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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한복영(한국교총 교직상담실) Q) 계약제교원이란 무엇입니까? A) 계약제교원은 현행법령상 기간제교원, 산학겸임교사, 명예교사, 시간강사 등을 총칭하는, 교원으로서 정년이 보장된 정규교원을 제외한 계약에 의하여 임용하는 비정규직 교원을 말합니다. Q) 기간제교원의 보수사항과 임용기간은 어떻게 됩니까? A) 기간제교원의 보수는 공무원보수규정 제8조의 규정에 의하여 산정된 호봉액을 예산의 범위 안에서 지급하되 고정급으로 지급합니다(공무원보수규정 「별표11」 비고 참고). 또한 공무원수당등에관한규정에 기간제교원에 대한 수당지급 제한 또는 금지규정이 없는 한, 예산의 범위 내에서 교육공무원에게 지급하는 제수당을 지급합니다(임시교원 보수지급에 관한 질의 : 법무 911-173 ’83.10.26). 기간제교원의 임용기간은 1년 이내로 하며, 필요한 경우 3년의 범위 안에서 이를 연장할 수 있습니다(교육공무원임용령 제13조제2항). Q) 기간제교원도 퇴직금을 받을 수 있습니까? 받을 수 있다면 그 근거와 내용을 알려주십시오. A) 기간제교원은 근로기준법 제34조에서 규정한 계속근무년수(근로계약을 체결하여 해지될 때까지의 기간)가 1년 이상인 경우 퇴직금을 지급 받습니다. 이 때, 퇴직금 산정방법은 평균임금 30일분×계속근로년수=퇴직금이 됩니다. Q) 기간제교원의 복무에 관한 사항을 알려주십시오. A) 기본적으로 정규교원과 같이 근무하되, 구체적인 복무조건은 국가공무원규정 중 일반적 복무기준을 참고하여 임용시 계약사항으로 정합니다. 기간제교원의 복무에 관한 사항은 시·도교육청마다 조금씩 다르나, 대개 3개월 이상의 기간제교원에는 공가, 7일 이내의 일반병가, 국가공무원복무규정 제20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특별휴가(출산휴가 및 보건휴가는 제외)는 가능하나 연가는 인정하지 않습니다(3개월 미만의 기간제교사의 경우는 1개월 이상의 강사복무에 준함). Q) 정규교원으로 임용되었을 때 임용전 기간제교원으로 근무한 경력은 인정됩니까? A) 교육공무원법상의 기간제교원은 국가공무원의 경우, 국가공무원법(’63.12.16 공포 법률 제1512호) 제2조제3항제3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계약제공무원과 동일한 성격의 지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공무원법 제2조제3항제3호에 의거하여 경력인정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임용전 사립학교에서 기간제교원으로 근무한 경력은 관할청에 교원으로 보고하여 등록된 경력에 한해서 10할 인정이 가능하며, 무자격교사 또는 교원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은 교원에게는 교육문화단체에서 근무한 경력으로 보아 5할의 율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Q) 시간강사는 어떤 경우 임용됩니까? A) 시간강사는 초·중등교육법 제22조에 의거하여 다음과 같은 경우 임용할 수 있습니다. ① 1개월 미만의 정규교원 결원발생 등으로 기간제교원의 임용이 불가한 경우(교원자격증 소지자) ② 정원부족으로 불가피하게 일시적으로 강사를 채용하여 교육과정을 운영하여야 하는 경우(교원자격증 소지자) ③ 특수한 교과목의 경우 교원 양성자원이 없어 정규교원으로 충원할 수 없을 때(교원자격증 유무 불문) Q) 시간강사의 보수와 경력인정 사항을 알려주십시오. A) 시간강사의 보수는 시간당 급료를 지급하거나 월정액으로 계약내용에 따라 지급되며 시간당 급료는 시·도마다 매년 교육청의 교육비특별회계세출예산편성지침에 의거하여 학교소재지나 시간강사의 자격사항에 따라 차등 지급되므로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정규교원으로 임용되기 전, 시간강사로 근무한 경력은 경력인정이 되지 않습니다. 이는 경력인정의 전제가 유급·상근임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시간강사 외에 별도의 직업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삼웅(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한민족의 형성 시기인 고조선 시대 당시 중국의 강국 한나라와 전쟁을 치른 위만조선을 시작으로 고구려와 수·당과의 전쟁, 백제와 당나라와의 전쟁, 고려와 여진·몽골과의 전쟁, 조선과 일본·청국·러시아와의 전쟁, 대한제국과 미국·프랑스·영국·일본과의 전쟁, 일제 식민지 시대 때의 일본·독일에 대한 전쟁 선포, 해방 후 중국·소련과의 전쟁 등 그야말로 세계 최강국들과 거의 빠지지 않고 전쟁을 치렀다. 위만조선은 한나라와 1년이 넘는 전쟁으로 결국 패전하여 한사군이 설치되고 수나라와 당나라가 백제·고구려를 80여 년 동안이나 침략하였으며, 고려 시대에도 북방민족의 끊임없는 침략을 겪었다. 조선 시대에는 병자·정묘호란과 임진·정유왜란의 피맺힌 전쟁을 치렀다. 조선조는 대마도 정벌에 나서기도 하고 고려조 이래 끊이지 않는 왜구의 침략을 격퇴했다. 고려 시대는 456년의 왕조 기간에 417회의 전란을 겪었고 조선왕조 519년 동안에는 360회의 난리를 치렀다. 이 수치는 대외 전쟁과 외우내환이 포함된다. 평균 1년마다 한 차례씩 환난을 겪은 셈이다. 지정학상 위치 때문인지, 통치자들의 외교 역량의 부족 탓인지, 주변 세력의 정세가 바뀔 때마다 전쟁을 겪고, 역외(域外) 강대국들의 무고한 침략을 받아야 했다. 민족형성기 이전부터 시작된 외세의 침략은 민족 내부의 통합과 국력신장·문화창달에 어려움으로 나타나고, 거듭된 외우내환은 민족성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세계사적으로 한민족처럼 세계 강대국들과 어떤 형태의 전쟁이었던 전쟁경험을 가진 나라는 그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외적과 전쟁을 하지 않은 기간이 그나마 평화의 시대였는가 하면 그렇지도 못하였다. 신라의 반도통일 이후는 당나라의 영향력, 고려와 몽골 전쟁 뒤에는 몽골의 부마국, 한말 이후의 일제 식민지, 6·25전쟁 이래 지금까지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쟁 아니면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 상태에서도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고 민족문화와 민족언어를 유지해 온 것 또한 세계사적으로 거의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주변의 여진·거란·몽골 등이 대부분 한족(漢族)에 동화되거나 민족자체가 소멸된 것과 비교할 때 역시 독특한 현상이다. 수 천년 동안 지속돼 온 외국과의 전쟁은, 그것도 패배로 끝나기 일쑤인 전쟁의 결과는 정신적으로 국민에게 외세지향과 사대의식을 심어주는 계기를 만들고, 대결의 상대를 내부에서 찾게 되는 분열주의를 파생시켰다. 극심한 붕당정치와 전쟁·지역갈등·집단이기주의 등은 이러한 결과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는 물론 일본 관학자들과 한국 어용사가들이 한국사의 식민사관을 강조하면서 상투적으로 제기해 온 이론이다. 식민사관론자들은 정신적 사대주의와 지리적 반도성을 꼽았다. 이들의 주장과는 상관없이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지리적 조건과 역사변천 과정은 민족성과 국민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민족성과 국민정신은 지리와 역사의 산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에 어떠한 역경에서도 이를 극복해 나가는 민족적인 저항정신과 도전의식, 그리고 투철한 민족혼은 단일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게 하고 사회적 역동성을 불러일으켰다. 이와 같은 인식에서 우리 민족이 고대 이래 외국과 치룬 크고작은 전쟁의 사력(史歷)을 살펴보기로 하자. 편의상 ‘전쟁’ 이란 용어를 쓰고 있지만 어떤 경우는 일방적으로 침략을 당한 경우도 있고, 혹은 제3국의 침략전쟁에 동맹 또는 동원된 사례도 없지 않았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PAGE BREAK]위만조선과 한나라 전쟁 위만조선은 BC 108년 중국 한나라 무제의 침략을 받고 1년여 동안 끈질기게 저항하였다. 한나라 무제는 대외 팽창정책에 적극적이었는데, 위만조선에 대한 침략도 그러한 정책의 일환이었다. 무제는 BC 109년 누선장군 양복과 좌장군 순체에게 군사를 주어 육지와 바다를 통해 고조선을 공격케 했다. 위만조선의 우거왕은 1년여 동안 끈질기게 저항했지만 자신의 아들까지 포함된 중신들의 한나라 투항으로 왕검성이 함락되고 멸망하기에 이르렀다. 한은 위만조선 지역에 낙랑군을, 옛 임둔 지역에 임둔을, 옛 진번의 땅에 진번을 각각 설치하고, 이듬해 고구려 영토 예맥에 현도군을 설치했다. 그 후 BC 82년에 진번, 임둔 양군을 각기 반씩 폐기하고 나머지 반은 낙랑과 현도에 통합했다. 얼마 후 현도군마저도 토착인들의 저항으로 서북쪽으로 쫓겨 소자하 상류지역에 위치하게 되었다. 낙랑군만은 옛 진번군의 7현을 합친 대낙랑군을 형성하게 되었다. 고구려의 끈질긴 공격으로 낙랑군은 313년(고구려 미천왕 14) 설치된 지 약 420년 만에 고구려 영토에 편입되었다. 낙랑군의 위치는 학자마다 다른데, 지금의 평안남도 일대와 황해도 지역의 일부로 인식하고, 북한 학자들은 요하 부근이었다고 주장한다. 민족형성기에 고대국가 중심지에 한족이 420년이나 똬리를 틀게 된 것이다. 고구려와 수나라 전쟁 6세기말 남북조 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 양제는 598년, 612년 두 차례에 걸쳐 대대적으로 고구려를 침략했다. 이에 앞서 589년 중국을 통일한 수 문제는 고구려를 침략할 계획을 세운다. 이를 간파한 고구려는 598년 요서 지역을 선제 공격했다. 수나라는 이를 구실 삼아 30만의 대병력으로 고구려를 침략했으나 고구려 군민의 강력한 저항으로 요하를 건너지 못했으며, 바다를 통해 침략해 들어온 수군도 폭풍을 만나 상륙하지 못한 채 퇴각했다. 그 후 수 양재는 612년 100만 군사와 병참 지원병 200만 명 등 도합 300여만 명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공격해 왔다. 을지문덕을 총지휘관으로 하는 고구려군은 수나라 군대를 맞아 요동성 싸움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 더 진격할 수 없게 된 수나라는 별동군 30만으로 평양성을 직접 공격케 했으나 살수에서 섬멸되어 살아 돌아간 자가 2800여 명에 불과했다. 패배 뒤에 613년과 614년에도 계속 공격했으나 고구려는 이를 격퇴하여 수나라는 618년에 멸망하였다. 고구려와 당나라 전쟁 618년에 수나라를 멸망시킨 당 나라는 건국 초기에는 고구려에 대한 침략이 가능하지 않아 두 나라는 소강상태를 유지했다. 당 태종은 그동안 국가체제를 정비하면서 고구려 원정준비를 서둘러 645년 직접 2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했다. 당군은 한 달 여의 전투 끝에 요동성을 함락시키고 안시성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고려는 안시성에서 양만춘 장군을 중심으로 당군의 치열한 공격을 격퇴시켰다. 두 달 동안의 끈질긴 공격으로도 안시성을 함락시킬 수 없었던 당은 고구려 정벌을 포기하고 퇴각했다. 당나라는 그 뒤로도 고구려 침략의 뜻을 굽히지 않고 수 차례에 걸쳐 공격해 왔다. 태종이 죽고 고종이 즉위한 후 다시 소정방·설인귀 등을 주장(主將)으로 삼아 몇 차례 고구려를 공격했으나 그 때마다 고구려는 군·민이 한덩어리가 되어 침략군을 격퇴했다. 그 후 당나라는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킨 다음 고구려를 다시 공격했다.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죽은 다음 세 아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국론이 분열하면서 668년 9월 평양성이 함락되고 마침내 멸망했다. [PAGE BREAK] 백제와 당나라 전쟁 660년 나당 연합군은 18만 대군으로 백제를 침공했다. 소정방이 이끈 당군 13만여 명은 해로를 통해, 김유신이 이끈 5만 신라군은 육로를 통해 백제를 공격했다. 백제군은 황산벌에서 계백이 거느린 5천 결사대가 최후 저항을 시도했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여 사비성이 함락되고 이 해 7월 18일 의자왕이 투항함으로써 왕을 비롯한 왕자, 대신, 일반 백성 등 수많은 사람이 당나라로 끌려가고 700년 백제왕조는 멸망했다. 백제의 멸망 후 부흥군이 일본의 구원병과 합세하여 백강에서 나당 연합군과 치열하게 싸웠다. 백제 유장 흑치상지는 임존성을 근거지로 삼아 3만여 군대를 모집하여 나당군을 공격, 200여 성을 수복하는 전과를 올렸다. 왕족 복신과 승려 도참은 주류성에 잔존한 백제군을 수습하여 나당군에 맞섰다. 한때 사비성을 포위하여 점령군인 당군을 고립시키고 탈환 직전까지 갔으나 신라군의 내습으로 끝내 성을 탈환하지 못한 채 백제 부흥운동은 좌절되었다. 신라와 당나라 전쟁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다음 당은 본심을 드러내어 신라까지 병합하려 했다. 이에 대해 신라는 필사적인 대당 항쟁을 전개하게 된다. 신라의 대당 항쟁은 670년부터 676년까지 계속되었는데 675년 매소성 전투에서 당군을 크게 무찔렀다. 신라는 이때 크고 작은 전투에서 22회를 승리로 이끌어 대당 항쟁을 승리로 마무리했다. 신라가 고구려의 부흥군을 지원하여 당을 공격하고 백제의 옛 지역을 장악하자 당은 설인귀의 군대를 파견하여 신라와 싸우게 했다. 신라는 설인귀의 군대를 격파했으며, 당의 이근행이 이끄는 20만 대군이 매소성에 내려와 주둔하자 매소성을 공격하여 당군을 크게 격파, 말 3만 필을 노획할 만큼 대승을 이루었다. 이 전투를 계기로 나당전쟁은 신라의 우세로 전개되었다. 매소성은 경기도 양주 근방으로 추정된다. 발해와 당·거란 전쟁 발해는 제2대 무왕 때 당이 흑수말갈(黑水靺鞨) 족을 이용하여 침략하자 726년에 흑수말갈을 공격했다. 흑수말갈은 말갈족의 하나로 다른 부족이 모두 발해와 합류했거나 포섭되었지만 상당한 힘을 유지하면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였다. 당은 흑수말갈을 이용하여 배후에서 발해를 공격하게 하고 어부지리를 얻고자 획책했다. 726년 흑수말갈이 당의 보호를 요청하여 흑수주로 편입되면서 발해에 적대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발해 무왕은 당을 칠 것을 결심하고 먼저 당과 동맹을 맺은 흑수말갈을 쳐서 완전히 굴복시켰다. 732년에는 고려 장문휴가 당의 산동반도 덩조우를 공격했다. 이에 당은 이듬해 발해를 공격하기 위해 군사를 보냈으나 실패하고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원정을 보냈으나 모두 실패했다. 발해 무왕때 덩저우를 공격한 것을 계기로 당이 발해를 침공했을 때 신라는 당의 요청에 따라 발해를 공격했으나 기상관계로 실패하고 말았다. 발해는 926년 거란의 야율아보기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기에 이른다. [PAGE BREAK] 고려와 여진 전쟁 만주 동부 지역에 살던 퉁구스 계통의 여진족은 그 명칭이 숙신·읍루·물길·말갈·만주족 등으로 바뀌었다. 12세기 초부터 세력이 커지면서 고려의 영역을 자주 침범해 왔다. 이에 고려는 1104년(숙종9) 윤관이 섬멸전에 나섰으나 패배하고 1107년 다시 윤관을 대원수, 오연총을 부원수로 임명하고 17만 대군을 동원해 여진족 정벌에 나섰다. 그 결과 135개 촌락을 평정하고, 1108년에는 이 지역 안에 9개의 성을 쌓고 남쪽지방 군사와 백성을 이주시켰다. 그 뒤 9성에 대한 여진족의 침습이 심해지자 윤관은 다시 여진 정벌에 나섰다. 그러나 여진이 9성의 환부를 애걸하고 9성 방어에 어려움이 많다고 판단하여 9성을 돌려주었다. 그러나 여진은 1117년 금(金)을 세워 고려에 형제 관계를 요구해 왔다. 1125년에는 요를 멸망시킨 뒤 송을 공격하여 중국의 화서 지방을 지배하고 고려에는 사대의 예를 강요했다. 고려와 몽골 전쟁 13세기 초 몽골 고원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몽골족은 테무진이 부족을 통일하면서 세력을 크게 확장했다. 1206년(고려 희종2) 테무진은 황제로 추대되어 대몽골국을 세웠다. 이후 정복전쟁을 추진하여 서하·금·서요 등을 정복하고 계속해서 서쪽으로 진출하여 중앙 아시아는 물론 서아시아, 남러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몽골국은 1231년(고종18)부터 1258년까지 6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입하고 80여 년 동안 고려의 정치에 간섭하면서 사실상 고려를 예속화했다. 1231년 몽골군의 제1차 침입 때는 고려군이 구주성에서 적군을 크게 격퇴하고 1253년 몽골의 제5차 침입 때는 충주성 전투에서 승전하는 등 고려는 국가총력 체제로서 대몽항전을 벌였다. 특히 충주에서는 관군이 성을 버리고 도주할 때 노군(奴軍)과 잡류(雜類)가 협력하여 침략군을 물리쳤다. 또 고려가 몽골에 항복한 것을 반대하여 삼별초가 전라·경상 일대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진도에 이어 제주도로 본거지를 옮겨서 3년 동안이나 여몽연합군과 맞서 싸웠다. 삼별초의 항쟁은 고려를 지배하려는 몽골과 종속적 위치를 감수하면서도 자신들의 특권적 지위를 보호하려던 국왕 및 그 일파에 반대하여 일어난 민중들의 항쟁이었다. 삼별초가 여몽 연합군의 맹렬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오래 동안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반몽적·반정부적인 민중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후 몽골(元)은 고려에 정동행성(征東行省)을 시작으로 쌍성총관부, 동녕부 등 통치 기관을 설치하고 이를 통해 고려를 지배했다. 원나라의 국운이 쇠약해진 1370년(공민왕19) 동녕부를 요동으로 옮기고 자신들이 차지했던 지역을 고려에 돌려주었다. 공민왕은 동녕부가 요동으로 옮겨진 이후에도 북진정책의 일환으로 대규모 동녕부 정벌을 추진했다. 고려와 명나라 전쟁 철령(鐵嶺) 지역은 원래 고려 영토였다. 14세기 중엽 한 때 반역자들의 투항으로 원나라의 지배에 들어간 적도 있었지만 고려에 수복되었다. 그런데 새로 일어난 명나라는 철령 이북땅을 명나라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이곳을 요동에 귀속시키려고 책동했다. 이에 고려는 국방력을 강화하는 한편 문전·고원·영흥·정평·함흥 등과 공험진까지 고려 영토임을 밝히고 원나라에 철령위 설치를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도 명나라가 1388년 요동에서 철령까지 70참(站)을 두는 철령위 설치를 통보하자, 고려는 철령위 설치의 중계 지점인 요동을 정벌하기로 했다. 고려는 1369년(공민왕 18)부터 명나라와 외교관계를 맺어왔는데, 우왕 때의 친원 정책 이후 명나라는 무리한 세공(歲貢)을 요구하고 고려 사신의 입국을 거절하는 등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1388년에는 철령 이북의 고려 영토를 원나라 영토였다는 이유로 반환하라고 요구하자 명나라 정벌을 도모하기에 이르렀다. 요동은 남만주 요하의 동쪽 지방으로 1360~1370년대 초에 고려는 이 지역의 원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이곳에 살고 있던 고려인들에게까지 통치영역을 넓히고자 세 차례나 출정해 큰 전과를 거두었다. 원나라 멸망 이후 명나라는 이곳에 요동 도지휘사사를 두어 만주 경략을 꾀하면서 고려와 여러 가지 충돌을 일으켰다. 이에 고려는 요동 지방을 공격해 명의 압력을 배제하고자 ‘요동정벌’에 나섰으나 이성계 일파의 회군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한국교총 실업고활성화추진특별위원회는 9일 제2차 회의를 열어 실고생 계속교육 기회 확대 등 핵심정책 10대 과제를 선정했다. 이날 특위 위원들은 정부 관련 부처와 각 정당, 국회 교육위원회, 시·도 자치단체장 후보들을 상대로 정책 실현을 위한 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실업고 활성화 10대 핵심정책 과제는 다음과 같다. △교육행정기관의 실업교육 전담 부서 운영 및 기능 강화=정부 부처간, 교육행정기관의 실업교육 추진 주관 부서 단일화와 정책의 연계성을 강화한다. △실험·실습 기자재 확충=시설·설비를 현대화한다. `공동실습소' 확대 설립·운영 등을 통해 예산투자의 효율성을 도모한다. △산학협력 체제 강화=산학협력체에 대한 예산·세제 등의 혜택을 부여한다. 학생들의 현장실습을 국가차원에서 관리·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직업교육 주체간의 역할 분담 및 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인프라를 구축한다. △실고생 자격증 취득제도의 개선=무시험 검증을 통한 국가기술자격(기능사)을 부여한다. 학교 교육과정과 해당 교과의 성적과 연계해 운영한다. 산업계 수요에 부응하는 직업교육훈련과 자격제도의 연계를 강화한다. △실고생의 대학입학 동일계 특별전형 비율 확대=실업고 학생의 대학입학 동일계 특별전형 비율 3% 허용에 관한 후속조치(입학 허용 대학에 대해 행·재정적 지원 강화 등)를 이행하고, 점진적으로 대학입학 정원의 입학률을 확대한다. △실업계 고교 학생들의 학비 감면률 및 장학금 수혜율 확대=학비 감면률을 확대 2005년까지 공·사립 전학생 대비 50% 전액 면제한다. 실고생 장학금 수혜율을 연차적으로 확대한다. △교원의 신분보장 및 강화=학급당 학생수를 감축, 학급을 증설한다. 부전공 및 복수전공자격 연수를 확대한다(교육대학원 등 활용). 과원교원을 실업고 전담교사(산학협력전담교사, 진로상당교사 등)로 별도 채용·관리한다. △교원의 전문성 신장=전공교과에 대한 직무연수의 확대와 연수비를 지원한다. 가칭 `실업계 교원 전문 직무연수원'을 설치·운영한다. 교원의 자율연수파견제 시행시 대상 인원의 일정 비율을 실업계 전문교과 교사로 배정토록 적극 장려한다. 재직 중 전공분야 자격증 취득시 수당 등 혜택을 부여한다. △교원의 사기 진작=실과교원 수당 인상 및 지급 대상 범위를 확대한다. 임용 전 교원 자격 동일 직종의 산업체 근무 경력을 호봉상 100% 인정한다. 학급당 교사 비율을 상향 조정한다. △실업계고 계속교육 기회 확대 보장 및 특성화 계속 추진=실업고 수업연한 탄력적 운영으로 계속교육 기회를 확대 보장한다. 시·도교육청 소속 가정 실업계 고등학교 설립 확대를 추진한다. 특수목적고, 특성화고, 일반실업고, 전문실업고 등으로 학교의 특성화를 계속 추진하고 학교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전국교육대학교교수협의회(회장·김용환 청주교대 교수)가 17일 교육부의 교대에 대한 학칙개정 요구는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교대교수협의 헌법 소원 제기는 같은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던 전국국·공립대학교교수협의회(의장·고홍석 전북대 교수)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교대교수협에 의하면 교육부는 2000년 1월 12일부터 지금까지 네차례에 걸쳐서 `교수회를 의결기구로 규정하는 것은 대학총장의 의사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위법'이라며 `학칙을 시정할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또 "이러한 요구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행정·재정상의 불이익을 가할 것"임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교대교수협은 교육부의 학칙시정요구와 고등교육법 제6조 1항(학교의 장은 법령의 범위 안에서 학칙을 제정 또는 개정할 수 있다)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 보장에 상응한 권리로서의 교수회의 성격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수들은 대학의 학칙은 대학의 자치법규로서 그 제정 및 개폐는 어디까지나 대학의 자율내지 대학의 자치영역에 속한다며, 학문 자유의 주된 향유자이자 대학의 주된 구성원의 지위에 있는 청구인들이 대학 학칙의 제·개정 과정에 주체적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법리라고 말한다. 한편 전국국·공립대학교교수협의회도 지난 4월 19일 임시총회에서 '교수회의 의결기구화를 올해의 주요 사업으로 채택한 바 있어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주목된다
서울시교원단체연합회(회장·최재선 포이초 교장)는 22일 오후 3시 서울 배화학원 강당에서 서울교육자대회를 개최하고 정부의 '교원 지방직화 기도 철회'와 '실업고 교원의 신분보장을 촉구'하는 등 10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다음은 결의문 요지. ▲실추된 교권을 회복하고 교원사기 진작을 위해 교원정년을 65세로 즉각 환원하라 ▲시·도교육청의 부교육감 일반직 독점 임용을 즉각 철회하고, 각급 교육행정기관의 전문직 교원임용 보임을 대폭 확대하라 ▲초등교육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파행적인 초등교원 수급정책을 즉각 철회하라 ▲교단교사가 우대 받을 수 있도록 수석교사제를 즉각 도입하라 ▲교육재정 GNP 6%를 조속히 확보하여 교원법정 정원을 확보하고 교육여건을 개선하라 ▲교원 처우 개선을 위하여 담임업무수당과 보직교사 수당을 인상하고, 초과수업수당과 대학생 자녀 학비보조수당 등을 신설·지급하라 ▲교육현장의 갈등과 분열을 심화시키고 있는 교원단체 복수화 등 교원분활 통치 의도를 즉각 철회하고, 교원노조 관련법을 개정하라 ▲실업계 고등학교 교원의 신분보장과 학생 학비감면을 확대하는 등 정부가 발표한 실업교육 육성방안을 즉각 이행하라 ▲교원의 질 확보를 어렵게 하는 무분별한 교직개방 계획을 즉각 철회하라 결의문 채택에 앞서 이군현 교총회장은 교권 확립, 교육 정책 선도, 교원 처우 향상, 회세 확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회사를 통해 최재선 회장은 "학교 현장은 상위 노동단체와의 연대 투쟁과 편향된 시각의 극단적인 노조활동으로 편가르기가 심화되고 있다"며 "복수교원단체 정책을 철회하고 교원노조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교직사회를 안정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조영 국공립고등학교장회장은 "교원 정년 환원을 통해 교원 사기를 앙양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또 박희정 서울중등교사회장은 "선거에 있어서의 교원단체의 역할"을 강조했고, 남암순 서울초등교장협의회장은 "교원신분의 지방직화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승규 서울초등교사회장은 "교육전문직 임용을 대폭 확대하라"고 요구했다.
인터넷을 통해 학생 개인의 내신성적을 산출해 가장 유리한 전형방식을 자동으로 판별해주는 지능형 내신산출프로그램이 개발됐다. 비엘소프트(www.blsoft.co.kr)가 제공하는 이 프로그램은 일반PC용과 인터넷용으로 나뉘며 인터넷 내신산출서비스(nlsin.co.kr)의 경우 저렴한 비용(1인당 1000원)으로 현재 2만 여명의 학생이 가입해 사용중이다. 서비스는 전형방식(학년별 반영비율, 석차백분율, 평어 환산점수, 이수단위 적용, 동점자 처리 방식, 반영과목 자동선택)을 모두 반영해 전형방식과 계산결과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자료입력도 교무업무 지원(C/S)과 학생부(SA)시스템과의 호환작업으로 학생들의 성적을 수작업을 거치지 않고 한꺼번에 간단하게 입력할 수 있으며 대학별 최저학력기준 등을 반영한 지원자격까지 판정해 보여준다. 인터넷서비스는 교사와 학생, 학부형이 모두 사용할 수 있으며 교사는 학급의 모든 학생에 대해 내신산출을 할 수 있고 학생과 학부형은 개인에 한해서 정보가 제공된다. 진학 지도 교사의 과중한 업무와 시간을 경감시켜 주고 학생과 학부형에게 질 높은 진학정보서비스를 제공해 줄 것으로 보인다. 문의=(02)499-0021 (042)471-4902∼3
2011년도에는 대학졸업 연령대인 20대 초반 인구 10명 가운데 8명이 전문대졸 이상의 학력을 갖는 고학력 사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성균관대 김현철 교수에게 의뢰해 작성한 `중·장기 교육시장 전망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4년제대 졸업자는 25만3777명으로 2001년 졸업자 23만9702명에 비해 5.9% 증가할 전망이다. 또 전문대학 졸업자는 2001년 23만2972명에 비해 9.5% 증가한 25만5161명이 될 것으로 예측됐다. 이에 따라 2011년에는 대학졸업 나이가 되는 고등교육 대상연령 인구(3월 기준으로 생후 21년 이상 22년 미만) 61만4202명의 82.8%인 50만9000명이 전문대나 4년제 대학을 졸업할 것으로 보인다. 계열별로는 4년제 대학의 경우 공학계열이 2001년 6만1785명에서 2011년 7만5966명으로 23.0%(1만4181명)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또 교육계열(사범대와 교육대)은 지난해 1만3502명에서 2011년에는 1만6130명으로 19.5%(2628명) 증가하고, 예체능계열도 2만576명에서 2만5천3백22명으로 23.1%(4746명)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사회계열(법대, 경상대 포함) 졸업자는 6만421명에서 5만6161명으로 7.1%(4260명) 감소하고, 자연계열과 의약계열도 각각 3.9%, 18.7%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로 인해 4년제 대학 전공단위별 비중은 공학계열이 2001년 26%에서 2011년에는 31%로 증가하고 예체능계열도 9%에서 10%로 증가하는 반면 사회계열은 25%에서 22%, 자연계열은 15%에서 14%, 인문계열은 15%에서 14%로 각각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 보고서는 인적자원의 공급규모에 대한 중·장기 예측을 통해 향후 국가의 인력수급 정책을 세우기 위한 기초 자료로 작성됐다. 보고서는 또 "대학정원 증가에 비해 수험생 수는 감소하고 있고, 도시화의 진행으로 상당수 지방대학들은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될 것"이라며 "지방 국립대를 비롯한 대학들의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학교사랑실천연대(위원장 이선정)는 불안한 교육정책으로 인해 교원과 학생, 그리고 학부모간에 생길 수 있는 불신을 해결하기 위해 학교사랑고충처리센터를 운영키로 했다. 학교사랑고충처리센터는 학생과 교원 그리고 학부모간의 고충에 대한 개선 촉구 및 건의 활동을 통해 학습권과 교권을 보호하기 이한 목적을 개설됐다. 고충처리센터는 학실련 사무처에 마련되며 이메일과 전화 또는 서면으로 사례접수후 개선 건의 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학실련은 상황에 따라서는 직접 해당 학교, 교육청, 시·도 지방단체를 방문해 협조 요청 및 건의 활동을 전개할 방침이다. 이선정 위원장은 "훌륭한 스승과 자랑스런 제자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참다운 공교육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센터를 운영하게 됐다"며 "학교가 사랑과 믿음을 통한 배움터가 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접수방법=전화 (02)3461-0435/우편 서울시 서초구 우면동 142 학교사랑실천연대 담당자 앞/이메일 srs1@srs.or.kr
문화방송이 교사들의 촌지 수수로 학부모들이 부담을 겪고 있다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방영한 것과 관련 교총의 항의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문화방송은 15일 `아주 특별한 아침' 프로그램을 통해 "중학교는 기본이 50만원" "교사가 촌지를 찾기 위해 케이크를 후벼파서 뒤졌다" 는 등의 내용을 방영 교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에 대해 한국교총은 17일 사무총장과 교권옹호국장이 문화방송을 방문, 항의 서한을 전달하고 공개사과와 함께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했다. 교총은 항의서한을 통해 "학부모와의 인터뷰를 통해 객관성이 결여된 일부의 주장을 여과 없이 방영된 것은 이 나라 교원을 마치 촌지나 선물을 바라는 집단인 것처럼 왜곡시킬 수 있ek"고 지적하고 "일부 진행자들이 나름대로 중립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할지라도 결과적으로는 교원들에게 크나큰 마음의 상처를 안겨주었다"고 지적했다. 또 "선생님들의 가르침에 감사를 드려야 할 스승의 날에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준 귀사의 제작 프로그램에 대해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한다"며 "교원들의 사기를 꺾는 이와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여 줄 것"을 요구했다. 문화방송은 항의 서한에 대한 답신을 통해 "본의 아니게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위해 헌신하시는 대다수의 선생님들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향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문화방송은 또 20일 아침 생방송을 통해 "제작진의 의도와는 다르게 선생님들께 심려를 끼쳐드렸다면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기초 자치단체인 경기도 하남시가 관내 초·중·고교에 매년 15억원 내외의 재정지원을 해주고 있어 화제다. 하남시는 99년부터 매년 15억원의 예산을 관내 초·중·고교에 지원해 원어민 영어교사 배치, 정보산업고 조정선수단 창단, 학교 공원화 사업 지원, 학교 운동장 개방을 위한 야간 조명시설비 지원, 학교급식비 50% 지원사업 등을 해오고 있다. 하남시가 관내 일선학교에 이같이 재정지원을 직접 할 수 있게 된 것은 99년 `시·군 및 자치구 교육경비 보조규정'이 개정됐기 때문. 기초 자치단체가 관내 학교에 재정지원을 하고자할 때, 시·도지사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사항이 폐지되었기에 가능해졌다. 그러나 재정자립도가 48%선에 불과하고 일부 시의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하남시가 이같이 교육지원을 할 수 있는 것은 자치단체장의 의지와 결단 때문이었다는 평가다. 99년 하남시 부시장에 취임한 박수동 부시장은 주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안이 교육문제란 점에 착안, 이 같은 지원방안을 마련해 3년간 계속 이를 추진해 오고 있다. 하남시가 가장 역점적으로 시행하는 사업은 원어민 영어교사 지원. `중학생이 가장 영어를 잘하는 시'가 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관내 4개 중학(남한중, 동부여중, 신장중, 하남여중)과 1개 초등(창우초)교에 영어권 원어민 교사 한 명씩을 배치하고 이에 소요되는 경비 일체를 시가 부담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해당학교 교장들을 중심으로 `원어민 영어교사 관리위원회'를 구성, 임용에서부터 수업담당 등의 업무를 맡는 한편, 시는 예산지원 등 역할을 분담, 시행해오고 있다. 원어민 영어교사를 지원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지역주민들의 기대요구를 충족한다는 것이었다. 하남시는 경기 도내에서 교육환경이 열악한 편이어서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서울이나 분당 등 인근지역으로 이사를 가거나 위장전입에 의한 전학이 다반사로 이뤄져왔다. 경기도교육청이나 교육위원회는 이같은 문제를 인정하거나 하남시만 특별하게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자 시와 시의회가 팔을 걷고 나서게 됐다는 것. 현재 5개교에 배치된 교사들은 캐나다, 미국 등의 국적을 가진 원어민들로 소정의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다. 이들 원어민 교사들은 200만원의 월급여를 받는 것 외에 아파트 무상 제공, 항공료 지원, 연금이나 의료보험, 아파트관리비 등을 별도로 제공받고 있다. 이에 소요되는 예산 전액을 하남시가 부담하는 것은 물론이다.
최근 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가 개최한 강연회에서 前 교육부장관 5명이 초등학교 한자교육 실시를 다시 촉구했다. 이와 관련 중·고교에서의 한자교육이 더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서울대 학생 중 `國際'와 `學問'을 한자로 쓸 수 있는 학생이 98학번 이상은 16.6%, 01과 02학번은 11.3%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요즘 대학생들은 한자에 대해 문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말은 70% 이상이 한자어이다. 특히 학술 용어는 한자 의존도가 높다. 대학교육에 있어 한글이 우리 글이라고 한글만을 사용할 수는 없다. 반드시 우리말을 이해하는 도구인 한자가 필요하다. 하루 빨리 중·고교의 한문과목을 선택에서 필수로 바꾸고 수능시험을 출제할 때도 한자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초등학교보다는 중·고교의 한자교육 강화가 더욱 절실하다는 게 내 의견이다. 한자를 모르고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것은 영어를 모르고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18일 오후 5시 리틀엔젤스 예술회관. 무대의 연주자들이 한곡 한곡 연주를 시작하고 끝마칠 때마다 객석을 가득 메운 1200명의 학생들이 내지르는 함성과 갈채가 거의 광적이다. 이유는 바로 무대의 연주자들이 자신의 스승들이기 때문. 서울교사관악합주단은 `가정과 청소년의 달'인 5월을 맞아 이번 정기공연을 제자들을 위한 음악회로 정했다. 뉴그린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및 상임지휘자로 활동한 바 있는 대경정보고의 안승희 교사가 지휘하고 인기 MC 이숙영 씨가 사회를 맡은 연주회에서는 스포츠 중계 시그널 음악으로 널리 알려진 행진곡 `French National Defile March'를 시작으로 소프라노 유미숙 씨의 `나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와 `사랑', 테너 최원범 씨의 `청산은 나를 보고', `금강산 찬가' `Rockin the House' 등 친숙한 곡들이 두 시간을 꽉 채웠다. 교실에서만 접하던 선생님들이 자신들을 초청해 직접 연주를 들려주는 모습에 학생들은 한껏 감동스런 표정이다. 서울교사관악합주단 백준기 단장(중앙고 교사)은 "공부에 지친 제자들에게 힘을 북돋우고 아름다운 음악을 통해 마음을 순화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연주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서울교사관악합주단은 건전한 청소년문화 조성과 다양한 음악감상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1985년 10월 관악을 전공한 서울시내 초·중등학교 음악교사 80여명으로 구성된 순수 음악동호회로 벌써 35회의 정기연주회를 가졌다.
미국 뉴욕에서 다시 한번 `작은 학교'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뉴욕은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스몰 스쿨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이 프로젝트를 주관하고 있는 `학교 교육을 위한 뉴 비전(New Visions for Public School)'이라는 비영리 단체는 1차 스몰 스쿨 설립 추진 계획과 스몰 스쿨로 바뀌게 될 대상 학교를 선정 발표했다. 이 단체가 발표한 계획안에 따르면, 우선 1단계로 23개의 새로운 학교가 설립될 것이며 기존의 대규모 학교 하나는 작은 학교로 개조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1단계 스몰 스쿨 프로젝트로 지어지는 학교들은 대부분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와 가정의 생활 소득이 낮고, 대규모의 학교가 밀집되어 있는 뉴욕의 브론스(Bronx) 지역에 들어 설 예정이다. 스몰 스쿨은 학급당 학생 수보다는 학교 전체 규모를 줄이는 데 그 초점을 두고 있다. 학급당 학생 수는 일반 학교와 비슷한 17∼25 명을 유지하는 반면, 스몰 스쿨의 전체 학생 수는 초등교의 경우 300∼500명, 중등교의 경우 400∼800명 선이다. 전문가들은 재학생의 수가 300∼500명 선일 때 가장 이상적이며 아무리 많아도 900명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뉴욕은 학교를 소규모로 하자는 운동을 일으키고 주도해온 도시로, 이 곳에서의 작은 학교 만들기는 벌써 20여 년이라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제는 익숙한 대안 학교 형태로 자리 잡은 스몰 스쿨은 뉴욕에만 해도 약 50여 개가 존재하고 있다. 스몰 스쿨이 뉴욕에서 처음 선을 보인 이래 이에 대한 교육적 성과에 대한 평가와 학교 모델로서의 적합성을 가늠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왔다. 물론 지금까지 시도되었던 스몰 스쿨 모두가 성공적인 교육의 장으로 뿌리를 내린 것은 아니지만 그간에 실행된 많은 연구들은 스몰 스쿨이 적지 않은 장점을 지니고 있음을 밝혀냈다. 무엇보다도 스몰 스쿨에서는 다른 대규모의 학교에 비해 학생들의 중퇴, 학교 폭력, 저조한 시험 성적과 같은 오늘날 미국의 학교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 비교적 적게 나타나는 편이라고 결론을 맺는다. 그리고 스몰 스쿨이 학생들의 학업이나 행동 발달 상황, 기타 생활 태도 측면에서 보통의 학교보다 좋은 결과를 보이는 이유를 학생 수가 적다는 데서 찾고 있다. 학생 수가 적기 때문에 교사들이 학생 대부분의 이름을 기억하거나 개인적 특성을 보다 잘 파악할 수 있으며,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 인간적 친화력을 키우기 쉽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근래 들어 학교를 인간 공동체, 지역 공동체로 보는 관점이 우세해 지면서 작은 규모의 스몰 스쿨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여론이 확산돼 왔다. 이번 스몰 스쿨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뉴 비전 로버트 휴스(Robert Hughes) 회장도 "인간적이고 개별화된 학습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즉, 학교가 사람들의 공동체이어야 하며, 학생 개개인 모두가 자신들의 특성에 맞는 교육을 받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서로 친밀하고 인간적인 유대를 맺으며 모든 학생 하나 하나에게 관심을 줄 수 있는 학교를 원한다"며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와 포부를 밝힌 휴스 회장은 "스몰 스쿨을 새로운 학교의 모델이 될 만하다"며 높은 평가를 아끼지 않는다. 이번에 뉴욕 시에 지어질 다수의 스몰 스쿨은 교육 활동은 다름 아닌 인간 관계가 그 밑바탕을 이룬다는 점과, 학교의 크기를 줄이는 것은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에 아기자기하고 인간미 넘치는 상호 작용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인식한데서 출발한 것이다. 대대적인 스몰 스쿨 설립 계획은 애초에 사립 재단들의 재정적 원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뉴욕의 카네기(Carnegie)사, 게이트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 그리고 열린사회연구소(George Soro's Open Society Institute)가 각각 1000만 달러씩 스몰 스쿨 설립 자금을 내 놓은 것이다. 이들이 기부한 3000만 달러 중 1차로 지어질 23개의 스몰 스쿨에 1200만 달러가 쓰여진다. 이번 프로젝트로 새로 문을 열게 되는 스몰 스쿨들은 교과서로 대변되는 기존의 진부한 교육 과정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 기악, 연극 연출, 시민 활동 등 새로운 교육 활동을 시도할 수 있는 보조를 받을 것이라고 한다.
국민의 정부가 추진한 교육재정 정책 중 재정융자특별회계의 융자에 의한 교육재원 조달정책은 지방정부의 재정부담을 가중시킨 정책으로 지적됐다. 또 GDP 6% 공교육재정 확보 공약이 실종돼 사부담이 커지면서 효율적인 교육재정 배분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한국교육재정경제학회가 24일 한국교총 대강당에서 연 `국민의 정부 교육재정정책 평가와 전망' 학술대회에서 `교육재정 확보정책 평가'를 발표한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내국세 교부율을 11.8%에서 13%로 올리고 교원에게만 지급하는 수당을 봉급교부금 교부 대상으로 규정한 것 등 재원의 안정적 확보 차원에서 평균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고 평가하면서도 "교원 정년단축과 명예퇴직을 장려하고 수당 지급기준까지 높이면서 융자금으로 자금을 조달한 것은 합리성을 결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송 교수는 "교원 명예퇴직과 정년퇴직으로 인한 봉급교부금 감소분은 국가재정의 수입이지만 명퇴와 정년단축으로 인한 퇴직수당 소요액은 융자금으로 대체함으로써 과실금은 국가가 챙기고 감손분은 시도교육청이 책임지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퇴직수당 등은 증액 교부금으로 지원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또 "2000년 12월 교육세법이 개정돼 지방세분 교육세를 지방교육세로 전환해 지방세법에 규정한 것은 교육재정에 관한 권한을 시·도지사에게 부여하는 시발점으로서 교육재원의 자주성을 훼손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교육재정배분 정책 평가'를 발표한 천세영 충남대 교수는 "적정한 공공교육예산의 안정적 확보는 42.1퍼센트에 달하는 사부담공교육비 규모를 줄여 교육투자의 효율성과 합리성 제고의 바탕이 되므로 교육재정배분정책의 일차적 과제"라고 전제한 뒤, "국민의 정부에서 GDP 6% 공교육재정 확보 이슈가 소멸된 것은 이 점에서 매우 안타깝다"고 평가했다. 천 교수는 "20세기 내내 시설환경과 교원인력 면의 인프라를 완성한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아직도 이를 위한 자본 투자적 경비가 전체 교육재정의 17퍼센트에 이른다"며 "교원인력의 절대 규모 확대와 학급당 학생수 축소를 비롯한 여건 개선 사업은 경상적 재정 투자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치원교육도 막대한 재정투자를 요구하고 있으며 국가경쟁력과 직결되는 고등교육의 여건은 더 없이 막막한 상황"이라며 "경상교육재정으로 충당하지 못하는 이 같은 긴급 교육투자를 위해서 특별재정정책을 조속히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외나 선행학습을 수년간 해도 고학년으로 갈수록 그 효과가 크게 떨어져 과외를 전혀 받지 않은 학생과 성적 차이가 거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최근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서울지역 15개 고교 2학년 학생 1165명 중 4년 이상 과외·선행학습을 계속한 학생(국어 88명, 영어 52명, 수학 49명)과 과외를 전혀 하지 않은 학생(국어 108명, 영어 146명, 수학 148명)의 중1∼고2 때 國英數 내신성적을 추적한 결과 드러났다. 이에 따르면 중상위권 70% 학생이 보인 교내 국영수 석차백분위점수는 선행과외집단이 다소 높았지만 고학년으로 갈수록 격차가 줄어 비과외 집단과 별 차이가 없었고 특히 상위권 학생들 간에는 성적 역전현상도 나타났다. 국어의 경우 상위 30%에서는 중1때 선행과외집단이 평균 79.65점, 비과외집단이 76.32점으로 3.33점 높았지만 중3때부터 성적이 역전돼 선행과외집단이 81.17점, 비과외집단이 82.41점이 됐고, 고2때는 선행과외집단이 87.66점, 비과외집단이 90.32점으로 2.66점 앞섰다. 또 중위권 40% 학생의 성적도 중1때는 선행과외집단(57.75점)이 비과외집단(55.20점)을 앞섰지만 고2때는 오히려 비과외집단(49.81점)이 선행과외집단(49.61점)을 따돌려 투자의 역효과가 나타났다. 상위 30%의 중1∼중3 영어점수 변화를 보면 선행과외집단이77.83점에서 81.15점으로 3.32점 오르고 비과외집단은 72.94점에서 83.21점으로 10.27점 올라 오히려 성적이 역전된다. 고2때도 선행과외집단(87.99)과 비과외집단(86.65)의 성적 차는 1.34점에 불과하다. 중위권 40%도 중1때는 성적 차가 무려 12.70점(선행과외집단 64.70점, 비과외집단 52점)이나 나지만 고2때는 0.66점차(선행과외집단 49.41점, 비과외집단 48.75점)로 좁혀져 선행과외의 효과가 거의 없었다. 선행과외가 극성인 수학도 투자효과가 거의 없었다. 상위 30%의 중1때 평균이 선행과외집단(77.06점)이나 비과외집단(76.31점) 모두 비슷한 상황이 고2때까지 이어져 선행과외집단(90.23점)이 비과외집단(89.22점)보다 1점 앞선 것에 그쳤다. 또 중위권 40%도 중1때 3.6점차(선행과외집단 61.12점, 비과외집단 57.52점)가 고2때도 3.78점차(선행과외집단 50.44점, 비과외집단 46.66점)로 비슷한 상태를 유지했다. 이와 관련 연구 관계자는 "중고등학교 저학년 때는 선행과외집단의 성적이 높지만 중3이나 고2학년이 되면 입시 부담감이 증가하면서 자기주도적 학습 의지가 강해져 비과외집단의 성적상승이 높아지는 반면 선행과외집단은 의존적인 학습 태도가 계속되면서 고학년으로 갈수록 효과가 반감된다"고 분석했다.
대전대흥초등교(교장 김질회)가 전교생 `1인1화분 가꾸기'를 실천해 화제다. 모든 학생이 자신만의 철쭉을 가꾸게 된 이유는 교화를 알리려는 김 교장의 노력 때문이다. "99년 학교에 부임해 아이들에게 교화가 뭐냐고 물었더니 철쭉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철쭉을 보여주며 이게 뭐냐고 다시 물었는데 대부분 모르고 있었다"는 김 교장. 그는 폐품을 팔아 전교생의 화분을 마련하고 삽목한 지 3년째 된 철쭉 화분을 올해 입학한 1학년 아이들에게 입학선물로 나눠주기도 했다. "꽃이 크는 것을 보면 나까지 자라는 것 같다"는 이민규(4학년) 군처럼 아이들은 매일 철쭉을 키를 잰다. 대흥초는 아이들이 각자의 철쭉화분을 6년 동안 가꾸게 하고 졸업할 때 기념선물로 간직하게 할 계획이다.
"공립학교는 평준화 골격을 유지하면서 개선해 나가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사립은 학생 선발권을 주는 자립형 사립고로 운영하겠다. 또 교육재정으로 GDP 7%를 확보하고, 법관 양성은 대학원 시스템으로 개선하겠다"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23일 저녁 바른사회를위한시민회의(공동대표·이군현 등 9명)가 주최한 제1차대통령 후보 정책토론회에서 대통령 당선 후에 펼칠 교육 정책의 뼈대를 제시했다. 정치, 외교·통일, 경제, 사회·문화, 교육 등의 분야로 나눠 2시간 동안 진행된 토론회에서 이 후보는 정진곤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의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으로 교육에 관한 비전과 정책을 밝혀나갔다. 이 후보가 법관 출신인 점을 고려해서 정진곤 교수는 법관양성제도를 교육분야 첫 질문으로 던졌다. 정 교수는 "법치주의를 제대로 실현하려면 법관 양성이 중요한데, 현행의 사법시험에 의한 법관 임용제도는 대학교육을 파행으로 이끌고 시대의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며, 법학전문대학원의 도입에 관한 이 후보의 의견을 물었다. 이 후보는 "법관 양성제도에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고 화답한 뒤 "법관 임용제도를 개선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며 "대학원 시스템의 전문 법조인을 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개선안으로 "변호사를 법관으로 임용하기에는 아직은 이르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가 한나라당 국가혁신위 종합보고서를 언급하며 "사립학교의 학생 선발권 부여는 사학의 비중이 많은 현실을 고려할 때 고교평준화를 무너지게 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여기에 대해 "공립은 평준화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학교의 질을 높여나가고, 사립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학교를 대상으로 학생 선발권을 부여해 나가는 것이 교육의 큰 틀"이라고 답변했다. 그는 "소득 수준이 낮은 서민 학생들에게는 정부의 장학금 지급으로 불균형을 해소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선은 공·사립의 교실 환경을 개선하고 교사의 질과 처우를 높이고, 교육재정 투자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정교수가 "국가혁신위에서 약속한 GDP 7% 확보 약속을 지키겠느냐?"고 묻자, 이 후보는 "현재의 교육재정이 GDP 4. 7%이다. 2% 이상 반드시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돈을 퍼부어서라도 교육을 바로 잡겠다"며 '연금 등 사업성기금 활용과 국채 발행, 재정개혁' 등의 재정확보 방안까지 예를 들며 설명했다. 정년환원에 관해서는 "65세 정년이 당론이었으나 16대 국회에서는 다수당의 횡포라는 여론의 역풍을 무시할 수 없었다"며 "다시 한번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정년환원을 미뤘다"고 말했다. 2시간 동안 비교적 구체적이고 여유 있게 답변한 한 이회장 후보는 "5년 동안 공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질문자들이 오히려 밀린다"는 말을 한 토론자로부터 들었다.
한국교총과 한나라당은 23일 한나라 여의도 당사에서 정책간담회를 갖고 교원 처우 개선을 통한 자긍심 고취 등 교육계 현안을 논의했다. 한국교총은 이날 간담회에서 지방선거 및 대통령 선거에 ▲초정권적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운영 ▲수석교사제 도입 ▲교원정년 환원 ▲시·도 교육청 복수 부교육감제 도입 ▲유아교육의 공교육화 ▲교육재정 GDP 7%확보 ▲ 공·사립 및 실업계 하교의 균형지원 ▲대학교육여건 개선 및 지방대 육성 ▲전문직 교원단체의 역할 강화 등을 교육공약으로 채택해 줄 것을 요청했다. 특히 교총 이군현 회장은 "교원의 사기진작을 위해 교원의 대학자녀 학비보조는 이제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정부예산을 확보, 국회에서 의결될 수 있도록 한나라당이 힘을 실어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재희 제3정조위원장은 "당 차원에서 군인·경찰과 함께 대학 학비보조를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전 위원장은 또 "교원정년환원은 6.13 지방선거공약에 포함되어 있다"며 "학급당 학생수 감소로 위한 자연 수요 증가, 노령화 사회로의 전환 등을 감안할 때 정년환원은 꼭 추진되어야할 과제"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교총은 전문성 향상을 위한 시스템 개발 등 교원자질 향상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정년환원을 위해 함께 힘을 모으자"고 강조했다. 서청원 대표최고위원은 "한나라당은 초정권적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운영, 유아교육의 공교육화, 교육재정 GDP 7%확보 등 많은 부문에서 교총과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며 "교총의 요구를 최대한 수렴, 합리적으로 교육관련 선거공약을 준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총과 한나라당은 그 밖의 교육현안에 대해서도 앞으로 대화를 통해 계속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교총에서 이군현 회장, 이은웅 부회장, 채수연 사무총장, 최재선 서울교총회장, 조금세 교육정책부위원장, 김시운 전문위원, 김세령 전문위원, 우재구 교권정책본부장, 조흥순 교육정책연구소장이, 한나라당에서는 서청원 대표최고위원, 김정숙 최고위원, 이규택 원내총무, 이강두 정책위의장, 전재희 제3정조위원장, 황우여 교육위원장, 박창달 교육위원, 김주철 당 교육수석 등이 참석했다.
상호저축은행은 이전 상호신용금고. 예금자보호가 되고 이자를 더 준다는 점에서 한동안 목돈을 맡겨 불리기에는 괜찮다. 은행만 이용하던 사람이라면 한번쯤 눈을 돌려볼 만하다. 증권업계 종사자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투기 성향이 높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위험을 감수하고 자산을 불리려 하는 이들은 소수에 속한다. 이자가 조금씩 불어나도 좋으니 원금을 잃지 않고 안전하게 자산을 굴리려 하는 이들이 훨씬 많다. 그러나 최근까지 워낙 금리가 낮아 안전 투자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곤란하게 했는데 이젠 조금씩 여건이 개선되고 있다. 경기가 주춤거리기는 해도 회복세로 나아가면서 서민들이 흔히 이용하는 금융기관의 예금 금리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지금도 시중은행의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는 4월중 평균 연 4.7~5.1퍼센트 수준이지만, 상호저축은행에 맡기면 금리를 연 1.7퍼센트에서 2.1퍼센트까지 더 받을 수 있다. 4월중 상호저축은행의 평균 금리는 연 6.5~6.8퍼센트.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올리면 시중 은행의 금리도 높아지므로 빠르면 5월중 상호저축은행에서는 7퍼센트대의 예금 금리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상호저축은행은 이전 상호신용금고다. 은행보다 금리를 높게 주는 점, 대출 금리는 은행보다 비싸지만 은행보다 쉽게 대출을 해 주는 점에서 서민들이 애용하는 금융기관이었는데 외환위기를 전후로 대개 부실이 드러나 거의 망하다시피 했다가 최근 간판을 바꿔 달고 심기일전하고 있다. 고객 입장에서는 상호저축은행 예금이 장점이 많다. 금리가 높은 데다가, 은행과 마찬가지로 1인당 5000만원 한도 내에서 원리금을 보장받는 예금자보호제도를 적용받기 때문이다. 다만 상호저축은행의 영업이 정지되면 맡긴 돈의 이자는 약정 금리가 아니라 은행권의 1년짜리 정기예금 기본금리(4%선)만 받게 된다. 또 예금보험공사의 은행 자산 실사가 이루어지는 3개월 정도까지는 돈을 찾지 못한다. 현재로서는 금융기관 치고 은행에 비해 규모가 작고 점포가 적으며 시중은행과의 송금도 여의치 않는 등 이용에 불편한 점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예금자보호가 되고 이자를 더 준다는 점을 산다면 한동안 목돈을 맡겨 불리기에는 괜찮다. 은행만 이용하던 사람이라면 한번쯤 눈을 돌려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