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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부산시교육청은 수업 중심의 학교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수업 잘하는 교사를 선발하는 '부산 최고 교사(Busan Best Teacher) 인증제'를 시행한다고 21일 밝혔다. 교육청은 교장과 교감, 장학사와 연구사로 구성되는 우수교사인증위원회의 평가를 거쳐 초등학교 80명, 중학교 60명, 고등학교 40명 등 모두 180명에게 BBT 인증을 주기로 했다. 최고교사 신청은 수업공개와 수업동영상, 연수 실적 등으로 구성되는 마일리지 점수가 일정 점수 이상인 자로 희망하는 교사에 한해 가능하다.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교원평가제도 이번 최고교사 선정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고 교육청 관계자는 덧붙였다. 최고교사가 되면 교육감 표창과 함께 연구비 100만 원을 지원받고 장학요원이나 수석교사 선발 때 가산점을 받을 수 있으며 국내외 연수기회도 주어진다.
교육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의 행보가 심상찮다. 일선 학교의 창호공사 비리 수사로 시작돼 방과후 학교 수사로 이어진 검찰의 교육비리 수사는 최근엔 인사비리까지 파헤치고 있다. 검찰이 '매관매직' 혐의로 서울시내 현직 교장 2명까지 잇따라 구속함에 따라 석 달째 진행 중인 교육계 비리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검찰 수사가 이제 서울시교육청 전·현직 최고위층까지 겨냥하는 양상인 가운데 비리에 연루된 정황이 드러난 한 초등학교 교장이 목숨을 끊는 돌발상황까지 겹쳐 파장은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검찰 칼끝, 교육계 최고위층도 겨냥 = 검찰은 작년 10월 시공업체가 서울시교육청과 학교 등의 공직자에게 창호 공사 수주를 부탁하며 뇌물을 줬다는 단서를 포착해 수사에 착수, 현재까지 서울시 의원과 교육청 사무관 등 모두 11명을 구속했다. 지난달 초에는 방과후 학교 업체로 선정해 준다며 업자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초등학교 교장 5명을 적발해 불구속 기소했다.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교육 관련 공무원의 '매관매직' 비리도 검찰의 집요한 수사로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시교육청에서 인사를 담당하는 장학사(구속)가 '장학사 시험을 잘 보게 해주겠다'며 현직 교사들로부터 수백만∼수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검찰수사로 드러났다. 이들의 범죄 행위에는 김모 전 서울시교육청 국장 등 강남권 현직 고교장 2명이 가담한 혐의가 추가로 확인돼 구속됐고, 돈을 건넨 현직 교사 2명도 함께 불구속 입건됐다. 검찰은 이들의 인사비리가 조직적으로 이뤄진 점에 비춰 또 다른 '윗선'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현재 시교육청 전·현 최고위층의 인사비리 개입 여부를 밝혀내는 데 수사력을 집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은 서울지역에 집중돼 있는 검찰의 교육비리 수사가 전국적으로 확대될지도 관심거리다. 이와 관련,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지난 19일 오후 2시부터 서울중앙지검 등 전국 검찰청의 특수부장과 특수전담 부장검사 40여명이 참석한 화상회의를 열어 교육비리 수사 등을 점검했다. 물론 전국 시·도교육감 선거를 뽑는 지방선거가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선거국면에 지금같은 검찰의 고강도 수사가 계속 이어지기는 쉽지않다는 점에서 이르면 이달 안에 마무리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하지만 검찰은 6·2 지방선거에 따른 선거기간에도 사정수사는 계속한다는 방침을 천명하고 있어 교육비리 수사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만성화된 비리 불감증이 수사 자초 = 교육계는 이 같은 검찰의 고강도 수사에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시설비리, 인사비리 등으로 교육공무원이 형사처벌 받은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처럼 사정당국으로부터 체계적이고 전방위적인 압박을 받아본 적은 한번도 없다는 것이다. 이번 수사 배경에 대해 교육계에서는 다양한 추측이 나오지만, 우선은 검찰 수뇌부가 교육계에 만연한 관행적 비리를 한 번쯤 털고 가야 할 부분으로 판단했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실제 교육청과 일선 학교에서 벌어지는 관행적 비리는 교육청 내부에서조차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2007년 서울시내 초등학교 교장이 학교급식 재료 및 교재 납품업체에서 수년 간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들통났고, 2008년 8월에는 중·고교 교장들이 학교 급식업체 사장과 해외 골프여행을 다닌 사실이 적발돼 징계를 받았다. 작년 9월에는 부적격 칠판을 사주는 대가로 뒷돈을 챙긴 서울 등 수도권 교장 13명을 포함한 교직원 20명 가량이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돼 교직사회의 관행적 비리 실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관행적 비리 때문에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은 전국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청렴도 조사에서 매년 최하위권 성적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비리 혐의로 몇몇 교장이 잡혀가도 다른 교장들 사이에서는 '재수가 없어 걸렸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며 "벌써 한번은 터졌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번 수사를 정부의 '공교육 강화 정책'과 연관지어 보는 시각도 있다. 서민·중산층의 숙원 사항인 사교육비 경감을 핵심 정책 과제로 삼은 정부가 공교육 강화정책을 함께 펴 왔지만 학부모들 사이에서 교육비리 등으로 얼룩진 공교육에 대한 신뢰도는 좀체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다. 한 교육 관련 전문가는 "어차피 터져나올 교육 관련 비리를 숨기기보다는 대대적으로 일소해 교육계 이미지를 쇄신하는 것이 오히려 신뢰도를 제고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광주시교육청은 5·18 인정교과서를 관내 모든 학교에 확대 보급하기로 했다고 21일 밝혔다. 시 교육청 최윤길 장학진흥과장은 "올해 5·18 민주화운동 30주년을 맞아 공교육에서의 5·18 교육 확산, 체계적 교육 등을 위해 전 학교에 보급할 계획이며 책을 발간한 5·18 기념재단과 세부사항을 협의 중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광주 일선 학교에서 5·18 교과서를 배우고 있는 곳은 금호초교와 광주자연과학고 등 10여곳에 불과하며 보급된 수량은 6천여권이다. 5·18 교과서는 학교 규모에 따라 1~2학급(40~80권) 분이 학교에 보급되며 학교에서는 재량활동 시간 등에 이 교과서를 활용하게 된다. 시 교육청은 교과서 구입 예산을 곧 확보, 5·18 기념일 이전에 일선 학교에 보급할 계획이다. 초등과 중·고등학교용 2권으로 편찬된 5·18 교과서는 5·18 기념재단이 제작 실무를 맡고, 지역 초·중등 교사 11명이 집필에 참여, 3년만인 지난해 1월 발간됐다. 초등학생용은 5·18민주화운동 전개과정, 5·18에 담긴 정신, 함께하는 5·18 등 3단원으로, 중·고등학생용은 '나와 5.18', 5·18 민주화운동, 5·18과 문화, 5·18 정신 이어받기, 아시아의 광주, 세계속의 5·18 등 5단원으로 이뤄져 있다. 시 교육청은 이와는 별도로 일선 학교에서 추진하는 5·18 교육 정신 계승을 위한 백일장, 체험활동 등에 대해서 전폭적인 지원을 할 계획이다.
백제의 옛 도읍지 공주는 인구 13만여 명의 작은 도시다. 1월 31일, 청주삼백리 회원 40여 명이 청주에서 1시간 거리의 공주로 답사를 다녀왔다. 공산성 주차장에서 문화관광해설사 최병옥님을 만났다. 우리의 일정을 확인하고 오랜만에 공주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공부하러 온 알짜배기 답사팀을 만났다는 최병옥님과 우금치전적지(사적 제387호)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우금치로 가는 차안에서 최병옥님이 공주가 삼국시대 이전에는 마한지역이었고, 마한지역에는 가장 크고 번성했던 목지국을 비롯해 봉건제 국가가 54개나 되었으며, 백제시대에는 지명이 곰과 나루를 뜻하는 웅진(熊津)으로 한글로 쓰면 곰나루였고, 단군신화처럼 곰과 관련된 곰(고마)나루 전설이 전해져온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옛날 강 건너 연미산으로 나무하러 갔던 나무꾼이 여자로 변신한 암곰을 따라 굴속으로 들어갔다. 곰은 나무꾼에게 좋은 음식을 주며 보살폈지만 굴 입구를 큰 바위로 막아놓아 도망가지 못하게 했다. 세월이 흘러 자식이 두 명이나 되자 안심한 곰은 굴 입구를 돌로 막지 않고 사냥을 나갔다. 굴을 빠져나온 나무꾼이 헤엄쳐 강 건너편에 도착한 것을 뒤늦게 알고 곰은 돌아올 것을 애원했으나 나무꾼이 들어주지 않자 두 자식과 함께 강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그때부터 배가 이곳을 지날 때면 풍랑이 일고 변고가 생기자 곰사당을 지어 곰의 영혼을 위로했다는 것이다. ▲ 박세리 조형물공주사람들이 웅진을 소개할 때면 공주의 쓰리 박으로 불리는 골프의 박세리, 야구의 박찬호, 판소리의 박동진 만큼이나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님의 얘기를 빼놓지 않는다. 이날 최병옥님도 윤석금 회장님에 대해 자랑했다. 공주의 옛 지명을 사용하는 웅진그룹이 우리나라 10대 그룹 중 하나로 성장해 고향발전에 앞장서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차가 1894년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일본군을 상대로 격전을 치룬 우금치전적지(牛禁峙戰蹟地)에 도착했다. 공주의 남쪽에 위치한 우금치는 옛날 공주에서 부여로 넘어가던 고개로 제2차 동학농민운동의 최대, 최후의 격전지였다. 우금치의 동학혁명군위령탑 앞에서 묵념을 하며 두 번에 걸친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생각해봤다. 최병옥님의 해설에 네이버와 야후의 백과사전에 소개된 내용을 덧붙이면 동학농민운동의 전개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전라도 고부군수로 부임한 조병갑이 수세는 물론 조상 묘를 만드는 명목 등으로 수탈을 일삼았고, 아랫사람들마저 농민들을 괴롭히며 정부의 직책을 팔아먹는 세상이 된다. 이에 분격한 농민들이 한문교사 전봉준을 선두로 1893년 말과 이듬해 초 2회에 걸쳐 시정을 진정하였으나 나아지지 않자 만석보를 파괴하고 고부 관아로 나아간다. 이에 놀란 조병갑은 줄행랑쳤다. 관아를 점령한 농민들은 수탈에 앞장섰던 아전들을 처단하고 불법으로 징수한 세곡을 빈민들에게 나누어 준 후 신임 군수 박원명의 무마책에 해산한다. 그러나 조선 후기 지방에서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사건처리를 위해 임시로 파견하던 안핵사 이용태가 관련자들을 동학도로 취급하며 역적으로 몰아 탄압하자 분개한 농민들은 서장옥의 제자였던 전봉준을 총대장, 김개남과 손화중을 장령으로 추대하고 봉기한다. 이것이 1차 동학농민운동이다. 갑오농민운동은 전라도 전역과 충청도로 확대되었고, 농민군이 전주를 점령한다. 수차례 전주성을 공격하며 희생자가 많아지자 정부는 청에 원병을 부탁하고, 청나라의 군사파견은 일본군 개입의 빌미가 된다. 당시 국제분쟁의 국면에 처한 정부는 청나라와 일본에 철병을 요구하며 농민군에게 해산을 종용했다. 전주성 싸움의 피해와 청나라 군사의 상륙 소식으로 두려움이 커진 농민군도 보리수확과 모내기 준비에 바쁜 농번기라 귀향심이 강해지고 있었다. 이에 전봉준은 각종 개혁과 탐관오리를 제거하는 내용이 담긴 27개조의 폐정개혁안으로 관군과 전주화약(全州和約)을 맺고 일종의 민정기관인 집강소를 설치하며 농민군을 해산한다. 하지만 휴전이 동학군에 불리하다고 생각한 정부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 한편 청군과 일본군이 인천에 상륙하고, 일본군의 내정간섭이 심해지자 분격한 농민군은 척왜(斥倭)를 구호로 내걸고 다시 봉기한다. 2차 동학농민운동은 강경파 전봉준의 봉기에 반대 입장을 보였던 온건파 손병희가 충청도 농민군을 이끌고 합세하며 전라도 중심의 남접과 충청도 중심의 북접이 연합을 이뤘다. 전봉준이 지휘하는 농민군은 재봉기 이후 논산에 머물며 공주를 첫 번째 공격목표로 세웠다. 당시 공주에 충청도 감영이 있었고, 전략상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방어하기에 좋은 공주를 확보하는 것이 향후 전쟁의 승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관건이었으며, 우금치를 장악하면 공주 점령의 기선을 잡을 수 있었다. 오죽하면 전봉준이 '공주를 빼앗지 못한 것이 통한의 한이다'라고 말했을까. 우금치 주변 산꼭대기를 모두 점령한 1만여 명의 동학농민군은 밤이면 횃불을 들고 소리를 지르며 관군을 위협하고, 일반인들은 정부군을 도와주는 척 하며 대포에 물을 붓는 등 동학농민군을 편들었다. 하지만 수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쇠스랑, 괭이, 죽창 등 열악한 무기 때문에 조총 등 신식무기로 무장한 관군과 일본군에게 이곳이 피바다가 될 정도로 패했다. 최병옥님은 1차 점검에 2000여명, 2차 점검에 1000여명만 남아 전북 순창으로 후퇴했다가 밀고자에 의해 체포된 전봉준이 서울로 압송되어 처형되며 1년 동안 전개된 동학농민운동이 실패로 끝났다며 안타까워했다. 이곳 사람들은 야트막한 우금치(牛禁峙)의 이름을 눈이 오면 빙판이 져 소가 접근할 수 없는 고개로 풀이한다. 우금치라는 이름이 소와 농민을 동일시하던 농경사회로서는 이곳의 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이 승리할 수 없음을 암시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어떻든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일본군을 끌어들임으로서 '청일 두 나라 군대가 조선에서 철수하거나 출병할 때는 서로 통고한다'는 천진조약을 위반해 외세의 개입이 커지는 청일전쟁의 빌미를 만들어줬다. 무용가 공옥진 등이 춤을 추며 혼을 달래줬다는 이곳에 특이하게 생긴 봉화대, 돌탑과 가시철망이 감겨있는 조형물이 있다. 1973년 천도교 중앙본부에서 세우고 고 박정희 대통령이 썼다는 동학혁명군위령탑의 비문을 반대파들이 글씨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긁어놔 볼썽사납다. 역사는 폭넓게 바라봐야 제대로 보인다. 위령탑 왼편으로 옛길의 흔적이 남아있고, 언덕위에 최근에 세운 조형물들이 서있다. 송장배미로 가기 위해 우금치에서 서쪽으로 가다 삼거리에서 우회전한다. 웅진로를 달려 박찬호의 모교인 공주고등학교를 지난 후 중동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무령로다. 최병옥님은 이곳이 교동의 하고개로 오른쪽에 공주향교가 있음을 알려준다. 이곳의 지명 하고개도 서울·공주·청주·강릉·전주 등 교동에 향교가 있고, 아무리 지체가 높은 사람이라도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하는 하마비가 향교 입구에 있는 것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짐작했다. 하고개를 넘어서면 무령로와 왕릉로가 만나는 모서리에서 송장배미로 불리는 용못(공주시 향토문화유적기념물 제4호)을 만난다. 이곳은 1894년 가을 동학농민군 최후의 전투였던 우금치전투에서 관군과 일본군에게 밀린 농민군이 무수히 죽은 곳이다. 시체를 다 처리할 수 없어 연못에 넣었다는 장소라 민초들의 한을 담은 조형물에서도 서글픔이 묻어난다. 연못 앞에 박세리의 모교인 금성여자고등학교가 있다. 무령왕릉이 있는 공주송산리고분군(公州宋山里古墳群)은 송장배미에서 가깝다. 이곳은 사적 제13호로 지정받을 만큼 역사적 가치가 높은 백제의 고분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으로 송산리는 은진 송씨들이 살던 마을의 지명이다. 웅진이 백제의 도읍지가 되는 과정과 웅진에서 나라를 다스린 왕, 송산리고분군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공주시청 홈페이지에 있는 자료를 요약해본다. 고구려가 남하정책에 의해475년 백제의 도읍지 위례성을 쳐들어오자 위기를 느낀 개로왕은 동생 문주를 신라로 보내 구원병을 요청한다. 성이 포위되자 개로왕은 서쪽 문으로 도망가다 고구려 군인들에게 붙잡혀 구리시의 아차산성으로 끌려가 적의 졸병이 얼굴에 침을 뱉는 수모를 당하고 비참하게 죽는다. 문주왕은 신라의 구원병을 이끌고 위례성으로 가다 나라가 망한 것 알고475년 불시에 공주에 도읍지를 정한 왕이다. 천연적인 요새 공주에 도읍을 정했지만 2년 만에 사냥을 나가 밖에 머물다가 지금의 국방장관에 해당하는 병관좌평 해구가 보낸 도적에게 살해당한다. 삼근왕은 문주왕의 아들로 13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병관좌평 해구가 잡고 있던 군국정사를 되찾는데 성공하지만 15세의 어린 나이에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동성왕은 개로왕의 동생 곤지의 아들로 동쪽인 대전 부근에 성을 많이 쌓았고 왕권을 강화하여 나라의 기틀을 잡았다. 중국의 남제 및 신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고구려를 견제하려고 부인이 있었지만 신라의 왕족인 비지의 딸과 정략적인 결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집권 말기에 신진세력을 견제하려다 임천의 성산사 성주가 된 것에 화가 난 백가가 보낸 자객에게 부상당해 1달 만에 죽는다. 무령왕은 개로왕의 동생인 곤지의 아들이며 동성왕의 배다른 형으로 40에 왕이 된다. 백가가 또 반란을 일으키자 죽여 시체를 백강의 물속에 던지고 신구 세력 간의 균형을 유지하며 왕권을 안정시켰다. 고구려의 침입을 물리침은 물 예성강에 있는 수곡성(황해도 신계)까지 습격을 시도하고, 동성왕 때의 장마에 200여 호가 떠내려가던 백마강에 제방을 쌓아 농민들이 잘 살게 하는 등 정치를 잘해 칭송을 받았다. 성왕은 무령왕의 둘째 아들로 지방통치조직과 정치체제를 개편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양나라 및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국가의 기반 잡히자538년 협소한 웅진에서 광활한 사비성으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며 백제의 꽃을 피웠다. 여유롭고 계획적으로 수도를 바꿨지만553년 신라를 공격하다 복병에 의해 전사한다. 송산리고분군은 송산(해발 130m)을 주산으로 한 구릉 중턱의 남쪽 경사면에 있다. 고분군의 서쪽으로는 곰나루가 있는 금강, 동쪽으로는 공산성이 위치한다. 고분군은 계곡을 중심으로 서쪽의 무령왕릉·5~6호분·29호분, 동북쪽의 1~4호분과 7~9호분으로 구분한다. 고분군에 대한 조사는 일제강점기부터 이뤄졌다. 특히 공주에서 교편을 잡았던 백제유물의 약탈자 카루베 지은에 의해 도굴된 유물들이 일본으로 건너간 후 빈껍데기만 남은 상태에서 발굴이 시작됐다. 고분에 유물이 없어 무령왕릉과 구조가 비슷한 6호분의 피장자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것도 아쉽다. 그나마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인 무령왕릉이 도굴되지 않은 채 발견된 게 천만다행이다. 무령왕릉은 1971년에 5, 6호분의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되었지만 무덤의 주인과 축조 연대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지석(誌石)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백제고분의 문화연구와 백제사연구의 전기를 마련해줬다. 벽돌 4개를 포개고, 그 위에 짧은 변을 높이로 세우는 축조방법을 여러 번 되풀이했는데 벽면 중간에 오목하게 파서 물건을 넣어두는 벽감실을 배치하여 그 속에 등잔을 넣었다. 바닥은 전면널받침이고 밖에 벽돌을 포개어 배수구를 설치하였다. 동쪽에는 왕널인 왕관(王棺), 서쪽에는 왕비널인 왕비관이 머리를 남쪽으로 향한 채 배치되어 있다. 왕은 523년에 사망하여 525년, 왕비는 526년에 사망하여 529년에 안장된 내용이 매지권에 써있어 왕과 왕비는 사망한 후 2년이 지난 뒤에야 이 능에 안장되었음을 알게 한다. 백제문화를 생생하게 알려주는 왕과 왕비의 왕관을 비롯하여 금팔찌, 금귀걸이 등 정교한 금세공품과 도자기, 철기 등 총 88종 2600여 점의 부장품이 출토되었다. 1997년 이후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내부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모형관을 돌아보며 왕릉의 내부구조는 물론 부장품에 대해 알아봤다. 모형관에서 최병옥님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덧붙여본다. 송산리고분군에 겉으로 드러난 고분이 7기지만 실제 16기 이상 있다며 주차장에서 고분군 입구까지에도 작은 무덤들이 30기 이상 있었고, 무령왕릉과 송산리 6호분은 남한에 남아 있는 유일한 벽돌무덤으로 문물이 더 발달했던 백제의 도읍지 부여에 벽돌무덤이 없고 공주에서 만들다 파괴한 2기의 무덤이 발견된 것으로 봐 벽돌무덤은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1300도로 굽던 벽돌에 써있는 중방, 종방, 들방, 곱사, 사사, 일사 등의 글씨가 시간이 지나며 종류가 많아진다. 왕릉의 벽돌을 찍은 연도인 임진년은512년으로 무령왕(501-523)의 재위기간을 따져볼 때 돌아가시기 10여 년 전부터 장례를 준비했음을 알게 한다. 상을 하는 2년간은 냉장시설이 발굴된 정지산유적지(사적 474호)에 시신을 보관하였다고 추측하는데 나중에 뼈만 추려서 모셨기에 관이 작다. 무령왕릉의 관은 단단하고 습기를 잘 빨아들이는 금송으로 만들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금송이 없던 시절이라 600년생이 넘는 두꺼운 금송을 일본에서 가져왔다. 무덤에서 나온 지석이 600년 뒤에 만든 삼국사기의 잘못을 바로잡은 사실도 중요하다. 이름이 사마였던 무령왕은 삼국사기에 키가 8척이나 될 만큼 크고, 눈썹과 눈이 똑같으며, 마음씨가 인자하고, 정치를 잘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왕으로 국가를 편안하게 잘 만들어 시호를 무령이라 붙였다. 또한 첫째 아들 사아는 일찍 죽고, 둘째는 성왕으로 나라를 꽃피우고, 셋째 순타태자의 후손은 일본천황과 관계가 있고, 넷째 공주는 일본 천황과 결혼한 무령왕의 가계도가 중요하다. 최병옥님은 아키히토 일본 천황이 2001년 방송에서 '나 자신은 간무천황(나라에서 교토로 도읍을 옮김)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기 때문에 한국과의 연고를 느낀다'고 고백했던 이야기와 천황의 부탁으로 집안 아저씨가 무령왕릉을 찾아와 제사지내고 갔을 때의 사진을 보여주며 무령왕릉의 중요성과 일본에 백제의 성씨를 쓰는 사람이 많음을 실감나게 설명했다. 송산리고분군에서 가까운 거리에 백제의 수도를 지키던 공산성(사적 12호)이 있다. 공산성은 금강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산성으로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고쳤다. 이름도 백제시대는 웅진성, 고려시대는 공주산성·공산성, 조선시대는 쌍수산성으로 바꼈다. 최병옥님의 해설과 공주시청 홈페이지에 있는 자료로 공산성의 문화재, 백제의 의자왕은 물론 조선의 인조가 공산성과 어떤 사연이 있는지 살펴보자. 이곳 사람들이 산성공원으로 부르는 공산성은 4방에 문터가 확인되는데 공북루(충남유형문화재 제37호)는 북문으로 강남과 강북을 오가는 통로길이고, 진남루(문화재자료 제48호)는 남문으로 조선시대 삼남의 관문이었던 주 출입통로다. 쌍수정(문화재자료 제49호)은 인조가 머물렀던 일을 기념하기 위해 1734년에 세운 정자다. 광복루(문화재자료 제50호)는 군사가 주둔하던 군영의 문으로 광복 이후 광복루라 불렀다. 영은사원통전(충남문화재자료 제51호)은 임진왜란 때 승병의 합숙소로 사용되었고 이곳에서 훈련한 승병들이 서산대사의 제자인 영규대사의 인솔 아래 청주성을 탈환한 후 패할 것을 알면서도 명령에 의해 금산 전투에 참여하였다는 영은사의 법당 건물이다. 전투 때의 부상으로 죽은 영규대사는 갑사의 스님들이 화장하지 않고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 묘를 만들었다. 공주는 백제의 마지막 임금이자 낙화암의 삼천궁녀로 유명한 의자왕과 조선의 제16대 왕 인조가 잠시 머물렀던 곳이다. 만년에 사치와 향락에 빠져있던 의자왕은 계백이 황산벌싸움에 패해 나·당 연합군에게 포위되자 태자와 함께 공산성으로 피신했다가 소정방에게 당나라로 끌려가 그곳에서 병사한다. 광해군의 폭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가 공신들에게 베푼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이 난을 일으켰을 때 피신한 곳도 공주다. 평소 간식까지 다섯 끼를 먹던 임금이 피난 기간 얼마나 굶주렸으면 임씨네 집에서 진상한 떡이 쫄깃쫄깃하고 맛있어 '아 그 떡 절미로다'라며 떡의 이름을 물어보자 신하가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때 '임씨네 집에서 만든 음식이니 임절미라고 하자'라고 해서 이름 지어진 인절미 700미터를 만들어 백제 역사 700년을 기념하는 축제기간에 나누어 먹는다. 인조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경상, 전라, 충청도 사람들이 얼마나 잘 도와줬으면 5명인 과거 급제자에 공주사람 없자 한 명 더 뽑았다는 일화가 전해온단다. 공주는 임진왜란 당시 신립장군이 탄금대에서 비참하게 패해 1602년 충주에서 충청감영이 이전한 후 1932년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옮겨질 때까지 330여년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이라 공산성에 가면 입구에서 길게 늘어선 공덕비가 맞이한다. 거북 받침과 용두가 있는 공주목사 김효석선정비(충남문화재자료 제71호), 홍수로 붕괴된 제민천교를 재 건립한 사실을 기리는 제민천교영세비 등 문화적 가치가 높은 비석 옆에 최근에 세운 비석들이 서있다. 지금의 도지사인 관찰사는 임기가 1~2년에 불과했는데 말 그대로 관리들을 관찰해 고과점수를 주는 역할을 했다. 인조가 한양쪽을 바라보며 반란군 진압소식을 기다리던 장소에 세워진 쌍수정 아래 잔디로 덮어놓은 왕궁 추정지가 있다. 최병옥님은 발굴하던 모습과 공산성이나 부여에서만 나오는 수키와, 암키와, 수막새, 암막새와 바람개비문양(파문)을 보여주며 막새가 예술의 기초가 되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바로 앞 암석이 박힌 깊은 웅덩이는 물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1미터 밖을 진흙으로 다진 원형그대로인데 연못이나 연꽃재배지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영은사 아래로 시체가 나가는 문이라 시구문이라고도 하는 수구문이 있다. 이곳을 통과하면 시인묵객들이 시를 읊으며 더위를 피하던 만하루와 연못인 공산성연지를 만난다. 연지는 가장자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돌로 층단을 쌓고, 수면에 접근할 수 있는 계단이 동서쪽에 있으며, 금강쪽에 수로가 있어 강물이 불면 물이 늘어나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북문인 공북루는 금강에서 성으로 들어오는 문 위에 세운 누각으로 금강의 풍경을 더 아름답게 한다. 지금은 강물이 가로막고 있지만 예전에는 수문병이 지키던 문루를 나서면 금강을 건널 수 있는 나루가 있었고, 후대에는 각종 다리가 건설돼 공북루는 서울과 호남을 연결하던 내륙교통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최병옥님에게 천안에서 공주로 계획된 기찻길을 양반들이 지네인 기차가 닭인 계룡산을 뚫고 지나가면 큰일난다며 대전으로 바꿔 발전을 막은 것과 우리나라 3대 부자였던 김갑순이 지금의 민자고속도로와 같이 공북루 앞에 배다리를 만들어 놓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돈 받은 이야기를 들었다. 여러 번 들렸던 곳이지만 '역사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실감하는 답사였다.
올해 경기북부지역에 초·중·고교 14곳과 유치원 12곳이 개교한다. 21일 경기도교육청 제2청(경기교육2청)에 따르면 올해 3월 개교하는 학교는 초등학교 9곳, 중학교 3곳, 고등학교 2곳이다. 지역별로는 파주 6곳, 남양주 5곳, 의정부·양주·고양 각 1곳이다. 특히 택지개발지구인 파주 운정지구는 초등학교 4곳, 중학교 2곳, 남양주 진접지구는 초등학교 3곳, 중·고등학교 각 1곳이 문을 연다. 이와 함께 단설 유치원 4곳과 초교 병설 유치원 8곳도 개원한다. 경기교육2청은 25일까지 이들 학교와 유치원을 대상으로 개교에 차질이 없도록 합동점검을 벌이기로 했다.
직원들의 잇따른 비리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서울시교육청이 강도 높은 '물갈이 인사'를 추진하고 있다. 시교육청 고위 관계자는 21일 "3월 정기인사에서 특정 보직에 1년 이상 근무한 장학관과 장학사, 본청과 지역청 과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다른 곳으로 전보 발령을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직 교원은 초등의 경우 장학관 44명, 장학사 149명, 중등은 장학관 50명, 장학사 199명으로 총 442명에 달하고 일반직 4급(본청 과장급) 이상은 46명이다. 1년 이상 보직자에 대한 전보 조치가 이뤄지면 이들 중 상당수가 자리를 옮길 것으로 예상된다. 시교육청은 또 지역교육장 11명과 도서관장 21명, 평생학습관장, 교육연구정보원장, 과학전시관장, 교육연수원장 등 직속 기관장 40명 중 절반 이상을 교체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비리에 책임을 지고 보직사퇴를 결의한 지역교육장에 대해서는 '전원 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아 1년6개월 이상 된 교육장 3명을 포함, 5∼6명을 전보 발령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교육청 한 관계자는 "기관장급 인사는 폭이 정해졌지만, 장학관과 장학사, 일반직은 인사권자인 김경회 부교육감이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주요 보직자에 대한 인사 폭은 유례없는 규모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교육청은 특히 산하기관장 등 장학관급 이상이 담당하는 주요 보직에 개혁적이고 참신한 인사들을 기용하기 위해 내부 직원이 완전히 배제된 '외부인사위원회'를 처음으로 가동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단체 기관장과 전직 대학총장, 교수 출신 인사 5∼6명으로 구성됐으며, 주요 보직 후보군을 2∼3명으로 압축해 부교육감에게 추천하는 역할을 한다. 시교육청은 또 이번 인사부터 전문직 교원은 강남, 서초, 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 3구' 학교의 교장·교감으로 발령내지 않기로 했다. 새 인사원칙 적용에 따라 3월 1일자 정기인사 발표일자가 애초 22일에서 25∼26일께로 늦춰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시교육청은 유아교육진흥원장, 과학전시관장, 남부교육청과 중부교육청 교육장 등 4개 기관장과 경기고, 서울고, 신용산초, 대도초 등 이른바 '선호학교' 4곳의 학교장에 대한 공모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20일 오전 7시30분께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고등학교 지하주차장에서 경기도내 모 초등학교 전 교장인 A(62)씨가 천장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유언장이 발견된 점 등으로 미뤄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 중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A씨는 방과후 활동 교사와 강사들로부터 전기세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한 정황이 드러나 지난달 25일 직위해제돼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라고 전했다.
경북도교육청은 20일 초·중등 교감, 교장, 전문직 등 관리직 교원 463명에 대한 인사를 오는 3월 1일자로 단행했다. 도교육청은 이번 인사에서 초등 교장 37명, 교감 52명, 중등 교장 26명, 교감 23명 등을 각각 승진임용했다. 또 초등 전문직에서 교육장 1명을 과장으로 임용하고 장학관 2명을 교육장으로 승진임용했으며 중등 전문직에서 중등교육과장과 교육장 4명을 승진임용했다.
경기도교육청은 19일 초등 544명, 중등 436명 등 초중등 교감급 이상 관리직 및 교육관리직 교원 980명에 대한 3월 1일자 정기인사를 단행했다. 초등의 경우 교육장 5명, 직속기관장 1명, 교장공모제 시범운영교 교장 및 초빙교원제 운영교 교장 각 13명이 포함돼 있다. 중등의 경우는 도 교육청 직속기관장 1명, 교육장 6명, 본청 과장 2명, 지역교육청 학무국장 2명, 교장 승진 68명, 초빙 및 공모교장 15명 등이다. 초등 인사는 경영능력과 실적이 우수한 인재를 발탁하고 승진대상자는 희망지역에 배정했으며, 중등 인사는 서열 위주의 임용방식을 탈피했다고 도교육청은 설명했다. 도교육청은 특히 중등 인사 중 호국교육원장에 최초로 여성 전문직을 발탁했다고 덧붙였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19일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1차관은 한나라당 소속 17대 국회의원이었던 2005년 현직 교사로부터 정치후원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이주호 의원실 9급 비서는 2005년 8월 실명으로 교원단체인 보건교육포럼의 홈페이지에 '후원금 영수증을 발급해야 하나 일부 선생님들이 연락처를 남기지 않았으니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글을 올렸다"며 프린트된 해당 홈페이지 화면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비서가 홈페이지글에서 언급한 3명 중 전모씨는 2003년부터 현재까지 경기도 소재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며 "민노당이 지난 9일 확인한 이 홈페이지 글은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의 유력한 증거지만 현재 삭제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고액기부자 명단에 따르면 한나라당 김학송 의원도 2008년 4월 경남의 한 고등학교 교사인 정모씨로부터 500만원의 정치후원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차관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금시초문"이라며 "그런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고, 김학송 의원측은 "선관위에 의뢰해 정치자금법상 문제가 없는 것으로 이미 확인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서울북부교육청(교육장 조학규)은 16일부터 20일까지 관내 초등학교 3·4학년 담임교사 320명을 대상으로 과학과 개정교육과정 실험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3학년 교과과정중 레이져 포인터를 이용해 빛의 여러 가지 성질중 직진에 대해 실험을 하고 있다. 4학년 1학기'내가 만든 저울로 무게 재기'과정에서 저울의 원리를 응용하여 간이 저울을 만들어 물체의 무게를 재는 실험을 하고 있다. 18일노원구 노일초 강당에서 이원호 신창초 교사가 '자유탐구의 지도와 실제'란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서울북부교육청은 이번 연수를 통해 현장 교사들의 과학과 개정 교육과정 이해 및 교수·학습 능력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북도교육청은 19일 초등과 중등 교육전문직 351명(초등 164명, 중등 187명)에 대한 정기인사를 3월 1일자로 단행했다. 이번 인사에서 이재경 전라고 교장이 전주교육장으로, 강행룡 김제교육청 학무과장이 진안교육장으로, 문순희 진안교육장이 군산교육장으로, 송국현 진안제일고 교장이 전북도과학교육원 원장으로 각각 승진 또는 전보됐다. 또 여성 장학관의 발탁 인사도 이뤄졌는데 양정애 익산어양중학교 교감이 장수교육청 학무과장으로, 본청 정나영 장학사가 진안교육청 학무과장으로, 김경자 문정초 교감이 무주교육청 학무과장으로 각각 신규 임용됐다. 초등의 경우 교장 21명과 교감 31명 등 55명이 승진했고, 교장 16명과 교감 3명 등 24명이 전보조치됐다. 중등은 교장 13명과 교감 16명 등 33명이 승진했고, 교장 18명과 교감 2명. 장학관 6명 등 56명이 전직됐으며 교장 9명과 교감 26명 등 42명이 전보됐다. 전북도교육청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직무수행 능력과 지역사회 이해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며 "특히 여성의 관리직 진출을 통해 여성의 전문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오는 3월부터 초등학교에서 체육수업을 보조할 신임 스포츠 강사 발대식이 22일 오후 서울교육대 종합문화관에서 열린다고 문화부가 19일 밝혔다. 초등학교 스포츠 강사는 문화부와 교육과학기술부가 교사의 체육수업 부담을 덜어 주고 체육수업을 활성화하고자 2008년부터 벌여온 공동 지원 사업에 의해 학교에 배치돼왔으며 작년에는 887개 초등학교가 혜택을 봤다. 이번 발대식에는 선발된 스포츠 강사 1223명 중 새로 참여하게 된 신임 스포츠강사 491명이 참여하며 이들의 연수 수료식도 함께 열린다. 문화부는 "교과부와 함께 스포츠강사 인원을 단계적으로 2012년까지 2200명으로 늘릴 계획"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전국 5833개 초등학교에 스포츠 강사를 배치하는 것을 목표로 계속 사업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좌우명은 성실히 살자. 장래 희망은 프로 게이머' 19일 경남 사천초등학교(교장 황춘기) 강당에서 열린 제98회 졸업식장에 졸업생들의 희망과 좌우명이 일일이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황 교장이 졸업생 214명을 한명씩 강단으로 불러 졸업장을 주는 동안 스크린에 졸업장을 받는 학생의 희망과 좌우명 등이 흘렀다. 사천초교가 감동과 꿈이 있고 졸업생들이 학교를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도록 이색적인 졸업식을 기획한 것이다. 학생 대표와 몇 명의 학생만 수상하던 관행을 깨고 졸업생 모두에게 학교장상을 줬다. 졸업식 하루 전날에는 졸업생들이 30년 후를 약속하며 친구들에게 쓴 편지와 기념품을 담은 타임캡슐을 학교 내 화단에 묻기도 했다. 졸업생들이 담임 선생님께 감사의 꽃다발을 전달하면서 아쉬운 이별의 시간도 가졌다. 모교 선배들은 정성껏 모은 240여만 원의 장학금을 졸업생들에게 전달하고, 후배들은 웅장한 관악 곡을 연주할 때는 선·후배가 눈물 속에 하나가 됐다. 비교적 긴 시간인 2시간이 넘도록 졸업식이 진행됐지만 누구 하나 식장을 떠나지 않았다. 졸업생 김민규 군은 "학교에서 마련한 이색 졸업식 덕분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머릿속에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권희선 교사는 "형식적이고 획일적인 졸업식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우러나는 사제지간의 정을 느끼는 시간을 만들려고 이런 졸업식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사천초등학교는 1905년 사립 명달학교로 개교, 105년의 전통을 자랑하며 지금까지 총 1만 5823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2009년 학교평가 우수학교, 교육과학기술부 선정 전국 교육과정 우수학교로 지정됐다.
경상도교육청은 19일 초·중등 교원 4104명에 대한 정기인사를 3월1일자로 단행했다. 이번 정기인사 대상은 유치원 교사 130명, 초등교사 1389명, 중등교사 2129명, 유치원 원감급 10명, 초등교감급 100명, 중등교감급 87명, 유치원 원장급 3명, 초등 교장급 167명, 중등 교장급 89명이다. 교육청은 이번 정기인사에서 부모봉양 교사 및 3자녀 이상 부양 교사에 대한 전보가산점을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전국 처음으로 만 2세 이하의 자녀가 있는 여자 교원을 생활근거지로 우선 전보하고 해당 학교 정원의 20% 범위 내에서 교사를 초빙·임용했다. 또 같은 학교에서의 근속연한이 1년 6개월 미만인 교장, 교감의 전보를 억제하고, 현재 근무지의 장기근속자를 우선 전보했다. 권정호 교육감은 "이번 정기 인사는 교원의 생활근거지 및 희망지 전보로 교직 안정과 사기를 진작하고, 교원의 교육활동을 활성화함으로써 학생이 행복한 경남 교육을 확산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대구 교육계에서 처음으로 여성 교육정책국장이 탄생했다. 19일 대구시교육청에 따르면 오는 25일 정년퇴임식을 하는 이병옥 교육정책국장 후임으로 곽경숙(59) 중등교육과장을 승진 발령했다. 곽 국장은 경북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1972년 교육계에 입문해 대구여고, 경북여고 교사 등을 거쳤으며 1999년 장학사, 2003년 장학관으로 승진해 2006년 9월부터 중등교육과장으로 재직했다. 그는 "교육계가 여러모로 주목받는 시기에 중책을 맡아 책임이 무겁다"며 "학력신장을 위해 다각적 노력을 기울이는 등 대구 교육이 한 단계 도약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발령 소감을 밝혔다. 시교육청은 또 이날 교장, 교감, 교육전문직 초등학교 124명, 중·교 107명 등 총 231명에 대한 인사를 3월1일자로 단행했다. 대구교육청은 "이번 인사에서 교육행정의 능력과 경험을 중시해 최초로 여성 교육정책국장을 보임하고 올해 첫 도입한 교장·교감 평가결과를 인사에 반영했다"며 "교장공모제 시범학교에 7명의 공모교장을 임용해 소신과 특색있는 학교 경영을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충북 충주시 교현동 교현초등학교(교장 유공열)가 19일 개교 후 10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교현초교는 이날 학교 체육관에서 졸업생과 학부모, 지역 기관단체장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01번째 졸업식을 했다. 이 학교는 올해 147명이 졸업하면서 총 2만 7296명의 졸업생을 배출해 충북 초등교육의 1번지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896년 개교한 교현초교(당시 충주 공립소학교)는 시내 성내동 당시 헌병대 관사(현 충주성모병원)에서 1905년에는 교현동 충주향교의 명륜당으로, 1908년에는 성내동 157번지로 교사를 옮겼으나 교육체계 등이 확립되지 않아 1909년 3월에야 4년제 제1회 졸업생 15명을 배출했다. 이 학교는 1915년까지 남자들만 입학할 수 있었으나 1916년 여자부를 개설했고, 1915년에는 현 충주 농고 전신인 간이농업학교를 부설 운영하기도 했으며 1921년부터 6년제로 개편됐다. 이후 1932년 현재의 교사인 교현동 339번지로 이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명도 충주 공립보통학교(1905년), 충주 제1공립 보통학교(1937년), 교현공립국민학교(1938년), 교현국민학교(1950년), 교현초등학교(1996년) 등으로 바뀌었다. 1945년 3월 졸업식을 앞두고 당시 6학년 옥모, 김모양(이상 당시 14세) 등 6명이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징발되기도 했으며 32회부터 36회까지 졸업생 2백여명은 일본의 창씨개명으로 학적부에 일본식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등 암울한 역사 속에 많은 상처를 남겼다. 또 6·25 전쟁때는 황갑봉 당시 교감(16회)과 아들 순철씨(39회) 부자가 모든 학적부를 이 학교 사택 재래식 화장실 옆에 파묻어 건물의 화재로 자칫 사라질 뻔했던 학적부와 학교 역사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비화도 간직하고 있다. 이 학교 동문 가운데는 일제치하 저항 문인인 권태응 시인(23회)을 비롯, 6선 경력의 이종근 전 국회의원(29회), 반기문 UN 사무총장(48회), 정경화 택견기능보유자(58회) 등이 있다. 유공렬 교장은 이날 "114년의 전통과 역사에 빛나는 학교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졸업생들이 큰 꿈을 위해 미래로 나아가길 바란다"면서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차별화된 프로그램과 교육환경 개선 사업을 통해 명문학교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교사들에게 2월은 여러 가지 변화로 인해 참 의미 있는 달이면서 스트레스가 많은 달이다. 1년 동안 함께 공부했던 학생들을 진급시켜 떠나 보내고 새로운 학생들을 맞는 달이다. 일부 교사들이 승진이나 만기전보 또는 중간 내신으로 있던 학교를 떠나고 또 새로운 교사들이 오는 달이다. 기존의 업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업무를 맡아 시작하는 달이다. 학기 말부터 고민스러운 건 내년에 무슨 학년을 할까 무슨 업무를 맡을까 하는 것이다. 매년 치러야 하는 행사 같은 것인데 늘 고민이 된다. 자신의 선택이 고스란히 받아들여 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동료교사들의 선택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심사숙고해서 선택한다. 그러면서 예외가 난무하는 상황들로 인해 자신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한다. 그리고 정식으로 배정발표가 나기도 전 민간발령이라는 것이 나고 학교경영자가 파악하지 못한 인간관계로 인해 경영자의 말 같지 않은 말이 돌고 돌아 어떤 사람은 상처를 받기도 한다. 학교마다 인사원칙이 있지만 어떤 학교는 그것이 그저 형식일 뿐이고, 학년 및 업무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지만 그건 참고자료 일뿐이다. 한 마디로 원칙도 없고 일관성도 없이 관리자 마음대로가 원칙이고 그것에 대한 근거는 학교운영을 위한 필요한 조치라는 눈가리고 아웅식 변명일 뿐이다. 한 학년을 2년 이상 못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경합학년을 3년씩이나 하고 같은 교실을 2,3년 쓰는 교사를 볼 때, 원로교사라고 A학년을 5년간 할 때, 점수로 봐서는 원하는 학년에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밀려났을 때, 어떤 사람은 친하니 같은 학년 주고 어떤 사람은 친하니 떼어 놓으려고 이리저리 조작할 때, 신청자 미달인 학년에서도 밀려 났을 때, 결격사유가 없는 데도 A학년을 원하는 교사와 B학년을 원하는 교사를 이유 없이 맞바꾸어 놓았을 때, 기존 교사에게 기득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일인지 새로 부임해 온 교사가 당당하게 경합이었던 학년을 들어갔을 때 묵묵히 아이들만 조용히 가르치는 교사는 궁금하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될 수 있는지, 업무 배정도 또한 그러한 양상이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앞에 나서서 이야기 하지 않고 뒤에서만 불만을 토로한다. 그 이유는 ‘말해 봤자다’ 라는 생각 때문이다. 사실 교사들에게 불만을 많이 느끼게 하는 학교경영자는 그 만큼 교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오로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듣고 싶은 말만 해주는 사람만 우대한다. 그런 학교경영자에게 불만을 이야기 하면 학교경영자는 "학교운영을 위한 조치라고" 한 마디로 일축한다. 그러면서 학교경영자는 그 교사에게 공무원은 복종의 의무가 있다는 말로 다시 한번 쐬기를 박는다. 교내 인사원칙은 있으나 학교경영자는 수없이 학교운영을 위한 조치라며 예외 상황을 만든다. 이럴 때 선의의 피해를 보는 나약한 교사들은 어디다 하소연할 곳도 없어 2월 내내 그저 삶의 비애를 느낄 뿐이다.
충북 괴산군 청안면 백봉초등학교(교장 조항운) 62회 졸업생 10명은 19일 열린 졸업식에서 선물을 한아름 받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졸업생들은 선생님들이 손수 제작한 앨범과 학교 선배 등으로부터 기탁된 장학금, 학교문집, 조 교장이 개인적으로 마련한 책과 장미꽃 등을 받아들고 6년 간 정들었던 교정을 떠났다. 학생 수가 많은 도시 지역 학교와는 달리 졸업생이 10명에 불과, 앨범을 외부에서 제작할 경우 촬영과 제본 등에 많은 비용이 소요될 것을 우려한 교사들은 학년 초부터 교내행사 때마다 촬영한 파일을 손수 편집하고 인쇄한 뒤 20쪽 짜리 앨범으로 만들어 졸업생들에게 나눠줬다. 졸업생들은 또 전원이 장학금을 받아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요긴하게 쓸 수 있게 됐다. 200만원의 이 장학금은 16회 졸업생인 한국증권거래소 김봉수 이사장과 김태표 학교 운영위원장 및 운영위원, 지역 기관단체장, 독지가 등이 맡겨온 것으로 졸업생 1명당 평균 20만원씩 받았다. 이와 함께 50여 전교생이 글·그림 솜씨를 발휘해 정성스럽게 만든 학교문집도 전달받은 졸업생들은 학교 다닐 때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앞으로도 더욱 학업에 정진하고 열심히 생활하면서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워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이날 조 교장은 6년 동안 열심히 뒷바라지해 준 가족대표에게 졸업증서를 수여해 눈길을 끌었고 6학년 홍기성 담임교사에게도 금일봉을 전달했다. 1943년 4월 개교, 6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학교는 이번 졸업생 10명을 포함, 모두 3014명의 인재를 배출했다. 조 교장은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탈피, 희망의 농산촌 학교로 변모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학부모와 학생들의 교육환경 만족도를 높이고 학교가 지역문화의 중심이 되도록 가꿔 나가겠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의 모 초등학교 교사인 A(45)씨는 요새 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근처의 고시원으로 향한다. 저녁은 부인이 매일 집에서 공수해 주는 도시락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주말에 있을 동료 교사들과의 스터디 준비를 위해 자정 넘어까지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장학사 시험에 벌써 2년째 낙방한 A씨는 오는 4월 실시되는 세번째 시험에서만큼은 합격의 기쁨을 누리겠다며 휴일도 없이 공부에 몰두 중이다. 최근 서울 시내 현직 고교 교장 등이 '장학사 매관매직(賣官賣職)' 혐의로 잇따라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교육계가 휘청거리고 있다. 이번 사건은 장학사가 되려는 일부 교사들의 도를 넘은 열망과 이를 이용한 고위급 전문 교원의 탐욕이 빚은 합작품이라는 게 교육계 안팎의 대체적인 시선이다. 도대체 장학사가 어떤 자리여서 이처럼 치열한 경쟁은 물론 비리마저 초래하는 것일까. 19일 교육계에 따르면 장학사는 교사 출신으로 교육현장 지도와 조언을 담당하는 교육 행정 전문직이다. 예전처럼 장학사가 일선 학교를 방문한다고 학생들을 동원해 대대적인 청소를 하는 등의 일은 없더라도 여전히 교직 세계의 '엘리트 코스'로 꼽히고 있다. 장학사가 되면 무엇보다도 승진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일반 교사는 근무 경력이 20년 이상 돼야 교감으로 승진할 수 있지만 장학사는 초등은 19년, 중등은 17년이면 가능하다. 또 일반 교사는 교감 승진을 위해 고난도의 시험을 치러야 하지만 장학사는 별도의 시험 없이 교감 자격 연수만 거치면 된다. 교사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교장이 되기도 쉽다. 2007년 기준으로 전국 초·중·고 교장 9026명 중 27.3%인 20271명이 장학사와 그 위의 장학관 등 교육전문직 출신이다. 전체 교원 가운데 전문직 비율이 1% 정도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이 때문인지 서울시교육청의 장학사 시험은 매년 7대 1 정도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다. 이렇다 보니 장학사가 되기 위한 경쟁이 과열되고 그 과정에서 비리가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게 교육계 안팎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인사 담당 장학관 입장에서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지 않겠나. 실력이 비슷하다면 일반 교사보다 교육청에서 함께 근무했던 장학사를 더 우대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소문만 무성했던 교육 전문직 인사 비리의 실체가 처음으로 하나 둘 드러남에 따라 이번 기회에 털 것은 확실히 털고 가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한모 교사는 "과열 경쟁의 정점에는 결국 학교 행정과 재정 전반에 걸쳐 전권을 휘두르는 '제왕적 교장' 자리가 있다. 이를 개선하지 않으면 비슷한 일은 언제라도 또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