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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윤종혁 |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일본은 지난 10년 이상의 불황 속에서 파생된 높은 실업률과 이직률, 정년 보장이 안 되는 직장 분위기 등이 경제의 큰 흐름으로 정착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청년 계층에 대한 불안정 고용이 확산되는 등 사회적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 일본 정부는 연 217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는 청년실업자 중심의 ‘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현상에 대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래서 정부 차원의 대책으로 교육·고용·산업정책을 연계하는 ‘청년자립·고용촉진·진로교육’ 등의 개혁을 추진하게 되었다. 2000년 교육개혁국민회의에서 강조하고, 그 이후 문부과학성 대신 자문 중앙교육심의회에서 계승한 일본 교육개혁의 핵심 목표로써 학생의 ‘생활개척능력’을 배양하는 과제가 부각되고 있다. 2006년 2월에도 문부과학성은 국제학업성취도 검사 등에서 일본 학생의 학력이 부진하다고 판단하면서 ‘여유 있는 교육’을 새로운 각도에서 연구·검토할 것을 각계 전문가에게 부탁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학생의 ‘언어 능력’ 함양과 ‘체험 중시 교육’이라는 두 가지 활동이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교육계 핵심 목표 ‘생활력’ 배양 이는 학교교육에서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임을 암시한다. 이미 고등교육 및 교육인적자원 개발 영역에서는 2003년 ‘청년자립·도전플랜’이라는 청년실업대책 및 인력 재배치 정책 등의 인적자원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또한 초·중·고등학교에서도 학생의 ‘체험 습득’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진로지도 및 직업훈련교육 등을 강조하고 있다. 2005년 5월 문부과학성은 새로운 진로지도 체계를 구축하는 것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학교교육에서 진로지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2006년 4월 이후의 새 학기부터 종합학습시간 등의 재량수업은 물론 각 교과교육 등에서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측면의 진로지도 강화대책을 시작할 것임을 밝힌 것이다. 원래 진로지도는 학생 스스로 자신의 인생관을 점검하고 장래에 대한 목적의식을 확고히 하여 자신의 의지와 책임으로 스스로 진로를 선택·결정하는 능력·태도를 몸에 익히도록 지도·원조하는 것이다. 일본의 중학교는 학교의 교육활동 전체를 통해 학생의 능력·적성, 흥미·관심 혹은 장래의 진로희망 등을 고려하여 진학하려는 고등학교 혹은 학과의 특색 등을 학생들이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 문부과학성은 이전에도 사설적성검사 등에 따른 진로지도를 자제하고, 학생 개개인의 특성·능력·적성 등을 고려한 본래의 진로지도로 환원할 수 있도록 조치한 바 있다. 현재도 중학교 교원을 대상으로 하는 연수회 등을 개최하고, 학생에 대한 진로지도용 지침서를 배부하는 등 국가 차원에서 진로지도를 강화하고 있다. 장기 불황의 결과물 니트족 문부과학성이 진로지도를 교육활동의 중점으로 내세운 것은 최근의 청년실업 대책과 무관하지 않다. 사실 지난 10년 이상의 불황 속에서 파생된 높은 실업률과 이직률, 정년 보장이 안 되는 직장 분위기 등이 일본 경제의 큰 흐름으로 정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청년들의 직업 능력도 축적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경쟁력·생산성이 저하되면서 청년 계층에 대한 불안정 고용이 확산되는 등 사회적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 일본 정부는 연 217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는 청년실업자를 중심으로 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현상에 대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래서 정부 차원의 새로운 대책으로서 교육·고용·산업정책을 연계하는 ‘청년자립·고용촉진·진로교육’ 등의 개혁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문부과학성도 ‘청년자립·도전플랜’에 기초하여 청년이 올바른 근로관·직업관을 가지고 명확한 목적의식 속에서 취업을 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학교 단계별로 체계적이고 충실한 진로교육·직업교육 등을 강조하게 되었다. 청소년의 자립지원을 위한 교육적인 과제로서 중학교 단계부터 진로지도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 즉, 모든 중학생들이 5일 이상의 직장 체험을 통해 진로교육을 실천하는 프로젝트인 ‘진로교육 주간’ 행사가 2005년 4월부터 본격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단계도 전문 직업인 육성을 목표로 하는 ‘슈퍼 전문고등학교’ 육성사업을 통해 특색 교육을 하는 특성화고등학교를 지원하고 있다. 이 학교는 주로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전문 직업인을 양성하는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향후 문부과학성은 전문고등학교 등을 집중 육성하는 방식으로 ‘일본식 교육 이원화체제’를 추진할 것을 구상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현재 고등학교 단계의 진로교육 차원에서 기업실습과 교육을 조합한 인재육성 시스템으로서의 새로운 학교모델사업을 하고 있다. 고등교육 단계에서도 대학의 우수한 진로교육 활동에 대한 지원을 통해 학생의 높은 직업의식과 직업능력을 배양하는 새로운 교육개혁을 실천하고 있다. 또한 전문고등학교 등을 통해 정착·활성화되고 있는 ‘교육 이원화체제’를 전문학교 및 단기대학까지 확충·연장하여 청년의 직업능력과 직업훈련을 향상시키는데 활용하고 있다. 평행교육 차원의 실업대책도 강구 한편 문부과학성은 평생교육 차원에서도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교육대책을 제안하고 있다. 이미 일본의 국가적 난제가 되고 있는 ‘NEET족’과 ‘(파트·아르)바이터족’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공민관, 비영리조직(NPO) 등과 연계·제휴한 직업훈련 및 재교육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NPO 등과 연계·제휴하는 ‘NEET족’에 대한 직업교육지원 사업은 주로 전수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다. 또한 공민관 등에서도 NPO와 지역사회의 관련모임 등이 협력하여 NEET족을 가진 보호자 등을 대상으로 한 지원 대책사업 등을 시범적으로 운영·실시하고 있다. 이 외에도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부차적인 과제로서 e-러닝 시스템을 활용한 인재육성지원을 시범사업으로 하고 있다. 앞으로도 문부과학성을 중심으로 해서 후생노동성, 경제산업성, 그리고 내각부 등 4개 중앙 부처는 지방 성청을 포함한 각종 NPO, 지역사회 모임 등과 연계하여 다각적인 방식으로 진로지도 확충 및 청년실업 해소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이를 반영하여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학교교육 내에서 진로교육을 강화하는 새로운 방안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진로교육 개혁안이 ‘직업훈련 인턴 십’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문부과학성은 고등학생의 직업교육을 강화하기 위하여 인턴 십 제도를 활성화하고 있다. 고등학생의 인턴 십 제도는 학생이 학습내용이나 장래 진로 등에 관련하여 취업 체험을 하는 것부터 자신의 직업적성이나 장래설계에 대해 설계할 좋은 기회로 할 수 있는 높은 교육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결국 문부과학성은 진로교육을 통해 학교교육과 직업생활을 접속하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는 역할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진로교육은 바람직한 직업관 및 근로관, 그리고 직업에 관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며, 학생 스스로 개성을 이해하고 주체적으로 진로를 선택하는 태도·능력을 기르는 교육이다. 그런 측면에서 진로교육은 학교와 사회, 그리고 학교 간에 원활하게 연계될 수 있는 조건을 우선 마련해야 성공할 수 있다. 앞으로도 일본은 소학교 단계부터 진로교육이 직접적으로 학생의 장래 생활을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교육활동이라는 것을 강조하게 될 것으로 본다. 이는 학교교육이 ‘교육과 노동’이라고 하는 이원화된 영역으로 본격 분화하게 됨을 예고하는 것이다.
신동호 | 코리아 뉴스와이어 편집장 권총 자살한 고흐 작품이 가장 비싸 정신분열증을 앓은 괴짜 수학 천재인 존 포브스 내쉬의 일생을 그린 영화 〈뷰티풀 마인드〉가 많은 영화 팬을 감동시켰다. 정신분열증을 앓았음에도 불구하고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내쉬의 일생은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것이었다. 낭만주의 시대 이후 천재를 정신질환자로 묘사하는 것은 문화적 유행이다. 〈뷰티풀 마인드〉도 어찌 보면 '천재 = 광기'라는 유행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는지도 모른다. 광기 어린 천재의 작품은 '천재적 예술혼'의 보증수표나 마찬가지였다. 창의성과 예술은 곧 광기가 표출된 것이라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광기의 화가'였던 반 고흐이다. 면도칼로 귀를 자르고 권총 자살한 반 고흐의 작품인 '해바라기'는 사상 최고가인 3992만 달러에 경매됐다. 전기 작가들은 아인슈타인의 아들, 제임스 조이스의 딸, 칼 융의 엄마가 정신분열증을 앓았고, 슈만, 포, 카프카, 비트겐슈타인, 뉴턴 심지어는 다윈과 패러데이도 비슷한 증세를 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천재의 정신질환은 신비화 전략 정말 천재와 정신질환은 관련이 있는 것일까?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갈톤은 천재와 정신병의 관련성을 연구한 최초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다윈처럼 훌륭한 과학자는 아니었다. 우생학의 창시자이기도 한 그는 1869년 예술, 문학, 과학 분야 천재의 가족과 친척에게 정신질환이 많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실제 주인공 내쉬의 삶은 영화 속의 내쉬와는 크게 달랐다. 그 뒤에도 한편에서는 관련이 있다, 다른 편에서는 관련이 없다는 논문이 한 세기가 넘게 쏟아져 나와 논란이 계속돼 왔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자폐증 환자였다는 주장도 나왔다. 과연 사실일까? 얼마 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심리학자인 샬로트 와델은 이 논란에 일침을 가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와델 교수는 20세기 들어 창의성과 정신분열증, 우울증의 관련성을 연구한 논문 29편을 분석해 '관련성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분석한 논문 중 '15편은 관련이 없다는 것이었고, 9편은 있다, 5편은 모른다'였다. 중요한 것은 논문의 숫자가 아니다. 대부분의 논문이 창의성과 정신질환을 모호하게 정의하고, 임의 추출법을 무시하고 연구 대상을 구미에 맡게 골랐다. 과학자들이 과학적 방법론을 무시한 것이다. 천재와 정신질환 관련성은 '과학적 증거'가 없는데도 책과 영화가 정신질환을 천재의 운명으로 묘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가, 전기 작가, 언론은 대중의 관심을 더 끌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경우가 많다. 작가들 가운데는 조울증 때문에 좀 더 많은 것을 깊게 느낄 수 있었고, 더 강도 높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더 깊은 사랑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에밀 졸라는 15명의 심리학자를 불러 자신에게 약간의 신경증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 몸부림쳤다. 이런 식으로 정신질환을 천재의 운명으로 신비화하면서 정신질환이 창의성을 고양시킨다는 헛된 망상이 유포됐다. 문제는 이런 풍토가 자리 잡으면서 대부분의 정상적 천재가 연출된 괴짜 천재에 밀려 푸대접을 받는다는 점이다. '마음의 암'에 대한 대책 마련 시급 그렇다면 진짜 정신질환자들은 누구일까? 미국에서는 거리를 헤매는 거지, 즉 '홈리스'의 3분의 2가 정신분열증 환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노숙자의 절반이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정신질환자와 알코올 중독자다. 정신분열증 환자의 10%는 자살로 인생을 마감한다. 정신분열증 환자의 인생은 이렇듯 '뷰티풀' 하지 않은 게 보통이다. 정신분열증은 정신질환 가운데 가장 무서운 질병이다. 그래서 '마음의 암'으로도 불린다. 정신분열증은 워낙 증상도 다양해 확실한 진단도 없는 실정이다. 증세가 심각하지만 어떤 정신병에도 속하지 않을 경우 의사들은 대개 정신분열증이라고 진단한다. 어느 나라나 보통 전체 인구의 1%가 정신분열증 환자다. 정신분열증은 대개 유전된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다른 사람과 현실 인식을 전혀 공유하지 못한 채 환상과 환청, 망상에 사로잡혀 산다. 영화에서 천재 수학자 내쉬는 약을 먹지 않고 정신분열증을 극복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 자연 회복되는 환자는 5명 중 1명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 〈레인맨〉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자폐증 환자의 역할을 인상 깊게 연기한 이후, 자폐증에 대한 관심도 부쩍 높아졌다. 톰 행크스가 열연한 〈포레스트 검프〉는 정신박약자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하지만 이들 영화는 주인공에게만 초점을 맞춰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가족이나 친척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우리는 흔히 정신분열증 환자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신분열증 환자는 대개 방에서 돌처럼 굳어서 소리 없이 몇 시간씩 웅크리고 사는 게 보통이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위험한 존재는 아니다. 자폐증 환자나 정신박약자도 더스틴 호프만과 톰 행크스의 연기에서처럼 착하기 그지없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거리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정신질환자가 보호 속에서 생활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고, 증세가 심한 환자에 대해서는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과 의사를 정부가 보장해야 한다. 이들이 노숙자와 거지가 되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직행열차를 타는 것과 다름없다.
박준용 | 한양대 강사, 문화평론가 평생의 인격 형성을 돕는 교육 명문 사립 성 베네딕트 학교에서 그리스와 로마를 중심으로 한 고대 문명사를 가르치고 있는 훈더트 선생(캐빈 클라인)은 교육이란 단순한 실용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아이들 평생의 인격을 형성하도록 돕는 중요한 일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첫 시간에 '슈트럭 나훈테'라는 어느 정복자의 이야기를 통해, 아무리 많은 땅을 차지했을지라도 그에게 기릴만한 성품에서 말미암는 '업적'이 없다면 그것은 다만 세월이 흐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야만적인 약탈행위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말해 세상에서 두각을 나타내려 하기 전에 먼저 바른 인간 됨됨이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의 가르침에 순종하지만 뒤늦게 수업에 합류하게 된 현직 상원의원의 아들 세드윅 벨은 특유의 반항적 기질로 사사건건 훈더트와 맞서려 한다. 헌신적인 교사와 문제아의 만남, 영화의 전반부는 교육소재 영화의 전형적인 양상으로 전개된다. 이를테면 벨의 반항적인 태도가 일에만 분주한 권위주의적인 아버지의 무관심으로 말미암는다는 설정이나 이런 벨을 훈더트가 특별한 관심과 애정으로 보살펴 자발적인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등의 설정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헌신적인 교사를 통해 문제 학생의 삶과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식의 다소 상투적인 교육 성공담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던 영화는, 최우수 학생 선발을 위한 퀴즈 대회와 관련된 뜻밖의 상황에 부딪히면서 전혀 다른 흐름으로 전개된다. 퀴즈대회를 통해 벨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싶었던 훈더트는 자신의 손 때 묻은 책을 빌려주는 것은 물론, 대출이 불가능한 자료를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심지어는 작은 차이로 경쟁에서 탈락할 뻔 했던 그를 위해 약간의 가산점을 부여한다. 결국 벨은 최종 경쟁에 오르고 다른 2명과 함께 치열한 퀴즈 대결을 벌인다. 퀴즈를 진행하며 훈더트는 자신의 관심과 사랑에 의해 최고의 자리에 까지 오게 된 벨의 모습에서 뿌듯한 마음을 느낀다. 제자에게 안겨준 치명적 위기 그러나 그 순간 어려운 퀴즈를 풀 때 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벨의 우연찮은 행동을 통해 그가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으로 퀴즈대회를 중단하려는 훈더트에게 교장 선생은 벨의 아버지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지원받아야 하므로 모른 척 계속 진행할 것을 명령한다. 하지만 그는 이에 아랑곳 않고 벨이 부정행위로는 결코 맞출 수 없는 문제를 출제해, 승리는 다른 학생의 몫으로 돌아간다. 퀴즈 대회가 끝난 후 훈더트는 혼란과 실망이 뒤섞인 마음으로 벨을 만나 묻는다. '대체 왜?' 그러자 벨은 도리어 반문한다. 자신의 부정행위를 알면서 왜 알리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당혹스러운 것은 오히려 훈더트 쪽이었다. 그는 겉으로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었노라 말하지만 벨은 자신의 아버지를 의식한 것이 아니냐고 빈정거릴 따름이다. 이후 벨은 다시 반항아의 태도로 돌아가 졸업 때까지 그러한 모습을 일관한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존경할만한 선생님의 가장 큰 덕목이 바로 언행일치라고. 진리와 옮음을 외치는 그의 말과 행함이 일치할 때 비로소 학생들은, 자녀들은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완벽히 이룬다는 것이 인간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훈더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역사를 통해 진정한 용기, 지식, 행동을 말하였지만 정작 벨을 야단쳐야 할 그 순간에는 교장과 그 자리에 참석해 있는 상원의원의 막강한 권력의 눈치를 살폈고, 결국 자리에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벨은 그런 훈더트를 보았다. 더욱이 그는 벨의 이러한 지적을 얼버무리며 회피하였던 것이다. 그에게는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는 부정행위를 알았던 바로 그 때 벨을 지적하고 그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가를 깨닫게 하는 동시에, 이로 인해 피해를 받은 학생들에게 정당한 권리를 되찾아 주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벨이 그의 침묵을 비난할 때 상황을 강변하기 보다는 솔직한 태도를 자신의 비겁함, 위선을 고백했어야 했다. 이미 지나가 버린 두 번의 기회는 벨에게 있어 치명적인 위기인 동시에 그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소중한 시발점이 될 수 있었다. 이렇듯 아이들은 보지 않는 것 같지만 분명히 보고 있다. 선생님의 가르침이 단지 '말'뿐인지 아니면 생생한 '삶'인지를 말이다. 그러기에 성경을 기록한 어느 필자는 사람들에게 섣불리 '선생' 되기를 즐겨하지 말라고 권한다. 그렇게 힘겨운 자리가 바로 선생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비인간적인 현실 속의 교육 벨과의 만남, 곧 실패한 교육을 통해 깊은 반성과 성찰의 과정을 가졌던 훈더트 선생은 올곧은 교사로 20여 년을 넘겨 학교에 봉직하며 이제는 교장의 자리에 임명될 날을 기다린다. 하지만 오직 학생들의 인격 성숙에 최고의 교육적 가치를 두었던 그는, 기능과 효용성 그리고 자본의 논리에 복종하는 길을 선택한 학교 이사회의 결정에 의해 교장 후보에서 탈락하고, 은퇴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평생을 교육에 헌신했던 훈더트가 직면한 비인간적인 현실은 우리에게 그다지 낯선 모습이 아니다. 이미 일선 교육현장에서 적지 않은 학부모들은 요구한다. 인격의 성숙보다는 좋은 대학, 좋은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력과 방법, 그것이 심지어 편법일지언정, 비결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다. 여기에 사회라고 예외는 아니다. 본래의 의도가 어떠하든 '교육인적자원부'라는 교육 담당관청의 이름이 말해 주는 것은 이제 교육은 균형 잡힌 인격을 성숙시키는 전인교육의 장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인적자원으로서 아이들을 보다 세상에 효용성 있는 존재가 되도록 만드는 과정이라는 인상이다. 결국 탈락된 훈더트의 자리에는 많은 대학의 총장들이 존경받는 교육자들 보다는 투자유치와 경영 마인드를 앞세운 전현직 CEO들로 교체되듯, 자본의 논리와 처세에 능한 후배 교사가 임명된다. 실의에 빠져 있던 훈더트에게 불현듯 벨의 초대장이 날아온다. 동문들이 모여 다시 한 번 추억을 되살려 퀴즈대회를 하자는 것이다. 과거를 회상하며 만감이 교차하던 훈더트는 이제는 장성하여 사회의 기둥 같은 존재들이 된 제자들과 뜻 깊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추억의 퀴즈대회를 진행하던 훈더트는 또다시 벨이 첨단기술을 동원해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발견하고는 정신이 아득해져 옴을 느낀다. 벨이 주최한 동문회는 실상 그가 상원위원에 출마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기획된 자리였으며, 여기서 주목을 받기 위해 퀴즈대회를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훈더트는 다시 한 번 뼈저린 후회를 느끼며 깊은 절망감에 빠진다. 실패한 교육을 통한 자아 발견 영화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한 사건으로서 교사 훈더트와 학생 벨의 관계는 〈엠퍼러스 클럽〉을 실패한 노(老)교사의 이야기로 보기에 충분한 빌미를 제공한다. 하지만 반전은 언제나 최후에 있는 법. 실의에 빠져 돌아간 그의 방 안에는 다른 모든 제자들이 모여 있었고, 그들은 훈더트에게 진심어린 환영과 깊은 감사의 마음을 돌판에 새겨 전달한다. 비록 그가 한순간의 오판으로 말미암아 벨을 잃어버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위해 포기한 적 없던 그의 진실한 사랑의 가르침은 훈더트 본인도 모르는 사이 더 많은 열매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영화는 말한다. 뜨거운 가슴을 지닌 교사도 한 아이의 영혼을 잃어버린 실패한 교육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동시에 포기하지 않고 그런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평생의 애씀과 수고함으로 씨앗을 뿌리는 교사만이 진정 풍성한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한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린 시절 6월은 붉은 달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담벼락 위엔 가시 돋친 빨간 장미들이 출렁였고, 교실에선 ‘멸공방첩’을 주제로 한 글쓰기 대회와 6·25 전쟁 관련 포스터며 표어 제작에 열을 올렸었습니다. 포스터에는 너나없이 전면에 빨간 도깨비 탈을 쓴 북한군의 모습을 그려 넣었었지요. 그때는 정말 북한 사람들의 얼굴엔 도깨비 뿔이 달려있는 줄로만 알았으니까요. 포스터의 영향이었는지, 6월 달력의 빨갛게 칠해진 6일은, 다른 공휴일보다 더 유난스레 빨갛게 보였었습니다. ‘청’ 군과 ‘백’ 군으로 나눠 싸우는 운동회가 봄, 가을로 빠짐없이 열렸음에도 그 시절 저는, 친구들 사이에서의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의미로 ‘빨간’ 색과 ‘파란’ 색을 주로 쓰곤 했었습니다. 나쁜 것은 무조건 ‘빨갱이’로 말하는 버릇도 생겼던 걸로 기억됩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 것은 공산당, 공산당은 나쁜 놈…. ‘빨갱이’란 말이 촌스럽게 느껴지던 80년대 말. 빨간색은 운동권을 상징하는 색이었습니다. 그 시절, 빨간색은 또다시 빨간색을 경계하는 층과 옹호하는 층으로 나누는 아픔의 색이었습니다. 87년 6월, 대학 교정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붉은 장미는 빨간색 머리띠를 두르고 ‘호헌철폐’를 외치는 함성에 의해 무수히 떨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2002년 6월, 광화문 네거리는 온통 붉은 물결로 출렁였습니다. 어릴 때 무섭게만 여겨졌던 도깨비 모양을 얼굴에 그려 넣고, 빨간색 티셔츠를 다 같이 맞춰 입은 ‘붉은 악마’들이 거리거리마다 넘쳐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월드컵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는 거대한 함성 “코리아 파이팅!”을 외쳤습니다. 너무나 강렬했던 빨간색의 물결. 세월이 흘러도 우리의 가슴에 용솟음칠 젊은 피, 한마음 한뜻이 되어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승리를 염원하던 함성의 색, 빨강. 이 강렬하고 순수한 색 속에 ‘흑백’ 논리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습니다. 깨끗한 피를 욕되게 하는 억압의 사슬도, 오해와 반목과 질시의 어두운 그늘도, 새로운 빨강의 물결에선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로지 이글거리는 여름 태양의 불꽃 같은 열정으로만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2006년 6월. 광화문과 시청 앞 거리는 또다시 열정의 붉은 물결이 넘쳐날 것입니다. 지난날 전쟁의 붉은 피로 물들었던 6월의 대한민국 산하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 평화와 화해를 염원하는 축제의 붉은빛을 밝히며 전 세계를 향해 그 빛을 강렬히 발산할 것입니다. ‘붉은 악마’ 아니 ‘붉은 천사'들이 외치는 “오!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의 함성은 세상을 다시 한 번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것입니다. 어두웠던 우리 6월의 역사를 새로이 쓰고 있는 ‘붉은 악마’. 그들이야말로 2002년에 이어 이번에도 월드컵 최고의 승리의 전사로 기억될 것입니다. | 한국교육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