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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박경민 | 역사 칼럼니스트 cafe.daum.net/parque 최초의 종교개혁과 불교 기원전 15세기 무렵 인도에 침입한 중앙 아시아의 아리안 족은 기원전 5세기경에 브라만교를 완성시켰다. 원시 브라만교가 자연숭배적 다신교에서 점차 인간문제로 종교적 관점이 옮겨짐에 따라서 신들의 성격도 달라지게 되었으며 형식적인 종교의식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개혁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왜냐하면 카스트 제도의 최상위 그룹에 있었던 브라만 계급이 지식을 거의 독점하고 자신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 일부러 종교의식을 복잡하게 함으로써 종교를 민중으로부터 멀게 하는 형식주의로 빠져들었기 때문이었다. 점차 브라만교의 종교적 권위가 무너지면서 인도에서는 종교개편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바로 불교와 자이나교의 등장과 브라만교에서 힌두교로 변화되는 3대 종파운동으로 나타났다. 석가가 활동했던 시기가 기원전 5세기 전후니까 중국에서는 공자, 그리스에서는 소크라테스가 활약하여 세계는 이미 철학의 융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석가가 태어난 인도는 당시 문명 선진국(인더스문명)이었으므로 고대인도 철학사상이 당시의 브라만교에서 무르익고 있었던 것이다. 석가는 깨달음을 얻고 설법에 나서 출가한 수도승을 모아 불교를 창시하였다. 그의 가르침은 카스트 제도의 부정에서 출발하였다. 따라서 불교도들은 베다의 가르침이나 종교적 계급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불교의 승려는 브라만교와는 달리 모든 계급에서 나왔다(그러나 실제로는 상위 세 계급의 승려가 인정되고 있다). 그 대신 승려들은 각지를 돌아다니며 걸식생활을 해야 했는데, 특히 다른 사람이 버린 폐품을 이용하려고 노력했고 식물에서 의학적 효력을 발견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였다. 최상위의 승려는 보통 귀족과 학문을 대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은 중요한 사원에서 부양되며 이러한 사원의 대부분은 군주들로부터 충분한 기부금을 받았다. 석가시대 이후 몇 세기 동안은 불교도 브라만교 취급을 받았던 것 같다. 마치 그리스도교도 초기 얼마 동안은 유대교의 일파로 취급되었듯이 말이다.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불교는 국가의 보호를 받으면서 인도에서 융성했으나 교단이 커지자 잇달아 분열이 일어났다. 기원 전후에는 '소승(小乘)'과 '대승(大乘)'이라는 양대 세력으로 나뉘어지는 커다란 고비를 맞이하였다. 석가시대의 불교를 '원시불교(근본 불교시대)'라고 하는데 석가의 입적 후 100년이 지나자 교단이 보수파(상좌부)와 개혁파(대중부)로 분열하였다. 그 후 기원전 3세기에 상좌부가 다시 11개, 대중부(大衆部)는 9개의 파로 나뉘어 도합 20부파의 불교가 성립되었다. 한편, 니간타 나타푸타에 의해서 창시된 자이나교 역시 브라만교의 개혁에서 출발하였다. 자이나교 역시 힌두교(브라만교의 탈바꿈)와 불교와 마찬가지로 '업(業)'에 따른 윤회사상을 가지고 있는데 업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 고행과 엄격한 계율준수를 강조하고 있다. 브라만교에서 힌두교로 브라만교와 힌두교를 구별하는 것은 어찌 보면 무의미할 수도 있다. 브라만교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불교가 융성하였을 때에는 브라만교가 쇠퇴하였고, 불교가 쇠퇴하자 힌두교가 종교적 패권을 장악한 사실을 본다면, 옛날의 브라만교가 부흥하여 힌두교라는 새로운 간판을 달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지 모른다. 인도를 불교의 발상지라고는 하지만, 인도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종교는 힌두교이다. 인도국민의 80% 이상이 믿고 있는 민족종교이다. 브라만교를 기초로 하여 인도의 민간신앙과 전승이 혼합되어 힌두교로 발전하였다. 인도사람들은 다신(多神)을 숭배하는 종교적인 민족이며 종교를 배제하고 인도를 논할 수 없다. 브라만교 시대에 완성한 '베다'와 '우파니샤드'가 힌두교의 경전이며 대중들의 신앙과 주술 등을 받아들여 다양한 교의와 의식으로 발전하게 되어 브라만과 시바·비슈누·크리슈나를 중심으로 하는 다신교를 형성하였다.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고 평등사회를 구현한 불교와 자이나교도 이러한 힌두교의 기본적인 골격을 바꿀 수 없었다. 힌두교를 전체적으로 본다면 우파니샤드[奧義書]와 같은 고도의 철학적 요소에서부터 요가수행법과 민간차원의 주물숭배, 조상숭배, 우상숭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힌두교는 교리상 유연성이 있기 때문에 타종교의 사상을 배격하지 않고 수용함으로써 힌두교의 신관(神觀)에는 복합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정치적 혼란에 빠진 중국 주나라 왕실의 쇠퇴하자 중국은 기원전 8세기부터 3세기 동안 '춘추오패'와 '전국칠웅'이 중국대륙의 패권을 다투는 군웅할거시대를 맞이하여 전란을 겪게 되었다. 바로 이 혼란의 시기에 중국은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하는 사상의 융성기를 맞이하였는데, 이때 그리스에서도 고전철학의 중흥기를 보내고 있었다.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새로이 중원의 주인이 된 주나라는 통치상의 이유로 봉건제도를 도입하여 주 왕실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었다. 이러한 주나라의 봉건제도는 천하를 다스리는 천자(天子)로서의 주나라 임금과 천자의 나라를 상국의 예로써 섬겨야 하는 제후로 이루어지는 종법질서를 확립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중화사상(中華思想)이다. 다시 말해서 주나라 왕실을 받들고 오랑캐를 물리친다고 하는 존왕양이(尊王攘夷)의 중국의 전통적 사상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약 250여 년이 지나자 제후국들의 세력이 강해진 반면, 주나라 왕실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주나라 중기가 지나자 변방 민족들이 중원을 넘보면서 쳐들어오기 시작하더니 기원전 770년, 주나라 제12대 유왕(幽王)이 전사하고 호경이 함락되었다. 유왕이 전사하자 제후들은 망하기 일보 직전인 주나라의 새 군주로 평왕을 세우고 낙읍(洛邑, 洛陽)으로 천도하였다. 바로 이 낙읍 천도를 기준으로 이전을 '서주(西周)'라 하고 이후를 '동주(東周)'라고 한다. 아무리 새 왕에게 제후들이 충성을 맹세했다고 하지만 주 왕실의 권위는 이미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왕권은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바닥으로 치닫게 되었고 그에 비례하여 춘추·전국시대로의 진입속도가 빨라졌다. 이로써 주나라의 왕은 허수아비에 불과하고 실력이 있는 각지의 제후들이 천하의 패권을 다투는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역사에서 말하는 춘추·전국시대는 '주나라의 동천'에서 시작하여 진나라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기까지 약 550년 간을 일컫는 말이다. 서양사상의 원조, 그리스 철학 흔히 그리스 철학을 '과학하는 마음'이라 표현한다. 그러나 맨 처음 고대 그리스인들은 모든 사물의 이치를 신화로 풀려고 했지만 서서히 제동이 걸리기 시작하였다. 과학에 바탕을 둔 자연철학이 기원전 6세기 무렵부터 이오니아 지방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자연철학은 우주와 인간의 탄생이란 대명제를 헤브라이즘처럼 천지창조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풀어나간다. 그래서 그리스 철학을 '과학하는 마음'이라 표현하며 그리스 철학은 자연 철학기 → 소피스트 학파의 시기 → 고전 철학기라는 세 단계로 발전하였다. 전문 처세·웅변학원과 소피스트 소피스트가 등장하였다는 것은 철학적 관심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데, 그리스의 민주정치가 정착되어 가던 기원전 5세기 무렵에 웅변과 변론, 수사학을 가르치는 전문적인 직업교사가 등장하였다. 이는 '자연에서 인간'으로 철학의 관심이 옮겨졌음을 뜻한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인들, 특히 아테네인들은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서 최대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었으며, 여러 분야에서 최고의 절정기를 맞이하여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이 널리 퍼져 있었으며, 일반 시민들 사이에 배움의 욕구가 생겨나 지적 수요를 충족시킬 지식의 공급자로서 소피스트가 등장했다. 그러나 소피스트들은 청소년들에게 전반적 계몽과 교양을 통한 진리 자체보다는 임기응변적 처세술을 가르쳤다. 입만 야무진 사람들을 양성했다는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훗날 로마의 정치가이며 웅변가였던 키케로(Cicero, Marcus Tullius : BC106∼45년)가 말한 것처럼 소피스트들의 공로는 부정할 수 없다. 즉 철학을 하늘로부터 땅으로 끌어내려 놓아 철학 대중화에 기여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말부터 소피스트의 교육은 '궤변'으로 전락하였고, 민주정치가 후퇴하자 시민 여론을 선동하는 '데마고그(demagogue)'를 낳음으로써 '중우정치'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그리스 민주정치가 추락하고 있을 때, 아테네에 대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등장하여 '너 자신을 알라'는 표제를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내걸고 '선량에 의한 과두정치'와 '이상적인 철인정치(哲人政治)'를 주장하고 나섰으나 그는 소피스트의 농간에 빠져 독배를 마셨다. 그러나 그의 위대한 제자인 플라톤과 또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대로 이어지면서 그리스의 고전철학은 탐스러운 열매를 맺었다. 그리스를 계승·완성한 로마 그리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즉 폴리스간의 세력다툼 때문에 같이 망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기원전 4세기 이후부터 급속히 쇠퇴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리스 문화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에 의한 정복사업에 의해서 인도 북부까지 침투하였으며 헬레니즘 시대를 열었다. 이탈리아 반도에서 팽창한 로마는 지중해를 내해(內海)로 삼고 지중해 세계를 통합하였다. 그러나 유구한 그리스의 문화유산을 고스란히 계승하였고 그리스는 문화적으로 정복자 로마를 정복하고 말았다. 그래서 언제나 그리스 다음에 로마가 따라 붙었으며 서 로마제국이 멸망한 다음에도 비잔틴 제국이 그리스적 요소를 지켜 나갔을 뿐만 아니라, 대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체계화한 학문은 아라비아 등지에서도 연구될 정도였다. 역사기술도 그리스에서 비롯되었고 그것은 그 후 역사학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다. 역사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고 있는 헤로도토스는 이미 기원전 5세기경에 일어났던 페르시아 전쟁에 관하여 그의 ≪역사≫에 기술해 놓았다. 비록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문학적 설화의 범위에 머물러 있었지만 투키디데스(Thukydides : BC460?∼400?)는 사료에 대한 객관적인 주의와 검토를 통해서 역사적 사실을 초자연적 그것과 구별하였다. 그의 역사서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는 아테네적 정서에서 탈피하여 객관성을 가지고 기술하였으며 과거의 어떤 사실에서 교훈을 얻고자 하는 소위 '교훈적 역사'를 서술하였다. 필자가 너무 그리스에 대해서 장황하게 이야기했으나 그것은 그들의 역사적 역동성 때문이니 어쩔 수 없다. 끝으로 그리스의 문화와 예술은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시대에 다시 깨어나 그리스도교 문화가 지배적이었던 유럽에서 다시 소생하였기 때문에 서구에서는 그리스·로마 문화를 통틀어서 '고전 고대'라 한다.
신동호 | 코리아 뉴스와이어 편집장 조기 영어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한 달 수업료 100만 원이 넘는 영어 유치원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어린이 영어과외, 해외연수가 유행이다. 아이의 조기 영어교육을 위해 초등학생을 미국에 유학 보내고 발음을 잘하게 하려고 혀 수술까지 한다고 한다. 조기 영어교육은 언어 습득에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가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어려서 말을 배워야지 이 시기가 지나면 '기회의 창'이 닫혀 버린다는 것이다. 조기학습이론 배경은 뇌의 불균등 성장 하지만 한편에서는 어른이 된 뒤에도 영어에 많이 노출되고 영어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얼마든지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언어 학습에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가설은 1967년 미국의 언어학자 에릭 레너버그 교수가 란 책에서 처음 내놓았다. 그는 인간의 언어 습득은 뇌나 발성 기관의 발달 특성 때문에 사춘기가 지나면 어렵다고 주장했다. 유명한 언어학자인 매사추세츠 공대의 언어학자 스티븐 핑커 교수는 6세부터 사춘기까지가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결정적 시기라고 에서 밝혔다. 그렇다면 왜 언어 학습에 결정적 시기가 있는 것일까? 그 비밀은 뇌가 불균등 성장을 한다는 데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 폴 톰슨 교수는 핵자기공명영상장치를 이용해 3살부터 15살까지 어린이 뇌의 성장 과정을 4년 동안 추적해 뇌 성장 지도를 2000년 에 발표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어린이는 3~6세 사이에는 전두엽이 발달하고 6~13세까지는 두뇌의 성장이 앞부분에서 점차 언어를 관장하는 뒷부분으로 옮겨간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두뇌의 각 부분이 골고루 균등하게 성장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는 틀린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따라서 톰슨 교수는 6∼13세가 외국어를 배우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 기간 동안 뇌 언어 영역이 발달하기 때문이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13세 이후에는 뇌 언어 영역의 발달이 급속히 둔화된다. 그렇다고 톰슨 교수가 사춘기 이후에는 외국어를 배울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춘기 이전에 배워야 쉽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춘기 이전에 언어 영역을 담당하는 뇌에 손상을 입은 경우 이를 다른 영역이 메워 말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사춘기 이후에 언어 영역을 다치면 말을 배우기가 매우 어렵다. 톰슨 교수는 또한 13~15세까지 운동신경을 담당하는 뇌 회로가 50% 가량 삭제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따라서 운동신경의 훈련을 필요로 하는 악기나 운동도 그 이전에 교육이 이루어져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선천적으로 귀머거리가 돼 말하는 능력을 상실한 사람은 사인 언어인 수화도 배우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캐나다 맥길 대학 레이첼 메이베리 교수는 나이가 어렸을 적에 귀머거리가 된 사람일수록 나중에 수화를 배우는 능력도 떨어진다고 2002년에 발표했다. 어렸을 적에 언어를 배우면 언어중추가 발달하지만 귀머거리여서 말을 배우지 못하면 언어 학습과 관련된 뇌 영역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 나중에 다른 언어를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언어학습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 결정적 가설을 반박하는 연구 결과도 심리학, 언어학, 교육학 분야에서 만만치 않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 신경과학자인 앙겔라 프리데리치 박사는 2001년에 결정적 시기 가설을 부정하는 연구 결과를 에 발표했다. 그는 객관적 분석을 위해 '브론칸토'라는 인공 언어를 가르치고 뇌의 활동을 관찰했다. 그 결과 뇌는 인공 언어를 처리할 때나 모국어를 할 때나 똑같은 활동 패턴을 보였다. 이는 '결정적 시기 가설'을 신봉하는 학자들이 모국어와 나중에 배우는 외국어는 뇌에서 다른 방식으로 처리된다고 주장해 왔던 것과는 다른 결과였다. 나이가 들면 외국어를 배우기 어렵다는 주장은 외국어와 모국어는 뇌에서 서로 다르게 처리된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미국 스탠포드 대학 교육학자 겐지 하쿠다 교수는 인구 센서스를 활용해 중국과 스페인계 이민자의 이민 시기별 영어 능력을 조사했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일정 나이가 지나 영어 능력이 뚝 떨어지는 현상은 없었다. 그는 "결정적 시기 가설은 근거가 희박하며, 단지 나이가 들수록 완만하게 언어 습득 능력이 떨어지는 것일 뿐이다"고 말한다. 캐나다 맥길 대학 프레드 기니시 교수가 다른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도 결과는 비슷했다. 이 조사에서는 놀랍게도 어른이 된 뒤 이민한 사람의 3분의 1은 어려서 이민한 사람 또는 미국 본토인과 같은 수준의 영어를 구사했다. 그는 외국어 습득 능력은 나이 외에도 가정의 경제력, 인지 능력, 교육 정도 등 사회적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고 밝혔다. 뉴욕 시립대학 지셀라 시아 교수는 아예 '결정적 시기 가설' 대신에 '주요 사용 언어 교체 가설'을 주장한다. 이민 온 어린이가 어른보다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어린이의 경우 학교에서 영어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노출되는 반면 어른은 가정에서 모국어를 계속 쓰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영어를 못한다는 것이다. 영어 학습에 중요한 요인은 '노력' 을 펴낸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언어 능력은 듣기, 쓰기, 말하기, 독해, 문법 등 여러 영역에 걸친 종합적인 능력으로, 각 영역의 발달 시기는 나이에 따라 다르다고 말한다. 발음 능력은 어려서 발달한다. 성인이 된 한국인 또는 일본인이 영어의 "L"과 "R" 발음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반면, 어려서 영어를 배운 어린이들은 발음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잘 구별한다. 이에 반해 단어 능력은 뇌의 측두엽이 발달하는 초등학교 때, 언어의 논리성은 초등학교 2∼3학년이 넘어야 터득한다고 한다. 특히 6세 미만에 아이의 인성과 사회성 발달이 대부분 이루어지는데, 이때 아이에게 영어만 강요하면 주체성에 혼란이 생겨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신 교수의 경고다. 외국에 가지 않고 순수하게 국내에서만 영어를 배운 토종 영어 프로그램 진행자 이보영 씨도 영어를 어려서 가르치면 노력하지 않고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이라고 단언한다. 이씨는 "영어를 배우는 목적이 분명해야 잘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어른들 가운데서도 해외 근무 등 뚜렷한 목적이 생겨 나중에 공부를 한 사람 가운데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음을 그 사례로 든다. 특히 어른은 단어, 정보처리 능력 등 선행 지식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게 장점이라는 것. 어른은 CNN 방송의 문장을 몇 개의 키워드만 들어도 이해할 수 있지만, 어린이는 그렇지 못하다고 이씨는 설명한다. 때가 되면 그리고 필요하면 외국어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 충분히 배울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뇌가 가진 능력의 대부분을 활용하지 못하고 무덤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커서 영어를 배우는 데 있어 정작 가장 큰 장애물은 꾸준히 노력하지도 않고 일찌감치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PAGE BREAK] 뇌의 백질은 40대 후반까지 계속 발달 불경기와 조기 퇴직, 젊은 대통령의 등장으로 사회 구석구석에서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젊은 층에게는 반가운 일이지만 중장년층과 노인의 상실감은 깊어만 가고 있다. 지금 노인 세대는 청소년 시절을 전쟁과 굶주림으로 고생했고 많은 자녀를 낳았고 고도 성장기에는 허리가 휘도록 일을 했던 세대다. 과연 이런 중장년층이 일손을 놓고 물러나는 것이 좋을까? 그렇지 않다. 이들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기여를 했으니까 그만큼 대접을 해줘야 한다는 온정주의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중장년층이 젊은 사람들보다 훨씬 지혜롭기 때문이다. 지혜나 창의성은 대개 어떤 문제와 부딪쳤을 때 이 문제와 관련된 것들을 찾아내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능력이다. 언뜻 보기에 관련이 없는 것 같은 사물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능력은 30대 이후에 발달한다고 한다. 무언가를 통째로 외우는 능력은 어린이들이 좋지만 사물 간의 연결을 찾아내는 능력은 중년층이 더 뛰어나다. 나이가 먹었다고 머리가 굳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중년층이 연관성을 잘 찾아내는 비밀은 뇌에서 이곳저곳을 연결하는 전화선 역할을 하는 '백질'이 40대 후반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발달하는 데 있다. 대뇌피질의 가장 바깥쪽 부위인 회백질의 발달은 사춘기가 끝나면서 절정에 이르고 그 후부터는 점점 쇠퇴한다. 하지만 회백질의 밑에 있는 백질은 평균 48세가 될 때까지 계속 발달한다. 인간의 뇌를 컴퓨터에 비유한다면 회백질은 컴퓨터이고 백질은 컴퓨터를 다른 컴퓨터들과 연결하는 전화선에 해당한다. 비록 컴퓨터는 사춘기가 지나면서 더 이상 성능이 좋아지지 않지만, 컴퓨터들 간에 수많은 회로가 중년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발달하기 때문에 사물과 사물 사이의 연관성을 찾는 능력이 좋아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인은 어떤가? 과학 권위지 는 2003년 '노인의 지혜' 특집에서 노인이 되면 두뇌 활동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생각은 수정돼야 하며 오히려 '사회적 지혜' 등 여러 영역에서는 젊은이가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나이가 들어도 뉴런, 즉 뇌의 신경세포는 그렇게 많이 줄어들지 않으며 어른이 된 뒤에도 새로운 신경세포가 조금씩 싹튼다. 신경세포는 인체 내의 다른 세포와 달리 재생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런데 비록 조금씩이기는 하지만 노인의 뇌에서도 신경세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최근 밝혀졌다. 노인은 필요한 것을 선택하여 기억 물론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기 어려워지고 기억력과 뇌의 정보처리 속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인이 앞서는 영역도 있다. 우선 사람의 성격을 빨리 간파한다. 예를 들어 노인은 상대가 정직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젊은이보다 쉽게 파악한다. 사회적 지혜, 즉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문제에 대해 해답을 제시하는 능력도 노인이 뛰어나다.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고 사람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능력도 노인이 젊은이를 앞선다. 언어 능력은 팔십대까지도 거의 떨어지지 않는다. 기억력은 이십대 중반부터 90세가 될 때까지 점진적으로 줄어든다. 흔히 육십대가 되어 기억력이 뚝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젊었을 때는 점진적인 기억력 감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인은 대신 기억력의 감퇴를 '선택적 기억'으로 보충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실험 결과 하찮은 정보에 대한 기억력은 젊은이가 뛰어나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정보에 대한 기억력은 노인과 젊은이가 거의 같았다. 노인들은 왜 이처럼 선택적으로 기억을 할까? 젊은 사람은 활용할 수 있는 정신적 자원을 많이 갖고 있는 데 비해 노인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쓸 만한 정보만을 기억한다. 선택적 기억은 컴퓨터의 프로세서에 달린 캐시 메모리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프로세서는 하드 디스크에 저장된 정보 가운데 자주 쓰는 중요한 정보만을 모아 캐시 메모리에 임시 저장한다. 그러면 좀 더 빨리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노인의 뇌는 캐시 메모리처럼 중요한 정보만을 기억하는 것이다. 노인의 경우 나이가 들수록 누가 그 얘기를 했는지 기억하는 '출처 기억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도 비슷한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노인은 구수한 농담과 옛날 얘기를 잘한다. 하지만 누구에게 그런 얘기를 들었냐고 물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어디서 그 얘기를 들었는지 외우는 출처 기억력이 젊은 사람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담 그 자체를 기억하는 능력은 노인도 결코 젊은이에게 떨어지지 않는다. 노인의 또 다른 강점은 문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긍정적인 순간을 더 기억한다는 점이다. 또 주변 사람과 정서적 관계를 깊게 하고 인생을 맛보려 한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으로서는 현재 이 순간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보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젊은이는 미래를 열려 있는 것으로 보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집중한다. 멋진 관광지를 소개하는 광고를 한다고 할 때 젊은 사람에게는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자"는 말이 잘 먹히지만 노인에게는 "소중한 순간을 간직하세요" 하는 문구가 더 효과적이다. 광고 문구를 쓸 때 노인과 젊은이의 이런 감수성 차이를 잘 이해하지 않으면 허탕을 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노인이 지닌 또 다른 특징은 실제 자신의 현실보다 자기 자신이 더 행복하다고 무의식중에 느끼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노인이 이렇게 느끼는 것은 자신보다 더 몸이 아픈 사람이나 이미 죽은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기 자신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안을 너무 긍정적으로만 본 나머지 심각한 문제를 간과하는 경우가 노인에게는 종종 생긴다. 치매 예방에는 규칙적인 운동이 최고 지나치게 낙관적이어서 잘못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노인은 80대까지 젊은이처럼 일하고 생활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건강한 노인이라 하더라도 치매나 뇌졸중을 앓게 되면 뇌의 능력은 급속히 파괴된다. 따라서 노인 건강에서 가장 유의할 점은 뇌 질환을 앓지 않는 것이다. 뇌 질환을 앓을 경우 노인은 정신적인 건강뿐 아니라 육체적 건강까지 급격히 잃게 된다. 노인에게 정신 건강은 곧 육체 건강인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바둑을 두거나 독서를 하는 등 정신 활동을 많이 하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바둑이 치매 예방 효과가 있다는 것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이다. 이보다는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이 치매를 예방하는 데는 훨씬 좋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이명희 /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운영위원장 입장에 따라 평가와 해석 달라져 기여입학제는 교육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 중 하나이다. 대학관계자들은 기여입학제를 찬성하는 입장이 강하고, 국민 정서는 반대하는 입장이 강한 듯하다. 그런데 국민의 뜻이라고는 하지만 '반대 정서'에 근거하여 학교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것도 지나친 듯 하다. 더욱이 대학의 발전을 생각하면 도입하는 쪽이 나을 것 같다. 그런데 헌법 규정 등을 보면 위헌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기여입학제 반대론자들이 가장 잘 인용하는 헌법 제31조 제1항에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 받을 권리를 갖는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헌법 제11조 제2항에도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라는 규정이 있다. 제31조에서 말하는 능력이란 학생 자신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지 부모의 경제력 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또한 기여입학제의 허용은 사회적 특수계급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반면에 헌법 제31조 제4항에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 된다”고 규정되어 있다. 여기서 대학의 자율에는 학생선발권이 포함되며, 따라서 기여입학제는 대학 자율의 범위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기여입학제를 통해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개인이 사립학교를 상대로 기본권 침해에 관한 소송을 제기한다고 하더라고 이것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사립학교에 있어서 입학을 비롯한 기타의 권리 및 의무관계는 본질적으로 학부모와 학교간의 사적인 계약관계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에 대한 국가의 개입도 기본적으로는 사학을 통제하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원을 통하여 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질적 향상을 꾀하려는 데 그 취지가 있으므로 적어도 사립학교에 대한 기여입학은 위헌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여입학제는 어느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평가와 해석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러므로 기여입학제 문제는 법조문상의 문제로 풀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즉 기여입학제 문제는 결국 국민간의 합의 혹은 약속의 문제로서 파악된다. 결국은 정치적으로 해결 할 문제 기여입학제가 법률 조문상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간 합의의 문제라면, 그간의 논의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기여입학이 우리나라에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자유주의적 교육이 왕성하였던 1950년대에는 기여입학제가 행해졌다. 제도화 되지는 않았으나 널리 행해졌다. 이는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기여입학이 명시적으로 제도화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시행되고 있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었다. 차이는 성숙한 자유주의의 자율성 속에서 행해졌느냐의 여부이다. 성숙한 자유주의에는 반드시 책무와 배려가 수반된다. 그러나 1950년대 우리나라의 자유주의는 성숙되지 못하였다. 오히려 자율이 무원칙하게 남용되었다. 그 결과 많은 사학들은 ‘비리의 온상’이라는 지탄을 받았다. 그리하여 60년대 이후의 권위주의 정권은 사학에 대하여 강력한 통제정책을 실시하였고, 국민들은 상당한 지지와 공감을 보냈다. 그런데 국가의 지원이 없거나 미미한 가운데 이 통제정책이 30년 이상 계속되었다. 그 결과 사학들은 자율성과 창의성을 상실하였고 공통된 재정난을 당하게 되었다. 특히 졸업정원제의 폐지 이후 재정난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여입학제가 제도로서 제기되기에 이르렀고 거의 실현단계까지 이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3년에 발생하였던 대학입시부정사건으로 논의가 중단되고 말았다. 그 후 문민정부 시절 대학개혁의 일환으로 다시 제기되었으나, 1998년 국민의 정부 이후 교육부의 불허 방침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여입학제의 필요성이 끊이지 않고 간간이 제기되고 있다. 이 과정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1986년 : 교육개혁심의회 사학발전정책의 하나로서 처음 제도로서 제기 - 1988년 : 노태우 대통령 지시로 기여입학제 허용 여부 검토 - 1989~91년 : 대학교육협의회, 전국대학교무처장 협의회 건의 - 1991년 : 기여입학제 여론수렴(고등교육연구회주관, 토론회 및 공청회) - 1992년 : 대교협 정책연구서 세부 시행 방안 제시 - 1993년 : 대교협총회에서 교육부장관이 일부대학에 한해 기여입학 허용 표명 - 1993년 : 대학입시 부정사건으로 논의 중단 - 1996년 : 교육개혁위원회의 기여입학제 사립대학 적용방안 제시, 전경련 및 재경부 지지 - 1997년 : 홍일식 고려대 총장 사립대총장협의회서 기여입학제 도입 문제제기 - 2001년 : 김우식 연세대 총장 기여우대제 도입 발표 - 2005년 : 전국대학총장세미나, 대교협 대입제도개선소위원회 기여입학제 건의 - 현재 : 국민의 정부 이후 기여입학제에 대한 교육부의 불허방침 불변 이상과 같이 기여입학제는 대학관계자들에 의해 지난 20년에 걸쳐 계속 제기되고 있다. 반면에 정부는 때로는 허용할 것을 검토하고 또 때로는 움츠려들기도 하였다. 다만 국민의 정부 이후 평등주의적 관점에서 계속 불허 방침을 취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여입학제 문제는 본질적으로 법률상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 결단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즉 국민들 가운데 반대하는 세력이 있으며, 이러한 일부 국민의 반대를 정부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자유를 중시하면 이러한 반대가 상대적으로 작게 보이고, 평등을 중시하면 상대적으로 크게 보이는 것이다. 사립대 재정 문제는 갈수록 심각 기여입학제의 문제가 정치적 판단의 문제라면 그 판단을 옳고 현명하게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옳고 현명한 판단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상황을 전체적으로 살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사립대학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재정적 어려움이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연간 재정규모는 1999년을 기준으로 17억7000만달러(약 2조 3000억원)인데 비하여, 우리나라의 연세대는 3373억원, 고려대는 2517억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러한 재정의 대부분이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충당된다는데 더 큰 어려움이 있다. 기부금과 재단기여금이 많은 연세대학조차도 등록금 수입이 전체 재정의 거의 50%에 달하는 1626억원이나 차지하며, 우리나라 사립대 전체 평균은 70%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이 연간 500~800만원 수준인데 비해, 미국 사립대의 경우 대체로 2만5000달러인 것을 고려하면 5분의 1 이하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립대학은 등록금도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없는 형편에 있다. 해마다 학생회와 협상을 해야 하고 이 때문에 총장실이 점거당하는 일도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국가로부터의 보조금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대학 전체 재정의 2~4%에 불과하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일본과 대만의 경우는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이 전체의 14~19% 수준이고, 미국의 경우도 18%정도 이다. 반면에 정부의 사학에 대한 규제는 무척 심하다. 우리나라는 기여입학의 금지는 물론이고 신입생의 선발 방법마저도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의해 획일적으로 통제되고 있다. 대학이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권한은 역사적으로나 세계적으로 대학 자율권의 기본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국․사립을 불문하고 획일화 되어 있다. 외국의 기여입학제가 제도화 되지 않고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는 까닭의 하나는 사립대학의 신입생 선발 방법이 자율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학생 선발권은 사학의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문화가 우리와 비슷한 일본의 경우도 정부가 사립대학에 전체 재정의 20% 가까이 지원하지만 감독도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대학 부설학교 졸업생의 경우, 특별전형을 통해 특혜 입학을 시켜도 무방하다. 그 결과 유명사립대학의 부설 유치원에 입학시키기 위해 유아 과외가 성행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어떤 개입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경우, 초기의 성장과정에서 다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여 언제까지나 정부가 간섭하고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버드 대학의 경우 매년 10% 내외의 인원을 기부금 입학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도 사립대의 의과대학에서는 기부금 출연이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기여입학제는 우리나라 사립학교에도 부분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사립대학의 전임 교수 확보율이 55%밖에 되지 않는다. 교수1인당 학생수도 30명이 넘는다. 반면에 학생 1인당 장서수는 세계주요대학의 200~600권에 훨씬 못 미치는 평균 40.5권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여타의 교육시설, 예를 들면 기숙사나 실험실, 세미나실, 체육관 등도 열악하기 그지없다. 더욱이 장기에 걸친 교육투자는 계획조차 세우기 힘든 형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총체적으로 영양결핍상태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선 별다른 타개책이 없다. 사립대학 관계자들에게 현재 거의 유일하게 보이는 빛이 기여입학제의 도입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용인 가능한 제도가 필요 21세기 글로벌 지시기반사회에 있어서 대학의 경쟁력은 국가의 경쟁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75%는 사립대학이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립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다. 사립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조건은 열악한 재정문제를 개선하는 것이다. 그러나 재정문제의 해결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교운영의 자율권, 즉 신입생의 선발방법, 학사관리방법, 재정운용 등에 대한 재단의 자율권을 확보하는 일이다. 기여입학제도 이러한 사립학교의 자율권 확보와 함께 추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헌법 31조에 규정된 대학의 자율권을 온전히 보장받고, 사립학교법 제1조에 규정된 사학의 특수성과 자주성을 사립대학 스스로가 신장시켜 활로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여입학제는 이러한 사학의 자활 노력에 좋은 인센티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립학교의 자율권 확보는 많은 자금이 소요되는 일이 아니다. 우선은 정부의 규제를 줄이면 된다. 그리고 사립학교 스스로의 성숙한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정부로서도 사립학교 운영을 일반적인 사기업과 같이 완전히 방임할 수는 없다. 사립학교는 교육을 주된 영위로 하기 때문에, 교육의 성과에 대하여 확인할 필요가 있으며 운영에 있어서 공공성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여입학제의 운영도 공공성이 확보되도록 감독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규제의 설정이 아니라 오히려 폐지를 통해 접근해야 한다. 대신에 정부는 사립학교의 교육활동 성과에 대하여 책무를 확인하고 운영과정에 대한 감독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확인과 감독의 결과에 대해 책망이 아니라 지원으로 보상하는 체제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기여입학제도가 사립학교의 자율권 속에 도입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많은 국민들은 우려하고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 기여입학제가 사립학교의 교육환경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고, 가난한 학생에 대한 장학금 지급의 확대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평가하면서도, 여러 가지 부작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즉 계층 간 위화감이 더 심화될 수 있으며, 대학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 등의 부작용이 불가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황금만능주의가 만연해 갈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여입학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인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를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제안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각 사립대학은 기여입학제의 시행 여부와 시행 방법 그리고 기여입학 자격 등을 사전에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한다. 둘째, 기여입학에 따른 재정 수입의 용처를 분명히 하고 투명하게 관리하도록 한다. 셋째, 기여입학의 추진 과정과 확보된 재정의 사용 전반에 대한 정기 및 수시 감사를 받도록 한다. 넷째, 상기와 같은 방법과 절차 이외의 부정이 발생하였을 경우 합당한 처분을 정해두도록 한다. 이상과 같은 원칙에 입각하여 추진하면 다수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 반발을 무마하고 어느 정도의 사회적 합의와 용인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어떤 일이든 다소간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기여입학제도 이점에 있어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대비책을 세워 추진한다면 대학의 재정구조 개선 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좋은 결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여입학제의 도입과 추진은 시비의 문제라기보다는 방법의 문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김정수 / 구미여고 교사 고교평준화와 3불 정책의 모순 참여정부의 출범도 벌써 3년이 되어간다. 이 기간 동안 시행된 교육부의 정책들을 중 ‘이건 잘된 정책이다’하고 공감을 가질 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특히 고교평준화 체제는 1970년대 당시 산업현장에 질보다는 양적인 인력이 필요했던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화 정책으로 인재를 양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시작된 것으로 지난 74년 이후 30여 년 간 시행이 되어 오면서 그 시대 나름대로의 교육 발전에 기여하여 우리 국민들의 교육 수요를 질적 양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21C 글로벌 시대는 인력의 수요가 양적인 문제를 벗어나 소량이지만 질 높은 인재가 필요한 전문화 특성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에 고교평준화제도를 존속시킨 채 세계화를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행위라고 본다. 또 교육부의 확고한 방침에 따라 시행되고 있는 ‘3불 정책’은 대표적 부실 정책이다. ‘3불 정책’은 본고사로 인한 공교육 붕괴를 막고 사교육비 증대를 줄이며, 고교 간 학력의 차이를 인정 않겠다는 것, 또 가진 자들의 특혜가 되는 기여입학제가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심화 시킨다는 취지에서 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의 3가지 제도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정책이다. 그러나 대학입시를 내신과 수능만으로 치르게 되면서 학교교육과정은 수능으로 인해 파행되고 학생들은 수능을 위해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또 고교의 격차가 확연히 존재함에도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고교 간의 격차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고, 기여입학제를 ‘가진 자들의 특혜’라는 포퓰리즘적 단순 논리로 풀어가려 한다. ‘3불 정책’ 중 가장 신중을 기해야 할 문제는 기여입학제다. 기여입학제는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터져버리는 안전핀이 달린 수류탄과 같이 위험한 사안이다. 그러나 기여입학제에 대한 논의는 시작되어야 하고, 안전핀을 어떻게 하면 견고히 유지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 이유는 21C 글로벌 시대,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 기여입학제를 긍정적으로 논의해 보고 기여입학제가 안고 있는 부정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여입학제의 부정적 논란거리 기여입학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 견해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여입학제가 부모의 사회경제적 능력과 배경에 따라 자식의 입학여부가 결정되므로 이는 헌법 제31조 1항에 규정된 ‘교육의 기회균등과 평등’이 훼손되어 부유층과 빈곤층 간에 위화감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이는 부(富)의 획득이 선망의 대상이요, 능력이 되는 선진 국가와는 달리 한국의 고위공직자나 정치인들 또는 부자들이 보여준 온갖 비리로 한국의 부자들에게는 진정한 '노블리스'가 없다는 부(富)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연유된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선량한 부자들은 그 부를 축적하기 위해 피나는 고생을 한 사람들이다. 어려웠던 과거도 눈물겨운 가난도 모르는 젊은 세대들은 부자들을 무조건 부도덕하다고 매도하고 부자들의 행위는 모두 사회악이라고 보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앞으로 사회적 시스템이 정의롭게 정착되어 ‘부의 획득은 능력의 소산’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선행될 때 빈부의 위화감은 해소될 수 있다. 둘째, 대학들이 이제껏 저질러 온 재정운영의 문제점과 학내비리를 개선하지 않고는 아무리 많은 돈이 기부되더라도 그 돈이 학생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들이 교육의 질적 향상에 대한 고민은 전혀 하지 않고 학생과 학부모의 쌈짓돈에만 신경을 쓰고 있으며 기여입학제가 대학의 운영을 위한 재정확보 수단으로 이용되어 사립대학의 거대한 사(私)기업화를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를 가진다. 그러나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매년 기부금 총액과 예결산 내역을 철저히 공개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며 기부금에 대한 전용을 막는 등 투명성이 보장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한다면 우려는 불식될 수 있다. 셋째, 기여입학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기부금은 단지 대학에 대한 '기여'에서 끝나기를 바라며, 기부자는 그 대가로 자녀입학의 특권을 바라지는 말고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면 조건 없는 기부를 하라고 충고한다. 수십 년을 힘들게 벌어 선뜻 수억 원의 돈을 대학에 기부하는 '가난한 기부자'의 소망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자는 것도, 자녀들의 대학입학을 조건으로 건 것도 아닌, 단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것인 것처럼 순수한 목적을 가지지 못하는 기여입학제는 거부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기부 문화 자체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우리로서는 독지가들이 내는 조금의 기부금으로는 겨우 일부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지급될 뿐 대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을 도외시 한 견해다. 얼마 전 어윤대 고려대학교 총장은 "대학교 입장에서는 최소한 1500만원의 등록금은 받아야 학교 운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한국은 기업이나 정부의 보조가 턱없이 부족하면서 간섭은 많아 대학 경쟁력이 낮다"며 "미국은 교수 1인당 학생수가 1~12명인데 우리는 40~42명"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토론식 수업이 아닌 일방적인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렇듯 대학의 경쟁력과 우수 인재 양성은 반드시 투자가 따른다. 대학이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기여입학제가 허용되어야 한다. 넷째, 기여입학제로 입학하는 학생들의 수학능력의 문제를 우려한다. 일류대에서 수학할 능력이 없는 학생이 부모의 재력으로 일류대학의 졸업장을 취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대학들은 학사관리 시스템이 엉망이라 입학만 되면 실력과 노력에 관계없이 졸업이 보장된다. ‘입학은 곧 졸업’이 되는 학사관리 시스템 속에서는 당연히 기여입학제의 도입은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전개되는 이 모순은 대학 스스로의 각성을 통해 개선되어야 한다. 어느 정도의 대학수학능력을 갖춘 학생을 대상으로 정원 외의 일정비율을 특별전형으로 선발하여 엄격한 학사관리 제도를 마련하여 ‘기여 입학’이 ‘기여 졸업’이 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류 학벌에 대한 국민일반의 의식이 기여입학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류 대학의 입학이 교육과 학문 연구의 기회 내지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 확보를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린 우리 교육 현실에서 '돈'으로 일류 학벌을 취할 수 있다면 가진 자들은 부(富) 이외에 명예도 누릴 수 있어 극심한 불평등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돈을 많이 가진 자들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꼭 국내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외국의 유명 대학을 택해 기여입학을 할 수 있다. 돈 앞에 일류의 인재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이 부와 명예를 누린다고 불평만을 할 수 있을까? 평등주의를 추구하는 일부들은 그들을 처리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이 자유민주국가인 한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그들이 많은 돈을 사회에 환원하게 하느냐를 생각해야 한다.[PAGE BREAK] 기여입학제의 긍정적 논란거리 빈부의 격차가 점차 심화되어 가는 현 사회에서 가진 자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키려면 가진 자들이 자신의 몫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모두가 공감을 한다. 사회는 돈 있는 부자들에게 자신의 몫을 선뜻 내어놓을 수 있는 기회와 역할을 부여해야 하며 그들을 위한 매력 있는 상품을 개발해서 그들을 유혹해야 한다. 기여입학제는 매력 있는 상품이 될 수 있다. 또 기여입학제는 다음과 같이 긍정적인 면을 가진다. 첫째, 21C 글로벌 시대를 대비하여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이 필요하다. 부존 자원하나 없는 우리나라에서 오직 믿을 것은 인적 자원이다. 21C 글로벌 시대를 맞아 어떤 분야에서든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세계 최초의 복제 개 스너피(snuppy)를 탄생시킨 황우석 교수는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난치병을 치유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이 기술로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 1년 총예산의 두 배나 되는 300조 정도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니 인재 육성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중국 상하이자오퉁 대학이 발표한 세계 100대 대학에 미국 대학이 53개, 영국이 11개, 일본이 5개 대학이 선정되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100위권에 든 대학은 한 곳도 없고 서울대가 150위권에 드는 등 8개 대학만이 500위권 안에 포함되는데 그쳤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 대학의 경쟁력이 이렇게 엉망인 까닭은 교육 재정의 부족이다. 국공립 대학의 예산 배정도 열악하지만 사립대학에는 겨우 전체 예산의 3~5% 정도를 교육부에서 지원해 준다. 가장 많은 국고가 배정되는 서울대의 1년 예산이 하버드나 예일의 1분기 예산 정도의 수준이니 사립대학의 재정은 말할 건덕지가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우수한 인재가 양성되기 바라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대학의 경쟁력과 우수 인재 양성은 반드시 투자가 따른다. 선진국은 기업가들이 아무런 조건 없이 대학에 100억 달러씩을 기부하는 기부 문화가 정착된 나라들이다. 미국의 경우 그렇게 많은 돈이 대학에 기부되어도 유수한 대학들은 대학 재정을 늘리기 위해 기여입학제를 실시하고 있다. 총장의 역할이 대학을 위해 얼마나 많은 기부금을 확보해 오느냐에 있을 만큼 교육에의 투자를 중시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자본주의를 도입한 지가 겨우 50년에 자나지 않아 기부 문화 자체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대학들이 21C 글로벌 시대를 대비하여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겠는가? 경쟁력 있는 대학이 되려면 우수한 인재를 기르는 대학이 되어야 하고 우수한 인재를 기르려면 아낌없는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투자금 확보를 위해 기여입학제는 허용되어야 한다. 둘째, 기여입학제가 도입되면 가난한 많은 학생들이 학업에 열중하여 자신의 능력을 계발할 수 있다. 50~60년대는 우리 교육사에서 유일하게 자유주의교육이 도입된 시기였다. 그때는 시골에서도 농사일을 도우면서도 공부를 잘하는 우수한 인재들이 서울을 비롯한 지방의 명문고를 입학할 수 있었던 자유로운 시대였다. 농촌에는 학생들이 넘쳐났고 우수한 인재의 대부분이 농촌 학생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가난했다. 우수한 실력을 가졌어도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그만두고 농사일을 돕거나 산업 현장으로 가기도 하였다. 또 실력은 되지만 도시에서 하숙을 할 만큼의 여유가 없어 일류학교를 포기하고 시골을 벗어나지 못해 자신의 꿈을 접은 학생들도 많았다. 그 당시의 부자들은 기부금을 내고 자식들을 중․고․대학에 청강생으로 입학시킬 수 있었다. 그 돈으로 가난하나 머리가 비상한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으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형설의 공을 쌓아 가문의 영광을 이루기도 했다. 시대가 바뀐 지금도 누가 자신에게 학업을 위한 자금을 제공해 준다면 날개를 달고 마음껏 창공을 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특히 IMF 이후와 경제성장이 거의 멈추다시피 한 지금, 학업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나날은 보내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이런 현실을 안다면 왜 기여입학제가 필요하냐고 할 수 있겠는가? 셋째, 기여입학제는 무분별한 해외유학을 감소시킨다. 2005년 한국은행의 자료에 의하면 경기부진과는 무관하게 유학연수 경비 지출이 가파른 증가세를 이어감에 따라 올해 전체로는 3조원 이상이 해외로 빠져나갈 것으로 추산되어 유학 연수비 규모가 국내 교육비지출액의 6분의 1에 달할 정도로 커졌으며 그 인원은 18만7000여 명이나 된다. 해외유학은 자신만의 꿈을 위해 간 사람들도 있겠지만, 국내 유수한 기업의 취업을 위해 또는 자신의 실력으로 국내 우수한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실력은 안 되고 국내에서 대학을 다닐 곳은 없고 돈은 좀 있으니 쉽게 이야기 하면 외국대학에 기여입학을 하는 것이다. 일반대 상위 10%의 대학, 그것도 장래가 보장되는 학과에 지원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너나없이 막대한 외화를 낭비하면서 유학생활을 하는 이유가 된다. 유학으로 아깝게 사용되는 학비들을 국내 대학에 입학시켜 쓰게 하면,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의 막대한 외화를 낭비하며 헛된 유학생활을 하는 것보다 백번 나은 일이 아닌가? 넷째, 기여입학제는 대학의 경쟁력을 부추긴다. 현재 국내 대학은 정체나 퇴보의 길을 걷고 있다. 이것은 일류만을 추구하는 사회의 병리현상과 무관하지 않아 일류학교, 일류학과를 나오지 않으면 취업이고 출세고 다 헛것이 된다. 그래서 내 자식을 위해 일류 대학을 보내기 위해 과외를 시키고 유학을 보낸다. 혹시나 일류 자식이 될까 해서 돈을 있는 대로 투자한다. 이런 상황에서 90%의 일류 아닌 대학이 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할까 전전긍긍한다. 교수들은 자기의 학과가 정원을 확보하지 못해 폐과가 될까를 우려한다. 박사 출신의 교수들이 돈 봉투를 마련하여 각 고등학교 진학실을 찾아다니며 안쓰러운 웃음을 지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만연된 일류병을 국내 어느 대학에서든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어느 대학에서건 초․중․고등학교 과정의 외국어 학교를 만들고 경쟁력 있는 학과 2~3개씩은 만들어야 한다. 한 학과에 100억을 투자하든 200억을 투자하든 외국의 우수한 대학을 본받아야 한다. 돈을 들여 외국의 유명교수를 초빙하고 교육여건 또한 개선해야 한다. 경쟁력을 위해 과감한 구조조정도 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없으면 빈익빈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기여입학제로 해결할 수 있다. "3불 정책은 재고되어야 한다" 고교 평준화와 ‘3불 정책’을 반대하는 교육부나 전교조, 민노당의 주장은 가진 자들이 돈으로 고액 과외를 시켜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니 이 틀이 깨지면 가진 자들의 자녀들이 일류 학교에 입학하여 부익부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시각은 그들이 스스로 가진 자라는 역설적 비논리를 포함하고 있다. 그들의 지도부가 모두 일류대를 나오고 정치적인 특권층이 되었으니 그들은 돈 있는 자들이었던가?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돈 있는 자의 자녀들이 모두 다 공부를 잘 하니 다들 좋은 대학에 입학할 것이고 기여입학제가 허용되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제도가 될 것이니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돈 있는 집안의 학생=학업 성적이 좋은 학생’이라는 등식은 지나가는 소가 웃을 견강부회다. 현 정부가 타깃으로 삼는 강남 학군의 학생들이 우수한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높은 이유는 그들이 돈 많은 자녀들이 아니라 그 몹쓸 8학군 때문이다. 이는 고교평준화의 결정적 오산물(誤算物)이다. 그 지역으로 이주하지 못하면 8학군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하는 제도를 만들어 놓고 중학교 때부터 너도나도 교육여건이 제일 좋다는 강남으로 이사를 하게 하니 하찮은 아파트가 10억이나 하는 부자 동네로 바뀌게 된 것이다. 강남 사람들이 애초부터 돈이 많은 사람이란 편견을 버리고 돈이 학생의 질을 좌우한다는 허황된 생각을 버려야 한다. 분명 우수한 학생은 돈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소질을 타고 나거나 노력의 소산인 경우가 많다. 돈이 없어 강남으로 이주하지 못하고 열악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또 가난한 수재들을 위하여 고교 평준화는 폐지되어야 하고 기여입학제는 허용되어야 한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서든 원하는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고 돈이 없어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21C글로벌 시대를 대비하여 한국의 미래를 위하여 자유주의교육은 필요하다. 자유주의 교육의 핵심은 학생이 원하는 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하고, 학교가 원하는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이 정부의 통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말 그대로의 ‘아카데미’가 되어야 한다는 것임을 알린다.
황준성 / 한국교총 교육정책연구소 연구원 자유와 평등의 이념적 갈등 산물 대학입시와 관련된 정부의 대표적인 규제정책으로서 본고사 금지, 고교등급제 금지와 함께 3불 정책을 이루는 기여입학제 도입 여부 문제가 또 다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즉 최근에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을 포함해 한국대학교육협회 소속 4년제 대학 총장들이 제한적인 형태로라도 기여입학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여 달라고 정부에 건의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 논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대학총장들은 “기여입학제도의 전면적인 허용은 국민 정서 상 시기상조이지만 기여금의 용도와 기여입학 자격의 강화 등 문제의 소지가 있는 점을 보완하면 대학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하면서 제한적인 기여입학제 도입을 주장한 반면에, 교육부장관은 “기여입학제를 현 법령 체제하에서 적법하게 허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여 사실상 도입 불가방침을 밝혔다. 그런데 이러한 논쟁은 정부수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때로는 공론화 되면서, 때로는 수면 아래에서 암암리에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논쟁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에 있어 중요한 이념적 갈등인 자유를 중시하는 입장과 평등을 내세우는 입장의 대립이 자리 잡고 있음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유를 중시하는 입장은 대학이 학생선발권을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비로소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하면서 여기에는 기여입학제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기여입학제는 현재의 국가유공자 우대 정책 또는 외교관 자녀 특례 입학 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반면에 평등을 강조하는 입장은 신분제 사회의 음서제도를 통한 권력의 세습을 예로 들면서 특히 오늘날 대학 중심의 사회적 가치 분배체제에서 기여입학제는 부모의 돈으로 자식의 지위를 세습시키는 것과 같다고 하여 강력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기여입학제 도입반대라는 지금까지의 국민적 정서는 기여입학제에 대한 세밀한 검토에 따른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우리 국민들 다수가 무게 중심을 두는 평등주의적 가치관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질적․비물질적 기여 구분해야 기여입학제란 물질 또는 비물질적인 기여로서 특정 대학의 발전에 현격한 공적을 남긴 인사의 후손에게 해당 대학이 정한 기준과 방법에 따라 특별한 절차를 거쳐 입학을 허가할 수 있도록 특례를 인정하는 제도이다. 이러한 기여입학제와 관련된 사회적 논의 속에는 일부의 오해가 있는데 그것을 먼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기여입학제를 물질적 기여로 제한하여 기부금입학과 동일한 것으로 보는 잘못된 인식이 있다. 즉 기여입학제는 크게 비물질적 기여입학과 물질적 기여입학으로 나눌 수 있지만, 현재의 논의는 주로 물질적 기여 즉 재정적 기부에 그 초점이 주어짐으로써 논의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 사실 물질적 기여입학제 도입에 대해서는 많은 저항이 있을 수 있지만, 비물질적 기여입학제 예를 들어 광복 60주년을 맞이하여 모든 가산을 털어 독립운동에 헌신한 독립유공자들의 자녀들을 국가 및 대학에 대한 기여를 이유로 특례입학 기회를 제공하자고 한다면 많은 국민들이 이에 동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기여입학제에 대한 논의는 재정적 기여로 한정되어 있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여입학제가 도입되면 기여입학제로 인하여 혜택을 받는 부유층 자녀들의 수만큼 우수한 학생들의 입학이 제한된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기여입학제는 어디까지나 특례로서 일반전형과 다른 특별전형의 형식을 띠고, 정원 외 입학이 될 것이므로 일반전형에 의한 일반 국민의 입학기회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됨이 원칙이다. 또한 기여입학제가 도입된다고 하여도 제도 시행과 관련된 중요한 내용은 법령에 규정되기 마련이므로 일정한 기여가 있다고 하여 개별 대학이 마음대로 최소한의 수학능력도 없는 이에게 대학 입학을 허용할 수는 없는 것이며, 정원 외라는 숫자의 범위도 당연히 법령에 의해 일정 제한이 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끝으로 일부에서는 기여입학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배려대상자와 사회기여자에 대한 특별전형의 근거가 되는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34조 제2항과 정원 외로 입학할 수 있는 경우를 열거한 제29조 제2항의 개정만 있으면 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재적으로는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다. 고등교육법시행령 그리고 고등교육법 이전에 우리나라 법체계에 있어서 최상위를 차지하는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의 제31조 제1항과 교육기본법 제4조의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신념,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또는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교육에 있어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규정과의 관계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고등교육법시행령이 개정되더라도 그 위헌성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헌법개정 또는 헌법개정에 이르지 않더라도 그 개정에 상응하는 헌법적 해석이 도출되어야 기여입학제의 합헌적․합법적 도입이 가능한 것이다. 국민의 70% 이상이 부정적 의견 이유야 어떠하든 현재까지 기여입학제 도입에 대한 국민적 정서는 매우 부정적인 것이 사실이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70% 이상이 도입에 반대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반대 이유를 분석하면 그 핵심에는 사회적 지위의 세습으로 인한 위화감 조성이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학벌주의가 엄연히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대학 졸업 여부는 물론 출신 대학이 그 사람이 앞으로 획득할 사회적 지위의 수준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대학 입학 기회가 선천적인 가족력에 의해 결정된다면 부, 권력, 사회적 위치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강화될 것이 자명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는 곧 과거 계급사회로의 회귀에 다름이 아니므로 부와 권력의 세습 그리고 이로 인한 사회적 위화감이 심각한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매우 의미가 있다. 특히 학벌주의가 만연되어 있는 현실과 대학 입학이 바로 졸업이라는 등식이 존재하는 현재의 대학 학사 시스템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또한 기여입학제 도입의 필요성으로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대학재정 문제의 해결인데 이 점에 대해서도 국민적 시각은 그다지 곱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기여입학제의 도입여부가 공론화 되는 시점마다 먼저 불거지는 이슈가 대학 재정난이다. 정부의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투자가 OECD 국가의 평균 수준인 GDP 대비 1%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0.45%에 불과하며 특히,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 재정지원이 사립대 전체 재정의 5%에 못 미치는 현실 그리고 학교예산의 70%를 학생등록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편에서 기여입학제가 도입된다면 많은 대학 특히 사립대학들의 재정난 극복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유는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대학 재정 운영의 현실적 어려움을 인정하더라도 대학발전기금의 확충, 사립대학의 재단 전입금 증대 및 재정운영의 효율화 등의 대학 재정난 해소를 위한 제3의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학 재정의 투명성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도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밖에 기여입학제 도입이 대다수 대학에 고른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부 대학만의 전유물이 되면서 그 혜택이 몇몇 특정 대학에만 한정되는데 반하여, 지방 소재 대학이나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은 대학은 그 혜택을 받지 못함으로써 상대적 박탈감이 심화되고 결국 대학 간 서열화만 고착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없지 않다.[PAGE BREAK] 대학 재정문제 해결 등의 순기능 기여입학제가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은 문제점, 즉 역기능적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기여입학제도 순기능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기여입학제 도입 여부에 대한 문제의 답을 ‘시기상조’라는 용어로 압축하여 표현하고 싶다. 즉 제반 여건이 갖추어지는 시점에서는 그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지만, 현재는 그 여건이 갖추어지어 있지 않으므로 도입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기여입학제의 순기능을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대학 재정문제의 해결이다. 앞에서 대학의 재정적 문제의 해결이 제도 도입의 정당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여입학제도가 도입된다면 대학들의 재정적 어려움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또한 이는 결국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질과 고등교육의 국제경쟁력의 상승까지도 연계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또 다른 순기능의 하나는 국가 경제적 차원에서 조기유학 등으로 인한 국부의 유출을 최소화하는 한편, 기여금의 활용을 통한 등록금 인상 요인 상쇄 그리고 장학금 지급 등을 통해 부의 재분배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유층의 경우 국내 대학 진학에 실패한다면, 이들의 자녀들은 엄청난 금액을 쏟아 부어 가며 외국 대학으로의 진학을 추진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부유층 가정의 조기유학으로 인한 엄청난 국부가 유출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용은 순수한 국부의 유출로서, 국내에는 어떠한 기여도 할 수 없다. 그러나 기여입학제가 도입된다면 부유층 자녀들의 해외유학 경비는 크게 줄어들 것이며, 그 비용은 국내 대학에 유입됨으로써 대학 운영비용에 있어 등록금의존비율을 낮출 수 있는 계기가 됨과 아울러 등록금인상을 억제하거나 장학금 확충의 계기가 됨으로써 제3의 학생들에게도 많은 경제적 이득을 안겨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빈부의 격차가 극심하며 대학등록금이 서민들에게 대학 진학에 있어서의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때, 기여금입학제의 도입을 통해 등록금 인하 또는 경제적 약자를 위한 장학금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면 그 순기능적 의미를 높이 살 수 있을 것이다. 쉬운 예로 기여입학제 1명을 정원 외로 받음으로써 등록금 마련이 곤란하여 대학 진학의 꿈을 접어야 하는 서민층 자녀 2~3명에게 대학진학의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장학금 지급이 가능할 수도 있다면, 이것이 오히려 사회정의 및 평등 그리고 실질적 교육기회의 균등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접근은 기여입학제도에 대한 위헌론에 대응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도입을 고려할 수 있는 전제조건 이러한 순기능도 갖고 있는 기여입학제에 대하여 무조건적인 반대는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비용을 요구하는 것일 수 있다. 따라서 앞에서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였듯이 언젠가 즉 그 도입의 여건이 성숙되어질 때 기여입학제가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에서 용인되고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그 조건의 충족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노력 특히, 기여입학제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대학 측의 특별한 노력이 요구된다. 먼저 기여입학제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줄이고 순기능을 대학이 앞장서서 알림으로써 제도 도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이루어야 한다. 일전에 필자가 대학 강의 중에 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부금입학제에 대한 찬․반 토론을 실시하였던 기억이 난다. 토론이 시작되기 이전에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기부금입학제 자체를 금기시하였던 것에 반하여, 토론이 진행되고 기부금입학제의 취지 및 순기능적 측면이 언급되면서 점차 기부금 입학의 도입에 대한 찬성 쪽 입장이 커졌던 것이다. 일반 국민들도 이와 같을 것으로 본다. 대학들이 무리하게 기여입학제 도입을 추진하기보다는 국민들이 우려하는 것들에 대한 대안을 마련함과 아울러 기여입학제의 순기능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국민적 정서를 완화시키는 작업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물론 이에 더하여 대학은 재정운영의 투명화를 먼저 도모하여할 필요가 있다. 기여입학제에 대한 반감 한 편에 대학 재정운영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는바, 이에 대한 대책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또한 기여금의 용도, 기여입학 자격 등 기여입학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구체적 방안에 대한 논의와 첨삭의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그리고 도입가능한 제도의 모습이 갖추어져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 당국도 대학 학사에 대한 전반적인 시스템 정비를 대학과 함께 이루어 가야 할 것이다. 특히 어떻게든 입학만 하면 졸업은 당연시되는 현재의 시스템에 대한 재고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이 시스템 하에서는 기여입학제가 말 그대로 돈으로 대학 졸업장을 사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학입학=대학졸업’이라는 등식이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경쟁력 약화의 주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차제에 이에 대한 체제의 정비가 새롭게 이루어지기를 희망해 본다. 입학한다고 하여 모두가 졸업하는 것이 아니며, 입학이 사회적 지위 획득의 열쇠가 아니고 졸업이 그 열쇠가 될 때, 기여입학제와 관련된 반감은 크게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찬반 주장보다는 열린 시각 필요 기여입학제 도입과 관련된 견해를 명백하게 밝히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여입학제에 대한 견해가 자칫 그 사람 또는 그 집단의 성향을 대변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와 평등의 우선순위에 관한 논의의 각 주장이 공고한 이론적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주장을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고 또 그 반박을 자신만의 이론으로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순환적 논의인 것과 같이 기여입학제 도입 찬반에 대한 논쟁도 이와 같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기여입학제 도입의 문제가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하기보다는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본고가 찬반의 어느 한쪽에 경도 되어 있는 분들에게 다른 쪽의 시각을 열린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글 | 박하선/사진작가·여행칼럼니스트 인다족의 특이한 삶의 터전 '인레 호수' 과거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던 미얀마. 오늘날 정치적 문제로 세계의 많은 나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어 '아시아의 오지(奧地)'라고 불리지만, 아직도 가는 곳마다 부처의 미소가 살아있는 금빛 찬란한 땅이다. 그 오지의 벽을 넘어 강을 건너고 또 산모퉁이를 돌다보면 접하는 것마다 먼 옛날이요, 만나는 사람들마다 모두 친구가 되고 말기 때문에 바로 이런 곳을 가리켜 '여행자들의 천국'이라고 말할 것이다. '인레 호수(Inle Lake)'는 해발 1328m의 중부 내륙지방에 자리하고 있는데, 길이 22㎞, 폭 11㎞나 되는 꽤 큰 호수다. 그러나 이 호수의 매력은 단지 크고 수면이 맑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곳 아니면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주 독특한 것이 있어서다. 그건 바로 이 호수를 생활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인다족'이라는 원주민들의 특이한 삶을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물위에 둥둥 떠있는 밭들이 있고 그곳에 농사를 짓는다면 쉽게 이해가 되겠는가? 그러나 이 인레 호수에는 오래 전부터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기에 수많은 여행자들이 먼길을 마다 않고 인다족들의 그 특이한 삶을 찾아 이 호수를 찾고 있는 것이다. 카누와 함께 하는 인레 호수 산책 이른 아침에 카누를 타고 호수 속으로 들어간다. 아침 안개가 수면에서 연기처럼 피어나고 있다. 시계(視界)가 좋지 않지만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운치는 그만이다. 좁은 수로를 거의 빠져 나왔나 싶을 때다. 앞쪽 물안개 속에서 갑자기 카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엔진 소리도 요란하게 줄을 지어 이쪽 수로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공격대 같기도 하지만, 인레 호수를 찾아준 이방인을 위해 준비된 환영행사를 하고 있는 듯도 하다. 호수 속에서 살고 있는 인다족들이 토마토를 가득 싣고 육지와의 연결 거점인 '야옹쉐'의 장터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인다족들과의 첫 대면을 시작으로 인레 호수의 산책은 시작된 것이다. 어느 틈에 안개는 걷히고 호수 한가운데쯤으로 나왔다. 어디로 가겠냐는 카누 운전사 '틴우'의 물음에 지도에서 찾아낸 마을 '맹타우'를 짚었다. 투명한 수면 아래로 수초들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가운데 카누는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이 호수 일대에는 수많은 인다족들의 마을이 산재하고 있다. 땅위에 지어진 집들로 이루어진 마을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대나무로 엉성하게 엮어놓은 수상가옥들이다. 맹타우에서는 수상가옥의 학생들이 카누를 타고 인근 육지에 있는 학교로 등교하고 있었다. 수상가옥에서는 집밖으로 한발자국만 옮기려고 해도 카누 없이는 안되기 때문에 집집마다 이렇게 노를 젓는 카누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손으로 노를 젓는 것에 반해 이 사람들은 카누 제일 뒤쪽 끝에 서서 한 발로 노를 휘감고 그 발 힘으로 노를 젓는 것이 아주 특이하다. 자연 환경을 이용한 호수 위의 밭 이곳 인다족들은 호수 위에서 살지만 거의가 농사를 짓고 있으며 5%만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육지에 농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모두가 이 호수의 특징인 물위에 떠있는 밭을 일구어 놓고 있는 것이다. 그 독특한 농사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수면 아래의 수초들을 걷어올려 서로 엉키게 해서 밭이랑처럼 길다랗게 물위에 띄워 논 다음, 물결에 떠밀려 가지 않도록 양끝에 대나무 말뚝을 박아 고정시킨다. 그리고 그 위에 호수 밑바닥의 뻘을 퍼 올려놓으면 물기가 빠진 뒤 어엿한 밭이 되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부지런한 사람은 얼마든지 많은 밭을 만들 수가 있다. 때에 따라서는 이 밭이랑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있기 때문에 이랑 몇 개만을 서로 사고 파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수경재배나 다름없기 때문에 절대 가뭄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밭에는 주로 토마토 재배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미얀마 최고의 토마토 생산량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중국, 태국, 인도 등으로까지 수출하고 있다. 낯설지만 포근한 인다족들의 삶 수상 마을 인다족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온몸에 호수 물을 덮어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저녁으론 쌀쌀하기 때문에 춥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들도 춥다고 한다. 인다족의 '인다'라는 말이 '호수의 아들'이라는 뜻인 걸로 봐서 이것은 어쩌면 조상 대대로 그들을 품어온 이 인레 호수가 그들의 분신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늘 가까이 하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카누를 몰고 모두 일터로 나간다. 토마토를 싣고 장터로, 밭으로, 또 어부는 호수 한가운데로 고기를 잡으러 나간다. 한 어부의 카누를 따라가 봤다. 카누의 맨 뒤에 서서 한 발로 노를 저어가면서 잔잔한 수면을 살펴나간다. 물고기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그것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소리개를 연상케 한다. 갑자기 어부의 손길이 바빠졌다. 수면 위로 물고기가 숨쉬며 내뿜는 기포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 기포가 올라온 자리에 어부는 '썽'이라는 원추형 모양의 커다란 어구를 내리 꽂았다. 그리고는 길다랗고 끝이 예리한 꼬챙이로 그 속을 연거푸 쑤셔댄다. 처음부처 운이 좋았던지 꽤 큰 붕어 한 마리가 잡혔다. 어부는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또 다시 노를 저어간다. 시작이 좋았으니 오늘은 꽤 많은 고기를 잡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서…. 어망을 치는 곳도 있기는 하지만 이 호수에는 수초가 많고 수심이 2~3m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고기잡이가 아직껏 보편적이다. 일터에 나가지 않는 여인네들은 거의가 집에서 담배말이 부업을 가지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여인네들의 부업이 아니라 주업일지도 모른다. 업자가 일감을 가져다주면 하루 종일 앉아서 담뱃가루를 이파리에 직접 말아 '살롯'이라는 미얀마 담배를 만드는데, 열심히 하면 하루에 천 개피를 만다고 한다. 이때 받는 삯이야 우리 돈 가치로 환산하면 형편없는 것이지만 이곳에서는 꽤 생활에 보탬이 되고 있는 듯 했다. 어느 마을에서 한 젊은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땅위에서 살지 않고 물위에 집을 짓고 사는지, 불편하진 않은지 묻자 아버지, 할아버지 때부터 물위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도 물위에서 사는 것이 좋을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대답한다. 너무도 순진하고 단순한 대답을 듣고 나니 물었던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질 뿐이다. 그 젊은이의 말에 의하면, 그들 조상은 13세기에 남쪽 태국 국경 부근에서 두 형제가 이곳으로 이주해 온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들이 자식들을 많이 낳았기 때문에 지금은 그 수가 많이 늘어서 300여 개의 마을들을 이루고 있으며, 많은 가정에 그 두 분의 상을 모셔두고 부처님 이상으로 떠받들고 있다고 한다. 마치 축제 같은 인레의 5일장 이 인레 호수에 와서 또 하나 빼놓지 않고 봐야 할 것은 '이와마'라는 수상마을에서 5일마다 열리는 수상시장이다. 그 날도 새벽부터 서둘렀다. 수상시장은 아침 일찍부터 시작해 정오 무렵이면 파장되기 때문이다. 카누로 한 시간이 걸려 도착한 수상시장에는 벌써부터 100여 척이 넘어 보이는 카누들이 온갖 물품들을 싣고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물론 관광객들이 몰고 온 카누들도 그 혼잡에 한 몫을 하고 있었지만. 들어갈 틈이 없을 것 같아도 이리 밀고 저리 밀면서 잘도 왕래한다. 자고로 사람 몰리는데 구경거리가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인다족들의 화려한 색상이 물위에서 펼쳐지는 이와마의 장날을 축제의 분위기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인다족의 삶의 터전인 인레 호수의 사진은 새교육 10월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글 | 김연수/생태사진가 제자리비행의 명수인 토종 텃새 우리나라 400여종 조류 중에서 가장 멋있는 놈을 고르라면 난 단연 황조롱이(천연기념물 323호)를 꼽고 싶다. 매목(─目 Falconiformes) 매과(─科 Falconidae)에 속하는 중형의 맹금(猛禽)으로 까치처럼 우리 땅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우리나라에서 번식한 순 토종이다. 물론 황조롱이는 유라시아대륙 전역에 골고루 분포하지만 먼 거리를 이동하는 철새가 아닌 일정한 세력권을 가지고 우리주위에서 생활하는 텃새이다. 황조롱이의 가장 큰 특징은 제자리비행(정지비행 : Hovering Flying)을 한다는 점이다. 꼬리깃을 부채꼴로 펼치면서 머리는 지상을 쳐다보고 양 날개를 펄럭이며 정지비행을 할 때는 주로 지상의 먹이를 노리고 있을 때이다. 목표물을 찾으면 쏜살같이 활강하여 날카로운 발톱으로 잽싸게 덥친다. 황조롱이의 사냥술은 모든 맹금류가 마찬가지지만 잘 발달된 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공중의 높은 곳에서 들쥐 같이 작은 먹이를 찾을 때는 눈을 망원렌즈처럼 클로즈업했다가 정해진 목표를 향해 돌진할 때는 광각렌즈처럼 넓은 시야로 점차 변한다. 인간이 이용하는 카메라의 줌렌즈 보다 더 완벽한 줌 기능의 눈을 지녔다. 뛰어난 적응력으로 도시에도 서식 도시화, 산업화로 삼림이 줄어들고 자연환경이 점차 악화되고 있는 오늘날 야생조류도 개체수가 현저하게 줄고 있고, 크낙새처럼 거의 멸종상태에 이른 것들도 있다. 그러나 황조롱이는 까치처럼 인간이 만든 주변의 환경에 비교적 잘 적응해 산다. '도시의 사냥꾼'이란 새 별명을 얻은 것처럼 자연환경이 척박한 대도시 주변에도 그들은 강인한 생명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아파트 옥탑이나 고층의 베란다 화분, 도시의 광고탑, 교통감시 카메라 철탑 등 인간이 만든 구조물에도 둥지를 튼다. 먹이를 찾아 도심으로 역 이주 했는지, 원래 황조롱이가 살고 있던 곳인데 인간이 파괴한 자연에서 어쩔 수 없이 황조롱이들이 적응해 살고 있는지 조류학자들이 연구 할 대상이다. 황조롱이와 까치는 영원한 맞수이다. 크기는 까치가 10cm정도 크지만, 1대1 싸움에서는 당연히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를 가진 황조롱이가 이긴다. 황조롱이가 까치집을 빼앗아 둥지를 트는 경우가 이를 말해 준다. 그러나 까치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세력권 안에 황조롱이부부가 오면 근처의 까치들을 다 불러 집단 공격을 한다. 빼앗긴 둥지에도 끊임없이 찾아가 괴롭힌다. 인간 거주지 주변에서 번식하는 황조롱이와 까치의 주도권 싸움을 보고 있으면 왠지 처량한 생각이 든다. 물론 생태계의 약육강식과 경쟁논리가 당연히 존재하겠지만 인간들의 개발 탓에 얼마 남지 않은 번식처(전망 좋은 곳의 듬직한 나무)를 놓고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들쥐잡이의 명수 황조롱이부부 대부분의 맹금류처럼 황조롱이도 암컷이 수컷보다 크다. 수컷이 33cm정도, 암컷은 38.5cm 정도이다. 비행술에 능숙하지 못한 작은 새의 날개 길이가 어미보다 길다. 수컷의 등은 진한 갈색에 옅은 갈색의 반점이 있으며, 황갈색의 배에는 커다란 검정색 반점이 흩어져 있다. 머리는 회색, 꼬리는 회색 바탕에 넓은 검정색 띠가 있고 끝은 흰색이다. 암컷의 등은 진한 회갈색으로 암갈색의 가로무늬가 있다. 꼬리는 갈색이고 어두운 색의 띠가 있다. 울음소리는 '키, 키, 키' 또는 '킷, 킷, 킷'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황조롱이는 주로 들쥐를 잡아먹는다. 작은 새나 곤충들도 잡아먹지만 번식기 수컷이 잡아오는 먹이를 보면 70% 이상이 쥐이다. 새홀리기처럼 갓 부화한 새끼들에게는 잠자리와 같은 곤충들을 잡아다 주지만 그 기간은 극히 짧다. 대부분 쥐를 잡아 잘게 찢어 먹여주다가 새끼들이 어느 정도 크면 스스로 찢어 먹게 들쥐를 통 채로 던져다 준다. 4월부터 7월까지 번식기로 2~5개의 알을 낳아 암컷이 주로 포란하고 수컷은 열심히 먹이를 잡아다 준다. 27~29일 포란 후 새끼들이 부화하면 암컷은 초기 10여 일간은 둥지를 지키며 수컷이 잡아온 먹이를 새끼들에게 공급하다가 새끼들이 어느 정도 크면 수컷과 동시에 사냥에 나선다. 이 때 종종 까치들이 습격해 새끼들을 없애는 경우도 있다. *황조롱이의 힘찬 비상! 새교육 10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