표현이 익살스럽지만 그다지 틀린 말씀도 아니다. 엄마와 달리 가입비가 아까워 휴대전화를 극구 마다하셨던 아버지조차도 1년 전 휴대전화를 원하셨던 것 보면 휴대전화가 사람을 끄는 힘은 상당한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현대인의 필수품 중의 하나가 되어버린 휴대전화. 어디를 가든 사람들 손에는 어김없이 휴대전화가 들려 있다. 하루에 한 번도 울리지 않을 때가 많지만 장소를 이동할 때면 필자 역시 휴대전화를 챙기게 된다. 어느 때는 너무 휴대전화에 구속되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휴대전화 없이도 살았고, 지금도 간혹 약속 시간 맞추기 힘들 때 요긴하게 쓰이는 것 말고는 그다지 필요성을 못 느끼지만 다른 사람들 다 갖고 있는데 혼자만 없는 것도 그렇고 해서 지금껏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있다. 15년 전쯤 만해도 휴대전화는 값이 비싸서 주변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성인들 사이에서도 일부 사업하는 사람이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가지는 물건으로 인식되었었다. 그런데 휴대전화가 일반화되고 나서는 성인들뿐 아니라 학생들 또한 상당수가 휴대전화를 소지하게 되었다. 일본 역시 고교생은 거의 전원이, 중학생도 과반수 이상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실정이며, 필자가 담임하는 학급(초등 6학년) 또한 37명 중에 20명 이상의 학생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다. 학생들의 경우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많은데 휴대전화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싶은 마음에 휴대전화 소지의 이유를 물으면 한결같이 부모와의 비상 연락을 이유로 든다.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밖에서 일하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들과의 긴밀한 연락이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상 연락보다는 친구들끼리의 통화나 다른 기능사용을 위해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녀들의 무분별한 휴대전화 사용으로 과도하게 청구되는 요금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들의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성년의 경우 부모의 명의로 전화가 가입되다 보니 자신이 어느 정도 전화를 사용했는지, 부과되는 요금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감각이 없다. 매월 지불해야 하는 요금 중에 자신이 정말 필요한 때에 쓴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혹은 고정적으로 나가는 요금의 액수가 부모님의 가계 운영에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에는 더 더욱 관심이 없다. 요즘 아이들의 ‘경제 감각의 상실’은 새로운 교육문제의 하나가 됐다. 돈 아까운 줄 모르고 과도하게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 역시 문제지만 지금 필자가 걱정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는 부적절하고 그릇된 행동이다. 이는 단지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하는 통화 매너 문제와는 차원이 또 다른 것이다. 학교에서, 그것도 수업시간 중에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문제다. 일본 고교에서는 학교에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등교하는 것을 약 80%의 학교가 허가를 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70% 정도의 학교가 수업 중에 메일이나 인터넷에 접속을 하고 있는 문제로 지도에 골치를 썩고 있는 실정이다. 이 문제는 결국 ‘학생들의 규범의식의 결여’와 결부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최근 여기에 동영상이 되는 MP3의 등장이 교사들의 머리를 더욱 아프게 한다. 얼마 전 본교 고등부에서는 수업 중에 동영상으로 포르노를 보다가 적발되어 유기 정학을 받은 경우가 있었다. 처음부터 유기 정학으로 처리할 마음은 없었으나 학생의 태도에 반성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그리고 잘못을 한 이후에도 반성할 줄 모른다는 것은 학생으로서 학교 규범에 대한 준수 의지가 전혀 없었다고밖에 달리 해석이 되지 않는다. 수업 시간에 몰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게임을 하는 일도 물론 있다. 학교에 오면 전원을 끄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교사의 눈을 피해 규칙을 어기는 학생들에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요금 문제로 혹은 공부는 안하고 휴대전화로 장난만 하는 자녀들 때문에 고민을 하면서 휴대전화 소지를 허락해 주는 부모들도 문제가 있다. 그러나 그것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상시 연락 등의 휴대전화의 순기능적 면보다는 역기능적 면이 더 많음을 부모들도 알고는 있지만 아이들의 등살에, 혹은 아이들 기 살리기에 부모가 넘어가고 마는 것이다. 휴대전화를 갖고 싶은 것에 온 정신이 팔려 공부에 집중 안할까봐 휴대전화를 사줬건만 결국 그 휴대전화 사용에 정신이 팔려 공부를 소홀히 하는 경우를 초래하고 만 경우이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모델과 기종이 쏟아져 나오는 현 상황에서 휴대전화 소지를 막을 방법은 학교에는 전혀 없으며 또한 그것을 막을 권리도 학교에는 없다. 다만 휴대전화 사용과 관련된 각종 문제들을 걱정하는 것과 교육적 차원에서의 지도를 궁리할 수밖에 없다. 학교 나름대로 규칙을 세워 학교 내에서의 휴대전화 소지를 엄금하거나, 소지를 하더라도 하교 전까지는 전원을 켤 수 없도록 못 박아 두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학교는 참으로 약한 존재이면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휴대전화를 만들어 내어 돈을 버는 회사와 통화를 가능케 하는 통신회사가 따로 있고, 10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현란한 선전을 해서 이익을 창출하는 광고회사가 있으며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해서 휴대전화를 사주고 요금까지 내주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휴대전화의 엉뚱한 사용으로 수업 분위기를 흐리게 하는 등의 문제로 골치를 썩는 곳은 결국 학교이니 말이다. 일본 홋카이도에 있는 전 고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고교생의 규범의식’ 조사 결과를 보면 휴대전화, 메일 주소를 누구에게라도 가르쳐 준다고 답한 학생이 전체 3398명 중의 45%나 되었으며, 만남 사이트에 접속한 경험이 있는 9% 학생 가운데는 직접 상대방을 만난 경우가 27%나 되었다. 조사결과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학생들의 휴대전화의 부적절한 사용 자체도 문제이지만 학교나 가정이 그러한 실태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 각종 문제가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을 유혹하는 첨단 물건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 가는 상황에서 기성세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애초부터 만들지 않았다면 모를까 만들어진 물건을 사용 못하게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결국 바른 사용과 건전한 사용법을 일깨워 줄 수밖에 없다. 요즘 교육현장에서 자주 단골로 등장하는 문구 중에 ‘가정과 지역 사회의 연계 강화로 교육적 성과를 높인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참으로 그럴듯한 말이다. 학교 단독의 노력보다는 여기에 가정과 지역의 이해와 협력이 보태지면 그 성과가 높을 것임은 명백한 사실이다. 지금이야말로 학교와 가정·지역사회가 긴밀히 연계하여 학생들의 규범의식의 확립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초등학교5,6학년 교사의 수업 부담은 정말로 대단하다. 그러나 직접 이를 담당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을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고로 초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은 5,6학년 담당을 기피하기에 다소 젊다는 선생님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본의 누마타시 교육위원회는 2007년도부터 시내 13개 초등학교의 5.6학년을 대상으로, 한 학급에서 복수의 교원이 자신 있는 과목을 지도하는「상호 교체형 학급 담임제」를 도입하였다. 이 제도는 종래의 학급 담임제를 유지한 채로 일부 교과에서 교과 담임제를 도입하는 것으로써 동 시교육위원회가 독자적으로 명명한 것이다. 현교육위원회에 의하면 이와 같은 제도를 시내 전 학교에 도입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이 제도는 각 교원의 전문 분야나 자신 있는 과목을 살림으로써, 아동들에게 충실한 교과지도를 하는 것이 목적이다. 또,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교과 담임제에 대한 부담없는 이행과 한 학급을 복수의 교원이 담당함으로써 아동을 여러 면에서 이해할 수 있는 등의 장점이 있다. 교체 예로는, A반 담임이 옆 B반에서 이과와 만들기를 지도하는 대신, B반 담임이 A반에서 사회와 체육을 담당하는 등, 교원이 서로 동일한 시간을 담당하도록 한다. 교체는 다른 학년의 담임 간 이외에도 담임을 맡고 있지 않는 교무주임, 교감을 합해서 4,5명으로 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동 시교육위원회의 시산으로는 두 학급 간의 교체 방법은 약 40가지 정도가 있다고 한다. 어떤 방법을 채용할 것인지는 각 학교장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각 학교는 시교육위원회에 4월 말까지 실시 계획을 제출하고, 학급을 담당하는 교원 전원이 학생지도 지원그룹을 만들어, 수업 별로 학생들의 수업 상태를 노트에 기록해서, 전원 열람할 수 있도록 한다. 그룹에서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학습지도 뿐 만이 아니라, 따돌림과 등교거부 등의 생활지도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동 시교육위원회에서는 앞으로, 새로운 제도의 개요와 각 학교의 추진 상황을 시 홈페이지에서 소개해서 전국에 발신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황사, 미세먼지, 오존에 이어 요즘처럼 여름철에 폭염특보가 발령되면 일선 학교의 등ㆍ하교 시간이 조정되거나 임시휴업 등의 조치가 내려진다. 교육부는 최근 여름철 이상 기온 발생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폭염으로 인한 학생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폭염시 각급학교 수업관련 계획'을 마련해 각 시ㆍ도교육청을 통해 일선 학교에 시달했다고 1일 밝혔다. 계획에 따르면 폭염주의보 발령시 학생들의 실외ㆍ야외활동이 제한되고 학교장이 단축수업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폭염경보 발령시에는 시ㆍ도교육감이 등ㆍ하교시간을 조정하거나 임시휴업 등 상황에 따른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폭염주의보는 이틀째 낮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될 때, 폭염경보는 이틀째 35도 이상 계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각각 발효되며 특보 발령시에는 습도 상황도 고려된다. 날씨를 고려해 학교수업 관련 제한 조치를 내리는 것은 황사, 미세먼지, 오존에 이어 폭염이 네번째로 대부분 최고 수위의 경보 발령시 단축수업이나 임시휴업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했다. 봄철 불청객인 황사의 경우 최고 수위인 `황사경보'(미세먼지 1시간 평균 농도가 800㎍/㎥ 이상인 상태가 2시간 이상 지속) 발령시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실외활동이 금지되고 수업단축 및 휴업 등의 학생 보호조치가 취해진다. 미세먼지는 최고 수위인 `먼지경보' 발령시 황사와 마찬가지로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수업단축 또는 휴업조치가 실시되며 오존은 최고 수위인 `중대경보'(오존농도 0.5ppm 이상) 발령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비롯해 중ㆍ고교까지 수업단축과 함께 휴업조치할 수 있다. 교육부가 황사, 미세먼지, 오존에 이어 폭염의 심각한 정도에 따라 휴업 조치까지 취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여름철 이상 기온 발생 가능성이 커지면서 폭염으로 인한 학생 피해가 우려되는데 따른 것이다. 교육부는 우선 폭염특보에 따른 학교 수업관련 조치를 7월1일부터 9월30일까지 3개월간 시험 운영하고 내년부터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교육부에는 폭염 피해에 대비해 초중등교육정책과장(반장)을 포함한 10명으로 중앙비상대책반이 설치ㆍ운영되며 각 시ㆍ도교육청에는 담당 과장을 반장으로 비상대책반이 구성ㆍ운영된다. 기상청의 폭염특보 발령시 각 시ㆍ도교육청 비상대책반을 통해 지역교육청과 각급 학교까지 폭염 발령 상황을 SMS문자, 메일, 팩스, 지역방송 등을 통해 신속히 전달하고 폭염경보 발령으로 휴업조치가 결정되면 언론사, 마을방송, 학부모 SMS문자 등을 통해 결정 사항을 곧바로 통보한다.
최고기온 32도를 기록한 30일 서울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앞에서 덕수초등학교 학생·학부모 60여명이 운동장을 지키기위한 시위를 벌였다. 시위의 주된 내용은 덕수초 운동장에 추진 중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념관 건립을 중단해달라는 것. 학생회장 정지은 양은 “6년 동안 추억이 담긴 운동장을 없애는 것은 우리의 꿈을 짓밟는 것”이라며 “운동회도 열고 축구도 할 수 있는 공간을 빼앗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현재 행정자치부로부터 무상으로 임대해 쓰고 있는 운동장에 기념관을 짓게 되면 학생들이 뛰어놀 공간이 부족해질뿐더러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 학생과 학부모들의 우려다. 또 만일 공사가 시작된다하더라도 소음과 분진으로 인한 수업권 침해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학부모 성지은 씨는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는 것도 좋지만 하필 학교 운동장으로 쓰고 있는 땅에 건물을 지으려하는지 이해가 안간다”며 “한 때 이들이 민주세력이었는지는 몰라도 우리에게는 전혀 민주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울분으로 토로했다. 이에 앞서 27일 서울교총은 성명서를 내고 “기념관 건립은 후대에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부지가 학교 운동장이란 사실은 교육의 중요성을 비춰볼 때 심각한 우려는 자아낸다”며 “행자부의 반교육적 기념관 건립 사업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사업취지에 맞는 부지를 다시 선정하라”고 촉구했다. 이처럼 학교와 교육계의 반대가 제기되자 기념사업회 측이 내놓은 대안은 건립될 기념관 내 체육시설과 주차장을 체육시간에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는 것. 하지만 이같은 사업회 측의 중재안도 학생과 학부모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찬원 학교운영위원장은 “운동장과 건물 내 체육시설, 주차장은 엄연히 성격이 다른 공간인데 사업회 측에서 말장난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땅 소유주인 행정자치부의 관계자는 31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에 따라 사업회가 전적인 권한을 갖고 신축부지를 지을 수 있으나 덕수초의 입장도 일리가 있는 만큼 기념관을 짓기 위해서는 상호 문제가 해결된 뒤에나 승인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해 앞으로 덕수초의 시위, 민원제기가 계속될 경우 학교 운동장에 기념관 건립이 어려울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여름방학 특집 Seunghak English Summer School - 인천승학초등학교(교장 송경수)에서는 여름방학을 맞아 7.24일부터 27일까지 4일간 3~6학년 중 영어학습에 흥미와 관심이 있는 학생 30명을 대상으로 Seunghak English Summer School이라는 프로그램을 마련 수업 시간에 맛볼 수 없는 다양한 영어 체험 활동을 통해 영어의 바다 속으로 푹 빠지도록 해 참가학생들로부터호응을 얻은 가운데 마쳤다. 체험활동은 암기도 좋지만 영어적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따라서 초등학교 수준에 맞는 주제를 선정 다양한 문장을 통해 문법을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한 후 본교 김주옥·차미현 영어담당교사를 비롯한 원어민영어교사(Charles T. Deighan)와 학생 간의 일대일 대화로 실제 상황에 적용해 보는 수업 방법으로 진행했다. 특히 초등학생들로부터 인기 있는 게임 프로그램인 Musical Chairs, Heads down·thumbs up, The mystery bag, Pin the tail on the donkey, Charades, Fast words 등 새롭게 접하는 게임 활동을 펼쳐 학생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었다. 또한 학생들은 TV 프로그램인 스타 골든벨을 응용한 What's behind your teacher?, 발음이 어려운 글을 빨리 읽어보는 Tongue Twister 등의 게임이 재미있었다고 전하였다. 한편 Charles T. Deighan 원어민교사는 승학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영어는 생활이고 문화랍니다. 올해로 3년째 본교에서 근무하며 느끼는 것으로 학생들과의 소통이 보다 자연스러워짐은 물론 학생들의 발음과 표현력이 좋아졌다고 말하고. 영어를 영어답게,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것은 원어민 교사의 활용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번 English Summer School은 방학을 맞이한 학생들에게 유익한 시간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시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설치된 자동판매기에서 학생 비만 등의 원인이 되는 탄산음료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31일 밝혔다. 시교육청은 최근 학교내 탄산음료 판매 실태를 조사한 결과 고등학교 5곳에서 자동판매기를 통해 탄산음료가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청은 이에 따라 이들 학교에 다음달 초까지 탄산음료를 건강음료로 대체해 팔도록 하고 탄산음료 섭취의 유해성을 학생들에게 알리도록 권고했다. 교육청은 이에 앞서 올해 초 실태조사를 벌여 초등학교에는 탄산음료 판매 자판기가 한 대도 없는 것으로 확인하고 탄산음료 자판기가 설치된 중학교 32곳은 탄산음료 자판기를 철거하거나 탄산음료 대신 건강음료로 교체해 팔도록 조치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학생들이 탄산음료를 많이 섭취할 경우 비만이나 골다공증, 충치 등 성장에 심각한 위해요인이 되고 있다"며 "학생들의 건강증진을 위해 학교에서라도 탄산음료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선 학교에서 교사들의 컴퓨터 활용수업과 민간 위탁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인 컴퓨터교실 수업이 급증하면서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SW) 사용이 우려되자 교육 당국이 단속에 나섰다. 교육부는 최근 각 시ㆍ도교육청을 통해 일선 학교에 `민간참여업체 및 학교의 불법복제 SW 사용 금지' 공문을 시달해 학교 내에서 사용 중인 교육용ㆍ업무용 SW의 무단 복제 여부를 확인, 정품으로 교체할 것을 지시했다고 31일 밝혔다. 이는 학교 내 모든 SW를 정품으로 사용해야 하지만 일부 학교와 학교에서 위탁받아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으로 컴퓨터교실을 운영하는 민간업체가 불법 복제 SW를 사용하면서 개발업체의 민원 및 고소ㆍ고발 사건 문제가 야기되는 데 따른 것이다. 교육부는 우선 각급 학교에 사용 중인 SW의 무단 복제 여부와 SW의 사용 조건 및 계약 기간 등을 확인하고 불법 복제 SW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에는 자체 편성된 예산으로 정품 SW를 구입해 사용할 것을 당부했다. 일선 학교들은 민간업체가 개발한 SW의 저작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정품 SW를 사용하는데 노력하고 있으며 각 시ㆍ도교육청은 정품 SW 사용을 위해 학교당 200만원의 예산을 별도로 책정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 따라 현재 많은 학교가 한글, 백신프로그램 등 자주 사용하는 SW를 정품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아직도 일부 학교에서는 컴퓨터 활용수업시 불법 복제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서울 지역 600여개 초등학교 중 270개 학교를 포함해 전국적으로 40% 정도의 학교가 진행 중인 방과후학교 컴퓨터교실의 경우 민간업체에 위탁해 실시하기 때문에 비용 문제 등의 문제로 인해 불법 SW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컴퓨터 설치부터 수업까지 모든 과정을 외부업체가 일괄 관리하는데다 수업료가 월 2만~3만원 수준으로 저렴하지만 수업에서 사용하는 고급 프로그램은 정품의 경우 가격이 만만치 않아 불법 복제품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이 크기 때문이다. 교육부도 이런 점을 감안, 컴퓨터교실 등 민간 참여업체가 사용 중인 SW에 대해서는 정품 SW 관련 증빙 자료를 받아 개발사 및 공급업체의 불법 SW에 대한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지도ㆍ감독할 것을 지시했다.
과학기술부가 매주 금요일 선보이는 「금요일의 과학터치」에서 우리는 과학에 대하여 알수 있다. 얼마전 대전역에서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유범재 박사가 “로봇과 함께 하는 미래생활(인지로봇이란?)”이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그 강의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지로봇이란, 사람이 시각, 청각 및 촉각 정보들을 활용하여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배우고 응용하여 행동하는 원리를 활용하여, 주변의 다양한 정보들을 받아들여 새로운 것을 스스로 배워 똑똑하게 행동할 수 있는 로봇을 말한다. 예를 들면, 새로운 단어와 사람을 기억하고 알아볼 수 있고, 사람에게서 새로운 작업지식을 배우고 이를 응용하여 사용할 수 있는 로봇을 의미한다. 어떤 로봇들이 그동안 개발되었나? 1990년 이전까지는 미리 입력된 동일한 운동명령을 반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 자동차 조립 혹은 전자제품 조립을 위해 사용되던 산업용 로봇들이 주로 개발되었다. 1990년 중반부터 사람과 함께 생활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로봇들 즉, 가정에서 사용되는 청소로봇과 홈서비스로봇, 위험지역에서 사람을 대신하여 일할 수 있는 위험작업로봇, 사람처럼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인간형로봇 등 다양한 로봇들이 개발되었다. 기존의 로봇들은 미리 입력된 프로그램과 지식만을 활용하여 행동하고 작업을 수행할 수 있어, 새로운 작업을 수행하도록 하려면 관련된 프로그램과 지식을 다시 수정, 입력하여야 한다. 그러나 미래의 로봇은 우리와 동일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유연하게 도와줄 수 있도록 사람과의 상호작용(예: 대화)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작업능력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사람의 인지능력을 로봇에 접목하여, 모르던 지식을 스스로 배워 응용,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로봇에게 부여하기위해 연구를 시작하였다. 우리는 새로운 친구를 만나면 얼굴과 이름을 새롭게 배운다. 서로 인사를 하면서 그 친구의 말하는 스타일과 행동하는 습관들도 알게 된다. 진공청소기를 사오면, 조립하는 방법, 스위치를 켜는 방법, 의자 밑에 까지 넣어서 청소하는 방법, 먼지봉투를 교환하는 방법 등 관련된 정보들을 배운다. 드라이버를 사용하기 위해, 드라이버를 나사못 머리에 일치시키는 방법, 나사못을 돌리는 방법 등을 배운다. 어떻게 배울까요?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서, 전문가의 설명과 시범동작을 듣고 보면서 배우게 된다. 즉, 시각, 청각, 촉각 등의 정보를 사용하여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행동하는 능력을 로봇이 갖추게 되는 것이다. 현재는 배우는 능력을 제공하기 위한 기반기술을 배우는 능력을 갖추려면 로봇의 몸속에 들어있는 컴퓨터의 용량으로는 연산능력을 충분히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무선 네트워크를 통해 로봇과 연결된 로봇 외부의 컴퓨터를 사용하여 다양한 인식(얼굴 알아보기, 음성단어 알아듣기, 물체 알아보기, 간단한 팔동작 알아보기 등) 및 동작(시각 정보를 활용하여 물체집기 등) 능력을 제공할 수 있는 ‘네트워크 기반 휴머노이드’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이와 같이 로봇 외부의 컴퓨터를 사용하면, 풍부한 지능 관련 소프트웨어들을 사용하여 로봇을 매우 똑똑하게 만들어 갈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인지로봇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로봇과 함께하는 미래생활은 어떻게 변화할까? 우리는 많은 만화 및 영화를 보아 와서 아톰, 태권V와 같은 사람을 닮은 로봇들을 우선 생각한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에 우리를 찾아올 로봇은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알투디투(R2D2)와 같이 바퀴로 굴러 움직이면서 유무선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제공받아 사람을 도와주는 로봇들이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는 것을 도와줄 교육도우미 로봇 (친구들과 함께 인사하고, 모르는 것을 질문하면 알려주고, 음악을 들려주면서 함께 춤추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고, 사진도 함께 찍어주고, 부모님이나 친구의 이메일을 전해주는 로봇), 집안을 감시하고 물걸레 청소를 해줄 수 있는 가정용 로봇, 백화점에서 자세를 바꾸어가면서 옷들을 좀 더 멋있게 전시할 마네킹 로봇, 식구들이 자주 가는 패밀리 레스토랑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즐거움과 정보를 제공해줄 도우미 로봇 등 다양한 로봇들이 우리들을 옆에서 도와줄 것이다. 영화에서 많이 보이는 인간형 로봇은 2015년 이후가 되어야 보다 친근하고 안전한 모습으로 우리에서 다가올 것이다. 어느 박람회에서 로봇이 단체로 춤추는 것에 사람들이 열광을 하는 것을 보았다(필자가 찰영한 사진 참조). 앞으로 로봇이 우리 학교교육에도 도움을 줄 것이므로 이들에 대하여 교사들도 알아야 하겠다.
"오메, 돈 벌어야제 무슨 놈의 공부를 해!중학교에도 갈 수 없는디 공부는 무슨 놈의 공부. 제발 가서 일을 해라. 돈 벌어야제. 오늘도 학교에서 놀고 왔제? 니 분수를 좀 알아야제. 아이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 허구헌 날 책만 보면 되냐? 책을 보면 돈이 나오냐, 옷이 나오냐 제발 책 좀 그만 봐라." 아직도 귀에 쟁쟁한 새어머니 목소리입니다. 전깃불도 귀한 시절이라 단칸방에서 밤늦게까지 불을 켜 놓고 학교 공부를 하고 있으면 여지없이 내 책을 문밖으로 내동댕이치던 새어머니.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리던 새어머니는 자신의 병수발을 하느라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던 나를 늘 매몰차게 다그쳤지요. 더구나 나는 무남독녀라서 아버지의 지극한 기대를 받았지만, 비틀어지기 시작한 집안 사정은 공부하고 싶은 나를 그냥 놔두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가난해서 중학교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학교에 다녀온 내 필통을 열고 날마다 연필을 손수 깎아주실 만큼 공부하기 좋아하는 딸을 품어주셨습니다. 나이가 많으셨던 아버지와 살림을 꾸린 새어머니가 알뜰하게 살면서 6년 동안 이룬 살림이 거덜이 나기 시작한 것은 내가 5학년 되던 겨울이었습니다. 이름 모를 병으로 앓기 시작한 새어머니 때문이었습니다. 중학교에 낼 입학금까지 어머니의 병원비로 날리고 졸업마저 불안할 정도로 끼니마저 겨우 이어갔던 1968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겨울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초등학교에서도 이름 있는 중학교에 몇 명을 합격시켰는지가 학교를 평가하고 선생님들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였습니다. 마치 오늘날의 명문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현실처럼. 우리 반 50명 중에서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친구들은 저녁마다 담임선생님 집에 가서 밤늦도록 공부를 더 하고 과외비를 냈습니다. 읍내에서 제일 큰 초등학교였던 우리 학교에서는 광주의 명문 여중에 학교 대표 20명이 응시하여 8명이 합격하였으며, 그중에서도 4명이 우리 반이었으니 담임선생님이 얼마나 열심히 가르치셨는지 짐직이 갑니다. 우리는 교과서를 줄줄 외웠고, 음악책의 악보까지 외워서 적어낼 만큼 날마다 쪽지시험을 보았으며, 체육 시간은 운동회 연습과 중간 체육 시간으로 채워졌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광주로 진학을 하여 하숙을 하거나 이사 갔지만, 나는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 전남여중 교장 선생님과 악수를 하는 것으로 모든 게 끝났습니다. 그때 전남여중의 커다란 리기다소나무에 걸려있던 합격자 번호 속에 들어 있던 나의 합격 번호 '353'번은 내가 평생 기억하는 아픈 번호가 되었지요. 집안 형편상 광주에 있는 중학교 시험을 보면 절대 진학할 수 없으니, 집에서 다닐 수 있는 장성여중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게 원서를 써달라고 발이 닳도록 담임선생님을 설득했다던 아버지. 그러나 학교와 담임선생님의 명예욕에 무참히 짓밟힌 나는 '학벌지상주의'의 피해자로 남아야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비싼 과외를 하면서 들어간 중학교였지만, 나는 새어머니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단칸방의 호롱불 아래서 콧구멍이 시커멓도록 책을 달달 외우고, 손끝이 아프게 공부를 해서 120문제 중에 117개를 맞았습니다. 당시 중학교 커트라인이 113개였던 입시의 관문을 통과한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나는 장성군내의 학력경시대회에서 전체 1, 2등을 하거나 300명이 넘는 우리 학교 6학년 시험에서도 1, 2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장성여중 장학생이 되기만 하면, 우리 가족이 입에 풀칠만 하더라도, 어떻게든 나를 중학교 졸업시키겠다는 것이 아버지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아버지의 소망에 부응하였던 어린 소녀의 꿈을 깡그리 뭉개버린 학교 측의 처사를 가끔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운명이 스스로 개척하며 살아야 함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최고의 인간 교육은 월터 스콧이 말한 것처럼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가르치는 교육'이므로, 홀로서기에 성공한다면 정식 학교가 아닌 길도 있으리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얻은 공부에 대한 자신감으로 책을 많이 읽고 열심히 공부하면 검정고시로 학력을 인정받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다른 친구들이 멋진 여중생 교복에 단정한 이름표를 착용하고 다닐 때 나는 삼동고등공민학교에 약간의 납부금을 내고 다니면서 집안 살림을 하고, 어머니의 병수발을 하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때로는 끼니 걱정을 할 정도였고, 집마저 어머니 병원비로 날리고 홀로 남았을 때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용기를 지금도 그리워합니다. 3년 동안 다닌 삼동고등공민하교 덕분에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중학교 졸업 자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나에게 기회를 주셨던 고 이상설 교장 선생님과 오형준 교감 선생님, 김선배 선생님, 이영수 선생님을 비롯한 은사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고등학교에 갈 희망은 여전히 없어서 그때부터는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어린이집 보조보모에서부터 책 외판원을 거쳐 서울에서 가정부 생활도 2년 동안 했습니다. 나는 얼마 안 되는 월급의 대부분으로 책을 사서 읽었으며, 고등학교 통신강의록으로 5년 동안 공부를 지속했습니다. 그 당시(1976년), 고등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 전 과목(9과목)을 한꺼번에 합격한 것은 내 나이 21살 때였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공무원 시험까지 합격하여 부모님의 생활을 책임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기쁨이 너무 커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마지막까지 가장 힘들었던 수학 공부를 할 때는 답을 거꾸로 꿰어맞추는 식으로 공부를 하면서 기본 문제에 충실하여 원리를 습득하였고,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학원에 다닐 형편도 아니었고 누구에게 물어볼 형편도 아니었으니 무작정 멍청하리만큼 '오직 해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나 자신을 채찍하며 극복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8년 만에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 부모님을 모시고 공무원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아픔을 다시 되새기며 통신대학 초등교육과에 합격하여 2년 과정을 마치고 준교사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초등교사 순위고사에 응시하여 합격을 한 후, 교생 실습을 거쳐 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은 것이 벌써 27년 전 일입니다. 정식 교육대학을 나오지 못하고 아이들 앞에 섰다는 콤플렉스는 나를 늘 배움의 길로 내몰았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연수 활동에 적극 참여하거나 스스로 피아노 배우기, 수채화 배우기, 고전 무용 배우기 등 배움의 기회 앞에서 나는 늘 낮아졌습니다. 실력이 없어서 아이들에게나 학교에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무의식 속에서 나를 불러내어 채찍질했습니다. 육아와 학교생활을 병행하면서도 다시 통신대학 학사과정에 입학하여 학사 학위를 얻고도 채워지지 않는 배움을 향한 갈망은 끝이 없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문학 분야의 대학원을 졸업하고 석사 학위 논문까지 통과하여 학위수여기를 손에 쥐면서 어느 정도 채울 수 있었으나, 아직도 나는 배움의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인생이 보이기 시작함을 느낍니다. 그동안은 연장을 갈기 위한 세월이었다는 자각이 드는 요즈음은 하루가 아깝습니다. 날마다 뭔가를 읽어야 하고 뭔가를 쓰지 않으면 배고픔을 느끼니 그 갈증을 해갈하기 위해 다시 돌아가려 합니다. 내 영혼을 편안하게 품어주는 책 속에서 만나는 위대한 영혼들과 나누는 가슴 설레는 교감을 자유롭게 기록하고 싶으며, 내가 살아온 작은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지혜의 샘물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런 샘물 하나 가질 수 있는 날까지 배우는 자로 남고 싶습니다. 학벌지상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먼 길을 돌아와 보니 배움의 길은 과정만 다를 뿐 어디에나 길은 있다는 깨달음 한 조각이 남습니다. 그 길을 찾는 것도 결국 스스로 자신의 몫이라는 것까지. 나는 어렸을 때 제일 듣고 싶은 말이 "공부 좀 해라"였습니다. 그 말을 해줄 부모님은 세상에 안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참 좋아하는 말로 이 글을 맺고자 합니다. "나는 세상을 강자와 약자, 성공과 실패로 나누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배우는 자와 배우지 않는 자로 나눈다." - 사회학자 벤저민 바버(Benjaminn Barber) (나의 작은 이야기가 아직도 학벌지상주의의 피해자로 살아가는 많은 분들과 힘들게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작은 용기가 될 수 있기를 비는 마음 간절합니다. )
일본에서 소규모 특정학교 제도란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과 특성에 맞게 지도하기 쉬운 소규모 학교의 특색을 살린 교육을 받고 싶은 어린이들에게, 거주지 시정촌내에 한해서 학구와는 상관없이 입학을 인정하는 제도이다. 현내에서도 초중등학교 합해서 10개 학교가 소규모 특인학교의 지정을 받고 있다. 그 중에는 따돌림이나 등교거부로 고민한 끝에 이 제도를 이용하여, 성장한 아이들도 있다. 내륙지방에 사는 어느 여고생은, 초등학교 때 동급생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퍼부어 대는 욕설과 집단으로부터 무시를 당했다. 학교를 생각하면 다리가 얼어붙었다고 한다. 용기를 내어 양호실 등교를 계속했지만, 점차 곧 잘 쉬게 되었다. 이렇게 학교는 「무서운 곳」이었다. 졸업이 가까워졌을 때, 부모님이 어느 소규모 인정학교인 중학교를 찾아주었다. 「어떻게 할래?」라는 겨우 12살에 닥친 선택이었다. 불안에 가득 차 있었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라는 용기를 내어 멀리 떨어진 이같은 중학교에 갈 것을 결정하였다. 입학 당시, 동급생은 자신도 포함해서 5명, 주위는 모두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고, 가족들 간에도 친구 지간이라는 친밀한 인간관계이다. 자기만 소외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이 선택이 잘 한 것인지 고민한 적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서서히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 밭에서 농사일이나 고사리 끊기, 지역 사람들과 합동으로 하는 운동회, 수학여행 등 즐거운 추억이 점점 늘어났다. 이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며, 수업중에 발언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하는 것이 자신 있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잘 어울릴 수 있게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말하지 않아도, 모두 밝고 명랑하다. 선생님도 친구도 말을 잘 걸어 주었다. 「무서운 곳」이었던 학교는, 「즐거운 곳」으로 변했다. 그리고, 지금은 보통학교에 “아무 일 없이” 다니고 있다. 충실한 매일, 파티시에라는 장래의 꿈도 가지게 되었다. 중학교 때, 과자를 만들어서 학교에 가져갔더니, 친구들이「맛있다」라고 칭찬해 준 것이 계기이다. 그 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 꿈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어울릴 수 없었던 것도 포함해서 전부 자신의 거름이 되어있다.」라고 말했다. 한 산촌 지방의 남자 교사(56)는, 2001년도부터 3년간, 소규모 특인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다. 거기서 이전에는 등교 거부나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고민하여, 제도를 이용해서 전학해 온 학생들과 만났다. 곧바로는 어려워도 서서히 마음을 열고,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해져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기뻤다. 부모도 또한, 건강해졌다. 「풍부한 자연, 강한 지역의 유대감 등 학교를 지원해 주는 주민의 존재는 물론, 교사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좋았던 것 같다고 생각 한다」라고 남교사는 말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구제할 수 있다면, 이러한 학교는 필요하다. 부모와 아이가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오랫동안 등교 거부 등으로 고민하는 어린이들을 지원해 온 산촌 지방의 한 여성은 따돌림이나 어린이의 자살 등 전국에서 교육의 근본이 무너져가는 상황에 위기감을 느낀다면서「교육의 원점의 하나가 소규모 학교의 교육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모든 어린이들은 인간으로서 존경받아야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 제도의 존재를 알고 구제받는 가족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소규모 특인학교 제도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의가 잘 미칠 수 있는 소규모학교의 특색을 살린 교육을 학구 상관없이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설치한 제도이다. 인구 감소가 현저한 지역의 학교를 존속시킬 목적도 있다. 지정은 각 시정촌이 한다. 각 학교별로 풍부한 자연환경 속에서 심신의 건강 증진을 꾀한다. 풍부한 인간성을 기른다, 밝고 구김살 없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한다는 등의 목표를 세우고 있다. 산간이 많은 야마가타 현내에서는 2000년도에 도입한 학교가 최초로 사케다의 히무카초등학교, 오사와초등학교,이 제도를 이용한 현내의학생 수는 연도 당초의 수를 가산하면 연 120명에 달한다. 한편, 소규모 학교가 아니더라도 거주시,정,촌내에 한해서 학구 상관없이 입학할 수 있는 제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