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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청소년의 사춘기가 빨라지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어린 자녀들도 자극적인 성문화를 쉽게 접하게 된다. 성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나 가치관을 갖고 어린 시기에 성 접촉을 하다보면 성인이 돼서까지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그러나 부모들은 여전히 자녀가 성을 모를수록 좋다고 생각해서 성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에 구성애 푸른아우성 소장으로부터 ‘사이버 시대의 자녀성교육’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구 소장은 “10대 성교육의 핵심은 호기심을 풀어주는 것”으로 “지식뿐만 성에 대한 가치관을 갖게 하는 ‘성지혜’를 가르치는 것이 바로 성교육”이라고 지적했다. 10대들의 성적 호기심은 성에 대한 지식을 무제한으로 알려고 하는 형태, 남의 성적 경험에 대해 들으려고 하는 간접체험, 심지어 직접 경험해보려는 직접 체험 등 3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구 소장은 “1년에 여고생 중 2만 명이 낙태를 하지만 부모가 아는 것은 10%에 불과할 정도”라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호기심이 많은 똘똘한 학생들의 임신도 높다”고 밝혔다. 결국 10대 성교육은 직접 체험을 하지 않도록 만들면서 상대적으로 지식과 간접체험을 충분히 제공해야 하는 것. 구 소장은 “특히 부모는 자녀가 실제로 주변에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간접체험을 하도록 해야 한다”며 “이는 자녀들의 성에 대한 행동방침과 기준을 갖게 도와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는 어릴 적 성병에 걸린 옆집 아저씨 이야기를 통해 무분별한 성관계의 문제를 깨달았고, 자신이 10살 때 성폭행 당한 사실을 아들이 10살 되던 때부터 말해 성폭행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자녀의 성에 대한 관심과 행위를 인정하고 적절한 방법에 대해 조언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구 소장은 “야한 동영상은 본 뒤에 끄고 나서 자위행위를 하고 문은 꼭 잠그고 해야 건강에 좋다, 너무 많이 하면 키가 잘 자라지 못하고 골밀도나 신장에 안 좋으니 일주일에 1~2번 정도가 적절하다는 등의 말을 자연스럽게 전하면서 자녀가 올바른 습관을 들이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컴퓨터에 차단 프로그램을 아무리 깔아도 음란물을 막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 자녀에게 음란물 속의 행위는 연기일 뿐이라고 말해주는 것이 더 현실적인 교육이다. 한편, 사춘기에 들어서서 학부모들은 갑자기 변한 자녀의 모습에 ‘안 그러던 애가 왜 그러니?’라며 놀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자녀의 변화는 한 순간에 생긴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표출되지 못한 감정이 축적돼 생겼다는 것. 그는 “구체적인 성교육에 앞서 초등학교 때부터 자녀가 슬픔, 화, 부러움, 두려움, 사랑 등의 감정을 잘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것이 제대로 되지 못하면 사춘기에 정신적 방황을 겪기 쉽다. 슬픔의 감정을 막으면 나중에 우울의 감정으로 변질될 수 있으니 자녀가 마음껏 슬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때로는 부모가 함께 울어줄 수 있어야 된다. 자녀가 화가 나 있을 때는 부모가 자녀의 감정에 동의를 해주면서 스스로 화를 내고 풀어갈 수 있도록 해야 분노로 치닫지 않게 된다. 자녀가 부러워하는 대상이 생기면 초등학교 때는 무조건 해보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시적인 관심이라도 해보고 난 뒤에 포기를 하면 인간관계에서 상대의 장점을 칭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어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질투의 감정으로 남을 수 있다. 또 어린 자녀는 엄마와의 분리에 대한 두려움이 크니 부모는 화가 나더라도 ‘내다 버릴꺼야’라는 식의 말은 삼가야 공포의 감정보다는 용기를 키워낼 수 있다. 자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고 듣도록 하면서 아이가 독립적으로 잘할 수 있는 것을 찾도록 도와줘야 한다. 특히, 자녀에게 ‘착한 애’라고 하는 칭찬은 감정표현을 못하게 만드므로 재능이나 자아, 존재에 대한 칭찬은 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착한 일을 했구나’라는 식으로 행위나 노력의 과정, 결과 자체에 대해서만 칭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그는 “요즘 사춘기가 빨라지는 것의 결정적 원인은 바로 고열량의 음식과 운동부족으로 인해 호르몬이 일찍 분비되기 때문”이라며 “사춘기를 조금이라도 늦춰주려면 과자나 인스턴트 음식부터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구 소장은 “요즘 아이들은 성을 단지 욕구 해소로만 생각해 성 자체를 변태로만 여기곤 한다”며 “성은 인간생존에 필요한 에너지 교류라는 것으로 부모부터 개념을 바꾸고 교육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학 때 조병화 선생님이 다시 그리워진다. 선생님의 수업은 감동 그 자체였다. 선생님은 문학 이론을 가르치시기 보다는 문학에 대한 열정을 심어주셨다. 그리고 인생을 가르쳐 주셨다. 그뿐인가 선생님은 한없이 무엇인가 주시는 분이었다. 신간 시집이 나오면 헌사를 써 주시고, 수필집이 나오면 제일 먼저 주셨다. 선생님의 사랑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편지 왕래를 했는데 어느 날 붓글씨를 써 주셨다. 선생님의 스물두 번 째 시집 ‘남남’에 실려 있는 시였다. 선생님의 인자하신 모습처럼 글씨 또한 따뜻함이 그대로 묻어 전해 왔다. 버릴 거 버리고 왔습니다. 버려선 안 될 거까지 버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 ‘나의 자화상’ 나는 이 글을 액자에 넣어 책상머리에 걸어두었다. 그리고 내 생활의 방편으로 삼았다.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내 인생의 지표이고, 가훈이 되기도 했다. ‘버림’의 철학을 말씀하셨지만, 사실 인간은 ‘버림’에 익숙하지 않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외부로부터 얻어야 살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먹는 것부터, 남보다 좋은 것 맛있는 것을 먹으려고 한다. 그뿐인가 잠도 많이 자고 싶고, 휴식을 취해도 남보다 더 많이 편한 것을 추구한다. 그래서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은 못 메운다는 말까지 있다. 그러나 이 가지려는 욕심이 인간을 그릇되게 만든다. 이 세상에 모든 삶의 모습이 욕심으로 시작된다. 매일 신문을 장식하는 권력가의 몰락도 한없는 욕심의 끝이 만들어낸 슬픔이다. 자기가 충분히 누리고 있는 데도 더 차지하려다가 몰락의 낭떠러지로 추락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는데, 그들이 욕심의 끈을 놓았다면 극한 상황까지는 안 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담긴다. 매일 으르렁 대는 여야의 싸움도, 원주민과 개발업자간의 싸움도 성적이 나쁘다고 옥상에서 뛰어내린 학생도 모두가 잘못된 욕심의 저울에 앉아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욕심은 인간만이 가지는 본능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인간에게 절대로 유익한 정서가 아니다. 욕심은 그 속성이 영원히 만족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을 소리 없이 죽이게 된다. 인간은 존엄하다고 하지만 욕심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존재일 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안, 공포, 근심, 걱정, 아픔 등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슬기롭게 극복한다. 그런데도 그 아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정신까지 놓은 경우가 있는데, 그들은 내면의 욕망이 자아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아픔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생각의 전환만 가져오면 쉽게 해결된다. 인간의 본능을 알기 때문에 성인(聖人)들은 버리는 철학을 말한다. 물질의 욕심뿐만 아니라 정신세계도 훌훌 털어버리는 삶의 지혜를 말한다. 종교인의 수행도 마지막 단계는 버리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심오한 철학적 배경으로 말할 필요도 없다. 신산한 삶의 시름을 풀어내는 방법은 마음의 짐을 버리는 것이다. 하루의 피로를 풀고 여유를 누리면 오히려 내적 충만으로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세상과 잠시 단절하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위가 적막해진다. 정신 또한 청량함이 인다. 인간이 오래 살고 생을 마감하는 것도 더 이상 얻을 것이 없어서 스스로를 버리는 것이다. 태어날 때 맨몸으로 태어나듯 돌아갈 때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삶의 이치이다. 실제로 인간은 살아가면서 얻는 것보다 잃게 되는 것이 더 많다. 그렇다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버리며 살아야 하는 역설적인 존재이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보다 생활이 편리해지고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 산다. 그러나 우리는 가슴 한 구석에 구멍이 뚫린 듯 살고 있다. 늘 더 많은 것을 바라보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형편이나 수준을 벗어난 소유욕은 남과 비교되어 굴욕감과 수치심으로 밀려온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최근 우리 삶의 모습에 새로운 바람이 부는 것이다. 나눔의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가진 다는 것은 나눔을 위한 예비이다. 재산을 모으는 것보다 욕망을 줄이는 일이 더 쉽고 풍요롭다. 한 모금의 물도 혼자 가지고 있으면 썩어 버린다. 하지만 목마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면 생명수가 된다. 우리는 간혹 복잡하고 화려한 세상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텅 빈 마음에 위안을 얻는 경우가 많다. 사람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하기가 힘들다. 욕심이 없고 마음이 맑은 사람이 좋다. 버리지 않으면 그 무게에 짓눌려 헤어날 수 없다. 권력도 버려야 하고, 명예도 버려야 한다. 마음에 공깃돌만한 욕심도 내려놓아야 한다. 나를 조금씩 버리며 우화(羽化)를 꿈 꿔라. 욕심이 없는 마음이 순결해지고 신성한 나를 만든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18일 최근 논란이 된 심야 학원교습 금지 방안과 관련, "획일적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정리했다고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밝혔다. 임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당정회의가 끝난 뒤 가진 브리핑에서 "법률로 교습 시간을 정하는 것은 당은 수용하기 어렵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금도 서울시는 조례로 (교습시간을) 오후 10시로 운용하기 때문에 자율적 운영이 제대로 실천되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도 지적했다"며 "조례로 하는 것을 국회에서 법으로 간섭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임 정책위의장은 이어 "학원비 안정을 위해 학원비 공개나 학원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의 여러 가지 활동을 교육부가 펼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이 학원 심야교습을 법률 제정을 통해 획일적으로 제한하려는 방안은 사실상 좌절됐다. 임 정책위의장은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방식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자율이라고 하는 정책기조에 맞지 않는다"며 "대신 공교육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 학교 운영자율화와 교과교실제 등을 운영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학원 교습시간을 오후 10시로 제한하는 것은 성장기 학생의 건강을 해치지 않기 위한 측면에서 검토하면 의미가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학부모나 지역 교육의 현실에 맞게 해야지 획일적으로 정하는 것은 안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우선 당정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학교 운영 자율화 방안과 관련, 지난 4월 국회에서 추진했던 교원평가제를 6월 임시국회에서 재추진키로 했다. 이와 함께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서는 '방과후 학교'를 활성화하고, 여기에 참여하는 교사에게는 적극적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다만 영리학원에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을 위탁하지는 않기로 했다. 당정은 또 대입에서 학생 선발 방식을 다양화해서 입시 제도에 따른 사교육비 상승의 폐해를 줄이기로 의견을 모으고, 구체적인 방법은 정부가 마련키로 했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18일 학원의 오후 10시 이후 교습 금지 방안과 관련, "교습시간이 너무 늦어지는 경우 학생의 건강과 안전 문제 등이 사회적으로 대두되고 있고, 그러한 부분에서는 학부모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한나라당 의원 등이 참석한 당정회의 중간 브리핑에서 이같이 소개한 뒤 "그러한 관점에서 야간 교습시간 제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나라당 교과위원들은 당정회의에서 학원 심야교습 금지에 대해 공교육을 우선 강화해야 한다며 반대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안 장관은 "의원들은 사교육을 줄여 가는 것은 강제적 수단보다는 공교육 강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며 "사교육이 공교육에 미치지 못하도록 하라는 말로 이해한다"고 전했다. 안 장관은 또 "의원들은 공교육을 강화하는 데는 교과교실제나 학생.교수 평가, 학습교재 선진화 등이 복합적으로 진행되고, 그것이 결국 공교육을 강화하는 열쇠를 제공하게 된다고 말했다"며 "이렇게 해서 사교육이 공교육에 제압 당해야지, 교습시간을 몇 시로 제한하는 것은 근본적인 것이 못 된다는 게 의원들의 공유된 의견이었다"고 덧붙였다. 당정은 이날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의 언급으로 논란이 된 학원 심야교습 금지를 비롯한 사교육 절감 대책과 공교육 정상화 방안 등에 대해 논의를 벌였다.
전남도는 학교 급식용 음식재료를 도내 친환경농산물로만 제한하는 데 대해 광주시와 일부 농가들이 반발하자 이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18일 전남도에 따르면 지난 15일 광주시가 공문을 보내 와 전남지역 학교급식 식재료로 쓰이는 친환경농산물을 전남산으로 제한하지 말고 다른 지역 농산물도 받아 달라고 요청했다. 광주시는 "전남도의 농산물 공급 정책으로 광주지역 농가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전남지역 농산물의 주 소비처가 광주인만큼 이를 시정해 달라"고 전남도에 요구했다. 이는 그동안 전남지역 학교에 식재료를 공급해왔던 광주지역 일부 친환경 농산물 생산농가가 전남도의 학교급식 정책이 바뀌면서 판로가 막히자 광주시와 시의회 등에 어려움을 호소하며 민원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전남도는 이에 따라 전남산 농산물로만 제한하는 도내 학교급식 공급정책을 일부 변경해 광주지역 농산물의 경우 지역적 특수성을 감안해 허용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전남도 관계자는 "도비와 군비로 학교급식 식재료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는 만큼 그 혜택이 도내 농가에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때문에 선의의 피해가 발생한 것과 관련, 내부 논의를 거쳐 허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2004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학교급식 친환경농산물 식재료 지원사업을 시행한 전남도는 2007년부터는 도내 모든 보육시설과 초.중.고교에 100% 친환경농산물을 공급하고 있으나 생산량 부족 등으로 다른 지역 친환경농산물을 함께 제공했다. 그러나 최근 전남지역 친환경인증면적이 크게 늘어나면서 학교급식에 필요한 식재료 공급기반이 확충되고 이에 따라 전남도가 학교급식 식재료를 지역 농산물로만 제한하는 정책을 펴자 전남 인접지역 일부 농가들이 반발해왔다.
호주의 젊은 교사들이 교직을 떠나고 있다. 과중한 업무와 불투명한 미래, 상대적으로 낮은 보수 등이 주된 이유다. 뉴사우스웨일스주 야당연합이 최근 입수한 주정부 교육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교직근무 경력이 4년미만인 공립학교 교사들의 이직이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2년사이 20%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간 선헤럴드가 18일 전했다. 또 교직경력 5년에서 9년사이 교사들의 이직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 이 기간 교직을 떠난 교사들이 10%가까이 증가했다. 여기에 현재 근무중인 교사 가운데 절반정도가 오는 2016년까지 정년퇴임할 예정이어서 주정부 산하 공립학교들의 교사 부족현상이 심각해 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야당연합 교육담당 대변인 애드리언 피콜리는 "정부의 교사이직 통계는 충격적"이라며 "이는 주정부가 교사들에게 충분한 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교육현장에서는 교사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교육당국은 그저 최선만을 바라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콜리는 "주정부가 이런 현실을 개선하려면 젊은 교사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하고 개인 계발을 위해 충분한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하며 특히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들을 잘 지도할 수 있도록 교육환경을 배려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사우스웨일스주교사연맹 대표 밥 리프스콤브는 "이번 자료는 주정부 교육의 미래에 심각한 우려를 던져주고 있다"며 "특히 향후 7년후면 현재 근무중인 교사 가운데 50%정도가 정년을 맞아 교직을 떠날 예정이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행 교육시스템으로는 젊은 교사들을 붙잡고 있기가 불가능하다"며 "사정이 이러하기에 미래가 황량하기만 하다"고 덧붙였다. 호주교육연맹(AEU)이 최근 1천500명의 신규임용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조사대상 가운데 50%이상이 10년이내에 교직을 떠날 것이라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AEU는 교사이직을 최소화하려면 강의시간을 줄이는 등 업무부담을 축소하고 임금을 인상하는 한편 교직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AEU 대표 안젤로 가브리엘라토스는 "교사들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으며 교사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도 낮은 가운데 낮은 보수에 시달리고 있다"며 "경험이 많은 교사들에게는 수당을 더 많이 줘 교직에 애착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사우스웨일스주 신규교사는 연 5만2천호주달러(4천750만원상당)를 받고 있으며 담임교사는 최대 7만8천호주달러(7천410만원상당)를 연봉으로 수령하고 있다. 주임교사가 되면 연봉은 9만호주달러(8천550만원상당)로 늘어난다.
채천수 대구 성치초 교감은 최근 시조 70여 편을 묶어 세 번째 시조집 ‘연탄불 연가’를 펴냈다.
이두영 인천 전자공업고 교사는 최근 인천대에서 ‘교사발달 단계를 고려한 교사평가 준거의 탐색’으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김정배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13일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고전번역원 등과 업무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들 기관은 MOU를 통해 고전 작품을 한글이나 영문으로 번역하는 사업을 공동추진하고 한국사 관련 자료를 공유하는 등 업무교류를 추진하게 된다.
정종순 충남교총 신임회장은 21일 천안웨딩코리아에서 16시에 취임식을 갖는다. 정 신임회장은 지난 달 4일 선거를 통해 당선됐으며, 임기는 3년이다.
공부론·정치론·자연론 등 주자학적 지혜 남겨 “배움은 완성된 인간이 되기 위한 삶의 과정” 평생 명예와 권력 뿌리쳐 퇴계의 일생에는 크게 세 단계의 전환이 있다. 첫 번째는 출생 이후 33세까지의 시기로서, 주로 집을 배경으로 공부한, ‘재가수학기(在家修學期)’라고 칭할 수 있다. 두 번째는 34세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시작한 이후 49세 지방군수직을 끝으로 사직서를 제출했을 때까지의 시기로서, ‘출사기(出仕期)’로 이름할 수 있다. 세 번째는 50세 관직을 떠난 후 고향에 돌아와 강학에 전념하다가 70세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시기로서, ‘은거강학기(隱居講學期)’로 명명할 수 있다. 이상 세 단계로 보는 퇴계 일생은 빠르고 역동적이라기보다는 느리고 온화하며 점진적으로 전개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겉으로 보기에 50세 이후 관직을 떠나 고향에서 강학에 몰두하기 전까지 퇴계의 삶은 특별히 남다른 점이 없다. 우리가 퇴계를 겨레의 스승으로 꼽는 근거가 주로 그의 ‘학문’과 ‘교육’에 대한 성취라고 보면, 그것은 50대 이후에나 본격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주요 저술들도 거의 이 때 쓰여 지고 제자집단과의 긴밀한 교육적 관계의 형성도 이 때 이루어진다. 그러면 퇴계의 일생에서 두 번째 단계까지는 큰 의미가 없는 것인가? 그렇게 볼 수는 없다. 퇴계가 관직이 주는 명예와 권력의 맛을 뿌리치고 고향산천에 은거할 수 있게 한 내공은 쉽게 형성되는 것이 아닐 것인데, 퇴계의 재가수학기와 출사기는 은거강학기의 걸출한 성취를 있게 한 내면의 힘을 배양하는 과정이었으며, 인격적․학문적 토대를 담금질 하는 과정이었다. 퇴계는 벼슬을 결코 무작정 추구하지 않고 과연 자신의 학문이 그 벼슬을 감당할 만큼 성숙되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한다. 따라서 관직 생활 중에 휴가를 얻게 되면 독서당(나라에서 학문이 뛰어난 사람들을 엄격하게 가려 뽑아서 학문 연구에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특별한 시간과 장소를 마련한 곳)에 나아가 마음을 다해 공부에 임했다. 49세에 주세붕에 이어 풍기군수를 맡으면서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을 소수서원으로 사액서원화하고 이후 서원 중흥의 이념적, 실천적 토대를 마련한 것은 행정가로서의 업적의 백미이다. 참됨 실현하는 위기지학의 삶 관직 생활에도 어느 누구보다 충실했던 퇴계였지만, 늘 내면에서 용솟음치는 학문과 교육에의 열망을 떨쳐 버릴 수 없었기에 그는 일방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낙향한다. 한편으로는 정치나 행정보다는 학문과 교육에 적성이 맞았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다른 한편으로는 학문이 성숙하지 않은 자가 단지 출세나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에 이런 저런 벼슬을 덥석 맡아서는 안 된다는 출사철학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퇴계는 미련 없이 낙동강 근처 고향으로 내려가 고즈넉하고 아담한 교육공간을 마련해서 오랫동안 꿈꾸었던 학문과 교육에 침잠한다. 퇴계는 교육공간으로 양진암, 한서암, 계상서당을 거쳐 62세에는 도산서당을 마련하여, 점점 불어난 제자들과 교유하며 강학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퇴계의 명망은 높아지고 이에 따라 일방적 추천과 임명에 의해 각종 높은 벼슬이 주어지지만 퇴계는 사양과 사직으로 일관한다. 그가 사양하거나 사직하는 태도는 집요한 것인데, 그러면 그럴수록 높은 벼슬이 부여되는 역설적 상황이 연출된다. 세상은 모든 세속적 욕심을 비워내고 오직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즐거움에 매료된 퇴계에 반했던 것이다. 위기지학의 즐거움 속에서 ‘성학십도(聖學十圖)’를 비롯해서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와 ‘자성록(自省錄)’ 등 대표적 저술이 이루어졌다. 교육 이상 꿈꾸며 서원 부흥 주도 퇴계가 보여준 주자학적 지혜 중에서 실제로 이후 조선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고 또 현재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그의 공부론, 학교론, 정치론, 자연론이다. 우선 공부론에서 공부 및 배움에 대한 퇴계의 견해를 잘 엿볼 수 있는데, 그 정수는 ‘성학십도’에 잘 드러나 있다. ‘성학십도’는 인간됨의 완성에 이르기 위한 배움(聖學)에 대해 열 가지의 도설로 설명한 저작이다. 퇴계는 여기에서 인간은 우주적, 신적 본성을 자신의 본질로 하는 사랑(仁)의 존재로서, 이러한 사랑의 본질을 실현해 내는 것이 삶과 공부의 목표임을 말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경공부(敬工夫)’를 강조하는데, 경은 마음이 잡다한 생각이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고요하게 깨어있는 상태, 마음의 본연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두려워하듯 삼가고 또 삼가는 태도를 의미하며, 동시에 이를 위해 몸가짐이 정제된 상태를 의미한다. 경은 삶의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그리고 배움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이루어져야 할 공부이다. 한편 퇴계는 경을 기저로 해서 이루어지는, 소학(小學; 일상사로부터 좋은 생활 태도를 몸에 익히는 과정)에서 대학(大學; 인간과 사회와 자연의 진리를 경험적으로 탐구하고 삶에 구현하는 과정)으로 이어지는 공부의 단계 및 과정도 강조한다. 학교의 본질이 위기지학을 돕는데 있음을 잘 보여주는 퇴계의 학교론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그의 서원교육에 대한 견해와 실천이다. 퇴계는 자신이 생각하는 교육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특히 서원교육의 부흥을 주도했다. 기존의 향교를 비롯한 관학이 세속적 명리만을 추구하는 비교육적 공간으로 곳으로 전락하고 이에 따라 지식인과 사회의 풍속이 타락했다는 우려에서, 다름 아닌 위기지학의 교육정신을 관철하는 새로운 교육의 장을 야심차게 만들어 갔는데 그것이 서원이다. 그는 서원의 교육철학을 만들어 보급했고, 서원건립이나 서원에 대한 국가지원책 마련에 앞장섰으며, 스스로 도산서당을 만들어 서원교육의 모범을 보였다. 퇴계가 도산서당에서 보여준 교육적 사례는 한국교육의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학교교육의 모델이었다고 해도 좋다. 삶의 진실 깨우는 철학 사상 퇴계는 교육만이 아니라 정치적 관점과 실천에 있어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이는 행정관으로서의 여러 치적에서도 나타나거니와 더 주목할 점은 ‘성학십도’나 여타 시무책에 드러나는, 통치자의 자세와 역량에 대한 퇴계의 견해이다. 퇴계는 선조의 통치를 돕기 위해 심학을 내용으로 하는 ‘성학십도’를 써서 선조에게 바쳤다. 퇴계의 결론은 정치 역시 마음이라는 것이다. 퇴계는 또한 자연을 닮고자, 자연과 합치되고자 갈구했다. 퇴계에게서 인간과 자연은 별개의 존재가 아닌 하나였다. 인간의 완성은 결코 자연을 떠나서, 자연을 소홀히 하거나 착취하며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최고의 공부를 위한 최고 공간은 자연이었다. 퇴계가 교육적 이상의 실현 공간으로 의미부여 했던 서원이 늘 한적하고 아름다운 자연에 입지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이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늘 찾으며 몸과 마음을 맡겼던 청량산, 강과 대나무와 매화가 어우러진 도산서당에서 퇴계는, 자연을 닮은, 청명하고 소박하면서도 위대한 철학을 만들어 갔다. 퇴계는 위기지학에 대해 “깊은 산골의 무성한 숲에 있는 한 포기의 난초가 하루 종일 향기를 내면서도 자신이 향기롭다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표현한 바 있다. 퇴계 자신이 향기 가득한 난초였다. 결코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다만 스스로 즐거워서 한 공부이고 학문이었지만, 그로부터 향기가 났고, 그 향기는 퇴계가 살았던 깊은 산골만을 뒤덮지 않고 이 산 저 산을 넘어 금수강산 전체로, 금수강산을 넘어 이 나라 저 나라로, 그리고 시간을 타고 지금 우리에게까지 흘러왔다. 특히 그의 공부론, 학교론, 정치론, 자연론은 지금 우리가 잊고 있는 많은 삶의 진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과연 공부란, 학교란, 정치란, 자연이란 무엇인가? 지금도 그 대답을 찾지 못해 우리를 어둠 속에 해매이도록 하는 이 문제들에 대해 퇴계의 향기는 무언의, 그러나 풍부한 가르침을 전해 준다.
일본 가나의 ‘50음도’를 보면 첫말은 ‘아’이고 끝말은 ‘응’인데, 이것은 호랑이의 울음소리 ‘어-흥’을 나타낸 말이다. ‘아’는 모든 발음의 시작인 알파로써, 존경과 고귀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한국어의 ‘아버지, 아들, 아기’들의 고귀한 단어가 이 ‘아’ 에서 시작하는데, 이 ‘아’는 원래 고대어로 ‘위대한’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아’ 발음은 호흡을 입으로 크게 내 쉬는 것으로써, 그것은 ‘시작과 출발’을 의미한다. 반대로 ‘응’은 모든 발음의 끝인 오메가로,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호흡을 코로 내쉬며 위엄을 나타내는 ‘응’은, 권위를 상징하며 아울러 종료를 의미한다. 우리가 절에 가면 절 입구의 양 옆에 두 인왕이 서 있는데 한쪽의 인왕은 입을 벌리고 있고, 다른 한쪽의 인왕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여기서 입을 벌리고 있는 인왕은 ‘아’하고 악귀를 위협하는 것이며, 입을 꽉 다물고 있는 인왕은 ‘응’ 하고 공격의 자세를 취하는 표현이다. 이 인왕상 역시 짐승중의 왕인 호랑이의 표효를 상징한 것으로, 인간의 가장 용맹스런 모습을 나타낸 것인데, 고대 한국에서는 이 호랑이를 ‘산신령’이라고도 하였다. ‘삼국사기의 이두에 관한 연구’를 보면, 신라의 ‘나’(羅)라는 말은 고대에는 ‘태양, 태양의 신, 신’이란 뜻의 여러 가지 함축된 의미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호랑이의 또 다른 이름인 산신령은 ‘토지(土)의 신’(神)을 말하는데, 이를 일본어로 하면 ‘토(土)의 라’(ラ) 즉 ‘토지신’이 되고, 이것이 ‘도라’(虎) 즉 ‘호랑이’인 것이다. ‘태양신과 도라(虎)’ 즉 호랑이, ‘어흥과 아응’ 등은 이러한 역사적 흐름이 만들어 낸 것으로, 그의 연장선상에 태양을 근본으로 하는 ‘일본’(日本)이라는 국가가 생겨나고, 태양을 상징하는 ‘히노마루’(日の丸)라는 일본 국기가 만들어졌다.
사교육없는 학교는 서울의 덕성여중처럼 '방과후학교 활성화 등 다양한 교육을 통해 사교육을 줄이는 학교'라고 교과부는 설명하고 있다. 사교육없는 학교를 지정하면서 최소한 50%의 사교육비를 줄이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이를위해 3-4억정도의 예산을 투입한다고 한다. 이들학교는 자율학교로 지정하여 학교장에게 교원인사권등 많은 권한을 부여할 것이라고 한다. 각 시 도 교육청에서는 방과후 학교를 정책적으로 추진하면서 각 학교의 방과후학교 참여실태를 파악하여 서로 비교하고 있다. 지역교육청별로 참여율을 비교하여 순위를 매기고 있다. 방과후학교 시행 초기에는 학교별로 비교를 함으로써 각 학교의교장과 교사들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이제는 지역교육청까지 그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방과후 학교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편안하지 못하다. 그러면서 각종 언론의 주목을 받는 학교들이 등장하고 있다. 방과후학교 운영을 통해사교육비가 엄청나게 감소했다는 것이다. 또한 방과후학교의 연장으로 각 학교별로 방과후 공부방을 만들라고 하고있다. 말이 방과후 공부방이지 고등학교의야간자율학습을 초, 중학교에서도 실시하라는 것이다. 야간에 주로 운영되는 방과후 공부방 운영을 위해서 학부모들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학생들의 참여독려와 방과후 공부방을 관리하는 업무까지 학부모들에게 의존하려는 것이다. 학교에서 요구하면 자발적이 아니더라도 학부모는 어쩔 수 없이 참여하게 된다. 단 몇명의 아이들이 모이건 그건 별로 상관이 없다. 학교에서 방과후 공부방을 운영하느냐 안하느냐가 최대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야간에 방과후학교를 운영하는 학교에서 방과후 공부방을 운영한다면 과연 학생들이 얼마나 참여할까. 대답은 '글쎄'이다. 야간에 방과후학교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대략 두개 정도의 강좌를 듣고 있다. 방과후 공부방도 그와 비슷한 시간에 운영되기 때문에 이 학생들이 방과후 공부방에 참여할 확률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간 방과후학교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이 방과후 공부방에 참여해야 하는데, 그 학생들이 참여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높지 않다. 교원평가를 해야 학교교육이 발전하고 공교육이 살수 있다고 한다. 교사들이 잘 못가르치기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들이 사교육에 의존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원평가를 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방과후학교를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급기야는 사교육없는 학교를 만들어서 사교육비를 반토막 내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현재 사교육비를 얼마나 쓰는지에 대한정확한 데이터도 없이 반토막 내겠다고 한다. 과연 이 논리가 맞는가. 방과후학교에 참여하는 강사들은 대부분이 해당학교 교사들이고 일부는 외부강사들이다. 그렇다면 교과부의 이야기대로 방과후학교를 실시하니, 사교육비가 줄었다고 하는데, 해당학교 교사들이 야간에는 잘 가르치고 주간에는 잘 못가르친다는 이야기인가. 교사들이 못 가르쳐서 학원에 뒤진다더니 방과후학교 때문에 사교육비가 줄어든다는 논리를 교사들과 어떻게 관련지어 설명할 것인가. 이렇듯 최근의 교육정책추진이 내용물 보다는 포장되어 있다는 느낌이다.내용물이 어떻든 간에 포장만 그럴듯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도 맞지않는 정책을 억지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정확한 데이터없이 생각만 가지고 추진하는 정책이 과연 옳은 방향으로 갈지 염려스럽다. 학교별로 정확한 데이터없이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사교육없는 학교를 추진하면 원래부터 사교육이 거의없었던 학교들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사교육을 잡기위해 사교육없는 학교를 추진함으로써 소외되는 학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 학교들에게도 같은 예산을 투입해야 되는 것 아닌가. 소외계층을 그대로 두고 사교육비 많이 쓰는 곳에만 투자한다는 것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은 것이다. 하루하루 끼니도 채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게는 아무런 지원도 해주지 않고, 도리어 너무 많이 먹어서 비만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비만치료하라고 그 치료비용을 지원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이제는 포장을 뜯어버리고 내용물을 정확히 파악하여 그에맞는 정책을 개발하여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새로운 정책같이 보이지만 결국은 논리의 비약만으로 추진하는 정책이기에 성공가능성이 높지 않다. 하루빨리 내용물 정리에 모든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논어에 이런 말이 나온다. “君子(군자)는 成人之美(성인지미)하고 不成人之惡(불성인지악)하나니 小人(소인)은 反是(반시)니라.”라는 말이다. 이 말은 공자께서 하신 말씀인데 그 뜻은 ‘군자는 다른 사람의 훌륭한 것을 이끌어 주고 권장해 이뤄주고 다른 사람의 악함을 이루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니 소인은 이와 반대이다’라는 말이다. 이 말의 핵심구절은 成人之美(성인지미)다. 이 말씀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은 남의 훌륭한 점, 장점을 도와 더욱 완전하게 하라는 것이다. 공자께서는 늘 소인이 되지 말고 군자가 되라고 하셨는데 군자가 바로 우리 배우는 이들이 되어야 할 인간상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훌륭하고 아름다운 점을 도와주고 더욱 빛나게 해주라고 하신 말씀이 나와는 상관이 없고 별개라고 하면 안 된다. 그러면 소인이 되고 만다. 원하는 사람이 아니다. 누구나 싫어하는 사람이 된다. 이 말씀 속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남과의 관계를 더욱 원만하게 하라는 말씀이다. 나 혼자만의 아름다움을 더욱 추구하라는 말이 아니다. 우선순위가 본인이 아니고 남이다. 나 자신의 아름다움보다는 상대방의 아름다움에 더 관심을 가지라는 말이다. 成人之美(성인지미) 즉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이루어주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가능하기에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다. 예로부터 남의 아름다움을 이루어주는 것인 成人之美(성인지미)는 귀족들의 최대 덕목 중의 하나라고 한다. 가족, 친지를 비롯하여 함께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사람들에게까지 成人之美(성인지미)의 정신이 깃들어 있어야 하겠다. 成人之美에서 人은 남, 즉 상대방을 말하는 것이며 美는 아름다움의 뜻도 있지만 장점의 뜻도 있다. 상대방이 갖고 있는 훌륭한 점을 말한다. 그러니 여기서 美는 아름답고 선한 장점, 훌륭한 점, 아름다운 것이라고 보면 된다. 成은 이루다. 완성하다의 뜻이다. 그러므로 成人之美(성인지미)는 남의 아름다운 장점을 더욱 완성의 단계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不成人之惡(불성인지악)에서 惡은 미의 반대의 의미이다. 미가 장점, 아름다운 것이면 惡은 단점, 아름답지 못한 것, 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머지도 모두 반대의 뜻이 된다. 그러니 不成人之惡(불성인지악)은 다른 사람의 단점을 이루지 못하도록 경계하는 것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군자는 어떤 자인가? 남의 장점을 더욱 완성단계로 나아가게 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며 남의 단점을 아예 더 이상 굳어지지 않도록 잘라내는 역할을 하는 자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남을 더욱 빛나도록 장점을 칭찬해 주며 단점을 잘라내는 리더가 곧 군자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소인(小人)은 반시(反是)라 하였다. 즉 그와 반대라고 하였다. 소인은 장점을 보면 칭찬하고 장려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칭찬에 인색하고 남의 칭찬보다 단점을 들추어내기 좋아하고 세우기보다 허물기 좋아한다. 이런 자가 되지 말라고 공자께서 가르치고 있다. 학교마다 成人之美(성인지미)의 정신이 가득차 있으면 모든 이들이 아름다운 인물이 될 것이다. 자신보다 남의 장점을 먼저 칭찬해주고 자신보다 남의 아름다움을 먼저 이루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남보다 자신이 더욱 빛나게 되어 있고 자신이 더욱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남을 비방하는 소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남을 깎아내리고 남을 따돌리는 풍토는 사라져야 한다. 그런 이는 成人之美(성인지미)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고 언제나 낮아지려고 애쓰며 남에게 유익을 주려고 하는 물과 같이 맑고 깨끗한 마음, 겸손한 마음을 지녀야 할 것이다.
요즈음에는 교장, 교감 중에도 순수한 교사출신들이 많이 늘었다. 최소한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교사출신의 교장을 찾기 어려웠다. 최소한 교육전문직에 발을 들여 놓았어야 교장까지 승진이 가능했었다. 사실 따지고보면 전교조에서 '교장선출보직제'를 정책적으로 들고나온 시점이 바로 교사출신 교장이 거의 없었던 시기와 딱 맞아 떨어진다. 어쩌면 그 영향으로교사출신의 교장이 양산된 원인 일 수도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 교장급에서는 교사출신보다는 교육전문직출신들이 훨씬 더 많다.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다소 간격이 좁혀지긴 하겠지만 당분간 이런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직에 들어가서 시간이 지나니 교감이 되고, 또 시간이 지나니 그냥 교장이 되더라'는 어느 교장선생님의 말씀대로 전문직을 거쳐야만 앞날이 평탄해 지는 것이다. 이들 전문직출신들은 교감이나 교장으로 재직하면서도 교사들에게 전문직에 들어갈 것을 강력히 권유하고 있다. 그것이 교감, 교장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강조한다. 전문직출신의 교장과 교사 출신의 교장을따지고자 이글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출신이 어떻든 교장이 되면 마음이 변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자신이 재직하던 시절의 어려움과 문제점을 고스란히 잊는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학교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을때, 교사들은 '교감, 교장이 나서서 해결해 주어야 할 문제'라고 인식하는데, 교감, 교장들은 '선생님들이 그것도 못하느냐'는 정 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학교조직의 통합을 무너뜨리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자신들이 예전에 교사로 재직하던 때와 비교해 본다면 답은 바로 나오게 된다. 학교뿐 아니다. 교육청으로 올라갈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더 심화된다는 생각이다. 지난 3월말에 실시되었던'진단평가'만 하더라도, 4월 중으로 성적판별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했었다. 물론 서울시교육청에서는 그 약속을 지켰다. 4월 30일자로 공문이 발송되었기 때문이다. 일선학교에서진단평가 성적판별관련 프로그램을 받은 것은 5월 초이다. 이미 교사들은 '이러다가 진단평가판별 관련 공문이 중간고사 성적처리시기와 맞물리는 것 아니냐'는 염려를 하고 있었다. 4월 말에서 5월초는 각급학교의 중간고사기간 이었다. 이 시기가 중간고사 시험기간이라는 것은 교사들은 물론 학부모까지도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기간에 성적판별공문을 내려보내 학교를 힘들게 할 이유가 있었는가 묻고 싶은 것이다. 학교와 마찬가지로 '그것도 못하느냐'는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생긴다. 시기를 최소한 1주일만 당겼어도 이런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중간고사 성적이 나오고 이미 수준별 이동수업등을 실시하는 현실에서 진단평가결과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예산은 예산대로 투입하고 실효성은 떨어지는 모순을 발생시킨 것이다. 학교는 상급기관에서 시키면 시키는대로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다양한 여건을 생각하고 학교에 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못하냐'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교과부나 각 시 도교육청의 담당자도 고충은 있겠지만 최소한 그들이 교사출신이라면 학교를 좀더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했다는 생각이다. 여기에진단평가 활용방안을 보고하라는 공문이 며칠후에 내려왔다. 최근의 일이다. 이미 수준별 이동수업등의 부진아 지도계획을 모두 세워서 그대로 진행하고 있는데, 무슨 활용방안을 보고하라는 것인지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다. 솔직히 이번 진단평가결과는 참고할 수준밖에 안된다. 시기가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쉽지 않다. 학교와 교육행정기관과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강행했고, 그 결과를 억지로 학교에서 활용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학교에서의 생각과는 너무나도 다른 것이다. 결론적으로 학교의 교장, 교감은 물론 교육행정기관의 전문직과 모든 행정가들은 학교와 교사, 나머지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방안이더라도 적극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그 정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이런 점을 확실히 인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자신의 예전 위치를 한번 돌아보라. 그렇게 쉽게 결정하고 추진할 일들이 어디 있는지.... 의견을 충실히 듣는것, 여론의 향방을 쫓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이루어져야 할 기본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길 바랄 뿐이다.
야간자율학습 1교시였다. 새 학기를 맞이하는 아이들의 다짐을 알아보기 위해 글을 써보게 했다. 먼저 아이들에게 종이 한 장씩 나누어주고 난 뒤, ‘새 학기를 맞이하여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라는 제목을 칠판에 적었다. 그리고 다 적은 아이들에게 끝으로 담임선생님께 하고픈 이야기나 불만 사항이 있으면 적어보라고 했다. 아이들은 담임선생님의 의도를 잘 알고 있는 듯 정성들여 열심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내내 그 누구하나 떠들거나 장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분위기는 엄숙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솔직히 나의 관심은 아이들의 마음가짐이 어떠한지를 알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나에 대한 불만사항이 무엇일까에 더 관심이 쏠렸다. 시간이 지난 뒤, 각자가 쓴 종이를 접어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교무실로 돌아와 아이들이 쓴 내용 하나 하나를 빠짐없이 읽어 보았다. 아이들 대부분의 마음 자세는 2학기 때와는 달리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하물며 어떤 아이는 학기 초인데도 대학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며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리고 담임에 대한 불만사항으로 성적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다른 학급의 아이들과 비교를 하지 말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어떤 아이는 잘 웃지 않는 선생님이 무서워서 하고픈 이야기가 있어도 말을 걸지 못하겠다며 자주 웃어달라는 주문을 해 나 자신을 한번 뒤돌아보게 하기도 했다. 또 어떤 아이는 숙제가 많아 다른 공부를 할 수 없다며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담임에 대한 건의사항으로 아이들 대부분은 대학진학 상담을 자주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몇 명의 아이들은 자리배치를 할 때 친한 친구와 함께 앉혀 달라며 애교 섞인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아이는 칭찬에 굶주려 있는 듯 칭찬을 자주 해달라고 했다. 또한 몇 명의 아이는 우스갯소리로 수업시간에 잠을 많이 재워달라는 내용을 적어 나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담임에게 하고픈 이야기 중에 한 아이가 쓴 내용의 글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내용인즉,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으로 ‘야자타임’을 갖는 것이라며 한 달에 한번 ‘야자타임(나이를 완전히 무시하여 상대편을 높이지 않고 말하기로 서로 간에 미리 정해 놓은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그 아이의 제안에 처음에는 괘씸한 생각이 들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아이의 생각이 왠지 모르게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꼭 ‘야자타임’을 하기 보다는 역할극을 해봄으로써 아이들의 생각을 헤아려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또한 선생님의 입장이 돼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봄으로써 아이들과 선생님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갈등을 해소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교사들의 빈번한 좌충우돌(左衝右突)로 인해 사회가 어수선한 것도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되는 사회적 현상이라고 본다. 매사 무슨 일이 불거지면 학생은 학생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그리고 교사는 교사대로 각자의 입장만 내세우기에 급급할 뿐 그 누구하나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과의 입장 차이를 최소화 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 아이가 제안한 ‘야자타임’도 괜찮은 방법 중의 하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학교 체벌 및 학부모 학생 교사 폭행 등으로 교육 현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기만 하다. 그리고 담임 기피현상으로 학교 관리자의 고민 또한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체벌금지법이 법제화 된다는 사실에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법으로 보호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지나친 보호가 오히려 아이들을 망치게 할 수도 있다’라며 불편한 심기를 털어 놓곤 한다. 아무튼 각자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교사와 학생 나아가 학부모와의 관계가 예전처럼 원활해 질 수만 있다면 아이들이 제안한 ‘야자 타임’도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얼마 전 신문지상을 통해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주요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첫째, 한국 청소년들이 주관적 행복감은 OECD 조사대상 20개국 중 최하위이다. 둘째, 교육 부문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결과를 보였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경우 청소년을 위한 하부구조는 비교적 양호하지만 주관적인 행복감의 정도는 매우 낮다 등이다. 사실 한국의 청소년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말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오는 터라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 또 우리 청소년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전문가란 사람들이 하는 말들 역시 입시지옥, 가정파괴, 교사와의 갈등, 부모와의 다툼 등 항상 하는 말들뿐이다. 필자 역시 과거 청소년 행복에 관한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나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는 바로 이런 것들이다. 당시 연구의 주제는 청소년의 행복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구축하는 것과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세부 영역의 상대적 중요성 등이었다. 그러나 정작 내가 고민했던 주제들은 우리가(즉 어른들이) 생각하는 행복한 청소년은 어떤 청소년들일까. 만약 청소년들의 행복이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준비와는 동떨어진 즉흥적 감각이나 기분에 치우친 것이라면 그것은 과연 바람직한가. 만약 청소년들이 먹고 마시고 놀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그냥 그렇게 놔두는 것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말하면 청소년 그들의 행복과 이 사회가 요구하는 바람직함과는 어떤 관계가 설정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들이었다. 심야에 학교 또는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청소년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예상컨대 청소년들이 가장 큰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들은 우리 어른들이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는 상황들이 대부분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행복을 위하자니 바람직하지 않아 보이고 우리가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청소년들을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기성세대는 수많은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 제도를 통해 그들의 규범체계 안으로 이 후 세대들을 편입시키고자 한다. 적어도 시민사회가 발달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양한 가치와 지향을 가진 규범체계가 공존 할 수 있으며 어떤 경우 갈등과 충돌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그러나 성숙한 민주국가에서는 충돌이 발생하더라고 그것이 통제되고 조절되는 기제가 작동하게 되며 따라서 의견의 차이에 따른 극단적 파국은 어지간해선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사회는 다른 지향 또는 가치관의 제어되지 않는 전면적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이 말인 즉, 지금의 한국사회는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공유하고 받아들이는 공통의 사회규범이 존재하지 않는 아노미적 상황이라는 것이다. 청소년의 행복을 말하다가 갑자기 규범체계는 뭐고 아노미는 또 뭐란 말인가.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기성세대의 사회가 이러할 진대 우리의 자녀들에게 우리는 무엇이 올바르다고 말할 수 있으며 무엇을 전해줄 수 있고 또 그들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1990년 후반 동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한국사회를 특징짓는 것들은 바로 극단적 황금지상주의, 한탕주의, 배타적 가족주의 등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하는 말은 고작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면 좋은 직장 구할 수 있고, 또 부잣집에 시집, 장가 가고 하는 식의 말들이다. 이런 말 외에는 달리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는 것이다. 청소년의 교육과 관련해서도 한쪽의 논리는 반대쪽의 논리에 의해 서로 ‘하향평준화’나 ‘학교의 서열화’등의 선동적인 문구로 매도되어 버린다. 도대체 청소년들에게 공부를 더 시키자는 것이 무엇이 그리 잘못된 것이며, 부모의 경제적 수준이 자녀의 공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하자는 논리가 뭐가 그리 잘못됐는가. 청소년들도 성숙된 자아를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의 미래에 대해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청소년기는 이후 미래의 삶에 대한 진지한 준비를 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형성된 자아 그리고 미래에 대한 진지한 준비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적절한 지도와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지도할 매뉴얼조차 없는 실정이다. 그리고 고작 하는 말은 ‘공부해라’ 뿐이다. 청소년들의 행복을 논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 어른들이 행복한지 한번 생각해 보자. 노력한 만큼 성취하면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지를……. 자신이 그려왔던 삶과 현재의 삶이 얼마만큼 맞아 떨어지고 있는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들에 대해 만족하는지, 어른들이 삶에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사회에 만족하기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진지하게 해줄 말이 없어지게 된다. 청소년들이 행복을 논하기 전에 우리 어른들이 행복한지 생각해 볼 때다.
1961년 5월 15일 ‘새한신문’ 으로 첫발을 내딛었던 한국교육신문이 올해로 48주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한국교육신문은 교육과 관련한 핵심 뉴스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제공함으로써 교원들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교육의 큰 흐름에 관심을 갖도록 도와왔다. 또한 사건사고 위주로 사회부 기자들이 교육 관련 기사를 생산하면서 주로 교육과 관련한 어두운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오던 일반 언론과 달리 우리 교육의 강점을 밝히며 교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미래 지향적인 교육정책의 방향을 지속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우리교육이 나아가는 길에 횃불의 역할도 해왔다. 그 결과 지난 해 12월 ‘시사저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육분야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 매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거의 반세기동안 교육계의 희망이 되었던 한국교육신문이 또 다른 반세기를 새롭게 준비함으로써 늘 우리 곁에서 든든한 교육동지가 돼주기를 기대하며 몇 가지 바람을 적어본다. 첫째, 주간지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찾는 교육 분야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이 되기 위해서는 유료 회원들과 인터넷 신문 회원들에게 일주일을 기다리게 하는 대신 한국교육신문이 생산한 매일 매일의 새로운 소식과 정보들을 이메일을 통해 배달해주었으면 한다. 또한 인터넷 신문에 주제별 관련 기사들을 지속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거나 링크시켜 우리나라 교육과 관련된 기사나 칼럼 등은 한국교육신문 홈페이지에 오면 한 번에 해결되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기를 기대한다. 둘째, 지방 뉴스를 싣고는 있으나 지방주재 기자가 없어서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교육대학신문사 기자들을 해당 지방 주재기자처럼 임명하고 뉴스를 발굴하도록 한다면 지방 뉴스 발굴, 미래 회원 확보, 그리고 참신한 시각 도입 등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발굴된 뉴스는 인터넷 신문에 지역교육소식난을 따로 두어 지역별 소식을 쉽게 접근하게 하면 될 것이다. 셋째, 이제는 영자판을 시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당장 어려울 경우에는 인터넷 신문에라도 영자판을 만들어 외국인도 한국의 교육뉴스에 대해서는 한국교육신문영문판을 찾도록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한국교육신문이 앞장서서 우리 교육의 성과를 토대로 제3세계 교육을 도울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세계인은 한국교육을 부러워하고 높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한국교육의 최신 동향을 접하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교육에 대한 정보와 최신 뉴스가 거의 모두 한글로 생산되기 때문에 한글을 모르는 사람에게 한국교육은 베일에 싸인 존재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넷째, 핵심 회원들을 통해 교육에 관심이 많은 사람, 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 학부모들에게 교육신문 연간구독 지원 운동을 전개하기 바란다. 물론 구독자 배가 운동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일반인들도 교육신문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내용 보완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내용 보완과 관련해서는 먼저 교육관련 대토론의 장을 만들었으면 한다. 우리 사회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교육관련 이슈들을 발굴해 이슈에 대한 심층 분석을 하고 찬반 토론의 장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자유로운 찬반 토론의 과정이 지상 생중계 되면 한국교육신문을 통해 교원과 일반인들 모두 스스로 갈등을 넘어서는 블루오션을 발견해내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특히 유념할 것은 일반인이 보아도 교원의 편에서가 아니라 중립적인 시각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사회에서 놓치고 있는 교육관련 주요 이슈를 발굴해 미리 제시함으로써 한 발 앞서가는 신문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또한 고등학생과 대학생들도 교육의 주체로 자신들의 의견을 한국교육신문을 통해 피력할 수 있도록 찬반 토론의 장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바라보는 우리교육 코너를 만들 필요도 있어 보인다. 학교가 행복한 공간이 될 수 있게 학교구성원이 깨어나도록 돕는 신문, 우리교육이 이제는 세계 교육을 도울 수 있도록 교육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신문을 남은 지상의 여행 동안에도 한국교육신문을 통해 만나보고 싶다.
학생이 수업 중 다쳤을 때 보건교사가 감염이나 합병증을 예방하는 조치를 했다면 주의의무 위반이 아니라는 판결이 최근 나왔다. 작품만들기 수업 중 칼 끝이 부러지면서 칼 조각이 눈에 맞는 사고를 당한 A학생의 부모가 낸 소송에서 울산지법 강재원 판사는 “보건교사가 학생에게 눈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한 뒤 30분 정도 거즈로 눈을 덮고, 얼음주머니 등을 이용해 치료 한 행위는 감염이나 합병증 예방에 도움이 되는 조치였다”며 “당시 학생이 병원에 후송됐다 해도 병원의 다른 수술계획 등으로 인해 당장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였던 만큼 치료가 지체됐다고 볼 수 없어 교사의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하기도 힘들다”고 밝혔다. 다른 교사에게 학생 관리를 부탁하고 잠시 자리를 비운 지도교사에 대해서도 “지도교사가 칼의 사용법 등을 시연해 줬고, 칼로 구멍을 내고 가위로 자를 것을 지시한 사실 등을 감안할 때 관리·감독 주의의무를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며 “지도교사 사용자인 교육청의 책임도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A학생은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2007년 4월, 과학의 날 실습으로 학교 과학실에서 물로켓을 만들던 중 칼로 플라스틱 병을 자르다 튄 칼 끝에 눈이 맞았다. 하지만 칼날이 눈에 들어가지 않았고 출혈도 없어 기본 치료만 하고 다시 수업을 받았고, 약 3시간 후 눈이 불편해 보건실을 다시 찾은 A학생은 보건교사로부터 연락받은 부모와 종합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았지만 각막혼탁 등 시력장애가 발생했다. 이에 A군의 부모는 학교 측이 조속히 대처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