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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검색숯이 될까, 다이아몬드가 될까 태초에 탄소 형제가 공중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에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이제 너희의 공기 생활은 끝났다. 저 땅 밑으로 들어가 살아야 할 때가 되었다." 형은 침묵한 반면 아우는 반항했다. "싫어요. 땅 밑은 엄청난 고통일 텐데 어떻게 살아요? 저는 도망해서라도 지상에서 살겠어요. " 이내 천둥이 쳤다. 벼락이 쳤다. 폭풍우가 몰려왔다. 세상이 바뀌었다. 순명한 형은 땅속 깊숙한 곳에 묻혔다. 거기서 어마어마한 압박과 뜨거운 열을 견뎌내며 살아야 했다. 지상을 원한 탄소네 아우가 눈을 떴다. 그는 그제야 자기가 시꺼먼 숯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느 날 숯은 아무도 견줄 수 없는 무적의 보석이 나타났다고 사람들이 몰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다이아몬드가 된 숯의 형제였다. -정채봉의 짧은 에세이 「숯과 다이아몬드」중에서- 마더 테레사 뒤에는 역경을 이겨낸 어머니가 있었다 120 여개 국에 자신의 영혼이 깃든 '사랑의 선교회'를 남기고 떠난 마더 테레사. 그녀는 평생 낮은 곳에서 사랑을 전하며 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부모님의 영향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녀의 부모님은 늘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주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특히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녀의 어머니는 가정을 훌륭하게 이끌어갔을 뿐 아니라 깊은 신앙심으로 막내딸의 수녀 서원과 인도에서의 선교 활동을 지지해 주었다.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기억하는 테레사 수녀를 지탱해준 힘은 바로 어머니라는큰 나무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경지수 높이기 1997년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풀스톨츠(Paul, G. stoltz) 박사는 IQ나 EQ보다 AQ(Adversity Quotient)가 높은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역경지수(AQ)란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냉철한 현실 인식과 합리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끝까지 도전하여 목표를 성취하는 노력과 능력을 말한다. 폴 스톨츠 박사는 자신의 저서 장애물을 기회로 전환시켜라(Turning Obstacles into Opportunities)에서 사람들이 역경에 대처하는 스타일을 등반에 비유하여 3가지 타입으로 분류하였다. 첫째, 힘든 문제나 역경이 다가오면 도망가거나 포기하는 사람을 쿼터형(Quitter). 둘째, 역경 앞에서 뚜렷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현상유지 정도로 적당히 안주하는 사람을 캠프형(Camper). 셋째, 시련이 다가올 때 자신의 모든 능력과 지혜를 동원하여 기필코 역경을 정복하고 마는 사람을 클라이머형(Climber)이라고 분류했다. 이 클라이머형의 능력을 스톨츠 박사는 ‘역경지수’라 했다. 클라이머(등반자)의 주요한 특징은 자신만 역경을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동료를 격려하고 북돋우면서 함께 산을 정복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 세상은 혼자만 살아갈 수 없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손에 손을 잡고’ 벽을 기어오르는 담쟁이넝쿨처럼 삶을 함께 공유해야만 한다. 학자들은 필요에 따라서 삶의 가치를 측정하는 여러 가지 지표를 만들었다. 즉, EQ(감성지수), MQ(도덕지수), CQ(사회적응지수), NQ(공존지수), 등 이다. 이 모든 지수를 수치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살아가는데 참고가 될 뿐인데도 이들 중 오늘날 주목하고 있는 지수가 AQ(역경지수)이다. 스톨츠 박사는 미래의 인간성은 지능지수보다 역경지수가 인간의 능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라 강조했다. 이순신 장군의 어록 “필생즉사(必生卽死) 사필즉생(死必卽生)” 즉, “싸움에 있어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인생이란 결국역경을 극복하기 위한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신뢰 위기 시대, 누구를 믿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에서 공통으로 겪고 있는 경제현상은 불확실성과 변동성의 확대다. 경제학자들은 "확실한 것은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러기에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이병철 회장은 내가 누구인지 알 때가 되면 죽는 날이라고 했다. 그는 죽기 얼마 전 죽음 이후의 세계를 고민하며 신부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답을 듣지 못한 채 죽었다고 한다. 지금보다 더한불확실성의 시대가 있었을까? 끝을 알 수 없는 국제적인 경제불황, 전쟁의 위험 속에 긴장된 남북관계, 불확실한 미래와 학업 스트레스로 날마다 죽어가는 젊은이들. 일하고 싶어도 취업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아픈 현실들. 좋은 소식, 행복한 소식보다는 아프고 힘든 소식들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그래도 희망이라면 아름다운 봄날을 장식하는 꽃들의 향연이다. 질기고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단 며칠 세상 구경을 하려고, 하늘을 향한 나팔을 불고 서 있는 꽃들 만큼이라도 역경지수를 갖췄는지 나를 돌아보며 부끄러워지는 계절이다. 그래서 자연은 가장 위대한 스승이라고 했으리라. 말없이 몸으로 보여주는 스승이 최고이니 말이다. 나라를 꾸려갈 어른들을 뽑아놓고도 뒤끝이 개운하지 않아 연일 시끄러운 걸 보면 진정 사람이 만물의 영장인가 회의하게 된다. 가진 자들은 더 가지려고 온갖 추태를 부리며 힘들게 버티는 사람들의 소박한 희망마저 뭉개버리기 때문이다. 지금은 신뢰 위기의 시대다. 누구를 의지하고 믿을 것인가. 결국은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며 지키고 이겨내게 하는 일이 급선무다. 세상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자기 자신을 바로 보게 하는 교육이 먼저다. 부모라는 울타리가 바람에 무너지고 학교라는 공동체가 나를 힘들게 할 때에도 자기 자신을 놓아버리지 않고 지켜낼 강한 인간을 길러내는 일이 급하다. 자존감을 키우고 역경지수를 높이는 일이 급선무다. 사회 구조를 바꾸고 제도를 개혁할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 잘 될 것이다.'라고 결심하라! 그러고 나서 방법을 찾아라! -에이브러햄 링컨 지금 우리는 모두 아파야 한다. 부모도 선생님도 함께 아파야 한다. 정치가도 장관도 대통령도 모두 아파야 한다. 불신의 시대, 공허한 정신으로 무한경쟁을 벌이며 우정이나 협동, 조화나 공감 대신 개미지옥 같은 현실의 벽 속에서 서로 짓밟고 할퀴며 모두가 가해자요, 피해자로 힘들어하지만 책임지는 사람조차 없다. 변죽만 울리는 정책, 그 정책을 수행하느라 더 바쁜 학교는 아파하는 학생들을 따뜻이 보듬어주기 위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난감한 현실이 아닌가. 학교 교육이 힘들다며 튀쳐 나간 학생들이 국가를 상대로 1인 시위를 벌이거나 단체 행동을 하기에 이르렀으니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나서야 한다. 살고 싶다고 울부짖는 소리를 외면한 채, 귀를 막고 늘 해오던 대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힐링캠프, 아이들의 상처를 듣고공감하고 위로하는 일부터 더디더라도 학생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고 그 아이들의 아픈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 공부로 상처 받은 가슴 속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 힐링캠프는 텔레비전 속에서 나와서 오늘 우리 아이들의 교실로 들어와야 하고, 우리 아이들의 집으로 들어가서 어버이와 무릎을 맞대고 상처를 치유하며 함께 울고 다독여야 한다. 상처를 준 부모와 선생님, 그리고 정책 입안자들도 진솔하게 잘못을 빌어야 한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우리 아이들이 세상을 버리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부둥켜 안고 사랑을 전하며 함께 울어야 한다. 마음이 통하면 방법이 나온다. 우리의 아이들, 학생들은 모두 착하다. 누군가 단한 사람의 위로가, 눈맞춤이 절망 속에서 허덕이는 아이들을 잡아줄 지푸라기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아이들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나서야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낼 수 있도록 역경지수를 올릴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버들피리를 불었어요. 대구 신성초 제 4학년 1반 교실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됐어요. 저도 소리가 납니다.” “저는 줄방귀 소리가 나는데요.” 담임인 손한별 교사가 우리 것 찾기 운동으로 ‘옛날 어린이들의 장난감’ 시간에 버들피리 만들어 불기 시간이다. 어린이들에게 버들피리를 만들어서 불어 보기를 체험시키기 위해 일요일도 반납하고 금호강변에서 버들가지를 꺾어 오고 마을 어르신께 배워 왔지만 잘 되지 않아서 학교 지킴이 남상길 선생님을 자료 인사로 초빙하고 이웃 반 원로 선생님도 오셔서 도와주는 수업이었다. “머리감은 수양버들 거문고 타고” 노래를 부르면서 시작된 버들피리 만들기 놀이 공부는 30분 정도 진행 되었다. 처음 껍질을 벗긴 다음에 이렇게 껍질과 나무 부분이 분리되게 비틀어야 한다. 그 다음은 칼로 잘라서 요렇게 뽑아 가지고 떨판은 이렇게 만드는데, 여기에는 기술이 필요해 너무 많이 벗기면 잘려 나가 버리고 알맞게 벗겨야 소리가 난다고 일러 주었다. 어린이들은 흥미진진하게 처다 보며 따라하려고 해 보지만 실패가 거듭 되었다. 그래도 포기하는 어린이는 없었다. 시끌벅적하게 진행되었지만 전체 어린이가 버들피리를 만들었고 모두가 소리를 낼 수 있었으며 어린이가 좋아하는 공부였다. "지난해에도 이 공부를 해 보려고 생각 했으나 시간을 놓쳐 못했는데 여러분은 운이 너무 좋아서 시기를 맞출 수 있었고 또 자료 선생님도 잘 만나 고맙다"는 박수를 보내며 수업은 끝을 맺었다. 버들피리 한 개를 더 챙겨 민호가 동생에게 준다고 하니 동생이 있는 어린이 들은 모두 하나씩 더 챙기기도 했다. “버드나무 가지를 백화점에 가면 살 수 있습니까?” 하고 질문해서 교실이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처음 버들피리를 불어 보는 어린이들이 “선생님 어떻게 불어요?” 쏟아지는 물음에 처음에는 설명을 해 줘도 안 되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힘을 써서 부는 아이, 떨판을 물고 있는 아이, 가지각색 이었지만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 부는 방법을 스스로 습득하여 이제 같이 합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버들피리 합주에서 봄의 아지랑이가 살랑살랑 피어올라 어린이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 공부였다. 버들피리 소리를 듣는 학부모도 선생님들도 모두 박수를 보냈다. 손 교사는 몇 가지 붙여 "요즈음 학교는 무척 바뻐 담임교사가 뜻하는 것이 있어도 계획한 것을 한번 하려고 하면 시간을 뺄 수가 없다"고 했다. 리코더에서 단소 까지 유창하게 불 수 있어도 버들피리는 못 부는 우리 어린이들. 장난감은 모두 사야 하는 것으로 아는 어린이들이란다. 이제 곧 여름이 온다. 손으로 흙을 만진다고 하면 파상풍이니 뭐니 하고 학부형의 전화가 두렵긴 하지만 이번 여름에는 느티나무 아래서 땅뺏기를 가르쳐 주겠다며 힘주며 말을 맺었다.
대한적십자사 대전.충남 RCY 단원들은 적십자 대전충남지사 1층 회의실에서 '2012년 RCY 우정의 선물상자'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RCY 우정의 선물상자는 제1차 세계대전 중 미국, 캐나다, 호주의 청소년들이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는 세계 각국의 친구들에게 선물상자를 만들어 보낸 것이 계기가 돼 국제적십자사연맹이 각국의 적십자 활동 중 청소년 프로그램으로 이를 전개할 것을 권장, 시작됐다. 이에 대한적십자사는 RCY 단원들이 스스로 참여해 1991년부터 현재까지 몽골, 미얀마,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캄보디아 등 37개국에 15만7778 상자를 전달했다. 특히 지난 2001년부터 2003년까지는 북한 어린이들에게도 3만74상자를 전달했다. 서일여고RCY단원 3학년4반 오지원학생은 작지만 정성을 모아서 전달하는 이 선물상자가 저개발 국가나 어려운 곳에 뜻깊게 쓰여지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올해는 우정의 선물상자 모으기를 통해 대전.충남지역 59개 학교에서 보낸 350만원 상당의 학용품과 성금으로 약 840여개의 선물상자를 제작했다. 이는 저개발국가의 어린이들의 학업을 위해 선물될 예정이다.
부용초 어린이들, 장애·노인 복지시설 방문 위문활동 23일, 김제 부용초 어린이들이 금산면 소재 노인·장애 복지시설인 ‘임마누엘 평강의 집(원장 서해인)’을 방문 위문 및 봉사활동을했다. 2,4,6학년 20여명의 학생들은 정성껏 모은 성인용 기저귀를 비롯한 생활필수 위문품을 모아 전달했으며, 평소 배우고 익힌 오카리나 연주를 비롯한 10여 가지의 프로그램을 공연하여 20여명의 원생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사했다. 어르신들과 과자를 함께 먹으면서 정답께 대화를 나누고, 어깨를 주물러 드리는 등 경노효친을 실천한 학생들의 얼굴에는 보람찬 미소가 보였다. 한 할머니는 “너희들을 보니까 우리 손자들이 보고 싶다.”면서 눈에 눈물을 보이며 고마워했다.부용초는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과 나눔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키워주기 위해서 1년에 적어도 2번 이상 이런 교육활동을 벌인다고 한다.
총선일이었던11일, 일찍 투표를 하고 지인들과 서해안으로 여행을 떠났다. 첫 번째 들린 곳이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성당(충남기념물 제144호)이다. 수수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로 7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했을 만큼 찾는 이들이 많은 공세리성당(http://www.gongseri.or.kr)은 한국 최초로 천주교의 복음이 전파된 충청도에서 두 번째로 오랜 역사를 지닌 성당이다. 공세리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충청도 서남부인 아산, 서산, 공주, 청주, 회인, 옥천 등에서 거둬들인 조세를 보관하던 공진창(貢津倉)에서 유래한다. 1895년에 프랑스인 드비즈 신부가 이곳의 공진창 자리에 창고로 쓰였던 건물을 사들여 1897년에 성당과 사제관으로 만들었고, 1922년에 빨간 벽돌로 근대의 고딕식 성당과 사제관을 지었다. 드지브 신부님이 원료를 구입해 무료로 나눠주던 고약이 한때 종기 치료에 최고의 특효약이었던 이명래고약의 원조였다는 것은 덤으로 얻는 정보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에 수령 350년이 넘는 보호수와 장례식 미사가 진행 중인 성당의 분위기가 이국적이다. 공세리성지성당박물관, 베네딕도관, 순교자현양비. 지하토굴의 성채조배실 등을 둘러봤다. 공세리성당에서 가까운 곳에 아산시 인주면과 당진시 신평면 사이의 삽교천 하구를 가로막은 인공담수호 삽교호(http://www.sapgyoho.or.kr)가 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1979년 10월 26일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했던 고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한다. 삽교호 국민관광지는 퇴역 군함으로 이뤄진 함상공원, 놀이동산, 유람선이 있는 아름다운 바다공원이다. 기념탑을 지나 바닷가로 나가면 왼편으로는 행담도와 서해대교, 오른편으로는 방조제와 배수갑문이 바라보인다. 바닷가에 쉼터 역할을 하는 벤치와 데크로 만든 산책로가 있다. 삽교호에서 나와 서해고속도로 송악IC 입구를 지나는 38번 국도를 석문방조제 방향으로 달리면 필경사(충남기념물 제107호)가 가깝다. 당진시 송악읍 부곡리 필경사(筆耕舍)는 일제강점기의 아담한 목조주택으로 심훈의 문학 산실이다. 이 집은 1932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낙향한 항일시인이자 계몽문학의 선구자인 심훈이 직접 설계하여 짓고 조선인들의 마음을 붓으로 갈아엎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필경사(筆耕舍)'라는 당호를 붙였다. 한국 농촌소설의 대표작인 상록수, 직녀성 등이 여기에서 집필되었다. 고택의 마루방과 사랑방 외부에 화분을 놓을 수 있는 작은 베란다가 있어 심훈의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씨를 엿보게 한다. 상록초등학교가 인근에 있다. 왔던 길을 되돌아 한진교차로에서 직진하면 부곡공단, 고기잡이배, 행담도, 서해대교, 평택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한진포구다. 한진포구는 예전에 '큰 나루'를 뜻하는 대진(大津)으로 불리었다. 이곳은 당나라와 해상무역이 이루어졌고, 조선 시대에는 한양으로 가는 큰 항구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숭어 어란을 일본에 실어 나르던 포구였단다. 높은 굴뚝에서 연기를 내뿜는 공단 옆 부둣가에 횟집들이 늘어선 작은 어촌마을에서 화려했던 옛날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진포구에서 나와 38번 국도를 달리다 안섬갯마을로 간다. 바다가 생활의 터전인 어민들에게는 제일 큰 소원이 바닷길에 대한 안전과 만선이다. 어민들의 마음을 하늘에 알리는 안섬풍어굿(충청남도무형문화재 제35호)으로 유명한 이곳에 안섬휴양공원이 있다. 좁은 골목 끝에서 만나는 안섬휴양공원(http://www.ansum.com)은 해안가 절벽위에 노송과 카페가 어우러진 천혜의 휴식공간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휴양공원에는 전망대, 정자, 족구장, 산책로, 식당 등이 잘 조성되어 있다. 안섬포구에서 수산물을 싼값에 구입할 수 있어 가족나들이 휴식장소로 좋다. 특히 전망대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등대와 방파제, 고깃배와 바다의 풍경이 멋지다. 섬처럼 끝이 막힌 지형이라 '섬꾸미'로 불렸다는 성구미포구에 가면 지역에 따라 간재미, 간제미, 갱개미로 불리는 간자미를 싼값에 맛볼 수 있다. 석문방조제 초입의 성구미포구가 봄철이면 어부들이 직접 잡은 간자미, 주꾸미, 실치회를 맛보려는 식객들로 넘쳐난다. 최근 인근에 현대제철이 들어서며 포구의 모습과 길이 많이 바뀌었지만 옆으로 이전한 횟집들은 옛 인심 그대로 손님을 맞이한다. 석문방조제는 당진시 송산면 가곡리와 석문면 장고항리의 바닷길 10.6km를 잇는 방조제로 1987년부터 1995년까지 8년 5개월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완공되었다. 방조제의 제방에서 서쪽으로 장고항이 바라보이는데 그 뒤편에 서해안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왜목마을이 있다. 석문방조제를 지나면 포구의 지형이 장고를 닮았다는 장고항이 가깝다. 장고항은 제법 큰 포구로 일출과 일몰을 감상할 수 있고 배낚시를 즐기는 낚시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다. 이곳에서 해마다 봄철이면 입맛을 돋워주는 실치 축제가 열린다. 배들이 정박 중인 방파제 뒤편에 노적봉의 기암절벽과 촛대바위, 소나무가 어우러진 자갈밭이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왜목마을과 국화도의 풍경이 멋지고 용이 승천했다는 해식동굴의 생김새가 기이하다. 왜목마을에서 해돋이를 하며 바라보는 곳이 노적봉과 촛대바위다. 왜목마을의 일출은 노적봉과 촛대바위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오르며 한 폭의 동양화를 만드는 11월부터 3월 사이가 가장 멋지다. 왜목마을(A href="http://www.waemok.org"http://www.waemok.org/A)은 왜가리 목처럼 불쑥 튀어나온 독특한 지형구조다. 바다 너머 경기도 화성시까지는 육지가 멀리 떨어져 있고 수평선이 동해안과 같은 방향이어서 전국에서 유일하게 일출과 일몰은 물론 월출까지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바닷가로 나가면 바다건너 국화도, 장고항의 노적봉과 촛대바위, 당진화력발전소가 가깝다. 당진화력발전소, 당진시 석문면과 서산시 대산읍을 연결하는 대호방조제, 도비도농어촌휴양단지를 지나며 역사를 공부하고 자연 풍경을 만끽한 충남 북부서해안 여행을 마무리했다.
봄비는 여러 면으로 좋다. 자라나는 식물에게 힘을 준다. 물의 부족함을 막아준다. 더러운 먼지를 씻어낸다. 공기를 맑게 한다. 비 온 뒤의 월요일 아침은 너무나 상쾌하고 좋다. 공기도 더없이 맑고 깨끗하다. 하늘도 푸르고 산도 푸르다. 꽃은 더욱 화려하다. 이러한 날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10분 거리의 집을 두고도 주말부부의 생활을 하고 있다. 전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니 함께 그렇게 한다. 학생들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는 것이 이제 몸에 배였다. 일요일 저녁식사를 하고서는 학교를 향했다. 혼자 있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학교에 오는 것이 마음이 편해 학교에 왔다. 아침식사를 하고 학교를 둘러보는 것도 참 좋다. 선생님들께서 일찍 출근하시는 것을 보면 감동의 물결이 출렁인다. 7시가 조금 넘어 오시는 선생님을 보면 절로 감동을 느낀다. 이렇게 일찍 도착하려면 적어도 아침 6시 반은 출근해야 하는 거리에 있는 선생님이다. 도시락을 싸 가지고 오신다. 어떤 선생님은 차 안에서 식사를 한다고 하셨다. 사명을 위해 이렇게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의 교육의 앞날은 참 밝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시켜서도 아니고 담임이 아닌데도 그렇게 하신다. 어떤 선생님은 일찍 출근하셔서 학생들의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런 아름다운 모습들이 쌓여서 전통 있는 학교문화를 만들어낸다. 요즘 교생선생님들도 일찍 출근을 해서 선생님의 훈련을 받는 것을 보면 감동이 된다. 단정한 복장에 성실한 모습으로 선생님 못지않게 열심을 다하면서 교생실습에 임하는 것을 보면 앞날의 선생님들의 수준도 높아지고 품격도 높아지리라 본다. 아침에 학교를 둘러보면서, 화단에 피어있는 꽃들과 나무들의 푸른 새싹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많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을 하지 않는다. ‘다언삭궁’이라, 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린다고 했는데 식물들은 말을 하지 않으니 궁지에 몰릴 일도 없고 망칠 일도 없고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할 일도 없다. 이런 모습이 우리 선생님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주고 있다. 식물들은 언제나 말은 없어도 자기의 할 일은 분명히 한다. 벚꽃나무를 보니 얼마 전 하얀 꽃으로 온 학교를 밝게 비추어 주더니 이제는 푸른 잎으로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연산홍은 눈이 시릴 정도로 붉고 또 붉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아도 자기의 할 일을 하는 그들의 모습이 부럽다. 말없이 자기의 할 일, 자기의 사명을 다하는 무언의 열성이 우리 선생님들에게 가르침이 된다. 식물들은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킨다. 그래서 더욱 빛난다. 자기의 자리를 벗어나면 빛이 나지 않는다. 보기가 싫어진다. 선생님은 언제나 학생들이 있는 곳에 있다.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선생님의 모습이 보석같이 빛나는 것이다. 식물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물건도 그렇다. 제 자리에 있어야 빛이 난다. 우리 선생님들의 위치는 아주 중요한 자리이다.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우리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 중의 하나라 생각된다. 식물은 너무나 생명력이 강하다. 학교에 심겨진 나무들이 한파에 많이 죽기도 했지만 그래도 살아남아 있는 것을 보면서 감탄을 하게 된다. 2년이 지나서 살아나는 나무도 있다. 적응력이 탁월한 것이 식물이 아닌가 싶다. 우리의 환경이 한파와 같다 할지라도 잘 이겨내고 적응하는 힘을 기르도록 용기를 심어준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자랑스럽다. 선생님들의 창의적 사고와 헌신적 노력으로 나날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되고 있다. 이런 노력이 쌓이고 쌓이면 쾌적한 환경을 갖춘 배움의 전당으로 바뀌어질 것이다. 머지않아 학교에 심겨진 우리의 교화, 장미가 선보일 것 같다. 적응력 하면 장미, 아름다움 하면 장미 아닌가? 장미처럼 아름답게 역경을 잘 견뎌내는 아름다운 우리 학생과 선생님….
어느 조사결과를 보니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사람이 이용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 삶의 만족도가 낮다고 한다. 이유는 다른 사람의 삶이 나보다 나아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게 어디 마크 주커버그 때문일까, ‘가식월드’라고 사람들이 말하던 미니홈피나 블로그 역시 ‘방문자’를 의식하는 곳이기 때문에 역시 내 삶의 가장 행복한 순간, 내 삶에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고 싶은 순간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저 뉴스에서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사람이라고 함은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드러내는 페이지, 트위터던 블로그던 포털 뉴스에서 누군가의 성형이나 감량 소식 등 타인의 사생활을 자주 클릭하는 사람으로 고쳐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타인의 삶을 자신의 것과 비교하는 방법이 간편하면 간편할수록 우월감이나 박탈감의 발생도 자연히 신속해진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굳이 참견 잘하는 동네 수다쟁이처럼 이 집 저 집 문 일일이 열고 캐고 다니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도 자꾸만 눈앞에 봐, 봐, 이거, 하고 들이미는 정도가 세서 그렇다. 잘 안 보는 텔레비전을 켰다가 한국의 패리스 힐튼이라며 소개되는 여성을 보니 저 집 드레스룸에서 먼지를 주워 와도 우리 집 한 달 월세보다 많이 나갈 것 같았다. 나는 내 드레스룸에 불만이 없다. 사실은 드레스룸 겸 응접실 겸 작업실 겸 침실이지만 뭐 그렇다 치고, 그러나 나도 모르게 기분이 찌질 해지는 것이다. 아마 저 프로그램에 밤새우며 매달린 방송작가들도 몇을 빼고는 수익이 짠 비정규직일 것이다. 직업이 뭐건 다들 너무나 열심히 산다. 열심히 살고 싶은데 안 되는 사람들은 자신을 탓하는 것도 열심히 한다. 한국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지만 능률은 가장 떨어지고 삶의 만족도는 가장 낮은 편이라고 한다. 켈로그 6시간 노동제 같은 진보적인 시도가 있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업가의 마인드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에서, 어쩌면 미국은 우리나라와 상당히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커피 파는 아르바이트생이 한 시간을 일해도 그 커피를 사 마실 돈이 안 되는 것 같은 깎은 듯 아찔한 경사의 피라미드 사회 구조가 그렇다.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의 저자 변호사 토머스 게이건은 흑인 전기공을 대리해 소송을 진행했다. 단전 사태가 발생해 끼니도 거르고 응급 복구를 하다가 피자를 먹었다는 이유로 해고된 사건이 있었는데, 이는 한국 사회와 닮았다. 피자 문제가 아니라 어이없이 해고되는, 노동자가 파리 목숨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사측은 그를 작업 중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 되는 사람으로 분류했고, 법은 회사의 편을 들어 줬다. 변호사라면 괜찮지 않겠는가 생각하기 쉽지만 게이건의 말로는 자신 같은 중산층도 일자리를 잃으면 아무 대책이 없으니 죽도록 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그는 부침이 심한 파리 목숨의 미국 스타일과 유럽식 민주주의를 조목조목 비교한다. 단순히 비교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유머가 넘치는 문장으로 자신이 경험한 독일 생활은 그 자체만으로도 여행기가 될 수 있을 만큼 흥미롭다고 말한다. 굶고 일하다가 피자 한 조각 먹었다고 전기공은 해고되었지만,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로 마음먹은 독일의 여성 은행원은 그 전에는 노동조합을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조합의 도움으로 무료로 변호사를 선임할 속셈으로 그제야 가입했다. 누가 봐도 얄미운 짓이다. 물론 속이 쓰렸던 게이건은 이용당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고 조합 변호사에게 물었는데, 그의 대답은 쿨했다. “아, 그거야 그녀의 권리죠” 이것만 봐도 SF소설 같았는데, 록밴드도 사회지원금을 받는다는 것이다. 방식도 재미있는데, 시청에서 경연대회를 열어 꼴찌까지 모두 상금을 받는 방식이라고 한다. 툭하면 ‘살아남는 사람은 단 한 명!’을 외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워낙 익숙해지다 보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떤 나라는 그렇게 살고도 있는 것이다.
“선생님! 이것 보세요. 제가 만들었어요. 이렇게 만드는 것이 맞나요? 탄소 여섯 개, 수소 열두 개, 산소 여섯 개를 결합시키니 포도당이 만들어졌어요. 분자구조 모양이 어려워서 겨우 만들었지만 정말 신기하고 뿌듯해요.” 가정여중 1학년 문수연 학생은 우리가 먹는 포도당이 이렇게 여러 가지 원자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가정여자중(교장 장인섭)은 올해 영재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1학년 10명, 2학년 5명, 3학년 5명 등 20명으로 구성하여 팀 프로젝트 수업과 STEAM교육을 한다. 팀원구성은 1학년이 2명, 2학년 1명, 3학년 1명으로 4인 1팀인데, 학년이 서로 다르지만 팀원이 하나의 미션을 해결할 때는 학년에 상관없이 서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협력하면서 문제의 실마리를 찾고 탐구과제를 해결해나간다. 오늘의 미션은 원소, 원자, 분자, 화합물을 알고 아크릴 물감을 만들어 그림을 완성하기까지이다. 가장 작은 수소분자도 만들어보고, 우리가 매일 마시는 산소분자와 물 분자는 간단하게 만들어보았다. 그러나 학생들은 조금 큰 분자 에탄올을 만들면서 진지해지더니 포도당 분자를 만들어내고는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과 만족감으로 즐거워했다. 이제 아크릴 물감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탐색할 차례이다. 물에 요오드화칼륨을 넣어 다 녹였다. 그리고 질산납도 물에 녹였더니 두 용액 모두 투명하다. 물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시험관에 요오드화칼륨을 넣고 질산납을 넣는 순간 학생들은 탄성을 지른다. “와! 너무 예뻐요. 어쩌면 이렇게 노~란 색이 만들어져요?” 노란색 고체는 요오드화납이며 금속화합물이다. 아크릴 물감의 재료를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유를 따끈하게 데워서 식초를 넣으니 몽글몽글 덩어리가 만들어져요. 덩어리를 가제에 거른 후 막자사발에 으깨서 금속화합물과 섞었더니 노랗고, 파랗고, 붉은색 아크릴 물감이 만들어졌어요.” 김예린(가정여중3학년) 학생은 처음으로 경험한 교실 밖 과학 활동에서 흥미와 호기심이 발동했다. 학생들은 직접 만든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니 더욱 잘 그려진다고 즐거워했다. 가정여중은 우수한 학생들에게 수월성 교육 뿐 아니라 다양한 체험활동과 봉사활동을 실천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 특히 서구 노인복지관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노인들과 함께하는 과학 활동과 심부름 등 봉사활동도 추진한다. 또한 영재교육을 통하여 협동심과 공동체 의식을 배우고 다른 학생들에 대한 배려심도 길러주어 인성을 토대로 하는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낼 생각이다.
글을 제법 오래 쓰고 있다. 정확히 문단에 발을 디딘 것으로만 따져도 18년째다. 고등학교 때 문학 공부에 빠져 들기 시작해서 원고지 메우는 작업까지 따지면 근 30년이 넘는다. 발표도 제법 많이 하고 있다. 글을 쓰는 것이 좋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여기저기에 내놓고 있다. 글을 쓰는 일은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오직 내가 좋아서 하는 짓이다. 혹자는 에너지를 쏟는 것에 비해 돈이 안 되는 사실을 알고는 오히려 측은하게 보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글을 쓸 때는 적어도 돈과는 멀리 있다. 인생은 아파트 평수나 돈으로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누구나 마음속에는 갈망이 있다. 그것은 열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글을 쓰는 열정을 지녔다. 글을 쓰면서 삶의 뜨거움을 만끽한다. 글을 쓰면 삶의 풍요로움에 젖는다. 삶에 성실하게 접근하고, 열심히 사는 길을 찾게 된다. 한번뿐인 인생을 마구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삶에 충실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글이 이 모든 것을 살피게 한다. 글쓰기는 치열한 사색을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글을 통해서 혼란스러운 내면을 정리한다. 삶의 충동적인 파도를 잠재우고 질서를 구축한다. 글을 통해 세속의 어지러움에서 벗어난다. 삶의 모습을 조절하고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제 삶은 안정을 찾고, 정화의 순간을 맞이한다. 마침내 영혼의 땅에 머무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글쓰기는 영혼을 여행하는 과정이다. 오늘도 달빛 내음이 흠씬 풍기는 시간에 수필을 한 편 쓴다. 봄바람에 대한 느낌, 개화를 기다리는 나무의 모습까지 언어로 차곡차곡 읽어낸다. 비록 정갈한 언어가 아닐지라도 미쳐보지 못했던 세상이 구석구석 보인다. 관념적인 하루도 알뜰하게 다듬어진다. 그리고 무거운 일상이 가벼워지는 느낌도 있다. 글에는 삶의 무늬가 펼쳐진다. 남과 굽었던 관계도 부드러워지고 어느새 삶의 잔무늬로 남는다. 글에는 내 자신의 감정이 정화되고, 정화된 감정은 다시 삶에 활력이 된다. 다른 사람에게 연민의 감정도 갖게 되면 내 삶이 따뜻해진다. 삶의 한계에 눈 뜨고, 삶의 늪과도 같은 혼돈을 정리한다. 글쓰기를 통해 이루는 내적 성숙함은 세상을 사는데 넉넉한 힘이 된다. 삶이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힘겹고 때로는 거칠고 황량하다. 매일 부딪히는 일상이라도 빗먹기 시작하면 감당하기 힘들다. 지난겨울에도 혹독한 추위에 떨었다. 그때 무엇이 그리도 추웠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를 괴롭힌 것은 아등바등 살아가려는 내 안의 조급증이었다. 욕심 때문에 지쳐 있었다. 다행이 겨울 추위를 견디는 나무의 의연한 모습에 관한 글을 쓰면서 마음의 조급함을 벗어났다. 현직에서 물러나면 간혹 방황의 괴로움을 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갑자기 혼자가 된 낯선 환경 때문이다. 혼자 있으면 외로울 것 같지만, 가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는 즐거움이 될 수 있다. 혼란스러움도 없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혼자서 자신과 만날 필요가 있다. 나는 글을 쓸 때 혼자라는 의식의 방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나 자신과 만나고 정체성을 찾는다. 우리는 너무나 대중 속에 휩쓸려 살고 있다. 나도 발견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밀려 왔다. 혼자서 자신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사색하지 않는 배움은 쓸모가 없다(學而不思卽罔)”라고 공자는 말했다.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성찰과 깨달음의 기회로 삼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늘날 사람들은 손 안에 스마트폰으로 급변하는 세상을 만난다. 저마다 최첨단의 교류를 즐기고 있다. 그야말로 전 세계인과 실시간으로 교감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서의 만남은 온기가 없다. 인간의 근원적 존재의 모습은 누구나 혼자인 것처럼, 오히려 거대한 세상에서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이 말한 ‘군중 속의 고독’은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인간을 지탱하는 것은 여럿이 있겠지만, 그 중에 큰 것이 마음이다. 마음이 불안하면 인간은 신체적 삶도 유지할 수 없다. 즉 우리는 감정을 교감하면서 외로움을 달랜다. 정보화 시대로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더라도 아날로그식의 전통적 교류는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관계는 아날로그형의 열정이 감동을 만든다. 수필은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한 맛이 있다. 느리고 다소 지루하기도 하지만 사색의 길이 열린다. 디지털 세상일수록 아날로그 감동과 접목하는 디지로그 전략이 필요하다. 나는 글을 통해서 바깥세상을 만난다. 글을 쓰는 일은 디지털 세상을 사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이다.
요즘 현대인은 공부와 인격의 연결 밀접도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것 같다. 공부를 잘 해서 연구 실적이 높은 학자가 모두 훌륭한 인격자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예를 우리는 수없이 많이 보고 있다. 논문을 표절하여 문제가 생긴 정치 지도자나 고위 공직자의 일탈 행동은 더욱 많은 공부를 하였지만 신뢰하기 어렵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확산시키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공자가 제시한 ‘공부를 하면 풍요로운 인격이 길러진다’라는 가설은 한번 믿어도 손해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을 정리하는 방법을 공부에서 발견함으로써 마음도 인생도 모두 풍요로워진다고 생각한다. 무언가에 흥미를 붙여 공부를 시작하면 그 분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과거의 자신보다 훨씬 마음이 풍요로워져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한 번뿐인 삶을 살아가는 이상, 기왕에 멋지게 살아갈 생각을 해 본다면 그런 지적인 흥분을 느끼는 쪽의 인생이 더욱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단순히 말하자면 공부를 하는 것은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특히 고전에는 분야와 상관없이 현대를 살아가는 선배들의 지혜가 응축되어 있다. 입구가 어디든 그로부터 고전으로 소급하여 공부하면 대단히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국영수 공부만 해야 하느냐고 교육에 반기를 드는 일부 학생들을 설득할 논리는 우리가 갖추고 있는 것일까? 그런가 하면 지금 일본에선 아이들에게 공자의 논어를 가르치는 붐이 일고 있다. 아이들용 논어가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으며, 서당식 강의를 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들이라 할 찌라도 어찌 아이들 스스로가 공자를 알 것인가? 어른들이나 볼 수 있다는 '논어'라는 책을 아이들이 서점에서 구입할 것인가 궁금하지 않는가? 아이들의 주변에 항상 어른이 존재한다. 좋은 본보기의 어른, 아니면 별로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는 어른?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단순히 자연 속의 환경에서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배우면서 살아 간다. 아이의 모습을 보면 부모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어린 아이들에게 적절한 좋은 자극을 하여 스스로 지적 즐거움을 찾아가는 기회를 마련하여 주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아닐까? 지금 아이들의 부모 세대는 공부에 목말라 있었다. 이러한 학부모들의 의식이 아이들에게 제대로 멧세지로 전달된다면 우리의 지적인 분위기는 큰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러한 충고를 잔소리라고 생각한다. 엇박자이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설득의 기술을 발휘할 때 청소년은 우리에게 희망찬 미래로 다가올 것이다.
요즘 학교장학 형태는 모두가 학교컨설팅 장학이다. MB정부에 들어와서 학교장학 활동이모두 학교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이다. 그것도 몇년새 모든 학교장학 활동이 학교컨설팅으로 통일됐다. 그래서 그 많은 장학들이 우리 교육에서 사라지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물론 ‘시대의 변화에 맞게 교육도 변화되어야 한다’ 는 주장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어느 정도 정착되었던 학교장학들이라아쉬움도 없지 않다. 물론 학교컨설팅이 학교장학의 역할을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 되고 있다는 생각엔 다소 의문이 든다. 현장 교사들의 이야기는 학교컨설팅의 절차가 복잡하고,컨설던트가 외부인에 의존하기 때문에 요청이 어렵고, 그리고 확실한 결과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학교컨설팅이 우리 학교환경에 잘 착근되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는 10여전에 열린교육의 실패 경험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열린교육이 교사들의 자생적인 연수활동으로 잘 확산되어가고 있는 것을 교육부가 모든 학교에 밀어붙이기식 교육정책으로 끌어들이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되고 끝내는 열기도 식고 지금은 그 이름조차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학교컨설팅이란 장학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학교장학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만든 토종 장학활동인 것이다. 2002년부터 한국교육개발원에서 기초연구는 되어왔지만 그리 좋은 지지나 관심은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학교혁신을 위한 교육정책으로 추진되면서 일선학교에 모두 확산시킨 것이다. 문제는 모든 학교의 장학활동이 학교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점이다. 지금까지 내려오던 다양한 장학활동을 한꺼번에 바꾼 것은 매우 획기적인 정책은 될지언정 교육정책으로서는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신규교사들에게 가장 많이 적용하고 있는 임상장학의 경우는 미국 하버드 의대에서 학교교육에 들어오기까지 무려 5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한 것을 보면, 우리는 과히 혁신적이다 할 정도로 여기에도 ‘빨리 빨리’ 문화가 적용된 것이다. 컨설팅이라는 용어는 경영학에서 출현되어 현대 기업경영에 잘 활용되고 있는 제도다. 컨설팅을 하는 컨설던트는 기업경영의 최고 전문가들로 문제가 제기된 기업이 요청할 경우에 분야별 전문 컨설던트가 함께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한 자문과 상담을 해 줄뿐 아니라 문제가 깊은 분야는 이들이 대신 위탁관리해 주는 활동이다. 그리고 컨설팅 결과는 기업성과로 도출되므로 컨설팅 과정에서도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 컨설팅을 우리 교육에 벤치마킹하여 학교컨설팅 장학활동으로 명명한 것이다. 이를테면 '수업컨설팅’, ‘학교컨설팅’, ‘교육컨설팅’, ‘컨설팅 장학’, ‘교수학습 컨설팅’ 등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컨설팅은 학교 문제를 진단하고 개선 방향을 설정하고 함께 해결하는 활동이다. 그러나 학교 문제는 기업처럼 그 원인 진단이나 방향 설정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점이다. 기업은 기획에서 생산과 평가에 이르기까지 그 원인을 찾기 위해 기업환경이나 인사조직, 설비, 유통, 마케팅 등 대부분이 계량화되어 그 효과를 보다 쉽게 측정할 수 있지만 학교는 문제가 다르다. 학교는 사람을 교육하는 곳이므로 대부분의 문제가 인간관계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들로 그 원이 매우 복합적인 심리적 관계로 계량화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비슷한 학교환경이라 하더라도 문제의 내용면에서는 매우다르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다양하고 복잡한 학교문제를 학교 내의 인사도 아닌 외부 인사나 다른 학교 컨설턴트가 컨설팅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학교컨설팅 활동은 무엇보다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진단은 의뢰인이 갖고 있는 문제나 앞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는 과제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분석하고, 그 문제의 원인을 밝혀내며, 대안 수립을 위한 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이다. 그러나 학교구성원들 간에도 서로 밝히기 싫어하는 사실을 제 3자인 컨설턴트에게는 쉽게 털어놓는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또 아무리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타인의 마음속을 들어다보는 일은 그야말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별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다. 사실 필자도 여러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컨설팅을 해봤지만 단지 설문이나 상담을 통한 진단은 진정한 속내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는 일이며 이를 섣부르게 진단내리기도 정말 힘든 일이다. 학교컨설팅 장학의 도입 배경은 지금까지 해온 장학활동은 피장학자인 교사가 스스로 원해서 하는 장학활동이 아니라서 진정한 장학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컨설팅은 Top-down이 아니라 교사가 스스로 요청에 의한 자발적인 장학활동이라 새롭고 성공적인 장학이라는 주장이다. 학교컨설팅의 목표는 학교가 자생적 활력을 함양하여 교육을 질적으로 개선하는 데 있다. 과연 그런 것인가. 장학을 받는 자가 필요에 의해서 요청하는 컨설팅인가. 한 번쯤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일선 학교에서는 컨설팅에 대한 올바른 개념 이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리고 컨설팅 장학과정에 대해선 더더욱 모른다. 그러므로 학교교육의 질을 개선하는 데 학교컨설팅을 제대로 활용하란어려운 것이다. 우리 교육은 너무 한꺼번에 모든 정책을 몰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성급한 교육정책인 것이다. 교육 정책자들이 교육의 다양성에 대해서는 입이 마르도록 그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진작 자신들의 교육정책은 다양성이 아닌 획일성으로 밀어붙인다. 무엇이 획일성이고 다양성인지 혼동하고 있는 느낌이다. 분명히 학교컨설팅은 학교장학의 한 종류인 것이다. 그러므로 학교의 여건을 고려하여 자율적․선택적으로 다양한 장학활동이 이루어져야 진정한 장학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학교문제에 대해서는 그 학교에 근무하는 교원 이상 잘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그 해결방법도 그들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선학교의 모든 장학활동이 학교컨설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심히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장학활동이 탄생되고, 학교는 또 다시 새로운 실험을 해야 하는 누를되풀이 되는 한 우리교육에 희망이 없다. 정책 효과가 잘 나타나는 새로운 정책이 다시 한 줄로 세우는 잘못된 교육정책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교육의 전문가인 교원에 자격증을 주었다면 이젠 교원에게 교육을 믿고 맡겨야 한다. 교원의 전문성은 뒷전에 버려두고 정부의 교육정책에만 몰두해야 하는 학교교육은 이젠 피로감만 느낄 뿐이다.물론 우리 교원들도 깨달아야 한다. 이젠 전문가의 자질을 발휘하는 교육을 해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스스로 찾아다니면서 연수와 연구하는 교사,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는 교사로 거듭나야 우리 교육에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금년부터 실시될 전 학년 정신건강검사 정말 문제 많습니다. 교과부에는 전문상담 학위를 취득한 분들이 안계신가 봅니다. 아니면 특수교육 전공자들이 안계신가 봅니다. 그러다 보니 보건행정직(시설파트) 사무관이 충남 어느 곳에서 학생들 정신건강 홍보 및 언론플레이하여 드디어 학교보건법에 전교생 정신건강 하라는 문구를 통과시킨 듯 보입니다. 경기도 교육청도 예외는 아닙니다. 전문상담 자격증을 승진용으로 취득은 하셨겠지만 어디까지나 본업은 아니므로 비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는 경기도 C 보건장학사는 2007년부터 교과부 공문에 의해 정신건강검진을 시범운영해야 한다는 지침을 무시하고 경기도 모든 초등학교에 정신건강공문을 발송하여 1, 4학년 건강검진을 하도록 지시한 바 있었습니다. 그 때는 '왜 해야 하지?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서 하라면 해야 하나보다' 했지만부작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여론수렴도 없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은 왜 우리가 정신건강진단을 강요 받아야 하느냐고 거부하였고, 정신건강진단 검사를 하면 또 부모님이 강요할꺼 아니냐고 아이들의 압박은 대단합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덜떨어진 모습을 안보이기 위해 모두 정상 체크하여 발송하여 문제건수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앞으로 국고지급 전교생 정신건강검진은 막대한 국고낭비입니다. 그 일로 인해 담임교사들의 힘든 노고, 보건교사들의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지요. 그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실 교과부 보건행정직(시설파트) 사무관은 충남 정신건강 강의를 다니셨습니다. 경기도 C 보건장학사님은 시범학교 적용이 되어 장점, 단점 등 보완책이 생기고 난 뒤, 학교보건법이 통과된 뒤에 모든 학교 학생들에게 표준화 검사가 진행되야 함이 순리인데,정신건강검진은 시범학교가 아닌 저희학교 뿐만 아니라 경기도 초등학교 전체가 그 검사를하느라 혼란 및 에너지 낭비로 인해 보건교사 본연의 일을 못하고 있으며, 경기도의 모든 학생들은 질적인 학교보건서비스(보건실에서 응급처치)를 못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문상담 비전문가는 보건교사가 정신건강 업무를 하도록 못밖아 공문을 발송하는 공권력을 남용합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현장에서는 전문상담교사가 배치되어 있는 경우, 정신건강업무가 전문상담교사에게 가지 않고, 보건교사에게 가게 됩니다. 제가 봤을 때 정신건강 업무는 당연히 전문상담교사 배치된 경우 전문상담교사가 관리해야 자신들의 전문성을 더 높일 수 있는데도, 전문상담교사들은 자기 업무가 아니라고 보건교사에게 미루는 상황입니다. 이런 경우 기존에 배치되어 있는 전문상담교사를 빼는 작업을 하시라고 적극 주장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전문상담교사들이 왜 정신건강 업무를 보건교사에게 미루느냐는 심정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정신건강검진은 상당히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이 것은 입법발의 때부터 거론되어졌어야 했는데 보건행정직(시설파트) 사무관님의 정신건강 강의다닌 이 곳 저 곳의 자료를 보면서, 어떻게 교과부는 정신건강 전문가가 보건행정직(시설파트) 사무관일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특수교육 전문가의 조언정도 들었다면 이 법이 발의되지 않았을텐데. 아쉽습니다. 정신건강 검진을 실시해봤자, 지금 결과가 나쁘게 나온 아이들이 성인기에 정상이었을 때 그 들도 아래의 예시처럼 이러한 상황이 되었다면, 그 때는 교과부, 경기도교육청을 상대로 소송해야 할까요? 그럼에도 검사를 한다고 법이 통과되어 실시되어진다면 개인비밀유지토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담당자, 담임교사 책임뿐이라지만, 불이익을 받고, 아이들의 구전에 의해 번져진 상황은("쟤는 정신건강이상아야...") 애초부터 담당자와 담임교사의 책임을 벗어난 상황이라는 것을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가급적 이 검사를 중지시켜 주시기 바라며 정신건강에서 문제되어 최종선별권자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법으로 지정하지 않으면, 학교보건법 시행령으로 강력하게 보류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아래 글은 특수교육 전문 교수님으로부터 들은 내용들을 요약했습니다. ----------------------------------------------------- 특수교사들은 그 아이가 특수교육 대상자인지 아닌지 최종 진단할 자격이 없다. 특수교육 대상자를 결정할 사람은 고등학교 특수교육대상자를 선별하려면 교육감이, 고등학교 이하의 특수교육대상자를 선별하려면 교육장이 해야 한다. 그것도 전문가의 심리검사, 언어재활가의 언어검사 등을 총망라하여 결정을 하는 것이지 특수교사가 전문적으로 하는 근거는 없다. 정신지체, 학습장애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때 특수교육을 받았으나, 성인기에는 정상인이며, 아무문제 없는 여자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결국 파혼을 당하게 되었다고 한다.이유는 결혼할 배우자가 여자의 뒷조사를 했고, 초등학교때 특수교육을 받았다는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이란다. 초등학교때 잠깐 이상있다고, 특수교육대상자로 낙인찍는 것은 위험하다. 먼 훗날 소송감이 될 수도 있다. 낙인찍는 것은 위험하다. 낙인찍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정신건강검사를 하는 자체다. 정신건강을 왜 비전문가인 보건교사가 검사를 해야 하는가. 그리고 정신건강 검사를 입법에 발의한 사람들 모두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충남 서산 서령고(교장 김동민)는21일 '과학의 날'을 맞아 국립과천과학관서 현장체험학습을 가졌다. '과학이 있어 행복한 날'이라는 주제를 내건 이번 과천과학관체험학습은 1, 2학년 학생들이 참가해 다양한 과학적 체험을 했다. 액체질소로 용가리 되어보기, 자연물을 이용한 곤충 액세서리 만들기, 별똥별 아저씨와 함께 하는 과학놀이 등의 재미있고 신나는 과학체험이 많은 흥미를 유발했다. 이밖에도 생활 속 과학상식을 풀어보는 OX퀴즈, 출연진과 관람객이 함께 참여하는 사이언스 매직쇼와 포크댄스, 브라스배드 금관 5중주 연주 등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기며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학생들은 자유롭게 각 부스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체험한 과학적 지식과 원리를 체험학습장에 꼼꼼하게 기록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이번 체험학습을 기회로 서령고는 앞으로도 주중을 이용해 학교 밖 뜻깊은 체험학습이 되도록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할 예정이다.
20일 오후 광양여중 덕모관에서 새학년 스카우트 신입 대원 선서식이 있었다. 대원 45명은 각자 손에 촛불을 들고 입장하여 모닥불에 촛불을 점화시킴으로 의식이 시작되었다. 작은 촛불이 자기 몸을 태워가며 우리의 앞길을 밝히듯 여러분도 몸과 마음을 바쳐 우리 겨례의 앞날을 밝혀 줄것을 제 322대 배태진 대장은 강조하였다. 스카우트 선서식은 스카우트 명예와 규율을 마음에 담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행사이다. 요즈음 학교 폭력 등 학교 생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학생들의 마음 속에 살아 있는 '생명의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생명의 언어는 사람의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부모는 일에 바쁘고 시회는 무관심하고 그런가 하면 선생님들도 자기가 담당한 교과지식을 가르치기에 바쁜 세상이다. 따라서 청소년의 마음을 움직을 생명의 언어가 고갈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스카우트에 가입하여, 올바른 대원 생활을 하면 요즘 이야기 하는 통합교육을 제대로 받는 것이 될 것이다. 또한 리더십을 갖춰 미래를 이끌어 갈 지도자로 성장할 것이다. 무엇보다 대원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지도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아직도 우리 스카우트가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학교 선생님 중심의 지도라는 것이다. 이웃 일본에서는 지역사회 인사들이 스카우트 지역대를 바르게 육성하여 나가고 있다. 필자가 스카우트 활동을 20여년 간 하면서 만난 한 친구는 지금 일본 중부 토코나메시 시장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 우리 학교에서도최강국, 한혜진 부장이 자원하여 스카우트 지도를 맡아하게 되었다. 참고로 스카우트 규율 12가지를 마음에 새기면서 스카우트 활동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12가지 규율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스카우트는 믿음직하다. 스카우트의 명예는 신임을 받는데 있다. 만약 거짓이나 그릇된 행동이 있을 때에는 명예로운 스카우트의 자격을 잃게 된다. 둘째 스카우트는 충효한다. 나라와 가정과 대 지도자등 받들어야 할 모든사람들에게 충성과 효도를 다한다. 셋째 스카우트는 도움이 된다. 남을 돕는 일에는 언제나 앞장선다. 집안 일을 돕거나, 부상자를 도와주거나, 날마다 적어도 한 가지는 착한 일을 한다. 네째 스카우트는 우애스럽다. 전 인류를 동포로 알고, 모든 스카우트를 형제로 여긴다. 다섯째 스카우트는 예의바르다. 누구에게나 공손하며, 특히 약하고 불행한 사람을 돌보아주고, 은혜를 입으면 꼭 보답한다. 여섯째 스카우트는 친절하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히 대하며, 동물을 애호하고, 생물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일곱째 스카우트는 순종한다. 부모와 대장, 반장과 모든 윗사람의 지시에 잘 따른다. 여덟째 스카우트는 쾌활하다. 항상 기쁜 낯을 하며, 어려움을 당할 때에 불평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아홉째 스카우트는 근검하다. 일을 충실히 하고 물건을 아껴 쓰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돈을 절약하여 저축하되, 선행의 대가는 받지 않는다. 열번째 스카우트는 용감하다. 위험을 당하여도 두려워 하지 않고, 옳은 일을 위해서는 유혹과 협박을 물리치고 굳세게 나아간다. 열한번째 스카우트는 순결하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가지며, 말과 행실이 단정하다. 열두번째 스카우트는 경건하다. 하느님을 공경하고 종교의 의무를 충실히 지키며, 다른 사람의 종교를 존중한다.
나는 아침마다 일찍 일어난다. 새벽 4시 경이면 이상하게도 알림시계를 맞추어 놓은 듯 깨우는 것처럼 일어나는 것이다. 잠을 늦게 잤는데도 정확하게 그 시간만 되면 깨는 것이다. 잠을 더 자고 싶어도 잘 수가 없다. 내 어릴 때 아버님이 한 밤중에 쇠죽을 쑤러 나가던 당시의 모습이 이제 내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자다가 한 번 깨면 정신이 맑아지며 더 잠을 자려고 하여도 잠이 들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것이 현관 밖에 있는 신문을 가지러 간다. 그 때부터 매일 아침 6시까지 신문을 읽게 되는데 내가 필요한 기사는 가위로 오려두는 버릇이 있다. 원래는 기사를 오려서 분류를 하여 잘 활용하려고 한다지만, 보지도 않은 채 쌓아 두기만 하다가 이사 올 때 모두 폐휴지로 버리고 후회하면서도 또 되풀이하여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6시가 되면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산책을 하기 위해 나가게 된다. 내가 사는 곳 주위에는 선사유적지, 갈마공원, 둔지미공원, 샘머리공원, 정부대전청사 주위 문예공원, 대전예술의 전당과 대전시립미술관, 엑스포시민광장, 한밭수목원, 갑천둔치, 은평공원 등 산책코스가 너무나 많다. 대체적으로 많은 산책코스에 비해 주민들이 활용을 하지 않아 늘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한 동안은 갈마공원에만 이용하던 때가 있었다. 그곳에는 올림픽기념 국민생활관도 함께 있어서 넓은 운동장과 작은 동산에 오르내리며 등산하는 기분을 느낄 수가 있어서 자주 이용을 하던 곳이다. 공원 정상에는 정자가 있고 늘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 곳이다. 또, 한밭대로를 따라 갈마공원에서부터 정부3청사 있는 곳까지 공원이 이어져 있어서 정부청사 옆 문예공원 남쪽과 북쪽 잔디광장을 돌아서 오기도 한다. 어떤 때에는 선사유적지를 거쳐 서쪽 문예공원을 거쳐 3청사 담장을 따라 가다가 3청사 북문에서 둔산대공원에 위치한 한밭수목원을 다녀오기도 한다. 한밭수목원은 정부대전청사와 엑스포과학공원의 중앙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근린공원으로 지정된 둔산대공원은 대전예술의전당, 평송청소년문화센터, 시립미술관, 이응노미술관 등 명실상부한 문화 예술의 메카이며, 수목원과 어우러져 문화가 가장 잘 갖추어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도심 속의 한밭수목원은 정부대전청사와 과학공원의 녹지축을 연계한 전국 최대의 도심 속 인공수목원으로 청소년들에게 자연체험학습의 장, 시민들에게는 도심 속에서 대자연을 느끼며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한밭수목원은 4단계로 구분하여 년차별로 서원(시립미술관 북측)과 남문광장은 2005년에 개원하였고, 동원(평송청소년문화센터 북측)은 3년여의 공사기간을 거쳐 2008년에 개원되었다. 동원은 목련원, 약용식물원, 암석원, 유실수원 등 19개 테마별 정원 등을 구경할 수 있다. 2011년에는 맹그로브를 주제로 한 열대식물원이 개원되었다. 또, 열대식물원은 맹그로브원, 야자원, 열대화목원, 열대우림원의 4개 주제원으로 구성되어, 열대식물과 아열대식물들을 심어 기르고 있다. 열대식물원은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 등을 수행하면서 이국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이다. 엑스포시민광장을 지나 한밭수목원과 대전 엑스포남문으로 가다 보면 엑스포 다리와 한빛탑과 어우러진 우성이 산자락이 초등학교 미술교과서에 나오는 사진처럼 멋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곳 엑스포시민광장과 갑천둔치에서 2012 대전세계조리사대회가 5월 1일부터 5월 12일까지 ‘한국인의 손맛! 세계인의 입맛!’이라는 주제로 97개국 3만명의 참가자와 관람객 35만명을 목표로 대전시와 한국조리사중앙회 주최로 이루어지게 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셰프들이 겨루는 ‘요리 올림픽’ 축하행사가 1993년도 대전엑스포에 이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이곳에 처음 오는 관광객들은 날씨와 상관없이 운동이나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빙쉘터와 엑스포남문, 엑스포다리와 한빛탑이 어우러진 감각적이고 예술적인 아름다움에 사진으로 담기에 바쁘다. 엑스포다리 건너기 전에 갑천 쪽으로 내려가면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잘 꾸며진 갑천둔치를 볼 수 있다. 이곳에는 넓은 잔디광장과 자전거 길 산책길과 휴식공간, 야구장, 농구장, 축구장, 족구장 등 체육시설이 보강이 되어 의도적인 사업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갑천 변을 따라 유성 쪽으로 가파른 숨을 몰아쉬며 발걸음을 내딛다보면 멀리서 보이는 유성 시내와 유림공원이 멀리 계룡산 자락과 어우러져 그야말로 한 폭의 수묵담채화를 보는 듯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연구단지로 이어지는 갑천대교와 돌다리 그리고 유림공원으로 이어지는 작은 다리와 갑천변의 수초들과 여유롭게 감아 도는 강변에는 근래에 여러 가지 물새들이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갑천변을 따라 걷다가 KBS 대전방송국 쪽으로 나와서 아파트 산책길을 따라 오는 길과 아니면 곧장 올라가다가 만년교에서 왼쪽으로 돌아서면 은평공원을 만나게 된다. 은평공원에는 날아갈 듯이 세워진 정자와 잔디광장 그리고 은평테니스 코트 등 여러 가지 체육시설들이 잘 구비되어 있어서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밭대로 옆으로 아파트단지의 담장 산책길은 도심 한가운데에서 걷는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산책을 즐기게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40여 년을 근무하던 직장에서 퇴직을 한다고 생각을 하니 조그마한 일에도 고까워하고 미워하며,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늘 피해망상에 빠져 마음을 괴롭히는 일이 많아졌다. 겉은 편안한 체 하였지만 속은 오만과 질투와 도덕 불감증에 걸린 겉과 속이 다른 사람으로 생활했던 것이다. 얼굴만 화장하고 마음은 게을리 한 생활, 지친 세상살이에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하지 못하고 이해심 보다는 섭섭함만 키우던 고민이 나와 대화를 원했지만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았던 나를 되돌아보게 한 것이 산책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내의 마음을 더 외롭게 만들었고, 이웃과 만남에서도 하나 제대로 나눠 먹을 줄 모르고, 언제나 나 위주의 삶으로 닫힌 현관문만큼이나 마음의 문을 닫고 관료지향적인 욕심에 가정에서도 삶의 평화가 없었던 것이다. 키에로케고르는 걸으면서 그의 가장 풍요로운 생각들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걸으면서 쫓아버릴 수 없을 만큼의 무거운 생각이란 없다. 자연과 더불어 걷는다는 것은 뇌를 젊게 하는 것이다. 걷는 동안의 침묵과 고독 미움 증오 고통도 산책을 통해 깨달음과 마음의 평화를 안겨준다. 일상 속에 몸도 마음도 무거울 때가 많다. 아무리 힘들고 고달퍼도 일단 걸음을 떼기 시작하면 그것이 곧 보약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가난해도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재로 모든 것을 소유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침마다 산책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좋은 공원이 내 주위에 많이 있다하더라도 산책을 즐기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걷는 것은 단순히 걷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걸으면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는 것이다. 걷는 것이 휴식이다. 자연의 변화 생기가 넘치는 봄의 변화를 힘찬 새싹이 돋아나는 이 아름다운 봄의 옷을 입는 풀과 나무들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껴보자. 행복은 저 산 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 생활 속에,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것이기에 작은 길, 새로 시작된 남은 인생의 여정을 보낼 새로운 길, 내 자신의 길을 사색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묵묵히 산책을 할 것이다.
원주 평원초(교장 곽수범)는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의 일환으로 20일일부터12월까지 매월 셋째주 금요일에 이미용 서비스를 실시한다. 원주 한라대 뷰티디자인학과 학생들의 자원봉사로 이루어지는 이미용 서비스를 통해 학생들은 헤어커트 및 손톱관리를 받는다.
오늘 같은 하늘은 무섭다. 푸른 하늘을 볼 때면 하늘이 참 좋아 보이는데 검은 하늘을 볼 때면 자신의 마음을 보는 듯해 마음이 차갑고 우울해진다. 마음을 바로 잡고 생각을 키울 수 있는 아침이다. 마음을 다잡고 생각을 키울 수 있는 책 중의 하나가 명심보감이라 생각된다. 그 중 성심편은 마음을 바로 잡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하는 지침서가 아닐까 싶다. 우리 학교는 개교한 지 3년차다. 첫해부터 아침 10분간 명심보감을 통한 인성교육을 하고 있다. 국어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한 문장씩 풀이도 하고 인성교육도 시킨다. 학력향상도 중요하지만 인성교육은 더욱 중요하기에 수업시작 전 이렇게 함은 많은 유익이 있을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한문과목을 대신할 수 있고 바른 인성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어 일석이조라 하겠다. 성심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器滿則溢(기만즉일)하고 人滿則喪(인만즉상)이니라” ‘그릇이 차면 넘치고 사람이 차면 잃어지느라’는 뜻이다. 이 말은 우리 선생님들에게 새로운 마음을 갖도록 해주는 좋은 말씀이라 생각된다. 학생들 앞에서 가르치기만 하니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최고인 줄 착각할 때가 있다. 자기가 제일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을 무시하는 태도가 나타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상처줄 만한 말을 하기도 한다. 자기도 모르게 학생들에게 무례한 행동을 할 때도 있다.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욕설을 할 때도 있다. 器滿則溢(기만즉일)이라. 그릇이 차면 넘친다. 필요 없이 낭비하게 된다. 많은 것을 잃게 된다. 人滿則喪(인만즉상)이라. 사람이 차면 잃어버리게 된다. 사람이 교만하게 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게 된다. 사람이 높은 체하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망가뜨려지게 된다. 人滿則虧(인만즉휴)라고도 한다. 사람이 가득차면 어그러지고 만다. 자신을 높이는 것은 자만의 극치다.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교만의 극치다.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가득참의 극치다. 반대가 되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 자신을 높이기보다 학생들을 높일 줄 아는 것이 겸손이다. 자신을 자랑하기보다 학생들의 장점을 찾아 알리고 동료 선생님들의 좋은 점을 찾아 말하는 것은 남을 귀하게 여기는 겸손이다. 盈則必虧(영즉필휴)라 ‘꽉 차서 극에 달하게 되면 반드시 기울어진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지금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점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 자신에게 유익이 되고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된다.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면서 학생들을 최대한 우대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는 길이다. 차고 넘쳐서 낭비하는 일이 있으면 그건 수치스러운 일이다. 자신의 교만이 극에 달하면 많은 것을 잃는다. 자신은 어그러진다. 망가지게 된다. 모양이 볼품없게 된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자신을 다듬어 나가야 할 것 같다. 선생님은 많은 분들이 귀하게 여긴다. 우러러본다. 늘 부러워하는 마음을 가진다. 학생들은 더욱 그렇다. 그럴수록 선생님들은 더욱 겸손해야 하고 자만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자신을 뽐내지 아니함이 자신을 보호함이다. 자신을 오래 유지함이다. 언제나 모자란 듯이, 언제나 부족한 듯이 자신을 엄격하게 관리하면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학부모님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렇지 못할 때에 후회하게 되고 마음이 불편하게 된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겸손의 길로 가는 것이다. 亢龍有悔(항룡유회)라는 말이 있다. ‘하늘에 오른 용은 뉘우침이 있다’는 뜻으로,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이 더 올라갈 데가 없어 다시 내려올 수밖에 없듯이’ 자만하면 위험하고 결국 내려갈 수밖에 없으니 조심하라는 경계의 말씀이다. 오늘 이 경종의 말씀이 내 귀에 오래 맴돈다.
수원 칠보초,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의미 있는 교육활동 펼쳐 칠보초(교장 양원기)에서는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전교생을 대상으로 장애인의 날 행사를 실시했다. 이는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고 장애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실시되었다. 장애인식 개선을 위하여 ‘대한민국 1교시’라는 프로그램을 보고난 후 그 소감을 미술활동과 글짓기 활동을 통해 표현해보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대한민국 1교시’ 프로그램에 소개된 친구들은 장애도 있었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열정도 있었다. 이들의 열정이 부른 도전은 바로 ‘뮤지컬’이었다. 노래와 춤, 연기의 3박자를 스스로 갖추는 것도 쉽지 않을텐데 또 다른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무대에서 맞춰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칠보초 이재호교사는 “32회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며 미술활동과 글짓기를 통해 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활동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같이 시청한 프로그램의 주제가 ‘마음을 나누는 친구’인 만큼 장애와 비장애에 대한 마음의 벽을 허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길 바랍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이번 교육활동을 시작하기 앞서서 권경숙 교감 선생님의 훈화말씀도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나도 장애인 친구가 있고 그 친구를 싫어하진 않았지만, 교감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해준 말씀 ‘우리도 의도치 않게 장애를 갖게 될 수도 있다’을 듣고 많이 놀랐습니다. 장애라는 가슴 아픈 상처가 나한테도 새겨질 수 있다니...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장애인에게 욕을 하고 손가락질을 할 것이 아니라 이들을 보살펴주고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중략)” 5학년 학생들의 이런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장애에 대한 아이들의 이해와 인식의 수준이 한층 높아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해를 했다면 이제는 실천해야 한다. 며칠 전 수원역 근처에서 장애인들이 모여서 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 현장을 보았다. 같은 장애를 가진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친구끼리였지만, 서로의 아픔을 잘 이해하고 배려하는 듯 보였다. 우리도 그들의 마음을 본받아 더 이상 그들을 동정이나 야유의 눈초리가 아닌 사랑과 배려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단지 ‘다른 모습’인 뿐인 것을 ‘틀린 모습’이라고 단정 짓는 우리 마음속의 ‘장애’가 하루 빨리 치유되기를 바란다.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나고 노란 개나리가 동네 어귀마다, 담자락 마다 넘쳐나는 아름다운 계절 4월이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샘이나 하듯 아직 여물어보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의 자살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어린 아이들이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그들의 꽃 대궁이 부러지고 있다. "애들아 말도 못하게 어렵고 힘들지만 극단적인 선택만은 피하고 보자" 학교 가는 것이 힘들고 어려우면 안 다녀도 아무 문제없단다. 그러니 죽음은 생각도 하지 말자. 인생 길게 보면 학교 다니는 것 아무것도 아닌거야. 학교가 그렇게 힘이 들고 성적이 그렇게 문제이면 학교 안 다녀도 아무 문제없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거야. 세상사 아무리 어려운 일도 다 흘러가게 되어 있어. 그 순간을 넘기고 나면 아무 일도 아닌 일인거야. 살아있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니. 저 화사한 진달래의 연분홍 빛을 한 번 보렴, 교정 가득히 퍼져나가는 목련은 은은한 미색을 보려무나. 또 쏟아지는 4월의 봄빛 아래 한 번 서 보렴 "힘들고 어려울 때는 혼자 고민하지 말고 먼저 부모님이나 선생님 그 누구에게든지 '나 죽을 만큼 힘들어' 이런 말을 해보자" 어른들 지금 잔뜩 긴장하고 있거든. 그런 말 한마디에 너희가 갖고 있는 고민은 모든 것이 풀릴 수 있을 거야. 말을 하자.“죽을 만큼 힘들다”고. 교육자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살고 있지만 학교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야 하는 현실이 암울하다. 학교에 가는 것이 죽을 만큼 힘이 든다면 학교에 가지 말라고 말해야 하는 현실은 더욱 참담하다. 굳이 죽음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학교라면 그런 학교에는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기에도 삶이라는 로정은 그렇게 길지 않다. 현재 우리 사회는 공교육에 대해 홈 스쿨링, 대안학교 등 각종 보완 시스템이 잘 마련되어 운영되어지고 있다. 최고의 가치는 살아가는 것이다. 일찍이 사마천은 “깃털보다 가벼운 죽음이 있는가하면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이 있다”고 말하였지만 어떤 죽음이 깃털보다 가벼운 죽음이라고 누가 말 할 수 있겠는가? 누구에게나 삶은 한 번 만 주어지는 최고의 가치인 것이다. 연습이 있을 수 없는 실제 상황인 죽음은 어느 누구에게나 태산보다 무거운 것이 되어야 한다. 애들이 죽었다. 그것도 학교에서 발생한 문제들로 인해서. 아이들의 죽음 앞에 기성세대는 어떤 변명거리도 주어질 수 없다.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학교, 죽음을 생각하고 결행하게 하는 만드는 학교라면 학교가 과연 존재의 의의가 있는 것일까? 질풍노도의 시기를 사는 아이들이기에 말을 하지 않는다고. 그럼 말을 하게 해주어야지. 학교폭력 예방 대책이 무슨 소용이 있고, 전수조사는 무슨 소용이며, 복수 담임제는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학교 폭력과의 전쟁’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조폭과의 전쟁, 조폭들이나 이런 일제 단속에 납작 엎드려 있는 것이지, 아이들이 그렇게 영악한가? 세상살이에 달고 달은 기성세대들이나 납작 엎드려 있다가 흐지부지 해 질 때가 반드시 오니 그때 활동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아이들은 즉흥적일 수 밖에 없다. 엄포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우선 그들의 고민을, 아픔을 토로 할 수 있는 언로를 열어주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아이들과 최 일선에 닿아 있는 교사가 아이들과만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교단 현실 주객이 전도되어 있다. 아이들과 함께 느끼며 호흡하는 시간보다는 컴퓨터 앞에서 업무 처리하는 것이 주 업무가 되고 있다. 이래서는 백약이 무효이다. 업무 부담 없이 오직 아이들과 같이 땀 흘리고 아이들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교사에게 시간적 여유를 허해라. 그것만이 학교폭력, 학생 자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다. 교육현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이들이어야 한다. 교사는 직업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을 책임지는 소명이다.