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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나혜영 l 서울 환일중 교사 이재훈 l 인천 구월서초 교장 장철순 l 충남 공주 봉황초 교사 조동섭 l 경인교대 교수 진동섭 l 서울대 교수 강병구 출판2국장 김민정 기자 ▷진행자 = 먼저 요즈음 교육계의 현안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일부 전문가나 학부모들은 벼랑 끝에 서 있는 학교위기의 책임이 상당 부분 교사들에게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재훈 = 학교위기라고 구태여 거론하면서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이 교사들에게 있다고 지적한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죠. 그것은 학부모나 학생들이 학교교육 외에 개인과외를 한다거나 학원을 찾는 등 사교육에 눈을 돌리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우리 선생님들에겐 원죄처럼 다가올 테니까요. 그러나 과일나무가 튼실하게 자라 열매를 맺게 하려면 농부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알맞은 햇볕과 토양 등과 같은 자연조건도 따라주어야 하는 것처럼 학교교육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학부모나 전문가들은 간과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조동섭 = 어느 정도 일리가 있고, 저도 교사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로서 올바른 교육의 소명을 맡은 이상 학생들을 훌륭하게 교육해야 하는 것은 교사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고 하면 그것은 상당 부분 교사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러한 책임 강요를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과연 그 책임을 물을 만한 정도로 합당한 권리와 대우와 조건들을 제공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지금 교사들은 많은 어려움을 감내하며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교사들이 1주일에 28시간 가까이 매 시간 다른 과목과 내용들을 4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PAGE BREAK]중등학교에서는 학력 편차가 극심한 다인수 이질 집단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일 매일을 씨름하다시피 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책임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현장의 어려운 점들을 십분 고려하여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혜영 = 전 그 학교위기라는 말부터 좀 짚고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학교위기가 무엇입니까? 입시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다는 것입니까? 인성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까? 마치 전쟁을 시작한 정부에서 왜 그렇게 사람을 많이 죽이냐고 성실하게 싸우고 있는 사병에게 책임을 돌리려고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우울합니다. 입시 교육 제대로 시키면 학교 위기 상황이 없어질까요? 인성교육 중심으로 공교육을 서구처럼 운영하면 학교교육에, 교사들에 대해 만족할까요? 저는 교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경쟁력 없는 교사들에 대한 논의도 필요합니다. 인정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정책 이후의 문제이지 이전의 문제는 아닙니다. “교육 투자 소홀이 교육위기 불러” ▷진행자 = 그러면 벼랑 끝에 서 있는 현재의 학교교육 위기상황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장철순 = 학교교육의 위기를 어느 학부모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학교는 있어도 진정한 교육은 없고, 선생은 있어도 가르치고자 하는 의욕이 없으며, 학생은 있어도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없다.” 저는 학교교육의 위기와 붕괴의 원인을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지만 교육공동체 상호간의 불신이 그 첫째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것이지요. 교육이라는 것은 학교공동체 구성원들간의 신뢰와 공동체의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정상적인 수업활동을 방해하는 학생을 체벌할 경우에도 학생이 교사를 경찰에 고발하고 경찰은 학교현장에서 교사를 체포하는 현상마저 발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집단 괴롭힘과 학생폭력마저 성행하고 있으니 학교는 수업이 진행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마저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교원, 학생, 학부모 상호간의 신뢰수준이 50%를 밑도는 현실에서 교육이 바로 설 수 있는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조동섭 = 최근의 학교교육의 위기는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증폭되고 있습니다. 대체로 그 원인은 획일적 교육에 따른 결과, 사교육에 대한 학교교육의 경쟁력 약화, 교사들의 자질 부족, 교육여건의 미흡, 교육투자의 미흡 등 다양하게 설명됩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교육투자의 미흡이 매우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다양한 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학급당 학생수와 교사의 수업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지금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첩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동섭 = 위기의 원인은 너무나 복잡합니다만, 그래도 가장 근원적인 것은 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수단적인 교육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PAGE BREAK]학부모들을 위시해서 교육은 출세의 수단이라는 생각이 너무나 확고부동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관이 일관성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큽니다. 국민들은 또 한편으로는 전인교육을 요구하는 겁니다. 이러한 국민들의 이중적인 교육관이 학교교육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진행자 = 교사평가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습니다. 평가의 필요성, 평가방법(동료평가, 학부모·학생 참여 등) 등에 대한 생각은? ▶이재훈 = 교사평가를 들고 나온 교육부의 입장은 무사안일에 빠진 교원들을 자극하여 교사문화를 바꾸면 공교육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과연 교사평가제가 공교육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만큼 효과가 있을까요? 교육여건이나 교원들의 처우가 충분치 못한 상황에서 교사평가라는 채찍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외형적으로는 평가를 잘 받아야 하기 때문에 교원들이 그 방향으로 움직이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이는 교원들의 특성과 학교문화를 너무 모르는 것입니다. 교육은 열과 성의가 깃들어 있어야 효과가 있는 법이거든요. 평가가 만병통치약처럼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교사평가가 굳이 필요하다면 장기간 충분히 연구하고 다양한 논의도 거쳐 평가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충분한 연구와 사전 준비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학부모나 학생들까지 참여시키는 평가제도가 도입될 경우 교직의 안정성은 무너질 것이고, 교사들의 사기 또한 저하될 것이 분명한 만큼 이 문제에 대하여는 충분하면서도 진지하게 논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직사회 특성 고려한 평가 필요” ▶나혜영=먼저 교사평가를 해서 그 결과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합니다. 단순한 평가로만 그친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객관성을 확보해야 하며, 평가 내용이 적절해야 합니다. 사실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의 평가는 수업보다는 근무 태도나 행정적 업무 처리 성과 등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부분을 학부모와 학생의 평가가 보완해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학생의 입장에서 수업 시간 선생님의 수업 방식이나 자신의 이해도 등은 평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칫 인기투표로 전락할 위험은 방지해야 합니다. 교사간의 평가는 저는 조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교사간의 평가는 교사의 능력 평가보다는 인성 평가에 머무를 수 있으며, 이는 전문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동섭 = 교사평가의 문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교직사회는 이익사회보다는 공동 사회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매우 인간적이고 정의적인 요소들이 조직풍토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특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PAGE BREAK]따라서 단순히 다른 조직의 다면평가를 그대로 교직에 적용하거나 학교급에 관계없이 교원평가에 학생과 학부모를 참여시키는 일은 신중하게 검토하고 계획한 후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철순 = 교원평가의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향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교원의 직무 분석을 통하여 교원의 전문성, 책무성, 자율성에 맞는 교사의 능력별·직무별에 따라 그 목표가 명백하게 진술되어야 하며 평가 내용의 요소와 기준이 교원들의 전문적인 역할을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그 요소와 기준에 의한 평가는 곧 교원들의 전문성 신장과 자기 연찬과 개발에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공정한 평가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되지 않는 객관성·공정성 있는 평가를 확보하기 위해 평가 담당자의 ‘교원 평가’에 대한 훈련·연수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하며, 교원들이 자기평가를 할 수 있도록 도구를 개발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또한 동료평가, 부장평가 등의 다양한 평가가 반영되어야 합니다. 앞으로도 교원의 전문성·책무성을 제고하는 교원 평가에 대한 논의와 노력들이 필요하다 할 것입니다. 즉, 교원의 전문성과 책무성이 포함된 교원 평가가 상호 연계성을 갖고 실시된다면 교원의 전문성에 더욱 발전적인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진동섭 = 현재에도 교사평가는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교사와 교감에 한정되어 있을 뿐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교사평가가 원칙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사평가는 새로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개선되어야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면 평가를 실시하되, 학생의 참여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평가 결과는 반드시 교원에게 피드백이 되어, 전문성 향상을 위한 노력의 자료로 활용되어야 합니다. ▷진행자 = 요즈음 각종 직업선호도 조사에 의하면 교원은 항상 상위에 랭크되고 여교사의 경우 부동의 1순위에 올라 있습니다. 사회 일각에서는 이를 놓고 교원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그만큼 향상되었기 때문이 아니냐고 합니다. ▶나혜영 = 저는 여교사가 인기 직종 1위라는 것은 아직도 성차별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남학생이 교사 한다고 하면 ‘남자가 더 큰 일을 해야지’ 그러면서 여학생에게는 ‘교사나 해라’ 뭐 이런 분위기인 거 같습니다. 그런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많이 남아 있고요, 남성들이 여교사를 선호하는 이유도 살림도 하면서 직장 생활도 할 수 있는 직종이라고 생각하는 듯 한데요, 요즘엔 남성들에게도 인기 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하니 경제가 정말 어렵긴 어려운가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말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졌다면 경기와 상관없이 인기 직종이 되어야 합니다. 최고의 경제적 대우만 해 줘도 아마 우리 나라 최고의 인재들이 앞다투어 교직으로 진출하려고 할 겁니다. 경기로 인해 일시적으로 교직이 부상되고 있다고 해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졌다고 보는 것은 왜곡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PAGE BREAK]▶진동섭 = 직업 선호도와 그 직업의 사회적 지위 그리고 경제적 지위는 분명히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교직의 선호도가 높은 것이 교원의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청년 실업이 9%를 넘고 있고, 경제 사정이 아주 안 좋은 현실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정성 있는 직업을 선호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요. 직업에 대한 선호도는 직업의 주는 사회적·경제적 지위와 같은 외재적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기도 하지만, 그 직업 자체의 특징과 같은 내재적 요인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가르치는 일 그 자체가 좋아서 교직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교직이 삽니다. 외재적 요인에 이끌려 교직에 들어온 사람들은 그것이 열악해지면, 교직을 떠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교직은 전문직, 끊임없는 자기 개발을” ▷진행자 = 교직은 아직도 전문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재훈 = 당연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직도 다른 일반 직업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교육은 아무나 할 수 있는 허드렛일이 아니고 이 나라의 동량지재를 길러내는 체계적이고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따라서 교직은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전문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동섭 = 교직은 명백하게 전문직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업의 특성이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요구하고, 장기간의 준비교육과 자격증이 필요하고, 사회적 봉사와 책임을 강조하고, 활동의 자율성과 윤리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전문직으로서의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최근 교원 노조가 합법화되면서 그 전문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교직의 전문직적 특성을 크게 훼손시키는 것이라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최근 교수 노조 등의 등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고용된 전문가들은 그 근무여건과 복리 향상을 위해 집단적인 요구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집단적 요구는 노조를 통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또 유리하기 때문에 단체를 결성하는 것이라고 보면 그것이 전문직적 특성을 훼손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치단체의 결성이라는 전문직적 특성에 부합하는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장철순 = 우선 교직은 다른 전문직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사회 봉사직으로 국가와 민족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교육은 고도의 지적 능력을 필요로 하며 장기간의 교육을 받아야 교원이 될 수 있습니다. 고도의 지식과 전문적 식견으로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교원으로서의 자율성이 있으며, 고도의 윤리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전문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전문성 신장을 위해서는 각종 연수나 교육을 통해 교원의 전문성을 더욱 강화해야 하며 부단한 자기 연찬과 장학활동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PAGE BREAK] ▶진동섭 = 직업은 범속직과 전문직으로 구분이 되는 데, 분명히 교직은 전문직입니다. 전통적인 전문직으로는 의사, 법률가, 종교인, 건축가, 교사직을 꼽을 수 있습니다. 직업의 종류가 수십 만을 넘어서고 있는데, 이들의 위상과 권위는 사회가 변함에 따라 변합니다. 인간들이 선호하는 새로운 직업들이 창출되고 이들이 높은 위상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어, 교사직이 기존의 위상을 유지하고 높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진행자 = 현재의 사회 인식이나 제반 구조가 교직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이재훈 = 교직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교육에 관한 한 누구나 다 전문가처럼 말하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 사람들은 각종 언론 매체에도 제가끔 글을 올려 논쟁거리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교육현장에 있는 우리가 보기에는 그런 말들이 대부분 논란의 주제는 될지언정 정말로 우리 교육의 발전을 위한 대안은 아니더군요. 우리 교육정책이 끝없이 표류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연유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병원에서 평생 일했기 때문에 초보 의사보다 오히려 의료행위를 잘 하는 사람도 의사면허증이 없이 의료행위를 하면 법에 의해 엄한 처벌을 받지요. 그런데 비교가 될 지는 모르지만 교원 자격이 없는 사람이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르쳐도 전혀 처벌을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교육은 교원자격이 없이 누구나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초등교원이 부족하니까 중등교원 자격을 가진 사람을 단기 연수 후 초등교원으로 임용한 예처럼 정부에서조차 교원의 전문성을 무시한 단적인 예도 있지요. “자율성·다양성, 교직 전문성의 전제조건” ▶장철순 = 교직은 일반적으로 직업분류상 전문직으로 분류되고는 있으나 실제로 다른 전문직에 비하여 그 전문성의 정도가 낮게 평가되어 왔습니다. 특히, 초등교육은 국민의 기본교육이며 바람직한 인간형성의 과정으로 기초적인 교육이므로 초등교사의 자질, 태도 동기 등은 초등보통교육의 성패를 좌우하게 되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또한, 성장기의 학생들에게 교사의 영향력은 막중하기 때문에 이들을 가르치는 초등교사의 위치와 임무가 중대함에도 불구하고 사회현실은 초등교직을 다른 전문직이나 중·고등 교직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초등교사의 사기 및 역할수행에 대한 충실감이나 직무에 대한 만족감을 저하시키고 교직에 필요한 전문적 소양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 발전에 효율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교육적 성과는 교사가 교직에 만족하여 투철한 사명감으로 교육에 헌신하고 충실히 임할 때 기대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사는 확고한 전문직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교직에 대한 보다 높은 만족감과 사명의식을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PAGE BREAK]▶진동섭 = 직업의 전문직성은 첫째, 오랜 기간의 교육 기간, 둘째, 직무 수행에 필요한 고도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 셋째, 직무 수행의 자율성과 책무성, 넷째, 높은 윤리 의식, 그리고 전문직 단체의 조직 등을 요건으로 합니다. 이런 것들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고, 가꾸고,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으로 노력을 해서 얻어내야 합니다. ▶나혜영 = 교사의 전문성을 인정한다면 자율성과 다양성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따라줘야 합니다. 선택의 폭을 넓게 열어 줘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획일화된 입시중심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는 입시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실업계 학교들은 거의 존폐 위기를 맞을 정도로 황폐화되고 있습니다. 중학교는 이제 좋은 고등학교에 가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교사가 전문성을 발휘하는 것은 그저 얼마나 잘 가르쳐서 시험을 잘 보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전문성이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는 교육의 전문성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늘 보고해야 할 서류들이 쌓여 있으며 단순 작업해야 하는 잡무들이 학교에 가면 늘 산재해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하면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교사의 전문성은 학생과의 상호 작용에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입시 맞춤 교육이 아니라 학생 맞춤 교육에 있어야 합니다. ▶조동섭 = 사회 일반에서는 교직의 전문성을 잘 인정하지 않는 인식이 많다고 봅니다. 그것은 교육이라는 활동 자체가 일상적인 생활사태에서 일어나고 교육을 맡은 교사들의 전문적 활동과 식견이 미흡해진 데 따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앞으로 교육계에서는 교직의 전문성을 사회적으로 공인받기 위해 교육전문성을 향상시키고 그것이 특별한 활동임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 교원들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현직연수(교사재교육) 시스템은 바람직한 수준입니까? ▶이재훈 =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학교현장에서는 나름대로 전문성 향상을 위한 자체연수를 하고 있습니다만 한계가 있습니다. 평소 선생님들에게는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일뿐만 아니라 처리해야 할 잡다한 일들이 수없이 많아서 주로 방학을 이용하여 교육청에서 마련하는 연수를 받고 있지만 연수기회가 잘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별도로 연수예산을 책정하여 연수를 받게 하고는 있지만 전체의 25%에 해당하는 교원에게만 연수비의 50% 정도를 지급할 수 있을 뿐입니다. 나머지 교원들은 자비를 들여 연수를 받아야 할 형편입니다. 이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원들의 연찬은 교원 스스로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학생교육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정책의 일환이므로 그 연수경비는 당연히 국가에서 지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더욱 다양한 교육연수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모든 교원들이 무료로 언제나 편리하게 연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PAGE BREAK]정부나 교육청에서 모두 수용하기 어려우면 한국교총과 같은 단체에서 개설하고 있는 연수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도 있겠지요. ▶조동섭 = 교원의 현직연수는 크게 자격연수, 직무연수, 특별연수로 구분되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재교육 체제를 구축하고 있고, 그것이 매우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교직에 입문하기 전에 실시하는 연수도 이전과 비교하여 그 양과 질에서 크게 개선되었고, 교직 입문 후에도 교육청이나 학교 주도의 직무연수와 자체연수들을 체계적으로 실시하여 직무 향상과 소양 계발을 도모하고 있는 등 제도적 차원에서 현직연수는 매우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내용과 지원 문제와 관련해서는 개선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우선 교사들이 필요한 연수를 수시로 받을 수 있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가령 교사들이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연수교육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경우 충분한 행·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학원에 등록하거나 사회교육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여 능력계발을 도모하는 경우 일체의 경비를 지원하여 그 의지와 노력을 지원해 준다면 보다 바람직한 연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식적 연수 아닌 실질적 연수 필요” ▶나혜영 = 내용에 따라 다릅니다. 간혹 저희들도 이런저런 연수들을 받지만, ‘정말 좋았다’하는 연수가 있는가 하면 ‘도대체 이런 연수 왜 시간 내서 받게 하는 거야’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연수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형식적인 연수가 아니라 교과목과 관련된 실질적인 연수, 필요로 하는 연수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의무적으로 몇 년에 한 번씩 혹은 교과 과정이 바뀔 때마다 연수를 받게 하는 것도 좋습니다. 단, 실질적으로 교수-학습 방법 등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진동섭 = 현직 연수는 자격연수, 일반연수, 직무연수, 특별연수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연수의 내용, 연수의 여건, 연수의 운영 등의 측면에서 당사자들인 교원들의 반응과 평가가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모든 면에서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장철순 = 현직 연수 시스템 자체가 많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연수시간과 연수과정을 다양하게 마련하여 교원 개인별 요구를 고려함으로써 가능한 학교수업 결손을 최소화하면서 연수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본 여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전일제, 오후제, 야간제, 주말제 등 연수시간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자기 부담 연수 확대 및 부전공 자격연수도 확대 운영해야 합니다. 교원들이 원하는 분야의 연수를 시간적·공간적·방법적 제약에서 벗어나 탄력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첨단 정보 통신에 의한 원격연수 방안을 확대 실시하여 가정에도, 학교에서도 원하는 연수를 선택하여 수강할 수 있도록 연수 시스템을 개발·확대해야 합니다.[PAGE BREAK]또한 연수기관을 확충하여, 연수내용과 장소, 연수시간의 폭을 넓혀 수요자가 원하는 연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진행자 = 교원들은 자신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얼마나 노력한다고 보십니까? 교원들이 자성할 부분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조동섭 = 사실 교원의 현직연수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습니다. 현직연수 기회가 확대되고 실제로 많은 교사들이 현직연수에 참여하고 있지만, 많은 경우 승진을 위한 점수 따기 방편으로 연수를 받기 때문에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승진이 계기가 되었든 다른 무엇이 계기가 되었든 교사들이 현직연수에 많이 참여한다는 사실은 우리 교육의 발전을 담보하는 매우 의미 있는 증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지금 학교에서는 많은 교사들이 너무 많다고 할 정도로 각종 연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 보면 그들은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매우 열심히 경청하고 진지하게 참여합니다. 따라서 저는 많은 교사들이 현직연수에 의미있게 참여하고 그를 통해 자신의 전문성을 향상시켜 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러한 연수에 잘 참여하지 않은 교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와 학생들은 끊임없이 변화되고 있습니다. 그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변화의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교사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계기를 통해서든 연수에 참여를 하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변화되고 있고 또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지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보다 많은 교사들이 현직연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고 그 기회를 통해 자신의 전문성을 계발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적인 노력을 학교와 교육당국에서는 적극적으로 계획·실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재훈=저 스스로도 자성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정말 열과 성의를 다하여 노력해 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선생님들도 이 부분에서는 매우 공감하실 것입니다. 나는 매일매일 학생교육을 위해서 충분히 연구하고 준비하고 있는가? 전문성을 십분 발휘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학생지도에 임하고는 있는가? 틈만 나면 연수를 받고 교육서적을 탐독하고 토론을 하면서 자기 연찬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자신있게 ‘그렇다’고 답변할 수 있는 선생님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교원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결코 다른 사람들이 올려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혜영 = 교사처럼 편하자고 작정하면 편한 직업도 없고, 일하자고 덤비면 해야 할 일이 그처럼 많은 직업도 없다고 합니다. 정말 그 말을 절실히 느낍니다. 어느 집단이나 그렇듯이 교사 집단에서도 적절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많은 교사들은 순박하고 성실합니다. 학생들과 몸을 부대끼며 정말 뭔가를 해 보려고 노력하는 교사들 참 많습니다. 입시 제도가 바뀌면 그에 맞춰 대학 보내주려고 노력하고, 수행평가 하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합니다.[PAGE BREAK]그런데 저는 이처럼 소극적인 대응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교육부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며 전문성을 실현시키는 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노력하는 교사에게 그에 맞는 대가가 주어지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노력이 단지 행정적인 업무 처리 능력이 아니라 그야말로 학생과의 상호 작용인 교육 활동이 되어야겠지요. ▶장철순 =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원들의 전문성은 무엇일까요? 바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서 찾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자신의 수업방법 개선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자발적 노력은 얼마나 하는지 제 자신부터 반성해 봅니다. ‘일 잘하는 교사’보다는 ‘수업 잘하는 교사’가 대접받는 교육현장, 승진과 담당 업무 추진을 위해 밤잠을 설치기보다는 내일의 수업을 준비하며 교수-학습 방법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교원들의 모습을 하루빨리 볼 수 있도록 기대해 봅니다. ▶진동섭=전문성 향상을 위한 노력은 교원 개인적인 노력, 교원들 집단적인 노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원들은 개인별로 보면, 전문성 향상을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집단적 차원에서는 이러한 노력이 다소간 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교실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혼자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보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주로 혼자서 해결하는 경향이 큽니다. 따라서 집단적으로 어려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도 하고, 토론도 하고, 실험도 하는 그러한 노력이 좀더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교사의 자율성 확보 시급” ▷진행자 = 교사의 자율성은 많다고 보십니까? 적다면 어떤 부분이 보완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이재훈 = 이 문제는 입장이나 시각에 따라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제가 판단하기에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의 자율성은 많이 달라졌다고 봅니다. 국가수준 교육과정이 있고 시·도 교육과정 운영 지침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에 바탕을 두고 학교 교육과정을 스스로 만들고 의견을 모아 자율적으로 교재를 선택하는 등 예전과는 사뭇 다른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각 부별로 예산안을 수립하고 집행에 참여하는 등 학교경영에도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각종 학교 행사 역시 교사들 중심으로 협의하여 추진하고 있지요. 그러나 교사 입장에서는 아직도 충분하지 못하다고 봅니다. 그 중 한 예가 연구기회의 자율성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교원의 전문성 신장을 위해서는 필요할 경우 수업에 지장이 없는 한 근무시간이라도 자율 연수를 위해 연수 장소로 갈 수 있게 하고 연구기관을 방문할 수 있게 하는 등 공무원의 복무규정이라는 틀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PAGE BREAK]물론 교육공무원법 제41조에 연수기관 및 근무장소 이외에서의 연수를 할 수 있는 근거가 있기는 하지만 방학을 제외하고 평상시에 활용하는 경우는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평상시에도 이 규정이 활성화되어 교원들이 자율적으로 연수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조동섭 = 현재 학교가 자율성을 거의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교사들이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실 교사의 교육적 자율성은 교육과정 운영과 관련하여 교육내용의 결정권, 교재 선택권, 교육방법의 결정권, 교육평가권, 학생징계권 등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권한들을 교사가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하거나 선택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교과과정의 경우 국가와 지방 수준의 지침과 방침에, 학생지도의 경우는 학교의 형편과 풍토에 의해 제약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러한 영역에서 교사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교사가 교육전문가로서 독자적인 판단과 권능 아래 책임지고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점에서 교사의 본래적 역할들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교육과정 운영이나 평가, 학생지도의 권한들은 교사들에게 충분한 재량권을 최대한 부여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나혜영 = 전 우리 사회에서 자율이란 말이 특히, 학교에서 자율이란 말이 이처럼 왜곡되어서 인식되는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율학습이 타율학습을 포장하는 말이 된 지 오래인데, 학교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자율성이란 위계 서열화된 관료제적 운영방식에서는 확보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개별학교의 자율성이 어려운데, 어떻게 그 안에 있는 교사가 자율성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학교에서는 교과서의 선택이나 학습 방법 등에서 자율성을 가질 수 있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그조차도 사실 완전히 자율성을 갖고 있다고 보긴 어렵지요. 책임을 지게 하고 대신 좀 더 폭넓은 자율성을 줄 수 있도록 위로부터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장철순 = 어느 정도는 보장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개선과 발전을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타율적 개혁이 아니라, 교사들의 자기 반성과 함께 자기 혁신을 위한 자발적인 노력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그러한 전문성에 근거하여 교사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재량권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예컨대 교사가 개별 학생의 소질이나 능력에 따라 그에 적절한 교육 내용이나 방법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하며, 성적처리와 생활 및 진로지도를 위한 재량권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진행자 = 지식-정보화 사회화의 흐름 속에 학교교육(체제, 기능 등)이 변해야 한다고 합니다. 변해야 한다면 학교교육의 새로운 지향점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PAGE BREAK]▶이재훈 = 학교교육이 끝없이 변화되고 개선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합니다. 그러나 교육현장의 폭넓은 공감대나 이해를 얻지도 않은 갑작스러운 교육정책으로 학교교육의 변화를 끌어내려고 해서는 안 되고 그 효과 또한 크지 못할 것이라고 봅니다. 개혁이나 변화는 뒤집어서 확 바꾸는 것이 아니고 제자리를 바르게 찾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학교교육의 새로운 지향점은 선생님들이 다른 걱정 없이 학생교육을 잘 하도록 하는 데 두어야 합니다. ▶나혜영 = 학교 교육의 지향점은 다양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보화 사회에서 부가가치의 원천은 창의력이며 학교교육 역시 개인의 창의력을 극대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그것도 다양성을 기초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양성이란 개개인의 다양성, 학교간의 다양성이 실현되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현실에선 불가능합니다. 획일화된 교과 과정 속에서 대학 가기 위한 고등학교, 일류대학, 이렇게 ‘한 줄 서기’가 중심이 되어 있는 교육 체계가 변해야 합니다. 물론 이는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 등의 복잡한 문화와 얽혀 있어 하루아침에 변화되진 않겠지만, 적어도 교육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 다양한 중학교, 다양한 고등학교, 다양한 대학교를 특화시키며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전달자’ 아닌 ‘지식연구자’ 되자” ▶조동섭 = 21세기 사회는 지식기반사회라는 특징을 가진 사회입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지식과 정보가 힘이고 절대 자원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 속에서 국가와 사회는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체제를 마련하고 다양한 평생학습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개인들의 능력 계발을 도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학교도 많은 점에서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로 하여금 평생에 걸친 생애교육을 체계적으로 이수할 수 있도록 그 기초와 기본을 충실히 제공하는 체제로 바뀌어야 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다양하게 개발할 수 있도록 다원화되고 개별화된 교육을 체계적으로 제공해 주는 체제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장철순 = 컴퓨터를 비롯한 첨단 정보통신 기술을 통해 창출한 지식에 의해 움직이는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학교의 존재는 어떤 가치를 지니며 어떤 위상으로 서 있어야 하는지를 냉철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과거 산업사회에서 존재했던 지식과 위계를 지닌 학교의 모습이 아니라 하루에도 수없이 넘쳐나는 정보를 처리하고 활용하며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내장돼 있는 열린교육 체제를 갖추어야 합니다. 또한 학생 개개인이 타고난 각각의 소질과 능력을 발굴하고 이것을 더욱 크게 계발하고 육성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체제로 변해야 할 것입니다. [PAGE BREAK]▶진동섭 = 사회가 변한다고 해서 교육의 기본적인 목표와 방향이 바뀐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의 삶의 질 향상입니다. 학교교육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입니다. 이러한 학교교육은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자기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당당한 인간을 양성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 교사의 역할도 필연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변해야 한다면 교사의 새로운 역할은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나혜영 = 아마 원튼 원하지 않든 교사의 역할도 변화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교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지식을 학생 개개인에게 맞춰주는 교육을 해야 하며 그것이 새로운 교사의 역할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교육이 효율적인 지식 전달 체계였다면, 이제는 그 학생에게 맞는 지식을 찾아주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제는 학생들이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과목을 맘에 드는 강사를 찾아서 수업을 듣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교실에서 선생님에게만 의존하던 시대에선 벗어났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제 교사의 역할이 지식 전달만으로는 부족하며, 학생의 능력을 파악하고 평가하고, 적절한 지식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일, 진로를 모색해 주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사회적인 신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재훈 = 교육의 중심에 서 있는 교원들의 역할도 당연히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동료교사까지 참여하는 교사평가제가 거론되고 있고 학부모 감사청구제도 도입할 것이라는 소식이 있습니다. 학교 사회에 조만간 바람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도 느껴집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우리 교원들이 예전처럼 수동적이고 미온적인 자세로 안주해서는 안되겠지요. 학생 교육을 위해서는 지금보다도 더 열과 성의를 다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바른 교육을 위한다면 당당하게 우리 주장도 펴고 적극적으로 대 학부모 교육이나 대 국민 홍보에도 뜻을 모아 나섰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교육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서 끊임없는 자기 연찬과 수업방법에 대한 연구, 그리고 학생 지도에 관한 노하우를 배우고 익혀 진정한 학생 교육의 프로가 되도록 한층 더 노력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장철순=“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고 합니다. 결국 교육개혁의 가장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상태는 학교 교육개혁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의 개혁은 교사개혁으로부터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교사는 변해야 합니다. 권위주의 사고방식에서 자율 참여의 사고 방식으로, 닫힌 마음에서 열린 마음으로 학생들을 대하며, 학생에 대한 지시·통제를 하기보다 자율·능동의 상태를 만들어주는 조절자 역할을 기대합니다. 또한 비판적이고 수동적인 보수주의적 의식구조에서 벗어나 진보 합리적인 의식구조로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PAGE BREAK]▶진동섭 = 새로운 사회의 학교는 폐쇄적인 체제가 아니라 개방적 체제가 되어야 합니다. 학교는 단순히 ‘학교’가 아니라 ‘학교공동체’로 성격이 달라지는 겁니다. 이러한 개방적 체제로서의 학교공동체에서도 교육의 주도적 역할은 교사들이 담당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의 질이 교사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는 학생들이 어떻게 보면 무제한적으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과서에 담긴 한정된 정보를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에 안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교사는 학생의 학습 욕구를 정확히 파악해서 이것을 학생 스스로 해결하도록 학습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학습 과정을 모니터하고, 학습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평가해서 피드백을 해주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곧 교육 컨설턴트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동섭 = 지식기반사회를 위해 학교교육을 변혁해야 한다고 할 때, 그것은 다양한 차원의 변혁을 의미합니다. 우선 교육체제를 바꾸는 것이 그러한 일이라고 할 수 있고, 교육의 내용과 방법, 교육환경과 지원체제 등을 변화시키는 일도 그러한 일들의 일부입니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체제를 운영하고 교육의 내용과 방법, 그리고 그 여건과 환경들을 변혁시키는 것 모두 사람의 의식과 노력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교육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하면 그 변화 중에서 교사의 변화가 핵심적인 요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식기반사회에서 교사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것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지식을 찾고 지식을 가공하고 잘 활용하는 능력을 계발하는 역할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를 위해서는 스스로 우수한 지식정보 탐색사가 되어야 하고 그 정보를 효과적으로 처리·활용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교사가 지금까지의 ‘지식전달자’로서의 역할로부터 지식을 탐색·가공·생산·활용하는 ‘지식연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지식전문가로 그 영역과 역량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곽병선 | 경인교대 초빙교수·전 한국교육개발원장 1. 다시금 각광받는 교사의 직 한국에서 교사들은 전형적으로 사범학교라는 교원양성기관을 통해서 양성되어 왔다. 구한국말(舊韓國末)에서 일제(日帝)를 거쳐 현대식 학교제도가 이식되는 과정에서 사범학교는 우수한 인재들을 교원으로 흡인하는 나름대로의 역할을 학교제도 형성 초창기에 해 왔다. 해방을 전후해서 1970∼1980년대 산업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청년들의 사회적 진출기회가 다양하지 못했던 과거에 교원 임용이 보장되었던 국·공립 사범학교(과거의 고교과정 사범학교를 포함한 사범대학 전반을 일컫는 말로 사용)로 우수한 청년들이 진학했었다. 사범학교 출신 대부분은 교육계에서 종사하였지만, 일부는 교육계 밖에서도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이것은 그만큼 사범 교육이 교육계만이 아니라 타 분야에서도 일할 수 있는 인물들을 길러내는 사회 진출 통로 역할을 나름대로 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국 이후 적어도 산업화가 전면적으로 일어나기 전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교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다소 낭만적인 전통을 떠올리곤 했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산업사회로 변모하면서 득세한 물질주의 여파로 봉급직인 교직은 그렇게 매력적인 직종이 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이러한 정황은 다시 1997∼1998년의 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급전되었다. 구조조정이란 교육외적 요인으로 교원의 정년이 단축되는 시련을 겪었으나, 청년 실업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오늘날 비교적 직업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있는 교직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직종으로 다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전반적인 정황에서 초등교사 양성기관인 교육대학교가 오늘날까지 사범교육의 전통을 굳건히 지키고 비교적 안정되게 수급을 조절하여 잘 훈련된 교사들을 배출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중등교사의 양성과 임용의 경우는 다소 곡절이 있었다. 교원 수급을 엄밀히 고려함이 없이 중등교원 양성기관을 방만하게 허용함으로써 수요를 초과하는 대학 졸업자들에게 교원자격증을 남발하여 왔고, 결과적으로 교사 자격증에 대한 가치를 상대적으로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원임용에 있어 국·공립 사범대학 출신에 대한 우선적 혜택이 거부된 이후 중등교사는 사범대학 과정 또는 일반 대학에서 교직과정을 거쳐 교사 자격증을 획득한 이후에 경쟁적인 선발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여하튼 초·중등 학교 어느 수준이든 한국 사회에서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소정의 양성과정을 이수해야 하고, 아울러 임용시험을 거쳐 선발되지 않으면 안 되는 특수 전문 직종임에는 큰 변함이 없다.[PAGE BREAK]그러한 면에서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떠한 과정을 거쳤든 오늘날 교단에 선 전국의 40만 교사들은 책임이 막중한 직업인들이다. 그리고 한국 교육의 질과 장래는 여지없이 이 교사들 손에 달려 있다. 2. 변모하는 교직환경 그러면 과연 오늘날 한국에서 교사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물론 교사의 자리는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여러 종류의 일 중 하나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일의 세계에서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 특별히 교직이 다른 것보다 중요하다고 내세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교직은 교직으로서 중요한 것이고, 교직이 중요한 이유를 대야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오늘날 교사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복잡하다. 아마도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안심하고 그들의 자녀를 맡길 수 있도록 교사들이 믿음직스럽게 성심성의껏 교사의 역할을 잘 감당하여 주기를 바랄 것이다. 많은 교사들이 학생 지도에 헌신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교육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학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를 사설 과외학원에 보내거나 심지어 이산가족의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조기 유학으로 해외에 보내기도 한다. 또한 대안학교 또는 재택 학습으로 그들 나름대로의 특수한 교육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시도를 벌이는 경우도 있다. 교사들은 국가 또는 학교 재단에 의하여 임용된 신분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업무는 국·공·사립 구분 없이 인간교육이라는 공적 가치 실현을 위해서 종사한다. 그래서 그들의 업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처지에 있든 학생을 존엄한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일이며, 이를 위해서 각자의 최선을 다하되, 그들의 업무처리는 공정하고 신뢰로와야 되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오늘날 한국 교사들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특별히 고등학교 단계에서 교사들이 작성한 학생생활기록이 공신력을 확보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가급적 자신들이 가르친 학생들이 불리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교사들의 선의(善意)가 학교 기록에 대한 왜곡과 불신을 가져오고 있고, 이것은 대입 수학능력시험과 같은 학교외적 평가제도를 강화시켜 다시 학교 교육을 시험 준비기관으로 전락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질 높은 교육, 공정한 업무처리를 바라는 사회적 기대에 교사들은 부응해야 된다는 것은 교직의 중요한 한 기본 전제이다. 그러나 교사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상이한 입장과 주장을 가지고 있다. 정부 정책이나 학부모의 요구를 추종하기만 하는 입장에 서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무엇이 교사의 직무인가에 나름대로의 안목과 기준을 가지고 그들에게 부과되는 과제를 스스로 판단하고 조율할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그들의 직무를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기를 바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전문적 직무 수행에 대하여 그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보상을 정책당국과 직접적 이해당사자들에게 요구, 협상할 수 있는 권익단체를 결성하고 있다. 오늘 우리 교직사회는 이러한 면에서 상호 노선을 달리하는 권익단체들이 교사들에게 선호될 수 있기 위한 단체의 정강정책과 행동 양태를 통해 상호 경쟁을 벌이고 있다.[PAGE BREAK]이러한 상황에서 교사들은 그들의 직무 수행과 관련한 크고 작은 여러 문제를 개별 교사의 독자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려 하기보다, 그들의 입장을 옹호해 줄 수 있는 조직과의 연대를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는 국면으로 바뀌었다. 교사를 둘러싸고 있는 이러한 직무환경은 불과 지난 몇 년 사이에 급격히 조성된 것이다. 교사들이 하고 있는 일과 그 질에 대해서 사회일반은 보다 납득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가 증대되고 있고, 교원 사회 또한 서로 연대함으로써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기제를 형성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교사의 직무를 중심으로 한 업무구조가 다층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학생들의 학습을 돕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고, 오로지 그 일에 전념하여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의심할 여지없는 교사의 일차적 책무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사는 오로지 수업활동에만 종사하고, 그 이외의 업무에 대해서는 기피하거나 소극적으로 임한다고 하면, 오늘날 다층화·다면화되고 있는 교사의 역할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교사는 다차원의 입장에서 그들의 직무를 유기적으로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3. 답보하는 교육본질 문제 이처럼 교직 환경이 다층·다면적 역할 구조로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것은 지식·정보화, 세계화와 같이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회 전반의 변화와 관계가 깊다. 전대미문의 급격한 변화가 더욱 가속될 앞으로의 세계에 있어서 국가 단위 공동체가 자주적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그 공동체가 어떠한 변화상황에서도 주변으로 밀리지 않고 원하는 대안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의 상황주도력을 얼마나 갖추었느냐에 달렸다. 상황주도력을 갖춘 공동체는 안으로 구성원들이 다양할 수 있는 가치관과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분열하지 않고 상호 높은 신뢰를 가지고 공동체의 건재(健在)를 위한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하는 과제에 대해서 높은 결집력을 발휘하는 사회이고, 이질적 요소를 확대하기보다 타협과 절충으로 상생(相生)과 조화를 위한 통합을 꾸준히 시도하는 사회이다. 그리고 공동체의 생산성을 올리고, 대외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과학, 기술, 예술 등의 각종 분야에서 핵심역량을 선도적으로 추구하는 사회이다. 다시 말해서 창의성, 상상력, 자기 주도적 문제해결력을 앞서서 갖추는 사회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불과 지난 30∼40년의 짧은 기간에 만성적 가난을 탈출하여 오늘날 국민 소득 1만 불 대를 나름대로 구가하면서 살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기적과 같은 일이다. 이만한 성취에 우리는 자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상황주도력을 발휘할 만큼 내실을 갖추지 못한다면, 과거 우리의 조상들이 외부 세계와의 조우(遭遇) 과정에서 겼었던 역사적 고난을 또 다시 당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남북 분단이라는 민족내부 문제하나를 스스로 해결하고 있지 못한 처지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 세계는 여전히 상황주도력을 갖추지 못한 나라들은 얼마든지 예측불허의 난폭한 상황에 여지없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PAGE BREAK]이 국가 공동체의 건재를 위해서 국가 차원에서 할 일이 많이 있지만, 그 근간은 사회 구성원을 길러내는 교육의 질에 달렸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국가 정책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인간교육의 본령을 살리는 교육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나라의 국정을 담당한 관료들이나 정치세력들은 무엇이 교육의 근본이고 무엇이 지엽적 문제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고, 학교 교육을 담당한 교사 사회는 상황주도력을 길러내는 교육을 위해서는 오래 전에 버렸어야 할 정답주의 교육체질을 온존시키고 있다. 지금 사교육 대책의 하나로 공영 교육방송에서 수능시험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고 있고, 이것이 사교육의 불을 끄는데 매우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정책당국은 기대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사교육 열을 식히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가 지향해야 할 창의성 교육, 학습자 주도 교육, 갖가지 문제를 보다 학생들 체험의 과정으로 차원 높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해결학습은 우리 교육에서 실종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교육의 근본문제는 학력 자격에 대한 명확한 기준 설정 없이 수능시험제도와 같이 수험생에게 중요한 고부담 학력평가를 국가 관리 학교외적 평가로 시행함으로써 안정적 기준 없는 임의평가가 학교 내외 평가를 막론한 모든 평가에서 만연하고, 학교를 시험 준비기관으로 종속시키고, 교사의 직무를 피동화할 뿐만 아니라, 정답암기 교육의 폐단을 낳도록 하는데 있다. 이 정답암기교육의 가장 큰 폐단은 학생들에게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허용할 수 없는 데 있다. 학생들이 그들의 학습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자기 방식으로 해결해 보는 그런 과정에 충실할 수 있는 학습의 과정이 아니라, 출제자의 의도를 살펴 출제자가 기대하는 정답을 될수록 많이 암기하는 것이다. 잘해야 기존 지식 습득 교육이고, 암기력을 훈련하는데 효과를 볼 수 있는 정도의 교육이다. 변화무쌍한 미래 사회에서 상황을 주도할 수 있으려면, 정답주의 교육을 넘어서 자기주도 학습을 조장하는 교육으로 우리는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진정 학생들에게 갖춰 주어야 할 실력은 이미 결론이 난 정답이 아니라, 새롭게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의미 있고 중요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능력이다. 4. 한국 교사의 역사적 책무 건국 반세기를 넘어 21세기로 진입한 지금의 상황에서 남달리 선택받은 직업에 종사하는 우리 교사들은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상황주도력의 개발을 모든 교사들이 유념해야 할 중요한 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황주도력의 핵심은 교육으로 길러진 인성과 사고방식들이 기존의 지식, 기술, 사상을 답습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상황을 주도할 수 있을 만큼 핵심 역량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새로운 지식의 생성, 핵심 기술의 개발, 영혼을 적실 수 있는 예술의 창조, 감동과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영감(靈感)을 자극하고 촉진하는데 교사들이 헌신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황주도력을 길러내는 교육은 세계 수준을 달리는 교사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 말은 이제 우리 교사도 세계 수준의 교육을 목표로 실천하고자 하는 교육에 대한 기대치, 다시 말해 교육에 대한 교사의 눈높이를 한껏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PAGE BREAK]세계 초일류의 교육을 향해 나가는 것을 교직의 지향점으로 삼고,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교직 역량을 축적해 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들이 다음과 같은 사항을 중요하게 의식하고, 그러한 사항들이 실현되도록 공동 노력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사항은 학교가 평가권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교사들이 필요한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다. 교육이 정답암기 교육의 굴레에서 벗어나, 토론, 실험, 관찰, 봉사체험 등 과정에 충실한 학습 경험을 학생들이 갖도록 하려면, 학교가 평가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경우 학교는 평가 기록에 대한 공신력을 세워야 한다. 종국적으로는 수능과 같은 학교외적 평가가 필요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교육의 본질을 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망국적 사교육의 폐해를 해소하는 첩경이 될 수 있다. 다행히 향후 입시제도는 학교 평가권을 살리는 쪽으로 개선된다고 들린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학교가 평가권을 제대로 행사하려면, 다음과 같은 선행조건이 갖추어져야 하고 이것은 대부분 교사들의 역량과 직결된다. 무엇보다 교과별 학력 평정에 대한 기준이 설정되어 있어야 한다. 즉 교과별 학력자격 기준을 설정하는 일이다. 이 학력 자격기준은 학생들이 성취하여야 할 학업의 수준을 체계화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비중은 학생들이 어떠한 학습경험을 쌓아야 되는가에 대한 기준, 즉 학습과정에 대한 기준을 중요하게 포함하여야 될 것이다. 아마도 개별 교사수준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니다. 그렇다고 당국이 알아서 기준을 설정하여 교사들에게 안겨 줄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일이 아니다. 교사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이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나는 동일 교과 교사들이 연대하여 스스로 학력자격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교과별 전문 연구회, 교직단체 내 교과연구회 등에서 주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다른 방법은 교사들이 교육부에 연대하여 학력자격기준을 개발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을 어떻게 사용하던지에 관계없이 교사들에게 기본적으로 중요한 과제는 교과별로 학력자격기준에 대한 지침과 이해를 상호 공유하는 것이다. 고립적 근무환경에서 일하던 과거에 이러한 요구를 교사들에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인터넷 환경은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교사들은 이제 관심을 같이하는 동료 교사들과 얼마든지 연대해서 공동 작업을 벌릴 수 있다. 우선 교사들은 소속 학교 동료교사들과 학력자격기준을 공유하는 노력을 펼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웃 학교들과 공동보조를 취할 수 있는 그 연대의 범위를 넓혀 지역 내 동일 학군, 시·도 교육청 범위로 확대하여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이웃 학교 교사들과 협의할 수 있고, 동일 지역 내 교사들과 협의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중앙 교육부에 대하여 해당 문제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도록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교사들로부터의 이러한 상향식 접근은 시·도 교육청과 교육부 조직에 교과별 전문가를 배치하도록 하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학교의 학력관리 기록에 대한 공신력을 확보하는 데 있어 관건적 요소가 된다. 학교 평가권을 실현함에 있어 학교 성적 기록에 대한 공신력을 확보하는 과제는 바로 교사들이 주도적으로 연대하여 대외적으로 공정성 있는 학력관리 정보를 생성하는데 달렸다.[PAGE BREAK]이 공정성 있는 학력관리정보를 학교가 마련하게 되는 때, 우리 나라 교육의 질은 국제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이다. 5. 교육개혁, 교사가 움직여야만 성공할 수 있다 1918년 오스만 터키 제국의 치하에 있던 팔레스타인 내 이스라엘 정착촌의 유대인 학교에서 교사들의 쟁의가 발생하였다. 이 교사들의 쟁의는 이스라엘 교육은 이스라엘 언어로 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정착촌에 이주해 온 이스라엘 인들은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주로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들이 살았던 나라의 언어로 아동들을 가르쳤다. 이스라엘 언어는 세계에 각지에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 인들이 주로 예배의식에만 사용하였을 뿐, 일상적 언어로는 사용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정착촌에 들어온 교사들은 이스라엘 교육은 그들의 민족 언어로 해야 되겠다는 의식으로 무장되었다. 종교의식 외에 언어, 역사, 문학 과목 등은 이스라엘 언어로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학교 당국은 과학이나 수학은 유럽 언어로 가르치도록 방침을 정했다. 이스라엘 언어에는 그러한 과목의 전문용어가 발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교사들은 학교 당국의 방침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나섰다. 결국 학교 당국은 교사들의 쟁의에 굴복하여 모든 교과를 이스라엘 언어로 교육하도록 허용하였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교사들은 1800년 동안 죽었던 그들의 언어를 살려내는 단초를 만들었다. 오늘날 이스라엘 교사들은 그들의 교육사에서 첫 번째로 벌인 이 교원 쟁의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교사들의 결집된 의지가 교육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교육에서 세계 수준을 확보하지 못하면, 다른 모든 분야에서 핵심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구성원을 길러내기 어렵다. 아직 우리의 교육은 정답암기 교육의 구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의 주범은 학교를 한낱 시험 준비기관으로 만들고 있는 학교외적 평가제도에 있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공정성과 공신력을 담보할 수 있는 학교 평가권을 확립하는데 있다. 이 학교 평가권의 확립은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주도함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는 과제이다. 물론 정책당국의 상응하는 정책 개발, 관련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중심은 교사에게 있다. 이 작업의 성패는 미래 한국의 장래와 직결된다. 상황주도력 있는 국가 공동체를 형성해 가는 데 있어 교육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느냐에 관한 중차대한 과제이다. 이 중차대한 과제가 21세기적 삶을 살고 있는 우리 한국 교사들의 양 어깨에 걸머져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교사들은 단순한 임금 노동자가 아니다. 변화의 주변이 아닌 주역으로 역할할 수 있는 공동체 구성원을 길러내야 할 역사적 과업을 안은 이 사회의 주도적 세력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교원 단체들은 크고 작은 정책 사안을 불문하고 사사건건 정책당국이나 이해 당사자들과 대결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공동체의 존망이 걸린 사활적 과제, 즉 학교 평가권을 확립하는 과제에 대해서 결집된 노력을 펼쳐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인규 | 서울미술고 교감 내면의 평화가 교실평화 ‘왕따’니 학교폭력이니 하여 우리의 교실이 주목을 받고 있다. 교실도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니 어찌 문제가 없을까? 어른들이 툭하면 이혼하고, 싸움질을 하고 있다면, 이 작은 교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교실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그곳이 우리의 미래를 제일 먼저 맞는 곳이기 때문이다. 교실이 갈등과 폭력으로 얼룩져 있는데, 우리의 미래가 어찌 평화스러울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 반면에 우리의 교실에서 학생들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면, 그리고 학생들이 행복해 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참으로 희망적일 것이다. 이를 너무 기대한 나머지 일부 교사들은 어찌 이런 학생들은 가정에서 학교에 보내지 않는가 하며 불평한다. 학교가 가진 문제를 두고 가정이 문제니, 학부모가 문제니, 학생이 문제니 하는 귀인 논쟁은 따져보면 덧없는 것이다. 이미 가정에서 문제없이 학교에 보낸다면 학교가 존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문제는 교실에서 따돌림이나 싸움, 폭행 등 사건의 빈번한 발생 현상 자체가 아니라 이에 대한 학교의 부족한 대처 능력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체 중에서 몇 명이 ‘왕따’를 경험했고, 학교 폭력을 당했다는 조사 결과에 대해 어느 기준 이상 일어나면 심각한 것으로 판정할 것인지 객관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교실로 인하여 학부모들이 불안해 한다는 것이다. 학부모의 불안은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보고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으레 문제가 일어나면 학교의 대처는 상투적인 경우가 많다. 가해자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자를 격리 조치하며, 교내 순시를 강화하고, 계도 훈화를 많이 하겠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학교가 교육 기관인지 사법·교정 기관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만약 학교가 진정 학교다워지려면 사소한 것이든 중대한 것이든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각종 폭력에 대한 교육적 해결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전문성이 외부 전문가를 학교에 초빙해서 해결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바로 현장에서 대처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므로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바로 교사들이 현장에서 폭력에 대한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라는 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일정 교육과정을 이수하여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 폭력에 대한 대처는 교사 자신의 ‘내면의 평화’를 통해 구축되는 것이라는 점을 알면 순차적으로 다음 수순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수순이란 타인의 마음을 평화롭게 정렬시킬 줄 아는 것이며, 나아가 학생의 갈등을 조정할 줄 아는 것을 말한다. 즉, 나의 내면에서 분노를 조절할 줄 알면 상대의 분노를 제어할 줄 알며, 제3자로서 분노를 제어할 줄 알게 된다. 그래서 교실 평화 만들기의 요체는 바로 교사의 내면 평화인 것이다.[PAGE BREAK]분노 감정의 생성 원리 뜨거운 물체를 대면 손을 뗀다. 왜 손을 떼었느냐 물으면 뜨거웠기 때문이라고 답을 한다. 그러나 뜨거운 것을 내가 만졌구나 지각을 하고, 그래서 손을 떼어야겠구나 판단을 하고, 이에 따라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 뜨거운 것을 대자마자 연수 근처에서 반사 행동을 한 후에, 나중에 대뇌에서 내가 손을 뗀 것은 뜨거웠기 때문이라고 지각한다. 지각 판단 행동이라는 순서는 그리 일상적인 것은 아니다. 갑자기 뒤에서 앞으로 움직이는 시커먼 무엇이 지각되었다고 하자. 지각 판단 행동이라는 순서를 밟는다면 이렇다. ‘아, 저것은 무엇일까? 나를 해치는 것일까, 아닐까? 그래 나를 해치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피해야지.’ 그러나 실제 이렇게 행동했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할 수 있다. 설사 시커먼 무엇이 생명을 해칠 가능성이 적다고 하더라도 죽은 뒤에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일단 피하고 나서 나를 해치는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이 옳다. 실제 우리의 생명 기제는 이렇게 진화되어 있다. 나를 공격해 오는 그 무엇에 대해 나의 몸은 방어하기 위해, 혹은 역으로 공격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든다. 온 몸이 긴장하고 신경이 곤두선다. 혈액 순환은 증가하고, 혈압도 오른다. 그래서 얼굴은 붉게 상기되고 주먹을 붉게 쥐는 법이다. 이때 사고 기능도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일념(一念)을 이룬다. 그래서 ‘저게 나를 해칠 지 몰라’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저게 나를 해치는 것’이라 일단 단정한다. 나쁜 것으로 생각해 버림으로써 나의 방어 기제가 효과적으로 작동된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나의 몸을 구한다. 나는 나의 몸을 구한 후에 판단을 한다. ‘아, 나쁜 것이 아니었네….’ 이러한 생명 보존의 기제는 우리 조상들이 정글과 초원 지대에 살면서 자연의 재난과 동물의 습격, 타 종족의 공격으로부터 유전자를 보존해 온 원리였다. 지금 현대에 살면서 자연의 재난도 줄어들었고, 동물의 습격은 거의 없고, 타 종족의 공격도 현저히 줄어들었건만 아직 내 몸은 과거를 기억하고 여기에 맞추어 작동된다. 생명 보존의 원리는 나의 자존심이나 신념, 재산, 기타 다른 내가 가진 것이 공격을 받았을 때에도 작동된다. 만약 이것이 침해되었을 때, 방어하기 위해 혹은 역으로 공격하기 위해 내 몸과 마음이 작동된다. 혈압이 오르고 혈액 순환은 빨라진다. 근육은 긴장하고 언제든지 상대를 칠 준비를 한다. 그리고 생각은 일념으로 진행된다. ‘너는 세상에 나쁜 몸이야. 네 시커먼 속은 다 알겠어. 네가 없어져야 세상이 더욱 정의로워질 거야. 나는 정의의 사도! 그러니 당신은 나한테 벌을 받아야 해.’ 공격하는 것이 물체라면 금방 상대에 대해 판단을 하고 공격의 고삐를 늦출 수 있을 것이지만 그것이 아니라 말이나 생각이기 때문에 판단이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방어 기제는 더욱 영속화된다. 일단 방어 기제가 작동되면 눈과 귀와 감각도 고정된다. 나쁜 놈의 그것으로만 보고 듣게 된다. 더욱이 나의 말이 그렇게 나가면 상대도 고와질 리 없다. 내가 나쁜 놈이라 했던 것만큼 나쁜 놈으로 행동한다. 그러니 진짜 나쁜 놈이 된다. 눈싸움이 말싸움되고, 폭력이 되고, 전쟁이 된다. 상대가 나쁜 놈임을 증명하기 위해 예수도 등장하고 마르크스도 등장하고, 의회민주주의도 등장한다. 정치인도, 지식인도, 교사들도, 나이 어린 학생들도 여기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PAGE BREAK]지금 학교교육은 어쩌면 상대를 나쁜 놈이라는 것을 검증하기 위한 이론적 기저를 제공하는 활동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화가 난 정서가 먼저이고 화가 나는 판단 근거는 나중이라는 것이다. 화가 나서 판단한 근거들은 실재하는 원인이 아니라 화가 났기 때문에 지어낸 생각인 것이다. 이 점은 참으로 중요하다. 화난 상태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불난 데에 부채질하는 것이지 결코 분노를 깨뜨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분노에 빠져 있을 때,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된다. 상대가 분노에 빠졌을 때에도,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된다. 조용히 분노의 정서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분노 조절의 요체는 바로 이것이다. 분노 조절을 위한 원리 ‘저 녀석은 이래 저래서 나쁜 놈이야. 암 그렇고 말고.’ 만약 이렇게 생각하고, 정의감이라는 기준을 세운다면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선한 행동이 되고,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 된다. 내가 참아버리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이 된다. 진리와 정의의 전당인 학교에서 나쁜 놈을 그래도 두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학교는 곧 폭력화된다. 그래도 학교에서는 폭력을 두둔한 적은 없다. 참을 인(忍)자를 쓰라고 가르친 것이 학교이지 화를 폭발시키거나 위협이나 폭행을 가하라고 한 적은 없다. 이 가르침대로 참기만 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화는 중요한 보호 장치이다. 그런데 무조건 이를 억눌러 버리면 가슴에 응어리가 되고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상대를 욕하느라 정신이 없어진다. 억누르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참아버리게 되면 서로를 조정할 기회를 놓치게 되고, 왜곡은 갈수록 심화된다. 그리고 본인 내부에서 잠재되어 속병이 된다. 상황은 변화되지 않고 나의 자존심을 뭉게거나 재산을 공격하는 일이 지속되면 언젠가 임계 한도를 넘어 공격이 들어올 때 한꺼번에 폭발한다. 사고를 치는 학생들을 관찰해 보면 지금까지 말도 없이 잘 참은 학생들이지 수시로 자기 속을 드러내는 애들이 아니다. 분노는 무조건 억압할 일도 아니고, 무조건 드러낼 일도 아니다. 앞에서 말한 나의 생명 기제 작동 원리를 조용히 지각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아, 내가 무엇 때문에 생명 보존 차원에서 몸이 작동하고 있구나. 아하 그래서 숨이 가빠오네. 얼굴은 붉어오고 주먹을 쥐고 있구나. 상대를 나쁜 놈이라고 일념의 생각을 하고 있구나…. 화가 나는 동안 이렇게 깨어있을 수만 있다면 화가 나를 잡아먹지 않는다. 이렇게 화난 의식을 내가 조용히 쳐다보고 있으면 화는 잠잠해진다. 그리고 마음의 선택을 기다린다. 화를 꼭 내야 할 상황인가? 만약 낸다면 어느 때, 어느 정도 낼 것인가? 혹시 내 기준만 전하면 되는 사항이라면 어떻게 전할 것인가? 보다 복잡한 절충과 타협이 필요하면 언제 만나서 협상을 할 것인가? [PAGE BREAK]내가 화의 주인이 되어 화를 내기로 작정해서 화를 내는 것과, 화가 나의 주인이 되어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내가 화를 내기로 한다면 나는 충분한 무기와 전투식량, 우군, 통신장비를 비축해 놓기 때문에 결국 이기게 될 것이며, 화가 폭발해 버리면 이것들이 없는 가운데 전쟁하기 때문에 반드시 후회하도록 되어 있다. 역사상 존경을 받는 화는 간디나 킹 목사의 그것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화를 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화가 난 이유를 상대가 알도록 함으로써 상대의 행위를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를 잘 전달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이의 기법은 단순하다. 그저 ‘무엇 때문에 내가 화가 있다’라고 전하는 것이다. 전하지도 않고 분노의 생각만 키우고 있기보다는, 만나서 내 마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두 담화를 비교해 보라. A는 상대로 하여금 방어기제를 작동시키지만 B는 상대로 하여금 협조기제를 작동시킨다. A : “너희들 정말 이럴꺼야? 왜 지각을 자주 하는거야?” B : “학생들아, 너희들이 지각을 자주 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라.” 분노하는 상대에 대한 조절도 똑같다. 상대가 화의 주인이 되도록 도와주면 상대는 곧 이성을 되찾고 대화 분위기로 돌아서게 된다. 다음에서 A는 자칫 전쟁으로 비화된다. 그러나 B는 곧 상담 분위기로 전환된다. B와 같은 대화 방식을 ‘가시빼기 전략’이라고 부른다. A : “아니, 선생님. 너무 하시잖아요. 머리가 길기로 서니.” “어쭈 이 녀석이 감히 말대꾸야!” “내가 무슨 말대꾸를 했다는 말씀입니까?” B : “아니, 선생님. 너무 하시잖아요. 머리가 길기로 서니.” “학교의 두발 규정이 너무 엄격해서 화가 난단 말이지?” “네!” 교실 갈등과 중재 전략 교실 내에서 학생들은 크고 작은 분쟁에 휩싸인다. 집안 내에서 오누이끼리도 서열 다툼이나 헤게모니 전쟁을 치르는데 남남끼리 오죽하겠는가? 책상을 두고 몸이 넘어 온다고 다투고, 빌려간 돈 안 갚았다고 싸우고, 어떻게 하면 나한테 그렇게 대우했느냐고 다툰다. 판단 능력을 좌우하는 대뇌전두엽이 아직 덜 커서 그러려니 하면 학부모나 교사들의 속이 덜 상하련만, 학교의 일상은 성인보다 더한 규칙을 학교에 세우려 한다. [PAGE BREAK]교실에서 싸움이 일어나면 교사들은 잘잘못을 가리는 판사가 된다. 학생들은 교사에게 적절한 판단을 구하기 위해 잘못을 일러바치고, 그 사이 한 판 싸우게 된다. 교사가 이를 다 들어주면 괜찮지만 그럴 시간도 모자라고 인내심도 크지 않다. 그래서 둘 다 벌을 세우는 것으로 대부분 끝이 난다. 만약 일방적으로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폭행한 것이라면 물론 가해자를 가려 벌을 준다. 만약 이러한 사태에 학부모가 끼여드는 경우 낭패이다. 학부모들은 자신의 자식을 두둔하기 때문이다. 이 속에서 교사는 자칫하면 일방의 학부모로부터 상처를 입기 쉽다. “왜 선생님은 저 학생만을 두둔하십니까?” 교실 평화를 위해서는 교사가 판사로서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중재자의 역할을 먼저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져보면 어느 일방의 잘못으로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 보다는 쌍방 과실이 많다.
배용득 | 울산 대송고 교사 교사들은 우리의 희망이요, 꿈나무인 학생들을 바르게 인도하기 위해 일선 교단에서 묵묵히 항상 학생들과 더불어 수업지도 및 학생들의 선도에 힘쓴다. 그러나 교사들은 학생 지도 과정에서 늘 뜻하지 않는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그 장애물은 부적응 학생의 돌출이다. 담임교사는 부적응 학생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지도하느냐에 따라 학급 운영의 승패가 달려 있으며 효율적인 학급경영 전략도 부적응 학생의 진단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학급경영 전략 짜기는 다수 학생의 성향을 정확히 진단하는 일과 더불어 부적응 학생의 진단이다. 여러 다른 학생들은 담임 교사가 부적응 학생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대하는 지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따라서 학급 운영 전략은 문제 학생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통해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학업에 대한 무관심과 삶의 의욕을 상실한 학생이 있는지 살핀다. 부적응 학생의 학습태도는 어딘지 모르게 산만하고 특히 고등학교의 경우는 선생님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자율학습을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담임교사는 이런 학생을 발견하면 즉시 불러 상담을 해야 한다. 상담을 통해 지난 학년에 대한 생활태도를 중심으로 학생의 성향을 파악하여 그에 맞추어 학생을 지도하되 엄격함과 따뜻한 배려를 통해서 학교가 공부하기에 즐거운 곳이라는 것을 빠른 시간 안에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둘째, 비사교적인 학생이 있는지 살펴본다. 비사교적인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기 싫어한다.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은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출의 주된 요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담임교사는 학교의 따뜻한 배려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를 극복하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지각과 결석을 학기초부터 시작하는 학생이 있는지 살펴본다. 지각과 결석이 많은 학생은 학교 생활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학생은 조금만 방심을 하면 장기 결석으로 이어진다. 담임교사는 이런 학생이 학교에 오지 않을 때는 학부모와 상담을 통해 이유를 알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적절한 조치는 담임교사가 학생으로 하여금 학교가 정말 다니고 싶은 곳임을 일깨우기 위해 엄격한 훈육과 따뜻 배려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렇다면 효율적인 학급경영 방안은 무엇인가? 우선 소속감을 부여해야 한다. 담임교사는 학생을 처음 맡게 되면 학생들이 우선 그 반에 애착을 느낄 수 있도록 소속감을 부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소속감 부여는 1년 동안 함께 할 학생간에, 급우간에 서로 아끼는 학급 풍토와 학습 풍토를 형성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담임 교사는 학생이 소속감을 갖게 할 수 있도록 학생 상호간에 따뜻하게 대해 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일부 모범학생들로 하여금 부적응 학생의 학습과 행동면에 도움을 주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원칙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담임교사가 학급을 경영하다 보면 크고 작은 사건으로 학생들을 훈육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담임교사는 뚜렷한 원칙을 가지고 편애하지 않고 공평하게 훈육할 필요가 있다. 일관성 있는 담임교사의 훈육 적용은 학생 모두가 담임에게 소중한 존재임을 느끼면서 실행할 때 효과가 크다. [PAGE BREAK]부적응 학생을 배려하는 지도 또한 필요하다. 담임 교사는 어떤 반을 맡는다 하더라도 학급 부적응 학생을 만나게 된다. 이 때 담임 교사가 부적응 학생을 골치 아픈 존재로 여기고 조금만 소홀히 한다면 학급 경영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부적응 학생들은 담임의 지도 여하에 따라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담임교사는 부적응 학생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주변학생이나 부모님과 꾸준히 대화해야 한다. 끝으로 학급 경영 목표를 제시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학급 경영의 목표는 학생들의 올바른 인성 함양과 학력 향상이다. 담임교사는 조·종례 시간에 학생지도에 열을 올리지만 언제나 부적응 학생들은 문제를 일으킨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중요 지도사항을 인식시키기 위해 칠판 왼편에 학급경영 목표를 적어놓고 실천하도록 하였다. 필자가 실천하는 학급경영 목표의 주요 내용은 지각·결석을 하지 않는 반, 신독(愼獨)하는 반, 올바른 인간성과 가치관을 지니려고 노력하는 반, 스승을 진실로 존경할 줄 아는 반, 실력이 있다고 자만하지 않는 반, 성적이 낮다고 포기하지 않는 반,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반, 봉사와 헌신을 다하는 반, 열심히 공부하는 반이다. 효율적인 학급경영은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간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두 주체의 변화는 교사가 주도적으로 실천해야 할 책무로 학생을 포용하고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포용하고 이끌어 나가야 하는 효율적인 학급 경영은 무한정의 사랑과 때로는 엄한 모습이 학생을 올바르게 변하게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교사는 엄친자모형의 학급경영 태도를 견지할 때 효율적인 학급 경영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황연옥 | 부천 상일초 교사 설렘 속에서 시작한 바쁜 새 학기 3월이 지나고 어느새 푸르름 가득한 5월을 맞이하게 되었다. 제 몸보다 더 큰 책가방을 메고 머리칼을 바람에 날리며 신바람 나게 뛰어가는 초등학교 신입생에서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에게 이르기까지 가슴에 소망의 무지개가 가득하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도 하고 청소년의 달이라 부르기도 한다. 겨우내 추위 속에서 꽃망울을 도톰히 키워 올린 꽃나무가 눈부신 꽃송이를 피워 올리고 훈풍에 밀려 멀리까지 풍겨오는 꽃향기를 맡으며 가족의 소중함과 미래를 가꾸어갈 청소년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들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모두가 거리로 나가고 싶어하는 이 계절에 들뜨기 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생각해 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사회생활을 해 나가며 필요한 것 중에서 우선 순위를 정하여 말하라고 하면 ‘질서’와 ‘책임’을 꼽고 싶다. ‘질서’와 ‘책임’은 자신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기반으로 하기에 더 소중해진다. 자연과 우주도 그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듯이 서로 더불어 살며 가치를 창출해 가는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타인을 인정해야 한다. 타인을 인정하는 중심에는 나보다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는 마음과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는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요즘 우리 사회를 어지럽게 하는 집단 이기주의는 자신의 이익만 먼저 생각하는 사소한 개인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5월은 산과 들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많은 계절이다. 공중도덕을 지키고 자신이 머물다 간 자리에 흔적을 남기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지켜야 할 일들을 생각하며 모든 일을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깊은 마음을 길러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더 밝아지게 될 것이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한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긍적적인 생각으로 즐겁게 일을 해나가다 보면 알찬 결실을 얻게 됨을 주위에서 종종 보게 된다.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여 마지못해 하는 일에는 좋은 결실이 있을 리 없다. 어떠한 일이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 하되 신바람 나는 활동이 되게 하는 것이 좋다. 교사들은 학습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교수-학습활동을 학생들의 수준에 맞춰 흥미 있게 재구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학생들도 즐겁게 학습활동에 임해야 하고, 학부모들은 지나친 과잉기대로 자녀들을 지레 피곤하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서로 신뢰하며 면밀한 계획과 준비 속에서 즐겁게 교육활동에 임할 때 좋은 결실을 맺는 기쁨을 얻게 될 것이 분명하다. 지난 3·1절에 필자가 사는 마을에서 흐뭇한 일이 있었다. 3·1절을 이삼일 앞두고 아파트 부녀회에서 관리실 방송망을 이용하여 태극기를 게양하도록 수 차례 홍보했다. 그 결과 90% 이상의 가구가 태극기를 게양하여 지난 3·1절날은 우리 아파트 단지가 태극기 휘날리는 마을이 되었다. 심지어 연휴라 지방에 내려가야 될 어느 가정에서는 가깝게 지내는 이웃집에게 부탁하여 태극기를 달아 달라고 하였다고 한다. [PAGE BREAK]작다고 보면 작은 일일 수도 있지만 얼마나 가슴 뿌듯했는지 모른다. 필자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하여도 학교에서 4대 국경일에는 꼭 기념식을 치르며 그 날에 얽힌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선생님께 들었었다. 심지어는 여름방학 동안에도 8·15 광복절 기념행사를 학교에 가서 하였다. 작은 활동이지만 이 같은 계기교육을 통하여 우리는 나보다도 남을 생각하고 개인보다는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소중한 마음들을 어릴 적부터 배우고 익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같은 교육 활동들이 6·25 전쟁 직후 폐허 속의 이 나라를 이렇게 성장시킨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흔히 부존자원이 빈약한 현실을 딛고 오늘날 이 만큼 살게 된 것이 교육의 덕택이라고 한다. 우리 후손들도 번영된 조국에 살면서 늘 교육의 덕택을 감사하게 느끼도록 해야 할 책무가 지금 우리에게 있다. 국가가 건강해야 사회도 건강하고 국민들도 건강하다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말씀이 지금까지도 귓가에 쟁쟁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새 학기, 새봄이 지나고 있다. 우리 모두 차분하게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친구와 이웃과 자신이 소속된 단체와 나라를 생각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학부모들은 지나친 과잉기대로 자신의 자녀들 능력보다 큰 가방을 준비하지 말아야 한다. 그 과잉기대가 자신과 자녀를 묶는 올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 놀며 건강한 몸과 건강한 마음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사들 또한 최선을 다해 연구하고 연찬 활동을 통하여 교원의 전문성을 키우며 책임의식을 갖고 즐겁게 교육활동에 임해야 할 것이다. 온 국민 모두 정직하고 부지런하며 자신보다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고 질서와 책임을 다하는 성숙한 국민성을 보일 때 이 나라의 장래는 봄볕보다 더 밝아지게 될 것이다.
양금석 |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사무총장 청소년폭력 사건이 방송과 신문지상에 연일 보도되고 있다. 이른바 ‘왕따 동영상’이 한 교장선생님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목포 모 중학교의 한 학생은 집단 폭행에 의한 뇌경색으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얼마 전 부천에서 검거된 성인폭력 조직에서 밝혀졌듯이 중·고교 음성 서클과 연계되어 회식비, 활동비 등을 제공하고 학교를 졸업하면 조직원으로 흡수되는 이른바 폭력 조직의 재생산 구조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파이터 클럽’이라 하여 온라인에서 회원을 모집하여 인적이 드문 공터 등에서 일대일 격투기를 통하여 싸움의 기술을 전수받는 등 청소년폭력의 양상이 갈수록 조직화·다양화·저연령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학교폭력을 이기지 못해 전학을 가더라도 이미 여러 가지 통신수단과 경로를 통하여 전학 간 학교에 알려지고, 그 곳에 가서도 집단 따돌림이나 왕따가 계속 이어진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초·중·고생 41%가 학교폭력에 대해 심각한 수준이라고 응답하였고, 폭력피해로 교사나 학부모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를 조사한 결과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응답이 39%로 가장 많았다. 오히려 보복을 당했다는 답변도 25%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폭력에 대한 교사나 학부모들의 폭력 불감증과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볼 수 있다.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그 동안 교육계·청소년계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에서 수많은 원인 분석과 대책이 있어 왔지만 일시적인 일과성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어느 한 개인이나 단체가 주장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폭력에 대한 불감증이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되어 있는 상황에서 다행스러운 것은 학교폭력 전문 청소년 단체와 시민단체가 여러 해 동안 주장을 해왔던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이 지난 해 12월에 제정된 일이다. 이 법의 주요 골자는 교육부내에 ‘학교폭력대책기획위원회’를 설치하고 각 시·도교육청에는 이와 관련한 전담부서를 설치토록 하였을 뿐 아니라 각급 학교에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설치·운영하도록 한 것이다. 각급 학교의 장은 학교폭력예방 상담실과 전문상담교사를 둘 뿐만 아니라 학교폭력문제를 담당하는 책임교사를 선임하도록 되어 있다. 현재 이 특별법과 관련하여 교육부에서 시행령을 제정 중에 있다. 이 특별법이 제대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시행령의 제정 과정에서 학부모·교사·학생·청소년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각 위원회에 청소년전문가가 필수적으로 참여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한다. 학교폭력의 문제가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된 이면의 원인을 살펴보면 학교와 교육계의 폐쇄성이 자리하고 있다. 학교폭력의 문제가 커다란 사건으로 비화되는 이유는 학교 내부의 문제로만 국한시켜서 처리하고 숨기기 급급하여 문제의 원인과 해결점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데 있어 왔다. [PAGE BREAK]따라서 이 특별법 시행령에는 각 위원회에 청소년관련 전문가 등 외부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겨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학교폭력 문제의 원인과 해결점을 찾고 개입하는데 있어서 보다 더 전문성과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고 문제를 올바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법과 제도가 만들어진다고 학교폭력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학교폭력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에 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첫째, 사회 전체적으로 학교폭력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도록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고 이미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학교폭력 문제를 단절하기 위한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청소년 안전망’을 구성하여 학교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학교·가정·경찰서·청소년 단체 등이 연계하여 문제 유발 가능지역에 대하여 순찰을 강화하고 문제 발생시 해당 전문가들이 즉시 개입할 수 있는 네트워크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학교폭력의 문제는 개개인의 인격과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따라서 학교의 정규 교과과정에 인권교육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와 인격적 존중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학생과 학부모·교사 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 채널이 확립되어야 한다. 교사와 학생 간의 단절, 교사와 학부모 간의 단절, 자녀와 부모 간의 단절 그리고 학생과 학생 간의 단절은 학교폭력 문제 해결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와의 의사소통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면 학교폭력 문제를 사전에 충분히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학교폭력 문제는 어느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인식하고 노력할 때 비로소 그 실효성을 거둘 수 있으며 이를 통하여 성숙한 사회로 거듭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구자억 |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2004년 1월 14일 중국대학평가과제팀은 2003년의 대학별 실적을 평가하여, 중국의 대학순위를 전체 순위, 계열별 순위, 학과별 순위 등으로 나누어 발표했다. 다음 내용은 중국대학평가과제팀의 武偉連 연구원 등이 중심이 되어 연구한 것을 「21세기 경제보도」라는 책자에 발표한 것이다. 1. 중국 대학의 전체 순위 중국 대학 전체 순위로 보면 청화대학이 232.56점을 받아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북경대학 196.35점으로 2위, 절강대학이 173.44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뒤로 4위 복단대학, 5위 화중과기대학, 6위 남경대학, 7위 무한대학, 8위 길림대학, 9위 상해교통대학, 10위 사천대학으로 나타났다. 사천대학은 금년 처음으로 10위 안에 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기할 만한 것은 연구 방면에서 청화대는 자연과학분야 1위, 북경대학은 사회과학 분야에서 1위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러나, 인재양성면에서는 학부의 경우 길림대학이 1위, 대학원의 경우는 청화대학이 1위로 나타났다. 한편, 중국대학평가과제팀은 15개의 중국 일류 대학을 평가하여 내어놓았다. 여기서 말하는 일류 대학이란 중국최고의 학술 수준을 가진 대학을 말하고 있다. 일류 대학에 들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조건 즉, 첫째, 공학의 경우 전체 대학 중에서 6등 이내, 이학, 의학, 관리학, 문학은 3등 이내, 농학, 경제학, 법학은 2등 이내, 역사학, 교육학 1등이어야 한다. 둘째, 연구형 대학이어야 할 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이런 조건을 고려해서 북경대학, 청화대학 등 15개 대학을 2004년 중국의 일류대학으로 선정하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와 같다. 2. 중국의 연구형 대학 순위 연구팀은 중국내의 전체 대학의 연구성과를 득점순으로 배열하여, 득점이 일정 수준(대개 60%이상)에 달한 학교를 연구형 대학으로 선정하고 있다. 2002년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일반대학 중 연구형 대학은 40개였으나, 2003년에는 37개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에는 36개 대학이 연구형 대학으로 나타나 지난해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가결과를 보면 청화대학, 북경대학, 절강대학, 복단대학, 화중과기대학, 상해교통대학 등이 자연과학영역에서 강점을 가진 연구형 대학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북경대학, 복단대학, 남경대학, 무한대학 등은 사회과학영역에서 강점을 지닌 연구형 대학으로 나타나고 있다.[PAGE BREAK]이러한 중국의 연구형 대학은 대체로 중국의 일류대학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3. 중국 대학의 계열별 순위 2004년 중국대학의 계열별 순위를 사회과학계열과 자연과학계열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에서 사회과학계열은 법학, 철학, 경제학, 역사학, 관리학, 교육학, 문학 등 7개 학과를 통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속에 120개의 전공영역이 포함되어 있다. 자연과학계열과 비교해서 사회과학계열은 교원수, 학생수가 적은 편이다. 평가결과에 따르면 사회과학계열의 대학순위는 북경대학 1위, 중국인민대학 2위, 복단대학 3위 등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자연과학계열은 이학, 공학, 농학, 의학 등 4개 학과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이 속에 146개의 전공영역이 포함되어 있다. 사회과학계열과 비교하여 교원수도 많고, 학생수도 많다. 중국에서 수여하는 자연과학 방면의 학사수는 전체 학사수의 67%를 차지하고 있으며, 박사수의 83%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과학계열의 대학순위는 청화대학 1위, 북경대학 2위, 절강대학 3위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4. 중국 대학의 학과별 순위 중국에서는 학과를 크게 사회과학계열의 법학, 철학, 경제학, 역사학, 관리학, 교육학, 문학, 자연과학계열의 이학, 공학, 농학, 의학의 11개로 구분하고 있다. 가. 사회과학계열 학과의 순위 법학은 법학, 마르크스주의 이론, 사회학, 정치학, 공안학 등 5개 학과에 12개 전공을 포함하고 있으며, 2004년 중국대학 중 법학 분야 우수학교는 1위 북경대학, 2위 중국인민대학, 3위 무한대학으로 나타났다. 경제학은 경제학 1개 학과에 4개 전공을 포함하고 있으며, 2004년 경제학 분야의 우수학교는 1위 중국인민대학, 2위 복단대학, 3위 상해재경대학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관리학은 관리과학과 공정, 공상관리, 공공관리, 농업경제관리, 도서관당안학 등 5개 학과에 18개 전공을 포함하고 있으며, 관리학 분야의 우수 학교는 1위 서안교통대학, 2위 절강대학, 3위 청화대학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철학은 철학 1개 학과에 3개 전공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분야의 우수학교는 1위 북경대학, 2위 중국인민대학, 3위 남경대학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문학은 중국언어문학, 외국언어문학, 신문전파학, 예술 등 4개학과에 66개 전공을 포함하고 있으며, 문학 분야의 우수학교는 1위 북경대학, 2위 복단대학, 3위 남경대학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역사학은 역사학 1개 학과에 5개 전공을 포함하고 있으며, 역사학 분야의 우수학교는 1위 남경대학, 2위 북경사범대학, 3위 북경대학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교육학은 교육학, 체육학 등 2개 학과에 9개 전공을 포함하고 있으며, 교육학 분야의 우수학교는 1위 북경사범대학, 2위 화동사범대학, 3위 화남사범대학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PAGE BREAK] 나. 자연과학계열의 학과순위 농학은 식물생산, 목초학, 삼림자원, 환경생태, 동물생산, 동물의학, 수산 등 7개 학과에 총 16개 전공을 포함하고 있으며, 농학 분야의 우수대학은 1위 중국농업대학, 2위 남경농업대학, 3위 서북농림과기대학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학은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과학, 천문학, 지질학, 지리과학, 지구물리학, 대기과학, 해양과학, 역학, 전자정보과학, 임료과학, 재료과학, 환경과학, 심리학, 통계학 등 16개 학과에 31개 전공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학 분야의 우수대학은 1위 북경대학, 2위 남경대학, 3위 중국과학기술대학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공학은 광산, 재료, 기계, 토건, 수리, 화공, 교통 등 21개 학과에 79개 전공을 포함하고 있으며, 공학 분야의 우수대학은 1위 청화대학, 2위 절강대학, 3위 상해교통대학 등으로 나타났다. 의학은 기초의학, 예방의학, 임상의학과 의학기술, 구강의학, 중의학, 법의학, 간호학, 약학 등 8개 학과에 16개 전공을 포함하고 있으며, 의학 분야의 우수대학은 1위 중국협화의과대학, 2위 북경대학, 3위 복단대학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5. 종합 중국은 다양한 방법으로 대학들을 평가하여 그 순위를 발표해 오고 있다. 여기에는 제시하지 않았지만, 대학구성원의 논문 게재수와 인용수의 학교별 순위, 중점학과 수의 대학별 순위, 다음 세기 우수인재계획 입선학교 순위, 대학 중점교원수 순위 등 다양하다. 최근 발표한 중국의 대학순위를 종합해 볼 때, 종합순위는 청화대학, 북경대학, 절강대학의 순으로 나타났지만, 학과별로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학과별 최우수대학은 법학, 철학, 문학, 이학의 경우 북경대학, 경제학은 중국인민대학, 관리학 서안교통대학, 역사학은 남경대학, 교육학 북경사범대학, 농학은 중국농업대학, 공학은 청화대학, 의학 중국협화의과대학 등으로 나타나 중국의 대학들이 특성화가 비교적 잘 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북경대학은 법학, 철학, 문학, 이학 등 4개 학과 영역에서 최우수를 차지해 중국 최고의 명문대학임을 짐작케 하고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전체 순위가 우수한 대학들이 대부분 중국의 15개 일류대학에 포함되고 있으며, 학과별 평가에서도 우수한 학과를 많이 배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종근 | 미국 유타주립대 교환교수·전 한국국·공립고등학교장회장 합리적인 문화는 국가발전의 동력 몇 년 전 일본의 한 지방대학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일본정부의 장학금으로 유학 온 한 인도 학생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1년간 일본 학생들과 같이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일본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다른 나라보다 부강한 선진국이 되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같이 공부하는 일본인 학생들은 우리보다 별로 우수한 것 같이도 보이지 않은데 말입니다. 교수님, 일본이 잘 사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나머지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설명하면서 어려운 답변을 대신하고 말았다. “일본사람 개개인을 후진국 사람들과 개별적으로 비교해 보면 반드시 특별히 우수하다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사람들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문화의식은 후진국 사람들의 것과 다르며 그 것이 일본을 다른 나라보다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후진국에서 유학 온 학생이 새로운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는 것은 몇 년 또는 10년 안에 이루어 낼 수 있을지 모르나 자기 국민의 문화의식을 바꾸는 것은 몇 세대 또는 세기가 소요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유학 온 우수한 후진국 학생들이 자기보다 크게 우수하지 못한 일본의 지방대학 학생들과 매일 같이 공부하면서 위와 같은 회의를 갖게 되었다는 것은 진지한 생각을 가진 학생이라면 당연히 느낄만한 일로 이해할 수 있다. 좀 더 깊게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도 있다. 어느 특정한 민족이나 국민이 다른 민족이나 국민보다 선천적으로 우수하고 부지런하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이상 모든 민족의 구성원은 적어도 태어났을 때만은 동일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현재와 같은 민족간·국가간의 발전 격차가 발생했을까를 되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 인간이란 주어진 어느 사회에 태어나면 그 사회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문화 속에서 자라나게 되며 그 문화에 동화되면서 그 구성원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상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민족과 국가의 발전을 결정적으로 좌우하게 되는 민족문화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것은 수천 년의 역사와 더불어 이어져 온 민족사의 결과물이자 기후나 지리적 자연여건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아온 우리의 생활양식과 의식구조, 그리고 관습과 제도 등을 비롯해서 그 사회가 이룩해 온 유형무형의 모든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PAGE BREAK]따라서 진취적이며 생산적인 제도를 갖추어 합리적으로 운영해 갈 수 있는 문화와 고도의 기술을 유지 발전시켜 온 경험을 쌓아온 사회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회에서 출생한 사람들에 비해 별다른 특별한 노력 없이도 기존의 문화를 흡수하여 계속 잘 살아가게 되어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라 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한 유학생이 위와 같은 의아심을 갖게 되었음은 그 젊은 학생의 통찰력이 가상할만함을 말해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정한 평가 돼야 공정한 경쟁 가능 최근 미국 경제학자들이 경제성장을 위한 다음 세 가지 요인 가운데 어느 요인이 가장 중요한 역할과 영향을 미쳐왔는가를 연구하여 발표한 바 있었다. 즉 첫번째 자연적인 요인으로는 기후, 자연자원의 유무, 국토가 바다에 면해 있는지의 여부와 같은 지리적 위치 등을 포함시켰으며, 둘째 요인으로는 국가의 효율적이며 적절한 경제정책의 시행 여부를, 셋째 요인으로서는 국민경제를 뒷받침하는 관행, 관례, 법령 등 각종 제도(institutions)가 합법적이며 공정하게 운영되고 있는지의 여부를 꼽았다. 여러 나라의 실례를 비교 분석해 본 결과 셋째 요인인 바람직한 제도의 운영이 경제성장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보도되었다. 제도화된 관행, 관례, 법령 등이 경제성장에 적절하며 그것이 법에 따라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은 다름 아닌 그 국가나 민족의 문화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특정한 개인의 지식이나 의식은 짧은 기간 안에 발전 내지 변화될 수도 있으나 전체 국민이나 민족의 문화의식은 한 세기 또는 수세기가 걸려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 발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가 국가간의 무한경쟁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이다. 그리고 경제성장을 비롯한 모든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수한 인적자원의 개발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우수한 인적자원의 육성은 당연히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교육의 효율성은 국제경쟁에서의 승패를 좌우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경제성장과 국제경쟁에서의 교육의 중요성은 우선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교육은 그 나라 기술수준 제고를 위해 결정적인 기여를 해야 한다. 그리고 둘째는 앞에서 언급한 경제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던 ‘바람직한 제도와 공정하고 효율적인 그 운영’을 뒷받침 해 주는 국민문화를 보급 발전시켜 나가도록 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시장경제체제의 장점과 활력은 공정한 자유경쟁에서 생긴다고 우리 모두가 믿고 있다. 그런데 공정한 경쟁이란 공정한 평가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공정한 평가란 평가를 하는 사람과 평가를 받는 사람과의 사이에 필요한 사회적이며 법적인 관계가 확립되어 있어야 하며 또한 그 평가 결과를 사회가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만 가능하다. 다시 바꾸어 말하면 공정하고 건전한 평가문화가 정착되어 있는 사회에서만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다는 결론이다.[PAGE BREAK]되풀이하면 바람직한 평가문화가 정착되어 있는 사회에서만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며, 공정하고 활발한 경쟁이 보장된 나라가 경제성장을 비롯한 모든 분야의 국제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따라서 국제경쟁에서의 우위는 물론 또한 나라발전의 중요한 요인인 효율적인 교육의 발전도 건전한 평가문화에 기반을 둔 활발한 자유경쟁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교육 분야에서의 공정하고 건전한 평가문화란 피교육자에게도 중요하나 더욱 중요한 것은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자, 교육행정가 그리고 교육을 직접 간접으로 관장하는 각급 교육기관에서 더욱 더 중요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수 년 전 미국 하와이대학에서 있었던 한 강연에서 인도인 원로교수는 미국문화를 인도문화와 대비해서 성공지향적(成功指向的)인 문화라고 규정하면서 양국 문화의 차이를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필자가 가 있는 미국대학 내의 영어교육원의 교사도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미국문화를 소개할 때 “미국의 학교교육은 어릴 때부터 서로 경쟁하면서 자라고 경쟁결과를 존중하도록 일관된 경쟁유도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전해들은 바 있다. 미국의 힘의 근원은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고 보장하되 경쟁결과는 공정한 평가를 통해서 사회가 존중해 준다는데 있다고 생각된다. 이는 다른 분야뿐만 아니라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평가와 경쟁과의 관계를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경쟁지향적인 문화와 공정한 평가문화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미국문화란 한 종합적이며 통일된 문화의 양면을 이루면서 서로 보완해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보아야 사실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평가를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조직체 내의 상하간의 관계가 엄격하고 또한 장유유서를 존중해 온 동양사회에서는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서는 물론 연장자와 연하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존대(尊待)말과 하대(下待)말을 구분해서 사용하는 관습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동양문화권의 사람들이 문화가 확연하게 다른 미국사람들의 언어관행과 행동거지를 보고 미국사회의 실체(實體)를 오해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는 것이다. 동양 사람들의 오해를 자아내기 쉬운 그들의 관행 가운데 우선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는 관습을 꼽을 수 있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바와 같이 미국사람들의 이름은 보통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있다. 첫째이름(first name) 가운데이름(middle name) 그리고 마지막이름(last name, 즉 성)으로 나눠져 있으며 처음의 두 부분이 우리의 이름에 해당하며 마지막 부분이 우리의 성에 해당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딱딱한 분위기가 아닌 사적인 모임 등에서 미국사람들은 친근감이나 친밀감을 표시하기 위해서 자기의 상사나 연장자를 첫째이름 그것도 애칭(愛稱)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즉, 로버-터(Robert, 남자이름)를 밥(Bob), 수-잔(Susan, Susannah, 여자이름)을 수-지(Suzy, Suzie)라고 부르면서 부드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곤 한다. 그리고 가정에서 내외간에도 서로가 이 애칭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PAGE BREAK]그리고 사적인 모임에서는 부하들이 앉는 자세에서부터 대화하는 태도에 이르기까지 상사와 연장자에 대한 그 행동거지가 동양 사람들에게는 불손하게 보일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와 같은 호칭의 사용이나 상사에 대한 태도 등은 아직 전통적인 우리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임에 틀림없다. 이상과 같은 표면상에 나타난 미국사람들의 생활문화를 처음 보게 되는 외국인은 미국이야말로 자유분방하고 상하관계란 제약이 전혀 없는 진정한 자유평등의 나라라고 착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조직체나 사회의 운영실태를 면밀히 관찰하면 ‘누가 방침을 결정하고 또 명령을 내리며, 누가 그 정한 방침에 따르고 명령을 준수해야 하는가는 분명한 것’이 미국사회이란 것을 알게 된다. 아니 이 같이 일을 위한 상하간의 역할분담과 구분 그리고 그 권능(權能)의 명확한 구분은 현재의 우리 사회보다 더 분명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미국제도나 문화를 모방하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도 잘못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겉보기와는 달리 미국 사회의 모든 조직체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엄격한 상하간의 역할분담과 함께 구성원간에 권능과 책임의 구분이 엄연히 존재한다. 이와 같이 구성되어 있는 조직체 안에서는 엄정한 평가와 이를 존중하는 평가문화가 정착되어 있어 이것이 바로 그들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사회에는 지도자가 있고 그에 따르는 일반대중이 있는 것처럼 모든 조직체는 의사를 결정하고 명령을 내리는 사람과 이에 따라 집행하는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와 같이 다른 권능을 기반으로 한 상하간의 인간(사회적인) 관계는 조직체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어떤 조직체가 생산적으로 발전하려면 구성원의 업적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이를 존중해주는 바람직한 평가문화가 정착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활발한 자유경쟁을 통해 발전의 활력을 지속해 가려면 건전한 평가문화가 자유경쟁을 뒷받침해 줄 수 있어야함은 물론이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일반적으로 인간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구분하여 평가해주지 않으면 경쟁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며 공정한 경쟁이 없으면 발전이 없다는 인간사회의 현실을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되풀이해서 강조하면 조직사회의 바람직한 상하관계, 공정한 평가문화의 정착, 공정한 자유경쟁의 보장, 생산성과 국제경쟁력의 제고 등이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경쟁력도 공정한 평가서 출발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볼 때 국제경쟁에서의 승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인 교육의 발전과 효율성도 바람직한 평가문화에 바탕을 둔 공정한 자유경쟁의 보장에 달려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학교교육의 평가문화가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해 봄으로써 우리 나라 교육의 깊은 문제점을 확인하는 것은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미국 유타 주의 인구 약 6만 정도의 작은 도시의 공립고교 졸업식을 참관하고 우리 나라 교육문제에 관해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PAGE BREAK]같은 시내에 있는 유타주립 대학의 실내체육관을 빌려 오후부터 진행된 졸업식은 축제처럼 진행되었다. 계단식 관람석에 앉자마자 무엇보다 첫눈에 특이하게 보인 것은 단상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한국에서처럼 학교장, 육성회회장단, 참석한 각급 기관장이 아니라 학생회 간부와 성적이 우수한 졸업생들이란 것이었다. 단상의 좌측 좌석은 학생들이 차지하고 단상의 우측 좌석에는 학교장 교육구청장과 그 간부가 앉아 있고 졸업식도 학생 주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배부된 졸업식 관련 유인물의 첫 페이지는 식순이며, 둘째 페이지에는 졸업반의 학생회 간부이름이 맨 위에 있고 그 다음에는 성적최우수자(top scholar), 그 아래에 졸업식에서 고별연설을 하는 졸업생 총대표(valedictorian)의 두 사람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다. 이어서 성적평균 4.0이상을 취득한 우등생(4.0 scholars) 8명의 성명이 잇달아 적혀져 있는데 모두 크고 진한 글씨로 인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페이지에는 개근상, 졸업생 명단, 다른 상의 수상자 이름의 순으로 실려 있었다. 학교장은 졸업장만 수여하고 한국처럼 회고사(回顧辭)는 하지 않고 그 대신 교육구청장이 축사를 했다. 그리고 식순의 마지막에 있었던 사은사(謝恩辭)는 학생회장과 개근상을 받았든 두 학생이 각각 담당하는 것을 보았다. 졸업식 안내장에 대서특필로 기재된 성적이 우수한 학생 세 명이 졸업식의 다른 행사를 사이사이에 두면서 각자가 연사(speaker)란 이름으로 영광스러운 연설을 하게 한다는 것은 이들이 더욱 돋보이도록 한 것으로 우리 졸업식과는 전혀 달랐었다. 신기한 생각이 들어 며칠 후 교육위원회를 통해 학생들의 연설원고를 전해 받아 보았더니 내용이 교훈적일 뿐만 아니라 졸업 후에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계속 열심히 노력하자는 다짐과 서로를 격려하는 좋은 내용이었다. 우리 나라 고교졸업식에서도 우등상이 있고, 최우수 학생은 전체 졸업생을 대표해서 학교장으로부터 졸업장을 받으러 연단 앞으로 나가기도 하고 사은사를 읽기도 한다. 그러나 졸업식의 처음부터 끝까지 단상에 자리를 하면서 연단에 서서 연설을 할 수 있는 영광에 비길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이 같이 성적이 가장 우수한 졸업생이 졸업식장에서 연설할 기회를 가지는 것은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유경쟁을 거쳐 우수한 성적을 얻은 학생들을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은 학교교육에서도 평가의 문화가 정착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최근에 와서 성적이 가장 우수한 졸업생을 가능하면 너무 크게 부각시키지 않으려는 우리 나라 고교의 분위기와는 사뭇 대조를 이루고 있었으며 이는 두 나라 사이의 평가문화의 차이에서 온 현상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이 고등학교는 입학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고 해당 지역의 모든 입학희망자를 성적에 관계없이 모두 받아들이는 일반 고등학교란 것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따라서 학생들의 성적 격차가 심할 것으로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일부 우수한 학생은 대학에 진학했을 때 이수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과목을 미리 고교 재학 중에 이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우리 나라 고교에서는 위화감을 조장시켜 교육적으로 나쁘다는 이유로 능력별 반편성은 물론 난이도가 다른 교과목을 능력과 적성에 따라 선택하는 제도를 채택하는 것까지도 어렵게 되어 있는 우리의 사정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타고난 재능과 각자의 노력이 자유경쟁을 통해 공정하게 평가받고 그 결과를 서로가 인정하고 존중하는 평가문화가 사회전반에 정착하지 않으면 능력에 맞고 적성에 맞는 교육을 한다는 말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PAGE BREAK]군(county) 교육구청에서는 매년 업적보고서(performance report)를 작성하여 공개하고 있었다. 관내 모든 초·중·고교의 각종 표준화된 시험성적의 연도별 대비, 주 전체의 평균과의 대비 등 학부모들이 자기 학교의 교육활동의 성과와 수준을 다른 학교 또는 지역과 대비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자료가 되어있다. 또 이 보고서에는 학교시설 및 교원 현황, 학생 현황, 교육과정, 성적, 재정실태와 지원업무(support services) 등이 상세히 실려 있다. 그리고 군 전체에서 선발된 군의 그해 우수교사(teacher of the year) 한 사람과 각 학교마다 선정된 1명씩의 우수교사 성명이 이 보고서에 포함되어 있기도 했다. 최근 보도된 바에 의하면 이웃 일본 동경의 어느 교육구청에서도 불원간 이 제도를 시행한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보고서가 학교간의 과열경쟁을 부추기게 된다고 반대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면담한 군 교육구청의 부구청장에게 업적보고서를 공개하면 학교간의 과열경쟁을 유발하게 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군민(郡民)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교육이니 만큼 당연히 군민에게 평가결과나 실태를 보고해야 되지 않으냐”고 반문하였다. 그리고 이 업적보고서는 이 교육구청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되어 있어 누구라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 교육의 활력소는 공정한 평가와 이를 철저히 공개하는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좋은 기회가 되었다. 공정한 평가와 철저한 공개는 필수 다음으로 평가문화와 관련하여 필자가 가있는 대학의 실태를 몇 가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 대학은 학생 수 약 2만 3000명의 주립대학으로서 졸업식에서는 고교의 경우처럼 각 단과대학별로 그해의 우수교수(professor of the year)가 발표되고 그 결과는 교무처 앞 복도에 액자에 넣은 사진과 함께 연도순으로 게시하고 있다. 그리고 수상자 본인의 연구실에도 같은 사진(상패)을 게시하고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평가결과를 모든 사람들이 존중하고 수상자 자신도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대부분의 우리 나라 대학은 이와 같은 교수 표창제도에 관한 의식 내지 문화가 미국 대학과 다르고 실제로 평가에 대한 냉소적인 분위기가 있어 그 실시가 불가능하다고 한 한국인 교환교수는 말했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도 대부분의 대학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과목의 강의는 학기말에 학생들의 평가를 받게 된다. 그런데 이 평가의 요약이 대학의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할 때 참고토록 교무처 앞에 비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학생과 교수 모두에게 평가문화가 얼마나 깊게 정착되어 있는가를 말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이 대학의 학과장은 소속 교수를 평가하며 또 소속교수는 자기 학과장을 평가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단과대학장도 5년마다 업무수행에 관한 종합평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더욱 놀랄만한 사실은 자기 대학의 평가결과도 철저히 공개한다는 것이다. 이 점을 발견하고 평가에 관한 의식이 우리와 너무 다르다는 것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입학희망자들이 가장 많이 참고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대학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유에스뉴스앤월드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지의 연례 전국대학 평가에서 이 대학이 3등급(삼류대학이란 판정)을 받았다고 명확하게 기록 공개하고 있다는 것이다.[PAGE BREAK]더욱이 같은 사이트에는 제휴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대학들 가운데는 2등급인 대학과 또는 4등급의 평가를 받은 대학의 이름도 게재하고 있는 것을 보고 평가문화가 우리와 판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 대학이 3등급에 속한다는 것을 인터넷에 공개하면 지원자가 줄어들지 않으냐”고 한 미국인교수에게 물어 보았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만약에 3등급에 속하는 대학이라는 사실을 숨기려 한다면 사람들은 이 대학을 더욱더 불신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이 점이 공정한 평가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않은 또는 미국과는 다른 형태의 평가문화를 가진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대학은 정착된 평가제도에 따른 평가결과를 존중할 뿐만 아니라 수요 공급에 따라 상품의 시장가격이 결정되는 것처럼 교수의 봉급도 전공 분야의 수요 공급에 따라 연봉이 달라지는 것을 감수하고 있다. 동일한 경력의 회계학 교수의 연봉이 사회학과 교수의 꼭 2배가 되는 것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학과 교수보다 봉급이 더 적은 영문과 교수와 회계학과 교수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공과대학 교수의 연봉 차이는 더 클 것이란 이야기를 듣고는 양국간의 문화의식의 차이라고 넘기기보다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대학에서도 공정한 평가와 자유경쟁 하의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가 교수들의 보수체계에서도 잘 반영되고 있다는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한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정서로서는 이런 현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할 것이나 미국사람들은 이를 잘 참고 실천해 가고 있는 것이다. 뉴스위크(Newsweek)지는 2003년 6월 2일자에서 ‘미국 내의 가장 우수한 100개의 고등학교’ 명단과 그 순위를 대서특필로 보도하면서 학교간의 경쟁과 높은 수준의 시험에 도전하는 고교생들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보도를 문제 삼는 사람들은 없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는 이 같은 평가는 생산적이며 긍정적인 경쟁을 촉진시킨다고 받아들이는 반면에 우리 나라에서는 우수한 학생 우수한 학교를 높이 치켜세우는 것을 마치 사회에 위화감을 조장시키는 반사회적인 행위로 보는 경향이 있다면 이는 나라 발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교육현장의 공정한 평가문화 절실 한국 유학생에 관한 추천서를 믿지 않는 미국대학이 늘어나고 있으며 그리고 한국학생의 토플(TOEFL)점수도 믿지 못해 전화 인터뷰를 요구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걱정하는 한 한국인 교수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일부 한국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작성해 오는 추천서에 교수가 서명만 해서 그 추천서를 바로 학생 본인에게 교부하게 되며 또한 추천의 대상인 본인이 자기가 희망하는 미국대학에 제출 내지 송부하도록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추천을 받는 사람이 자기 추천서의 내용을 작성한다는 것과 그것을 바로 본인에게 다시 교부한다는 것 모두가 미국의 관례에서는 비정상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소위 ‘족집게 토플 학원’의 훈련을 받아 취득한 고득점은 그 점수에 상응하는 영어구사능력이 없다고 미국대학 당국이 감지한 것 같다고 씁쓸한 이유를 말해 주었다.[PAGE BREAK]한 사회의 사람들이 자기가 속해 있는 장소(거주 지역 포함), 직업, 계급 등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난이도(難易度) 즉 사회이동성(social mobility)이 경직되지 않고 유연성을 유지하고 있어야 그 사회는 건전하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교육의 자유경쟁을 통해 상위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즉 계층간의 이동이 쉬워야 사회정의 구현의 기반이 선 사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학생이 속해 있는 가정의 사회경제적인 사정이 학생의 교육성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많이 논의되어 왔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개인의 적성과 능력을 무시한 획일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본말을 전도한 처사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자유 시장경제체제를 채택하는 이상 다소의 빈부격차는 있게 마련이며, 학교교육에서 공정한 평가를 통한 자유경쟁을 유도하지 않고 오히려 제도적으로 이를 억압 내지 획일화함으로써 빈부의 격차를 막으려 하거나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빈부의 차를 교육현장에서만은 가리려고 하는 것은 모순된 논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빈부격차의 문제는 사회경제적 정책의 문제인 동시에 정치적 결단의 문제이지 교육현장에서 이를 지나치게 문제 삼는 것은 모순된 사리일 뿐만 아니라 문제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음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아울러 우리 나라 학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과열현상과 사교육비의 과다지출 및 대학입시경쟁의 과열 등은 좀 더 깊이 생각하면 공정하고 올바른 평가문화가 정착되지 못한데 그 원인의 일부가 있으며 나아가서는 자유경쟁의 부재 내지 그 결과를 존중하지 않는데서 오는 부분도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본래 자기의 편안함, 이득, 권리 등은 곧잘 주장하되 남으로부터 평가받는 것은 싫어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조직체에는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과 이를 집행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공정한 평가가 없으면 자유경쟁이 불가능하며 자유경쟁이 없으면 열심히 일하지 않으려는 것이 우리 사회 구성원 대부분의 지배적인 경향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전 인류역사를 통해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는 이상경(理想境)을 갈구해 온 인간의 몸부림에서 보면 유감스러운 일일뿐만 아니라 서글픈 현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사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현실에 바탕을 둔 인간의 꿈을 이루어 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교육현장에서 공정한 평가문화가 정착하여 합리적인 자유경쟁이 이루어져야만 국가발전의 원동력인 교육이 발전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된다. 특히 다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나라 교육에서의 평가문화의 정착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며 공정한 평가에 바탕을 둔 자유경쟁을 존중하는 풍토가 정착해야 교육이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식 시장경제체제란 인류가 끊임없이 추구해온 자유와 평등이란 소중한 두 개의 가치를 구가하는 한편 다른 한편에서는 공정한 평가문화에 바탕을 둔 합리적이며 활발한 자유경쟁을 보장한다는 것이 그 체제의 요체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재삼 새겨야 한다. 달리 말하면 미국 체제의 강점은 엄정한 평가와 냉엄한 자유경쟁을 통해서 인류의 오랜 꿈인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려는데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 될는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 교육의 발전도 교육 그 자체뿐만 아니라 교육을 직접 간접으로 담당하는 사람과 기관 모두가 얼마만큼이나 공정한 평가문화를 정착시키며 또한 자유경쟁을 활성화해 가는가에 달려 있음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곽해선 | 경제교육연구소 소장 환율은 무엇이고 어떻게 움직이나 환율이란 서로 다른 나라의 기업, 정부, 개인이 거래를 위해 자국 돈(화폐, 통화)을 상대국 돈과 바꿀 때 적용하는 교환비율이다. 즉 ‘외환(외화·외국 통화·외국 화폐)의 교환비율(換率, foreign exchange rate)’이다. 미 달러를 프랑스 프랑과 바꾸는 비율도, 일본 엔화를 독일 마르크화와 바꾸는 비율도 환율이다. 그런데 국내 보도매체가 전하는 경제기사에서는 ‘환율’하면 아무 설명 없이 원화와 미 달러의 교환비율을 가리키는 뜻으로 쓸 때가 많다. 왜 그럴까? 첫째, 미 달러가 상품과 외환을 포함해 국제 거래의 중심이 되는 화폐 곧 ‘기축통화(基軸通貨, key currency=중심통화)’이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 나라에서 환율을 문제삼을 때는 원화와 미 달러의 교환비율을 가리키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세계에는 많은 나라가 있는 만큼 각국이 주로 쓰는 통화도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미국 달러가 중심화폐로 쓰이는 이유는 뭘까?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미 달러에 화폐로서의 안정된 값어치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만약 유럽이 미국을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압도한다면 유로(Euro)가, 중국이 미국을 압도한다면 위안이 기축통화 자리를 뺏을 수도 있을 것이다. 환율은 수시로 오르내린다. 어느 나라 돈의 환율이 변한다는 것은 그 나라 돈의 대외가치(대외시세)가 바뀐다는 얘기다. 우리 나라 돈 즉, 원화의 환율이 달러 당 1100원에서 1000원으로 변했다고 하자. 달러 한 단위당 원화의 교환비율은 1100원에서 1000원으로 수치가 낮아졌다. 그만큼 환율은 ‘내린’ 것이다. 이때 원화 가치는 달러 가치에 비해 어떻게 변했을까? [PAGE BREAK]전에는 미화 1달러를 손에 쥐려면 원화로 1100원을 내줘야 했다. 하지만 환율이 변해 이젠 1000원만 주면 된다. 외화 한 단위를 사는 데 치러야 하는 원화 액수가 100원 적어진 것이다. 그만큼 원화는 달러 한 단위에 대해 가치(값어치, 평가)가 오른 셈이다. 외화에 대한 원화의 환율이 내리면 외화 한 단위를 사는 데 치러야 하는 원화 액수는 적어진다. 그만큼 원화는 외화에 비해 가치가 오른다. 즉 환율이 달러 당 원화로 얼마인지 따질 때, 원화의 대외가치는 환율과는 반대로 움직인다. 환율이 내리면 그만큼 원화는 대외가치가 오른다. 반대로 환율이 오르면 그만큼 원화 가치는 떨어진다. 원화 가치가 오르는 경우를 두고 흔히 원화가 ‘평가절상’됐다(원화의 평가가 절상됐다)고 말한다. 원화 가치에 대한 평가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면 될 것을 절상(切上), 평가절상(平價切上)이라는 일본식 한자어를 써서 말하는 경우가 많다. 환율이 내리는 경우와는 반대로 환율이 오르면 통화의 대외가치는 떨어진다. 원화의 달러 대비 환율이 오르면 원화는 가치가 떨어지므로 ‘평가절하’ 되었다고 말한다. 환율은 어디서 어떻게 정해지나 환율은 외환이 거래되는 현장에서 주로 외환의 수요와 공급이 언제 얼마나 많이 이뤄지느냐를 따라 결정된다. 달러 수요가 다른 나라 돈에 비해 높을 때는 달러 가치가 오르고, 원화 수요가 외화에 비해 높을 때는 원화 가치가 높아진다. 외환이 매매되는 현장은 외환시장(foreign exchange market)이라고 부른다. 시장이라지만 남대문시장이나 청과물시장처럼 거래자들이 모이는 곳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외환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이면 어디든 외환시장이다. 은행의 외환거래 취급 창구, 환전상 창구, 은행간 외환거래 현장 등이 모두가 외환시장이다. 외화는 세계 도처에서 교환되므로 외환시장은 세계 각국에 있는 셈이다. 외환 거래가 특히 많은 곳은 국제교역의 중심지인 선진국 주요 도시다. 뉴욕, 런던, 도쿄 등이 주요 외환시장으로 꼽힌다. 외환(외화)의 시세, 곧 환율은 주로 주요 외환시장으로 꼽히는 이들 국제도시에서 외환거래가 이루어지면서 형성하는 시세를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경제 기사가 전하는 외환시세에는 이들 주요 시장에서 교환되는 주요 통화(달러, 엔, 파운드, 마르크 등)간 환율 정보가 빠지지 않는다. 환율이 각국 통화의 수급에 따라 자유로이 정해질 수 있는 것은 세계 각국이 그런 환율 결정 방식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즉,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는 자국 통화와 외환의 환율이 통화·외환 수급에 따라 자유로이 정해지게 하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런 방식의 환율결정제도를 ‘변동환율제도(floating exchange rate system)’라고 한다. 변동환율제는 지난 1973년이래 세계 각국에 대세가 됐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다. 다만 중국 등은 ‘고정환율제(fixed exchange rate system)’를 운영한다. 고정환율제란 자국 통화와 외화 간 환율을 ‘1달러에 얼마’ 식으로 고정시키는 제도다. 중국은 자국 통화인 ‘위안’의 환율을 미 달러 당 8.28 위안으로 고정해 두고 상하 0.3% 안에서만 외환 수급 사정에 따라 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PAGE BREAK]외환 시세도 나라 힘이 세야 오른다 외환시세·환율을 결정하는 기본 요인은 각국 통화에 대한 수요·공급이다. 수요가 높은 나라는 돈 가치가 높아진다. 외환 수요가 높은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다른 나라에서 필요로 하는 상품을 많이 갖고 있는 나라다. 국산 승용차가 인기를 끌어 해외 수입판매업자가 수입한다고 하자. 국내 수출업자는 외국 수입업자에게서 자동차 판매대금을 외화로 받아 은행에서 원화로 바꾼다. 때로는 외국 업자에게 아예 원화로 대금을 지불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외국 수입업자나 국내 수출업자가 외화를 원화로 바꾸면 그만큼 외환시장에서는 원화 수요가 많아진다. 원화 수요가 많아질수록 원화는 대외가치가 높아진다. 결국 어느 나라의 돈 가치란 그 나라의 국력만큼 높아진다. 국력은 경제, 군사, 정치, 사회문화 각 방면의 역량이 국가적으로 결집되어 나타난다. ‘자동차나 가전제품은 일제가 좋다’고 세계에 정평이 나면 그만큼 세계의 엔화 수요도 커지고 일본의 국력도 강해진다. 미 달러가 국제거래의 중심통화가 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미국의 국력이 강해서다. 환율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환율은 경제에 큰 영향을 준다. 우리 나라처럼 대외무역에 경제 성장의 큰 부분을 기대는 소규모 개방경제에는 특히 결정적이다. 최근 원화의 달러 대비 환율은 점진적으로 떨어지는 추세다. 지난 2월 6일 달러 당 1168원 하던 환율은 3월 18일 현재 1157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환율이 내리면 국내 수출기업들은 불리해지는 게 보통이다. 수출기업들이 지금 환율 하락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알아보자. 2월 6일 달러 당 환율이 1168원일 때 수출하던 국내기업은 3월 18일엔 수출대금 1달러어치를 환전하면 1157원을 얻는다. 그만큼 원화로 환산한 수입이 줄어, 채산성이 나빠진다. 수출품 판매가를 올려 이전과 같은 수준 이상으로 판매를 해야 전과 같은 수준의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출상품 판매가를 올리면 가격경쟁 때문에 수출 자체가 어려워진다. 수출상품 판매가를 올리면 해외 수입업자는 거래처를 다른 데로 돌리기 쉽다. 일단 거래가 끊어지면 나중에 거래를 재개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거래를 유지하기 위해 당분간 환율 인하로 손해가 나더라도 기존 판매가로 수출해야 한다. 그래서 환율 하락 초기에는 기업들이 한동안 울며 겨자먹기로 출혈 수출을 하곤 한다. 출혈 수출은 여건이 다시 나아지기를 기대하며 오늘의 악조건을 견디는 수출이다. 환율이 다시 오를 때까지는 최대한 생산비를 줄여 출혈 수출에 따른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 사업을 계속하는 데 필요한 자금은 빚을 내든지 남는 생산시설을 팔든지 해서 버텨야 한다. 만약 기업들이 환율 하락을 버티지 못하고 수출품 판매가를 올린다고 해보자. 경쟁이 치열한 해외시장에서 판매가를 올리고도 전과 같은 수준의 매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무래도 판매가 줄기 쉽다. 수출이 줄고, 그러면 수출기업은 생산을 줄여야 한다. 생산이 줄면 고용이 줄어 실업이 늘어난다. 그만큼 가계 소비가 위축되고 내수 판매와 생산 위축을 심화해 국내 경기를 나쁜 방향으로 몰고 간다. 환율 하락은 이런 경위로 경기를 가라앉힐 수 있다. [PAGE BREAK]지금 국내 수출 기업들은 모처럼의 세계 경기 회복세를 타고 수출을 늘리고 있다. 잘만 되면 수출 확대를 통해 침체할 대로 침체한 국내 경기를 회복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우리의 희망은 환율 하락이 진행되면서 먹구름을 만나는 형국이다. 내수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환율 하락이 빠르게 진행되면 수출마저 꺾여 경기가 더 침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정부 당국(재경부)은 환율이 너무 빨리 큰 폭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막는 방향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환율 하락, 저지할까 용인할까 최근 우리 정부의 환율 대응 정책 기조는 하락세를 저지한다는 것이지만 이 같은 정책 대응은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해 있다. 물가 안정을 위해 원화 환율 하락 추세를 용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환율과 수입물가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물가도 오르고, 환율이 내리면 수입물가도 내린다. 이렇게 환율의 등락이 수입물가를 올리고 내리는 현상을 환율의 수입물가 전가(pass-through) 현상이라고 부른다. 우리 경제는 원유·원자재의 수입 비중이 높다. 2003년 기준으로 전체 원유·원자재의 48.2%가 수입에 의존한다. 그만큼 환율의 수입물가 전가도도 높다. 환율 등락에 따라 기업들이 생산에 필요로 하는 원자재 값도 함께 오르내리고 그 결과 생산자물가도 따라서 오르내린다. 중국이 앞장서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는 지금 단기적으로 각종 생산물자 수급이 핍박되어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세다. 이런 움직임이 수입물가와 생산자물가의 상승률을 높여 국내 업계의 우려를 낳고 있다. 원자재 가격 폭등세와 맞물려 우리 경제의 물가 안정 기조가 흔들리는 게 사실이라면 정부 당국이 물가 안정을 위해 환율 하락을 유도하는 정책을 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런 정책은 경기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환율 하락을 막아야 한다는 또 다른 정책 요구와 모순된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해답의 실마리는 소비자물가지수 추이에 있다. 지금 생산자물가가 오름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물가는 안정세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 1월, 전년도 같은 달 대비 3.4% 증가해 계절적 요인을 제외하면 2003년 한 해 추이와 비슷하거나 느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물가가 오르지만 경제 전반에 걸쳐 물가 안정 기조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물가 안정 기조가 흔들리지 않은 상황에서 물가 상승 압력을 해소하기 위해 환율 하락을 용인하거나 유도하는 정책을 쓸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김영춘 | 한국교총 교권옹호국 Q 얼마 전 신규임용된 교사입니다. 임용전에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교대에 입학하여 졸업을 하였는데 현재 호봉에 반영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경우 동등 정도의 학교 인정에 의해 두 번째 대학에서 수학한 기간을 호봉에 반영하여 호봉 정정을 신청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A호봉의 변경에는 호봉 정정과 호봉 재획정이 있습니다. 차이점은 호봉 정정은 호봉 획정이나 승급의 잘못으로 인해 보수가 과소 지급된 전 기간에 걸쳐 소급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호봉 재획정은 누락 경력 등재, 자격 변동, 승급 제한기간의 산입 등의 사유로 인해 행해지며 과소 지급된 보수는 소급되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경우 초임호봉 획정과 관련하여 동등 정도의 학교 인정(8할)을 위해 인사기록카드에 관련 사실을 기재하고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합니다. 즉, 증빙서류 제출의무가 선생님에게 있었는데도 선생님께서 제출하지 않았었다면 호봉 정정이 아닌 누락 경력 등재로 인한 호봉 재획정이 될 것입니다. 이때 호봉 재획정이 이뤄지므로 과소 지급된 보수의 소급지급은 어렵다고 사료됩니다. 그러나 관할 교육청의 명백한 잘못으로 인해 선생님이 불이익을 당했다면 그 귀책사유가 관할 교육청에 있으므로 호봉 정정을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이때, 과소지급된 보수를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은 호봉정정 발령일로부터 향후 3년(민법163호, 급료의 단기소멸시효) 이내에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됩니다. 인사기록카드 등재와 관련 증빙자료 제출과 관련하여 선생님과 교육청의 주장이 엇갈리는 경우 교육공무원보통고충심사제도를 활용하실 수 있습니다. 교육공무원이 봉급, 수당 등 보수와 관련하여 고충이 있을 경우에는 교육공무원법 제49조에 의거 보통고충심사위원회에 고충심사 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신청방법은 별도의 절차가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겉봉에는 ‘고충심사의뢰용’이라고 쓰시고 수신인은 관할 교육청의 교육감으로 하시면 됩니다. 기재 사항으로는 주소, 성명, 생년월일, 소속기관명 및 직급, 청구의 취지 및 이유 등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심사결과에 불만이 있으시면, 중앙고충심사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때 수신인은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 되며, 보통고충심사위원회의 결정서를 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청구해야 합니다.
이명언 | 공주대 교수 추운 어둠의 계절 겨울은 가고 다시 새 봄이 도래했다. 허나 화사한 처녀의 여심(女心) 같다는 이 봄이 어쩐지 하늘에 낮게 드리운 구름처럼 을씨년스럽고 쌀쌀하기만 하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나 할까? 그리운 님이 찾아오는 반갑고 넘치는 기쁨 대신 어쩔 수 없는 사시(四時)의 순환이라는 사이클을 타고 그냥 우리에게 회색 빛 하늘처럼 다가온 느낌이다. 오늘도 우리들은 도처에서 싸우고 있다. 싸움이 우리의 삶인 양 서로 네 편, 내 편 갈라서 죽기 살기로 싸우고들 있다. 무슨 미움과 한이 마음속에 그리도 많을까? 조선조의 유생들처럼 ‘나는 희고 너는 검다’는 식의 이분법적 흑백논리로 서로 목청을 높여가며 싸우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 정말 우리를 슬프게 하는 모습들이다. 남의 말에는 귀를 막고 그저 나만 옳고 잘 낫다고 우기는 모습에서 무슨 가능성이 나올 수 있을까? 좋게 말하면 ‘독불장군’이요, 솔직하게 말하면 ‘우물안 개구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들 거개가 자신의 이해와 편익만을 위해서 재주껏 팽이처럼 돌아가면서도 우리는 왕왕 ‘남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산다’고 치장들을 한다. 그래서 결백성향 말의 유희가 바람처럼 시세를 탄다. 생각하고 책을 읽는 일이 거의 쓸모 없어진 사회, 나를 포함해서 모두가 찰라적 한탕주의와 같은 물신주의에 빠져서 허우적대면서 우리는 정녕 어디로 떠내려가고 있는 걸까? 그 지겹던 ‘보리 고개’가 우리들을 생존의 최저선에서 전율케 했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건만 이제 우리들은 그 처절했던 배고픔의 아픔을 거의 잊은 듯하다. 허나 둘러보면 아직도 우리들 주변에는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딱한 노인들이나 결식아동들이 적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반세기가 넘도록 ‘이팝과 고깃국’이라는 신기루에 홀린 듯 살아온 저 북한 주민들보다는 우리가 먹고사는 일은 월등히 잘 하고 있음은 확실하다. 그런데 물질적으로는 많이 좋아졌건만, 우리들의 정신적 가치나 모랄(moral)은 왜 나날이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을까? 슬픈 일이지만 인간이 어디까지 타락을 할 수 있을까를 시험하듯 우리는 ‘좁은 문’대신 저 나락의 ‘넓은 문’을 향해서 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민족이 생래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일본인들은 그래도 나름대로의 ‘사무라이’ 기질이 있다. 원래 백제의 전사를 뜻하는 ‘싸울아비’가 일본으로 넘어가서 ‘사무라이’라는 검객을 뜻하는 말이 되었건만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책임감은 그들의 무사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50배 이상 책을 읽고 메모를 생활화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PAGE BREAK]내가 미국 유학시, 여름에 머리가 하얀 남녀 노인네들이 대거 조지아주에서 플로리다 주립대로 비행기를 타고 여름학기에 등록하려고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때 나도 모르게 “노인네들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공부하러 왔느냐?”고 그들에게 물었을 때 그들은 나를 전혀 이해가 안 된다는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체질화된 한국식 사고 방식에 나도 모르게 그런 질문을 했던 것 같다. 평생교육이라고 일평생 책을 읽고 공부하는 미국인들, 천혜의 땅에서 마음껏 공부하고 늘 웃으면서 자기 일을 하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남을 도우려고 애쓰던 미국인들, 나는 홀로 미국 대륙을 짧은 방학동안 돌아다녔어도 외롭지 않았다. 달리는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 속에는 ‘성조기여 영원하라!’는 미국 국가가 사운드 트랙으로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평소 자유분방하게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다가도 위기가 닥치면 하나같이 일심(一心)으로 단합하는 그들의 ‘화이부동(和而不同;unity in diversity)’ 정신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허나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 국민은 어쩌면 개성과 자아가 강해서 잘 단합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기를 잘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오천년 역사 동안 근 1000회의 외침과 내우외환 속에서 시달려오고 주변 강대국에 둘러 쌓여서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아왔기에 우리의 국민적 에너지는 늘 밖으로 뻗어나가기보다는 내재화(內在化)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같은 국민끼리 서로 싸우고, 가슴속에 숙명처럼 한을 품고 ‘화병’이란 특이한 마음의 병을 앓고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개인적으로는 뛰어난 머리와 재능이 있음은, 더구나 한 번 시동이 걸리면 엄청난 저력을 보이는 뛰어난 국민임은 거의 공지(公知)의 사실이 아닌가 한다. 다만 어둡고 추운 겨울도 새 봄이 오면 봄눈처럼 물러가듯이 우리도 가슴속에서 미움과 부정과 한을 버리고, 긍정과 희망의 심상(心狀)으로 새 봄을 맞이해야 되지 않을까 한다. 있는 것이라곤 사람밖에 없는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그저 먹고, 마시고, 뛰지만 말고 성(誠)으로 일하고, 책을 읽고, 생각하는 국민이 되어보자. 가슴속에 시기와 미움이라는 어둠의 마음을 버리고 워즈워드나 버지니아 울프처럼 꿈과 희망이라는 빛을 가슴속에 안고 애써 살아가 보자. 그러다 보면 우리도 진정 잘 살게 되고 선진국으로 다가설 수 있지 않겠는가? 양수리 근처 운길산 꼭대기에 세조대왕이 왕명으로 세웠다는 수종사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두 한강물이 서로 한데 몸을 섞는 그 벅찬 감동의 풍광처럼 우리들도 이제 서로 돕고 화합하는 상생의 새 봄을 고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