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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지난 5월 8일 경인교대 학생들이 동맹 휴업 및 투쟁에 참가했다. 행사는 여의도 공원 이루어졌고, 1시 반 사전집회 후 2시부터 본격적인 본 집회가시작됐다. 이번 투쟁과 관련 경인교대 경기캠퍼스 부총학생 회장(06학번 신용민 학우)을인터뷰했다. 이번 투쟁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대회명에 이번 투쟁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가 다 담겨 있습니다. 대회명은 이명박 교육 정책 반대! - 교대 통폐합 저지, 교대생 실업 해소, 교육재정 확보, 일제고사 반대 - 였습니다. 여기에서 이명박 교육 정책으로 대표되는 여러 정책들을 막아내는 것―교대 통폐합을 저지하고, 교대생 실업 문제를 해소하며, 교육재정을 충분히 확보하게 하고, 일제고사를 막아 내는 것―이 주되게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투쟁을 하고자 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 이번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얻겠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기본 논리인데 교육과 관련된 투자에 대한 성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나지만 정부에서는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투자를 줄이려고 합니다. 이번 교대 통폐합 문제 역시 교대가 일반대에 통폐합되면 그만큼 돈이 많이 들어가는 교대에 많은 돈을 투자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오로지 지원을 줄이려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만약에 통폐합이 추진된다면 교육이 질이 떨어질 것이 분명한데 일반대와 통폐합이 될 경우 상호 간에 복수전공, 부전공, 전과가 가능해집니다. 만약 일반대 타 단과대 학생이 교육대학으로 복수전공, 부전공, 전과를 한다면 길게는 2년, 짧게는 1년 만에 교육과 관련된 강의를 듣고 어떤 교사가 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교사가 될 수 있는데, 지금 현 교육대학교 체제 안에서 교대생들이 4년 동안 교육과 관련된 강의를 듣고 어떤 교사가 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과 비교해봤을 때 산술적으로만 생각해봐도 어떤 체제가 더 좋은 교사를 만들 수 있을 것인지는 너무 분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교대생 실업 문제도 마찬가지로 교육에 투자를 줄이려는 생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매년 OECD에서 국가 경쟁력 순위를 발표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재작년에 비해 작년의 순위가 2순위 정도 떨어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추가적으로 OECD에서 국가 경쟁력이 저하된 주요 요인을 발표하였을 때 우리나라의 경우 학급당 학생 수와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OECD 국가 중에서 거의 최하위 수준이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결국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교사를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교사를 덜 뽑으려고 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교사밖에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상당수의 교대생들이 교사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 초등 임용고시의 경쟁률이 2:1 정도인데 분명 과거에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초등 임용고시의 적정 경쟁률이 1:1.2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경쟁률이 2:1이라면 실업률은 50%나 된다는 이야기가 되며 이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심각하다고 이야기되는 청년실업률을 훨씬 웃도는 수치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신자유주의라는 근본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교육재정을 충분히 확보해야 합니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에 교육재정을 GDP 대비 6%로 확보하겠다고 주장하였지만 현재 교육재정은 GDP 대비 5%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대선 시절 공약을 이행하고 충분한 교육재정을 확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문제는 비단 예비교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도 끊임없이 경쟁 체제 속으로 편입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정책은 바로 일제고사인데 일제고사로 인해 아이들은 등수가 매겨지고 줄 세워지고 있으며 일제고사에 대한 선택권을 부여한 교사에게 촌지를 받거나 학생 성추행을 한 교사보다 더 심한 해직이라는 징계를 내렸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어떤 국민이라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아이들에게 맑은 눈빛과 웃음을 되찾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 투쟁을 하게 된 계기 및 상황는 무엇입니까? - 통폐합과 관련해서는 2월부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2월에 열렸던 교대 총장협의회에서 논의되었던 통폐합 추진이 처음 이야기되었고 3월 초에 전국 교대의 사무국장들과 기획처장을 교육과학기술부에 모아서 통폐합이 추진될 경우 그 결과가 어떨 것인지 에 대해서 질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3월 27일 교대 총장협의회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사무관이 와서 직접적으로 통폐합 시행에 대해 총장님들에게 이야기를 꺼냈으며 원래는 총장협의회 직후에 통폐합에 대해 발표할 것이라 예상되었는데 7월에 통폐합 신청을 받는 것으로 통폐합 추진은 연기된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폐합을 추진할 경우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에서 투쟁을 잡은 것이며 추가적으로 08학번부터 보장되어 있지 않는 수급문제를 확보할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동시에 이 근본에 있는 교육재정 확보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현재 교육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일제고사에 관련하여 우리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이번 투쟁의 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육 관계자와 합의한 내용, 협의된 상황은 무엇입니까? - 실제로 이번 투쟁 면담에서 합의하거나 협의된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기만적으로 기존에 법으로 보장되어있던 07학번까지의 TO를 법을 어기면서까지 보장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하였고 이에 대해 실제 당시 07학번까지의 TO를 보장하는 미발추 특별법을 개정했던 국회의원을 찾아가 교육과학기술부가 법을 지킬 수 있도록 설득하고 행정소송을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추가적으로 통폐합과 관련하여서도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러한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에 말에 대해 교대협에서는 통폐합을 지속해서 추진할 경우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한 상태입니다. 앞으로 우리(교대생)가 해야 할 노력이 무엇입니까? - 현재 교대는 교대가 생기고 나서 가장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정부에서는 끊임없이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통해 공교육을 말살하려고 하고 있으며 우리 아이들과 예비교사를 경쟁시키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우리의 목소리와 우리의 대안을 생산해내서 이것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대안을 생산해내기 힘들뿐더러 현재 교육정세에 대해 정확하게 분석할 줄 아는 역량마저 부족한 상태입니다. 실제로 교대협의 상황을 보았을 때 교육문제를 중심적으로 이야기하고 해결해야 할 총학생회가 서지 못한 단위가 4군데나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교대생들이 현재의 상황에 대해 자각하고 이러한 문제에 대해 관심을 더 많이 가지면서 자기 자신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야 할 것이며, 이렇게 역량을 키워나가는 데 있어서 각 단위의 총학생회 및 과학생회에서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교육단체가 변화해야할 방향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이명박 정부가 2년차에 접어들면서 올해에는 교육 정책을 가장 강력하게 시행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현재 교육의 가장 큰 문제,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문제 해결의 극복으로 삼을 수 있는 문제는 일제고사 문제와 등록금 문제인데 이러한 교육의 문제를 모든 교육단체의 강고한 연대와 단결로 극복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보다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고민을 시작으로 공통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이고 헌신적으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목표는 ‘창의적인 글로벌 인재’ 육성 미래형 교육과정의 구조는 우선 현행 교육과정에서 10년으로 된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을 10년에서 9년으로 단축하는 쪽으로 개편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교육과정과 학제가 일치돼 학교 급별 교육과정의 특징을 살릴 수 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성격을 진로 및 진학 교육으로 명료화할 수 있으며, 개별 학교(특히 고등학교)의 특성화된 교육과정 개발이 가능해지고,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다양화 • 특성화됨으로써 대학입시제도의 변화를 견인할 수 있게 된다.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은 획일적으로 구획된 10개의 교과를 10년 동안 편제함으로써 지역과 학교가 학교 교육과정을 융통성 있게 개발하는 것을 어렵게 했다. 글로벌 창의 인재 육성은 학교 교육과정이 획일화를 벗어나 다양화되고, 융통적일 때 가능하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교과군 접근을 해 지나치게 많은 교과 수의 문제를 해결하고, 주당 이수 교과목 수를 5~8개 정도로 축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과군 접근을 하게 되면 교과 군 내 하위 교과들 간, 교과군 간 교육내용의 통합 가능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다. 또 학년 군별로 교과를 배치하게 되면 매 학년, 매학기, 매주 동일 교과를 이수하지 않고, 특정 학년, 특정 학기에 교과의 집중 이수가 가능해진다. 교과의 집중 이수가 가능하게 되면 교과에 대한 심층적 학습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고 여기에 교과군 별 최소 이수 시수를 주고, 학교가 총 이수 시수 안에서 가감해 운영할 수 있도록 하면 학교 교육과정의 자율성이 더 커지게 되고 다양화, 특성화가 더 촉진될 수 있다. 자율화 • 다양화 • 특성화가 핵심 교과 집중 이수제를 고등학교 수준에서 교과 교실제와 졸업 이수 학점제(시수 혹은 단위제)와 함께 도입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학생들의 개인별 교육과정 구성이 가능해진다. 학점제를 도입하면 조기졸업도 가능하다. 교과 교실제 운영을 잘하게 되면 수준별 학습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될 것이다. 미래형 교육과정의 편성 운영 체제에 담을 교과의 구조 또한 미래형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총론에서 교과 교육과정의 내용 기준과 성취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자율화, 다양화, 특성화된 학교 교육과정의 책무성을 묻도록 해야 한다. 교과 교육과정의 기준은 교과의 구조 또는 교과를 대표하는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교과 내용의 정수를 선정해 개발해야 한다. 학생들이 단편적 지식 학습에 몰입하게 하는 기준은 피해야 한다. 또한 교과의 내용 지식과 과정 지식을 창의성 증진 학습의 기초가 되도록 균형 있게 조직해야 한다. 낮은 수준의 정보나 사실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사고 과정만 강조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미래형 교육과정에서는 수학, 과학, 외국어 교과를 강화해야 한다. 수학과 과학은 당장 효용성이나 생산성이 없어 보이지만, 공학적 창의성이 발현되는 기초가 된다. 국가 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교과를 강화해야 하지만, 학생들이 몰입해 재미있게 의미를 이해하고, 배운 것을 새로운 문제 사태에 적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을 강화해야 한다. 글로벌 창의 인재 육성을 위해서 외국어 교육 또는 생존 언어 능력을 넘어서 학문적, 전문적 의사소통이 가능한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단위학교의 자율성 전제돼야 미래형 교육과정에서 학교 교육과정이 특성화, 다양화되기 위해서는 단위학교의 자율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율의 행사에는 학생의 학습 경험의 질에 대한 책무가 동반되어야 한다. 3, 6, 9학년에 전국 공통 학력 성취 평가를 실시해 책무를 묻되, 평가는 글로벌 창의 인재가 보여야 할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영재 교육, 저학력 성취자 교육, 다문화 교육, 특수 교육 대상자를 위한 교육과정에 대한 책무와 질 관리는 학교, 교육청, 교과부가 해야 한다. 미래형 교육과정이라는 변화는 미래를 추동하는 힘이며, 미래형 교육과정은 국가, 사회, 지역, 단위학교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변화 역량을 요구한다. 우선 모든 구성원들이 변화를 이해해야 하고, 변화하려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저해하는 법과 제도 정비, 교원의 전문성 신장 등을 위해 인적, 물적 지원이 충분히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1 한 방송사가 최근 며느리 1000명에게 시어머니에게 하는 흔한 거짓말이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어머니 벌써 가시게요? 며칠 더 계시다 가세요”가 1위로 꼽혔다고 한다. 설문에서는 며느리의 이 말을 ‘거짓말’이라고 했지만, 나는 이것을 굳이 거짓말로 분류하고 싶지는 않다. 거짓말과는 좀 다른, ‘빈말’이라고 하고 싶다. 말에 별 악의가 없기 때문이다. 며느리가 빈말로 하는 인사를 듣는 시어머니들은 어떠한가. “너,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 말아라. 내가 네 속아지 모를 줄 알고!” 이런 시어머니는 없을 것이다. 만약 이렇게 말하는 시어머니가 있다면, 그런 이야말로 죽다 깨어나도 어른 노릇을 할 수 없다. 시어머니 노릇 하기를 포기한 사람이나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빈말의 보살핌에는 역시 빈말의 응대가 자연스럽고 평화롭다. “네가 해 주는 밥 먹고 있으니 날짜 가는 줄 모르겠다. 너무 편하고 좋구나. 마음 같아서는 더 있고 싶지만, 비라도 오면 고추 모종도 옮겨야 하고…. 내려갔다가 다음에 또 오마.” 물론 이 또한 빈말이다. 비 온다는 예보도 없었고, 고추 모종은 꼭 시어머니가 해야 할 일도 아니다. 이런 빈말 응대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빈말이 굳이 본마음 그 자체는 아니라 하더라도, 또 다른 차원의 미더움과 배려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엿보게 된다. 위와 같은 고부 간의 빈말 인사는 두 사람 사이에 탄탄한 심리적 안정의 틀을 만들어 낸다. 빈말 인사조차도 오갈 수 없는 고부 사이에는 갈등이 훨씬 고약한 구조로 드러난다. 빈말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미적(美的)인 거리를 만들어 내는 기제라고나 할까. 이것이 빈말의 매력이다. 2 올 해로 10년 째, 나는 아침 일찍 올림픽 공원에 걷기 운동을 나간다. 나무들이 잘 둘러선 자리 좋은 곳마다 새벽 잠 없는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흘러간 유행가를 단체로 부르기도 한다. 더러 귓전으로 들려오는 할머니들 대화는 대개 며느리에 대한 못마땅함과 섭섭함을 토로하는 것이다. 시어머니 용심은 하늘이 낸다고 한 옛말도 있거니와,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면 그런대로 이해도 간다. 지금의 며느리들도 나중에는 피해갈 수 없는 시어머니의 자리가 있을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중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시어머니들의 불만은 바로 이런 말이다. “빈말이라도 제 입으로 ‘어머니 한번 다녀가세요’ 그 소리 한번 하는 걸 못 봤어.” “손자들 노상 맡겨 놓고서는 빈말이면 어때. ‘어머니 힘드시죠’ 그 말 한 마디를 못해요. 내가 인사 듣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야. 너무 정 없이 해.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데, 어휴 속상해.” 그렇다. 빈말이래도 좋다지 않는가. 그 빈말 한 마디만 해주었어도 이렇게까지 섭섭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우연히 할머니들의 푸념을 들은 것이지만 젊은 며느리 세대인들 시어머니 쪽에서 베풀어주는 빈말에 대한 갈증이 왜 없겠는가. 그 아무 것도 아닌 빈말을 왜 그렇게 못하는 것일까. 빈말을 그야말로 텅 비어 있는 말이고, 허언(虛言)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꼭 막힌 생각인지 모른다. 오히려 빈말의 효용을 터득하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자기중심의 사고 벽에 갇혀서 답답하게 소통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PAGE BREAK] 3 실제로 있었다는 또 다른 이야기 하나.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어느 시골에 면장님이 새로 왔는데, 그날 저녁 부면장과 함께 인근 식당에 갔다. 두 양반이 다 등심구이 고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고기 먹는 취향은 조금 달라서, 면장은 바짝 다 구운 고기, 이른바 웰던(well-done)을 좋아하고, 부면장은 중간 정도 구운 고기(흔히 양식을 주문할 때, medium이라고 하는)를 좋아했다. 불판에 고기를 올려놓고 고기를 먹기 시작하는데, 고기가 익을 만하면 부면장이 냉큼 냉큼 먼저 다 집어 먹는 것이었다. 미디엄 상태의 고기를 좋아하는 부면장으로서는 굳이 다 익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고. 면장은 참을성 있게 기다렸으나 좀체 기회가 오지 않았다. 고기가 제대로 익기도 전에 부면장이 다 먹어 치우는 것 아닌가. 마침내 면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예끼! 여보게 혼자서 다 먹게나. 나 원 참!” 해프닝에 가까운 장면이지만, 어쩌다 이렇게 민망한 사태로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왕성한 식욕을 탓해야 할까. 아니면 부면장의 눈치 없음을 탓해야 할까. 이쯤에서 생각나는 텔레비전 라면 광고(CF) 하나가 떠오른다. 워낙 국민 전체가 인상 깊게 받아 들였던 광고인지라, 세월이 한참 지났어도 범국민적 광고인 것처럼 느껴진다. 다 끓여 놓은 라면 한 사발을 앞에 놓고, 코미디언 두 사람이 화면에 나와서, 얼굴 가득 먹고 싶은 표정이 번지면서도, 서로 라면 사발을 상대에게 권하면서 말로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를 외치는 것이다. 진짜 마음은 내가 먹고 싶은데, 공연히 마음에 없는 말로 “형님 먼저”, “아우 먼저”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빈말 인사의 가장 전형적인 장면이다. 분명히 빈말에도 힘이 있다. 앞 이야기에서 면장과 부면장은 빈말의 효용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다. 빈말로라도 “면장님 먼저 드시지요”, “부면장 먼저 드시오” 이렇게 몇 번만 권유를 했더라면, 그렇게 낭패스러운 장면으로 한 걸음에 치달았을까. 빈말 권유를 받는 동안에, 면장은 “나는 익은 고기를 좋아해서 좀 기다려야 합니다”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입맛 취향을 말했을 것이다. 부면장 또한 빈말 권유에 얹혀서 이른바 미디엄으로 구운 고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어디쯤서 했을 것이다. 그렇게만 했더라도 그렇게 민망하지는 않은 소통의 가닥을 잡아 나갔을 것이다. 지하철 안에서 민망스러운 장면 가운데 하나가 빈자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체면 돌아보지 않고 몸으로 또는 말로 다투는 장면이다. 그 다툼의 주인공이 젊은이와 늙은이일 경우에는 타고 있는 사람 모두가 민망하다 못해 어떤 수치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젊은이가 어른 공경할 줄 모른다”고 “어디서 그런 버르장머리 배웠느냐?”고 거품 품고 일장 훈시를 하는 늙은 양반의 모습도 각박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이고, “여기가 당신 안방이냐, 누구를 훈계하느냐. 그렇게 대접받고 싶으면 자가용 타고 다니시지 지하철 왜 타느냐”고 바락바락 대어드는 젊은이의 말대꾸를 듣노라면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황폐감을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모두가 빈말을 우리 생활에서 추방했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이다. 내가 앉아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빈말 한번 하는 것이다. “할아버지 여기 앉으시지요”, “아가씨 먼저 앉으세요”, “아저씨 앉으세요”, “젊은이 나는 곧 내리니 앉으시게.” 이렇게 빈말이라도 해 보는 것이다. 상대 또한 빈말로 한 번쯤 사양을 해 주면 속된 말로 참 그림이 좋다. 물론 상대가 냉큼 앉아버렸을 때의 허탈한 상실감이 있을 수도 있다. 그 야속함이란 내가 한 말이 빈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그런 빈말 덕에 앞의 장면처럼 마치 막 사는 사람들처럼 망가지지는 않는다. 이것이 소위 자존심의 영역이다. 4 빈 말은 그냥 텅 비어 있는 말이 아니다. 딱히 거짓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다지 마음에 담고 있지는 않지만, 상대를 생각해서 굳이 말로 표현해 주어야 하는 것이 있다. 이걸 그냥 정직과 부정직의 단순 이분법으로 정직하지 못한 말이라고 딱지를 붙여버리고 나면, 사람 살면서 말 붙이는 일에 숨어 있는 소통의 지혜를 허망하게 놓쳐 버린다는 생각이 든다. 빈말은 심리학 하나를 거느리고 있다. 마음에 넘치는 진정됨이 꽉 차 있어서만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 없어도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와 나의 관계가 소중하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뜻을 깔고서 하는 말이 빈말이다. 빈말의 반대말을 굳이 만들라고 한다면 ‘찬말’이 되겠으나, 이런 말이 실제로는 쓰이지 않는다. 그런데 ‘빈말’이라는 말은 쓰인다. 어떤 말이 실제로 쓰인다는 것은 그 말의 기능이나 값이 그 나름대로 사람살이에서 인정된다고 보면 틀림없다. 그런데 빈말의 묘미는 생각해 볼수록 오묘하다. 사람 사는 세상이 오묘하다는 것이리라. ‘빈말의 사회학’이 가능해진다. 빈말의 효용을 옛사람들은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으로 이미 지혜롭게 터득하였다. 문제아들에게 다가가는 교육적 노력이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이치로 시작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걸 일상에서 실천해 보라. 만만치 아니한 인내심과 인간적 수양이 필요함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여기쯤에 도달하면 ‘빈말’은 산처럼 큰 화두로 다가온다. ‘비어 있음’의 가치를 아는 것은 인식론의 고매한 영역이다. 모든 형상들은 그 안의 비어 있는 것들로 인하여 비로소 그 보이는 실체를 드러낸다. 내부의 비어 있는 허공이 없이는 어떤 청자 백자도 그 아름다운 형상의 미를 연출해 낼 수 없다. 말의 작용 또한 그러하다. 빈말 안에 가득 차 있는 지혜들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학교 안에서, 개인적으로, 푸념 삼아 뱉어보던 잡무 경감과 관련된 말들이 최근들어 제도적 차원으로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인식으로 확대되고 법제화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무적인 일이다. 이런 시대적인 인식에 즈음하여 본고에서는 교원에게 주어진 많은 잡무의 실태와 그 원인들, 그리고 그 대안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봄으로써 작금의 시대적인 과제인 ‘교원 잡무 경감 제도화’에 대한 공감대를 만드는 데에 일조하고자 한다. 다른 곳에는 모두 있는 행정업무 전담, 학교에는 없어 교원 잡무에 대해 사람들은 때로 도대체 무슨 업무가 그렇게 많다는 것일까 의문스러워 하기도 한다. 교원의 잡무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물론 복잡하고 미묘한 부분이 있지만 다음과 같이 간단히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일선 관공서에는 전출/전입, 장학금, 지원금, 봉사활동 등에 전담부서가 있다. 대학에서는 총무처를 이외에 교무처, 학생처가 있어 수강신청, 각종 증명서, 성적, 등록, 자퇴, 취업 등의 모든 고유의 업무를 처리한다. 거기에서 교육을 지원하는 모든 업무를 총괄한다. 물론 수평비교는 어렵겠지만, 대학의 교수들은 잡무에 빠지지는 않는다. 일반 기업체, 은행, 사회봉사 단체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전담 직원이 그 업무를 집중적으로 처리한다. 그렇다면 일선 학교에서는 어떨까? 학교란 조직체는 고유 업무인 교육과 연구 이외에도 그 조직이 굴러가기 위한 기능적 지원 장치를 필요로 한다. 학교 행정실에서 하고 있는 지극히 사무적이고 하드웨어적인 기능을 제외하고는 학생과 관련되는 대다수 업무들을 교사들이 처리하고 있다. 쉽게 설명하면 대학의 교무과, 학생처, 학사지원과의 대부분 업무를 학교의 교무부, 학생부, 연구부, 방과후학교부 등의 지원 인력들, 곧 교사들이 다 맡아서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업무에 쫓기다 보면, 자조적으로 교사의 정의를 ‘잠시 시간을 내 수업을 하는, 약간의 전공과목 지식을 갖춘 행정 사무원’ 정도로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것을 그저, 숭엄한 교육적 사명감이 부족한, 사도가 흔들리는, 뒤틀린 의식 정도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저변에 흐르는 심층적인 고뇌를 밝혀내는 코드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 심층적 의미를 디코딩(Decoding)하는 것이 시대적 현자의 몫이 아닐까?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잡무의 실태를 제시해 보겠다. 첫째, 수업, 성적, 전학, 장학금 등을 담당하는 교무부 소속 교사들의 일을 보자. 연가, 조퇴 등은 차치하고서라도 매일 출장이 발생해, 수업계 교사는 시간표를 조정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의 반을 차지한다. 20명에서 100여 명까지 되는 시간표를 매일 조정해 최소한 교육활동에 무리 없도록 맞추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내일 오후 수업을 모두 빼야 하는 출장 공문이 오늘 퇴근 시점에 도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럴 경우 교사는 야근하거나 서류를 싸들고 와서 작업해 아침에 바로 공지해야 한다. 시험시간표와 감독시간표를 작성할 때, 학기 초 시간표를 재구성할 때면 거의 초죽음이다. 이 작업을 누가 대신 해 줄 수 있을까? 행정 사무원이? 행정실 직원이? 보조교사가? 교사는 솔직히 자신을 사무원이라고 간주하고 싶은 때가 있다. 약간의 교양을 갖춘 기능직 사무원으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작업을 교육과 연구에 직접 관계없는 행정적인 기능만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정말 어려운 문제이다. 사실 학교의 사안 모든 것이 교육과 무관한 것이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지만, 냉철한 논리의 기반 위에서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일이다. 잡무의 종류도, 양도 다양하고 예측불허 또한, 교과서 담당자의 업무를 보자. 학기 초에 각 반마다 교과서 권수를 파악한다. 40명×10권×30개의 반이라고 가상해 보자. 1만 2000권이다. 이 숫자를 조사하고 통계 내고, 대금을 계산하고, 책을 수령해 배부해야 한다. 교과서 회사에서 빈 교실에 책을 산더미처럼 넣어 주는 것까지는 해준다. 그다음부터가 교사의 몫이다. 작업복을 제대로 입고 책을 모둠별로 모으고 이동시켜야 한다. 좋은 협상 조건(?)을 내걸어 도와 달라 부탁한 아이들이 말이라도 잘 안 듣는 날에는 그대로 교사가 막노동을 해야 하고 때로는 몸살이 나기도 한다. 원어민 담당교사의 일도 살펴보자. 언어가 통한다는 이유로, 해당 외국어(영어가 많음) 원어민 관리교사는 원어민이 도착할 때부터 출국하는 날까지 그야말로 충실한 집사노릇을 한다. 도마, 칼, 숟가락, 젓가락 구입부터 시작해 등록, 주거, 공과금 계산까지 다 해 줘야 하는 경우가 많다. 최고의 복지 서비스도 관리교사의 몫이다. 이 행정 업무는 더없이 예측불허이며 허를 찌른다. 환경부 쪽의 일도 보자. 왠지 환경부에 소속되면 이제 ‘몸으로 때워야 할 시점이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을 숨길 수 없다. 환경부의 사무적 환경조성 관리는 ‘고급스러운 일’(?)에 속한다. 연초가 되면 청소도구를 수거하고 새것으로 교체해야 한다. 아이들이 잘하면 다행이지만, 집안 정리 못 하는 아이들이 청소도구를 잘 수거, 수령하기는 어렵다. 일반적으로 약 30개 반에 각각 청소도구 10종류씩을 수거하고 투입하는 작업을 한다. 때때로 교사가 직접 몸으로 때우는 것이 더 편할 때가 있다. 교사 몇 명이 며칠 걸려 그 작업을 하기도 한다. [PAGE BREAK] 국정 감사 기간에 절정 이루는 제각각 자료 요청 10월경 국정감사 기간이 다가오면 각종 보고 요청이 쇄도한다. 원어민 사업의 실태, 계획, 운영보고, 등의 유사한 요청이 각종 기관으로부터 날아온다. 때로는 3년 동안의 축적된 기록까지 요청한다. 예산을 지원하는 지자체에서, 일선 교육청에서, 도교육청에서, 시의회 의원이, 도의원이, 빈번히 국회의원들이(한꺼번에 여러사람이 따로따로) 요청한다. 더욱 사람을 몰아붙이는 것은 제출 시한도 임박하게, 그것도 유사한 사안인데 보고 양식은 가지가지 전혀 통일성이 없다. 이미 몇 번이나 자료를 보고했건만 하나는 엑셀로, 하나는 전자업무시스템으로, 다른 하나는 한글 파일로 보고하란다. 그 많은 전자화된 자료는 어디에 보관되어 있을까? IT 선진국에서 참으로 제도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푸념이 저절로 나온다. 지난해 필자도 한꺼번에 5개의 ‘실태 보고 요청’을 받아 정작 교사로서 가장 중요한 수업시간에는 ‘횡설수설했던’ 기억이 있다. 뭔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 밖에도 행정요원의 느낌이 들게 하는 업무는 많다. 대부분 통계를 내는 작업과 보고 서류작성업무가 그렇다. 명찰 값을 거두고, 보충수업 숫자와 대금 액수를 조사, 계산을 하고, 식사 회수 통계를 내고, 재학 증명서를 발행하고, 졸업실태, 진학실태, 취업실태를 조사하고, 학교의 하드웨어 • 소프트웨어적 영역을 망라하는 갖가지 보고공문 작업에 매달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행정 사무원’이 아닌가라는 착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몰려드는 잡무만큼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수업 이제, 학교 교사의 잡무가 많은 이유를 분석해 볼 차례이다. 이것은 교사란 신분의 특수성에 관련된 유의미한 논의가 되리라 생각한다. 분명 보완해야 하는 것은 맞는데, 사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부분이다. 첫째, 교사의 업무에 있어, 완전한 행정업무와 교육업무를 구분하기가 몹시 어려운 것은 ‘잡무의 교육활동 연계 개연성’ 때문이라 할 것이다. 교사의 수업시간 조정을 ‘행정보조원’이 주도적으로, 효율적으로 하기 어려운 면이 있고, 청소지도를 단순한 지시와 안내 역할만으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솔선적인 시범이 자주 ‘전문적인 기능 수행자’로 전이되는 수가 많다는 것은 의미 있는 지적이다. 다음으로, 교사가 상대하는 대상이 미성년자인 초 • 중 • 고 학생들이므로 학생들과 관련되지 않는 순수한 단순한 행정업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장학금 관련 보고에는 학생 이해의 주체인 교사가 직접 개입해야 하며, 졸업, 취업, 증명서 발급에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교사가 처리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학생의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업무의 적합성으로 이어진다는 전제는 부정하기 어려운 면이다. 미성년 학생들에 대한 객관적, 인과적, 사무적 행정의 적용이란 것은 애초부터 성립하기가 어려운 전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것이 알지만 좌시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는, 일반인들에게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교무행정과 교육활동의 일원화’라고 하는 ‘전통적 전인교육에 대한 관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모든 것을 전인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통합적, 종합적, 일원론적으로 보는 ‘동양적 원형적 의식’에서 비롯된다고 할 것이다. 교사는 모든 역할에 있어 학생들을 전인적으로 지도하고, 육성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덕목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고, 또한,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생각이 의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행정직능, 사무직능, 사무적 처리 등의 개념이 교육집단 구성원에게는 좀 어색한 면이 있다. 교육현장에서 사무적 행정적 처리가 아직 왠지 좀 나선 것도 사실이다. 해결책을 논하는 글에서 이상과 같은 생각은 해결하기 힘든 한계를 다시 한 번 제시하는 것 같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꼭 짚어야 할 문제들이기도 하다. 세밀한 美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벤치마킹 필요해 이제, 최선은 못되지만, 차선으로서라도 ‘주어진 과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 보며 본 논의를 정리하고자 한다. 우선,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현행 교육법 23조 2항의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학교 및 교육행정기관의 업무를 전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시책을 마련하여야 한다”라는 조항을 좀 더 보완하는 것이다. 전술했듯이, ‘공문서의 중복 혹은 형식적이라고 보이는 보고요청’은 전자화는 되어 있지만, 표준화 및, 체계적인 보관, 저장이 되어 있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보인다. 그래서 대부분의 보고가 일회성으로 끝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DB 구축의 제도화는 긴급한 과제라고 본다. 예를 들어 ‘…업무’를 전문화하고, 표준화하며, 전자화하여 DB화한다’라고 명시하면 어떨까? 이는 보고업무를 획기적으로 경감시킬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세밀한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구축해 여기에 집적된 자료가 DB로 보관되어서 주 교과부와 지역교육청이 통계를 관리 • 생산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잡다한 통계자료 보고 공문이 교원에게 전달되지 않은 상태로 처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빨리 벤치마킹할 제도라고 본다. 다음으로, 가장 효율적인 것으로, 정부의 획기적 교육예산 지원으로 일반 행정에 필요한 인력을 많이 투입하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영국은 2003년에 정부, 학교, 교원노조가 협정을 체결해 기술지원, 시설, 행정, 건물 관리 등을 지원인력의 직무로 규정, 교원이 행정•사무적 일을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전문적, 제도적인 교무행정보조인력 채용 늘려야 OECD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교사 지원 인력상황은 어떨까? 통계에 따르면 교사지원인력 수는 미국과 프랑스의 1/2의 수준이며, 교원 잡무 경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전문지원직인력의 경우 한국은 프랑스의 1/25, 미국의 1/9, 일본의 1/5 수준에 불과한 실정임을 보여주고 있다(2005년 교육인적자원부 자료). 현재의 14학급 이하에 배치되는 교무보조인력의 운영을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보조원제도가 열악한 신분보장으로 인해, 단순 급사-비서의 역할, 단순 잡무, 심부름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 그 개선책 역시 필요하다. 따라서 전문적 • 제도적인 인력채용-미래교사역할 체득-잉여인력 활용 극대화에 대한 로드맵이 그려져야 할 것이다. 14학급 이하에만 교무교조를 두는 제한적이고 지엽적인 처방이 아니라, 전체 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교무행정을 위한 인력 채용과 그 제도마련에 국가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제도적인 교무행정 전담부서가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까지 나온 문제만으로도 충분히 교무행정과 교육-연구 활동의 통합운영의 한계성과 문제점을 알 수 있다고 본다. 이제 교무행정을 교육활동과 분리시켜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이로써 교무행정에 좀 더 제도적인 구축이 필요하고, 동시에 교육활동에 종사하는 교사는 교육과 연구에 치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재의 시스템하에서는 경쟁력 있는 교육과 연구 활동을 하기에는 태생적 한계가 존재함을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이 교육 효과 최우선 방향에 맞추어, 가시적 학습효과를 창출하는 ‘사교육시장’의 ‘감추어진 손’에 위협받는 요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이제 소규모이지만, 대학의 학사지원팀과 같은 부서가 일선 초 • 중 • 고 학교에 배치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교사가 ‘보다 멋진, 작품 같은 수업’을 하며 아이 사랑에 심혈을 기울일 수 있도록 교원잡무 경감에 대한 입법화가 빨리 추진되었으면 좋겠다. 보다 가까운 곳에 눈을 돌린다면, 따뜻한 사랑이 좀 가려진 것 같지만 선생님들이 가르치고 연구하는 데에 승부를 걸 수 있도록, 지자체와 행정당국의 과감한 지원으로 교무행정 전담부서가 빨리 설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장 솔직하게 말하자면 교육과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 교육자의 보람을 만끽할 수 있는 ‘교육자의 시대’가 당대에 와주기를 겸연쩍게 소망해 본다.
해당 국가의 교육과정을 조사, 번역, 분석하셨습니다. 그 국가의 교육과정을 어떻게 보셨고, 특히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정진경 = 대만은 각 학교에서 교육과정을 편성 • 운영하는 데 필요한 안내를 최소한의 교육과정 구성 요소와 지원 사항을 중심으로 국가 수준 교육과정이 제시되고 있어 대단히 명료하고 이해하기 쉽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교육이념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교육목표와 이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기본 능력’을 설정해 교육과정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바를 보다 뚜렷하고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죠. 또한 학습영역과 교과목을 구분하고 학습영역 설정에 따른 각 교과목을 분류 • 제시했으며, 과목 수도 적정화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교육과정에 대한 학교의 자율성 확대의 방향에서 수업시수 제시방식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어 왔지만 각 교과목 등의 학년별 총량 제시방식에 머무르고 있는데 반해 대만은 수업시수를 주당 학년별 총 수업시수와 영역 학습 시수, 탄성 학습 시수로 제시해 각 학교가 시수 설정의 자율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박인순 = 호주의 교사들은 모두 교육과정 전문가라 할 만큼 가르치는 과목과 관련된 교육과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한 과목당 선택되는 1개의 교과서가 있어 교사들이 교육과정보다는 교과서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죠. 하지만 호주는 이런 의미의 교과서가 없어서 교사가 교육과정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주변의 다양한 자료와 교재를 취사선택해 활용하면서 각 교수요목의 학습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효과적인 교수 • 학습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공공 출판사가 주교육부(청)와 공동으로 보조교재를 만들어 보급하는데 사용 여부는 학교와 교사가 결정하도록 자율권을 줍니다. 같은 학교, 지역별 교사모임에서 자료나 교수법을 교환해 조율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허윤욱 = 캐나다는 연방 정부에 교육부란 직제가 없고 교육은 10개 주(Province)와 3개 준주(Territory) 소관으로 되어 있습니다. 온타리오주와 브리티시콜럼비아주도 주 수준의 의도된 교육과정 문서를 제시하되, 그 내용이 우리와는 달리 보다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들로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즉, 명확한 기대수준 혹은 성취기준을 제시하고, 아울러 그것을 학교현장에서 교수 • 학습을 통해 성취하는 모범적 사례들을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교육과정 속에 녹아 있는 다인종 • 다문화로 대변되는 다양성의 실천전략과 노하우는 다인종 • 다문화 사회로 접어드는 우리나라가 면밀히 분석 • 검토해 봐야 할 부문이라고 생각됐습니다. 김희정 = 지금까지 ‘유토리 교육(여유교육)’을 강조해오던 일본은 이 정책에 따른 학력저하와 실망스러운 PISA 결과 등으로 교육과정의 수정을 요구받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학력향상, 학습의욕 고취, 학습습관 형성 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번 일본의 교육과정을 번역하면서 가장 많이 접했던 단어가 ‘살아가는 힘’, ‘스스로 학습’, ‘학습의욕 향상’과 ‘체험학습’ 등이었습니다. 특히 살아가는 힘으로서 기초 • 기본적인 지식기능의 습득을 강조하고 있고, 그에 따라 주요과목의 필요 수업시수를 늘린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김충일 = 미국은 연방정부의 교육부, 주 정부의 교육부, 각 도시의 교육청이 서로 유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교육의 혜택이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감독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교육과정 총론에 해당되는 내용이 미국의 경우에는 각 주의 교육법에 명시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학생들이 배워야 하는 교육과정의 내용이 상세하게 제시되어 있고 교육과정이 올바로 적용되는 지를 평가하는 방법 또한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나타나 있었습니다. 해당 국가의 학교를 직접 방문하셨을 때 느꼈던 점을 말씀해주십시오. 허윤욱 = 한 마디로 교육의 기본에 충실하다는 것입니다.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고 글로 쓰게 하는 문해능력과 수학적 문제해결력 및 창의력과 관계되는 수리능력을 기르는 것을 강조하고 있고 실제 교수 • 학습 시간을 통해서 내재화하고 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캐나다는 OECD 국가 중 정보 • 통신 분야에선 세계 선두를 달리는 국가입니다. 하지만 정규 수업시간에 우리처럼 ICT 기자재를 남용하지 않습니다. 유치원부터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생각하고, 그에 따른 소감을 발표하게 함으로써 ‘본문구절(Text)지식’이 아닌 ‘맥락(Context)지식’을 쌓게 해 경쟁력 있는 미래형 인재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김희정 = 일본의 초등학교의 경우, 기초기본질서 교육과 도덕교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기초기본 학력을 위해 산수와 국어수업에 보조교사와 팀티칭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개별학습, 완전학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중 • 고등학교의 경우 한국과 마찬가지로 입시를 위한 교육시스템으로 학교가 운영되고 있었고 중 3, 고 3의 경우 학교에 다양한 강좌가 개설되어 있어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있었습니다. 정진경 = 방문했던 초 • 중 • 고교가 대만 수도인 타이베이에 있는 대표적인 학교들이라 학교 역사도 오래되었고 교육 시설도 매우 우수할 뿐만 아니라 교장선생님들이 매우 열정적이어서 관리자의 학교 운영에 대한 의지의 중요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학교 학부모 회의실에 학부모들이 상주해 학교마다 설치된 ‘교육과정발전위원회’의 운영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학부모가 학교 운영의 한 축으로 활동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역사회와 밀착된 체험활동을 많이 하고 있었으며, 교사들은 동료형 교육활동이 매우 활력 있게 운영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박인순 = 호주 공립학교에 붙어 있던 ‘공립교육이 우리의 미래를 좌우합니다’라는 구호는 오히려 호주가 안고 있는 사립학교 선호에 따른 공립학교의 교육 질 저하에 대한 우려를 표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중산층 이상의 학부모가 유치원부터 12학년까지 무료인 공립학교를 외면하고 학비가 1년에 최고 2만 불까지 드는 사립학교를 선호하게 된 배경에는 ‘학력’보다는 신사숙녀교육, 종교교육, 예체능교육 등 ‘전통적 교육 가치’를 높이 보는 학부모의 성향과 전통 있는 사립학교 출신들의 사회적 성공과 관련한 네트워크 효과 등이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입시를 위한 교육을 잘하는 사립고를 선호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죠. 김충일 = 대체로 우수한 학교를 방문했는데 학생들의 수업태도가 상당히 좋고 수업 참여도 또한 높았습니다. 뉴욕의 환경이 열악한 흑인 밀집 지역에 있는 초등학교도 방문했는데 이 학교는 차분하면서도 열의가 있는 학교장과 함께 교사들이 무보수로 방과후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의 과정을 거쳐 성적이 과거에 비해 월등히 상승해 우수학교로 선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교를 방문하셨을 때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김희정 = 일본은 클럽활동이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정규수업을 마치면 동아리활동이 학생들 자치적으로 운영되고 있었죠. 스포츠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동아리가 있어서 학교교육과정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각 학교에 야구부 축구부 등이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토, 일요일에도 운영되고 지역별 리그전도 개최되고 있었습니다. 정진경 = 대만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의 경우 한 학년 학급수가 25~26학급으로 매우 큰 학교였는데, 우리나라처럼 특목고를 따로 두지 않고 별도의 교육과정으로 외국어, 수학, 예술 같은 영재 학급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사범대학 졸업생이 의무적으로 1년 동안 교육 실습을 하고 있는 현장을 보았습니다. 또 공립일지라도 학교에서 필요로 하고 교사가 원할 경우 한 학교에서 계속 재직할 수 있도록 보장해 장기적인 교육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중학교의 경우 교사들에게 부전공을 이수하도록 해, 학생들의 선택 희망 교과의 개설과 교사의 기준 시수를 확보하도록 하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허윤욱 =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교육과정에서의 시간 배당 및 편제 제시를 통해 단위학교의 자율성과 실용성을 보장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일례로 고등학교 과학 교과에서 ‘빛과 소리’ 단원을 배웠다면 마지막 정리단계에서 해당 지도교사는 학습내용과 관계되는 분야에 종사하는 직업, 이를테면 비행기 조종사나 기상예보관을 재량활동 수업시간에 초청해 이론과 함께 실제 운용분야를 소개함으로써, 학생들이 개별 수업을 통해 장래 진로탐색을 구체화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박인순 = 학교장의 책임경영제로 공립학교도 교장의 교사 배정 권한이 보장되며 행정직원도 학교장이 주어진 예산 내에서 시간제 임시직 등 인원수를 조절할 수 있는 반면 학교에 대한 학부모 및 지역사회의 평가에 의해 동일 학군 내에서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학교장의 권한과 책임이 크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학교발전기금 모금을 위한 학부모회 주관의 기부행사, 체육/문화 행사, 진학정보 모임, 지역사회 자원봉사 모임 등이 많아서 학부모나 지역사회가 학교의 여러 사업에 많이 참여하면서 의견을 내고, 돕는 모습이었습니다. 김충일 = 방문한 학교의 학교장과 교사들이 학교의 모든 일에 열정을 가지고 운영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고등학교의 경우 기본적으로 주 교육부가 제시하고 있는 교육과정에 더해 인근 명문 주립대학교들의 입시기준에 맞추어 학교의 교육과정이 정해지고 있었으며 우수한 대학교에 많은 학생들을 입학시키려고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PAGE BREAK] 이번 연구를 마치면서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김충일 = 미국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기초학력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모든 공립 초 • 중 • 고 교육기관은 주 정부가 정한 교육과정을 올바르게 실시하는 지 점검하기 위한 책무성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각 학교의 수준에 맞는 ‘연간 적정 발전(Adequate Yearly Progress)’을 이뤄내야 하며 이러한 점검은 학교 단위로 이루어짐과 동시에 학생의 하위그룹을 장애인을 비롯한 다양한 인종 및 사회 계층별로 나누어서 세부적으로 이들 그룹이 주에서 정한 기준을 통과했는지를 매년 평가하고 있습니다. 만약 2년 연속 적정 발전을 이루지 못하면 여러 단계에 걸친 개선작업을 시작하고 평가 결과는 인터넷을 통해 공개됩니다. 이처럼 철저한 평가 과정을 통해 일선 학교에서 교육과정 기준이 올바로 적용됨을 도모하는 것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허윤욱 = 문서로만 존재하는 교육과정이 아니라 교육대상에 따른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교육의 기본 설계도’로서의 교육과정이 운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이민자 가정의 자녀를 위한 ESL 과정, 자폐증 등 특수교육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을 위한 개별화(IEP)교육, 영어 • 불어 이중 언어 교육을 위한 내용중심 교과지도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목표와 내용, 평가기준과 방법이 학년별 연계성에 따라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특히 학교 현장의 교사는 교육과정에 담긴 기본 취지와 목표를 충실히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교수 • 학습자료를 확보하고 끊임없이 직무연수시간을 갖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김희정 = 학력신장과 기초기본교육에 대한 관심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이웃나라인 일본도 교육과정 개정과 교육개혁을 통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미래사회는 교육이 국가경쟁력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고 이는 학습지도요령 개정에 대한 국가적인 대대적인 홍보와 성취도 평가, 교사면허갱신제 도입 등을 통해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교육개혁에 대한 필요성과 요구는 전 세계적인 추세라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세계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핵심적인 미래인재양성과 성숙한 사회를 위한 시민양성 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인순 = 호주는 연방정부의 노동, 교육, 가족, 산업관련 부처의 장관으로 이루어진 장관협의회에서 장래 국가 산업현장의 변화에 따른 교육과 직업훈련의 방향을 조절하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10년을 주기로 국가의 교육 비전을 선언문 형태로 발표하고 그에 따른 예산 분배를 하는데 장래 인적자원의 양성 면에서 꼭 필요한 조치인 것 같습니다. 정진경 = 그동안 대만 교육에 관한 최신 자료가 매우 부족했는데, 이번 연구를 계기로 주위 국가들의 학교 현장 속에서의 국가 교육과정에 대한 연구가 더욱 깊이 있게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특히 짧은 기간이었지만, 현장 방문의 중요성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 경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전체 중화권인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묶어서 연구해본다면, 더욱 의미 있는 연구 결과가 나오리라 여겨집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이나 학교에 반영하고 싶었던 것이 있다면. 허윤욱 = 학교교육은 교육과정, 교수 • 학습 및 평가, 교과서 등의 소프트웨어적인 요소, 교원의 양성 • 수급 • 연수 등의 휴먼웨어(Humanware)적 요소, 그리고 행 • 재정 지원 및 교육 시설 • 설비 등의 하드웨어적인 요소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봅니다. 캐나다의 교육현장을 돌아보면서 느낀 점은 주 수준의 교육과정을 학교 현장에서 충실히 구현할 수 있는 이면에는 전문성을 갖춘 교원조직을 학교실정에 맞게 탄력적으로 확보 • 운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규 교원도 전일제, 반일제, 격일제 근무 등 계약에 따라 다양하게 임용할 수 있으며, 수준별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해 이웃학교 또는 외부 전문 강사를 초빙한다는 것입니다. 박인순 = 우리나라가 대학입시라는 장애물을 넘기 위해 과도한 에너지를 낭비하면서도 기능이 필요한 작업장은 인력이 부족한데 비해 호주는 기술과 실제 경험을 우대하는 사회전반의 경향으로 학교마다 실습위주의 직업교육과정이 다양하게 제공되고 있었습니다. 직업교육과정에는 현장에서의 실습이 포함되는데 교육장소로 지정되는 작업장은 안전시설 및 교육을 위한 자격을 갖춘 기능공이 있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인증을 받아야 하는 대신 교육비를 지원과 세제혜택을 받습니다. 국가 자격증 제도를 운영해 정규과정을 거쳐 취득한 자격증은 누적되어 전국 어디에서나 인정을 받고 취업 및 상급교육기관 편입이 가능합니다. 김희정 = 클럽, 동아리활동을 통해 취미, 특기 등을 계발할 수 있는 터전이 학교시설을 통해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한국 학교에도 도입했으면 합니다. 또한 초등학교에는 학생들이 직접 텃밭을 가꾸어 식물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이런 부분도 우리나라에 반영한다면 학생들의 정서함양과 체험학습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김충일 = 한국에서는 주로 3학년 담임교사들이 진로상담을 하는 반면, 미국은 각 학년 혹은 학생을 담당하는 진로상담교사가 따로 있어 이들이 학생들의 진급과 졸업장 취득을 위한 학점과 교육과정 구성에 대한 상담을 담당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도 각 대학들이 다양한 입학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만큼 3년간 지속적으로 학생의 진로를 담당하는 진로상담교사를 양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과정을 개정할 때는 다소 짧은 시범 실시기간을 거친 후 전면적으로 바꾸기보다는 시대적 요청과 필요에 따라 오랜 검증 기간을 거쳐서 실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미국의 경우, 한 과목의 교육과정 기준을 바꾸는데 약 10년에 걸쳐서 학습기준 검토부터 피드백까지 일련의 과정에 다양한 전문가와 실무자, 학생 등의 참여를 유도하고 신중을 기하는 점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진경 = 대만처럼 단위 학교에게 좀 더 폭넓은 교육과정 운영권을 부여하도록 했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대만은 특별활동, 재량활동 시간에 구체적인 영역 구분이나 편성•운영 지침 등을 두지 않습니다. 교내외의 자원을 활용해 학교의 자율적인 교육과정 활동이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선택 중심의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79개라는 방대한 과목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11개 영역 • 과목군 만을 제시해 특정 과목 편중 이수 및 이수 기피를 융통성 있게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입니다.
우리나라는 눈부신 발전을 통해 세계에서도 내로라할 정도의 무역강국이 됐지만 아직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그 이유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것이 바로 민주시민의식이다. 민주시민의식 부족은 단순한 교양이나 문화수준의 문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각종 분규와 법적 분쟁을 일으켜 막대한 사회적 지출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에 교육계는 물론 사회 각계에서 민주시민을 육성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따라 법무부는 민주시민의식의 근간이 되는 준법정신 함양을 위해 여러 법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는데 그 중 학생자치법정은 큰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도 학교의 선도프로그램과 연계해 법치교육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청소년 선도와 사회성발달에 큰 효과 학생자치법정은 1983년 미국 오데사 시에서 도입된 후 주목받기 시작한 제도로, 이미 미국에서는 청소년 선도와 사회성발달에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6년 경기 의정부 광동고와 충북 제천고 등 5개교에 처음 도입되었으며, 올해부터 35개교로 확대 운영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4년째 학생자치법정을 운영하고 있는 의정부 광동고의 실제 운영사례를 통해 운영방법과 효과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주입이 아닌 스스로의 이성을 통해 도덕심 함양 의정부 광동고등학교(교장 이학송)는 학생자치법정이 국내에 처음 도입된 2006년부터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을 계속 운영해오고 있다. 처음 도입당시에는 교사들조차 재판절차에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고 학생들도 ‘법정’이라는 명칭에 조금 위축되었다고 한다. 법관도 교사가 맡아 완전한 학생자치법정으로 운영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전부터 상벌점제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자치법정과 연계가 용이했고, 교사 대상 연수프로그램과 도입을 처음 건의한 윤성관 교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금세 제자리를 찾았다. 이학송 교장은 “유치원에서 배우는 도덕은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너지기 쉽다”며 “어느 정도 성장한 고교 때 스스로 이성으로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운영취지를 설명했다. 학생자치법정은 동아리 형태로 운영되며, 매년 15명을 선발하는데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좋아 지원자가 많다. 학생자치법정의 피고는 벌점 5~9점 정도의 경벌점자가 대상이 되며, 수위가 높은 잘못을 한 학생은 학교선도위원회에서 징계를 결정한다. 재판은 입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인문계 고등학교이기 때문에 모든 경벌점자를 대상으로 하지는 못하고 학생자치법정의 판사와 부판사가 선정한 건에 대해 해당 학생의 동의를 얻어 실시한다. 학생들이 직접 재판을 해서 벌칙을 주면 학생들 간에 갈등이 생기거나 학부모가 불만을 제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오히려 공개적으로 소명할 기회도 생기고, 재판을 거치지 않은 학생에 대한 징계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벌칙을 내리기 때문에 불만이 없다고 한다. 학부모들도 처음엔 약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지만 이내 운영취지를 이해해, 이의를 제기한 경우는 없다. 학생자치법정 도입 전부터 체벌을 지양해왔고 학교에 큰 사고도 없었기 때문에 다른 학교 사례처럼 체벌이나 사건 • 사고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흡연학생은 눈에 띄게 줄었다. 비록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이나 가끔 실황중계 되는 재판과정을 보면서 다른 학생들의 태도에도 변화의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재판은 흔히 생각하는 일반적인 재판과 ‘5분 발언’의 두 종류로 진행된다. ‘5분 발언’은 즉심판결과 같은 것인데 어감이 좀 좋지 않아 ‘5분 발언’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올해부터 학생자치법정을 담당하고 있는 위효승 교사는 “첫 임용 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학생자치법정을 맡게 되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학생들이 스스로 너무 잘하고 체계도 잘 잡혀 있어 큰 어려움이 없다”며, “모든 일은 학생들이 알아서 하고 교사는 회의록 검토 등 행정 위주의 지원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올해 3학년이 되어 후배들에 대한 조언 위주로 활동하고 있는 이준경 학생은 “그동안 학생자치법정에서 변호사와 검사를 담당하며 색다른 경험을 했다. 재미는 물론 법을 좀 더 친숙하게 느끼고 다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PAGE BREAK] 학생변호사의 탄탄한 논리에 교장도 고개를 끄덕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떠들어서 감독 선생님께 받은 벌점은 인정하지만, 지적받았다는 이유로 담임 선생님께서 추가 벌점을 준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벌점 1점을 받아야 할 한 가지 행동으로 벌점 2점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변호사의 변론에 방청석 한쪽에 조용히 앉아있던 이 교장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모의재판이 아닌 실제 사안을 갖고 하는 재판이기 때문에, 피의자석에 앉아 있는 학생은 당연히 억울하다는 표정이고 변호사와 검사의 얼굴에는 당당함과 당혹스러움이 교차한다. 벌점 초과자 2명과 5분 발언 대상자 3명을 대상으로 열린 이날 재판은 주심판사의 개정선포를 시작으로 실제 법정에서 하는 재판과 같은 절차로 진행됐다. 물론 학생자치법정이기 때문에 주 • 부심과 검사, 변호사, 피의자, 배심원까지 모두 학생이 맡는다. 이 교장과 담당교사도 법정에 들어와 있지만 방청석 한쪽에 앉아 지켜볼 뿐 재판에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학생자치법정에서는 교장도 한 명의 방청객일 뿐이다. 국민참여재판과 유사한 절차로 진행 재판의 진행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대상자선정회의에서 재판 대상자를 선정해 해당 벌점초과자의 기록을 각 담당 변호사와 검사에게 벌점의 사유 등이 적혀있는 기록을 통보하고, 기록을 받은 변호사와 검사는 2~4주가량 사건을 조사한다. 배심원은 재판 1~2주 전 선착순으로(학교규칙을 자주 어기는 학생 제외) 8~9명이 선발되며, 재판이 열릴 때까지 배심원 관련 교육을 받고 배심원장을 선출한다. 개정 후 검사와 변호사의 증인 심문을 거처 벌점초과자들의 최종진술까지 재판이 진행되면, 판사가 휴정을 선언한다. 이때 배심원단은 배심원실로 이동해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회의를 진행한다. 배심원회의를 통해 작성된 배심원 합의문은 배심원장이 낭독한 뒤 재판부에 전달되며, 재판부는 이 의견을 합당하다고 판단하면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처벌을 수정해 판결한다. 판결이 내려지면 벌점초과자는 정해진 기간 내에 처벌을 수행한 뒤 담당교사에게 확인을 받고 재판부에 확인서를 제출하면 모든 과정이 종료된다. 물론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인 절차는 얼마 전 도입된 국민참여재판과 흡사하다. 우리나라에 학생자치법정이 도입된 지 3년밖에 되지 않아 그 성과를 단정하기엔 이른 감이 있다. 그러나 오랜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님에도, 실제 법정 못지않은 진지함과 탄탄한 논리로 스스로의 공과를 논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학생자치법정이 큰 교육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한다. 학생선도와 교육의 양 측면에서 효과를 인정받으며 점차 확산되고 있는 학생자치법정이 우리 공교육에 어떤 활력을 불어넣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인간의 생애 - 이야기 한 자락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은 대개, 문득, 예상치 않게 다가온다. 그리고 가뭇없이 자취를 감춘다. 어느 날 문득, 당신의 생애를 간단한 이야기로 정리해 보라는 요구가 있을지도 모른다.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든지, 배우자를 만나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를 이야기해야 한다든지, 약력을 소개할 일이 있을 때 우리는 그러한 주문을 받는다. 남에게 나를 소개할 경우 이력서(履歷書)라는 양식을 이용한다. 이력서에는 출생과 연관된 사항, 학력, 경력, 업적 등을 항목화하여 기록하게 되어 있다. 사회에 진출하는 초기 이력서를 생각해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이력서 한 줄 추가하는 데 몇 년이 걸린다던 선배 이야기가 실감을 더한다. 더구나 처음 내는 이력서에는 경력이 있을 수 없어 당황하기 십상이다. 사람들이 늘 하는 말대로 우리들 삶은 복잡다단(複雜多端)하다. 굽이와 가닥이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으로 얽히고설킨다. 가슴에는 한도 많고 원도 많고 때로는 환희가 넘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 환희로운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더구나 돌아볼 때는 어슴푸레한 망각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그래서 좀 과장하면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생애도 잘 정리가 되지를 않는다. 내 생애를 정리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처럼 남의 생애 또한 정리가 쉽지를 않을 것은 의당 그러하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생애 가운데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력서에는 기록하기 어려운 사항이지만 기억이 뚜렷한 일들이 있는 법이다. 그 기억이 선명한 이야기들을 기록한다면, 말로 정리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내밀성을 지닌 생애 이야기가 된다. 우리들은 대부분 부지런히, 열심히 산다. 천성이 게으르다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부지런함이 남을 앞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열성과 근면이 뒷받침되지 않는 사람이 성공적으로 생애를 경영하는 예는 없다. 그런데도 내 생애를 이야기해 보라면 이야기 거리가 없어서 허둥거리게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맥을 잇지 못하고 구체성을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맥을 이어가는 것은 시간축과 공간축을 따라 사건을 의미 있게 배열하는 구성작업이다. 시간의 연속성과 공간의 폭과 넓이가 그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世界, die Welt)이다. 세계는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이기도 하고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것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이 살아가면서 관여하는 일들이 세계의 지평을 이룬다. 그런가 하면 이상(理想)으로 생각하고 추구하는 관념의 영역 또한 세계의 지평을 형성한다. 이처럼 시공간으로 구체화되는 생애의 장면들을 이어나갈 때 이야기는 완결성을 지니게 된다. 신혼 생활을 꿈같다고 한다. 그리고 신혼생활 중에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고 학교에 가고 하는 일반적 과정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그 아이가 태어날 때 어떤 꿈을 꾸었고, 어떤 태실(胎室)에서 어떻게 산고를 치렀고, 똥오줌을 가리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 하는 것을 자세히 기억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어버이날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는 노래를 듣고 눈물을 글썽이더라도, 그 아이의 생애를 혹은 나의 삶을 이야기로 정리하기 어려운 까닭은 시간에 따라 구체성이 마모되었기 때문이다. 구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 구체성을 유지하고 상황에 따라 다시 떠올릴 수 있다면, 그 생애는 싱싱한 감성을 길어올리고 신선한 빛을 발하게 된다. 이처럼 한 인간의 생애는 이야기로 재구성될 때 논리성과 구체성을 띠게 된다. 문학의 영토 안에서의 이야기 우리말에서 이야기라는 용어는 그 사용 범위가 너무 넓어 종잡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더구나 이야기를 이야기한다고 할 경우, 불어의 재귀동사처럼 쓰이는 용법인데, 앞뒤의 ‘이야기’를 잘 규정하지 않으면 뜻을 알기 어렵다. 그래서 서사문학(敍事文學)이니 소설문학이니 하는 것들로 장르가 분화된다. 문학의 기본장르는 잘 아는 대로 서정, 서사, 극 그리고 교술(敎述, didactic genre, thematic genre) 등으로 구분된다. 서사문학 장르의 원형은 서사시에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서양의 서사시는 그리스어 에포스에 어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야기라는 점, 과거사의 기억이라는 점을 강조할 때 역사와 구분되지 않는다. 극은 물론이고 교술도 때로 이야기를 포함하기 때문에 문학을 크게 가른다면 서정과 서사로 영역이 나뉜다. 서정은 노래고 서사는 이야기이다. 이 둘의 속성을 잘 그린 예를 시인 최두석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그의 시 노래와 이야기는 이렇게 되어 있다.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 처용이 밤늦게 돌아와, 노래로써 아내를 범한 귀신을 꿇어 엎드리게 했다지만 막상 목청을 떼어내고 남은 가사는 베개에 떨어뜨린 머리카락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처용의 이야기는 살아남아 새로운 노래와 풍속을 짓고 유전해가리라 정간보가 오선지로 바뀌고 이제 아무도 시집에 악보를 그리지 않는다. 노래하고 싶은 시인은 말 속에 은밀히 심장의 박동을 골라 넣는다. 그러나 내 격정의 상처는 노래에 쉬이 덧나 다스리는 처방은 이야기일 뿐 이야기로 하필 시를 쓰며 뇌수와 심장이 가장 긴밀히 결합되길 바란다. 이 시의 첫 행은 시의 내용 전체를 아포리즘으로 압축한다.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 노래는 생의 리듬이나 충동과 연관된다. 그렇기 때문에 노래는 아무래도 격정적이다. 그런데 그 노래는 사리 분별을 헤아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베개에 떨어진 머리카락에서 유추할 수 있는 ‘사건’을 처리하는 데는 선후가 맞는 논리가 있어야 한다. 격정을 벗어난 논리는 이야기를 통해서만 수행된다. 그래서 노래를 주로 하는 시인도 이성적인 삶을 운용하는 데는 이야기를 동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감성과 논리를 주체 안에 통합하면서 진행된다. 이야기는 그러한 삶의 통합성을 지향한다. 시 속에 이야기를 포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 시를 포함하는 것은 선례들이 있거니와, 시 쓰는 사연을 노래하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문학이 가치 있는 체험의 언어적 형상화라는 명제는 가치 있는 삶의 이야기라고 바꾸어도 틀림이 없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잘할 줄 아는 사람은 문학을 하는 것이고, 그 가치의 높낮이는 이야기를 거듭하는 데 따라 향상되게 마련이다. 나의 이야기와 남의 이야기 작가 이상(李箱)은 이런 말을 했다. “비밀이 없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허전하다.” 실감이 가는 말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비밀로 가득한 인생이 얼마나 폭폭하게 살아야 할 것인가 싶기도 하다. 비밀을 털어 놓으면 비밀이 아니다. 비밀을 지키고 있어야 비밀이고, 그 매력은 비공개의 속성에서 비롯된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비밀에 대해서는 본능적인 호기심이 일게 마련이다. 나의 속 이야기를 털어놓기 싫은 것은 남의 비밀을 캐거나 훔쳐보고 싶은 욕망의 다른 쪽이다. 나의 치부(恥部)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치부를 드러낸 것이 인생의 진실 일부를 담고 있지 않으면 스캔들로 전락한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다. 자서전에 거짓을 쓰기도 어렵고 자서전에다가 진실을 담보로 부끄러운 이야기를 쓰기도 쉽지 않다. 수필도 마찬가지이다. 수필은 주로 작가의 체험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문학 양식으로 규정된다. 진솔하게 털어 놓기 고약한 소재는 수필에서 제외된다. 우아한 이야기를 시종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동안에 가면이 끼어들기 십상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부끄러운 이야기에 인생의 진실을 담을 수 있는가? 여기에서 방법으로 등장하는 것이 허구적 상상력(虛構的 想像力, Fictional imagination)이다. 소설을 곧바로 허구라고 하는 데는 약간의 무리가 있다. 그러나 허구양식으로 소설을 규정하는 것은 소설의 가능성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뜻을 지닌다. 허구는 신적(神的)인 속성을 지닌다. 신이란 절대자를 뜻한다. 절대자는 모든 것은 초월한다. 쉽게 말하자면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그 소위(所爲)가 모두 정당성을 지니는 그런 존재가 신이다. 뒤집어 말하면 허구적 상상력이 작동하지 않는 영역에서는 현실과 사실의 논리 이외에는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다. 허구는 나의 이야기라도 남의 이야기로 들어 달라는 요청이다. 그리고 그 증거를 묻지 말아 달라는 묵계의 승인이다. 그러니까, 소설에 서술된 내용을 작가의 체험으로 알고 작가의 도덕성을 의문시한다면 소설을 제대로 읽는 방법이 아니다. 소설 속에 외입과 도박과 마약 이야기가 나온다면 그것은 작중인물, 허구적 인물의 체험이지 작가의 체험이 아니다. 그러니까 허구는 작가의 현실체험에 대한 강박을 풀어주는 장치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모든 것을 상상해서 소설에 녹여 넣는다고 생각하지 말 일이다. 작가를 신으로 비유하는 것은 비유일 따름이다. 작가는 사회 • 문화적으로 흘러가는 맥락에 의존하는 존재이다. 체험의 일부가 작품 속에 용해(溶解)되어 형상화에 기여할 뿐이지,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쉽게 말해서 자가가 소재를 발명할 수 없다는 말이다. 좀 편하게 생각하기로 하자. 그리하여 작가의 교사적 소명이나 성직자적 의무 등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이야기 세계를 펼칠 수 있도록 할 일이다. 남을 내세워 세상을 비평하기도 하고, 못된 놈 속을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내 이야기도 남의 이야기처럼 전개하는 데 소설의 매력이 있다. 연암 박지원도 그의 열하일기 속에 소설을 써 넣으면서 들은 이야기라고, 남의 이야기라고 발명(發明)을 하고 있지 않던가. 법정에 섰더라도 내게 불리한 증언을 안 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 내용이 내 품위를 손상하고 집안을 망신스럽게 하는 경우라면 자서전처럼 쓰되 남의 이야기라고 하라. 방법은 간단하다. 죄를 모두 고백하고 그 죄 그대로 벌을 받는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경우라도, 표지에다가 소설(小說)이라고 두 자만 써 넣으면 면책특권을 얻게 된다. 자서전을 쓰고서 소설이라고 장르를 달아 둔다고 해서 벌칙이 내리지 않는다. 허구는 신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나의 세계를 키운다 모든 문학이 그렇듯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다. 나는 나를 위해 나의 이야기를 쓴다. 남의 이야기도 내가 하는 한은 나의 이야기이다. 그러한 이야기를 선택했다는 것이 나의 주체적 판단이기 때문에 나의 이야기가 된다. 좀 확대 해석을 하자면 남이 남의 이야기를 쓴 소설을 내가 읽을 경우, 그것은 나의 문학이다. 나의 감성과 지성과 윤리감각에 영향을 행사하는 이야기라면 그것은 나의 이야기요, 나의 문학이 아니겠는가. 나의 이야기가 나를 위한 것이란 뜻은 내가 쓰는 이야기가 혹은 소설이 결국 나의 세계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는 뜻이다. 이광수는 전집 20권으로 표현되는 그의 세계를 구축하고 산 것이다. 채만식은 전집 10권으로 그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다른 작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작가들이 소설로 형상화한 삶은 그의 실제 삶의 한편에 혹은 곁에 자리잡고 있다.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구체적인 몸으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경험하는 것이 그의 세계를 형성한다면, 작가들은 허구적 상상력의 세계를 따로 지니고 사는 이들이다. 작가가 구축한 허구적 상상력의 세계는 현실세계를 반영한다. 현실 세계의 여러 면모를 지닌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인물들만큼 작가는 일상을 넘어서는 세계를 경험한다. 작가의 작품에는 하고많은 사건이 등장한다. 작가는 그러한 사건에 관여하는 것이다. 관여 방식은 일정하지 않다. 동조자가 될 수도 있고 비판세력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그리는 세계는 작가가 사는 실제 현실을 구축하는 자료 역할을 한다. 어느 작가의 작품이 많이 읽힌다면 그렇게 작품을 읽는다는 ‘독서현상’이 그 사회를 구성하는 자료가 된다. 그런 예로 마담 보바리를 들 수 있다. 주인공 엠마가 파리 같은 대도시로 나가고 싶은 열망으로 생애를 망치는 것은, 당시 유행하던 삼류소설을 마구 읽은 결과이다. 이는 당대 사회의 면모를 반영한다. 한편으로 마담 보바리를 읽고 그 도덕성을 법정에서 논의하고 하던 것은 당대 사회를 형성하는 소재가 된다. 이처럼 소설로 대표되는 이야기문학은 사회를 반영하고 사회를 형성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결국 작가는 자신이 사는 사회를 작품 속에서 재구성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키워 나가는 것이다. 그리스의 20세기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의 문학에서 예수, 석가, 성 프란체스코, 콜럼버스, 알렉산더 대왕 등 인류사의 성인이나 영웅에 해당하는 인물을 다루었다. 이는 이 작가가 형성해 나가는 세계가 그러한 성인들의 행적과 연관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것이 일상을 살아가는 작가의 세계와 교합하면서 다시 구축하는 또 다른 세계이다. 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전기를 읽기도 하고, 그가 남긴 난중일기(亂中日記)를 읽기도 하면서 이순신의 생애에 공감하고 감동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이순신이 되어서, 혹은 이순신과 함께 행동하는 서술자가 되어서 이순신의 행동과 심리와 이상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그의 이야기를 쓰는 것만큼 절실하지는 않다. 김훈의 칼의 노래는 작가가 구축한 세계이고, 그 세계를 살았다는 점에서 작가의 생애 스펙트럼에 둥두렷이 떠오르는 원광(圓光)과도 같은 아우라이다. 작가는 작품을 씀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키워나가는 사람이다. 소설을 쓰는 것,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작가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데서 출발한다. 거기에 남의 이야기가 추가되고 대비적으로 의미가 부여된다. 이야기는 삶에 대한 해석 행위이다. 삶의 해석으로서의 이야기는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삶의 지평을 확대해 준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경우, 생애에 논리를 부여해 주고, 구체성을 확충해 주며, 삶의 가치를 증대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야기의 이런 가치를 인정한다면, 우선 자신의 생애부터 정리해 보기 바란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기억나는 대로 이야기를 전개해 보라.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의 의미나 가치는 다시 숙고해볼 일이다. 사람살이는 혼자서 해낼 수 있는 과업이 아니다. 반드시 다른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으며 살게 마련이다. 그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해 나가면서 그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환희하는 가운데 여러분의 세계는 커간다. 이는 인생의 허무감을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