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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중학교 교원, 학생, 학부모가 직접 만들어 배달까지 11월 11일(목) 서호중학교 가사실에서는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사랑의 김장 김치 담그기 및 배달 행사’가 진행되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봉사 희망자로 구성된 교사 17명, 학생 17명, 학부모 3명이 150포기의 김장김치를 담갔는데, 한 가정에 배추 김치 10~11포기 씩 담긴 박스 2개, 총 28박스가 당일 저녁 각 가정에 배달되었다. 수업 시간에는 학부모님과 수업이 비는 선생님들이 번갈아가며 무채를 썰어 양념을 버무리고, 수업이 끝나는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교사, 학생, 학부모가 7모둠으로 편성되어 본격적으로 김장 김치를 만들었다. (사진 설명)"김치만 줄 수 없습니다" 몇 분 선생님이 뜻을 모아 라면과 김을 준비하였다. 이날 김장 지원 학생 중 2명은 직접 일손을 돕고 싶다고 의사를 밝히고 참가하여 다른 어느 봉사자보다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였고, 사제가 한 모둠에서 배추에 양념을 버무리면서 교실 안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분위기를 나누며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학부모 2명은 손수 자가용으로 14명의 학생들 각 가정에 김장 김치를 배달하겠다고 하여 밤 11시까지 봉사하였으며, 교사 5명은 김과 라면 14박스를 김장 지원 학생들에게 대신 전달해 달라고 하여 서호중학교를 더욱 훈훈하게 만들었다. 서호중학교(교장 이영관)는 이미 1학기 초부터 지금까지 저소득층 부자(父子)가정 학생 3명에게 매주 화요일마다 학부모님 2명이 밑반찬을 만들어 가정까지 배달해 주는 반찬봉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번에는 이 3명의 학생을 포함하여 조손가정, 편부가정, 기초수급대상자, 중식지원대상자 중 담임교사의 추천을 받은 희망자 14명에게 김장 김치를 지원하게 되었다. 이 학교 김 모 교사는 “연로하신 할머니께서 혼자 손주 뒷바라지 하시는 데 어려움이 많으실 것 같은데, 이렇게 학교에서 김장 김치가 지원이 되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담임으로서 기쁘다”고 전했다. 서호중학교는 3월부터 교육자원봉사제 시범학교, 경기도청소년활동진흥센터 협력학교로 활동하고 있으며 ‘사랑의 김장 나누기’ 행사는 봉사활동 지원금과 학교 자체 예산을 합하여 총 135만원 가량 소요되었다. 기사 작성 : 박소영 봉사학습부장
서울시교육청이 체벌을 대체해 만든 학생생활지도 매뉴얼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일부터 체벌을 전면금지한 서울시교육청은 학생의 문제행동 유형에 따른 생활지도 매뉴얼을 마련해 14일 발표했다. 매뉴얼에는 지각, 학습태도 불량, 음주 및 흡연 후 등교 등 문제행동을 18가지로 분류하고 이에 대한 지도방법을 4~5가지씩 제시하고 있다. 학습태도가 불량한 학생에게는 불필요한 물건을 가방에 넣게 하고, 선생님 입장에서 하고 싶은 말을 써보게 한다거나 지각을 하는 학생에게는 일과시작 전 노래부르기, 요가 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지각원인을 파악해 예방토록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이같은 대응책이 학교 현장에 적합하지 않은 방식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문제행동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보다는 학생이 잘못을 이해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대부분인데다 학생이 거부할 경우 이를 강제할 수 없고 별다른 대안은 없이 벌점제나 성찰교실, 학부모 상담으로 처리토록 돼 있어서다. 서울 노원구 소재 중학교 박모 교사는 "매뉴얼을 보고 대부분 선생님들이 그냥 웃고 말죠. 교사들이 이미 매뉴얼에 나온방법처럼 대화로해도효과가 없어 체벌로 이어졌던 것인데 학교 상황을 잘 모르는 분들이 이상적으로 마련한 방안이 아닌가 싶다"며 "상벌점제를 생활기록부에 기록되게 하는 등 실질적으로 통제가 가능한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매뉴얼 중 변형된 교복을 착용할 경우 재활용 교복을 제공하거나 치맛단을 늘릴 옷감을 제공한다거나 염색이나 파마를 하면 두피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이해시키는 방안, 학습태도가 불량한 학생은 학생동의를 얻어 수업 동영상을 촬영해 학생과 학부모에게 보여주는방법 등은 황당하고 실효성 없는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같은 지적이 이어지자 시교육청은 "교사와 학생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 매뉴얼을 보급하겠다"며 매뉴얼 보급을 잠정 중단했다. 이에 따라 한국교총은 “시교육청은 체벌 전면금지에 따른 학교 현장의 문제를 인정하고 학교별, 학년별, 유형별에 따라 학교가 학칙을 정해 실질적으로 학생생활지도를 할 수 있도록 학교에 권한을 넘겨야 한다”며 “수업을 방해하는 잘못을 했을 때는 즉각적이고 실효적인 벌을 교칙을 통해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기교총(회장 정영규)는 15일 도교육청의 ‘교원 행정업무 경감 2단계 추진계획’에 대해 “학교 현실을 도외시한 현실성없는 탁상행정”이라며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도교육청이 14일 발표한 ‘교원 행정업무경감 2단계 추진계획’에 따르면 교장실과 교무실(교무행정), 행정실(일반행정)으로 나눠진 현행 학교 행정업무 조직이 교육지원실로 통합된다. 교육청은 2011년부터 도내 100개 학교에서 시범운영한 뒤 2012년부터는 확대할 예정이다. 경기교총은 이와 관련 논평을 내고 “교원들의 행정업무 과중의 원인을 마치 교장실, 교무실, 행정실이 물리적․공간적으로 분리돼 있고 교육지원실이 미비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편협성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더이상 전시행정으로 인해 교육현장이 혼란과 갈등을 겪지 않도록, 교육지원실 설치계획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경기교총은 또 “현장 교원들의 고충을 경청해 근본해결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역설하던 교육청의 방안이 이 정도수준이라는 점에서 실망스럽다”며 “교원잡무 경감의 현실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자 한다면 ▲교무행정 전담인력 즉각 배치 ▲명확한 업무담당부서 지침 내지 내규 시행 ▲학교현장 지원 중심의 교육지원청 운영 등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반발이 거세지자 경기도교육청은 이날 오후 해명자료를 통해 “교육지원실 시범 운영은 학교행정업무의 효율적 추진으로 교사가 수업과 학생지도에 전념하기 위한 방안으로 교장실을 강제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교무행정과 일반행정으로 양분된 현재의 학교행정업무 공간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청은 또 “교육지원실 운영 형태는 학교 실정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며 “교장실을 별도로 하고 교무실과 행정실을 동일공간에 배치하는 방법 등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학교(서울 대방중학교, 교장 오낙현) 3학년 학생 중에 강○○와 이○○가 있다. 지난해에는 올해처럼 직접 수업을 담당하지는 않았지만 방과후학교 수업에서 이 학생들을 만나서 지도했다. 이 학생들이 처음에 방과후 학교 수강을 할때는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부모들에게 등을 떠밀려 방과후 학교에 참여했다. 물론 학원이나 기타 사교육을 받지 않아왔던 학생들로 학교를 마치면 시간이 많이 남았던 학생들이었다. 그렇게 참여를 시작했던 방과후 학교, 1년 반정도 방과후학교 수강을 해왔다. 처음에는 중간정도의 성적이었다. 물론 다른 과목까지 확인을 하지 못했지만 필자가 담당한 과목은 그랬다. 지금은 이들 학생의 성적이 상위권이다. 문제해결력도 많이 뛰어 올랐다. 물론 방과후 학교에 그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고 참여했다. 학교에서 성적향상 학생에게 수여되는 장학금도 받았다. 앞으로도 방과후 학교에 계속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기에 중3에서 개설가능한 고등학교 예비학습을 시작했다. 앞으로 이들 학생들의 발전이 기대된다. 이 학생들이 처음부터 방과후 학교에 적극적이지는 않았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수업이 끝난 후 야간에 다시 수업을 듣는다는 것에 대해 상당히 적응하기 어려웠던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냥 수업을 열심히 듣고 복습과 예습을 할 수 있는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학생들은 최소한 방과후 학교에 참여하면서 성공을 거둔 경우이다. 처음에 참여하게 된 것은 부모님의 반 강제적 권유였지만 그 이후부터는 스스로 참여를 결정하고 수강과목도 스스로 결정했다고 한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기 위한 방안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앞으로도 이 학생들은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이렇다. 이 학생들은 수업시간만큼은 정말로 집중한다. 정규수업시간도 마찬가지이다. 수업중에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끝까지 해결하기 위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방과후 수업에 참여하는 태도도 2학년때 처음 참여했을 때와는 비교가 안된다. 본인들 스스로도 '선생님 저 많이 발전했죠?'라고 이야기를 한다. 아마도 스스로 변한 것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방과후 수업에 참여한 것이 자신들에게 정말 많은 발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거의 모든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 이유를 필자는 이렇게 본다. 학생들의 자발적 참여가 아니라 참여비율을 높이기 위해 학생들을 모았기 때문이다. 억지로 참여한 학생들은 도리어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더 많다. 즉 나머지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한다는 이야기이다. 어떤 학생들은 학원에서 수업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참여했는데, 방과후 학교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참여비율 확대에만 매달린 결과로 보인다. 참여비율을 학교별로 비교하면서 경쟁을 시키기 때문에 나타나는 부작용인 것이다. 수업시간에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 정도라면 방과후학교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해당학생이나 나머지 학생들을 위해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든다. 이제는 방과후 학교 운영방식을 바꿔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의 자발적 참여를 우선시해야 한다. 지금까지 양적인 팽창에 매달렸다면 앞으로는 질적인 팽창을 가져오도록 하자는 이야기이다. 스스로 참여하여 공부할 자세가 되어있다면 발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억지로 참여한 학생들과 스스로 참여한 학생들 사이에서 과연 어느쪽이 더 효과적일 것인가는 다시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방과후학교 운영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직에 첫 발을 내딛은 지 벌써 십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아직 서투른 점이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보다 나은 학교 생활과 교육을 위해 몇 가지 생각해 봤으면 한다. 물론 사회적 연륜이나 교직 경력으로 봤을 때 필자와는 어떤 식으로든 비교할 수 없는 만큼의 경륜을 가진 분들이 너무도 많기에 먼저 송구한 마음을 전해 드리며 관용을 구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우선은 어느 사회보다도 경직되어 있고 보수적인 그룹이 교직 사회이며 그래서 올바른 토의 및 토론 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우린 아직 전인적인 인간으로 완성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지식과 예절, 살아가는 방식들을 가르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우리들이기에 그 어느 누구보다도 우리들의 생각은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롭게 의사를 교환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한편으로는 배려할 수 있는 그런 처지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각자의 입장에서만 보더라도 우리 교사들은 모두가 한 분야에서 만큼은 전문가다운 모습들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런 전문가적인 소양과 자질을 서로가 공유해야 할 것이지만, 교실 문만 닫고 들어가면 그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것도 알지 못하게 되는 폐쇄적인 그런 공간이 주는 속성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점점 고립되어 가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만 민주시민으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 자질 중의 하나라며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가르치고 요구하는 “자유로운 의사 토론”을 통한 건전한 토론 문화가 정작 교사들 사이에서는 제대로 정착되어 있질 못하다. 학교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전체 교직원회의만 보더라도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작은 것에서 큰 것까지 하나하나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이렇게 해야만 진정한 토의 및 토론 문화가 정착되는 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하는 것이 아니라 윗선(?)의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데 급급한,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학교 운영 및 교육 방침 전달 시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 하다. 학교에서의 모든 협의 시간들은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고, 나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충심으로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하며, 이것이 계기가 되었을 때 교직원들간의 화합과 친목은 저절로 도모(친목회라는 별도의 기구가 있어야만 친목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딘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까?)될 것이라 믿는다. 물론 수업 시간에 쫓기고, 그 어느 누구도 침범해서는 안 되는(?) 퇴근 시간 때문에 무엇을 토론하려 해도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 정작 시급을 다투는 주제를 대하고도 시종일관 침묵으로 일관하기 일쑤이다. 그러면서도 학교는 곧잘 아이들에게 토의학습이니 학급 및 전교 어린이회의와 같은 민주적 절차에 따른 토론 문화를 이끌어가려 한다. 과연 그럴만한 처지가 되는지 반문해 보고 싶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만큼은 생활 속에서 전혀 전문성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학교 토론 문화를 이끌어간다는 것,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언어도단일 것이다. 둘째로, 우리가 무엇 때문에, 또 누군가가 얼마나 두렵기에, 말을 해야 할 시점에 그렇게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많이 답답해진다. 많은 논란은 있지만 어쨌든 우리들은 공급자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 그런 관계로 그 어느 누구도 아닌,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수요자의 입장에 선, 일차적으로는 아이들과, 더 나아가선 학부모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서도 우리의 소신을 밝히는 데에 그리고 우리의 교육적 신념을 펼쳐 가는 데에 제약을 받아선 안 된다. 애써 우리가 특정인 몇몇에게 잘 보여야 한다거나 교직원들간의 유기적 관계를 무시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분명 우리가 그들에게 잘 보여야 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교직원들간의 유기적 관계나 친목도 교육적 완성이라는 취지에 부합될 수 있도록, 모든 면에서 아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누구를 두려워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도, 더 좋은 것이 있으면 다른 모든 이에게 이를 널리 알려야 하는데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들은 좀처럼 우리들 속내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이러한 문제점들로 인해 점차 우리 교직 사회가 더 보수적이고 소극적일 뿐만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그런 융통성 적은 집단으로 변질되어 간다는 것이다. 19세기의 교실에서, 20세기의 교사가,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우리나라의 교육실정이라는 말을 곧잘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다행스럽게도 요즘은 과학기술과 IT산업의 발달의 혜택에 힘입어, 21세기의 교실로 점차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곤 하는데,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아직까지도 20세기에 미련을 두고 있는 교사들이다. 얼룩말을 잡을 수 있는 것은 그보다 훨씬 속도가 빠른 사자나 치타 정도가 되겠다. 치타가 되어 있어야 할 우리가, 아직도 얼룩말에도 미치지 못하는 토끼 정도로 남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들은 제대로 아이들을 따라가질 못한다. 물론 아이들도 그런 우리들과 쉽게 융화되질 않는다. 재미없는 드라마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TV 채널을 바꿔 버리는 사람의 심리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이치일 테니까. 일전에 누군가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선생님들은 너무 베풀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가지려 하지,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내 놓으려는 사람이 좀처럼 없어요” 라고. 왜 그렇게 이기적인(?) 모습들이 되어 가는지, 적어도 그게 아니라면 왜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모습으로 비춰져야 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아마도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를 신뢰하는 마음이 엷기 때문이 아닐까?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은 그 전문성이 발휘될 때 자신의 장점을 유감없이 드러내기 마련이지만, 그런 전문성들이 각자의 속에 갇혀 버릴 때에는 오히려 장점을 은폐시키고 약점들만 드러내는 부작용을 낳는다. 그렇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서로에 대한 배려심만 약해질 뿐이다. 우선은 각자의 전문성이 다른 사람보다도 더 낫다고 판단이 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런 전문성들은 가장 극단적인 경우엔 자신과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선 자의적으로 그 전문성조차 인정하지 않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결과까지 생기고 만다. 오늘도 교육 현장에선 묵묵히 땀을 흘리며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교사들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들의 노고와 고민들이 있었기에 황폐해져가는 공교육의 명맥이 그나마 이어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이에 발 맞추어 우리가 좀더 민주시민의식적으로 무장을 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마음을 열어간다면 보다 개방적이고 효율적인 학교 문화를 형성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교육경력이 20여년 전후가 되신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감성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감성(感性)은 지식 또는 지능과 대조되는 개념정도는 알고 있는 것 같은데 학생들에게 감성교육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았다. 미국의 심리학자 다니엘 골만의 저서《감성지수(emotional intelligence)》에서 유래되어 감성지수 [emotional quotient ; EQ, 感性指數]가 기업과 학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감성지수란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조절, 원만한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마음의 지능지수'를 뜻한다. 오랫동안 지식교육에 치우쳤던 학교교육도 감성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학교교육에서 감성교육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예능과목의 교육은 다른 교과에 비해 마음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감성교육을 하는 교과로 볼 수 있다. 흔히 예능의 소질은 타고난다고 하는데 어려서부터 교육을 통해 얼마든지 길러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활 속에서 오감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험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감성을 기르는 데는 교과목 외에도 특별활동이나 행사교육은 물론 생활의 전반에서 길러질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교정에서 아름다운 꽃이나 단풍을 보고 시상이 떠오를 때 느끼는 감정을 시로 표현하는 것은 마음의 지능지수를 높이는데 더 없이 좋은 교육활동이 될 수 있다. 소풍이나 운동회를 통해 친구와 어울려 놀면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 어울리며 사회생활을 배우는 것도 감성교육의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이다. 감성교육의 중요성이 점점 강조되고 있는데 감성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해 보기로 하자. 첫째, 태교를 할 때부터 감성교육을 해야 한다. 태교는 산모의 마음상태가 고스란히 태아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음악을 듣고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는 등 감성적인 유전자가 아이에게 전해지도록 최초의 교육을 잘해야 한다. 둘째, 감성을 자극하여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가정환경부터 만들어 주어야 한다. 가능하면 자연과 함께 자라도록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리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이치를 어려서부터 터득하도록 해야 한다. 모래밭에서 모래성을 쌓으면서 상상력과 꿈을 키우는 기회도 만들어주고 찰흙을 만지면서 촉감을 느끼도록 해 주면 아이들은 좋아한다. 아이들이 동물을 좋아하는 것도 감성교육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셋째, 유아교육은 교실 보다는 자연이 숨 쉬는 숲속이나 냇가에서 놀이를 통하여 하는 것이 감성의 싹을 틔우는데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오감을 발달시키고 무한한 상상을 통해 인성과 함께 창의력도 길러진다. 넷째, 감성교육은 식물을 재배하거나 동물을 길러 보게 하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생명이 소중하고 신비롭다는 교육이 될 것이며 이런 활동을 통해 따듯한 마음으로 사랑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감성교육은 인성교육의 근본 바탕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감성은 일기나 글쓰기를 통해 성숙되어진다고 생각한다. 감정이나 느낌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마음을 맑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선현들이 남긴 글을 읽고 마음을 바르게 갖으며 옷깃을 여미는 기회도 매우중요하다. 한자공부를 통해 사자성어나 명심보감 또는 고전을 읽으며 마음 닦는 공부를 하면 아주 좋은 감성교육이 될 것이다. 여섯째, 학교교육에서 점수로 산출되지 않는 교육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행사교육과 예체능 특기적성교육을 통해 감성이 풍부한 사람을 기르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시험점수에 올인 하다 보면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더 많이 피부에 와 닿고 필요한 인성은 상대적으로 메말라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일곱째, 한 가지 이상의 악기를 배우고 청소년기에 여행을 자주하고 전시회를 갖는 일 문화 예술 공연에 참여하거나 감상하는 기회를 갖는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해 마음을 풍요롭게 가꾸는 것은 감성이 풍부한 인성을 갖추게 될 것이다. 부모의 욕심으로 감성교육을 소홀히 하면 편협한 사람이 되어 사람답게 살아가는 행복감을 모르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다양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감성을 길러주는 것이 더 좋은 교육방법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의 뇌는 이성과 지식을 지배하는 좌 뇌와 감성을 지배하는 우뇌로 되어 있다고 하는데 지식교육에만 치중하여 좋은 대학에 진학하여 좋은 직장을 갖게 되더라도 감성이 부족하면 균형을 잃고 마음이 황량한 삶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지식교육과 함께 감성교육은 양대 기둥이 되어 인성이 조화를 이루며 사람답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근본 바탕이 되는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가 없으면 사람이 살아갈 수 없듯이 감성도 공기처럼 꼭 필요하지만 잘 나타나지 않아 소홀히 하기 쉽다.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고 외면하지 말고 자라는 아이들 모두가 마음이 행복하고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감성교육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서울시교육청에서 마련한 체벌금지에 따른 대체메뉴얼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한 마디로 교육현장의 정서와는 다소 떨어진 것으로 본다. 다양한 상황을 메뉴얼로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로 학교에서의 상황이 그대로 재연되지 않을 뿐 아니라 학생들이 따르지 않으면 메뉴얼 자체가 효과를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체벌금지에 대한 반대의 여론이 높아지고 실제로 학교현장에서 체벌금지조치 이후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 재빠른 메뉴얼 보급이 필요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렇더라도 이런 메뉴얼은 학교현장에 큰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수업중에 문제가 있는 학생들에게는 즉시 대응하지 말고 교무실에 불러서 지도하라고 했는데, 즉시대응을 하지 않았을때 그 시간의 수업을 어떻게 진행해 나가야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해당학생을 진정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수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학생으로 인해 한 시간을 포기해야 한다면 나머지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은 누가 보장할 것인가. 치맛단을 재활용교복을 활용하여 늘리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학생들이 치맛단을 늘리는 것에 동의할리도 만무하지만 어떻게 치맛단을 누가 늘려 줄 것인가도 현실적이지 않다. 자칫하면 학생들에게 인권침해라는 역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수업중에 동영상을 촬영하여 보여주면서 해당학생을 지도한다는 부분도 실효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수업장면을 촬영한다는 것에 동의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 동영상을 보여줌으로써 개선된다면 그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지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으로 학생들 지도가 가능했다면 학교에서의 체벌은 진작에 사라졌을 것이다. 학생들이 생각했던 만큼 잘 따르지 않기 때문에 체벌이 있었던 것이고 여러가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스스로 깨닫는 것이 가장 좋은 상황이지만 스스로 깨닫는 학생들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에 대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메뉴얼로 불가능한 부분들이 상당히 많은 것이 현실인 것이다. 최근 눈에 띠게 교사의 지시에 불응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소한 것부터 문제가 될 수 있는 것까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수업시간에 잠을 자거나 지각하는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어려움이 많아지고 있다. 벌점제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학생들이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정점수 이상의 벌점을 받으면 특별교육을 받지만 이 역시 학생들은 개의치 않고 있다. 학교에서 학생지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앞으로 이렇게 메뉴얼이 보급되면 즉각적인 학생지도는 사실상 어려워질 것이다. 현실에 잘 맞지 않는 메뉴얼로 인해 교사들의 운신폭이 더 좁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향후에 문제가 발생하면 메뉴얼에 따랐는지에 대한 책임소재를 따질 것이고, 메뉴얼에 어긋난다면 결국은 해당교사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럴 경우 도리어 교사들에게 부담이 가중되어 어려움이 커질 것이다. 결국 어떤 메뉴얼이 나오더라도 체벌을 대체할 효율적인 방안이 되기 어렵다. 최소한의 학생지도권마저 사라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 요즈음의 현실이다. 체벌을 찬성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일시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체벌이었다. 이제는 그것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앞으로 대체안을 만들때는 좀더 효율적인 방안, 학생과 학부모가 동의하고 이행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음주측정만 하면 뭐하겠는가. 그 다음의 조치는 어떻게 내려야 할지 고민되는 부분이다. 즉각적으로 학생들이 따를 수 있는 대체안이 하루빨리 마련되어야 한다. 시간에 쫓기듯이 무분별하게 대체안을 내놓지 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실효성있는 안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옷거리’와 ‘옷걸이’는 구별해서 써야 한다. 우선 두 단어의 의미 차이를 사전을 통해서 알아 본다. ‘옷거리’는 옷을 입은 모양새. - 옷거리가 좋다. - 그는 옷거리에 맵시가 있고 말주변이 좋았다. ‘옷걸이’ 옷을 걸어 두도록 만든 물건. -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두 단어는 철자가 다르지만 발음이 [옫꺼리]로 같다. 하지만 의미에는 차이가 있다. ‘옷걸이’는 ‘옷’이라는 명사에 ‘걸다’가 결합하고 다시 명사형 어미가 결합된 형태다. 요즘 ‘옷걸이’는 기계로 만들어져 세련된 모습이다. 그리고 옷을 거는 본래의 기능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다양하게 만들어진다. 그러나 과거에 ‘옷걸이’는 막대를 이용해 옷을 걸었다. 이 막대를 ‘횃대’라고 한다. 또 물건을 걸기 위하여 벽 따위에 달아 두는 나무 갈고리를 이용하기도 했는데, 이를 ‘말코지’라고 했다. ‘옷거리’는 옷을 입은 모양새를 뜻한다. 여기에는 옷을 걸다는 의미가 없다. 우리말에서는 어원이 분명한 경우는 그 어원을 밝혀 적는 것이 원칙이다(제21항, 제22항, 제23항). 그래서 ‘옷거리’는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 다만 한 형태소 안에서 시옷받침 등의 뒤에서는 된소리가 나더라도 된소리로 적지 않는다. 그래서 이것도 한글맞춤법에 따라 ‘옷꺼리’가 아닌 ‘옷거리’로 적은 것이다. 그런데도 ○ 또 하나는 두 아이의 엄마임을 의심케 하는 빼어난 바디라인이 꼽힌다. 아무리 뛰어난 패션 감각과 의상이 받쳐준다 해도 ‘옷걸이’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정경뉴스, 2010년 11월 8일). ○ 옷걸이가 워낙 좋다보니 어떤 옷을 걸쳐도 그림이 되지만, 그래도 주인공들의 옷차림은 저자의 일반적인 패션과 사뭇 다르다.(세계일보, 2010년 1월 21일). ○ 무슨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리는 사람을 가리켜 흔히 ‘옷걸이가 좋다.’고 한다. 옷걸이가 좋으려면 어떤 신체조건을 갖춰야 할까(쿠키뉴스, 2006년 11월 2일). 라며 잘못 쓰고 있다. 위 예문의 ‘옷걸이’는 문맥상 모두 옷을 입은 모양새를 의미한다. 따라서 ‘옷걸이’는 ‘옷거리’라고 써야 한다. 귀가 시리지 않도록 귀를 덮는 물건을 ‘귀걸이’라고 한다. 이도 ‘귀’에 ‘걸다’가 결합한 합성어다. 이는 ‘귓집’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귀거리’라는 말은 없다. ‘귀고리’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귓불에 다는 장식품이다. 이를 ‘귀걸이’라고도 한다. 여자는 외모에 관심이 많다. 이에 따라 자신을 좀 더 돋보이고자 하는 노력들을 기울이게 되는데, 그 중에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여러 가지 독특한 액세서리 상품이다. 이중 귀걸이는 모든 여성들에게 큰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액세서리이다. 그런데 정작 귀걸이를 해야 하는 귓불의 문제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로 작용하게 된다. 즉 귓불이 갈라져 귀걸이 착용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여기서 ‘귓불’을 ‘귀볼’ 혹은 ‘귓볼’이라고 잘못 쓰기도 한다. ○ 특히 눈썹문신, 귀볼 뚫기 등이 의료행위인지, 비의료 행위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전체의 37%에 달했다(뉴시스, 2008년 7월 14일). ○ 전문의 강준모 원장은 “매직V리프트는 귀볼 근처 1cm 정도의 절개를 통해 처진 얼굴 조직을 잡아... 빨리 나타나고 지속 기간이 길다는 장점이 있다(OSEN 2010년 9월 27일). ○ ‘미쓰 홍당무’ 공효진-이종혁 ‘귀볼 애무’ 달콤 느낌 호기심자극, 공효진은 제 귓볼을 쪽쪽 빠시면서 너무나 로맨틱하게 속삭이셨어요(뉴스엔, 2008년 10월 14일). 여기서 ‘귀볼’과 ‘귓볼’은 모두 사전에 없는 말이다. 귓바퀴의 아래쪽에 붙어 있는 살은 ‘귓불’이라고 한다. 흔히 ‘귓밥’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귓구멍 속에 낀 때는 ‘귀지’라고 한다. 이도 간혹 ‘귓밥’이라고 하는데 방언이다.
수능 시험을 앞둔 선배들에게 수능 대박을 기원하면서 후배들이 전해준 '합격이 넝쿨째'라는 선물의 제목이 매우 이색적이다. 선물을 받아들고 학교 상징탑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고3 학생들. 선물을 받긴 했으나 목전으로 다가온 수능시험 때문인지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후배들의 응원까지 받았으니 이제 최선을 다하는 일만 남았다.
기존 휴대폰 학교수업 방해 물건으로 인식 스마트폰 교육접목 가능성 외면해선 안 돼 2009년 11월, A사의 스마트폰이 미국에서 최초 출시된 후 2년 4개월여 만에 세계에서 80번째로 우리나라에서 이 제품의 판매가 시작되면서 스마트폰 시장이 본격적으로 출범하였다. 1년이 지나고 있는 현재, 그 결과는 가히 폭발적이다.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의 제반 영역에서 스마트폰이 몰고 온 열풍이 전달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큰 이슈가 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태블릿 PC로도 불리는 스마트탭, 스마트TV 등 스마트 기기의 연이은 출시와 더불어 향후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smart)’는 똑똑한, 영리한의 뜻을 가지고 있다. 전화기가 얼마나 똑똑한 일을 하기에 스마트폰이라 불릴까? 사실 스마트폰은 이미 1992년 미국에서 IBM사에 의해 처음 선보인 바 있고, 이후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가 유사한 역할을 해오기도 하였다. 그런데 스마트폰은 이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지금 있는 내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를 찾아가는 길을 안내하고, 쇼핑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다시 나갈 때 내 차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다. 또한 처음 만난 사람과 스마트폰끼리 살짝 부딪치면 그 사람의 전화번호가 내 스마트폰으로 자동 저장된다. 그야말로 기존의 전화기로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 여러 보고서들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보급된 5천여만대의 휴대폰 중 내년에는 20%가 스마트폰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는데, 현재 이미 10%를 넘나들고 있다. 컴퓨터가 대중들에게 보편화되면서 뛰어난 기능을 가진 컴퓨터의 교육적 활용이 자연스럽게 구현된 것과 같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소유해 감에 따라 그 혁신적인 기술이 사회전반과 교육에 어떻게 쓰일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가 전개될 것이며, 사실 이미 시작되고 있다. 현재 대학과 기업현장에서는 스마트 기기에 대한 관심의 수준을 넘어 본격적인 활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몇몇 대학에서는 학생들에게 스마트폰을 무료로 나누어 주고 이를 수업 보조도구로 사용하고 있으며, 기업에서는 스마트 워크(smart work)라는 이름하에 다양한 형태로 기업교육의 현장에서 스마트 기기가 쓰인다. 이와 관련된 이론연구 또한 진행 중이다. 이른바 웹 2.0 또는 3.0의 경향성과 더불어 집단지성, 협력학습 등 다양한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교수-학습 방법과 전략이 구성되고 있다. 사실, 일선 학교에서는 ‘휴대폰 없는 학교’운동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기존의 휴대폰은 학교교육과 수업에 방해가 되는 물건일 뿐이었다. 그러나 스마트폰과 기기는 다를 수 있다. 이 새로운 기기가 가진 가능성을 우리가 외면한다면, 교육의 장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칠지 모른다. 이미 다양한 교내 인트라넷 메신저들이 교사들에게 친숙한 매체로 활용되고 있는 것처럼 스마트한 학교교육 실천에 대한 기반은 마련되어 있다. 이의 발전된 형태인 마이크로 블로그와 같은 스마트폰 기반 사회 네트워크 서비스들을 활용할 경우 교사, 학생, 나아가 학부모에 이르는 온라인 공동체를 극적으로 확장시켜줄 수 있다. 또한 수십만 개에 이르는 스마트 기기 어플리케이션(application)들은 학습목표 달성에 최적화되어 기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스마트한 기기들이 점차 사회 전반에서 채택될 것이다. 이처럼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교사로서의 자세는 무엇인가. 디지털 원어민(digital natives)이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변혁의 중심에서 소외된 디지털 이주민(digital immigrants)이 될 것인가. 스마트폰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최소한 21세기 시민과 교사로서 우선 스마트 기기와 스마트한 교육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선택의 문제이다.
교육은 ‘인권’ 보다 훨씬 큰 ‘전인적’ 문제 인성발달단계 맞춰 적절한 권리 가르쳐야 서울과 경기, 강원교육청 등 진보교육감들의 체벌전면금지 조치가 확산되고 있다. 진보교육감들은 체벌이 ‘교육적 목적’을 지녔더라도 금지돼야 할 사안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법률에 의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타인에게 물리력을 행사하는 행위는 법치주의에 반하는 ‘폭력’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체벌 전면금지는 시기상조이고 일방적으로 추진된 졸속 정책’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체벌금지와 인권조례를 둘러싼 논란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학생인권은 중요하다. 하지만 학교는 인권문제를 넘어 인성전반에 걸친 전인교육을 담당하는 곳이다. 이런 점에서 진보교육감들이 교육 어젠다로 학생인권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꼬리가 강아지를 흔드는’ 상황을 방불케 한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어야지 꼬리가 강아지를 흔들어서야 되겠는가. 교육과 인권은 물론 연관이 있다. 그러나 동일한 것은 아니다. 인권은 교도소의 죄수에게도, 병원의 환자에게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의 학생에게도 있는가하면, 교사에게도 있고 학부모에게도 있다. 그러다보면,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인권 등, 상호간에 권리가 충돌할 경우, 명쾌한 해법이 나오기 힘들다. 이것이 인권문제가 지니고 있는 한계다. 또 보다 중요한 점은 교육은 인권보다 훨씬 큰 전인적 문제라는 사실이다. 인권은 침해방지에 목적이 있는 만큼, ‘무엇을 해야 하겠다’라는 것보다는 ‘무엇을 해서는 안된다’라는 쪽에 초점이 맞춰진 소극적인 범주다. 실제로 경기도 의회에서 통과된 경기도 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안을 보면, 소지품․일기장․수첩검사․휴대전화 소지 자체금지, 야간자율학습․보충수업, 종교행사 등을 강제할 수 없다고 되어있다. 이에 비해 교육은 사람을 만들고 인성을 함양하는데 힘을 쏟는 어떤 적극적인 가치가 아닌가. 따라서 선생님은 학생의 어떤 인권을 침해했는가에 대한 걱정보다는 미완성의 인격체를 어떻게 온전한 인격체로 만들 수 있는가에 관심을 집중해야한다. 경찰은 범인을 체포할 때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는 내용의 미란다원칙을 고지한다. 그렇다면 인권조례가 통과됐다고 해서 선생님도 벌을 주는 학생에게 묵비권이 있다고 고지해야하겠는가. 선생님이 잘못을 저지른 학생에게 벌을 내리면서 미란다원칙과 같은 것을 고지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교육이 인권의 목적과는 달리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와 책임도 함께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권의 개념에서 곰곰이 생각해봐야할 문제가 있다면, 바로 ‘능력’의 문제다. 권리는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야한다. 그것은 칼이나 불이 인간의 삶에 있어 소중하고 필수적이지만, 제대로 사용하려면 칼이나 불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이치와 같다. 칼이나 성냥을 가졌다고 해서 칼싸움이나 불장난을 하면 재앙이 되지 않겠는가. 칼이나 성냥을 잘 사용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 사용능력을 함양시키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인권도 마찬가지다. 인권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권리다. 그러나 미성년자에게 술이나 담배를 필 수 있는 권리에 제한을 두듯이, 모든 권리를 하루아침에 ‘선물보따리’처럼 주어서는 안 된다. 학생들에게는 인성발달단계가 있다. 그렇기에 인성발달단계에 맞춰 적절하게 권리의 사용법을 가르쳐야한다. 이런 사용법을 무시하고 학생의 인권이 무조건 중요하다는 식으로 조례를 만들어 선포하면 인권이라는 중차대한 교육적 사안을 비교육적인 방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 학교현장을 보라. “빗나가려는 아이들을 학교에서라도 잡아 줘야하지 않느냐”하는 학부모들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또 “교사가 지시라도 할라치면 막말도 서슴지 않는 사춘기의 아이들을 마구 풀어놓으면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하는 물음도 교사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학생들의 권리가 이런 것”이라고 선포하기보다 “학생들이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어떤 능력을 가져야 하는가”를 고민해야할 때다. 그 능력에는 자기반성능력과 의무감, 그리고 책임의식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포함된다. 교육을 책임진 교육감들로부터 보고 싶은 것은 인권조례를 선포하는 인권운동가의 모습보다는 바른 인격형성을 위해 인성교육문제를 고민하는 교육자의 모습이다.
‘긴 한숨, 처진 어깨’, 요사이 교단의 정서를 잘 표현해준다. 교심(敎心)은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보는 ‘관조적’인 성격이 강하다. 교육자이기에 교육정책 변화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보다는 ‘그저 교육이 잘되어야 하는데’라는 걱정을 우선하는 성숙함을 보여주곤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 유행하던 ‘교실붕괴’란 용어가 다시 교직사회에 회자하고 있다. 이른 바 진보성향 교육감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체벌전면금지 시행 이후 교총의 학교실태 조사에 따르면 흡연 및 지각, 과제 불이행, 수업준비물 챙기지 않기, 머리 파마, 염색, 사복 착용 급등 등 우려스런 학교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교복이 너무 짧다고 지적하면 ‘선생님은 제 다리만 보세요?’라고 항의하거나 면전에서 입에 담지 못할 상스런 말도 하는 경우도 있다 한다. 수업 중에 떠들어도, 여타 학생을 괴롭혀도 교사가 학생에게 이렇다 할 제재를 가할 수가 없고, 무단조퇴를 해 야단을 치면 체벌금지령과 학생인권을 들먹거리곤 한다. 수업시간에 휴대폰을 갖고 있어 열 번을 넘게 가져오라고 하자 욕을 하며 휴대폰을 책상위로 던지기도 한다. 심지어 엄하게 야단치면 경찰에 신고하여 경찰차가 출동한 사례 등 많은 사례가 접수되었다. 벌점제에 따라 벌점을 주겠다고 하면, 교원평가에서 점수를 깎겠다고 은근히 교사를 협박하는 학생마저 있는 현실에서 과연 올바른 교육이 가능한 것인가? 이런 현실로 인해 교원의 사기가 꺾이고 교육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도 약화될 수 있음을 교육감들을 알아야 한다. ‘무법의 학생들이 시도 때도 없이 복도를 배회하고, 교칙을 어기는 학생들이 더 많아지게 될 때, 착하게 수업에 임하는 선량한 학생들의 인권은 어찌 보호해야 할 지 걱정입니다. 이런 학생들을 어찌 지도해야 할 지 교실에 들어갈 때 기도합니다’라는 어느 여교사의 전언을 우리 사회는 결코 외면해서는 안된다. 학생의 인권이 권리만이 아닌 의무도 수반됨을, 학생인권과 교권이 조화를 이루지 않을 때 ‘교실붕괴’ 현상은 나타나게 된다. 학생과 교원, 학부모가 ‘교육’이라는 공동선을 위해 작은 사회를 이룬 곳이 바로 학교이다. 학교질서와 교실기강을 바로 세우는 것은 교권은 물론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지름길이 됨을 교육감들은 기억하길 바란다.
○…출전선수단 275명을 포함, 1000여명의 교원들이 함께한 이번 ‘제2회 교총회장기 전국교원배구대회’는 명실상부한 전국 교원들의 한마음 축제였다. 안양옥 교총회장은 대회사를 통해 “배구대회가 승패보다는 한마음 한뜻으로 전국 교육자의 협력과 우애를 다지는 장이 되길 바란다”며 “내년 상반기 배구대회, 하반기 다른 종목의 전국교원 체육행사를 통해 소통하고 우애를 나누는 계기를 더 활성화시키겠다”고 말했다. 설동근 교과부 제1차관도 “오늘 배구대회는 전국 교원들이 모여 서로의 실력을 겨루고 선의를 나누는 자리”라며 “전국 교원들의 단합된 힘으로 현장에서 공교육 살리기에 더욱더 매진 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승환 전북교육감, 김찬기 전북부교육감, 박종문 전북 정무부지사, 최진호, 김정호, 최남렬 전북 도의원, 박승수 한국9인제배구연맹 회장 등이 참석했다. ○…경기장에는 전주교총, 군산교총, 정읍교총, 진안교총, 완주교총, 임실교총 등 전북 시군교총과 전주온화학교, 전주북일초 등에서 각각 자매결연을 맺은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대전, 경기 등 타 시․도교총의 선전을 기원하는 플래카드를 내걸어 눈길을 끌었다. 전주온화학교 한 선생님은 “시도 소속을 떠나 교총 가족으로, 또 교육자로서 환영한다”며 “비록 타지에서 오셨지만 자매결연을 맺은 시도교총의 선전을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은 상대팀 벤치를 먼저 찾아가 인사를 하는 매너를 보였다. 벤치의 단장, 감독, 코치들도 승패의 결과를 떠나 찾아온 상대팀 선수들과 악수하며 축하와 격려를 보냈다. 서울교총의 한 선수는 “상대편에 대한 예의는 승패보다는 경기자체를 즐기는 생활체육의 기본”이라며 “또 상대를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보여야 할 모범”이라고 밝혔다. 경남교총 서기철 선수가 강력한 스파이크 서브를 날리고 있다.○…경남교총 서기철, 김승로, 충남교총 송학림, 대구교총 박성재 등은 블로킹을 뚫는 오픈공격과 강력한 스파이크 서비스로 프로선수 못지 않은 기량을 선보였다. 또 랠리가 길어지는 9인제배구의 특성상 블로킹과 수비가 좋은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충북교총 이승훈, 경남교총 남국현 선수 등 리시브가 좋은 수비형 선수들이 바로 그들. 특히 대구교총 유은영, 광주교총 이선자, 경남교총 장석옥, 김강희, 전남교총 이선민 선수 등 여자선수들은 남자선수들의 강력한 스파이크를 몸을 날려서 받아내는 것은 물론 특유의 파이팅으로 분위기를 주도했다. ○…예선, 결선 경기를 치르면서 일부 경기가 과열돼 판정에 항의 하는 소동이 일부 벌어지기도 했다. 3조 예선 경기교총, 충남교총의 경기 중 애매한 판정으로 경기교총이 항의하며 8분간 경기가 중단됐으며, 충남교총과 경남교총의 경기도 15분간 중단됐다. 하지만 경기 후 양팀 선수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심판진과도 웃으며 상황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하며 좋은 분위기로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강의 전력으로 평가받고도 번번이 우승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던 대전교총이 결국 교원배구대회 우승컵을 안았다. 14일 전주 학산체육관에서 열린 제2회 교총회장기 전국교원배구대회 결승전에서 대전교총은 이번 대회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광주교총에 2대1 역전승했다. 2008년 교총회장기 전국초등교원 배구대회 결승전 패배의 설욕이기도 했다. 결승전까지 5경기에서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았던 광주교총과 1세트만 내주고 올라온 대전교총은 간의 경기는 그야말로 명승부였다. 1세트 광주교총의 장신벽에 막혀 고전했던 대전교총은 2세트 이후 공격력이 살아난 최성신 선수(대전문정중 교사)의 오픈공격과 이대윤 선수(대전법동중 교사)의 블로킹을 앞세워 경기를 주도했다. 특히 2세트 한 때 판정문제와 벤치 내 응원문제로 잠시 경기가 중단된 이후 어수선한 분위기 뒤에도 차분하게 경기를 풀어간 집중력이 돋보였다. 대전교총 이재훈 감독(대전동화초 교장)은 “지난 대회 8강 탈락이후 2개 동호회를 중심으로 정말 많은 연습을 했다”며 “한마음으로 1년간 노력한 결실을 맺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한편 준결승까지 내리 세트스코어 2대0의 행진을 이어온 광주교총은 한순간 무너진 팀워크를 수습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2008년 전국초등교원 배구대회 우승팀이기도 한 광주교총은 국가대표 세터 출신의 김일성 코치(상일중 교사)를 중심으로 한 단단한 조직력과 김동률(광주농성초 교사), 선의상(진월초 교사), 박형석(상무고 교사) 등 190Cm에 육박하는 장신 공격수들이 많아 내년 이후, 언제라도 우승할 수 있는 저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동3위는 전남, 경남교총이 차지했으며, 서울, 전북, 제주교총은 모범상을 받았다. 대회최우수선수상은 최성신(대전교총․대전문정중 교사), 우수상은 구영철(광주교총․광주교육청 장학사) 선수가 수상했다.
우승이다! 제2회 한국교총회장기 전국교원배구대회가 13일 전주화산체육관에서 열렸다. 시도 예선을 거친 16개 팀이 열전을 벌인 가운데 대전교총이 결승에서 맞붙은 광주교총을 2대1로 누르고 역전우승을 차지했다. 대회사 안양옥 교총회장은 대회사에서 "18만 회원이 한마음 한 뜻으로 화합한다면 20만, 30만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밝히며 "페어플레이의 스포츠맨십으로 실력을 마음껏 겨루기"를 기원했다. 시구 설동근 교과부 차관, 안양옥 교총 회장, 김승환 전북교육감, 김기천 전북교총 회장, 박승수 한국9인제배구연맹 회장이 경기에 앞서 시구하고 있다. 선서 13일 전주 화산체육관에서 개최된 '제2회 한국교총회장기 전국교원배구대회'에서 전북교총 최종수(정읍여고) 교사와 정은경(전주서일초) 교사가 선수대표 선서를 하고 있다. 화합의 장 출전선수단 257명을 포함, 1000여명의 교원들이 함께한 16개 시도교총이 배구로 한마음이 된 화합의 장이였다. 작전회의 8강전에서 대구교총 선수들이 광주교총의 진영을 향한 작전을 논의하고 있다. 대구교총은 광주교총을 상대로 열심히 싸웠지만 0대2로 4강전이 좌절되었다. 응원전 대구교총 회원들이 조별 예선전에서 힘찬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열띤 응원전 임점택 서울교총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이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며 열띤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축하공연 전북 주산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음악줄넘기 공연 모습. 축하공연 '소리지존'의 퓨전난타 공연. 강력한 스파이크 전남교총 이상재 선수가 8강전에서 울산교총을 상대로 강력한 스파이크를 날리고 있다. 전남교총은 울산교총을 상대로 2대0으로 4강전에 진출하였지만 대전교총을 만나 2대0으로 결승진출에 실패했다. 어필 8강전에서 맞붙은 경남교총과 충남교총은 시합중 선심의 호각소리로 시합이 진행된 것에 대한각 팀 주장들이 주심에게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행운권 추첨 행운권 추첨식에서 김기천 전북교총 회장이 자전거를 전달하고 있다. 양보할 수 없는 승부 결승전에서 맞붙은 대전교총, 광주교총 선수들이 경기에 앞서 선의의 경쟁을 다짐하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우승의 꿈 격전을 치른 대전교총 최진욱(대전선암초)선수가 우승컵을 안고 폐회식을 치를고 있다 우리는 하나 경남교총 여자선수들이 우승팀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준우승에 그친 광주교총 선수들이 내년 대회를 다짐하며 힘찬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먼저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동안 고3이라는 무거운 멍에를 짊어지고 얼마나 힘들었겠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할 수 있단다. 너희들 부모님이나 선생님 세대도 그 시기를 건너올 때는 마치 홍역을 앓듯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기에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당시를 떠올리면 오금이 저려온단다. 올 한 해 너희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마 여름이었던 것 같구나. 예년에 없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땀이 철철 흐르던 그 사우나 같던 날씨에도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한 자라도 더 보기 위해 애쓰던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물론 교실에 에어컨이 있었지만 40명 가까이 내뿜는 그 뜨거운 열기를 어찌 충분하게 식혀줄 수 있었겠니.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찬바람이 솔솔 불어오던 가을도 벌써 꼬리만 남긴 채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는구나. 그러다 보니 극심한 일교차로 감기에 걸려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꽤 많구나. 몸에서 열이 펄펄 나는데도 졸음이 밀려온다고 추운 복도에서 찬바람 맞으며 책장을 넘기는 아이, 저녁 식사하러 가는 시간도 아깝다며 밥도 거른 채 공부하는 아이를 지켜보면서 대신 아프거나 식사해줄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구나. 선생님 마음은 늘 그랬단다. 아니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선 너희들이 건강하게 이 어려움을 무사히 넘겨주길 바라고 그 다음으로 너희들이 꿈꾸는 세상을 향해 마음껏 달려갈 수 있도록 이 과정이 부디 그 꿈을 이루는 기폭제가 되어주길 바랄 따름이란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유행가 가사도 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어려움을 겪으며 한 단계씩 성숙해지게 마련이란다. 모르긴 해도 지금의 이 경험은 깨알처럼 남아 있는 너희들 인생의 그 숱한 나날들 앞에 귀한 보약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단다. 지금의 너희들은 오랜 시간 동안 피와 땀을 쏟으며 준비한 후, 그 모든 것을 링에서 보여줘야 할 복서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복싱은 상대를 향해 펀치를 날려야 하지만 너희들은 시험지를 상대로 피말리는 두뇌 싸움을 펼쳐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쯤이면 밀려오는 긴장감과 상대에 대한 두려움으로 심적 부담감이 풍선처럼 부풀어 있을 것이 틀림없을 게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너희들을 믿는단다. 틀림없이 잘 할 것이라고. 왜냐하면 지금까지 이 과정을 거쳐간 수많은 제자들이 너무도 잘 해줬기 때문이란다. 지금은 링에 오르기 전이라 두렵고 떨리겠지만 막상 링에 오르면 달라질 게다.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긴장감도 사라지고 그동안 준비했던 기량이 봇물처럼 터져나올 것이다. 그러니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단다. 너희들이 링에 오르는 날은 선생님도 새벽부터 교문 앞에서 힘찬 응원 구호를 외칠 것이다. 더 높은 세계로 날아가기 위해 누구나 겪어야 하는 과정이지만 당사자들은 얼마나 긴장되고 또 떨리겠니. 비록 선생님의 응원이 큰 힘이 되지는 않겠지만 결전의 문으로 들어가는 너희들에게 조그만 위로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단다. 그래 18일,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를 너희들의 그 늠름한 모습을 기대해 본다.
책 읽는 데 취미가 있는 데다교사라는 직업 때문인지 동화책을 자주 접하게 된다. '창비어린이' 출판사에서 개최한 '제3회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창작부문 대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세간의 조명을 적지 않게 받은 이 작품을 읽으면서 뭐랄까,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 없어 몇 글자 끼적거려 본다. 비교적 풍요롭게 살던 한 가정,가장인 아빠가 실직을 하게 된다. 아빠는 건강상의 이유로 요양을 목적으로, 또 한편으로는평생의 소원이었던 목동(?)의 꿈을 이루기 위해 뉴질랜드로 떠나고, 엄마는 힘든 카피라이터 일을 하면서 두 아이를 떠맡는다. 아쉬움 없이 살던 가족들은 졸지에 반지하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고, 엄마와 함께 이 미련조차 없을 것 같은 땅에 남은 두 아이들은 순박한 동심에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은 그런 상황, 하지만 그런 아이들을 붙들어 준 건 사실 열심히 살려는 엄마의 의지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자기들 내면에서 우러난 현실 자각 능력 역시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맘때면 누구나 그랬듯이, 또래 친구들에게서 느끼는 정서적인 안정감이 무엇보다도 큰 역할을 했고, 전혀 대도시라는 주변 환경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전원적인 그들의 집 주변의 일상적인 풍경들과 모습에서 두 아이는 급격하게 변화된 불안정한 환경에 서서히 적응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소설가 박완서씨가 "그런 일(IMF와 관련된 일련의 주제들)은 조금도 신기할 게 없는 이 시대의 가장 우울하고도 진부한 리얼리티이다. 외면할래야 외면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오히려 아이들에겐 안 보여 주고 싶기도 하고, 동화에는 이 구차스러운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최소한의 환상의 힘이라도 있길 바라는 마음에도 어긋난다. 그런 생각으로 읽었는데도 이 동화가 재미있고 참신하기까지 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등잔 밑에 오히려 신기한 게 숨어 있을 수 있는 것처럼 가장 가까운 그늘에서 들춰낸 리얼리티가 새롭게 빛나 보인다."라고 추천사에서 밝히기까지 한 이 작품...... ("가만 있어도 웃는 눈", 이미옥 저, 창비, 4쪽) 우리 나라에서 가장 인정 받는 소설가 중의 한 사람인 그 분이 그렇게 생각하고 이 책을 추천했다면 분명 타당한 얘기이겠지만,정말 이 작품이 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가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대문호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다 읽고 난 뒤에 밀려드는 씁쓸함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실직이라는 어찌 보면 자연적이면서도 지극히 보편적인 그런 현상에 대처하는 부모의 자세가 이야기를 읽는 내내 많이 무책임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누구든 그럴 것이다. 실직을 하면 생활정보지를 집안에 가득 쌓아놓고서 여기저기 전화를 해 댈 것이고, 멀든 가깝든 그 어느 곳이라도 달려가서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 노력하는 것이 당연한 가장의 역할일 텐데, 이 가장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머나먼 곳으로 떠나 버린다.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떠나게 된 그 이주가-물론 적극적인 자신의 의지에 따른 선택이었다거나 혹은 단지 꿈의 실현만을 위해 비행기에 오른 건 아닐지라도- 한낱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자의 호기로 비친 것은 비단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분히 부정적이기 때문일까? 가족들의 그나마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 주는 집을 처분(제법 값 나가는 집이라도 있어서 그를 처분하고 떠났지만, 좀더 냉정히 우리들의 현실로 돌아와 생각해 본다면 그런 팔 것조차 하나 없는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에겐 그의 행동은 지나친 사치가 아닐 수 없다)하고 떠나버린 아빠, 아무리 배우자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고는 하나 자라나는 두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의 선택은 분명 잘못되었다. 그렇잖아도 더 어려워진 경제적 난관을 직접적으로 타개하기는커녕, 두 아이를 키워가며 홀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아내가 보내 준 돈으로 이주 생활의 밑천을 삼는 그런 상황들이 정상적인 상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일일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니던 멀쩡한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엄마 역시 그렇게 실직을 하고 만다. 물론 엄마는 방금 말했던 그런 적극적이면서도 경제적인 난관 타개책을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의 흔적을 보이긴 했지만, 결국엔 엄마 역시 학창 시절 꿈이었다던 작가되기를 소망한다.엄마는 그래서 글을 쓴다. 습기가 눅눅하고 온갖 시끄러운 소리들이 다 스며들고 열악하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라나는 자신의 아이들을 외면(?)하고 말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그래서 더욱 절망적인 심정으로 글쓰기에 매달렸겠지만)은 이해가 가지만, 카드 빚에 시달리고 차를 처분하면서까지 어려워진 형편에 원고를 보내놓고 당선을 기다리는 그 모습은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어느 날 자식(두 아이들의 엄마)이 그렇게 사는 걸 보고는 아이들의 외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다 집어치우고 나 따라 가자!"고.만일의 경우에 도피할 수 있는 그 어떤 곳, 혹시라도 그런 경제적인 여유를 최후의 보루로 하고 있었기에 엄마가 그렇게 행동한 건 아닐까? 평생의 꿈이었던 목동을, 그리고 소싯적 꿈이었던 작가를, 그것도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에 그와 같은 꿈들을 열망하는 엄마와 아빠의 행동을 어찌 무책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난 이 두 부모가 자식들에 대해서, 아니면 적어도 헤쳐 나가기 힘든 시련을 맞닥뜨린 상황에서 대처한 그들의 행동은 분명히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불우해져 버린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사람들에 절대적인 믿음과 삶을 바라보는 긍정적이고 순수한 마음의 끈만큼은 놓치 않게 했던 작가의 역량이나, 일상 생활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아빠와 엄마가 실직을 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는 그 정도 선에서의 이야기까지만 해당되지 않을까?-를 작품 내내 흐르는 잔잔한 감동으로 이끌어 간 작가의 그 섬세한 관찰력과 삶을 바라보는 긍정적인(사실, 긍정적이다못해 너무 이상향을 꿈꾸고 있지만) 자세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지만, 그래도 작품 구석구석에서 너무 비현실적인 작가의 생각을 개입해 놓은 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시대를 힙겹게 살아가는 소위, "기러기 아빠들"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삶의 태도를 보이는 작품 속의 무책임한 아빠, 그리고 지금도 그다지 많지 않은 돈(대부분은 물론 아이들 사교육비에 충당된다는 것쯤은 누구나가 알고 있다)에 몸과 마음이 사그러들면서까지 온갖 잡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열심히 살아가는 엄마들"에게도어쩌면 자신의 보다 더 가치있고 고결한 삶에 매달리라고 충고하는 듯한 작품 속의 무책임한 엄마를, 작가가 그려 내고 있다는 점에서더욱 불쾌감을 지울 수 없다.
경기도청소년활동진흥센터(최재복 센터장)는 11월 13일(토) 12:00 제13회 경기도청소년자원봉사대회를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 경기홀에서 500여 명이 참석한가운데 성대히 가졌다. 이번 행사는 1부(12:00-14:00) 홍보부스 및 체험부스 운영, 2부(14:00-15:00) 축하공연 및 봉사 사례 발표, 3부(15"00-16:00) 시상식 순으로 진행되었다. 올해 자원봉사 실적 심사는 예년과는 다르게 서류심사 외에심층 면접심사를거쳐 수상자가 선정되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여성가족부장관상 4명(동아리 1개 포함), 경기도지사상 7명(동아리 2개 포함), 경기도교육감상 10명(동아리 1개 포함)등이 수여되었다. 경기도청소년자원봉사대회는 청소년자원봉사활동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고취시키고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참여 의식을 향상시키기 위해 매년 실시되는 축제로서 지역사회의 모범적인 청소년 및 지도자, 청소년 동아리를 발굴하고 시상하여 청소년들의 봉사활동 참여를 유도하는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그해 여름의 도서관 도서관은 내 영혼의 고향이다. 특히 더운 여름날 도서관에 있으면 나는 향수에 젖는다. 20대 초반, 무덥던 그 여름 겨우 선풍기 한 대만 돌아가던 시골 읍내의 도서관 한 쪽에서 땀을 훔치며 책과 씨름하던 나를 만날 수 있어서다.그리운 시절이다! 가슴이 울컥하도록. 1970년대, 배고픈 시절 호박볶음에 밥 한 공기가 점심이었고 저녁은 건너 뛰고 밤 10시까지 도서관에서 버티던 시절. 단 한 벌뿐인 옷은 밤마다 세탁해서 연탄불 위에 걸어두고 겨우 말려서 그 다음날 아침에 입었다. 파르스름한 청치마에 나일론이 곁들여진 반팔 티셔츠는 나의 장기기억에 새겨져서 색깔 하나 변하지 않고 영상으로 떠오른다. 무엇을 배웠을까? 혼자서. 무엇을 깨달았을까? 그냥 해야 한다고 철썩같이 믿었다. 그 길밖에 길이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책 속에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공통수학이나 수학의 정석 등을 혼자서 공부하며 더디게 알아가는 기쁨 한 모금으로 설렜던 젊은 날. 아직도 나는 도서관을 좋아한다. 칸막이로 둘러싸인 그 작은 공간이 마치 모태인 양 편안해진다. 그 작은 공간에서 만나는 책 속의 언어들이 나의 유일한 친구였던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생존을 위한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 절박하게 책을 보았던 그 때에 비하여 다소 느긋하게 즐기는 퇴근 후의 도서관 나들이는 나를 행복하게 한다. 보편적 진실, 난해한 진실, 아름다움을 찾아 침침해지는 눈을 다독이며 일독을 넘어 2독 3독으로 넘어가는 책을 만나는 날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을 모른다. "어떤 글이든 처음 읽을 때 보편적인 진실이 드러나고, 두 번째 읽을 때 좀더 난해한 진실이 드러나고, 세 번째 읽을 때 아름다움이 드러난다면 그 글은 완벽한 글이다."라고 한 소로우의 일기를 만났던 날도 여름이었으니, 여름은 도서관과 잘 어울리는 계절이다. 도서관은 보편적인 진실과 난해한 진실, 그리고 아름다움을 지닌 내 인생 최고의 스승들을 만나는 인생의 대학이다. 그거름장치를 통과하는 책은 장서로 갖고 싶어하지만 이미 품절된 책들이 많은 것이 마음 아프다. 그런 책의 예가 바로 한국의 스승이다. 성경이나 불교 서적, 공자나 노자, 장자의 책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천둥치는 一字千金의 글들이 넘쳐나서 사서 보려했으나 품절 상태다. 그 동안 책을 보는 시각이 너무다른 나라 사상을 담은서적에 편향되었음을 반성하게 한 책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지켜보면서 필요한 경우에 적절하게 개입하면 된다. 인간들이란, 특히 지구의 인간들이란 꽤나 안쓰러운 존재들이다. 그들의 욕망은 끝이 없다. 그들은 항상 근심 걱정에 사로잡혀 있으며 아무것이나 믿고 의지하려고 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소원을 들어 달라고 애원하기 일쑤다. 우리는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그들을 돕는다. 로또에 당첨되게 해주기도 하고 위대한 사랑을 만나게 하기도 한다. 때로는 우리의 기분에 따라 자동차 사고나 심장마비를 일으키기도 하고 건물 벽에 금이 가게도 한다." 라고 쓴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나무에서 어린 신들의 학교의 한 장면은 꼭 나를 두고 쓴 글 같아서 한참이나 서성거렸다. 윈스턴 처칠은 "쓸데없는 생각이 자꾸 떠오를 때는 책을 읽어라. 쓸데없는 생각은 한가한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지 분주한 사람은 느끼지 않는다. 시간이 생길 때마다 유익한 책을 읽어 마음의 양식을 쌓아 두어야 한다." 며 가을이 주는 우울함을 날려버리게 한다. 책 읽는 속도가 더딘 책은 김대중 자서전이다. 존경하는 인물이라서 그 분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 부끄럽게 하는 책이다. 역사의 물줄기를 되돌아보며 중요한 순간마다 고뇌했던 위대한 지도자의 숨결이 숨쉬는 행간에서 만나는 보편적 진실과난해한 진실, 그리고 끝없는 용서와관용으로 민족을 품고 싶어했던 지도자의 아름다운 진실은 이 가을에 만난 최고의 선물이다. 인생은 가을 옷 같아요 인생은 가을 옷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날씨를 내다보며 한 번 거칠까 말까 하다가 달려온 겨울 앞에 쏙 들어가 버리는 옷처럼 교실에서 보낸 30년 끝자락에 어느 사이 겨울이 손짓한다. 그래도 직업의 특성 덕분에 책과 함께 살 수 있어서 행복했고 앞으로도 그 행복은 나를 지켜줄 든든한 친구이자 최고의 스승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뭐부터 먹을까 생각을 한다. 당연히 책이다. 그 다음은 물, 그리고 밥이다. 간혹 순서가 바뀌기도 한다. 물부터 먹기 때문이다. 책부터 먹지 않은 날은 하루가 상큼하지 못하다. 영혼은 21g뿐이지만 포만감을 느끼는 최고 음식은 단연 책이다. 책은 바로 영혼이라는 엔진을 달리게 하는 에너지다. 그렇다고 질이 좋지 않은 엔진 오일이나 휘발유를 주입하면 수명이 짧아지고 사고를 일으키기 쉽다. 그러니 온전히 살기 위해서는 좋은 책을 많이 만나야 한다는 걸 절실히 깨닫는다. 그 동안 더 잘 먹고 잘 입기 위해 앞만 보고 살아온 시간이 후회스럽다. 다산 정약용은 우리 몸 중에서 가장 속이기 쉬운 것이 위장이라고 했다. 거칠게 먹고 검박하게 먹어도, 잘 먹지 않아도 쉽게 배부름을 느낄 수 있으니 육신을 위해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혼의 양식을 위해서는 한 치의 양보나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아야 함을 몸소 실천했던 그는 결코 과거의 스승이 아니라 살아있는 스승이 분명하다. 죽었음에도 결코 죽지 않은 인류의 스승들이 남긴 책들 속에서 살아 있으면서도 산 것처럼 살지 못하는 내 삶을 비추어보며 짧은 가을 해가 지기 전에 부지런히 글밭을 뒤적이고 싶다. 그곳에는 마지막 숨을 할딱이는 순간까지 나를 지켜줄 인생의 스승이 수도승처럼 조용히 죽비를 들고 서서 나를 기다려주기 때문이다.
11월 11일(목요일)은 '빼빼로' 과자를 주고받는 '빼빼로 데이'. 숫자 '1'을 닮은 가늘고 길쭉한 과자 '빼빼로'처럼 날씬해지라는 의미에서 친구끼리 빼빼로 과자를 주고받는 날. 아이들은 이날 빼빼로를 꽃다발 모양이나 하트모양으로 꾸며 선물하면서 다이어트에 꼭 성공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거나, 식사 대신 빼빼로를 먹으며 롱다리가 되라는 말을 전한다고 한다. 등교하는 아이들의 손에는 누군가에게 줄 각양각색의 빼빼로가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학교 앞 마트에는 빼빼로를 미리 준비하지 못한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언제부터인가 이날은 아이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이것을 만드는 제과회사 또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교실 문을 열자, 아이들은 누군가에게 줄 빼빼로를 책상 위에 펼쳐놓고 열심히 포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빼빼로를 먹으면서 수다를 떨었다. 수능시험(18일) 일주일을 남겨놓고 오랜만에 아이들이 갖는 여유였다. 아이들의 표정은 다소 긴장되어 있었으나 왠지 편안해 보였다. 문득 빼빼로 데이가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만 주는 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대부분의 책상 위에는 형형색색의 크고 작은 빼빼로가 놓여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다 내 시선이 멈춰선 곳은 한 여학생의 옆 자리에 놓여 있는 빼빼로가 가득 채워진 큰 바구니였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그 바구니 선물을 준비하는데 족히 5만 원 이상을 투자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 바구니는 만난 지 백 일이 된 기념으로 남자친구가 보낸 거라고 하였다. 문득 빼빼로 데이에 아이들이 빼빼로를 사는데 지출한 돈이 얼마인지 궁금해졌다. 우리 반 아이들의 경우, 대부분이 삼천 원 미만이었고 몇 명의 아이들만 만 원 이상의 돈을 지출하였다. 그런데 남자친구로부터 큰 바구니 선물을 받은 그 아이는 삼만 원 이상의 돈을 지출하여 아이들을 놀라게 하였다. 빼빼로를 준 대상으로 친구가 제일 많았고 다음으로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형제와 부모님께 선물한 기특한 아이들도 있었다. 빼빼로의 크기와 종류에 관계없이 아이들은 빼빼로를 먹으며 즐거워하였다. 어떤 아이들은 빼빼로를 서로 양 끝에 물고 장난기를 발동하기도 하였다. 잠시 뒤, 아이들은 사랑의 하트모양으로 장식한 빼빼로를 내게 건네며 수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을 약속하였다. 그리고 며칠 전 계단을 내려오다 발을 다쳐 깁스한 여학생에게 빼빼로를 건네주며 빠른 쾌유를 빌기도 하였다. 11월 11일 ‘빼빼로 데이’이자 G20 서울 정상회담이 개최된 오늘 시국이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였으나 아무런 동요 없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나 너무나 아름다워 보인 날이었다. 모(某) 대기업의 지나친 상술이 조금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으나 바쁜 와중에 아이들은 하나둘씩 작은 추억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