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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송월초등학교(교장 장영애)는 25일 인천 중구 신포 농업협동조합중앙회의 도움을 받아 4학년 전체 어린이들이 참석한 가운데 강화에 위치한 삼흥리 마을과 ‘농촌사랑 1校 1村 자매결연’을 맺고 방문 및 에서의 1일 농촌 체험 학습을 통해 농촌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농촌 사랑의 마음을 키울 수 있는 뜻 깊은 행사를 가졌다. ‘농촌사랑 1교 1촌 자매결연’제도의 활성화 위해 송월초교에서는 농번기 때에 일손 돕기를 비롯 환경보호 봉사활동과 마을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앞장서 구매하는 등 농업·농촌 발전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하였으며. 삼흥리 마을에서는 편안하고 쾌적하게 쉴 수 있도록 깨끗한 환경을 조성하며, 친환경 및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제공하고, 농촌체험에 필요한 프로그램 등을 마련 삼흥리를 찾는 학생들에게 농촌 체험의 장으로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어린이들은 송이버섯의 재배농장을 방문 버섯재배 과정을 실제로 체험한 후 자신들이 딴 버섯을 가지고 요리실습을 하는 등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으며 앞으로 매년 이런 체험활동을 할 것을 약속하고 돌아왔다. 이 활동에 참가했던 최일호 교사는 “어린이들이 우리 농업과 농촌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농촌에 대한 정서를 함양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며, 우리 모두의 고향인 농촌이 도시와 더불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상호 교류 활동 기회가 증진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북 경주의 한 초등학교가 대단위 아파트 입주로 학생 수가 증가하면서 교실이 부족하자 컨테이너를 임시 교실로 사용하고 있어 학부모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28일 나원초등학교에 따르면 올해 1학기부터 학교 운동장 한쪽에 컨테이너 교실을 임시로 설치해 2학년 2개 학급 교실과 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더군다나 내년에는 학생 수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컨테이너 교실을 추가로 설치해야 할 판이다. 나원초등학교에는 최근 인근에 대단위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올해 1학기에만 작년보다 5개 학급이 증가했으며 내년에도 6개 학급이 더 늘 것으로 학교 측은 전망하고 있다. 이 학교에는 현재 32개 학급 1천60여 명이 수업을 받고 있다. 그러나 경주교육청은 인근에 학교 신설이 추진되고 있어 나원초등학교의 교실 증축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경주교육청은 나원초등학교 인근에 2008년 3월 신설학교를 개교할 예정으로 지난 달 부지 매입을 완료했다. 이에 따라 일부 학생들은 내년에도 컨테이너 교실에서 공부를 해야 할 처지다. 한 학부모는 "2년 전부터 신축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2년 전에 비해 500가구가 늘었고 앞으로 1년 안에 완공해 입주를 시작할 아파트도 1천 가구나 된다"면서 "컨테이너 교실이 냉난방 시설이 돼있지만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울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복도를 다닐 때마다 진동이 심하다"고 대책을 호소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아파트가 이렇게 많이 들어섰는데 학교를 몇 년 후에나 짓는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교육청을 질타했다. 이에 대해 학교 관계자는 "컨테이너 교실이지만 시설을 잘 갖춰 놔 큰 불편은 없으며 내년에도 200~300명의 학생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추가로 컨테이너 교실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주교육청 관계자는 "2003년 상반기 신설학교 계획을 수립해 2006년 개교할 예정이었으나 부지 매입작업이 늦어졌다"면서 "2008년 3월 개교 예정으로 현재 신설학교 부지 매입이 완료돼 문화재 시굴조사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수업연한을 학장이 자율적으로 결정해 전문대학에서도 학사학위를 수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국 152개 전문대학의 단체인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제11대 한숭동(대덕대학 학장) 신임 회장은 취임을 하루 앞둔 28일 전문대학 발전을 위한 수업연한 자율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 회장은 "전문대학의 수업연한을 현행 2-3년제로 고정해서는 급변하는 산업사회에 대응할 수 없다"며 "이를 위해 현행 고등교육법 관련 규정의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전문대학의 영문명칭도 현행 College에서 선진 외국의 전문대학에서 다양한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감안, Vocational University(직업교육대학교)로 변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 회장은 말했다. 한 회장은 또 "우리나라 전문대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문대학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 확대가 시급하다. 특히 전문대 재학생의 55%가 저소득층 자녀들이기 때문에 실질적 학자금 지원을 위해 장기저리 특별지원금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정부의 재정지원을 요구했다. 그는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학자금 지원과 관련, "재학생 중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가계 곤란자에 대한 학자금 지원을 적극 확대하지 않으면 학벌의 대물림이 심화된다"며 "직업교육을 선택한 소외계층 자녀에 대한 등록금 지원혜택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이어 "전문대학의 평생교육 기능 강화, 유학생 유치에 의한 전문대학 교육 글로벌화, 직업교육 정책수립에 전문대학인의 참여, 교육부 직업교육 전담부서 설치 추진, 전문대학 평가인증제 도입,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개혁 등을 추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취임식은 29일 오전 11시30분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이종서 교육인적자원부 차관을 비롯한 교육계 인사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요즘 리포터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새단장을 하느라 분주합니다. 제일먼저 눈에 띄는 것이, 그동안 낡은 나무판자 때문에 걸을 때마다 삐걱 이는 소리를 내던 교실복도를 타일로 교체한 것입니다. 학생들의 수업에 지장이 없도록 방학중에 말끔히 공사를 끝냈더군요.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타일복도를 걸으며 아이들은 마냥 즐거워합니다. 우선 소리가 안 나서 좋고 청소하기도 예전보다 훨씬 쉬워졌습니다. 복도가 나무일 때에는 왁스를 먹이고 윤을 내느라 여간 고생을 한 게 아니거든요. 이제는 물걸레로 쓱쓱 밀기만 하면 되니 정말 격세지감을 느낄 만도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심해야될 일도 있습니다. 타일이 워낙 미끄럽기 때문에 자칫 넘어질 염려가 크기 때문입니다. 복도가 끝나는 부분마다 경사지게 마무리를 했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성이 상존합니다. 따라서 학생들은 매사 조심해서 걷고 절대로 급하게 뛰거나 장난을 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더불어 바닥이 견고한 슬리퍼로 바꿔 신는 것이 좋겠습니다. 흡착이 뛰어난 슬리퍼는 저렴한 가격으로 시중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앞으로도 좁았던 교문을 활짝 넓히는 동시에 굽은 진입로도 곧게 펴게 됩니다. 이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학교를 보며 리포터는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우리나라의 정원은 어디를 가나 모두 천편일률적인 모양을 하고 있다. 네모진 벽돌처럼 잘 다듬어진 생울타리와 둥그렇게 기형적으로 전정(剪定)된 향나무들을 볼 때마다 참 의아하단 생각이 든다. 왜 사람들은 나무들이 생긴 그대로 자연스럽게 자라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걸까. 제멋대로 마음껏 가지를 펼치며 성장한 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람들은 정녕 모르는 것일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정원사 아저씨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교정의 정원수들을 열심히 가지치기하고 있다. 나는 가끔 정원수의 신세나 학교 아이들의 신세나 서로 비슷하다는 상념에 빠질 때가 있다. 똑같은 교복, 똑같은 머리모양, 똑같은 책걸상, 모두가 똑같이 선호하는 특정 대학, 똑같은 교육 과정이 어쩌면 전정 가위를 들이대어 모두가 똑같은 아름다움을 연출하도록 강요당하는 정원수의 신세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창조주께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이 세상에 똑같은 것이 둘이나 있도록 허용치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하찮은 풀 한 포기, 구르는 잔돌 하나, 나무 한 그루마다 그 태어난 의미와 존재 이유 또한 다 다른 것이다. 하물며 자라나는 아이들임에랴. 아이들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른 나무와도 같다. 우후죽순이란 말처럼 비 온 뒤의 죽순이 시시각각으로 쑥쑥 성장하듯이 아이들 또한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먹고 자란다. 그런 아이들에게 우리 어른들은 모두가 똑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도록 윽박지르고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한번쯤 반성해 볼 일이다. 나의 이런 생각은 우리 학교 도서관 대출 순위 3위를 기록한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나무'란 책을 읽고 더욱더 확고해졌다. '나무'는 그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현실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력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까. 자율화와 창의력 배양은 지금의 제7차 교육과정의 교육 목표와도 묘하게 일치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책에 더 빠져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남과 다른 생각, 자기만의 독특한 생각을 키워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에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는 후텁지근한 날씨에 한 줄기 소나기처럼 청량감을 주었다. 또한 '나무'를 읽은 뒤 정작 교사인 나부터 그런 상상력에 무척 메말라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우선 나부터 항상 뭔가 독특한 생각을 해 보려고 애썼다. 그리고 나서 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아이들에게도 그전보다는 융통성 있는 대답과 질문을 하도록 유도해 보았다. 처음엔 당황해서 쭈삣거리며 어쩔 줄 몰라하던 아이들도 차츰 어른들이 바라는 모범답이 아닌 진짜 자기들만의 생각을 말하려고 애썼다. 어떤 아이는 직접 학교 도서관에서 '나무'를 찾아서 읽어보곤 나한테 그 소감을 말하기도 했다. "선생님, 나무에 있던 내용을 저도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특히 나무와 대화를 나누거나 정서적 교감을 하는 장면은 저도 상상을 해봤던 장면이거든요. 그런데 '나무'에 진짜 그런 내용이 있더라구요. 얼마나 반갑던지....." 이처럼 '나무'는 그동안 머릿속의 창의력이 시나브로 메말라가던 나와 아이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무한한 상상력을 일깨워준 고맙고도 기능적인 책이었다. 따라서 나는 이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올 여름이 가기 전 꼭 베르나르 베르베르(이세욱 역)를 만나 보라고 권하고 싶다. 첫째,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져 모든 것이 시시하게 보일 때.둘째, 대화 시에 마땅한 소재가 없어 텔레비전 연속극 이야기만 하게 될 때. 그때가 바로 지적 일탈이 가득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할 때라고 말이다.
'내 자식만큼은 나처럼 살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공통된 심정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치열하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기러기 아빠'의 사례나 자녀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일까지 저지르는 학부모들만 보아도 이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발표에 의하면 2003년도 우리나라의 사교육비 규모는 총 13조 6천억 원으로 1인당 285만원이라고 한다. 이것은 공교육 예산인 24조 9천억 원의 절반을 넘는 액수이다. 그나마 2004년과 2005년은 EBS 수능강의 때문에 연간 사교육비가 각각 2900억 원 정도씩 줄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일신하는 동시에 공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난 2월 17일 '공교육 정상화를 통한 사교육비 경감대책'을 발표하였다. 발표 내용의 골자는 공교육을 정상화하여 사교육비를 경감시킨다는 것이 그것이다. 중요 대책으로 e-learning 체제 구축과 교육방송에 대한 지원강화 등이었다. 폐일언하고 공교육의 일차적인 목표는 학생들에게 지식 정보화시대를 살아갈 덕성과 지식을 균형 있게 갖춰주는 일이다. 그러나 학부모들의 입장에서는 오직 명문대학에 대한 입학과 대학 졸업 후,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를 희망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학교와 학부모의 요구가 상충되는 데서 모든 교육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편리와 풍요를 추구하는 학생들과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학교 현실 또한 이러한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여기에다 설상가상으로 지식의 수명과 주기마저 급격하게 짧아지면서 학교의 권위가 추락한 것도 공교육 붕괴의 한 요인이 되었다. 내면의 정신적 사고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에만 더 열광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공교육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반면 사교육시장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선택의 문이 무한정 열려있고, 학습집단을 자유자재로 설정하여 가르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때문에, 학업 성취도를 쉽게 높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뿐만 아니라 사교육은 공교육에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최상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절대적 호감을 받고 있다. 맨 처음 교육시장에 신자유주의 개념이 들어왔을 때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던 많은 사람들은 시장경제원리를 경계했었다. 그러나 2006년 현재 세계가 이미 무한 경쟁 속으로 진입했고, 그로 인해 각 나라들에서 입학생이 없어 문을 닫는 학교가 속출하고 있다. 이 같은 사례는 결국 공교육은 시대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길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깨우쳐준다. 따라서 무한경쟁 시대에 공교육기관만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안일한 생각은 버리고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너나없이 총력을 기울여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우리의 공교육시장이 사교육시장과 경쟁할 수 있도록 교육 여건을 충분하게 갖추어줘야 한다. 지금의 낡은 교육 시설을 첨단시설로 교체해주고 새로운 교육자료의 개발과 학습방법 구안을 서둘러 보급해야한다. 아울러 수업을 잘 하는 교사들에 대한 충분한 인센티브가 주어져야한다. 둘째로 학생이 학교를, 학교가 학생을 선택할 수 있도록 과감한 개방이 이루어져야한다. 그동안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평준화제도 또한 이 시점에서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학생의 모집, 수준별 수업의 활성화, 교육과정의 내용과 편성 등에 대한 선택권도 일선 학교에 돌려주는 것도 검토해 봐야 한다. 점차 단위학교장의 책임경영제가 확대되는 추세에서 개인의 능력과 취향에 맞는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모든 커리큘럼이 대학입시 위주로 되어 있는 지금의 교육현실 타파는 두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논외로 한다. 셋째로 교육의 주체인 학교와 교사들의 의식 변화이다. 즉 변화의 물결에 대한 적극적 수용이 있어야한다는 뜻이다. 본인이 근무하는 학교와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냉철한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 교사들은 사회의 지도층으로서 높은 자긍심과 시대적 소명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하여 아이들을 가르쳐야한다. 또한 새로운 수업 기술과 학습 내용을 습득하기 위해 각종 연수를 비롯한 자기개발에 게을러서는 절대 안 된다. 변화된 학생들의 생각과 행동을 읽고 꾸중보다는 부드러운 친화력으로 그들을 포용하여야 한다. 앞으로 나라의 운명은 분명 교육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교육을 잘 시키는 나라는 흥할 것이요, 교육을 잘못 시키는 나라는 망할 것이다. 특히 사람밖에 기댈 것이 없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지금처럼 세계 속에서 뒤쳐지지 않고 당당하게 세계의 일원으로 우뚝 서려면 반드시 공교육을 내실화 하여 유능한 인적자원을 무한정 생산해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국민 모두가 똘똘 뭉쳐 낡은 관념과 관습을 몰아내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교육환경을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여야한다.
교육혁신위원회가 집요하게 개혁하려는 무자격 공모형교장임용 문제에다 교원승진문제, 교원임용문제, 교원평가문제 등 몇 가지를 끼워 넣은 교원임용승진개선안을 최종으로 확정하고 16일 대통령에게 보고를 남겨두고 있다. 이에 거세게 반발하는 한국교총을 비롯한 교원단체들의 저지로 학교현장이 시끄러운 가운데 2학기를 맞이하게 될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혁신이나 개혁을 부르짖는 정부를 바라보면 현장에서 바라는 진정한 개혁엔 관심도 없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현장교원들의 일반적인 생각일지 모른다. 한편 교육혁신 위는 뭐하는 곳인지 묻고 싶다. 현장엔 아예 관심도 없는가? 교원들이 신바람이 나서 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는 개혁안을 내놓아야 우리 교육은 희망이 보이고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인데 교원들을 흔들고 불안하게 하는 혁신안에 매달리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교육혁신위원회가 출범하여 현장개선에 도움을 주는 좋은 정책이 나오길 기대했는데 위정자들의 입맛에 맞추어 혁신안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보고해주는 시녀역할만 수행하는 위원회가 아닌가하는 의구심만 들게 하고 있다.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여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친다지만 결국은 윗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혁신안이라는 것이 곳곳에서 묻어나고 있다. 첫째, 무자격 교장공모제는 자격을 강화하는 선진국의 조류에도 역행하는 것이고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려 교육을 뜯어고치려는 혁신조급증의 발로라고 보여 진다. 학교현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자격교장공모보다 시급히 고쳐야 할 것들이 많이 있는데도 60여년 시행착오를 거치며 다듬고 쌓아놓은 제도를 근본부터 허물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생각이다. 도대체 아무나 교장을 하게하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둘째, 교원임용과 승진문제이다. 임용고시 성적보다 면접과 수업능력을 많이 반영하는 안을 내놓았고 사범계열 대학에서 평균 C학점이하의 학생은 교원자격을 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 안을 보면 점수만 따게 하고 교원의 자질이 되는 인성은 무시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즉흥적이고 졸속적인 혁신안이 현장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단세포적인 안으로 비쳐진다. 현재 임용 때 면접과 수업심사도 하고 있는데 비율을 조정하는 정도의 안보다는 교원의 자질을 정확히 검증 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 개발하여 잘못된 임용으로 인하여 학생들에게 돌아갈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셋째, 교원평가문제이다. 교원의 평가를 관리자인 교장 교감에게 맡기는 것은 교원을 관리 감독 할 수 있는 권위를 세워주는 힘이 되는 것이다. 관리자인 교장 교감에게 주어진 힘을 줄이면 교원들이 권위를 인정하지 않게 되고 말을 듣지 않아 학교의 질서가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교원을 관리 감독하는 학교장이 공정하고 교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평가를 할 수 있도록 평가도구를 개발하여 보급해주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인 것이다. 교육혁신위원은 우리교육이 무엇이 문제인지 현장의 소리를 바탕으로 정확히 문제를 진단하여 고쳐나가야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2세 교육이 올바로 나갈 수 있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기 바란다. “잘못된 개혁은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라는 말의 참뜻을 명심하고 역사 앞에 당당하고 책임질 수 있는 교육혁신원회가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이제 계절로는 처서도 지나 조금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2학기를 앞두고 인사이동 발표가 끝나고 설레임으로 새 학기를 준비하면서 어떤 분은 교장으로, 교감으로 관리자로 자리를 바꾼 분들이 많이 계실 것 같습니다. 요즈음 학교의 권위가 무너지고 그 가운데 학교장의 권위, 교사의 권위 모든 것들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 없는 때가 있습니다. 특히 지도자의 자리는 외로우며 구습에 젖은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잘 적응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학교도 교육 조직이다 보니 지도자로 교장이 있고 교감, 교사가 역할을 수행하며 학교 교육이 전개됩니다. 그런데 최근 학교를 흔드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 교육 분야는 위기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요즈음 세상이 부패하고 무능하고 흔들리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도 원칙이 없는 지도자들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원칙과 고집은 다릅니다. 지도자의 능력은 변할 수 없는 원칙에 근거하며, 원칙은 인간의 가치와 품위를 높여주고 발전시키는 보편적인 원리에 근거합니다. 위기의 상황을 새로운 역사의 기회로 삼았던 많은 지도자들의 공통점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원칙이 있었습니다. 인간 역사가 유지되고 발전하는 근본적인 요인은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기 때문인데, 이 원칙은 인간이나 사회에서 멋대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가 허락한 우주의 법칙, 즉 자연법칙이라고 했습니다. 미국 30대 대통령 캘빈 쿨리지는 ‘오로지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원칙과 기준이야 말로 역사와 사람을 바로 세워나가는 절대적인 능력이다’라고 했습니다. 지도자는 ‘이것 때문에 산다’는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이것 때문에 죽어야 한다’는 죽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오늘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한다’는 확고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진정한 지도자가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핵심 가치와 원칙에 따라 생활하는 사람은 가식이 없으며, 모든 것을 솔직하고 정직함이 주는 능력으로 자신있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느 초임 교장 선생님은 섬 지역 학교에 첫 발령을 받아 부임하였는데, 정말 엉망으로 근무하는 교사가 있어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지라 수 차례 타일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도저히 말을 들어주지 않아 고민하던 끝에 하루 저녁은 마음을 강하게 먹고 다음과 같이 교사에게 접근하였다고 합니다. “난 이제 교장도 되었고 나이로 봐 살 만큼 살았으니 더 이상 욕심이 없다. 단지 너 같은 교사는 교직에 남겨둘 수 없으니 이제 나하고 너하고 저 바다에 가서 빠져 죽는 길 밖에 없다.”고 진지하게 접근을 하였답니다. 그러자 그 선생님은 태도를 바꾸며 “교장 선생님, 왜 그러십니까?” 한 번만 참으라고 졸라대어 하는 수 없이 그날 밤 밤을 세우며 대화를 해 선생님으로부터 앞으로 교육을 잘 하겠다는 확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교장 선생님이 몸으로 가르친 것은 원칙이었습니다. 학교의 원칙은 무엇입니까?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여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이상 더 있겠습니까. 민주화 과정에서 얻은 것도 많지만 권위가 많이 무너지면서 가장 급속도로 변한 것이 교육현장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러한 현장을 살리는 일에 앞장 서야 할 분들이 오늘 새롭게 자리를 옮긴 교장, 교감, 교육장님을 비롯한 여러 계층의 관리자들이라 믿습니다.
최근 일어난 몇몇 소수의 체벌 사례는 아직도 교육현장에서 잘못된 체벌의 관행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학생들의 인격과 의견을 무시한 무조건적인 감정 풀이식의 체벌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부 특정 사립학교에서는 체벌 교사가 교장이나 이사장과 친인척들로 구성되어 처벌을 면하는 사례도 있어 더더욱 문제가 되었다. 정작 체벌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우리 교육현장은 체벌에 의존해 왔고, 현재까지도 일부에서는 체벌이 학생들의 처벌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그만큼 체벌에 대한 의견도 분분한 것이 사실이다. 교육부는 최근 일련의 체벌 사태를 두고 체벌금지법을 만들겠다고 공공연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교육현장의 의견을 무시한 채 무조건적인 체벌 금지법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교육현장의 교사들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한 처사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교사들을 법으로 다스리지 않으면 통제할 수 없는 그런 집단으로 오도하는 것은 자칫 우리 선생님들이 교육자로서의 권위와 자존심을 상당히 깎아 내리는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교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학교현장에서도 이런 교육부의 지침에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한편으론 학교현장의 의견을 무시한 채 무조건식의 법제정은 교사들의 권위와 자존심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겠다는 발상은 학교현장의 선생님들을 전혀 믿지 못하겠다는 것 아니겠어. 체벌의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닌데. 무조건 금지하는 법을 만든다는 것은 학교현장의 모습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린 것 같아.” “맞아요, 체벌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선진국에 비해 교육환경이 매우 열악한 우리 교육현실에서는 아이들을 제대로 이끌기 위해서는 때로는 체벌이 필요한데. 너무 선진국형 모형만 따라 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게 맞는지 아무런 검증도 되지 않았는데.” “하지만 체벌이 단순히 교육적이 아니라, 폭력으로 비춰진다는 것이 문제에요. 대다수의 선생님들이 그렇게 하지는 않지만, 감정을 실어 학생들을 매질한다는 것은 문제가 분명히 있다고 봐요.” “체벌 규정 자체를 없애면 과연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변할지 무서워요. 그래도 대다수의 아이들이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체벌이 폭력적이고 비교육적인 것이라면 퇴학이나 정학은 과연 교육적인지 묻고 싶어요. 정작 아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 중에서 그나마 가장 잘 사용하면 교육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앞으로 그것을 법으로 금지한다면 결국 퇴학, 정학 등이 주요 벌의 수단으로 사용될 건데, 이건 정말로 아이들에게 비교육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마 교육부에서는 그런 점들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아요. 정작 우리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대다수의 선생님들은 체벌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의견을 내놓았다. 특히 체벌이 가지고 있는 비교육적인 부분은 인정하면서도 아직까지 우리 교육의 환경에서 체벌을 법으로 금지한다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체벌을 법으로 제정하면 마지막 수단은…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정말로 체벌을 해야될 때가 있다. 대다수의 학교 현장의 선생님들은 체벌의 폭력적인 부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회초리를 드는 경우는 상당한 정도로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학생의 인권 등이 문제시 될 수 있기 때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체벌을 해서 따끔하게 잘잘못을 가려 앞으로 반성의 기회를 갖도록 아이를 유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교육부가 제시하고 있는 체벌 금지법이 실시된다면 과연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될 지 불 보듯 뻔할 일이다. 결국 그런 아이들은 학교에서 정한 규칙에 따라 벌을 받게 된다. 그 벌인 즉은 자퇴, 전학권고, 정학, 봉사 활동 등이 거론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학교내에서 봉사활동 등의 처벌은 학생들에게 그다지 경각심을 줄만한 정도의 처벌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심한 경우에는 정학이나 퇴학까지도 가게 되지만, 실제 최근 학교 현장에서 퇴학은 규정상으로 없기 때문에 전학을 권고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결국 그런 전학은 악순환의 반복이 되고, 대다수의 경우는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선생님, 가끔은 회초리를 들어 주십시오! 가끔은 아이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때도 많다. 개인적으로 체벌은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곧잘 회초리의 유혹을 받을 때가 많다. 특히 많은 아이들이 제대로 지시를 따라 주지 않을 때, 학생으로서의 신분을 뛰어 넘어 과도한 행동이나 말로 분란을 일으킬 때는 참을성의 한계를 스스로 감내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끔은 아이들에게서 매를 들어달라는 이야기도 듣곤 한다. “선생님 그러지 말고 회초리를 드십시오. 말로 되지 않은 아이들은 매로 다스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놈아 내가 회초리를 들기 시작하면 그것도 마치 중독성이 있어 끊기 어려운데 그래도 괜찮겠냐?” “선생님 그래도 아이들이 말로 해서 무조건 듣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가끔은 따끔하게 혼이 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해서는 안되겠지요.” 물론 최근 몇 년간 아이들을 회초리로 다스린 적은 없다. 처음 발령받고 감정에 못 이겨 몇 번 회초리로 아이들을 다스려 본 적은 있었지만, 정작 효과는 미비하였다. 이후로 그런 상황에 반복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지금은 회초리를 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런 과정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물론 수많은 시행착오도 겪어야만 했다. 교육은 강제로 뜯어 고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우리 아이들 교육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알아서 변화되지 않는 한 결국 생채기를 낼 수밖에 없고, 서로간에 불신만 쌓여 가게 된다. 체벌은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현재 교육부의 안처럼 법으로 금지해서 선생님들의 사고와 행동을 자꾸만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그런 처사는 정말로 비교육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은 인내를 가지고 서로를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매년 4-5월과 8-9월이 되면 학교에 비상이 걸리기 일쑤다. 아폴로눈병 등 유행성 눈병이 번지기 때문이다. 이 시기가 대체로 새학기가 시작되는 때다. 그동안 교직생활을 해 오면서 눈병때문에 비상이 걸리지 않았던 해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 그만큼 학교는 유행성 눈병의 사각지대이다. 비단 학생들 만의 문제는 아니다. 학생들 사이에 유행성 눈병이 번지면서 이의 영향을 받아 교사들 역시 눈병에 감염되는 경우가 생긴다.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다른 동료교원들에게 전염의 위험성이 매우 높다. 다음주가 되면 전국의 거의 모든 학교가 개학을 할 것이다. 개학후에는 반갑지 않은 유행성 눈병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올봄에도 한참 눈병으로 애를 먹었다. 학생들 중에 눈병이 발병하면 기하급수적으로 그 숫자가 늘어난다. 전교생의 1/3정도가 눈병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눈병이 번지는 이유는 당연하다. 학교가 여러학생들이 집단으로 생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접촉이 빈번하고 같은 교실에서 함께 생활하기 때문이다. 먼저 감염된 학생이 완치될 만하면 다른 학생이 시작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에 그 기간이 1-2개월동안 지속되는 것이다. 눈병뿐 아니라 학교는 각종 전염성 질병의 사각지대이다. 감기만 해도 그렇다. 환절기에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학생과 교사들이 많다. 계속 전염되어 나가기 때문이다.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곳이기 때문에 특별한 대책이 있어야 하는데도 그 대책마련이 쉽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눈병이 번지면 교육청에서는 눈병 예방대책을 각급학교에 배포한다. 물론 번지기 전에도 배포된다. 그러나 학생들이 이를 철저히 지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충분히 교육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교육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등교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 뿐이다. 다른 학생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 조치를 받아들이지 않는 학부형들도 많다. 학생들 공부에 지장이 있다는 것이다. 억지로 학교에 등교를 하면 학교에서는 막을 방법이 없다. 그 학생들을 따로 격리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학부모들의 항의 때문이다. 학교에 등교했으면 당연히 교실에서 수업을 받아야 옳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교실로 들여 보내면 이번에는 눈병에 걸리지 않은 학생들의 학부모가 항의를 한다.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눈병 문제는 일단 감염이 되면 대책이 없다. 따라서 예방교육을 좀더 철저히 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질병이 그렇듯이 예방을 철저히 한다고 감염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어쩔수 없이 감염되는 경우가 나온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는 눈병이 번지면 교육청에서는 매일같이 눈병감염학생수를 보고하라고 한다. 그것이 교육청에서 하는 조치의 전부이다. 눈병은 연례행사처럼 발생한다. 결국은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유행성 눈병을 예방하려면 비누를 사용해 흐르는 수돗물에 손을 자주 씻고 수건이나 컵 등 개인 소지품을 다른 사람과 함께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눈에 부종이나 충혈, 이물감 등이 있을 경우 손으로 비비거나 만지지 말고 즉각 안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현재로서는 이 방법이 최선의 방법이다.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서 눈병을 퇴치하는 수밖에 없다. 모든 학교와 교사, 학부모가 다같이 노력할때 유행성 눈병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최선을 다하는 예방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 교육자료 개발 등은 교육청에서 발벗고 나서 주어야 한다. 최선을 다하는 교육이 최고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말 많고 탈 많았던 교육위원 선거가 끝났다. 비록 대전의 경우 교육감 재선거가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서 내일 결선투표의 일전을 벼르고 있지만 어쨌든 시끄러운 교육위원 선거가 끝이 나서 그런지 홀가분하다. 필자가 살고 있는 대전광역시에서도 교육위원 선거를 둘러싼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몇 가지를 추려본다. 있을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2006년 대전광역시 교육위원선거의 특징중 첫 번째는 현직 교육위원의 몰락이다. 비록 현직자중 2명이 교육감에 출마하고, 1명은 등록무효(정당가입한 사실확인으로 무효처리)가 되어 여성교육위원 한 명만 재선에 성공하고 모두 줄줄이 고배를 마셨지만 말이다. 이것은 무조건 조직선거에 기대어 현직 프리미엄만을 가지고 선거를 한다는것에 대한 경종이 아닌가 싶다. 유행가 노래가사 처럼 있을때 잘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교육청이 처해있는 수많은 난제들을 조정하고 풀어주는 역할을 교육위원회가 했어야 했는데 그것을 제대로 받들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닌가 싶다. 새로 당선된 분들이 이러한 문제점을 집중제기하여 대폭 물갈이가 되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하지만 여성교육위원이 2명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새로운 교직단체 세력의 부상 대전에서는 2002년 교육위원으로 전교조 세력을 업고 당선된 사람은 없었지만, 2006년에는 단일후보 2명을 선거구별로 내보냈으나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이러한 경향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의 결정타는 부산발 “북풍”이 아닌가 싶다. 아다시피 전교조부산지회에서 북한역사책을 일부발췌하여 통일교재로 사용한것이 언론에 대서특필 되다보니 미사일발사로 인한 어수선한 시국과 맞물려 상당한 역효과를 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또한 이에 맞서 안티 전교조 세력의 합심으로 인해 교총출신 인사들이 상당수 당선되었다. 대전에서도 전 대전교총회장 출신 인사가 출마선거구에서 최다득표자로 무난히 당선 되었다. 조직이기주의에 함몰되어 학부모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조직의 호응도가 선거에 반영되지 않았나 싶다. 후보자 난립, 자질론 휘말리는 후보자들 후보자 난립의 원인으로는 역시 유급제일 것이다. 적게는 삼천만 원에서 오천만 원까지 유급제 교육위원이 되다보니 출마를 부추겼지 않았나 싶다. 더욱이 다음부터는 직선제가 기정사실되었으니 그래도 상대적으로 쉬운 현 마지막 간선제에 더 매달렸을 터이다. 특히, 대전지역에서는 현행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제60조, 제72조)에는 교육위원은 입후보 전 2년 동안 당적을 보유할 경우 후보자로 등록할 수 없도록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모 정당에 가입한 입후보자가 그대로 입후보한 3명이 있었다. 당연히 2명은 등록무효 처리가 되었고, 1명은 자진사퇴하였다. 더욱이 그중 한명은 현직 교육위원이었다. 또한 비당원확인서를 입후보 등록시 제출하였다고 한다. 더불어 선관위에서도 해당 당으로부터 이러한 사실을 시급히 조회하여 결과를 선거인단에게 통보했어야 했는데 투표 당일 새벽에 문자메시지로 보냈다니 사후조치가 미흡하지 않았나 한다.도대체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불비한 규정으로 인한 폐해 현 간선제로 인한 폐해는 리포터들과 언론에서 자주 거론해서 더 언급하지 않겠다. 현 제도의 불합리한 점으로 인하여 직선제의 도입 필요성이 더 커진 것이다. 그래서 교육인적원부에서 올 9월 정기국회에서 시ㆍ도 교육감 및 교육위원 주민직선제 실시를 골자로 한 교육자치제도 개선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기로 했다고 31일 밝혔다. 또한, 정치인(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 등)들에 비해 교육위원과 교육감은 현직을 사퇴하지 않고 출마가 가능하다보니 현직 프리미엄을 톡톡히 누리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것은 같은 출발선상에서 출발하지 않는 불공정한 게임이다. 앞으로 직선제가 된다면 관련규정이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교육에 참뜻이 있는 분들이 교육위원이 되어야 하지만 매회 되풀이되는 것이지만 구태는 계속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학교운영위원회에 내사람 심기와 정치인 뺨치는 흑색선전 등이 그것이다. 금품, 향응을 제공하다가 선관위에 적발되어 고발을 당한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또한, 소견발표회장에는 유권자는 거의 텅비고, 동원된 몇 명도 자기후보가 소견발표를 끝내자 썰물에 게 빠져나가 듯 그런 성숙하지 못한 행태는 정말 보기싫었다. 정책보다는 머릿수 동원을 기본으로한 구태의연한 선거운동이 가져온 폐단이 아닌가 싶다. 후보들이 정견을 제대로 홍보하고 펼칠 수 있는 그러한 방법도 제대로 갖춰놓지 않은것도 옥의티 였었다. 이번에 당선 되신 분들은 정말 교육에 참뜻을 두고 사리사욕을 가지지 않은 훌륭하신 분들이라고 믿고 싶다. 비록 전교조 후보 약세와 경력직ㆍ남성후보 강세로 요약되는 교육계의 '보수화 바람'에 걱정되는 바가 없진 않지만, 신구조화를 적절히 이뤄서 학부모와 학생들이 바라는 그러한 교육입국이 이루어길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어제 낙선한 인물들처럼 언제든지 학부모와 시민들 마음에서 버림받을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눈이 떠지지 않는다. 어머니 성화에 일어나긴 했지만 눈꺼풀이 무겁다. 한동안 눈을 감은 채 앉아 있다. 밤새 더위와 모기에 시달려 뒤척거리면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했으니 눈이 쉽게 떠지지 않는다. 이른 아침인데도 열대야의 후끈한 더위와 끈적거리는 습기가 온 몸을 감싼다. 방문의 문종이를 떼어내고 붙인 모기장(방충망)이 어설프고, 사람냄새를 맡은 문밖에 붙어있던 모기들이 문을 여닫는 사이에 들어오곤 한다. 입으로 불어 살포하는 살충제를 뿌리기도 하지만 틈새 어디론가 들어오고 만다. 잠결에 쫓아 보지만 어쩔 수 없다. 아침이면 배가 터질 만큼 몸이 무거워진 모기들이 잘 날지도 못하고 벽에 붙어있다. 모기에 물린 가려운 상처를 긁적거리면서 눈을 비비면서 밖으로 나온다. 들녘 마을에 먼동이 트면서 아침놀이 발갛고 붉은 해가 꽤 빠른 속도로 지평선을 뚫고 머리를 내민다. 나뭇가지에서는 참새들이 짹짹거린다. 푸른 벼 잎자락에 맺힌 이슬방울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벼 잎 끝과 끝을 이은 거미줄에도 이슬방울들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른 새벽부터 벼논을 둘러본 이웃집 아저씨의 바짓가랑이가 이슬에 젖어 축 늘어졌다. 참새 한 무리가 앞길을 막아설 듯 길바닥에 내려앉는다. 둘레둘레 찾아 손에 잡히는 조그만 돌멩이를 집어 방정맞게 뛰어 다니는 참새 무리를 향해 던진다. 놀란 참새들 후다닥 날아 저편 나무속에 몸을 숨긴다. 동네의 초등학생들 모두 모여서 맨손체조를 한다. 40여 년 전의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때다. 마을마다 ‘소년단’인가 ‘애향단’인가를 조직했었다. 6학년 단장 학생의 인솔로 2열로 줄을 맞춰 등교하던 때다. 마을을 상징하는 깃발을 펄럭이며 단체로 등교했었다. 여름방학 때는 매일 이른 아침 일정한 장소에 모여 아침체조를 한다. 단장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어설픈 동작으로 체조를 한다. 동네 진입로 길가의 잡초를 뽑기도 하고 하수로를 막고 있는 오염물체를 제거하기도 한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를 치우기도 한다. 출석부에 결석되지 않기 위해서 기를 쓰고 참석하고 억지 봉사활동을 한다. 공식적인 할 일을 마치면 일부는 집에 가고 남은 학생들끼리 아침 놀이를 한다. 무더운 날씨라서 아침이지만 금방 땀에 옷이 젖는다. 그때는 시골 마을마다 어린이들이 무척 많았다. 수십 명이나 되었다. 온종일 시끄럽게 노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멱감는 수로에는 많은 어린이들이 풍덩거린다. 얼굴이고 몸이고 온통 구릿빛이다. 들녘에는 물놀이하기에 마땅한 깨끗한 시냇물이 없다. 농수로만 있다. 약간만 풍덩거려도 흙탕물이 되어버린다. 도저히 물 속에서 눈을 뜰 수 없다. 눈을 뜬다고 해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더위가 간다. 아니 추워지기까지 한다. 입술이 파래지고 햇빛이 필요해진다. 둑에 나와 몸을 말린다. 뜨거운 햇볕에 몸이 더워지면 다시 물에 뛰어든다. 여름방학 때면 으레 부과되는 특별한 과제가 있다. 퇴비 만들기다. 주변의 풀을 베어 두었다가 개학날 가져간다. 새끼줄로 꽁꽁 묶어 긴 줄에 매달아 질질 끌고 간다. 학급별로 지정 장소에 퇴비를 쌓는다. 다른 반과 경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지 않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한다. 이기기 위해서 짚다발까지도 끌고 와서 쌓는다. 왜 방학 때마다 퇴비를 만들어 오는 과제를 냈을까. 실습지에 사용하기 위해선지, 퇴비의 필요성을 교육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선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또 단골 과제가 있다. 식물채집과 곤충채집이다. 요즘은 자연보호를 위해서 채집하라는 과제는 제시하지 않는다. 주변의 온갖 잡초를 뿌리째 뽑거나, 여러가지 나뭇잎을 따서 책갈피에 넣어 둔다. 잠자리 방아개비 등 여러 곤충들을 잡아 상자 속에 곤충핀으로 꽂아 둔다. 말리지도 않고 약품처리도 안했으니 곧 썩어버린다. 식물도감이나 곤충도감 같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책이 없으니 이름도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다. 그저 자연을 훼손하기만 했던 것이다. 그래도 그때는 웬 곤충이 그리도 많았는지 모른다. 참으로 자연스런 자연이었다. 자연 속에서 노는 어린이들도 자연의 일부였다. 자연과 벗 삼아 놀던 어린 시절이 더욱 좋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인공적인 환경 속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이 측은하기 때문이다. 전자화면 및 전자음향에 찌들어 자연과 놀 기회가 적어졌기 때문이다. 먼 미래의 인류는 머리만 커지고 운동능력을 상실할 것이란 우려가 현실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랄 때 몸도 마음도 강건해 질 수 있다.
“말도 많다” “언론의 빅뉴스도 많다” 등등이 우리 시대의 교육의 언저리가 아닌 지 되새겨 본다. 어디를 쳐다보아도 교육의 길은 보이지 않고, 어느 곳을 찾아보아도 한국 교사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 것이 오늘인지. 한국 교사의 진정한 얼굴은 어디에 있는 지 그것이 의심스럽다. 50대는 한국 교사의 얼굴인가 대학을 졸업하고 교단에 발을 내디디면 그 때의 나이는 남성은 30대에 접어들고, 여성은 20대 후반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이때부터 교사의 길을 걸으면서 5년 간은 학생 지도과 교재 연구에 몰두하는 시간이 되고, 그 후 5년은 가르침에 요령을 터득해 가는 시기이기도 하고, 교사로서의 길을 조금씩 생각해 보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남성은 40대에 가까워지고, 여성은 30대 후반으로 접근하게 된다. 이렇듯 교직에 발을 뻗고 나면 세월은 어느 새 40대의 길로 접어들어 자신의 뒷걸음을 회상하게 된다. 이때부터 진급에 대한 자신의 위상을 찾기 시작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것도 중히 여기면서 동시에 자신의 실리도 추구해 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불혹이라는 나이는 자신을 주변에 조화시켜 나가면서도 자신만을 위한 길을 가야 하는 시기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보면 지천명이라고 하는 50대에 접어들면서 자신의 야망도 어느 정도 정해지든가 아니면 정체되는 길로 가는가 하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또 나이 어린 후배 교사들이 들어옴으로써 그들에 대한 삶의 본보기를 보여 주어야 할 나이이기도 하다. 그래서 행동도 말도 참으로 조심스러워져야 한다. 50대는 교육의 간판스타의 위상에 들어야 한다. 이 시기는 교육계에 발을 내 디디고 난 후 정상의 위상을 자랑하는 시기이다. 이순이라는 나이는 이미 정리를 하는 시기이기에 50대는 교육의 최정상의 위치라 할 수 있다. 학생을 지도하는 인성교육에 있어서나 교과서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나 최상의 베트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50대는 이 시대의 교육계의 간판 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썩고 부패했다고 퇴출당하고 정리 해고의 대상 1호라는 보이지 않는 오명까지 입에서 입으로 오가는 우리의 현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존경받아야 할 대상이 존경은커녕 지탄의 대상으로 간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교직을 수행하는 데 방만한 자세로 임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미래를 내다볼 줄 모르는 현실안일주의를 추구만 했기 때문일까 그 답은 어디에 있을까? 50대에게 물어보면 시대를 탓하고, 40대에게 물어보면 교육부를 탓하고, 30대에게 물어보면 사람을 탓하고, 20대에게 물어보면 실력을 탓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국 교사의 얼굴은 부활의 50대다 세월을 안고 달려온 지천명 교사! 그들이 한국의 고난의 짐을 다 헤쳐온 시대의 얼굴이다. 6.25 이후의 암울한 가난과 배움의 황무지에서도 그래도 배움을 추구한 세대들의 집단이 50대다. 그들은 신세대의 전자 장비를 잘 다루지 못해도 신세대의 신지식을 고루 갖추고 있지 않아도 교육이 무엇이며, 진정한 삶의 실용 교육이 어떤 것인지는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에서 신세대에 비해 새로운 부활을 꿈꾸고 어려운 상황도 극복해 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2006년 8월 9일 저녁 9시 35분. 좀 늦은 시간인데 전화가 울리고 아내가 받아들더니, 얼른 송화기를 막고서 "여보 광주 선생님이신 것 같은데요."하면서 전화를 바꾸어 주었다. "자주 전화 드리지도 못한 제자에게 이렇게 친히 전화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하는 인사와 수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은사님은 "치우려던 월간 문학에서 자네 작품을 발견하고 다시 읽어보았네. 7월호를 치우려고 하다가 우연히 펴진 쪽에 바로 자네의 작품이었네. 난 시조 부분과 시 부분만 읽고 치우곤 하였는데, 덕분에 자네 작품을 읽게 되어서 전화했네."하시면서 "요즘 동화 작품에서는 전래 동화 같은 짜릿한 감동 감화를 주는 작품이 별로 없어, 자넨 동화를 쓰면서 무엇에다 기준을 두고 쓰는가? 다시 말해서 자네 동화의 문학정신 말일세."하시는 것이었다. 너무 갑작스런 질문이시고, 또 은사님의 말씀이라 함부로 답 할 수도 없는 그런 질문이었지만, 내가 평소에 가진 나름대로의 기본 정신이 있기에 서슴없이 "선생님, 제가 교직에 몸담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역시 동화란 [교육]을 떠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문장이어야 하지만 바탕에 흐르는 정신은 가르침을 준다는 것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하고 답했다. "그렇겠지. 자네 작품에서도 그런 냄새가 나대 만은...." 하시더니 "그런데 자네 작품에 쓴 말 중에 [맞는 이야기였습니다.]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거 다시 한 번 살펴보게, [맞는]은 현재 진행형이어서 [맞은]으로 써야 하는 것이 아니었는지? 그리고 이란 말이 의 준말이라고 할지는 모르지만, 역시 보다는 이 더 잘 맞는 말은 아니었을까?" 하시는 것이었다. 나도 한글학회 정회원이 될 정도로 한글에 대해서 자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우리 은사님은 80고령이 되신 오늘까지도 우리말에서 아직도 쓰이는 일본투의 말,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이 뜻도, 출처도 모르고 함부로 쓰고 있는 일본말에 대한 연구를 계속 하시고 계시는 분이시다. 문학과 한글운동이라는 두 가지 점에서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동지적인 입장에서 네게 주신 가르치심이었다. 이어서 "라는 말을 아직 젊은 시인이 썼는데, 이건 일본 사무라이들의 용어일뿐 우리말이 아닌데, 유식한 척 자랑스럽게 쓰고 있더란 말일세, 어디 그뿐인가 , 같은 말에서 쓰이는 [제]는 일본식이라는 걸 모르고 쓰고 있는 것일세. 일본 사람들은 이런 행사를 치르기 전에 반드시 제사를 올리고 하기 때문에 쓰는 말이고, 우리는 이라고 써야 하네, 중국, 대만, 북한에서조차 [축전] 이라고 쓰고 있는데 우리만 [축제]란 말일세. 심지어 조계종 본사에까지 전화를 해서 따지고 고치도록 이야기 한 적도 있네."하시면서 몇 가지 더 일본식 말을 이야기하시고 나서 "자네 문학의 정신을 정립하소. 그리고 전래동화의 맛을 느끼는 그런 작품을 쓰도록 하게."하시는 가르침으로 전화를 마치셨다. 1956년 6학년 담임을 맡아 주셨던 50년 전의 은사님께서 이제 정년 퇴임을 한 제자에게 이렇게 전화를 주시고, 가르치심을 주신 것이다. 난 이렇게 자랑스러운 은사님의 6학년 때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어서 신문에 기고를 했던 적이 있었고, 그것이 KBS 1TV에서 [TV 동화 : 행복한 세상]에 방송이 되기도 하였었다. 참 스승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신 이야기는 이라는 제목으로 2005년 2월 26일에 방송이 되었었다. 진정으로 참 스승님이신 양동기 은사님의 건강을 빌면서, 이렇게 자랑을 할 수 있는 은사님을 둔 제자는 이 되지 못하였음을 엎드려 사죄 드리고 싶다.
조금은 과장된 표현일지 몰라도, 학교에서 교장이 '왕'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한 나라의 우두머리였던 왕이 누리는 절대 권력에 일개 학교 교장 자리를 견줄 수야 없지만, 학교라는 특수 집단 속에서 교장 자리는 가히 절대적이라 할 만큼 힘을 가진 자리였고 그에 따라 교장 개인이 누리는 위세 또한 막강했던 것이다. 그래 그 시절, 교장이 갖고 있는 막강한 힘 앞에서 쩔쩔매는 교사들의 움츠러든 모습을 떠 올리노라면, 생사여탈권을 손에 쥔 왕 앞에서 잘 보이거나 살아남으려 머리 조아리는 신하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교장 자리가 그렇게 대단하다 보니, 뜻 가진 사람이라면 너도나도 교장 한번 해 볼 욕심에 아이들 가르치는 본업보다는 승진에 필요한 점수 따기에 혈안 되기 일쑤였다. 상전벽해라 했던가. 세상이 좋아지고 또 좋아져서 한 나라의 대통령도 자신이 가진 권력에 상응한 힘의 사용에서 한계를 느낄 정도로 백성들의 힘이 커진 나머지 옛날처럼 고분고분 따라주지 않으니까, "못해먹겠다"고 투정하는 판이 되다보니 학교인들 별 수 있겠는가. 교장 노릇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권위의 추락을 맛볼 수밖에. 일례로, 도덕적 권위나 전문적 지식 없이 구시대적 관료의식과 형식적 권위로만 조직을 이끌고자 할 경우, 목소리가 한껏 커진 선생님들로서는 아무도 그 지시나 명령에 순순히 따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 관리자의 잘못을 지적하고 개선과 개혁을 당당히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상황이 이렇게 바뀌다 보니 학교 책임자로서 교장의 말이 평교사들에게 잘 먹혀들지 않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고 그로 인해 소신 있는 교육행정을 제대로 펼칠 수 없는 경우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래 옛날에는 서로 해보려고 달려들던 그 대단한 교장자리도 요즘은 '못 해먹을'자리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시대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관리자는 조직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과감히 부정되고 비판받아 마땅하기에 능력 없고 무소신한 관리자로서의 교장들까지 덮어놓고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문제는 낡은 계급적 권위나 질서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기존 관리자에 대한 불신풍조가 학교사회를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조직으로 거듭나게 하는 발전적 지양의 형태로 나아가기보다 이기적 보신과 현실적 안주를 우선하는 일부 교사들의 자기합리화 세태를 조장하는 등 예기치 않은 부정적 폐해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옛날처럼 우리 교단이 본연의 염불보다, 승진이나 치부 같은 잿밥에 눈이 어두워 서로 교장교감 되려고 지나치게 경쟁하고 그로 인한 조직 또는 개인간의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결코 방치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경쟁체제 속에서 스스로의 능력을 키워 자기성장을 도모하는 차원의 경쟁유인책은 교육발전을 위해서도 장려되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최근의 일선 교단분위기는 공교육위기나 학교붕괴, 교권추락과 같은 현실적 위기와 맞물려, 위기타파를 위해 무언가를 해보려는 의욕과 고민보다는 그럭저럭 이 혼란과 무질서적 상황을 넘기고 보자는 현실안주적인 시각과 명철보신의 태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래 웬만큼 가진 것 있고 먹고 살만한 경우, 일만 많고 해먹기 힘든 교장 교감 되려하기보다는 주어진 시간, 교실에 들어가 수업이나 해주면 임무를 다한 것으로 여기는 '편한 교사'로 살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학년 초에 학급 담임을 임명하고 싶어도 스스로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고, 부장 보직교사를 임용하고 싶어도 과중한 업무에 책임만 무겁다보니 해 보겠다 덤벼드는 사람 아무도 없는 나머지, 한 사람씩 붙들고 담임 좀 해 달라, 부장 좀 맡아 달라며 교장 교감이 사정하고 다니는 진풍경이 펼쳐지기까지에 이르렀다. 지나친 기우일지는 몰라도 이대로 가다가는 일할 사람 부족으로 학교기능이 정지될 수도 있고 학교무용론이 대두될까 두렵기조차 하다. 교장 교감의 허세적인 권위, 독선과 위압적인 태도는 바로 잡혀져야 마땅하고 그런 관리자가 있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과거에 얽매인 일부 교장 교감의 구시대적 작태를 청산하여 새로운 학교 지도력을 구축하는 일과는 별도로 어떤 이유로건 학생교육에 대한 선생님들 개개인의 책임과 열정의 불길이 식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날 학교관리에서 드러나는 지도력의 위기가 단순히 교장이나 교감 같은 관리자 그룹의 무능이나 잘못에 있다기보다, 마땅히 해야 할 직분을 소홀히 한 채 편하게만 살려는 일부 이기적인 사람들에 의해 충동질된 측면이 있다는 지적에 유념하면서, 오로지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교육 본연의 목적을 중심으로 학교 구성원 모두의 공감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지도력의 구축이 이루어져서, 흔들리는 학교교육이 바로서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어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얼마 전 교육위원으로 당선된 J 교육장의 친필 편지다. 그의 글씨 처음으로 보았다. 며칠 전, 하계 교감연수회에서 있었던 그의 말이 떠 오른다. 본인 스스로 자신의 글씨체를 악필이라고 말한다. 지금보니 악필은 아니고 개성이 있다. 자세히 보니 정감이 가는 글씨체다. 그는 특강에서 본인의 경험을 털어 놓는다. 초등학교 때 하도 글씨를 못 써 담임 선생님께서 겨울 방학 숙제로 글씨 쓰기를 내어 주셨다고 한다. 자기 나름대로 악필을 고쳐 정성껏 과제를 해 갔는데 어떻게 되었을까? 담임 선생님의 한 마디 말에 그는 악필 교정을 포기하고 말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것, 네가 쓴 것 아니지? 네가 이렇게 잘 쓸 수 없어! 누가 대신 써 주었니? 솔직하게 말해 봐!” 만약, 담임 선생님이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너, 정말 잘 썼구나! 그래 너도 잘 할 수 있구나! 이렇게 네가 글씨를 잘 쓰는 줄 선생님은 미처 몰랐단다. 앞으로 계속 잘 할 거지?” 담임 선생님의 한마디 말이 그에게 있어 악필과 명필의 분수령이 되었던 것이다. 전자가 그에게 좌절과 포기, “맞아, 역시 나는 안 돼!”라는 실망감을 준 데 반하여 후자는 희망과 자신감, “그래, 나도 할 수 있어!”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 주는 것이다. 선생님의 말씀 한 마디가 학생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다. 학생에게 잠재된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인정하는 그 한마디, 그것이 우리의 학교 현장에서 절대 필요한 것이다. 학생뿐이랴. 몇 년 전 정년퇴임한 L 교육장. 그는 도교육청 장학사 시절, 교육감 훈치사를 담당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어른도 칭찬을 좋아한다고 한다. 한 번은 교육감 치사를 써서 결재를 받는데 초안 문구를 교육감이 고치더라는 것이다. 가만히 보니 고친 글이 더 좋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감님, 그렇게 고치니 글이 더 자연스럽고 좋아졌네요.”라고 했더니, 교육감이 미소를 지으며 “그래, 정말 좋아졌어? L 장학사 글 보는 안목이 높은데….”라고 칭찬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 이후론 교육감과 염화미소가 통하여 훈치사 결재가 원만히 이루어졌다고 한다. 칭찬은 상대방을 소중히 여기고 그의 능력을 인정하는 긍정적 에너지로 가득 찬 말이다. 격려는 어려움에 처한 상대방에게 용기를 복돋워주고 다독거려 주는 말이다. 또한 칭찬은 인간관계를 원만히 하고 삶을 윤택하게 하여 주니 칭찬의 ‘말 한마디’는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필자도 교사 시절, 전문직 시험에 몇 차례 떨어져 의기소침해 하고 있을 때, 도교육청 모 장학관이 “이 부장, 힘 내! 이 부장은 충분히 할 수 있어!”하면서 어깨를 두드려 준 적이 있었다. 그 덕분인지, 재기에 성공하여 장학사를 거쳐 오늘 여기까지 와 있다. 그런데 전문가들에 의하면 격려가 칭찬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한다. 칭찬은 결과만을 놓고 평가하는 것이지만 격려는 상대방이 일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의지를 북돋아 주고 행동의 동기를 불러 일으켜주기 때문에 더 효과적이라 한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칭찬과 격려가 활기차게 살아 움직였으면 한다. 그 칭찬과 격려의 ‘말 한마디’에 우리가 사는 곳은 즐겁고 행복하고 살맛나는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요즘 매스컴에서 접한 기사 중 교육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씁쓸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8.15 경축식이 열렸던 날 행사장인 세종문화회관에 들여보내 달라고 수백 명이 항의소동을 벌였다는 소식이다. 내용인즉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좌석은 3천48석인데 3.1절 행사 등 평소 행사 참석률이 40% 밖에 안 되는 것을 감안한 행자부가 정원보다 훨씬 많은 8천6백20장의 입장권을 보냈고, 행사 참석인원이 적어서 고민하던 행자부가 8.15 경축식부터 자원봉사 점수 인정제도를 도입하자 예상 밖으로 학생들이 많이 몰렸다는 것이다. 광복절 기념식도 참석하고 자원봉사 점수도 따려고, 즉 ‘꿩도 먹고 알도 먹으려고’ 한 시간 넘게 기다리던 초중고 학생 수백 명이 결국 입장권을 들은 채 발길을 돌려야 했고, 이에 학부모들이 아이들은 국민도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단다. 행사장 가득 사람을 모으려던 당국의 무리한 욕심이 광복절 경축식의 참 의미를 퇴색시키기도 했지만 「애교형ㆍ구걸형ㆍ항의형ㆍㆍㆍ‘방학 봉사활동에도 치맛바람’」이라는 기사와 맞물려 봉사활동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기사에 의하면 '자녀대신 봉사활동을 하게 해달라고 애교를 부리거나, 봉사활동 확인서에 그냥 도장을 찍어달라고 구걸을 하거나, 어려운 일을 시킨 것과 일한 시간보다 많은 시간을 확인해 주지 않는 것을 항의하는 엄마들이 많다'는 얘기다. 봉사활동 점수는 학교 내신 성적에 반영되고, 향후 진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뜻으로 만든 제도이더라도 나쁘게 받아들이면 이렇게 곳곳에서 부작용을 낳는다. 자기 자식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만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식 사랑과 교육열은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한다. 절대 내 자식만은 기죽이지 않겠다고 몇 십만 원짜리 명품 가방을 선뜻 사주는 게 우리나라 부모다. 아이들은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하면 편안하게 자원봉사 점수를 따면서 ‘꿩 먹고 알 먹는다’는 것을 생각해 낼만큼 영악하지 않다. 학생들이 노인정, 요양원 등 불우시설 보다 시청, 경찰서 등 일하기 편한 곳을 봉사활동 장소로 선택하는 것도 부모의 과잉보호 때문에 일어나는 기현상이다. 이쯤에서 세계최고봉 히말라야에서 쓰레기 수거활동을 하고 있는 ‘에베레스트 클린마운틴 원정대’를 생각해보자. 산악인들은 ‘산이 있어 산에 오른다’고 말한다. 또 전문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이 평생의 꿈이기도 하다. 하지만 ‘에베레스트 클린마운틴 원정대’는 목적이 다르다. 온갖 고생을 다하며 에베레스트 등정의 마지막 캠프인 캠프4(8000m)까지 오르고도 정상정복에 욕심을 부리기는커녕 히말라야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깡통 등의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정말 아무나 생각할 수 없고, 실천하기도 어려운 행동이라 가슴에 와 닿는다. 이렇게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나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작은 이익을 챙기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보다 여럿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큰 인물로 키우는 게 자식사랑을 실천하는 제대로 된 교육방법이다.
학교마다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이 다가온다. 이맘때면 학생들은 물론 부모들까지 덩달아 손길이 바빠지기 마련이다. 밀린 방학숙제 때문이다. 사실 개학이 임박해서 일기를 비롯한 밀린 숙제를 하느라 밤을 새거나 부모형제까지 모두 나서 방학숙제를 도와주던 모습은 나름대로 정겨웠다. 그러나 이제는 학생들이 방학숙제 때문에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최근 형식적으로 제시되던 방학숙제가 그 양과 질에 있어서 개선되고는 있지만 방학숙제 결과물을 가지고 시상도 하고 섣불리 수행평가에까지 반영하는 어리석음은 이제 없어야 할 것 같다. 숙제를 스스로, 성실히 한 학생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고 바보가 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독후감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등의 단순한 ‘방학숙제 베끼기’는 이제 고전적인 수법이 된 것 같다. 인터넷에서 안 되는 게 없다는 세상, 이제는 혼자 하기 어려운 방학숙제를 도와주는 수준을 넘어 아예 숙제를 대행해주거나 자기가 한 숙제를 사이트에 올려 다른 사람이 다운받을 수 있게 하면 돈을 주는 얄팍한 상술까지 가세함으로써 학생들 간에 숙제를 사고파는 신종 ‘숙제매매’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터넷의 한 숙제도우미 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골치 아픈 방학숙제, 하루 만에 끝내자!”라며 학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영화감상문을 비롯한 각종 글쓰기나 만들기 숙제 등은 말할 것도 없고 하물며 탐구보고서나 포트폴리오 등 장시간을 요하는 것까지 숙제라면 안 되는 것이 없다. 신기한 것은 가족과 제주도를 여행하고 일기형식으로 작성한 초등학교 숙제, 동반 족사항만 올리면 해당 학년 수준에 꼭 맞는 기가 막힌 여행보고서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글의 수준은 물론 포토샵으로 사진까지 완벽하게 만들어주니 제주도는 실제로 가지 않았어도 아무 지장이 없었다. 독후감 등 간단한 글쓰기는 건당 1만원, 보통 5만∼6만원만 주면 가족신문, 체험학습보고서, 각종 수집, 발명품 제작까지 아무리 골치 아픈 숙제라도 ‘한 방에’ 끝내주니 요즘 아이들과 학부모는 정말 '행복한(?)'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짝퉁숙제' 유혹은 꼬박꼬박 시간맞춰 일기를 쓰고, 마음 졸여가며 성실하게 탐구한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하는 등의 대부분 선량한 학생들까지 병들게 하고 있다. 아이들을 신종 ‘숙제매매’ 시장에 내몰고 얄팍한 상술로 돈을 버는 인터넷 업체 양산만 부추기는 비교육적인 방학숙제는 차라리 없애는 편이 낫다. 이제 개학하여 숙제대행업체에서 돈주고 산 '짝퉁숙제'를 골라 상도 주고, 이를 근거로 수행평가에도 반영하는 '철없는' 선생님들을 보며 학생들과 부모는 어떤 생각을 할까. 베끼기가 잘못이란 것조차 모르고 어린 아이들이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방학을 오히려 ‘한몫’ 챙길 수 있는 기회로 벼르는 세태, 이 같은 현실을 알면서도 숙제를 도울 수 없는 맞벌이라는 핑계로 은근히 묵인하는 학부모들 모두 일그러진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오늘 아침은 제10호 태풍 우쿵(WUKONG)의 영향을 받는 날이라 신경이 쓰입니다. 3학년 학생들이 보충수업을 하러 오기 때문입니다. 무사히 하교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물론 아무런 피해도 없었으면 하구요. 어제 저녁에 감동적인 장면을 어느 TV에서 보았습니다. 도장의 달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아닙니다. 36세의 젊은 분이 양손을 잃었습니다. 양발로 도장을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돌로 된 도장이었습니다. 글씨도 세련되어 보였습니다. 휴대폰도 발로 받습니다. 돈도 발로 받습니다. 집에 와서 이불도 발로 갭니다. 손으로 개는 것 이상으로 가지런히 곱게 개었습니다. 양치질도 발로 합니다. 그분의 얼굴을 보니 표정이 밝았습니다. 또 한 분은 역시 우리나라 사람은 아닙니다. 연세가 많으십니다. 팽이의 달인이었습니다. 팽이를 멀리 던져도 정확하게 목표지점에 떨어져 균형을 잘 잡고 돌아갑니다. 신기할 정도입니다. 이는 저에게 큰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의 능력은 무한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더군요. 나이가 많고 적음이 아니었습니다. 양손, 양발을 다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하려고 하는 의지만 있다면 내 속에 잠재해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더군요. 사람의 능력은 무궁무진하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더군요. 우리 학생들은 어떻습니까? 도장의 달인, 팽이의 달인보다 훨씬 좋은 환경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훨씬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무엇이든 못한다고 합니다. 무엇이든 못해 냅니다. 무엇이든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무엇이든 힘들다고 하면서 자포자기 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부에 사활을 걸고 공부에 몰두합니다. 하지만 일부의 학생들은 어떠합니까? 공부가 힘들다고 그만 주저앉습니다. 체질에 맞지 않다고 합니다. 성적이 오르지 않으니 쉽게 그만 두려 합니다. 경제사정이 어렵다고 포기합니다. 공부할 형편이 안 된다고 포기합니다. 그렇다고 다른 숨은 자질을 찾아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 학생들이 곱게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학생들 보면 어떻게 하렵니까? 내버려 두시렵니까? 아니면 두 사람의 달인처럼 해낼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합니까? 우리학교에도 공부가 취미 없는 학생들 중 어떤 이는 일찍부터 자기의 자질과 무한한 가능성을 찾아내어 그걸 갈고 닦으려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답게 보입니까? 공부가 적성이 아니라 머리 손질하는 것이 적성에 맞다고 하여 일찍부터 미용학원 가서 헤어스타일 연구하고 머리 다듬는 일 연구하는 일이 얼마나 귀엽게 보입니까? 어떤 이는 음식요리가 적성에 맞다고 하여 숨은 자원을 캐냅니다. 일찍부터 요리학원 가서 전문지식을 배우고 요리실습하고 우리 음식에 맞는 전통음식을 만들어내려고 연구합니다. 실습합니다.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또 어떤 학생은 미술이 적성에 맞다고, 무용이 적성에 맞다고, 테니스가 적성에 맞다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찾아 현실화시킵니다. 이들을 우리들은 격려하고 힘을 실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학생들이 많았으면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걸 잘 찾아내고, 캐내고, 갈고 닦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하는 사람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성공하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위의 두 분의 피눈물 나는 노력의 과정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냥 적당히 노력했겠습니까? 양손이 없고, 나이가 많고 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환경을 탓하지 않고 조건을 탓하지 않고 자기의 무한한 가능성만 믿고 피눈물 나는 노력 끝에 이루어낸 값진 선물 아니겠습니까? 우리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임을 깨우쳐 주어야 할 것 같네요. 공부가 되면 공부, 컴퓨터가 되면 컴퓨터, 운동이 되면 운동, 요리가 되면 요리, 머리가 되면 머리, 손이 되면 손, 발이 되면 발로 하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찾아내야 합니다. 그것을 할 수 있도록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남이 하는 것 따라하지 말고 나만이 가진 특기, 적성, 가능성, 능력을 찾고 계발해야 합니다. 자기가 무엇에 가장 자신이 있는지는 고등학생쯤이면 본인 자신이 제일 잘 압니다. 그것이 남에게 비웃음거리가 되더라도, 별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해도 그것 해야 합니다. 선택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환경을 탓해서는 안 됩니다. 조건을 탓해서도 안 됩니다. 나이를 탓해서도 안 됩니다. 그걸 핑계거리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그건 모두 자신의 가능성을 계발하는 장애물입니다. 오직 자기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 도장의 달인, 팽이의 달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생각하면서 파란 코끼리를 꿈꾸도록 해 주었으면 합니다. 세계적인 창의력 집단 월트 디즈니 이매지니어의 성공 비결을 담은 '파란 코끼리를 꿈꾸라'(월트 디즈니 이매지니어 일동 지음,이상원 옮김,용오름)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새로움을 쫓아라-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하며 즐거움을 느껴라. △놀라움을 찾아라-나비와 물방울 등 평범한 것에서 놀라움을 발견하라. △연결을 지어라-다른 눈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볼 수 있다. △수시로 변신하라-소방수가 됐다가 왕자로 변신하라. △꿈을 꿔라-온갖 엉뚱한 상상을 하며 가능성의 신세계를 열어라.” 우리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하며 즐거움을 느끼도록, 온갖 엉뚱한 상상을 하며 가능성의 신세계를 열도록 ‘새로움을 쫓아라, 놀라움을 찾아라, 연결을 지어라, 꿈을 꿔라'고 말해 보면 어떨까요?
지난해 8월 29일, 서울시 교육청에서 이런 내용을 발표하여 주요 언론에 기사화가 된 적이 있다. '금년 말(지난해 이므로 2005년말을 이야기 하는 것임)까지 시내 모든 초·중·고등학교의 교실에 최신 천정형 냉·난방 기기를 설치'라는 제하의 기사였다. 많은 학교의 학생들과 교원들이 잔뜩 기대를 걸었었다. 실제로 그 당시에도 일부 학교에서는 천정형 냉·난방 기기가 설치된 학교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이후 추진상황은 감감 무소식, 도리어 금년 들어서는 '좋은 학교 만들기 자원학교'를 선정하여 일부의 학교에만 예산들 투입하고 있다. 그 학교들도 시설 개, 보수에는 예산을 사용하지 않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이 원하는 사업에는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미 개학을 한 학교들의 요즈음 현실은 정말 정상적인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교실 천정에서 돌아가고 있는 3-4대의 선풍기로는 무더위를 이기기 어렵다.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땀을 뻘뻘 흘리는 학생들로 가득찬 학교의 교실에서 정상적으로 수업을 한다는 것은 보통의 인내를 가지고는 어림없는 일이다. 주변의 학교를 살펴 보아도 지난해에 발표한 사업이 진행된 학교를 찾기 어렵다. 교실환경개선을 하겠다고 발표만 해놓고 시행하지 않고 있는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이에 대한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이미 교사들은 지난해의 발표를 잊고 있었다. 언제 그런 발표가 있었느냐는 반응이다. 그런 발표가 있었더라도 믿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공교육이 부실하다고 난리법석이지만 이런 것 하나만 보더라도 여건이 완비되지 않았다는 것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학원가면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데, 학교는 왜 이러냐'는 이야기를 자주한다. 교사들만 보면 에어컨 설치는 언제 하느냐고 묻곤 한다. 그 당시 서울시 교육청의 발표는 냉·난방 시설만이 아니었다. 교실의 조명을 현재 150룩스 기준에서 300룩스로 향상시키는 사업도 함께 진행한다고 했었다. 그 문제 역시 감감 무소식이다. 책임지지도 못할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한 이유를 모르겠다. 그것도 발표한지 1년여가 지나고 있다. 현재의 추세라면 금년 말까지도 사업 진행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얼마전 학교평가관련하여 학부형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중 학교에 요구하는 사항에 대해 어느 학부형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시내버스만 타도 에어컨이 설치되어 쾌적하고 시원한데, 학교교실에 에어컨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학교 교실에 에어컨을 설치해 주십시오.' 지난해에 서울시교육청에서 발표한 내용을 확인하시려면 여기를클릭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