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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변하기 위해선 교사부터 변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변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단순히 실력을 키우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특성상 우물안의 개구리는 절대 발전할 수 없습니다.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움으로써 안목을 넓히는 것이 궁극적으로 교육력 향상의 밑거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올 겨울도 중국에서 귀한 손님들이 학교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분들은 바로 중국 합비시 제일중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입니다. 2002년부터 자매결연을 맺고 매년 여름과 겨울방학에 학생과 교직원들이 정기적으로 교류를 하는데, 겨울에는 선생님들만 상호 교환 방문을 합니다. 학교에서는 이번에 오시는 중국 선생님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기 위하여 이른 아침부터 교문에 환영 현수막을 부착했습니다. 머나먼 이국땅에 오시는 선생님들이 환영 현수막을 보면서 좀더 친근한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인천시교육청은 2006학년도 유치원, 초등·특수학교 교사 임용후보자 선정 경쟁시험에 최종합격한 408명(유치원 35명, 초등교사 350명, 특수학교(초등) 교사 12명, 특수학교 교사(치료교육) 11명)에 대한 직무연수가 10일까지 계산초등학교 등 4개 연수장에서 실시된다.
나는 충남 서산의 아주 작은 시골 학교를 졸업했다. 정식 초등학교도 아니고, 초등학교에 부속된 분교를 졸업했지만, 이 작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이 항상 자랑스러웠다. 도시의 아이들과는 달리 정말 살아있는 수업을 했던 경험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바다 생물을 잡으러 갯벌로 달려가고, 플라나리아를 잡으로 깊은 산속으로 다같이 체험 학습 가고, 수영을 배우러 바닷가로 가고...정말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1학년일 때에는 무려 100명이 가까운 학생들이 재학중이었고, 졸업할 때에는 절반으로 줄어 50여명 정도의 학생이 몸 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소식을 들으니 15명 정도의 학생이 작은 학교를 지키고 있다는데, 학교 형편이 많이 좋지 않은 것 같다. 몇 년 전에는 폐교 문제로 전교생이 몇 달 간 등교 거부를 한 적이 있었고, 지금도 몇 년 안의 폐교는 기정사실화된 사안이다. 전교생 15명에 교사는 3명, 학교 관리인도 없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이른 바 소사아저씨라 불리는 분이 계셔서 학교 구석 구석을 관리해 주셔서 우리 분교는 정말 동화 속에 나오는 학교 같았다. 그러나 며칠 전 찾아가 본 학교는 그야말로 폐허가 다름 없었다. 건물 안은 그런대로 깨끗하지만, 바깥은 가꾸는 이 없으니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고, 쓰레기장은 태우지 않은 쓰레기들로 가득차 있으며, 학교로 오는 길도 그리 깨끗하지 만은 않았다. 졸업생의 입장에서 보기에 매우 안타까웠다. 비록 넓은 운동장, 넓은 교실, 큰 학교에서 배우는 아이들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아이들로서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뛰놀며 배울 수 있는 권리는 시골의 아이들이나, 도시의 아이들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시골에서만 얻을 수 있는 귀한 체험들을 시골에 살면서도 열악한 교육 환경 때문에 체험하지 못하는 우리의 시골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구정을 보내고 인천으로 귀가하는 도중에 휴게소에서 차를 마시면서 두리번 하던 차에 안목에 들어온 것은 “가훈을 무료로 써 줍니다”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스님이 한지를 펴 놓고 여러 한자 성어를 쉼터의 귀성객에게 정성껏 써 주고 있었다. 마침 학교 면학실에 학생들의 마음에 강한 학습 동기를 불어 넣을 글귀가 생각나 “거안사위(居安思危)” “장자불와(長坐不臥)”를 청했다. 거침없이 써 내려가는 거사의 붓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현재를 태평스럽게만 살아가면 먼 훗날 자신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는 헤쳐나기 어렵다는 거안사위와 오래 앉아 있기 위해서 눕지 않는다는 열반에 드신 성철 스님의 좌우명 장좌불와는 학업에 정진하고자 하는 이에게 큰 자극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서 휴게소를 나왔다. 고등학교 3학년! 이들에게 진학의 새로운 각오를 불러일으킬 마음의 촉진제는 하나의 물질적인 선물보다도 영적인 감흥을 일으킬 “거안사위(居安思危)” “장자불와(長坐不臥)”를 주고 싶었다. 성철 스님의 성전을 방문했을 때 느낀 그 평범한 좌우명은 학업에 정진하는 자에게는 마음에 새겨야 할 정신적인 지주라고 느꼈다. 학업에 열중해야 할 학생들의 그 순수성은 현대 물질 문명의 세속화에 계속 희석되어 감에 따라 기성세대의 신세대에 대한 근심은 더욱 깊어 가고 있다. 특히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대학 입시라는 미명 아래 오로지 좋은 입시 성적을 산출해 내는 데 온갖 열정을 쏟다 보니, 자연히 인성 교육은 뒷전에 머무르고 마는 형상마저 만들고 있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공부다운 공부에 열중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학습을 하는 데도 자기 나름 대로다. 7차 교육 과정에서 내세우는 자기주도적 학습이라면 오죽 좋겠느냐 만은 그것도 아닌 자신들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규율 없는 공부를 원한다. 이들에게 자신이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좌우명이 무엇인가에 질문해 보면 각 반에 제대로 대답을 하는 학생들은 드물다. 각 반에도 급훈이 있어 그 급훈을 담임이 새 학년이 시작되면서 학생들의 내면에 그 의식의 자리매김을 간절하게 주입시키고, 그에 따라 자신의 좌우명을 설정하도록 훈화를 한다면 학생들에게 지(知)와 의(義)를 겸하는 교육이 되지 않을까? 가훈과 급훈 그리고 교훈! 그것은 가정과 학급 그리고 학교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끌어 갈 목적으로 설정해 놓은 셈이다. 학습을 통해 학급의 성적을 올리고 각각의 학생들의 인성을 바람직하게 이끌어 가는 데는 담임은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학급에 급훈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는 학생들에게 미치는 효과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학생들의 내면에 자신의 좌우명을 지니고 학습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오늘날 학생들의 학업과 생활 지도는 전문적인 이론과 체험을 바탕으로 신세대를 지도하고 가르쳐야 학생들에게 효율적인 교육이 되지 않을까? 사랑으로 가르치고 칭찬하는 마음으로 지도하는 자세가 절실하게 필요한 지금의 학생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교사들의 사랑과 자애로움이 신세대에게 전해줄 마음의 여유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지난 두 달 사이 ‘성범죄자 교육기관 고용 규제법’ 를 둘러싸고 교육부 지침과 내무부(경찰) 지침사이의 모순이 불거져, 루스켈리 교육부 장관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1월말, 영국 동남부, 놀위치지역, 히웻 중등학교에서 채용한 임직 체육교사의 사건으로, 12월 한 달 동안, 놀위치교육청, 지방경찰청, 당해 학교 그리고 교육부사이에서 ‘공문’으로만 오가다가 겨울방학이 끝난 1월 2째주부터는 학부모 단체, 교사노조, 아동보호단체 등이 문제제기를 하면서 여론화됐고어, ‘성범죄자 규제’ 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져, 1월 중순에는 교육부 장관의 역량 문제제기와 함께 사임설까지 흘러나왔다. 히웻 중등학교의 교장 사마인씨는 리브라는 전직 체육교사를 6개월간 임직 체육교사로 고용하면서, 리브씨가 경찰이 보유하고 있는 ‘성범죄자 요주의 인물(리스트99)’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교장은 채용여부를 결정하지 못해 교육부에 문의한 결과, 전직 교육부 차관보였던 호웰씨의 권한으로 "경미한 사안이라면, 채용 결정자의 재량에 맡긴다" 라고 했던 ‘전례’를 발견했다. 결국 교장은 리브씨를 ‘위험한 정도가 아니다’라고 판단하고 채용을 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리스트99’에 올라와 있는 요주의 인물들을 감시하고 있던 경찰은 리브씨가 학교에 고용된 것을 발견하고, 즉시, 놀위치 지방교육청에 경고를 했고, 이 경고는 다시 학교장 사마인씨에게 통보되고, 리브씨는 채용 이틀만에 해고 되었다. 교장은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판단을 했지만, 지역에서는 ‘교장으로서의 오판’을 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었고, 그는 교육부 장관에게 직접 해명을 요구했다. 교육부장관 켈리는 "리브씨의 기록을 점검해 본 결과 ‘고용에 문제없다’ 라고 판단한다" 라는 답신을 보냈다. 이러한 켈리 교육부장관의 답신은 불과 일 주일 사이에 여론화되어, 내무부, 학부모, 아동보호단체, 노조, 등에서 여러 갈래의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논쟁의 핵심은 교육부 쪽에서는 "‘경미한 사안의 인물’은 경찰이 보유하고 있는 ‘리스트 99’에서 빼라"는 것이었고, 경찰 (내무부)은 "그 결정은 전문가를 고용하여 판단해야 될 ‘우리소관’의 일"이라며 교육부장관의 월권행위에 불쾌감을 표시했다. 더욱 문제가 된 것은, 전직 차관보, 호웰씨의 ‘견해와 해석’ 에 의해 일부 학교장들은 이미 ‘리스트99’ 에 올라와 있는 ‘성범죄 요주의 인물’을 고용하고 있는 상황이고, 교육부는 이러한 사람이 몇 명이 고용되어 있는지조차도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알려지자, 학부모단체와 전국아동보호협회에서는 “그런 위험한 사람들에게 아이를 맡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라고 발끈했다. 학부모와 아동보호협회에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배경에는 지난 2003년, 켐브릿지 지방의 ‘소함’이라는 지역에서, 9세와 10세, 두 여아가 ‘학교 잡부’로 고용된 헌틀리라는 남자에 의해 유괴, 성폭행, 살해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사건의 조사 후에, 헌틀리는 이미 절도, 상해, 성폭행의 전과가 수차례 있었지만, 경찰은 그 위험을 학교에 통보하지 못했다는 맹비난을 받았고, 이후 경찰은 ‘성범죄 전과자, 요주의 인물’의 리스트를 작성해, 아동교육보호시설에의 취업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여기서 모호한 부분이 경찰이 작성한 ‘요주의 인물’ 의 규정이다. 리브씨의 경우, 2003년 영국경찰이 미국의 FBI와 공동으로 벌인 대대적인 ‘차일드 포르노 소탕작전’에서 검거됐으며, 학교 체육 교사로 고용되어 있던 그는 미국의 차일드포르노 웹사이트에 접속을 하고 다량의 사진을 다운로드 받아 하드디스크에 저장을 하고 있었다. 그는 ‘어린이 성학대 사진 소지’ 의 죄목이 적용되었고, 학교에서는 해고되었다. 지금은, 이러한 개인의 성적 성향 ‘집착’ 을 ‘범죄행위’로 봐야 되는지 아닌지로 그 논란이 번지고 있다. 교육부로서는 경찰이 작성한 ‘리스트99’에 의해 해고된 교사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도 되지 않고 있으며, 또한 교사들 중에 그런 사진을 가지고 있는 사람 또한 얼마나 되는지 파악이 안 되고 있다. 그리고 버커셔 지방교육청은 ‘남자 어린이의 나체사진’을 사진을 컴퓨터 하드에 저장하고 있었다는 혐의로 해고 된 교사를 "여자 중고등학교에서는 근무가 가능하다" 라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번 사건으로 켈리 교육부 장관은 여권 당내에서 교육부의 수장으로서 교육행정을 일관되게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역량에 대한 의심’을 받고 있다, 더구나, 지난 해 12월에 국회에 통과 예정이었던 ‘2006년 교육개혁법’도 아직까지 통과시키지 못함으로서 그의 사임 압박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교육부는 최근 ‘우리 몸에 영양이 되는 체조’ CD를 제작해 전국 6179개 초등학교에 보급했다. 식습관이 서구화된 데다 놀이문화 변화, 소규모 가정 증가로 홀로 지내는 어린이가 늘어나 신체 움직임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나날이 심각해져가는 어린이 비만 문제를 간단한 학교 체조를 통해 줄여보자는 취지다. 이번에 제작된 CD는 신체 각 부위의 긴장을 풀어주는 체조, 졸음을 쫓고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체조, 키 크기 체조, 몸치 탈출 체조, 친구와 함께 하는 체조 등 2분 내외의 체조 10종을 담은 3D 동영상물이다. 체육과 교육과정 개발위원인 장용규 서울교대 교수와 국제체조심판인 이은미 서울목원초 교사의 자문을 받아 기존에 많이 통용되고 있는 동작 위주로 친근한 음악을 곁들여 제작됐으며, 특히 초등학생들에게 익숙한 어린이 캐릭터와 교육부 캐릭터인 ‘배움이와 희망이’를 활용한 점이 눈에 띈다. 교육부는 이 영상물을 각 학교의 교실 내 PC에 설치해 필요한 시간에 활용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중·고등학생용도 개발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정도로 현장 반응이 좋다”면서 “학교 현장에서의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영상물은 이달 20일에 교육부 홈페이지(www.moe.go.kr)에도 탑재될 예정이다.
최상근 |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점수를 평가의 잣대로 삼는 것이 문제 모 고등학교에서 같은 학년을 가르치는 국어과 교사 간에(4명) 협의 부족으로 출제범위와 방향이 다르게 고지되어(출제는 편의상 돌아가면서 맡고 있는 것 같음) 학급 간에 평균 차가 크게 났고(약 20점 정도), 그제야 교사들끼리 협의하여(학생들에게 미안해서가 아니라 내신 등급표에서 이 결과가 다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재시험을 치루게 하였다. 학생들 모두가 기분 나빴지만 학교내신제 때문에 불평도 못하고 수용하였다. 학부모들에게는 일언반구 공식 멘트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학교는 여전히 운영되고 있으며, 아무런 사고도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런 학교는 공급자 중심의 교육을 시행하였던 과거 전통적인 학교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학교에서는 교사에게 전문성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중학교 국어과 선생님이 한 반 평균을 82점에서 85점으로 올렸다. 이 선생님은 유능한 선생님으로 평가받는다. 반 평균 성적을 무려 3점이나 신장시켰으니, 유능한 선생님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한 반의 학생이 80명일 때에도 이런 선생님이 유능한 선생님이었고, 한 반의 학생이 35명 정도인 오늘날에도 이런 선생님이 유능한 선생님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12년간 성적이 올라가면서 성장한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갈 때에는 국어가 가장 어려운 과목이고, 별도로 과외를 해야 하며, 옛날에 비해서 국어 실력이 뒤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다른 과목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학년 전체에서 담임한 반이 몇 등이냐가 잣대가 되는 담임교사의 능력 평가 체제가 수 십 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늘 선생님은 유능했는데, 늘 점수를 향상시켰는데, 학생들의 실력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이처럼 점수는 아무 것도 말해주지 못하는 데에도 그 점수에 매달려야 하는 우리 학교사회의 맥락에서, 정작 유능한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일까? 전통적인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야 학급 학생들에게 교육과정을 실행하면서 교사는 전체성 또는 평균성, 타율성, 획일성, 경직성을 강조하는 전통적 교육에서의 학습 원리를 고집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여럿이서 뭉친다고 될 일도 아니다. 학생들의 특성에 관계없이 경직되고 획일적으로 사전에 편성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기술자에서 한 단계 격상하여야 한다. 전체 학생들 중 평균적인 학생들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어 일제식으로 수업을 전개하는 방식은 어느 학생에게도 유익하지 못하다. 학부모나 학생의 특성과 요구와 관계없이 교사가 일방적으로 조성한 교과 학습 환경은 교사의 전문성을 의심케 한다. 이제 교사는 학생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유연하고 다양한 교육과정을 편성 운영하여야 한다. 학생들의 개별적 또는 전체적 특성을 고려하여 적절한 수업행위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이를 실행에 옮겨야 한다. 학생들이 자기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추어 자율적이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점을 강조하여야 하며, 학습자의 특성에 맞게 다양한 학습 환경을 제공해주어야 한다(김차식, 2001). 교사는 담당하고 있는 교과목을 대상으로 교수 실천에 대한 지식, 내용지식, 교육과정 실행 지식에 정통한 자들이어야 하며(Doyle, 1990), 그러한 선생님들만이 유능한 선생님이다. 교수 실천에 관한 지식은 특정한 교사의 행위나 행위체제가 교실에서 사용되어졌을 때 어떤 결과를 낳았느냐에 대한 지식이다. 또한 내용지식은 교과지식과 교수적 내용 지식을 말하는 것으로 전자는 교과의 구조에 대한 이해, 개념적 조직의 원리에 대한 이해, 그리고 탐구의 원리에 대한 이해인 교과지식를 말한다. 후자는 교사가 갖고 있는 내용 지식을 교수적으로 강의하면서 학생들의 능력과 배경에 따라 교수학습 활동에 적합한 형태로 변형시키는 능력을 말한다. 그리고 교육과정 실행지식은 교육과정의 실행을 형성하는 교실내의 구조와 과정에 대한 것으로 교실이 어떻게 운영되는가, 교수 효과가 어떻게 일어나는 것 등에 대한 지식을 말한다. 스스로의 지식과 기술에 따라 결정 교사는 자신의 지식과 기술에 따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재량권을 행사한다. 교수자의 일은 단순한 과정을 요구하고 사전에 주어진 지침에 따라 수행해야 하는 것으로 이루어야 할 목표와 목표달성을 위한 실행의 절차가 객관화·일반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교수자의 일은 출발점에서부터 가시화·일반화될 수 없는 개성적 대상과 목표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실행과정에 시종일관 개별성과 우연성이 수반되기 때문에 교육받는 대상의 고유한 가능성과 교육적 필요를 포착하는 일에서부터 그에게 가장 의미 있는 경험의 소재들을 선정·해석·번역하여 전달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서 끊임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허병기, 1994). 그렇게 때문에 교사에게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이며, 유능한 교사의 판정 여부도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고객이 코를 높여 달라고 해서 코를 높여주고, 눈을 크게 해달라고 해서 크게 만들어주는 성형외과 의사처럼, 과학자를 원한다고 해서 과학자를 만들고, 피아노 연주자를 하고 싶다고 해서 피아노 연주자를 만들어 주는 그런 교육을 수요자 중심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형외과 의사도 고객의 건강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시술을 하지 않듯이, 교사도 학생과 학부모가 원한다고 해서 주문에 무조건 응하는 일을 자신의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이돈희, 2000). 교사는 도덕적·전문적 책무성을 담보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학생, 학부모의 주관적 요구와 필요에 응하며, 그에 부응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전문성을 발휘하여야 한다. 즉 학습목표와 학습활동과의 연계성 모색, 학습의 개별화 전략의 수립 실천, 교과 병행 학습과 통합 학습의 적절한 활용, 소집단 학습의 구성 및 학습 방법에 대한 이해와 실천, 학생의 학습 계획 참여 여부 및 방법 결정, 토론 학습에 관한 연구, 훈련 및 학습 결과에 대한 종합 토론 실시, 학습 결과 정리 및 확인 등과 같은 전문적 지식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이용숙, 1997). 우리나라 교사들은 학생의 특성과 정보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인식을 대체로 가지고 있으며, 주된 방법은 학생과의 접촉 또는 면담(46%), 학교생활기록부(31%) 등이었다. 학생지도활동에 가장 중요한 학생 특성·정보의 내용은 성적수준(46%), 태도 및 성격(36%)의 순이라고 한다(최상근, 1999). 이와 같이 교사들이 학생의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조사연구에서 볼 때, 전체 교과목을 대상으로 한 점수, 그것도 아마 전체 학생 가운데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순위에 관한 의식을 중심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교사들의 학생 파악 실태는 위에서 기술한 전통적 교육 상황에는 적합하다거나 효과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그런 풍토가 우리 학교사회를 주도해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지향하고 있는 학생, 학부모를 교육 공급자 입장에서 보지 않고, 교육의 선택권을 갖고 있는 고객이며, 교사의 전문성과 존재적 의미는 그러한 수요자의 필요와 요구에 부응하는 수요자 중심의 교수 학습을 지향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교사는 막연한 점수 중심의 학생 정보에 그치지 말고 자신이 담당하는 교과, 그것도 교과에서 가르쳐야 할 주요 내용 영역별로 구체적인 학생 개인별 정보를 파악하여야 학생 개인의 필요에 부응하는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사는 가르친 학생들의 능력 대변 각 교과별로 학년별로 교수하고자 하는 내용 영역이 있을 것이다. 그 내용 영역별로 각 개별 학생들의 출발점 단계에서의 이해도 수준을 진단해야 한다. 대체로 주지교과(여기서는 수업시수가 많은 교과를 말함)의 경우, 학교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4~6개반(100~200명)을 담당한다. 이 담당하는 학생들의 내용 영역별 출발점 정보를 소상히 파악·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수업 장면에서 학생에게 무작정 '그것도 모르니' 하고 못을 박아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학생들의 학습 실태와 수준과는 전혀 관계없이 교사 나름대로 작성한 천편일률적인 교육 내용의 전달식으로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각 학생별로 내용영역별로 연간 지도 계획(방법)과 목표달성 내역을 작성하여 운영함으로써 주먹구구식 전체적, 일제식 수업을 지양하고, 맞춤형 수요자 중심 교과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 이러한 교육과정 운영 및 실행자만이 전문직으로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 실태가 그러할 때에 전문직으로서의 평가를 요구할 수 있다. 즉 전문직으로서의 교사의 업적은 교사 본인이 작성하고 수행한 내용, 영역별 성취도, 진단-교육과정 및 수업지도 운영-목표 달성도에 대한 자체 또는 전문가 평가를 통해서만이 평가되어야만 하며, 그 결과를 통해서 유능한지를 이야기 할 수 있다. 위와 같이 수행한 교사는 자신이 가르친 학생 하나하나에 대해서 각 내용영역별 습득 수준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국어과를 예로 할 경우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 등으로 구분하여 학생이 갖고 있는 능력과 부족한 점 등을 지적할 수 있으며, 앞으로 어떤 노력을 더 경주해야 하는지 등에 관하여 자신의 입장을 후임 교사에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잘 못하는 아이와 잘 하는 아이로만 구분되어 후임교사에게 인계인수되고 있는 낙인의 현실을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교직 활동을 위해서는 동일교과 교사간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전문성 중심으로 상호 협력하고, 각자의 전문성을 제고할 수 있는 과업지향적 교과 풍토 조성을 위한 노력이 중요할 것이다. 매년 교사가 바뀌고, 독자적 전문성(예컨대 비밀주의, 폐쇄주의 같은 것)만을 중시하려는 교사들의 그릇된 직무 태도에도 변화가 일어나야 할 것이다.
최원호 | 서울 중동고 교사 가르치는 기술 이상의 것이 필요 필자의 대학시절을 회고해보면 사범대를 다니는 동안 교사로서의 꿈을 탄탄히 키워온 것 같지는 않다. 사범대를 다니는 4년 동안 앞으로 교사로서의 생활이 어떠한 것인지 정확히는 커녕 감도 잡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진정으로 교사라는 직업을 원하고 있는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직업이 아닌 교사를 직업으로 택한 것은 주일학교 교사로서의 경험 때문이었던 것임은 확실하다. 사범대를 다니는 4년 내내 초등학교 1~3학년에 해당하는 유년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필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어느 정도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꿈을 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사는 가르치는 기술자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1997년 필자는 강남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하였지만 그 전 6개월 간 공립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서의 경험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기간제 교사로서 정식 교사들에 비해 책임이라는 것에 상당히 자유로울 수 있었고 열심히 가르치기만 하면 됐었다. 그 때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느낌은 '이렇게 재밌는 직업이 또 있을까?'였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였지만 고등학교 1학년 공통과학을 가르칠 때는 생물을, 2학년 문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물리1, 고등학교 2학년 이과 학생들을 대상으로는 화학2를 가르치면서 수업준비의 부담과 다른 전공에 대한 불안감이 상당히 있었을 텐데, 늘 수업 시간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고 준비한 내용을 학생들에게 빨리 가르쳐주고 싶었다. '여기서는 조금 지루하니까 이런 농담을 해야지'하는 식의 굉장히 자세한 대본을 짜서 수업에 임했던 것 같다. 사범대학 4학년 때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 짜보았던 지도안의 형식 그대로 말이다. 솔직히 매시간 학생들과 만난다는 기대감보다는 준비한 내용들을 빨리 가르치고 싶어 몸달아 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필자는 남자 고등학교의 정식 교사가 되었을 때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정식 교사가 되었을 때인 1997년을 회상해보면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꿈에 그리던 명문 사립고에서 교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는 기쁨으로 교직생활은 즐거웠지만 임시교사로서 있었던 6개월 동안 발견하거나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을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임시교사 때와 마찬가지로 정식 교사로서의 첫 해는 학생들을 위해 나름대로 수업 교안을 열심히 준비했었다. 한 시간의 수업을 위해 3~4시간은 교재 연구에 매달렸고 머릿속으로 수업하는 모습을 미리 상상해보면서 수업교안을 고쳐나갔고 매시간 수업에서 부족했던 점을 반영하여 다시 수업교안을 수정해 나갔다. '분필수업'은 소극적 반응 보일뿐 하지만 필자가 알아챈 것은 교사 혼자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학생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특이한 몸짓을 연구해 가면서 학생들을 수업에 빠져들도록 노력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학생들의 반응은 소극적이었다. 그 동안 필자는 교안과 칠판을 열심히 보면서 가르쳤던 것 같고 학생들의 눈과 가슴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열심히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학생들은 열심히 듣는 것뿐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말 그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고 필요한 내용을 잘 정리하여 가르치고 있는지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학점을 따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던 화학이 고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기에는 적당치 않았다. 사범대학교를 다녔으면서도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지 고민하지 못했기 때문에 화학을 단지 시험점수를 잘 받아야만 하는 하나의 과목으로만 인식했었던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화학의 정수를 맛보게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화학 교과서에 들어있는 내용은 오랜 세월 수많은 과학자들의 실험에 근거하여 세워진 이론, 법칙, 사실들이다. 이 내용들을 분필 하나만으로는 가르칠 수는 없다. 학생들을 이해시킬 수는 있지만 진짜 화학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실험을 통하여 눈으로 확인하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필자는 정보가 부족했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 흉내만 내었던 어려운 대학교의 수많은 실험들은 고등학교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수업시간엔 교과서에 몇 개 나오는 실험을 흉내 내어 볼뿐 실험을 어떻게 구성해야할지, 무슨 재료가 적당한지, 양은 어느 정도 해야 하는지, 안전의 문제는 괜찮은지 등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필자는 비슷한 고민을 하는 교사들과의 만남을 갖기로 하고 서울·경기 지역 과학교사들의 모임인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에 매주 화요일마다 참석하기 시작했다. 멀리 인천과 평택에서까지 매주 그 모임에 참석하는 교사들이 있는 것을 보면 과학교사들이 얼마나 목말라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모임은 학생들에게 과학을 신나고 재밌게 가르치기 위한 실험방법을 창의적으로 개발하거나 기존 실험을 교육과정에 맞춰 재미있게 변형하는 연구모임이었다. 필자는 정식교사가 된 1997년에 그 모임에 등록하였는데, 매주 참석해야 하는 성실함이 없었는지 장기결석에 들어가고 말았다. 역시나 그 당시 갈구하고 있었던 것은 얄팍한 실험 기술이었다. 그곳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그런 실험 기술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 대신 교육청 주관 여러 실험연수에 나가서 수많은 실험을 배웠고 교과서에 나오는 실험도 거의 다 해보았다. 하지만 교사 대상의 실험연수는 교과서에 나오는 많은 실험을 배우는 기회는 제공했지만 그 실험 속으로 빠져들 수 있게는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연수가 끝나고 나면 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다시 고민했었고 그러다가 실험보다는 개념강의 위주의 수업으로 다시 돌아가기 일쑤였다. 1999년부터 다시 그 교사연구 모임에 출석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정식 활동한지 6년이 되었다. 그 동안 화학을 포함하여 다양한 분야의 실험과 답사 경험을 쌓으면서 실험에 자신이 생긴 것도 긍정적이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실험을 포함하여 교수활동의 시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수업을 '가르치는 기술에 숙련된 사람이 학생들에게 과거의 지식을 전수해주는 시간'으로 여겼던 필자는 수업을 '학생들이 수업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경험과 사고과정을 이용해 과거의 지식을 전수받음과 동시에 주관적으로 재해석하는 활동'이라고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교사로서 생각하지 못했던 학생의 존재를 관객에서 주인공으로 격상시켰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수업을 화려하게 잘 진행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수업에 잘 동참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동료 교사들 간 정보 공유가 중요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과학교사들의 연구모임에서는 매주 두 명의 교사들이 순번을 정해 실험을 연구하여 발표해서 동료교사들의 수업진행 방식을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과학시간에 매번 준비하면서 해보기 어려운 다양한 실험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서로 개념적으로나 방법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점들을 토론하여 해결하는 과정은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에 참석하는 과학교사들의 수준을 한층 올려 주었다. 특히 겨울방학과 여름방학에 일종의 과학교실과 과학캠프를 운영하면서 새로운 실험을 개발하였고 과학 동아리 학생들과 실험을 발표하는 경험을 가지면서 실험을 교수학습 방법의 한 도구 정도로만 바라보던 인식을 바꾸어 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교사들의 연구모임에서는 그 실험의 개발과정과 실험의 장단점을 함께 토론하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토론과정도 가지면서 단순한 테크닉만 익히던 실험교사 연수와 달리 실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어려운 임용고시에 합격하여도 학교에서 가르칠 자신이 없다면서 교사모임의 문을 두드리는 초임 선생님들을 보면서 과학교사로서의 중요한 능력을 대학시절에 키워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필자가 교사가 되기 전과 초임 교사시절에 생각했던 교사는 개념적으로 잘 구성된 교안을 가지고 잘 가르치는 교사이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는 좋은 교사도 그러한 교사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개념적으로 잘 구성되었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다. 대학시절 동안 배운 것을 학교 현장에서 다시 가르치기에는 너무 부족한 것이 많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교사의 중요한 사명임을 느꼈다. 그렇지만 어느 한사람이 변한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이 아니다. 학교와 교사의 목표는 학생들을 훌륭하게 양성하여 좋은 대학에 합격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앞뒤의 순서를 바꾸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진정한 교육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경쟁적인 방법으로 교육을 받아온 학생들은 한가하게 '진정한 교육' 따위를 논할 시간이 없었고 학부모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치열한 현실 속에서 학교가 살아남기 위해 많은 학생들을 그들의 소원대로 포장해주어야 했고 교사는 그런 역할을 잘 수행하여 학교의 위상을 높여야 하는 사명을 가져야 했다. 학창시절 경험했던 1차원적인 목표를 교사로서 다시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진짜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학생들에게 실컷 베풀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학문의 진수를 경험토록 유도해야 요즘 필자는 과연 이렇게 빨리빨리 서두르는 선행학습 위주의 공부가 진짜 효과적인지 반문하고 있다. 최소한 과학에서는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1차적인 목표를 삼는 대학입학 시험에서 조차도 천천히 학문의 진수를 맛보면서 커나가는 학생들이 훨씬 우수하다는 것을 필자는 경험했다. 하지만 한 나라의 전체 학생이 이상한 교육방방법에 얽매인 상황에서 개인이 알고 있는 방법으로 주위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개혁하려는 움직임은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필자가 속한 과학교사 연구모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목과 다양한 방법적 수업을 추구하는 다양한 모임이 생겨나고 있다. 교육학자들과 학부모 그리고 학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단지 대학 입학을 위해 문제풀이 적응력을 높이는 것이 아님을 교사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입시라는 현실 속에 서로의 진정한 속내를 감추고 살아가고 있다. 이런 현실의 극복은 학생들이 진정한 공부를 해볼 수 있고, 교사가 스스로를 진정한 스승으로 인정할 수 있을 때 이루어 질 것이다.
장옥순 | 전남 구례 토지초 연곡분교장 교사 당황스러움으로 시작한 교사생활 1980년 10월 25일, 48명의 담임교사로 교직에 첫발을 들여놓은 날의 풍경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마치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연인들처럼…. 첫 날은 가을대운동회였고 둘째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바닷가로 가을 소풍을 갔었다. 그런데 필자의 기억은 셋째 날에 집중되어 있다. 마침 학력 진단평가 시험지가 준비되어 있어서 아이들에게 시험지를 나눠준 10분 뒤, 다 풀었다는 아이들의 말에 공부를 잘해서 금방 끝낸 줄 알고 좋아하던 필자는 시험지를 들고 교장실로 달려가고 말았다. 48명 중에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아이들이 15명이었는데 1학년도 아닌 4학년 아이들이니 그만 겁이 나서 교장선생님께 학교를 그만 두겠다며 울었던 기억만이 새롭다. 그 때는 교사가 부족해서 우리 반 아이들은 두 달 이상 옆 반과 함께 공부를 해왔으니 아동수용소에 가까운 실정이었던 것이다. 교장 선생님은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어렵사리 배정받은 초보교사가 부임한 지 사흘 만에 그만두겠다며 울어버렸으니. 아이들 걱정이 커서 눈물을 보일 정도라면 한 달만이라도 가르쳐 달라고 설득하셨는데, 아버지처럼 인자한 교장 선생님의 따뜻한 격려가 여기까지 오게 만든 시작이 되었다. 최남단의 바닷가 마을에서 늦가을에 만난 그 아이들과 해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히고 받아쓰기를 하며 한글을 깨우쳤다. 그렇게 4학년을 마무리할 무렵, 동네 학부모님들이 음식을 장만해 와서 교실에 차려놓고 전 직원을 초대하는 '사건'이 생겼다. 12학급에 전교생이 500명에 가까운 학교이니 직원 수도 많았는데 정성스럽게 준비해 온 음식으로 때 이른 책거리를 한 것이다.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5학년 때에도 계속해서 담임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어서라고. 전 직원이 음식촌지를 받은 때문이었는지 필자는 우리 반 48명을 그대로 데리고 5학년을 맡았고 그 아이들 중 2명의 결혼 주례까지 서주는 인연으로 지금도 만나고 있다. 교직의 출발은 힘듦과 갈등 속에 눈물을 많이 보인 나약한 모습이었다. 가족들과 너무 멀리 떨어진 외로움, 학습 결손이 심한 아이들을 끌어올리며 애태우던 시간의 나열이었으니 결코 아름다운 출발은 아닌 셈이다. 감사의 크기만큼 행복한 교직생활 필자는 인터넷신문 '한교닷컴' 리포터로서 복식학급인 우리 1, 2학년 다섯 명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써서 올리는 재미로 살고 있다. 20여 년 동안 줄곧 가르쳐 온 5, 6학년을 뒤로 하고 올해 처음 맡아본 1, 2학년 아이들과의 만남은 나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와 생각 수준에 맞추느라 늘 쉬운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 어려움, 순진하고 엉뚱한 질문과 대답에 웃느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으니, 오히려 아이들에게 배우는 것은 내 쪽이다. 단순함과 밝음, 투명하게 세상을 보는 눈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은 못쓰게 된 어린이'이니 고치고 다듬어서 이제 겨우 아이들의 이야기를 알아듣게 되었다. '아름다운 시작보다 아름다운 끝을 선택하라'고 충고하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속삭임에 동감하는 즐거움으로 그 어느 해보다 아이들이 주는 행복함을 기록하는 즐거움으로 보낸 2005년이었다. 또 어미가 육아일기를 쓰듯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글과 사진으로 남겨 헤어지는 날 두 권의 책을 아이들 품속에 안겨 줄 수 있게 되었으니, 아름다운 끝을 시작하게 되었음을 감사한다. 솔직히 산골 분교에 와서 아이들과 나눈 3년 동안의 기록만 되돌아봐도 몇 날 며칠을 웃으며 살 수 있을 만큼 행복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아이들과 사랑을 나누며 살아온 3년은 앞서 살아온 22년 동안 교직에서 받은 상처와 아픔까지도 다 들어내고 새살이 돋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교실에 있다. 바깥은 한겨울 매서운 바람이 유리창을 건들지만 아이들이 남기고 간 이야기들이 필자를 불러놓고 자판으로 데려가 놓아주지 않는 탓이다. 낮에는 가르치는 일이 행복하게 하고 밤에는 아이들 이야기를 남기는 즐거움이 자정까지 이어지곤 한다. 내일이면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자기들 모습을 확인하며 즐거워 재잘대는 귀여운 참새들. 때로는 강아지이기도 하고 토끼처럼 큰 눈을 껌벅이며 웃음을 담고 바라보는 맑은 거울에 나까지 투명해지곤 했던 시간들. '감사함의 크기만큼 행복하다' 던 타고르의 말대로 필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선생이다. 교직, 그 아름다운 선택에 후회는 없다. 법을 위반하는 행위인 수업침해 한국인의 특성을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2000년 교육부 인성정책자문위원회) 근면성이 좋은 국민인 반면 나쁜 습성으로는 부정직, 이기주의, 불공정이 판치는 전체적으로 불신사회라고 한다. 그러니 학교도 사람으로 이루어진 조직이니 어느 만큼은 그러한 나쁜 습성이 있다고 본다. 정직하지 못한 회계처리나 인사부정, 권위나 자리에 연연한 극단적 이기주의, 신뢰감이 없는 불공정의 관행이 학교라고 예외적으로 없을 리가 있겠는가? 현직교사로서 겪었던 어려움은 수업 때문에 오는 어려움이라기보다는 직장 분위기나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초등 선생님들의 대부분은 교실에서 아이들과 수업하는 시간을 가장 행복하게 생각한다.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잘 만들어주는 리더를 만나고 수업침해를 법을 어긴 것만큼이나 깍듯하게 조심해 주는 관리자를 만나는 행운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닌가 한다. 8년 전에 모신 교장 선생님은 교직원들 사이에서 고약한 분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오랜 동안 장학직에 몸담으며 확고한 교육 철학과 리더십을 소유한 분이었는데 필자가 모신 분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분이다. 아침에 출근하여 교장실에 들르면 첫 마디가 "빨리 교실에 들어가십시오. 선생님보다 아이들이 먼저 와 있으면 안 되지요"였다. 그런 분이니 수업 침해를 염려해서 아침 시간에 교실에 아이들을 두고 회의하는 일은 일체 없었으며, 혹시나 급한 공문을 들고 교장실에 들어가면 충고를 들어야 할 만큼(모든 공문은 수업 종료 후 결재 가능) 엄격하셨다. 혹시라도 학습지를 복사하는 경우에도 점심시간이나 하교 후에만 가능했으니 그 분이 얼마나 아이들을 귀하게 여긴 분인지 알 수 있다. 학교 아이들이 외부행사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어 그 부모가 감사의 표시로 식사 초대를 하는 경우에 응했다가는 난리가 날 정도였다. 그 뿐이 아니었다. 혹시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놀면서, 복도를 지나치면서 큰 소리를 지르면 담임선생님까지 함께 지도를 받는 부끄러움을 선물하신 유별난 분이었다. "선생님이 저렇게 소리 지르라고 가르치셨습니까? 지나치게 목소리가 큰 것도 일종의 병이라는 걸 모르십니까? 아동 지도에 좀 더 신경을 써 주세요. 그 아이의 불만과 문제점이 무엇인지 찾아보세요."[PAGE BREAK]교실 중심의 장학 방침 고수돼야 다음 날 학사 일정을 위해서 교실에 아이들이 남아 있지 않은 4시 이후에야 영역부장과 학년부장을 소집하여 간단한 협의를 마치고 다음날 일정을 미리 게시한 후 퇴근하여 아침부터 회의 소집으로 선생님들이 교실을 비우는 일은 없게 하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교무회의였다. 그러니 아이들과 선생님이 이른 아침부터 독서를 하거나 공부를 할 수 있어서 학교도 차분하고 질서정연했다. 어쩌다 방학 때 교장실을 들어가 보면 손때 묻은 교육 전문서적과 일본판 서적들이 즐비하여 엄청난 독서력에 감동하곤 했다. 말을 극히 아끼면서도 아주 중요한 부분은 확실하게 전문서적의 내용을 소개하고 해석하여 강의에 가까운 조언을 메모하며 듣던 직원협의 시간들이 참 그립다. 그 시간은 늘 교육학을 다시 공부하는 기분이었으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전체 교직원 회의는 일주일에 단 한 번, 그것도 금요일 오후 4시 30분이며 5시를 넘기는 일조차 드물었다. 혹시 퇴근 시간 이후에 학교에 남아서 근무하는 선생님에게는 핀잔을 주셔서 근무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지 않은 무능의 소치라며 면박을 주시니 일이 많은 분들은 일감을 들고 퇴근하거나 점심시간까지 쉬지 못하곤 했었다. 선생님들을 인자하게 대하지는 않았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험담하지 않아서 교직원들끼리도 화목했었다. 충고할 일은 혼자만 조용히 불러서 아무도 알지 못하게 꾸지람하고 공이 없는 데도 큰 상을 받게 하지 않으며 칭찬은 공개적으로, 꾸중은 남 몰래 하라는 교육자가 지녀야 할 상벌의 규칙을 엄히 지킨 덕분에 50명에 가까운 교직원들이 화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도 선생님이 특정한 아이를 싫어하면 덩달아서 그 아이를 싫어한다. 내 집에서 귀한 자식이 밖에서도 대접받는 것처럼, 관리자의 편애나 편 가르기는 직장 분위기를 죽이는 데 치명적이다. 아이들을 철저하게 훈육하고 바르게 키우길 바라셨고 교실수업은 교사의 생명이니 혹시라도 공문이 늦어지면 책임질 테니 수업부터 끝내고 오라셨으니 수업 시간에 결재를 위해서 교실을 비울 수도 없었고 수업 시간에는 면담조차 인정되지 않았던 그 엄격함이 그립다. 정년퇴임의 자리까지 거절하고 조용히 살아가시는 모습은 영락 조선시대의 선비 같으신 분이었으니 교육자에게는 그처럼 꼬장꼬장한 자존심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학부모에게 식사 초대를 받거나 졸업식 날 회식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게 하고 당당한 교사의 자존감을 심어주셨던 분이다. 소풍을 가도 출장비로 점심을 주문하여 학부모의 부담을 사전에 차단할 만큼 철저해서 오히려 학부모님들이 안절부절 할 정도로 선생님들의 콧대를 높여주신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 친목날이 되면 강당에서 밤 8시가 되도록 내기 배구를 하며 전 직원이 웃고 떠들며 끈끈한 동지애로 뭉칠 수 있게 은근히 뒤에서 부추기던 장난스러움도 있었다. 내기에 진 팀이 시합에 건 돈으로 저녁을 사게 하고 다음에 다시 도전하게 만들어서 한겨울에도 강당에서 배구를 하던 일이 생각난다. 업무는 분위기에 따라 극복 가능 그런 깐깐함과 확실한 교육철학을 지닌 리더 덕분에 전남의 명문초등학교로 이름을 날렸던 2년 동안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어쩌다 동학년 티타임이 1, 2분 늦어져서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날벼락이 떨어졌으니 최고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도 아무도 불평할 엄두를 못냈었다. 확고한 원칙과 교실중심의 장학 방침을 고수하는 관리자를 모시는 것은 선생님들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교내인사까지도 교직원 인사위원회에서 조정하고 업무와 학년 배정을 점수화 하여 공개함으로써 투명성을 간직하여 교직원 간의 불화의 소지를 미리 차단하였으니 앞서가는 교육행정을 펼친 셈이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이상 연속하여 고학년을 맡게 하는 일이 없었고 업무의 경중을 따져서 수업시수가 적은 학년은 당연히 업무량이 많았다. 그러니 나이를 앞세워 업무를 회피하기보다 오히려 선배교사들이 더 열심히 일하는 풍토를 조성하고 서로 돕는 역할 분담이 철저했다. 필자는 6학년을 2년 연속 했는데, 그 이유는 6학년을 같이 했던 두 분 선생님들의 의견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6학년 3개 반을 교과 전담으로 구성하여 음악, 미술, 체육을 교담제처럼 운영하며 각자의 특기를 살려 학년을 이끌었다. 수학경시대회를 지도했던 필자는 수요일조차 5시까지 6학년 수학 반 아이들을 지도하느라 제대로 배구를 못했으며, 점심시간에는 교수용 TP 자료를 만드느라 바쁘면서도 각자의 역할분담에 만족하며 즐겁게 살 수 있었다. 업무란 함께 일하는 구성원들이 서로 아끼고 격려하며 도와주는 직장 분위기가 얼마나 좋은 가에 따라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장 내의 분위기가 늘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고 서로 험담하여 신뢰하지 못하게 하거나 편 가르기를 하여 내 사람, 네 사람을 만들면 어떠한 조직도 살아남지 못한다. 특히 교직에서 교사의 자존감을 흔드는 관리자를 만나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이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선생님이 즐거워야 아이들이 행복한 특수한 조직이다. 그 명제 앞에서는 어떠한 논리를 앞세워도 괴변이라고 단언한다. 학부모 앞에서 학교 선생님들을 폄하하는 관리자나 선생님은 이미 그 자리에 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호되게 질책하고 충고해서 바르게 가르치되 서로의 상처나 아픔은 최대한 참아주고 묻어주는 어버이나 형님 같은 관리자의 모습을 보여주셨던 8년 전 그 교장 선생님이 참 그립다. 교사가 교실에 머물 수 있도록 해야 교육은 개혁을 한다고 변화 하는 것이 아니다. 수업을 잘 할 수 있도록 교사들을 고무시키고 자존감을 키우며, 교사가 아이들에게만 사랑을 쏟을 수 있도록 철저하게 믿어주고 여건을 조성해주는 '교실중심'체제가 되었을 때 가능하다. 선생님을 흔들고 교실에 머무는 시간을 빼앗으며 수업보다 업무 중심으로 가는 상황이 연출되면 이미 개혁은 물 건너 간 것이다. 교육은 한 시간 한 시간 수업을 통해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눈을 맞추고 앎의 기쁨과 가르침의 환희가 만나는 '예술적 경지'나 '절정적 체험'의 순간이 모여서 커지는 한 그루의 나무인 것이다. 교실수업을 지원해 주고 꾸준히 장학활동을 펼치며 사기를 진작시키는 일이 활기찬 교직문화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함께 근무한 선생님이 최근에 교감 선생님으로 승진해 가셨는데 그 학교 선생님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모습이 생각난다. 선생님들이 처리해야 할 공문의 대부분은 그 교감선생님이 거의 다 해 주신다는 것이었다. 급한 공문을 하느라 수업을 못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교무보조와 함께 처리해 주시면서도, 본인은 수업을 하지 않으니 그런 일을 도와 드리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신다는 것이었다. 현재와 같은 수직적인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교직 풍토에서 그와 같은 관리자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어서 선생님들이 부러워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선생님들은 공문이나 업무를 할 때보다 아이들과 수업하는 시간이 더 행복하기 때문이다. 급한 공문을 처리하느라 잃어버린 아이들의 시간은 찾을 곳이 없고 선생님이 바빠서 빈자리가 생기면 안전사고마저 도사리는 교실의 아픔을 너무나 잘 아시니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선생님들이야 바쁘건 말건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는 관리자보다 훨씬 더 멋진 교감 선생님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겸손이므로. 2001년 2월 국내에서 상영된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원제 Pay it forward)는 누구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힘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 영화였다. 새 학기를 맞은 사회교사는 학생들에게 '우리 주위를 둘러보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천하라'는 숙제를 낸다. 엄마와 단둘이 외롭게 살고 있던 트레버는 한 사람이 3명에게 사랑(선행)을 나누면 그 3명은 각각 또 다른 3명에게 좋은 일을 하게 돼 마침내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세상 모든 사람이 선행을 주고받게 된다는 이론을 제시한다. 바로 그 교감 선생님은 오늘도 그 학교 선생님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소년 트레버처럼 나눔의 공식을 전파하고 계시리라.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나 교실, 아이들이 내가 오기 전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서로 믿고 의지하는 공간으로 변화되었다면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 아니겠는가?
손충기 | 원광대 교수·교육학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교육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교육의 세계가 끊임없이 변하기에 변화에 맞춰 습관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꿔야 한다. 구태를 고집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며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말만의 개선과 개혁은 뒤쳐지고 도태되고 만다는 것이 세상이치이다. 그러나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교육의 원칙과 규율과 기강이다. 교육에서의 원칙과 규율과 기강은 제2세들에게 가르쳐야 할 덕목이면서 동시에 덕목을 가르치는 방법적 원리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교육에서 원칙과 규율과 기강이 어떻게 지켜지고 무너지는가를 보고 배운다. 수능시험 장소에 휴대폰을 비롯한 전자매체를 소지하는 경우 처벌하기로 했으면 법대로 처벌되어야 한다. 사전에 다양한 방법과 매체를 통하여 소지하지 말 것을 홍보하고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규정을 지켰는데, 몇 학생이 규정을 어겼음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구제방안이 논의된다면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 일부 학부모들이나 정치권에서 법의 융통적인 운영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으나, 거기에 교육의 원칙이 휘둘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설립주체와 관계없이 학교가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는 경우 법에 의하여 처벌하면 되는 것이지 법을 새로 만들어 교육주체들 간 갈등을 조장할 이유가 없다. 법과 원칙이 없어서 일부 사학의 비리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법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정치가 교육에 우선한다는 반 교육전문가적 행태의 소산이다. 학교와 교육을 정치인들이 좌지우지하려고 하면 자정력을 키우는 데 방해만 될 뿐이다. 교원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법과 원칙이 세워졌으면, 이를 어긴 경우 법대로 처벌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법과 원칙은 잘 만들어져 있다. 문제는 법과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법과 원칙에 없는 행동을 하는 교사가 오히려 이득을 얻고 큰소리치는 상황이라면 누구든지 손해 보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학생들이 이러한 교사의 모습을 보면서 성장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금 우리 교육에, 교사에게 권위는 있는가? 학생들은 교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며 수업시간에 잠자는 학생, 들락거리는 학생 등 교육상황은 혼란스럽다. 학부모들이 교사를 대하는 행태도 존중에 기반하고 있지 못하다. 교원의 정년을 단축시키더니, 일부 촌지 교사문제를 전 교단의 문제로 매도하는가 하면, 체벌을 추방한다는 미명하에 교사가 학생의 잘 못을 보고도 외면하거나 눈 감게 만들고 말았다. 무능력하고 반교육적 행위를 하는 교원이 있다면 법에 의해 엄정하게 처벌하면 될 것이다. 지금 우리 교단에 불고 있는 교원평가제는 원래의 취지는 퇴색되고 결국 교원들의 사기와 권위만 위축시킬 것이 분명하다. 교원평가제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 취지와 목적에 맞게 방법을 제대로 강구하고 실시하자는 것이다. 지구상에 모든 초등학교, 모든 중․고등학교 교원을 대상으로 획일적으로 교원평가를 실시하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어디 있는가? 학교장 공모제는 또 어떤가? 학교 운영은 공장 운영이나 회사경영과는 매우 다른 특수성이 있다. 인간관계의 상․하, 좌․우의 위계와 연계와 협업이 어느 조직보다 중요한 곳이 바로 학교다. 교육의 산출은 제품생산이나 판매고와 같이 수량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인적인 인간을 형성시켜 내는 학교라는 도량은 학생들의 성적 점수로만 서열이 매겨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학교장의 리더십도 몇 가지 준거로만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세계에서 평생을 몸 바친 교원들을 제쳐두고 엉뚱한 인사가 교장으로 초빙되면 누가 교직에 정열을 불태우고자 할까? 학교가 사교육 기능까지 수행하도록 하는 정책으로는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교원 법정 정원을 확보하고, 교원들로 하여금 교육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 연후에 사교육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별도의 교원을 충원하여 학교가 나서도록 해야 한다. 2006년은 무너진 교육의 기강과 규율이 바로 서고, 추락한 교원의 사기와 권위가 회복되는 그런 해로 만들어야 한다. 법과 원칙을 지켜야 손해 보지 않는다는 행위준칙이 지켜져야 우리 교육에 미래와 희망이 있다.
김정호 | 서울 양화초 교사 어느 나라에서나 초․중등교육은 국가 교육체계 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다. 때문에 모든 국가에서 초․중등교육의 내실화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 역시 그동안 정부차원에서 초․중등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교육정책을 집행하여 초․중등교육이 외형적으로는 많은 발전을 하였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아직도 많은 문제점들이 존재하고 있어 향후 중국 교육의 발전 및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점들이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러한 현행 중국교육의 문제점과 관련하여 최근 중국의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인민망(人民網)’에는 중국의 현직교사가 쓴 ‘중국 초․중등교육에 있어서의 7가지 병’이란 제목의 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 글쓴이는 이 글에서 현행 중국 초․중등교육에 있어서의 문제점을 7가지로 지적하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서 우리 교육의 현실과 비교해보는 기회를 가져보고자 한다. 우선, 학교에서 교사를 평가할 때 지표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교사의 능력을 주로 학생들의 상급학교 진학률 및 명문대학 진학한 학생수에 따라 평가하는 것으로 진학률이 높고, 학생수가 많을수록 우수한 교사로 평가받고 그렇지 못할 경우 교육자적 자질이 있음에도 우수한 교사로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다. 이렇듯 교사의 평가에 있어 지나치게 눈에 드러나는 지표에 집착하는 것은 과거 계획경제시대 때부터 계속되어 온 업적을 과시하기 좋아하는 중국 사회의 특성상 학교에서도 교사들이 자신의 업적 과시용으로 학생들의 명문대학 진학률을 최고의 지표로 삼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학교의 혈관에 해당하는 우수한 교사들이 부족한 현상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우수 교사의 부족 현상은 교사의 사회적인 지위가 높지 못한데 있는데, 사회적으로 낮은 교사의 지위로 인하여 교사를 양성하는 사범대학에 우수한 인재들이 진학하려 하지 않아 질 좋은 교사의 학교 현장으로의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학교 내에서도 실질적인 업무능력이나 수업능력이 배제된 채 서열에 의해 우수교사로 선정되고, 교사의 승진에 있어서도 개인의 능력보다는 고위관료들과의 친분이나 심지어는 금전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교사들의 직업에 대한 열의 및 애착이 부족하다. 그리고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교사들에 대한 훈련도 교사들의 질을 높이는 데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셋째, 초․중․고의 학교 수업에 있어 교과서, 교실, 숙제 등을 중시하고, 학생들의 개성을 소홀히 하는 현상이 만연되어 있다. 중국의 학교 교육에서는 단지 수업을 잘 듣고, 숙제를 잘 하며, 시험을 잘 보는 획일적인 학생들만을 양성해내고 있는데, 이러한 획일적인 학생들의 육성에 대한 일차적인 원인은 국가의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즉 국가의 교육정책이 입시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에 대학입시를 위해서는 학교 교육에서 주지교과에 비중을 두는 반면 음악, 미술, 체육 등의 과목은 소홀히 여겨지고 있는 게 중국 교육의 현실이다. 넷째, 현행 중국의 학교 교육에서는 도덕 교육이 소홀해지고 있다. 학교 교육에서 도덕교육은 자라는 학생들에게 사회생활에 필요한 남과 어울리는 법을 가르치고 그들과의 관계에서 지켜야할 예절 등에 대한 교육을 필요로 한다. 현재 중국의 학생들 가운데는 인터넷에 중독 되고, 대중스타에 중독 되고, 폭력 영화 및 공포만화에 열광하는 현상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와 같이 학생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유는 학교 교육에서 도덕교육이 부족하고, 실시되고 있는 도덕 교육마저도 학생들이 싫어하고 무관심하다는 이유로 대충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등 제대로 된 도덕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중국 초․중등교육에서의 학교 운영자금 부족 현상 문제를 들 수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도시지역을 제외한 발달되지 못한 지역 및 기타 농촌지역에서는 학교 운영비가 태부족 상태로 많은 수의 학교 운영이 학생들이 내는 학비나 학생들로부터 거둬들이는 잡부금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학교 운영비의 부족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선진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없고, 질 좋은 기능 훈련을 받을 수 없는 등 초․중등교육의 질 저하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학교 운영비의 부족현상은 정부의 지원부족과 더불어 주로 학교 경영자들 때문에 발생하게 되는데 중국에서는 교사와 학교 건물만 있으면 학교의 설립 및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부 학교 경영자들은 학생들의 교육시설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학생들의 교육에 투자를 하기 보다는 학교를 보다 나은 값으로 팔아넘길 생각을 하는 등 학교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학교를 직접 경영하는 학교장들의 자질부족으로 인한 학교 운영의 문제를 들 수 있는데, 학교 경영자로서의 학교장의 무능은 그 학교의 교사들에게도 그대로 전파되어 결국은 학생들의 교육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같은 문제는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다 시간이 흐르고 경력이 되어 학교장으로 승진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행정기관에서 일하던 사람이 갑자기 낙하산식으로 학교장이 되거나, 기타 비정상적인 수단을 통하여 학교장이 되는 승진제도의 문제, 학교장을 감독할 수 있는 감독기구의 부족 및 학교장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일곱째, 중국의 초․중등교육에서는 상부에서 혹은 기타 지역에서 어떠한 교육방법이 유행하고 있다고 하면 그 학교의 실제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좋다는 방법들만을 모방하여 차용하는 유행병이 심각한 문제다. 이러한 유행병들은 자신들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 및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아 각 학교들로 하여금 자기네 학교의 특성을 갖추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학교 교육에 있어서도 일관성 및 지속성을 가지고 학교 교육을 진행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의 중요한 원인으로는 현재 중국의 각 학교들에서 내실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단기적이고 피상적인 효과만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중국 교육에 있어서의 중요한 문제점들은 비단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육에서도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들이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교육개혁을 외치며, 수요자 중심교육이니, 교사들의 자질 함양이니, 충분한 교육예산 확보니 하는 말들을 무수히 쏟아놓았지만 과연 우리의 교육현실이 중국의 교육현실과 큰 차이가 있는지? 흔히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과연 그 백년 앞을 내다보는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중국의 사례를 통하여 다시금 우리 교육의 현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수채화는 동심을 닮은 맑고 깨끗한 청량제 미술이 타고난 재주를 갖춘 몇몇의 사람들에게만 허용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현실에서 우리 아동교육미술은 70년대 교육방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정체되어 있다. 이러한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한 경남지역 초등교사들의 뜻이 모여 1998년에 탄생한 '그림마실.' '마실'은 '동리 안을 나들이 가서 여가를 즐긴다'는 뜻이지만, 정작 그림마실의 탄생은 회원들의 열정과 노력 없이는 불가능했다. 더 이상 미술교육을 사교육기관에 맡길 수 없다는 것에 뜻을 같이 했지만 전문성이 없다면 공염불에 그칠 일이었다. 그래서 그림마실 창립회원들은 1996년부터 2년간 수채화에 대한 공부를 한 후 정식으로 활도을 시작하였고, 이후에도 저자인 전성기 씨, 아동 미술연구가 윤정방 교수, 진주교육대학 이쌍재 교수, 한국수채화협회 등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9회에 걸친 정기전을 개최하였다. 그림마실 회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특기적성지도. 교과 공부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수채화는 솔직한 표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휴식처럼 편안한 시간을 갖게 해준다. 하지만, 시작의 아름다운 감동을 그대로 살려서 표현하여 만족감과 자신감을 갖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초벌 단계에서 포기를 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그림마실 회원들은 수채화에 대한 공부에 더욱 충실히 하며 각 학교에서 클럽활동을 지도하고, 방학기간에는 미술캠프를 운영한다. 틈나는 데로 학생들과 야외스케치를 하는 것도 큰 보람 중 하나이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1998년 초·중등학교 수업혁신을 위한 교과 교육 연구활동 지원계획에 참여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각종 아동 실기 대회에서 지도자상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실력 향상에 힘입어 매년 각종 공모전에 10여명이 입상을 한다. 그림마실은 현재 더욱 더 변화하기 위해 아동그림캠프, 타지방 미술동호교사회와의 교류전, 세미나, 전국 아동미술 현황자료 수집, 전국 공모전 응모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림마실은 앞으로도 어린이들의 미적체험활동과 표현활동을 통한 참다운 인간육성을 유도하여 그들의 요구와 본능, 흥미를 건전하게 충족시켜 주고, 꾸밈없는 자연의 세계를 표현한 전시회를 통하여 미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그림마실에 대한 자세한 활동 내역과 회원 가입은 홈페이지 http://painting.gnedu.net를 참고하면 된다.
장세진 | 전주공고 교사, 문학평론가 어머님! 이렇게 불러보기는 처음입니다. 살아 계실 때는 ‘엄마’나 ‘어머니’로 불렀으니까요. 이렇듯 어머님께 편지를 써보는 것도 51년 만에 처음이지 싶습니다. 아, 아니군요. 대입에 실패하고 돈번다고 무작정 상경하여 대책 없이 살 때 돈 좀 보내달라며 한두 번쯤 편지를 쓴 것 같습니다. 그때만 해도 전화가 흔한 시절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 어떻게 지내세요? 불현듯 어머님 생각이 간절히 솟구쳐 헤아려보니 우리 곁을 떠나신지 벌써 3년이나 지났군요. 그렇게 훌쩍 떠나실 것을 왜 그렇게 여유롭게 사시질 못하셨습니까? 나들이하실 때 택시도 타시고, 화려한 옷에 맛난 음식도 사자시라고 용돈을 넉넉히 드렸는데도 말이에요. 일흔 셋이라는, 아직은 ‘새파랗게’ 젊은 연세에 딱 한번의 발병으로 그렇듯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나신 것이 혹 그런 고생 때문은 아니었나요? 아, 아니에요. 서른일곱에 청상과부가 되시어 우리 형제를 키우느라 몸에 밴 고생이 더 큰 연원이라 생각하니 그 죄를 씻을 길이 없습니다. 아들들 장성하여 웬만큼 먹고 살 만해져 어머님 편히 사시게 해드린다고 저희들 깜냥으로는 자부했는데, 그렇듯 허망하게 가실 줄 어찌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정말이지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하고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라는 성현의 옛 글이 이렇듯 가슴을 파고들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답니다. “나무가 가만히 있으려 해도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부모를 모시려 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씀을 조금만 일찍 깨우치고 실천에 옮겼더라면 어머님을 하늘나라로 인도한 그 발병은 아예 얼씬거리지도 못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니, 더욱 스산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머님! 지난 추석 때 형네와 함께 외할머니와 이모를 찾아뵈었습니다. 어머님도 아시죠? 저수지 확장공사로 인해 외가 마을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산소를 이곳으로 옮겨 온지도 어느덧 이태가 되었답니다. 그 후 외가엔 설날에만 세배 드리러 갔는데, 이번엔 형이 굳이 가자고 했습니다. 외할머니는 예전 같지 않으십니다. 아직도 막걸리쯤은 거뜬히 자신다는데, 저를 금방 못 알아 보시더라구요. 외숙은 옛집 옆에 큰집을 지어 작년에 이사했습니다. 외숙의 큰애는 작년에 결혼했는데 벌써 아들까지 낳았답니다. 이모는 여전히 두통기가 있어 편안한 잠을 자지 못한다네요. 이번에 이모로부터 어머님의 비밀 한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2000년 형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어머님이 그러셨다면서요. “작은 아들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속만 썩이던 놈이 이렇듯 듬직한 집안의 기둥이 되다니!”라고요. 그 말을 듣고 저는 한없이 기뻤답니다. 고 3때 59명 학급에서 59등을 한, 그리하여 무던히도 어머니 속을 상하게 한 저였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이제 제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아니, 이미 오래전에 어쩌면 눈썹이 휘날리게 공부하여 버젓이 교사가 되면서부터 저는 다시 태어난 셈이니까요. 사는 나라가 달라 어머님께 낱낱이 보여드릴 수는 없을지 몰라도 살아생전에 이모에게 털어 놓으신 저에 대한 그 신뢰만큼은 저버리지 않는 아들이 될 자신이 있습니다. 어머님! 며칠 전 큰애가 대학 수시 실기시험을 봤습니다. 이곳에서 좀 먼 곳이라 하루 연가를 내고 제가 데리고 다녀왔습니다. 시험을 치르는 3시간 넘게 부모마음이 뭔지 알 듯했습니다. 자식 키워봐야 부모마음 안다고, 어쩌면 그 말이 그리도 딱 맞는지요! 그런데 큰애든 작은 애든 할머니 얘기 한번 안하는 거예요. 사실 걔들은 어미가 키운 게 아니라 어머님께서 키워주신 거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할머니와의 추억’ 예컨대 명절 때면 노상 두둑한 용돈을 주시던 할머니를 벌써 잊었단 것인지,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말이 떠올라 서글프기 짝이 없군요. 그렇더라도 너무 서운해 하지 마세요. 저도 50줄에 들고 보니 부모가 뭘 바라고 자식을 키우는 게 아님이 제법 진하게 와 닿는걸요. 이제 와서 말이지만 손자 생각이 나셔서 아이 하나 더 낳으라고 하실 줄 뻔히 알면서도 끝내 못들은 척했던 것도 그런 까닭이랍니다. 아들놈 있으면 뭐합니까, 뭘 바라고 키울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비록 ‘딸딸이’ 아빠지만 어머님이 저희들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손녀들을 잘 키울께요. 어느덧 밤이 깊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밤 기온이 떨어지는 가을임을 실감하며 아침 출근을 위해 이만 접어야 할까 봅니다. 다음에는 더 많은 이야기해 드릴께요. 편안히 계십시오. 인영아비 드림.
박준용 | 한양대 강사·문화평론가 '위험한 아이들'과의 첫 만남 어느 학교에나 '위험한 아이들'이 존재한다. 그 아이들의 위험은 타인에 대한 위험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제 스스로에 대한 위험인 까닭에 치명적인 잠재성을 지닌다.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배우고 가르친다. 위험한 것 근처에는 가지 말라고…. 그렇게 위험한 아이들은 학교와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점점 그런 위험한 아이들끼리만 뭉치게 되어 종국에는 정말 위험한 아이들이 되어간다. 그런 아이들로 이루어진 특수학급에 '루엔 존슨'이라는 임시 여교사가 부임한다. 그녀에게 주어진 정보는 담임할 아이들이 '열정'과 '도전'에 가득 차 있는 특별한 존재들이라는 모호한 이야기뿐이다. 이윽고 첫 수업 시간에 들어간 존슨은 제 멋대로 앉거나 선 채 자신을 향해 거침없이 '흰둥이'라 놀리고 무시하며 떠들어 대는 거친 아이들을 만나고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사랑은 오래 참음의 능력 문제아들과 그들을 변화시키는 선생님의 구도를 가진 대부분의 영화는 쉽게 주인공인 교사를 탁월한 카리스마를 지닌 말 그대로 극적인 인물로 묘사한다. 그런 선생님은 아이들은 물론 학교나 환경과의 어떠한 갈등과 충돌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모습으로 자신의 길을 뚝심 있게 걸어가고, 결국 아이들과 세상을 바꾸어 놓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영화 '위험한 아이들(1995, Dangerous Minds)'은 이와는 반대로 주인공 존슨 선생의 지극히 불완전한 인간적인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 놓는다. 거친 아이들과의 만남이 난감하기만 한 그녀가 먼저 하는 일이라고는 관련된 책을 뒤적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론이 제시하는 방법은 현장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말'일 뿐이다. 책을 접고 어느 영화에서 본 것처럼 나름대로 아이들 앞에서 강하게 보이려고 캐주얼 복장을 하고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 보지만 그럴수록 돌아오는 것은 아이들의 야유와 무시의 눈초리들이다. 과거 해병대에 근무하면서 배웠던 가라데로 관심을 끌어보기도 하고, 가르쳐야 하는 토머스 딜런의 시를 접고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밥 딜런의 노래 가사로 문학을 가르쳐 보기도 하지만 만만한 일은 하나도 없다. 그렇게 존슨은 매순간 자신의 방식이 아이들에게 잘 적용될지 어떨지를 확신할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게다가 전통에 따르지 않는 존슨의 새로운 교육법은 그간 해 왔던 조용한 방식으로 다만 물의 없이 학교를 운영해 왔던 이들의 견제와 동료 교사들의 시샘어린 경계의 눈짓까지 받게 된다. 지금껏 '문제아'들을 위해 손 끝 하나 움직이려 하지 않던 사람들이 그런 학생들을 위해 뭔가 해보려고 몸부림치는 교사를 돕기는커녕 색안경을 끼고 주저앉히려고 하는 절망적인 현실은 아이들을 더 깊은 불신의 어둠으로 빠져가게만 한다. 싸움을 말리려던 것이 도리어 싸움에 불을 지르고, 아이들을 화해시키려던 것이 반목과 질시를 낳는 소통불능의 상태에 직면한 존슨은 지금까지 자신의 문화에 아이들을 적응시키려 했지, 아이들의 문화에 자신이 적응하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제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그네들의 삶을 보다 깊이 알기 위한 가정방문이다. 척박하기 짝이 없는 아이들의 거친 삶의 터전과 그 가족들을 만나면서 그녀는 점차 진심으로 그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해 간다. 싸움의 당사자였던 라울을 찾아간 존슨에게 가족들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아이를 보다 엄하게 다스리겠다고 다짐하지만, 오히려 그녀는 라울이 얼마나 지혜롭고 뛰어난 아이인가 진심어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한 번도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아 본 적 없는 아이와 그의 가정에 존슨의 한 마디 칭찬은 소리 없는 감동으로 모두의 가슴에 스며들고, 드디어 라울은 그런 그녀에게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이렇듯 위험한 아이들을 변화시켜 가는 존슨의 방식은 눈에 번쩍 뜨이는 새로움이나 독특한 어떤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녀는 다만 사랑은 곧 오래 참음의 능력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그렇게 오래 참음으로 기다린다. 결코 아이들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그들이 한 걸음 밀어내면 두 걸음 다가서고, 또 밀어내면 다시 그만큼 다가서기를 반복한다. 시행착오는 거듭되고 아이들과 그들이 처한 환경과의 싸움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다. 그러나 최소한 존슨은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들 앞에서 당황해하고 아이들이 기대하는 만큼 좌절과 난감함을 드러내면서도 그녀는 적어도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렇게 포기하지 않는 어설픈 존슨 선생님을 조금씩 받아들여간다. 섣부른 실망을 경계하라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조금씩 생각하는 즐거움을 배워 나가던 '듀넬'과 '라이오넬' 형제는 먹고 사는데 쓸데없는 꿈만 키워준다며 홀로 이들을 기르는 할머니에 의해 자퇴를 당하고, 시에 재능을 가진 '캘리'는 임신으로 다른 학교로 옮길 것을 강요받고, 새로운 삶의 의지를 가지기 시작한 '에밀리오'는 여자 친구문제로 다른 친구에게서 살해 위협을 받는다. 존슨은 현실의 거대한 장벽 앞에서 고뇌한다. 정녕 이 아이들에게 한 편의 '시'가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그 질문에 채 답해 보기도 전에 그녀에게 충격적인 비보가 전해진다. 그녀의 충고에 따라 교장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러 간 에밀리오가 단지 노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장실에서 쫓겨난 후 총에 맞은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깊은 절망감 속에 존슨은 결국 학교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위험한 아이들과 존슨의 만남은 성공한 것일까, 실패한 것일까? 결과를 보면 실패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가 아이들의 가슴마다 작은 씨앗을 심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어떤 씨앗은 돌밭에 떨어진 것처럼 얼마 자라지 못할 것이고 어떤 씨앗은 거친 황무지에 떨어져 말라 죽어 버릴 것이지만, 어떤 씨앗은 결국 싹을 틔우고 자라나 드디어는 멋진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누가 씨 뿌리는 사람이 될지, 물주고, 가꾸고 또 수확하는 사람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섣부른 실패와 실망은 이 모든 것을 제 홀로 해야 한다는, 하겠다는 성급한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그것을 최선을 다해 행하고 그 결과를 겸허히 하늘에 맡길 수 있을 뿐이다. 떠나려는 존슨에게 아이들은 바로 이 점을 상기시킨다. 현실에서 상처입고 죽고 떠나는 아이들이 있지만, 또한 당신으로 인해 새 생명과 삶을 얻는 우리들이 있다고…. 그러니 당신이 가르친 것처럼 결코 운명과 환경에 굴하지 말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외치기 시작한다. 영화는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해피엔드로 마무리된다. 전형적인 헐리웃 영화다운 결말처럼 보여 혹시 맥 빠진다는 사람이 있다면, 이 영화가 9년간의 해병대 근무를 마치고 교사의 길에 투신한 루엔 존슨의 실제 이야기를 원안으로 했다는 사실이 위로와 도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영화정보 제목 : 위험한 아이들 (Dangerous Minds) 감독 : 존 N. 스미스 주연 : 미셸 파이퍼, 조지 준자, 코트니 밴스 제작년도 : 1995년 관람등급 : 15세 / DVD, VIDEO 출시
김원석 | 협성대 교수, T.E.T. 트레이너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 간에 흔히 갈등이 벌어지는 것은 매우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예컨대 숙제를 안 해왔다든가, 혹은 남학생이 귀고리를 하고 있거나 교실에서 모자를 쓰고 있다든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놓고 그 내용을 살펴보면 교사와 학생간의 욕구갈등이라기보다는 가치관 갈등에 해당되는 경우가 더 많다. 가치관 갈등은 욕구갈등과는 달리 학생이 숙제를 안 해오거나 귀고리를 하건 혹은 모자를 쓰고 있다고 해서 교사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욕구갈등의 경우에는 교사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제3의 방법을 통해 문제의 해결을 시도해야 한다. 가치관 갈등은 교사가 제3의 방법을 이용하여 승승의 해결책을 찾고자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 우리는 가치관 갈등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가치관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가치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교사가 강압적으로 결정하고 따라오라는 식이다. 학생이 겉으로는 선생님의 말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보지만 사실은 강압적인 방법(제1의 방법)은 가장 위험성이 높은 선택안이다. 지난 호에서 공부하였듯이 교사가 원하는 대로 일방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고 따라오라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가장 좋지 못한 해결책이다. 힘을 가진 교사가 그 힘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가장 손쉬운 방법이긴 하지만 학생의 마음속에 패배감과 원망감을 쌓이게 할 수 있다. 결국은 나중에 감정이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치관 갈등의 선택안 교사역할훈련에서는 가치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선택안(Options)으로써 가장 위험도가 높은 선택안부터 가장 위험도가 낮은 선택안까지 차례대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7 강압(힘을 사용하는 방법) +6 위협(힘을 사용하겠다고 말함) +5 문제해결(제3의 방법) +4 상담(상담자 되기) +3 직면하기/경청하기 +2 모범보이기(솔선수범) +1 자신의 가치관 바꾸기(태도변화) 첫째, 강압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설명하였기 때문에 여기에서 재론하는 것은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위급한 상황에서는 강압적인 방법이 유용하다. 둘째, 교사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힘을 사용하겠다는 위협 내지는 협박이다. 즉, 한번만 숙제를 하지 않으면 그 때는 가만두지 않겠다라거나 선생님 말을 듣지 않으면 학생주임 선생님께 보내겠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강압적인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면에서는 강압적인 방법보다 낫지만 여전히 힘에 근거를 둔 설득이라는 면에서 높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위협은 가끔 한두 번 사용하면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반복 사용하면 학생들도 면역이 되어 효과성이 떨어진다. 셋째, 가치관 갈등이라고 판단하더라도 일단 제3의 방법을 통해 문제해결을 시도해보는 것은 중요하다. 가치관 갈등이라고 보았으나 제3의 방법을 통해 문제해결을 위해 시도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양자간에 서로 만족할만한 해결책이 나온다면 금상첨화이다. 최선의 해결책이 아니더라도 차선의 해결책이 서로 의견일치를 이룬다면 이것도 좋은 방법이다. 실제로 고든 박사 부부는 고든 박사가 좋아하는 담배 피우는 문제를 가치관 갈등으로 보고 제3의 방법을 시도하여 보았다. 여러 가지 가능한 해결책을 열거한 후에 최종적으로 장단점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이 합의에 이르렀다. 즉, 담배는 집안에서는 피우지 않는다. 다만 손님을 맞는 방(사랑방 같은 곳)에서는 담배피우는 것이 허용되지만, 고든 박사가 먼저 가서 앉았을 경우에 한한다. 손님맞이 방에서 부인이 먼저 가서 쉬고 있을 경우에는 밖에 나가서 피워야 한다. 두 부부간에 이렇게 합의를 한 후 갈등은 사라지고 불편하지만 서로 약속한 것을 잘 지켰다고 한다. 넷째, 교사가 상담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상담은 학생이 교사를 찾아와서 상담을 요청할 때 가능한 일이다. 상담자가 되어 교사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고 싶다면 먼저 상담요청이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일단 상담자가 되었다면 철저하게 공부하여 믿을만한 상담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상담자가 학생에게 신뢰를 얻으려면 상담자로써 전문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리고 상담자로써 가장 중요한 자세는 결정은 상대방이 스스로 하도록 기다리는 것이다. 아무리 상담자인 교사가 좋은 결론이나 대안을 제시해도 학생이 원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상담자가 잔소리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해결책을 한번만 말해주되 최종 선택은 본인이 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상담자가 되어 말할 때도 나-메시지를 이용하여 말하는 것이 좋다. 상담시 나-메시지를 사용하여 말한다면 상대방에게 저항을 덜 받고 하고자 하는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 학생이 교사의 의견을 즉각 수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교사가 자기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상담자가 되었다면 그것으로 만족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당장은 수용하지 않더라도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선생님의 의견이 옳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교사는 참고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때로는 교사에게는 최상의 결론이 학생에게는 최상의 대안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이해하라는 것이다. 시대가 변했고 학생이 변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직면하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강한 직면적 나-메시지를 이용하여 교사가 자기 의견을 전달할 때 학생이 수용하지 못하고 감정이 격앙될 수 있다. 이때 교사는 바로 적극적 경청하기로 기어 바꾸기를 시도하고 감정이 누그러지면 다시 나-메시지를 시도할 수 있다. 직면적 나-메시지를 통해 교사가 자기감정을 전달하고 그 결과를 지켜보는 것도 좋다. 여섯째, 모범보이기(모델링)는 교사가 먼저 솔선수범하라는 것이다. 학생은 교사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쉽게 모방한다.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가 좋다면 모방하기는 더욱 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모방과 흉내 내기는 상호간의 인간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더 많이 발생한다. 따라서 모범보이기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영향을 이치고 학생이 성장하고 학습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만일 상대방이 교사의 가치관을 수용할 수 없다면 입장을 바꿔놓고 학생의 입장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점검해보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관이 고루한 것인지, 새로운 세대에게는 맞지 않는 것인지, 혹은 교사 자신도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부모나 선배들의 가치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보고 수용할 수 있다면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남학생이 교실에서 이어링을 하거나 피어싱을 하는 것은 교사들이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지금은 거의 모든 교실에서 이 정도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오히려 교사들도 남자교사가 머리를 뒤로 묶거나 귀고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이런 일은 보기에 따라서 달리 생각하는 것일 뿐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위험이 낮은 선택안 채택 우리는 이상에서 모두 7가지의 가치관 갈등 선택안을 다루었다. 그중에서 가장 위험도가 낮은 선택안은 교사가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겠지만 교사가 자기의 가치관을 포기하고 학생의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때 주의할 것은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기로 하였다면 진심으로 수용하라는 것이다. 거짓 수용은 힘을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선택이다. 왜냐하면 거짓수용은 언젠가 밝혀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문제가 더욱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가치관 갈등을 마치기 전에 정말 수용하기 힘든 경우에는 기도하는 일밖에 없다. 제가 좋아하는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목사님의 기도를 함께 읽으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주여, 내게 평안을 주옵소서.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은 수용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변화시킬 용기를 주옵소서. 그리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지난 호에서는 논술 단락 전개 ‘강조의 원리’ 대해서 살펴보았다. 강조의 원리란 독자가 글의 요점을 인상 깊게 받아들이고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주제나 소주제가 잘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는 원리이다. 이와 같은 방식에는 대체로 서술 내용에 의한 강조, 위치에 의한 강조, 표현 기교에 의한 강조를 들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특수단락의 구실과 쓰기 방법에 대해서 살펴본다. 1. 특수 단락의 구실과 쓰기 방법 글의 단락에는 일반단락과 특수단락으로 구분된다. 일반단락은 주어진 핵심 과제인 소주제를 뒷받침하여 발전시키는 구실을 한다. 특수 단락은 글의 시작, 끝맺음 등의 특수 목적만을 위해서 쓰이게 된다. 이들 특수 단락은 도입 단락, 전환 단락, 종결 단락 등으로 나누어진다. 본고에서는 대체로 많이 사용하게 되는 도입단락과 종결단락에 대해서 살펴본다. 1) 도입 단락 ① 도입 단락의 구실 도입 단락(導入段落)은 글 첫머리에 놓이는 단락으로서 서두 또는 서론적인 구실과 글의 문을 여는 구실을 한다. 글에 따라서는 도입 단락 없이 바로 일반 단락으로 시작하기도 한다. 그런 글에서는 처음부터 주제와 관련된 문제가 뒷받침되어 전개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글에서는 본격적인 전개에 들어가기 전에 그 예비적인 서술을 하게 되는데 이런 예비적, 입문적 구실을 하는 것이 바로 도입 단락이다. ② 도입단락의 기능 글쓰기에서도 글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첫머리가 중요하다. 글의 내용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첫머리가 잘못되면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도입단락은 독자의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켜서 그 글을 읽도록 하는 기능을 갖기 때문에 가벼운 서술로 독자의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도록 해야 한다. ③ 도입단락 쓰는 방법 도입 단락을 쓰는 요령으로 다음과 같은 방식들을 참고하도록 한다. 첫째, 문제의 제기이다. 글의 첫머리에서 그 글에서 다룰 문제를 내세움으로써 독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이다. ꃚ 사랑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참사랑인가? 한번쯤 마음에 두어 따지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사랑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나머지 불행을 초래하는 젊은이들이 많음을 가끔 볼 때 그 필요성을 더욱 느껴마지 않는다. 둘째, 주제의 제시이다. 도입부에서 주제를 제시하여 처음부터 독자의 관심을 주제에 집중시키는 방식이다. 예컨대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느낀 바를 주제로 하고 그것을 서두에 내세워 독자의 관심을 끄는 방식 등을 생각할 수 있다. ꃚ 인간의 삶에는 믿음(信念)이라는 줏대가 필요하다. 하느님을 믿든 인간을 믿든 진리나 사상을 믿든 하나의 대상을 믿고 행동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단지 어떤 추상적인 관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나의 오랜 인생 체험에서 우러나온 고백이기도 하다. 셋째, 주제를 구분하여 제시하는 방식이다. 글에서 다루어질 주제를 몇 가지로 구분해서 제시하는 경우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본문에서 다루어질 과제가 무엇인지를 낱낱이 보여 주는 이점이 있다. 예컨대 아래의 예와 같이 도입 단락에서 이 글의 주제인 ‘공장 부지의 최선 조건’를 4가지로 나누어서 제시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 뒤따르는 단락에서는 한 가지씩 차례로 다루어 나갈 것을 시사하고 있다. 간결성을 요하는 설명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입 단락의 유형이다. ꃚ 치밀한 사업가는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다음 네 가지 문제를 고려한다. 원자재의 공급원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가? 비교적 싼 비용으로 동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제품을 좋은 시장에 편리하게 수송할 수 있는가? 등이다. 넷째, 사건의 제시이다. 도입 문단에서 어떤 사건을 내세워 독자의 관심을 일으키는 경우이다. 그 사건은 그 글의 주제와 관련되어야 하고 되도록 특색 있는 것이어야 한다. 대개 사건은 독자들의 흥미를 끄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사건 뒤에 숨은 원인이나, 그 사건의 귀결에 대해서 거의 본능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인용문의 제시이다. 도입 문단 첫머리에 인용문을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관심을 끌고자하는 방식이다. 인용문은 글에서 다룰 문제점이나 주제와 관련되고 비교적 참신한 명언, 명구라야 그 효과가 크다. ꃚ 일찍이 나폴레옹은 "나쁜 장교는 있어도 나쁜 사병은 없다."라고 말 한 바 있다. 이 말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우리의 속담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2. 종결 단락 종결 단락은 글을 끝맺는 마무리 구실을 한다. 이 종결 단락은 일반 단락처럼 내용 전개나 뒷받침은 필요 없고 다만 맺는 말 정도로 그친다. 종결 단락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방식으로 쓴다. 첫째, 본문 내용을 간추려 주제를 다지는 경우이다. 본론에서 이미 밝혀진 결론을 간추려 되풀이한다. 이런 결론은 글 전체의 주제가 되는 수도 있고, 그 주제를 여러 갈래로 하위 구분한 것일 수도 있다. 아래의 ꃚ는 글 전체의 결론(주제)을 간추려서 보인 종결 단락이다. ꃚ 이상에서 사람은 여러 가지 대상과 방법을 통하여 배운다는 것을 밝혔다. 첫째로, 사람은 사람에게서 배우며, 둘째로, 자연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운다. 셋째로, 내면적 사유를 통하여 많은 것을 탐구하고 깨닫는다. 이렇게 해서 인간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학문의 길이다. 둘째, 주제를 마지막으로 상기시켜서 다짐하고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를 전망하는 것이다. ꃚ 그러므로, "은근"은 한국의 미요, "끈기"는 한국의 힘이다. 은근하고 끈기 있게 사는 데에 한국의 생활이 건설되어 가고, 또 거기서 참다운 한국의 예술, 문학이 생생하게 자라날 것이다. 셋째, 주제를 뚜렷이 상기시키는 대신에 글의 주제와 관련된 어구 등의 표현으로 여운을 남기면서 끝맺는 경우이다. ꃚ 1670년경에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비록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구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했거니와, 마치 세상이 오늘만으로 끝나는 듯 착각하고 사는 우리들의 ‘조급증’은 언제나 사라질 것인가. 넷째, 종결 단락은 글을 마무리하면서 남은 문제점을 가리키거나 전망을 곁들이기도 한다. 때로는 본론에서 서술한 내용을 간추리지 않고 독자에게 바라는 점이나 앞으로의 전망만을 적고 끝맺는 수도 있다. ꃚ 한국 사회에 공업화 현상이 진전함에 따라 그것이 뿜어내는 거대한 생산력이 한국 사회와 그 속의 구성원의 성격을 크게 바꾸어 갈 것이며, 정치와 사회의 구별이 더 뚜렷해짐에 따라서 새로운 권력 구조의 형성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다섯째, 종결 단락은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유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글의 성격이나 필자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특색 있는 마무리를 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유의할 점은 글의 주제나 본문의 내용과 동떨어진 마무리를 해서는 안 되며, 또한 새로이 딴 문제를 논의해서 추가해서는 안 된다. 마무리는 끝맺는 일만 해야지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PAGE BREAK] 2. 논술의 실제 기주도적 학습능력 신장을 위한 방안으로 협동학습을 강조하고 있다. 협동학습의 개념과 필요성을 소개하고, 협동학습의 특징과 장점을 서술하시오. Ⅰ. 서론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학습자 중심의 자기주도적 학습을 강조한다. 자기주도적 학습은 학습자 자신이 학습의 주체임을 자각하고, 학습자의 개인차에 적용될 수 있는 학습 과제와 자료를 스스로 선택하고, 학업 성취 수준을 스스로 평가하는 일련의 교수․학습 과정 혹은 방법이다. 이와 같은 자기주도적인 학습능력을 기르기 위한 방안으로 협동학습을 강조하고 있다. Ⅱ. 협동학습의 개념과 필요성 ‘협동학습'은 ‘cooperative learning’을 번역한 용어이다. 학생들이 집단토의, 집단연구와 같은 활동에 참여하여 상호작용하고, 협력을 통해서 학습과제를 보다 더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것으로, 협동학습은 학생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상호 작용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전형적인 학교 교실수업의 모습은 '바쁜 교사와 심심한 학생'으로 표현될 수 있다. 훌륭한 교사는 열강 하는 교사이고, 훌륭한 학생은 교사의 강의를 빠짐없이 열심히 듣고 상세히 필기하는 학생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수업의 형태에서 유일한 학습 자료원은 교사가 되고, 학생의 학업성취는 교사의 능력과 태도에 크게 좌우된다. 학생은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관계없이 교사와 교과서가 정해 준 주제와 학습목표 내에서 학습을 해야 한다. 학생은 동료들로부터 학습정보를 얻을 수도 없고, 얻으려 하지도 않는다. 동료들로부터 학습정보를 얻을 시간이나 같이 학습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또한 동료와의 정보교환은 신뢰성이 의심되고 위험부담이 있기 때문에 동료와의 교류를 기피한다. 유일한 정답은 교사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협동학습은 이와 같은 전통적인 수업 방식에서 벗어나 소규모의 집단에 공통의 학습목표가 주어지게되면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 구성원이 서로 도우면서 학습을 하게 한다. 여기서는 긍정적인 상호의존성을 가지게 되고, 타인이 성공해야 자신도 성공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결과를 얻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협동학습은 인지적인 측면과 정의적인 측면의 약점들을 동시에 제거하여 집단의 응집성을 강하게 함으로써 학습분위기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이끌어 주게되어 학습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 그 필요성이 있다고 하겠다. Ⅲ. 협동학습의 특징과 장점 협동학습의 이론은 소집단 구성원간의 긍정적 상호작용을 최대화해서 인지적 발달을 도모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협동학습 학습자들의 긍정적 상호작용을 유도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 수업의 목표가 구체적이고 각 학습자는 목표 인식도가 높다. 각각의 학습자는 자신이 활동해서 얻어야 할 학습목표를 분명히 제시받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 활동을 한다. 둘째, 학생들 사이에 긍정적 상호 의존성이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협동학습은 구조적으로 동료들끼리 서로 도와주어야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긍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셋째, 대면적 상호작용이 있다. 협동학습에서는 3인치 목소리를 강조한다. 즉 3인치의 거리에서 말하고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낮은 소리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의사소통을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소집단 구성원 사이에 물리적으로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공동 과제의 성취를 위해 밀접한 상호작용을 유도해야 함을 의미한다. 넷째,ꡐ개별적 책무성’이다. 협동학습에서 집단 구성원 개개인은 다른 구성원에 대해 개인적인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있다. 개별적 책무성은 개인이 얻은 점수를 집단 점수에 반영하는 방식과 집단이 수행해야 할 학습과제를 분업화하는 두 가지 방식이 주로 사용된다. 다섯째, 집단목표(집단보상)ꡑ이 있다. 협동학습에서는 개인의 목표달성이 각 집단의 공동목표 달성 여부에 달려있으므로 구성원들이 집단의 목표달성을 위해 동료들을 도와주고 도움을 받으려 하는 등 활발한 긍정적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여섯째, 이질적인 팀 구성을 특징으로 한다. 동료 간의 상호작용을 활발하게 하기 위해서는 한 팀을 이루는 구성원의 질이 다양해야 한다. 인지적 능력의 차이 남녀의 차이, 문화적 배경의 차이가 많을수록 다양한 관점,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활발한 토론 등 상호작용이 극대화되며, 이는 인지적으로나 정의적으로 학습자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조건이 된다. 일곱째, 집단 과정을 매우 중시한다. 한 수업이 끝났거나, 하루의 일과가 끝났거나, 며칠에 걸친 과제가 끝났을 때 소집단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이러한 기회의 제공은 학생들이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기능을 발전시키고, 집단적으로는 보다 효율적인 소집단 활동이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협동학습의 특징은 협동학습의 종류에 관계없이 구성원 사이의 상호작용을 최대화시키는 역할을 하며, 이런 특징이 많이 반영된 협동학습 모형이 더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 협동학습의 장점으로는 교사에게 다양한 수업 전략을 제공해주고, 학습자가 수업 중에도 신체를 많이 움직일 수 있게 한다. 또한 협동학습은 학습자에게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를 길러주고, 문제를 해결하거나 의사결정 하는 능력을 길러준다. 그리고 학습자에게 많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경험과 지적 모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아가 협동학습은 학습자가 구체적 사고에서 추상적 사고로 이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주고, 학생들이 교사의 통제나 보호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학습을 함으로써 다양한 정보원을 접하고 독립심을 기를 수 있게 하여 준다. Ⅳ. 결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자기주도적인 학습능력을 갖춘 인간 양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교수․학습 방법의 하나로 협동학습을 제시하고 있다. 협동학습은 학습자의 능력, 관심, 욕구 등의 차이가 있는 서로 다른 구성원들이 과제에 대한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고, 서로 협력하면서 긍정적인 상호의존성을 가지게 하며, 개인의 능력 향상과 전체적인 학습 의욕과 참여 의식을 높여 공동의 문제 해결에 참여하고 학습의 능률과 성과를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이미 보도를 통해 새로운 교원단체가 출범한다는 사실을 교원은 물론, 일반국민 들까지 대부분 알고 있다. 이로인해 교원단체가 난립되는 시대로 도래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교원단체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하고 있는 한국교총과 전교조에 규모는 크지 않지만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교조, 좋은교사운동 등이 현재 어느정도 알려진 교원단체들이다. 현재는 이들을 통상적으로 교직단체로 부르는 경우가 더 많다. 여기에 '자유교원조합'과 '뉴라이트 전국연합 교사연합'이 잇달아 기자회견을 열고 창립을 했거나 준비중이다. 표면적으로 보기에 이들은 모두 보수연합단체이다. 따라서 한국교총과는 상당히 비슷한 성향을 가진단체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헷갈리는 부분은 교원들은 물론 일반국민들도 '자유교원조합'과 '뉴라이트 전국연합 교사연합'을 같은 단체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즉 비슷한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했고, 추구하는 방향도 거의 같기 때문이다. 지금도 교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두 단체가 같은 단체인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뉴라이트 전국연합'을 독립된 또다른 교원 중심의 보수단체로 알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 더 나아가서는 '뉴라이트 전국연합 교사연합'은 명백히 '뉴라이트 전국연합'의 산하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교총'의 산하단체로 보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뉴라이트 전국연합 교사연합이 회원을 모집하면서 한국교총회원들의 정보를 입수하여 한국교총회원을 상대로 모집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국교총에서는 '한국교총과는 관련없는 단체라는 것'을 밝혔지만 아직도 잘못알고 있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 이렇듯 헷갈리게되는 이유는 두 단체가 비슷한 시기에 기자회견을 했다는 점과 '반 전교조활동'을 전면에 내걸었다는 이유가 주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비슷한 성향의 단체가 난립하면서 교원과 일반국민에게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다만 다른점이 있다면 '자유교원조합'은 노조로 출발할 것으로 보이고 '뉴라이트 전국연합 교사연합'은 노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뉴라이트 진영에서는 '교사가 노조를 만들면 안된다'는 기본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비슷한 성향의 교원단체를 새로 설립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의문을 갖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결국 이들 단체를 설립하는 목적이 다른데 있지는 않나 싶은 의구심이 생긴다. 지금의 교육현실에서 힘을 합쳐 노력해도 교육문제 해결이 어려운 시점에서 서로 이름만 다른 단체를 만든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득보다는 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전교조가 비난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초심을 잃고 정치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단체들도 마찬가지이다. 국민을 헷갈리게 하지말고 지금이라도 힘을 합쳐 하나로 뭉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민원인(주로 학부모)의 편익을 도모하고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2006학년도 부터 팩스를 통해 전ㆍ입학 수속을 밟을 수 있도록 한다고 밝혔는데, 이 제도는 이미 서울시내 대부분의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서울시 교육청에서 이 제도를 시행토록 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의 주요내용은 이렇다. 민원인(주로 학부모)이 학교를 방문하면 학교의 담당교사가 해당서류를 확인(주민등록 등본-거주지 이전 확인)하게 된다. 확인이 끝나면 담당교사가 학생이동부에 기재를 한 후 결재를 받는다. 그리고 교육청에 해당서류를 작성하여 팩스로 보낸다. 교육청에서 이 팩스를 확인한 후 담당교사에게 연락을 취하여 새로 전입해갈 학교를 정하게 된다. 이렇게 학교가 정해지면 학부모는 배정받은 학교에 가서 전입절차를 밟으면 된다. 이것이 주요업무내용이다. 그동안의 전ㆍ입학절차(전출의 경우)를 보면 학부모가 해당서류를 준비하여 재학중인 학교를 방문한다. 담임교사로 부터 재학증명서를 발급받으면 담당교사가 서류를 확인하고 결재를 받는다. 그 서류를 새로 전입해갈 학교가 속한 교육청에 제출하여 학교를 배정 받으라는 안내와 함께 학부모가 해당교육청을 방문토록 한다. 학부모는 해당교육청에서 전입할 학교를 선택하여 배정을 받은 다음, 배정 받은 학교를 방문하여 전입절차를 밟으면 되는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재학증명서를 발급받고 교육청에서 학교배정을 받은다음 다시 재학중인 학교에 와서 전ㆍ입학 수속을 해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일단 서류를 발급받은 후에는 바로 전출이 가능했다. 이 제도에서 바뀐점은 학부모가 교육청을 직접방문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즉 전입할 학교를 바로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학부모 중에는 학교정보를 알고 싶어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 새로 전입해야 할 학교이기 때문에 재학중인 학교에서는 정보를 잘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반면 재학중인 학교의 담당자(교사)는 기존의 방법에 비해 업무가 훨씬더 가중되고 있다는 평가다. 학적 담당교사들은 일단 서류를 확인한 후 교육청에 팩스를 보내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게 되는데, 그 시간이 짧은 경우도 많지만 점심시간이나 서류상에 오류가 있을 경우는 몇시간을 지체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학부모는 도리어 학교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는 것이다. 해당교사가 전ㆍ입학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고 수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학부모가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고 한다. 교육청의 담당자는 기존의 방법에 비해 업무가 효율적이다. 학부모와 직접대면하지 않고 전화로만 상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육청에서는 팩스서류를 확인하고 전화통화를 하여 학교를 배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학부모 역시 편해진 점이 있긴 하다. 교육청을 방문하지 않고 직접 배정받은 학교로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의 담당교사는 업무가 도리어 가중되고 있다. 물론 민원인(학부모)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을 하지만 교사에게 업무를 가중시킨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이러한 방법을 정착시키고 학부모가 기다리는 시간도 줄이기 위해서는 전ㆍ입학 관련 업무를 행정실 등으로 이관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경기도안산교육청(교육장 류옥희)은 오는 3월 개교하는 신설 4개교 중학교 업무 담당자 회의를 1월 31일 오후 4시 교육청 소회의실에서 가졌다. 이 자리에는 신설교 겸임근무 발령교사 8명과 설립 사무취급교 교감 및 교무부장이 참석하여 개교업무 추진과 관련된 연수와 협의를 가졌다. 류 교육장은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이 새로운 학교 역사를 만드는 주역"이라며 "개교 업무를 빈틈없이 처리하여 신설교 개교에 한 치의 오차도 없게 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이날 회의에서는 겸임발령장 수여와 함께 설립사무 취급교 개교전 준비사항, 예산 집행, 물품 구매 시 유의사항, 개교 준비 세부 추진 계획, 개교준비 계획서(안), 학교 시설 환경 추진 계획이 전달되었다. 현재 안산교육청 관내에는 공립 중학교 20개교가 있는데 오는 3월 1일자로 단원중(13학급), 안산성호중(15), 안산해양중(13), 석수중(8)이 개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