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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항포관광지는 세계공룡엑스포가 열리는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곳에서 볼 만한 것이 공룡뿐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공룡체험관 외에도 자연사박물관, 수석전시관, 당항포해전관, 거북선체험관, 충무공디오라마관, 숭충사, 요트장 등 많은 시설이 있고 람사르총회의 공식 탐방지로 선정될 정도로 자연생태가 잘 보존돼 있어 미리 알고 꼼꼼히 살펴본다면 공룡과 역사, 자연을 아우르는 알짜배기 체험학습이 가능하다. 엑스포 폐막 후 32일 만인 7월 10일 재개장한 당항포관광지의 볼거리를 살펴본다. 상상을 자극하는 공룡시대 여행 엑스포 폐막 후 몇몇 전시관이 철수하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공룡체험시설이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당항포관광지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엑스포주제관에서는 공룡의 전성기부터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오늘날 공룡의 발굴 • 복원과정을 영상과 조형물을 통해 볼 수 있다. 특히 주제관 내 4D영상관에서는 4차원 입체영화인 다이노어드벤쳐 II를 통해 공룡의 생활상을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다. 다이노어드벤쳐 II는 평일에는 1시간 간격, 주말에는 30분 간격으로 상영된다. 최신의 ABR공법을 이용해 브라키오사우르스의 형상으로 만든 백악기공원관은 실제로는 공존한 적이 없는 인간과 공룡의 공존이라는 상상의 세계를 유쾌하게 재현했다. 백악기공원관은 동굴 속에 거주하는 원시인 가족이 사냥해온 공룡을 요리해 먹는 모습을 연출한 ‘입구동굴존’을 비롯해 ‘초식동물존’, ‘익룡존’, ‘수룡의 세계’, ‘티라노의 공격존’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특히 ‘티라노의 공격존’에서는 공룡의 제왕격인 티라노사우루스의 등장을 실감나게 연출해 호평을 받았다. ‘살아있는 화석’ 철갑상어를 직접 만져볼 수 있어 철갑상어 체험관에는 공룡과 같은 시대를 살았으면서도 지금까지 진화도, 멸종도 하지 않아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철갑상어가 전시되어 있다. 터치풀이 설치돼 있어 수족관 너머의 철갑상어를 구경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철갑상어를 직접 만져볼 수 있으며, 재평가를 통해 높은 상업성을 인정받은 철갑상어의 가치에 대해 배워볼 수 있는 패널도 마련되어 있다. 공룡나라농업관에는 고추, 취나물, 태극애호박 등 고성의 10대 농산물을 비롯한 다양한 식물이 전시돼 있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초식공룡이 즐겨 먹어 일명 ‘공룡소나무’라고 불리는 울레미소나무다. 울레미소나무는 현존하는 유일한 2억 년 전 공룡시대 식물로서 화석으로만 그 존재가 확인돼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1994년 호주 블루마운틴 올레미 국립공원에서 발견됐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공룡나라농업관에만 한 그루가 있다. 이 밖에 하루 6차례 워터스크린과 레이저를 이용해 공룡의 역사를 보여주는 멀티미디어관과 실제 공룡발자국 화석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공룡발자국 탐방로, 나무줄기에 물에 녹은 이산화규소가 스며들어 화석이 되어버린 규화목 정원 등도 공룡과 과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PAGE BREAK] 색다른 선박 체험 기회 공룡전시관 지구를 감상한 뒤 해변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제방 옆으로 커다란 군함과 줄지어 정박돼 있는 요트를 볼 수 있다. 군함은 실제 월남전에 사용된 LST 상륙함을 가져다 놓은 것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학생들이 호국정신을 키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시해 놓은 것이다. 함포를 비롯해 월남전 당시의 원형이 잘 보존돼 있어 함에 올라보는 것은 다른 곳에서는 하기 힘든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군함 옆으로 요트가 줄지어 있는 곳은 요트조종면허시험장 겸 탑승장으로서 해양레저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당항포 앞바다는 해수욕과 어업이 금지 돼 있어 장애물 없는 쾌적한 분위기에서 해양레저를 체험해 볼 수 있다. 자연의 신비를 맛볼 수 있는 자연사박물관과 수석전시관 선착장 옆으로는 자연사박물관과 수석전시관이 나란히 서 있다. 자연사박물관에는 곤충, 광물, 어류, 조류 등 1700여 점의 다양한 자연자료가 10개 테마로 전시돼 있다. 자연의 신비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체험공간도 마련돼 있어 방문객으로 하여금 자연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증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수석전시관에는 산수경석, 산형석, 폭포석 등 273점의 다양한 수석이 전시돼 있어 수석의 아름다움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다. 임란 공신의 호국정신을 배울 수 있는 많은 전시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당항포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두 차례에 걸쳐 왜선 57척을 격침시킨 대첩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당항포해전과 임란창의공신을 기리는 다양한 시설이 조성돼 있다. 먼저 거북선체험관은 실제 거북선의 모양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거북선 내부 모습을 직접 들어가 살펴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현대에 들어와 지금까지 만들어진 거북선 중 가장 실제 모양을 잘 재현해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해군사관학교 학생들이 견학을 위해 자주 방문한다. 거북선체험관을 중심으로 바로 뒤편에 조선 장수의 투구 모양을 본 뜬 충무공디오라마관이 있고 우측으로는 충무공 기념사당인 숭충사가, 좌측으로는 당항포해전관과 전승기념탑이 자리 잡고 있다. 임란 당시 나라를 위해 당당히 일어났던 우리 조상의 기개가 잘 느껴지도록 시설물과 조경이 잘 구성돼 있는데, 무엇보다 압권인 것은 숭충사와 전승기념탑에서 굽어볼 수 있는 푸른 바다다. 한편, 당항포관광지는 7월 10일 재개장에 맞춰 물놀이시설도 함께 개장해 해변임에도 해수욕을 즐길 수 없는 방문객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또한 엑스포 기간 동안 도우미들의 숙소로 사용된 시설을 일반인을 위한 펜션으로 변경해 대여하고 있다. | 강중민 jmkang@kfta.or.kr ------------------------------------------------------------------------ 입장료 어른 청소년 어린이 개인 6000원 4000원 3000원 단체 5000원 3000원 2000원 •문의전화 : 당항포관광지 관리사무소 (055)670-2800~2 •홈페이지 : dhp.goseong.go.kr * 당항포관광지는 ‘2009 경남 고성 공룡엑스포’ 예매입장권을 구입한 후 미처 사용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올해 12월 31일까지 무료입장기회를 제공한다. 단, 입장권의 종류(어른, 청소년, 어린이)에 맞게 사용할 수 있으며 시설이용료(트램카, 물놀이시설)는 별도 부담이다.
“교장선생님의 문예창작반 수업 재미있어요”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7월 7일 대전 신계중 영어전용교실 English Village에서 구성진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리듬’을 설명하기 위해 가곡을 부르며 문예창작 방과후 수업을 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이 학교의 김명순 교장(58). 그는 지난 6월부터 매주 화요일마다 20여 명의 학생에게 ‘창작의 즐거움’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이날은 ‘형상화를 통한 창조적 표현력 기르기’를 주제로 한 수업이었다. “관찰에는 색, 형, 질, 선, 감, 미, 취가 있다고 지난 시간에 설명했죠? 이것을 수용하고 형상화, 즉 표현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미(味)는 맛으로 표현될 수 있죠. 여러분 오늘 학교 급식에 계란말이가 있었죠? 그 계란말이는 왜 맛있었을까요?” “입맛에 맞아서요.”, “다른 때와 다르게 요리해서요.” “그럼 어떻게 다르게 요리했나 생각해볼까?” “참치를 넣은 계란말이여서 맛있었어요.” “지금 여러분은 이미 미(味)에 대해서 표현했어요. 미는 맛 말고도 요리하기, 미식가 등으로도 표현될 수 있죠. 어떤 것이든 좋아요. 관찰하고 그것을 수용한 다음 그런 감각을 표현하는 것이 형상화입니다.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대로 창조로 이어지죠.” 김 교장은 학생들에게 수첩 한 권씩을 나누어줬다. 직접 쓴 ‘생명 사랑 한 줄 시’라는 글귀가 담긴 수첩은 작은 크로키 북으로 학생들에게 나눠주려고 전날 화방에서 구입했다. “‘생명 사랑 한 줄 시’는 ‘생명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표현하는 한 줄 시’라는 말의 줄임인데 수업을 통해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컴퓨터, 핸드폰이 보편화된 요즘, 아이들이 직접 쓴 한 줄 시가 담긴 작은 시집을 갖는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어 수첩을 마련했어요. 생각이 갇히는 것이 싫어 줄 없는 수첩을 구하다 보니 화방까지 가게 됐네요.(웃음)” 교장선생님이 직접 하는 수업은 학생들의 반응도 좋다. 소설가가 꿈이라는 이 학교 김은비(14 · 2학년) 양은 “교장선생님이 문예창작반 수업을 맡으셔서 파격적이라는 생각에 수업에 참여하게 됐어요. 따로 배우지 않고 되는 대로 글을 썼는데 어떻게 생각을 정리해나가고 글을 써야 할지 정리해주셔서 글쓰기가 신나요”라고 했다. 김영준(13 ·1학년) 군도 “시가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교장선생님의 행동이나 표정이 재밌고 수업 방식이 색달라서 재미있게 배우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수업이 끝난 후 잠깐의 시간 동안 벌써 수첩에 시를 쓴 학생들도 있었다. ‘비 내린 자리 남은 것은 물 비친 자욱 / 찬바람 물내음 남겨놓고 먹구름 어데 갔나 어리둥절’(김은비 · 2학년) [PAGE BREAK] “한 줄 시 쓰기는 학교의 문화 운동” 올해 3월 김 교장이 학교에 부임하면서 신계중은 확 달라졌다. 그가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일본 하이쿠시(俳句 · 5 · 7 ·5의 3句 17字로 된 일본의 짧은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에서 영감을 받아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에게 ‘한 줄 시 쓰기’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김의준 교무부장(51)은 “기술 교과를 맡고 있는데 시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게다가 시를 직접 쓰라고 하시니 부담스럽고 어려웠죠. 하지만 4개월이 흐른 지금은 저도, 학생들도 한 줄 시를 씁니다. 그 벽을 교장선생님이 깨주셨어요”라고 말했다. 김 교장은 우선 학교홈페이지에 ‘한 줄 시’ 코너를 마련했다. 글이 올라오면 일일이 답글을 달아 더 좋은 표현으로 바로잡아 주고 답시를 남기기도 했다. 매일 새벽 산책길에 생각을 정리해 시를 쓰는 그는 며칠에 한 번씩 쓴 시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모든 교사에게 문자메시지로 보낸다. 하지만 이런 정성에도 ‘시’를 무조건 어렵게만 생각하는 학생, 교사들의 생각을 깨기는 쉽지 않았다. 문예창작반 강의를 자청한 것도 김 교장의 이런 고민이 녹아 있었다. “한 줄 시 쓰기는 자신의 경험을 자유롭게 짤막한 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실 누구나 쓸 수 있고 어렵지 않아요. 그렇지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생각한 그대로가 아니라 표어, 격언 등의 관념적 언어 표현을 만드는 데만 익숙해져 아름다움, 감동 등을 느끼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에 서투르죠. 형식에 구애 없이 누구나 느끼는 대로 글을 쓰게 하고 싶었어요. 이것은 아이들에게 심미안을 길러주고 감성을 풍부하게 해주죠. 또 그것이 세상을 아름답게 사는 방법을 가르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시 쓰기를 겁내던 학교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특히 지난 5월 스승의 날에 열린 ‘한 줄 시쓰기 대회’는 교사와 학생 모두가 시에 마음을 열게 됐다. 교사들은 아이들의 숨은 사랑에 감동받았고, 아이들은 자신이 쓴 한 줄 시를 인정받음으로써 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시집 하나 없는 시인” 명아(明我)라는 필명을 가지고 있는 김 교장이 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문학동아리 활동으로 시작해 40년간 시를 써 온 것. “저는 아직 시집이 하나도 없어요. 언제까지가 습작기이고, 언제까지가 창작기인지 아직 모르겠고 그저 시를 쓰는 것이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시는 아름답게 세상을 보게 하고, 저의 이상을 보게 해줍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저를 이끌어온 시의 힘이에요. 아이들도 똑같은 힘을 발휘하리라 믿습니다.”
2004년에 유아교육법이 제정되면서 모든 학부모들이 무상교육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렇지만 공립유치원은 그 수가 부족해서 들어가기 어렵고, 운 좋게 공립유치원에 들어가더라도 종일 교육받게 하기 위해서는 매월 20만 원 이상을 부모가 부담해야 하는 실정이다. 교육은 교사의 손에 달려있는데 공립유치원교사는 과중한 근무부담으로 사기가 낮고, 전체 유아의 77.9%를 책임지고 있는 사립유치원 교사의 인건비 지원은 고작 1인당 월 11만 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거기에 만 3~5세 유아를 유치원과 보육시설, 그리고 사교육기관인 학원에서까지 나누어 맡고 있다 보니 공립에서도 원아 유치 경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유아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학원에 가는 것인데도 부모는 너나 할 것 없이 학원으로 몰아대고 있고, 정부는 이를 방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유아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은 유아학교에 있다. 유아학교 체제로 개편해 만 3~5세 유아교육에 드는 비용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전적으로 책임져서 완전한 공교육체제를 확립해야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유아교육, 영아보육 ‘학교화’는 세계적인 추세 ‘유치원’을 대표적인 유아교육기관으로 법제화하고 있는 현행 유아교육제도를 ‘유아학교’ 체제로 개편해야 하는 필요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100년이 넘도록 유치원이 제도적인 유아교육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공교육의 보조적인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2004년 유아교육법 제정 이후에도 유아교육이 완전한 공교육 기관이 되지 못함으로써 유아교육법 제정 이전보다 유치원 취원율이 오히려 감소하고 있는 현상(1991년 : 54.4%, 1999년 : 43.2%, 2008년 : 38%)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아학교’ 법제화가 필요하다. 둘째, 유아교육은 다음 단계인 초등교육과의 연계성을 제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므로 ‘초등학교’와 교육기관 명칭을 통일시키고, 교육과정 연계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유아학교’로 명칭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 셋째, 유아교육뿐만 아니라 영아 보육까지도 ‘학교화’되어 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이에 따라 많은 유아교육 선진국들은 이미 만 0세부터 초등학교 취학 전까지를 하나의 유아교육 및 보육체제로 통합해 가고 있으며, 영국, 스웨덴, 호주, 프랑스 등에서는 대표적인 유아교육기관의 명칭을 ‘Preschool(유아학교)’로 개편, 정착시키고 있다. 넷째, 아이를 낳기도 어렵지만 저출산의 더 큰 문제는 유아교육을 비롯한 교육 부분에 지출하는 부모부담이 지나치게 많은데 그 원인이 있으므로 만 3~5세의 유아교육을 완전 무상의무교육화 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유치원’이란 명칭의 기원은 일제가 그들의 자녀 유아교육을 위해 1897년 부산에 세웠던 ‘부산유치원’이다. 일제의 잔재이므로 이미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개편했던 것과 같이 ‘유치원’도 ‘유아학교’로 개편해야 한다. 유아 완전 무상의무교육 실현 위해 법제화 필요 유아교육제도가 보육과 이원화되어 있고, 유아교육대상자들 중 약 44%정도가 오전부터 공교육기관이 아닌 ‘영어유치원’과 같은 학원 등의 사교육기관에 다니거나 아니면 아무런 유아교육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유아학교’ 제도를 법제화해야 한다. 2004년 유아교육법 제정 당시에도 유아교육기관 명칭을 ‘유아학교’로 규정하려 했으나 정치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보육계에서 심한 반대를 해 ‘유치원’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두고 단지 유치원이 학교라는 정의만을 규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유아교육관련 학회, 단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계에서도 유아학교 법제화를 앞장 서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으며, 학부모들은 ‘무상의무교육제도로서의 유아학교’ 제도 확립을 요구하는 등 유아학교 법제화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유아학교의 법제화 추진은 1995년 당시 대통령 직속기관이었던 교육개혁위원회가 ‘5. 31교육개혁안’(문민정부 2차 교육개혁안)에 ‘유치원의 기간학제화’ 방안을 포함시키면서 본격화되었다. 더욱 구체적으로는 1997년 3월 24일 개최된 ‘유아교육개혁방안’ 공청회에서 3가지 유아교육 개혁안이 발표되었는데, 3안에 ‘유치원의 새로운 유아학교체제 전환, 유치원 이외 기관에도 문호개방’이라는 개혁안이 포함됨으로써 지속적으로 유아학교 체제 구축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교육부에서는 1997년 8월 6일 ‘3세 이상 초등학교 취학 전 유아교육 • 보육 통합 유아학교 체제 구축’ 방안을 발표했고, 같은 해 10월 2일 당시 야당 대통령 후보가 ‘3~5세 유아학교’ 체제 구축을 위한 유아교육법 제정을 공약했다. 11월 6일에는 당시 여당에서 유치원을 유아학교로 전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유아교육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같은 날 야당의원이었던 김원길 의원이 유치원과 보육시설을 통합해 유아학교 체제를 구축하는 규정을 골자로 하는 유아교육법안을 상정했다. 12월 30일에는 김영삼 정부의 ‘유아교육개혁안’이 확정 발표되었는데, 유치원을 유아학교로 개편하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었다. 김대중 정부 수립 후에는 1998년 6월 15일 새정치국민회의에서 ‘유아교육법제정 정책기획단’을 구성해 5차례 회의를 개최했고, 1999년 5월 19일에는 국회 교육정책포럼에서 유아학교 도입에 대한 토론회가 있었으며, 같은 해 9월 1일 정희경 의원 등에 의해 유아교육법안이 상정되었다. 2003년 4월 1일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김정숙 의원이 유치원은 유아학교로 바뀌어야 하고, 유아대상 사교육과 구분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유아교육법안을 상정했다. 이와 때를 같이 해 같은 해 4월 10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20개 유아교육 관련 단체로 구성된 ‘유아교육법제정실현을위한유아교육대표자연대(현 한국유아교육대표자연대)’를 출범시켜 유아학교체제 확립을 근간으로 하는 유아교육법 제정 운동이 강력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당시에는 보육계와 학원계의 결사적인 반대로 결국에는 유치원이 ‘학교’라는 정의만 규정하는 선에서 2004년 1월 8일 유아교육법이 제정된 것이다. 그 후는 유아학교 법제화 여론이 잠시 주춤했다가 최근에 와서 다시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유아교육 선진국들이 연이어 유아학교 체제로 유아교육제도를 개혁하고 있고, 유치원 교육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유아교육법과 보육시설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영유아보육법 규정이 수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양 법이 점차 유사하거나 동일한 내용으로 변화하면서 두 기관의 기능 구별이 어렵게 되었으며, 이제는 보육규모가 유치원 교육규모를 훨씬 앞지르게 됨에 따라 보육계 내부에서도 유치원과 보육시설이 함께 유아학교로 전환하는 방안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고 있고, 정치계에서도 저출산 등 사회 문제와 유아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정책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어 학회, 단체 및 정치계에서 구체적인 정책방안과 입법화를 서두르고 있다. [PAGE BREAK] 유아공교육, 유아사교육 구분해 교육해야 2007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유아교육학회와 한국열린유아교육학회, 한국유아교육 • 보육행정학회에서는 각종 학술대회, 정책토론회, 공청회 등을 통해 유아교육과 보육의 협력 및 통합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유아학교 법제화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2009년 유아학교 법제화 실현’을 목표로 한국유아교육대표자연대, 한국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와 함께 적극적으로 입법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에서도 자체적으로, 또는 정치계와의 협력을 통한 방식으로 유아학교 법제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회에서는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이 올해 3월 23일 유아학교 체제의 기반이 되는 국 • 공립유치원의 증설을 적극 시행토록 하는 유아교육법 개정안을 상정했고, 같은 당 권영진 의원과 이군현 의원이 유치원을 유아학교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유아교육법 개정안을 상정하기 위해 여론 수렴과정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도 지난 6월 10일 사립유치원 재정 지원을 통한 유아학교 체제기반 마련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와 같은 추진경과 및 현황을 살펴볼 때 유아학교 체제로의 구축은 시기와 그 추진과제의 해결이 문제라는 점을 잘 알 수 있다. ‘유아교육+부모의 사회활동 보완’ 역할하는 교육복지형 학교 돼야 유아학교(Preschool)는 만 3세 이상 초등학교 취학 전 유아들을 대상으로 보호와 교육기능을 통합해 제공하는 교육기관으로서, 점차 증가해 가는 여성의 사회 • 경제활동을 적극적으로 보완해 주는 교육복지형 학교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성격을 지니는 유아학교를 법제화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정부와 여당의 정책 의지 및 관련부처 간의 적극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유아학교 법제화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는 “유치원의 학교로서의 위상을 제고하고 유아교육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유아학교’로의 명칭 변경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보도에 따르면 보건복지가족부에서는 미국의 ‘K학년제’와 같은 방식의 만 5세 유아의무교육제도 확립을 시사하고 있어 관련부처 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한국일보 2009년 6월 8일자 기사 참조). 한편 올해 6월 정부와 40여 개 단체가 참여한 ‘아이 낳기 좋은 세상 운동본부’가 출범했는데,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출산을 장려하면서 각 지방에서도 지역본부 출범식을 속속 개최하고 있다. 출산율이 세계 최저인 1.19명까지 내려간 시점에서 출산장려운동을 벌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아이 낳기 운동의 실천 방안을 보면 주로 결혼, 임신, 출산, 보육 등 주로 복지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을 뿐 유아학교 법제화를 통한 유아교육 지원 방안은 없어 보인다. 국책기관인 육아정책개발센터에서도 이미 유아교육과 보육의 통합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고, 유아교육법과 영유아보육법에 똑같이 국무총리실 소속하에 유아교육과 보육에 관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연계 운영도 가능한 위원회를 두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유아학교 법제화 정책추진 의지만 가진다면 즉각 실효를 얻을 수 있다. ‘발전형 의무교육’을 정책의 중심으로 삼아야 둘째, 유아교육법 제정 당시에도 그랬듯이 향후에도 유아학교 법제화는 유아교육 및 보육관련 학회 및 각종 단체 간의 이해를 조정하고 합의를 도출해 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1998년에 당시 여당에서 시도했던 방식처럼 이번에는 한나라당에서 주도하는 ‘유아학교추진기획단(가칭)’을 구성해 유아학교가 법제화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국무총리실에 ‘육아지원청’을 두어 정부의 유아학교 통합 행 • 재정지원체제를 확립하고 유아학교 관련 기관, 단체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저출산 대책과 영유아교육 및 보육정책을 연계해 수립 • 추진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셋째, 유아학교 법제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유아학교 모형을 개발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부모 및 관계 전문가들의 유아교육기관에 대한 요구, 정부의 정책 로드맵, OECD의 유아교육 및 보호 정책 방향, 선진국들의 동향 등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유아학교의 법제화 접근 방식, 설립기준, 교육과정, 교원 자격 및 양성, 운영관리 기준 등에 관한 선행연구가 필요한데 이에 관련한 ‘유아학교 모형 개발 연구’가 이미 2000년에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이루어졌으므로 이 연구를 기초로 발전시킨다면 조기에 새로운 유아학교 모형을 개발해 중요한 사항을 중심으로 법제화하면 될 것이다. 넷째, 새로 구축되는 유아학교는 선진국과 같이 만 3~5세 유아교육 및 보호 서비스를 통합해 최소한 주당 15시간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의무교육제도를 확립하기 위한 법제화가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나 유아무상의무교육은 초 • 중학교 의무교육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즉, 유아무상의무교육은 국민의 유아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면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해야 하며, 전 단계 학교 졸업이 다음 단계 학교의 입학조건이 되는 초 • 중학교 의무교육과 달리 유아들의 발달특성을 고려해 유아학교 졸업 여부와 관계없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하는 ‘발전형 의무교육’을 정책 중심개념으로 채택할 필요가 있다. 재정 확보문제, 부모부담 70% 수준으로 산정해 단계적으로 늘려야 다섯째, 유아학교에 따른 예산 확보 문제 해결이 관건이다. 유아학교 추진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재정 확보다. 만 3~5세 유치원과 보육시설을 통합하는 유아학교가 완전 무상의무교육제도로 확립되면 각 연령대별로 연간 예산이 약 2조 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 2009년 현재 유아 만 5세 무상교(보)육비와 만 3~4세 저소득 지원예산이 약 1조 5000억 원 정도 되므로 지금보다 더 필요한 재정이 매년 약 4조 5천억 원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규모는 매우 큰 재정규모임에 틀림이 없으나 사립유치원의 부모 부담률이 91%이며, 정부 미지원시설의 부모 부담률이 73.3%임을 고려할 때 유아학교 출범 첫해 부모 부담률을 70%로 산정하고 매년 10%씩 하향 조정한다면 첫해에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 재정은 약 1조 4천억 원이며, 다음해는 1조 8000억, 부모 부담률이 50%가 되는 3년째는 2조3000억 원이 추가로 소요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규모의 소요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 매년 1조 원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의한 교부율을 1% 상향 조정하고, 나머지 재정은 상응재원확보원칙을 법제화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광역 및 기초자치단체)가 공동으로 확보하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면 될 것이다.
조전혁 의원은 제안 이유를 통해 “빈번히 발생하는 학부모 등의 민원제기 및 부당한 폭행 • 협박으로 인해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침해되고 이로 인해 학생들의 학습권마저 침해되고 있다”면서 “국가가 교원에게 학생을 교육할 의무와 책임을 부과했다면 교원에 대한 보호책임도 갖고 있는 것이므로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호를 위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에 제출된 법안의 주요 내용은 ▲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부당한 교권침해 조사, 법적 대응 ▲ 학교규칙에 따른 학교 출입 제한 ▲ 학교에 학교분쟁조정위원회 구성 ▲ 시 • 도교육청에 교육활동보호위원회 및 교육활동보호전담변호인단 설치 • 운영 ▲ 사립학교에 고충처리심사청구제도에 준하는 고충처리제도 도입 등이다. ■국가의 교원 보호 책임 강화 = 이 법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교권 보호에 대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의무화했다는 것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국가 및 지자체는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부당하게 침해되거나 교육활동과 관련해 교원에 대한 무고 • 폭언 • 폭행 • 협박 • 모욕 또는 명예훼손 등이 있는 경우에는 관계 법령에 따라 엄정하게 조사하게 된다. 또한 조사 결과에 따라 교권 침해 사건으로 판명되면 해당 지도 • 감독기관의 장이 법적 대응을 하게 함으로써 교권을 보호하도록 했다. ■학교 출입의 절차 마련 = 지난해 논란이 됐던 학교 출입 제한에 대해서는 ‘교직원 및 학생, 그 밖에 지도 • 감독 권한이 있는 기관의 자 외의 자가 학교에 출입하고자 할 때에는 학교규칙 등이 정하는 바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했다. 특히 교육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출입할 때에는 사전에 학교장과 해당 교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학교에 학교분쟁조정위원회 설치 = 교원예우에 관한 규정에 있던 학교교육분쟁조정위원회를 법률에 명시해 언제든지 당사자가 청구하면 열리게 함으로써 학교 현장에서 더 이상의 교권침해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게 했다. 분쟁 당사자는 학교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청구할 수 있고 학교장은 분쟁조정위원회를 개최해 당사자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야 한다. 위원은 교육 및 법률 전문가 등으로 학식과 덕망이 높은 자 중에서 학교장이 위촉 또는 임명하며 분쟁조정위원회의 구성 • 운영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 규칙으로 정한다. ■시 • 도교육청에 교육활동보호위원회 = 시 • 도교육청 역시 교육활동보호에 대한 역할이 커진다. 법안은 시 • 도교육청에 교육활동보호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있는데 이 위원회는 교육활동 침해 사건 진상조사, 교육활동침해 사건 관련 언론, 대외 단체에 대한 대응 등을 담당한다. 또한 시 • 도교육청에 정상적인 교육활동 중에 발생한 분쟁과 민원에 대한 소송 및 법률지원 등을 위해 법과 교육 전문가로 구성된 교육활동보호전담변호인단을 설치 • 운영한다. 법안은 또 사립학교에 교육공무원법상의 고충처리심사청구제도에 준하는 제도를 도입해 사립 교원의 교권보호 제도를 마련토록 했으며 교원 대상 연 1회 교육활동침해 예방교육을 하도록 의무화했다. 이 밖에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교원에 대한 민원 • 진정 등을 조사할 경우 관계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교원에게 소명할 기회를 주고,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인사상의 불이익한 조치를 해서는 안 되도록 하고 교육과 관련 없는 행사의 교원 참여 요구를 금지했다. 한국교총 교권국 이선영 국장은 “실제로 학교에서 분쟁이 생기면 교사는 자신의 제자, 학부모를 상대로 한 대응이 쉽지 않고, 이로 인해 정신적 • 육체적 피해를 입게 돼 이것이 학생의 학습권 침해로 이어진다”면서 “이 법안으로 당사자가 요구하면 언제든 분쟁조정이 가능하게 됐다는 점에서 더 이상의 교권침해를 막을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논란이 됐던 외부인의 출입 제한에 대해서는 “학교가 점점 개방돼 외부인의 무단출입이 빈번해지면서 교사의 교권과 학생의 학습권, 안전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며 “교사의 수업권과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받기 위한 조항이다”라고 밝혔다.
베를린을 비롯한 독일의 몇몇 주에선 이미 12년 전부터 1학년에서 3학년의 학생을 한 학급에 섞어 수업을 하는 이른바 ‘학년통합수업’이 실험적으로 실행되는 초등학교가 늘어가고 있다. 현재 베를린의 363개 초등학교 중에서 저학년 학년통합학급을 운영하는 곳은 모두 250개 학교다. 베를린 교육 당국은 내년까지 모든 베를린 초등학교 저학년에 학년통합수업을 실시토록 할 계획이다. 그러나 2004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이 초등학교 교육개혁은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이 수업 방법을 열렬히 지지하는 이들이 많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특히 베를린에서 학년통합수업을 받은 학생들 중 낙제생이 늘어나자, 학년통합수업 반대세력들이 힘을 얻고 있다. 이들은 교육방식이 복잡해 교사와 학생들이 오히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입학생들의 수준차를 고려한 학년통합수업 학년통합수업은 원래 학력 수준이 천차만별인 초등학교 입학생들이 각자 수준에 따라 학습하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바이에른 주의 교육부 장관 루트비히 슈테빌레(기사당)는 “여러 연령대의 어린이들이 함께 공부하면 아이들은 가르치는 입장과 배우는 입장을 두루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형태의 학급은 인성교육에도 도움이 된다”고 평가한다. 그럼 학년통합수업은 어떻게 진행될까? 베를린에 있는 프리츠-카르젠 초등학교의 1학년에서 3학년이 함께 공부하는 교실의 수업은 율동과 노래로 시작한다. 노래가 끝나고 나서 담임선생님이 그날 공부할 내용에 대해 이야기해주면, 아이들은 그날 수업시간 중 각자에게 주어진 과제물을 스스로 해결한다. 여러 학년이 조를 짜서 공동 학습을 하기도 하는데 서로 방해받지 않고 팀 과제를 해내려면 분리된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교실에 안에 분리된 공간을 마련했다. 이날 1학년 2명, 2학년 두 명, 3학년 한 명이 한조가 되어 옆방으로 옮겨 작업에 들어갔다. 이들의 과제는 다섯 가지 감각에 대한 포스터를 만드는 일이었는데 아이들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다.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며 각자 맡은 바를 해나간다. 벽에 각자 이름 옆에 그날 해야 할 학습내용들이 붙어 있고, 이에 따라 스스로 그날 학습을 해나간다. 서로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가르쳐주기도 한다. 교실 한편에는 아이들 자신의 교과서 등 학습 자료를 모아두는 선반이 있는데 수업시간 교사가 내 준 과제물을 해서 자신의 이름이 적혀진 선반에 놓아두면 교사는 따로 모아 다음날 체크하고 아이들이 잘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다음 날 따로 설명을 한다. 아이마다 다른 학습 자료를 제대로 정리하게 하는 것도 지도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전문가들 “성적우수•학습부진 학생 모두에 바람직” 교사는 아이들이 과제물을 하면서 정말 어려움이 있을 때에 도움을 준다. 아이들끼리 서로 묻고 가르쳐 주기도 한다. 프리츠-카르젠 초등학교에 학년통합학급을 맡고 있는 교사 예니 이르멘은 이러한 수업에 장점이 많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수업진도가 빠른 학생에게도 이득이다. 월반을 하는 경우에도 다른 반으로 옮기지 않고 같은 반에서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학년통합학급은 전문가들로부터 앞서가는 학생이나 학습 부진 학생 모두에게 바람직한 학급 형태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런 학년통합반 수업을 이끌어가려면 교사는 주도면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아이들 각자의 수준에 맞춰 수업 자료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뷔르츠부르크 대학의 마가레트 괴츠 교수는 “교사의 열의, 공간, 학부모의 도움 등 제반 조건이 잘 맞지 않는 경우, 이런 통합교육의 장점이 유야무야될 수도 있다”라고 경고한다.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지난해 독일은 3학년을 한 번 더 다녀야 하는 학생이 6명 중 한 명 꼴로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것이 꼭 학년통합학급이 원인이라고 보지는 않으며 몇 년 전부터 독일의 취학 연령이 6개월 낮아진 데 그 원인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저소득층이 밀집된 지역의 초등학교는 이런 학년통합학급을 운영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베를린에서 이주민과 저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노이쾰른 지역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우리 학교 교사들은 학년통합수업 모델의 장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곳의 아이들이 일차적으로 언어 문제를 안고 있는데 이럴 경우 동년배끼리 우선 비슷한 수준이 되도록 하는 게 더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역에서 학년통합학급을 구성해 수업을 할 경우 교사들에게 맡겨진 업무는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게다가 학년통합학급에 학습 부진아의 수가 과다하게 많을 경우, 전체 학급의 학력 수준이 내려가는 부작용을 겪기도 한다. 그래서 학년통합학급에 반대하는 교사들은 이러한 수업형태 때문에 어떤 경우 아이들이 제대로 된 가르침을 못 받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비판한다. 준비 부족한 저소득층 학교 … 효과는 “글쎄” 학년통합학급에서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공간과 교사의 수가 문제다. 그런데 저소득층 지역의 교사와 학교 공간이 이런 수업이 가능할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마찬-헬러스도르프, 리히텐베르크 지역의 초등학교 교장들은 공동으로 베를린 교육청에 “학년통합학급 콘셉트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학교의 전반적인 조건이 개선되어야 한다. 우선 공간과 교사 수가 문제”라는 골자의 서한을 보냈다. 24명이 넘는 학급에서는 특히나 수업이 어렵고 교육 환경이 열악한 지역의 학교일수록 이상 행동을 보이는 문제 학생, 학습장애 학생들의 비율이 높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이런 학교에 투입되는 특수 교사 수도 무척 부족한 열악한 환경이다. 학부모 측에서도 학년통합학급 모델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베를린 학부형 대표 안드레 쉰들러는 이 초등학교 교육개혁 모델이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는 “베를린시 교육 당국은 교사들이 학년통합학급 모델에 충분한 동기부여를 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교사들은 마지못해 새로운 교육모델을 받아들였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의 목소리에도 베를린의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에 있는 샬로테 살로몬 초등학교 교장 로즈마리 슈테텐은 학년통합반의 교육적 효과를 굳게 믿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1999년부터 1~3학년 통합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슈테텐 교장은 “처음 이 교육모델이 운영될 당시엔 교육열 높은 학부모가 참여했다. 그래서 당시 성적이 더 좋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여러 계층에서 이 교육모델을 실시하고 있는 만큼 처음 시작보다 성과가 적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65주년 기념식 참석차 유럽을 순방하며 독일 및 프랑스 정상과 회담을 했다. 기념식이 열렸던 프랑스에서 사르코지 대통령과 합동 기자회견이 중, 오바마 대통령은 한 기자로부터 프랑스 체류기간이 너무 짧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미국 국내에 산적한 이슈들 때문에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요. 특히 경제문제가 심각하지요. 아시다시피 실업률도 상당히 높고, 이를 위해 통과시켜야 할 안건도 아주 많거든요.” 다음날 미국 정책방송 C-SPAN(Cable-Satellite Public Affairs Network)을 통해 방영된 오바마 정부의 대통령의 권한 변화에 관한 토론회에서도, 최근 미국의 경제 이슈가 비중 있게 논의되었다. 경제위기로 인해 오바마 대통령이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하기가 용이해졌다는 언급도 있었다. 이렇게 심각한 위기 상황임을 말하고 있는 미국 경제의 변화가 미국 교육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수학, 과학 교사 난 겪고 있는 미국 우리나라에는 ‘교육선진국’으로 알려져 있는 미국도 실상을 들여다보면 엄청난 교육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우수한 교사 확보 및 유지, 그리고 교과적인 교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수학 및 과학 교과 분야가 두드러진다. 이러한 수학, 과학 교사 확보의 어려움은 공교육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교육 시장도 마찬가지인데 뉴욕타임스 2007년 10월 31일 기사에 따르면, 상당수의 미국 아이들이 인도 등 지구촌 다른 곳의 가정교사에게 수학 등 과목의 과외 교습을 받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교사 난을 겪고 있는 미국에서 경제 위기로 인해 우수한 재원들이 교단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사실은 호재가 아닐 수 없다. 뉴욕타임스 2009년 5월 10일 기사에 소개된 금융전문가 캐시 마르쉘도 경제위기가 아니었다면 교사가 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올해 44세인 캐시는 세계 금융의 중심인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금융 컨설턴트로 일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경제 한파로 인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상황에서 고전하던 어느 날 해고 통보를 받고서는 새로운 삶의 방향을 모색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경제 위기로 우수 인력 교단으로 유입돼 뉴저지에서는 캐시와 같이 전문적인 지식과 수학적 교육배경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Traders to Teachers’ 프로그램을 개설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수학적인 지식을 업무에서 사용했던 경영, 경제, 및 무역업 종사자 중 최근 경제 한파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대안적 교사양성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뉴저지주 교육행정관 루실 에이비와 몬트클레어 주 대학(Montclair State University)의 아다 베스 커틀러 사범대학장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요약하자면, 몬트클레어 주 대학 교수센터를 통해 금융업에 종사했던 우수한 인재들에게 뉴저지주가 요구하는 수학교사 자격 요건을 충족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제공, 훈련해 주내 공립학교에서 임용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몬트클레어 주 대학 교수센터에 따르면 선발 및 교육과정은 다음과 같은 단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우선 지원자는 수학지식을 업무에서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직업에 종사하다가 최근 퇴직한 사람으로 3개월간의 집중 교육 이후 뉴저지주 내 공립학교 수학교사로 임용된다. 일반적으로 대학에서 교직 과정을 이수해 교사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학점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하지만, ‘Traders to Teachers’ 프로그램에서는 별도의 학점 기준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해서 서류 심사 과정에서 학점이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울러 프로그램에 선발되기 위해서 지원자는 몬트클레어 대학이 제시하는 수학지식 관련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프로그램 참여자는 3개월간 매우 집중적인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는데, 이외에도 수업참관 혹은 시연을 매주 1회 실시해야 한다. 3개월 동안 이루어지는 교사 훈련 프로그램은 무료이지만, 타의에 의한 퇴직상태가 아닌 교직 희망자의 경우 선발과정을 거쳐 자비로 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3개월간의 집중 교육이 끝난 후 임용된 이후에는 2년에 걸쳐 개별 추후 지도가 이어지게 되는데, 임용 후 진행되는 제반 교육비용 및 정교사자격증 취득 비용 등은 본인이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졸업 후 받게 되는 2년간 진행되는 추후지도의 경우에는 2500불 정도의 비용이 예상된다. 뉴저지주 집중 교직과정 이수 프로그램 운영 지원자들은 대부분이 월스트리트를 비롯한 금융계의 종사자들이라 소정의 과정을 마치고 교편을 잡게 된 이후 받게 되는 금전적인 보상이 많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원자들은 직업적 안정성, 가르침을 통해서 느끼는 보람, 그리고 여가시간의 활용 및 가족과의 시간 증가 등을 교직의 매력으로 꼽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다른 직종에서 종사하던 사람들이 교직의 길로 들어선 이후 다시 학교를 떠나는 비율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가르치는 일이 생각했던 것처럼 쉽지 않다”라는데 의견을 모은다. 일례로 5년 전 엔지니어에서 교사로 변신해 미들타운 고등학교에서 기하학과 공학이론을 가르치고 있는 아트 오르보 교사는, “가르치기 시작한 지 벌써 5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가르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Traders to Teachers’의 경우, 최근 경제적인 흐름에 발 빠르게 대응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우려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프로그램은 갑작스러운 실업을 맞이한 우수한 인재들에게 직업을 주는 것은 물론, 우수한 교사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의 수학, 과학 콤플렉스를 적잖이 해소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경제 상황이 호전되어 월스트리트에 다시 금융업이 호황을 맞게 되어도 이들이 수학교사로 학교에 남아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울러, 수학교과의 경우 해당 교과 내용을 잘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목이기는 하나, 가르치는 일이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일이 아닌 이상 학생들의 다양한 심리사회적 발달과정 및 이에 맞는 교수 방법에 대한 충분한 훈련 없이 좋은 교사가 되기는 힘든 일이다. 이에 3개월 속성 과정 이후 교직에 입문한 교사들에게 이후 2년에 걸친 추후 지도를 받도록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3개월이라는 지극히 짧은 교육을 받은 이들을 교단에 세우는 것은 학교 및 교육 당국에게 있어 적지 않은 모험이다.
길고 긴 방학을 지내고 학교생활을 다시 시작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방학이라고 해서 교사들이 집에서 푹 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에 비해 느슨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휴가기간도 있다는 점에서 교사 역시 개학증후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여름철 바캉스나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심리적인 부담뿐 아니라 휴가 후유증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피부병이나 눈병, 각종 피로로 인한 질병들이 함께 몰려올 수 있다. 만약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고 장기적인 후유증이 남을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방학을 건강하게 마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며, 어떤 질병을 주의해야 하는지 알아보자. 햇볕에 덴 경우 우선 열부터 식히는 것이 좋아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 방학에는 바닷가나 계곡에서 휴가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겉옷을 입지 않아 장시간 피부가 햇볕에 노출될 수 있는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일광화상을 입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한 여름의 햇볕은 그 온도가 높고 적외선 지수가 높아 피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장시간 피부가 노출되면 빨갛게 붓고 물집이 잡히거나 심한 통증도 올 수 있으므로 자외선차단제를 바르는 등 이에 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일광화상은 지연성 화상임을 기억해야 한다. 물놀이를 하거나 태양에 노출됐을 때는 모르다가 저녁때나 휴가를 마친 후에야 화상인 것을 알 수 있으며, 심한 경우 2차 감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의사를 찾아가 상담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며 진통소염제를 복용해야 한다. 햇볕에 덴 경우에는 바셀린 등과 같은 연고를 바르는 것보다는 찬물이나 얼음을 이용해 열을 식히는 것이 좋다. 타서 일어난 피부 일부로 떼어내면 색소침착 일어나기 쉬워 이런 화상이 발생하게 되면 피부 껍질이 벗겨지는 경우가 있는데 만약 일부러 껍질을 벗기면 색소 침착이 일어나기 쉽기 때문에 삼가야 한다. 일광화상을 입으면 피부가 건조하지 않게 유지하고, 충분한 수분공급을 위해 하루 7~8잔의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 일광화상이 아니더라도 휴가 후에는 피부를 적절히 관리해줘야 한다. 휴가에서 돌아오면 바로 화장하는 것 보다는 햇빛에 손상된 피부를 먼저 달래는 것이 좋다. 만약 각질이 일고 피부가 거칠어지는 등 피부에 문제가 생겼다면 본격적인 화장에 앞서 보습제를 자주 발라줘야 한다. 화장수는 냉장고에 넣어 시원하게 보관해뒀다가 사용한다. 보습성분이 많이 함유된 에센스로 주 2~3회 팩을 해주는 것도 건조한 피부를 촉촉하게 만드는 데 효과가 있다. 또한 매일 저녁 세안 후 영양크림과 로션을 섞어 마사지를 해주고 잔주름이 생기기 쉬운 눈과 입가에는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두꺼워진 각질은 제거해야 하며 자외선에 의해 피부가 손상되면 비타민을 충분히 공급해줘야 한다. [PAGE BREAK] 전염성 높은 각종 눈병, 피부병 방지에는 청결이 최선 일광화상뿐 아니라 물놀이로 인한 바이러스성 질병도 주의해야 한다. 특히 해수욕장이나 수영장에서 감염되기 쉬운 것이 바로 유행성 눈병인데, 방학이나 휴가가 끝난 후 자주 발생할 수 있는 후유증 중 하나다. 여름철 유행하는 눈병은 주로 바이러스 질환이 대부분으로 보통 일주일 정도의 잠복기를 거쳐 발병한다. 눈이 빠르게 충혈 되고 모래가 들어간 것 같은 이물감, 가려움 등을 느끼게 되며 눈곱이 많이 끼고 눈두덩이 부어오르며 진득한 분비물이 나오기도 한다. 심할 경우 각막상피세포가 손상돼 눈이 시릴 뿐만 아니라 상피세포 아래가 혼탁해져 시력장애 및 시력저하가 생길 수 있다. 이런 바이러스성 눈병은 수영장과 샤워장, 피서지와 인근 음식점의 오염된 물, 음식, 식기, 물수건, 수건 손잡이, 세면대 등에 있던 병균이 눈에 접촉되면서 발생하게 되며, 전염력이 매우 강한 것이 특징이다. 보통 눈병은 특별한 치료가 없어도 1~2주 정도면 회복이 가능하지만 2차적으로 세균에 감염된다면 합병증을 동반할 수도 있다. 특히 전염성이 높기 때문에 단체생활을 하는 곳에서는 전염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예방을 위해 손을 자주 씻고 눈을 직접 비비지 말아야 하며, 문고리나 수도꼭지 등 자주 만지는 것을 청결히 해야 한다. 만약 통증이 심하거나 눈이 부으면 얼음 물수건으로 하루에 4~5회 눈을 냉찜질해주는 것이 좋고, 그래도 증상이 심해지면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아야 한다. 눈병에 걸리면 의사와 상담 없이 함부로 안약을 쓰거나 안대 착용, 식염수 소독 등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병의 증세를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자제하는 것이 좋다. 피부 역시 각종 바이러스와 세균들에 노출되어 전염병이 생길 수 있다. 보통 수영장에 있는 대표적인 바이러스가 바로 바이러스성 물사마귀, 발바닥 사마귀, 전염성 농가진이다. 보통 이런 바이러스는 오염된 물이나 공동으로 사용하는 용품 등을 통해 전염되므로 반드시 슬리퍼는 개인용을 사용한다. 전염성 농가진은 어린아이의 피부에 반점, 물집 등을 발생시키므로 주의해야 한다. 설사가 심하더라도 수분과 음식 섭취는 거르지 말아야 방학 때 흔히 겪는 병 중의 하나가 식중독, 장염, 급체 등의 소화기 계통 질환이다. 식중독이나 장염에 걸리면 지속적으로 열이 나고 심한 구토, 설사와 함께 참을 수 없는 복통을 느끼게 된다. 소화기 질환의 주된 원인은 변질된 음식과 식재료이므로 섭취하기 전 반드시 변질여부를 살피고, 만약 이런 증세가 나타나면 수분과 전해질 공급을 적절히 해준 후 증세를 살펴야 한다. 만약 통증과 구토, 설사가 심해지고 환자가 참을 수 없을 만큼 고통을 호소한다면 지체 없이 병원을 찾는 게 좋다. 설사가 난다고 해서 물을 전혀 마시지 않은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오히려 수분을 충분히 공급해주어야 한다. 설탕과 소금을 넣은 따뜻한 보리차나 이온음료를 마셔 탈수를 방지해야 하며 노인과 어린 아이의 경우에는 탈수에 대해 각별한 대비를 해야 한다. 또 설사가 난다고 식사를 거르기보다는 죽이나 미음 등 소화기에 부담이 적은 음식 위주로 끼니를 채우는 것이 좋다. 만약 복통이 동반되는 경우에는 따뜻한 수건 등으로 배를 따뜻하게 해주면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된다. 증세가 완화됐다고 하더라도 2~3일 정도는 과식을 피하고 차갑거나 매운 음식도 삼가야 한다. 이런 소화기 계통 질환 역시 관리가 매우 중요하며, 임의적으로 약을 복용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장에 무리를 줄 수 있는 유제품, 찬 음식, 익히지 않은 음식, 기름기가 많은 음식, 자극적인 음식이나 커피, 담배는 피해야 한다. [PAGE BREAK] 함부로 귀를 후비는 것은 금물 방학 때 귓병은 물놀이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물놀이 후 발생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질병이 외이도염과 중이염이다. 외이도염은 외이도가 물에 젖으면 피지선과 땀샘이 확장 되되는데, 이때 포도상구균 같은 세균에 감염되어 일어난다. 보통 외이도염에 걸리면 귀 점막이 붓고 진물이 흐르다가 통증이 심해져 수면에 지장이 생기고 식사와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받게 된다. 중이염은 외이도 안쪽의 중이강 내 이물질이나 감염으로 인해 염증이 발생하는 질병이다. 중이염과 외이도염은 초기에 적절히 항생제로 치료하면 빨리 회복 될 수 있지만, 방치하면 염증이 심해져 큰 통증을 유발 할 수 있고 청력의 점진적 저하나 합병증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청력 저하도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질병들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손가락이나 성냥개비, 귀이개 등으로 함부로 귀를 후비지 말아야 하며, 깨끗한 물로 귀를 씻어낸 후 면봉으로 물을 제거해 주어야 한다. 도움말 : 고려대 안산병원 가정의학과 윤도경 교수 ------------------------------------------------------------------------ 바캉스 후유증 극복법 1. 일정한 기상과 수면 바캉스 증후군의 가장 큰 원인은 수면습관의 변화로 인한 생체리듬의 불균형이다. 따라서 휴가에서 돌아와 피곤하다고 무작정 잠을 많이 자는 것은 좋지 않다. 과도한 낮잠은 야간의 숙면을 방해하므로 한 시간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좋다. 잠자기 전에는 차가운 물보다는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는 것이 좋다. 가벼운 목욕은 근육을 이완시키는 것은 물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누그러뜨려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이 되며 허기가 느껴질 때는 따뜻한 우유를 한잔 정도 마시는 것이 좋다. 잠을 청하기 위해 마시는 술은 오히려 숙면을 방해하며, 각성성분이 있는 담배 역시 멀리하는 것이 좋다. 2. 좋은 음식과 피할 음식 바캉스 증후군은 무절제한 생활로 생체리듬이 혼란에 빠지면서 호르몬체계나 수면주기에 이상이 생겨 나타난다. 이때 필요한 영양분이 단백질과 비타민이므로 육류와 함께 채소 • 과일을 듬뿍 먹는 것이 좋다. 이들 영양소는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고 원기회복에 도움이 된다. 당장 피로를 피하려고 커피나 드링크류 등 카페인 음료를 복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중추신경을 자극해 숙면을 방해하므로 생체 리듬을 더욱 혼란에 빠뜨리기 쉽다. 필요하다면 종합비타민제를 한두 알 복용한다. 휴가지에서의 과음으로 인한 숙취가 남아 있다면 꿀물 등 당분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3. 출근 전날과 출근 후 일주일 출근을 시작하기 하루 전에는 집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출근 후에도 일주일 정도는 일과 후 술자리나 회식을 피하고 일찍 귀가해, 하루 7~8시간의 수면을 취하는 것이 좋다. 4. 꾸준한 운동 아침 일찍 또는 해가 진 후 20∼30분간 자전거 타기, 조깅, 산책 등의 가벼운 운동을 하면 숙면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습도나 온도가 지나치게 높을 때는 오히려 피로를 누적시킬 수 있으므로 삼간다.
합평회의 추억 글쓰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오해와 고정관념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런 것이다. 글은 고독한 환경 속에서 자기 결단의 결과로 나온다는 것. 그럴지도 모른다. 글을 쓰면서 친구 불러 상의하고 이웃 초청해서 묻고 하는 것은 번거로운 일임은 물론 정신 집중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해야 하지 않을까. 글을 쓴 것은 누군가 읽어 주어야 글 값을 한다. 편지가 그러하듯이. 근래 문학이론에서 독자에게 주목하는 까닭도 이 부근에 있다. 독자의 문학 수용 그 결과의 집적이 문학사라는 주장을 펼치는 수용미학(受容美學)은 문학이론의 맨 마지막 남은 영토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문제를 제기한다. 제기한 문제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비평가를 포함한 독자이다. 기억을 되살려 보라. 그동안 누가 내가 쓴 글을 읽어 주었던가.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에 이르는 교육의 과정에서 내가 쓴 글을 착실히 읽고 고쳐준 선생님이 몇이나 있던가. 내가 편지를 보냈을 때 답을 해 준(읽고 반응을 보인) 친구는 몇이나 있던가. 어쩌면 독자 없는 글을 참 많이도 썼던 것 같다. 대학에 들어와서 경험한 글쓰기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합평회(合評會)’라는 모임 덕이었다. 당시 ‘사대문학회’는 회원 수도 많고, 여러 학과 학생들이 다양하게 모여 있었다. 그리고 부지런히 글을 쓰고, 그 작품을 돌려 읽었다. 나아가 일주일에 한 번씩 날을 잡아 한 주일 동안 쓴 작품을 내놓고는 이른바 합평회라는 모임을 가졌다. 광장에서 이루어지는 공개비판을 연상할 정도로 분위가가 살벌해지기도 했다. 시는 길이가 짧아 이야기감으로 삼기가 수월한 편이었다. 그런데 소설은 그렇지를 못했다. 원고지로 60~70장 되는 단편을 한 자리에서 내려 읽었다. 그 낭독을 듣고 그 작품에 대해 이야길 하자면 열심히 들어야 했다. 대학에 갓 들어가, 읽는 소설의 줄거리조차 파악이 잘 안 되는 판인데 선배들은 역시 노장들이었다. 플롯이 어떠니 문체가 어떠니 하며 공박을 하다가, 도대체 주제의식이 뭐냐고 따지고 들면 서로 얼굴이 벌개져서 자못 삼엄한 분위기 속으로 빠져들기도 했다. 그래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선배들의 비평을 소화해내는 가운데 제법 여러 편의 글을 쓸 수 있었다. 어떤 친구는 시작(詩作) 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한 달에 시 10편을 썼다고 읽어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그 친구는 이미 잘 알려진 시인이 되어 있다. 매주 토요일, 거의 빠짐없이 이루어지는 합평회에서는 다음 발표할 순번을 정하곤 했다. 어떤 때는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지목이 되기도 했는데 그럴 경우는 하루 밤을 새워서 단편 하나를 써야 하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부담이 되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글을 내용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분량(分量)으로 쓰는 것이 글쓰기의 한 방법이라는 점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혼자 하는 일은 열정이 식기 쉽다. 혼자 글을 쓰다 보면 이걸 누가 읽어 줄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일기를 쓰듯이 혼자 기록해 두는 걸로 가치를 삼기는 ‘세속적인 소통의 욕구’가 용납을 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일종의 인정투쟁(認定鬪爭)에 가담하는 결단이다. 나는 이런 감성으로 이렇게 세상을 본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 글쓰기인 셈인데, 그 선언을 들어 줄 사람이 없다면 선언의 의미가 없다. 모든 선언은 나를 인정해 달라는 호소이다. 고독한 글쓰기를 넘어서서 소통의 글쓰기를 모색해야 한다. 글 친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 [PAGE BREAK] 화답시로 가는 우정의 길 동업자들끼리는 대개 짙은 교감을 하면서 살아간다. 문학이 고독한 개인의 작업이라는 점에서는 동업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닌 듯하다. 그러나 문인들의 친교(親交)는 글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유달리 짙은 우정의 향기를 남긴다. 또한 우정을 글로 남기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이 그 행적을 잘 알게 된다. 그러한 예로 우리는 박목월과 조지훈의 사귐을 기억한다. 박목월의 나그네에는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 芝薰”이라는 제사가 붙어 있다. 조지훈의 그 한 구절을 자신의 시에서 변용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우선 박목월의 나그네를 보기로 한다. 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南道 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앞에 예시한 제사는 조지훈의 시 ‘완화삼(玩花衫)’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이 시에는 “木月에게”라는 제사가 붙어 있다. ‘완화삼’이라는 말은 ‘꽃물 든 옻자락을 바라보고 즐긴다’ 정도의 뜻이다. 그런데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머물던 성도(成都)에 그의 초당이 있던 완화계(浣花溪)를 연상하게 하기도 한다. 음이 같아서이고, 두보와 이백(李白)의 우정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완화삼은 이렇게 되어 있다.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냥 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이 두 시인이 시를 주고받은 내력은 이렇다. 당시 조지훈(1920~1968)은 고향 경북 영양에 살고 있었고, 박목월(1916~1978)은 경주에 머물렀다. 조지훈이 박목월을 찾아 경주로 내려간다. 이 두 시인은 석굴암을 찾아가는 길에 불국사에 들러 찬 술을 마시고, 조지훈이 한기가 들어 떨고 있을 때 박목월이 외투를 벗어 덮어 주어 추위를 녹이게 해 주었다. 이후 조지훈은 경주에 2주가량 머물면서, 박목월과 함께 옥산서원에 방을 하나 얻어 문학을 이야기하면서 깊은 우정을 나눈다. 경주에서 영양으로 돌아온 조지훈은 “목월에게”란 제사를 달아 ‘완화삼’이란 시를 지어 박목월에게 보낸다. 이 시에 대한 화답시(和答詩)가 ‘나그네’이다. 친구가 보낸 시 한 구절을 자신의 상상력과 문학적 감성에 따라 다른 시로 변용하는 일은 깊은 공감과 정신적 교감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반복이 아니라 창조를 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 사이의 우정은 앞에 예시한 바처럼 두보(712~770)와 이백(701~762) 사이에 유별(有別)하다. 두보가 이백과 맺은 교유는 ‘飮中八仙歌(술마시는 여덟 신선을 노래함)’에도 나타나는 데, “이백은 한 말 술에 시 백 편을 짓고”, “나는 주중의 신선이다”하는 호방함을 칭송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백과 교유하는 가운데 그의 시에 대한 평을 하고, 그와 더불어 글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어 하는 절절함은 ‘春日憶李白, 봄날 이백을 생각하다’에 잘 나타나 있다. 이백의 시는 당할 이 없고/ 자유분방하여 시상은 우뚝 솟았다/ 청신한 맛은 유신(庾信) 같고/ 뛰어난 재능은 포조(鮑照) 같다/ 위북(渭北)에는 봄날의 나무/ 강동에는 해질녘 구름/ 어느 때 술 한 동이 갖다 놓고/ 다시 더불어 꼼꼼히 글을 얘기해 볼까. 白也詩無敵 飄然思不群 淸新庾開府 俊逸鮑參軍 渭北春天樹 江東溢暮雲 何時一樽酒 重與細論文 (당시, 김원중 역해, 412쪽) 이백은 다른 시인 맹호연(孟浩然, 689~740)과도 사귐이 깊었는데, ‘贈孟浩然(맹호연에게 보내다)’, ’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황학루에서 광릉 가는 맹호연을 전송하다)’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바처럼 친구와의 우정을 읊기도 하고, 상대방의 시를 평하는 내용을 시로 읊었다. 문학적 교감의 결과가 다른 시를 탄생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감은 남의 글을 읽어주는 데서 비롯된다. 문단에 나가는 이들이 동인(同人)을 조직하여 서로 글을 읽어 주고, 평을 함으로써 서로 간의 문학적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수준의 향상을 도모하는 것은 오랜 전통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쓴 글을 읽어줄 동료를 찾는 일이고, 그것이 발전해 나의 글을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동료보다는 선배가 글에 대한 도움을 받을 일이 많은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PAGE BREAK] 선배를 찾아서 만나라 문단 인사들의 호칭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것이 ‘형’이다. 나를 문단에 추천한 은사의 친구 분을 만났는데 나를 향해 ‘우형’ 그렇게 부르는 바람에 잠시 멈칫하고 아연(啞然)해진 적이 있다. 생각을 해 보니 우리들의 관계를 형제관계로 상정하고, 공경의 뜻을 담아 부르려 하매 그렇게 나오는 것이려니 수긍이 되었다. 후배를 ‘형’으로 부르는 문학 선배는 우선 내가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작품을 사이에 두고 소통이 이루어진다. 또한 문학인으로서 참조인물이 될 수 있다. 문학적 생애의 전범 역할을 해 줄 수 있다. 그리고 문단(글 판)의 사람들과 연결 지어 줌으로써 후원자 역할을 해 주기도 한다. 그런데 ‘형’이라는 존칭을 붙이는 한, 후배의 자유로운 문학적 추구를 완벽하게 보장하고 지원해 준다는 점에서 이상적 패트론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다. 문학적인 선배는 추종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극복의 대상이 된다. 선배를 극복했는지 여부는 작품의 질적 수준과는 별 관계가 없다. 각자 자기 세계를 구축한 일가(一家)를 이루었을 때는 서로 극복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개성을 드러내는 대비만이 가능한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이광수와 김동인은 문단의 선후배 격이지만, 이광수는 민족주의, 이상주의 작가로 자기 몫을 했고, 김동인은 개인주의, 자연주의 작가로 자신의 위치를 확보했던 것이다. 한 작가가 다른 작가의 작품을 평가하고 그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연계한 예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 가운데 널리 알려진 바로는 괴테가 만난 헤르더나, 괴테와 실러 사이의 우정에서 그러한 예를 보게 된다. 또한 이미지즘의 기수로 알려진 에즈라 파운드와 T.S 엘리어트, J. 조이스의 관계 또한 문학의 선후배 관계의 전범에 해당한다. 파운드의 ‘지하철 정거장에서’는 아마 단시(短詩)의 백미에 해당할 것이다. 그의 시를 설명하고자 하는 자리는 아니지만, 이미지즘의 정수에 해당하는 시를 함께 보자는 뜻에서 달아 둔다. 군중 속에서 홀연 나타나는 이 얼굴들 물젖은, 검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 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Petals on a wet, black bough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885~1972)는 장편시 ‘칸토스, The Cantos’가 대표작인데, 이미지즘을 선언한 행적이 더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생애는 평탄치 않다. 미국에서 태어나 서양고전문학을 공부한 그는 시작(詩作)을 하다가 유럽으로 떠나 베니스, 파리, 런던 등지를 돌아다니며 문학활동을 전개한다. 그 문학활동 가운데 T.E. 흄, D.H. 로렌스를 만나 교류한다든지, W.B. 예이츠를 만나 개인비서로 일을 하는 등은 문학수업과 연관되는 흥미로운 항목이다. 그는 이어서 J.조이스와 T.S.엘리어트의 문학활동을 지원한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출판되게 하는 데에 온힘을 기울였고, 엘리어트의 시 ‘J. 알프렛 프루프록의 연가’가 빛을 보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는 파운드가 이들 작품을 읽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조이스가 시력이 약해지고 경제적으로 곤핍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떨쳐나서서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기도 한다. 제임스의 그 난해한 소설 ‘율리시즈’가 잡지에 연재되도록 주선하기도 하고, 그 작품이 책으로 나왔을 때는, “모든 세상 사람들이 함께 일체가 되어 율리시즈를 찬양해야 한다”는 평을 하기도 한다. 파운드와 엘리어트의 문학적 교유 가운데, 다른 사람의 작품을 얼마나 깊이 읽고 교감할 수 있는가 하는 사례를 보게 된다. 엘리어트의 장시 ‘황무지, The Waste Land’는 동서양의 신화와 역사 등이 호한하게 얽혀 있는 작품이다. 처음 썼을 때는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의 배쯤 되는 분량이었다고 한다. 이를 파운드가 대폭 줄이고 내용을 수정하도록 해서 발표하게 되었다고 한다. 남의 작품을 읽는 정도가 진전되고 수준이 높아지면 심정적 공감은 물론 창작과정 자체를 조정하기까지 한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알게 된다. [PAGE BREAK] 읽기를 쓰기로 전환하라 모든 문학 창작은 읽기에서 시작한다. 달리 말하자면, 어느 작가도 독자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국 작가는 독자의 변신일 뿐이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남에게 독서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읽기의 쓰기로 전환. 남에게 독서자료를 제공하는 일차적인 방식은 내가 쓴 작품을 읽어주는 것이다. 읽어준다는 것은 들려준다는 뜻인데, 예컨대 자작시 낭송과 같은 것이 그 예에 해당한다. 내가 이런 글을 썼으니 읽어 달라고 선전을 하고 다니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그런 기회도 냉큼 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나의 독자를 확보하기 위해 내가 쓴 것을 읽어 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지도자 과정’이 있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교사를 양성하는 과정이다. 1년 단위로 운영하기 때문에 두 학기로 나누어 수업이 진행된다. 1학기 종강이 지난 6월 16일에 있었다. 간단한 인사를 하고 나서, “시를 하나 써 왔는데 읽을까요, 말까요”하는 사이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시를 낭독해 주었다. 수강생들이 내 강의보다 시를 읽는 나를 더 좋아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욕심에서 오는 착각일지도 모른다.) 유월의 숲에서 우리는 우뚝한 나무로 서서 자기 삶의 깊이만큼 그림자를 드리운다. 우리는 숲을 이루어 살아가게 마련이라 그윽한 숲의 향기를 그리워하며 마음 조인다. 숲이 넓을수록 지평은 아득하고 숲이 깊을수록 정신은 웅건한 법이거니 우람한 나무로 날 기르는 나날이여 깊고 그윽한 숲에 익어가는 세월이여 나무와 나무가 가지를 곁고 향과 향이 서로를 감싸고 돌아가듯 숲 사이로 지혜의 바람은 살랑대고 나무 꼭대기마다 꿈처럼 피어나는 구름이 고와라. 내 작품에 대해 나 스스로 자주 하는 이야기인데, 이게 시가 되는지는 안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내 시를 들어 달라고 읽어주는 일은 내 시의 독자를 현장에서 확보하는 일이다. 이것이 문학창작에 필요한 일종의 소통의 욕구가 구체화되는 예가 아닌가 싶다. 남의 작품을 읽어 주고, 그리고 내 작품을 읽어 달라고 적극 요청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작품을 터놓을 동료와 선배를 만나는 일이 급선무이다.
1 사람들 사는 풍속과 세상 변화가 빠르다 보니, 갑자기 새로 생겨나는 말들이 많다. 신조어 사전을 보면 낯설고 이상한 것들이 많다. 그러나 이미 사전에 항목으로 등장하기까지에는 그 말이 이미 상당히 널리 쓰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그러자면 그 말이 의미하는 어떤 현상이 세간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PDA’라는 말이 신조어 사전에 올라 와 있었다. PDA가 뭐냐고 임의로 물어 보았더니, 내 또래들은 모르는 사람이 많아도, 학생들은 쉽사리 개인용 휴대 정보 단말기, 즉 PDA가 ‘Personal Digital Assistant’의 약칭이라는 것으로 알아듣는다. 그만큼 널리 알려진 것이다. 그런데 ‘PDA’가 ‘공공영역에서의 애정 표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Public Displaying of Affection’의 약칭이라는 것이다. 사전에 따라서는 ‘Displaying Affection in Public’으로 풀이해 놓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젊은이들이 주변의 다른 사람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성 간 애정표현을 하는 것이 크게 이상하지 않은 세태가 되었다. 그 ‘애정표현’이라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와 신뢰를 잔뜩 머금고 있을 때는 아름답고 멋있기까지 하다. 돌아보면 그런 애정 표현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나 같은 기성세대는 그런 모습이 부럽기까지 하다. 부럽다. 사랑하는 사람을 온 마음과 온몸으로 껴안고, 내 사랑의 당당함과 자랑스러움을 위해서,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일이 이렇듯 가슴 벅차고 아름답다는 것을 마침내 세상과 우주를 향하여 보란 듯이 확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달리 보면 사랑의 실존성을 몸으로 확인하고, 그럼으로써 나와 너의 존재를 서로 가득 채우는 일이 되는 셈이다. 그것도 역전이나 대로에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공공의 공간에서 그렇게 애정을 표현한다. 잠시 영웅의 기분에 빠져 들기도 할 것이다. ‘그래 우리 사랑한다, 어쩔래’의 분위기가 약여하다. 그런데 모든 PDA가 반드시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PAGE BREAK] 2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민망한 것 두 가지를 심심치 않게 겪게 된다. 하나는 나이가 들만큼 드신 어르신들이 연출하는 민망함이고, 다른 하나는 새파란 젊은이들이 보여 주는 민망함이다. 제발 저러지는 말았으면 좋겠는데, 누가 볼까 싶어, 조바심이 나는 것은 물론이고, 함께 있는 제삼자가 부끄러운 마음이 일어서 볼이 화끈거린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그냥 보아 주기 어려운 꼴불견이라는 점에서는 막상막하이다. 어르신들이 보여 주는 민망함이란 지하철 안에서 자리다툼을 하면서 생긴다. 빈자리 하나를 두고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체면 돌보지 않고 우르르 달려와 밀치듯이 앉아 버리는 경우는 그래도 괜찮다. 약주 한 잔 걸친 불쾌한 얼굴로 자리 양보를 하지 않는다고, 앉아 있는 젊은이를 대갈일성 나무라는 대목에 이르면, 그 장면의 민망스러움은 극에 달한다. 그 젊은이가 주눅이 들고 볼이 부어 슬며시 일어나 다른 칸으로 가는 장면을 보아도 민망스럽기는 마찬가지이고, 무어라 화난 기색으로 자리를 박차며 욕이라도 한 마디 내뱉고 사라지면, 내가 그 모욕을 다 뒤집어 쓴 듯 마음이 불편해진다. 함께 타고 있는 전동차 안의 승객 모두가 정서적 훼손을 크게 입는다. 새파란 청춘남녀들이 전동차 안에서 연출하는 민망함은, 차 안에 아무도 없다는 듯한, 자기몰입에 가까운 애정 표현을 보여주는 데서 비롯된다. 그래도 그 몰입이 어떤 진정성과 더불어 짙은 감동의 계기를 수반하고 있는 것이라면 애정 표현이 좀 진한들 흠될 것이 없다. 그런 애정 표현은 이미 보는 사람에게도 무언가 감동적 분위기를 은근하게 전한다. 아! 저들 젊은 남녀가 사랑의 시련을 눈물겹게 이겨나가고 있구나. 이런 분위기를 말없는 중에 전하는 것이다. 진실한 사랑이란 참으로 놀라운 힘을 머금고 있어서, 아무 말 없는 중에도, 그 애정표현의 분위기만으로도 어떤 웅변 효과 못지않게 사람들을 감동으로 이끄는 것이다. 문제는 애정표현이 ‘심심풀이 땅콩’처럼 권태를 모면해 가는 방편인 듯, 성애적(性愛的) 희롱의 수준으로 상투화 된 경우이다. 남녀가 시도 때도 없이, 남의 이목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붙이고 비비고 만지며, 상대의 가슴이나 배를 쿡쿡 찔러가며, 그리고 끊임없이 무어라 부질없는 킥킥거림을 반복하는 행태를 보노라면, 우리가 소중하게 인식하는 ‘사랑’이 가당치 않은 방식으로 천박해지고 조롱 받는 것 같아서 나는 속이 상한다. 우리 사랑은 이렇게 눈치 볼 것 없고, 그래서 우리들 감정은 우리 기분대로 분방하다. 우리는 우리들 본능적 감정에 충실할 뿐이다. 그 누가 우리의 자연스러운 사랑의 충동을 방해한단 말인가. ‘그래 우리 사랑한다, 어쩔래.’ 뭐 이런 심적 태도가 읽혀진다. 장난기가 없이 스킨십 자체에만 골몰하는 경우는 자칫 변태의 분위기로 치달아서 딱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냉정하게 보면 이런 사랑 행태에는 어떤 불안 의식이 잠재해 있는 것 같다. 상대에 대한 소유에 집착하여, 소유를 안타깝게 확인하려는 면모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들 사랑의 운명적 모습을 당당하게 선언하며, 자기들 사랑의 관계가 중인환시(衆人環視) 속에 각인된다는 점에서, 이른바 공시적(公示的)효과를 극대화 하는 점에서 만족을 찾는 것 같다. 이렇듯 공공의 자리에서 사랑의 몸짓을 공공연히 펼치는 심리 기제 속에는 ‘너와 나는 사랑의 이름으로 기꺼이 서로에게 소유된다’는 심리를 공공의 공간에서 확증 받으려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 메시지의 실질적인 발신자와 수신자는 그들 껴안은 두 남녀 자신들뿐일 수도 있다. 그들과 아무런 심리적 연대도 없는, 그저 기이한 호기심 정도로만 힐끗거리듯 훑어보는 대중들이 그들 ‘사랑의 연출’이 전하는 메시지에 대한 진정한 수신자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혹시라도 서로에게 불안하게 죄어 오는 믿음 약한 사랑과 언제나 성에 안 차는 소유의 심리를 해소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지. 그런 마음을 자기최면으로 강화하려는 몸짓은 아닐지. 에리히 프롬이 일찌감치 말하지 않았던가. 사랑을 소유로만 확인하려 들면 그 사랑은 언제까지나 미숙할 수밖에 없다고. 사랑을 소유의 집착에서 자유롭게 해 주어야 한다고. [PAGE BREAK] 3 공공의 공간에서 시도되는 과도한 애정표현은 공공의 공간에 적합한 감동적 모티브를 가지지 못하면 그 자체로도 문제가 된다. 우리들 모두 ‘사회적 인간’이고, 사회적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은 ‘사회적 공간’이다. ‘사회적 공간’은 ‘공공의 공간’이다. 애정의 표현이 사회적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공유되려면, 사회적 공감과 감동을 수반해야 한다. 하다못해 우리 사회가 젊은이들의 연애감정을 사회적 차원에서 어여쁘게 인정해 주는 어떤 사회적 감동의 계기라도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또 어찌 윤리적 정당성이 없는 감동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바로 그것을 문학이나 영화의 예술이 감당해야 하는 것 아닐까. 1940년에 제작된 흑백 영화 애수(哀愁)(원제 : Waterloo Bridge)는 1950년대 말 이후 우리 영화 팬들에게도 큰 감동을 선사한 고전의 품격을 지니는 영화이다. 지금도 텔레비전 방송 명절 특별편성 ‘명화극장’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이미 고전의 반열에 든 영화다. 로버트 테일러의 중후하고도 우수(憂愁) 짙은 연기와 여배우 비비안 리의 진실하고도 애틋한 눈빛이 아련한 잔상으로 오래 남는 영화다. 두 연인이 절박하고 간절하게 만나서 생사의 기약이 없는 전쟁터로 떠나야 하는, 워털루에서의 이별 장면은 많은 팬들의 심금을 울린 명장면이다. 워털루 다리 위에서 이들 연인은 안타깝고 불안한 운명의 질곡 앞에서 실존의 사랑을 허무하게 확인하는 포옹과 키스의 장면을 연출하는데, 이 장면이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명장면으로 전해 온다. 이른바 공공영역에서의 애정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이 대목 애정 표현 장면이 당시 사람들의 사회문화적 기표(記標)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의 진실을 향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사랑의 윤리가 사회적 감동으로 공유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존재로써 사회적 갈등의 일대 사건인 전쟁을 감당하는 남자 주인공 로버트 테일러의 캐릭터 또한 사회적 감동을 견지해 내며 긴 울림의 의미를 생산한다. 더구나 신이 관장하는 운명의 변주 속에 약한 인간으로 아프게 순응하며, 사랑과 죽음을 동일한 인간적 책무로 감당하는 여주인공의 비극적 삶은 우리를 감동시킨다. 그 감동의 전체적 울림 속에서 워털루 다리에서의 포옹과 입맞춤은 사회적 감동으로 매김된다. 권태로운 장난의 시시한 ‘애정표현’이 어찌 여기에 끼어들기나 할 것인가. [PAGE BREAK] 4 아,그러나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렇게 사람들 보는 데서 해방적으로 애정표현을 하면 마음의 즐거움과 감동은 배가하여 충천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즐거움과 기쁨은 공공적 노출이 강할수록 오래도록 지속되는지. 세상의 온갖 에너지들이 모두 질량불변의 법칙에 귀속되는 것이라면, 우리들 사랑의 심적 에너지도 그 총량은 일정하게 제한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랑의 에너지는 제한되어 있는데, 그렇게 화끈하게 다 소진해 버리고 나면, 우리는 사랑에 관한 한, 좀 황폐한 마인드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문득 우리 민요 ‘밀양 아리랑’이 생각난다. 이런 구절 하나가 익숙하게 귓가에 맴돈다. “정든 임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 /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마음 가득, 몸 가득 사랑인데, 포옹도 없고 입맞춤도 없고, 달려가 손잡는 일도 없다. 오래 떨어져 있던 애인을 만나는데도 먼발치로만 보고 입도 열지 못한다. 공공영역에서의 애정표현(PDA)은커녕 온갖 사랑의 기표들을 애써 감추어 들이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이 대목이 던져주는 내적인 에로티시즘에 한결 더 이끌린다.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한다고? 그런 식의 표현은 화끈하지 못해서 뜨거운 열정으로 고양되지 못한다고 누가 말하는가. 오늘도 전국의 야구, 축구 경기장에서 한국인들이 열광하는 단골 응원가로 ‘밀양 아리랑’은 맹위를 떨치고 있다.
매일 들판 달리는 ‘웰빙학교’ 오전 10시 40분, 2교시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노란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체조를 하더니 이내 인솔교사를 따라 교문 밖을 향한다. 잠시 후 한적한 시골길에 들어서자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다 곧 시골길을 따라 뛰기 시작한다. 어느새 저 멀리까지 뛰어간 아이들. 갈림길이 나오자 저마다 각자의 길로 흩어진다. 진지하게 전력 질주하는 아이, 얼마 가지 못해 걷기 시작하는 아이, 웃으며 서로 발맞춰 뛰는 아이…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길을 향해 뛰어간다. 그리고 10분 남짓 지나자 하나둘씩 결승점에 모습을 드러낸다. 누군가 굳이 시합을 붙인 것도 아닌데 결승점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이 초시계를 들여다보며 자신의 기록을 확인하며 저마다 기쁨과 아쉬움의 감정을 표출한다. 이것은 경남 김해용산초등학교(교장 김해영)의 ‘들판 달리기’ 모습이다. 김해에서는 이미 ‘웰빙 학교’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김해용산초는 매일 2교시가 끝나면 전교생이 들판 달리기를 한다. 평소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건강은 물론 바른 인성과 학습의욕도 함께 증진하겠다는 취지이다. 하지만 코스나 방법 등은 관여하지 않는다. 800m 코스부터 4500m 코스까지 각자의 역량에 맞춰 자유로운 방식으로 뛰도록 하고, 학생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기록관리도 알아서 한다. 흔히 생각하는 단체구보가 아닌 말 그대로 자유로운 들판 달리기인 것이다. 그래서 김해용산초의 학생들은 모두 건강한 구릿빛 피부와 밝은 미소를 갖고 있다. 주변 자연환경을 이용한 무공해 교육 김해용산초는 김해시에 속하기는 하지만 시내에서 17㎞ 이상 떨어져 있는 김해 유일의 벽지학교다. 도회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교육여건이 좋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주위의 자연환경을 십분 활용해 자연체험학습장을 조성하고 ‘1인 1 텃밭 가꾸기’를 하는 등 불리한 여건을 오히려 특색 있는 교육의 기회로 삼고 있다. 학교 뒤편의 자연체험학습장은 규모가 클 뿐 아니라 구성도 무척 짜임새가 있다. 수중생물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연못을 시작으로 뒷산 줄기를 따라 곳곳에 모둠별 학습을 할 수 있는 원형테이블이 설치돼 있고, 좀 더 올라가면 전교생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학습장이 마련돼 있다. 야외학습장 위로는 등산로가 계속 이어지는데 총 길이가 7㎞에 이르고 곳곳에 운동시설이 설치돼 있다. 이 정도 시설이면 충분히 만족할 만도 하지만, 김해영 교장은 “아직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 “학생들을 위한 골프연습장을 마련하고 민속놀이 시설을 더욱 확충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 다양한 경험을 해보면서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다방면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 김 교장의 생각이다. 이와 함께 김해용산초는 자연의 흙과 친숙해질 수 있도록 학교 앞에 재배관찰학습장을 마련, 전교생이 1㎡ 정도의 개인 텃밭에서 농작물을 직접 기르고 수확하는 ‘1인 1 텃밭 가꾸기’를 하고 있다. 주말이면 학부모가 함께 나와 농작물을 살피고 자연체험학습장에서 등산을 하는 가정도 많다. 교직원들도 직접 텃밭을 가꿔 여기서 생산된 무공해 농작물을 급식에 사용하고 있다. 스스로 경작해 먹는 즐거움에 자연스럽게 채소섭취량이 늘어 학생들의 식생활이 개선되는 부가적인 효과도 얻었다. 아토피 • 천식 친화학교로 지정 좋은 자연환경을 이용해 다양한 자연친화적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한 결과 김해용산초는 지난해 보건복지부로부터 아토피 • 천식 친화학교로 지정됐다. 이에 보다 체계적인 관리를 하기 위해 보건소와의 협조를 통해 전교생의 아토피 • 천식 유무를 조사하고, 질환이 있는 학생은 개인관리 카드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저소득층 학생에게는 의료비를 지원한다. 이와 더불어 학생들이 건강한 생활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학생 • 교사 • 학부모 대상의 다양한 연수 •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방역이나 제초작업 등은 반드시 하교 후에 하고 학교주변에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는 식물은 제거하는 등 학교관리에도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아토피와 천식을 앓고 있는 학생 80%가량은 그 증세가 사라졌으며, 나머지 20%도 호전되고 있다. 영어교육도 전국 최우수 아이들이 아이답게 자연에서 뛰놀며 자라게 하는 것은 좋지만,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학과교육이 부실해지진 않을지 걱정이 되기 마련이다. 특히 점점 더 강조되는 영어교육의 경우 도시가 아니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크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은 김해용산초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학년 당 한학급 전교생 144명의 소규모 학교임에도 2명의 원어민 강사를 확보해 여느 도회지 학교 이상의 양질의 영어교육을 하고 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정규교과시간에 주당 3시간의 영어수업을 받고 있으며, 올해부터 매주 1시간씩 과학교과를 영어로 수업한다. 아직까지 완전히 영어로 하는 수업은 되지 않지만 수업의 75%가량을 영어로 진행하고 있으며, 2학기에는 이를 90% 이상으로 올릴 계획이다. 김해용산초의 영어교육은 교실에서 그치지 않는다. 화장실 천장에 영어회화 기계를 설치, 사람이 들어오면 자동으로 인식해 영어회화를 따라 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토킹 프렌즈’라는 이 영어회화 기계는 일상생활 중에도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생활영어를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김 교장이 창원전문대 교수진 등과 함께 개발했다. 향후 입식(立式) 영어회화 기계를 개발, 복도 6곳에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교육은 학교에서, 교사는 무조건 수업부터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김해용산초는 일반적인 정규교과과정에 영어수업을 더 추가해 운영하고 있으며, 5~6학년 교과과정에는 주당 2시간의 중국어 수업이 추가되기 때문에 정규수업이 다른 초등학교보다 늦게 끝난다. 방과 후에도 수준별 영어보충수업과 컴퓨터, 논술, 태권도, 국악, 무용 등 다양한 방과후학교를 운영한다. 그래서 모든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일반 직장인의 퇴근시간과 비슷하다. 이는 되도록 사교육의 힘을 빌리지 않고 모든 교육을 학교 내에서 받아야 한다는 김 교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전체 학생 45% 정도의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현실을 감안한 것이기도 하다. 김 교장은 “사교육에 기대지 않고 학교에서 충분한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수업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수업시간 중 교사들의 핸드폰 사용부터 컴퓨터 사용, 행정업무 처리 등 일체의 다른 행동을 허용하지 않는다. 행정업무까지 금하는 것은 너무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김 교장은 “교사에게 수업보다 더 우선하는 것은 없다. 모든 공문은 수업을 마친 뒤 처리하고, 정 급한 공문이 있으면 수업이 없는 다른 교사가 하면 되는 것”이라며 “그래도 처리할 사람이 없으면 교장이 직접 처리하거나 기한을 연장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하면 된다. 이런 것이 관리자로서 교장이 할 일”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다방면의 노력의 결과 1998년 전교생이 38명까지 줄어 폐교 위기에 몰렸던 학교가 현재 전교생 144명의 학교로 정상화됐다. 현재 전학을 원하는 대기자가 70명에 이르고, 내년 입학을 원하는 학생도 벌써 24명이나 접수됐다. 김해용산초를 다니려는 학생 중 상당수가 차로 30분이 넘게 걸리는 시내에 거주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실로 대단한 인기다
+ 서해 최북단의 매력적인 섬 그러니까 백령도 용기포 선착장에 도착하기까지 딱 12시간이 걸렸나 봅니다. 자정에 출발한 서울발 심야버스는 새벽 4시 30분경 강남고속터미널에 도착했고, 한 시간 정도 터미널 근처에서 대기했다가 전철을 타고 인천 연안여객선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는 정각 8시에 출발하는 여객선을 타고 4시간 조금 넘게 달린 끝에 백령도에 도착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 그리고 남한의 PSI 전면 참여, 개성공단 문제 등으로 어느 때보다도 남북 간 긴장이 팽팽한 때 서해 5도 중 한 곳인 백령도를 찾아간 것입니다. 예상외로 백령도는 침착하고 조용했습니다. 지리적으로 백령도는 북한과 훨씬 가깝고 바다 건너에 북한 황해도가 한눈에 들어오기에 유사시에 어떤 상황이 발발할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잔잔한 바다만큼 흔들림 없이 생업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진촌리에서 만난 어떤 주민은 오히려 그런 긴장감이 있기에 훨씬 여유로운 곳이라고까지 합니다. 하지만 주민들과 달리 군인들을 보면서 미묘한 전운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휴가 나온 군인들은 군복을 입은 채 대기 상태로 언제든지 부대로 복귀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점점 더 많은 병력이 섬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북방한계선 인근에서 조업하던 중국 어선들은 이런 분위기를 아는지 한꺼번에 사라져 버렸고, 북한은 군사력을 과시라도 하듯이 대거 군사력을 서해안 쪽으로 집결시켜 두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백령도를 포함한 우리 땅 서해 5도는 북한으로 봐서는 목에 가시와 같은 곳입니다. 서해 5도로 인해 북방한계선(NLL)이 생겼고, 그 북방한계선으로 인해 개성이나 해주 쪽에서 서해로 진출하려면 황해도 해안선을 따라 백령도와 가까운 장산곶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죠. 우리로서는 서해 5도를 확보함으로써 인천 앞바다를 통해 곧바로 서해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군사적 중요성으로 인해 백령도에는 해병대 6여단을 중심으로 공군, 해군 등 국군이 배치되어 서해 최북단 우리 영토를 지키고 있습니다. 백령도는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에 속합니다. 전체 인구는 4000여 명, 남한에서 여덟 번째로 큰 섬입니다. 옹진군은 북도면, 연평면, 대청면, 덕적면, 자월면, 영흥면 등 서해에 떠 있는 섬을 껴안고 있습니다. 백령도를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에 냉면집이 눈에 띕니다. 황해도식 냉면집이 대부분이라는데, 어느 식당에서 먹어본 냉면은 메밀로 만들어 시원했습니다. 짠지떡도 유명한데 이것은 백령도 사람들이 짠지라고 부르는 김치를 잘게 썰고 굴이나 조개 등으로 소를 만들어 먹는 것으로 생김새는 만두와 비슷합니다. 백령도 까나리액젓의 명성도 알아줍니다. 곳곳에서 숙성용 저장용기를 볼 수 있고 소금을 만드는 염전도 한 곳 있습니다. 그밖에 전복, 해삼, 우럭 등 신선한 해산물이 풍부한데 여행 기간 중 사자바위를 앞에 둔 고봉포구에서 본 팔뚝만한 숭어 떼가 기억에 남습니다. [PAGE BREAK] +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사곶해안, 콩돌해안, 점박이물범 군사적, 지리적인 특수성으로 인해 백령도는 그동안 자연 모습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몇 점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제391호로 지정된 사곶해안은 규암 가루가 층층이 쌓이고 그 모래 사이에 뻘이 뒤섞여 형성되었습니다. 그 단단하기가 비행기 이착륙이 가능할 정도라고 합니다. 실제로 이곳은 1970년대까지 비행기 이착륙 용도로 이용되었다는데 이탈리아 나폴리 해안과 함께 전 세계에 두 곳밖에 없는 천연비행장이라고 합니다. 4㎞에 이르는 긴 백사장은 해송이나 해당화와 함께 어울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해수욕장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제392호로 지정된 콩돌해안은 말 그대로 콩알만한 돌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습니다. 제 색깔을 잃은 녀석들이 물을 만나면 제 색깔을 드러내는데 그 화려함이 끝내 줍니다. 일반적인 모래사장을 밟는 느낌이나 굵은 몽돌해변을 밟는 느낌과는 다른 이색적인 즐거움을 안겨줍니다. 이 해안은 백령도의 모암인 규암이 해안의 파식작용에 의해 마모를 거듭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똑같은 콩돌이 물을 만나면 색깔을 드러내고 그렇지 않은 곳은 제 색깔을 잃고 맙니다. 남북의 상황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결국 같은 색깔, 같은 모양인데 단지 드러나는 색깔이 다를 뿐이지 않을까요? 백령도의 중심지는 진촌리입니다. 고려시대 이후로 진(鎭)이 설치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진촌리 하늬바다에는 천연기념물 제393호로 지정된 감람암 포획 현무암 분포지가 있습니다. 이곳 현무암을 자세히 보면 그 속에 황록색을 띤 감람암 암편들이 보이는데 이것은 용암 분출시 지하 맨틀 층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땅속 깊은 암석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는데요, 지금은 사람들에 의해 많이 채취되어 곳곳에서 감람암이 빠져나간 흔적만 남아 있는 듯합니다. 국가지정 천연기념물이 이렇게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하늬해변 일대 농경지는 진촌리 패총지역으로 이곳에서는 신석기시대의 맷돌을 비롯하여 토기, 돌도끼, 동물 골편, 돌 어망추 등 선사시대부터 옹진군에 사람이 들어와 살았던 것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천연기념물 제331호인 점박이물범은 백령도 주변에 약 200~300마리가 서식하고 있는데 하늬해변 앞 물범바위와 두무진 일대에서 잘 보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여행을 하는 기간에는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요즘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네요. 백령도를 왕복하는 여객선의 운항횟수가 늘어나고 4시간 남짓이면 육지에 도착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외지인의 경우 편도 6만 원에 가까운 승선비가 들지만, 인천광역시민의 경우는 50% 할인의 혜택이 있고 백령도민일 경우에는 5000원으로 이용할 수 있어서 접근성이 훨씬 나아졌습니다. 섬 주민들이 큰 병원을 갈 때도 훨씬 더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외부인들의 방문 기회가 많아지는 만큼 백령도의 자연을 그대로 남겨두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겠습니다. [PAGE BREAK] + 심청각과 두무진, 용트림바위 심청전의 주 무대가 어디인가에 대해 논란이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그 무대가 황해도 황주와 장산곶, 백령도 일대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백령도에는 심청과 관련한 곳이 몇 군데 전해집니다. 심청이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는 지금은 북측 바다에 있기 때문에 가지는 못해도 눈으로 볼 수는 있습니다. 또, 심청이 연꽃에서 다시 태어난 것을 말해주는 연화리라는 지명이 남아 있습니다. 실제로 연화리에는 옛날에 많은 연꽃들이 피어났다고 합니다. 그밖에 연꽃이 떠내려와 걸렸다는 연봉바위도 있습니다. 이런 심청의 고장 백령도에 1999년 심청각이 문을 열었습니다. 1층에서는 효와 관련한 자료와 소리, 영화, 소설로 심청전을 만날 수 있고 2층은 옹진군의 역사, 백령도 홍보, 북녘 땅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건물 바깥에는 심청이 인당수에 뛰어들기 직전의 모습을 조성해 기념상으로 설치해두었고요, 심청각 오른편으로는 화포와 탱크가 전시되어 있는데 그 포구(砲口)는 북쪽 땅을 향하고 있습니다. 1층 전시관에는 효를 실천한 이야기 속 인물들이 몇 소개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손순매아(孫順埋兒)’ 이야기도 있습니다. 손순이 모친의 음식을 뺏어 먹는 어린아이를 산에 묻기로 하고 갔더니 돌로 된 종이 나와서 아이를 다시 데리고 왔습니다. 집에서 그 종을 두드리니 그 소리가 흥덕왕에게 전해지고 왕은 그 사연을 알고는 후한 상을 내려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효를 강조하는 내용은 지역 곳곳에서 전래되고 있는데 울산의 경우에는 송도 이야기가 있습니다. 심청각 2층에서 북녘 땅을 바라봅니다. 남과 북 사이에는 잔잔한 바다만 있을 뿐입니다. 그 바다에는 지도에서 본 북방한계선 표시도 없고 이념의 대립도 없습니다. 그저 푸르른 바다 위에 배 한 척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잠잠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북한 측 해안과 백령도 북측 해안을 중심으로는 상대방을 경계하기 위한 지뢰가 수없이 매설되어 있을 테고 각종 무기로 중무장되어 상대방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겠죠? ‘백령도’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두무진(頭武津)에 가면 인당수가 훨씬 더 가깝게 다가옵니다. 두무진은 명승 제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선대암, 형제암, 코끼리 바위 등 해안선을 따라 깎아지른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어우러져 마치 장군들이 회의를 하는 것 같은 장면을 연출합니다. 서해의 해금강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곳에서 건너편으로 보이는 장산곶까지는 보이지 않는 금줄만 아니라면 배를 타고 20분만 달리면 닿을 것 같습니다. 통일에 대한 염원으로 두무진 일대에는 통일로 가는 길 비, ‘통일기원비’가 서 있고 1970년 7월 9일 23시경 나포된 백령도 어민들 중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반공희생자합동위령비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 여행 중에서 의외의 수확이라면 용트림 바위를 찾아간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용트림 바위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 바위는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형상이라고 하지만 그 바위 자체보다는 일대가 갈매기와 가마우지떼의 집단 서식지이기 때문에 절벽을 이룬 곳에 틈을 비집고 자리 잡은 놈들을 만나는 기쁨이 대단합니다. 바로 눈 아래에 갈매기 알이 있는데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어미는 보금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수백 마리는 됨직한 갈매기떼가 군사작전이나 한 것처럼 저를 향해 쌩 날아오더니 머리 바로 위로 지나갑니다. 저를 절벽 아래로 떨어뜨릴 태세입니다. 제가 침략자가 되어 버린 셈입니다. [PAGE BREAK] + 110년의 역사 가진 중화동교회 백령도에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세워졌다는 장로교회인 중화동교회가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110년을 넘어섭니다. 교회 옆에는 백령기독교역사관이 있어 백령도 지역 기독교 전래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역사관의 자료를 바탕으로 중화동교회의 설립과 기독교 전래사를 정리해 봅니다. 우리나라에는 영국인 선교사들이 제일 먼저 들어왔는데 이들은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안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습니다. 1816년 영국함대가 백령도에 처음으로 개신교의 씨앗을 퍼뜨렸고 1832년에는 백령도를 방문한 귀츨라프 선교사가 처음으로 백령도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1846년에는 한국인 최초의 사제였던 김대건 신부가 막혀버린 육상통로 대신 서해상을 통해 신부들이 육지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열기 위해 백령도 근해에 나타났다가 옹진반도 인근 순위도에서 관군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개척해 놓은 서해상의 잠입통로를 통해 1880년까지 무려 17명의 신부들이 국내에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서해상 항로의 거점은 백령도였습니다. 1865년에는 토머스 선교사가 대동강변에서 순교함으로써 개신교 첫 순교자가 됩니다. 1880년 중반에는 서상륜 형제의 주도로 황해도 장연군 소래에 한국 최초의 자생교회가 탄생하게 되기에 이르렀고 이후 지리적으로 가까운 백령도에도 중화동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중화동교회는 허득의 주도로 세워진 자생교회이자 백령도의 모교회(母敎會)로 이를 계기로 대청도와 소청도 같은 인근 섬에도, 옹진반도와 대동반도에도 교회가 본격적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대개 섬이라면 전래 민간신앙이 두터운 편인데, 이 지역은 중국을 드나드는 통로로 각국의 배들이 지나다녔기 때문인지 일찍이 새로운 문화에 좀 더 빨리 눈뜰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가 들어서고 난 뒤에 위기도 찾아왔는데요, 해산물을 잔뜩 실고 몽금포로 떠난 배가 갑자기 일기 시작한 바람과 파도로 파선되어 결국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을 두고 당시 사람들은 배가 파선된 원인이 해신(海神)을 믿지 않음에서 비롯되었다며, 교회에서 서낭제를 못하게 한다고 해서 전래 민간신앙과 교회와의 충돌이 컸다고 합니다. 인천으로 향하는 여객선에서 생각해 봅니다. 이 백령도에서 군인들이 없어질 날이 언제일까, 우리나라 최서단 땅이라며 백령도가 아닌 평안북도 마안도로 마음대로 찾아갈 수 있는 날이 언제일까…. 백령도의 백령(白翎)은 ‘흰 날개’를 의미합니다. 갈매기 떼가 흰 날개를 휘젓고 마음껏 날아다니는 이곳이 대립과 긴장의 섬이 아니라 통일을 가장 먼저 기다리는 희망의 섬이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