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98,722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상세검색KAIST 학생들이 주말을 이용해 대전시청에서 저소득층 중·고등학교 자녀를 가르치게 됐다. 대전시는 30일부터 5월 16일까지 주말을 이용해 시청 20층 하늘마당에서 KAIST 미담(美談)장학회 소속 학생 28명이 저소득층 중·고교생 100여명을 대상으로 영어와 수학, 과학 등 3과목을 무료 교육한다고 28일 밝혔다. 주중에는 KAIST 문지캠퍼스에서 교육을 계속한다. 대전시는 교육 장소인 KAIST 문지캠퍼스가 시내에서 떨어져 있어 학생들의 편의를 돕기 위해 주말에 비게 되는 시청사에 새로운 공간을 마련했다. KAIST 학생들은 지난해부터 문지캠퍼스에서 저소득층 중·고교생에게 무료 교육해 왔다.
국내 석박사 과정의 우수 과학도를 대상으로 학위과정 동안 연구역량을 높이고 미래의 노벨상 후보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집중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시행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8일 이런 내용의 총 10억원 규모 미래 기초과학 핵심리더 양성사업 시행계획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교과부는 국내 기초과학 분야 연구기반 강화 및 도약을 위해서는 우수한 젊은 과학자를 조기 발굴, 대학원 과정부터 박사 후 과정(Post-Doc), 이후 신진연구자(교수)로 연결되는 생애 경로상 일관되고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서 이 사업을 기획했다. 먼저, 기초과학 분야의 탁월한 역량을 보유하거나 잠재력이 높은 신진 핵심인재를 선정하기 위해 현재의 학업성적, 연구업적보다는 창의성, 국제적 능력 등 장래의 발전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검증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연구자 개인별로 제안한 연구형태 및 내용에 따라 대상별 맞춤형 지원방식으로 충분한 연구비를 지원한다. 특히 선정된 과학도가 효과적으로 연구활동을 수행하고, 능력개발을 할 수 있도록 전문기관을 통한 다양한 지원도 제공한다.
울산대학교(총장 김도연)는 최근 들어 전체 신입생 가운데 타지 학생의 분포도가 상승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28일 밝혔다. 대학 측은 올해 신입생의 지역별 분포도를 분석한 결과 전체 3274명 가운데 울산 이외 지역 출신이 모두 1154명으로 전체의 35.25%를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5년 전인 지난 2006년 타지 신입생의 비율인 26.42%(850명)와 비교하면 8.83%포인트나 늘어난 것이다. 이후 타지 신입생 비율을 연도별로 보면 2007년 30.1%, 2008년 29.52%, 2009년 33.47%로 집계됐다. 올해 신입생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울산이 64.75%로 가장 많았고, 부산(10.63%), 경남(8.12%), 대구·경북(7.73%), 서울·경기(2.29%) 순으로 나타났다. 울산대 이인택 입학처장은 "울산이 아닌 다른 지역 학생의 분포도가 증가하는 것은 대학에 대한 전국적인 지명도가 상승한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교육여건을 높여 세계수준의 대학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육여건과 성과가 우수한 전문대 80곳을 선정해 1812억원을 지원한다고 28일 밝혔다. 졸업생 취업률과 신입생 충원율, 산학협력 수익률, 장학금 지급률, 등록금 인상지수, 학점관리 지수 등을 반영해 지역별로 수도권 26곳, 비수도권 54곳, 설립주체별로는 국·공립 9곳, 사립 71곳을 골랐다. 평가 결과와 학교 규모 등을 고려해 6억 2천만원(한국재활복지대)부터 46억 4천만원(영진전문대)까지 평균 22억 7천만원을 준다. 교과부는 '예산 나눠 먹기' 관행을 없애고자 지원 대상을 지난해 96곳(전체 145개 전문대의 65%)에서 올해 80곳(55%)으로 줄였다. 또, 전문대의 특성화와 브랜드화를 위해 전문대별 비교우위 분야의 육성 사업계획서를 평가해 5월 중 80곳 안팎을 뽑아 776억원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공시정보를 조작하는 등 불법·부당하게 지원받은 사실이 적발되면 지원금을 회수당하고 향후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다.
경북대와 통합한 상주대 학생들이 경북대의 졸업요건 규정 때문에 졸업장을 받지 못해 낸 행정소송에서 1, 2심 모두 이겼다. 대구고법 행정부(김창종 수석부장판사)는 상주대 비즈니스경제학과 학생회장 김모(25·여)씨 등이 경북대 총장을 상대로 낸 졸업요건규정무효확인소송의 항소심에서 경북대 총장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28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졸업요건 규정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장이 권한 없이 제정한 것이고, 통합의 기본정신이나 통합과정에서 경북대가 작성한 졸업에 관한 특례규정의 취지에도 맞지 않아 무효"라고 밝혔다. 경북대는 2008년 3월 상주대와 통합하면서 상주대의 비즈니스경제학과 등 3개 과를 없애는 대신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등과 협의해 졸업 특례규정을 마련한 후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경북대 졸업장을 주기로 했다. 그러나 경북대 경제통상학부는 졸업요건으로 전공 75학점 중 45학점 이상을 경북대 경제통상학부에 개설된 과목으로 채우도록 규정하자 김씨 등은 "정상적인 수학기간내 졸업할 수 없도록 한데다 통합정신에도 어긋난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대전지역 대학들이 개교 당시 건물을 복원하고 기념관을 설립·운영하는 등 건학이념을 되새기기 위한 사업을 잇따라 추진하고 나섰다. 28일 지역 대학들에 따르면 최근 한남대는 지난 1956년 개교 당시 조성된 건물인 '인돈기념관'(현 대학본부)을 복원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복원작업은 인돈기념관의 슬라브 지붕에 나무로 된 구조물을 설치한 뒤 동기와를 얹는 것으로, 오는 8월 복원이 마무리되면 현대화된 캠퍼스 안에서 한국 전통의 멋을 한껏 풍기는 상징건물이 될 것으로 학교 측은 기대하고 있다. 단순히 개교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학교설립 정신으로 되돌아 가자는 의미에서 이번 복원작업을 펼치고 있다는 게 학교 측의 설명이다. 한남대 관계자는 "이번 공사는 단순히 건물의 지붕을 바꾸는 것을 넘어서 학교설립 정신을 반추해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내달 15일 개교 54주년을 맞아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충남대도 1970~1971년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던 미국인 대븐포트 로버트슨(W. Davenport Robertson·64)씨로부터 당시 중구 문화동 캠퍼스와 태극 정원 등의 모습이 담긴 사진 14점을 최근 기증받아 학교 역사자료실에 전시 중이다. 학교 관계자는 "기증받은 사진들에는 당시 학생들과 잔디밭에 앉아 있는 모습, 교수 및 학생들과 소나무 밑에서 막걸리를 먹는 모습, 한적한 도로의 모습, 문화동 캠퍼스 건물과 주변 농지 등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다"며 "문화동에 있던 옛 문리대 건물과 태극 정원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이번에 기증받은 것이 유일한 자료로 교내 박물관 학교역사자료실에서 잘 보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배재대도 지난 2008년 서울 정동 배재학당 동관(東館)을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으로 재단장해 운영하고 있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은 체험교실, 상설전시관, 기획전시관, 세미나실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상설전시관 1'에는 고종황제로부터 하사받은 '培材學堂(배재학당)' 현판과 유길준의 친필서명이 담긴 서유견문, 협성회회보, 독립신문 등이 전시돼 있다. 배재대 관계자는 "배재학당은 이미 120년 전부터 한문과 교리강독을 제외한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는 등 글로벌 교육을 실현해온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대학이었다"며 "역사박물관은 우리나라 근대교육의 발전과정을 총정리하고 미래를 향한 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오는 2014년 설립 60주년을 맞는 목원대도 학교 역사를 되새겨보는 체계적인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조만간 전담 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이와 함께 '목원대 역사 자료수집 운동'을 통해 동문과 지역 각계 인사들이 소유한 사진, 영상물 등 학교의 역사를 담은 자료를 수집해 학교 역사박물관을 개관하는 한편 '목원대 기록 영화'를 제작한다는 방침이다. 한 대학관계자는 "지역 대부분 대학의 역사가 반백년을 넘기다 보니 건학이념을 되새기고 스스로의 발자취를 되돌아 보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며 "초심으로 돌아가 인재 양성과 지역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는 학문의 전당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산시교육청은 28일 올해 안에 위탁급식을 하는 70개 학교를 직영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부산교육청은 올해 본예산 편성때 예산 부족으로 17개 학교만 직영화하기로 하고 53개 학교에 대해 직영화를 유예했다. 그러나 최근 1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서 364억원을 추가로 확보함으로써 올해 총 70개 학교에서 급식 직영화를 할 수 있게 됐다고 교육청은 밝혔다. 교육청 관계자는 "이로써 올해 안에 부산지역 전체 학교의 96%에서 직영 급식이 이뤄지게 돼 급식의 질이 좋아지고 식중독 사고 예방 등 안전관리 수준도 향상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교육청은 이전과 통·폐합 계획 등의 이유로 급식 직영화가 유예된 27개 학교에 대해서도 단계적으로 직영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한국계인 미셸 리 워싱턴 D.C. 교육감에 대한 지지 입장을 보여왔던 워싱턴포스트(WP)가 27일 사설을 통해 "리 교육감은 D.C.의 성적 향상에 대해 칭찬을 받을만하다"고 거듭 높게 평가했다. 이 신문은 최근 발표된 전국교육향상평가(NAEP) 결과 워싱턴 D.C. 4학년생들의 독해 평균점수가 2년 전에 비해 5점 향상된 것으로 나온 점을 거론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신문은 "D.C. 학생들은 여전히 한참 처져 있지만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부인은 없다"면서 "NAEP는 학생 평가에 관한 기준으로, NAEP 관계자들은 올바르게 나가고 있는 곳의 예로 D.C.를 꼽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이어 "(D.C.)주민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도 리 교육감에 대해 낮은 지지를 보이고 있지만, 리 교육감은 결과를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1월 말 실시된 이 신문의 여론조사에서 리 교육감이 추진해 온 공교육 개혁 성과에 공감하는 응답은 증가했지만 리 교육감의 업무 수행에 대한 워싱턴 D.C. 주민들의 지지는 작년보다 낮아진 결과가 나왔었다.
수원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산은 광교산(光敎山)이다. 그 다음이 칠보산(七寶山)이다. 일요일, 아내와 함께 칠보산을 찾았다. 코스를 달리하려고 당수동에서 칠보사를 지나 능선길로 접어 들었다. 칠보산의 좋은 점은 서해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다. 이마에 솟은 땀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산에 리기다소나무가 많아 솔바람 소리가 매력적이다. 능선이 완만하여 여성들이나 가족 단위 산행에 적합하다. 몸에 무리가 오지 않고 위험한 구간이 별로 없다. 가장 긴 코스는 1코스다. 칠보사, 무학사, 개심사, 용화사 등이 칠보산 자락에 있다. 정상에서 잠시 땀을 식히고 능선을 따라 하산이다. 능선 왼쪽 화성시 쪽을 보니 푸른산이 보이지 않고 하늘이 휑하니 뚫렸다. 바로 옆에는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세운 산불조심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다. 가서 보니 산불이 난 자리다. 넓은 구역의 소나무가 없어졌다. 보기에도 흉하다. 누군가가 심은 애송나무가 보인다. 이 애송나무가 자라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산불은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원래 상태로 복구되려면 수십 년이 걸린다. 파괴는 순식간이지만 울창하게 가꾸려면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산에 갈 때 라이터 등 인화물질을 소지해서는 안 된다. 취사행위를 해서도 안 된다. 담배를 피워서도 아니 된다. 인근의 논 밭에서 불을 놓다가 산불로 이어지게 되므로 특히나 조심해야 한다. 현수막 문구처럼 "산불조심은 산과의 약속이다." 특히 2월부터 5월까지는 봄철 산불예방기간이다. 봄철 건조기라서 산불 발생 가능성이 높다. 삼천리 금수강산, 푸르게 만들어야 한다.
2009 개정교육과정은 2011학년도부터 연차적으로 적용한다.다 아는 사실이지만 2007개정교육과정이 완전히 적용되기 이전에또다시 새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미래형 교육과정'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여러가지 문제로 비난이 거세지자 슬그머니 2009개정교육과정이라는이름을 쓰기시작했다. 지난해 7월, 공청회를 할 때만 하더라도 미래형 교육과정이었다. 명칭이야 어찌됐든 교육과정 개정은 기정사실화됐고 당장 내년부터적용이 시작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내년부터라고는 하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새 교육과정에 당장 손을 대야 한다. 그 이유는2009 개정교육과정은 3년간 이수해야할 교육과정을 한꺼번에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매 학년마다 8개 과목 이하만 이수하도록 했기 때문에 집중이수제가 필수가 돼야 하고, 이런 사정으로 매 학년마다 집중이수를 해야할 과목이 정해져야 한다. 이렇게 과목을 정한 후에 곧바로 교과서 주문에 들어가야 한다. 통상적으로 교과서 주문은 1학기 말에서 2학기 초에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사전에 정해진 교육과정을 통해 교과서를 주문해야 한다.2009개정교육과정을 제대로 적용할려면 최소한 1학기 내에는 3년간 이수할 교과목이 정해져야 한다. 이제 막 2010학년도가 시작됐지만 일선학교에서는 곧바로 2009 개정교육과정 적용을 위한 기본적인 방침이 설정돼야 한다. 이 방침은 학교의 몫이다. 매학년 이수과목등을 학교에서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8개 과목 이하로 이수하도록 한 부분이다. 학생들의 학습부담 경감을 위해서다. 과목 수가 줄어드니 학습부담이 어느 정도 경감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집중이수제가 포함되지 않으면 8개 교과로 맞출 방법이 없다. 더구나 8개 교과 이하로 이수하도록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집중이수제를 도입해야 하는데, 학교별로 집중이수과목의 시기와 학년이 다른 것은 해결할 방법이 없다.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은 무조건 학생들이 이수해야 하는데, 그 과목들을 이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도중에 전입을 하는 학생들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다행히도 우연의 일치로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대부분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교과부에서 제시했어야 한다. 시·도교육청에서 해결할 문제도 아니다. 학생들의 이동은 전국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도교육청에서 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다만 시·도교육청에서는 집중이수제로 이수를 못한 교과목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그 어떤 방안도 나온 것이 없다. 단지 일선학교에서 학교장 재량으로 하라는정도가 전부다. 학교장에게 전권을 준 것이다.해당 과목은 대부분 주당 시수가 적은 과목이 될 것인데, 도중에 전입해 오는 학생들은 어떤 방법을 활용하던지 이수를 시켜야 한다. 결국 방학이나 방과 후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렇게 해서 제대로 된 이수가 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앞선다. 상급학교 진학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매 학년 성적처리가 끝난 상황에서 새로 전입한 학생들이 일부 과목을 새롭게 이수했다면 그 학생의 성적처리도 문제가 된다. 교과별로 석차가 매겨지는 것이 현재의 성적처리 방법인데 나중에 이수한 학생들의 성적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큰 문제인 것이다. 이수만 하고 석차는 기록하지 않는 방법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럴 경우 이 학생의 해당과목 성적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그밖에도 문제는 여러가지가 있다. 교육과정 자율화 방안의 적용으로 수업시수를 20% 증감할 수 있도록 했는데, 시수가 많아지는 과목과 적어지는 과목의 교원수급문제, 역시 전입해 오는 학생 문제는 끝까지 해결이 어려운 문제가 될 수 있다. 전 출입생의 수가 얼마나 되기에 그러느냐는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우리 학교의 경우는 최소한 매달 10여명 내 외가 전 출입을 하고 있다. 적은 수가 절대로 아니다. 새로운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2009 개정교육과정은 제대로 시작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해본다. 문제점을 최소화해서 시작하더라도 막상 시행하면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시작 전부터 여러가지 문제가 있는 2009개정교육과정이 학교에 제대로 안착할지 염려스럽다.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잘 안되는 부분에 대해서 학교에서 자율권을 행사하라는 식의접근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전작권을 아직은미군에게 맡겨야 한다는 주장과 우리나라가 가져와야 한다는 주장으로 인해 논란이 뜨겁다. 전작권이라는 것은 전시작전통제권을 줄인 말로, 전쟁 발생 시에 군대의 작전을 총괄하는 권한으로 설명할 수 있다. 결국 우리나라의 자주적 권한을 되찾으려면 전작권을 회수해야 한다고 한 부분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전작권을 왜 환수하려는 지는 여러 가지 주장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 전작권을 가진 주한 미군은 한국 내의 미군 기지에서 치외법권이 허용된다. 결국은 일제시대 치외법권의 아픔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효순이, 미선이 사건'(당시 미군 탱크에 치여 죽음)에서 보듯 가해 미군군인의 무죄로 국민의 분통을 샀는지는 알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 미군의 도움 없이도 국군은 북한을 막을 만한 국방력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전작권을 환수하고 난 이후의 우려는 미군의 철수다. 전작권을 환수한 뒤에는 더 이상 미군의 주둔 명분이 없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국군은 미군이 없어도 최첨단 시스템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마땅히 군사강국(세계 6위)으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만약 미군이 철수할 시에도 친미의 성향을 가진 우리나라를 미군은 버릴 수 없다는 주장이다. 미군은 한국전쟁 당시 가장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서 우리나라와 많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현재에 와서는 많은 교류와 접촉을 통해서 돈독해 지고 있으므로 고작 전작권 이양 문제로 도움을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넷째, 전시 작전권을 환수를 해야 남북 관계가 완만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에 미군이 들어서 있고 그 미군은 북한을 언제 싸울지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같은 민족인 북한 주민들과 싸울 이유는 없다. 되도록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것을 중시한다. 결국 북한은 남한에 미군이 있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진전되고 있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결국 많은 이유로 전작권 환수에 대한 찬성 의견들이 있다. 전작권은 언젠가 우리가 환수 해야 할 것이며 그 환수는 시일이 빠르면 좋지 않겠냐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작권의 찬성의 장점이 있는 반면 어두운 단점의 부분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작권을 환수를 반대하는 많은 이유를 들어보면설득력이 있다. 첫째, 전작권 환수를 찬성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주국방 발언은 단독국방 발언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방력은 강할 지는 모른다. 하지만 독단적으로 전쟁을 시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자체 전력으로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도 않는데도 자주, 주권 이념의 진보적 가치를 무게를 두는 바람에 높은 수준의 국가안전보장을 낮은 수준으로 내리는 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결국 전쟁이 일어날 시에의 최소한의 손해를 보장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로 판단할 수 있다. 둘째, 전작권 환수는 미군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다. 전작권은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미군과의 피말리는 협상을 통해 만든 한미전작권 통제다. 이는 미군에게 유리하다고 말할 수 있는 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치외법권이라는 불리한 항이 있지만 그 치외법권도 미군기지에 한해서만 이다. 또한 전작권의 전부가 미군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국군과 미군이 50 : 50의 배분으로 전작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미군이 철수하면 미국은 주한 미군이었던 군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셋째, 국방비의 예산으로 인해 국고가 바닥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8번째로 군사비를 많이 지출하는 나라다. 결국 주한 미군의 철수로 인해 국민혈세를 길에 뿌리는 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넷째, 한미연합사로 인해서 우리나라의 샌드위치 위험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본다. 핵의 위험을 가지고 있는 북한과 막대한 자본의 능력으로 세계 2위의 해군을 가지고 있는 일본과 많은 인구를 바탕으로 입지를 넓혀가는 중국의 위협 속에서 미군의 힘은 실로 강하게 작용한다. 어느 나라든 한국을 공격한다면 미군이 도와줄 것이고 그것을 아는 세계의 지도자들은 어리석지 않고서는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는 중국, 일본, 북한이 연합을 한다해도 말이다. 결국 전작권을 회수하기 전에 그 정책의 어두운 점이 무엇인지를 우리 모두는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 ‘마시멜로이야기’처럼 지금 초코파이를 먹느니 조금 기다렸다가 2개를 먹는 아이가 성공한다는 말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계속 전작권을 미군에게 주자는 것은 아니다. 언제가 우리가 받아야 할 권리다. 하지만 아직은 이르다는 것이다. 전작권의 회수는 고려해 봐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내년 8월이면 33년간의 교직생활을 끝내야 한다. 남은 1년 5개월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33년 동안 해온 교직생활을 생각하면 짧지만 지금 새로이 1년 5개월 동안 해외여행을 떠난다거나 유학길에 오른다고 가정하면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마음 먹기 따라서는 큰 업적을 쌓거나 대작을 한 편 완성할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직장 내에서 이제 제일 연장자가 되었다. 나 이외에 나를 더 잘 이해할 사람이 누구인가. 아무도 없다. 모든 선배가 갔던 길이고 모든 후배들이 가야 할 길이지만 내가 처한 시점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을 수는 없다. 정년까지 똑같은 시간이 남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드리는 태도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다른 사람 얘기를 참고는 하되 맹목적으로 받아드리지는 않는다. 나만의 목표를 갖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혹자는 이제 직장생활이 지루할 것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반대로 빨리 서둘러 퇴직 후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의 의견에 귀는 기울이지만 나만의 행동강령을 갖고 나머지 기간 봉직할 것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데 왜 억지로 노년을 자처하고 말년을 염두에 두는가. 직장생활로 내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이 직장에서 퇴직하면 또 다른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 황금 같은 시간을 왜 소홀히 여겨 시간을 낭비하는가. 나는 청소년 시절 끊임없이 자아완성이라는 명제를 붙들고 고심했다. 일기를 쓰고 독서를 하며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시작한 종교생활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세상과 부딪히며 살아오면서 그런 노력이 많이 희석됐는지 모르지만 아직도 유효하다. 스스로 나태하고 세상 속에 나를 띄워버릴 수는 없다. 철학과 문학과 종교에 심취하던 내가 군대를 다녀오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생활을 하면서 어느 하나에도 만족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유감스럽지만 그래도 그것의 일단을 아직도 놓지 못하고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아 온 것에 나는 감사한다. 돈과 권력에 눈이 먼 것이 아니고 명예에 내 본분을 망각한 것도 아니었다. 크게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자신을 성찰하곤 했다. 그리고 아직도 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것이 문학이다. 철학과 종교까지도 문학의 한 영역이 되어 내 인생의 남은 과제가 된 것이다. 그동안 꾸준히 문학을 해왔지만 객관적인 성과가 없으니 이젠 교직의 책임을 놓게 되면 객관적 성과까지 기대하며 좀 더 문학에 심취하겠다는 것이 나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교직에서 은퇴하여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우왕좌왕 하는 선배들의 얘기를 종종 듣는다. 혹자는 퇴직금을 아들 사업자금으로 내줬다가 그만 집마저 잃고 컨테이너에서 생활한다는 얘기가 들려오는가 하면, 퇴직한 어떤 교장선생님은 일당 3만원의 학교지킴이로 일하고 있다는 얘기도 듣는다. 직업의 귀천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입지가 좁아지고 남아도는 시간을 처리하기가 어렵다는 걸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작년에 퇴직한 선배 한 분은 관광안내원 시험을 봤다가 두 번이나 낙방했다며 젊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쉽지 않다면서 푸념을 했다. 나라고 어떤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감에 넘쳐 호기를 부릴 까닭이 없다. 당장 내년에 퇴직하면 아침밥을 먹고 어디로 발걸음을 떼어놓아야 할지 고심해야 한다. 공연히 들녘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가 몇 시간 헤매기도 하고 공원으로 발길을 옮겨 이리저리 상념에 젖어 걷기도 할 것이다. 이것도 당분간이지 10~20년 세월을 할 일 없는 시공에 덩그러니 놓인다면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인생 이모작에 대해 한 저명한 학자의 조언을 들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잊었지만 매우 수긍하며 읽은 기억이다. 노년이 결코 잉여의 시간이 될 수 없다. 젊은 시절과 못지않은 귀중한 시간임이 분명하니 인생의 가장 풍요로운 시기로 가꾸어 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어디 맘만 먹는다고 될 것인가. 올 한 해가 다 지날 무렵쯤엔 또 구체적인 생각을 할 것이다. 수필계의 중진 한 분은 학교에서 정년퇴직 한 다음, 전망 좋은 오피스텔을 하나 얻어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왕성하게 작품을 쓰는가 하면 각종 문회센터 강사로 여전히 바쁘다. 나는 도저히 그 분의 왕성한 활동은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나 그 삶의 태도를 배울 수는 있다. 여유가 생긴다면 나도 오피스텔 하나 얻어서 창작에만 몰두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동안 직장생활 하느라 피지 못한 재주가 드디어 만개하여 세상을 비출지도 모른다. 만개하여 세상을 비추지 못하더라도 끊임없이 자기 성찰, 자아확인으로서의 작품 활동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10대부터의 숙원인 자아완성에 한 걸은 더 다가가고 그것이 나의 작품으로 구현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마치 노후에 발견한 금맥을 지칠 줄 모르고 발굴하는 작업과 같을 것이다. 그리하여 노후에 얻은 자식 같은 작품이 효자노릇이라도 한다면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은 아직 막연한 생각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나는 오로지 나의 스케줄에 따라 일상을 가꿔야 하는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되고 나의 체험과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나는 생활패턴과 철학을 견지하며 그 소중한 시간을 맞을 것이다. 아마 그때 나의 화두는 외국 문화 탐방과 자연 속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 될 것이다. 외국의 풍물을 수시로 익히며 우리나라 자연 속에 푹 파묻혀 열심히 나의 세계를 구현해 갈 것이다.
학교자율화 방안이 발표된 지도 어느덧 1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학교자율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더 오래전 일이다. 후속조치로 교육과정 자율화방안이 마련된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발표 때부터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켰지만 교과부에서는 그 방안을 그대로 일선학교에 내려보냈고 일선학교에서는 그 방안에 따라 여러가지 자율권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학교자율화 방안의 촛점은 학교장 권한강화다. 제왕적 교장의 탄생을 우려했었다. 발표가 지난해 6월 11일에 있었으니, 2개월여가 지나면 1년이 된다. 1년 전과 후를 비교해 보면 어떤 것이 자율화됐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러나실제로 학교에서 교장이 할 수 있는 일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최근 학교교육과정 자율화방안을 얼마나 이행했는지 그 결과를 보고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일부 교과의 집중이수제를 도입했기에 그대로 보고를 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학교장평가에 반영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교장선생님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수고했다는 이야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다행인지 헷갈리긴 했지만 어쨌든 다행스럽다는 생각은 들었다. 전혀 반영하지 않은 학교들의 교장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학교교육과정 자율화방안에 포함되었던 집중이수제, 이것이 이렇게 크게 작용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집중이수제 뿐 아니라, 수업시수 20% 증감에 대한 것도 평가에 반영되는 것이 현실이다. 자율화방안이 타율화방안으로 변한 것이다. 학교자율화 방안은 겉만 자율화일 뿐이다. 교장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교사초빙 권한을 주었지만 모든 학교에서 초빙하니 우수한 교사를 뽑아 온다는 것이 쉽지 않다. 우수한 교사를 뽑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초빙에 응하는 교사의 절대 수가 부족했다.권한을 행사하기 쉽지 않다. 그뿐이 아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서술형평가를 확대한다는 발표를 했다. 이미 수년전에 실시했던 것임에도 재탕을 하고 있다. 실질적인 서술형을 하라고 하지만 학교사정이 어디 그렇게 간단한가. 말이 서술형이지 서술형을 그렇게 확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부적절하다. 교사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제로 서술형평가를 하라고 한 후 감사를 교육청에서 한다. 그런 후에 학생들과 학부모가 모두 이해하고 인정한 평가기준임에도문제를 삼아서 징계를 내리는 것이 현실이다. 채점이 어려운 것보다 후일이 더 염려스럽기 때문에 서술형 평가에 교사들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서술형평가 확대가 제대로 됐는지를 학교평가와 학교장평가에 반영한다고 한다. 자율은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타율적인 지시에 따라야 하는 것이 학교의 현실이다. 일일이 다 열거하지 못할만큼 학교는 경직되어 있다. 학교장의 권한이 있는 것들이 있긴 있다. 교육청에서 간섭하기 곤란한, 즉 간섭하다가 잘못하면 교육청에서 혼쭐이 날 것 같은 것은자율에 맡기고 있다. 한 마디로 해결이 어려운 것들은 학교의 몫이다. 이런 것이 어떻게 학교자율화라고 할 수 있는가. 교장에게 전권을 주는 것도 문제이지만 교장을 자꾸 옥죄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앞서 언급한 서술형평가에 대해서 교육청에서는 친절하게 문답 형식으로 해설을 덧붙였다. 그러나 그 해설은 교육청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학교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러면서 학교평가와 학교장평가에 반영하겠다고 으름짱을 놓고 있다. 어떻게 이렇듯 사정을 모르는 것일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실질적인 학교자율화를 원한다면 평가한다고 몰아붙이지 말고 정말로 학교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야 한다. 말뿐인 학교자율화 방안은 교육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확실하고 대폭적인 자율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2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무려 4시간 동안 면접관으로 활동했다. 경기도 차세대위원을 선발하는 것이다. 이 위원회는 16개 시도에 모두 구성되어 있는데 타시도는 명칭이 '청소년참여위원회'다. 위원회는 청소년들이 청소년 정책 및 사업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게 하여 청소년 시책의 실효성 제고 및 청소년 권익증진을 도모하기 위해 설치 운영되고 있다. 올해 구성되는 위원회가 11기이니 벌써 10년의 역사다. 주요 활동 내용을 보면 청소년 정책 및 사업에 대한 의견 제시, 자문 및 평가, 청소년 관련 프로그램 토론회 캠페인 등 개최 및 참여, 경기도 차세대위원회 자체 기획·추진 사업, 청소년특별회의 지역회의 활동 등이다. 이 위원회 정원은 25명으로경쟁도 치열해 229명이 원서를 제출, 서류 심사를 거친 50명이최종 면접을 치뤘다.고등학생이 대부분이고 대학생, 휴학생, 다문화 학생, 장애인 등도 있고 경기도내 각시군에서 골고루 응모했다. 면접심사 기준은 정책 제안의 이해도 30점, 활동 의지 40점, 성실성과 책임감 15점, 지원 동기 15점으로필자의 채점 결과는 모두 90점 이상이었다. 이들의 능력과 수준은 무척이나 높았다. 자기 소개와 지원 동기를 발표하고 청소년 정책을 제안하는데 참신하고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가 많았고 그 분야에 대하여 깊게 연구한 흔적이 엿보였다. 현재 청소년이 처해 있는 문제점을 파헤치고 해결책까지 제시하였다. 예컨대 체력 저하를 예방하는 0교시 체육수업, 졸업생과 재학생의 1:1 멘토링, 대학 학과 인증제, 청소년 상설 문화공간 구성, 청소년 동아리 활성화, 청소년 자원 봉사 자율 관리, 청소년 관현악단 창설, 다문화 청소년 사회적응 정책, 청소년 비만 해결 방안, 청소년 쉼터 발전 방안, 학업 중단학생 도와주기, 청소년 인터넷 중독 해결방안, 학교폭력 예방방안, 입학사정관제 개선방안, 직업체험관 설치, 조손가정 문제점, 미혼모의 문제점, 영어교육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등 영역과 주제가 다양하다. 면접에 응한 학생들의 자세가 진지하다. 자기 주장이 뚜렷하고 논리적 근거를 확실히 제시한다. 자기가 제안한 정책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숙지하고 있다. 조별 면접에 응한 타인의 발언을 경청한다. 면접관들의 돌발적인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순발력 있게 대처한다. 이게 바로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이들은 학교 선생님들의 추천도 있었지만 대개 본인들이 자원한 것이다. 본인이 소중한 경험을 쌓기 위해 도전한 것이라고 본다. 최종 합격자들은 앞으로 1년간 활동하게 되는데 이들의 눈부신 활동이 기대가 된다. 그런 능력이 있고 역량을 갖춘 청소년들이다. 이와 같은 청소년들이 건재하고 있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 오늘 청소년들의 건강한 모습을 보았다.
행복도시 문제로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충남 연기군. 이곳의 전동면 청송리에 백제 때 산성인 운주산성이 있다. 운주산성은 해발 460m의 운주산 정상부에 축조되어 있는 포곡식 산성으로 길이가 3㎞나 될 만큼 규모가 크고, 백제부흥운동의 최후 구국항쟁지로 알려져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산성이다. 고산산성으로 부르다 늘 구름이 끼어있어 운주산성으로 이름 지었다는데 지난 21일은 날씨가 맑고 바닷물에 물감을 풀어놓은 듯 파란 하늘이 아름다웠다. 소로 길이 정상까지 이어져 산책하기 좋고, 승용차를 이용해 중턱의 광장까지 가면 운주산 정상이 가깝다. 정상에 오르면 '백제의 얼 상징탑'이 탐방객을 반가이 맞이한다. 이곳에서의 조망이 좋아 맑은 날에는 독립기념관, 천안시, 청주시가 보인다. 성곽의 형태를 제대로 보전하고 있는 곳이 일부에 지나지 않아 아쉽다. 매년 백제멸망기의 의자왕과 부흥기의 풍왕, 백제부흥운동을 하다 죽은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고산제를 지내는 고산사는 운주산성으로 가는 산길에서 만난다. 주차장 아래편에 쉼터도 조성되어 있다. 운주산성을 돌아보고 쌍류삼거리, 용암삼거리를 지나 조치원방향으로 604번 지방도로에 들어서면 길옆으로 군립공원인 고복저수지가 펼쳐진다. 어류가 풍부해 휴일이면 전국에서 많은 낚시꾼들이 몰려드는데 저수지 한편에 야외조각공원이 있고, 중간에 연기향약을 알리는 표석 옆에서 경치가 아름다운 '민락정' 정자가 저수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저수지의 물길을 따라 달려가면 가까운 곳에 돼지갈비로 유명한 산장가든이 있다. 식당이 복숭아 과수원 옆에 있어 복사꽃 피는 계절에는 가면 더 아름다운 곳이다. 시골의 식당이지만 참숯으로 구워 내오는 갈비를 먹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도 재미있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명함과 글이 입구에서 눈길을 끈다. 고기와 파절임을 상추로 싸먹는 맛이 일미인데 같이 나오는 동치미와 동치미국수가 맛있다.
일반계 고교에서 8년이지나 C상고(현 일반계고교 전환)로 발령이 났다. 과목별 인원 조정 착오로 미술교사 2명이 됐다.내게 교생실습지도를받은 적 있는 젊은이가 배정돼 와서 자신은 수업시수가 많아도 미술과목만 맡겠다기에나머지 미술 4시간 한문 10시간을 가르치는 행운을 딱 1년 누렸다.나의 전공인 미술은 학생의 개성적 창의적 발상과 수행학습이 절대적이지만 한문은 읽고 쓰고 뜻을 밝혀 문장에 적용하는 과목 아닌가. 오래 전에 국어 영어를 가르친 경험도 있고 해서 교과서 중심의 전통적 교수 학습전개 방법의 수업은 쉬웠다. 교정이 워낙 넓고 야구장까지 갖춘 학교라 처음으로 바깥에서 풍경화 실기수업을 감행했다.이곳저곳 맘에 드는 구도를 찾아 돌아다녀야 하는 수업이라 교실에서처럼 학생들을 관리하기가 더 어려웠고 미술실수업은 청소하기가 힘들었다. 1988년 마흔 살에 이룬방송통신대학 합격은 또 한 번의 인생 새 출발이었다. 시험을 치르기 위해 학습관에 가다가 한 번은 고등학교 제자를 만났다. 대학 4년 졸업 후 법학과 3년에 편입했단다. 전공은 달라도 나보다 선배 학년이었다. 늘 동생 같고 조카 같은 동기생들과 스터디클럽을 만들어 서로 정보를 공유했고, 녹음기가 탑재된 라디오는 매일 출근할 때마다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틈만 나면 라디오 강의를 듣고 녹음테이프를 경청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과정은 힘들었고, 특히외국어 과목은영어도 불어도모두 어렵고힘에 벅찬 공부였다. 실업계고교에서 처음 담임을 맡고 있는데 17년 전 제자 편지를 받았다. 너무나 정갈하게 써내려간 사연, 가난한 가정에서 어렵게 공부할 때가르친 은혜 감사하다면서 힘들게 나를 찾았고 그래서 말할 수 없이 반갑다며 보내온 제자의 글이 너무나 감동적이라 모범적인 미담으로 학생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답장을 했더니선생님 덕분에 공납금을 감면받았던 일에감사하며 지금 공무원으로 열심히 생활하고 있고 방송통신대학 공부를 한다는 것, 꼭 한 번 찾아 뵙겠다는 얘기, 자가용도 한 대 장만했다는 안부와 함께 조그만 선물도 보내왔다.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성의가 고맙다는 생각에 내게도 공부하다 받은 도서상품권이 있다면서 그에게 보냈다. 그 제자보다는 조금 일찍 공부한 만학도 선배로서 더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으로 보내는 선물. 지금도 그로부터 받은 편지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한 번은 특별히 말썽많은학생을 맡게 됐다. 매일 학교까지 어머니가 승용차로 태워줘도 차가 사라지면 도망을 가거나 중간에 수업 빼먹기를 밥 먹듯 하던 그를 졸업시키기까지 우여곡절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남의 오토바이 잘못 타다 영창살이할 학생을 담임소견서로 구제한 일, 장난질에 분통을 못 참고 흡연하다 졸도한 학생 입원시키기, 시험 답안지 보여주다 0점 처리될 학생을 훈육했던 일 등 힘든 일도 있었지만, 교무실에 들어올 때마다 정중히 인사하고 모든 선생님께 무엇이든 질문하던 송00군은 있을 수 없는 학생이다. 92년부터 다시 인문계 K여고에서 근무하게 됐다. 집의 아이들도 고등학생이라 첫째는 졸업 앞두고 1년을, 둘째는 3년 동안 밤낮 없이 방학에도 운전기사 노릇을 했다. 새벽6시면 아침을 먹고 승용차로 0교시 수업하는 아들을 학교에 먼저 등교시킨 다음 내친 김에 출근을 한다. 동과 서로 반대쪽에 위치해 보충수업도 없으면서 매일 교감선생님 다음 2등으로 교문 안에 들어섰다. 미술실 앞에서는늘 소아마비 앓은 학생의 학부모를 볼 수 있었다. 부모가 함께 학생을 승합차로 등교시키는 등 정말 헌신적이었다. 수업 중에는 학생들이 번갈아 돌보고 하교 때에는 어김없이 부모님직접 데려가던 지금 그 학생 현황이 궁금하기만 하다. 고생하신 그 학부모님 만수무강하시길 빌어 본다. 미술실에서 한 번은 학생 출석을 점검하던 중 빠진 학생이 있어교실을 찾아 확인했더니 빈 교실에 학생이 뭘 긁적이며 앉아있다. 수업시간에 무슨 일이냐고 물으며 쥐고 있던 낙서 쪽지를 빼앗아 보았다.얼른 훑어본 바로는 전날 남자친구와 무슨 불장난? 아니면 요즘 말하는 성폭행이나 불미스런 일을 당하고 그 회한이나 자기변명을 갈겨 쓴 게 틀림없다는 직감이 들었지만 강제로 쪽지를 압수하지도 신고하지도 않고 학년 말에 담임교사에게 슬쩍 알려준 적 있다. 청소년 특히 여학생 지도에는 가정교육 상 많은 허점이 있겠다고 실감한 순간이었다. 작품 스타일이 다른 후배 교사와 수업도 생활도 같이 하던 어느 날, 지금껏 경험하지 않았던 추상 작품 제작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동료 교사의 작업과정에서 힌트를 얻고 나만의 독특한 질감과 화면구성을 시도했다. 아크릴과 염색물감, 에나멜페인트를 이용하고 화면도 정식 캔버스 외에 합판이나 천막천, 하드보드, 스티로폼 등 다양하게 나름대로의재료와 기법으로 색다른 분야의 작품을 탐구하고 제작하는출발점이었다. 한편 독학의 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대구경북 불어불문과 입학정원 120명. 1년에 절반씩 휴학 또는 포기. 졸업년도엔 편입생까지 합쳐 7~8명에 불과했다. 입학동기 중 두 번째로 5년제 방송통신대학을 6년 만에 졸업했다고 하니 동료교사가 내친 김에 대학원 공부도권유했지만 그때는 무조건 쉬고 싶었다. 성적표에는 국어와 불작문 B+, 나머지는 C+도 있고 D0까지 있었다. 1994~1995년에는 대구시교육청 인문계고교 교육과정 연구개발 위원으로 위촉돼 2년간 교육과정 및 교과서 개편에 대한 계획수립과 방향설정에 동참하는 산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고생 끝에 낙인가. 지난 6년 농촌학교의 추억과 겸무 1년의 고행을 뒤로하고 대구명문 D여고에 발령을 받았다. 지난해 여고 수업경험은 보약이 된 셈이다. 학교가 시내 한복판에 자리했던 시절 30여분을 걸어서 출근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일도 짐처럼 실려서 가는 일도 마음 편치 않았다. 수업 20시간, 담임을 맡지 않았으나 3주 이상 임시담임 한 적은 있었다. 일생 처음으로 장만한 내 집 근처 범어동 교사로 이전한 후 한동안은 환경정리가 벅찬 일이었다. 수십 년 학교 복도와 계단 벽면을 장식했던 작가나 졸업생들의 미술 서예작품 액자들을 그대로 옮겨와 신축건물 4층 전체의 빈 공간에 배치하고 진열하여 사람 사는 살아있는 공간으로 단장하는 일은 노동이요 부역이나 다름없었다. 유리액자 서예이거나 작품 규격이 웬만하면 100호, 200호에 해당하는 그림들이라 고용직 직원 외 미술교사는 나 혼자뿐이어서 높이와 좌우 여백에 맞도록 위치를 정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81학년도 고입연합고사 출제위원으로 선발됐다.과목마다 가장 훌륭하신 여러 선배 교사 분들 가까이에서 입시업무를 담당하는 경험을 쌓았다.대구은행 저축포스터공모전 소식을 듣고 수업시간 중 가장 색채 감각이 뛰어나고 주어진 과제를 충분히 소화해 낼 학생을 선발 지도한 후 출품해 실업계 고교생들이 판치던 수상자 명단에 은상 수상(상금 18만원)학생을 탄생시킨 일은 디자인 지도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준 사건이었다. 학생 선정에서 나의 판단이 적중했고 물론 아이디어와 중간의 여러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요령과 기법으로 가르치고 합작한 결과 내게도 지도교사상이란 상패가 왔다. 예나 지금이나 대학입시 준비에 신경썼지 나 이외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은 일이 아닌가 싶다. 정서, 예술교육에 관심이 많던 교장선생님 덕분에 자습시간 오르간 반주에 맞춰 ‘다함께 노래 부르기’는 아침마다 음악적 분위기로 감싸줬다. 고등학생 축제의 장이자 발표행사의 꽃이었던 미술전시회는 시내 중심가의 담벼락 거리 전시회가 특징이었는데, 신축 이전 후에는 도서관 천정에 철사를 연결해 전시하는 방법으로 전개됐다. 학생들은 미술학원에서 배우는 학생이 더러 있어 전시회작품의 수준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그 후로도 교육회관 전시실을 빌려 전시하는 등 다른 학교로 전근을 하더라도 20년 고교근무기간 내내 미술전시는 빼놓지 않았다.학생실기지도와 개최는 방송제, 시화전, 무용발표회와 함께 연중행사였고 1980~90년대는 다른 학교 학생들의 관람으로 미술전시장은 북적거렸다. 그 당시 미술실은 준비실, 캐비넷, 석고상과 학급별 화집정리 공간만 설치됐지 자료를 진열하고 보여줄 진열장 하나 없었다. 바가지공예, 모자이크, 색채구성 등 여고생 취향에 어울리면서 평면과 입체적 실기지도를 다양하게 펼치는데 목표를 두고 수업했다. 4년 후 남고인 D고교에 옮겨온 뒤에도학생미술전시회는 계속 미술과 중심으로치러야 하는 가장 큰 연중행사였는데미술전시회에 사용할 전시판 100여개를 교장선생님이 틈틈이 고용원과 함께 합판을 자르고 쇠파이프를 용접하고 잘라 직접 만드시던 광경은 지금도 생생한 기억이다.나는 똑똑한 남학생들이탁월한 미적자질 없이도 잘할 수 있겠다 싶어 학급별 대규모 합동작품을 제작하게 했는데 전시효과가 대단했다. 표현재료로는 우유팩이나 단추, 병두껑, 음료수 캔, 젓가락 등 재활용이 강조되는 버려지는 물건들을 이용한 벽화나 기념탑 추상형 구조물 등이었다.옥상계단 미술실이 작업공간이었는데 학원에 다니지 않는 가난한 학생들이 밤늦게까지 연구하고 창조적 개성적 작품을 만들며 선후배의 끈끈한 우정을 쌓아가는 아지트여서 수시로 활동 상황을 돌아보고 지도 감독해야 했다. 이곳 인문계고교에서 딱 한번학급담임을 맡았는데밤늦게 남아 자습 감독도 하고 많은 학부모와 상담을 펼치기도 했다. 담당 학급에 대한 열정의 결과인지 우연인지는 모르나 3년 후 S대학 합격자 3명 중 2명이 내 반 출신이었는데 지금 그들의 인생역정은 알 수 없지만지금도 만나면 단번에 알 것 같다. 담당학급 24, 수업시수 24시간으로 똑같은 내용을 최소 열 두 번씩 전달해야만 했고 기말고사 답안지는 방학 때 며칠을 두고 손으로 채점해야 했다. 또 힘겨웠던 추억은 3명의 Y대 교생을 지도하고 있는 도중에 K대 13명 교생을 담당하게 된 일. 입시경쟁에 고교마다 교생을 받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바람에 낙동강 오리알이 된 교생들을 본교 교장선생님이 모두 받기로 한 것. 강당은 한 달 이상 교생으로 넘쳐나, 미술과 16명 교생수업을 봐주고 교생일지를 검토하고 담임과 전공교사로서 지도의견을 적는 일은 장시간을 요하는 일이었다. 교장선생님이 바뀌고 한 번은 미술교사인 내게 한 마디 양해 없이 미술실 한쪽이 장서들로 채워져 수업이 불가능하도록 하여 불만을 터뜨린 일, 교무실 책상이 모자라 미술실 교사 테이블을 잠시 빌려주면 새 제품이 도착하는 즉시 갚아주겠다는 약속을 어긴 채 감감 소식이던 교무주임께 항의한 일, 학교 전체 환경구성물 작성에 동원된 교사들 중 솜씨가 너무 차이 난다면서 내 솜씨로 통일하는 게 낫겠다는 뜻으로 말한 선배교사에게 성질을 내기도 한 것 모두 지나간 추억이다. 이 학교는 2000년대에도 학교연혁지를 보냈는데 80년대 교우지 표지화인 나의 작품이 학생작품으로 잘못 소개돼수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 전에 누군가 잘못 정리해 놓은 것 그대로 참고하다보니 그랬다는 변명이었지만 전국의 학교, 도서관에 소장될 책자에 편집이 허술했던 데 대한 개인적 불쾌감과 서운함은 지금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 시절 개인적으로는 과거 남의땅을 침범해 지은 불법건축주 때문에본의아니게 울며겨자먹기로 집을 한 채 더 사게 되었다. 집의 가치를 높이려 퇴근 후 구멍만한 가게를 교대로 운영하며 정신없이 살았다. 종종 고기반찬 대신 아이들에게 닭발을 요리해 먹이는 등지출을 줄였으며 넓은 집은 세를 놓고 좁은 공간에서 사느라상자 속에 묶여 쌓아둔 책들은곰팡이가 필 정도였다. 봉급은 저축하고 구멍가게 수입으로 살 정도로 살인적인 근검절약한 생활 그자체가 너무나 대견하고 잊을 수 없기에 가계부체험담공모에부부가 같이 협의하고여러번 고쳐 작성한 글이 아내 이름으로 장려상에 당선된 일이 있다. 방송국 출연교섭이 왔지만 아내는 차려입을 옷이 마땅찮다며 사양했고지방신문 인터뷰 기사로 남아 있다.
인천주안북초등학교(교장 이정희)에서는 전 교사가 계발활동 지도에 참여함으로써 학생들의 다양한 흥미와 요구에 부응할 수 있게 함으로서 학생은 물론 학부모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4~6학년을 통합, 25부서로 조직된 계발활동부서는 3월 25일에 부서별 활동이 시작되었으며 격주로 실시하는데 영어회화, 중국어회화를 비롯하여 독서 논술부, 보드게임부, 과학 발명부, 만화그리기부 등 학습, 놀이, 소질계발, 취미 활동을 망라하고 있다. 주안북초등학교 교사들의 자기 연찬에 대한 노력이 계발활동 지도로 나타남으로써 학생들의 흥미와 특기, 소질을 살리고 미래지향적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새해 들어 주변에서 좋은 소식이 들린다. 나이가 비슷한 친구 몇 명이 교감 연수 대상자가 됐다. 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이사 자리에 올랐다. 가까운 친척 아들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 합격했다고 한다. 작년 실패했을 때는 이야기도 못 붙였는데 엊그제 모임에서는 목소리가 쩌렁쩌렁 했다. 직장에 또래 선생님이 상가 건물을 하나 샀다는 소문은 풍선을 타고 떠다녔다. 모 선생님의 아들이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소문은 작년 겨울에 시작되었는데 아직도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부럽다. 모두 내가 이루고 싶은 성과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내 나이에 이르면 누구나 승진과 자식 걱정, 돈 버는 것에 마음을 둔다. 그런데 요즘 주변의 좋은 소식을 접하면서 갑자기 마음이 뒤틀렸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드니 내가 그 짝이 된 듯하다. 그들과 나를 저울에 올려놓고 있자니 자꾸만 처지는 신세다. 저들은 저렇게 잘 되는데 나는 왜 잘 되는 것이 없을까.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진다. 내 딴에 같이 달려왔지만 그들만 높은 자리에 섰다는 자괴감도 인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하더니 그들의 떡만 크게 보이는 착시 현상인가. 엊그제도 친구 놈 집에 다녀왔다. 부부 동반 모임이라고 했다. 집들이를 한다고 오래 전부터 날짜를 주었다. 차를 타고 갔는데, 친구들도 오랜만에 만나서 좋았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아내와 무거운 마음에 뒤척였다. 45평 아파트의 넓은 평수가 마음을 공허하게 했고, 고급 가구의 화려함이 마음을 헝클어뜨렸다. 친구 부부는 맞벌이로 고생도 많이 했다. 성실하게 노력한 결과니 축하도 해 주고 함께 기뻐했다. 주변 사람들의 좋은 일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성실하게 노력해온 삶의 결과이다. 내가 부러워하되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마음에는 자존심이 무성해지고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존심이 이제는 패배감으로 일어나 나를 억누르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미움의 감정도 싹트고 있다. 힘든 것도 없는데 내가 힘들어졌다. 의욕도 없고 즐거운 일도 없다. 직장에서는 웃음을 잃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헌 옷 구겨지듯이 쓰러졌다. 그림자조차 꾸부정하게 드러누웠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휘적거리면서 법정 스님이 남긴 무소유 화두를 만났다. 물건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라고 한 말씀이 가슴을 울린다. 무엇인가 갖는 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내가 남의 떡 크기에 집작하는 것도 다른 바가 없다. 이것도 결국은 탐욕에 얽혀 있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니 인생이 참 힘들다. 나이를 먹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웬만한 일은 그럭저럭 햇수가 지나면 이골이 나고 전문가가 되는데, 삶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 어렵게 한다. 나이를 먹어도 가지고 싶은 것만 많고, 남의 것과 다른 나의 모습에 슬퍼한다.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돈을 많이 버는 것,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도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보다 더 만족한 자기를 찾는 것이다. 가치 있는 자기를 찾는 것이 인생의 의미 있는 길이다. 남에게 휘말려 살아가는 짓은 불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랬지만, 우리 주변에는 남의 흉내만 내며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삶은 일생에 단 한번이다. 한번뿐인 인생을 남에게 얽매여 산다면 너무 억울하고 부질없는 짓이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도 평범한 진리를 가까이에 두고 멀리에서 생활의 보람과 삶의 가치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남의 떡이 큰 만큼 혹시 내 떡도 크지는 않을까. 친구 놈이 내 등에 대고 ‘난 네 와이프가 집에 노는 것이 더 부럽다’라고 한 것처럼, 내가 남의 떡을 부러워하듯 분명히 내 떡도 크게 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비록 자기의 작은 행복이라도 그것이 삶의 아름다운 열매가 된다. 나도 열심히 살았다면 많이 성취하지 못했어도 값진 것이다. 삶의 행복은 자기가 심은 씨앗의 열매이다. 우리의 삶이 때때로 비틀거리고 만족하지 못할 때도 그 아픔을 치유하는 순간은 아름다운 눈물이 흐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아픔까지도 사랑해야 하는 운명을 지고 살아간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이 아닐까.
2010년 3월 25일자 한국교육신문에 폐교위기에 몰렸다가 다시 부활한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의 작은 학교인 '보개초등학교'기사가 소개된 적이 있다. 부활이라는 용어가 농촌학교 교육을 살릴수 있는 가능성을 준 기사였다고 본다. 이 기사와 관련,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발간한 농촌학교실태와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폐교되는 학교가 어떻게 살아났는가를 정리하고 있다. 그 몇가지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전북 완주군 이성초등학교는 2007년 학생 수가 25명에 불과해 폐교 위기에 놓여 있던 학교. 2009년엔 125명으로 늘어나 지역사회가 활력을 찾고 있다. 이는 학교장이 동문회를 부활시켜 학교 살리기에 동문이 나서게 하고, 주 5일제 수업을 통한 다양한 특기적성 교육과 지역주민을 위한 평생교육 등을 통해 ‘찾아오는 학교’를 만들어 지역주민의 참여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강원도 평창군 면온초등학교는 2005년 21명의 학생만 남아 폐교 직전이었지만 2006년부터 교장이 학교 살리기에 나서서 2009년 현재 157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며, 학부모가 교사로 참여하고 지역자원을 활용한 수업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경기 광주시 남한산초등학교도 2000년 폐교가 결정된 학교였는데 신임 교장이 부임하여 지역사회유지·시민단체와 힘을 모아 학교 활성화에 힘을 모아 2009년 현재 151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적극적인 학부모의 참여의식이 학교 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다양한 프로그램도 큰 몫을 했다. 이들 학교의 공통점은 학교 혁신을 주도한 교장의 리더십, 리더십을 따라주는 열정 있는 교사, 학교 구성원이 만들어낸 농촌형 프로그램, 지역주민의 활발한 학교 운영 참여에 요인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인구의 감소에 따라 1980년대부터 시작된 농촌학교 통폐합에 의하여 그동안 2500여개교의 농촌학교가 통폐합됐다. 앞으로도 이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며 앞으로 1면 1초등학교라는 원칙도 지켜지기가 힘들지도 모른다. 이러한 때 농촌 학교 학생 수가 증가하는 학교가 있다는 것은 매우 반갑다. 농촌주민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자녀교육이며 그것은 자녀를 고등학교때까지 부모가 데리고 공부하는 데서 찾을수 있다고 본다. 이번에 소개한 것은 주로 초등학교인데 중요한 것은 농촌 고등학교 학생의 학력이 향상되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을 하는 것이다. 그로므로 이번 농촌초등학교 부활사례를 계기로 농촌 학교 전반에 걸쳐 부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하여 농촌근무학교 관리자,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